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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유고시집이 나오기까지...
2016년 02월 19일 04시 01분  조회:5677  추천:0  작성자: 죽림

윤동주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지용의 서문

 

서(序)―랄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고 정성껏 몇 마디 써야만 할 의무를 가졌건만 붓을 잡기가 죽기보담 싫은 날, 나는 천의를 뒤집어쓰고 차라리 병(病) 아닌 신음을 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써야 하나?

재조(才操)도 탕진하고 용기도 상실하고 8․15 이후에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간다.

누가 있어서 “너는 일편(一片)의 정성까지도 잃었느냐?” 질타한다면 소허(少許) 항론(抗論)이 없이 앉음을 고쳐 무릎을 꿇으리라.

아직 무릎을 꿇을 만한 기력이 남았기에 나는 이 붓을 들어 시인 윤동주의 유고(遺稿)에 분향(焚香)하노라.

 

겨우 30여 편 되는 유시(遺詩) 이외에 윤동주의 그의 시인됨에 관한 목증(目證)한 바 재료를 나는 갖지 않았다.

‘호사유피(虎死留皮)’라는 말이 있겠다. 범이 죽어 가죽이 남았다면 그의 호피(虎皮)를 감정하여 ‘수남(壽男)’이라고 하랴? ‘복동(福童)’이라고 하랴? 범이란 범이 모조리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시인 윤동주를 몰랐기로소니 윤동주의 시가 바로 ‘시’고 보면 그만 아니냐?

호피는 마침내 호피에 지나지 못하고 말 것이나, 그의 ‘시’로써 그의 ‘시인’됨을 알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 그의 유시(遺詩) 「병원」의 一節

 

 

그의 다음 동생 일주 군과 나의 문답, ―

“형님이 살었으면 몇 살인고?”

“설흔한 살입니다.”

“죽기는 스물아홉에요―”

“간도에는 언제 가셨던고?”

“할아버지 때요.”

“지나시기는 어떠했던고?”

“할아버지가 개척하여 소지주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무얼 하시노?”

“장사도 하시고 회사에도 다니시고 했지요.”

 

“아아, 간도에 시(詩)와 애수(哀愁)와 같은 것이 발효(醱酵)하기 비롯한다면 윤동주와 같은 세대에서 부텀이었고나!” 나는 감상하였다.

 

 

..........

봄이 오면

죄를 짓고

눈이

밝어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 「또 태초의 아침」의 一節

 

 

 

다시 일주 군과 나와의 문답, -

“연전을 마치고 동지사에 가기는 몇 살이었던고?”

“스물 여섯 적입니다.”

“무슨 연애 같은 것이나 있었나?”

“하도 말이 없어서 모릅니다.”

“술은?”

“먹는 것 못 보았습니다.”

“담배는?”

“집에 와서는 어른들 때문에 피우는 것 못 보았습니다.”

“인색하진 않았나?”

“누가 달라면 책이나 샤쓰나 거져 줍데다.”

“공부는?”

“책을 보다가도 집에서나 남이 원하면 시간까지도 아끼지 않읍데다.”

“심술(心術)은?”

“순하디 순하였습니다.”

“몸은?”

“중학 때 축구선수였습니다.”

“주책(主策)은?”

“남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도 함부로 속을 주지는 않읍데다.”

 

 

...............

코카사스 산중에서 도망해온 토끼처럼

둘러리를 빙빙 돌며 간을 지키자.

 

내가 오래 기르던 여윈 독수리야!

와서 뜯어 먹어라, 시름없이

 

너는 살지고

나는 여위어야지, 그러나,

- 「간」의 一節

 

 

노자 오천언(五天言 )에,

‘허기심(虛基心) 실기복(實基腹) 약기지(弱其志) 강기골(强其骨 )’이라는 구가 있다.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일제 시대에 날뛰던 부일문사(附日文士) 놈들의 글이 다시 보아 침을 배앝을 것뿐이나, 무명(無名) 윤동주가 부끄럽지 않고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시를 남기지 않았나?

시와 시인은 원래 이러한 것이다.

 

 

..................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십자가」의 一節

 

 

일제 헌병은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 청년 시인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

 

뼈가 강한 죄로 죽은 윤동주의 백골은 이제 고토(故土) 간도에 누워 있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 보며

눈물 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또 다른 고향」

 

 

만일 윤동주가 이제 살아 있다고 하면 그의 시가 어떻게 진전하겠느냐는 문제.

 

그의 친우 김삼불 씨의 추도사와 같이 틀림없이, 아무렴! 또 다시 다른 길로 분연 매진할 것이다.

- 1947년 12월 28일 지 용

 

 

 

 

 

 

 

강처중의 「발문」

 

동주는 별로 말주변도 사귐성도 없었건만 그의 방에는 언제나 친구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모리 바쁜 일이 있더라도 “동주 있나” 하고 찾으면 하던 일을 모두 내던지고 빙그레 웃으며 반가히 마조앉아주는 것이었다.

