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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27>/심 상 운
2019년 07월 26일 18시 36분  조회:1295  추천:0  작성자: 강려
월간 <시문학> 2007 8월호 발표  <이수익/이재무/이은봉 시인의 시>   
 
         이수익 시인의 시- 「겨울 판화版畵」「배후는 따뜻하다」
 
              겨울 나루터에 빈 배 한 척이 꼼짝없이 묶여 있다.
              아니다! 빈 배 한 척이 겨울 나루터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홀로 남기를 두려워하며
              함께 묶이는 열망으로, 더욱 가까워지려는
              몸부림으로, 몸부림 끝에 흘리는 피와
             오오 눈물겹게 찍어내는
             겨울 판화版畵
                ---------「겨울 판화版畵」전문
 
           길옆
           자전거보관소에
           몸이 뜯긴, 오래 된, 주거불명의
           자전거 몇, 버려져 있다.
           안장이 사라지고
           체인이 풀린
           타이어가 땅바닥까지 함몰된 자전거들이
           구겨진 풍경의 액자를 만들며
           어둠 속을 비스듬히 누워 있다.
           오랜 무관심에 길들여진 편안함이
           어느덧 그 심연에
           맞닿아
           나태와 궁핍이 제법 반질반질하다.
           이제는 더 이상 뜯길 것이 없으므로
           자유가 너희들을
           화평케 하리라!
           날마다 이맘때쯤 찾아오는 그늘이
           친구처럼 유정하게 툭, 툭,
           바큇살을 건드리는 오후
           자전거들은
           왕년에 달리던 기세를 되살려
           저렇게 뻗어나간 아스팔트길을
           씽씽 내질러보고 싶은 푸른 욕망에 진저리치며
           한 번 씩은 꿈틀,
           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배후는 따뜻하다」전문
 
 인간 존재의 의미는 인간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성립된다. 이는 개인의 원자적 가치에 기반을 둔 서구의 개인주의와는 다른 동양의 유교적儒敎的인 관점이라고 하지만 개인은 분리 불가능한 사회적 원자라는 점에서 타당성을 갖는다. 특히 도시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일만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어느 하나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관되어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공동체는 마치 하나의 인체 조직과 같아서 그 관계의 밀접성과 인과성은 무섭도록 치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상호적인 관계에서 벗어나면 아무런 존재성을 갖지 못한다.
 이수익 시인의 시 「겨울 판화版畵」에서는 인간의 이런 상호관계와 부분/전체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겨울 나루터에 묶여 있는 배를 보고 그는(시적 화자) 나루터가 배를 묶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배가 나루터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배와 나루터의 상호관계는 인과관계가 되고 유의미한 관계가 된다. 그는 그 원인을 <서로가 홀로 남기를 두려워하며/함께 묶이는 열망으로, 더욱 가까워지려는/몸부림으로, 몸부림 끝에 흘리는 피>라고 독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러한 정경을 칼로 파서 새긴 ‘판화版畵’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그런 삶의 원초적인 관계가 인간의 숙명적인 모습이라고 인식한 까닭인 것 같다.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고독이고 외로움이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엔가 자신을 묶으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명예와 돈에, 또 어떤 사람은 정신적인 무형의 세계에 자신을 묶으려고 한다. 이성간의 사랑도 묶고 묶여짐에 의해서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창발적인 생성의 원리다. 「겨울 판화版畵」는 그런 본질적인 관계의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이에 비해「배후는 따뜻하다」에는 환원의 원리가 들어 있다. 시인은 어느 날 자전거 보관소에서 기능을 잃고 분해된 버려진 자전거를 발견하고 깊은 사유 속으로 들어가서, <오랜 무관심에 길들여진 편안함이/어느덧 그 심연에/맞닿아/나태와 궁핍이 제법 반질반질하다.//이제는 더 이상 뜯길 것이 없으므로/자유가 너희들을/화평케 하리라!>라고 그 자전거의 존재의 자유와 만난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 대한 기억과 집착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자전거들은/왕년에 달리던 기세를 되살려/저렇게 뻗어나간 아스팔트길을/씽씽 내질러보고 싶은 푸른 욕망에 진저리치며/한 번 씩은 꿈틀,/해보기도 하는 것이다.>라고 끝을 맺고 있다.
 기능을 상실하고 순수한 물질의 세계, 원자의 세계로 환원되는 낡은 자전거에 대한 시인의 명상은 인간의 삶에 대한 명상과 다르지 않다. 탄생→ 성장 → 소멸의 반복되고 회전하는 사이클 속에서 우리들의 삶도 벗어 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쓸모를 잃음으로서 얻어지는 새로운 세계의 열림이다. 관계의 묶임으로부터 벗어나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존재의 해방이다. 그래서 그것은 일상적인, 합리적인 관념에서 해방시켜버린 특수한 객체를 의미하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오브제에 대한 해석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러나 끝내버리지 못하는 ‘푸른 욕망’은 이 시에서 향기를 풍기고 있다. 그 ‘푸른 욕망’은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생명체의 소중한 꿈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수익 시인의 시「겨울 판화版畵」와「배후는 따뜻하다」를 읽으면서 그의 사유가 존재의 본질적인 것에 닿아 있으며 완벽하게 시적형상화의 옷을 입고 있음을 확인하며 시를 읽는 즐거움을 혼자 맘껏 누려 본다.
 
