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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初心 - 현대시의 靈性
2016년 02월 20일 05시 29분  조회:3748  추천:0  작성자: 죽림

현대시의 종교성과 탈종교성

 

 

                                            /박남희

 세상 만물에는 종교성이 깃들어있다. 여기서 종교성을 영성으로 바꾸어 말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굳이 애니미즘이나 토테미즘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만물에 영성이 깃들어있다는 생각은 이미 고전적인 사유에 해당된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오면서 인간의 이성은 영성을 억압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성주의를 기반으로 한 근대 자본주의 사상은 근본적으로 종교성과 탈종교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막스 베버의 지적처럼 근대 자본주의 윤리 속에는 칼빈의 종교개혁 사상의 핵심인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철학이 이성 중심에서 탈이성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상을 프로테스탄티즘과 직접적으로 연계시킬 수는 없지만, 이성이 가지고 있던 절대 권력은 이미 그 힘을 상실한지 오래다.

세상 만물에 종교성이 깃들어 있다면, 시에도 종교성이 깃들어 있다는 명제는 타당하다. 왜냐하면 시야말로 세상만물을 대상으로 한 인간의 사유와 무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고 쓰는 시 속에는 종교성과 탈종교성이 동시에 들어있다. 여기서 말하는 시의 종교성은 시에 내재해 있는 종교적 사상뿐 아니라 창조자적 관점에 서있는 시인을 포함한다. 이러한 사유는 시의 종교성을 신앙적 차원에 가두어두지 않고 시적 차원으로 확장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따라서 시인은 시적 대상을 자신의 독특한 관점으로 믿고 있는 신자인 동시에, 대상을 새롭게 창조해내는 창조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는 그 자신이 스스로 존재성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탈종교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시 스스로가 미적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은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처럼 우리 시는 이미 시의 종교성과 탈종교성 사이에서 무수히 길항하면서 발전해왔다. 하지만 우리시의 종교성과 탈종교성을 탐색하는 논의는 아직 매우 단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시의 종교성과 탈종교성을 신앙적 차원을 뛰어넘어 시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제는 뿌리보다 줄기를 믿는 편이다

 

 

줄기보다는 가지를,

가지보다는 가지에 매달린 잎을,

잎보다는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믿는 편이다

 

 

희박해진다는 것

언제라도 흩날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뿌리로부터 멀어질수록

가지 끝의 이파리가 위태롭게 파닥이고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당신은 뿌리로부터 달아나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뿌리로부터 달아나려는 정신의 행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허공의 손을 잡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

 

 

뿌리 대신 뿔이라는 말은 어떤가

 

 

가늘고 뾰족해지는 감각의 촉수를 밀어 올리면

감히 바람을 찢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소의 뿔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뿌리로부터 온 존재들,

그러나 뿌리로부터 부단히 도망치는 발걸음들

 

 

오늘의 일용할 잎과 꽃이

천천히 시들고 마침내 입을 다무는 시간

 

 

한때 나는 뿌리의 신도였지만

이미 허공에서 길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사람

 

 

―나희덕,「뿌리로부터」전문(『문예중앙』, 겨울호)

 

 

 

 

