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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십자가
2018년 07월 02일 00시 01분  조회:5512  추천:0  작성자: 죽림

십자가
                                               윤동주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핵심 정리

[이 작품은] 암울한 시대를 무기력하게 사는 자신의 삶에 대한 방황과 고뇌를 자기 희생의 숭고한 의지로 극복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을 십자가로 형상화하여 보여 주고 있다.

*갈래:자유시, 서정시
*성격:상징적, 고백적, 성찰적, 기독교적, 의지적
*제재:십자가
*주제:조국 광복을 위한 자기 희생의 의지
*어조:담담하면서도 결의에 찬 고백적 어조
*특징
① 역설적 표현 사용
② 비유와 상징을 통한 주제의 형상화
③ 시적 화자의 태도 변화가 나타남.
*출전:“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시어 풀이

*첨탑(尖塔):지붕 꼭대기가 뾰족한 탑, 또는 그런 탑이 있는 건물
*모가지:‘목’의 속된 말

작품의 구성

[1연] 시적 상황의 제시
[2연] 삶의 목표와 현실과의 거리감
[3연] 절망적 현실 속에서의 방황과 갈등
[4연] 자기 희생의 삶에 대한 소망
[5연] 자기 희생의 의지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암울한 시대 상황 속의 시적 화자가 겪는 방황과 고뇌를 자기 희생의 숭고한 의지로 극복하고자 하는 자기 추구의 과정이 과장됨 없이 나타나 있다.
1연에서 시적 화자는 자기가 추구하던 삶이 한계 상황에 부딪혔음을 고백하고 있다. 2연에서는 시적 화자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와 현실과의 거리감을 나타내고 있다. 설의법을 통해 시적 화자가 인식한 현실 상황에 대한 독자의 동의를 구함으로써 시적 화자와 독자와의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다. 3연에서는 절망적 현실 상황 속에서 화자가 겪고 있는 방황과 고뇌를 자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연에서 시적 화자는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한 자기 희생처럼 자기도 그런 삶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게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예수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 이 구절은, 역설적 표현을 통해 괴로움과 행복을 동시에 지닌 예수와 자신을 대비시켜 암울한 시대를 넘어서는 초월적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5연은 주제연으로, 시적 화자는 어두운 현실을 자기 희생을 통해 구원하고자 하는, 치열한 자기 추구의 자세를 ‘꽃’으로 형상화 함으로써, 또 다른 경지의 ‘비극적 황홀’을 우리에게 경험하게 한다.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는 표현에는 자신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러나 결코 물러서는 일이 없이 잘못된 현실과 맞서 자기가 추구하는 진정한 삶을 지켜 내려는 시적 화자의 내면적 의지가 진솔하게 나타나 있다.
이 시의 바탕에는 기독교적 수난 의식(受難意識)과 속죄양 의식(贖罪羊意識)이 깔려 있다. 그러나 잘못된 현실에 맞선 시인 자신의 시대적 양심이 그보다 앞서는 근본적인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연구실

작품 속 시어 사전
 
중심 소재 ‘십자가’

이 시에서 ‘십자가’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십자가’는 1연과 4연에 두 번 쓰이는데, 1연에 쓰인 ‘십자가’는 관습적 의미인 기독교의 상징물로, 시적 화자가 도달하기 어렵다고 절실히 느끼면서도 동경하는 종교적 · 도덕적 삶의 지표를 상징한다.
4연의 ‘십자가’는 현실과 이상의 초월적 경계로, 시적 화자의 자기 희생과 구원을 상징하는 창조적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자기 희생이 요구되는 암울한 시대 상황임을 인식하고, 십자가를 통해 일제에 대한 저항과 그것을 위한 자기 희생의 감수를 결의하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가 시적 화자를 소극적 자아에서 자기 희생을 감수하는 적극적 자아로 거듭 태어나게 하는 ‘매개체’로서의 기능을 지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십자가’에 나타난 속죄양 의식

