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무명詩人
2016년 02월 18일 06시 56분  조회:4369  추천:0  작성자: 죽림

무명시인

            /함명춘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
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엔 없었던
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니, 한 두어 번 부러진 연필을 깎을 때였을까
그가 연필을 들고 있을 때만큼은 언제나
바나나 같은 향기가 손에 와 잡히곤 하였다
그는 마을 어귀 가장 낮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마당엔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넣었다, 그러면
나비와 새 들이 하늘에서 날아와 읽고 돌아가곤 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시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은 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인기척이라곤 낙엽 같은 노트를 찢어대는 소리일 뿐
아니, 밤보다 깊은 울음소릴 몇 번 들은 적이 있었을까
난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
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 들이 그의 유일한 독자였으니
세상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기 위해 쓴 시처럼
난 그가 집 밖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
잠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자꾸 적어넣었다
더이상 쓸 수 없을 만큼 연필심이 다 닳았을 때
담벼락에 도무지 읽을 수 없는 몇 줄의 시를 새겨넣고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
무명시인
끝내 그의 마지막 시는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했다
그 몇 줄의 시를 읽을 수 있는 것들만 주위를 맴돌았다
어떤 날은 바람과 구름이 한참을 읽다가 무릎을 치며 갔다
누군가는 그 글이 그가 이 세상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라 하고
또 누군가는 그건 글도 시도 아니라고 했지만
더이상 아무도 귀에 담지 않았다
그가 떠난 집 마당, 한 그루 나무만 서 있을 뿐
도무지 읽을 수 없는 몇 줄의 시처럼 세월이 흘러갔다, 흘러왔다

 
------

시인은 홀로 연필을 깎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그 집에 들어와 연필을 깎으며 살기로 한 사람이다. 그는 연필을 깎으며 마른 나무 같은 글들을 노트 속에 심기 시작한다.

한 그루 연필이 노트 속으로 들어가고 또 한 그루의 연필이 노트 속에 심겨지는 동안 세월이 갔다. 그가 그 방으로 들어와 열심히 연필을 깎았기 때문이다.

연필로 시를 쓰면 볏짚 타는 냄새가 나고, 저물 무렵 연필 속에서 흘러나온 글씨 속에는 비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비가 오는 날 젖은 볏짚이 타는 냄새를 쓰고 싶어서 그는 혼자 연필을 깎는 사람이다. 감추어 두었던 울음이나 세상이 자신을 지나가며 남겼던 것들이 혼자 헛웃음이 되면 그의 연필에서 흘러나온 젖은 볏짚들은 두엄이 되어 노트 귀퉁이에 쌓여간다.

그와 함께 그윽하게 썩어가기로 한 것이다. 그는 시인이다. ‘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에 없는, 허명을 남기는 일보다 자신의 노트 속에 새들을 남기겠다고 다짐한, 그래 진짜 시인은 부러진 연필을 깎아 새들을 불러 모으는 존재니까.

 

시평/김경주 시인

---------------------------

 

산중여관1

 

마당엔 제비가 낙엽을 쓸고

몇 개인지 모를 방을 옮겨다니며

물고기들이 걸레질을 할 동안

오동나무와 족제비는 아궁이를 지펴 서둘러 밥을 짖는다

뒤뜰에는 장작을 패는 바람의 도끼질 소리

혹시 오늘은 어느 객이 찾아오려나

주인인 듯한 허름한 옷차림의 산국화

현관문 앞 숙박계를 어루만지며

길고 흰 수염을 쓰다듬듯 시냇물이 산골짜기를 빠져나가는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세상의 길이란 길은 모두 잃어야 한 번 쯤

묵어갈 수 있는 산중여관

                                                                   - 함명춘 (1966~ )

 

"겨울의 초입에 서니 이런 산중여관에 가고 싶다. 가을은, 낙엽은 다 졌겠다. 나목이 되어 조용히 서 있어도

좋겠다. 산중여관의 주인은 까다롭지 않고 무던해서 노랗고 작은 산국화처럼 나를 보고 반겨 웃을 것이다. 그

러면 엷은 향기가 그에게서 내게로 올 것이다. 나는 세상을 떠나와 산중여관에 묵고, 시냇물은 세상을 찾아가

라고 거룻배를 띄워 보내도 좋겠다.

