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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도 그림으로 재구성해 보면서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고.
- 화자 - 산 - 기차 + 검은 내 - 바둑판 같은 거리
이 정도 되겠지. 샘이 그린 그림은 이래
그렇다면 이제 해석을 위한 레이아웃을 보자.
윤동주 씨 집안은 대대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어. 그의 할아버지는 교회의 장로셨어. 그래서 그의 시에는 기독교적 요소가 많이 나와. 특히 이 시는 '노아의 방주'와 연결시켜서 해석해 보면 참 재미있어.
이 시가 윤동주 씨의 시로서 매우 특이한 점은 세상에 대한 강한 '혐오감'이 드러나고 있다는 거야. 이건 아마 <거리에서>에 나온 '광풍'과 관련이 있을 거야. 이런 현실에 대한 혐오감이 나중에 '거울 속의 세계'를 만들게 된 이유가 된 것 같애.
윤동주 씨는 한 사람의 시인으로 살고 싶어했지. 하지만 험난한 시대에 사람들이 어디 그렇게 놔두나. 그의 아버지만 해도 그가 시인보다는 의사가 되길 요구해서 말다툼을 많이 했었어.
그래서 초창기에는 잘못된 세상이 한 번 멸망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아. 성서에 나오는 인류 멸망은 뭐지? '노아의 방주'지.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한 것 같아. 이건 그가 나중에 보여주는 '인류애'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 재미있어.
시 속에서 윤동주 씨는 산을 올라가고 있어. 산 아래는 '속세', 반대로 산꼭대기는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영적인 장소일 거야. 성서에 나오는 '산상설교(산상수훈)'를 생각해 보자고.
산을 올라가던 윤동주 씨는 세상을 내려다 보면서 '사람들이 버려져 있다'라고 말하고 있어. 여기서 '버린' 주체는 누구일까? 아마도 신이겠지. 그렇다면 왜 그는 신이 사람들을 버렸다고 생각할까? 당시의 윤동주 씨는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아.
'바둑돌'은 첫 행의 '바둑판'과 짝을 이루는 단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바둑돌은 흰돌과 검은돌로 구성되어 있잖아. 그럼 흰돌은 누구이고 검은 돌은 누구일까?
한나절의 태양이 함석지붕... 상상만 해도 뜨겁지? '소돔과 고모라'가 떠오르지 않아? '배암의 새끼'나 '검은 내를 토하고'에서도 세상에 대한 혐오가 고스란히 드러나지.
3연에서 윤동주 씨는 이제 세상에서 시선을 돌려 산꼭대기를 바라 봐. 그의 시선이 현실에서 종교로 옮겨 갔다고 해석할 수 있겠지.
하늘이 무너진다는 것은 보통 폭우가 쏟아지거나 세상이 멸망할 때 쓰는 말이잖아. 윤동주 씨는 종교와 세상 사이에 서 있다가 사람들을 외면하고 종교를 선택해. 이것도 참 그답지 않은 모습이지. 특히 '궁금하면서'에는 걱정도 담겨 있지만 기대 역시 담겨 있다고. 마지막 행에서는 자기 혼자라도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지.
이렇게 20살 때 윤동주 씨는 우리 민족이 일본의 지배를 받는 현실을 보면서 불합리한 세상에 혐오감을 느끼고, 그것을 신앙심을 통해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애. <거리에서>에서는 '놀이'를 통해 외면하려고 했었는데, 거기에 비하면 조금이나마 성숙해졌다고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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