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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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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르스카 시모음 (2)
2017년 09월 15일 17시 13분  조회:4106  추천:1  작성자: 강려
심보르스카 시 (2)
 
동굴 / 쉼보르스카
 
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습기만 흐를 뿐.
이곳은 어둡고, 춥다.
 
불이 꺼지고 나니
더욱 어둡고, 춥다.
아무것도 없었다-황토에 그려진 들소가 사라지고 난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들소는 머리를 구부린 채 오랫동안 저항했지만
일말의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아름다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문장은 밑줄을 쳐서 강조할 만하다,
일반적인 의미의 '무(無)'를 신봉하는 이단(異端).
그들은 결코 회개할 줄 모른다. 다르다는 것을 자랑스레 여기므로.
 
아무것도 없었다-우리들이 떠나고 난 뒤에는.
우리들은 이곳에 왔었고,
자신의 심장을 먹어 치웠고,
스스로의 피를 마셨다.
 
아무것도 없었다.
미처 다 끝마치지 못한 우리들의 춤 말고는.
화염 속에서 불타오르던
너의 첫벗째 허벅지, 팔과 목, 그리고 얼굴.
미세한 파스칼*로 진동하는 생명을 잉태했던
나의 첫번째 복근(腹筋).
 
적막-하지만 소리보다 한발 늦었다.
소리는 적막보다 부지런한 천성을 지녔으므로.
적막-언젠가 네 목구멍 속에 걸려 있던
피리 소리와 북소리.
야생 동물의 비명 소리, 웃음소리와 더불어
동굴은 이곳에 적막을 단단히 아로새겨놓았다.
 
적막-하지만 감겨진 눈꺼풀처럼 암흑에 휩싸인 어둠이 먼저다.
어둠-하지만 
싸늘하게 식은 살과 뼈가 먼저다.
싸늘함 하지만 죽음이 먼저다.
 
땅에서, 아니면 하늘에서?
어쩌면 일곱번째 하늘*에서?
너는 이 공허한 폐허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으리라.
여기에 무엇이 있었을까 자못 궁금해 하면서.
 
*파스칼; 압력의 단위. 1 파스칼은 1 제곱미터의 넓이에 1뉴 턴의 힘이 가해질 때의 압력을 의미하며. 기호는 pa를 쓴다.
*일곱번째 하늘; 유대교에서는 하늘을 일곱으로 나누고, 일곱번째 하늘을 신과 천사들이 사는 가장 높은 하늘이라 믿는다.
 
애물단지 / 쉼보르스카
 
그는 행복을 원했었다.
그는 진실을 원했었다.
그는 영원을 원했었다.
자, 그를 봐라!
 
현실과 꿈을 간신히 구별해낸다.
자신이 누구인지 가까스로 깨닫는다.
어류의 지느러미 같은 손으로 부싯돌을 부딪쳐
힙겹게 봉화(烽火)를 피워 올린다.
쉽사리 증오에 휩싸이는 존재.
공허한 웃음을 터뜨리기에도 미욱한 존재.
눈으론 그저 보기만 하고,
귀로는 그저 듣기만 한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어투는 조건문,
이성을 사용해서 이성을 비난해보지만,
그의 뒤에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둔감한 살집 외에도
그의 머릿속은 자유와 박식함.
그리고 존재로 가득 차 있으니
자, 그를 봐라!
 
눈에 보이는 엄연한 실체이기에
변방의 별빛 가운데 하나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으니.
나름대로 생기 있고 꽤나 능동적인 그는
쓸모없는 수정(水晶)이 무력하게 퇴화하는 걸 지켜보며
짐짓 놀란다.
떼를 지어 다녀야만 했던 그 옛날, 힘겨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이제 그는 진정으로 독립적인 개체.
자, 그를 봐라!
 
지금 이 순간이 비록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이대로 지속되기를.
깜빡이는 저 작은 은하수 아래서 끊임없이 빛을 발하기를!
미약하나마 이미 세상에 존재하기에
앞으로 무엇으로 탈바꿈할는지
희미한 윤곽이나마 드러낼 수 있기를.
그는 고집이 무척 세다.
코걸이를 걸고 있는, 토가*를 걸친 스웨터를 입고 있는
그가 고집불통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어쨋건 그는 애물단지.
측은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
실재(實在)하는 인간.
 
*토가; 고대 로마에서 시민이 입던 겉옷, 남자가 14세가 되면 성년의 표시로 착용했다.
 
만일의 경우 / 쉼보르스카
 
일어날 수도 있었어.
일어났어야만 했어.
일어났었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너무 가까이, 아니면 너무 멀리서.
일어났었어. 너에게, 혹은 너를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게.
 
너는 살아남았지. 맨 처음이었기 때문에.
너는 살아남았지. 제일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혼자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왼쪽으로 갔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갔기 때문에.
비가 왔기 때문에. 그늘이 드리웠기 때문에.
날씨가 화창했기 때문에.
 
운 좋게도 거기 숲이 있었어.
운 좋게도 거기 나무가 없었어.
운 좋게도 철로, 갈고리, 대들보, 브레이크,
문설주, 갈림길, 일 밀리미터, 일 초가 있었어.
운 좋게도 지푸라기*가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왜냐하면, 그렇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손발을 움직여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할 수도 있었어.
우연의 일치에 좌우되는
불과 한 발자국도 안 되는 거리 안에서, 일촉즉발의 오차 내에서.
 
그래서 넌 지금 여기에 있는 거니?
가까스로 열린 찰나의 순간에?
그물에 뚫린 단 하나의 구멍, 그리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버렸니?
난 놀랄 수도, 침묵할 수도 없어.
자, 귀 기울여봐.
네 심장이 내 안에서 얼마나 빠르게 두근거리는지.
 
*지푸라기; 원문에는 '면도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음. 폴란드에서는 "물에 빠진 사람은 면도날이라도 잡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 쉼보르스카
 
마침내 마법이 풀린다. 비록 강력한 힘이 작용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해도.
8월의 밤, 너는 알지 못하리.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별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너는 알지 못하리.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예정된 섭리인지, 아닌지.
너는 알지 못하리.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을 보며 소원을 빌어야 할지, 운명을 점쳐야 할지.
운명을 점친다고? 제대로 의사소통도 안 되는 별똥 별 따위로?
지금이 21세기가 아니라 고리타분한 선사 시대란 말인가?
저 수많은 섬광 중에 과연 어떤 빗줄기가 호언장담할 수 있으려나:
불꽃이라고, 나는 불꽃이라고, 별똥별의 꼬리에서 생성된, 진짜 불꽃이라고.
왔다가 순순히 사라지는,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오로지 불꽃 그 자체라고.
내일자 신문을 향해 곤두박질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고.
엔진이 고장 난, 바로 내 옆의 다른 불꽃이라고.
 
실수 / 쉼보르스카
 
미술관에 전화벨이 울린다.
밤 열두 시, 텅 빈 전시장 안에 벨 소리가 요란하다.
만약 누군가가 깜빡 잠들어 있었다면, 놀라서 곧바로 깨어났을 것이다.
이곳엔 불면증에 시달리는 예언자들과
달빛에 안색이 창백해진 고색창연한 왕들뿐.
그들은 조용히 숨죽인 채 만물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겉으로만 부지런한 척하는 고리대금업자의 아내는
벽난로 위에 놓인 전화기가 쩌렁쩌렁 울려대는데도
손에 든 부채를 내려놓을 생각조차 않는다.
다른 이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반응에 익숙해져버렸기에.
토가를 걸치거나 혹은 알몸인 그들은 마치 그 자리에 없는 듯 오만한 태도로
한밤중의 경적을 무심히 흘려보내고 만다.
맹세컨대 이것은 왕실의 가령(家令)이 전화를 받기 위해
액자에서 뚜벅뚜벅 걸어 내려오는 것보다 더 우습고 황당한 일이다.
(하긴 그의 귀를 두드리는 건 고요한 적막뿐인데 무얼 기대할 수 있으랴.)
더 황당한 건 도시의 저편, 어딘가에
자신이 잘못된 번호를 돌렸는지도 모르는 채
꽤나 오랫동안 수화기를 관자놀이에 갖다 대고 있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살아 있다. 그래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양로원에서 / 쉼보르스카
 
그녀의 이름은 야브윈스카, 누구를 말하는지 아마 다들 아실 거예요.
우리들 사이에서 거의 여왕 폐하로 통하는 거만한 그녀.
목에는 항상 화려한 스카프를 두르고, 머리를 곱슬곱슬 말아 올린 그녀.
아들 셋을 먼저 천국에 보냈고, 거기서 그들이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는 그녀 말입니다.
 
"그 애들이 전쟁에 나가 죽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거야.
겨울엔 큰 아들과 살고 여름은 둘째와 보냈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확신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우리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죽음을 당하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우리의 아이들에 관해 꼬치꼬치 묻곤 합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알고 있었으니까요.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셋째 아들이 자신을 집으로 초대했으리라는 사실을 말이죠
"막내는 분명 새하얀 백조나 비둘기가 끄는
눈부신 황금마차를 타고 나를 찾아왔을 게야
모두가 똑똑히 볼 수 있도록.
모두가 잊지 못하도록"
 
우리의 야브윈스카 여사가 해묵은 신세타령을 시작하면
그녀를 돌보는 간호원, 마니아*는 가끔씩 무기력한 미소로 응수하곤 합니다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것이 우리의 당연한 임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이야기죠.
 
토요일, 일요일과 여름휴가 때는 우리에게도 쉴 권리가 있으니까요.
 
*마니아Mania는 폴랜드에서 다소 촌스럽다고 여겨지는 다소 구식의 여자 이름이다. 오늘날에는 아기에게 '마니아'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폴랜드 사람들은 하녀 혹은 유모의 전형적인 이름으로 생각한다.
 
광고 / 쉼보르스카
 
나는 진정제입니다.
주로 집에서 효과를 발휘합니다.
사무실에서도 효력이 있습니다.
시험을 치르거나
재판에서 증언할 때도 힘이 됩니다.
깨진 컵 조각을 조심스럽게 붙이는 것을 돕기도 합니다.
단지 나를 입에 넣고
혓바닥 아래서 살살 녹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저 나를 꿀꺽 삼키기만 하면 됩니다.
오직 물과 함께 마시기만 하면 됩니다.
 
나는 압니다, 불행을 요리하는 방법.
나쁜 소식을 견뎌내는 방법.
불의를 최소화하는 방법.
미망인 얼굴에 잘 어울리는 장례식용 모자를 고르는 방법까지도.
무엇을 망설이고 있나요?
화학 약품의 자비로운 효능을 한번 믿어보시라니까요.
 
당신들은 아직 젊습니다.
삶을 새롭게 가꾸고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참고 견디는 거라고
누가 말했던가요?
 
당신들의 나락(奈落)을 주저 없이 내게 맡겨주십시오.
네 번이나 추락에서 건져 올려지고 나면
당신들은 틀림없이 고마워할 것입니다.
 
나에게 영혼을 파십시오.
다른 장사치들은 오지 않을 테니.
 
다른 악마는 더 이상 없습니다.
 
발견 / 쉼보르스카
 
나는 위대한 발견을 믿는다.
그 발견을 이루어낼 사람을 믿는다.
그 발견을 이루어낼 사람의 두려움을 믿는다.
 
그의 얼굴에 깃든 창백한 기운과
거친 호흡, 입술 위에 맺힌 식은땀을 믿는다.
 
기록을 태우는 것,
재가 될 때까지 태우는 것,
마지막 한 조각까지 남김없이 활활 태우는 것을 믿는다.
 
숫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
그것들이 유감없이 산산조각 분해될 것을 믿는다.
 
서두르기 좋아하는 인간의 성향과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움직일 줄 아는 치밀함과,
그들의 강요되지 않은 자유 의지를 믿는다.
 
석판이 부서지고,
액체가 쏟아지고,
광신이 꺼지리라는 것을 믿는다.
 
단언컨대, 반드시 성공하리라.
결단코 늦지 않으리라.
증인들이 배석하지 않아도 사건은 전개되리라.
 
확신컨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리라.
아내도, 벽도,
심지어 밀고하기 좋아하는 저 수다스러운 새들조차도.
 
불미스러운 일에 개입하지 않은 깨끗한 손을 믿는다.
엉망진창이 된 경력을 믿는다.
어러 해 동안 소진한 각고의 노력을 믿는다.
무덤까지 안고 갈 비밀을 믿는다.
 
이 말들은 모두 규범의 영역 저 너머를 배회하고 있으니,
나는 어떤 경우에도 근거를 바라지 않는다.
내 믿음은 강하고, 맹목적이며, 원칙을 초월한 것이기에.
 
귀환 / 쉼보르스카
 
그가 돌아왔다. 아무 말도 없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옷을 입은 채 잠자리에 든다.
담뇨 아래로 머리를 파묻고,
무릎을 끌어당긴다.
나이는 마흔 살 가량,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아니다.
일곱 겹의 살갗 너머 어머니 뱃속,
어둠의 안식처에서
지금 이 순간, 그는 존재한다.
내일은 은하계 전체를 비행하는 데 필요한
인체의 항상성*에 대해 강의할 예정.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조그맣게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들었다.
 
*항상성; 외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체내의 안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경향.
 
공룡의 뼈 / 쉼보르스카
 
사랑하는 형제여,
우리는 여기서 균형이 맞지 않는 잘못된 비례의 전형적인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앞에 차곡차곡 쌓인 이 공룡의 뼈에서.
 
그리운 벗이여,
왼쪽에는 무한대를 향해 뻗은 꼬리가 있고,
오른쪽에는 반대편을 향하는 목이 있습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자연은 결코 오류를 범하거나 틀리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농담을 즐길 뿐.
이 우스꽝스러운 작은 머리통에 주목해주십시오.
 
신사 숙녀 여러분,
이런 조그만 머리로는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애석하게도 이 머리통의 주인은 멸종하고 만 것이죠.
 
