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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詩의 다의성(뜻 겹침, 애매성)
2016년 02월 20일 04시 03분  조회:4505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인은 왜 애매하게 말하나



엄경희 (문학평론가, 숭실대학교 교수)







말의 첫 번째 기능은 상대에게 자신의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우리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애쓰며 논리적으로 자신의 뜻과 입장을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시인은 가급적 비논리적으로, 애매하게 말한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애매한 말은 일반적으로 곤혹스러움을 낳는다. 우리가 명쾌함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애매하게 말하나? 말하기 방식에는 이도가 내재해 있다. 시인이 애매성을 추구하는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 인생사가 복합적이고 애매하기 때문이다.
내가 시의 애매성에 대해 이처럼 설명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웃는다. 그 답이 너무 당연하고 싱겁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삶이 애매하기 때문에 애매하게 표현한다〉는 시작 원리를 우리는 매우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인들은 애매한 것을 애매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인생의 진실에 닿을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는 삶을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다 말할 수 없다는 경험과 통찰이 담겨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잔여들을 아우르고자 할 때 시적 애매성은 탄생한다.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갈 것은 〈애매성〉이라는 문학 용어에 대한 이해가 문학 이론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사이에 다소 다르게 이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 전문가나 교육자가 애매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주로 영미의 신비평가 윌리엄 엠프슨(Empson, Sir William, 1906~1984)이 말한 다의성의 의미로 사용하는 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애매성을 그야말로 의미가 불분명한, 수수께끼 같은, 직접적 이해가 가능하지 않은 문장이 발생시키는 성질로 이해하곤 한다.
이상섭은 이러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앰프슨의 문학용어로서 〈애매성〉을 〈뜻 겹침〉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하나의 문장이나 단어에 뜻이 겹쳐 있는 것과 의미가 불분명한 것은 매우 다른 차원에 속한다. 뜻 겹침은 의미가 복합적이며 불분명한 것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음을 뜻한다. 뜻 겹침이 의식의 복잡성이나 상상력의 풍부함에 의한 것이라면 궁극적으로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들어진 문장은 시인의 실수 혹은 역량미달에 의한 것이다.
뜻 겹침으로서의 시의 애매성을 시의 미감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애매성이 클수록 시적인 맛이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애매성을 옹호하는 이 같은 시의 미학은 언어의 일반적 기능을 배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애매성이란 의미가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애매성은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갖는 것을 말한다. 이때 애매성은 난해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갖는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의미가 막연하거나 부정확한 것을 난해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애매하다고는 하지 않는다. 피상적 주제의식에 의해 대충 얼버무린 듯 보이는 언어의 집합은 애매한 것이 아니라 의미가 부적절하게 혹은 불충분하게 표현된 경우이다. 감식안이 있는 독자라면 애매성과 불분명함을 구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둘은 종종 그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다. 뜻 겹침을 드러내는 문장은 해석의 여지가 다른 부분에 비해 많이 내포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며 시의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이러한 부분을 매우 불분명한 것으로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문장의 의미만이 아니라 정서적 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뉘앙스, 분위기, 울림 등이 언어에 스며 있기 때문에 더욱 그 불분명함이 증폭될 수 있다.
상기할 것은, 시의 언어가 애매성으로 독자를 곤혹스럽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명료함이 낳은 단순성과 배제적 성격을 넘어서고자 한다는 것이다.





막 이삭 패기 시작한 수숫대가
낮달을
마당 바깥 쪽으로 쓸어내고 있었다
아래쪽이 다 닳아진 달을 주워다 어디다 쓰나
생각한 다음날
조금 더 여물어진 달을
이번엔 洞口 개울물 한쪽에 잇대어
깁고 있었다