나희덕의 시에서 ‘뿌리’에 대한 사유는 그의 등단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희덕의 신춘문예 당선작 「뿌리에게」는 뿌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모성적 대지의 상상력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나희덕의 시는 초기작에서부터 일관되게 모성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여성으로서의 존재성에 더 깊이 천착해있다. 최근의 나희덕 시가 여성의 ‘사랑’이라는 주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인용 시는 그의 관심이 모성적 뿌리에서 이파리를 거처 우듬지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이파리나 우듬지는 모성성보다는 여성성을 나타내는 은유이다. 나희덕이 이파리나 우듬지의 삶을 믿는 것은 “뿌리로부터 멀어질수록”“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희덕은 모성의 견고한 집을 벗어나는 일이 여성적 사랑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인의 의식변화는 이 시의 후반부에 오면 ‘뿔’ 이미지에 귀결된다. ‘뿌리’와 ‘뿔’의 발음의 유사성에서 출발한 시인의 진술은 ‘무소의 뿔’에까지 상상력이 미치면서 이 시가 본질적으로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시라는 것이 드러난다. ‘무소의 뿔’은 1993년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을 사회 전반의 문제로 끌어올려 페미니즘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였던 공지영의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시인의 사유는 “가늘고 뾰족해지는 감각의 촉수를 밀어 올리면/감히 바람을 찢을 수 있을 것 같은데/무소의 뿔처럼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은데”같은 구절에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여기서 “가늘고 뾰족해지는 감각의 촉수”는 여성으로서의 육체적 감각과 연관되어서 여성의 성적 즐거움인, 자크 라캉의 ‘주이상스(jouissance)’를 연상시켜준다. 나희덕은 모성적 뿌리의 삶으로부터 도망쳐서 여성적 아름다움과 성적 즐거움이 있는 ‘잎과 꽃’의 세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한 그루 나무인 나희덕의 삶 속에서 ‘잎과 꽃’은 더 이상 장식품이 아니라 매일매일 상용하는 ‘일용할 잎과 꽃’이다. 이 시는 형식적으로는 믿음을 강조함으로써 종교성을 지향하지만, 그 정신은 오히려 탈종교성을 지향한다.

 

 

 

 

사람은 참말로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신께서 내게 옷 한 벌 지어주셨다. 의심이라는 환한 옷,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잠을 잘 때도 벗지 않는다. 견고한 이 한 벌의 옷을 입고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신다. 나는 너를 의심한다. 잠들지 못하는 밤을 위해 의심이 내 등을 다독인다. 내가 너를 지키마. 편히 쉬어라. 어떤 평안이 광배처럼 나를 둘러싸고 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고 전지전능하사 나를 보호하시며 한없이 사랑하시는도다. 꿈속에서 나의 찬양은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배화교도처럼 의심의 불을 조용히 밝히고 내 아버지마저 그 제단에 바치기로 결심한 어느 새벽, 당신도 내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없다고 고백했을 때 천둥과 벼락으로 인해 의심의 옷이 더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우대식,「의심」전문(『시안』, 겨울호)

 

 

 

 

우대식의 시「의심」은 나희덕의 시와 마찬가지로 형식적으로는 종교적 외피를 입고 있으면서도 내용적으로는 탈종교성을 지향하는 시이다. 이 시에 나오는 신은 “당신은 나의 아버지이고 전지전능하사 나를 보호하시며 한없이 사랑하시는도다.”라는 구절로 보아, 기독교의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시인은 신이 만들어준 ‘의심’이라는 옷을 입고 사람들을 의심하고 아버지를 배반하고 급기야는 신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이 시의 어법은 “의심이라는 환한 옷,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잠을 잘 때도 벗지 않는다”는 시인의 진술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반어적이다. 일반적으로 반어법을 사용하는 시들은 알레고리적 속내를 보여준다. 이 시 역시 세상이 서로를 믿지 못하고 끝없이 의심하는 불신풍조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기반성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 이 시의 말미에 나오는 ‘천둥과 벼락’은 의심으로 점철된 세상에 대한 하늘의 준엄한 꾸짖음을 상징하는 이미지이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오히려 “의심의 옷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는 결구는 반성할 줄 모르는 자아와 시대에 대한 반어적 풍자라고 볼 수 있다.

나희덕과 우대식의 시는 공통적으로 종교적 외피를 입고 있으면서도 내면적으로는 탈종교성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시인들이 문학을 종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종교마저도 과감하게 비유로 사용하는, 금기에 대한 위반의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텐션(tension)이 문학의 본질이라면 종교적 틀이 그 무게로 인해 종종 문학적 긴장관계를 갖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나의 神은 언제나 왼쪽 귀로만 온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편애에 익숙한 그는 왼손잡이인지도 몰라

사륵 사르르

긴 옷자락을 끌며

하루도 빠짐없이 전례처럼 그가 다녀가고

내 왼 귀는 그래서 종교적이다

지극히 도덕적이다

오른 귀의 낭만과 사철 부는 바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좌우의 기류가 풀 멕인 하늘처럼 팽팽한 날

