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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겹의 입술 / 정지우鄭誌友
2018년 12월 24일 20시 41분  조회:769  추천:0  작성자: 강려
일곱 겹의 입술
 
 
 
정지우鄭誌友
 
 
 
 입술이 취하는 양파주점* 눈이 매운 술안주가 있다.
 
 
 
 부딪치지 않고 탁자 사이를 지나다니는 것으로 주량을 잰다.
 
 
 
 흐린 음주엔 옆 좌석이 슬쩍 끼어드는 술병도 있지만 아주 얇은 껍질 몇 개만 있어도 감흥에 젖을 수 있다.
 
 
 
 외투를 벗거나 안경을 한 꺼풀 벗어놓은 빈자리들
 
 손등으로 땀을 닦는 일은 주정酒精의 관계여서 때로는 모르는 인상.
 
 
 
 홍당무가 되어도 흉이 없는 당신은 그저 옆자리일 뿐이다.
 
 
 
 한 잔에 얼굴 속으로 털어 넣는 얼굴
 
 절망은 분노의 옆얼굴이다. 
 
 
 
 끝이 없는 계단과 모서리를 돌아가는 시간.
 
 
 
 술잔에 찍힌 입술이 눈물을 흘린다.
 
 일곱 겹 입술의 말에는 눈물이 있다.
 
 
 
 눈이 매운 건 좌석 배치도 때문일까 입술이 벗겨낸 표정 때문일까.  
 
 
 
 둥근 접시의 요일엔 빨간 망에 든 양파가 배달된다.
 
 흰 거품의 당신을 흔들면
 
 술과 양파를 곁들인 오늘이 접시 위에서 붉다.
 
 
 
 
 
 
 
* 양철북
 
 
 
 
 
 
 
 
 
<이선의 시 읽기>
 
 
 
  위의 시는 ‘낯설게하기’의 정수를 보여준다. ‘제목, 연, 행, 낱말’들이 각각 모en 낯설게하기를 실현하고 있다. 요즘 새롭게 시도되고 있는, 젊은 감각의 포스트모더니즘 기법이다.‘낯설게하기’를 통하여 시적 정서가 환기되고 지루한 시 쓰기 방법론에서 탈피하고 있다.
 
  ‘한 컵의 맥주잔에 찍힌 입술자국’에서 출발한 단순한 발상이, 연마다 새로운 구도를 갖고 의식을 만들고 있다.‘피동적 기법’의 시 쓰기 기법이다.
 
  빨간 루즈를 칠한 입술이 200cc 맨주잔에 찍어놓은 일곱 개의 립스틱자국. 지성과 야성. 취기와 호기심. 술주정과 눈물. 평이한 주점의 풍경화가 포스트모더니즘적 기법의 시의 옷을 입고, 일상과 상식의 옷을 벗고 하이퍼적이다. 요염하고 감각적이다. 
 
  피동적 사물은 주장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정지우의 시에서는 풍경이 감정을 나타내고, 피동적 동사가 의식을 주장한다. ‘둥근 접시의 요일엔 빨간 망에 든 양파가 배달된다.(10연 1행)’을 살펴보자.
 
  ‘요일’이라는 시간의 개념에 ‘둥근 접시’라는 이미지의 옷을 입혔다. 또한 ‘빨간 망에 든 양파’라는 선명한 색채이미지는 ‘둥근 접시’와 상대적 조화를 이루며 선명한 구조의 이미지를 돕는다.  ‘둥근 접시’와 ‘빨간 양파’는 구체적인 사물이다. 구체적인 사물이 불명확한 시간의 개념인 ‘요일’을 선명한 사물이미지로 꾸며준다. 여러 개의 중첩된 이미지가 구체성과 객관성을 돕고 있다. ‘요일’이라는 시간의 개념이 선명하고 구체적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흰 거품의 당신을 흔들면/ 술과 양파를 곁들인 오늘이 접시 위에서 붉다.(10연 2-3행)’부분을 눈 여겨 보자. ‘이상 시인’이 말하던 속을 까도 알 수 없는‘양파’의 이미지는, 제목인 ‘일곱 겹의 입술’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시의 애매성과 모호성의 원리를 살린 ‘흰 거품의 당신을 흔들면’이라는 표현에는 ‘흰 거품’이 주는 ‘가벼운 이미지’와 ‘사라지는 것들’이라는 이미지가 합쳐 ‘당신’을 수식한다. 취기에 농과 연애를 자극하는 술집의 풍경화가 농염하다. 그러나 철학이 있는 것은 ‘한 잔에 얼굴 속으로 털어 넣는 얼굴/ 절망은 분노의 옆얼굴이다.(6연 1-2행)같은 구절이 보여주는 사유의 힘이다. 억울하고 분한 심정을 억누르며 술을 마시는 범인들의 모습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끝이 없는 계단과 모서리를 돌아가는 시간.(7연)’ 처럼, 술집에서는 모든 것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반복적이다. 말, 술잔, 시간이 천천히 돈다. 과거가 현재에 와 있고, 현재가 내일이면 과거가 된다.
 
 
 
  위의 시는 피동과 사동으로 표현주의적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시는 진정성을 가지며 중심이 든든하다. 8연 1-2행‘술잔에 찍힌 입술이 눈물을 흘린다./ 일곱 겹 입술의 말에는 눈물이 있다.(8연 1-2행)’부분은 화자가 시를 쓰게 된 근본이유일 것이다. 술은 기분을 풀려고 먹지만 이상하게 술은 먹을수록 슬퍼진다는 걸 깨달을 것이다. 심미적 미의식을 추구하며, 객관화와 진정성 추구는 앞으로 표현주의 시가 추구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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