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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 리해돕기와 "관부련락선"
2018년 07월 08일 00시 20분  조회:3831  추천:0  작성자: 죽림

관부(부관)연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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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Railway Symbol of Japan.png 부관연락선 • 부박연락선
시모노세키 철도 잔교에 정박하는 게이후쿠.
항로 거리 부관연락선(부산 ~ 시모노세키) 240km
부박연락선(부산 ~ 하카타) 215km
역명 •
잔교명
시모노세키 역 • 시모노세키 철도 잔교(북위 33° 56′ 58.5″ 동경 130° 55′ 39.5″)
하카타 역 • 하카타 철도 잔교(북위 33° 36′ 36.6″ 동경 130° 24′ 8.7″)
부산역 • 부산 세관 잔교(북위 35° 6′ 13.4″ 동경 129° 2′ 29.1″)

부관연락선(일본어関釜連絡線 かんふれんらくせん[*]))은 대한민국의 부산과 일본의 시모노세키(下関)를 왕복하는 국제 여객선이다. 1905년 9월 11일에 최초의 부관연락선인 잇키마루(壹岐丸)가 취항했다. '부관'(釜關)이라는 이름은 부산의 앞글자(釜, 부)와 시모노세키의 뒷글자(關, 관)를 딴 것이다.

연락선이라는 명칭은 협의로는 일제 강점기 및 그 이전의 일본측 노선을 의미하지만, 관습적으로 동 항로를 이어받아 운행하는 현재의 부관 페리도 위와 같이 부르기도 한다.

항로 개요[편집]

 

부산(釜山)~시모노세키(下關) 간 240km.

역사[편집]

 

부관연락선의 운행은 1905년에 당시 산요 본선을 운영하던 사철회사 산요철도의 자회사인 산요기선에 의해 개통되었다. 이후 1906년에 산요철도의 국철 합병에 의해서 일본 국철에 인수되었으며, 1945년 2차 대전 말기에 미군 공습의 격화로 운행이 불가능해질 때까지 유지되었다. 해방 이후 국교단절로 인해 정기 운항은 폐지되었으나, 1970년에 해당 항로를 이어받아 부관페리가 개설되어 운항 중이다.

개설

광복 전에는 관부(關釜)연락선이라 불렸다. 1905년 1월 1일부터 열차가 운행되기 시작한 경부선과 같은 해 9월 정기 뱃길을 연 부관연락선이 운행을 시작하였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 수탈시스템의 하나로 탄생한 것은 분명하지만 경부선과 관부연락선 개통이 부산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두 교통망은 당시 한국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킨 중대한 요소였는데, 부산은 유일하게 두 교통망의 기·종착점을 동시에 보유했기 때문이다.

연원 및 변천

'부관'(釜關)이라는 이름은 부산의 앞글자(釜, 부)와 시모노세키의 뒷글자(關, 관)를 딴 것이다. 일본에서는 종종 어순을 바꾼 관부연락선(關釜連絡船), 또는 관부항로(關釜航路)라고 부른다.

관부연락선은 1905년 9월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국을 비롯한 중국의 동북지방·몽고 등지로 진출하기 위하여 만든 국책해운회사였던 산요기선주식회사(山陽氣船株式會社)에 의하여 처음 개설되었다.

이 연락선은 시모노세키와 고베[神戶] 사이의 산요선, 고베와 도쿄[東京] 사이의 도카이도선(東海道線) 등 일본의 철도와 연결되고, 우리나라에서는 경부선·경의선 그리고 만주의 안봉선(安奉線)·남만주철도·시베리아철도 등과 연결되어 광복 전에는 세계일주 여행로의 일부를 이루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그러나 이 연락선은 일본의 한국 침략의 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징용으로 끌려갔으며 일본인들의 수탈에 농토를 잃고 북해도 탄광으로 가기 위하여 관부연락선에 몸을 맡겨야 하였다. 최초로 취항한 연락선은 이키마루(壹岐丸, 1,680톤)라는 배로 11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그 뒤 3,000톤급의 쇼케이마루(昌慶丸)·도쿠주마루(德壽丸)·쇼토쿠마루(昌德丸) 등이 운항되었다. 1935년부터는 북중국·만주·몽고 등지로의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여객과 화물의 격증에 대비하여 당시로서는 최신예인 7,000톤급의 대형 여객선 공고마루(金剛丸)·고안마루(興安丸) 등을 운항하였으며 시간도 7시간 반으로 단축하였다.

이들 연락선은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징발하고, 전선과 일본 본토를 운항하는 데 투입되었으나, 미군에 의하여 격침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1945년 3월부터 사실상 관부연락선은 두절되었으며, 그 뒤 광복이 된 뒤에도 한일 간의 국교가 정상화될 때까지 연락선이 오가지 못하였다.

광복 후에 일본까지 다니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첫 여객선은 아리랑호로 1964년 1월부산항 제2부두를 떠나 처음으로 일본으로 갔다. 1970년 6월 17일부터는 부산과 시모노세키까지 이틀에 한 번씩 오가는 부관페리호가 다니기 시작하였다. 연락선이라는 명칭은 협의로는 일제강점기 및 그 이전의 일본측 노선을 의미하지만, 이 항로를 이어받아 운행하는 현재의 부관페리를 부관연락선이라 부르기도 한다.

