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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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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중외문학향기

송시월 시모음 1
2020년 05월 19일 14시 49분  조회:2167  추천:0  작성자: 강려
송시월 시모음 1
 
출처 http://blog.daum.net/siiwoell
 
 
애기풀새 
     
     
       옥상 구석  빈 분에 돋는 풀을 뽑다가  멈칫  손끝에 찌르르~ 전해오는 떨림,
      어! 이건 초록 새다.  새 잎의 날개 활짝 펴  종종종 발레를 하는 풀,  내 손등
      을 간지럼 태우는 풀, 흙에서 막 깨어 난 풀에게"애기풀새야"하고 부르면 이
      슬눈으로 나와 눈맞춤을 한다.  어느새  내 눈이 투명해져 보이는 것마다 참
      맑 다. 이때 포르르 날아 내리는 한 무리 참새 떼, 무어라무어라 재재거림에
      내 입술이 간지럽다.
 
 
   
 
     *나의 시 쓰기/‘사물과 내가 하나되어’-송시월   
  
    탈관념의 창작시론인“꽃의 문답법”을 읽었다. 그 이후, 나의 관심은
   생명 탐구쪽으로 기울어졌고, 탈관념의 실험을 하는 시류의 아방가르드
   대열에 끼어들게  되었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  이면에는 늘 두려움과
   회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선/악을 구분짓는 원죄론(이원론)에 있던 내
   가, 사물의 본질은 하나라는 동양적 인식(일원론)에 이르기 까지는 무려
   5년 이란 시간이 걸렸다. 암벽 깨기보다 더 힘든 작업이었다. 이제야 어
   떤 사물의 상처를 보면 내 몸이 떨리고 아파옴을 느낀다.
 
     4년 전 시류 동인은  아방가르디스트  오남구 시인의 실험에 동참하여 
   "디지털리즘"  선언한다. 동인의 한 사람인  나는 이후  아날로그시대의
   수사학적  말하가(telling)가 아닌 디지털시대의 '보여주기(Showing)'의
   시  쓰기를  실험한다. 어떤 사물과의 ‘눈맞춤(靜觀)’을 하고, 직관한
   생명의  절편(Unit)을 카메라로  찍듯(접사하거나 염사하여) 언어로 묘사
   하는  기법이다. 이때 사물들이 저희끼리 동화되고 때로는 트러블을 일으
   키기도  하면서 공명하여  울림을  일으키어  내가  할말을 대신해 준다. 
   (다만 시는 언어를 통해 태어나는 특성  때문에  내가 쓰는 언어는 지시
   적 기능만으로 제한된다) 이것이 내가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디지털적
   시 쓰기인, 보여주기이며  생명탐구의 한방법인데, 나의 확장된  인식이
   디지털 카메라의  기법을 통해 시로 태어난다고 하겠다.
 
계곡 물 속의 풍경  
  -언어의 감옥 1        
 
 
 계곡의 물이랑 일렁일렁 바람이 밟고 간다. 오후 3시의 햇살이 물 속에 꽂힌다. 사정하듯 쏟아져 나온 햇살올챙이들 바람의 보폭만큼 흔들리는 바위의 배꼽 위로 줄줄이 기어오른다. 바위가 갸웃 몸을 튼다. 빛살무늬의 버들치들 물속 어른거리는 개버들 가지의 그물망을 빠져나와 여인의 얼굴에 뜬 하얗게 굽은 낮달을 살랄살랑 지나간다. 여인의 얼굴이, 달이 잠깐 갈라졌다가 이내 붙는다. 얼굴이 찌르르 아프다. 이때, 누군가가 첨벙 손을 담근다.
 
 오후 3시의 풍경에 뒤엉켜 일그러지는관념의 예수.
 
남산의 동쪽
 
수녀님 지금 뭐하세요?
잡풀을 뽑지요
잡풀이란 뭐지요? 죄없는 풀인데
사람의 말 아닌가요?
내 투명한 언어에 찔려
산책로 계단을 총총히 내려서는
그녀, 바람에 날리는 풀머리 어수선하게 엉킨다
남산의 동쪽
고만고만하게 누워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신 초록
뿌리 잘린 명아주 토끼풀 뱀딸기 까시랑풀
몇 밤 자고나니 거뜬히 기지개 켠다
이슬눈 투명하게 굴리며
낯설면서 낯설지 않게 고화질화면으로
푸르게 어우러진 내 아이들
풀 풀 풀
 
12시간의 성장
  --언어의 감옥 4
 
 
 
낮 10시에 흔드는 시계 알
하늘 한 눈금 먹고 나면
초사흘 노른자위에
심장의 실핏줄이 돋고
또 하늘 한 눈금 먹고 나면
오소소 돋아나는 솜털
또 하늘 한 눈금 먹고 나면
온몸이 가렵고
눈자위에 별이 뜬다.
 
물상들이 또록또록 반짝인다.
중천을 한참 비켜서서
초록 눈금을 먹는 시계 알
초록~ 초록~
가려움을 쪼다가
미운털이 박히다가
골골골 알을 짓다가
꼬끼오 운다.
 
  구토 
  ―언어의 감옥 2
 
 
  2004년 3월 전화기가 구토를 한다
 
  따르릉 폭설을 토한다
  따르릉 실크바람을 토하고 오후 3시의 햇살을 토한다
  따르릉 진달래를 토하고 하얀 목련을 토한다
 
  엇물린 신호음, 뚜탄 뚜핵 뚜탄 뚜핵......
 
  청계천이 30년 묵은 검은 가래 토하는 소리
 
 
물웅덩이
 ㅡ자화상
 
 
비 그친 후, 물웅덩이 
붉은 하늘 한 조각
하늘 속의 물구나무선 반쪽의 가로수
거꾸로 처박힌 빌딩의 모서리와
육교 한 토막,
그 틈새에 납짝 끼인 나
한 조각
언뜻 멧새가 휙 일렁이며 간다
 
푸른진통
 ―언어의 감옥 3          
 
 
물음표에서 싹이 튼다
모니터에 뜬
비안개 자욱한 쌍우물의 언저리
어느 밤 유성이 떨구어 논 살 비듬? 
혹은 월식의 발자국?
초음파로도 판독이 유보된 꺼뭇꺼뭇한 ?들
?가 낳은 ?의 새끼들 ???
오늘 봄비에 젖은 애무덤 같은 저것들
푸른 진통
싹!! 
쑥잎과 냉이 순이 싹트고 있다
    
내 유방을 만지면 아직은 얼얼한 강물소리 바람 소리
손바닥에 쑥내음 냉이향이 불그스레 묻어난다
(유방암 조직검사~ 요?)
 
