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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년 6월 7일 ~ )는 영국의 현대예술가로, 토막낸 동물의 시체를 유리상자 안에 넣어서 전시하는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을 주로 선보이고 있다.
영국 브리스틀 출생으로 리즈에서 성장하며 1986년 ~ 1989년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 졸업 후 골드스미스 대학 학생들과 함께 기획한 프리즈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91년 첫 전시회에서는 죽은 상어를 포름알데히드를 가득 채운 유리 진열장에 넣어 전시한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육체적 불가능성》을 선보여 논란을 일으켰는데 사치 갤러리를 소유한 광고 재벌 찰스 사치와 갤러리 화이트 큐브를 소유한 제이 조플링의 후원을 받아 미술 시장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2005년과 2008년에는 미술전문지 아트리뷰가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 영향력 있는 1위에 까지 오르기도 했고[1] 그의 나이 마흔 살에 1억 파운드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인물로 평가 받았다.[2]
1995년 런던 테이트 갤러리에서 터너 상을 수상했으며 베네치아 비엔날레, 로열 아카데미 등에서도 충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논란을 낳았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100》에는 윌렘 드 쿠닝의 그림이 두 점 나오는데 두 작품 모두 판 사람과 산 사람이 같다. 판 사람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영화 엔터테인먼트 사업가 데이비드 게펜이다. 바로 앞에 나온 폴록의 〈넘버 5〉를 판 바로 그 사람이다. 8000만 달러(839억 3000만 원)에 거래된 재스퍼 존스의 〈부정 출발〉과 6350만 달러(666억 2000만 원)에 거래된 드 쿠닝의 〈가제트 형사〉도 이 사람이 가지고 있다 판 것이니, 그가 얼마나 거물 컬렉터인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 그림을 산 사람은 뉴욕의 헤지펀드 억만장자인 스티븐 코언이다. 컬렉터로서 스티븐 코언은 데이비드 게펜보다 더 유명하다. 스티븐 코언이 초고가의 미술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무렵으로, 다른 유명 컬렉터들에 비해 그 기간이 짧다. 하지만 약 10년 동안 그림을 사는 데 10억 달러(1조 490억 원) 이상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4년에 1200만 달러(126억 원)를 주고 데이미언 허스트의 유명한 설치 작품 〈상어(원제는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를 사서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로 보도된 사람이 바로 스티븐 코언이다.
스티븐 코언은 ‘미술 시장’에 발을 늦게 디뎠지만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를 비롯해 세계적 갤러리들을 다니며 비싼 그림들을 싹쓸이했다. 그 덕분에 어떤 역사적 컬렉터 못지않게 훌륭한 컬렉션을 갖추게 되었다. 그가 한창 미술계의 주목을 받을 때 〈뉴욕 타임스〉는 1면을 할애해 ‘갑자기 떠오른 거물 컬렉터 스티븐 코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고, 뉴욕 소더비는 그의 컬렉션만 모아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그는 2013년 기준 순 자산 93억 달러(9조 7570억 원)로 《포브스》가 집계한 세계 부자 순위 106위에 올라 있다.
이 두 사람의 그림 거래를 중개한 이는 래리 개고시언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 해 매출액이 11억 달러(1조 540억 원)이며 세계 최고 갤러리로 꼽히는 개고시언 갤러리의 설립자이자 대표다. 이렇게 사고파는 과정에 등장하는 인물들 이름만으로도 입이 벌어지는 그림들은 비싼 그림 순위에서 충분히 높은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 게다가 〈여인 3〉은 스티븐 코언과 데이비드 게펜이 소장하기 전인 1994년까지는 테헤란 미술관 소장품이었다. 그림을 누가 가지고 있다가 어떤 경로를 통해 내놓았는지를 알 수 있는 ‘소장 기록(Provenance)’은 그림을 사고팔 때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이 그림은 참으로 뛰어난 소장 기록을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거래에 얽힌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것은 이 그림의 작가가 대단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드 쿠닝은 폴록과 함께 추상 표현주의의 액션 페인팅 작가로 분류되지만, 그림에서 보다시피 스타일은 폴록과 완전히 달랐다. 사실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은 모두 뉴욕에서 활동했고 추상화를 했다는 공통점 때문에 ‘뉴욕 스쿨’이라 불리지만, 작품 스타일은 천차만별이었다. 특히 드 쿠닝은 다른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과 달리 종종 이 그림처럼 구상화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1950년부터 1955년까지 여인을 소재로 그렸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이 그림처럼 우악스러운 초상화인 ‘여인’ 시리즈 대작으로 모두 여섯 점이 있다.
이 그림에서는 화가 자신이 여자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드 쿠닝의 아내 엘레인도 추상 표현주의 화가였는데 이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결혼 생활 대부분을 별거 상태로 살았으니 사실상 남남이나 다를 바 없었다. 드 쿠닝은 “여자는 가끔 짜증 난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을 나타내기라도 하듯 이 그림에서 눈, 코, 입은 지나치게 크고, 이를 드러내고 웃는 표정은 괴기스럽다. 지나치게 큰 가슴을 드러낸 것도 보기 편하지 않고, 몸매는 일반적인 여성 모델에서 볼 수 있는 형태가 아니다. 한마디로 왜곡되고 비뚤어진 여인 초상이다.
그런데 단순히 드 쿠닝이 개인적으로 여성을 혐오했기 때문에 이렇게 뚱뚱하고 못생기고 무섭기까지 한 여인상을 그린 것은 아니다. 1950년대 미국은 소비가 팽창하고 각종 광고에서 여성의 상업적 이미지가 넘쳐 나던 때다. 여성은 언제나 상냥하고 예쁘고 섹시하게 그려졌다. 여성의 이런 이미지가 당연히 받아들여지던 시절에 드 쿠닝은 “이건 어때?”라며 이와 같은 그림을 내민 것이다. 즉 이 그림에는 드 쿠닝의 개인사 및 당시 사회 분위기와 얽힌 많은 감정이 들어 있다. 폴록의 드립 페인팅에서처럼 이 그림에서도 전후의 불안과 긴장감, 공포와 희열이 섞인 다이내믹한 시대 상황이 느껴진다.
드 쿠닝은 다른 추상 표현주의 작가들과 달리 여인 초상을 즐겨 그렸다. 뉴욕에 있는 화가들 모두가 구상화를 집어던지고 완전한 추상화만 그리던 1950년대에 ‘뉴욕 스쿨’의 핵심 멤버이던 드 쿠닝이 구상화, 게다가 닳고 닳은 소재인 여인 초상화로 다시 돌아간 것은 용감한 시도였다. 하지만 그의 여인 초상화는 결코 과거의 그림이 아니었다. 오히려 섹시하고 전형적인 과거의 여성 초상화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혁명적인 그림이었다. 시대를 잘 반영하면서도 작가의 개인사와 내면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는 그림이라 드 쿠닝의 ‘여인’시리즈는 아주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그 ‘여인’ 시리즈 여섯 점 중 다섯 점은 미술관에 있고 이 작품만 유일하게 개인 컬렉터 손에 있었다. 그래서 이 그림이 1억 3750만 달러(1442억 6000만 원)라는 엄청난 가격에 팔릴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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