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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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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이여, - 시창작 時 혼신을 다 하라...
2016년 01월 10일 04시 37분  조회:4419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를 창작하는 정신과 마음 


조태일(시인) 

시는 고도의 언어예술이기 때문에 시 창작에는 여기에 뒤따르는 수사적 기교나 방법 등이 당연히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손에서 나오는 재주나 방법상의 기교만으로는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없는 것이다. 저 고려청자의 깊고 오묘한 아름다움이 단지 도공의 손끝에서 나온 재주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그것을 빚어냈던 도공들의 정신과 마음, 숨결, 더 나아가서는 그의 영혼까지 깃들어 있는 것이다. 

탐스러운 장미꽃 한 송이를 피워올리는 데도 땅 속 깊이 숨어 있는 뿌리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하며, 진실된 사랑 역시 인간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정작으로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이며 '보이는 것의 건너편'에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시 창작에서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수사적 장치나 기법도 중요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창작에 투신하는 정신과 마음의 자세다. 

맹수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가 작은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거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정신을 집중한다고 한다. 시창작에서도 이러한 정신 자세가 요구된다. 창작에 임하는 마음의 투철함이 없다면 그것은 언어유회로 빠져 버리거나 젊은 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분출 정도로 그쳐 버리게 된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그것이 뿌리 내릴 수 있는 대지가 시원치 않으면 훌륭한 열매를 맺기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시의 씨앗을 뿌려야하는 마음의 밭을 옥토로 가꾸어 두는 일이야말로 시 창작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하겠다. 


1.맑은 감성, 그 감성의 창조성 

앞에서 "시가 갖는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가 '정서 표현'이다'라는 말을 언급한 바 있다. 정서는 어떠 대상이나 사건, 상황에 대한 경험에서 생겨나는 구체적인 감정의 실마리이며 각 개인마다 지니게 되는 주관적인 의식현상으로서 본능을 기초로 한다. 

우리는 무수한 경험들을 쌓아 가면서 그 속에서 끊임없는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슬픈 영화를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가 하면 이름 모를 꽃의 아름다움 때문에 마음이 환해지기도 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불쾌해지기도 한다. 기쁜 것도 기뻐할 줄 모르고 슬픈 것도 슬퍼할 줄 모르는 '목석 같은 사람'도 있지만, 우리들의 대부분은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감정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면서 동시에 감성의 동물인 것이다. 

감성이란 '느끼는 성질'이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대상에 대하여 무수한 감정 반응을 일으키게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며, 대상으로부터 감각되고 지각되어 하나의 표상을 형성하게 되는 인식능력인 것이다. 따라서 감성은 이성과 함께 우리의 정신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두 개의 큰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동안의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이 감성의 기능이나 중요성보다는 이성의 힘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우위에 놓여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합리주의적 사고와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기는 서구사회에 그토록 눈부신 과학의 발전과 산업의 발달을 가져오게 한 것이 이성의 힘이었던 만큼, 이러한 이성의 막강한 능력과 비교해 볼 때 감성은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등한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감성의 중요성이 새롭게 각되기 시작했다.'감성지수'니 '감성교육'이니 하며 감성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긴 요인은 우리의 사회가 산업화, 기계화, 정보화의 시대에서 이제는 창조화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화시대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개인의 창조성이며 창의성이다. 그런데 감성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무한한 창조성의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각 개인마다 독특하게 지니고 있는 고유성이며, 끊임없이 사물과 부딪쳐서 다양함 새로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성의 창조성이 가장 큰 구실을 하는 곳이 바로 학문이며, 그 중에서도 '시'이다. 감성은 시 창작의 바탕인 것이다. 결코 논리적인 사고나 합리적인 사고가 시를 창작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사물에 닿아서 시인의 가슴에 구체적이니 감정과 느낌을 생생히 불러일으킬 수 있는 투명한 감성이 시를 낳는 것이다.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싶고 
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 
왜 이렇게 나는 그대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지 
생각해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고 
암만 그대 떠올려도 
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아래 

