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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를 알린 일본 시인 - 이바라기 노리코
2018년 07월 02일 22시 48분  조회:2799  추천:0  작성자: 죽림
日에
윤동주 알린 이바라기 노리코,
전쟁 후 삶 노래하다
  •  지승연 기자 2018.01.04 

 

 

도시샤대학 시절의 윤동주(앞쪽 왼쪽에서 두 번째). 그의 마지막 사진으로 추정된다(1942~43년경) ⓒ천지일보(뉴스천지)DB
도시샤대학 시절의 윤동주(앞쪽 왼쪽에서 두 번째). 그의 마지막 사진으로 추정된다(1942~43년경) ⓒ천지일보(뉴스천지)DB

시집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출간

 

日 국정교과서에 실린 윤동주 다룬 저자 에세이

약 4만 6000명의 고등학생 윤동주 대해 알게 돼

[천지일보=지승연 기자]
“윤동주는 일본 검찰의 손에 살해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 통한의 감정을 갖지 않고서는 이 시인을 만날 수 없다.”

일본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가 자신의 에세이집 ‘한글로의 여행’에 윤동주 시인에 대해 기록한 부분 중 일부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1945년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는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했을 때다. 10여년간 시인으로 활동한 그는 1956년 남편과 사별한 후부터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한글 공부를 하면서 느낀 생각들을 한 데 묶어 에세이집 ‘한글로의 여행(1986)’을 출간했다. 에세이집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인 윤동주’라는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에는 ‘서시’ ‘쉽게 쓰여진 시’ ‘돌아와 보는 밤’ ‘아우의 인상화’ 등 윤동주의 시 4편이 소개됐고, 저자의 해설도 달렸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인 윤동주’는 치큐마쇼보 출판사 편집국장 눈에 띄게 됐고, 이후 일본 고등학교 현대문 국정교과서에 11페이지에 걸쳐 실리게 됐다. 글이 실린 국정교과서는 146개 일본 고등학교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약 4만 6000명의 고등학생이 이바라기 노리코의 글을 통해 윤동주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이바라기 노리코 (출처: 스타북스 공식 블로그)
이바라기 노리코 (출처: 스타북스 공식 블로그)

이렇듯 일본 사회에 한국인 시인 윤동주를 알리는데 일조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를 모은 책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출간됐다.

 

시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그가 32살에 쓴 작품으로, 패전 직후인 20대 초기를 회상하며 썼다. 그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주위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나는 아주 불행했다” 등의 표현을 쓰며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는가 하면, 뒤늦게라도 청춘을 즐기고 싶다는 역설적 표현을 써 역경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마음을 담아냈다.

또한 사상·학문·권위 등에 지나치게 기대는 것을 야합(野合)이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을 믿고 떳떳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의 시 ‘기대지 말고’도 발표했다.

책에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기대지 말고’를 비롯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35편이 수록됐다.

책 끝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저자의 후기를 대신하는 글들이 실렸다. 책은 일본 고등학교 현대문 국정교과서에 실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시인 윤동주’ 전문을 소개한다. 또 한국 식민지 통치에 대한 저자만의 시각이 담긴 시 ‘장 폴 사르트르에게’ ‘총독부에 다녀오다’ 등도 볼 수 있다.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 스타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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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茨木 노리코; 1926-2006)

 

그녀를 당대 최고의 일본 시인이라고 한다(양동국 2012, 현대문학 5월호).

 

그녀는 나이 오십대 후반부터 한글을 배웠으며, 윤동주를 읽었고,

그 윤동주의 인생과 시를 해설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산문이

츄쿠마서점 발행의 일본의 고등학교 국어 현대문학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녀가 현대 한국 시인들, 강은교, 황동규, 김지하 등 열명의

한국현대시인의 시작품 62편을 일본어로 번역한

한국현대시선(1990)은 일본최고의 번역상인

요미우리 문학상(연구번역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바라기 노리코(茨木 노리코; 1926-2006)의 시(詩), 세 편을

현대문학(2012년 5월호) 잡지에서 베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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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바삭 바삭 말라가는 마음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스스로 물 주는 것을 게을리하고선

 

나날이 까다로워져 가는 것을

친구 탓으로 돌리지 마라

유연함을 잃은 것은 어느 쪽인가

 

초조해져 오는 것을

근친 탓으로 돌리지 마라

무엇이든 서툴렀던 것은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초심(初心)이 사라져 가는 것을

생활 탓으로 돌리지 마라

애당초 유약한 결심에 지나지 않았던가

 