엘빈의 커피잔
   
 
 
동숭동의 빗소리를 놓고 산목*과 마주 앉으면
커피 잔에 봄비가 내린다.
플라타너스 새싹들에, 노 시인의 두 눈에 이제 막 돌아온 
가시내 봄비
티스푼으로 건져 올리면 비 멎은 허공에 물먹은 달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린다.
 
 
한 잔 앨빈의 커피와 내 뇌신경이 말똥거리는 밤
창 밖 풀라타너스의 그림자들 유령처럼 서성인다.
저놈의 벽시계는 눈금을 쩍쩍 미끄러뜨리고
가습기는 아라리 쓰라리 봄을 희뿌옇게 뱉어내고    
   
 
 * 山木: 함동선 시인의 호 
 
사각
―점1
 
 
사각 방 속의 나, 보이는 것 모두
사각이다. 사각 벽, 벽면의  거울
액자, 그 밑의 책상, 책상위의 모
니터, 모니터 옆 책장, 책장에 꽂
인 책, 그 옆으로 창문 문밖의 하
늘, 하늘을 이고 선 빌딩, 빌딩에
매달린 간판, 간판 속의 흔들리는
글자들, 사각사각 사각으로  숨쉬
고 사각의 나 모서리가 말을 한다 
 
 
모리와 모서리가 부딪는 공간,
유리알 하늘을 쳐다본다.
청옥빛 쨍그랑 깨지며 콕 찌르는 햇살
투명한 초록 눈물 주룩 흐른다.
 
유명산
 
   
   
 
    내 앞에 걸어가는 다리가 미끈
    쭉쭉 곧은 소나무들, 
    안개로 짠 하얀 실크드레스를 걷어올리고 있다
    한 발짝 옮기며 한 꺼풀
    또 한 발짝 옮기며 또 한 꺼풀
    불그스레 드러나는 열일곱 살결
    소나무 사이로 누드를 팔랑거리는 파스텔 톤의 나비
    순백한 하늘을 배경으로  
    고도를 높이자
    떨리는 순결이 찌-익 긁힌다
    노오란 날개 팔랑거리며 순음 하는 왕오색나비들
    칡넝쿨에 앉으면 초록 나비
    망초꽃에 앉으면 하얀 나비
 
    입춘무렵
         
   몸 트는 나무 가지에
      마른 풀잎에
      반짝 띄우는 문자 멧세지
 
      "곧 진도 7도의 진통이 일 것임"
 
      눈이 푸른 휘파람새 한 마리
      느닷없이 한참을 기우뚱이는
      내 머리 위로
      휘이익― 푸른 선율을 그으며 날아간다
      
      온 몸이 간지럽다
 
얼굴 x
          -  언어의 감옥5
 
 
     하늘의
    해 ,달, 별, 천둥 번개, 구름, 비, 노을, 어둠
    사람의
    그림자, 눈물, 웃음, 언어   
    땅의
    나무, 풀, 꽃, 나비, 강물, 불꽃, 바위
    얼굴 x이다
   
    심심한 삼복의 한낮
    선풍기 앞에 오면 내 얼굴의 기호들이 조각조각 날린다
 
좌표에서 달리는 지하철
     ―점5   
 
 
 
   시간이 달리고 있는 X좌표의 지하철에
   오전10시 30분 볼펜 Y가 입실한다.
   철거덕 문 닫히는 소리
   서로의 숨소리 팽팽하게 밀고 당기며 내 눈빛 속으로
   빨려드는 이력들.
 
   나는 먹물의 사기범, 너는 이념의 신호등 앞에 서성이는 경계인, 그는 산업
   스파이, 초범인 듯 털보송이 노랑머리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을지로 3가  에서 고속터미널까지 초록숨소리를 토하고 출감한다
 
   X좌표의 국립도서관 3층 자료실에 볼펜 Y가 다시 입실하면
   청옥 빛 바람 섬뜩 차다.
   책갈피 속 시의 맥박 차근차근 짚다가
   파닥거리는 리듬을 복사해 출구를 나서면
   내려서는 계단이 기우뚱거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초록생명  Y는 0,1번 Digit
 
눈부시게 깨어나는 수면공간
     ―점. 2               
 
 
 
     장출혈 앓는 새벽 4시 45분
     머리 위에 수술중이란 표지판이
     혈액의 팩처럼 매달려 있다
     부슬부슬 어둠이 떨어져 모르스부호로 찍히고
     새벽녘의 눈뜨는 공간
     반짝이는 상형의 악기들,
 
     가야금자리  갈루버자리  탄부르자리 거문고자리 오보에자리
     구슬리자리  클라이버자리 심벌즈자리 수르나이자리 쳄발로자리
     라이베스자리  단소자리 가물란자리 마우피스자리 바이올린자리
     색소폰자리 파이프오르간자리 클라리넷자리 기타자리 사론자리의
   
     굴러가는 숱한 겨울의 바퀴들, 장엄한 오케스트라
     아다지오 알레그로로 안단테로 때로는 프레스토 모데라토로
     그믐밤 하늘을 구르는 선명한 선율,
     공간 한 귀퉁이가 부서진다
 
12월 32일, 안개
 
 
 
 
  
