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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初心 - 명상과 詩
2016년 02월 24일 05시 52분  조회:4809  추천:0  작성자: 죽림

명상과 시

 

 

 

장석주

 

 

 

 

 

 

 

 

시를 쓰는 자들이 “비가 온다.”고 표현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본디 비는 오고 가는 것이 아니다. “비가 온다.”는 것은 사람의 관념일 뿐이다. 그것은 사람이 지구상에 출현하기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항상 있어온 현상이다. 비는 언제나 있다. 그것은 오고 가지 않는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도 비라는 현상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주체로 고정시키고 사물들을 객체화하는 인간 중심의 오래된 인습이 비를 제 몸 가까이 끌어당겨 “비가 온다.”라고 쓰게 한다. 국소적 공간 경험에 갇혀 있는 자들만이 “비가 온다.”고 쓴다.

 

 

 

좋은 시인은 “비가 온다.”라고 쓰지 않는다. 제 몸의 경험을 받들어 이렇게 쓴다. “점, 점, 점, 사나워지는 누에들의 뽕잎 갉아먹는 소리,”(주용일, 「봄비」)

 

 

“나무에서 나오는 방법은 나무를 통하는 길뿐이다.”(프랑시스 퐁쥬)

 

 

 

명상은 인습적 관념의 속박에서 사람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명상은 시의 반숙(半熟)이다. 그럼 완숙은 어떤 경지일까 ? 열반(涅槃). 하나의 현전.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순간.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 시는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짓이다. 시는 우주의 데이터 베이스를 훔치는 짓이다. 플라톤이 역정을 내며 이상국가에서 시인들을 모조리 추방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공화국에서 시인들은 파렴치한 자들이라고 낙인찍힌다. 이것은 우화가 아니다. 현실이다.

 

 

1964년에 소비에뜨 공화국의 법정은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는 시인 브로드스키를 “사회적으로 유용한 일을 하지 않는 기생충”이라고 규정지었다. 그 법정에서 있었던 심문 내용의 일부를 보자. 판사 : 당신은 누구인가 ? 브로드스키 : 나는 시인이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판사 : ‘~ 라고 생각한다’는 표현은 허용되지 않는다. 당신의 직업은 무엇인가 ? 브로드스키 : 나는 시를 쓴다. 출판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판사 : 당신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하지 않는 이유를 말하라. 브로드스키 : 나는 시를 썼다. 그것이 내 일이다. 판사 : 당신을 시인으로 공인한 것은 누구인가 ? 브로드스키 : 없다. 그것은 나를 인간으로 공인한 사람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판사 : 소비에뜨에서는 누구나 일을 해야 한다. 당신은 왜 일을 하지 않았는가. 브로드스키 : 나는 일을 했다. 시가 나의 일이다. 나는 시인이다. 결국 브로드스키는 공화국에서 추방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브로드스키의 재판은 시의 DNA가 생물학적 합목적성과 무관하며 공익적 세계의 건설에 기여하는 바가 전무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밝혀준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 ~ B.C. 322)는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시학』에서 “시인들에 대한 비난은 다음의 다섯 종류, 즉 불가능, 불합리, 도덕적으로 해로운 요소, 모순, 시 창작 기술의 올바른 기준에 반하는 것 등으로 구분된다.”고 쓰고 있다. 시, 무용한 짓. 상상임신. 옐로카드를 받는 헐리우드 액션. 쇼펜하우어는 그것이 의지와 표상 사이에 있다,고 선언했다. 베르그송은 그것이 생의 비약이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시의 미학적 선택에 내재한 반도덕성, 무용함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명상은 초언어를 지향한다. 초언어는 ‘나’와 ‘너’의 분별이 없는 태허(太虛)의 상태다. 가령 “잘 익은 똥을 누고 난 다음 / 너, 가련한 육체여 / 살 것 같으니 술 생각 나냐?”(김형영, 「일기」). 잘 익은 똥을 누고 난 뒤 비어서 가뿐한 몸에서 태허를 겪는다.

