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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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2014년 03월 20일 18시 25분  조회:2089  추천:7  작성자: 허창렬
2
 

새 한마리 바다에서 아침의 옷을 깁습니다
새벽을 꼴깍 삼킨 새까만 모래알들,
코등에 흘러내린 점잖은 돋보기너머로
엄마의 찢어진 심장 바람에 말리웁니다
아빠의 어이없는 손사래에서는 긴 한숨이 풀풀 휘날리고
형님의 일기책엔 눈물이 골똑
아아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같이 사라져간 누나야
어디 있니? 보고싶다
춤추는 콩팥
흐느끼는 창자
빵부스레기 손에 들고
새 한마리 수림쪽으로 피리 불며 날아갑니다

씨앗
 
씨앗이기에 우리 모두 아무런 말이 없다
숨을 한번 크게 내 쉬면
파랗게 밭이랑에 돋아나는 눈알
 
감자의 노래는 까아만 구슬바울
보리의 부화는 률동의 작은 키잡이
욕망의 샘속에서 달빛이 무르익는다
 
파도의 침묵ㅡ
무성한 고백ㅡ
허울을 벗고 드디여 가슴을 연다


안개
 
문을 닫고(열고) 들어오세요
전등불을 껐다(켰다) 죽였다 껐다 죽였다 하며
바람이 눈앞에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곤다
잃어버린 손발,
아우성치는 길손들
나무의 진동모드속에서 바르르 바르르
심장을 달달 턴다
눈앞에서 흐물거리는 길
뜻과 목 쉰 소리 길게 묶어서
제단에 바치는 하얀 노래ㅡ
 
아버지 손발 어머니 잔등
 
널뛰기를 합니다
문턱을 가로타고 앉아
춤 추는 손발 ㅡ
 
검은 가죽잠바 입으시고
아버님이 꿀꺽꿀꺽 마시는 빗물
가대기 창살 활짝 열고
어머님의 피고름에서는
깊은 골짜기들이 우쭐우쭐
일어섭니다
 
두 귀 쫑긋한 토끼의 애간장
내옆에서 속살거리는
하얀 꽃의 작은 숨소리
산막은 천사의 뼈무덤
아버지 손발 ㅡ그리고
어머니의 넓고 포근한 잔등
 
파동(波动)
 
하늘과 땅 사이
나는 대체 무엇이관대 울고 웃어야 나요?
 
별과 달 사이
나는 도대체 무엇이관대 저 푸른 빛을 받아야 하나요?
 
시와 시의 놀란 풀숲사이에서
시간과 시간의 물결치는 모텔사이에서
 
흔들리는 지구
어깨 흔들며 깨여지는 구리산
 
어느 친구의 초라한 돈지갑
도시의 한적한 어느 단칸 세집에서
 
그렇게ㅡ
파들파들 떨리는 긴 눈섭…
 
 
모래시계
 
시간은 장난이 아니랍니다
세월은 더욱 장난이 아니랍니다
사랑의 부드러운 모래시계
수미산 배꼽을 닮아가는 토르노속의 작은 우주
나는 너를 외롭게 한 죄인이여
너는 나의 왼손잡이 사과 한알
짬뽕이 된 달타령속에
성황당 손수레에 곱게 앉아
술에 취해 넘어가는 망각의
산고개길이여
 
1
 
탑이 탑속으로 들어가 탑의 마음을 읽습니다
탑탑하고 매캐하고 떫은 그 연기 활활 털어내고
하늘이 내린 천서(天书) 글이 없는 무자경(无字经)을
련꽃이 번지없는 노래로 부릅니다
방실방실 춤 추는 사리탑
너울너울 노래 부르는 에펠탑
줄레줄레 념불 외우는 피사탑
종각(钟壳)에 널어놓은 스님의 숨가쁜 발자국소리
부처님이 슬며시 거울을 향하여 다시 돌아 앉습니다
갯벌이서 갓 건져 올린
탑속의 달덩이 하나ㅡ
 
 
2
 
굴러가던 시간의 수레바퀴
여기서 뚝 멈춘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욕망
아직 햇님의 꼬리 물고 파도치는 갈증
태양이 안경을 벗고
불쑥 부처님앞에 경건히 마주섭니다
무주(无住)
무득(无得)
무소위(无所谓)
깨달음의 방생못에서 깜짝 놀란 사슴떼
잉어며 붕어며 미꾸라지며 또한 메기며
한바구니의 삼장십삼부(三藏十三部)를
저마다 손에 하나씩 나눠들고
풀떡풀떡 무아경(无我境)을 헤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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