   제2 한강교를 여자가 걸어간다
 
   강물에서 안개가 피어오른다
 
   한강철교가 달리는 차들이 흐물흐물 안개가 된다
 
   여자가 안개를 딛고 사박사박 걸어간다
 
   여자의 오른쪽 다리가 지워진다
 
   왼쪽 다리가 지워진다
 
   두 팔로 허우적허우적 몸통을 끌고 간다
 
   두 팔이 한꺼번에 지워진다
  
   가슴으로 안개를 밀고 간다
 
    여자가 완전히 지워진다
  
    12월 32일의 안개가 여자 속을 걸어간다
 
청사과
 
지하철 1호선 청량리 역
청사과빛 둥근 하늘이
승강기 틈으로 굴러 떨어진다
진동음 철거덕철거덕 지긋이 눈을 감은
순간, 내 입에서 주르륵 신물이 흐른다
눈을 뜬다
철로의 틈바구니 파문처럼 번지는
푸르고 시큼한 저 하늘의 입자들
부셔진 하늘이 역내에 온통 널려있다
나는 2번 출구로 빠져나온다 `
청사과빛 초가을 하늘에
피라미드형으로 쌓인
노점의 과일가계, 내가 볼륨 2개를 빼내자
와르르 무너지는 오후 3시의 하늘
 
초록 매미
 
초록 매미
맹∼ 맹∼ 맹∼ 맹∼ 찌르르르∼운다
치과( 구강외과 치주과) 진료실 하얀 차단 막 위의
한상진 의사
“마취합니다, 아∼ 좀더 크게 아∼ 따끔거릴 거예요”
진초록 마취제가 왼쪽 아랫잇몸을 찌르르 흐른다
매미울음의 큐렛에 시큼 들렸다 놓았다 하는 내 이빨들 
윗니 어금니가 덩달아 운다 
눈, 코, 입, 전신의 구멍들이 운다 
"끝났습니다 양치하세요"
이빨모서리에 찔린 비릿한 피울음 몇 번이고 헹궈낸다
 
붉은 치통을 쏟는 오후 3시
내 머리 위를 몇 발짝 비켜
느티나무에 기대선 푸른 신호등이 찌르르 운다 
 
 
*큐렛: 잇몸 치료기
 
어느 휴일의 NG
 
 
 잘 익은 백도 맛 같은 길, 부암동「머리하는 날」을 기웃거리다가 얄팍한 지갑을 만지작거리다가 불룩한 아랫배, 150억+알파의 덩치를 상상하다가 NG, 북한산을 축지법으로 한 바퀴 돌아 시청 앞 광장, 인공기의 불춤에 한숨 몇 바가지 끼얹다가 NG, 인사동「된장 예술의 집」에서 어느 시인과  된장 비빔밥을 먹다가  NG, 된장찌개! 토종인 내가 아주 맛지게 재창작해 새로운 된장 예술의 간판을 내 걸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NG, 어느새 총동원된 내 안의 악기들, 뚝딱와글벅적썰고볶고지글뭉글끓이고지지고...... 된장 예술의 새로운 디지털 기법, 한참실험 중이다.
 
배가 아프다, NG
 
비구름이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미끄러져 내린 비구름이, 절룩절룩 예장동 산 5번지 6호 와룡묘 풍경 소리에 잠깐 귀 기울인 비구름이, 비염 앓는 산까치의 기침 소리를 밟고 산책로 108 벚꽃 계단에서 헛발을 내딛는 비구름이, 교통방송국 안테나를 훌쩍 휘어잡다 도미노 피자가계로 넘어진 배고픈 비구름이,"물은 미래의 행복" 산업자원부 에너지 광고판의 "물" 이란 글자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비구름이, 벽보 속 장서희의 촛불을 들고 미선이와 효순이를 추모하는 비구름이, 폭격 맞은 이라크 어느 소녀의 귀 비구름이, 텅 빈 내 방의 유리창에 살며시 귀를 댄다. 비구름이
 
마라토너
 
 
 
 
 전국을 완주해 온 봄비!
 남산의 보호수  
 서2-7, 400년 은행나무 594㎝
 서2-6, 450년 느티나무 637㎝
 가슴둘레를 파랗게 문질러 놓고
  
 숨소리 고르게 을지로 1가
 지금 막 내 앞을 지나는 중이다
 봄비를 마라토너들이 추격 중이다
 뒤이어 플래카드를 든
 맨몸의 가로수들이 달린다 
 플래카드 속 붉은 글자들도 달린다
 
‘강국의 중심 ADSL 한 수위’
 
‘정상의 물 山水’
 
  
 가로수 연두 빛으로 빗는다, 봄비!
 그때, 빌딩 사이 반짝
 물구나무선 햇살에
 마라토너들이 추격하고 사라진다
 
일몰, 4분간
 
 
        #1
        오후 5시 47분이 해를 떨어뜨린다
        서산의 이마에 폭삭 깨지며 번지는 핏물, 내 얼굴을  만지자
        손바닥이 붉게 젖는다
 
        #2
        오후 5시 48분이 빈 논 귀퉁이에다 모닥불을 지피고  있다 
        젊은 허수아비들 논둑을 서성이며 매운 기침을 하고 
        낱알을 쪼던 참새 떼 어디론가 재재재 이동중이다
 
        #3 
        산꼭대기에서 오후 5시 49분이 어스름을 걸치고
        성큼 내려선다
        길들이 아슴아슴 지워져간다
       
        #4
       오후 6시가 가로등에 일제히 불 알을 켠다
       스카이 모텔도 층층 긴 불 알을 켠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4분간, 눈떴다 감았다 용두휴게소 가등 아래
        쫄깃한 우동발을 후르르 삼킨 나, 아직도 배가 고프다 
 
 
겨울 화단
       -  점,3
 
 
 
 고만고만한 새내기, 화초들
 신축 SK빌딩은 겨울 화단이다
 
정문 옆 맨 첫줄 수호초, 상록패랭이, 송악, 꽃양배추, 원출무늬사사, 왜란, 헬레부로스, 줄 바꿔 늦개미취, 무늬쑥부쟁이, 지피말발도리, 홍매자나무, 또 줄 바꿔 노랑조팝, 삼색조팝, 관중, 맹문동 끼리끼리 이름표를 달고 갓 입사한 듯 어깨 쭉쭉 펴거나 조금은 움추리고 서 있다. 감전주의보 표지판을 살짝 비켜 이름표(원추리 옥잠화)만 덩그머니 서있는 빈자리에 추운 내 아이의 그림자 서성이고 그 사이사이 경력의 소나무들 굵은 대지팡이로 빨갛고 노오란 성탄의 별자리 둥굴게 띄우고 있는 12월
 
  화초들 층,층 놓여 23층이 된다 
 
  1.5평의 내 방, 화병에 꽂힌 입술 마른 황색 장미 한 잎 두 잎 지고
 
 
  맹인 부부
      - 점4
 
 
  검은 잎과 붉은 잎들 구르는 소리
  그 소리가 남산 산책로에 간다.
  그 뒤로 맹인 둘이 똑똑 점을 찍고 가고
  그 뒤로, 그 뒤로 독똑똑......
 