 

 

 

명상은 그 태허의 상태에서 사물들의 저편에 숨은 신을 만나는 일이다. 숨은 신은 죽은 고양이다. 어느 선사에게 물었다. ―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 선사가 대답했다. ― 죽은 고양이다. “국도 한 가운데 널브러져 있는 / 죽은 고양이의 / 저 망가진 외출복 !”(이창기 「봄과 고양이」)

 

 

명상과 시는 그 계통분류상 다른 가지에 속해 있다. 하지만 명상과 시는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명상에서 깨달음은 갑자기 온다. 시의 영감도 어느 날 갑자기 예기치 않은 순간에 뇌속에서 부화한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 아니었음, 침묵도 아니었어, /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 밤의 가지에서, /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 격렬한 불 속에서 불러어, / 또는 혼자 돌아오는 길에 / 얼굴 없이 있는 나를 / 그건 건드리더군.”(파블로 네루다, 「시」)

 

 

 

사람들은 깨달음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말한다. 일본 불교의 한 맥인 본각사상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음의 세계로 받아들인다. 이미 깨달았으니 다른 좌선도 필요 없고, 악을 행하는 것도 자유다. 조악무애(造惡無礙)의 뿌리가 본각사상이다. 도겐(道元, 1200 ~ 1253)도 그 영향권 아래에 있던 승려다. 도겐은 수행의 결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게 아니라 좌선 그 자체가 깨달음이라고 말했다. 깨달음은 없다. 깨달음을 향한 지향이 있을 뿐이다.

 

 

명상은 언어를 내려놓는 일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언어라는 도구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되 궁극에는 언어를 버려야 한다. 프랑시스 퐁쥬는 새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새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썼다. “하늘의 쥐, 고깃덩이 번개, 수뢰, 깃털로 된 배, 식물의 이”도 그 중의 일부다. 그러나 새는 공중에서 미끄러지듯 활강하지만, 프랑시스 퐁쥬가 원할 때 그의 시 속으로 날아들지는 않는다.

 

 

 

시는 언어를 딛고 언어를 넘어간다. 시는 없다. 시를 지향하는 마음 그 자체가 있을뿐이다.

 

 

시와 명상은 다 함께 초언어(超言語)를 지향하지만 시는 방법적 도구로 언어를 쓴다. 언어는 물(物)을 지시하는 기호다. 언어는 물이 아니다. 언어는 관념이다. 언어는 나와 물 사이에 있다. 언어는 나와 세계, 존재와 부재 사이에 걸쳐진 다리다.

 

 

 

시는 언어가 만들어내는 의미론적 연관의 장(場)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를 만나는 것은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언어와 언어 사이의 여백들에 메아리치고 있는 비언어적인 울림 속에서다.

 

 

시는 언어가 아니다. 시는 언어와 언어 사이 그 여백에서 아직 형태소(形態素)를 얻지 못한 생성하는 언어, 발효하는 언어다.

 

 

시는 의미가 아니다. 의미 이전이다. 이를테면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 긴 분비물의 길이 나 있다”, 혹은 “물렁물렁한 힘이 조금씩 제 몸을 녹이며 건조한 곳들을 적셔 길을 냈던 자리, 얼룩”(김기택, 「얼룩」)와 같은 구절들은 시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의미의 잠재태(潛在態)임을 말해준다.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읽은 모든 작가들이 바로 나이며,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내가 사랑한 모든 여인들이 바로 나다. 또 나는 내가 갔던 모든 도시이기도 하며 내 모든 조상이기도 하다.”

 

 

거울과 부성(父性)은 시와 상극이다. 다시 보르헤스는 말한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증식시키고, 마치 그것을 사실인 양 일반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거울의 뒷면, 그 텅 빈 공허를 본다. “내가 보는 것은 늘 청동거울의 뒷면이다”(조용미, 「청동거울의 뒷면」)

 

 

의미로서의 시는 사물로서의 시보다 하급이다. B급이다. 하이쿠는 17자로 끝난다. 의미가 언어의 양에 비례한다면 하이쿠는 가장 무의미한 언어의 형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시의 의미는 대개는 언어와 반비례한다. 하이쿠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시 형식 중에서 가장 슬림하다. 하이쿠는 해석의 언어가 아니다. 사물과 만나는 순간의 아주 희미한 떨림을 기록한다. 그것은 아직 시로 진화하기 이전의 원시적 흔적이다.

