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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 - 이은봉
2018년 09월 06일 14시 52분  조회:2620  추천:0  작성자: 강려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
 
 
 
      이은봉 정리
 
 
 
    1. 머리말
 
   유럽의 문예사조에서 아방가르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예술사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미문학에서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 오히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아방가르드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있고, 그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행해지고 있는 듯하다.
 
   아방가르드가 발전하는 데는 특히 라틴 문화권 사람들의 감수성이 옥토의 역할을 했다. 영미문학에서는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를 구별하려는 의도도 별로 환영받고 있지 못할 정도이다. 심지어는 아방가르드를 모더니즘의 하위개념으로 두고자 하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이다. 어쨌거나 아방가르드는 상대적으로 라틴계 문학에서 좀 대접을 받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레나토 포기올리의 지적대로라면 아방가르드는 모더니즘보다 훨씬 더 유희적이다. 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는 우상 파괴적인 특성까지 지니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글에서는 주로 아방가르드가 무엇이며, 무엇을 추구하며, 그것이 유럽과 스페인 중남미에서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해 논의하려고 한다. 유럽의 아방가르드는 주로 프랑스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아마도 이는 아방가르드가 프랑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2.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
 
   백과사전에서는 아방가르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위라는 뜻. 혁신적인 예술 활동을 지칭하는 말로써 특히 남보다 앞서 미지의 세계를 타개해 가는 것을 급선무로 하였던 20세기 초의 예술 운동, 즉 이탈리아의 미래파, 러시아의 구성주의,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등을 지칭해서 쓰인다. 예술 혁신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는 이 명칭이 쓰이지 않으나, 예술 영역에 따라서 전위미술, 전위음악 등으로 쓰이고 있다.
 
   아방가르드는 어떠한 몇몇 동일한 특성으로 쉽사리 정의내릴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서로 동질성을 찾기가 어려운 수많은 표현 방식과 문학 형태가 아방가르드의 이름 아래 모여 그것을 대표하며 그것의 의미를 분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自意나 他意에 의해 아방가르드에 포함되는 예술 사조는 40여개를 넘을 정도이다. 심지어는 아방가르드적 특성이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지극히 보편적인 문학현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까지 있다. 아방가르드의 보편적인 특성인 ‘실험적인 예술의 전통과 관습’, ‘인습을 뛰어넘는 예술정신’은 문학의 본질적인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문학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며, 시대에 앞서고자 하는 창조적인 반항과 몸부림 등의 경우 문학작품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아방가르드를 이러한 특징으로만 파악하면 그러한 오해는 일면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방가르드가 추구해온 가치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관점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세계관 및 삶의 이해방식을 문학 일반이 지니고 있는 현상의 과도한 표현이라고만 말할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방가르드가 어느 특정한 예술 사조나 전통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나 이상의 여러 예술 현상을 전체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미래파, 표현주의는 아방가르드 중에서도 가장 드러난 예술운동으로 손꼽히고 있다. 물론 입체파나 표현주의, 소용돌이파나 구성주의도 아방가르드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은 그 전 시대의 모더니즘과의 관계가 다른 예술운동만큼 급진적인 단절을 이루고 있지는 않고 예술적 성과도 별로 크지 않아 아방가르드의 중심 현상으로 파악하지는 않는 것이 보통이다.
 
   아방가르드는 단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서구에서 일어났던 문학적 현상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아방가르드는 사회적이면서도 심리적인 특성까지도 포함하는 주요한 사상의 흐름이었는데, 이는 아방가르드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작가들이 정치활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것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1차 대전이 비참하게 終戰한 후에는 우후죽순 격으로 나타난 수많은 정치사상이 당시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대중들의 마음을 잡았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어 분출하기 시작한 이 무렵 이들 정치사상은 비판적 지식인들의 의식을 거칠게 사로잡으며 역사에 온갖 사건을 연출한 바 있다. 아방가르드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다소 무궤도한 정신차원에서 출현한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회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아방가르드의 경우 처음부터 문학운동이나 예술운동을 지칭하기 위한 용어는 아니었다. 아방가르드(Avant-garde)는 본래 군대의 용어로 적진을 향해 뛰어드는 특공대의 선봉, 곧 전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뜻을 갖는 아방가르드가 정치사상이나 사회혁명과 관련된 용어로 쓰이게 된 것은 1789년의 프랑스 혁명 이후이다.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이처럼 정치개혁나 사회개혁과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보편화되게 되었는데, 좀더 분명하게 유토피아적이고 혁명적인 미학용어로 자리를 잡아가게 된 것은 마르크스나 니체 등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대강 1845년 무렵에 와서이다.
 
