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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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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34>/심 상 운
2019년 07월 26일 20시 19분  조회:1535  추천:0  작성자: 강려
  *월간 <시문학> 2008년 3월호 발표*  유승우/고종목/박대영의 시
     
유승우 시인의 시-「강물이 바다로」「달빛의 혼」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갈 때
그 가슴속에 키우던 민물고기들은
다 두고 간다.
바다의 가슴속 어디에서도
강물의 추억이나 기억을 찾을 수 없다.
송사리 새끼 한 마리도
그 품속에 숨겨두지 않는다.
이토록 깨끗한 몸바꿈을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지만, 나는
송사리나 미꾸라지처럼,
아니면 산골의 가재처럼
민물을 벗어나지 못한다.
-----「강물이 바다로」전문
 
빛의 혼은 달빛처럼 은은하고
푸르고 깊다.
물을 많이 마신 날이면
내 정신도 푸르고 깊다.
한강 상류의 여울목에서
물살에 찬란히 빠져 죽은 달빛은
밤중의 강물처럼
푸르고 깊게 흘러온 달빛의 혼은
수도꼭지에서 쏟아져 나오고
물을 많이 마신 날이면
달빛의 혼에 취해, 술처럼 취해
달빛이 그리워 달밤이 그리워
파리한 내 정신은
달 밝은 들판에서 머리를 푼다.
-------「달빛의 혼」전문
 