이 시의 핵심은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에 놓여 있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것은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자책감과 현실적인 괴로움에 연원한다. 현실에서는 그 모든 인류의 짐을 지고 괴로웠던 예수 그리스도, 그러나 모든 인류의 죄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됐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복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양 의식은 윤동주의 그것과 통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윤동주의 생애와 시에 있어서 그의 유년부터 가족적 신앙인 기독교 정신은 그 정신적 기조를 형성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윤동주의 저항 의식에있어서도 그리스도적 수난 의식과 속죄양 의식이 그 핵심으로 작용하고 있다.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는 구절 속에는 수난에 대한 인고의 정신과 속죄양 의식으로서의 저항 정신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 것이다.
- 김재홍, ‘한국 현대 시인 연구’

이육사와 윤동주의 시에 나타나는 세계 인식

육사의 신념과 그 신념에 따른 지사의 정신은 기존 질서의 회복이라는 성격을 띤다. 그에게 있어 조국의 상실은 개인적 비극이기 이전에 이미 삶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질서의 상실이었다. 그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외재적인 유교적 규범이기에 그 규범의 테두리 내에서 그 행위는 결정된다. 그래서 그의 행위는 흔들림이 없는 강한 선비의 기개를 보여 준다. 이와는 달리 동주의 도덕성은 내면적 갈등을 통한 양심의 실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개인적 차원에서 세계를 이해하였으며 자신이 인식한 세계관으로 스스로의 행위를 규제했다. 모든 행위의 기준이 자신의 내면적 양심이기 때문에 동주의 행위는 철저한 자기 추구 이후에라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결국, 육사는 외적으로 주어진 정신적 틀 속에서 일제 시대를 이해하였으며, 동주는 개인적 삶을 조건짓는 비극적 힘으로 일제 시대를 이해하였다. 그래서 육사는 끊임없는 자기 암시를 통해 자신의 정신적 틀을 확인하여야만 하였고, 동주는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완전한 자아를 추구해야만 하였다.
- 이남호, ‘육사의 신념과 동주의 갈등’

작가 소개 - 윤동주(尹東柱, 1917 ~ 1945)

시인. 북간도 출생. 일본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재학 중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이듬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1941년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19편의 시를 묶은 자선 시집(自選詩集)을 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사후에 햇빛을 보게 되어, 1948년에 유고 30편이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었다. 주로 1938~1941년에 쓰인 그의 시에는 불안과 고독과 절망을 극복하고 희망과 용기로 현실을 돌파하려는 강인한 정신이 표출되어 있다. 작품으로 ‘자화상’(1939), ‘또 다른 고향’(1948) 등이 있다.

관련문제

01.이 시의 내용을 영상물로 만든다고 할 때, 연출자의 상상에 의해 새로 추가된 내용은?
  1. 1. 저녁 노을이 지는 교회당의 모습이 원경(L. S)으로 나타나는 배경 화면을 만들어 보자.
  2. 2. 시적 화자의 내적 갈등을 드러내기 위해 종소리를 효과음(E.)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3. 3. 십자가가 놓여 있는 위치를 부각시키기 위해 카메라를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이동(FAN.)시키자.
  4. 4. 예수 그리스도와 시적 화자의 모습을 이중 노출(D. E.)시키면서 두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 보자.
  5. 5. 시적 화자가 죽는 장면은 배경 화면을 용암(F. O.)으로 처리하여 사실성을 높이는 것이 좋겠군.
정답 및 해설
02.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추구하고 있는 삶의 목표와 현실의 거리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시어는?
  1. 1. 햇빛
  2. 2. 십자가
  3. 3. 첨탑
  4. 4. 종소리
  5. 5. 꽃
























































































































































































































==============================
 

 

집필 의도 및 감상

 

 

 

 

윤동주의 시에는 두 가지 사상이 기둥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나는 민족주의 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 사상이다
. 이것은 윤동주의 가정 환경과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특히 윤동주의 외할아버지 김약연(金若然) 목사는 민족 학교 ‘용정학교’를 세운 교육자였고,
그 학교에서 민족 교육을 하여 후에 많은 독립 투사를 길러 내었다. 윤동주의 <서시>나 <참회록>등에서 볼 수 있는
‘소명(召命) 의식’이나 ‘자기 희생 정신’은 이와 같은 민족주의 사상과 기독교 사상의 영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시 <십자가>에서 윤동주의 뚜렷한 인생의 방향과 목표를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연희전문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간 것도 개인적 출세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두운 시대에 민족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하려고 간 것이다.
<십자가>에 나타난 ‘속죄양(贖罪羊)’ 의식이야말로 자기 한 몸을 희생해서라도 민족을 구출해 보겠다는
자기의 신념을 표출한 것이다. 윤동주의 작품 중 자기의 뜻을 분명히 나타낸 것은 시 <십자가>라 하겠다.

