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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침실 문덕수
2018년 12월 20일 16시 00분  조회:788  추천:0  작성자: 강려
내 침실
 
문덕수
 
 
신발 밑바닥을 털지 않아도 신장은 투덜대지 않는다
낡은 TV만이 한 대 오롯이 앉은 거실의
벽시계 밑을 탈 없이 지나서
내가 없는 내 방을 들어간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천장은 어제 그대로의 높이여서 안전하고
벽은 10년 전의 그 높이로 날 안아준다
등산모 운동모 맥고모자는 모자걸이에 걸려 있고
오늘은 벗어 걸 아무 것도 없다
내 생일 선물의 빨쁘레질리 카운티스마라도 있지만
사흘 전의 구겨진 와이셔츠도 그대로다
침대 머리맡 탁자 위의
그리스도의 비밀, 붓다의 입문
아직 못 읽은 신간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이선의 시 읽기>
 
  사물을 있는 그대로 상념없이, 주관을 버리고 바라보면 어떤 색깔, 어떤 모양일까? 신발은 제 생각을 주장하여 깔끔 떨지 않고, 신발장은 선입견을 가지고 신발을 배척하지 않는다.
  무념무상의 사물들이 조용히 눈뜨고 노 작가를 직시하는 직관의 시간. 그리스도의 비밀과 붓다의 깨달음이 공존하는, 침실풍경. 
  조용히 정지된 침실, 그 풍경화를 읽는다. 와락 가슴 두근거리게 내면으로 안겨오는 성숙과 겸허함.
  3행의 부사어. ‘오롯이, 탈없이’ 하루를 또 살아낸 가난한 영혼이 진득하니 손끝에 만져진다.
  4행을 주목하여 보자. ‘내가 없는 내 방을 들어간다’ - 탈관념과 직관, 객관화를 이보다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객관화된 나를 내가 들여다본다. 말로 주장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행동과 행위를 자연 그대로 ‘보여주기’ 한다. 시간이 흘러 ‘그’ 나이가 되면 누구나 5행처럼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는 시간이 올 것이다. 이순을 지나면 행동하는 모든 것이 순수자연 그대로의 의지다.
9행의 ‘오늘은 벗어 걸 아무 것도 없다’ - 비움의 미학. 가볍게, 더 가볍게 물질을 내려놓는.
  마지막 행의 ‘ 아직 못 읽은 신간이 천장을 받치고 있다’ 나이 들어 갈수록 덕성과 지성으로 생각을 지배하고, 야성과 욕망을 비우는 행위가 아름답다.
  문덕수라는 노작가의 내면의 방, 일기장처럼 혼자만 보는 ‘비밀의 방’을 슬쩍 들여다본 부끄러움. 
  문덕수는 이 한 편의 시로 인생과 자아와 시론을 썼다. 예수와 석가가 공존하는 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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