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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돌아와 보는 밤
2018년 07월 02일 22시 14분  조회:2801  추천:0  작성자: 죽림
 

돌아와 보는 밤

 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입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어야 할텐데

가만히 밖을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들려오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익어가옵니다.

 

동족의 비애를 가슴에 안았던
식민지 청년의 순결한 희망

윤동주​

윤동주는 독립투쟁의 일선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투사도 아니었고,
당대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시인도 아니었다.
그러나 인간을 떠나서 도를 닦는다는 것은 한낱 오락에 불과하고, 공부나 시도 생활이 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시와 삶을 일치시키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그의 시 정신은 어느 투사 못지 않게 치열한 바가 있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는 <서시>의 구절처럼,
그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독립한 나라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죽음의 나락에 빠진 민족을 사랑했고,
자신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며 한 몸을 민족의 제단에 제물로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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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송우혜가 전하는 '마음의 별로 남은 민족시인'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27년여의 짧은 삶. 그러나 울림은 컸다. 뭉클한 여운이 100년(2017년도)이라는 시간 속에 길게 이어지고 있다. 민족시인 윤동주. 살아생전에 별을 헤던 그는 세상을 떠나 마음의 별로 남았다. '윤동주 평전'의 저자인 소설가 송우혜(70) 씨가 그의 삶과 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윤동주 시비 앞에 선 송우혜 소설가 [사진/전수영 기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7월 18일 한낮. 연세대 신촌캠퍼스에 있는 윤동주기념관 주변의 숲이 매미 소리로 요란했다. 기념관은 윤동주 시인이 대학 1학년 때 생활하고 사색하고 고뇌하며 시 쓰기를 했던 기숙사였다. 바로 앞뜰에는 시인의 삶과 예술혼을 기리는 시비가 단아하게 서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너무나 잘 알려진 '서시(序詩)'다. 소설가이자 사학자인 송우혜 씨는 시비에서 기념관 쪽을 바라보며 사뭇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서시'는 '참회록'과 더불어 가장 애송하는 시라고 했다.

"석조건물인 저 옛 기숙사의 지붕밑방에서 시인은 운명적 절친 송몽규, 강처중과 함께 연희전문학교 생활을 시작하며 꿈을 키웠어요. 거목들이 우람하게 서 있는 이 숲을 걷노라면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곤 해요. 수십 년 전에 시인이 걸었던 그 길을 오늘날 내가 이렇게 걷는구나 싶어서입니다."

대표작 '서시'를 비롯해 주옥같은 시를 다수 남겼던 민족시인 윤동주(1917~1945). 민족 최대의 경축일인 광복절을 앞두고 시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감회가 새롭다.

송 씨는 "올해가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이라는 게 도무지 실감 나지 않는다"면서 "남기신 시와 함께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계신 듯하다"며 소회를 밝혔다. 윤동주 시인은 27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200여 편의 시와 산문으로 깊은 울림을 남겼다.

송 씨는 "'명예롭게 유지될 수 없는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다'는 말이 있다. 대한제국이 일본제국에 멸망한 때가 그랬다"며 "어두운 재앙의 시기에 신은 우리에게 한 시인을 보냈다"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역저 '윤동주 평전'(서정시학)은 시인의 삶과 예술을 집대성한 것으로 현대사의 한 줄기를 새롭게 재정리해 또 다른 울림을 안겨준다.

◇ 우연한 만남이 낳은 '윤동주 평전'

송 씨와 윤동주의 '만남'은 어찌 보면 우연이었다. 운명적 인연이랄까. 아버지의 삼종형인 송몽규(1917~1945)의 자료를 수집하던 중 그와 친구 사이인 윤동주에 새삼 주목하게 된 것이다. 1970년대 중반 한국 문단에서는 이른바 '윤동주 폄훼 현상'이 강하게 일고 있었다.

