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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이 시집 해설
2019년 12월 14일 13시 39분  조회:1237  추천:0  작성자: 강려
강소이 시집 해설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의식과 가상공간이 융합된 이미지의 세계

                                                    심 상 운(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글
21세기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것은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로봇, 무인자동차, 5g 스마트폰 등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현실과의 새로운 마주침이다. 여기서 마주침이라는 것은 사유를 유발시키는 특별한 경험을 의미한다. 강소이 시인의 세 번 째 시집 <새를 낳는 사람들>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가까운 미래에 구현될 4차 산업혁명의 놀라운 현실을 떠올리는 것은 그의 시편들이 일반적인 서정성에서 탈피하여 펼치는 가상공간의 이미지가 현실과의 관계에서 치열하고 경이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시편을 읽는 독자들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현실 문제를 반영하고 비판하며 문제의식을 제기함이 시인의 사명이기도 하다"는 은사님의 가르침이 내 뇌리에 늘 명징하게 박혀 있어서 물질문명 시대에 생명존중과 초월의식, 죽음, 전쟁에 유린된 생명, 현실 세상의 세태와 비판을 형상화했다. 또한 해녀, 광부, 임란 때 도공들의 애환,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민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역사의 현장을 탐색하는 여행자가 되어 과거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현실의 문제에서는 무엇보다도 생명존중을 내세우며 적극 대응을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는 그런 자신의 시작행위를 ”여행지에서는 풍경과 사유와 그곳에 얽힌 이야기들이 오버랩(over lap)되기 때문에 여행지를 하이퍼시로 쓰는 건 재미있는 정신적 기쁨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주제의식을 시로 형상화하기 위해서 ”은유, 직유, 이미지, 관념의 사물화, 아이러니(Irony), 패러독스(Paradox), 공감각적 심상, 객관적 상관물, 이미지의 폭력적 결합, 낯설게 하기 등의 표현 기교들“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것은 강소이 시인이 자신의 시에 대한 확고한 의식과 기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가 여행지에서의 견문과 사유를 하이퍼시로 엮어내는 데서 정신적인 기쁨을 느낀 다는 것은 관념적인 의미의 세계에서 탈출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이퍼시에 대한 그의 몰입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하게 한다. 이 시집의 시편들의 주류가 하이퍼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소이 시인의 개성이 창출한 현대적인 감수성과 21세기의 시인정신이 형상화한 신선한 시의 공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해설의 관점을 ‘현실에 대한 치열한 의식과 가상공간이 융합된 이미지의 세계’라는 데 두고 시편들의 면면을 나름대로 조명해 보고자 한다.
2 시편 들여다보기
가. 현대문명에 대응하는 생명의식의 시편들
십여년 전 중앙일보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인터뷰기사를 보고 스크랩을 하였다. SBS 자연다큐 전문 PD 윤동혁씨가 한 말이다. 생명의 소중함을 추적하면 좋은 프로가 저절로 나온다면서, “결국 모든 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로 모아져요.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만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가가 핵심이죠. 관심을 기울이고 집요하게 추적하면 좋은 프로가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은 현대시에도 해당됨은 물론이다.
이 시집의 첫 시「6차선 도로」는 그런 면에서 독자들에게 충격과 함께 높은 정신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시로 읽힌다. 러쉬아워(rush hour)의 6차선 도로에서 차바퀴에 깔려서 검붉은 내장을 토하고 쥐포처럼 뭉개져버린 고양이를 보는 시인의 시선이 예사롭지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은 카메라 기자 같이 그 끔찍한 현장의 장면을 생생하게 찍어서 보여주며 보도(reporting)하고 있다. 그리고 차바퀴에 깔려 죽은 고양이를 ‘ 거대한 한 마리 하늘님’으로 드러내고 있다. 현대시에서 ‘보여주기(showing)’는 과학적인 관찰을 통해서 사물성의 세계에 접근하여 시를 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추상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서 구체적인 장면을 보여주는 표현의 중심에는 대상을 실제의 상태로 인식하고자 하는 사실주의의 객관적 시각과 디지털적 감성(영상성, 현재성, 정밀성)이 들어있다.