친애하는 청중 여러분,
보잘것없는 뇌의 사이즈에 비해, 식욕은 지나치게 왕성하군요.
이런 작은 뇌 속에는 현명한 판단력보다는
어리석은 몽상이 으레 더 큰 자리를 차지하는 법.
오직 하나뿐인 태양처럼.
 
탁월하신 위원회여,
이 얼마나 솜씨 좋은 손인가요.
이 얼마나 언변이 풍부한 입인가요.
이 얼마나 명석한 두뇌인가요.
 
위대하신 판관이여,
지금은 퇴화되어버린 꼬리가 자라던 바로 그 자리에
너무 많아 버거운 의무감만 남아 있군요.
 
추적 / 쉼보르스카
 
적막이 나를 맞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혹시라도?
시끌벅적한 소동도, 팡파르도, 박수갈채도 없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비상사태를 알리는 정적도, 아니 비상사태 자체도 없으리란 걸 나는 안다.
 
마른 잎사귀조차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니 은빛 궁전과 아름다운 정원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마라.
존경스러운 연장자와 정의로운 법률,
유리구슬에 비친 예언자의 지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달빛 속을
이렇게 헤매고 다니는 건
잃어버린 반지와 리본 따위를 찾기 위해서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언제나 그들이 한발 앞서 모든 것을 가져가버렸다.
 
증거가 될 만한 건 아무거도 남기지 않았으니.
죽음도, 나무토막도, 과일 껍질도, 아스파라거스도, 찌꺼기도,
대패질하고 남은 부스러기도, 깨진 유리 파켠도, 먹다 남은 고깃덩이도, 쓰레기 조각도.
 
내가 몸을 숙이는 건 단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조약돌을 줍기 위해서일 뿐.
하지만 그 돌에는 아무런 자취도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은 내게 신호나 단서를 남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흔적을 지우는 기술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적절한 타이밍에 감쪽같이 사라져버리는 그들의 놀라운 재능에 대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들이 뿌리나 꼬리, 하늘로 날아오르느나 잔뜩 부푼 드레스 자락은
인간의 손에는 절대로 잡히지 않는 신성한 것임을.
그들의 머리카락은 단 한번도 머리에서 이탈하여 내 손아귀에 들어온 적이 없다.
 
내 궁리를 보란 듯이 비웃는 교활하고 영리한 생각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다.
늘 꼭 한 발자국씩 내가 미처 쫓아가지 못할 만큼만 앞서 간다.
선명하게 찍힌 그 흔적들은 원시적인 본능이 얼마 어리석은 지 조롱하듯 보여준다.
 
그들은 현존하지 않으며, 과거에도 결코 존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나는 스스로에게 열심히 그 사실을 반복해서 주입시켜야만 한다.
그들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는 어리석은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러면 발아래에서 느닷없이 풀쩍 솟구쳐 오르는 건 과연 뭐지?
금세 내 발에 밟혀버렸기에 미처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도망치려 버둥거리는 것.
스스로를 침묵의 연장이라 여기는 것.
그것은 비로 그림자-어느 틈에 목표물에 가까이 다가섰다고 착각할 만큼
터무니없이 커져버린 나 자신.
 
분실물 보관소에서의 연설 / 쉼보르스카
 
나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에 몇몇 여신을 잃어버렸다.
또한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에 많은 신들을 놓쳐버렸다.
나의 별 몇개가 영원히 꺼져버렸다. 하늘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의 섬이 하나 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심지어 어디에 발톱을 놓아두었는지도 통 모르겠다.
누가 내 거죽을 뒤집어쓰고 돌아다니는지, 내 껍데기 안에서 살아 숨쉬는 건 무엇인지.
내가 육지로 기어 나왔을 때, 형제들은 다 죽었고.
단지 내 뼈 가운데 일부만 내 안에서 기념일을 맞고 있다.
나는 허물을 벗고 세상에 나와 부질없이 척추와 다리를 혹사하고 말았다.
그러곤 여러 차례 감각을 상실했다.
오래전에 이 모든 것에 대해 세번째 눈을 감았고,
지느러미를 움직였고, 나뭇가지를 뒤흔들었다.
 
사라지고, 소멸되고, 바람결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니.
나는 한없이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다.
어제 전차 안에서 우산을 잃어버린 평범한 인간의 형체는
그저 잠시 동안 빌려온 허물에 불과할 뿐
 
경이로움 / 쉼보르스카
 
무엇 때문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이 한 사람인 걸까요?
나머지 다른 이들 다 제쳐두고 오직 이 한 사람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요?
수많은 날들 가운데 하필이면 화요일에?
새들의 둥지가 아닌 사람의 집에서?
비늘이 아닌 피부로 숨을 쉬면서?
잎사귀가 아니라 얼굴의 거죽을 덮어쓰고서?
어째서 내 생은 단 한번뿐인 걸까요?
무슨 이유로 바로 여기, 지구에 착륙한 걸까요? 이 작은 혹성에?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나 여기에 없었던 걸까요?
모든 시간을 가로질러 왜 하필 지금일까요?
모든 수평선을 뛰어넘어 어째서 여기까지 왔을까요?
무엇 때문에 천인(天人)도 아니고, 강장동물도 아니고, 해조류도 아닌 걸까요?
무슨 사연으로 단단한 뼈와 뜨거운 피를 가졌을까요?
나 자신을 나로 채운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왜 하필 어제도 아니고, 백 년 전도 아닌 바로 지금
왜 하필 옆 자리도 아니고, 지구 반대편도 아닌 바로 이곳에 앉아서
어두운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독백을 읊조리고 있는 걸까요?
마치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으르렁대는 성난 강아지처럼.
 
작은 별 아래서 / 쉼보르스카
 
우연이여, 너를 필연이라 명명한 데 대해 사과하노라.
필연이여, 혹시라도 내가 뭔가를 혼동했다면, 사과하노라.
행운이여, 내가 그대를 당연한 권리처럼 받아들여도, 너무 노여워 말라.
고인들이여, 내 기억 속에 당신들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진데도,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
시간이여, 매 순간, 세상의 수많은 사물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친 데 대해 뉘우치노라.
지나간 옛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여, 태연하게 집으로 꽃을 사 들고 가는 나를 부디 용서하라.
벌어진 상처여, 손가락으로 쑤셔서 고통을 확인하는 나를 제발 용서하라.
지옥의 변방에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이여, 이렇게 한가하게 미뉴에트 CD나 듣고 있어 정말 미안하구나.
기차역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여, 새벽 다섯 시에 곤히 잠들어 있어 참으로 미안하구나.
막다른 골목까지 추격당한 희망이여, 제발 눈감아다오, 때때로 웃음을 터뜨리는 나를.
사막이여, 제발 눈감아다오, 한 방울의 물을 얻기 위해 수고스럽게 달려가지 않는 나를.
그리고 그대, 아주 오래전부터 똑같은 새장에 갇혀 있는 한 마리 독수리여,
언제나 미동도 없이, 한결같이 한곳만 바라보고 있으니,
비록 그대가 박제로 만든 새라 해도 내 죄를 사하여주오.
미안하구나, 잘려진 나무여, 탁자의 네 귀퉁이를 받들고 있는 다리에 대해.
미안하구나, 위대한 질문이여, 초라한 답변에 대해.
진실이여, 나를 주의 깊게 주목하지는 마라.
위엄이여, 내게 관대한 아량을 베풀어 달라.
존재의 비밀이여, 네 옷자락에서 빠져나온 실밥을 잡아 뜯은 걸 이해해 달라.
영혼이여, 내 안에 자주 깃들지 못한다고 나를 질타하지 마라.
모든 사물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동시에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음을.
모든 사람들이여, 용서하라, 내가 각각의 모든 남자와 여자가 될 수 없음을.
내가 살아 있는 한, 그 무엇도 나를 정당화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왜냐하면 내가 갈 길을 나 스스로가 가로막고 서 있기에.
언어여, 제발 내 의도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다오.
한껏 심각하고 난해한 단어들을 빌려와서는
가볍게 보이려고 안간힘을 써가며 열심히 짜 맞추고 있는 나를.
 
거대한 숫자 / 쉼보르스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60억의 사람들.
내 상상력은 늘 그랬듯이 언제나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다.
거대한 숫자는 감당하지 못하고,
사소하고, 개별적인 것에 감동을 느낀다.
어둠 속에서 손전등 불빛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며
가장 앞줄에 서 있는 얼굴들만 닥치는 대로 비추곤 한다.
그럴 때 뒷줄에 있는 나머지 얼굴들은 모조리 생략되고 만다.
기억 속에서도, 회한 속에서도 그들은 영원 속으로 도태되고 만다.
저 위대한 단테조차도 그들의 소멸을 멈출 순 없다.
모든 뮤즈*가 함께 어울려 내게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는다 해도
존재를 상실한 그들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Non omnis moriar* -시기상조에 불과한 근심 걱정.
정녕 내가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그것으로 충분한지
단 한순간도 충분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고, 지금은 더욱더 그러한데.
뽀족한 수가 없기에 끊임없이 버리면서 선택한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버렸으니
그만큼 복잡하고, 그만큼 성가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읗 상실한 대가는
고작 시 한 구절과 한숨뿐.
천둥과 같은 우렁찬 부름에 나는 꺼져가는 속삭임으로 간신히 대답한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침묵 속에서 견뎌야만 했는지, 굳이 말하지 않으리라.
고향 산기슭에서 찍찍대는 생쥐 한 마리,
인생이란 결국 그 생쥐가 모래 위에 발톱으로 끼적거린
몇 개의 희미한 흔적과도 같은 것.
 
나의 꿈들-꿈속의 인구 밀도는 생각보다 낮은 편이다.
사람들의 무리나 시끌벅적한 소동보다는 텅 빈 고독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아주 가끔씩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들를 때도 있다.
그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손으로 문고리를 돌린다.
메아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빈집에 울려 퍼지고,
현관을 넘어 계곡으로 흩어져간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고, 그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닌 듯
아주 조용하고 또 은밀하게.
 
무엇 때문에 이 공간이 내 안에까지 비집고 들어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뮤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음악의 정령.
*Non omnis moriar: 고대 로마의 시인이었던 호레이스(B.C. 65~8)의 발라드에서 인용한 구절로
                          "내 전부가 죽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
 
롯의 부인*/ 쉼보르스카
 
아마도 호기심 때문에 뒤를 돌아봤을 것이다.
어쩌면 호기심 말고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었다.
은그릇에 미련이 남아서.
샌들의 가죽 끈을 고쳐 매다가 나도 몰래 그만.
내 남편, 롯의 완고한 뒤통수를 더 이상 쳐다볼 수가 없어서.
내가 죽는다 해도 남편은 절대로 동요하지 않을 거라는 감격스러운 확신 때문에.
과격하지 않은 가벼운 반항심이 솟구쳐 올라.
추격자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적막 속에서 문득 신이 마음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샘솟았기에.
우리의 두 딸이 언덕 꼭대기에서 사라져버렸으므로.
문득 스스로 늙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리를 확인하고 싶어서.
방랑의 덧없음과 쏟아지는 졸음 탓에.
대지 위에 꾸러미를 내려놓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걷고 있는 오솔길에 갑자기 뱀이 나타났기에.
거미와 들쥐와 어린 독수리가 내 앞을 가로막았기에.
유익하지도, 해롭지도 않은 그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거대한 패닉 상태에 빠져 꿈틀대고, 튀어 오르는 걸 바라보면서.
갑작스러운 외로움 때문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몰래 도망친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서.
소리치고 싶고, 되돌아가고 싶은 욕망 때문에.
혹은 돌풍이 불어와 내 머리를 헝클고, 내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리던 바로 그 순간에.
그들이 소돔의 성벽에서 우리를 지켜보면서.
계속해서 청천벽력처럼 요란한 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것만 같았기에.
아마도 분노 때문에 뒤를 돌아보았을지도.
어쩌면 그들에게 피할 수 없는 파멸을 안겨주기 위해서.
아무튼 위에서 열거한 구구한 모든 이유 때문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것은 단지 내 발밑에서 나로 하여금 발길을 돌리게 하려고 무던히도 애쓴 성난 돌멩이 하나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지 내 눈앞에서 돌연히 끊겨버린 오솔길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지 성벽의 가장자리에서 뒷발을 세우고 아장아장 걷고 있는 한 마리 햄스터* 때문이었다.
바로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다, 아니다,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살금살금 기어갔다. 폴쩍 날아올랐다.
어둠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기 전까지.
어둠 속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돌덩이들과 죽은 새들이 무참히 추락하기 전까지.
숨을 쉴 수 없었기에. 나는 빙글빙글 돌고, 또 돌았다.
누군가가 이 광경을 봤다면 아마도 내가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했으리라.
바닥으로 떨어지는 순간 아마도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엇을지도.
어쩌면 내 얼굴은 도시를 향하고 있었을지도.
 
*롯의 부인: 이 시는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죄악에 물든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로 한 하느님이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에게 이 사실을 예고하면서, 도망쳐서 생명을 보존하되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일렀으나, 롯의 아내는 그만 뒤를 돌아봐 결국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다.
 
*햄스터: 비단결쥣과의 하나. 의학 실험용으로 많이 쓰인다.
 
위에서 내려다본 장면 / 쉼보르스카
 
시골 길에 죽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세 쌍의 다리를 배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은 채.
죽음의 혼란 대신 청결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이 광경이 내포하는 위험도는 지극히 적당한 수준.
갯보리와 박하 사이의 지정된 구역을 정확히 준수하고 있다.
슬픔이 끼어들 여지는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다.
 
우리의 평화를 유지시켜주기 위해,
동물들은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만 숨을 거둔다.
우리들이 믿고 싶어 하는 대로, 감각이나 이승에 대한 미련을 훌훌 떨쳐버린 채.
우리들이 짐작한 대로, 저승보다는 덜 비극적인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난다.
그들의 온순한 영혼은 절대로 어둠 속에서 우리를 감추지 않는다.
그들은 거리를 유지할 줄 안다.
그들은 배려가 뭔지를 안다.
 
