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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스스로 울어야 독자들도 따라 운다...
2017년 02월 27일 17시 49분  조회:2440  추천:1  작성자: 죽림

시와 이미지(Visual Image) 

시는 개념으로 생각하고 시각적 이미지로 느낀다.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V.Chklovski)도 ‘예술의 목적은 대상의 감각을 인식이 아니라 이미지로 부여하는 것이다.’고 했다. 시는 이처럼 관념 혹은 감정의 진술이 아니라 어떤 사상(事象)을 그림을 그리듯 이미지로써 상황묘사(描寫)하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치 화가가 되기 위해 데상(dessin)에서부터 미술 공부를 시작하듯 묘사(描寫)는 습작기에 반드시 거쳐야할 소중한 시창작의 바탕이 된다. 

그러기에 시인은 감독처럼 무대(시) 뒤에 숨어버리고 대신 시인이 제시한 객관적 상관물을 통한 이미지 제시로써 독자를 울려야 한다. 배우가 먼저 웃는 코미디가 없듯 시 속에서 독자보다 시가 먼저 울어야 되겠는가? “시가 스스로 울음으로써 독자를 먼저 울리려고 하는 시가 있다. 그런 경우 우리는 그러한 치기(稚氣)를 웃을 수밖에 없다.”는 김기림의 지적은 이런 의미에서 새겨볼 만하다. 


*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 

T.S 엘리어트가 주장한 시작(詩作)의 한 방법.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정서나 사상을 그대로 나타낼 수 없으므로 그것을 대신 나타내주는(그것과 닮아 있는) 어떤 객관적 사물, 정황, 혹은 일련의 사건들을 선택하여 그것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놓음으로써 독자의 정서를 자극하는 표현기교. 

1. 시는 이미지에 의한 정서적 환기다. 

시인이 ‘외롭다’거나 ‘불안하다’는 심정을 전달하고자 할 때, 이를 직접적으로 ‘외롭다, 불안하다.’ 라고 진술하거나 토로할 것이 아니라 ‘외로움’과 ‘불안’의 정서를 자아낼 수 있는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제시하여)줌으로써 ‘외로움’과 ‘불안’의 정서가 효과적으로 유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는 

*<진술>이 아니라 → <상황을 읽어 낼 수 있는 구체적 묘사> 

o. 그 여자는 예쁘다. → 그 여자는 모란꽃처럼 탐스럽다. 

추상적 설명 구체적 감각(Visual 이미지) 

o. 그는 성질이 냉정하다 → 그는 성질이 칼날이다. 

추상적 설명 그림(Visual 이미지) 


o. 나는 지금 나는 지금 

몹시 불안하다. → 무너지는 절벽 위에 서 있다. 

추상적 설명 구체적 상황(Visual 이미지) 



o. 나는 외롭다. → 널따란 백사장에 

추상적 설명 소라 

오늘도 혼자랍니다. (구체적 상황제시) 


2. 대상(對象)은 이미지로 인식한다. 

-추상이나 개념보다 이미지가 앞선다.-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의 머리 속에 먼저 떠오른 것은 과거 경험 속에서 몸소 체험했던 그 어떤 구체적 영상 이미지가 클로즈업 되면서 비로소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예1) ‘어머니는 고맙고 사랑스런 분이다 ’ 

- 추상적 관념적 시어로서 구체적 체험의 재현이 없으므로 별다른 감동이 없다. 


예2) ‘겨울날 학교에서 친구와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서 생선을 팔고 계시는 어머니’ 

- 구체적이고도 감각적인 영상 이미지가 재현됨으로써 우리를 위해 온갖 수모와 희생을 감수하시는 어머니상을 느끼게 된다. 


예3) 

들녘이 서 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얼굴로 

부시시 

그러다 못해 

앙상하게 말라버린 

날카로운 촉수로 

굳어버린 우리의 겨울은 

보이지 않은 우리의 겨울은 

차가운 들녘 위에 

영하의 긴 침묵으로 

꼿꼿이들 서 있다. 