휴머니즘(humanism)을 내세우는 현대인들은 인간이외의 생명체에 대해서 차별의식을 가지고 생명체의 동일성을 인정하지 않는데, 시인은 이 시에서 사실적인 현장의 감각과 함께 오히려 죽은 고양이를 ‘거대한 한 마리 하늘님’으로 표출하여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드러냄으로써 독자들에게 깨우침의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출근길이면 산탄散彈처럼/쏟아져 나오는 6차선 도로/검은 등 흰 배 고양이가/도로에 검붉은 내장을 토했다/단말마斷末魔 /아직 놓지 못한 발끝 파르르 떨린다//퇴근길 달리는 6차선 도로/진회색 비둘기 몸통 으깨져/쥐포처럼 빨간 피로 뭉개져있다//먹이를 찾아 도로에 나섰을까/떠나간 짝을 찾아 잠시/6차선 도로에 날아 앉았을까//문명의 톱날 바퀴 밑에/깔린/거대한 한 마리 하늘님//-「6차선 도로」전문
「高苑을 가르는 경적소리」에서도 문명을 상징하는 화물트럭의 바퀴에 깔린 생명체(검붉은 창자)를 시인의 눈은 카메라의 렌즈가 되어 생생하게 찍어서 보여주고 있다. 티베트 고원은 현대인들이 마지막까지 지켜야할 정신적(종교, 철학) 시원(始原)의 고향이다. 그러나 문명의 바퀴는 그 시원의 공간마저 침범해 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 현장을 시인은 살아있는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다.
검붉은 창자 도로 위에 터져있다/아직 놓지 못한 숨결/파르르 떠는 발/질주하는 헤드라이트 바닥/찢긴 너의 너덜거리는 살/시뻘건 프린트 자국/밟고 간 바퀴도 미안해하지 않았다/울리지 않은 요란한 경적소리//20톤 화물트럭에 깔린 햇살 한 조각에서/파드득 /두레박 길어 날아올랐다//( 티베트 고원 꼭대기 찰진 바람을 가르는 경적소리 ...... ) //-「高苑을 가르는 경적소리」전문
「별 무리 지는 강물」에서는 젊은 여인들의 낙태에 대해 시인이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있다. 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자궁 속에서 태아(胎兒)로 생을 마감하는 인간 생명체에 대한 시인의 연민과 문제의식은 생명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경시하는 현대인들의 문명(의술)과 연결되어 있다. 시인은 그것을 “신의 자리가 여자의 자궁에서 메스로 도려졌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하여 독자들의 가슴에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십자 틀에 묶인 창백한 여자의 손과 발. 신의 자리가 여자의 자궁에서 메스로 도려졌다.
잉태를 꿈꾼 적 없는 밤의 동굴을 지나 자목련 벽에 콩나물 대가리가 위란강을 건너 딸깍 앉았던 곳. 그 문은 철문보다 단단해서 한 달에 한번만 문을 연다는데, 손발 묶인 그녀의 문으로 쏟아져 내렸던 스륵스륵 기계소리 덩이 피. 그런 날이면 하늘의 신들은 눈을 감았다. 뒷골목 허름한 이층집에서 그렇게 별들은 하나씩 떨어졌다. 감나무 가려진 감잎 쓰린 맛을 탓하지 마라. 태씨 아주머니는 감잎으로 별을 하나씩 감싸서 마을버스에 태워 보냈다. 별 무리 지는 강물 위로//--「별 무리 지는 강물」전문 *위란강 : 수정막과 난표면과의 사이
이 외에도 동백꽃의 모가지가 떨어져 내리는 안타까움을 하이퍼시의 구성으로 드러낸「찰라-여수에서」, 해안에서 자살한 시신들이 새벽마다 떠온다는 인천 무의도 명사길의 시신들에게 “무에 그리 서러워 무의도까지 버린 발로 떠왔느냐고 이제는 편히 가라”고. 위무의 마음을 전하는「무의도, 감은 눈에게」등이 생명존중의 시편들로 인상에 남는다.
