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월 2025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다리를 천천히 건너는 사람과 다리를 발빨리 건너는 사람
2018년 03월 20일 00시 09분  조회:2370  추천:0  작성자: 죽림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

                                                 김사인

 

  하느님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 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다리를 건너는 한 사람이 보이네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가다가 쉬며 또 그러네


  얼마 후 또 한 사람이 다리를 건너네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 있네


  다리를 빨리 지나가는 사람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네


  라는 시인데
  (좋은 시는 얼마든지 있다고요?)
  안 되겠다면 도리 없지요
  그렇지만 하느님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


  내 너무 별을 쳐다보아
  별들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내 너무 하늘을 쳐다보아
  하늘은 더럽혀지지 않았을까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입니다

 

 

* 이성선(李聖善) 시인(1941~2001. 5)의
「다리」 전문과
「별을 보며」 첫부분을 빌리다.

 

Keehwan Kim(F) 제공
Keehwan Kim(F) 제공

위의 시의 두 시인은 참 착한 사람입니다. 기억건대, ‘자기 생각이 늘 옳다고 믿는 사람은 정치가나 투사가 되고 자기는 늘 잘못됐다고 여기는 사람은 예술가나 종교인이 된다. 옳다는 신념 없이 싸울 수 없고 잘못했다는 원죄 의식 없이 느낄 수 없다’는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 선생의 유고 일기 『행복한 책읽기』의 한 대목이 먼저 떠오릅니다. 시인의 ‘덕목’은 우선 ‘善’(착함)이 아닐까 합니다. 시인으로서의 착함은 무얼까요. 자기 바깥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아닐까요. 마치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액자소설’같이 쓰인 이 시 속의 두 편의 시가 바로 그런 ‘미안한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요.


그중 먼저 「다리」를 읽어보면, 다리를 건너는 상반된 두 사람을 통해 시인의 착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앞사람은 “가다가 서서 잠시 먼 산을 보고 / 가다가 쉬며” 천천히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고 뒷사람은 같은 다리를 “빠른 걸음으로 지나”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이 시의 이성선 시인에 따르면, 그 후자는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이를 탓하는 게 아니라(바삐 건너가야 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요), ‘다리의 입장’에서는 그렇다는 겁니다. 생명도 없는 사물(다리)에게도 정을 주는 ‘착한 마음’이 이 시를 낳았습니다.


시 속의 두 번째 시 「별을 보며」(앞부분)에서는 사물에 대한 이성선 시인의 ‘착한 마음’이 ‘미안한 마음’으로까지 전이됩니다. 별과 하늘을 자주 바라보아 그 별과 하늘이 시인의 잦은 시선에 때 묻어 “더럽혀지지 않을까” 걱정하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착한 마음’에서 비롯된 감성 하나만으로도 시 한 편을 지을 수 있나봅니다. 그러니 ‘마음의 하얀 안경’이라고 다르게 명명할 수 있는 ‘善’(착함)이 앞서 시인의 우선적 덕목이라고 했듯이 그 말은 논리적으로 거짓 명제는 아닐 듯합니다.


서두에서, 이 시의 김사인 시인도 참 착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김사인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이름의 한자 그대로 ‘착한’ 이성선(李聖善) 시인을 조명합니다. 그러고는 고인이 된 시인의 명복을 빌 듯, 그의 “시를 외롭게는 말아주세요, 모쪼록”이라며 “하느님”께 기원합니다. “덜덜 떨며 이 세상 버린 영혼”을 안쓰러워하는 김사인 시인의 다스한 마음이 그렇습니다.


동시에 그 다스한 마음은 쓸쓸한 마음입니다. 시인이 ‘자발적으로’ 떠나버린 이 세상은 이제 그가 없기에, 적막하기 그지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사인 시인은 이 시의 제목을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라고 붙였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이 시의 제목을 대하면, 마치 ‘시인이여, 왜 그리 이 세상의 다리를 서둘러 건너버리셨소’라고 애처롭게 말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작고한 시인의 시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지나서 어느새 자취도 없고 / 그가 지나고 난 다리만 혼자 허전하게 남아 있네”라고 읊조리는 듯합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130 윤동주가 가장자리에서 정중앙자리에 서다... 2018-07-08 0 2471
1129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쉽게 씌여진 시 2018-07-08 0 5697
1128 윤동주 시 리해돕기와 "관부련락선" 2018-07-08 0 4047
1127 인생이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정말 아니다... 2018-07-07 0 2393
1126 호박아 호박아 너는 뚱뚱보 엄마다... 2018-07-07 0 2765
1125 윤동주와 영화 "동주"에 등장하는 윤동주 시 15편 2018-07-06 0 2657
1124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흰 그림자 2018-07-06 0 3496
1123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참회록 2018-07-06 0 5909
1122 윤동주 시 리해돕기와 시 "간"과 "토끼전" 2018-07-05 0 3683
1121 윤동주 시 리해돕기와 시 "간"과 "코카사쓰", "프로메테우스" 2018-07-05 0 4247
1120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간(肝) 2018-07-05 0 4270
1119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별 헤는 밤 2018-07-05 0 4121
1118 윤동주와 우물틀 2018-07-04 0 2871
1117 해바라기 이야기는 고소하고 길다... 2018-07-04 0 2579
1116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또 다른 고향 2018-07-04 0 6783
1115 윤동주와 하숙집 터 2018-07-03 0 4719
111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지구는 하나!!! 2018-07-03 0 2443
1113 윤동주를 알린 일본 시인 - 이바라기 노리코 2018-07-02 0 2913
1112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돌아와 보는 밤 2018-07-02 0 3053
1111 [동네방네] - "詩碑문제"와 "是非문제" 2018-07-02 0 2497
1110 윤동주와 "백석시집" - "사슴" 2018-07-02 0 2544
1109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십자가 2018-07-02 0 5810
1108 "詩여 침을 뱉고 또 뱉어라"... 2018-07-01 0 4207
1107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비애 2018-07-01 0 4744
1106 이래저래 해도 뭐니뭐니 해도 그래도 학교 갈때가 제일이야... 2018-06-30 0 2326
1105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소낙비 2018-06-30 0 4126
1104 윤동주와 그의 룡정자택 2018-06-29 0 3787
1103 윤동주의 친구 장준하, 문익환 2018-06-29 0 2481
1102 윤동주의 친구 정병욱 2018-06-29 0 4141
1101 윤동주의 친구 강처중 2018-06-29 0 2950
1100 "빨랫줄을 보면 또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2018-06-29 0 2305
1099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한난계 2018-06-29 0 4114
1098 "밥상에서 시가 나와요"... 2018-06-28 0 2448
1097 시속에서 우주의 목소리가 펼쳐진다... 2018-06-25 0 2522
1096 시속에서 무한한 세상이 펼쳐진다... 2018-06-25 0 2493
1095 시속에서 사랑의 노래가 펼쳐진다... 2018-06-25 0 2543
1094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풍경 2018-06-16 0 4615
1093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산림 2018-06-16 0 3128
1092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산상 2018-06-16 0 3323
1091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황혼 2018-06-14 0 3332
‹처음  이전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