그런 날은

성난 신의 발자국 소리가 더욱 거칠어진다

데칼코마니 같은 내 몸의 경계에는

반절짜리 연애가 산다

절반쯤 달려가다 돌아오고 돌아오는

슬픈 연인이 산다 그래도 모른 척 신은

왼쪽 귓속에 더 깊은 소리의 동굴을 파고

사르륵 사륵

오늘 밤도 내 왼쪽 귀는 거룩한 순교를 꿈꾸며

신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다

 

 

—이화은,「이명」전문(『미네르바』, 겨울호)

 

 

 

 

 

이 시는 종교적 모티브를 이명 현상에 비유하여 쓴 시이지만, 그 종교성을 단순히 비유로 사용하지 않고 삶의 중요한 원리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시인이 종교적 도덕성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깊이 있게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나의 神은 언제나 왼쪽 귀로만 온다”는 이 시의 첫 구절은 표면적으로는 왼쪽 귀에만 이명 현상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속뜻은 ‘왼쪽’으로 상징되는 삶의 부정적인 측면에서 종교적 도덕성이 작동하여 “오른 귀의 낭만과 사철 부는 바람”에 제동을 거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는 보편적인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순종과 위반이라는 양면성을 이명 현상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

시인은 종종 “좌우의 기류가 풀 멕인 하늘처럼 팽팽한 날”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화은 시인의 내면에서 종교적 도덕성이 여전히 크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연애는 ‘반절짜리 연애’일 수밖에 없고, 그의 몸의 경계에는 “절반쯤 달려가다 돌아오고 돌아오는 /슬픈 연인”이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이상이 그의 소설 「날개」에서 ‘아내’와 '나'의 관계를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로 표현하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어쩌면 천형과도 같은 종교적 도덕성이 시인에게는 숙명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시는 무신론자가 만든 종교,

신 없는 성당,

외로움의 성전,

언어는

시름시름 자란

외로움과 사귀다가 무성히 큰 허무를 만든다.

외로움은 시인들의 은둔지,

외로움은 신성한 성당,

시인은 자기가 심은 나무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는다.

나는 나무에 목매달고 죽는 언어 밑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다.

시인은 1인 교주이자

그 자신이 1인 신도,

시는 신이 없는 종교,

그 속에서 독생獨生하는 언어.

시은市隱하는 언어

나는 일생 동안 허비할 말의 허기를 새기리라.

 

 

—조정권,「은둔지」전문(『동리목월』 겨울호)

 

 

 

 

혹자는 시를 구원의 도구로 여기기도 하지만, 조정권 시인은 “시는 무신론자가 만든 종교”라고 단언한다. 이런 말의 이면에는 시로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시를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오히려 시의 탈종교성을 부각시키고 있는 이 시는 일종의 메타시라고 볼 수 있다. “언어는/시름시름 자란/외로움과 사귀다가 무성히 큰 허무를 만든다.”는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정권의 시는 다분히 노장적 허무의 세계에 닿아있는 듯하다. 이 시에 의하면 시인은 “나무에 목매달고 죽는 언어 밑에서/무릎 꿇고 기도”하는 존재이다. 그의 신앙관에 의하면 시의 언어는 구원의 언어가 아니라 죽은 언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신이 없는 종교를 믿고 그 속에서 독생하는 언어로 시를 쓰면서 일생동안 말의 허기를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시인의 이러한 말들 속에는 시는 종교가 될 수 없다는 시의 탈종교성이 부각되어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러한 탈종교성이야말로 ‘말의 허기’로 대변되는 시인의 열정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일찍이 브룩스가 말한 ‘시의 언어는 역설의 언어’라는 명제는 조정권 시인이 말하고 있는 시의 탈종교성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종교에 매몰되지 않고 종교성을 넘어선 시가 일반적으로 좋은 시로 평가받고 있는 현실은 현대시의 본질이 탈종교성에 더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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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 경기도 고양 출생.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으로 『폐차장 근처』『이불 속의 쥐』『고장 난 아침』, 평론집으로『존재와 거울의 시학』이 있다. 현재『시산맥』주간, 『창작 21』편집위원으로 있으며, 고려대, 숭실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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