 

 

 

 

기본 이해 항목

 

 

 

 

주제 : 이상 세계 실현을 위한 자기 희생 의지.

 

성격 : 상징적, 의지적, 저항적, 종교적(기독교).

 

어조 : 신념의 의지적 어조.

 

사상 : 민족 정신과 기독교 정신

 

단락 구성 :

 

제1연 ― 이상 목표의 제시와 소명 의식.

 

제2연 ― 이상 실현의 어려움.

 

제3연 ― 무능력한 자아의 모습

 

제4연 ― 자기 희생의 필요성.

 

제5연 ― 구원을 위한 자기 희생의 결의와 의지.

 

창작 연월일 : 1941년 5월 31일

 

출전 :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

 

 

 

 

시어 및 구절 풀이

 

 

 

 

십자가(十字家) ― 1) 제1연의 ‘십자가’는 동경하는 종교적 이상의 목표를 상징한다. 2) 제2연의 ‘십자가’

 

는 자기 희생이라는 속죄양(贖罪羊) 의식을 나타낸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 기독교의 ‘선택론’에 의하면 자아의 의지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

 

택한다는 것이다. 햇빛이 시적 자아를 쫓아왔으므로 이 구절은 절대자가 시적 자아에게 이상 목표

 

를 제시하고 명령하는 소명(召命) 의식이 나타나 있다 하겠다.

 

쫓아오던 ~ 걸리었습니다 ― 교회 첨탑에 걸려 있는 태양을 보고 시적 자아는 자기에게 주어진 희망과

 

목표가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첨탑(尖塔)이 ~ 올라갈 수 있을까요 ― 나약한 인간으로서 이상 실현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자신감(自信

 

感)의 상실을 토로하고 있다.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 ‘종 소리’의 종교적 의미는 복음과 구원을 상징한다. 또는 목표달성의 기

 

쁨을 알리는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종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현재 아무런 희망의

 

조짐이나 구원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 속에 시적 자아가 놓여 있다는 것을 뜻한다.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하고 게으른 자아의 방황하는 모습을 보

 

여 주고 있다.

 

괴로웠던 사나이 ― 1) 암울한 시대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살아온 시적 자아의 자책이 표현되었다.

 

2) 다음 해의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와 동격이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두 가지

 

특성을 함께 갖추고 있다. ‘괴로웠던 사나이’가 십자가에 못 박혀 괴로움을 당하다 죽은 인성(人性)

 

예수라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원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화목제(和睦祭)로 희생된 신

 

성(神性) 예수를 뜻한다구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구절은 역설법의 표현이 된다. <참고> ‘화목제’는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 동물을 희생으로 바침으로 진노(震怒)를 벗어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목을

 

얻으려고 행하던 제사를 말한다.

 

처럼 ― 독립된 행으로 처리하여 시적 자아에게 ‘십자가’의 의미는 예수의 경우와는 다를 수 있음을 암시

 

하고 있다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예수의 희생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희생이었지만, 시적 자아의 자기 희생의

 

결의는 일체 치하 암흑기에 민족을 구출하고 구원하겠다는 자기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모가지를 드리우고 ― 자기 목숨을 바치겠다는 뜻이다.

 

꽃처럼 피어나는 피 ― 자기 희생을 의미하여, ‘꽃처럼’이란 표현을 통해 죽음이라는 끔찍한 느낌을 순화

 

시켜 미화하구 있다.

 

어두워 가는 하늘 밑 ― 시적 자아가 놓은 현실 상황의 부정적 성격을 암시한다.