“동주 좀 걸어보자구” 이렇게 산책을 청하면 싫다는 적이 없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산이든 들이든 강까이든 아모런 때 아모데를 끌어도 선듯 따라 나서는 것이었다. 그는 말이 없이 묵묵히 걸었고, 항상 그의 얼굴은 침울하였다. 가끔 그러다가 외마디 비통한 고함을 잘 질렀다.

“아-” 하고 나오는 외마디 소리! 그것은 언제나 친구들의 마음에 알지 못할 울분을 주었다.

“동주 돈 좀 있나” 옹색한 친구들은 곳잘 그의 넉넉지 못한 주머니를 노리었다. 그는 있고서 안 주는 법이 없었고 없으면 대신 외투든 시계든 내주고야 마음을 놓았다. 그래서 그의 외투나 시계는 친구들의 손을 거쳐서 전당포 나드리를 부즈런히 하였다.

이런 동주도 친구들에게 굳이 거부하는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동주 자네 시 여기를 좀 고치면 어떤가” 하는데 대하여 그는 응하여 주는 때가 없었다. 조용히 열흘이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곰곰이 생각하여서 한 편 시를 탄생시킨다. 그때까지는 누구에게도 그 시를 보이지를 않는다. 이미 보여주는 때는 흠이 없는 하나의 옥이다. 지나치게 그는 겸허온순하였건만, 자기의 시만은 양보하지를 안했다.

또 하나 그는 한 여성을 사랑하였다. 그러나 이 사랑을 그 여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끝내 고백하지 안했다. 그 여성도 모르고 친구들도 모르는 사랑을 회답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 사랑을 제 홀로 간직한 채 고민도 하면서 희망도 하면서…… 쑥스럽다 할까 어리석다 할까? 그러나 이제와 고쳐 생각하니 이것은 하나의 여성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않을 ‘또 다른 고향’에 대한 꿈이 아니었던가. 어쨌던 친구들에게 이것만은 힘써 감추었다.

그는 간도에서 나고 일본 복강에서 죽었다. 이역(異域)에서 나고 갔건만 무던이 조국을 사랑하고 우리말을 좋아 하더니 - 그는 나의 친구도 하려니와 그의 아잇적동무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의 죄명으로 2년형을 받아 감옥에 들어간 채 마침내 모진 악형에 쓸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몽규와 동주가 연전을 마치고 경도에 가서 대학생 노릇하던 중도의 일이었다.

“무슨 듯인지 모르나 마지막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운명했지요. 짐작컨대 그 소리가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는 듯 느껴지더군요.”

이 말은 동주의 최후를 감시하던 일본인 간수가 그의 시체를 찾으러 복강 갔던 그 유족에게 전하여준 말이다. 그 비통한 외마디 소리! 일본 간수야 그 뜻을 알리만두 저도 그 소리에 느낀 바 있었나 보다. 동주 감옥에서 외마디 소리로서 아조 가버리니 그 나이 스물아홉, 바로 해방되던 해다. 몽규도 그 며칠 뒤 따라 옥사(獄死)하니 그도 재사(才士)였느니라. 그들의 유골은 지금 간도에서 길이 잠들었고 이제 그 친구들의 손을 빌어 동주의 시는 한 책이 되어 길이 세상에 전하여지려 한다.

불러도 대답 없을 동주 몽규었만 헛되나마 다시 부르고 싶은 동주! 몽규!

- 강처중

 

-『윤동주 평전중에서

 

윤동주 평전 소개글 : 작가이자 사학자인 송우혜가 되살려낸 윤동주의 순결한 초상

의지와 신명의 인물로서 그네타기까지 즐겼던 증조부, 소박한 농부이자 관후한 장자였던 조부, 시적 기질을 지닌 창백한 지식인이었던 부친, 따뜻하고 너그러운 인품의 어머니.

동경제대 출신 노스승 명희조의 날카로운 역사 인식. 고종사촌 송몽규의 파란 많은 인생 역정. 그의 시 가운데 가장 즐겁고 밝은 시 「봄」의 배경이 된 성악 전공의 동경 유학 여학생. 웃는 얼굴로 한인들의 혼을 빼던 일본 대륙낭인 일고병자랑. 형무소 간수들에게서 '함경도 미남'이란 별칭으로 불렸던 사형수 강처중. 선배의 작품을 눈 밝게 알아보고 소중하게 보존해낸 정병욱……

그처럼 다양했던 주변인물들과 함께 살다간 다채로운 삶의 자취, 북간도의 역사와 당시의 시대상황, 일경의 극비취조문서, 일본 경도재판소의 판결문 등을 비롯한 각종 자료들에 대한 예리하고 집요한 추적과 분석을 통해서 황홀하게 떠오른 민족시인 윤동주의 삶과 시.