잘못된 일체를

시대 탓으로 돌리지 마라

가까스로 빛을 발하는 존엄(尊嚴)의 포기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자신이 지켜라

바보 같으니라고

 

          시집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197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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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마음에 쏙 드는 시다. 제비 천주교를 좋아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내탓이오 하면서 자기 가슴을 치는 것이

제비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정말 일본의 여류시인이

한국의 제비를 위하여 이 시를 쓴 것 같다. 그만큼 이 시가

보편성이 큰 울림으로 여러 사람의 가슴을 축축하게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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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 나라 말의 숲

 

 

 

숲의 깊이

가면 갈 수록

뻗은 가지 엇갈려 교차하며 저 깊숙이

외국어의 숲은 울창하기만 하다

한낮 여전히 어두운 샛길 혼자 터벅터벅

구리(栗)는 밤

가제(風)는 바람

오바케는 도깨비

헤비(蛇) 뱀

히미츠(秘密) 비밀

기노코(耳) 버섯

무서워 고와이

 

첫머리 언저리에선

신명나게 떠들어대었다

뭐든지 신기해

명석한 표음문자와 맑디맑은 울림에

히노 히카리 햇빛

우사기 토끼

데타라메 엉터리

아이(愛) 사랑

기라이 싫어요

다비비토(旅人) 나그네

 

세계 지도 위 이웃 나라 조선국에

검디 검도록 먹칠해가면서 이 가을바람 듣네

타쿠보쿠의 명치 43년의 노래

일본어가 예전에 내차버렸던 이웃나라 말

한글

지우려해도 결코 지워 없애지 못한 한글

용서하십시오 유루시테쿠다사이

땀 뚝뚝 흘리며 이번에는 이쪽이 배울 차례이지요

어떠한 나라의 언어에도 끝내 굴복하지 않았던

굳센 알타이어족 하나의 정수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가고싶어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 아름다운 언어의 숲으로 들어가고 있지요

 

왜놈의 말예(末裔)인 나는

긴장을 놓고 잇으면

순식간에 한(恨)이 담긴 말에

잡아먹힐 듯한

그런 호랑이가 확실히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옛날 옛적 오랜 옛날을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스꽝스러움도 역시 한글만의 즐거움

 

어딘가 멀리서

재잘거리며 떠드는 소리

노래

시침 딱 떼고

엉뚱한 소리를 해댄다

속담의 보고이며

해학의 숲이기도 하고

 

대사전을 베개삼아 선잠을 청하면

"자네 들어 오는 것이 너무 늦었어"라고

윤동주(尹東柱)가 다정하게 나무란다

정말 늦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너무 늦었다고 생각지 않기로 했지요

젊은 시인 윤동주

1945년 2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그것이 당신들에겐 광복절

우리들에겐 항복절인

8월15일을 거슬러 올라가면 겨우 반년 전이었을 줄이야

아직 교복을 입은 채

순결만을 동경하는 듯한 당신의 눈동자가 눈부시게 빛난다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이렇게 노래하고

감연히 한국어로 시를 썼던

당신의 젊음이 눈부시고 그리고 애처롭습니다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달빛처럼 맑은 시 몇 편인가를

더듬거리는 발음으로 읽어보지만

당신은 조금도 웃어주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앞으로

어디까지 더 갈 수 있을는지요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다 가다가 쓰러져 병들어도 싸리 핀 들녘

 

 ----------------- "깊숙한 오솔길"의 소라(曾良)의 노래, 시집 <촌지 198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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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지난 삼월 말 윤동주가 옥사했던 바로 그 후쿠오카에 다녀갔다. 아들의 갑작스른 죽음에 놀란

윤동주의 아버지가 허급지급 만주 용정에서 그곳 후쿠오카에 기차로 배로 다가 와서

화장한 아들의 뼛가루의 반을 후쿠오카 앞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 바로 현해탄에다 뿌리고

나머지 반은 가지고 용정에 가서 무덤을 만들어 그 속에 넣었다고 한다. 윤동주의 그 대학생 사진을 보고

일본의 이 여류시인도 그 순수한 모습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제비도 윤동주를 정말 좋아한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들을 보면 참 기분이 좋다. 일본어를 한국인들만

열심히 배우는 것은 지난 100여년의 짧은 역사속에서일 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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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지 말고

 

더 이상

야합하는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면서

마음 속 깊이 배운 건 이 정도

내 눈 귀

내 두 다리로만 선들

무슨 불편이 있으랴

기댄다고 한다면

그저

의자 등받이뿐

 

   ---------- 시집 <기대지 말고, 199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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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도 공감한다. 100 % 공감한다. 제비도 그 분처럼, 이 시를 쓴 분처럼  늙어간다. 