   사회의 표현인 예술은 드높게 비상함으로써 가장 진보적인 사회적 경향을 표현한다. 예술은 개척자이며 폭로자이다. 그런데 예술이 선구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혹은 예술가가 그야말로 아방가르드에 속해 있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인류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인지를 알 필요가 있다.
 
   이러한 뜻을 갖는 아방가르드가 맨 처음 문학의 용어로 사용된 것은 빅토르 위고에 의해서다. 그러면서 샤를르 보들레르도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 용어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1870년도에 들어서면서 전위적인 작가들과 예술인들의 혁명적인 정신경향을 총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게 된다. 이처럼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는 조금씩 의미가 확대되면서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내포를 갖게 되고, 차츰 자신의 몸체를 형성해 온 바 있다. 이러한 사실은 아방가르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이들 기본적인 개념을 끌어안은 채 다양한 분야에서 당시의 세계관이나 삶의 방식들을 함유하고 규정하는 가운데 하나의 시대적 흐름을 형성해온 것이 아방가르드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방가르드는 사상 및 이데올로기의 혼란과 갈등이 미만해 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과거의 인습과 전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욕구가 예술과 만나면서 나타난 일련의 반항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기계적이고 비인간적인 의식으로 가득 차 있는 과거의 인습 및 전통과 단절하고 새로우면서도 진정한 예술을 찾기 위해 고뇌하고 몸부림치는 가운데 삶과 예술의 영역에서 자유와 해방의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던 문예운동이 다름 아닌 아방가르드인 것이다.
 
   3. 아방가르드의 성격
 
   1) 아방가르드는 개척정신과 선구자적인 자세를 지향한다.
 
   아방가르드는 언제나 앞장서 문화적 전선으로 나가려고 했다. 마치 군대의 특공대처럼, 전위병처럼 말이다. 아방가르드의 실험은 단순한 이론의 제시에 그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예술과는 전혀 다른 방법과 표현으로 새로운 정신을 발굴하려고 했던 것이 아방가르드였다. 이러한 면에 대한 군중들의 호기심과 비난이 아방가르드의 열정과 생명력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아방가르드는 이러한 용기와 진취적인 기상으로 적군에 대항하는 특공대처럼 자신의 운명과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종류의 억압과 대항하여 선전포고를 하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선전포고는 끊임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방가르드는 결국 저 자신에게까지도 공격을 해야만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말하자면 아방가르드는 그것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성격상 다른 아방가르드에 의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방가르드의 생명력은 불완전한 데에서 솟아 나와 미지의 세계가 지니고 있는 새로운 형태와 내용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여기서 아방가르드가 지니고 있는 필연적인 모순과 시간의 한계가 드러나기도 한다.
 
   2) 아방가르드는 공격적 성향을 지니고 자신을 펼쳐 나간다.
 
   아방가르드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특징을 Russel은 사회적 반목으로 보고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
 
사회적 반목이란 아방가르드 작가가 현대문화의 지배적인 심미적, 윤리적, 정신적 가치로부터 자의식적으로 소외되어 있으며 그러한 가치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아방가르드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동원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여겨지는 모든 가치를 공격하고, 그것을 전복시키려고 했다. 미래파의 선언문에는 용기, 공격, 투쟁의 美 등이 언급되어 있고, 표현주의의 선언문에는 행동, 폭풍 등이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공격성은 텍스트를 통해서는 물론 작가의 행동이나 언어, 즉 욕설이나 빈정거림 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3) 아방가르드는 전통을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어떤 것과도 타협을 거부한다.
 
