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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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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전거입니다 - 권오훈
2022년 05월 26일 16시 20분  조회:703  추천:0  작성자: 강려
나는 자전거입니다
 
권오훈
 
 
“이 놈 효주 아빠한테 줘버려야겠어. 자전거 한대 사려나 본데 자전거 타는 게 얼마나 힘든 지 겪어보고 나서 새 걸 사라고 했지.”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린고? 달리는 것이 존재이유인 나를 데려다가 서너 달 타보고는 힘이 부쳐 못 타겠다고 두 해씩이나 창고 구석에 쳐 박아 두었지요.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 쓴 나를 꺼내놓고 부인에게 하는 말이 고작 남한테 줘버린다고? 그 길로 나는 먼지만 대충 털린 채 트럭에 실려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단지로 옮겨왔지요.
“내가 먼지만 대충 털었는데 손볼게 좀 있을 거야. 난 힘들어서 못 타고 몇 번 타다 처박아 두었던 건데 자네 탈 수 있겠으면 타고 못 타겠거든 버리던지, 고물상에 넘기던지 처분대로 하게”
나의 전 주인은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그의 붙잡음도 한사코 뿌리치고 내게 변변히 작별인사도 않고 휑하니 가버리더군요. 아마도 꾀죄죄한 몰골의 나를 넘겨주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자기 걸 공짜로 주면서도 미안해하는 전 주인은 그렇게 마음만은 순수한 사람이었지요.
토요일 그는 나를 부축하여 아랫동네에 있는 병원으로 데려가더군요. 내 발은 공기를 불어넣어줘야 제 구실을 할 수 있는데 쭈그려져서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었거든요. 의사는 이것저것 내 장기들을 새 것으로 바꾸고 약도 발라주었지요. 긴 다리의 그에게 맞춰 내 몸 이곳저곳을 조절해 주었고요. 내 모양이 제법 깔끔하게 갖춰지자 남의 손을 타지 않도록 내 다리를 채울 자물통도 하나 장만하라고 권하더군요.
“늘어진 와이어를 모두 갈아서 브레이크도 잘 듣고, 안장도 높이고 윤활유도 쳤으니 이제부터 21단 기어도 활용해서 자전거 타는 재미를 제대로 누려보세요. 초보는 이 정도만 해도 탈 만할 것입니다”
치료를 끝낸 의사가 그에게 말했어요. 돌아오는 길은 모처럼만에 신나게 달릴 수 있었지요.
그는 거의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나를 데리고 나갔지요. 지나다 만난 사람들에게 가고 싶었는데 걸어가기엔 엄두도 못 내던 곳을 나 때문에 다닐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할 때는 얼마나 뿌듯하던지. 나도 내 본연의 속성인 달리기를 할 수 있어 행복했지요. 그가 참 좋아졌습니다.
나에게는 그가 천생연분이란 생각도 들었어요. 그가 좋아하는 수목원도 마을 안 들길도 텃밭도 따라 다니다 보니 완전 내 취향이데요.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은 모 방송국의 ‘나는 가수다’ 실황을 들을 때는 떨리는 그의 전율을 고스란히 느낄 때도 있어요. 내 등에 오를 때면 의식적으로 날렵하게 차려 입는 그의 차림새는 수더분한 내 몸매를 보완해 주지요. 극성스레 좋아하다 싫증나면 쉽게 내쳐버리는 가벼움이 아닌 진득함도 마음에 들고요. 무엇보다 나도 그처럼 두발인 게 닮았잖아요. 이런 감정들이 나만의 생각일까요?
나의 행복을 시샘한 걸까. 그렇게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밤새 내린 비로 길이 젖어 있더군요. 그는 갈까 말까 망설이다 내 등에 올라 운동 길에 나섰지요. 횡단보도를 건너 인도로 올라가는 경계부분은 매끄러운 화강석이데요. 물기가 남아 미끄러운 그곳에서 아차 내 발이 미끄러졌지 뭡니까. ‘어어’ 하다가 나는 머리가 180도나 홱 돌아간 채 나동그라지고 그도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졌지요. 지나는 사람들 앞에서 민망한 꼴이라니. 그나마 그는 손으로 땅을 짚는 바람에 얼굴에 빈대떡을 갈아 부치는 꼴은 면했지요. 나도 여기저기 생채기가 났지만 그도 무릎을 갈아붙이고 왼 손목 인대가 늘어났다나 봐요.
책임회피 같이 들리겠지만 이건 순전히 그의 순발력이 떨어진 탓이었어요. 인간이란 종족들은 원래 그런 면이 있잖아요. 우리가 말을 못한다고,‘내 탓이요 내 탓이요 더 큰 너의 탓이로다.’ 벙어리 냉가슴입니다. 그 길로 나는 또 내팽개쳐졌지요. 다시 내게 다가온 시련, 이번엔 아파트 계단에서 썩어야 할 팔자인가?
그가 며칠째 보이지 않네요. 지난 번 부상이 차도가 없는가? 몸이 근질거려 죽을 지경인데. 그에게 온 후로 나는 매일 아침 콧바람을 쐬는 것에 길들여지고 말았나 봐요. 어슴푸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면 내 몸에는 뜨거운 피가 돌기 시작하거든요. 곧 날렵하게 차려 입은 그가 문을 열고나올 것이고 우리는 차가 뜸한 사잇길을 따라 수목원으로 갈 것입니다.
그곳에 가면 온갖 꽃과 풀과 나무들을 구경하고 향긋하고 싱그러운 내음을 맘껏 마시는 즐거움도 있지만 동무들을 만나는 것이 더 가슴 설렙니다. 아침에 그곳 오는 것에 이력이 난 동무들이지요. 그들과 어울려 내가 못 가본 세상에 대한 얘길 듣는 재미는 여간 쏠쏠한 게 아니랍니다. 사실 나는 다른 곳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거든요. 그가 사는 곳은 도심외곽지고 아침 운동할 때나 오후에 텃밭에 갈 때만 나를 데려가므로 그네들 사는 번화한 동네가 자못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덩치가 크고 실팍한 발을 네 개씩이나 가지고 기름을 먹여야 달린다는 뚱보 형의 뱃속에 들어앉아 아래 동네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하고 가끔은 먼 곳을 다녀오기도 하데요. 나는 형이 부러워요. 스타일을 중시하는 그에게 있어 양복 차림으로 내 등을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은 당치도 않은 장면이겠지요. 나란 존재는 단지 수목원 운동길, 동네 들길을 따라 산 아래 작은 저수지까지 다녀오는 운동길, 텃밭에 다녀오는 길의 동반자일 뿐이랍니다.
그는 나에게 아주 살뜰하지는 않아요. 복잡한 도심은 위험하다며 안 데려가고 눈비 안 맞히고 더러우면 닦아주지요. 그저 적당한 수준의 보살핌과 관심만 줄 뿐이지요. 다른 동무들처럼 갖가지 예쁜 장식품을 갖춰주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나는 감지덕지랍니다. 나는 그저 수더분한 모양새에 꼭 필요한 신체도구만 갖췄을 뿐이거든요. 몸무게도 그리 가볍지는 않아요. 살뜰하지는 않지만 무던하기는 한 그이기에 이런 일로, 아니면 내가 낡았다는 이유로 쉽게 나를 내치지는 않을 거란 믿음을 가져봅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 인연인데요.
그가 돌아왔습니다. 아직은 손목에 압박붕대를 감고 있지만 조심조심 타면 된다나요. 근질거리던 난 신나게 씽씽 달려보고 싶지만 그럴 날을 위해서 지금은 조심 또 조심해서 걷습니다. ([구미수필] 2011년 9집)
 