제비 여태 너무나 기댈려고 했다. 사상에, 종교에, 학문에, 권위에 제비 기댈려고만 했다.

그러나 이젠 기대면 안된다는 것을 안다. 제비 정신이 번쩍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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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七夕)

 

이바라기 노리코

성혜경 번역

 

 

 

이슥한 밤
저 멀리 상수리 숲 언저리에
작은 등불이 가물거린다
아다치가하라(安達が原)의 오두막처럼 매혹적이다
무사시노(武蔵野)라는 이름이 남아있는 수풀 무성한 길
이곳에 오면 아직도 만날 수 있는 수많은 별들

 


은하수에는 잔물결이 일고
강기슭엔 견우성과 직녀성이
오늘 밤도 깊이 숨죽이고 있다
“당신들! 내 뒤를 따라온 거야?”
갑자기 풀숲에서 불쑥 튀어나온 붉은 구릿빛 알몸뚱이가 위협한다
훅하고 풍기는 소주 냄새
나는 흠칫 방어태세를 취한다
방어태세를 취하는 건 얼마나 나쁜 버릇인가
“오늘 밤은 칠석이잖소
별을 보러왔지요”
남편의 목소리가 너무도 태평하게 어둠 속을 흐른다
“치일석?
칠석… 아아 그랬군
난 또, 내 뒤를 쫓아왔나 싶어서…
이거… 실례했습니다”

 


그는 마법사 ‘키요의 집’ 사람이었다
몇 명의 가족이 살고 있을까
다 쓰러져가는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언제나 수수께끼 같아서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귀여운 소년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새 그 아이도 중학생이 되어 나타났다
개조차 낯선 이의 접근을 막으며 맹렬히 짖어대고
무더운 한여름 밤 축시(丑時)가 되면
으레 펼쳐지는 조선말의 화려한 싸움
벼랑 끝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그 집 근처까지 오고 말았다

 


오늘 저녁 내리는 비는 견우성이 바삐 배 저어 건너올 때 노에 이는 물보라인가

 


기원전부터 생겨나 서서히 모양을 갖춰 온
한민족(漢民族)의 아름다운 옛이야기
일찍이 만요 사람들(万葉人)이 사랑했던 소재들도
기원을 따지면 저 멀리 고구려, 백제를 거쳐
전해져 온 것이 아니었던가
문자며 직물이며 철이며 가죽이며 도자기며
말 사육이며 그림이며 종이며 양조기술이며
바느질하는 사람이며 대장장이며 학자며 노예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전해져 왔던가
옛 은사(恩師)의 후예들이건만
이곳에서 저곳에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경원시 되고
여름 밤 바람 쐬러 나온 사람조차 미행인가하고 두려워하네

 


칠석이라는 말 한 마디에 갑자기 온순히 등을 보이며
되돌아가는 잠방이 차림의 아저씨
내 마음은 까닭 모를 슬픔으로 가득하다
차가운 은하를 올려다 볼 때마다
이제부턴 틀림없이 나를 휘감으며 놓아주지 않겠지
온몸에서 풍기던 강한 소주 냄새가
훅 하고


- 『진혼가』(1965)

 

 

 


*

월간 태백에 "이바라기 노리코의 삶과 문학"을 연재하고 있는 성혜경 교수께서 번역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칠석」을 띄웁니다.

왜냐구요?

 

이 시는 일본인이면서 재일한국인의 차별, 일본의 침략전쟁 등을 평생 비판했던 이바라기 노리코의 대표작 중 하나이지요. 동아시아의 칠석 신화를 모티프로 하면서, 재일한국인의 문제를 그린 시인데요....

 

"오늘 저녁 내리는 비는 견우성이 바삐 배 저어 건너올 때 노에 이는 물보라인가"

 

이 문장을 보면, 일본의 칠석 신화가 우리와는 조금 다르지요. 우리는 오작교라 하여 견우와 직녀가 다리를 통해 서로 일년에 한 번 해후하는데,

일본에서는 배를 저어서 은하를 건너와 견우와 직녀와 만나는 것이니... 노를 지을 때 생기는 물보라가 비 되어 내리기도 하고, 은하를 반짝거리게 하기도 하는 것이니

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만들어내는 같으면서 다른 이야기지요... 그러게 일본과 우리는 가깝고 먼 사이이기도 하겠구요...