-김동수의 「겨울나기」, 1986년 


자신이 처한 현실적 불행 상황을 ‘겨울’의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로 형상화(形象化) 하여 독자들에게 그의 불행한 처지를 호소력 있게 전달해주고 있다. 

겨울’이라고 하는 일반적 추상 의미가 흐릿한 관념의 틀 속에 가려(갇혀) 있지 않고 그가 맞고 있는 겨울이 보다 구체적이고도 생생한 현장감(Presence)으로 드러나 있다. ‘밤새 한잠도 못 잔 부시시한 얼굴’이거나, ‘앙상하게 말라버린 날카로운 촉수’, ‘영하의 긴 침묵’, 그러면서도 ‘꼿꼿이 서 있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우리의 겨울’등 의인적 시각 이미지가 부정과 실의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눈 감지 않는 오기와 집념으로 생동감 있게 살아 있다. 

이처럼 관념, 개념, 사상 등도 정서와 더불어 시의 주요 내용이긴 하나 이것들이 감각적. 구체적으로 형상(이미지)화되지 못하면 예술적 감동이 죽거나 감소되고 만다. 


예4) 

무릎 앞의 소유는 

모두 껴안고도 

외로움의 뿌리는 깊어 

사람이 부르면 

날짐승처럼 운다. 


어느 가슴을 치고 왔기에 

사람이 부르면 

하늘에 들리고도 남아 

내 발목을 휘감고야 

그 울음 그치나 

-최문자의 「산울림」에서 


자칫 관념적이고 상투적 인식에 그치기 쉬운 산울림(메아리)에 대한 개인적 인식의 정도가 남달리 개성적이고 치열하다. 활유법에 의한 역동적 표현, 그러면서도 이를 응축된 정서적 시어로 탄력 있게 이미지화 하여 외롭고 허망한 산울림의 내면적 속성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있다. 

3. 관념의 형상(이미지)화 

추상적 관념을 소재로 하는 시에 있어서 관념어(사랑, 그리움, 슬픔 ....,)을 그대로 설명하거나 진술하는 것이 아니고, 한 폭의 그림을 보듯, 혹은 현장감 있게 구체적 이미지를 통해서 실감나게 표현(시각화, 청각화 등)하고 있는 것이 관념의 형상(이미지)화이다. 

그러나 형상화는 단순히 겉모양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이 안고 있는 본질적 특징이나 상징적 사건을 중심으로 시대적 풍경화를 포착하였을 때 시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 곽재구의 「沙坪驛에서」중에서 

행상(行商)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막막하고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는 변방인(서민)들의 고달픈 일상과 그 표정들을 ‘막차’, ‘간이역’, ‘밤새 퍼붓는 눈’, ‘톱밥 난로’, ‘대합실에서 졸고 있는 사람들’, ‘기침에 쿨럭이는 사람들’,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 등의 객관적 상관물(客觀的相關物)에 의해 꼼꼼하게 그려주고 있다. 



출렁일수록 바다는 

頑强한 팔뚝 안에 갇혀버린다. ---------절망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화 

안개와 무덤, 그런 것 속으로 

우리는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 가고 --------존재의 소멸 

溺死할 수 없는 꿈을 부등켜 안고 

사내들은 떠나간다. 

밤에도 늘 깨어 있는 바다 ----------- 포기할 수 없는 꿈 

소주와 불빛 속에 우리는 소멸해 가고 --------- 존재의 소멸 

물안개를 퍼내는 

화물선의 눈은 붉게 취해 버린다. ------- 포기할 수 없는 꿈에 대한 안타까움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워진다 ---극적전환(형이상학적 깨달음) 

젖은 장갑과 건포도뿐인 세상은 ------을씨년스럽고 건조한 현실상황 

누구도 램프를 밝힐 순 없다 

바닷가 기슭으로 파도의 푸른 욕망은 돋아나고 -- 꿈에 대한 새로운 의지 

밀물에 묻혀 헤매는 

게의 다리는 어둠을 썰어낸다 ----------- 현실극복을 위한 행동개시 

어둠은 갈래갈래 찢긴 채 

다시 바다에 깔린다. 