나. 현실과 상상이 융합된 하이퍼시의 시편들
 
21세기에 한국현대시의 현장에서 태어난 하이퍼시는 서로 다른 이미지의 단편을 결합하여 하나의 큰 이미지를 구성하는 영화의 몽타주(montage) 기법을 바탕으로 기승전결로 연결되는 기존시(旣存詩)의 아날로그(analog)적인 구성의 시와 대조되는 이미지의 망(網)을 형성하는 디지털(digital)적인 새로운 시형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것은 기존의 단선구조(單線構造)의 시형식을 해체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래서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과 결합을 기본으로 하는 다선구조(多線構造)의 하이퍼시는 기존시들의 설득적 구조에서 벗어나서 ‘이미지의 보여주기(showing)’를 통해서 독자와 소통하고자 한다. 따라서 하이퍼시의 시론은 현대철학에서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주의와 질 들뤼즈(Gilles, Deleuze)의 리좀(Rhizome) 이론을 바탕에 깔고 있는 현대적인 시론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하이퍼시는 21세기 최첨단의 사유와 철학이 만들어낸 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집의 제목이 된「새를 낳는 사람들」에서도 시의 구성에서 서술형식의 기존 시와는 다른 이미지들의 결합이 빚어내는 입체적인 시의 공간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환상과 현실이 교직(交織)된 심리적 현실의 보여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에서 “그녀는 천상에서/물고기 비늘 반짝이는 시간을/한 국자 떠서/끝나버린 영화 스크린을 클릭하고 싶었을지도 몰라”로 시작되는 #1은 심리적인 내면의 환상의 세계로, “기억의 방에 26 년 숨겨둔 여인을 태우고/코스모스 길을 달리는 50대 사내”가 등장하는 #2는 현실의 의식세계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1의 “경주박물관 유리 상자 안에 찰랑이는 금관/자궁 안에 태胎모양, 옥빛 관옥/유리 기억들”은 “가시 구슬을 두고 간 그녀/한 톨의 마음”이 안고 있는 이승의 삶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을 사물 이미지로 표출한 시적 몽타주로 이해된다. 그리고 “버림받았던 기억의 뼈들이/들꽃으로 하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는 구절에서 50대의 사내와 천상의 그녀가 이승에서 풀지 못한 심리적 갈등의 앙금이 이 시의 내적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그것은 시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갈등이 서사구조의 시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를 이렇게 이해할 때, 이 시와 기존의 서술형식의 시가 얼마나 다른 차원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그것은 사물인터넷의 4차 산업혁명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를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1/그녀는 천상에서/물고기 비늘 반짝이는 시간을/한 국자 떠서/끝나버린 영화 스크린을 클릭하고 싶었을지도 몰라/가시 구슬을 두고 간 그녀/한 톨의 마음//경주박물관 유리 상자 안에 찰랑이는 금관/자궁 안에 태胎모양, 옥빛 관옥 /유리 기억들//영사기는 더 이상 돌지 않았다//#2/기억의 방에 26 년 숨겨둔 여인을 태우고/코스모스 길을 달리는 50대 사내/돌아온 꽃잎이/“아앙 아아앙......”/십 수 년 전 무지갯빛 사진 스크린을/애교 띤 콧소리로 더듬어도/버림받았던 기억의 뼈들이/들꽃으로 하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푸른 달무리에 깨물렸던 한 톨 구슬/새를 낳는 사람들//--「새를 낳는 사람들」전문