 

 

월간 태백/달아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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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나는 아주 불행했고/나는 아주 얼빠졌었고/나는 무척 쓸쓸했다//때문에 결심했다 될수록이면 오래 살기로/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불란서의 루오 할아버지같이 그렇게…."(`내가 가장 예뻤을 때`) 

전후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의 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인의 상실감을 노래한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명성을 얻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년 전 소설가 공선옥 씨 작품 제목으로까지 차용됐을 정도다. 

하지만 한 가지 더 특이한 점은 그녀가 생전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였다는 사실이다.
 
한글을 직접 배우고 한국 문학 번역에도 힘쓴 노리코는 `한국현대시선`(1990년)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나라 명시들을 번역ㆍ소개해 요미우리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장 폴 사르트르에게`와 `칠석` 등 한국을 소재로 쓴 시들도 상당히 많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로의 여행`(박선영 옮김, 뜨인돌 펴냄)은 시인이 `한글`을 소재로 아사히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모은 책이다. 일본에선 1986년 출간된 이후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스테디셀러. 이바라기 자신이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느꼈던 한글의 매력,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관한 생각을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쉰 살에 남편과 사별한 뒤 자기 치유 방법으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시인은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사실 열다섯 시절부터 있었다"고 고백한다. 김소운의 `조선민요선`을 읽은 후 그 속에 실린 단어들의 소박함과 기지에 끌렸다는 것. 그는 `딸기코` `치맛바람` `바람둥이` 같은 단어를 예로 들며 "한국어엔 신선한 상상력과 재기가 넘친다"고 주장한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전문적인 수준까지 올라가 일본 사투리와 한국어의 연관 관계를 찾기 위해 고서를 뒤적거렸다는 얘기도 나온다. 

언어 자체에 탐닉하던 그의 욕심은 갈수록 심해져 한국 문화 전반으로 보폭을 넓혀 들어간다. 우리 눈에는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일상 풍경도 그의 눈엔 하나의 문화적 기호로 포착된다.
 
 자기 그릇이 아닌 스테인리스 식기가 유행하는 한국 식당에선 외세 침략에 시달렸던 한반도 역사를 읽고, 할머니들이 모여 앉은 농촌 풍경에서 경어체 사용에 대한 배경을 읽어내는 식이다. 

한글날(10월 9일)을 맞아서 쓴 글도 인상적이다. 그는 "한국인들을 볼 때마다 굳고 맑은 결정처럼 단단하고 굳센 사람들이라고 느낄 때가 많은데, 모국어를 향한 마음이 그 중심적인 핵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고 말한다. 이른바 `한국 사람`이라는 우리가 일본의 한 시인보다도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은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손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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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엔 시 동아리 활동도 하고 나름 문학소녀였는데, 시를 읽지 않은 지 한참 되었다. 30대를 지나던 어느 땐가부터 시도 소설도 내게서 멀어져갔다. 감성은 무뎌지고 마음에는 먼지가 폴폴 날리기 일쑤였다. 현실생활이 팍팍하고 고된 탓 아니었을까 싶은데, 아니란다.

스스로 물주기를 게을리해놓고 파삭파삭 말라가는 마음을 남 탓하지 말라 한다. 자기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키란다. 한국인보다 한글을 더 사랑한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의 일침이다. 가슴이 뜨끔하다. 

시인은 서먹해진 사이 친구 탓하지 말고, 짜증나는 것 가족 탓하지 말고, 초심을 잃어가는 것 세월 탓하지 말고, 안 좋은 것 전부 시대 탓하지 말라고 한다. 자기 감수성 정도도 스스로 못 지키면 바보라고 은근한 조롱도 덧붙인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네 감수성 정도는'에서 시인은 남 탓, 시대 탓, 세상 탓하는 어리석은 태도에 대해 이렇게 일갈한다. 일본 시인으로는 드물게 저항과 반전의 문학인으로 알려져 있는 이바라기 노리코의 사화집(앤솔러지) <내가 가장 예뻤을 때>가 2017년 12월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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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가장 예뻤을 때> 표지 사진
ⓒ 스타북스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는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집 6권에서 발췌한 35편의 시와 일본 교과서에 실린 수필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 그리고 '월간시'에 실린 이바라기 노리코의 한글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다.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여 쓴 수필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는 일본 고등학교 현대문 국정교과서에 실렸다. 이 글에서 시인은 윤동주는 분명히 일본 검찰의 손에 살해당했으며 이런 배경을 알지 못하면 이 시인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윤동주의 사인은 일본인 스스로 반드시 그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말하는 강단 있는 시인이었다.