"'평생 공부만 했던 윤동주가 무슨 독립운동을 했겠느냐. 그의 시 또한 저항시가 아니다. 일본 유학생으로서 일제의 과잉단속에 걸쳐 불우하게 옥사한 것'이라는 등의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지요. 역사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들이 자의적 해석으로 시인에 대한 평가를 오도한 것입니다."

평전이 출간되기까지 내적 우여곡절도 거쳐야 했다. 윤동주에 대한 오류를 바로잡고자 시사잡지에 글을 발표하자 한 출판사의 주간이 제대로 된 '윤동주 평전'을 하나 써달라고 간곡히 주문했다. 하지만 송 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해버렸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평전을 집필한다는 건 무리다 싶어서였다. 당시 그는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기도 했다.

"어느 날이었어요. 낮잠에 깜박 빠져들었는데 윤동주의 친구이자 인척인 문익환(1918~1994) 목사님의 모친(김신묵)이 금방 돌아가실 것처럼 자리에 누워 계시는 꿈을 꿨어요. 순간 나는 쇠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지요. 소설은 언제라도 쓸 수 있지만 저분이 돌아가시면 북간도 이야기 역시 영영 사라진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요."

송 씨는 곧바로 증언자들을 찾아다니고 사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때가 1984년 무렵. 당시 90세였던 문 목사의 모친은 북간도의 역사와 윤동주 시인의 삶을 돌이켜주는 최대의 증언자가 됐고, 시인의 누이동생 윤혜원과 남동생 윤일주도 큰 도움을 줬다. 모두 560여 쪽 분량의 '윤동주 평전'은 집필 4년 만인 1988년에 처음 출간됐다. 그리고 1998년 제1차 개정판에 이어 2004년 2차 개정판, 2014년 3차 개정판이 차례로 나왔다.

"평전을 쓰는 동안 역사적 진실을 제대로 밝히는 걸 목표로 정진했지요. 그 결과 '윤동주'라는 시인을 좀 더 정확하게 세상에 드러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내년이면 어느덧 출간 30주년이 되네요."

이와 함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준다. 윤동주 평전을 쓰겠노라고 오랫동안 벼르고 있던 문익환 목사가 송 씨의 평전을 읽고서는 "윤동주 평전은 송우혜가 쓴 것으로 충분하다. 정말 잘 썼다. 나는 안 쓰겠다"며 대견해 하더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9년 2월 전화를 걸어와 "내가 곧 북간도에 가려는데 평전 두 권만 다오. 그 책을 가지고 가야겠다"고 부탁했다.

그런데 문 목사가 평전을 들고 그해 3월 25일 도착한 곳은 중국 북간도가 아닌 북한의 평양이었다. 순안공항에 내린 그가 도착 일성으로 남북한 온 겨레 앞에 바쳐 낭송한 게 시인의 '서시'. 송 씨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전율 같은 것이 내 마음을 후려쳤다"며 당시의 심경을 털어놨다.

◇ 비운의 짧은 삶, 깊은 울림의 시

세계가 1차 대전의 아수라장에 빠져 있던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의 명동 학교촌에 있는 기와집에서는 준수하고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나 첫울음을 터뜨렸다. 결혼 8년 만에 아이를 얻은 부모로서는 경사 중의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 아이가 바로 훗날의 민족시인 윤동주다.

특기할 사실은 윤동주가 태어나기 석 달 앞서 동갑내기 고종사촌이자 평생 운명을 함께한 송몽규가 탄생했다는 점. 윤동주의 할아버지 댁에서 잇달아 태어난 두 아기는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뒤 함께 일본 유학을 떠났고, 동일한 죄목으로 체포돼 복역하다가 같은 해에 옥사한 운명적 동반자였다.