떠나는 자여 

눈물로 세상은 새로와지는가 --‘눈물’을 통한 새로운 세계의 확신 

우리는 모든 모래의 꿈을 

베고 누웠다 

世界는 가장 황량한 바다 -------- 그러나 아직 삭막한 현실상황 재인식 

- 윤석산, 「바닷속의 램프」에서 


절망적 상황에 갇혀버린 자신의 우울한 심사를 ‘출렁일수록 바다는/완강한 팔뚝 안에 갇혀버린다 ’거나 ‘어둠은 갈래갈래 찢긴 채/ 다시 바다에 깔린다.’ 혹은 ‘모래의 꿈을/ 베고 누워 있다.’등의 구체적 형상의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시인의 자기 고백이 아니라 시인이 제시한 시적 정서에 젖어들고 싶어함이다. 이는 한 편의 시가 시인의 주관적 감정의 발로이지만 그가 제시하고자한 그 주관적 감정을 향수하기 위해선 독자가 공유할 수 있도록 객관정서로의 제시 장치, 곧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 을 통한 주관적 감정의 객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4. 좋은 이미지란? 


1. 신선하고 독창적이다. 
2. 차원이 높고 깊이가 있다. 
3. 주제와 조화를 이루며 이미지들 간에 상호 유기적 상관성이 있다. 
4. 이미지가 체험과 관련되어 구체적이고도 감각적이다. 
6. 강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환기성(喚起性)이 있다. 


5. 이미지 창조의 방법 

1.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때 새로운 진실이 발견된다.(deformation) 
2. 시는 실제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시인의 철학적 인식에 의해 선택된 주관적 감정이다. 
3. 이미지가 시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기여하지 않다면 과감하게 그것을 버려야 한다. 
4. 불필요한 낱말이나 형용사는 가급적 쓰지 말 것. 그것들이 추상과 구체를 뒤섞으면서 이미지를 둔화시키기 때문이다. 
5. 진정한 이미지는 부분적인 한 行, 한 句보다도 ‘시 전체의 그림’ 속에서 그 가치가 발휘되는 것이다 


6. 이미지의 종류 

1) 시각적 이미지 

[대상을 - 시각적 이미지로] 

o. 구름은 보랏빛 색지(色紙)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의 장미(薔薇) - (김광균의 <데상>) 

* 구름 = 보랏빛 색지/ 한 다발의 장미 

o. 초록 치마를 입고 

빠알간 리본 하나로 서 있는 少女 -(박항식의 <코스모스>) 

* 코스모스 = 빨간 리본의 소녀 


[청각을 - 시각적 이미지로] 

o.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 (김광균의<외인촌>) 

* 종소리 = 흩어지는 분수 


o. 꽃처럼 붉은 울음 -(서정주의 <문둥이>) 

* 울음 =붉은 꽃 


[관념을 - 시각적 이미지로] 

o.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 (인생 = 이슬) 


o. 그리움이란 

내가 그대에게 

그대가 나에게 

서로 등을 기대고 울고 있는 것이다. 

* 그리움= 등을 기대고 울고 있는 모습 


o. 내 마음은 고요한 물결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고 

구름이 지나가도 그림자 지는 곳 - (김광섭의 <마음>) 

* 마음 =고요한 물결 


o. 내 마음은 촛불이요 

그대 저 문을 닫아주오 

나는 그대의 비단 옷자락에 떨며, 고요히 

최후의 한 방울도 남김없이 타오리라. - (김동명의 <내 마음>) 

* 마음 =흔들리는 촛불 


2) 청각적 이미지 

[사물을 - 청각적 이미지로] 

o. 워워, 꼬끼오, 짹짹, 졸졸, 돌돌 

o. 윙윙, 쏴아아 쏴아-, 주륵 주륵 


[상황을 - 청각(공감각)적 이미지로] 

o.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정지용의 <향수>) 