그러다가 맑디맑은 一生이 된
빈 수숫대를 본다
단 두 개의 서까래를 올린

속으로 달이
들락날락한다
——장석남, 「달과 수숫대 ―“貧”」전문





이 시는 달과 수숫대가 어우러진 풍경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묘사의 언어 운용이 매우 애매한 작품이다. 그 애매성은 1연에서 보이는 주어와 술어, 수식어와 수식 대상의 연결이 일반적 어법에는 안 맞는 형태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선 수숫대를 묘사한 부분부터 보면, 주어인 수숫대는 달을 〈쓸어내다〉, 닳아진 달을 어디다 쓰나 〈생각하다〉, 여문 달을 〈깁다〉등의 동사와 연결된다. 이러한 동사들에서 연상되는 것은 빗자루, 사람, 바늘이다. 시인은 빗자루나 바늘과 같은 생활도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채 쓸어내고 깁고 하며 이어가는 〈貧〉으로서의 생활을 암시하는 것이다.
즉 1연의 동사들은 자연과 생활을 연결하는 가교 기능을 한다. 따라서 수숫대가 서 있는 자연 풍경은 다만 자연 풍경이 아닌 빈궁한 생활과 겹쳐 있는 자연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시의 애매성은 1연의 주어와 서술어의 불일치로부터 생겨나며 시인은 이러한 불일치가 발생시키는 간극 속에 가난한 생활상을 압축시키고 구질구질한 빈궁의 실체를 생략해버린다.
다음으로 달을 보면, 낮달에서 아래쪽이 다 닳아진 달로 다시 조금 더 여물어진 달로 변화한다. 달을 수식하는 말에서 연상되는 것은 닳아진 사물(그릇), 단단해진 곡식 등이다. 이 부분에서도 뜻 겹침이 발생한다. 기울고 다시 차오르는 달의 형상처럼 닳아지고 다시 여물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이라고 시인은 말하는 것이리라. 그때마다 쓸어내고 꿰매지 않으면 생활의 말끔함을 잃게 된다.



한편 쓸어내고 깁고, 기울고 차오르고, 닳아지고 여물고 하는 과정의 변화는 시간의 변화를 나타낸다. 그 과정의 최종 단계가 이 시에서는 〈맑디맑은 一生이 된/ 빈 수숫대〉와 〈단 두 개의 서까래로 올린/ 집〉으로 형상화된다. 각각은 자연과 생활을 대변한다. 이 앙상한 두 개의 이미지의 병치가 환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병치는 그야말로 겹쳐놓기이다. 비어있는 자연과 생활에는 시인이 생각하는 가난의 의미가 투영되어 있다. 그것은 비루한 가난이 아닌 바로 淸貧을 뜻한다. 결핍과 고통으로 가득한 가난이 아니라 맑고 깨끗한 가난을 강조함으로써 시인은 한 정신주의자의 지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시인은 열매를 맺고 비워내는 수숫대, 차오르고 기우는 달의 형상 즉 자연의 형상과 쓸어내고 깁고 하는 생활의 형상을 겹쳐 하나의 풍경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성취한다.
자연의 순리를 따라가는 생활의 청빈은 이 같은 겹침에 의해 의미화되는 것이다. 달이 들락날락하는 동양화풍의 여백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때 〈貧〉의 분위기는 한적함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시는 〈安貧樂道〉라는 전통적 관념을 표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빈낙도의 정신의 근간은 욕심의 채움이 아니라 비움이다. 이러한 주제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과 같은 현실 구조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고리타분한 혹은 시대착오적인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장석남은 자연과 생활의 결합이라는 전통적 맥락을 수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맥락에 애매성을 증폭시키는 서술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자연과 생활을 그대로 직결시키려는 전통시의 도식적 수용으로부터 자신의 시를 구출해낸다. 이때 안빈낙도의 멋스러움은 살아나고 그 주제는 새로운 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
엄경희
* 200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 저서 『未堂과 木月의 시적 상상력』『저녁과 아침 사이 詩가 있었다』『한국시의 미학적 패러다임과 사회적 전통』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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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그런 날이 있다 / 백무산








그런 날이 있다

백 무 산

생각이 아뜩해지는 날이 있다
노동에 지친 몸을 누이고서도
창에 달빛이 들어서인지
잠 못 들어 뒤척이노라니
이불 더듬듯이 살아온 날들 더듬노라니
달빛처럼 실체도 없이 아뜩해
살았던가
내가 살긴 살았던가

언젠가 아침 해 다시 못 볼 저녁에 누워
살아온 날들 계량이라도 할 건가
대차대조라도 할 건가
살았던가
내가 살긴 살았던가

삶이란 실체 없는 말잔치였던가
내 노동은 비를 피할 기왓장 하나도 못되고
말로 지은 집 흔적도 없고
삶이란 외로움에 쫓긴 나머지
자신의 빈 그림자 밟기

살았던가
내가 살긴 살았던가


백무산 시집 <인간의 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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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5. 눈을 기다려 / 백무산











눈을 기다려

백 무 산

사나흘 눈 내리고 녹기도 전에
또 눈 내리자 사람들은
하늘 보며 지겹다 하지만
나는 눈이 모자라 하늘을 보네

길 끊겼다 투덜대고 원망들 하지만
내사 이때라도 세상길 한 번 뚝
끊어 먹는 일 반기고 좋아라

사방팔방 들뜬 길 지르고 뚫린 다음
마음 길 돌아보지 못해
나무들과 형편없이 멀어져버렸네

흰 눈 내려 사방팔방 뚫린 길 지우고
눈밭에 나무로 서서 한 철 겨울을 나고 싶어
눈을 기다려 폭설을 기다려 하늘을 보네


백무산 시집 <초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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