∣작법 공부∣
 
예술작품의 의인화법은 역사가 깊다. 근대 문학양식에서 의인화법을 주된 작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장르라면 동화를 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필작품에서도 의인화법이 자주 발견되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는 연구대상이다.
의인화법의 대상은 거의 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동물 등의 생물이다. 의인화 대상이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동물이 되는 까닭은 동물들과의 사이에는 그들의 반응을 통한 교감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자전거를 의인화하고 있다. 무생물인 자전거를 의인화 할 경우 동물과 나누어 오던 경험적 교감에서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따라서 예술작품으로서의 실감 형성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자가 이 작품을 비평대상작품으로 선정한 까닭은 그 같은 무생물 의인화의 어려움을 끝까지 잘 극복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실제 작법이 무엇일까?
첫 번째 눈에 띈 점은 “두었지요.”, “옮겨왔지요.” 투의 문장법이다. ‘요’로 끝나는 존대어법은 동화체 문장법의 기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친근감이 일어나는 문장법이다.
두 번째로 필자의 눈에 띈 점은 위에서 지적한 대로 ‘무생물 의인화’에 예술적 실감을 불어 넣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끝까지 이야기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끌고 가고 있는 작가의 지구력이라고 하고 싶다. 이 달의 비평은 <무엇이든지 시화(詩化) ・ 이야기(story)화 하면 창작이 된다.>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무엇이든지’ 중에서 무생물인 자전거 의인화는 빠져야 된다는 법은 없다. 자전거도 시화(詩化) ・ 이야기(story)화 하면 당연히 창작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는 어떤 경우에라도 문학이란 본질적으로 시 만들기이거나 이야기 만들기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주인과 함께 미끄러운 길에 넘어졌다가 다시 돌아 온 후의 작품 결미를 찾지 못하고 “그가 돌아왔습니다.” 상태에서 작품을 마무리 지으므로 여기까지 뚝심 있게 끌고 온 이야기 만들기의 보람을 잃고 만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이 작가로서의 상상력일 것이다.
작가가 작품의 결미를 “그가 돌아왔습니다.”에서 펜을 놓아 버리게 된 심리적 요인이 혹시 문학작품 창작에 절대 필요조건인 상상력을 의인화 형식에 지나치게 의존한 데에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의인화 형식의 장점은 의인화 형식 자체가 작품의 소재를 상상력의 세계로 단숨에 옮겨 놓아 준다는 점이다. 그러나 의인화 문장법을 통해서 소재를 상상력의 세계로 옮겨 놓았다는 것에 만족하고 만다면 소재를 사실대로 기록하고 마는 기존의 수필쓰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게 될 것이다.
무생물인 자전거 의인화라는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이야기 만들기를 끝까지 끌고 간 뚝심과 끈기에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준다면 좋은 개작(改作)이 태어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말미에서 필요한 상상력은 소재에 대한 비유(은유 ・ 상징) 창작이 될 것이다. 소재에 대한 비유 창작이란, 쉽게 예를 든다면 <주인도 나처럼 가정과 직장에서 씽씽 잘 달리는 아빠 자전거, 잘 나가는 사원 자전가가 되고 싶어 한다.>는 설정도 가능 할 것이다. ([창작문예수필 - 작품과 작법 6 ]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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