- 푸른역사 출판부

 

 

송우혜는 견고한 작가이며 사학자이다. 이번에 그가 이룩해낸 윤동주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 문학의 순결한 초상은 이 시대가 뜻하는 문학행위의 일단이자 역사행위의 한 열매에 값하고 있다. 결코 과장하지 않고 일탈하지 않는 충실한 탐구정신과 정열과 책임이 어우러진 이 업적을 나는 크게 자랑한다. - 고은

 

 

송우혜 씨의 '윤동주 평전'은 풍부한 자료 섭렵과 빈틈없는 현장답사로 씌어진 역저로 윤동주 연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였다. 그의 치밀한 자료 검증은 명망 높은 소설가로서의 상상력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조화되어 더욱 생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문학 연구자들에게 미개척의 영역을 향한 새로운 도전을 강요한다. - 최동호

 

/////////////////////////
 윤동주의 시를 세상에 알린 사람은 경향신문 주필인 정지용 시인이다. 윤동주의 친구인 강처중은 경향신문 기자로 있으면서 1947년 윤동주의 시를 정지용에게 보였다. 윤동주는 생전에 정지용의 시를 좋아했다. 정지용은 윤동주 시의 뛰어난 작품성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1947년 2월 13일자 경향신문에 윤동주의 시 ‘쉽게 씌어진 시’가 처음 실렸다. 정지용은 1948년 발행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에 서문을 실었다. 서문 일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일제 헌병은 동(冬)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마리 잉어와 같은 조선청년 시인을 죽이고 제 나라를 망치었다. 뼈가 강한 죄로 죽은 윤동주의 백골은 이제 고토 간도에 누워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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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서는 안되는 분들인데…."

정병욱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 앞에 앉은 윤동주의 아우 윤일주가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1948년 1월30일 발간된 초판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펼쳐 놓고 말을 아끼고 있었다. 55년 초, 윤동주 서거 10주기를 앞두고 있는 때였다. 윤동주가 시인다운 면모를 갖춘 지면에 처음 소개된 것은 앞서 말한 대로 47년 2월13일자 경향신문에서였다. 이후 같은 해 3월13일자에 '또다른 고향'이, 7월27일자에 '소년'이 같은 지면에 게재되었고, 아마도 정지용이 그해 7월 초에 경향신문을 그만두고 이화여대 교수로 복직하지 않았다면 시 몇 편이 더 게재되었을 것이다.

 

‘서시’ 의 육필 원고.
정지용(왼쪽), 강처중.

그러나 정지용은 자신을 좋아한 후배 시인 윤동주와의 인연을 더 한층 뜻깊게 이어간다. 47년 2월16일 윤동주와 송몽규를 기리는 추도회를 가진 바 있는 친구들은 이후 유고 시집 발간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강처중 등 친구들이 시집의 서문 집필자로 정지용을 지목한 것은 거의 필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정병욱이 보관한 '서시'로 시작되는 원래 시집 원고 19편과 강처중이 보관하고 있던 시들에서 가려 뽑은 시들을 합해 모두 31편을 담은 윤동주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정지용의 서문과 강처중의 발문을 달고, 3주기 무렵인 48년 1월 정음사에서 발간된다. 정지용은 각박해진 이념 시대에 생각을 미루고 붓을 머뭇거리던 태도를 씻고 보기 드문 품격의 문장을 선보인다.

"청년 윤동주는 의지가 약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서정시에 우수한 것이겠고, 그러나 뼈가 강하였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일적(日賊)에게 살을 내던지고 뼈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던가?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서 죽었구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

윤동주에게 "동 섣달에도 꽃과 같은,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와 같은" 시인이라는 찬사를 바칠 수 있었던 사람이 정지용이었다.

한편, 정지용에게 윤동주를 알리고, 연전 동창생들과 후배 정병욱, 그리고 윤동주의 아우 윤일주를 독려하면서 유고시집 발간을 주도한 인물이 강처중이다.

정병욱과 윤일주는 윤동주를 세상에 알린 두 사람의 공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윤동주 서거 10주기를 맞아 누이 혜원이 가지고 온 윤동주의 다른 시 원고를 보충해 새롭게 선보이는 증보판 시집에서 두 사람의 글을 삭제하고 함께 입을 다물기로 묵계하고 있었다.

대시인 정지용은 이때, 6·25때 남침한 북한군을 따라 북으로 가 행방불명된 시인이었다. 강처중은, 그때껏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좌익 활동을 배후에서 지휘한 인물로 지목되어 사형 언도를 받은 인물이었다.

윤동주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은 이렇듯 한국 역사에서 지워져 갔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러 정지용이 우리 곁에 먼저 돌아왔다. 이제는 '빨갱이'였던 강처중마저 소설가 송우혜에 의해, 사형수였다가 6·25의 와중에 감옥을 나와 '쏘련'을 향해 월북한 뒤 소식 없는 인물로 취재되고 있다.

윤동주는 우리에게 읽히고 사랑 받으면서 절로 굴곡의 역사를 중심에서 지켜온 인물로 살아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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