방과 마루에 걸레질을 하고, 불을 때 밥을 짖고, 밤새 문 밖에서 낙엽을 비질하는 바람의 소리를 듣고 싶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늦은 밤에 물을 끓여 차를 마시면 어느새 나도 수수해져 사람이 좋아질 것이다. 목침

을 베고 누우면 깊은 산속에 사는 사람처럼 순하게 잠들 것이다. 어느 날에는 소복하게 내린 눈을 순은의 아

침에 보게도 될 것이다" 시를 올린 문태준 시인의 글이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123 詩作初心 - 명상과 詩 2016-02-24 0 4838
1122 [아침 詩 한수] - 오징어 2016-02-24 0 3911
1121 [아침 詩 한수] - 기러기 한줄 2016-02-23 0 4251
1120 열심히 쓰면서 질문을 계속 던져라 2016-02-21 0 4132
1119 남에 일 같지 않다... 문단, 문학 풍토 새로 만들기 2016-02-21 0 4094
1118 동주, 흑백영화의 마력... 2016-02-21 0 3996
1117 詩作初心 - 현대시의 靈性 2016-02-20 0 4020
1116 詩作初心 - 시에서의 상처, 죽음의 미학 2016-02-20 0 3675
1115 같은 詩라도 행과 연 구분에 따라 감상 차이 있다... 2016-02-20 0 4220
1114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詩의 다의성(뜻 겹침, 애매성) 2016-02-20 0 4504
1113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술 한잔 권하는 詩 2016-02-20 0 4659
1112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만드는 詩, 씌여지는 詩 2016-02-20 0 4047
1111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시의 비상 이미지 동사화 2016-02-20 0 4484
1110 무명 작고 시인 윤동주 유고시 햇빛 보다... 2016-02-19 0 4828
1109 윤동주 시집 초판본의 초판본; 세로쓰기가 가로쓰기로 2016-02-19 0 4536
1108 별이 시인 - "부끄러움의 미학" 2016-02-19 0 5754
1107 윤동주 유고시집이 나오기까지... 2016-02-19 0 5700
1106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序詩亭 2016-02-19 0 4573
1105 무명詩人 2016-02-18 0 4369
1104 윤동주 코드 / 김혁 2016-02-17 0 4565
1103 99년... 70년... 우리 시대의 "동주"를 그리다 2016-02-17 0 4351
1102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2016-02-17 0 4220
1101 윤동주와 송몽규의 <판결문> 2016-02-16 0 4309
1100 윤동주, 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절규... 2016-02-16 0 4257
1099 詩와 함께 윤동주 발자취 더듬어보다... 2016-02-16 0 3922
1098 풍경 한폭, 우주적 고향 그리며 보다... 2016-02-16 0 4249
1097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시의 그로테스크 2016-02-15 0 4491
1096 오늘도 밥값을 했씀둥?! 2016-02-14 0 4481
1095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色은 상징 2016-02-14 0 4383
1094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시의 함축과 암시 2016-02-14 0 3724
1093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詩적 이미지 2016-02-14 0 4215
1092 벽에 도전하는것, 그것 바로 훌륭한 詩 2016-02-14 0 3957
1091 전화가 고장난 세상, 좋을씨구~~~ 2016-02-14 0 4006
1090 詩는 읽는 즐거움을... 2016-02-13 0 5125
1089 詩에게 생명력을... 2016-02-13 0 4031
1088 詩가 원쑤?, 詩를 잘 쓰는 비결은 없다? 있다? 2016-02-13 0 4457
1087 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난 시인들 - 박두진 2016-02-12 0 4201
1086 詩人을 추방하라???... 2016-02-11 0 3710
1085 C급 詩? B급 詩? A급 詩?... 2016-02-11 0 3800
1084 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나는 시인들 - 신석초 2016-02-10 0 5375
‹처음  이전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