   본래 아방가르드의 출발은 지금까지의 예술적 전통을 거부하는데 있다. 따라서 아방가르드는 과거의 추억이 간직되기를 원치 않았다. 인상주의에 대한 강력한 반발 현상의 하나로 태어난 것이 아방가르드이다. 르네상스 이후 어떤 예술도 자연을 충실히 반영하고 그것을 모방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견해에 대해 반발하지 못했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입장에 대한 반발은 모더니즘 혹은 그 이후의 예술에서나, 특히 아방가르드 예술에 와서야 가능했다.
 
   아방가르드는 이러한 원칙하에 400년 이상이나 계속되어온 예술의 흐름, 자연에 대한 모방이라는 예술의 흐름을 인상주의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했다. 그 이후 예술은 더 이상 자신의 특징을 자연의 재현에서 찾지 않게 되었다. 말하자면 아방가르드는 그때까지는 예술적 흐름의 일반적인 경향이라고 할 수 있었던 과거 예술과의 단절을 촉진시켜왔던 셈이다. 결국 전통과 인습을 매장시키면서 동시에 예술적 근원을 추구해온 것이 아방가르드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아방가르드는 현대적 의식의 일차적인 모습인 무소속감과 반순응주의를 거부한다. 낭만적 개인주의의 특징인 무소속, 고립, 계급 탈락, 방랑 등과도 과감히 단절을 강화하는 것이 아방가르드이다. 그렇다. 아방가르드는 그밖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단절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데, 이는 기존의 모든 문학적 전통들과 사고방식을 조소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영원한 단절감을 맛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방가르드인 것이다.
 
   하지만 단절을 통한 자기 고립이 아방가르드의 목적은 아니다. 예술의 원형을 복구하려 했기 때문에 아방가르드의 단절은 흔히 진보를 위한 필요조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단절을 통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논리를 갖고 있었던 것이 아방가르드였던 것이다. 아방가르드의 단절의 논리가 실질적으로 가져온 것은 허무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허무의 정신은 아방가르드로 하여금 도덕적 파괴를 감행하도록 했고, 결국은 분노로 삶을 바라보도록 하는 태도를 형성하도록 했다. 아방가르드가 삶을 하나의 문젯거리로 이해 한 것도 실제로는 여기서 기인한다. 아방가르드의 끊임없는 반항이 급기야는 도덕의 영역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들 미학은 결국 아방가르드로 하여금 허무주의로의 길을 선택하게 하는데, 이는 아방가르드의 운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아방가르드는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정치 참여는 실패로 끝나지만 도덕적 반항을 바탕으로 하는 허무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지속된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쟁의 의미가 상실되기 시작하면서 아방가르드가 추구해온 부정의 행위는 더욱 과격하게 바뀌어 가는데, 그에 비례해 파괴의 양상도 더욱 심해진다. 결국 부정의 행위와, 그에 따른 파괴의 양상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허무주의는 아방가르드의 이러한 과정에 나올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정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방가르드의 허무주의는 완전한 파괴를 의미한다. 모든 계급 및 가치구조를 완전히 파괴하여 잿더미만을 남겨놓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완전한 파괴, 그것은 완전한 절망의 소산이다. 다다이즘에 따르면 善, 惡, 美의 기준은 상대적 가치이거나 단순한 언어적 수사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상대적인 가치에 의해 느끼는 허무주의는 이내 절대적인 예술의 구현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절대적 예술, 곧 역사와 사회로부터 완전히 해방한 예술, 바로 그러한 예술의 자유를 그리려고 한 것인데, 따라서 아방가르드는 유토피아를 추구한 예술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와 관련해 아방가르드가 원하고 있는 자유는 이미 상당 부분 실현되어 있는 것 아니냐며 되물은 바도 있다. 결국 예술의 자유라는 것이 객관적인 현실을 표현하는 데 있다면 아방가르드는 이미 열려 있는 문을 부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방가르드가 추구하는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이렇게 비웃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할 수 있는 대상이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상황 자체를 다시 반대하고 부정하는 것을 생명력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방가르드이다. 따라서 아방가르드가 이미 열린 문을 부수고 있다는 비판은 아방가르드가 저 자신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기막힌 표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면 아방가르드의 허무주의는 오히려 긍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아방가르드의 허무주의는 대부분 詩와 관련해 시를 위해 존재한다. 아방가르드의 허무주의에는 지속적으로 진실되게 詩를 재생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아방가르드는 본질적으로 시의 순수와 서정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데, 이는 현대에 들어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물론 아방가르드가 지니고 있는 순수와 서정에 대한 향수는 과거의 시가 지니고 있는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순수와 서정, 곧 상상력의 원천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는 사실 아방가르드에게 당연한 것이 된 지 오래이다.
 