여기 길 위에 죽은 딱정벌레 한마리가 있다.
그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 가운데, 태양 아래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저 한번 쳐다봐주는 것도 딱정벌레에겐 커다란 추모일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지극히 태평스러워 보인다.
중요하고 심각한 일은 모조리 우리, 인간들을 위해 예정되어 있다.
삶은 오로지 우리들의 것이며,
언제나 당연한 듯 선행권(先行權)을 요구하는 죽음 또한 오로지 우리들의 전유물이다.
 
실험 / 쉼보르스카
 
우리를 울리고, 웃기기 위해서
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한 본 영화를 상영하기에 앞서,
특별 보너스로
머리를 이용한
흥미로운 실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불과 몇 분전까지만 해도 어딘가에 고착되어 있던
머리가
지금은 완벽하게 절단되었습니다.
자, 보십시오. 본체에서 깨끗하게 분리되었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목의 뒷부순에 주렁주렁 매달린 튜브는 기계에 연결되어
체내의 혈액 순환을 유지시켜줍니다.
네, 머리는
잘 지내는 중입니다.
 
고통의 징후도, 충격의 흔적도 없습니다.
다만 손전등의 불빛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불안한 듯 눈으로 쫓고 있을 뿐,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귀를 쫑긋 세웁니다.
촉촉하게 습기를 머금은 코는
돼지 비계 냄새와 비실재(非實在)의 무취(無臭)를 예민하게 구분해냅니다.
입은 생리 현상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입맛을 쩝쩝 다시며 침을 흘립니다.
 
강아지의 충성스러운 머리,
강아지의 상냥한 머리는
부드럽게 쓰다듣어주기라도 하면
아직도 제가 몸에 귀속된 신체의 일부인 양 착각하면서
바보처럼 눈을 찡긋거립니다.
등뼈를 살짝 어루만져주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머리를 조아리던 오랜 습관을 버리지 못했기에.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나는 문득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만약 이런 게 인생이라면,
머리는
그저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행복했을 테니까요.
 
미소 / 쉼보르스카
 
세상은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더 많은 희망을 품고 있다.
거물급 정치인들은 늘 우아하게 미소 짓고 있어야만 한다.
미소는 사기가 꺾이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이므로.
혹 사업이 꼬이고, 골치 아픈 시합과
불확실한 결과 탓에 속이 상할지라도
하얗고 가지런한 그들의 치아를 바라보노라면
언제나 위안이 된다.
 
회담장에 들어설 때나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설 때 그들은 항상
찡그리지 않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야만 한다.
활기 넘치 자태와 명랑한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
누군가를 환영하고, 또 누군가와 작별하며
구경꾼들과 카메라 렌즈를 위해
늘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어야 한다.
 
치과 의술은 외교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빛나는 미래를 보장해준다.
매력적인 송곳니와 조화로운 앞니들은
위급한 상황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일상적인 슬픔을 얼굴에 맘 놓고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이 시대가 편아하고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몽상가들은 말한다.
"인류의 형제애가 지구를 웃음의 천국으로 바꾸어놓는다"고.
하지만 난 회의적이다. 제발 부탁이다.
더 이상 거물급 정치인들이 억지로 미소 지을 필요가 없도록
그들을 가만히 좀 내버려주자.
안면 근육을 억지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도록.
봄 또는 여름이 와서 진정 기쁠 때
그저 가끔씩 서두르지 않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을 수 있도록.
그러나 인간은 본래 천성적으로 슬픈 존재.
나는 그 존재를 기다리며 벌써부터 기쁨에 젖는다.
 
여인의 초상 / 쉼보르스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게 스스로 변해야 한다.
이것은 쉽고, 불가능하고, 어렵고, 그래서 더더욱 해볼 만한 일이다.
필요하다면 그녀의 눈동자는 때로는 짙푸르게, 때로는 잿빛으로 시시각각 변하리라.
검은빛을 띠다가도 때로는 명랑하게, 때로는 이유 없이 눈물을 머금으리라.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단 한 사람, 혹은 수많은 사람 중 '누군가'가 되어
그와 함께 곤히 잠자리에 들리라.
그를 위해 네 명이거나, 한 명도 아니거나, 아니면 단 한 명의 아이를 낳아주리라.
순진무구하지만, 가장 적절한 충고를 하게 되리라.
연약하기 짝이 없지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리라.
목 위에 머리가 없지만,* 곧 갖게 되리라.
야스퍼스*와 여성지를 동시에 읽게 되리라.
나사를 어디에 조여야 하는지 모르면서도 근사한 다리를 만들어 세우리라.
항상 그래왔듯 젊은 모습으로, 갈수로 더 젊은 모습으로 남아 있으리라.
양손에는 날개가 부러진 참새와, 길고도 머나먼 여행을 위한 약간의 여비와,
고기를 토막 내는 식칼과, 붕대와, 한 잔의 보드카를 들고,
어디를 향해 그렇게 숨 가쁘게 달려가고 있는지, 피곤하지도 않은지,
많이 고단하건, 조금 고단하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그에 대한 사랑 때문이건, 아니면 아집 때문이건,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혹은 신의 가호 덕분이건.
 
*목 위에 머리가 없지만; 폴란드 속담에 "남자는 집안의 머리이고 여자는 목이다"라는 말이 있다. 목이 움직여야 머리도 움직일 수 있듯이 집안의 우두머리이자 가장은 남자지만 그 가장을 좌지우지하는 건 여자라는 뜻에서 비롯된 속담이다.
 
*칼 야스퍼스(Karl Jaspers 1883~1969) 독일의 사회철학자로 칸트, 키르케고르, 니체 등의 영향을 받아 실존 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저서 <철학>을 썼다. 그는 실증주의 철학을 내세우는 과학에 대한 과신(過信)을 경고하고, 근원적인 불안에 노출된 인간의 비합리성을 포착하여 본래적인 인간 존재으 양태를 전개하는 실존 철학을 시대 구원의 한 방법으로 제시했다.
 
쓰지 않은 시에 대한 검열 / 쉼보르스카
 
시의 첫머리에서
이 여류 시인은 지구가 작다고 성급하게 단정 짓는 반면,
하늘은 극단적으로 거대하게 묘사하고 있다.
잠시 인용해보자: "하늘에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별들이 있다."
 
하늘에 관한 표현에서 우리는 시인의 무력감이 발견된다.
저자는 저 끔찍한 무한대의 공간에서 길을 잃었다.
수많은 행성들이 무기력한 휴면 상태로 그녀에게 충돌한다.
머지않아 그녀의 지성, 부연 설명하자면 '그다지 견고하지 못한' 지성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품기 시작하리라:
태양 아래서, 햇살이 비치는 이 세상 곳곳에서, 우리는 결국 혼자가 아닐까?
 
이것은 확률의 법칙을 철저히 무시하는 발상,
오늘날 보편적으로 공인 받은 가설을 완전히 뒤집는 행위.
언제든 인간의 손아귀에 들어갈 수 있는 명확한 증거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다.
아, 도대체 시라는 건 왜 이 모양인지.
마침내 우리의 여류 시인은 지구로 돌아왔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지구는 "목격자 없이도 열심히 돌아가는 행성"이며,
"우주가 탄생시킨 공상 과학 소설"이다.
'안드로메다'나 '카시오피아' 행성도
파스칼(1623~1662)의 절망에는
대적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여기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 인간의 배타적이고 고독한 본질은 점점 악화되어,
일종의 허무가 되어버린 듯하다.
그리하여 그녀는 어리석은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기타 등등---
왜냐하면 "우리는 결코 공허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신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길을 밝혀주소서---"
 
시인은 인생이 마치 고갈되지 않은 재고품이라도 되는 듯
함부로 낭비되는 것에 대해 일종의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고집스러운 견해에 따르면 항상 양쪽 모두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전쟁'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타인들 위에 "주인으로 군림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도덕적인 성향이 작품 속에서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도들은 조금난 덜 노련한 펜으로 씌여졌다면, 아마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리라.
 
애석하긴 하지만,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시인은 "태양 아래서, 햇살 비치는 이 세상 곳곳에서,
우리는 과연 혼자일까, 아닐까?"와 같은 본질적으로 설득력이 결여된 명제를
고상한 미사여구와 일상적인 언어가 뒤섞여버린
자신의 무심하고 태평한 문체 속에 억지로 쑤셔 넣어버렸다.
그러니 과연 누가 이 작품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확신컨대 이 작품을 납들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정답이다.
 
경고 / 쉼보르스카
 
우주 공간에 갈 때는 어릿광대를 데려가지 말 것,
이것이 내 충고다.
 
열네 개의 죽은 혹성들과
몇 개의 별, 그리고 두 개의 혜성을 지나
마침내 세번째 행성을 향해 길을 떠날 때쯤이면
어릿광대들은 유머 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 테니까.
 
우주는 말 그대로 우주다.
다시 말해 '완전하다'는 뜻.
어릿광대들은 바로 그 점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으리라.
 
그 무엇도 어릿광대들을 기쁘게 하지는 못하리라.
시간으로도-너무나 아득하니까.
아름다움으로도-일말의 빈틈도 없으므로.
위엄으로도-유쾌한 분위기로 되돌리면서 너무나 힘이 들기에.
모두가 경탄에 빠져 있을 때,
그들은 하품을 할 것이다.
 
네번째 행성으로 향하는 길은
더욱더 끔찍하리라.
경직된 미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잠, 망가진 균형,
쓸데없는 잡담,
까마귀는 부리에 치즈를 물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에는 파리가 앉았다.
원숭이는 사우나를 하고 있다---
-그래, 인생이란 다 이런 거지, 뭐
 
그들은 속박과 구속을 원한다.
무한한 시간보다는 목요일을 선택한다.
그들은 원시적이다.
광활한 음악의 세계보다는 조율 안 된 음 하나를 선택한다.
그들은 이론과 실제의 틈바구니,
원인과 결과의 사이에 존재할 때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이곳은 지구가 아니라 모든 것이 완벽하게 결합된 우주 공간.
 
서른번째 행성에 도착했을 때,
(이곳이 허허벌판 황무지라는 건 안 봐도 뻔하다는 생각에)
그들은 조종석에서 내리려고도 하지 않았다.
"머리가 아파요" "손가락을 다쳤어요"
기타 등등 온갖 자질구레한 핑계를 늘어놓으며.
 
아, 얼마나 수치스럽고, 난처한 일인가.
우주 공간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비용을 탕진하고 말았다.
 
양파 / 쉼보르스카
 
양파는 뭔가 다르다.
양파에겐 '속'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양파다움에 가장 충실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완전한 양파 그 자체이다.
껍질에서부터 뿌리 구석구석까지
속속들이 순수하게 양파스럽다.
그러므로 양파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내면을 용감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피부 속 어딘가에
감히 끄집어낼 수 없는 야생 구역을 감추고 있다.
우리의 내부, 저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옥,
저주받은 해부의 공간을.
하지만 양파 안에는 오직 양파만 있을 뿐
비비꼬인 내장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양파는 언제나 한결같다.
안으로 들어가도 늘 그대로다.
 
겉과 속이 항상 일치하는 존재,
성공적인 피조물이다.
한 꺼풀, 또 한 꺼풀 벗길 때마다
좀더 작아진 똑같은 얼굴이 나타날 뿐,
세번째도 양파, 네번째도 양파.
차례차례 허물을 벗어도 일관성은 유지된다.
중심을 향해 전개되는 구심성(求心性)의 아름다운 푸가.
메아리는 화성(和聲) 안에서 절묘하게 포개어졌다.
 
내가 아는 양파는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둥근 배.
영광스런 후광을
제 스스로 온몸에 칭칭 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건 지방과 정맥과 신경과
점액과, 그리고 은밀한 속성뿐이다.
양파가 가진 저 완전무결한 우둔함과 무지함은
우리에겐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
 
자살한 사람의 방 / 쉼보르스카
 
당신들은 틀림없이 그 방이 비어 있었으리라 단정합니다.
하지만 거기엔 등받이가 튼튼한 의자 세 개.
어둠을 밝히기에 딱 알맞은 전등 하나.
지갑과 신문이 놓인 책상이 있었습니다.
근심 걱정 없는 자애로운 부처, 고뇌와 비탄에 잠긴 예수.
행운의 상징인 일곱 마리 코끼리,
그리고 설합 속에 수첩 한 개가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거기에 우리들의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까?
 
책과 그림과 음반들이 없었다고 생각합니까?
하지만 거기엔 검은 손이 연주하는 위로의 트럼펫 선율이 있었습니다.
진심 어린 꽃송이를 들고 서 있는 사스키아*가 있었습니다.
신성의 불꽃이 뿜어내는 환희가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제 5장에서 힘겨운 고난을 마치고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책장 안에서 달콤한 잠에 빠져 있고,
아름답게 무두질한 표지 위에는
금박으로 새겨진 도덕군자들의 이름이 자랑스레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정치가들이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문이 있으니 출입구가 없는 것도 아니고,
창문이 있으니 내부의 정경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닌데,
이 방은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듯 텅 비어 있었습니다.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한 안경이 창턱에 놓여 있고,
아직까지 살아 있는 파리 한 마리가 윙윙대며 그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편지가 적어도 뭔가를 밝혀줄 거라 기대하고 있군요.
하지만 감히 한마디 하리다. 애초에 편지 따위는 없었습니다.
한때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우리들은
유리컵에 기대어 세워놓은 텅 빈 봉투 속으로 들어가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사스키아Saskia ; 화가 렘브란트(1606~1669)의 아내. 렘브란트는 자신의 아내를 소재로 한 몇편의 초상화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이 시의 소재가 된 '화장대의 사스키아'(1641)이다. 사스키아가 손에 꽃을 들고 있는 이 그림은 독일 드레스덴의 알테 마이스터 갤러리에 전시되어 있다.
 
*오디세우스Odysseus;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군의 대장이었다. 라틴어로는 '율리시스'라고 불림.
 
