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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이선 시해설

시간은 / 김 규 화
2018년 12월 25일 14시 45분  조회:700  추천:0  작성자: 강려
시간은 
 
 
김 규 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직선을 그으며 간다
  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쓴다
  왼쪽은 과거이고 지금 쓰고 있는 쪽은 현재이고 아직 안 쓴
오른쪽은 미래이다
  지금 쓰고 있는 내 손은 계속하여 오른쪽인 미래로 자리를
바꾸어 간다
  현재는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바로 이 자리라고 펜 끝으로
말한다
  과거는 그대로 기억의 창고에 머물러 있다가 꺼내면 희미
하게 나타난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캄캄한 밤을 헤쳐 나가기 위해 현재
를 만들고
  드디어는 과거와도 한통속이다
 
현재 과거 미래가 하나로 뭉쳐 오늘은 밍밍한 펜 끝이다
 
 
 
    * 김규화 신작시집 『햇빛과 연애하네』중에서
 
 
 
 
 
 
  <이선의 시 읽기>
 
 
  ‘심심하지 않은 시’는 좋은 시다
  지금까지 한번도 들어본 적 없고, 다른 시인이 쓰지 않은 ‘표현’은 좋은 시다
  끝까지 읽고 몇 더 생각하며 ‘정독’하게 하는 시는 좋은 시다
  제목과 내용이 따로따로인데, 한 맥을 가지고 제목과 각 연들이 힘차게 ‘관통’하는 시는 좋은 시다.
  설명적이지 않은데, ‘철학’이 있는 시는 좋은 시다.
 
  김규화의 「시간은」은 위의 여러 요소를 함의하고 있다. 쉬운 말로 이해되지 않는 문장은 없다. 그런데 여러 번 읽었다.
  위의 시의 매력은 14행의 짧은 시가 갖는 힘이다. 1연 1행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일직선을 그으며 간다’라는 문장을 살펴보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자를 쓴다’라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글을 쓰는 행위를 ‘객관적으로 사물화’하였다. 인생은 직선이다. 물론 왼손잡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 수도 있다. 포물선이나 꺾은선 그래프를 그리거나 원으로 순환하는 디자인적인 인생도 있다. 그러나 위의 문장은 시를 향하여 직선의 일념으로 시를 쓴 시인이라면 그 의미를 안다.
  2행을 살펴보자. ‘나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을 쓴다’라고 단순하고 명료하게 글쓰기 행위 자체에 대하여 사실적으로 적고 있다.
  위의 1, 2행의 문장은 모두 사실적인 문장이다. 그런데 인생에 대한 상징과 함축을 담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내포하고 있는 확장된 문장이다. 그 문장에는 재해석과 직관이 있다.
  1연 마지막 행의 ‘드디어는 과거와도 한통속이다’라는 반짝이는 문장을 들여다보자. 이 한 개의 결론적 문장을 도출하기까지, 시인의 체험과 체득과 여과의 긴 인생여정 과정의 희노애락이 생략되어 있다. 그 숨겨져 있는 ‘의미’를 찾는 것이 독자의 즐거움이다. 평생을 시에 바친 시인이 남기는 한 문장이다. 인생은 펜끝 하나다. 촌철살인의 명징한 문장이다.
  시간에 대하여 쓴 시는 많다. 그러나 김규화의 「시간은」은 다른 시와 변별력을 갖는다. 14행의 짧은 문장은 모두 객관화되어 있다. 직관과 재해석이 빛난다. 집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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