   아방가르드는 근본적으로 미래를 지향한다. 하지만 동시에 아방가르드는 원형적인 것과 영원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며, 깊이 있게 그것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원상(原象)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고, 역사의 인습과 관습으로부터 해방된 세상의 모델을 찾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예술의 측면에서는 절대적인 세계에서 심미적 절정을 이루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아방가르드는 현실에 대해서는 허무주의적인 경향을 보여 주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결코 비관론을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소간은 모순적이고 양가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방가르드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아방가르드에는 늘 새로운 삶과 새로운 의미를 향한 강렬한 힘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5) 아방가르드는 미래 지향성을 갖는다.
 
   아방가르드가 미래에 대해 기대를 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주지하다시피 미래라는 말은 아방가르드의 선언문이나 작가들의 말에 매우 자주 등장한다. 미래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아방가르드는 자신이 지니고 있는 미래성 때문에 때로 폭동을 정당성하게 여기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비현재성, 곧 미래성 때문에 아방가르드는 아직도 온갖 모욕과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아방가르드의 핵심 예술경향의 하나가 미래파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아방가르드의 성공은 먼 훗날에나 알 수 있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방가르드의 작가는 아예 자신의 성공 여부조차 알기 어려웠던 것이다. 어쩌면 아방가르드 작가는 영원히 산다고 하더라도 저 자신의 아방가르드가 만드는 성공을 볼 수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아방가르드의 내적 논리에 의해 작가는 미래를 향해 끊임없는 창조적 반항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었더라도 말이다.
 
   4. 유럽의 아방가르드
 
   1918년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나자 유럽의 지성인들은 과거의 시대가 멀어져 갈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인간이 쌓아올린 모든 지적 유산과 전통이 전쟁으로 파멸버렸다는 것을통감한다. 이른바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다는 감지했다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다양한 작업에 강한 욕구를 갖고 있었던 것이 당대의 지성인들이다. 때마침 불거져 나온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인간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키면서 당시의 예술사상 일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리하여 부르주아적인 모럴은 물론 기독교도적 가치도 비판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운 지적인 상황이 이루어진다.
 