시에 대한 관점은 시대마다 시인마다 다르다. 그 ‘다른 것’이 시의 생명을 영원히 유지하게 하는 시의 에너지가 된다. 만약 시에 대한 정의와 표현기법이 같아야 한다면 시인은 그만큼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고, 시를 읽는 맛이나 시를 짓는 흥미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유승우 시인은 자신의 시관詩觀을 <시와 예술 그리고 신화>(시문학 2007년 2월호)에서 ‘신과의 대화’라는 관점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의 표현방법은 이미지의 기법을 따른다고 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시는 우주의 구현 즉 ‘사람의 몸’이라는 독특한 발상을 내세우고 있다. 그의 이런 시관은 동양의 시관보다는 정통적인 서양의 시관에 맥이 닿는다. 기독교의 사유와 관념을 중시하는 서양의 시관은 현대시에서도 형이상의 관념을 추구하는 철학적 시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 현대시에서는 김현승의 주지적 관념시를 예로 들 수 있다.) 시의 내용을 ‘신과의 교감交感‘이라는 정신세계에 두는 형이상의 시는 기독교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 날 때, ’나‘를 버리면 해탈의 자유를 얻는다는 동양의 정신세계와도 교류가 가능하다. 그러나 현대시에서는 이런 정신세계에 대한 천착보다 그것을 어떻게 시로 표현하고 이미지화 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미지는 감각의 산물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시의 물리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현대시에서는 ‘사물성의 이미지’ 그 자체를 시로 인정하기도 한다.
「강물이 바다로」는 시인의 관념을 하나의 비유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려는 것 같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갈 때/그 가슴속에 키우던 민물고기들은/다 두고 간다./바다의 가슴속 어디에서도/강물의 추억이나 기억을 찾을 수 없다./송사리 새끼 한 마리도/그 품속에 숨겨두지 않는다./이토록 깨끗한 몸바꿈을 위해/새벽마다 기도하지만, 나는>에서, 바다는 분별과 차별이 사라진 우주적인 세계를, 강물은 분별과 차별의식으로 가득한 인간 세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실 바다나 강은 본래는 같은 세계지만 인간의 지식과 분별에 의해서 차별화된 세계이다. 강에서 바다로 간다는 것은 차별의 세계(비본질적인 세계)에서 무차별의 세계(본질적인 세계)로 떠나는 정신적인 여행을 의미한다. 이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는 여행은 사물이 원소로 환원되는 물질의 세계에서는 기본적으로 발생하는 과학적인 사실이다. 시인은 바다로 가는 여행을 위해서 기도를 한다. 그 기도는 신과의 만남이고 대화다. 이 보이지 않는 대화의 내용을 비유적 언어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이 이 시의 표상이다.
그러면 이 시는 이미지의 형상화에 성공한 것일까? 관념의 힘에 의해서 시인의 상상력이 너무 단순화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의 전달을 목표로 함으로써 시의 감각적 기능이 위축되고 설득적인 기능이 우세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점에서 그의 초기 시「달빛의 혼」과 비교가 된다.「달빛의 혼」에는 시인의 관념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관념보다는 시인의 감각이 더 진하게 묻어난다. 시인은 어느 날 푸르고 은은한 달빛에 취해서 <빛의 혼은 달빛처럼 은은하고/푸르고 깊다./물을 많이 마신 날이면/내 정신도 푸르고 깊다./한강 상류의 여울목에서/물살에 찬란히 빠져 죽은 달빛은/밤중의 강물처럼/푸르고 깊게 흘러온 달빛의 혼은/수도꼭지에서 쏟아져 나오고/물을 많이 마신 날이면/달빛의 혼에 취해, 술처럼 취해>라고,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한강 상류에서 찬란하게 빠져 죽은 달빛이 수도꼭지를 통해서 나온다는 발상은 매우 독특하고 기발하다. 그것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상상이 아니다. 비록 그것이 과학적 사실과는 동떨어진 허무맹랑한 상상이고 허상이라고 할지라도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상상의 기능을 통해서 관념적인 시보다 시적 즐거움을 더 향유하게 된다. 이것을 러스킨(John Ruskin 영국 1819. 2. 8~1900.1. 20)은 “시에 있어서 표상이 진실치 않으면서도 우리에게 쾌락을 주는 경우가 흔하다”고 하면서 이를 “감상적 허위(Pathetic Fallacy)”라고 하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현대시에서 시인들의 시적 방법론과 시관은 매우 다양하다. 이 다양한 시관에서 하나의 차이점을 집어낸다면 시는 ‘진리발견의 도구’가 아니라는 견해와 시는 진리를 표상해야 한다는 견해다. 따라서 전자의 시인들은 자신의 의식과 심리적인 이미지에 더 몰두하고 감각적인 언어로 무한한 이미지의 세계를 구현하는 데서 시적 성과를 얻는 반면 후자의 시인들은 형이상학적 사유의 표상에 시의 가치를 두고자 한다. 시의 이런 형이상학적인 진리표상의 문제는 그리스시대의 시와 철학과의 갈등관계에서도 발견된다. 플라톤은 정서와 비논리를 존재의 바탕으로 삼는 시는 공리의 법칙과 엄정한 논리를 근본 바탕으로 하는 과학이나 철학에 비해 절대적인 진리를 찾는 도구로서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그의 공화국에서 시인을 추방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시인들 중 형이상학적 시를 추구하는 시인들은 주지적 관념을 통해서 시 속에 우주적 진리를 담으려고 한다. 그래서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감성적인 시의 ‘시적 진실’과 형이상학적 사유시의 ‘진리’는 서로 공생하면서도 충돌하게 된다. 유승우 시인의 시「강물이 바다로」와「달빛의 혼」은 그런 관점에서도 흥미롭게 읽힌다.
*유승우(柳承佑): 1969년 <현대문학> 추천 등단. 시집: <바람 변주곡><나비야 나비야> <그리움 반짝이는 등불 하나 켜들고>등
 
고종목 시인의 시- APT가 아프다」「멀티카드섹션」
 
아파트창이 환히 조각보를 펼친다.
창 하나, 빨간 가구 빨간 옷 빨간 몸이
창 하나, 파란 수족관속에 파란지느러미의 물고기들이
창 하나, 주말 부부 뽀글뽀글 노랑머리 여자와 뽀메리온이
흔들의자에 앉은 흔들 입맞춤이
창 하나, 설날 저녁 삼대가 앉아 보는 축구경기
슛-초록축구공의 포물선 TV화면을 출렁 흔들고
창 하나, 낡은 차 안 불이 꺼졌다가 깜박 껴진다.
10년 무주택인 K씨가 타고 있다.
2월 밤 불을 켠다.
소장 〮〮〮․ 대장 ․ 십이지장 ․ 신장 ․ 비장 ․ 췌장 ․ 맹장 ․ 애간장
아파트 내장이 부글거린다.
-------------「APT가 아프다」전문 * 뽀메리온: 애완용 강아지 종
 