*이수익(李秀翼): 196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함. 시집: <우울한 샹송> <야간열차> <아득한 봄> <추억의 빵> <눈부신 마음으로 사랑했네> 등
 
        이재무 시인의 시- 「트럭」「감나무」
 
             심야의 고속도로
             트럭 행렬을 바라본 적이 있다
             그 거친 사내들은 단내 나는 더운 숨
             연신 토해 내며 살 맞은 짐승처럼 고함
             질러대고 있었다 딱딱한 밤공기가
             과자부스러기가 되어 부서졌다
             하늘에 핀 별꽃들이 경기 들린 아이처럼
             놀라 자지러지고 있었다
             무법천지가 따로 없었다
             우락부락한 다혈질의, 각진 얼굴의 사내들은
             힘이 세다 그들이 실어 나르지 못할
             물건은 없다 조폭의 무리 같기도 한 그들이
             지날 때 함부로 그들을 나무라지는 말자
             그저 절로 벌어진 입 당분간 닫지 말고
             사고 없이 어서 이 위기의 시간이
             지나가길 소원하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바지런을 떨어도 생의 저속을 사는
             그들은 언제든지 분노로 폭발할 수 있는
             슬픔 몇 됫박씩은 가슴에 지니고 산다 밤의
             질주에는 그런 그들만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트럭」전문
 
            감나무 저도 소식이 궁금한 것이다
            그러기에 사립 쪽으로는 가지도 더 뻗고
            가을이면 그렁그렁 매달아 놓은
            붉은 눈물
            바람결에 슬쩍 흔들려도 보는 것이다
            저를 이곳에 뿌리박게 해 놓고
            주인은 삼십 년을 살다가
            도망기차를 탄 것이
            그새 십오 년인데......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
            그러기에 봄이면 새순도
            담장 너머 쪽으로부터 내밀어 틔워보는 것이다
                                    --------「감나무」전문
 