가장 예뻤을 때 너무나 불행한 삶의 아이러니

인생에서 가장 예쁜 시기는 언제일까? 시인은 스무 살 무렵을 가장 예뻤던 때라고 회상한다. 이바라기 노리코가 32살 때 20대 초기를 생각하며 쓴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일본 국정 교과서에도 실린 시인의 대표작이다. 

그런데 인생에서 가장 예뻤던 그 시절 시인은 행복했을까? 불행히도 아니란다. 가장 예뻤을 때 아주 불행했노라고, 너무도 쓸쓸했노라고 시인은 고백한다. 거리는 '꽈르릉' 하고 무너지고, 주위의 사람들은 죽었고 그래서 가장 예뻤던 그 시절에 멋 부릴 기회도 잃어버렸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 예뻤던 시절에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순수한 눈짓만을 남기고 다들 떠나버렸다고 시인은 토로한다. 1926년생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한창 예뻤을 스무 살,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졌고 패망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시에서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해 통렬히 비판한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이런 엉터리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中 (본문 56쪽)


일본인으로서는 차마 내뱉기 힘든 말이었겠지만 시인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엉터리없는 일'로 간주했다. 국가가 벌인 그 엉터리없는 일 때문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고, 젊은 청춘들이 희생되었고, 평범한 소시민들은 소중한 일상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국가가 저지르는 엉터리없는 일이 어디 일본에만 있었을까? 공선옥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똑같은 제목으로 소설을 쓴다. 공선옥의 소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학살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은 1980년대 초반 광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이상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뭐든지 빨리 잊어먹게 하는 약이 섞여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공기 중에 누가 죽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약품을 살포한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밥 먹고 웃고 결혼하고 사랑하고 애 낳고 그러는 게 이상해. 우리 식군 내가 이상하다지만 말야." - 공선옥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中 76쪽


공선옥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잘 있으라는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우리는 그 시절과 이별했다. 나는 그것이 너무도 아쉽고 서운하고 서러웠다. 아쉽고 서운하고 서러운 그 마음이 사실은 이 글을 쓰게 했는지 모른다." 


 
생에 대한 환희와 설렘으로 가득 찰, 인생에서 가장 예쁘고 빛나던 청춘의 시절이 슬프고 아프고 서럽게 기억되어야 하는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일본과 한국에서 같은 제목의 시와 소설로 승화된 것이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일본 전후 여성 시인으로는 가장 폭넓은 사회의식과 비평정신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의 시는 날카로우면서도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생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져 있다. 

소녀시절엔 어른이 된다는 것이 닳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살면서 깊이 깨달은 것이 어른이 되어서도 갈팡질팡해도 된다는 '되새김'이란 시의 구절은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늘 갈팡질팡하는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맑고 청아한 모습의 사진에 반해 윤동주의 시를 읽게 되었노라 수줍게 고백하는 이바라기 노리코. 세상과 작별하는 모습마저도 따뜻하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시를 읽으며 지나간 시간, 누가 뭐래도 풋풋하고 아름다웠던 나의 스무 살, 내가 가장 예뻤던 그 시절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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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음 정류장은 도시샤(同志社) 대학 앞입니다."
 
교토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 중이던 필자는 안내 멘트에 귀가 번쩍 뜨였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도시샤(同志社) 대학은 시인 윤동주(1917-1945)가 다녔던 학교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재차 확인하자 운전사는 ‘내려서 뒤쪽으로 조금 돌아가야 한다’고 친절하게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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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문에서 바라본 도시샤 대학

도시샤 대학에 들어서자 붉은 벽돌에서부터 역사의 숨결이 느껴졌다. 이 대학은 한 청년의 뜻(志)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쇄국의 일본을 개방하려는 의지로 미국에 건너가서 ‘일본인 최초의 미국대학 졸업자’가 됐다. 청년의 이름은 니지마 조(新島 襄, 1843-1890). 그가 1875년 도시샤 대학(同志社英學校)을 설립했던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 학교가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다. 때마침 토요일 오후라서 캠퍼스는 고즈넉했다. 갑자기 이방인(異邦人)이 된 필자는 두리번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경비원 신세를 졌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윤동주 시비(詩碑)가 어디 쯤 있나요?”
 
“똑바로 가시다가 우측으로 돌아가세요. 저기 지붕 끝이 뾰족한 건물 앞에 있습니다.”
 
