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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피귀자(기법/의인화)
2022년 05월 30일 17시 04분  조회:530  추천:0  작성자: 강려
곶감/피귀자(기법/의인화)

옷을 벗었다. 호흡이 불규칙하고 맥박이 빨라진다. 알몸위로 지난날이 출렁인다. 천둥과 장대비를 맨몸으로 견뎌낸, 유년의 기억들이 또렷이 남아있는 집과 이제 이별이다. 내 자신이 내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무수히 많은 말을 몸으로 뱉으며 순순히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바람이 목덜미를 스친다. 짜릿하다. 간택이 끝나고 주홍빛으로 밀려나오는 속살을 드러내는 수모, 새댁이 된다는 건 여린 살갗이 찢기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 낯설게 다가오는 내 모습이 익숙해질 때까지 바람과 햇빛과 수시로 내통하리라. 이제 나의 시간은 바람과 햇빛이 좌우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세찬 바람이 불어와 내 몸을 때린다. 가느다란 신음 뒤에 가벼우나 날카로운 촉수들이 돋아난다. 온몸의 세포들을 깨우는 일은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렵다. 부드러운 미풍과 단물을 꿈꾸던 풋풋한 젊은 날의 꿈들은, 달콤한 또 다른 삶을 위해 과감히 버려야 한다. 세상의 이치를 깨치며 세월의 무게를 짊어지다보면 두루 뭉실한 아낙이 되리라. 그리고 적당히 그을린 결 고운 피부로 환생하리니.

  가을이 익어가기를 기다린다. 등이 따뜻해져 갈수록 물기는 빠져나가고 모서리는 더욱 둥글어지리라. 내장까지 보일 것 같은 날씨 속에서 내 몸도 추억처럼 익어 간다. 오랜 시간 아픔을 묵묵히 감당해내며, 감칠맛과 향을 내던 할머니처럼 단아하고 깊은 맛을 낼 수 있으리라. 부드럽고 따뜻한 맛은 줄어들지만 굳은살이 깊어질수록 마침내 오묘한 단맛을 내며 삶이 완성되리라. 외로운 시간 자신과의 싸움만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 사람들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가슴을 가리고 몸을 비틀어 보지만 구경꾼들의 시선은 끈적거린다.

  이따금 어둠 속에 침잠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빈자리의 그늘만큼 눈 밑의 그림자도 짙어가고 사라지는 하루하루를 견디면 짜릿한 역전의 시간이 오리니. 긴장과 이완, 길들여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중용의 도를 지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 덜 마르면 쉽게 변하고 너무 마르면 질겨서 먹지 못하는 법. 그런가 하면 내 몸은 사람의 손이 닿으면 딱지 앉은 상흔처럼 색깔이 검게 바뀌고 만다.

  감으로 한 생을 살아내고 또 다른 삶을 이어가는 곶감의 생은 얼마나 혼곤한가. 인고의 세월이자 형벌과 같은 기다림의 세월이기도 하다. 세상과 통하는 지혜를 배우는 나의 일생은 여자의 길!

  한숨 같은 흰빛이 희미하게 피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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