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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5> /심 상 운
2019년 07월 12일 21시 22분  조회:1035  추천:0  작성자: 강려

신규호 시인의 시- 「산책기散策記1」「숯처럼」

 

 길 위에 하나, 둘 흩어진 낙엽을 따라가 보면, 어느 덧

관산(冠山) 자락에 이르네. 후미진 산길을 밟고 오르면

매천(梅泉) 약수가 나오고, 거기 맑은 샘이 사철을 두고

반짝이며 밤낮으로 흐르네.

 

  내 마음도 그러한 것. 저 깊은 심령의 골짜기에 숨어 남

몰래 샘솟고 있는 청정한 심성도 사시사철 밤낮으로 소리

없이 흘러 목마른 자를 기다리고 있나니.

 

  내 할 일이란, 심신의 고통과 싸우고 싸워, 산짐승처럼

헐떡이며 가슴 속 타오르는 갈증을 부여안고, 영혼의 새

벽 샘가에 달려가 목을 축이는 짓이나 할 뿐 아닌가.

*관산冠山: 관악산의 약칭

                       ---------「산책기散策記 1」전문

한 백년 숨 쉬면서

하늘을 태우고 태워

목숨은 한 덩이 어둠이 되는가.

뻗쳐오르는 가지와 잎들이

춤추고 버리는 허공은

새카만 침묵이 되어 남고,

불타는 시간 속에서 번쩍이는 꿈은

차디찬 재 되어 흩어지는가.

젊음의 불꽃이

한바탕 사루고 버리는 텅 빈 공간.

돌아가 안길 수밖에 없는

대지의 품안에서

다시 윤회의 사슬에 매인다 해도

지워버릴 수 없는

이 삶의 느꺼움은 어쩔 것인가.

풀잎의 춤과 벌레의 울음이

한 생애를 설레이게 하고

밤하늘 별들의 눈짓이

이끌어 온 푸르른 목숨,

그 추억 한 덩이 아직 남아

타오를 시간을 움켜쥐고 있는

이 새까만 안타까움을 어쩔 것인가.

                             ------「숯처럼」전문

 

형이상학 시를 시의 이상으로 생각하고 천착해 온 신규호 시인은 형이상학 시의 근원을 언어의 불완전성에서 찾고 있다. 그는 그 이유를 “유한하고 불완전한 언어로 무한하고 유현한 사물의 숨은 진실을 밖으로 끌어내어 표현함으로써, 고정관념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인간 사유의 한계를 벗어나 미명에 갇혀 있는 새로운 진실(그것조차 또 다른 관념이지만)을 창출해 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인간 정신의 혁명이며, 새로운 가치 창조의 길이며,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일이다. 언어와의 싸움 없이 인간 구제나 새로운 세계의 창조는 그러므로 불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그의 견해는 그만의 독창적인 사유의 결과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언어에 대한 바른 인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불완전한 언어로 무한하고 유현한 사물의 진실을 끌어내는 새로운 가치 창조의 도구가 되고, 언어와의 싸움에서 획득한 신선한 정신세계를 지향한다. 따라서 그의 시어들은 항상 긴장감에 싸여 있으며 지성과 감성의 조화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산책기散策記 1」에서 겉으로 드러난 것은 관악산 산행의 체험이지만 자신의 정신적인 지향점을 시적 형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산행 중에 발견한 사철 반짝이며 흐르는 매천(梅泉) 약수는 형이하학적인 물에서 형이상학의 의미를 담고 있는, 심령의 골짜기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승화되어서 인간의 정신적 갈증을 해소하는 영혼의 생명수로 창조되고 있다. “내 할 일이란, 심신의 고통과 싸우고 싸워, 산짐승처럼/헐떡이며 가슴 속 타오르는 갈증을 부여안고, 영혼의 새/벽 샘가에 달려가 목을 축이는 짓이나 할 뿐 아닌가.”라는 끝 구절에서 그런 의미가 분명하게 감지된다. 이 구절은 자신의 삶의 정신적 내면을 드러내는 갈망의 행위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인간이 이 세상에서 할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있다. 이렇게 그의 형이상학적 시는 설득적인 기능을 내포한 종교적인 높은 의식의 세계를 지향한다.「숯처럼」은 그의 정신적 갈증을「산책기散策記 1」보다 더 강하게 드러내면서 인생의 과정을 나무가 숯이 되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뻗쳐오르는 가지와 잎들이/춤추고 버리는 허공은/새카만 침묵이 되어 남고,/불타는 시간 속에서 번쩍이는 꿈은/차디찬 재 되어 흩어지는가.”라고 <새카만 침묵()>으로 돌아가는 인생의 의미를 절절한 언어로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워버릴 수 없는 삶의 느꺼움은” 어찌해야 하느냐고 독백조로 호소하고 있는 데, 그 호소가 이 시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의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은 “한 생애를 설레이게 하고/밤하늘 별들의 눈짓이/이끌어 온 푸르른 목숨,/그 추억 한 덩이 아직 남아/타오를 시간을 움켜쥐고 있는/이 새까만 안타까움을 어쩔 것인가.”라고 쉽게 허무 쪽으로 기울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는 그의 싱싱한 감성의지 때문이다. 이러한 의지를 담아내고 상징하는 것이 이 시에서 숯이다. 그 숯은 객관적 상관물로서 죽음을 이겨내고 다시 타오르는 새로운 삶의 존재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숯은 이 시에서 삶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도 숯이 되어 있다가 어느 날 다시 빨갛게 피어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의 숯은 그가 추구하는 형이상학적인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나는「산책기散策記 1」과 「숯처럼」을 읽으면서, 분출하는 감정을 지성으로 통제하면서 삶의 깊은 의미를 찾아내고 감성의 싱싱함을 잘 살려내는 정통적인 모더니즘 시의 참맛을 한껏 느껴본다.  