  가던 길 멈춰선 맨 앞의 맹인 부부
  盲人보호철책에 기대선다.
  그들 머리 위, 개나리 12월의 꽃송이 몇 점 피어 있다.
  무어라 소곤거리다가 고개를 치켜들고
  뒤따르던 맹인들도 한 방향으로 서서 웃는다.
  이때, 산까치 한 마리 깍깍깍 날아가고
  조지훈 시비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파초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맹인들이 찍고 가는 소리 
  똑, 똑, 똑
 
배추를 절이며
   
    
 
      쓴 소리의 왕소금을 뿌린다
      조간신문 행간의 갈피마다 뿌린다
      배추포기의 꼭 다문 속잎에도 누우렇게 헤벌어진 겉잎에도
      켜켜이 뿌린다
      간밤의 열대야와 한낮의 복더위도 끌어다 눕혀 뿌린다
      병풍 서풍 비리비리억풍의 날개도 싹뚝 잘라 설설 뿌린다
      구름 안개 어둠 계절풍 걸신들 듯 퍼먹어 네 탓, 내 탓,
      빨치산 친일파 국민의 이름으로 어쩌고저쩌고 설사하듯
      게워내는 입술에도, 
      얼쑤절쑤 귀거리인지 코거리인지 법이란 놈의
      곱사춤의 등줄기에도 쓴 소리의 왕소금을 뿌린다
      물 한 바가지 끼얹는다
    
      저 연노오란 속 배기 한 잎
      내 텃밭에 남겨 두기로 한다
 
 
bill, 빌빌거리다
 
    쉴새없이 날아드는 bill,빌, 청구서들
    카드결제청구서 건강보험고지서 국민연금 전화요금
    전기료 오물세 수도료 신문대금 할부금 소득세
    빌의 숫자들에 이리 끌리고 저리 끌려 빌빌거리다
    한 달이 가고 일년이 가고 한 생이 가고
   
    가을이 내게 청구서를 보내온다
    문틈으로 햇살의 종이쪽지를 들이밀다가
    바람이 활짝 창문을 열어제치다가
    아예 빚쟁이처럼 안방까지 퍼질러앉는다
    가을 내내 빌빌거리는 내게 더덕더덕 붙여오는
    붉거나 노오란 낙엽 딱지들, 나는 전신 차압되었다
    이제 몸도 마음도 내 뜻대로 어찌할 수 없는,
    1400g의 뇌가 온갖 청구서의 무게에 빌빌거리다
    머지않아 부도처리될 것이다
    풀처럼 꽃처럼 bill,빌,
   
    이륙하는 비행기의 굉음소리
 
비양도 태몽
 
  
 
사람들은 이 섬을 비양도라 불렀다.
  
  산봉우리 하나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촉새네가 방정맞게 "산이 날아온다 " 외치자, 중국 쪽에서 날아 오던 그 봉우리가 제주 앞 바다로 다이빙하 듯 뛰어 내렸다. 그 후 닷새 동안이나 코피를 쏟고 나서 주저 주저앉은 섬, 그 후 비양도는 보름달이 뜨면 가끔 시인의 "말의 오두막집"* 뜰로 불려갔다.
    
  내 시가 추락하는 비양도. 하늘, 바람, 파도, 새의 노래, 나무, 꽃, 나비 의 춤 이런 것들로 그득하다. 숨소리와 날개가 늘 푸른 비양도, 푸른 날개 반쯤 접고 엎드린 저 섬이 언제 또 훌쩍 날아가 여의도쯤에다 코피나 쏟지 않을는지, 밤낮 없이 꽃과 새와 나무들 노래와 춤으로 꿈틀거리는 넝마살이
          
   *윤석산 시인의 시집 제목      
 
구토
       - 언어의 감옥2
 
 
 
    2004년 3월 전화기가 구토를 한다
    따르릉 폭설을 토한다
    따르릉 실크바람을 토하고 오후 3시의 햇살을 토한다
    따르릉 진달래를 토하고 하얀 목련을 토한다
    엇물린 신호음, 뚜탄 뚜핵 뚜탄 뚜핵....
   
    청계천이 30년 묵은 검은 가래 토하는 소리
 
월식
 
   나는 늘 자전의 바퀴만 굴렸다. 북극의 해를 찾아가면 해는 이미 남극에 가 있고 남극으로 가면
 해는 북극으로 간 뒤였다. 해도 달도 없는 월식의 밤, 빗장 닫아걸고 천둥 같은  빗쟁이의 전화벨
 소리도 재워놓고, 하늘의 별자리를 따라다녔다. 0.3초, 그 혼돈의 눈빛으로 오리온좌의 왼쪽 붉은
 베델규스가 되다가  오른쪽의 푸른 리켈이 되다가, 아래의 푸르스름한 시리우스가  되기도 했다.
 이때마다 나를 에워싼 구름, 비, 안개, 침묵까지도   푸르거나 붉게 익어갔다. 자유 평화 사랑 꿈
 이런 말들이 머루빛으로 익은 지상의 밤 "엄마"하고 부르는 딸아이의 목소리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잘 익은 머루알이였다. 나는 머루빛 밥을 짖고 때로는 친구를 만나 머루빛 눈이 내리는 길에
 서 머루빛 시를 이야기했다. 
  지금은 시큼하게  어둠이 발효된 부엉이 날개가 꺾인 새벽 2시 좀생이별을보는  순간, 어둠이
 초생달 하나를 반쯤 토해내고 있다.
 