바늘구멍 속에다
한 남자가 비릿한 살비늘 떨구었다
한 여자가 벽자壁紫색 도라지꽃 한 송이 놓고 갔다
한 노인이 소태 씹은 혀를
한 젊은이가 푸르게 발기한 꿈 한 페이지를
한 어린이가 구슬을 떨구었다
고운 색실로 한 땀 한 땀 그리고 또
한 망자가 삼베로 싸맨 빈 손 낙관을
한 신부가 주문하지 않은 성경책 한 권을
한 부처가 목탁소리 내려 놓았다
바늘 ‘구멍’ 속에 쫙 펼친다
멀티 카드섹션
----------「멀티카드섹션」전문
 
시는 체험이라는 말이 있다. 시인의 상상이나 사유도 체험의 파생적 산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종목 시인은 실과 바늘을 삶의 도구로 삼아 평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조각보는 내 시의 과거, 현재, 미래의 입체적 공간이다. 또한 종교와도 같은 정신적 주체이다. 그래서 바느질로 점철된 시를 쓴다. 그 공간은 시를 통해서만 왕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만 둘 수가 없다. 작업을 통해서 시간적 공간을 넘나들며 나의 내면 깊숙이 잠재된 무의식의 세계를 바늘땀 한 땀씩 뜨듯, 받아쓰기 한 것이 내 시의 기본이 된다.”라는 그의 말에는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삶의 진실과 체험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언어로 된 시만이 아니라, 회화繪畵의 세계에서도 독창적인 이미지로 ‘조각보’의 예술적 공간을 열어 보임으로써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시편 중 조각보의 연결과 유사한 시들은 독특한 감각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시에는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의식이 불연속적인 집합적 결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APT가아프다」에서는 불빛이 환한 아파트 창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그의 상상을 모아놓음으로써 인과적 연결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새로움을 준다. 그는 자신의 관념으로 독자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보여주기를 통해서 ‘공감 나누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상상은 현실과 연결되지만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다. 그 세계는 어떤 의미나 관념에서 해방된 제2의 공간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하고 존재한다. 그것은 또 ‘독자들의 공간 넓히기’의 방법이 된다.「APT가 아프다」를 형성하는 4개의 화상畵像은 하이퍼텍스트(hypertext)적인 상상의 그림을 펼치고 있다.<창 하나, 빨간 가구 빨간 옷 빨간 몸이/창 하나, 파란 수족관속에 파란지느러미의 물고기들이/창 하나, 주말 부부 뽀글뽀글 노랑머리 여자와 뽀메리온이/ 흔들의자에 앉은 흔들 입맞춤이/창 하나, 설날 저녁 삼대가 앉아 보는 축구경기/ 슛-초록축구공의 포물선 TV화면을 출렁 흔들고/창 하나, 낡은 차 안 불이 꺼졌다가 깜박 껴진다./10년 무주택인 K씨가 타고 있다.>가 그것이다. 이 시에서 ‘빨간 가구 빨간 옷 빨간 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빨간〓욕망으로, 또는 빨간〓생명으로, 또는 빨간〓성性으로 각각 다르게 환원하여 이 시를 감상하게 된다. 그리고 4번째 화상 속에 들어 있는 무주택자 k씨의 모습은 이 시가 현실의 문제도 포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개의 화상에 담겨 있는 동적인 영상은 디지털의 생동하는 화면이 되고 있다. 그 영상은 언제나 입체적이고 현재형이다. 그리고 가변적이다. 그 변화는 작은 단위들의 집합적인 결합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이런 하이퍼텍스트 적인 화상에도 시인의 내적 의식의 그림자가 진하게 깔려 있다는 것을 「멀티카드섹션」은 보여주고 있다. <바늘구멍 속에다/한 남자가 비릿한 살비늘 떨구었다/한 여자가 벽자壁紫색 도라지꽃 한 송이 놓고 갔다/한 노인이 소태 씹은 혀를/한 젊은이가 푸르게 발기한 꿈 한 페이지를/한 어린이가 구슬을 떨구었다/고운 색실로 한 땀 한 땀 그리고 또/한 망자가 삼베로 싸맨 빈 손 낙관을/한 신부가 주문하지 않은 성경책 한 권을/한 부처가 목탁소리 내려놓았다>의 구절들이 시인의 잠재의식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중심 키워드는 바늘구멍이다. 그 바늘구멍은 시인이 지나온 삶의 현장을 찍어서 보관한 카메라의 렌즈다. 평생을 바느질을 하며 살아온 그에게 바늘구멍은 세상을 보는 창이 되고 세상을 표현하는 기호가 된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논리다. 그것은 이 시가 그가 경험한 생의 풍경을 멀티 화면으로 펼쳐놓았다는 근거가 된다. 그래서 이 시에서 도라지꽃 한 송이를 놓고 간 여자, 푸르게 발기한 꿈 한 페이지를 놓고 간 한 젊은이는 그의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는 젊은 날의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린이, 망자, 신부, 부처 등은 그의 삶을 풍성하게 해준 인연들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된다. 가벼운 터치로 언어의 화면에 그려 놓은 멀티 카드 섹션의 그림들이지만 이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의 인생을 형성시켜준 인연들이라는 점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는 사실적인 기법으로 그 대상들과 만날 수도 있지만 현실을 초월한 환상적인 그림으로 만나고 있다. 그것은 그에게 삶을 관조하는 눈이 환하게 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그가 보여주는 화상의 세계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 원망, 저주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도 환희, 즐거움 같은 긍정적인 정서도 다 잦아든 담담함과 맑고 투명한 의식만 남아있다. 이는 하이퍼텍스트(hypertext)의 하이퍼(hyper)에 ‘건너편의’ 또는 ‘초월’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과도 상통한다. 그림(사진)은 언제나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사실(fact)일 뿐이다. 그 속에는 감정이 들어있지 않다. 그런 심적 상태는 선禪의 세계와 같다. 선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법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고종목 시인의 시편 중 사회봉사의 체험을 표출한 작품들도 그것이 독립적인 영상이라는 점에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종목: 1996년 시집 <성마령의 바람둥지>로 시작활동. 시집: <성마령의 바람둥지> <곤드레아라리> <바늘과 실 그리고 나> <바늘구멍>
 
