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출간
日 국정교과서에 실린 윤동주 다룬 저자 에세이
약 4만 6000명의 고등학생 윤동주 대해 알게 돼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윤동주는 일본 검찰의 손에 살해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통한의 감정을 갖지 않고서는 이 시인을 만날 수 없다.”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가 자신의 에세이집 ‘한글로의 여행’에 윤동주 시인에 대해 기록한 부분 중 일부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1945년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했을 때다. 10여년간 시인으로 활동한 그는 1956년 남편과 사별한 후부터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한글 공부를 하면서 느낀 생각들을 한 데 묶어 에세이집 ‘한글로의 여행(1986)’을 출간했다. 에세이집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인 윤동주’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에는 ‘서시’ ‘쉽게 쓰여진 시’ ‘돌아와 보는 밤’ ‘아우의 인상화’ 등 윤동주의 시 4편이 소개됐고, 저자의 해설도 달렸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인 윤동주’는 치큐마쇼보 출판사 편집국장 눈에 띄게 됐고, 이후 일본 고등학교 현대문 국정교과서에 11페이지에 걸쳐 실리게 됐다. 글이 실린 국정교과서는 146개 일본 고등학교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약 4만 6000명의 고등학생이 이바라기 노리코의 글을 통해 윤동주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이렇듯 일본 사회에 한국인 시인 윤동주를 알리는데 일조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모은 책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출간됐다.
시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그가 32살에 쓴 작품으로, 패전 직후인 20대 초기를 회상하며 썼다. 그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나는 아주 불행했다” 등의 표현을 쓰며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가 하면, 뒤늦게라도 청춘을 즐기고 싶다는 역설적 표현을 써 역경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마음을 담아냈다.
또한 사상·학문·권위 등에 지나치게 기대는 것을 야합(野合)이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을 믿고 떳떳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의 시 ‘기대지 말고’도 발표했다.
책에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기대지 말고’를 비롯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35편이 수록됐다.
책 끝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저자의 후기를 대신하는 글들이 실렸다. 책은 일본 고등학교 현대문 국정교과서에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인 윤동주’ 전문을 소개한다. 또 한국 식민지 통치에 대한 저자만의 시각이 담긴 시 ‘장 폴 사르트르에게’ ‘총독부에 다녀오다’ 등도 볼 수 있다.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 스타북스 펴냄
이바라기 노리코(茨木 노리코; 1926-2006)
그녀를 당대 최고의 일본 시인이라고 한다(양동국 2012, 현대문학 5월호).
그녀는 나이 오십대 후반부터 한글을 배웠으며, 윤동주를 읽었고, 그 윤동주의 인생과 시를 해설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산문이 츄쿠마서점 발행의 일본의 고등학교 국어 현대문학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녀가 현대 한국 시인들, 강은교, 황동규, 김지하 등 열명의 한국현대시인의 시작품 62편을 일본어로 번역한 한국현대시선(1990)은 일본최고의 번역상인 요미우리 문학상(연구번역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바라기 노리코(茨木 노리코; 1926-2006)의 시(詩), 세 편을 현대문학(2012년 5월호) 잡지에서 베낀다. ==================================================================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바삭 바삭 말라가는 마음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스스로 물 주는 것을 게을리하고선
나날이 까다로워져 가는 것을 친구 탓으로 돌리지 마라 유연함을 잃은 것은 어느 쪽인가
초조해져 오는 것을 근친 탓으로 돌리지 마라 무엇이든 서툴렀던 것은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초심(初心)이 사라져 가는 것을 생활 탓으로 돌리지 마라 애당초 유약한 결심에 지나지 않았던가
잘못된 일체를 시대 탓으로 돌리지 마라 가까스로 빛을 발하는 존엄(尊嚴)의 포기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자신이 지켜라 바보 같으니라고