 

모가지를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민족 구원을 위해 자기 한 몸을 희생하겠다는 의지가 표명되어 있

 

다. 이 모든 결심이 기독교의 속죄양(贖罪羊)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
 

 
 
[쫓아오는 해빛과 꽃처럼 피어나는 피와 십자가와]
 
 
 
   시인의 생가를 찾아 룡정 명동촌에 이르면 우리는 마을 어귀에서 커다란 목조건물 한 채와 먼저 만나게 된다. 현재 《윤동주시인사적전시관》이란 간판을 달고 조용히 서있는 이 건물은 백 여 년 전 지어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데 원래는 이 마을의 교회당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이 건물에서 다시 언덕 아래로 한 백여 메타쯤 내려가면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고 그 옆에 널따란 텃밭을 낀 아담한 조선식농가가 하나 있는데 이 집이 바로 시인이 태어난 생가이다. 시인은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이렇게 자기 집 바로 옆에 있는 교회당 마당에서 뛰놀며 햇빛에 기울어지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쫓으며 자라났을 것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시인의 집안은 친가 편, 외가 편 모두 독실한 기독교신자였기 때문이다.
 
 
 
   시인의 집안은 증조부 윤재옥(尹在玉) 때인 1886년 조선 함경북도 종성에서 두만강을 건너와 당시 화룡현 개산툰 자동촌으로 이주하였다. 조부 윤하현(尹夏鉉) 때인 1900년에 다시 이곳 명동으로 이사하였고 이 마을에서 1910년경, 조부가 기독교 장로교에 입교하였다. 그리고 또 이 마을에서 부친 윤영석(尹永錫)이 기독교인이며 독립운동가이며 교육자인 규암 김약연(圭巖 金躍淵)의 누이 김룡(金龍)과 결혼하였고 두 분 사이에서 장자로 태어난 시인은 출생하자 곧 유아세례를 받았다.
 
 
 
   가족적 신앙인 기독교정신은 시인의 정신적 기조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작품의 첫 부분에 그려지고 있는 풍경 즉 교회당지붕꼭대기에 높이 세워진 십자가와 십자가에 비스듬히 비치는 저녁 무렵의 햇빛은 시인이 어린 시절부터 눈 익게 바라보던 그림이었고 이것은 시인에게서 중요한 원체험(原體驗)으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시인의 종교적인 높이에 대한 경외로움은 첨탑으로 상징되고 그 성스러움과 신비로움은 가슴을 울리는 종소리에 담겨 있다. 해가 기울어 교회당의 십자가와 첨탑은 어둠속에 각일각 지워질 것 같은데 종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져 들려오지 않는다. 나아가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며 무심한 듯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이》던 시적 화자는 다시 피같이 불타는 듯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노을속의 십자가에 눈길을 얻는다. 그리고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린다.
 
 
 
  여기서 작품의 제 4련 3행 《처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접미사 《처럼》은 그 자체로 독립된 의미를 가지는 실사(實詞)가 아닌 허사(虛詞)인데 시인은 이 허사를 하나의 단어 하나로 독립시켜 시의 한 행으로 처리하였다. 시에서 행은 의미맥락의 최저기본단위가 되면서 동시에 운률과 구조의 단위를 이룬다. 시인이 실사가 아닌 허사를 이와 같이 한 행으로 처리한 것은 그 허사 《처럼》이 전반작품에서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강조되는 의미의 하나는 인류의 원죄를 한 몸에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수난자 예수와 현재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이》는 자기가 결코 동격일수 없다는 조심스러운 생각이며 또 다른 하나의 의미는 가정하여 정말 그와 같은 십자가가 자기에게 허락된다면 예수의 희생과는 내용이나 동기, 목적 등이 완전히 동일하지 않더라도 시대가 요구하는 희생을 추호도 주저치 않고 달갑게 감내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시인이 이 시를 쓴 시점이 우리민족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시기였으며 우리겨레가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남는 최저한의 여건인 말과 글을 쓸 자유조차도 박탈당한 시점이었다는 것을 되새겨 볼 때 이와 같은 의미가 더욱 돋보인다. 당시 시대적 극한상황 속에서 하나의 진정한 민족시인에게 있어서 자기민족의 말과 글로 시 한수 짓고 남기는 일도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몸부림이었으며 민족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희생을 감내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작품은 십자가에 걸린 햇빛에서 시상을 얻어 그 십자가에서 죽어간 수난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미지를 그려내었고 드리운 모가지, 꽃처럼 피어나는 피와 어두워가는 하늘, 저녁의 붉은 노을빛이미지의 절묘한 대비를 통하여 수난에 대한 인고정신과 속죄양의식으로서의 저항정신을 선명하게 드러내 탁월한 시적 완성을 이뤘다.
 