박대영 시인의 시- 「깨밭」「김화백이 보낸 그림」
 
깨 심어 놓고 그날부터 깨밭에 앉은 할머니
종일 산비둘기와 다툽니다
금줄을 쳐놓고 허수아비를 세웠지만
만만찮은 놈들 할머니의 걸음으로 알아챘나 봅니다
생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영감은
비탈밭에 누워 자꾸만 말을 거는데
돌아앉은 할머니는 막대기를 두드리며
훠이 훠이 누굴 쫓는지 모르겠습니다
속없는 자식들 이제 비탈밭은 포기하라고
올 때마다 노래를 불러대지만
알았다며 그 냥 웃지요
너희들은 모른다며 돌아서 울지요
산비둘기들이 고맙답니다
종일을 앉아있어도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오늘도 지팡이 같은 막대기 들고
비둘기 쫓으러 비탈길을 오릅니다
-----「깨밭」전문
 
나에게는 늘 따로 셈하고 갈무리해야 하는
밑천 같은 화가 친구가 있다
무슨 한이 그리 많아
아름다운 것들은 죄다 가두어 버리고 싶어하는
욕심 많은 그림쟁이
그가 보낸 풍경화를 오늘 새벽에야 보았다
내가 살았던 어린 시절 고향집 같은
아니면 지난 밤
기억 없는 꿈속에서 한참 살았을 것 같은
나지막한 산 아래 흙담의 작은 집이 있고
꿈길 같은 황톳길을 돌아들면
고즈넉이 저녁연기 깔린 마당이 보인다
지나는 길에 한 번 들렀노라면
쇠죽 쑤던 김화백이 반갑게 뛰어 나오며
빨리 술상부터 보라고 고함지를 것 같은
꼭 들러보고 싶은 저 집
그림아래 찍힌 자그마한 문패를 들어서면
늘 배경으로 남아 있는 그 친구가 살고 있겠다
--------「김화백이 보낸 그림」전문
 