"다섯 살 되던 해에 송몽규가 새로 장만한 부모의 집으로 이사할 때까지 두 아이는 한 지붕 밑에서 살았는데 일생을 두고 참으로 특이한 관계였지요. 윤동주 연구에서 송몽규란 인물을 빠뜨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명동소학교 시절의 윤동주는 성품이 무척 온순하고 재주 있는 아이였다. 송 씨는 "윤동주에게 명동은 맑고 풍요롭고 평화로운 유년기 체험으로 가득한 곳이었다"면서 "하지만 횡행하는 마르크시즘에 환멸을 느낀 민족주의자들은 하나둘 이곳을 떠났고 윤동주 집안도 1931년 용정으로 이사했다"고 들려준다. 윤동주의 민족주의 성향의 내면에는 이 같은 명동마을의 시대상이 있다는 것.

용정의 은진중학교 생활도 시대적 격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35년 송몽규가 독립운동에 투신해 중국으로 잠입했고, 윤동주는 생애 처음으로 집을 떠나 평양 숭실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때의 송몽규 독립운동 경력이 훗날 윤동주의 체포와 옥사에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다.

윤동주가 인간이 지닌 불완전성을 체감하고 이를 '부끄럼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계기는 바로 숭실중학교 시절이었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시기인 이때 윤동주는 모든 불완전한 존재들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슬퍼하는 참회의 방식이 바로 '부끄럼'임을 깨달은 것. '서시'는 이 같은 부끄럼 미학의 결정판으로, 수치 앞의 정직함과 성실함은 신의 완전성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축복이었다.

신사참배의 격랑 속에 문익환과 함께 숭실중을 자퇴하고 용정으로 돌아온 윤동주는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해 두 해 동안 다수의 작품을 발표한다. 이중 매우 감칠 맛 나는 작품으로 송 씨가 꼽은 게 동시 '무얼 먹고 사나'.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아 먹고 살고// 산골엣 사람/ 감자 구워 먹고 살고//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졸업 앨범 사진

 

◇ 유순하나 지조 높은 '외유내강' 시인

1938년 광명학원을 졸업한 윤동주는 송몽규와 나란히 자신의 가장 풍요롭고 자유로웠던 시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을 활짝 열게 된다.

민족의식이 시편을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도 이때였다. 그는 '슬픈 족속'이라는 시에서 '흰 수건을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집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라며 식민치하의 우리 민족을 의인화해냈다. '한민족'은 곧 '슬픈 족속'이라는 것이다.

송 씨는 "외유내강형이던 시인이 대인관계에서는 매우 유순하고 다정했지만 지조는 누구보다 굳고 강했다"고 들려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요 힘에 겨운 아들이며 따뜻한 오라버니요 형이었고 성실한 학생이자 다정한 동료였고 자상한 선배였던 그의 외형을 벗겨놓고 보면 광야에서 수도하는 고행승처럼 엄격하게 노력하는 시인이요, 동족의 고난 앞에서 신과 그 약속에 대해 감연히 반발한 당당한 반항가였다는 것이다.

연희전문 시절이 낳은 명시 중 하나가 바로 '별 헤는 밤'. 맑은 별빛 충만한 가을의 서정을 청신하게 묘사한 이 시에는 시인의 고운 심성과 기품이 오롯이 드러나 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중략)…//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연전 졸업 후 윤동주는 송몽규와 일본에 유학해 대학과정을 밟는다. 당시 가장 큰 장애는 '창씨개명'. 창씨개명이 되지 않으면 일본으로 가는 데 필요한 '도항증명서'부터 뗄 수 없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연전 졸업 직후 북간도로 귀향했다가 서울로 돌아와 학교에 창씨개명계를 제출한다. 그의 새 이름은 히라누마 도오쥬우(平沼東柱).