자아비판에 대한 찬사 / 쉼보르스카
 
대머리 독수리에게는 스스로를 비판할 거리가 아무것도 없다.
검은 표범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란 말이 낯설기만 하다.
피라니아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하다는 데 일말의 의혹도 품지 않는다.
방울뱀은 무조건 자기를 추겨세운다.
 
스스로를 냉철하게 평가할 줄 아는 자칼*은 존재하지 않는다.
메뚜기, 악어, 선모충 그리고 쇠파리도 마찬가지.
생긴 대로 살아가며 그것으로 만족한다.
 
범고래의 심장은 수백 근의 무게를 자랑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가볍기 짝이 없다.
 
태양계의 세번째 행성에 있는
순수한 양심보다
더 동물적인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쟈칼; 여우와 이리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육식 동물로 유럽 동남부, 아프리카 북부, 아시아 등지에 서식하는 갯과의 들짐승
 
인생이란------기다림 / 쉼보르스카
 
인생이란------기다림.
리허설을 생략한 공연.
사이즈 없는 몸.
사고(思考)가 거세된 머리.
 
내가 연기하고 있는 이 배역이 어떤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역할은 나만을 위한 것이며,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
 
무엇에 관한 연극인지는
막이 오르고, 무대 위에 올라가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인생의 절정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늘 엉망진창이다.
주어진 극의 템포를 나는 힘겹게 쫓아가는 중
즉흥 연기를 혐오하지만, 어쩔 수 없다.
임기응변으로 상황에 맞는 즉석 연기를 해야 한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사물의 낯설음과 부딪쳐 넘어지고 자빠지면서도.
내 삶의 방식은 언제나 막다른 골목까지 내몰려 있다.
내 본능은 어설픈 풋내기의 솜씨.
긴장 탓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보지만, 그럴수록 더 큰 모멸감이 되돌아 올뿐.
정상 참작을 위한 증거들이 내게는 오히려 잔인하게만 느껴진다.
 
한번 내뱉은 말과 행동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법.
밤하늘의 별들을 미처 다 헤아리지도 못했다.
서두르고 덤벙대다가 잘못 잠근 외투의 단추처럼
갑작스레 찾아온 우연이 빚어낸 안타까운 결과.
 
어느 수요일 하루만이라도 미리 연습할 수 있다면,
어느 목요일 하루만이라도 다시 한번 되풀이할 수 있다면!
하지만 금요일 되면 벌써 새로운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어김없이 나를 찾는다.
그러곤 묻는다-자, 모든 게 이상 없죠?
(잔뜩 쉬어터진 거친 목소리로
막 뒤에서 헛기침으로 미리 귀띔을 해주는 일조차 없이.)
 
지금 이 상황을 임시로 마련된 무대 위의 간단한 오디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착각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나는 정교한 무대 장치 아래 서서
모든 사물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배치되었는지르 똑똑히 보고 있다.
구석구석 놓여 있는 소품들이 정확성과 견고함은 가히 충격적이다.
무대를 회전시키는 장치는 벌써 오래전부터 작동 중이다.
저 멀리서 성운(星雲)이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아. 이것은 틀림없는 개막 공연이다.
이 순간 내가 시도하는 모든 일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저지른 나의 행동, 나의 말, 나의 동작으로 영원히 굳어져버린다
 
스틱스 강변에서 / 쉼보르스카
 
자, 개별적인 영혼들이여, 여기는 스틱스 강*이다.
그래 맞다, 여기는 스틱스 강이다. 뭣 때문에 그렇게들 놀라서 쩔쩔 매느냐?
머지않아 확성기를 통해 카론*의 굵은 저움이 들려오면,
속세의 숲에서 놀라 달아았던 님프의 보이지 않은 손이
너희를 안식처로 데려갈 것이다.
(대부분의 님프들은 이미 꽤 오래전부터 정식 계약을 맺고 이곳에서 일하는 중이다.)
강력한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든 견고한 방파제 너머로
켸케묵은 썩은 나룻배 대신
모터가 장착된 수백 개의 보트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인류의 과잉 번식으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졌으니,
친애하는 영혼이여, 어쩌면 이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는지.
쓰레기 더미처럼 빽빽하게 솟은 고층 빌딩은
강변의 아름다운 정경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해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승객들에게
효율적인 운행과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숙박 시설과 창고, 각종 사무실과 여행사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중.
친애하는 영혼이여, 여기 위대한 신들 가운데 하나인 헤르메스*가 있다.
그는 최소한 몇 년 앞서 미래를 내다보고, 계획을 세운다.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어느 지역에서 독재가 시작될지 철저하게 예측해서
배에 오를 승객들의 자리를 미리미리 배정한다.
스틱스 강을 건너는 운임은 무료,
단지 고풍스러운 고대 문명에 대한 감상적인 향수 때문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는 요금함이 형식적으로 놓여 있을 뿐;
"이곳에 주화 또는 동전을 넣지 마시오."
자, 거기 있는 영혼이여. 시그마* 16구역에 정박한 타우 30에 승선하라.
비록 배가 만원이어서 숨 막히게 더울지라도
당신을 위한 공간은 어딘가에 반드시 있으리라.
필연이 요구하는 대로 컴퓨터가 당신의 자리를 정확히 마련해놓았을 테니.
타르타로스*에서도 마찬가지.
넘쳐나는 예약 탓에 몸을 펴기 힘들 정도로 비좁고 갑갑하다.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옷자락은 형편없이 구겨지리라.
내 작은 유리병 안에는 레테의 강에서 퍼온 마지막 반 방울의 물이 담겨있다.
영혼이여, 명심하라.
저승에 대해 끊임없이 의구심을 갖고 확인을 해야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가질 수 있는 법이니라.
 
*스틱스 강; 그리스 신화에서 레테,  아케론과 함께 저승으로 흐르는 세 개의 강 중 하나이다.
             사자(死者)는 사공인 카론의 배를 타고 이 강을 건너 황천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카론Caron; 저승으로 가는 스틱스 강의 나룻배를 젓는 사공
*헤르메스Herme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 신들의 사자(死者)이며 상업, 웅변, 발명, 도둑 따위의 수호신
*시그마: 그리스 문자의 열여덟 번째 자모, 영어의 s에 해당한다.
*타르타로스; 그리스 문자의 열아홉 번째 자모, 영어의 t에 해당한다.
 
유토피아 / 쉼보르스카
 
 
모든 것이 명백하게 설명되어 있는 섬.
 
이곳에서는 탄탄한 증거의 토대를 딛고 서 있을 수 있다.
 
모든 길은 목적지를 향해 뻗어 있다.
 
덤불은 정답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이곳에는 혼돈에서 영원히 해방된 나뭇가지로 뒤덮인
'논리적인 가설의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우물가에는 곧고 탄탄한 '이해의 나무'가
'옳아! 이제 알겠어!'를 연방 외치는 중.
 
그 안쪽으로 '명백한 타당성의 계곡'이
드넓게 펼쳐진 푸른 숲이 있다.
 
일말의 의구심이라도 싹트기 시작하면 바람이 불어와 사방으로 흩어놓는다.
 
메아리는 부른 사람 없어도 저절로 응답하면서
세상의 비밀에 대해 기꺼이 속삭인다.
 
오른 쪽에는 '의미'가 보관된 동굴.
 
왼쪽에는 '심오한 깨달음'의 호수
바닥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온 '진실'이 수면 위로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흔들리지 않는 확신'의 언덕에 오르면
꼭대기에서 '사물의 본질'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매력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다만 해변에서 희미한 발자국이 발견될 뿐.
그것들은 한 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바다를 향하고 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 바다에 몸을 던져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는 것뿐이라는 듯.
 
삶이란 워낙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 차 있는 법이니.
 
무대 공포증 / 쉼보르카
 
 
시인, 그리고 작가.
흔히들 말한다.
시인은 작가가 아니라고, 그러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시인은 '시'를 작가는 '산문'을 쓴다?
 
산문 속에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으며, 그 속에는 물론 '시'도 포함된다.
하지만 '시'는 단지 '시'여야만 한다.
 
'시'의 탄생을 널리 알리는 플랭카드에는
화려한 아르 누보풍으로 장식된 'ㅅ'자가
날개를 단 고풍스러운 라이어* 줄에 보란 듯이 멋지게 매달려 있다.
자, 나는 무대에 들어설 때 평범하게 뚜벅뚜벅 걷기보다는
사뿐사뿐 날아서 입장해야 마땅하리라.
 
어설프게 천사의 자태를 흉내내려면
밑바닥에 무거운 가죽 밑창을 댄 낡은 장화를 신고
쿵쾅대며 뒤뚱뒤뚱 걷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벼운 맨발이 나으리라.
 
드레스 자락을 좀더 늘어뜨릴 걸 그랬나.
가방이 아니라 기다란 소맷자락에서 시를 꺼내는 건 어떨까.
성대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흥겨운 퍼레이드를 앞세우고,
웅장한 종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건 어떨가.
뎅-그-렁.
뎅-그-렁.
 
저기, 무대 위에는 금박으로 장식된 호화로운 다리를 가진
매우 정적인 탁자 한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작은 탁자 위에는 조용히 연기를 내뿜는 조그만 촛대 하나.
 
무대에 마련된 광경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촛불 아래서 '시'를 낭독해야만 할 듯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전깃불 아래서
탁, 탁, 탁 자판을 두드리며 게계적으로 써내려간 '시'를.
 
이것이 과연 '시'일까, 아닐까,
만약 '시'라면 세부적인 장르는 무엇일까.
괜스리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과연 '시' 속에 '산문'이 들어가도 괜찮은 걸까, 아닐까.
산문 속에서 나의 '시'는 어떤 평가를 받으려나.
 
그러나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보라색 술이 달린 진홍빛 커튼을 드리운
이 어두컴컴한 무대에서만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음에야.
 
*라이어; 고대 그리스의 악기로 일곱 줄로 된 수금.
 
과잉 / 쉼보르스카
 
 
새로운 별이 발견됐다.
그렇다고 하늘이 더 밝아졌다거나
부족했던 뭔가가 채워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거대하지만 동시에 까마득히 멀리 있는 별.
우리 육안에는 조그만 점으로 보일 만큼 멀고도 먼,
때로는 저보다 훨씬 작은 다른 별들보다
더 조그맣게 보이는 별.
만일 우리에게 놀라움을 음미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이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닫게 되련만,
 
별의 나이, 별의 무게, 별의 위치,
이 모든 사실이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도 남을 만큼
위대하고 심오한 것이라 해도,
하늘과 가깝게 지내는 동료들이 모두 모여
축배의 포도주 한 잔 들이켜기에 충분할 만큼
중대하고 획기적인 가치를 지녔다 해도,
지금 이 순간 천문학자와 그의 아내, 친척들과 친구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그저 '별'일 뿐.
그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가벼운 옷차림을 하고,
주로 지구와 관련된 잡담을 나누며
지구에서 생산된 땅콩을 으적으적 씹어 먹을 따름이다.
 
별이 제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가까이 있는
우리의 여인들을 위해
축배를 들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별은 언제나 좌충우돌, 계획성도 일관성도 없다.
날씨와 유행, 경기의 결과,
정책의 변화나 가계의 소득, 가치의 위기에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선동적인 과업이나 중공업 발전에도 보탬이 되지 못하고,
회담용 탁자의 번쩍이는 광택 속에 투영되는 일도 없다.
별은 우리가 열심히 헤아리는 인생의 무수한 날들보다 더 많고, 아득하다.
 
얼마나 많은 별들 아래서 사람들이 태어나는지,
찰나와도 같은 짧은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 얼마나 많은 별들 아래서 사람들이 죽어가는지,
대체 이런 질문들이 다 무슨 소용이람.
 
새로운 별들이 출현했다.
-그 별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좀 가르쳐줘.
-저 멀리 회색빛 구름이 보이지?
뭉게구름의 들쭉날쭉한 가장자리와 그보다 왼쪽에 있는 아카시아 가지,
그 사이에서 반짝이고 있잖아.
-아하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나.
 
고고학 / 쉼보르스카
 
자, 불쌍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여.
내 분야에서 진보는 이미 이루워졌다.
네가 나를 '고고학'이라 불르기 시작한 지
벌써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으므로.
 
내게는 더 이상 화석의 신들이
필요치 않다.
판독하기 쉬운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
폐허도 마찬가지.
 
네가 가진 것 중 아무거나 좋으니
내게 보여다오.
그러면 네가 누구였는지 정확히 알아맞히리라.
무언가의 안쪽, 깊숙한 바닥도 좋고,
아니면 꼭대기, 맨 윗부분도 좋다.
엔진의 파편, 브라운관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
전선의 부스러기, 산산조각 난 손가락뼈.
그보다 더 작은 일부분, 아니 더욱 더 미세한 단서여도 상관없다.
 
네가 살던 시대에는
미처 개발되지 않았던 최첨단 기술을 동원하여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소와 성분들 속에서
곤히 잠자고 있던 기억의 자취를 모두 일깨우리라.
핏자국은 영원히 남는 법.
거짓은 명백하게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 번호는 사방에 메아리 치고 있다.
모든 의혹과 의도들은 공개적으로 밝혀지리라.
 
너는 아마 믿을 수 없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침묵 속에 닫혀버린 네 목구멍 속까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음을.
먼 옛날 네가 바라보았던 풍경을
네 안구에서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네가 인생에서 죽음 말고 또 무엇을 기다려왔는지
시시콜콜 파헤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네게 남겨진 것 중에
아무것도 아닌 '무(無)'를 내게 보여다오.
나는 그 '무'를 가지고 숲과, 도로와, 비행장을 만들고,
비열함과 다정함을 되살리고,
무너진 집을 다시 복구할 테니까.
 
나에게 너의 시를 보여다오.
그러면 네게 말해주리라.
어째서 더 일찍도, 더 늦게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 너의 시가 탄생했는지를.
 