「스마트폰의 하루」에서도 (F.I), (F.O) 등 영화의 기법을 넣어서 스마트 폰에서 순간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장면들이 이미지들의 연상과 결합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새로운 감각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정신적으로 경험하게 한다. 그래서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스마트 폰의 화면 속에서 들려오는 강아지소리, 새소리, 임진왜란 때의 조총소리, 금당벽화를 그려내던 담징의 손끝에 앉았던 나비 등으로 이어지는 불연속적인 단편(斷片)의 이미지들은 모사(模寫)된 가상의 이미지이지만 그 가상이 실재같이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는 원본 없는 이미지가 새로운 실재로 둔갑한다는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이론과 연결된다. 그는『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이미지는 실재의 반영→실재의 왜곡→이미지 자체로의 독립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 시에서 시의 주제가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 된다. 독자들은 시인이 우발적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터넷이 만들어내는 현대문명의 현상을 나름대로 즐기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F.I)//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까만 네모 화면에서/졸라대는 애인처럼/ㄷㄹㄷㄹㄷㄹ 강아지 소리/ㅋㅌㅋㅌㅋㅌ 날개 없는 새소리/임진왜란 때 거북선에 날아오던/ㅁㅁㅁㅋㅋㅋ/ㅋㅌㅋㅌㅋㅌ/내 귓바퀴에 쏘아대는 조총소리/ㅅㅅㅅㅅㅅ허공에 날개 짓을 한다//(O.L)//금당벽화를 그려내던 담징의 마지막 손 끝에/앉았던 나비의 날개마저 포르르 떨린다/책장 넘기는 소리에 너 울리는 줄 몰랐으니/하얀 꽃잎 하나 떨어진다//고구려 벽화에서 살며시 날아 나온 나비 한 마리/내 손바닥 까만 네모 상자 안으로/화살처럼 들어와 박힌다//(F.O)//송골송골 담징의 이마에 맺혔던 까만 밤/화룡정점의 순간에도/눈을 껌벅이는 불면의 아우성//--「스마트폰의 하루」전문
「이즈하라항의 달빛」은 기행시로서 하이퍼적인 구성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주제의식을 내포하고 있다. 덕혜옹주, 최익현 등 대마도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이 시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에는 그런 역사의식과 함께 쓰시마 사내와 연관되는 성적인 이미지가 들어 있다. 그래서 그 두 개의 이미지가 하이퍼적인 구조 속에서 시의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그것이 기행시로서 시의 맛을 풍기고 독자와 소통하는 시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즈하라항에 보슬비 내린다/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밤이면/성큼성큼 박수소리처럼/노를 저어오던 쓰시마 사내들//이즈하라항에 검은 가오리날개 매 한 마리/날아간다/바다를 유리창 가득 담은/회전초밥집에서 뜨거운 대마도 한잔을 붓는다//덕혜옹주도 낙선재로 돌아가고/최익현도 잠든 밤/검은 파도 소리에/목이 아프도록 시린/ 대마도 하루 빌린 내방엔 밤새/불을 끄지 못했다//수밀도 무성한 숲에/창호지를 찢고 쳐들어오는 쓰시마 팔뚝 달빛/찔레꽃 하얀 내 가랑이도 아팠다// ---「이즈하라항의 달빛」전문
* 이즈하라항: 일본 대마도 남단에 있는 항구 이름
「하얀 지평 너머」는 세 가지의 형태로 응집되어 있는 죽음의 정서가 서사적 모듈(module)을 형성하면서 울림을 준다. 중동건설 현장에서 죽은 아들의 배냇저고리를 가슴에 품고 우는 늙은 어머니, 중동의 어느 도시에서 일어난 폭탄테러로 울부짖는 히잡 여인들의 실성한 모습, 어느 장례식장의 시계소리에서 시신들에게 보내는 시인의 시선이 그것이다. 끝 부분의 “하얀 나비들이 포르르 폴 포르르 상화고택을 나선 6월 달구벌 팔공산 한낮.”이라는 이미지가 엉뚱한 듯하지만 '하얀 나비‘와 죽음을 연결하면 현실과 초월이라는 두 세계의 결합이 보인다.
1.옥양목 보자기에 싸인 배냇저고리, 하얀 기억을 꺼낸다/낡은 옷장 서랍에서 아기작거리듯 배냇저고리,/귀밑머리 하얀 그녀는 보자기 풀어 흰빛 먼지를 쓰다듬는다/중동으로 떠난 아들, 그녀는 흰옷 갈아입고 열린 서랍 배냇저고리 품고 울다 웃는다//2.6 ‧ 25 동란, 폭탄에 으깨진 건물더미, 철근덩이, 찢진 유리 파편들/길바닥에서 언덕배기 카키색 천막 아래/피 절은 천에 덮여 씌운 시신들./하얀 천 들춰보며 울부짖는 여자들 울음소리/“ 아이고, 이것이, 아이고, 우리 복덩이, 복뎅이는 여기에 없어야재 ”/실성한 어미들의 꺼억꺼억 오열, 시신이 널브러진 언덕빼기가/목화구름처럼 아침 화면을 가득 덮었다//3.장례식장 시계소리가 달랑거리는 동안 시신들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검버섯마저 하얗게 눈부신 순간을 나는 본다/알코올 솜으로 삭신을 닦아내는 손놀림이 바쁘다 /살아생전 소원까지 닦아내며 염殮하는걸까//하얀 나비들이 포르르 폴 포르르 상화고택을 나선 6월 달구벌 팔공산 한낮.//
------「하얀 지평 너머」전문
* 상화고택 : 대구시 계산동에 위치한 이상화 시인(1901~1943)의 옛집.