하이쿠에서 언어에 대한 근검절약은 의미에 대한 태만으로 이어진다. 가장 성공한 하이쿠는 무의미의 의미를 체현해낸다. 하이쿠는 언어가 아니라 사물의 은폐된 후경(後景)을 겨냥한다. 하이쿠는 오류와 우연들에 필연의 에너지를 수혈하는 선(禪)과 명상에 가깝다. “같은 두 번의 입맞춤도 없고 / 하나같은 두 눈맞춤도 없다.”(쉼보르스카, 「두 번이란 없다」)

 

 

명상은 사물의 계통분류상 속(屬)이고 시는 그 하위에 속하는 종(種)이다. 명상은 유실수고, 시는 앵두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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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라면 한 번 쯤 새겨두고 싶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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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삶의 거처 / 백무산

 

     

 

 

 

 

 

 

 

 

삶의 거처

 

                                                 백 무 산

 

강이 어디에 있냐고 그가 물었다

길을 묻는가 해서 내가 되물었다

이리 쭉 가면 다리가 나오느냐고 다시 물었다

비닐 가방에 때 절은 작업복

거친 손등에 머리는 반백인 사내

 

늦가을 찬바람 안고 돌아서는 그를 불렀다

그리고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모든 걸 잃은 사람에겐

사람의 체온이 종교다

 

저들의 탐욕과 음모와 속임수로

많은 사람들 찬 거리로 내몰렸지만

우린 또 기억한다 그 숨 막히던 날들

모두가 졸부가 되던 뻔뻔스럽던 날들

 

그 사람 앞에 앉아 나도 밥 한 그릇 받는다

어쩐지 목숨 비치는 국밥 한 그릇 받는다

강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던가

목숨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던가

 

 

백무산 시집 <초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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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잡초 하나 / 백무산

 

               

 

 

 

 

 

 

 

잡초 하나

 

                                             백 무 산

 

종일토록 나는 지리산

잡초를 뽑고 있었다

 

깜장 고무신에 벗은 발등이 까만 여자

거친 손 까만 얼굴에 눈 푸른 여자

 

고물 트럭을 몰고 와 절집 볼일을 보고는

가던 길에 날 보더니

다가와 묻는다

잘 되느냐고

 

내사 별일 없는 사람이지요하니

공부란 것이 원래 별일 없는 일이지요한다

 

여자는 고물 트럭에 시동을 걸었고

나는 벼랑에 잡초 하나 붙들고 있었다

 

 

백무산 시집 <초심중에서


우리는 읍으로 간다 / 이상국











우리는 읍으로 간다

이 상 국

우리는 읍으로 간다
한때는 슬픈 식민지 백성으로
또는 인공의 인민이 되어서,
자유당 공화당 지나 세상이 자꾸 바뀌어도
읍에서 부르면 우리는 간다

할아버지 지게 지고 부역 가던 길
볏가마 실려 나가고
아이들 공장으로 떠나던 그 길
머나먼 유엔 사무총장에게 메세지를 보내고
반나절이면
혁명과 쿠테타에도 도장 찍어 주고 오던 길로
오라면 우리는 간다

읍에서 오라면 우리는 간다
걸핏하면 프레카드 앞세우고 가
그렇게 손을 흔들어 주었음에도
세상이 뒤숭숭하고
나라가 위험하면
오늘도 우리는 읍으로 간다


이상국 시집 <우리는 읍으로 간다> 중에서




이상국 연보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1976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

1985년 첫 시집 <동해별곡> 간행.

1989년 제2시집 <내일로 가는 소> 간행.

1992년 제3시집 <우리는 읍으로 간다> 간행.

1995~1998년 민예총 강원지회장

1998년 제4시집 <집은 아직 따뜻하다> 간행. 이 시집으로 제1회 백석문학상, 제9회 민족예술상 수상.

1999~2002년 민족문학작가회의 강원지회장

2003년 제1회 유심작품상 수상.

2003~200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

2005년 제5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간행.

2011년 불교문예작품상 수상.

2012년 육필시선집 <국수가 먹고 싶다>, 제6시집 <뿔을 적시며> 간행.
제24회 지용문학상 수상. 한국작가회의 자문위원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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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내 가는 모든 길의 검문소에서 / 이상국











내 가는 모든 길의 검문소에서

이 상 국

젊어서는 그랬다
대대리 삼거리에 차가 멈추면
죄 없이도 가슴이 방망이질했다
권총 찬 경관이 경례를 올려붙이며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하면
나는 까닭 없이 오줌이 마려웠다

화진포 삼불사로
어머니 사십구제 모시러 가던 그해 겨울
수염 거칠고 주민등록증마저 없어 수상하다고
나는 사정없이 정강이를 차였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아무 소용없던
십수 년 전 조국의 국도

마흔이 넘은 지금도 그렇다
그 삼거리에 아직 차는 어김없이 멈추고
엠식스틴 움켜쥔 경관이 통로를 훑어 오면
나는 아직 뭔가 불어야 할 게 있는 것 같다
내 가는 모든 길의 검문소에서
오늘도 나는 가슴이 뛴다


이상국 육필시선집 <국수가 먹고 싶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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