 
 
                                                            ——중국.석화——


====================

 

 

     이 詩가 쓰여진 것은 1941년 5월 31일이다. 그러니까, 윤동주가 사망(1945년)하기 4년 전에 쓴 것.

     그의 걸음을 쫓아오던 햇빛이, 걸음을 멈추고 올려다 본 첨탑 꼭대기에 걸렸다. 아득히 멀다.

     올려다 보기조차 높은 첨탑에 감히 올라갈 엄두도 나지 않고,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 시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첨탑 꼭대기에 걸린 십자가, 그리고 시인을 쫓아오던

     햇빛이 걸려 있고, 종소리는 들려오지 않으니... 시인에게 있어서 첨탑 꼭대기의 십자가는,

     '저렇게도 높은데/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라는 탄식이 먼저 나온다. 자신이 올라가기에는

     ('올라간다'라고 표현했지만, 그것은 다음 연(聯)의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너무 높아서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경지이다.

 

     詩人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나약함을 탄식하는 휘파람을, 연약한 입술로 소리를 내며, 높이

     솟아 있어서 올라가기에는 '저렇게도' 높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 뿐이다. 그리고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내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시인의 입장이라면 마음이 어떠했을까? 시기적으로,

     암울한 일제 강점기이고, 뭔가 해야할 것 같은데, 너무도 연약하고 부족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그저 속에 있는 답답함을 휘파람으로 불어낼 뿐이고, 어떠한 '임무'처럼 느껴지는

     할 일에 대해 그 주위에서 서성일 뿐이다. 종소리는 '살아 움직이는 메세지', '암울한 배경에

     들려오는 희망' 같은 것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았을까. 사방을 둘러보아도 이 암울한 일제 억압을

     뚫고 나갈 어떤 희망의 종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것 같았을 것이다.

 

     1연에서, '쫓아오던 햇빛'은 무얼 표현하고 싶었을까를 생각해본다.

     '햇빛'은 신에 속한 신성한 것이다. 그리고, 밝음이고 정의이며, 강렬한 힘이다.

     밝게 빛나는 '정의'나 '소명' 같은 것이 시인을 쫓아다녔는지도 모른다. 윤동주는, 프로필에서도

     썼지만,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 그의 중심을 밝게 비추고 있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고, 그것이 기준이기 때문에, 눈앞에 펼쳐진 일제 강점기의 억압과 불평등이

     자신에게 뭔가 해야 한다고 햇빛처럼 그를 쫓아다니는 듯하지 않았을까. 그런 심리적인 고통속에서

     첨탑 꼭대기에 걸린 십자가를 보았을 때, '괴로웠던 사나이(육체를 입고 있는 신의 아들 예수가, 몸에

     가해지는 온갖 아픔들, 채찍질, 십자가에 못박힘,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를 아들로써 마주

     대해야 하는 고통 등등)/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인류를 구원하는 길을 온전히 완성한)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자신도 그런 일을 해야 한다면 하는 마음과 비장한 각오도 엿보이는 듯하다)...

 

     모가지를 드리우고(기꺼운 마음으로 순종하듯이)/꽃처럼 피어나는 피를(나름대로 생각해 보건대, 이는,

     '피를 흘려 죽음으로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아, 귀하고 값진 결과로 숭고하게 꽃처럼 피어난다는 것이리라)/

     어두워 가는 하늘밑에(하늘이 어두운 것은 얼마나 암울한가, 희망이 없이 점점 어두워지는 일제의 현실과

     자신의 처한 환경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조용히 흘리겠습니다(너무도 아름답고 눈물이 난다. 만약,

     자신에게 그러한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자신은 그것을 기꺼이 행할 것이고, 그것을 아무도 몰라준다 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겠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신을 향해 염원하며 자신의 마음가짐을 고백하는

     숭고한 기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의 고통스러운 시대 환경을 견뎌야 했던 아름다운 청년, 윤동주...