   문학에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과거의 소재와 형식을 버리고 현대에 알맞는 새로운 미적 가치를 이룩하려고 하는 모더니즘의 도전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모더니즘은 19세기 보들레르에서 출발하는데, 아폴리네르에 이르러 형식과 내용면에서 적극적인 탐구의 대상이 되고 실험의 대상이 된다. 또한 아폴리네르는 「새로운 정신」이라는 글에서 “진실은 숭고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내재해 있으며, 驚異야말로 모든 예술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고 주장해 그 이후 다다와 초현실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이후에는 프랑스 미래파의 거장인 그 자신도 아방가르드의 흐름에 깊이 휩싸이게 된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에 모든 예술계가 적극적으로 부응하는데, 1909년에는 마침내 이탈리아의 마리네티가 파리의 <르 피가르>지에 「미래파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운동의 선구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미래파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미래파 운동은 문학과 예술 전반에 걸쳐 기계문명의 도래를 예고했는데, 이는 후에 새로운 시어 개척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된다. 미래파는 인류의 미래와, 예술에 나타날 새로운 관념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모든 아방가르드 운동 중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허무주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어 과거의 우상을 파괴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박물관과 도서관을 부수자는 말조차 서슴지 않았으며, 갇혀 있던 예술을 일상적인 삶의 위치로 끌어내기 위해 안간 힘을 다했다. 미래파 시인들의 첫 시집의 이름이 『언어에게 자유를』이란 점도 그들의 이런 노력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서구의 미래파 시인 중에서는 러시아 혁명에 앞장섰던 마야코프스키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러시아의 시인 마야코프스키야 말로 이 시기 영국의 시인 T.S 엘리어트와 함께 세계 최고의 모더니스트 시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다다는 1916년 츄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에 모인 젊은이들에 의해 출발되었다. 그런 뒤 초현실주의로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1922년 파리에서 앙드레 브르통이 해체를 선언하는 6년 동안 유럽 전역에 걸쳐 크게 풍미했던 예술운동이었다. 다다의 의미는 매우 우연적이다. 다다라는 용어가 받아들여진 것도 마찬가지이다. 다다의 작가들은 다다의 무의미성이 정신의 소멸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기존 질서의 붕괴라는 내적 의미를 갖는다고 믿었다.
 
   다다는 무엇보다도 전쟁과 전쟁을 합리화하는 이념과 논리에 대해 반발했다. 국가를 위한다는 논리로, 신을 위한다는 논리로 이루어진 전쟁의 비극과 파괴를 경험한 그들은 언어 및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전통적인 문학과 예술은 물질세계의 허무함과 공허함을 나타낼 뿐이라고 느꼈다. 그들이 도덕성을 거부하고 절대적인 회의를 부르짖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918년에 이루어진 다다이즘의 선언에서는 무엇보다 바로 이러한 다다의 부르짖음을 들을 수 있다. 우연과 직관에 의해서만 올바른 현실을 발견할 수 있으므로 이성과 필연은 쓰레기통에 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다다이스트들이다. 따라서 관습과 습속, 속박은 언제나 그들의 저항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다다이즘의 주도자인 차라의 말이다.
 
   나는 모든 체제에 대해 반기를 든다. 가장 받아들일 만한 체제는 원칙적으로 말해 아무 체계도 갖지 않는 것이다.
 
   다다가 기존 예술의 역할을 혐오한 것은 그것이 제도화되어 있다고 믿었고 형식화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다이스트들은 제도와 형식이 인간의 생생한 경험을 끊임없이 왜곡시킨다고 믿었다. 따라서 다다이즘 운동은 표현의 직접성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 다다이즘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낭만주의적인 정신을 함유할 수밖에 없다. 낡아빠진 기존의 표현방식에 대해 완전한 파괴를 추구하는 것이 다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쟝 뽈랑은 언어로부터 이처럼 범속하고 인습적인 형식 및 상투구를 완전히 제거하고, 언어가 지니고 있는 함정을 피해 순수하고 신선하고 시원적인 영감에 호소하고 있는 이들 다다이스트, 즉 언어파괴자들을 ‘테러리스트’라고까지 부르기까지 했다. 따라서 이들 다다이스트들은 예술에서의 무정부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다는 그 표현에서 언어의 연상 작용을 거부한다. 뿐만 아니라 시의 형식이나 언어의 구문도 거부한다. 미래파의 영향을 받아 부사나 형용사를 되도록 쓰지 않으며, 구두점을 찍지 않고, 단어의 의미보다는 소리나 억양, 리듬 등을 중요하게 취급한다. 아폴리네르는 상형시 즉, 글자를 어떤 의미를 띤 형태로 배열하는 그림처럼 된 시(구체시)를 고안하기도 했으며, 여러 사람이 동시에 시를 읽는 동시시(영대시)를 주창하기도 했다.
 
