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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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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김치 - 김영옥
2022년 05월 26일 16시 03분  조회:720  추천:0  작성자: 강려
깻잎김치
 
김영옥
 
열장 한 묶음. 세 묶음에 천원. 마트에서 오천 원어치 깻잎을 샀다. 크기가 일정하다. 간혹 길가에서 바구니에 가득 담긴 깻잎을 살 때도 있다. 섞여 있어서 크기는 들쑥날쑥하지만 양은 더 많다. 언젠가는 뿌리만 제거된 줄기에 그대로 달린 깻잎을 사 본적도 있다. 깻잎 한 장씩 떼어낼 때마다 깻잎에서 나는 향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지나치게 독한 향을 지닌 깻잎도 있다. 다른 깻잎에 비하여 유난히 색깔이 진할 뿐 아니라 훨씬 넓적하고 두텁고 잎에 핏줄처럼 그어진 줄마저 더욱 뚜렷하였다. 나는 그것을 오히려 좋게 여겨서 듬뿍 사다가 깻잎 김치를 담가 보았다. 그러나 간도 잘 들지 않고 어쩐지 뻣뻣하기만 하다. 맛을 보니 혀가 얼얼할 정도로 독하였다.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이제 결혼해야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아들에게 전화기 속에서 무심코 말한 일이 있었다.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들은 여자친구라며 낯 선 여자아이를 데리고 왔다. 한편으론 반가웠지만 또 다른 한 편의 내 마음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향해 ‘어머니’라 불러주는 낯선 여자 아이의 얼굴도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 아이는 어디 한 곳 부족함이 없었으나 준비가 덜 된 내 자신이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자녀들의 결혼과 관련하여 주변으로부터 흘려들었던 말들이 이제야 하나씩 귀에 들어온다.
 
깻잎을 한 장 한 장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바구니에 담는다. 찢어진 것, 구멍 난 것도 있다. 바구니에 담기 주저할 만큼 잎이 작은 것도 있다. 하지만 양념에 섞여지면 모두 똑같은 깻잎김치가 된다는 걸 알고 있다.
충분히 잘 섞어 준비된 양념을 깻잎에 묻히기 시작한다. 깻잎 자체의 향을 살리기 위해서 마늘이나 생강류는 거의 넣지 않지만 그 외의 양념들은 빼놓지 않는다. 어떤 깻잎에는 양념이 많이 들어가기도 하고 또 어떤 깻잎에는 조금 묻혀지기도 한다. 혹은 양념이 전혀 묻지 않을 수도 있다.
 
차곡차곡 포개어서 통에 담아 놓았던 깻잎을 한참 후 들여다보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적당하게 최적의 깻잎김치가 만들어져 있다. 신기한 일이다. 양념이 많이 묻은 깻잎과 양념이 묻지 않은 깻잎끼리 알맞게 양념이 스며들어 서로 간이 배어 있는 것이다. 색깔도 그럴 듯하다. 깻잎김치의 완성이다.
 
다가올 아들의 결혼을 생각한다. 부질없는 염려와 걱정을 모두 내려놓는다. 꼭꼭 누르지도 말고, 들춰내지도 말 일이다. 저희들끼리 편한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다. 양념만 묻혀 놓으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깻잎김치처럼. (본지출신 창작문예수필 작가)
 
∣작법 공부∣
 
에세이(수필) 문학은 일정한 형식이 없는 문학이라는 말의 ‘일정한’은 창작형식을 의미하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에세이는 창작형식의 문학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을 글(문장)의 형식이 없어도 괜찮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일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에세이는 일반산문문학으로서의 형식은 물론 문장으로서의 형식도 갖추어야 된다.
창작문예수필은 기존의 수필과 다른 문학이라는 말은 창작문예수필은 시, 소설, 희곡처럼 창작형식을 갖춘 문학이라는 뜻이다. 창작형식이란 ‘문학적 이야기 만들기’를 의미하고, ‘문학적 이야기’란 창조적 이야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일정한 창작형식이란 창조적 형식을 의미하는 것이다. 창작문예수필의 창조적 이야기 만들기의 기본 형식은 ‘소재에 대한 구성적 비유의 존재론적 형상화’에 있다.
김영옥은 창작문예수필 신인상으로 등단한 작가다. 이 작품은 창작문예수필 출신 작가답게 창작문예수필의 기본 창작양식을 마치 공식을 대입하듯 충실하게 적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원관념 소재는 아들의 결혼 이야기이다. 결혼 적령기가 된 아들의 결혼은 당연한 일이고, 그래서 “이제 결혼해야지.” 라고 결혼 독촉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막상 며느리 감을 데리고 오자 감출 수 없는 섭섭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소재가 된 작품이다. 이 같은 소재를 필자가 정리해 본 내용 그대로 서술하고 말았다면 아무 것도 창작한 것이 없는 사실의 소재의 나열, 즉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수필(에세이)문학은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 문학이라는 양식상의 특징을 안고 태어난 문학이다. 기존의 수필이 신변잡기로 낙인찍히게 된 원인은 사실의 소재에서 몽테뉴나 베이컨 같은 뛰어난 창조적 생각을 길어내지도 못하였고, 찰스 램처럼 창작적인 문학도 만들어 내지 못한 데에 있다. 즉 사실의 소재의 나열에 지나지 않는 글을 써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창작문예수필은 사실의 소재를 가지고 실제로 어떤 방법으로 창작문학화 하는가? 그 대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창작’이라는 낱말의 뜻부터 해명해야 된다.
‘창작’이란 ‘창조적 사물 · 존재 탄생’을 의미한다. 이는 곧 성서적 우주창조 사상에 까지 이르는 개념이다. 시가 창조적 언어 존재를 창작한다는 것과 소설이 허구적 인물ㆍ서사를 창작한다는 것 모두가 다 이 같은 ‘창조적 사물 · 존재 탄생’ 개념에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사실의 소재 자체를 작품의 제재로 삼는 창작문예수필은 무엇을 어떻게 창작할 수 있느냐고 물을 때 그 대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은가? 어떤 방법으로든 ‘소재 자체를 창작문학化’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 기본방법이 ‘소재에 대한 비유적(상징) 창작’에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아들의 여자친구, 즉 낯 선 며느리 후보감에 대한 어머니의 당혹스런 느낌을 깻잎 김치 담그는 이야기에 접목하여 비유적으로 형상화 하는 창작을 하고 있다. 이것이 창작문예수필의 기본적인 창작양식이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이 같은 창작양식은 ‘기본적인 창작양식’일 뿐이라는 점이다. 창작양식은 삼라만상만큼 다양할 수 있다.
창작문예수필이 무엇을 어떻게 창작하는 문학인가 이해가 잘 안 되는 독자가 있다면 이 작품이 ‘소재에 대한 구성적 비유의 존재론적 형상화’라는 개념을 공식처럼 적용하고 있는 작법을 참고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창작문예수필 - 작품과 작법 5 ]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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