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의 피날레 장면. 수많은 군중 앞에서 한 야윈 노인이 피를 토하듯 절규한다. “전태일 열사여, 장준하 열사여, (중략), 박종철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1987년 7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장례식 도중에 나온 장면이다. 우리 민주화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결정적 순간이기도 하다. 이 노인이 바로 당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이던 문익환(1918~1994) 목사다. 1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전날 출옥한 참이었다.
그는 1970년대 후반~1990년대 민주화 및 통일 세력의 ‘대부’로 통했다. 1976년부터 1994년 1월 18일 타계할 때까지 생의 마지막 17년 중 11년 반을 감옥에서 보냈다. 만주 북간도 용정에서 윤동주(1917~1945), 장준하(1918~1975)와 함께 자란 그가 사회문제에 눈을 뜬 것은 50대 중반이 지나서였다. 1975년 8월 17일 친구 장준하가 의문사한 것이 계기다. 그는 뒤늦게 세상에 눈을 떴다는 의미로 자신의 호도 ‘늦봄’이라 지었다. 1987년 이후 통일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그는 1989년 3월 25일 마침내 ‘대형 사고’를 친다. 정부 승인 없이 평양을 전격 방문, 김일성 주석과 회담 함으로써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것이다.
문 목사는 귀국 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다시 투옥된다. 하지만 당시 그가 평양에서 발표한 ‘자주적 평화통일과 관련된 원칙적 문제 9개항’의 핵심 내용은 ‘판문점선언’을 비롯한 모든 남북합의문의 근간이 된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 3원칙에 기초해 통일문제 해결, 정치·군사 회담을 진전시켜 정치적·군사적 대결상태 해소, 다방면 교류·접촉 실현 등이 주요 내용이다.
어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의 논의 주제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마침 어제는 ‘늦봄’ 문익환이 탄생한 지 100주년되는 날이었다. 이를 기념해 3일 서울역에서는 ‘평양행 기차표를 다오’ 행사가 열린다. 시민들이 특별열차 편으로 도라산역까지 왕복하며 고인의 큰 뜻을 되새긴다고 한다. 그가 1989년 1월 1일 새벽에 쓴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의 한 구절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 치는 일이라고 /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 주장하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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