 

*신규호(申奎浩):1966 <현대문학>에 「탄炭」「화가의 집」「등뼈」가 천료되어 등단. 시집「입추이후」「사람아 사람아 슬픈 사람아」「맨발의 사람」「어둠의 눈」「누워서 가는 시계」「보랏빛 마음」

 

김용언의 시- 「청기와집 추억」「들개의 울음」

 

까까머리 어린 시절

좋아하던 계집아이는

청기와 집 높은 담 안에 살았다

발끝만 쳐다보다 얼굴 한 번 못 보았다

할 말이 있긴 있는데

언제나

청기와의 높은 담이 가로막았다

 

청기와 뜨락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허기진 가슴으로 휘파람 불면

뜨락에 얼비치는 계집아이 모습

불을 만지듯

질겁을 하고 언덕을 내려 왔다

그날 밤은

알밤을 새며 불안에 떤다

말을 해야 하긴 하는데

알맹이가 잡히지 않는다

 

좋아하던 계집아이는

철들어 떠나 버리고

불혹이 되어

주머니에 넣어둔

말 한마디

햇빛 한 번 못 본 채 숨어 있구나

                         ------「청기와 집 추억」 전문

들개의 울음이 허기진 밤하늘에 흔들린다

피붙이를 찾는 소리라 했고

고독을 위한 깃발이라 했다

울음 이외엔

존재의 가치가 없는 사막

사람들도 들개처럼 울어야 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할 때

절실한 것은 울음이었다

푸른 빛깔의 고독을

물리칠 수 있다면

밤을 지새며 울고 싶다

 