저런, 아니야, 너는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구나.
문자들이 잔뜩 써 있는 이 우스운 종이 쪼가리를 어서 치우렴.
내게 필요한 건
땅 위에 쌓아 올려진 네 둥그런 흙무덤과
옛날, 아주 오랜 옛날부터
공기 속을 유영하던 뭔가를 태우는 냄새,
오직 그것뿐.
 
모래 알갱이가 있는  풍경 / 쉼보르스카
 
우리는 그것을 모래알갱이라 알고 있지만
그 자신에게는 알갱이도 모래도 아니다.
모래 알갱이는 보편적이건, 개별적이건,
일시적이건, 지속적이건,
그릇된 것이건, 적절한 것이건,
이름 없이 지내는 익명의 상태에 익숙하다.
 
우리가 쳐다보고, 손을 대도 아무렇지 않다.
시선이나 감촉을 느끼지 못하기에.
창틀 위로 떨어졌다 함은 우리들의 문제일 뿐,
모래 알갱이에겐 전혀 특별한 모험이 아니다.
어디로 떨어지건 마찬가지.
별써 착륙했는지, 하강 중인지
분간조차 못하기에.
 
창밖에는 아름다운 호숫가 풍경,
그러나 풍경은 스스로를 보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속에서 풍경은
아무런 색깔도, 형태도,
소리도, 향기도, 고통도 감지하지 못한다.
 
호수 바닥에는 바닥이 없고,
호수 기슭에는 기슭이 없다.
호수에 고인 물은 축축하지도, 건조하지도 않다.
자신이 물결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파도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바위를 향해
한 번도, 여러 번도 아닌 게 그렇게 휘몰아친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은 하늘 아닌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 하늘에서 태양은 지지 않고, 다만 스러질 뿐.
무심하게 흐르는 구름 뒤로 태양이 숨지 않고, 몸을 가리면
그저 바람이라는 이유로 공기 속을 유영하는 바람이
구름을 이리저리 휘몰고 다닐 뿐.
 
일 초가 지나고,
두번째 일 초,
세번째 일 초,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만 삼 초일 뿐.
 
급한 전갈을 지닌 사자(使者)처럼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그것은 단지 우리의 비유일 뿐.
상상이 빚어낸 가공의 인물이 급한 듯 서두른다.
인간의 것이 아닌 어떤 소식을 전하기 위해.
 
과장 없이 죽음에 관하여 / 쉼보르스카
 
죽음은 농담을 모른다.
별이나 다리에 대해서도.
직조 기술, 채광, 곡식의 경작법이나
조선술, 빵 굽는 비법에 관해서도 알지 못한다.
 
내일을 설계하는 우리의 대화 속에
화제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자신의 마지막 말을 느닷없이 끼어넣는다.
 
자신의 본업과 직결된
다른 사항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
무덤을 파는 일도,
관을 짜는 것도,
모든 작업에 으레 수반되는 뒷정리조차도.
 
오로지 '죽이는 순간'에만 열중한 나머지
매사를 서투르게 처리하고 만다.
체계적인 계획이나 훈련도 없이,
이제 막 뭔가를 습득한 미숙하기 짝이 없는 우리들처럼.
 
대개는 눈부신 승리를 거두었지만,
실패 또한 얼마나 많았는지.
헛된 발길질과
또다시 반복되는 시도!
 
때로는 공중의  파리를 잡기에도
힘이 부치고,
몇 마리의 애벌레들과
기어가지 시합에서 패배하는 경우도 있다.
 
구근(球根)과 꼬투리,
더듬이, 지느러미, 호흡기,
짝짓기를 위한 깃털, 겨울나기에 필요한 털가죽,
죽음이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
이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죽음에
업무가 잔뜩 밀렸음을 경고하고 있다.
 
적개심만 가지고는 충분치 않다.
전쟁이나 테러를 동원한 우리의 지원 사격도
아직까진 턱없이 부족하다.
 
심장은 알 속에서 힘차게 고동친다.
갓난아기의 골격은 나날이 성장한다.
 
씨앗은 두개의 떡잎으로 싹을 틔우고,
때로는 지평선에 우뚝 솟은 거대한 나무로 무럭무럭 자라난다.
 
스스로가 전능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전혀 전능하지 않다는
살아 있는 증거.
 
어차피 삶에서는
단 한순간의 불멸도
기대할 수 없다.
 
죽음은
언제나 간발의 차이로 뒤늦게 찾아드는 법.
 
보이지 않는 문의 손잡이를
움켜잡고 헛되이 흔든다.
정해진 시간 안에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루려 발버둥 쳐도
피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법이련만.
 
우리 조상들의 짧은 생애 / 쉼보르스카
 
서른 살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정말 드물었다.
노년기는 단지 돌이나 나무의 특권일 뿐.
유년기는 새끼 늑대가 무럭무럭 자라듯 순식간에 종료되었다.
삶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최대한 서둘러야만 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첫눈이 내리기 전에.
 
열세 살에 자식을 낳은 엄마들,
갈대숲에서 새 둥지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가는 열네 살의 사냥꾼들.
어부들을 휘하에 거느린 스무 살의 우두머리들.
그들은 막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벌써 사라졌버렸다.
불멸은 종말 속에 너무도 빨리 융화되었으니,
마녀들은 몇 개 안 남은 쓸만한 이빨을 갈면서
저주 섞인 가래침을 내뱉었다.
아버지의 눈앞에서 아들은 남자가 되었다.
할아버지의 텅 빈 동공 속에서 손자가 태어났다.
 
애초부터 나이 따위를 헤아릴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다만 그물과 냄비와 헛간과 도끼의 숫자를 세었을 뿐.
밤하늘의 보잘것없는 별들에겐 그처럼 관대하기만 하던 세월이
그들에겐 빈손을 불쑥 내밀었다가는
그것마저 아깝다는 듯 금세 거둬들이고 말았다.
한 발자국 가까이, 두 발자국 가까이
어둠 속에서 샘솟았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빛나는 강물을 따라서.
 
잃어버린 시간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미뤄진 질문도, 때늦은 계시도 없었다.
단지 타이밍을 정확히 맞춘 생의 체험만이 있었을 뿐.
지혜는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기 전에 분명히 알아야만 했다.
모든 소리가 울려 퍼지기 전에 똑똑히 들어야만 했다.
 
선과 악-
그들은 아는 게 별로 없었지만, 실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악이 승리하면, 선은 자취를 감춘다는 걸,
선이 모습을 드러내면, 악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는 걸.
그러므로 기쁨 곁에는 언제나 공포가 따르고,
절망에는 고요한 희망의 그림자가 깃들기 마련이란 걸.
인생이란 아무리 긴 듯해도, 언제나 짧은 법.
거기에 뭔가를 덧붙이기엔 너무나도 짧은 법.
 
2 0세기의 마지막 문턱에서 / 쉼보르스카
 
우리의 20세기는 이전의 다른 세기들보다
훨씬 발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입증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모든 연도에 일련번호가 매겨졌다.
흔들리는 걸음걸이,
숨가쁜 호흡.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들이
이미 너무도 많이 일어났다.
또한 기대했던 수많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20세기는 행복을 향해서,
따뜻한 봄을 향해서 전진할 예정이었다.
 
공포는 골짜기 너머, 산 너머,
멀리멀리 내동댕이칠 예정이었다.
진실은 거짓보다 한발 앞서
목표 지점에 도달할 예정이었다.
 
예기치 못했던 몇 가지 비극이
우리를 엄습했다.
전쟁과 굶주림.
그와 유사한 다른 재앙들----
 
무방비 상태의 무력한 사람들을
존중할 예정이었다.
혹은 그에 준하는 다른 가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생을 즐기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임무를
떠맡은 것과 매한가지.
 
어리석다는 건 결코 우스운 일이 아니다.
지혜롭다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희망,
그것은 더 이상 저 풋풋한 어린 소녀도,
그와 비슷한 그 무엇도 아니리니, 애석하기 짝이 없구나.
바야흐로 신은 인간이 선하면서,  동시에 강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수긍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선함과 강함은 여전히 공존하지 못한다.
선한 인간은 독하지 못하고, 독한 인간은 선하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누군가 내게 편지로 물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이들에게 묻고 싶었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또다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앞에서 내내 말했듯이,
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질문보다
더 절박한 질문은 없다.
 
시대의 아이들 / 쉼보르스카
 
 
우리들은 시대의 아이들,
바야흐로 시대는 정치적.
 
너와, 우리와, 너희의 모든 일들,
낮과 밤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이 모든 것이 정치적.
 
원하건 원치 않건
우리의 유전자에는 정치적인 과거가,
우리의 피부에는 정치적인 색채가,
우리의 눈동자에는 정치적인 양상이 담겨 있다.
 
무엇에 대해 말하건, 늘 반론이 돌아오고,
무엇에 대해 침묵하건, 늘 웅변으로 돌변하며,
마지막엔 걸국 정치적인 내용으로 귀결되어진다.
 
원초적인 밀림을 지날 때도
우리는 정치적인 토대 위에서
정치적인 발걸음을 옮긴다.
 
비정치적인 시 역시 사실은 정적일 따름이니
하늘 저편에는 휘영청 달이 밝건만,
그 아래 사물들은 달빛에 물들지 않았다.
여기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다: 죽느냐 사느냐.
이 물음은 과연 무슨 뜻일까? 어디 한번 대답해봐요, 내 사랑.
결국 여기에도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있다.
 
반드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더라도
모든 사물은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받았다.
'석유'나 '단백질 식품' 또는 '가공 원료'로 존재할지언정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정치적이다.
 
아니면 '회담 탁자'여도 무방하리라.
몇 달씩 모여 탁자 모양에 대해 다투고:
그 주변에 둘러앉아 삶과 죽음에 대해 심각한 협상을 나누는
둥그렇거나 혹은 네모난 '회담 탁자'
 
그동안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고,
동물들은 죽었고,
집들은 불탔고,
들판은 폐허가 되었다.
좀처럼 정치적이지 않았던
아득한 태고의 그 어떤 시대처럼.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 쉼보르스카
 
 
 
어쩌면 이 모든 일들이
조그만 실험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도 몰라
밝은 대낮 한 개의 커다란 불빛 아래서,
어두운 밤, 수억만 개의 불빛 아래서.
 
어쩌면 우리들은 실험용으로 제작된 특별한 세대인지도 몰라.
유리병 속에서 또 다른 유리병으로 옮겨지고.
삼각 플라스크에 담겨져 이리저리 뒤섞이고,
눈보다 더 정교한 그 무엇에 의해 면밀히 관찰되고,
그러다가 결국엔 각각 핀셋으로 접혀서
들어 올려질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영 딴판일지도 몰라.
아무런 간섭도, 훼방도 없을지 몰라.
모든 변화는 정해진 계획에 따라
스스로 생겨나고, 스스로 움직일 지도 몰라.
그래프의 눈금은 미리 예측한 지그재그의 윤곽을
천천히, 정확하게 아로새겨 나갈지도 몰라.
 
지금까지 그래왔듯 우리에겐 흥미로운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을지도 몰라.
감시용 모니터를 작동시키는 일은 좀처럼 없을지도 몰라.
단지 전쟁이 일어났을 때만, 그것도 큰 규모일 경우에만,
혹은 지구의 동토(凍土) 위로 미확인 비행 물체가 출현했을 때만,
아니면 A지점에서 B지점까지 대규모의 민족 이동이 발견된 상황에만.
 
어떠면 정반대일지도 몰라.
그것에선 사람들이 자질구레한 사건들에 관심을 보일지도 몰라.
자, 보라구! 거대한 화면 속에서 어린 소녀가
소매에 단추를 달기 위해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있잖아.
마침내 경보가 울리면
직원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겠지.
박동하는 조그만 심장을 가냘픈 몸 속에 품고 있는
저 사랑스러운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손에 들고서도
얼마나 의연하게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지.
누군가가 기쁨에 넘쳐서 소리칠 거야.
"자, 어서 가서 보스에게 전하시오.
와서 직접 보시라고!"
 
공짜는 없다 / 쉼보르스카
 
공짜는 없다. 모든 것은 다 빌려온 것이다.
내 목소리는 내 귀에게 커다란 빚을 졌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대가로
스스로를 고스란히 내놓아야 하며,
인생에 대한 대가로 인생을 바쳐야 한다.
 
자. 여기 모든 것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
심장은 반납 예정이고,
간도 돌려주기로 되어 있다.
물론 개별적인 손가락과 발가락도 마찬가지.
 
계약서를 찢어버리기엔 이미 늦었다.
내가 진 빚들은 전부 깨끗이 청산될 예정.
내 털을 깍고, 내 가죽을 벗겨서라도.
 
나는 채무자들로 북적대는
세상 속을 조용히 걸어 다닌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날개에 대한 부채를 갚으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중.
또 다른 이들은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나뭇잎 하나하나마다 셈을 치르는 중.
 
우리 안의 세포 조직은
송두리채 채권자의 손으로 넘어가버렸다.
솜털 하나, 줄기 하나도
영원히 간직할 순 없는 법.
 
명부의 기록은 모두 다 정확하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는 빈털터리 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무(無)의 상태로 남겨질 예정이다.
 
나는 기억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내 이름이 적혀 있는 이 복잡한 청구서를
스스로 펼쳐 보게 되었는지.
 
이 거래에 반대한 지금 거절 증서를
우리는 '영혼'이라 부른다.
이것은 명부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유일한 항목이기도 하다.
 
슬랩스틱 코미디 / 쉼보르스카
 
만일 천사가 있다면,
절망으로 끝난 희망에 대한
우리의 소설을 그들이 과연 읽고 싶어 할는지
의심스럽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우리의 시를 외면할 것 같아서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의 연극 속에 등장하는
비명과 경련은-짐작컨대-
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리라.
 
천사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비번을 맞은 천사들,
그러니까 비인간적인 그 존재들은
우리를 보면서
무성영화 시대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떠올리리라.
 
옷깃을 갈기갈기 쥐어뜯고,
고통으로 이를 갈며,
탄식하고 울부짖는 자들보다는
-적어도 내 생각으론-
물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지푸라기 대신 가발을 움켜잡거나
배고파서 자신의 구두끈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는
저 불쌍한 사내를
훨씬 선호하리라.
 
