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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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2014년 08월 29일 15시 20분  조회:3337  추천:15  작성자: 허창렬
조선

아득한 옛날에 나는 벌써 너였다
불도 아닌 물도 아닌
활도 아닌 칼도 아닌
호랑이 곰 승냥이 너구리 사슴가죽을
어깨에 허리에 용사처럼 내두르고
닭털을 꿩털을 봉황의 깃으로
선뜻이 머리에 꽂아버린

나는 김씨였다 최씨였다
5000여년 500여번의 지루한 륜회에도
나는 정씨였다 허씨였다
한 백년 더 산다고 내 성이 왕씨가 되랴?
자작나무를 마주서면 나는 눈굽이 하아얘진다
갈꽃을 마주서면 나는 마침내
백두산을 우러러 하얗게  고개 숙인다

길손 없는 력사의 주막집에 가끔 들려
부엌데기 고구려를 양푼에 담아놓고
신라 백제 고려의 자잔한 뼈와 가시들을 알알히 골라낸다
뼈와 가시는 고를수록 많아진다
그러나 일찍 조루증에 걸린
조선은 어느새 고물이 되여
내뒤에 병풍뒤에 조용히 선다

흔적(痕迹)

밤부엉이
긴 칼을 뽑아들고
슬금슬금
내곁에
다가선다
 
보이지않은
거대한
몸뚱이-
바람이 칼을 맞고
뚝뚝 피를
흘린다

하늘에
둥둥 떠 있는
누군가의 우렁우렁한 말씀과
멍멍 개 짖는 소리와
차츰 요란해지는
풀벌레 울음소리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향집에 들려
나는 화안히 초불을 켜들고
깨여진 거울쪼각을
어두커니-
하염없이 다시금
들여다 본다


너무
환해 기절할 것만 같은
어머님의 밝은 미소
내 목으로  
칭칭 와 감기는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청량한 피리소리


추억이
엄벙
덤벙
옷고름을
다시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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