'참회록'은 창씨개명의 뼈아픔을 통회하는 일종의 저항시였다. 일제에 망한 '대한민국'이란 왕조의 후예로서, 바로 자신의 '얼굴'이 그 '왕조의 유물'임을 절감하면서 '이다지도 욕됨'을 절절하게 참회했다. 송 씨는 "그것은 동시에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을 기약하는 자기 다짐을 동반한 참회이기도 했다"고 말한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골이 남어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가//…(중략)…밤마다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거러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속에 나타나온다'

◇ '동 섣달의 꽃.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

일본으로 건너간 지 1년여 뒤인 1943년 7월 여름방학을 맞아 북간도로 귀성하려던 윤동주는 '교토에 있는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연루돼 전격 체포·수감된다. 요시찰 인물 송몽규는 이보다 나흘 앞서 사상범으로 체포됐다. 이듬해 기소돼 징역형을 선고받은 윤동주와 송몽규는 후쿠오카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해방을 몇 달 앞둔 1945년 2월 16일과 3월 7일 각각 비극적으로 옥사하고 만다.

"윤동주가 민족시인의 영예를 누리게 된 데는 연전 시절에 종로구 누상동에서 같이 하숙했던 후배 정병욱과, 기숙사에서 함께 지냈던 강처중이 있었습니다. 윤동주와 정병욱은 다섯 살 차이의 선후배였지만 흉금을 털어놓고 지낼 만큼 긴밀한 사이였죠. 윤동주에게서 필사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받은 정병욱은 이를 보관했다가 해방 후 월남한 유족들에게 전함으로써 시인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크게 공헌했지요. 해방 후 경향신문 기자를 지낸 강처중도 일본 유학을 떠나는 윤동주가 서울에 두고 간 '참회록' 등의 원고를 보관했다가 동생 윤일주에게 전했구요. 현존하는 윤동주 유품 중에서 중학교 때의 시와 동시, 습작을 빼고는 모두 강처중에 의해 세상에 남아 있어요."

윤동주가 평생을 두고 가장 좋아했던 시인은 정지용(1902~1950)이었다. 그가 관념적이고 어려운 시가 아닌, 쉬운 말로 진솔한 감정을 표출하게 된 데는 정지용의 영향이 컸다. 정지용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난 뒤인 1947년에 '동 섣달의 꽃. 얼음 아래 다시 한 마리 잉어'라며 윤동주를 극찬한다.

송 씨는 "평전이 나오기 전까진 송몽규의 사망 시기와 무덤 소재지에 대해 중대한 착오들이 있었는데 책의 내용을 토대로 무덤을 찾아내고 사망 날짜도 바로잡혀 큰 보람을 느꼈다"면서 "이와 함께 '좌익 인사'였다는 이유로 유족조차 쉬쉬하던 강처중의 행적과 사상을 개정판에서 새롭게 정리할 수 있어 뿌듯했다"고 말했다.

1968년 서울대 의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가 중퇴한 뒤 1978년 한국신학대학에 편입해 신학을 공부한 송 씨는 다시 이화여대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은 뒤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했다. 1980년 문단에 오른 송 씨는 장편소설 '저울과 칼' '하얀 새' 등을 발표했고 '스페인춤을 추는 남자' 등의 소설집과 '서투른 자가 쏘는 활이 무섭다'라는 산문집도 펴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8월호에 실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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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문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5.10.

 

 

 

  소년에서 청년으로의 길

 

  시인 윤동주는 서른을 목전에 두었던 1945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다그는 늘 청년으로 기억되

는데그 이유는 그가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에 그의 시편들 또한 청년기에 써내려간 것들이기 때문

이다따라서 그의 시 쓰기는 스물아홉아니 스물여섯에 머물러 있다우리는 이후에 펼쳐졌을 그의 시세계를

짐작만 해볼 따름이다그렇다고 그가 남긴 시편들이 라 불릴 수 있는 미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외려 그가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하며 선취한 부끄럼의 미학은 우리 시사(詩史)에서 드물고

도 높다란 영역에 위치한다.