허리에서 위쪽으로는 뜨거운 가슴과 열정,
하지만 그 아래 바짓가랑이 속에는
겁먹은 생쥐 한 마리.
오, 그래,
그들은 틀림없이 손뼉 치며 환호하리라.
 
끊임없이 계속되던 무모한 추적은
도망자들을 피해 도망가는 탈주로 뒤바뀐다.
터널의 끝에서 기다리는 한 줄기 빛은
호랑이의 눈동자임이 밝혀진다.
백 가지 재앙은
백 가지 자기 심연 위를 구르는
백 가지 익살스러운 재주넘기로 탈바꿈한다.
 
만일 천사가 존재한다면
-부디 바라건대-
그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하리라.
공포 속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면서도
모든 것이 완벽한 적막 속에 자행되기에
차마 '살려달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그 아슬아슬한 쾌락의 본질을.
 
용기 내어 추측해보건대
아마도 그들은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신나게 박수를 치리라.
그들의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은
절대로 슬퍼서가 아니다. 그저 너무 많이 웃었기 때문이다.
 
사건들에 관한 해석 제1안 / 쉼보르스카
 
 
만일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다면,
우리는 아마도 오랫동안 망설였으리라.
 
우리에게 제공된 육체는
어딘가 불편하고, 제대로 맞지 않아
그만 흉하게 망가져버렸다.
 
허기를 달래라고 제공된 음식들은
도리어 우리를 메스껍게 했다.
수동적으로 세습된 각종 성향들과
분비샘의 횡포는
우리를 질리게 만들었다.
 
우리를 에워싸기로 한 세상은
끊임없이 썩어 들어갔다.
그 속에서 원인에 대한 결과가 격노하여 함성을 질렀다.
 
우리에겐 개개인의 운명을 감시하라는
사명이 주워졌지만
무한한 슬픔과 공포 때문에
다수가 거부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야기되었다.
죽은 아기를 낳기 위해
출산의 고통을 감내할 필요가 있을까,
만일 결코 뭍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뱃사람이 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들은 죽음에 동의했다.
그러나 모든 유형에 다 찬성한 것은 아니다.
사랑이 우리를 매료시켰다.
그러나 모든 사랑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사랑만 그렇다.
 
바다가 시시각각 변하듯
예술 또한 유한한 것이라고
음악의 신 뮤즈는 우리에게 조심스레 경고했다.
 
모두가 이웃 나라의 간섭이 없는 조국을 원하며
전쟁과 전쟁 사이 휴전 기간 동안에
태어나기를 갈망했다.
우리 중 아무도 권력을 장악하거나
혹은 그것에 복종하기를 원치 않았다.
자신 혹은 타인의 헛된 환상으로 인해
희생양이 되기를 바라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행렬이나 군중 속으로,
아니 한술 더 떠, 이미 지구상에서 사라져가는 부족들 속으로
뛰어들기를 원하는 지원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역사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순 없었으리라.
 
바로 그때 너무 일찍 빛을 발한
몇 개의 별들이
느닷없이 소멸되고, 식어버렸다.
결정을 내리기엔 최적이 시간이다.
 
수많은 불길한 징조 속에서
마침내 후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몇몇은 탐험가 또는 의사가 되려 했고,
몇몇은 인정받지 못하는 고독한 철학자를 원했다.
이름 없는 정원사를 꿈꾸는 사람도,
예술가나 음악가 지망생도 있었다.
-더 이상 다른 신청자는 없었지만
아무튼 모두가
자신의 바람을 이루지는 못했다.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하고,
신중히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금방 되돌아와야 하고,
또 반드시 돌아와야 할
짧은 여행을 제안 받았다.
 
영원성이 철저히 제거된.
유한한 세월 속으로의 여행,
단조롭고 한결같은,
동시에 시간의 순환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짝이 없는 곳으로의 여행,
어쩌면 기회는 더 이상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문득 우리는 의구심을 느꼈다.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해서,
과연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한발 앞서 내리는 결정을
과연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망각 속에 던져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만일 선택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저 아래, 저곳에서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우리는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는 이미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무모한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었다.
연약한 갑초가
바위틈에 달라붙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도
결코 자신을 바위에서 떼어놓지 못할 거라는
어리석은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서,
 
조그만 동물 하나가
굴속에서 열심히 구멍을 파고 있었다.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활기와 희망을 품고서.
 
순간 우리 스스로가 소심하고, 보잘것없고,
우습기 짝이 없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저 세상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장 참을성이 부족한 이들이 제일 먼저 떠났다.
그들은 그곳에서 첫번째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래, 그것은 틀림없는 생생한 불꽃이었다.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현실의 강기슭에서
활활 불을 피웠다.
 
그들 중 몇몇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 귀향길에 올랐다.
그러나 끝내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과연 그들의 손에는 저 세상에서 쟁취한 뭔가가 들려 있었을까?
정말로 그랬을까?
 
이것은 커다란 행운 / 쉼보르스카
 
이것은 커다란 행운
우리 스스로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건.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눈군가가 아주 긴 세월 동안,
적어도 이 세상보다는 더 오래된
까마득한 옛날의 그 시점으로 돌아가
항구히 존재해야만 하리.
 
한계투성이에다
말썽을 일으키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육신 따위는 훌쩍 벗어던질 수 있어야 하리.
 
연구에 완벽을 기하기 위해서,
보다 선명한 영상을 위해셔,
결정적인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
모든 것들을 재촉하고, 옭아매는
시간의 한계쯤은 당당히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하리.
 
자, 이런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세부적인 사랑이나 자질구레한 시간들과는
영원히 작별의 인사를 나누시오,
 
요일을 계산하고 따져보는 것쯤은
얼마든지 무의미한 행동으로 치부할 수 있어야 하리.
 
우체통에 편지를 던져 넣는 일 정도는
젊은 날의 어리석은 객기로 간주할 수 있어야 하리.
 
'잔디를 밟지 마시오'라는 표지판 따위는
정신 나간 소리쯤으로 무시할 수 있어야 하리.
 
순간 / 쉼보르스카
 
초록빛으로 물든 언덕길을 오른다.
출발, 그 풀밭 위 작은 꽃들,
그림책 삽화에서 본 듯한 풍경,
안개 낀 하늘엔 어느새 푸른 기운이 감돌고
저 멀리 또 다른 봉우리가 적막 속에 펼쳐진다.
 
고생계(古生界)도 중생계(中生界)도 애초에 없었던 듯
스스로를 향해 포효하는 바위도,
심연의 융기도 없었던 듯,
번쩍이는 섬광 속엔 낮의 숨결을 찾을 길 없다.
 
뜨거운 열병 속에서도
얼음장 같은 오한 속에서도
아직 평원은 여기까지 떠밀려오지 않은 듯,
 
바다가 소용돌이치고 해안선이 산산조각 나는 것도
오로지 딴 세상에서나 벌어지는, 낯선 일인 듯.
 
현지 시각 9시 30분,
모든 것은 약속대로 정중하게 그 자리에 놓여 있다.
골짜기의 시냇물은 시냇물의 모습으로 한결같이.
오솔길은 오솔길의 모양으로 언제나 그렇게.
숲은 숲의 형상을 갖추고 영원히 그 자리에.
언덕 위를 나는 새들은 언덕 위를 나는 새의 역할에 충실하게.
 
시선이 닿는 저 너머까지
이곳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긴 찰나의 순간.
지속되기를 모두가 그토록 염원했던
지상의 무수한 시간 중 하나.
 
무리 속에서 / 쉼보르스카
 
나는 바로 이러이러한 사람.
그것은 모든 우연이 그러하듯
이해할 수 없는 우연.
 
다른 이들이 내 조상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다른 둥지에서
날아올랐을 수도.
다른 그루터기에서
다른 껍데기를 쓰고
기어 나왔을 수도 있었을 텐데.
 
자연의 옷장에는
꽤나 많은 옷들이 걸려 있다.
거미, 갈매기, 들뒤의 의상.
모든 것이 맞춘 것처럼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닳아서 해질 때 까지
각자 주어진 의상을 열심히 입는다.
 
나 역시 스스로 선택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지금보다는 훨씬 덜 개별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었기에.
물고기 떼나 개미집, 윙윙대는 벌 떼의 일부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속의 한 조각으로.
 
지금보다는 훨씬 덜 행복한
존재가 될 수도 있었기에.
누군가의 모피를 위해, 혹은 명절 음식용으로
사육될 수도 있었기에.
유리 상자 속에 갇혀 그 안에서 헤엄쳐 다니는
그 무엇이 될 수도 있었기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불길 속에
속수무책 대지에 뿌리박은 한 그루의 나무.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휩쓸려
무자비하게 짓밟혀진 풀잎.
 
누군가에게는 찬란하게 보일 수도 있는
어두운 별빛 속을 돌아다니는
수상쩍은 사람이 될 수도 있었기에.
 
만일 내가 사람들에게 단지 공포의 대상이거나 혐오감.
혹은 동정심이나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면?
 
지금 내가 속한 종족이 아닌
전혀 다른 종족으로 세상에 태어났고,
앞길이 막막하게 막혀버렸다면?
 
지금껏 운명은
내게 자애로웠다.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들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자꾸만 뭔가가 견주고 싶어 하는
내 열망이 거세당할 수도 있었다.
 
나는 내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
일말의 의구심도 없이
이것은 내가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름 / 쉼보르스카
 
구름을 묘사하려면
급히 서둘러야만 하지.
순식간에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형상으로 변하기에.
 
구름의 속성이란
모양, 색조, 자세, 배열을
한순간도 되풀이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기억할 의무가 없기에
사뿐히 현실을 지나치고,
 
아무것도 증언한 필요 없기에
곧바로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네.
 
구름과 비교해보면
인생이란 그래도 확고하고 안정적인 것.
상당히 지속적이고, 꽤 영원하네.
 
구름 곁에서는 바윗덩이조차도
의지할 수 있는 형제처럼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네.
그에 비하면 구름은 마치
변덕스러운 먼 사촌 누이 같네.
 
인류여, 원한다면 계속해서 존재하라.
그 다음엔 차례차례 죽는 일만 남았으니.
구름에겐
이 모든 것이
조금도 낯설거나 이상스럽지 않다네.
 
너의 전 생애와
아직은 못다한 나의 생애 너머에서,
구름은 예전처럼 우아하게 행진을 계속하네.
 
구름에겐 우리와 함께 사라질 의무가 없다네.
흘러가는 동안 눈에 띄어야 할 필요도 없다네.
 
/최성은 역.
 
수화기 / 쉼보르스카
 
잠에서 깨어나는 꿈을 꾼다,
전화벨 소리가 들려오기에.
 
죽은이가 내게 전화한다고 굳게 믿는
꿈을 꾼다.
 
수화기를 들기 위해 손을 내미는
꿈을 꾼다.
 
그런데 늘 사용하던 그 수화기가 아니다.
갑자기 무거워졌다.
마치 어떤 것에 꽉 매여 있거나
어딘가에 깊숙이 파묻혔거나
무언가가 뿌리를 꽁꽁 묶어놓은 것처럼.
수화기를 들어 올리려면
지구 전체를 끌어당겨야만 하리라.
 
쓸데없는 일에 힘을 쓰며 쩔쩔매는
꿈을 꾼다.
 
적막이 찾아오는 꿈을 꾼다.
전화벨 소리가 잠잠해졌기에
 
스르르 잠들었다가
또다시 벌떡 깨는
꿈을 꾼다.
 
가장 이상한 세 단어 / 쉼보르스카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식물들의 침묵 / 쉼보르스카
 
나와 너희들 사이의 일방적인 낮익힘은
그럭저럭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구나.
 
나는 잎이 뭔지, 꽃잎과 이삭, 솔방울 줄기가 어떤 모양인지.
사월이나 십이월에 너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잘 알고 있어.
 
너희는 내 관심따위엔 아무런 반응이 없지만
나는 부러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인 채
너희들 중 몇몇을 정성껏 들여다보곤 하지.
 
단풍, 우엉, 우산이끼.
겨우살이, 히스, 향나무, 물망초,
너희는 나한데 이름으로 불리지만,
너희에게 나는 아무 이름도 없어.
 
우리는 함께 여행을 하고 있는 거란다.
동승한 사람들끼리는 의례 이야기를 나누는 법.
최소한 날씨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거나
스쳐 지나가는 역들에 대해서 떠들곤 하지.
 
우리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화제가 부족하진 않을 거야.
우리를 지탱해주는 건 같은 별이고,
같은 법칙에 따라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니까.
자신만의 방법으로 뭔가를 이해하려 한다는 점.
우리가 모르는 것들조차도 서로 많이 닮았으니까.
 
뭐든 물어봐도 좋아. 최대한 열심히 설명해줄께.
내 두 눈으로 무얼 보고 있는지.
어째서 내 심장이 고동치는지.
왜 내 육신은 대지에 뿌리박혀 있지 않은지.
 
그러나 하지도 않은 질문엔 대답할 도리가 없잖니.
게다가 너희에게 나라는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의미라면 더더욱 그렇지.
 
덤불, 관목, 잔디, 골풀-
내가 너희를 향해 속삭이는 건 전부 혼잣말이구나.
너희는 좀처럼 귀 기울이려 하지 않으니.
 
꼭 필요한 줄 알면서도 불가능한 게 바로 너희들과의 대화.
황망한 삶에서 시급한 줄 알면서도
기약 없이 미루다 끝내 실현되지 못하는.
 
어린 여자아이가 식탁보를 잡아당긴다 / 쉼보르스카
 
여자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 지 일 년 남짓 되었다.
모든 것이 미리 조정되고, 통제되어질 수 없는
이 세상에.
 
오늘 시도하는 실험은
제 스스로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사물들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그들이 밀고, 당기고,
들어 올리고, 자리를 옮기는 일을
도와주어야만 한다.
 