정지용과 윤동주의 시비 나란히 있어
 
경비원의 말대로 건물사이로 들어가자 나무아래 정지용(1902-1950)과 윤동주(1917-1945)의 시비가 나란히 있었다. 비(碑)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일본어와 한글로 쓰여 있었다. 
 

<정지용 시인은 1902년 충청북도 옥천에서 태어났다. 서울 휘문고보를 거쳐 1923년 도시샤(同志社) 대학 예과에 입학하였다. 1929년 영문학과를 졸업하기까지의 6년 동안 이 캠퍼스를 무대로 영문학 공부와 함께 주옥같은 시를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1930년대 휘문고보의 영어교사로 교편을 잡으면서 문단의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정지용 시집>과 <백록담>을 간행하여 현대시의 확립에 기여하였으며, 유능한 시인을 문단에 등용시키기도 하였다. 1945년 이후, 이화여자전문학교 (현, 이화여자대학)의 교수와 경향신문의 주간을 역임하였고, <지용시선>을 비롯한 산문집을 간행하였다. 1950년의 한국전쟁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옥천군, 옥천문화원, 정지용 기념사업회는 그를 기리기 위하여 이곳 모교에 시비를 세웠다. 조각된 시는 교토를 노래한 대표작 <압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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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비

사실을 토대로 한 글이었다. 바로 옆에 서있는 윤동주 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윤동주에 대한 글도 일본어와 우리말로 쓰여 있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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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비의 글
<윤동주는 코리아의 민족시인 이자 독실한 크리스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1917년 12월 30일에 북간도의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처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용정에 있는 은진중학교에 재학 중인 1934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작에 손을 댄 것은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다음부터이다.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윤동주는 1942년에 도일(渡日)하여 도시샤(同志社) 대학의 문학부에 입학한다. 그는 도시샤 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3년 7월 14일에 한글로 시를 쓰고 있었다는 이유로 독립운동의 혐의를 입어 체포되었다. 재판 결과 그는 ‘치안유지법을 위반했다’는 죄목으로 징역형을 선고 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1945년 2월 16일에 옥사했다. 이 시비는 도시샤 교우회 코리아 클럽의 발의에 의해 그의 영면 50돌인 1995년 2월 16일에 건립, 제막되었다. 한글로 된 서시는 그의 자필 원고 그대로이며, 일본어 번역은 이부키 고(伊吹鄕)씨의 것이다.>
 
다소 어눌한 한글 표현이지만, 이해하는데 있어서 문제는 없었다. 필자는 혼자서 시비에 새겨진 빛바랜 서시(序詩)를 읽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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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비

 필자는 읽고 또 읽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시(詩)였기 때문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필자는 ‘주변을 살피고, 뒤를 돌아보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교정의 벤치에 앉았다. 오래 전에 필자가 <월간조선>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와 윤동주
 
“인간의 얼굴은 하나의 줄기위에 핀 일 순간의 꽃이다./ 바람과 새가 날라다 준 종자처럼/ 여기저기 흩어지고, 피고 지는 존재/ 인간도 식물과 별로 다를 게 없느니….”
 
 일본의 유명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茨木則子, 1926~2006)가 쓴 <하나의 줄기 위에>라는 수필에 담긴 내용이다. 그 책에도 ‘윤동주에 대하여’라는 글이 있다.
 
<‘청춘의 시인’ 윤동주―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기 있는 시인. 수난의 심벌, 순결의 심벌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장본인. 일본유학 중 독립운동의 혐의로 체포되어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세의 나이로 옥사(獄死)한 사람. 옥사의 진상도 의문이 많다. 일본의 젊은 간수는 윤동주가 사망 당시,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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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그린 윤동주의 작은 액자

 이바라기(茨木) 시인은 1990년 윤동주의 조카 윤인석 씨를 도쿄에서 만났다고 한다. 시인은 윤인석 씨가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 씨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함께 ‘아우의 인상화(印象畵)’란 시를 소개했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살그머니 작은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서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슬픈, 진정코 슬픈 대답이다...”
 
이바라기(茨木) 시인은 “윤인석 씨가 큰 아버님은 돌아가셨지만,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며 “자신도 이에 공감한다”고 했다.
 
윤동주의 시비(詩碑)는 한국산과 교토(京都)산의 돌로 세워졌다. 양국화합의 의미를 두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한일 간의 간극(間隙)은 아직도 좁혀지지 않고 있다. 잎 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을 윤동주를 추모하면서 뚜벅뚜벅 도시샤 대학 교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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