이 외에도 도쿄여행기-황거, 하비야공원, 도쿄역 등의 이미지를 하이퍼(hyper) 적의 구성으로 조합한「도쿄일기」, 신라여인들의 마음을 위로하던 전죽소리, 비닐이 묻힌 땅에서도 죽음을 뚫고 나오는 파릇파릇한 생명의 소리, 월정사 길에서 듣는 산 속의 물소리 등 소리가 만들어 내는 의미를 세 가지의 감각적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는 「만파식적-소리가 만드는 세상」, 세월호의 비극적 상황을 하이퍼적 상상으로 엮은「바다에 촛불을 켜주세요」등 다수의 시편들이 현실과 상상이 융합된 하이퍼시로 기존의 시와는 다른 시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다, 서정과 서사가 조화를 이룬 시편들
노자(老子)는『도덕경(道德經)』에서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고 했다. 도가 도라는 관념에 잡혀있으면 있으면 순수한 도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말은 시에도 해당된다. 시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생명의식의 시편들과 현실과 상상이 융합된 하이퍼시들과 함께 서정과 서사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시편들이 주목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시에서 서정성은 기계속의 윤활유 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에 서사(敍事) 속의 서정성(抒情性)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돌담을 넘어 오는 달랑게」에는 조선왕조 시대에 영화로웠던 운현궁의 퇴락한 가을 정경이 한 폭의 풍경화로 그려져 있다. 시의 제목 ‘돌담을 넘어 오는 달랑게’라는 비유와 “운현궁 마당에/찰깍대는 외국인들의 셔터소리”의 서사가 시대적인 풍자성을 엿보게 하지만 “집주인은 햇빛 잘 드는 방에서/한 낮잠 잘 주무시고 계신걸까”라는 현실 초월의 서정적 여유로움이 이 시의 탄력성을 만들어내고 있어서 주목된다. 이것이 서사 속 서정의 역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겨진 갈햇살이 운현궁 툇마루를 쪼고 있다//가슴이 이랑처럼 패인 여자의 가슴팍에/쏟아지는 햇살은 갯벌 달랑게 걸음이다//해바라기가 졸다간 햇살바라기,/퇴락한 왕조의 으깨진 갈색 노을빛에/꾸벅이는 행랑채//운현궁 마당에/찰칵대는 외국인들의 셔터소리/막아도막아도 넘쳐나는 논두렁처럼//집주인은 햇빛 잘 드는 방에서 한 낮잠 잘 주무시고 계신걸까//주인 없는 툇마루에 걸린 놀/돌담을 넘어 오는 갈잎//-「돌담을 넘어 오는 달랑게」전문
「사북역」에서도 서사와 서정의 조화로움이 시의 맛과 멋을 느끼게 한다. 시인은 폐광을 보고 싶어 했지만 사북역에 내려 역사(驛舍)에 핀 들꽃만 가슴에 담는다. 그리고 “검은 가루 이야기에 묻은/노을 이야기”를 이미지로 보여주고 있다. 그 노을은 사자의 혀보다 붉은 노을이다. 그래서 그 들꽃과 붉은 노을에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 이글거리던 광부들의 분노와 희망의 마음이 들어있는 것으로 인식된다. 그것이 이 시에서 서사와 서정이 만들어 내는 시적 울림의 공간이 되고 있다.
사북역에 내려 막차가 올 때까지/기찻길 서너 시간, 역사驛舍에 들꽃들만 가슴에 담는다/폐광이라도 보고 싶다고 편지해 놓고//사자 혀보다 붉은 노을 기차에 가득 싣고/청량리역에 붉게 내려본 적 있는가//낮은 땅, /석탄가루 소주와 돼지고기로 씻어낸 검은 가루 이야기에 묻은/노을 이야기//-「사북역」전문
「유카리나무」에는 시인이 호주 시드니 파크의 유카리나무를 보고 느낀 시적 감성이 “Y字, Y에서 Y ....../Y에서 또 포크처럼 Y ....../Y자가 끝말잇기를 하며 뻗어있다”라는 개성적인 언어에 담겨 있다. 일종의 언어유희 같지만 “파란 하늘에 회백색 Y자마다 바람 스치자/술 취한 화가는 온통 연초록 물감을 쏟았다”고 술 취한 화가를 등장시켜 서정적 풍광을 연출하고 있으며, 나무의 푸른 정액과 여자를 연결하여 성적인 감각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호주 시드니 올림픽 파크/분홍 플라스틱 포크 하나/잔디에 비스듬히 꽂혀있다/백 미터, 키 재기하는 유카리나무들/회백색 수피樹皮는 무우의 맨살처럼/Y字, Y에서 Y ....../Y에서 또 포크처럼 Y ....../Y자가 끝말잇기를 하며 뻗어있다//파란 하늘에 회백색 Y자마다 바람 스치자/술 취한 화가는 온통 연초록 물감을 쏟았다//연두 빛 유카리나뭇잎 단추들 닥지닥지/나무 위에선 오물오물/검은 귀 흰 몸 코알라가 유카리나무의 푸른/정액을 씹고 있다/지나가던 여자가 분홍 포크로 나뭇잎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그녀의 입안에 푸른 물 고였다/칼로 잘라낸 돼지고지 한 조각/유카리나무 밑에 떨어져 있는/빛 밝은 한나절//-「유카리나무」전문
이외에도 이승과 저승이 한 매듭이라는 것을 드러낸 「통영점묘-매물도」, 감자탕 골목풍경을 사유의 언어와 결합한 「감자」, 화가 이중섭에 대한 연민과 사유가 담긴 「그의 草家」등 다수의 시편들이 주목되었다.