 시인의 형이상학적인 관심과 시선은 세상을 조감鳥瞰하게 하지만, 독자의 가슴을 움직이는 것은 살 비비며 사는 같은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며 시선이다. 그것은 시가 왜 정서적이어야 하는가의 해답이 된다. 시의 정서는 시의 사물성과 다르다. 사물성은 보고 듣고 감촉할 수 있는 유형적有形的 감각인데 비해 그리움, 두려움, 사랑, 미움 등의 정서는 무형無形이고 주관적인 것이다. 이 ‘무형의 감성적 정서’는 강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건조한 견고성(dry hardness)을 내세우는 현대시에서도 정서의 기능은 무시될 수가 없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 내세우고 있는 카타르시스의 기능도 시의 정서적인 힘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이재무 시인의 시「트럭」은 사실적인 표현이 주는 현장성과 긴장감이 강한 흡인력을 발휘하고, 시의 정서가 폭발일보 직전의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먹이사슬의 밑바닥에 있는 트럭 운전기사들의 터질 듯한 분노의 숨소리가 그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심야의 고속도로/트럭 행렬을 바라본 적이 있다/그 거친 사내들은 단내 나는 더운 숨/연신 토해 내며 살 맞은 짐승처럼 고함/질러대고 있었다 딱딱한 밤공기가/과자부스러기가 되어 부서졌다>라고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우락부락한 다혈질의, 각진 얼굴의 사내들은/힘이 세다 그들이 실어 나르지 못할/물건은 없다 조폭의 무리 같기도 한 그들이/지날 때 함부로 그들을 나무라지는 말자>라고 그들의 거친 행동을 연민의 시선으로 보면서 이해하고 있다. 시인은 그들의 위험한 질주의 원인을 <아무리 바지런을 떨어도 생의 저속을 사는/그들은 언제든지 분노로 폭발할 수 있는/슬픔 몇 됫박씩은 가슴에 지니고 산다>라는 구절 속에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사회계층간의 갈등을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긴장감이 조성하는 분위기는 “..... 온 나라의 화물 취급자/떠들썩하고 꺼칠한 목소리에 왁자지껄한/어깨가 떡벌어진 건장한 도시”라고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신흥도시 시카고를 노래한 미국시인 칼 샌드버그(Carl Sandburg)의 시「시카고(Chicago)」연상시킨다. 따라서 그의 시「트럭」은 관념과 주관적 환상, 언어유희 등으로 점점 작아지고 힘을 잃어가는 한국현대시의 언어에 건강한 야성의 힘(이미지)을 드러내는 존재성을 갖는다. 그의 저소득층에 대한 연민의식은 계급의식을 조성하고 선동하는 사회주의적 경향의 시와는 다르다. 그는 시의 정서적 기능을 바탕으로 대상을 인식하고 있을 뿐 자신의 관념을 전혀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
「감나무」도 그런 그의 시적 감수성을 드러내고 있다. 주인이 없는 어느 집의 감나무가 이 시의 대상이다. 감나무 주인이 무슨 일로 도망기차를 탔는지 그 구체적인 사연은 시 속에 없다. 독자들은 그 사연을 시대적 상황과 연계하여 유추하고 상상해 볼 뿐이다. 그 감나무는 사립문 쪽으로 가지를 더 뻗는다. 그 까닭을 시인은 감나무가 주인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심리적 현상이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 그 심리적 현상의 시적표현을 단순한 감정이입感情移入의 기법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물리적인 세계 속에서 영적인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는 생각은, 물리적인 세계가 아무런 목적 없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는 우리의 전통적인 편견을 반영한 것이다.”라는 승계호 교수 글 「마음과 물질의 신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감나무의 마음과 행위’는 시인의 직관적直觀的 시선에 의해 인식되는 세계다. 그래서 <감나무 저도 안부가 그리운 것이다>라는 구절은 자연스럽게 공감의 영역을 확보하게 된다. 나는 이재무 시인의 <트럭>이 풍기는 현장성과 긴장감 그리고 생동하는 언어들이 주는 감각에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감나무와 시인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장면에서 그것이 단순한 시적 기법이 되기 이전에 거기에도 깊은 철학적 사유의 세계가 잠재하고 있음을 생각해보았다.
 
* 이재무(李載武):1983년 <삶의 문학>에 등단. 시집: <섣달그믐> <벌초> <몸에 피는 꽃> <위대한 식 사> <푸른 고집> 등
 
          이은봉 시인의 시- 「늙은 바람과 함께」「폐타이어」
 
                하루의 일 마치고 14층짜리 공중무덤 납골당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길가 생맥주집 앞
               푸른 평상이 벌떡 일어나 반갑다고
               손 마주잡고 흔들어댄다 오늘 하루
               저도 많이 외로웠나 보다
               엉덩이를 내밀며 좀 깔고 앉아 쉬었다 가라고 보챈다
               생맥주집 안 늙은 바람도 달려 나와
               가슴 끌어안고 등허리 토닥여준다
               공중무덤 텅 빈 납골당으로 돌아가 보았자
               누가 날 기다려주겠는가
               푸른 평상이며 늙은 바람도 잘 알고 있어
               지금 손 마주 잡고 흔들어대는 거다
               푸른 평상의 엉덩이를 깔고 앉아
               늙은 바람과 주고받는 맥주 맛이 쓰다
               안주로 씹고 있는 멸치 대가리 맛도 쓰다
               더는 해찰하면 안 되지 이젠 집으로 돌아가야지
               이 마음 너무 잘 알고 있는 길가의 황매화가
              귀볼 가까이 다가와 혀 끌끌 차댄다
              돌아가지 않으면 14층짜리 공중무덤 텅 빈 납골당
               저도 그만 외로우리라.
                                         --------------「늙은 바람과 함께」전문
 
             버려진 폐타이어는 검다
             검게 저무는 지장보살이다
             반쯤 땅속에 묻힌 채
             세상의 질병 온몸으로 앓고 있는
             지장보살은 둥글다
             둥근 마음으로 사방 그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만든
             피고름을 삭히고 있다
             지장보살이 아프니
             땅도 아프다 검게
             저무는 것은 다 아프다
             아픈 몸으로도 그는
             거름 만들고 있다 사루비아 몇 송이
             빨갛게 꽃피울 꿈꾸고 있다.
                                      -------「폐타이어」전문
 
