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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정호승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 시집『밥값』(창비, 2010) ................................................................................................................................................
정호승 시인은 열 번째 시집『밥값』을 내면서 “침묵의 절벽 끝에 한 채 서 있는 작은 수도원처럼 시는 묵언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그 무엇임을 새삼 깨닫는다.”고 하였습니다. 시를 써본 사람은 대개 경험해본 일이겠는데, 처음 시를 쓸 때는 쓸 것이 없어서 고민되어 시가 짧아지는 경우보다는 감정과잉으로 주절주절 말이 많아지고 이것저것 갖다 붙이는 통에 시가 대책 없이 길어질 때가 더 많습니다. 스스로 깨닫기는 뒷전이고 섣불리 남을 깨우치려는 생각이 앞설 수도 있겠고요. 그러니 가슴이 아니라 입과 손끝으로 쓰는 시가 되는 것이지요.
정호승 시인의 말은 ‘말씀 언(言)’에 ‘절 사(寺)’가 합쳐 <詩>가 된 것임을 다시 환기시켜줍니다. 말로 절을 짓는다는 의미이지요. 시 쓰는 일도 용맹정진하는 구도자의 정신으로 치열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그 묵언의 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는데, 그 수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내 경우 어쩌다 시를 한 편 쓰려고 해도 시정잡배 수준의 마구잡이 언어가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창피하지만' 시를 쓰서 밥을 얻어먹어본 기억은 별로 없기에 시에 대한 밥값에 미안한 마음은 없습니다만 총체적 삶에서 내가 밥값은 제대로 하고 사는지에 대한 미심쩍음은 늘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은 왜 어머니께 고하고 지옥에 한번 다녀와 봐야겠다고 했을까요. 이승에서 밥값 못하고 살다 죽으면 지옥행이란 생각 때문이겠지요. 바로 밥값의 여부가 선악의 기준이어서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밥값이나 제대로 하고 사는지 모르겠기에 지옥에 다녀오겠다는 것일 겁니다. 가서 지옥을 눈으로 직접 보고 반면교사라도 삼을 작정이었나 봅니다. 하지만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밥값을 하고 못하고의 분별이 어려울 정도면 지옥도 그다지 흉악한 범죄자들만 득실대는 곳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꿈꾸는 모두가 밥값 하는 세상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여전히 비루하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확실히 모르겠기에 지옥에 다녀온다는 것인데,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가령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에서 인간의 생명력과 희망을 생각하며, 그 사랑이 곧 밥값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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