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3
- 최승호(1954~ )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말(言)의 부유(浮游). 말은 세계 위를 떠돌면서 세계를 구성하고 해체한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 비(非)사랑은 (일시적이지만) 사랑이 된다. 언어가 현실을 만든다. 그러나 그 언어 아래에서 행위는 늘 전복(顚覆)의 틈을 노리며 언어가 결국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폭로하려 한다. 언어-행위 사이의 이 팽팽한 긴장 속에 우리의 삶이 존재한다. 그러니 “사랑한다고 말하면서”(언어),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행위)은 꼭 이 시에 나오는 ‘오징어 부부’만의 것은 아니다. 언어와 행위가 행복한 합일의 지경에 도달할 때, 말이 필요 없어지고 행위는 자유로워진다.
<오민석 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The Ancient of Days - William Blake>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