   다다가 인정하는 가치는 개인의 자발성에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 인간은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워진 것으로 인해 예술도 진정한 창조물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자발성에 무한한 자유를 허용해 각양각색의 예술적 실험을 했지만 따로 자신들 내부에서 이론적인 통일성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실천적인 면이나 기교의 면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고유한 원칙도 없었다. 이러한 측면으로 하여 다다는 예술론과 창작활동 사이에서 모순점을 안고 있었으며, 떠들썩한 활동에 비해 창작의 면에서는 별다른 열매를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다다는 모든 아방가르드 운동 중에서도 20세기의 예술의 진로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갖게 해주었다는데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다다이즘이 미래파에서 비롯되었다면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다다이즘을 주도했던 브르통이 초현실주의를 창시했다는 사실에도 잘 나타난다. 다다이즘의 자기부정의 결과로 태어난 것이 초현실주의인 셈이다. 초현실주의는 문명의 속박 속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고, 이성의 횡포에 의해 억압되어 있던 무의식을 석방시키고자 한 예술운동이다. 그러니까 무의식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추구하고 있는 예술운동이 초현실주의인 셈이다.
 
   초현실주의는 1924년 11월, 앙드레 브르통이 <제1차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개막되었다. 이 선언문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은 의식적인 경험과 무의식 속의 경험을 일치시켜 꿈과 환상의 세계가 일상 합리적인 세계와 일치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르통을 중심으로 한 초현실주의자들의 이러한 예술관은 무엇보다 프로이드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꿈과 환상에 대한 강조는 낭만주의나 상징주의의 색채가 깊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낭만주의나 상징주의는 예술의 목적의식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초현실주의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초현실주의에서는 당연히 이러한 무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 개발되었다. 그것의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자동기술이다. 자동기술은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순식간에 그대로 받아쓰는 것을 가리킨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을 재빨리 받아쓰는 것이 자동기술인 것이다.
모리스 블랑쇼는 자동기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동기술은 말이다. ‘욕망’이 되는 말이다.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오기 위해 욕망에 몸을 맡기는 말이다.”
 
   자동기술은 작가가 완전히 무의식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무의식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하다. 작가의 미학적 기준이 발동하게 된다는 점과, 의식을 잠재우게 되는 과정으로 미루어 볼 때 자동기술에는 인위적인 면이 강하다.
 
   자동기술법은 최면술과의 혼동으로 인한 오해 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절대적인 자동기술은 거의 존재하기 어렵다. 무의식을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려 그것의 본질을 표현하는 것 또한 객관적이고 외적 형식을 갖추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이 과연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렇ㄷ면 진정한 표현은 침묵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떻게 예술에서 침묵과 같은 지적인 자살이 있을 수 있겠는가. 초현실주의에서의 자동기술은 이처럼 모순적이다.
 
   다다이즘과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도 구체적인 창작으로 이어지는 데는 실패했다고 해야 옳다. 따라서 다다이즘과 더불어 초현실주의는 운동의 산물인 작품이 직접적인 예술적 성과와 가치를 획득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징주의 운동 말기에 이르면서 문학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점과, 삶으로부터 단절되면서 문학이 갖게 되는 不毛性을 지적했다는 점에서는 초현실주의도 일정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 스페인의 아방가르드
 
   스페인의 아방가르드는 루벤 다리오(Ruben Dario)에 의해 모더니시모(modernismo)가 수입되면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풍미한다. 그러한 과정에 스페인에서는 다시 새로운 문학 운동에 대한 열의가 서서히 고개를 들게 된다. 당시 유럽에서는 아방가르드의 물결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등 전 유럽을 강타하고 있었는데, 이 물결이 스페인라고 그냥 지나갈 리는 없었다.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선언이 있고 나서 스페인에도 아방가르드가 소개되었고, 그 이후 스페인식 아방가르드 운동인 울트라이스모가 모더니즘 운동의 뒤를 이어 중요한 문예사조로 등장하게 되었다. 스페인의 울트라이스모는 모더니즘의 호화스러운 수사법과 이야기 스타일, 감상주의, 음악성 등을 과감히 버리고 미래주의의 테마와 같은 현대문명의 산물들을 소재로 하여 비유와 이미지에 의거하는 시적 표현 방식을 추구한다.
 
