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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불안 그리고 내일 자 신문 / 이영준
2018년 12월 25일 15시 41분  조회:768  추천:0  작성자: 강려
존재의 불안 그리고 내일 자 신문
 
-꿈 4 ․ 사회 동물들의 이기적 사회엔 희망이 없다
 
 
 
 
 
                                                   
이영준
 
 
 
 
나는 고층 빌딩과 빌딩 옥상을 가로질러 놓은
겨우 발로 짚을 만한 넓이에 나무를 밟고
고소 공포에 떨며 건너고 있었다.빌딩 옥상을 통해 땅으로 가려는 필사적 전념을 했다.
 
그러나 어느 옥상도 땅으로 가는 문은 없었고
고소 공포를 피할 여유를 주질 않았다.
옥상은 작열하는 태양으로 점점 벌겋게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나무 위에서 중심을 잃고 떨어질 뻔하다 겨우 매달려 있을 수 있었다.
 
머리 위 태양은 너무 뜨겁고 빌딩 속 사람들은
나의 위태한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무관심하다.
살려달라고 소릴 질러 대지만 전혀 동요가 없다.
 
문득, 아침 신문에 읽었던 인조인간론이 떠올랐다.
입력된 일만하는 인조인간들
 
감정은 인간의 영원한 실수
감정은 인간을 진보시키지 못하는 병
감정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병, 병․․․
 
나는 더 이상 지탱할 의지를 상실했고 손을 놓았다.
(존재에서 탈피해 편히 쉬고 싶었다.)
 
그, 추락 위로
아침 신문과 똑같은 기사의 내일자 신문이
희망 없는 온 도시를 눈 내리듯 뒤덮어가고 있었다.
 
 
 
 
<이선의 시 읽기>
 
 
 
 
키에르 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고독’이라고 정의하였다. 현대인에게 절망에 이르는 병은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예전 수동식 건축방법으로 빌딩과 빌딩 사이에 나무 사다리를 올리고 공사를 하는 인부들을 비계공이라고 하였다. 비계공은 종종 그들의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한다. 아슬아슬한 높이에서 좁은 나무판자에 서서 일하는 그들은 ‘불안’의 대명사였다.
 
이영준의 시는 그만의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문의 사설이나 평론적 구조라고 정의하여 보자. 해석적 문장과 존재론적 질문은 까뮈를 연상시킨다. 까뮈는 그의 작품 「이방인」에서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그는 살인행위를 개인의 의지보다는 ‘강렬한 햇빛’이라는 조건 때문이라고 변명한다. 위의 시에서도 2연 3행 ‘옥상은 작열하는 태양으로 점점 벌겋게 달아올랐기 때문’과 4연 1행 ‘머리 위 태양은 너무 뜨겁고’ 부분에서 까뮈적 해석을 하고 있다. 햇빛은 화자의 심리상태의 ‘배경’이면서 ‘불안’의 ‘이유’이며 ‘조건’이다. 부조리한 현대사회의 ‘분리불안’적 문명요소를 ‘뜨거운 햇빛’에 치환하고 있다.
 
6연을 1-3행을 살펴보자.
감정은 인간의 영원한 실수
감정은 인간을 진보시키지 못하는 병
감정은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 병, 병․․․
 
6연에서 언급하고 있는 ‘감정’은 아날로그 시대의 일차적 유물처럼 생각될 것이다. 까뮈의 존재론적 철학인 ‘부조리’와 전혀 관계없는 이질적 개념인 것 같이.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부조리’한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인간적이고자 하는 개인적 ‘감정’을 배제하지 못하여 ‘불안’이 야기된다. ‘감정’의 개성주의를 주장하면서 개인적 일탈이 일어난다. 감정은 부조리한 ‘갈등’의 주역이다. 현대사회에서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불안신경증’은 심리적 현대병이다.
 
  위의 시는 개인주의적이면서 사회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소외’와 ‘불안’으로 죽어가는 빈민계층의 사회상과 지식계급인 이상주의자의 ‘절망’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현대 정보화시대에는 개인은 기계의 부속품에 불과하다. 부속품들은 서로 다른 부속품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제 시간에 ‘그때’에 ‘그곳’에서 정확하게 나사인 부속품의 임무를 완수해야 신상품이 생산된다. 부속품은 남을 돌볼 여유가 없다. 그 자리를 이탈하거나 한눈을 팔면 생산에 오류가 발생한다. 한 파트의 일원으로 스스로 존재할 뿐이다. 부분은 전체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부모나 이웃의 농경법을 전수받으며 협력해서 살던 고대 농경사회와 달리, 현대인은 이 ‘부분’이라는 조건에서 ‘불안’이 시작되었다. 부분인 개인은 다음 생산과정을 억압받으며, 자기 위치를 버텨내야 한다. 방만하고 과도한 물질의 시대에, 극도로 자유를 제한받는다.
 
  이영준의 시는 웅변과 주장을 하지 않아도 현대사회의 바닥을 고발하고 있다. 논문처럼 논리적이고 냉정하게 비정한 현대사회를 고발한다. 다만 개인의 불안구조를 ‘보여주기’할 뿐인데, 사회전체를 대표한다. 시적거리가 먼 객관적 문장이 해석적이며 단정적이다. 문장은 짧고 힘이 있다. 이영준 시의 존재론적 주제와 독특한 구조는,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시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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