12월 그리고 통증
         
 
 
 벽의 달력에서 쏟아져 나오는 숫자의 파리떼, 탈옥하는 죄수들이다. 윙윙거리며 닥치는 대로 입술을 들이민다. 나를 빤다. 숨소리를 빨고 눈빛을 빨고 살을 빨고 말랑한 것들은 모두 빤다. (이건 분명 대 재앙이야) 나는 유방을 자궁을 뇌를 손으로 움켜쥐며 필사적으로 쫓는다. 엎치락뒤치락 옥 매트 위에서 굴러 떨어진다. 꿈이였다. 벽에 걸려 반쯤 찢어진 채 파르르 입술 떨고 있는 12월, 노을 빛 창이 어둠을 빨아들이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꼬마전구들, 그 반짝임 아래로 한 여인이 겁먹은 12월 통증이 지나가고 있다.
 
장미꽃 해부도
                    - 슬픈 중심
       
 
 
       장미꽃에도 선율의 수평선이 있다
       일렁일렁 나의
       감각들 일렬 횡대로 걸어가고 있다
       황홀하고 두려운
       장미꽃,
       머리위로 새털구름 몇 가닥 흘러간다
       한창 뻐꾹뻐꾹 초음파의 울음소리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발목을 타고 오르는 
       반짝이는 소름의 찰거머리들
       내 몸은 푸른 가시가 돋는다
       고감도영상, 자궁의 저 아름다운 장미꽃
       가시밭에 너무 활짝 피어
   
       슬픈 중심 
   
       어지럽다
       꽃술 몇 개 간당간당 매달려
       충혈된 눈자위 빙그르르 
 
아침 여섯시는 백지다
 
 
    
    백지에 반짝 나는 것들
    새벽바다 풍랑 위를 유유히 걷는 한 사나이의 뒷모습이
    반짝 날고
    萬古長空에  一朝風月이
    반짝 날고                   
    불 속의 거미집에서 차를 달이는 고기의 등이*
    반짝 날고
    임오군란의 와중 피신하는 민비의 "살아야 돼" 절규가
    반짝 날고
    노오란 은행잎이, 가을바람의 비질이
    반짝 날고
 
    환하게 눈을 켠 아침 여섯시는 백지다.
    권태로운 밥상 위 잡탕의 언어들, 비빔밥그릇에 비가 내린다.
 
호랑나비 
 
 
 4월의 아차산 생태공원 입구, 골목에서 벚꽃이 뻥튀기처럼 뻥 핀다. 벚꽃 사이 햇살 속에서 튀어나온 호랑나비 묻힐 듯 말 듯 꽃 속을 난다. 내 동공 안으로 푸른 하늘의 배경을 확 당기자, 꽃술을 밀며 들어가는 나비! 내 눈썹에 와 간질간질 닿는다. 나비가 떤다. 내가 떤다. 떨리는 두 팔이 가벼워지고 나도 나폴거려 본다. 이때, 일방통행 길에 포크레인이 지나가고  생태공원 호랑나비의 환영, 드르르르 뭉개진다.
    
 
애기풀새
 
 
 
 옥상 구석 빈 분에 돋는 풀을 뽑다가 멈칫 손끝에 찌르르~ 전해오는 떨림, 어! 이건 초록 새다. 새 잎의 날개 활짝 펴 종종종 발레를 하는 풀, 내 손등을 간지럼 태우는 풀, 흙에서 막 깨어 난 풀에게 "애기풀새야" 하고 부르면 이슬눈으로 나와 눈맞춤을 한다  어느새 내 눈이 투명해져 보이는 것마다 참 맑다. 이때 포르르 날아 내리는 한 무리 참새 떼, 무어라무어라 재재거림에 내 입술이 간지럽다.
 
겨울 새벽 풍경
       
           샛별 몇 개 깜박거리는 새벽의
            TV 뉴스 화면,
           쓰나미가 지나간 몰디브의 바다, 12월 31일 여진의 해일이 일고
           막막하게 떠도는 산호초의 섬 몇 개
           32일을 표류하고 있다
           을지로 1가 ㄷ자로 둘러싼 고층빌딩들 드문드문 뜬 사각의 눈으로
           쌍방통행의 빈 길을 내려다본다 
           하얀 파카를 입은 핸드폰 하나 무어무어라 암호의 그림자를
           흘리며 뛰어가고
           눈이 침침한 가등이 블랙커피를 마시고
           1.5평 어스름의 방 안, 점 하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계곡 물속의 풍경
―언어의 감옥 1
            
 
 
계곡의 물이랑 일렁일렁 바람이 밟고 간다. 오후 3시의 햇살이 물속에 꽂힌다. 사정하듯 햇살올챙이들 쏟아져 나와  바람의 보폭만큼 흔들리는 바위의 배꼽 위로 줄줄이 기어오른다. 바위가 갸웃 몸을 튼다. 빛살무늬의 버들치들, 물속 어른거리는 개버들가지의 그물망을 빠져나와 여인의 얼굴에 뜬 하얗게 굽은 낮달을 살랑살랑 지나간다. 여인의 얼굴이, 달이, 잠깐 갈라졌다가 이내 붙는다. 얼굴이 찌르르 아프다. 이때, 누군가가 첨벙 손을 담근다.
 
오후 3시의 풍경에 뒤엉켜 일그러지는 관념의 예수.
 
아침 찻잔
 
 
  오후 여섯시 30분
  30층 옥상 위로 굴러온 달
  둥둥둥 바람에 울리는 황금 북소리, 배가 고푸다 
  저녁 11시
  내 머리 위에서
  노오랗게 쏟아지는 오랜지향기, 새콤달큼 배가 부르다
  새벽 3시
  남산 타워 뒤쪽
  구절초 언덕길 넘어가는 만취한 그림자 하나 
  비틀비틀 공복의 헛기침을 한다
 
  아침 찻잔에 반쯤 떠오른 달, 구절초 향이 아리다
 
새벽
  
      새벽 3시
      별똥별 하나 검은 하늘에 사선의 빛줄기를 긋는다
 
      술을 마시고 방금 들어온 작은애가
      냉장고에서 별을 꺼내고
      별 하나 귤처럼 달콤하게 삼키고
      이내 코를 고는 새벽종소리
      촛불을 든 아이들
      고요한밤 거룩한 밤을 부르며 지나가고
      밤새 빛을 찾아 헤매다가 언 2003년 여의도의 겨울 철새 몇 마리
      푸드득 나무 가지에서 떨어지고
      눈이 내리고
      건너편 박도순 산부인과 분만실 신생아의 울음소리
 
      누군가가 별과 연결된 퓨즈를 끼운다 
 
앨빈의 커피잔
 
 
 
  동숭동의 빗소리를 놓고 산목*과 마주 앉으면
  커피 잔에 봄비가 내린다.
  플라타너스 새싹들에, 노 시인의 눈에 이제 막 돌아온
  가시내 봄비
  티스푼으로 건져 올리면 비 멎은 허공에 물먹은 달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거린다.
 