   초기에 아방가르드의 물결을 수용하고 작품을 발표한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구이레르모 데 토레)(Guillermo de Torre), 고메즈 데 라 세르나(Gomez de la Serna)와 게라르도 디에고(Gerardo Diego)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근대 문명 속에서 테마를 추구하고, 은유적 곡예(acrobacia metaforica)를 위해 감정적, 일화적 요소를 배재한다.
 
   이들 중에서 특히 고메스 데 라 세르나(Gomez de la Serna)는 초기 서반아 아방가르드의 개척자적 위치를 지키고 있다. 그는 간단한 형태의 유모적인 은유가 눈에 띄는 ‘그레게리아’라는 형태의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다. 이것은 그의 말대로라면 “사물이 스스로 외치는 소리”이다. 그의 시작법은 사물이 가끔씩 보여주는 숨겨진 의미나 이미지를 발견하는 데 있다. 이러한 그의 ‘그레게리아’는 심각한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단순함과 현실의 파괴를 기반으로 한 장난스러운 문학이었다.
 
   울트라이즘이 시들고 나서 Vicente Huidobro(빈센트 후이도브로)의 창조주의(Creacionismo)를 표방한 Gerardo Diego(게라르도 디에고)는 뒷날 과거 공고라의 시풍은 물론 초현실주의의 시풍까지 받아들여 자신의 시를 현대적으로 승화시켰다. 디에고의 창조주의에 따르면 시는 자연이나 현실의 모방이 아니라 언어의 창조이다. 그의 기발한 이미지는 아방가르드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이는 27세대의 복고주의의 시어 개척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그의 창조주의는 지금까지 시에서는 절대적인 법칙처럼 여겨져 오던 자연이나 인간의 모방에서 벗어나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모방은 가장 인간적인 본능이며 쾌락이다. 당시까지 모든 예술은 이 모방에서 자신의 시작점을 찾고 있었다. 창조주의는 바로 이러한 점을 탈피하려고 했다. 이제 디에고(Diego)부터는 말이 시를 쓰는 시학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는 창조주의의 원조인 칠레의 비센떼 우이도브로의 시학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디에고(Diego)는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창조한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또 다른 표현방법일 뿐이다. 창조의 방법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낸다거나 혹은 고백한다는 의미이다.
 
   디에고는 창조주의 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의 시에도 능숙하기 때문에 전통시와 아방가르드를 적절히 조화해 극도의 상징적 미를 창조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아방가르드와 그 자신의 경험을 합쳐 독특한 詩世界를 구축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름으로 독립된 채 스페인에 들어오지는 못했다. 초현실주의의 경우 독자적으로 스페인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아방가르드라는 분위기 전체에 묻혀 들어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초현실주의는 그 자체로서는 스페인에서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도 없다.
 
   아방가르드(특히 초현실주의)의 시작법은 로르카(Lorca)를 비롯한 여러 시인들로부터 반발을 샀으며, 그 반발로서 순수시(Poesia pura) 운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동양의 하이꾸에 대한 모방을 포함한 아방가르드의 표현기법은 스페인의 시인들에게 지속적으로 받아들여져 시어의 혁명을 일으키는 데 공헌했다. 이는 나아가 극단적인 비논리, 비이성의 시학을 개발하는 데 기여하기까지 했다.
 
5. 중남미의 아방가르드
 
   중남미의 아방가르드 운동을 논할 때 첫 번째 주인공으로 거론해야 할 시인은 빈센트 후이도브로(Vicente Huidobro)이다. 그는 창조주의(Creacionismo)의 선구자이며, 그의 창조주의는 전 스페인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그는 시인의 가장 중요한 요건은 바로 창조이며, 따라서 시인은 반드시 모방론적인 시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시인이여, 어찌하여 장미를 노래하는가. 시 속에 장미를 꽃 피우라.
 