 ‘낯설게 하기’는 현대시만이 아닌 모든 예술의 중요한 기교다. 평범하고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결코 사람들의 눈을 끌어 모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세기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절규>는 그런 면에서 인기가 높은 그림이다.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다리 위에서 양손을 들어 귀를 감싸고 있는 인물의 해골 같은 얼굴과 흐느적거리는 것 같은 자세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사람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 인물은 황혼의 다리 위에서 무슨 외침을 듣고 있는 것일까? 관람객들에게 공포의 분위기와 함께 의문에 잠기게 한다. 이 그림을 그린 뭉크의 일기에는 “나는 두 명의 친구와 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일몰을 보고 있었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니깐 이 그림은 상상화가 아니고 자신의 실제체험을 그린 그림이다. 그것을 그는 개성적인 직관의 이미지로 낯설게 그린 것이다.
 이은봉 시인의「늙은 바람과 함께」도 이와 비슷하다. <하루의 일 마치고 14층짜리 공중무덤 납골당으로/돌아가는 길이다 길가 생맥주집 앞/푸른 평상이 벌떡 일어나 반갑다고/손 마주잡고 흔들어댄다 오늘 하루/저도 많이 외로웠나 보다/엉덩이를 내밀며 좀 깔고 앉아 쉬었다 가라고 보챈다/생맥주집 안 늙은 바람도 달려 나와/가슴 끌어안고 등허리 토닥여준다/공중무덤 텅 빈 납골당으로 돌아가 보았자/누가 날 기다려주겠는가> 그는 자기가 기거하는 아파트를 ‘14층짜리 공중무덤 납골당’이라고 하면서 생맥주집 사람들과 행인들을 ‘푸른 평상’ ‘늙은 바람’ ‘길가의 황매화’이라고 동화적인 발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의 시선을 끌게 되고 시인의 정서 속으로 독자들을 유인한다. 만약 “하루의 일을 마치고 14층 아파트로 가는 길이 너무 외로워서 생맥주 집에서 아가씨들과 맥주를 마시고 노닥이다가 14층 아파트로 돌아왔다.“라고 사실적으로 기술했다면 시의 세계와는 아주 멀리 떨어진 극히 평범한 산문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동화적인 상상과 그로테스크한 언어표현은 시인의 의도적인 ‘낯설게 하기’의 한 기법으로서 시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런 기법과 함께 주목되는 것은 시 전체를 관통하는 외로움이라는 정서다. 외로움은 살아 있는 것들이 살 비비며 사는 마음의 근원이다. 그러나 그 외로움은 살아 있는 것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이 시의 독특하고 깊은 감성이며 사유다. <돌아가지 않으면 14층짜리 공중무덤 텅 빈 납골당/저도 그만 외로우리라.>는 구절 속에 들어 있는 그의 열린 감성이 그것이다.
「폐타이어」는 자신의 개인적 정서 세계에서 벗어나서 객관적으로 이 세상의 넓은 정서와 연결되는 시다. 이 시에서 폐타이어는 세상의 아픔, 피고름을 안고 앓고 있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상징하는 소재로서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폐타이어는 ‘버려진 존재’라는 것. ‘검다’는 것. ‘둥글다는 것’ ‘땅과 관련 된다는 것’ 등이 지장보살상과 부합되는 이미지다. 그래서 반쯤 땅 속에 박혀 있는 검은 폐타이어를 보고 땅과 함께 앓고 있는 지장보살이라고 감지한 시인의 감성과 사유가 타당성을 갖는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중생들을 구원하는 보살이다. 그는 한 손에는 지옥의 문이 열리도록 하는 힘을 지닌 석장錫杖을, 다른 한 손에는 어둠을 밝히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다. 그는 중생들의 영혼이 구제되어 그들이 모두 열반에 들지 않으면 자신도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서원한다. 그래서 <반쯤 땅속에 묻힌 채/세상의 질병 온몸으로 앓고 있는/지장보살은 둥글다//둥근 마음으로 사방 그는/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만든/피고름을 삭히고 있다>라는 구절이 불교적인 관념의 형상화라는 카테고리에만 머물지 않는 열린 세계로 향하게 된다. 도시화로 인해서 파괴되고 공해에 시달리는 자연환경을 거대한 유기체라고 볼 때, 이 시는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나쁜 꿈에 시달리는 자 등의 구원자로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벌을 받게 된 모든 사자死者의 영혼을 구원하는 서원과 함께 땅의 병을 치유하는 존재로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아픈 몸으로도 그는/거름 만들고 있다 사루비아 몇 송이/빨갛게 꽃피울 꿈꾸고 있다.> 라는 구절은 ‘땅의 모태’인 지장보살의 실제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시적 상상으로서 신선한 감각과 의미를 던지고 있다.
 
* 이은봉(李殷鳳): 1984년 <창작과 비평>에 등단. 시집: <좋은 세상> <봄 여름 가을 겨울>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 <내 몸에 달이 살고 있다> <길은 당나귀를 타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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