귓속에 앉은 오물이

들개 울음 속으로 끌려나가고

모래알이 침몰한다

사막을 빠져나가는 날

귓속에는

송곳같은 바람소리

햇살의 흔적만 남으리라

         -------「들개의 울음-사막에서 97-4」전문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추억은 가슴 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놓은 보석이다. 그 보석은 이별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있기 때문에 더 은은한 광채가 난다. 만약 그 사랑이 결실을 맺었다면 그 추억은 단순히 아름다운 기억으로 무지개처럼 떠 있다가 희미하게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추억은 성공한 것보다 실패한 것이 아쉬움이라는 미련을 안고 더 오래 남는 것이다. 김용언 시인의 시「청기와집의 추억」은 그런 의미에서 그의 마음속에 박혀 있는 보석을 꺼내 놓은 것이다. 시인은 그 사실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아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것은 그의 시에서 지성이 서정을 잘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끝 구절 “햇빛 한 번 못 본 채 숨어 있구나”에서 감탄형 종결어미가 들어 있지만 그것은 참다 참다 터져 나온 말이기 때문에 오히려 느낌의 진동이 강하게 와 닿는다.“청기와 뜨락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허기진 가슴으로 휘파람 불면/뜨락에 얼비치는 계집아이 모습/불을 만지듯/질겁을 하고 언덕을 내려 왔다/그날 밤은 알밤을 새며 불안에 떤다/말을 해야 하긴 하는데/알맹이가 잡히지 않는다“라는 청기와 집의 예쁜 소녀와 내성적인 시골 소년의 짝사랑. 둘 사이에 어떤 작은 사건도 없었던 벙어리냉가슴의 일방적 사랑. 그 사랑을 불혹의 나이에도 간직하고 있는 시인의 마음은 너무 순수하고 아름다워서 이 시의 영원한 생명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것은 황순원의 소설「소나기」나, 알퐁스 도데의「별」과 같이 불멸하는 인간 본연의 푸른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들개의 울음-사막에서 97-4」은 사막이라는 자연환경이 배경이 되어서 인간존재의 의미조차 내세울 수 없는 원시의 경험을 드러내고 있다. 그곳에서 말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그래서 울음이 더 절실한 전달의 도구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전하고 있다. 김용언 시인의 이 시는 그런 의미가 그의 생생한 직접 경험에서 분출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적인 힘을 갖는다. 관념이 아닌 체험의 언어는 단단한 돌멩이 같아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쉽게 마모되지 않는다. ”들개의 울음이 허기진 밤하늘에 흔들린다/피붙이를 찾는 소리라 했고/고독을 위한 깃발이라 했다/울음 이외엔/존재의 가치가 없는 사막/사람들도 들개처럼 울어야 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할 때/절실한 것은 울음이었다/푸른 빛깔의 고독을/물리칠 수 있다면 /밤을 지새며 울고 싶다“는 그의 체험담은 그래서 느낌의 진동이 오래 남는다. 시에서 체험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김용언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사실을 바탕으로 체험적 진실을 전하는 그의 시적 방법론에 동감했다. 그리고 ”푸른 빛깔의 고독“ 이라는 새로운 감성의 단어가 어떤 상태의 고독을 의미하는지 상상해 보았다. 그것은 달빛이 푸른 바다와 같이 넘치는 사막 한 가운데서 느끼는 생존의 위험과 외로움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것은 어쩌면 거대한 자연, 아무런 말도 통하지 않는 자연을 대상으로 한 인간 존재의 원초적 고독이라고 생각된다. 그 고독은 김현승 시인이 깊은 명상을 통해서 발견하고 추구한 절대고독과도 일맥상통하는 고독이다. 따라서 그 '푸른 빛깔의 고독'은 들개 같은 울음을 울게 하여 존재의 절망을 극복하는 길을 열어주는 고독이 될 수도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나는 리쳐즈(Richards)의 예술적 고민을 암시하는 시구詩句,'개성은 고독 속에서 길러내 지고/성격은 세파 속에서 이루어지다.'를 떠올려보았다.

 

*김용언(金勇彦) :1978 <시문학>에「눈」이 추천완료 되어 등단. 시집: 「돌과 바람과 고향」「숨겨둔 얼굴」「서남쪽 끝」「너 더하기 나」「휘청거리는 강」「사막여행」등

 

김용오 시인의 시- 「하늘」「눈사람과 장미」

 

봄밤의 폭신한 요 위에서 남성의 체온이 엎드린다.

하늘은 들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는

3월의 농부.

나는 헐떡거리며 짐승처럼 엎드려 겨울을 벗는다.

강 건너 불빛들도 스르르 두 눈을 감는다.

처녀를 주고 울던 입이 큰 사랑이 떠오른다.

서쪽에서 마른번개가 번쩍거리는 자정

갑자기 깊고 먼 육신의 입구

포근한 계절의 배꼽 밑으로

촉촉이 열리는

들의 마음.

파란 전기처럼 떨고 있는 클리톨리스.

하늘은 씨앗을 물으며 음모陰毛의 이랑을 적신다.

희멀건 엉덩이로 생명의 방아를 깊이 찧는다.

뜨거운 바람들이 아, 아 흐느끼듯

몇 번이나 흙의 자궁子宮 속을 길게 지나가고

어디서 마을의 벽시계가 새벽을 알린다.

강 건너 불빛들이 하나둘 다시금 눈을 뜬다.

언제나 하늘은 안개로 일어나서

들의 젖가슴을 살그머니 빠져나가는

3월의 농부.

사랑을 벗어주고 하얗게 웃던 알몸이 떠오른다.

나는 머리맡에 놓아둔 강물소리를 천천히 마신다.

                                     ------「하늘」전문

열리는 먼동을 바라보며 빌려 입은 사람의 육신이 허물을 벗듯

한꺼풀씩 벗고 있었습니다.

(나는 태양의 혓바닥 위에서

아이스크림처럼 허물어지는 벌거숭이)

옛날집을 찾아 땅 아래로 내려가는 눈부신 영혼의 물소리가

졸졸졸 빛나 보였습니다.