   이보다 더 빈센트 후이도브로(Vicente Huidobro)의 창조주의 시론을 나타내는 말은 찾아 보기는 어렵다. 창조주의 시론에 따르면 시인은 자연을 흉내 내지 않고 작은 신이 되어 시 속에서 창조하는 자유를 스스로 획득해야 한다. 그에 따르면 시는 자연을 노래해서는 안 된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자연과는 상관이 없는 언어로 이루어져야 창조주의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시적 감흥의 재료가 자연이 아니라 시인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언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주의 입장에서는 객관적으로 보이고 느껴지는 모든 것도 결국 주관적인 재창조의 결과이어야 한다. 모든 것은 창조되어진 것이거니와, 시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창조되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창조주의 시학이다. 따라서 그의 창조주의 시학은 다다와 같은 완전한 파괴주의 문학경향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학의 재건에 더 치중한 것이 그의 창조주의 시학이기 때문이다.
 
   마리아노 브룰은 아방가르드의 가장 극단적인 개혁의 하나인 글자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글자시는 의미체계의 최소단위인 단어를 파괴해 시인의 독자적인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그 고유의 언어로 이루어진 시를 말한다. 한 나라의 국어는 시인의 영감을 표현하는데 언제나 최후의 장벽이 되었으므로 이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 바로 글자시다. 이것이 마리아노 브룰에게 수용되어 당시 아방가르드의 한 줄기를 이어갔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이후 중남미의 아방가르드 운동은 초현실주의의 경향을 강하게 띈다. 네루다의『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 절망의 노래』는 중남미 초현실주의의 최고봉을 이룬 시집이다. 그의 시 쓰기는 먼저 생각나는 대로 쓴 다음에 후에 수정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유럽 초현실주의의 기법인 자동기술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처럼 의식적으로 시작에 참여하는 방식을 취하므로 그의 시에 드러나 있는 무의식에는 불연속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네루다(Neruda) 이후 중남미의 초현실주의는 옥따비오 빠스에게로 넘어가는데, 옥따비오 빠스는 네루다와는 달리 프랑스 초현실주의에 직접 영향을 받아 시에 새로운 현실을 담아낸다.
 
6. 맺는말
 
   아방가르드가 전 유럽에 커다란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스페인이나 중남미에 준 영향은 그렇게 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스페인어권 내에도 아방가르드가 수입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곳에 수입된 아방가르드는 각기 독특한 형태로 각색되면서 시인과 문화권에 따라 크게 변용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완전한 의미에서의 아방가르드 작가는 스페인이나 중남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아방가르드가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정신은 크게 영향을 미쳤지만 실제로는 스페인어권 작가들이 자신의 시적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문을 열어준 것에 불과한 듯싶기도 하다. 일단 그 문을 통과한 다음 스페인이나 중남미 작가들은 기존의 유럽의 반항아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갔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 일반, 그리고 유럽의 아방가르드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그것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성격과 표현방법을 중심으로 자세히 설명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스페인과 중남미의 아방가르드에 대해서는 별로 자세히 기술을 하지 못했다. 전체의 모습을 파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각각의 詩人에 대한 기술이, 특히 스페인과 중남미의 아방가르드 시인에 대한 기술이 충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의 관계도 여기서는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의 표현방법과 표현기법이 가장 첨단적으로 실험되었던 것이 아방가르드 시대이다. 이들에 의해 이루어진 시의 표현방법과 표현기법에 대한 공부를 통해 여러분 자신의 시가 나아갈 방향을 찾는 것이 오늘 여기서 아방가르드에 대해 탐구하는 가장 주요한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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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용태, 『서중남미 문학론- 제 3의 문학의 현장에서』(전예원, 1989), pp.29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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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숙, 『초현실주의』(동아출판사, 1992), pp.15-18, pp.61-66, pp.7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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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마리노, 「아방가르드는 어떻게 정의되는가」, 《외국문학》 제1호(1984.,
장선영, 『西班牙 라틴아메리카 文學史’』(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1987), pp.165-170.


[출처]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 - 이은봉|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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