3. 나가는 글
이제까지 강소이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새를 낳는 사람들』에 실려 있는 66편의 시편들의 전체를 조감(鳥瞰)하면서 관심이 가는 시편들을 선택해서 가. 현대문명에 대응하는 생명의식의 시편들, 나. 현실과 상상이 융합된 하이퍼시의 시편들, 다. 서정과 서사가 조화를 이룬 시편들이라는 세 가지의 관점에서 감상의 시선으로 해설을 했다. 66편의 시편들 중에서 집중 조명된 시편들은 10편에 불과해서 더 좋은 시편들이 외면당한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의 마음이 든다. 그러나 선택된 시편들이 이 시집의 중심에 서 있는 시편들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앞에서 언급하였지만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21세기의 중심은 ‘빅 데이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로봇, 무인자동차, 5g 스마트폰’ 등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명의 구조가 지배하는 시대환경이다. 그래서 그런 시대의 환경에 대응하여 한국현대시의 현장에서 탄생된 ‘하이퍼시’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몰입을 보여주고 있는 강소이 시인의 시편들은 주목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중심의 문명(culture)이 만들어낸 가치판단 속에서 소외된 생명체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과 문제의식을 비롯하여 인간정신의 원적지 훼손에 대한 지적(指摘)이 담긴 시편들이 먼저 선정된 것은 그 시편들에는 시의 형식적인 면보다 더 중요한 ‘시의 영원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정과 서사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시적 감성의 탄력성과 함께 시의 맛과 멋을 내포하고 있는 일련의 시편들이 가슴에 다가오는 것은 현대시의 새로운 감각과 기법도 중요하지만 시의 근원은 서정성과 서사성의 조화로움에 있기 때문이다.
강소이 시인의 시편에서는 현대시의 이런 중심점이 빛을 내고 있다. 그것은 이 시집의 시편들이 시적 균형(均衡)을 아름답게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강소이 시인의 시에 대한 애정과 정진이 얼마나 치열하였나를 가늠하게 한다. 그래서 21세기에 등단한 시인으로서 현대시의 기반을 튼튼하게 다진 강소이 시인의 사유와 감각이 빚어낼 시편들의 새로운 변모와 발전이 기대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시집의 해설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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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20> / 심 상 운 2019-07-12 0 1098
44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9> / 심 상 운 2019-07-12 0 1149
43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8> / 심 상 운 2019-07-12 0 1022
42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7> /심 상 운 2019-07-12 0 997
41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6> / 심 상 운 2019-07-12 0 1017
40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5> /심 상 운 2019-07-12 0 1009
39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4> / 심 상 운 2019-07-12 0 930
38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3> /심 상 운 2019-07-12 0 958
37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2> /심상운 2019-07-12 0 890
36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1> / 심 상 운 2019-07-12 0 883
35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0> / 심 상 운 2019-07-12 0 848
34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9> / 심 상 운 2019-07-12 0 940
33 심상운 시모음 2019-06-30 0 958
32 하이퍼시론 묶음 / 심상운 2019-06-20 0 1170
31 [2017년 4월호] 나의 시쓰기: 자작 하이퍼시에 대한 해설 / 심상운 2019-06-17 0 874
30 하이퍼텍스트의 기법과 무한 상상의 세계 - 문덕수의 장시 『우체부』/ 심 상 운 2019-06-04 0 979
29 모더니즘의 한계를 넘어서는 디지털리즘의 詩 / 심상운(시인, 문학평론) 2019-03-17 0 1220
28 현대시의 이해 / 심상운 2019-03-02 0 990
27 시뮬라크르 (simulacra)와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 /심상운 2019-03-02 0 1087
26 아이러니(irony)의 효과/심상운 2019-03-02 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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