  한 잔 앨빈의 커피와 내가 말똥거리는 밤
  창 밖 풀라타너스의 그림자들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다
  저놈의 벽시계는 눈금을 쩍쩍 미끄러뜨리고
  가습기는 아라리 쓰라리 봄을 희뿌옇게 뱉어내고    
  
  * 山木: 함동선 시인의 호 
 
영하 16도 아리랑
       
 
        아침  수도꼭지가 헛돈다
  
        동쪽 능선의 벨브가 열리며 햇살이 영하 16도를
        끓인다
        청량고추바람을 다져 넣고 얼어붙은 가계부와
        “핵”이란 붉은 글자와 갱년기의 요도괄역근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낡은 처마 끝 극좌와 극 우측의 고드름도 따 넣는다
  
        햇살이 내 두뇌의 열 두 신경 줄 현을 탄다
        수도꼭지가 요실금처럼 오줌을 찔끔거리고
        유리창이 눈물을 흘린다
        북한강 남한강이 쩍쩍 엇갈려 부셔진다
        반 박자 빠르게 혹은 반 박자 느리게
 
        아라리 쓰라리 아리랑을 엇모리로 편곡중이다  
 
風,楓,풍자에 대하여
       
   
       風자에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여름과 가을 사이, 삐꺽이는 소리가 난다
      매미들의 토막울음 소리
      내 손바닥 허물 벗는 소리
      며칠 전 제대한 아이가 긴장과 이완의 골에서 흔들리는 소리
     
   여름과 가을, 그 사잇길로 태풍이 몇 차례를 지날 때 발부리에 채이는 감나무 밑의 풋감처럼, 설  익어 뱉어진 내 언어들도 지금쯤 누군가의 발 밑에서 나뒹굴거나 으깨지고 있을까? 할 말은 해야 한다고, 함부로 내뱉지 말아야한다고, 혀와 입술이 밀고 당기며 삐그덕 소리를 낸다.
    
      楓자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나무들 초록빛깔 벗는 소리
      제 몸 다 태워야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불길 번져
      하늘 끝 타는 소리
      風,楓,풍!
      획과 획을 통과하는 소리 소리들 
 
4 월 은 갈 지(之)자 다
 
 
  4월의산은之자다
  
  붉은갈지(之)노오란갈지(之)초록갈지(之)연보라빛갈(之)
  
  앞서거니뒤서거니어깨동무를하거나바람의요람을타거나
  
  하늘하늘공중곡예를하거나
  
  갈지(之자사이로갈지(之)갈(之)새울음이날고
  
  갈지(之)갈지(之)산딸기가열리고
  
  계곡의물이흐른다
  
  색색의배낭들이색색의모자들이
  
  무지개빛갈지(之)자사이로갈지(之갈지(之)
  
  걸어오고걸어온다
  
  4월의산은갈지(之자다 
 
유명산
 
 
          내 앞에 걸어가는 다리가 미끈
          쭉쭉 곧은 소나무들, 
          안개로 짠 하얀 실크드레스를 걷어올리고 있다
          한 발짝 옮기며 한 꺼풀
          또 한 발짝 옮기며 또 한 꺼풀
          불그스레 드러나는 열일곱 살결
          소나무 사이로 누드를 팔랑거리는 파스텔톤의 나비
          순백한 하늘을 배경으로  
          고도를 높이자
          떨리는 순결이 찌-익 긁힌다
          노오란 날개 팔랑거리며 순음 하는 왕오색나비들
          칡넝쿨에 앉으면 초록 나비
          망초꽃에 앉으면 하얀 나비
 
산부인과 수술대 위의 칸나꽃
                      
 
    칸나꽃이 아프다.
    빌딩의 그늘이 짓밟고 간 칸나꽃
    48도의 고열이 오르고
    신음, 신음
    꽃잎이 쏟아진다. 하혈인 듯,
   
    (섬광 한 줄기, 이슬 한 방울 흐른다.)
    
    마침내 햇빛 산부인과 수술대 위에 누운 칸나꽃, 87 마이크로미터의 미세먼지 속을 걸어 온 여름날, 나의 혈압은 머리끝에 곤두서고 심장은 100m 경주하듯 뛴다. 산소의 테놀민으로 혈압을 꿇어앉히고 부분 마취를 시킨 후 꽃받이에 돋아난 중금속의 근종!! 빛살의 칼날이 지나간다.
 
    자웅동화의 길을 막던 울퉁불퉁 부스럼들 다 도려낸 칸나꽃,
    꽃술 열어 깔(色)이 싱싱하다.
    햇살보다 더 붉은 페르몬 향, 환하게 흐른다.
 
파아란 휴일
 
     징검다리 휴일이 건너가고 있다.
     풍덩 풍덩 휴일의 울안으로 뛰어드는
     꽃과 나무와 새
     라일락 쩔쭉 자목련 싸리꽃 은행나무 느티나무
     손사래치는 잎새들 사이로
     참새 두 마리가 포르르 날고
     창문 간유리 하늘이 성큼 배경으로 선다
   
     유리창을 닦다가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휴일에 지는 꽃잎의 게이트 게이트 게이트
     (파아란 창의 이 여유!)
     휴일의 강 징검다리 디딤돌 휘돌아
     소용돌이로 피어나는 4월의 꽃들
 
4월의 부호들
           
        1
      황사바람에 날리는 벚꽃잎들
      안약 히아레인 눈물방울에 젖은 붉은 눈동자,
      4월의 부호들이 가렵다.
       
