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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노래 / 이수화
2018년 12월 26일 15시 07분  조회:1592  추천:0  작성자: 강려
    가을의 노래
 
                                                               - 이수화 
 
잎이 진다. 이 가을에는 오래 살아온 생가(生家) 아궁이에 낙엽을 지피고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지금은 여름내 풀을 뜯던 일소들도 시나브로 살이 찌는 아롱사태와 그리고 깊은 산곡(山谷)에 피는 도라지꽃 그 고요한 목숨의 한때를 생각하기 위하여 나의 사유(思惟)는 이 가을에 수정알처럼 빛나야겠다.
 
잎이 진다. 아침을 나서는 생활의 문턱에도 이름 모를 일년생(一年生) 초본식물(草本植物)이 잎을 떨구고, 가족들의 정갈한 내의(內衣)는 초록(草綠)의 스킨다브스 잎보다도 두터워졌다. 지금은 한갖 사라진 영화(濚華)로움도 언제나 오뇌(懊惱)하던 젊음의 밤들도, 그리운 추억처럼 소중한 때이려니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나는 은총(恩寵)의 따사로운 섭리(攝理)이고 싶다. 
 
잎이 진다. 이 가을에는 우리가 살아갈 누리에 낙엽이 져도 나의 기도(祈禱)는 낙엽과 더불어 흙이 되리니- 아아. 지닌 것이 없어도 충만(充滿)한 가슴이여. 이 가을 오래 살아온 생가(生家)아궁이에 낙엽을 지피고,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이선의 시 읽기>
 
시인이라면 누구나 생애 단 한편의 대표작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이수화의「가을의 노래」는 프랑스 시인 폴 베를렌의 감상주의적인「가을날」이나, 릴케의 기도 시「가을날」과는 다른 품격과 내용, 철학, 시적 표현 방법으로 변별력을 갖는다.
 
이수화의 「가을날」은 위의 시들보다 날선 감각과 표현이 있다. 또한 반성적 철학과 지혜를 갈구하는 시인의 진정성이 선명하게 살아있다. 1-5연에서 보여주는 아래 구절들은 ‘가을 이미지’를 ‘철학’과 ‘사유’로 승화시켰다.
 
  1연- ‘이 가을에는…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2연- ‘나의 사유(思惟)는 이 가을에 수정알처럼 빛나야겠다’ 
  4연-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나는 은총(恩寵)의 따사로운 섭리(攝理)이고 싶다’
  5연- ‘나의 기도(祈禱)는… 축복(祝福)처럼 하루를 살고 싶다’?
  
아래에 제시한 2연과 3연의 감각적 미의식과 날카로운 직관적 표현은 압권이다. 
 
2연- ‘지금은 여름내 풀을 뜯던 일소들도 시나브로 살이 찌는 아롱사태와 그리고 깊은 산곡(山谷)에 피는 도라지꽃 그 고요한 목숨의 한때를 생각하기 위하여’
  
3연- ‘가족들의 정갈한 내의(內衣)는 초록(草綠)의 스킨다브스 잎보다도 두터워졌다’
아래에 제시한 4연과 5연은 자연의 섭리에 무조건 순응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갈등과 항거를 통해 배운 순리를 깨달은 자의 지혜가 번뜩인다. 가난도 아름다운 비움의 철학으로 빛난다. 
  
4연- ‘지금은 한갖 사라진 영화(濚華)로움도 언제나 오뇌(懊惱)하던 젊음의 밤들도, 그리운 추억처럼 소중한 때이려니 잎이 지는 산자락 나무숲에 흙이 되어서’
  
5연- ‘지닌 것이 없어도 충만(充滿)한 가슴이여’
  
이수화의 「가을날」은 시인의 하늘로 높게 솟은 아름다운 ‘백발’처럼, 그의 내면이 범상치 않은 ‘개성’과 칼칼한 ‘직관’을 그의 ‘시의 눈’에서도 볼 수 있다. ‘시는 그 사람이다’라는 등식을 확인한다. 
  
천상병의 「소풍」이나, 릴케의 「가을날」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쉽고 간절한 진정성과 삶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김춘수의「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도 ‘잉걸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수화의「가을날」도 매력적인 ‘표현주의’ 적 기법이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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