-김용택, <푸른 나무1> 


시인의 깨어있는 감성은 지금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어린 이파리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새봄이 와서 새롭게 피어나고 있는 어린 잎들을 보면서 부재중인 그대가 더욱 그립기 때문이다. 그 이파리들의 아름다움이 눈부실수록 이런 고운 봄날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안타까움은 더욱더 간절함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은 이파리며 실가지들, 또 거기에서 살랑대는 바람 한 점까지도 놓치지 않고서 그것을 통하여 이렇듯 지순한 서정을 샘물처럼 퍼 올릴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인의 맑은 감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성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감성의 거울에 비춰지는 사물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의 것도 흉내 내지 않은 자신의 마음이 발견하고 포착한 사물의 모습이 있고 진실이 담겨 있다. 감성은 자신의 진심으로 사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에는 꾸밈도 없고 거짓말도 없다. 사물에 대한 자기 자신의 대한 자기 진실함의 표현만이 있을 뿐이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로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 겨울 강가에서> 


위 시의 감동 역시 따뜻한 감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시인은 강에 흰 눈발이 떨어지는 사소한 풍경을 일상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 막 지상에서 태어난 듯한-천상에서 금방 내려온 것이므로-어린 눈발들이 강물 속으로 떨어져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모습이 시인의 마음과 강물은 서로 통하고 마침내 강물마저 자기 몸들을 바꾸어 눈의 몸들을 받아 낼 수 있도록 얼음을 깔기 시작했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면 당연히 물이 얼게 되고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마저도 얼어버리는 것은 겨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며, 새삼스레 신기하게 여길 필요조차도 없는 과학적 현상이다. 그러나 어린 눈발들이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안타까워서 겨울 강이 제 스스로 몸을 바꾸어-몸을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변화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철저히 변화한다는 것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일인 까닭에 참된 사랑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얼음을 깔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인의 감성이 발견해 낸 시적 진실인 것이다. 

독자들이 위 시에서 감동을 받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시적 진실이다. 이것은 시인의 감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조지훈 시인은 "시적 진실은 예술적 가치로서 정서적 감동이다.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감성으로 표현하여 감성에 자극하는 것이 시의 정통적 본질이다."라고 하며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시 창작에 있어서 이렇게 중요한 바탕이 되는 감성은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지니고 나오는 선천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이 감성도 다르게 갖고 태어난다.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다른 감성도 다르게 갖고 태어난다.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다른 감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소한 풍경이나 사물일지라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거기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경이롭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들의 얼굴 모습과 인상이 삶의 환경이나 질의 의해서 변화하고 바뀌듯이 타고난 감성도 무수히 변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맑고 순수했던 감성도 삶의 온갖 세파 속에 휩쓸리고 거기에 찌들어 버리면 따라서 함께 흐려지고 탁해진다. 샘물처럼 맑게 솟아나던 그것이 메말라 버리고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탁해지고 메말라 버린 감성으로서는 결코 시를 창작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는 이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샘물처럼 맑게 솟는 자연스런 감성을 지키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들을 더욱 풍성하게 키워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우리의 오관을 통한 사물의 체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은 사물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 관습적으로 굳어 버린 인식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물을 처음 대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한 동심과 경이로운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노니, 나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에도 마찬가지라니...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던 워드워즈의 시 구절처럼 순진무구하고 자연스런 동심을 자신 마음 속에 영원히 지속시켜 나갈 줄 알아야한다. 

다음은 사물이 지닌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탐구하는 마음을 갖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현상을 살피고 관찰하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려 든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가시적인 것도 많지만 불가시적 부분들이 더 많다. 그것들이 지닌 의미와 비밀들을 찾아내어서 새로움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 창작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미지의 세계를 믿고 그 안에서 내재된 우주적 질서와 본질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끝으로 욕심이 없는 겸허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온갖 탐욕이 찬 마음에는 그 욕심만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어서 다른 사물들은 들어 올 수가 없다. 또한 마음의 눈이 흐려져서 사물의 모습조차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된다. 맑고 겸허한 마음이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비추고, 끝없는 우주로까지 우리의 영혼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 속에서 사물을 보는 눈은 타성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생생하고 새롭게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풍부하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수성이 시 창작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일이다. 물론 시 창작이 감성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감정의 노출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또한 결핍된 상태로도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엘리어트는 '감수성의 분열'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이것은 시인의 사고와 감정이 서로 통일되고 조화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시인에게 있어 진정한 감수성이란 지성과 감성, 사고와 감정이 융합되어서 통일을 이룬 상태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를 창작하는 모든 시인들이 언제나 희구하는 정신적 상태인 것이며 시 창작에서 매 순간마다 유지시켜 나가야 할 정신적 태도인 것이다 



조태일(시인) 

시는 고도의 언어예술이기 때문에 시 창작에는 여기에 뒤따르는 수사적 기교나 방법 등이 당연히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손에서 나오는 재주나 방법상의 기교만으로는 좋은 시를 창작할 수 없는 것이다. 저 고려청자의 깊고 오묘한 아름다움이 단지 도공의 손끝에서 나온 재주라고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그것을 빚어냈던 도공들의 정신과 마음, 숨결, 더 나아가서는 그의 영혼까지 깃들어 있는 것이다. 