물론 모든 사물이 현재 위치에서 이탈하기를 원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장롱과 찬장, 단단한 벽과 탁자는 꿈쩍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고집 센 탁자 위에 깔린 식탁보는
-만일 끝 자락이 제대로만 손에 잡힌다면-
여행을 떠나려는 의지를 한껏 드러내 보이고 있다.
 
식탁보 위에는 유리잔, 접시들,
우유병, 숟가락, 사발이 이리저리 놓여 있어
흔들고픈 욕망을 일렁이게 만든다.
 
그것들이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비틀거릴 때
과연 어떤 움직임을 택할지
너무나 궁금하다.
천장에서 정처 없이 헤매 다닐까?
등잔 근처를 빙글빙글 비행할까?
창턱을 껑충 뛰어넘어 나무를 향해 날아갈지도?
 
위대한 과학자 뉴턴 역시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이봐요, 뉴턴 선생님, 하늘에서 내려다보다가 손이나 흔들어주시죠.
 
이 실험은 반드시 행해져야 한다.
꼭 그렇게 되리라.
 
추억 한토막 / 쉼보르스카
 
한창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우리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말았네.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낸 소녀,
아, 무척이나 아름다웠네.
그녀의 자태가 눈부시게 황홀했기에
우리는 무심히 휴가를 즐길 수만은 없었다네.
 
바시아는 넋을 잃고 바라보는 남편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고,
크리스티나는 반사적으로 남편의 손을 꼭 잡았네.
순간 나는 생각했지: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리라.
-당분간 여기 오지마
며칠 동안 내내 비가 올 거래.
 
과부인 아그네슈카만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그 사랑스러운 소녀를 반겼다네.
 
웅덩이 / 쉼보르스카
 
어린 시절 두려움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언제나 웅덩이를 피해 가곤 했다.
소나기가 내리고 난 뒤 새로 생긴 것일수록 더욱 조심했다.
겉보기에는 서로 비슷비슷하지만
개중에는 한없이 깊은 것도 있으니까.
 
한 걸음 내닫는 순간 몸 전체가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도약하는 순간, 바닥으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
좀더 깊숙이 밑바닥으로
수면에 비추어진 구름 저편까지
아니 그보다 더 멀리.
 
시간이 지나면 웅덩이는 마르고,
내 앞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러나 나는 어딘가에서 영원히 덫에 걸려버렸다.
공간 속으로 끄집어내지 못한 비명 소리와 더불어.
 
먼 훗날에야 깨달았다.
세상의 법칙 속에는
항상 운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슬아슬 불운이 덮쳐올 듯해도
꼭 실제로 일어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첫사랑 / 쉼보르스카
 
사람들은 말한다.
첫사랑이 가장 소중하다고.
매우 낭만적이긴 하지만
내 경우는 아니다.
 
우리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가 없어지고,
어떤 일이 일어났다 사라져버렸지만.
 
자질구례한 추억의 물건들을 만져보거나
리본도 아닌 노끈으로 아무렇게나 묶인
편지 뭉치를 열어볼 때도,
내 손은 결코 떨리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단 한번의 만남
차가운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자 나눈 몇 마디 의례적인 대화.
 
다른 사랑들은
지금껏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숨 쉬고 있다.
그러나 내 첫 사랑은 호흡이 가빠 숨을 내쉴 수조차 없다.
 
그렇지만 그게 바로 내 첫사랑.
감히 다른 사랑이 못하는 걸 할 수 있으니-
기억조차 나지 않고,
꿈에도 깃들지 않는 그 사랑은
나를 죽음에 익숙하게 만들어버린다.
 
영혼에 관한 몇 마디 / 쉼보르스카
 
우리는 아주 가끔씩만 영혼을 소유하게 된다.
끊임없이, 영원히 그것을 가지는 자는
아무도 없다.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일 년 그리고 또 일 년,
영혼이 없이도 시간은 그렇게 잘만 흘러간다.
 
어린 시절 이따금씩 찾아드는
공포나 환희의 순간에
영혼은 우리의 몸속에 둥지를 틀고
꽤 오랫동안 깃들곤 했다.
때때로 우리가 늙었다는
섬뜩한 자각이 들 때도 그러하다.
 
가구를 움직이거나
커다란 짐을 운반할 때
신발 끈을 꽉 동여매고 먼 거리를 걷거나
기타 등등 힘든 일을 할 때는
절대로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다.
 
설문지에 답을 적거나
고기를 썰 때도
대개는 상관하지 않는다.
 
수천 가지 우리의 대화 속에
겨우 한 번쯤 참견할까 말까,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원체 과묵하고 점잖으니까.
 
우리의 육신이 쑤시고 아파오기 시작하면
슬그머니 근무를 교대해버린다.
 
어찌나 까다롭고 유별난지
우리가 군중 속에 섞여 있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긴다.
하찮은 이익을 위해 목숨을 거는 우리들의 암투와
떠들썩한 음모는 영혼을 메스껍게 한다.
 
기쁨과 슬픔
영혼에게 이 둘은 결코 상반된 감정이 아니다.
둘이 온전히 결합하는 일치의 순간에만
우리 곁에 머무른다.
 
우리가 그 무엇에도 확신을 느끼지 못할 때나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는 순간에만
영혼의 현존을 기대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물 가운데
추가 달린 벽시계와 거울을 선호한다.
아무도 쳐다봐주지 않아도
묵묵히 제 임무를 수행하므로.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갈 건지 아무 말도 않으면서
누군가가 물어봐주기를 학수고대한다.
 
보아하니
영혼이 우리에게 그러한 것처럼
우리 또한 영혼에게
꼭 필요한 그 무엇임에 틀림없다.
 
이른 시간 / 쉼보르스카
 
나 아직 잠들어 있다.
그동안 다음과 같은 일들이 일어난다.
창문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어둠은 회색빛으로 바랜다.
방이 흐릿한 공간 너머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창백하고 불안정한 광선들이 저편을 요청한다.
 
모든 일들이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진행한다.
이것은 엄연한 의식이므로.
천장과 벽 사이의 평명에 빛이 스며들면
어떤 것으로부터 다른 어떤 것이,
오른 쪽으로부터 왼쪽으로,
형상의 선명한 분리가 시작된다.
 
사물과 사물 사이 비좁은 간격에서 먼동이 터오고,
유리컵과 문고리에서
첫번째 섬광이 반짝 빛난다.
모두가 단지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명확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어제 어디론가 밀려났던 그것,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던 그것이
지금은 확고한 틀 안에 담겨져 있다.
아직 세부적인 항목들만
시각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았을 뿐.
 
그러나 주의, 또 주의!
여러 가지 징후에 따르면 색깔은 반드시 되돌아오는 법.
심지어 가장 사소한 존재들조차 자신의 고유한 빛깔과
그림자의 음영을 회복하는 법.
 
드물지만 이따금 날 놀라게 하는 그것은 꼭 필요한 일.
일상적으로 나는 '때늦은 증인'의 역할을 연기하며 늦은 잠에서 깨어난다.
이미 기적이 일어나고 난 뒤에.
이미 일과가 확정되고 난 뒤에.
새벽이 아침으로 멋지게 탈바꿈하고 난 뒤에.
 
통계에 관한 기고문 / 쉼보르스타
 
백 명의 사람들 가운데
 
모든 것을 아주 잘 하는 사람
-쉰둘
 
매 순간 확신이 없는 사람
-나머지 전부 다
 
비록 오래가진 못할지라도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
-최대한 많이 잡아 마흔아홉
 
달리 행동하는 법을 몰라
늘 착하기만 한 사람
-넷, 아니, 어쩌면 다섯
 
시기심 없이 순수하게 찬사를 보낼 줄 아는 사람
-열여덟
 
누군가에 대한, 혹은 무언가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
-일흔 일곱
 
진심으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
-최대한 스물 하고 몇 명
 
혼자 있을 땐 전혀 위협적이지 않지만
군중 속에서는 사나워지는 사람
-틀림없이 절반 이상
 
주변의 강압에 의해
잔인하게 돌변한 사람
-이 경우는 근사치조차 모르는 편이 나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람
-소  잃기 전에 외양간 고치는 사람보다
단지 몇 명 더 많을 뿐
 
인생에서 몇 가지 물건들 말고는
아무것도 건질 게 없는 사람
-마흔
(내가 틀렸길 간절히 바라지만)
 
불빛도 없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
-여든 셋
(지금이건, 나중이건)
 
연민을 느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
-아흔아홉
 
죽게 마련인 사람
-백 명 중에 백 명 모두
이 수치는 지금껏 한번도 바뀐 적이 없음.
 
9월 11일자 사진 / 쉼보르스카
 
그들은 불타는 계단에서 아래를 향해 뛰어내렸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몇 명에서
조금 더 많거나 아니면 적거나.
 
사진은 그들을 어떤 생에서 멈춰 세웠다.
대지를 향하고 있는 미지의 상공에서
그들의 현재를 온전히 포착했다.
 
현재로선 모든 것이 무사하다.
각자의 얼굴도 그대로고,
몸속에서 빙글빙글 순환 중인 피도 그대로다.
 
머리카락이 엉클어지고,
주머니에서 열쇠와 동전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기까지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그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제 막 열린
어떤 공간의 가장자리.
공기가 유영하고 있는 한정된 구역 내에서.
 
내가 지금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단 두 가지뿐.
그들의 수직 비행에 대해 구구절절 묘사하거나,
아니면 마지막 문장을 보태지 않고 과감히 끝을 맺는 것.
 
목록 / 쉼보르스카
 
질문 목록을 만들어보았다.
솔직히 답변을 기대하진 않았다.
대답을 듣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거나,
아니면 그 대답을 이해할 여력이 내게는 부족하므로.
 
질문 목록은 매우 길며,
중요한 사안과 덜 중요한 사안을 포함하고 있다.
당신들을 따분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에
몇 가지만 발표하겠다.
 
무엇이 진실이었는가.
행성, 혹은 행성의 대체 공간에 마련된
이 공연장에서,
입장권과 퇴장권을
한꺼번에 요구하는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내 비록 생생하게 현존하는 다른 세상들과
비교할 수 있을 때를 놓쳐버렸지만
아무튼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는
현실 속의 이세상은 어떠한가.
 
내일자 신문에는
무엇이 씌어 있을까.
 
전쟁은 언제 끝나며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까.
 
네게서 훔쳐간-내가 잃어버렸던
소중한 반지는
누구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을까.
 
존재하면서 동시에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위한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
 
이 열 명의 사람들은 또 어떤가-
우리는 정말로 아는 사이였을까.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M이 내게 애써 말하려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
 
나는 왜 옳은 것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옳지 않은 것을 선택했을까.
더 이상 혼동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내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잠들기 직전에 끼적였던
몇몇 질문들은
아침에 눈을 뜨고 나니
글씨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때로 나는 의심을 품곤 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타당한 기호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질문들 또한
언젠가는 나를 버리고 홀연히 사라지리라.
 
모든 것 / 쉼보르스카
 
"모든 것"-
이것은 뻔뻔스럽고 주제넘기 짝이 없는 낱말이다.
따옴표 안에 집어넣고, 매우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마치 빼먹은 건 하나도 없다는 듯,
집중하고, 아우르고, 수용하고 포함하는 척
그럴듯하게 연기를 하고 있다.
그저 순간적인
폭풍의 끝자락에 불과할 뿐이면서.
 
부재 / 쉼보르스카
 
내 어머니가
즈둔스카 볼라 출신의 B모 씨와
결혼할 가능성은 절대로 희박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면-그건 내가 아닐 것이다.
그 애는 사람 이름이나 얼굴,
혹은 처음 듣는 멜로디를 외우는데
나보다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척 보기만 해도 새의 품종을 알아맞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어 점수는 형편없지만
물리나 화학에서 뛰어난 점수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내 작품들보다 훨씬 흥미로운 시를
남몰래 끼적거릴지도 모른다.
 
같은 시각, 내 아버지가
자코파네 출신의 R 모 씨와
결혼할 가능성은 절대로 희박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딸이 태어났다면-그건 내가 아닐 것이다.
그 애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는 일에 훨씬 고집스러울지도 모른다.
두려움 없이 깊은 물에 첨벙 뛰어들지도 모른다.
여론의 동요에 쉽게 흔들릴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지만,
책 속에 파묻혀 지내는 적은 거의 없고,
주로 마당이나 운동장에서 사내아이들과 공을 차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두 아이는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짝 친구는 절대로 아닐 테고,
혈연관계도 아닐 테니,
단체 사진에서는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리라.
 
"이봐요, 여학생들, 이쪽에 서보세요."
-사진사가 외친다-
"저기 작은 학생은 앞으로, 거기 키 큰 학생은 뒷줄로.
내가 신호를 하면 다들 예쁘게 웃으세요.
자, 마지막으로 인원수를 점검해보죠.
모두 다 있는 거죠?"
 
"네 아저씨, 모두 다 있어요."
 
ABC / 쉼보르스카
 
이제 절대로 알 수 없으리라.
나에 대해서 A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B는 결국 나를 용서했는지.
어찌하여 C는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했는지.
D의 침묵에 E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했는지.
F가 기대했던 건 무엇이었는지. (혹시라도 기대를 했었다면)
모든 걸 잘 알면서도 G는 왜 모른 척했는지.
H는 무엇을 숨기고 있었는지.
I가 덧붙이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 어떤 의미라도 남겼는지.
J와 K, 그리고 나머지 알파벳에게.
 
우리가 없는 이튿날에 / 쉼보르스카
 
아침에는 안개가 끼고 서늘하겠습니다.
서쪽에서 비구름이 몰려와 사야가 흐려지겠습니다.
도로는 미끄럽겠습니다.
 
한낮에는
북쪽에서 다가오는 고기압의 영향으로
곳에 따라 점차 날씨가 개는 곳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강한 돌풍이 불어와
천둥 번개가 칠 수도 있겠습니다.
기온은 급격히 떨어지고 기압은 오르겠습니다.
 