(나는 향긋한 뿌리의 유혹 앞에서

갈 길을 놓쳐버린 구름)

바위틈에 기대어 봄을 애태우는 장미의 갈증을 며칠 동안

깊숙이 밀어 넣고 흔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달콤한 여인의 살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가는 한 마리 물배암)

허벅지를 더듬으며 올라가는

, 사랑의 가지 위로

푸른 정액精液이 돌고

입을 여는 바다조개,

주먹만한 햇덩이,

몇몇 송이 비릿한 꽃망울을 마알갛게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눈사람과 장미」

 

은 이 세상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에너지 원이다. 그래서 성을 떠나서 이 세상의 이치를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꽃이 피고 꽃밭에 나비가 날아들고 열매를 맺는 자연현상은 성의 멋진 파노라마다. 들판의 짐승들은 물론 물고기가 암수 짝짓기를 하고 돌 틈에 알을 낳아서 수정하는 것은 모두 아름다운 성생활이다. 그리고 그 성은 생명체들에게 최고의 쾌락과 풍요를 부여한다. 따라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예술작품들이 추구하는 사랑과 행복은 성性의 푸른 들판에 피어난 향기로운 꽃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 최고最古의 시라고 알려져 있는 4000년 전 수메르 여사제女司祭의 시에도 “내게 소중한 그대여, /그대의 멋진 모습과 달콤함에 빠져버렸다오./그대에게 사로잡힌 나를, /그대 앞에 떨고 서있는 나를 침실로 데려가주오.”라는 적극적이고 대담한 애정표현이 담겨있다. “얼음 위에 댓잎자리를 깔아 님과 내가 얼어 죽더라도” 정 둔 오늘 밤이 더디 새기를 비는 고려시대의 속요「만전춘滿殿春」의 적극적인 애정표현도 사랑의 원천이 성에 있음을 드러낸다. 화산폭발로 매몰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이 18세기 중반이후 발견돼 발굴에 들어갔을 때 관계자들은 경악했다고 한다. 성을 노골적이고 적나라하게 묘사한 벽화, 부조, 조각 등 외설적인 유물이 대거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유물들이 많다. 문자를 모르던 시대, 사람들은 벽화나 청동기에 그림으로 성생활을 기록했다. 특히 신라인들은 성에 대해 심하다 싶을 만큼 개방적이어서 성 관련 유물이 많이 발견된다. 섹스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토우, 과장된 성기나 자위행위, 출산과정을 묘사한 것 등은 무덤의 부장품인데도 표정이 매우 밝다. 고대 신라인들은 사후의 세계에서도 현세와 같은 쾌락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성을 자연스레 표현한 것이다. 이런 성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쾌락과 종족 보존에 대한 욕구, 즉 인간의 성에 대한 본연적 가치와 갈망은 시공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김용오 시인의 시편들은 그런 면에서 볼 때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생명의 에너지 원源에서 출발한 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처음부터 도덕이나 사회규범 등 가식적인 관념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인간생명의 원적지에 들어가서 미적 언어로 인간의 순수한 욕망을 싱싱하게 담아내고 있다.「하늘」에서는 하늘은 남성을, 땅은 여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하늘은 씨앗을 물으며 음모陰毛의 이랑을 적신다./희멀건 엉덩이로 생명의 방아를 깊이 찧는다./뜨거운 바람들이 아, 아 흐느끼듯/몇 번이나 흙의 자궁子宮 속을 길게 지나가고/어디서 마을의 벽시계가 새벽을 알린다.”라고 자신의 개인적인 상상과 자연현상을 교직交織하여 복합적인 구성으로 성행위를 표현하고 있다. 이런 그의 시 세계는 자연의 원리를 드러내면서 인간의 행복(쾌락)을 미래가 아닌 현재의 행위에서 추구하고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점에서 현세의 행복을 내세까지 이어가려는 고대 신라인들의 염원에 맥락이 닿는다.「눈사람과 장미」는 비유의 언어들이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바위틈에 기대어 봄을 애태우는 장미의 갈증을 며칠 동안/깊숙이 밀어 넣고 흔들어 주었습니다.(나는 달콤한 여인의 살 속에서/스멀스멀 기어가는 한 마리 물배암)/허벅지를 더듬으며 올라가는/, 사랑의 가지 위로/푸른 정액精液이 돌고/입을 여는 바다조개,/주먹만한 햇덩이,/몇몇 송이 비릿한 꽃망울을 마알갛게 토해내고 있었습니다.”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성적 쾌락의 절정을 감지하게 한다. 그 쾌락은 어떤 의도도 목적도 없는 순수한 육체의 쾌락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생명력을 갖는다. 그것은 또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같이 정신의 해방감解放感을 동반하여 제도와 이념, 관습, 윤리 등에 억압되고 굴절된 성의 세계를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요인을 만든다. 그리고 독자들을 그의 독특한 정신과 향기로운 성감각의 세계로 유인한다. 나는 김용오 시인의 대담한 성 묘사가 관능에만 머물지 않고 정신적으로 승화되기를 바라며 그의 시 속으로 들어간다.

 

*김용오(金容五): 1982 <시문학>에 「들」「봄비」「개나리」가 천료되어 등단. 시집 「신의 수염」「동화작용」「두 사람에 관한 성찰」「멀티오르가슴」등

                                                

                                                                    <시문학> 2006 8월호 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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