       2
     눈을 감으면 고흥 반도 내 유년의 방죽
     지평선을 날으는 갈매기의 날개가 가렵고 썰물의 갯벌을 기는
     꽃게의 빨간 발이 가렵다.
     튀는 망둥어의 꼬리가 가렵다.
      
       3
     한 치쯤 자란 고만고만한 모싹들이 서로의 등을 긁는
     교동면 상황리 논바닥이 천연기념물 205호
     저어새의 질척한 울음소리를 긁는다.
     등량만에서 산지 직송되어온 염포탕집 냄비 속
     오돌토돌 낙지의 발이 내 눈을 긁는다.
 
     떠도는 4월의 부호들이 가렵다
 
위 염
       
 
  오전 11시10분
  화살표(→)를 날린다
  서울→신촌→수색→화전→강매→행신→능곡→고산→백마
  →일산→탄현→운정→금촌→원릉→파주→문산→임진강→
  도라산역에 꽂힌 통일호.
        
  정 지!
  라이트 꺼!
  시동  꺼!
  실내등 켜!
  운전병 하차!
  창문 내려!
 
  
 전망대에서 침침한 내 눈빛의 화살을(→) 날린다.
 한낮의 어둠을 뚫고 원경 12KM 밖
 내 스승의 고향 개성의 등에 얹힌다.
 하얀 치마저고리에 흰 머리칼 날리는 안개, 어머니
 
 거푸거푸 신트림이 넘어온다.
 오래 동안 잠복해온 그리움의 헬리코박토파이로리.  
 
흐름을 위하여
       
 
         
       거시기가 흐른다
       계곡의 노을 빛 물줄기
       보름달밤 이슈타르*의 붉은 눈물
       꽃나무 흔들어 깨우는 봄비
       내 어머니의어머니의 장독대 옆 금줄 너머의 붉은 바람
 
      거시기의 증후군
      두근거리는 꽃술에다 달빛 솔솔 뿌리면
      한층 깊어지는 이 우울
      커피, 초코렛, 설탕, 소금, 술은 금줄 너머에 둔다
 
     여기저기서 거시기꽃 피고 지는 소리       
     나는 500번쯤 꽃 둘레 돌아 나왔어도 그 꽃을 모른다
     거시기를 따라 오늘도 빛이 오고
     어둠이 오고
 
       *고대 바빌로니아의 여신
 
약 손
 
         한 마음 신경정신과
         거울을 막 빠져나온 휘청거리는 해
         신당동 지하계단에서 굴러 떨어진다
         내 중추의 열두 계단까지 미끄러진다
         정전이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 파랗게 흐르는 지하도가 
         김밥처럼 또르르 말린다
         명치끝에 걸린 영하 7도의 어둠
         찌릿찌릿 뒷골로 치솟아 오른다
         어지럽고 메스껍다
         이때, 어느 출구인지 부스럭 뛰어내려 내 등
         까실까실 쓰러 내리는 마른 플라타나스잎들
         어머니의 약손
         (어릴 적 횟배 앓아 온방을 뒹굴 때 어머니의 손이
         사알살 문지르면 거짓말처럼 금방 일어나 뛰어 놀곤 했다)
         내 안에 맺힌 구멍이 뚫리고  
         일만 삼천 샛길들이 환하게 일어선다
 
안경점 앞에서
 
 
 
 명동입구 밝은 세상 통 유리 안의
 툭툭 튀어나온 눈알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바짝 다가서자
 수 백 개의 안경알 속으로 내 눈빛이 빨려 들어간다 
 검게 불그죽죽하게 혹은 투명하게
 순간, 내 몸에 촘촘히 뜨는 마른눈들
 떴다 감았다 뻑뻑하다
 
 말아 쥔 신문을 펼친다
 “이라크 테러집단에 인질로 잡힌 김 XX씨 살해됨”이란
 활자의 지렁이들 토막토막 꿈틀거린다
 이때, 검은 새 한 마리 긴- 선을 그으며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고
 갑자기 캄캄해지는 사위
 지팡이하나가 내 발등을 툭툭 치며 지나가고
 붉은 장미꽃안경알이 밟혀 깨진다
 
 내가 안경을 벗자 흐릿하게 공중을 기어오르다 낙상하는
 빌딩의 개미떼들
 
노을이 뒤척인다
                
 
저녁노을 뒤척이는 소리
  
 아래층 사오정씨 매일 출근을 한다. 오늘은 북한산 내일은 관악산에서 퇴근한 그는 한 필쯤의 노을 오려다 서른 다섯 새카맣고 큰 눈을 뜬 아내의 목에 스카프처럼 걸어 준다. 그의 귀에는 밤새 스카프 뒤척이는 소리가 난다.
 
이태백의 내 아이, 담뱃불 타 들어가 듯 물드는 단풍,
당단풍잎 한 장이 밤새 잔기침을 하며 대문을 들락거리고
창틀엔 스무 하루 새벽노을이 걸린다
  
아침, 사오정씨 8차선 도로를 한 절룩절룩 무단 휭단하고 있다
 
나팔꽃 
           
  하나,둘,셋!
  눈 질끈 감고 나팔꽃줄기를 뽑는다
  휘청 엎어지는 서녘하늘 
   
  10월과 11월
  까실까실 담당에 붙은 나팔꽃 줄기 
  씨방 몇 개 매달고 말라가는 신경줄
  가위질 한다
  부슬부슬 떨어지는 갈색 각질, 바스락 끊긴 리듬,
  종량제 쓰레기봉투 속으로 눕힌다
  내 발 밑에서 노을 부스러지는 소리
 
  철새 한 무리 하늘 저-켠으로 검은 줄기를 놓는다
 
 
더듬이
 
 
구석구석 더듬어도
잠이 없는 밤
유리창 안으로 굴러든 한가위 보름달이 나를 꼬드겨 일으킨다
 
달과 손잡고 종로통을 밤새 걸으며 뒤적거려도 이상도 구보씨도
만나지 못하고 다방 제비나 다옥정 7번지는 흔적조차 없다
 
시장통이나 들판을 아무리 헤매어도
내가 영원히 회귀할 곳은 마땅치 않다
 
팽목항에 가서 잠수를 할까 한산섬에 가 이순신과 수루에 앉아
시나 한 수 지어볼까
아니면 평양에 가서 김정은과 맥주나 한잔하며 “핵장난감놀이는 싱거워졌으니
나와 함께 유라시아 철도놀이를 하는 게 어때“ 하며 등이나 슬슬 긁어줄까
 