현황

현재 운행중인 부관페리호는 1970년부터 부산에서 시모노세키까지 240km를 운행하고 있다. 2009년 현재 부관페리는 부관훼리주식회사에서 운행하고 있으며, 1998년에 도입된 일본 국적의 1만 6187톤 하마유(Hamayuu)호 1척과 2002년에 도입된 한국 국적의 1만 6665톤 성희(Seonghee)호가 각각 1일 1회씩 운항하고 있다. 즉 부산에서 저녁 8시에 출발하면 시모노세키에서는 저녁 7시에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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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關釜連絡船
영어의미역 Busan-Sinomoseki Ferry|Kanfu Cross-channel Liner Ship
이칭/별칭 부관 연락선,전시 노예선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 5가 16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최영호 2
1905년부터 1945년까지 부산항과 시모노세키 항 사이를 정기적으로 운항한 여객선.

러일 전쟁이 종결된 후 경부선 철도가 부산에서 서울까지 연장되자, 이를 계기로 일본의 산요기선주식회사[山陽氣船株式會社]는 일본의 산요선 철도와 한국의 경부선 철도를 연결하기 위한 선박 수송을 계획하고, 정기 여객선 운항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05년 9월에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잇는 1,680톤 급의 정기 여객선 이키마루[壹岐丸]가 시모노세키 항에서 취항하였다. 이것이 일본과 한반도를 연결하는 첫 번째 정기 연락선이었다.

이후 1945년 일본의 패전 직전에 미군의 공습으로 항로가 차단되면서 정기 여객선으로서의 생명이 중단될 때까지 관부 연락선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잇는 대표적인 운송 기관의 역할을 하였다. 일본의 패전 직후에는 한때 한반도와 일본에서 귀환자들을 수송하는 선박이 이 항로를 정기적으로 왕복하였다.

일제 강점기 여객 수송과 해방 직후의 귀환자 수송을 합하면 총 3000만 명 이상의 승객이 관부 연락선을 이용하였다. 1965년 한국과 일본의 국교가 수립된 후 부산시와 시모노세키 시 사이에 정기 여객선 재개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그 결과 1970년 1970년 6월 19일에 관부 페리호가 운항을 시작하였고 1983년 4월 27일에는 부관 훼리호가 운항을 시작하였다.

일본 재계를 중심으로 한반도와 일본을 연결하는 정기 항로를 취항시키려는 움직임은 개항 직후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실업가이며 제일국립은행(第一國立銀行) 총감인 시부자와 에이이치[澁澤榮一]는 부산을 방문하여 일본인의 상업 실태를 시찰하였다. 그 후 최초의 일본인 무역 상사인 대창조상회(大倉組商會)를 설립 운영하고 있던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와 공동으로 서명하여 1877년 8월에 정기 항로 개설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이들은 메이지 정부의 대장성(大藏省)에 조선과의 무역을 확장하기 위해 자금 10만 엔을 대부할 것과 매월 2~3회의 정기 항로를 열 것을 건의하였다. 이때 메이지 정부는 규슈[九州] 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된 세이난 전쟁[西南戰爭]으로 인해 혼란한 정국이 진정된 후에 운항을 허락하겠다고 회답하였다.

1890년대에 들어서 한반도와 일본 사이에 인적 이동과 물동량이 증가함에 따라 정기 항로 개설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1893년에 일본의 민간 회사에 의해 인천과 오사카[大阪] 그리고 모지[門司]를 연결하는 645톤 급의 기소가와마루[木曾川丸]가 취항하였고, 이어서 1902년에는 원산과 4, 원산과 모지를 연결하는 746톤 급의 스미다가와마루[隅田川丸]가 취항하였다. 이 두 선박의 운행이 근대 한일 양국 항로의 효시가 되었으며 부산~시모노세키 사이의 항로에 정기 연락선이 취항하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1905년 9월 11일 밤 이키마루[壹岐丸] 선박이 시모노세키 항을 떠나 다음날 아침 부산에 도착하였다. 당시 운항 시간은 11시간 30분이었고 여객 운임은 1등실 12엔, 2등실 7엔, 3등실 3엔 50전이었다. 이키마루 선박은 길이 82미터, 폭 10.9미터, 총 규모는 1,680톤에 달하였다. 여객 정원 317명, 화물 300톤을 적재할 수 있는 규모였다. 영국의 해외 항해 선박을 모방하여 만들어져 선단에서 선미까지 평평한 갑판으로 되어 있었다. 1905년에는 부산항에 이 배를 직접 접안시킬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초량 앞바다에 정박한 후 소형 선박을 통해 승객과 화물을 부두로 이동시켰다.

그 후 부산항과 시모노세키 항의 접안 시설이 근대화되면서 정기 여객선의 규모와 편수가 계속 늘어갔다. 일제 강점기에 걸쳐 시기에 따라 약간 승객 수가 감소한 경우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볼 때 연락선을 통한 인구 이동은 계속 증가되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1943년 10월 미국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곤론마루[崑崙丸] 선박이 침몰하는 등 피해가 심해졌다. 1945년 6월 20일 일본 정부는 관부 연락선의 모든 선박을 안전한 항로로 옮길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부산과 시모노세키 사이의 항로는 사실상 중단되었으며 일제 강점 하의 관부 연락선은 종말을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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