현대의 보편적인 도시인들에게 ‘고향故鄕’은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낱말일까? 추석이나 설이 오면 고속도로에 늘어선 귀향차량들의 행렬이 고향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한다. 고향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기억 속의 시골마을과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의 모습이 남아 있다. 그래서 그 곳에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인 안정감과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근래에 국내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45억2000만원)를 기록하여 화재가 되고 있는 박수근의 그림 ‘빨래터’는 그림의 기법이 탁월한 점이 그림 값의 대부분을 차지하겠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끄는 것은 그림 속에 묻어 있는 1950년대의 삶의 추억과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향수다. 그 속에는 빠른 변화 속에서 도시인들이 잃어버리고 사는 삶의 향기와 정서가 들어 있다. 이런 과거회귀의 정서는 빠르게 변하는 현대 도시생활 속에서 벗어나서 느리게 사는 법을 추구하는 이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들은 ‘느림’을 21세기의 삶의 방법으로 내세우고 의식주에서 옛날의 생활양식을 재현하고자 한다. 시인들 중에도 그런 사고방식에 동조하여 ‘느림의 미학’을 현대시의 시적 방법으로 구조화하려는 이들이 있다. 이는 문명에 대한 반동이며 비인간적 삶에 대한 향기로운 반항反抗이라는 점에서 시대정신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이슈가 된다.
박대영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그의 시편에는 단순한 향토의 풍물을 넘어서는 시인의 의식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의 기법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리고 사는 삶의 한 쪽을 ‘향토鄕土’라는 배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깨밭」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다 빠져나간 현대농촌의 일반적인 풍경이다. 할머니는 깨 밭에서 하루 종일 산비둘기와 다투며 산다. 산비둘기들이 깨의 씨앗을 파먹기 때문만이 아니다. 일찍 세상을 떠나간 남편은 산언덕에 묘지가 되어 누워 있고, 홀로 된 할머니는 남편 무덤과 무언無言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자식들은 할머니에게 비탈밭을 팔아버리라고 하지만 그런 말에는 아랑곳 않는 할머니는 남편이 있는 그곳에서 하루를 보낸다. 이런 현실의 장면을 그는 <깨 심어 놓고 그날부터 깨밭에 앉은 할머니/종일 산비둘기와 다툽니다/금줄을 쳐놓고 허수아비를 세웠지만/만만찮은 놈들 할머니의 걸음으로 알아챘나 봅니다/생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영감은/비탈밭에 누워 자꾸만 말을 거는데/돌아앉은 할머니는 막대기를 두드리며/훠이 훠이 누굴 쫓는지 모르겠습니다/속없는 자식들 이제 비탈밭은 포기하라고/올 때마다 노래를 불러대지만/알았다며 그냥 웃지요>라고, 사실적인 묘사描寫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자신의 정서나 관념을 최소화하고 할머니를 하나의 이미지로 부각시킨 언어의 그림이다. 그래서 그 할머니의 이미지는 고향을 지키는 상징적인 캐릭터가 되어서 독자들에게 고향의 원형原形을 느끼게 한다. 이런 원형의 이미지는 <나지막한 산 아래 흙담의 작은 집이 있고/꿈길 같은 황톳길을 돌아들면/고즈넉이 저녁연기 깔린 마당이 보인다//지나는 길에 한 번 들렀노라면/쇠죽 쑤던 김화백이 반갑게 뛰어 나오며/빨리 술상부터 보라고 고함지를 것 같은/꼭 들러보고 싶은 저 집/그림아래 찍힌 자그마한 문패를 들어서면/늘 배경으로 남아 있는 그 친구가 살고 있겠다>는「김화백이 보낸 그림」에서는 더 생동하는 이미지가 되어서 고향의 정취를 풍긴다. 김화백의 그림 속에 들어있는 흙담의 작은 집이나 저녁연기 깔린 마당이나 지나는 길에 한 번 들렀노라는 친구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빨리 술상부터 보라고 고함지르는 쇠죽 쑤던 김화백의 모습은 그가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싶어 하는 낭만적인 고향의 이미지다. 그는 그것을 환상 속의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그 그림은 환상의 액자 속에서 뛰어나와 살아 있는 현실 속의 그림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생동하는 심리적인 이미지는 독자들을 시의 현장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발휘한다. 이 환상과 현실의 조화는 박대영 시인의 시를 ‘독자적인 존재성이 있는 향토의 시’로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박대영: 1998년 월간 <시문학> 등단 시집: 「봄을 찾아 남으로 달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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