   윤동주의 시편들에 등장하는 부끄럼은 자기 반성적 행위로 도출되는데그의 시편 새로운 길에서도 그

자취를 찾을 수 있다이 시편은 그가 연희전문에 입학하고 한 달이 지난 1938년 5월 10일에 쓰인 시편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에 실린 19편 가운데 창작 시기가 가장 앞설 뿐만 아니라 그의 장례식에서 낭독되기

도 하였다시인 윤동주의 시작과 마지막을 함께한 셈이다대칭 구조(ABCB’A)로 짜여 있는 이 시편에

서 시적 화자는 과 마을을 목적지로 삼아 갈 것이라 말한다그 여정, ‘나의 길 새로운 길에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로 변주되는데시적 화자는 설령 그곳에 가닿지 못할지라도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

이 언제나’ 나아갈 것을 마음먹는다이 가운데 시적 화자의 어조는 단호하며 지극히 다짐조이다.

   이와 같은 다짐은 반성의 긍정적 표현으로 과거를 돌이킨 이후에야 나오게 된다즉 반성의 행위가 선행되어

야만 하는 것이다따라서 시적 화자의 새로운 길에 대한 다짐은 과거에는 가지 않았던 길로 향하겠다는 자기

의지의 표현이다헌데 이 길은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길이기도 하다그렇다면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그것

은 문들레와 까치와 아가씨와 바람을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마음 문제이다시적 화자는 자기 인식을 통해 매

번 걷던 길을 새롭게 느끼는 것이다그렇다면 어제 갔던 그 길도 시적 화자에겐 오늘과 내일에는 새로운 길로

변할 수 있다.

   그 새로운 길이 윤동주에겐 의 길, ‘에 대한 다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이 시편에는 순수한 열망이 가

득하며현실 인식이 부재한다이 때문인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에 수록된 다른 시편에 비해 덜 여문 느

낌을 주기도 한다여기에는 갓 대학생이 되었던 윤동주의 신분 변화의 문제가 한 몫 하겠다소년에서 청년으

로 거듭나던 시기였던 까닭이다또한 그는 과거 동시창작에 매진했었고사실상 이 시편이 성인으로서의 현대

시 시작(詩作)의 출발점이었다이 사실들은 이 시편에 붙여진 소년시라는 명칭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 시편을 시작으로 시인 윤동주는 十字架自像畵」 등 자기 성찰과 반성의 극점을 수놓은 시편들을

탈고하게 된다그를 두고 정지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초판본)의 서문에서 또 다시 다른 길로 구연

(舊然매진(邁進)할 것이라 했듯이 말이다.

 

 

곽예근  한양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병원 뒤뜰에 누워젊은 여자가 흰

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한나절이 기울도

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나비 한 마리도 없다

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그러나 나

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이 지나친 피로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

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1940.12.

 

 

 

   <나와 타자의 이중주>

 

   윤동주 시인의 시세계 그리고 나와 타자의 이중주우선 한국근대문학사에서 윤동주는 시대적 요구에 따른

문학적 응전을 보여준 시인으로 위치 지어져 있다나아가 윤동주 시인의 시세계는 예언적 지성의 발현형식의

하나이며이는 인문 사회학적 정신과 궁극적으로 통하는 문학적 성과이다.

   우리는 문제작에 대해 정의할 때 ‘problem’ 또는 ‘question’이라는 단어를 호출하게 된다그의 시편들

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질문들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작이다나아가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반

드시 대면해야할 진실에 대해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야 그 규명의 중심 대상으로병원이라는 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이러한 의미에서의 타자성과 관련한 발견과 감응 그리고 환기의 과정을 시적으로 구현한다병원과 환

자는 곧 세계와 존재의 은유이며여자와 의사는 타자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우리에게 전달한다그렇기 때문

에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문제작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병원은 병들어 있는 줄도 모르는 기성세대로 이루어진 사회그러니까 진짜 환

자들로 가득한 공간이다병원은 세계와 유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기호체인 것이다우리에게는 젊은이의

병을 부정하는 늙은 의사가 아니라그 병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무지한 스승이 필요하다또한 젊은

