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0월 2024 >>
  12345
6789101112
13141516171819
20212223242526
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김춘수 - 꽃
2016년 05월 01일 18시 45분  조회:4306  추천:0  작성자: 죽림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은 릴케와 꽃과 바다와 이중섭과 처용을 좋아했다. 시에서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의 두께를 벗겨내려는 '무의미 시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교과서를 비롯해 여느 시 모음집에서도 빠지지 않는 시가 '꽃'이며 사람들은 그를 '꽃의 시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1952년에 발표된 '꽃'을 처음 읽은 건 사춘기의 꽃무늬 책받침에서였다. '그'가 '너'로 되기, '나'와 '너'로 관계 맺기, 서로에게 '무엇'이 되기, 그것이 곧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구나 했다.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것이구나 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게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는 것이며, 이름이야말로 인식의 근본 조건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와서였다. 존재하는 것들에 꼭 맞는 이름을 붙여주는 행위가 시 쓰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백일 내내 핀다는 백일홍은 예외로 치자.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의 꽃도 논외로 치자. 꽃이 피어 있는 날을 5일쯤이라 치면, 꽃나무에게 꽃인 시간은 365일 중 고작 5일인 셈. 인간의 평균 수명을 70년으로 치면, 우리 생에서 꽃핀 기간은 단 1년? 꽃은 인생이 아름답되 짧고, 고독하기에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면, 서로에게 꽃으로 피면, 서로를 껴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늦게 부르는 이름도 있고 빨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내 꽃임에도 내가 부르기 전에 불려지기도 하고, 네 꽃임에도 기어코 네가 부르지 않기도 한다.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을 부르는 것의 운명적 호명(呼名)이여! '하나의 몸짓'에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것의 신비로움이여!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은 나를 보는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으나, 내가 본 가장 무서운 꽃은 나를 등진 너의 눈부처 속 꽃이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한 꽃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이랬거니,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세계는 꽃 천지다. 꽃이 피기 전의 정적, 이제 곧 새로운 꽃이 필 것이다. 불러라, 꽃!

[정끝별]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123 詩作初心 - 명상과 詩 2016-02-24 0 4642
1122 [아침 詩 한수] - 오징어 2016-02-24 0 3738
1121 [아침 詩 한수] - 기러기 한줄 2016-02-23 0 4078
1120 열심히 쓰면서 질문을 계속 던져라 2016-02-21 0 3963
1119 남에 일 같지 않다... 문단, 문학 풍토 새로 만들기 2016-02-21 0 3942
1118 동주, 흑백영화의 마력... 2016-02-21 0 3807
1117 詩作初心 - 현대시의 靈性 2016-02-20 0 3846
1116 詩作初心 - 시에서의 상처, 죽음의 미학 2016-02-20 0 3530
1115 같은 詩라도 행과 연 구분에 따라 감상 차이 있다... 2016-02-20 0 4014
1114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詩의 다의성(뜻 겹침, 애매성) 2016-02-20 0 4351
1113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술 한잔 권하는 詩 2016-02-20 0 4493
1112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만드는 詩, 씌여지는 詩 2016-02-20 0 3909
1111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시의 비상 이미지 동사화 2016-02-20 0 4336
1110 무명 작고 시인 윤동주 유고시 햇빛 보다... 2016-02-19 0 4670
1109 윤동주 시집 초판본의 초판본; 세로쓰기가 가로쓰기로 2016-02-19 0 4348
1108 별이 시인 - "부끄러움의 미학" 2016-02-19 0 5560
1107 윤동주 유고시집이 나오기까지... 2016-02-19 0 5543
1106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序詩亭 2016-02-19 0 4451
1105 무명詩人 2016-02-18 0 4224
1104 윤동주 코드 / 김혁 2016-02-17 0 4387
1103 99년... 70년... 우리 시대의 "동주"를 그리다 2016-02-17 0 4172
1102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2016-02-17 0 4049
1101 윤동주와 송몽규의 <판결문> 2016-02-16 0 4163
1100 윤동주, 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절규... 2016-02-16 0 4086
1099 詩와 함께 윤동주 발자취 더듬어보다... 2016-02-16 0 3755
1098 풍경 한폭, 우주적 고향 그리며 보다... 2016-02-16 0 4076
1097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시의 그로테스크 2016-02-15 0 4302
1096 오늘도 밥값을 했씀둥?! 2016-02-14 0 4306
1095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色은 상징 2016-02-14 0 4254
1094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시의 함축과 암시 2016-02-14 0 3569
1093 詩作初心으로 되돌아가다 - 詩적 이미지 2016-02-14 0 4092
1092 벽에 도전하는것, 그것 바로 훌륭한 詩 2016-02-14 0 3784
1091 전화가 고장난 세상, 좋을씨구~~~ 2016-02-14 0 3861
1090 詩는 읽는 즐거움을... 2016-02-13 0 4918
1089 詩에게 생명력을... 2016-02-13 0 3855
1088 詩가 원쑤?, 詩를 잘 쓰는 비결은 없다? 있다? 2016-02-13 0 4307
1087 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난 시인들 - 박두진 2016-02-12 0 4047
1086 詩人을 추방하라???... 2016-02-11 0 3518
1085 C급 詩? B급 詩? A급 詩?... 2016-02-11 0 3696
1084 詩의 벼랑길위에서 만나는 시인들 - 신석초 2016-02-10 0 5261
‹처음  이전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