내일은
대체로 날씨가 맑겠습니다만,
여전히 살아 계신 분들에겐
우산이 유용하겠으니
외출 시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노교수 / 쉼보르스카
 
그에게 물었다. 그 시절에 대해서.
순진하고, 성급하고 어리석고, 미처 준비를 갖추지 못했던,
우리들이 아직 젊은이었던 시절.
 
그 시절에서 남은 게 조금은 있죠, 젊음만 빼고요.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여전히 알고 있냐고.
인류에게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그건 아마 착각중에서도 가장 큰 착각일걸요.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미래에 대해서,
여전히 앞날이 훤히 보이느냐고.
 
그러기엔 역사책을 너무 많이 읽었네요.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사진에 관해서.
액자 속에 있는, 책상 위에 있는.
 
예전엔 있었지만, 다들 떠나버렸어요.
남동생, 사촌, 제수씨,
아내, 아내의 무릎 위에 앉은 딸,
딸의 품에 안긴 고양이.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벚나무.
그 벚나무 위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새 한 마리.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때로는 행복하냐고.
 
아직도 일을 합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벗에 대해서.
아직 친구가 있느냐고.
 
자기들도 벌써 전(前) 조교를 갖게 된
과거에 내 전 조교였던 몇몇 친구들.
살림을 맡아주는 루드밀라 부인,
아주 가까운 친구 하나는 멀리 해외에 나가 있고,
도서관에 근무하는 두 명의 연인들, 미소가 아름답죠.
우리 집 맞은편에 사는 어린 그제쉬, 그리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기분은 어떤지, 건강은 괜찮은지.
 
커피와 보드카 담배를 삼가고,
상념이든 물건이든, 무거운 건 절대 짊어지고 다니지 말라더군요.
그럴 때면 못 들은 척할 수밖에요.
-그가 대답했다.
 
그에게 물었다. 정원에 대해서. 그 정원에 놓인 벤치에 대해서.
 
날씨가 화창한 저녁이면 하늘을 보곤 해요.
얼마나 볼거리가 많은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니까요.
-그가 대답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Marcus Aurelius 121~180):로마 제국의제 16대 황제. 로마의 5명의 현명한 황제 중 마지막 황제였으며, '철인황제(哲人皇帝)라고 불렸다. 후기 스토아파의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저서로는 <명상록>을 남겼다. 그가 죽은 후 로마 제국은 경제적-군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은 데다가 페스트까지 성행하는 바람에 쇠퇴하게 된다.
 
관망(觀望) / 쉼보르스카
 
타인처럼 스쳐갔다.
어떤 말도, 몸짓도 없이,
그녀는 가게로 향하고,
그는 자동차로 걸어갔다.
 
어쩌면 당황해서,
어쩌면 경황이 없어서,
아니면 짧은 시간,
서로를 영원토록 사랑했음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하긴 그들이 바로 그들이라는
보장도 없다.
멀리서는 그랬지만,
가까이서는 전혀 아닐 수도.
 
나는 창가에서 그들을 봤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이
틀릴 확률은 매우 높다.
 
그녀는 유리문 안쪽으로 사라졌고,
그는 운전석에 올라 서둘러 출발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설사 일어났다 한들 또 어떠리.
 
내가 본 장면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단지 한순간뿐이었으니
지금 나는 덧없는 시구 속에서
독자 여러분을 설득하려 애쓰고 있는 중.
그것은 슬픈 일이었노라고.
 
사건에 휘말린 어느 개의 독백 / 쉼보르스카
 
개들은 다양하다. 하지만 나는 선택된 개였다.
혈관에는 늑대의 피가 흐르고, 그럴듯한 족보도 있었다.
자연의 향기를 듬뿍 마시며, 고산 지대에서 살았다.
햇빛이 쨍쨍할 땐 풀밭에서, 비가 오면 전나무 숲에서,
눈이 내릴 땐 동토(凍土)에서 지냈다.
 
번듯한 집도 있고, 시중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게 먹이를 공급하고. 씻기고. 빗질하고,
우아하게 산책을 시켜 주었다.
그것은 친밀감의 차원이 아닌 존경의 표시였다.
내가 누구의 개인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몸에 이가 들끓는 하찮은 잡종들도 주인을 가질 순 있다.
하지만 주의하시라-함부로 비교해서는 안 되는 법.
내 주인은 정말 특별한 종류의 사람이었다.
하려한 무리들이 늘 그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두려움과 찬탄이 뒤섞인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게는 다들 질투 섞인 비웃음만 보냈다.
왜냐면 풀쩍 뛰어올라 주인을 맞이할 권리는
나한테만 주어졌기에.
바짓부리를 이빨로 잡아끌며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그의 무릎에 머리를 파묻는 것도
내게만 허락된 일이었기에.
그가 쓰다듬거나 귀를 잡아당기는 대상은
오직 나뿐이었기에.
단지 나만이 그의 곁에 앉아 자는 척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나를 향해 몸을 숙인 채
뭔가를 속삭이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나 혼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으므로.
 
주인은 다른 이들에게는 종종 화를 내고 사납게 굴었다.
그들과 다투고, 소리를 지르고,
초초한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다.
그는 오직 나만 좋아한다고,
절대로,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물론 내게 주어진 의무 조항도 있었다. 기다리기, 그리고 믿음을 가지기.
주인은 잠깐 나타났다가 오랫동안 사라지기 일쑤였으므로.
골짜기 너머에서 무엇이 그를 붙잡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뭔가 중요한 일 때문이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적어도 내가
고양이나 기타 쓸데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들과
티격태격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운명이란 변화무쌍한 것, 내 것 또한 갑자기 변했다.
어느 날 봄이 찾아왔을 때,
그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었다.
알 수 없는 야단법석이 온 집안을 휩쓸었다.
상자와 트렁크, 궤짝이 자동차에 실렸다.
산 밑으로 내려가는 요란한 바퀴 소리도 잠시.
모퉁이 저편에서 잠잠해졌다.
 
발코니에서 부서진 가구와 넝마 조각들이 불태워졌다.
노란 상의와 검은 마크가 내겨진 완장들.
무수히 많은 낡은 상자들과
그 속에서 와르르 쏟아져 나온 깃발들도 함께.
 
난장판 속에서 나는 하염없이 서성거렸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에 털끝이 쭈뼛 섰다.
마치 내가 주인 없는 개라도 되는 듯.
문간에서 당장 빗자루를 들고 쫓아버려야 할
귀찮은 떠돌이라도 되는 듯.
 
은도금을 한 내 목걸이를 누군가가 낚아채갔다.
며칠 전부터 텅 비어 있던 내 밥그릇을 누군가가 걷어찼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일행 중 하나가
길 떠나기 직전 운전석에서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방아쇠를 두 번 당겼다.
 
심지어 과녁 하나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내가 꽤 오랫동안, 고통스럽게 죽어간 걸 보면.
버릇없는 파리가 귓가에서 윙윙대는 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죽어갔다.
나, 내 주인의 충성스런 개는.
 
시인의 끔찍한 악몽 / 쉼보르스카
 
내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상상도 못할 거예요.
겉으로는 우리가 사는 이곳과 똑같아 보이네요.
발밑의 토양, 물과 불, 공기,
수평과 수직, 삼각형과 원,
왼쪽과 오른쪽,
견딜 만한 날씨, 그럴싸한 풍경
그리고 언어를 부여받은 몇몇 존재들.
하지만 그들의 언어는 지구상의 그것과는 다르네요.
 
문장을 지배하는 건 비조건문.
명칭들은 사물들과 매우 정교하게 밀착되어 있어
함부로 덧붙이거나, 생략하거나, 변형시키거나, 위치를 바꿀 순 없어요.
 
시간은 시계 속의 개념대로 기능하는 것.
과거형과 현재형은 모두 좁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죠.
회상에는 지나버린 일 초가 할당되고,
예측에는 이제 막 시작될
이초가 배당됩니다.
 
단어는 꼭 필요한 만큼만, 한 마디도 넘치는 법이 없으니,
다시 말해 시도 없고,
철학도, 종교도 없다는 뜻
이곳에는 그런 종류의 유희는 허용되지 않으니까요.
 
사색을 필요로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 또한 아무 것도 없네요.
 
뭔가를 찾는다면, 그건 분명 옆에 있는 것.
뭔가를 묻는다면, 그건 분명 해답이 명확한 것.
 
놀라움의 근거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늘낄 줄만 안다면,
그들은 분명 매우 놀랄 텐데요.
 
'불안'이라는 단어가 그들에겐 사뭇 외설적으로 느껴지기에
사전을 뒤적일 용기조차 갖지 못하는군요.
 
아무리 짙은 어둠이 깔려 있어도
세상은 밝게만 표현되는군요.
모든게 헐값에 나누어졌지만,
계산대 앞에서 거스름돈을 요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군요.
 
감정 가운데 남은 건 오로지 만족감뿐. 괄호 속 부연 설명은 전혀 없네요.
마침표가 늘 따라붙는 인생. 그리고 은하수의 부르릉, 엔진 소리.
 
인정하세요, 시인에게 있어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서둘러 잠에서 깨어난다 해도
조금도 나아지는 건 없네요.
 
그리스 조각상 / 쉼보르스카
 
인간들과 다른 원소들의 도움으로
시간은 비교적 원활하게 조각상과 관련된 임무를 수행해나갔다.
먼저 코를 도려내고, 나중에는 은밀한 부위를,
계속해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삭제해나갔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깨를 차례로 없애더니,
오른쪽 허벅지와 왼쪽 허벅지,
등과 허리, 머리와 엉덩이를 제거했다.
떨어져 나간 부분은 조각조각 잘게 부서져
돌멩이가 되고, 자갈이 되고, 모래가 됐다.
 
만약 살아 있는 누군가가 이렇게 죽어간다면
매번 일격을 가할 때마다 많은 피를 흘렸으리라.
 
하지만 대리석 조각상들은 하얗게 무너져 내린다.
게다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경우는 드물다.
 
앞서 언급한 그 조각상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건 토르소뿐이다.
몸뚱이는 근육을 잔뜩 긴장시키며 애써 숨을 참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머지 부위들이 잃어버린
모든 매력과 권위를
자신에게로
되돌려놓아야 하기에.
 
토르소는 성공했다.
마침내 성공했다.
성공을 거두며, 황홀경에 빠진다.
황홀경에 빠지며, 존재를 지속한다-
 
이 시점에서 시간은 찬사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일찌감치 하던 일을 멈추었을 뿐만 아니라
일부는 나중으로 미루었기에.
 
사실상 모든 시에는 / 쉼보르스카
 
사실상 모든 시에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 1)
 
한 구절이면 충분하나니
그것이 현재형이든
과거형, 혹은 미래형이든.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바스락거리고, 반짝거리고,
흩날리고, 흘러가는 것들이
단어에 실려 온다면
움직이는 그림자를 가진
가상의 불변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한 마디면 충분하나니
누군가의 옆에 있는 누군가에 관해서.
혹은 뭔가의 옆에 있는 누군가에 관해서 2)
 
고양이를 가진 알라에 관해서
혹은 고양이를 가지지 못한 알라에 관해서 3)
 
혹은 또 다른 알라들에 관해서
또 다른 고양이들과 고양이가 아닌 다른 것들에 관해서
바람결에 책장이 넘겨진
또 다른 초등학교 교과서들에 관해서: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작가에 의해
시선이 도달하는 반경 내에
일시적인 산과 가변적인 골짜기가
자리매김할 수 있다면 4)
 
마침 기회가 주어졌기에
겉으로만 영원하고 안정적인
하늘에 대해서 넌지시 이야기할 수 있다면: 5)
 
한창 펜을 움직이고 있는 손끝에서
누군가의 것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뭔가가 모습을 드러낸다면: 6)
 
그것으로 충분하나니
추측이나 어림짐작으로 그랬건,
아님 중요한 이유든, 하찮은 이유든 간에,
흰 종이 위에 검은 펜으로
물음표가 적혀 있다면,
그리고 대답으로-
달랑 이렇게 적혀 있다면,
콜론 :
 
 
1) '순간'은 쉼보르스카가 2002년에 발표한 열번 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시는 쉼보르스카가 그동안 자신이 썼던 시의 여러 대목을 빌어다가 패러디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2) 1872년에 발표한 시집 <만일의 경우>에는 "무(無)의 의미는"으로 시작하는 제목이 없는 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 시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나는 지금 네 옆에 서 있게 되었다. / 이렇게 되기까 무엇 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었음을 / 뼈저리게 느끼는 바이다." 이 부분을 응용하여 재구성하였다.
3) 폴란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 첫 페이지, 첫 문장이 바로 "알라는 고양이를 가지고 있다"이다 즉 폴란드인이 국어 책에서 제일 먼저 배우고, 제일 먼저 기억하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4)2002년에 발표한 시집 <순간>에 수록된 표제작 '순간'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시선이 닿는 저 너머까지 / 이곳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건 찰나의 순간" 이 구절을 응용하여 재구성한 대목이다.
5) 1993년에 발표한 시집 <끝과 시작>에 수록된 '하늘'이라는 시에서 쉼보르스카는 하늘이 "부서지기 쉽고, 유동적이며, 바위처럼 단단한 / 휘발성으로 변했다가. 또 가볍게 날아오르기도 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 구절을 응용하여 쓴 것이다.
6) 1967년에 발표한 <애물단지>에 수록된 "쓰는 즐거움"이라는 시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쓴 구절이다.
/ 번역 최성은
 
쉼보르스카의 시편들 중 국내에 번역 출간된 시들은 거의 망라되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가 구할 수 있는 번역 시선집은 <모래알갱이가 있는 풍경>과 <끝과 시작> 두권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한 쉼보르스카 그녀의 흔적을 보기위해 폴란드의 유서 깊은 고도(古都)인 '크라쿠프'와 그녀가 자주 은거했던 휴양지 '자고파네'를 여행했으나 일정도 빡빡했고 폴란드어는 한마디도 못하는 필자로서는 잘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다. 혹시 내 생에 또 한번의 기회가 오길 기대한다,  끝. 
/ 김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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