여자는 미적 거리 유지를 통해나와 타자의 외밀성을 획득하는 대상이다이처럼 시인은 과거에도 오늘날에

도 타자들의 귀환을 간절히 요청하는 방식으로 시적 자의식을 구현한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윤동주의 현재성을 획득하고 그가 문학적으로 기원했고명령했던 

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사랑스런 추억)라는 문장에 응답해야 한다우리는 이제 해방을 원하

는 자가 목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시인에게 화답해야 할 것이다이는윤동주 문학이 선취한 미학적 타자성을

전유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문제이기도하다.

 

 

이은규  200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시집으로 『다정한 호칭』이 있다.

 

 

 

 

 

     

   돌아와 보는 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

  다불을 켜두는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그것은 낮의 연장

  (延長)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할텐데 밖을 가만이 내다 보

  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어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 옵니다.

 

 

    하로의 울분을 씻을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

  는 소리이제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1941. 6.

 

 

 

   어둠속에서 익어가는 이 시대의 청춘을 돌아보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시인 중 가장 먼저 윤동주를 알았다그만큼 윤동주는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이다우리

는 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부끄러움의 감정을 탁월한 서정성으로 아름답게 승화해냈던 시인 윤동주,

이름을 들으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한 장의 흑백 사진이 떠오른다학사모를 쓰고 한편으로는 앳된또 한편으로

는 의젓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이다.

   1945, 29세의 나이에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다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입교대학 문학부 영

문과에서 수학하며 사회와 현실에 대해 많은 고민을 거듭했던누구보다 성숙하고 정직한 청년이었다우리는

작품을 통해 청년 윤동주와 만난다그에게도 청춘의 시절이 있었다쏜살 같이 흐르는 세월처럼무의미하게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그는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어 있거라고 외쳤다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

긴다과연 청춘은 여전히 아름답고 눈부신가.

   돌이켜보자면윤동주의 청춘은 무채색에 가까웠다그 또한 한 여성을 사랑해본 일이 있었고함께 글을 쓰

는 동지들과 끈끈한 우정을 나눠본 일이 있었다그러나 세상은 그를 너무도 피로하게 만들었다암울한 현실

속에서 그는 청춘의 푸른 생기를 잃어버렸다일제의 탄압과 억압 속에서 하루를 끝마치고 좁은 방으로 돌아오

는 일그것만이 지독한 세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그러나 시대의 횡포에도 그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세상 너머에 있는 좁은 방에서 숨을 쉬고생각하고시를 썼다한줄기 빛조차 없는 어둠속에

서 홀로 침잠하는 일이것이 그가 시대와 투쟁하는 방법청춘을 살아내는 방법이었다고요한 방안에서 그의

세계는 천천히 익어갔다.

   이 시대 청년들의 모습은 어떠한가점점 획일화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 좁은 곳으로더 어두운 곳으로 숨으

려고만 하질 않는가.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르듯광활한 세상은 청년들의 병을 알지 못한다. ‘무얼 어

디다 잃었는지 몰라’ 너도나도 어린아이처럼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다이 시대 청년들에게 새로운 길은 과연

존재하는가.

   현대의 청년들은 찬란한 청춘의 색을 스스로 지워내고 있다청춘의 부스러기들은 짙은 어둠속에 잠겨 사소

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그들에게 청년 윤동주는 이야기하고 있다깜깜한 밤에도 열매가 익고꽃이 피듯 청

춘의 고뇌와 아픔이 곧 뜨거운 등불이 될 것을 말이다우리는 투쟁의 역사를 통해 이룩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

고 있다때로는 저항하고때로는 좌절하며 치열한 삶을 살다 간 한 시인의 모습 속에서방황하는 청춘들의

또 다른 모습을 이제는 찾을 때이다.

 

 

정애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한양대학교 박사과정 재학 중.