탐스러운 장미꽃 한 송이를 피워올리는 데도 땅 속 깊이 숨어 있는 뿌리의 수고로움이 있어야 하며, 진실된 사랑 역시 인간의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정작으로 중요한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이며 '보이는 것의 건너편'에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시 창작에서도 마찬가지다. 눈에 보이는 수사적 장치나 기법도 중요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창작에 투신하는 정신과 마음의 자세다. 

맹수의 왕이라고 하는 호랑이가 작은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거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며 정신을 집중한다고 한다. 사 창작에서도 이러한 정신 자세가 요구된다. 창작에 임하는 마음의 투철함이 없다면 그것은 언어유회로 빠져 버리거나 젊은 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분출 정도로 그쳐 버리게 된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그것이 뿌리 내릴 수 있는 대지가 시원치 않으면 훌륭한 열매를 맺기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시의 씨앗을 뿌려야하는 마음의 밭을 옥토로 가꾸어 두는 일이야말로 시 창작에 가장 중요한일이라고 하겠다. 


1.맑은 감성, 그 감성의 창조성 

앞에서 "시가 갖는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가 '정서 표현'이다'라는 말을 언급한 바 있다. 정서는 어떠 대상이나 사건, 상황에 대한 경험에서 생겨나는 구체적인 감정의 실마리이며 각 개인마다 지니게 되는 주관적인 의식현상으로서 본능을 기초로 한다. 

우리는 무수한 경험들을 쌓아 가면서 그 속에서 끊임없는 감정의 변화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슬픈 영화를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가 하면 이름 모를 꽃의 아름다움 때문에 마음이 환해지기도 하고, 남한테 싫은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불쾌해지기도 한다. 기쁜 것도 기뻐할 줄 모르고 슬픈 것도 슬퍼할 줄 모르는 '목석 같은 사람'도 있지만, 우리들의 대부분은 '희노애락애오욕'이라는 감정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면서 동시에 감성의 동물인 것이다. 

감성이란 '느끼는 성질'이다. 우리로 하여금 어떤 대상에 대하여 무수한 감정 반응을 일으키게 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며, 대상으로부터 감각되고 지각되어 하나의 표상을 형성하게 되는 인식능력인 것이다. 따라서 감성은 이성과 함께 우리의 정신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두 개의 큰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동안의 인류역사를 살펴보면 이 감성의 기능이나 중요성보다는 이성의 힘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우위에 놓여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합리주의적 사고와 가치관을 중요하게 여기는 서구사회에 그토록 눈부신 과학의 발전과 산업의 발달을 가져오게 한 것이 이성의 힘이었던 만큼, 이러한 이성의 막강한 능력과 비교해 볼 때 감성은 상대적으로 뒤처지고 등한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감성의 중요성이 새롭게 각되기 시작했다.'감성지수'니 '감성교육'이니 하며 감성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생긴 요인은 우리의 사회가 산업화, 기계화, 정보화의 시대에서 이제는 창조화의 시대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조화시대에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개인의 창조성이며 창의성이다. 그런데 감성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무한한 창조성의 바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각 개인마다 독특하게 지니고 있는 고유성이며, 끊임없이 사물과 부딪쳐서 다양함 새로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성의 창조성이 가장 큰 구실을 하는 곳이 바로 학문이며, 그 중에서도 '시'이다. 감성은 시 창작의 바탕인 것이다. 결코 논리적인 사고나 합리적인 사고가 시를 창작케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사물에 닿아서 시인의 가슴에 구체적이니 감정과 느낌을 생생히 불러일으킬 수 있는 투명한 감성이 시를 낳는 것이다.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 
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싶고 
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 
왜 이렇게 나는 그대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지 
생각해서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고 
암만 그대 떠올려도 
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아래 