시집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1977>에서 =========================================================== 제비 마음에 쏙 드는 시다. 제비 천주교를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내탓이오 하면서 자기 가슴을 치는 것이 제비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정말 일본의 여류시인이 한국의 제비를 위하여 이 시를 쓴 것 같다. 그만큼 이 시가 보편성이 큰 울림으로 여러 사람의 가슴을 축축하게 했을 것 같다. ============================================================
이웃 나라 말의 숲
숲의 깊이 가면 갈 수록 뻗은 가지 엇갈려 교차하며 저 깊숙이 외국어의 숲은 울창하기만 하다 한낮 여전히 어두운 샛길 혼자 터벅터벅 구리(栗)는 밤 가제(風)는 바람 오바케는 도깨비 헤비(蛇) 뱀 히미츠(秘密) 비밀 기노코(耳) 버섯 무서워 고와이
첫머리 언저리에선 신명나게 떠들어대었다 뭐든지 신기해 명석한 표음문자와 맑디맑은 울림에 히노 히카리 햇빛 우사기 토끼 데타라메 엉터리 아이(愛) 사랑 기라이 싫어요 다비비토(旅人) 나그네
세계 지도 위 이웃 나라 조선국에 검디 검도록 먹칠해가면서 이 가을바람 듣네 타쿠보쿠의 명치 43년의 노래 일본어가 예전에 내차버렸던 이웃나라 말 한글 지우려해도 결코 지워 없애지 못한 한글 용서하십시오 유루시테쿠다사이 땀 뚝뚝 흘리며 이번에는 이쪽이 배울 차례이지요 어떠한 나라의 언어에도 끝내 굴복하지 않았던 굳센 알타이어족 하나의 정수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가고싶어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아름다운 언어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지요
왜놈의 말예(末裔)인 나는 긴장을 놓고 잇으면 순식간에 한(恨)이 담긴 말에 잡아먹힐 듯한 그런 호랑이가 확실히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옛날 옛적 오랜 옛날을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스꽝스러움도 역시 한글만의 즐거움
어딘가 멀리서 재잘거리며 떠드는 소리 노래 시침 딱 떼고 엉뚱한 소리를 해댄다 속담의 보고이며 해학의 숲이기도 하고
대사전을 베개삼아 선잠을 청하면 "자네 들어 오는 것이 너무 늦었어"라고 윤동주(尹東柱)가 다정하게 나무란다 정말 늦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너무 늦었다고 생각지 않기로 했지요 젊은 시인 윤동주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그것이 당신들에겐 광복절 우리들에겐 항복절인 8월15일을 거슬러 올라가면 겨우 반년 전이었을 줄이야 아직 교복을 입은 채 순결만을 동경하는 듯한 당신의 눈동자가 눈부시게 빛난다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이렇게 노래하고 감연히 한국어로 시를 썼던 당신의 젊음이 눈부시고 그리고 애처롭습니다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달빛처럼 맑은 시 몇 편인가를 더듬거리는 발음으로 읽어보지만 당신은 조금도 웃어주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 어디까지 더 갈 수 있을는지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다 가다가 쓰러져 병들어도 싸리 핀 들녘
----------------- "깊숙한 오솔길"의 소라(曾良)의 노래, 시집 <촌지 1982>에서 ============================================================================================= 제비 지난 삼월 말 윤동주가 옥사했던 바로 그 후쿠오카에 다녀갔다. 아들의 갑작스른 죽음에 놀란 윤동주의 아버지가 허급지급 만주 용정에서 그곳 후쿠오카에 기차로 배로 다가 와서 화장한 아들의 뼛가루의 반을 후쿠오카 앞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바로 현해탄에다 뿌리고 나머지 반은 가지고 용정에 가서 무덤을 만들어 그 속에 넣었다고 한다. 윤동주의 그 대학생 사진을 보고 일본의 이 여류시인도 그 순수한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제비도 윤동주를 정말 좋아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들을 보면 참 기분이 좋다. 일본어를 한국인들만 열심히 배우는 것은 지난 100여년의 짧은 역사속에서일 뿐이리라. ===============================================================================================
기대지 말고
더 이상 야합하는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면서 마음 속 깊이 배운 건 이 정도 내 눈 귀 내 두 다리로만 선들 무슨 불편이 있으랴 기댄다고 한다면 그저 의자 등받이뿐
---------- 시집 <기대지 말고, 1999>에서 =============================================================================== 제비도 공감한다. 100 % 공감한다. 제비도 그 분처럼, 이 시를 쓴 분처럼 늙어간다. 제비 여태 너무나 기댈려고 했다. 사상에, 종교에, 학문에, 권위에 제비 기댈려고만 했다. 그러나 이젠 기대면 안된다는 것을 안다. 제비 정신이 번쩍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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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七夕)
이바라기 노리코
성혜경 번역
이슥한 밤
저 멀리 상수리 숲 언저리에
작은 등불이 가물거린다
아다치가하라(安達が原)의 오두막처럼 매혹적이다
무사시노(武蔵野)라는 이름이 남아있는 수풀 무성한 길
이곳에 오면 아직도 만날 수 있는 수많은 별들
은하수에는 잔물결이 일고
강기슭엔 견우성과 직녀성이
오늘 밤도 깊이 숨죽이고 있다
“당신들! 내 뒤를 따라온 거야?”