 

 

 

 

 

 

  太初(태초)의 아츰

 

 

  봄날 아츰도 아니고

  여름가을겨울,

  그런날 아츰도 아닌 아츰에

 

  빨간 꽃이 피어났네,

  햇빛이 푸른데,

 

  그 ()날 밤에

  그 ()날 밤에

  모든 것이 마련되었네,

 

  사랑은 뱀과 함께

  毒()은 어린 꽃과 함께

 

                                                                                             -1941

 

 

 

 

신앙의 출발점

 

이 시편은 명확한 창작 일자가 없다... 


=====================================


     돌아와 보는 밤
 
                      윤 동 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모든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 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1941년 6월
 
 
 
[어둠속에 저절로 익어가는 능금 같은 사상을]
 
 
 
   산문시 형태로 씌어진 이 작품은 세 개의 자연단락으로 《세상》과 《내 좁은 방》 그리고 《불을 끄는 것》과 《불을 켜두는 것》과의 대립구조를 구성하였고 이 대립구조 속에서 비록 피동적이고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속에 젖어 있》는 어두운 세상과 한번 맞서서 싸워보려고 시도하는 시인의 대결자세를 그리고 있다.
 
 
 
   첫 단락에서는 불을 끄는 것과 불을 켜 두는 것의 상반되는 변증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내가 《내 좁은 방에 돌아와》서 곧바로 취하는 행동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불을 끄》는 행동이다. 그것은 불이 켜져 있어 환한 상태는 《낮의 연장》이고 여기서 낮은 《내 좁은 방》 그 외부에 존재하는 《세상》이라는 곳과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는 곳이며 이 세상이라는 곳에는 《너무나 피로롭은 일》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서두에서 이렇게 이 피곤한 세상을 부정하려면 반드시 방안의 불부터 먼저 꺼야한다고 그 시적주인공이 진행하는 행동의 리유를 밝히고 있다.
 
 
 
   둘째 단락에서는 《창》을 매개체로 하여 방안과 방 밖을 련결지어 주고 있다. 이 단락에서는 하루 동안 닫혀있던 방안의 혼탁한 공기나(《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방밖의 어둡고 비에 젖은 세상이나 결국은 마찬가지로 하나 같이 어지러운 상태이기 때문에(《그대로 비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방안이나 방밖이나, 창을 열어보나 닫아보나 별 다를 것이 없는 동일한 상태임을 제시하면서 어디에 던져버릴 수도 없고 어떻게 지워버릴 수도 없는 하루 동안의 울분만이 가득 쌓여있는 시적 주인공이 처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진일보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시인은 다음의 세 번째 단락에서 이 《씻을 바 없는 울분》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어둡고 비에 젖은 이 세상과의 대결에서 싸우고 이겨나가는 방법은 바로 그와 상대되는 모든 것들과 대립되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정반대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그것은 즉 낮이 아닌 밤에, 《세상》이 아닌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고 어둠속에 몸을 숨기는 것이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 《가만히 눈을 감》아버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방에 돌아와 불을 끄고 눈도 감아버린 철저한 어둠의 상태 즉 절대암흑의 절대고독의 상태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가야만 비로소 그대는 자기 자신의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를 듣게 될 수 있을 것이고 비로소 현실을 부정하고 현실을 초월하는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절망의 시대일수록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하여 준다.
 
 
 
   시인이 세상에서 《돌아와 보는 밤》은 이렇게 《어둠이 짙어 갈수록 새벽이 가까워 온다.》는 부정의 부정으로써 새로운 긍정을 이루어내는 밤이며 어지럽고 어두운 세상과 맞서 싸우고 이겨나갈 힘을 키우는 깊고 캄캄한 밤이다. 그리고 이 시가 씌어진 시점이 우리민족사에서 가장 어둡고 처절하던 1941년 9월이었다는 것을 명기할 때 우리는 시인의 《능금처럼 익어》가는 사상에 저절로 옷깃이 여며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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