신경증의 프로이트는 밤잠을 설치면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가 되었다는데
고흐는 정신병원에서 별을 주물럭거려 소용돌이치는 자기만의 별,
불후의 걸작을 만들었는데
조을증 환자 다윈은 밤마다 잠과 싸우며 적자생존의 원리를 터득했다는데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정신분열증의 밤은
만유인력과 상대성원리의 태반이 되었다는데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내가 둥근 문하나 찾아 밤새 더듬은
달이 희뿌옇게 빛을 死産하고 있다
 
 
모기
 
 
낯선 행성의 배를 탄 별난 밤
파랑 치는 이명을 긁는다
충혈 된 눈에 떠오르는 별, 꼬리를 잇는 별별 생각들
 
고, 군, 산, 열도를 탄다
 
구름처럼 떠다니며 색색을 탄주하는 칸칸의 섬들
랑거한스섬*을 잃어버린 낭구갈매기가 끼룩낭구 끼룩낭구 따라오다가
M선생님이 하이퍼하는 ‘새우깡’이란 언어를 받아먹고
하이퍼 하이퍼 활강을 한다
 
바다에 떨어진 새우깡 몇 개
기웃뚱이는 꼬임의 경계가 두렵고 불안한 나
하늘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낮달을 향해
손바닥 마주쳐 공포탄을 쏜다
 
폭발하는 팔레스타인 하늘
내 눈에 총총총 박혀오는 검은 포도알 눈들
비실거리는 내게서 무얼 먹겠다고 글썽이며 파고드는지
 
이흥도 역을 지나 아직 장자도역인데 가자지구도역엔 언제쯤 닿을까
 
바람에 날리는 초조한 내 사유의 불랙박스, 바람이 해체한다
 
공룡알을 품은 나금재 통통마디 공작초
함초밭이 질펀하게 노을을 싸고 있다
 
1869년 췌장에서 특수한 세포집단을 발견한 랑거 한스가 자신의 이름을 따 랑거한스섬이라고
명명하다 인슐린이 만들어짐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때였지만 후에 영국의 샤피-사퍼(1850년-1935)는
당분대사에 필요한 물질이 랑거한스섬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여 섬을 뜻하는 라틴어insula를 따서
인슐린이란 이름을 붙였다
 
 
해안선
 
 
 
유리컵에 두 개의 노을빛 해안선이 그려진다
 
하늘을 수장시키고 하늘을 건져 올리는
한 여름의 짜디짠 해안선, 제부도 조력발전소
타는 내 입술적시며 달의 주기는 밀려왔다 밀려가고
깊고 깊은 바다의 육감들
왜 이렇게 내 젖은 맥박을 느려뜨리고 있는지
 
사소한 일렁임이 사소하지 않게 출렁이는
파키스탄의 15살 소녀 말랄라
“한 자루의 펜이 세계를 바꾼다”는 속 깊은 속삭임이
노벨평화상이란 봄꽃을 전 지구에 피워가고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부딪혀 유속을 빠르게도 하고 느리게도 하면서
새로운 예술 사조를 모색 중이라고 마를린 먼로의 붉은 입술로
사방 연속무늬를 끊임없이 그리고 있는 피카소
 
바다의 속 깊은 속도전은 이론이 아닌 사건이라고 써놓은 해안선에다
석양의 물너울이 나를 새롭게 편집하고 있다
 
나는 입술 밖에 있는가 입술 안에 있는가
 
 
polyandry*
 
 
 
잠시 經의 갑옷을 벗고 맨몸으로 제게 와 주세요
딱 하룻밤씩만 두 분에게서 쌍둥이를 낳고 싶어요
 
부처와는 ‘남북’과 ‘자비’를 예수님과는 ‘동서’와 ‘사랑’을 낳아
넷이서 뒤통수 맛 대면 멋진 입체파 그림이 될거예요
 
나와 싫으시면 두 분이 동성애를 하시든가
그도 싫으시면 상의 하셔서 한분이 성기수술을 하시는 건 어때요
‘돈오 점수’나 ‘구원’ 둘은 꼭 낳아야겠으니까요
‘해탈’과 ‘부활’ 도 상의해보시고요
 
예수님을 팔고 있는 유럽이 돈돈돈 돈타령인데도 왜 멸망하지 않을까요
부처님의 나라는 너무 더워 돈도 녹아내려 점수는커녕 돈오도 못할 것 같네요
 
예보도 없이 오리알만한 우박이 내 머리통을 치네요
 
요즘 낌새로 보아 사람들끼리 놔두면 원숭이로 퇴화되거나 씨가 마를까 두려워요
 
그도 저도 싫으시면
‘종말’이란 화두 삐라처럼 뿌려 놓고 세상을 아예 폭파시켜 버리든가요
 
오늘은 동서남북하늘이 유난히도 고운 생리혈 철철 흘리고 있네요
 
* 1처 다부제(폴리앤드리)
 
 
싸리꽃
 
 
슬로시티 슬로시티
 
잠이 간간하게 마른 내가
밤새 증도와 신의도를 어슬렁거렸다
 
목이 말라 염수가 덜 빠진 짜디짠 별을 먹었다
 
내 몸에 피어나는 하얀 싸리꽃
짜초름한 향기에
시나브로 절여지는 나
 
딱딱해져가는 내 안에서 총동원되어
드레박질 하는 세포들
 
0.9%의 나트륨을 유지키 위해
포타슘언어를 낳기 위해
지금 이순간도
반투막 밖으로
짜디짠 관념의 외액, 싸리꽃 피워내는 소리
 
너무 오래 절은 나를 맹물에 울궈 세탁기에 넣고
탈수 버튼을 누른다
 
  시문학 10월호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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