갑자기 풀숲에서 불쑥 튀어나온 붉은 구릿빛 알몸뚱이가 위협한다
훅하고 풍기는 소주 냄새
나는 흠칫 방어태세를 취한다
방어태세를 취하는 건 얼마나 나쁜 버릇인가
“오늘 밤은 칠석이잖소
별을 보러왔지요”
남편의 목소리가 너무도 태평하게 어둠 속을 흐른다
“치일석?
칠석… 아아 그랬군
난 또, 내 뒤를 쫓아왔나 싶어서…
이거… 실례했습니다”
그는 마법사 ‘키요의 집’ 사람이었다
몇 명의 가족이 살고 있을까
다 쓰러져가는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언제나 수수께끼 같아서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귀여운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새 그 아이도 중학생이 되어 나타났다
개조차 낯선 이의 접근을 막으며 맹렬히 짖어대고
무더운 한여름 밤 축시(丑時)가 되면
으레 펼쳐지는 조선말의 화려한 싸움
벼랑 끝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그 집 근처까지 오고 말았다
오늘 저녁 내리는 비는 견우성이 바삐 배 저어 건너올 때 노에 이는 물보라인가
기원전부터 생겨나 서서히 모양을 갖춰 온
한민족(漢民族)의 아름다운 옛이야기
일찍이 만요 사람들(万葉人)이 사랑했던 소재들도
기원을 따지면 저 멀리 고구려, 백제를 거쳐
전해져 온 것이 아니었던가
문자며 직물이며 철이며 가죽이며 도자기며
말 사육이며 그림이며 종이며 양조기술이며
바느질하는 사람이며 대장장이며 학자며 노예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전해져 왔던가
옛 은사(恩師)의 후예들이건만
이곳에서 저곳에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경원시 되고
여름 밤 바람 쐬러 나온 사람조차 미행인가하고 두려워하네
칠석이라는 말 한 마디에 갑자기 온순히 등을 보이며
되돌아가는 잠방이 차림의 아저씨
내 마음은 까닭 모를 슬픔으로 가득하다
차가운 은하를 올려다 볼 때마다
이제부턴 틀림없이 나를 휘감으며 놓아주지 않겠지
온몸에서 풍기던 강한 소주 냄새가
훅 하고
- 『진혼가』(1965)
*
월간 태백에 "이바라기 노리코의 삶과 문학"을 연재하고 있는 성혜경 교수께서 번역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칠석」을 띄웁니다.
왜냐구요?
이 시는 일본인이면서 재일한국인의 차별, 일본의 침략전쟁 등을 평생 비판했던 이바라기 노리코의 대표작 중 하나이지요. 동아시아의 칠석 신화를 모티프로 하면서, 재일한국인의 문제를 그린 시인데요....
"오늘 저녁 내리는 비는 견우성이 바삐 배 저어 건너올 때 노에 이는 물보라인가"
이 문장을 보면, 일본의 칠석 신화가 우리와는 조금 다르지요. 우리는 오작교라 하여 견우와 직녀가 다리를 통해 서로 일년에 한 번 해후하는데,
일본에서는 배를 저어서 은하를 건너와 견우와 직녀와 만나는 것이니... 노를 지을 때 생기는 물보라가 비 되어 내리기도 하고, 은하를 반짝거리게 하기도 하는 것이니
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만들어내는 같으면서 다른 이야기지요... 그러게 일본과 우리는 가깝고 먼 사이이기도 하겠구요...
월간 태백/달아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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