     신앙으로 염원하며 기도하듯이 쓴 이 詩를 대하는 우리의 눈시울을 붉게 하고, 겸허하게 한다.

 

     

 

==============================
 

윤동주는 총칼을 들고 독립 항쟁의 일선에서 싸우지는 않았지만 나라없는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또 시인으로서 치열한 고민과 부끄러움을 피처럼 토한 시를 남겼습니다.

상기한 시도 그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어느날 시인은 길을 가다가 문득 첨탑 위에 세워진 교회의 십자가를 쳐다 봅니다. 무심코 따라 오던 해가 십자가와 일치되어 나를 비춥니다.

나는 결코 올라갈 수 없는 저 아득한 높이의 십자가에 올라갈 수 있는 해의 경지가 부럽기도 하고 그럴 수 없는 내 처지가 안타깝기도 합니다.

종소리는 희망의 소리입니다. 지금은 그 종소리마저 돌려오지 않는 암담한 상황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하릴없는 휘파람이나 불며 내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떠 올립니다. 세상의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모진 백성들의 저주 속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야 했던 예수야 말로 인간적으로 가장 괴로운 사나이임에 이설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어 거룩한 죽음을 맞이했으니 이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나에게도 예수님에게 주어진 십자가처럼 그러한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골고다의 언덕에서 고개를 드리우고 죽어간 예수님처럼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에서 '처럼'을 굳이 독립시켜 한 행으로 잡은 시인의 심경을 헤아렸으면 합니다. 이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영원히 허락되지 않을 십자가이지만 그래도 만약 그 십자가처럼 주어질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들이 생략되었다고 봅니다.

시가 쓰여질 당시인 1941년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 '어두워가는 하늘'은 일제 말기의 암담한 조국의 현실을 드러낸 것이라고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꽃처럼 피어나는 피'는 나를 위해서 흘리는 피가 아니라 나라 잃은 시대의 모든 겨레를 위해 흘리는 피여서 꽃처럼 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시인 윤동주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누구보다 더 정확히 인지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시처럼 그는 스물 아홉의 꽃같은 생애를 조국의 하늘에 영원히 비치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시는 아직도 우리 겨레의 가슴깊이 남아 꽃처럼 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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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윤동주의 종교관과 역사관, 인생관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제1연에서 나의 희망 또는 목표는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려 있다고 진술하고 있다. 

'햇빛'은 이상이나 희망의 이미지다. '십자가'는 시적 화자의 종교관이나 역사관 또는 인생관과 관련된 목표를 뜻한다. 

제2연에는 삶의 목표와 시적 화자의 거리감, 단절 의식이 엿보인다. 약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갈등이 내포되어 있다. 

제3연에서 화자는 첨탑에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혼자서 서성거리며 방황한다. 시인의 고독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신념과 행동의 괴리감(乖離感)에서 고민하는 모습도 보인다. 

제4연은 예수 그리스도는 현실에서는 인류의 모든 짐을 지고 괴로워했으나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되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행복하였다고 여긴다. 그래서 예수처럼 자기 희생을 위한 십자가가 허락되기를 바란다. 

제5연에는 순절 정신(殉節精神)이 나타나 있다. 자신도 당시의 어두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처럼 순절(殉節)하겠다는 것이다. '어두워 가는 하늘 밑'은 암담해지는 당시의 상황을 상징한 것이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는 희생을 통한 구원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시에는 수난 의식(受難意識)과 속죄양 의식(贖罪羊意識)이 깔려 있다. 그것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러나 더 직접적인 동기가 되는 것은 일제 치하의 어두운 시대에 무기력하게 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책과 현실적 괴로움에 근거한다. 그 자책과 괴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순절(殉節)을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민족을 위해서 스스로 희생하겠다는 소명 의식(召命意識)으로 파악해도 좋을 것이다. 