-김용택, <푸른 나무1> 


시인의 깨어있는 감성은 지금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어린 이파리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새봄이 와서 새롭게 피어나고 있는 어린 잎들을 보면서 부재중인 그대가 더욱 그립기 때문이다. 그 이파리들의 아름다움이 눈부실수록 이런 고운 봄날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없는 안타까움은 더욱더 간절함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은 이파리며 실가지들, 또 거기에서 살랑대는 바람 한 점까지도 놓치지 않고서 그것을 통하여 이렇듯 지순한 서정을 샘물처럼 퍼 올릴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인의 맑은 감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이러한 감성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감성의 거울에 비춰지는 사물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여기에는 그 누구의 것도 흉내 내지 않은 자신의 마음이 발견하고 포착한 사물의 모습이 있고 진실이 담겨 있다. 감성은 자신의 진심으로 사물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에는 꾸밈도 없고 거짓말도 없다. 사물에 대한 자기 자신의 대한 자기 진실함의 표현만이 있을 뿐이다. 


어린 눈발들이 다른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로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 겨울 강가에서> 


위 시의 감동 역시 따뜻한 감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것이다. 시인은 강에 흰 눈발이 떨어지는 사소한 풍경을 일상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 막 지상에서 태어난 듯한-천상에서 금방 내려온 것이므로-어린 눈발들이 강물 속으로 떨어져 속절없이 사라져 가는 모습이 시인의 마음과 강물은 서로 통하고 마침내 강물마저 자기 몸들을 바꾸어 눈의 몸들을 받아 낼 수 있도록 얼음을 깔기 시작했다.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면 당연히 물이 얼게 되고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마저도 얼어버리는 것은 겨울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며, 새삼스레 신기하게 여길 필요조차도 없는 과학적 현상이다. 그러나 어린 눈발들이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안타까워서 겨울 강이 제 스스로 몸을 바꾸어-몸을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변화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철저히 변화한다는 것은 지극히 고통스러운 일인 까닭에 참된 사랑만이 이것을 가능하게 한다-얼음을 깔기 시작했다는 것은 시인의 감성이 발견해 낸 시적 진실인 것이다. 

독자들이 위 시에서 감동을 받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시적 진실이다. 이것은 시인의 감성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조지훈 시인은 "시적 진실은 예술적 가치로서 정서적 감동이다. 감성으로 받아들이고 감성으로 표현하여 감성에 자극하는 것이 시의 정통적 본질이다."라고 하며 감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시 창작에 있어서 이렇게 중요한 바탕이 되는 감성은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지니고 나오는 선천적인 요소이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이 감성도 다르게 갖고 태어난다.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다른 감성도 다르게 갖고 태어난다. 시를 창작하려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남다른 감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소한 풍경이나 사물일지라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거기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경이롭게 여긴다. 

그러나 우리들의 얼굴 모습과 인상이 삶의 환경이나 질의 의해서 변화하고 바뀌듯이 타고난 감성도 무수히 변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맑고 순수했던 감성도 삶의 온갖 세파 속에 휩쓸리고 거기에 찌들어 버리면 따라서 함께 흐려지고 탁해진다. 샘물처럼 맑게 솟아나던 그것이 메말라 버리고 굳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탁해지고 메말라 버린 감성으로서는 결코 시를 창작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는 이들은 언제나 변함없이 샘물처럼 맑게 솟는 자연스런 감성을 지키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들을 더욱 풍성하게 키워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우리의 오관을 통한 사물의 체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우선은 사물에 대한 고정적인 인식, 관습적으로 굳어 버린 인식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물을 처음 대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순수한 동심과 경이로운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마다 내 가슴은 뛰노니, 나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고 어른이 된 지금에도 마찬가지라니...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노래했던 워드워즈의 시 구절처럼 순진무구하고 자연스런 동심을 자신 마음 속에 영원히 지속시켜 나갈 줄 알아야한다. 

다음은 사물이 지닌 미지의 세계에 대하여 탐구하는 마음을 갖고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현상을 살피고 관찰하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으려 하고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려 든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가시적인 것도 많지만 불가시적 부분들이 더 많다. 그것들이 지닌 의미와 비밀들을 찾아내어서 새로움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것이 창작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물들이 지니고 있는 미지의 세계를 믿고 그 안에서 내재된 우주적 질서와 본질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끝으로 욕심이 없는 겸허한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온갖 탐욕이 찬 마음에는 그 욕심만이 자리를 꽉 채우고 있어서 다른 사물들은 들어 올 수가 없다. 또한 마음의 눈이 흐려져서 사물의 모습조차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게 된다. 맑고 겸허한 마음이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비추고, 끝없는 우주로까지 우리의 영혼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 속에서 사물을 보는 눈은 타성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생생하고 새롭게 그것들을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풍부하게 유지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감수성이 시 창작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일이다. 물론 시 창작이 감성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감정의 노출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또한 결핍된 상태로도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엘리어트는 '감수성의 분열'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는데 이것은 시인의 사고와 감정이 서로 통일되고 조화되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시인에게 있어 진정한 감수성이란 지성과 감성, 사고와 감정이 융합되어서 통일을 이룬 상태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를 창작하는 모든 시인들이 언제나 희구하는 정신적 상태인 것이며 시 창작에서 매 순간마다 유지시켜 나가야 할 정신적 태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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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동백꽃 / 김완하