*차가운 밤바람 소리 = 말 달리는 소리 


o. 우우 몰려 왔다 

포말(泡沫)지는 

하얀 새떼들의 울음 -(김동수의 <비금도飛禽島>) 

*물거품 사그라지는 소리 = 새떼들의 울음 


[시각을 - 청각적 이미지로] 

o. 피릿소리가 아니라 

아주 큰 심포니일거야 -(박항식의 <눈(雪)>) 

* 눈 = 심포니 


o. 발랑 발랑 발랑 발랑 

조랑 조랑 조랑 조랑 - (박항식의 <포풀러>) 

* 포풀러 = 발랑 발랑 

[관념을 - 청각적 이미지로] 

o. 산이 재채기를 한다. - (박항식의 <청명(淸明)> 

* 청명 = 재채기 

*청명: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는 24절기의 하나(양력 4월 5. 6일 경)로 봄이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됨. 

o. 어쩌다 바람이라도 와 흔들면 

울타리는 
슬픈 소리로 울었다. -(김춘수의 <부재不在>) 

* 부재= 슬픈 소리의 울움 

===================================================================

 

 

―정재학(1974∼ )

바다에 가라앉은 기타,
갈치 한 마리 현에 다가가
은빛 비늘을 벗겨내며 연주를 시작한다

소리 없는 꿈…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부끄러워져
당분간 손톱을 많이 키우기로 마음먹는다 
백 개의 손톱을 기르고 날카롭게 다듬어
아무 연장도 필요 없게 할 것이다
분산(奔散)된 필름들을 손끝으로 찍어 모아
겹겹의 기억들 사이에서
맹독성 도마뱀들이 헤엄쳐 나오도록 할 것이다
달의 발바닥이 보일 때까지
바다의 땅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나도 나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

네가 고양이처럼 예쁜 얼굴을 하고 딸꾹질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보라색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생선이 되어 너의 입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아무 미동도 없이,
고요하게

어른이 되고 싶었다

 

 

 

화자에게 삶은 음악의 형상으로 전해지고 그 연주가 삶의 형식이다. 화자 자신이기도 하고 화자가 생을 표현하는 도구, 가령 시이기도 한 기타. 그 기타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단다. 아연실색 망연자실이련만 ‘현에 다가가’는 화자다. 한 마리 갈치가 되어서라도 기타를 버리지 않고 전신으로 ‘은빛 비늘을 벗겨내며 연주를 시작한’단다. 하지만 역시 ‘소리 없는 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망가진 악기, 망가진 삶. 무엇이 화자를 이런 악몽에 처하게 했을까. ‘네가 고양이처럼 예쁜 얼굴을 하고 딸꾹질을 하고 있는 동안’, 이 구절의 ‘너’는 예쁘고 앙큼한 어떤 여인이거나 그 여인으로 의인화한 이 사회다. 딸꾹질하는 그녀는 만취한 걸까, 격렬하게 울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녀는 대화할 의사가 없음을 딸꾹질로 교묘히 숨기고, 혹은 드러내는 것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녀가 딸꾹질을 해대는 ‘동안’ 화자는 ‘보라색을 뚝뚝 흘리고 있었’단다. ‘보라색’은 세상이든 자기 자신이든 가리지 않고 파헤치고, 가차 없이 채찍질하고 담금질하겠노라 맹세하는 둘째 연에 붙으면 피 같은 선율이 되고, ‘생선이 되어 너의 입속에 들어가고 싶었다/아무 미동도 없이,/고요하게’에 붙으면 나약한 눈물이 되리라.

영국의 작곡가이며 색소폰 연주자 존 서먼의 곡목에서 딴 제목이다. ‘어른이 되고 싶었다’…. 4월 16일, 오늘의 궂은 날씨만큼이나 마음이 안 좋다. 이만 줄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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