윤동주는 29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에서 옥사했다. 시 정신과 행동이 일치된 좋은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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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법무법인 충정고문 (숙명여대 석좌교수)
하이데거의 생각이 옳다면, 시인은 신과 인간 사이에 있는 존재다. 2월 16일은 신과 인간 사이에 있었던 시인, 아니 지금도 분명히 거기에 있을 시인 윤동주의 73주기(周忌)(2018년)이다. 윤 시인이 깊은 성찰과 저항의 시어(詩語)들을 피 토하듯 쏟아낸 시절은 조국이 일제의 식민통치에 몸서리치던 암흑시대였다.

정신과 육신을 송두리째 죄어오는 군국주의의 촉수(觸手)는 식민지의 젊은 시인에게 저항할 수밖에 없는 실존의 멍에였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바람이 불어’ 중) 그는 사랑도 거부했고 괴로움도 부정했으며, 심지어 슬픔에까지도 처연하게 저항했다. 일본제국주의의 광기가 자유혼을 짓누르던 지옥 같은 시대를 어찌 슬퍼하지 않았겠는가. 다만, 시대를 슬퍼하기에는 그의 고뇌가 너무도 깊고 무거웠을 게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별 헤는 밤’ 중) 시인이 별 하나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을, 그리고 동경과 시와 어머니를 새겨 넣은 하늘은 하냥 멀기만 한 슬픈 허공이었고, 그 하늘 아래의 시인은 “한 번도 손들어 보지 못한 나/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라는 자의식(自意識)으로 번민의 밤을 지새워야 했을 것이다.(‘무서운 시간’ 중)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했던(‘서시’ 중) 윤동주의 시들은 저항의식은 물론 성찰의 깊이에서도 남달리 빼어났다. 민족의 수난기에 고뇌의 영혼으로 빚어낸 값진 결실이었지만, 그 결실에는 가혹한 희생이 따랐다.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던 시인은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처럼(‘참회록’ 중) 스물여덟 해의 짧은 삶을 군국주의 폭력에 저항하는 자유의 제단에 바친다. 윤동주의 성찰은 철학자의 시선보다 치열했고, 그의 저항은 독립투사의 가슴보다 뜨거웠으며, 그의 참회는 종교인의 영혼보다 경건했다. 

군국주의만이 저항의 대상은 아니다. 선군(先軍)의 세습독재는 물론이고 정치·경제·문화·종교의 권력들도 원리주의적 독단(獨斷)에 빠져있는 한 그 폭력의 실체를 감추지 못한다. 성장과 풍요의 욕망으로 인간성의 다양한 가치들을 억누르는 물신(物神)의 우상, 특정 이념에 중독된 외눈박이 권력의 독선과 오만, 사람과 자연의 생태적 본성을 거스르는 과학기술의 무절제한 질주, 양심과 영혼의 자유를 폐쇄적 교리(敎理)의 사슬에 얽어매는 종교적 근본주의 따위도 마땅히 거부해야 할 저항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윤 시인이 제국주의 폭력에 순교자처럼 저항했듯이.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았던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스물다섯 살 창창한 나이에 쓴 첫 시(序詩)의 첫 구절을 어찌 ‘죽는 날’로 시작할 수 있단 말인가!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면서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붉은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십자가’ 중) 구원의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어두운 하늘 밑, 갈급한 자유혼은 예언이라도 하듯 십자가 앞에서 죽음을 불러낸다. “종점(終点)이 시점(始点)이 된다. 다시 시점이 종점이 된다.”고 읊었듯이(‘종시’ 중) 희생의 마지막 자리이자 부활의 새 자리인 십자가를 그리워하던 시인은 불과 6개월 뒤면 울려 퍼질 광복의 종소리를 듣지 못한 채 일제의 감옥 안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다. 괴로웠던 사나이, 그제야 비로소 행복해졌을까, 예수 그리스도처럼? 73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시인은 순수한 영혼의 고뇌를 안고 다시금 우리에게 다가온다. 서슬 퍼런 이념의 도그마가 자유의 터전을 유린하는 곳에, 민족의 깃발 아래 온 민족이 고통받는 자리에, 시인은 또 다른 성찰과 저항의 핏줄기를 뿜어내며 다가오고 있다.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붉은 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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