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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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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샘일기- 김정현/ 가온문학 봄호 2016년/ 이선 명시 읽기
2018년 12월 26일 20시 46분  조회:1707  추천:0  작성자: 강려
 
날샘일기 
 
 
김정현
 
 
홀로 밤을 지킨다
별과 달이 잠든 탓에
 
여름 가을 뜨거운 햇볕,
늙어버린 호박에 기대었다가
몇 잎 남지 않은 파인애플데이지와
눈을 마주쳐보다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새까만 하늘에
그림을 그리다가
빈방에 윙윙 휘젓고 다니는
파리 한 마리를 지켜보다가
밥 달라고 빽빽거리는 휴대전화를 달래다가
책을 꺼내어 활자를 끌어당기다가
꿈길로 들어서려고 이불을 뒤집어썼다가
도로 이불을 걷어내고 앉아
새벽의 문턱 넘는 시간을 주물럭거린다
동쪽 산이 붉은 해 하나 토해낸다  
별과 달을 닮은 해가 방실거린다
 
 
별과 달이 잠 든 탓에
홀로 밤에게 손을 흔들었다
 
 
 
 
 
 
                                                간결한 문체와 진정성, 독창적 개성의 손바닥그림
 
 
  위의 시는 간결한 문체와 진정성이 있는, 독창적 개성의 손바닥그림이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이다. 반복미와 확장성, 역발상과 도치 등 시창작의 표본처럼 여러 기법을 보여주기 하고 있다. 그 기법을 간단하게 아래의 여덟 가지 형태로 분류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진정성과 의인법, 아이러니 기법
  1연은 매력적인 전개방식이다. 잠이 안 온다고 하지 않고 ‘홀로 밤을 지킨다/ 별과 달이 잠든 탓에’라고 역발상적 아이러니 기법으로 접근을 하고 있다. 별과 달은 사실, 하늘에 뜨지 않은 날에도 하늘에 존재한다.  시인은 달과 별이 뜨지 않은 것을 잠자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아이러니 기법과 의인화 기법을 써서 잠자고 있다고 표현한다. 인간의 눈, 시인의 눈으로 발견한 사실이다. 
 위의 시가 진정성을 갖는 이유를 살펴보자.  불면의 상황은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또 지금 겪고 있을 법한 상황이다. 1연과 3연의 2행의 시는 짧지만 강렬하다. 1연에서 잠이 안 온다는 사실을 말하였다면,  2연에서는 왜 잠이 안 오는지 그 이유를 말할 법하다. 그런데 이 시는 한 단계 진보하였다. 그 이유를 관념으로 하지 않고 여러 잠 안 오는 밤에 일어날 수 있는 행위로  대치하였다. 왜? 라는 질문에 대한 간결한 답이다. 군더더기가 필요없다. 1연과 3연의 상황과 이유를 2연에서 부연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설명적이지 않고 사실적이다.
  위의 시가 진정성을 갖는 이유는 사건의 이류를 사실과 사물적 접근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연과 3연은 참이며 사실이다.
  2연의 모든 행은 사실이다. 거짓이 없는 참이다. 
  위의 시는 독자와 평자, 시인을 모두 만족시키는 진정성이 있는 시다라는 명제에 적합한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고 있다. 
 
2. 사실적, 사물적 은유
  1연과 2연, 3연의 행에서 무리한 관념이 전혀 없다. 사실과 사물에 기본적 발상을 두고 있다. 이것은 현대시의 가장 중요한 표현기법 중 하나이다. 관념에 흐르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사물의 관점에서, 자신의 생각과 사념도 사물화하고 있다.  ‘뜨거운 햇볕- 늙은 호박- 파인애플데이지-툇마루-하늘-파리-휴대전화-이불-새벽-붉은 해- 별과 달’ 등 온갖 사물을 나열하고 있지만 산만하지 않다. 그 이유는 사념과 정서적 방황을 사물에 대치시켰기 때문이다. 초보 시창작 과정에서 범하기 쉬운 관념에서 탈피하는 방법은 사물에 집중하는 것이다.
 