 

 

 

 

 

 

동백꽃           

                 

                         김완하

 

 

그대에게 나누어줄 고통도 없이

 

내가 그대에게 바칠 아픔 한 점 없이

 

이 봄이 진다는 것은

 

참으로 서러운 일이다

 

물소리 제 살을 저미고

 

이웃마을 개가 짖을 때

 

동백은 어둠 속으로 떨어지며

 

한 번 소리를 낸다

 

그 소리로 땅을 적신다

 

 

 

김완하 시집 허공이 키우는 나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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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123 詩作初心 - 명상과 詩 2016-02-24 0 5059
1122 [아침 詩 한수] - 오징어 2016-02-24 0 4063
1121 [아침 詩 한수] - 기러기 한줄 2016-02-23 0 4283
1120 열심히 쓰면서 질문을 계속 던져라 2016-02-21 0 4185
1119 남에 일 같지 않다... 문단, 문학 풍토 새로 만들기 2016-02-21 0 4192
1118 동주, 흑백영화의 마력... 2016-02-21 0 4239
1117 詩作初心 - 현대시의 靈性 2016-02-20 0 4141
1116 詩作初心 - 시에서의 상처, 죽음의 미학 2016-02-20 0 3910
1115 같은 詩라도 행과 연 구분에 따라 감상 차이 있다... 2016-02-20 0 4321
1114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詩의 다의성(뜻 겹침, 애매성) 2016-02-20 0 4565
1113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술 한잔 권하는 詩 2016-02-20 0 4726
1112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만드는 詩, 씌여지는 詩 2016-02-20 0 4181
1111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시의 비상 이미지 동사화 2016-02-20 0 4539
1110 무명 작고 시인 윤동주 유고시 햇빛 보다... 2016-02-19 0 4899
1109 윤동주 시집 초판본의 초판본; 세로쓰기가 가로쓰기로 2016-02-19 0 4760
1108 별이 시인 - "부끄러움의 미학" 2016-02-19 0 5835
1107 윤동주 유고시집이 나오기까지... 2016-02-19 0 5751
1106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序詩亭 2016-02-19 0 4645
1105 무명詩人 2016-02-18 0 4449
1104 윤동주 코드 / 김혁 2016-02-17 0 4767
1103 99년... 70년... 우리 시대의 "동주"를 그리다 2016-02-17 0 4478
1102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2016-02-17 0 4341
1101 윤동주와 송몽규의 <판결문> 2016-02-16 0 4354
1100 윤동주, 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절규... 2016-02-16 0 4311
1099 詩와 함께 윤동주 발자취 더듬어보다... 2016-02-16 0 4077
1098 풍경 한폭, 우주적 고향 그리며 보다... 2016-02-16 0 4372
1097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시의 그로테스크 2016-02-15 0 4674
1096 오늘도 밥값을 했씀둥?! 2016-02-14 0 4654
1095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色은 상징 2016-02-14 0 4497
1094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시의 함축과 암시 2016-02-14 0 3798
1093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詩적 이미지 2016-02-14 0 4260
1092 벽에 도전하는것, 그것 바로 훌륭한 詩 2016-02-14 0 4150
1091 전화가 고장난 세상, 좋을씨구~~~ 2016-02-14 0 4183
1090 詩는 읽는 즐거움을... 2016-02-13 0 5227
1089 詩에게 생명력을... 2016-02-13 0 4144
1088 詩가 원쑤?, 詩를 잘 쓰는 비결은 없다? 있다? 2016-02-13 0 4511
1087 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난 시인들 - 박두진 2016-02-12 0 4288
1086 詩人을 추방하라???... 2016-02-11 0 3827
1085 C급 詩? B급 詩? A급 詩?... 2016-02-11 0 3825
1084 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나는 시인들 - 신석초 2016-02-10 0 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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