3. 나열형 어미의 효과
   2행을  주목하여 보자. 나열형 어미를 왕성하게 활용하고 있다. 나열형 어미는 설명적 시와 다르다. 위의 시에서 2연의 나열형 어미  ‘-다가’ 가 범람하고 있지만 지루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자.  
  그 이유는 2연은 사건과 사물, 사실만을 나열하고 있다. 의식의 나열, 생각의 나열을 하지 않고 있다.  시적 기교에서 관념을 뺐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여야 한다.  관념과 사념에 빠지면 시인 본인의 감정에 치우친  감정시, 토로시가 되기 쉽다. 그러나 위의 시는 사물과 사건, 행위를 나열하여 그 우를 범하지 않았다. 무기교의 기교의 좋은 표현기법이다. 시인이여, 사물에 집중하라.
 
4. 짧고 간결한 행과 연
  위의 시는 짧고 간결하다.  손바닥 그림처럼 한눈에 쏙 들어온다.  시는 문자로 그린 그림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1연 2연은 단 두 줄이다. 
  3연의 각 행들의 길이도 짧다. 또한 2연의 각 행들은 그 길이가 각각 다르다. 각 행마다 들어가기, 나가기, 들쭉날쭉하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시각적 미의식도 시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한 행이 너무 길면 시인의 의도와 달리 책이 출판되었을 때, 한 행만 다른 줄로 넘어간다. 특히 한 칸 들어가고 시작하는 경우기 때문에 미완의 그림처럼 불균형이 되기 쉽다. 
  짧고 간결한 행과 연은 독자에게 시원함을 준다. 질리지 않고 쉽게 시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다. 말이 통한다면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이는 것이 좋다. 명사에 붙는 조사도 뗄 수 있으면 떼면 좋다. 각 행과 연도 줄일 수 있는 대로 더 줄이면 시가 더 단단해진다.
 
5. 심심함과 나른함과  게으름의 미학
  시는 바쁘고 조급하게 쓰면 좋은 작품이 탄생하기 어렵다.  일제 통치시대  한국의 초창기 현대시를 쓰던 서정시인들은 룸펜생활을 하였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야 무념무상으로 사물을 관찰하고 사유에 잠겨야 개성적인 좋은 시를 쓴다.  조급하게 급생산하면, 발표된 후 고치고 싶은 부분이 많다.  문학 중에서도 특히 시는 심심하고 나른하고 게으르게 여유를 갖고 살아야 한다. 한 사물과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심하게 느긋하게 한 사물을 계속 직시하면 직관적 사유를 얻게 된다. 
  위의 시도 1연과 3연에서 밤을 꼴딱 새웠음을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하릴없이 이일 저일, 이것 저것 만지작 거리고 참견하지만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위의 시에서 1연과 3연은 시인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2연은 시인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2연은 한없이 더 길어질 수 있다. 그 부분은 독자의 상상력의 몫이다. 또 더 짧아질 수도 있다. 그것은 시인의 역량의 문제다. 
  
6. 행간과 여백의 확장성
  행간과 여백은 상상력의 폭을 넓게 하여 시를 확장시켜 준다. 시에서 확장성은 사유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위의 시는 각 연들의 배치가 시적 완성미를 더해주고 있는 부분적 한 이유다. 
 
 
7. 반복과 강조, 도치
  반복법은 시의 대표적인 강조법  중 하나이다. 서정시인 김소월의 시에서 많이 보여주고 있는 기법이다. 위의 시에서는 1연과 3연의 반복이 시의 미의식을 더해 주고 있다.  1연 1-2행 ‘홀로 밤을 지킨다/ 별과 달이 잠든 탓에’ 와 3연 1-2행 ‘별과 달이 잠든 탓에/ 홀로 밤에게 손을 흔들었다’ 부분을 주목하여 보자. 애잔한 외로움과 번민을 강조한다. 또한 1연과 3연에서 1행과 2행을 도치하여 마무리하고 있다. 반복이 주는 지루함을 도치를 함으로써 시적 매력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8. 긍정적 에너지
  위의 시는 긍정의 힘이 있다. 2연 ‘동쪽 산이 붉은 해 하나 토해낸다/  
별과 달을 닮은 해가 방실거린다’를 주목하여 보자. 번민과 불면의 날밤을 새우고 또 희망의 아침을 기대한다.   
 
 
위의 시는 읽을 수록 윤이 난다.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시와 차별화된다.  
진정성이 주는 힘이다. 
좋은 시는 독자가 읽고 읽고 외우고 싶어진다.
그러나 더 좋은 시는 시를 창작한 시인 자신과 독자, 평론가가 모두 힐링된다. 오랜 만에 시창작 강의 자료가 될 좋은 시를 발견하여 필자도 힐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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