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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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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유] 후기구조주의 시각으로 詩 바라보기 댓글:  조회:1453  추천:0  2018-10-02
퍼온 자료임 후기구조주의 시각으로 詩 바라보기 - 문학이론 입문의 후기 구조주의       언어는 소쉬르의 생각처럼 닫힌 체계를 구성한다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모든 기호들은 다른 기호들과 구별되기 위해 흐르는 물처럼 시간에 따라 연속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공부하기로 한다. 소쉬르의 랑그는 한계 지어진 의미구조를 암시한다. 그렇다면 그 언어의 어느 곳에 경계선을 정할 것인가? 소쉬르의 논점을 보면 기호는 분리, 즉 분절[分節]의결과라는 것이다. 이것은 시니피앙 과 스스로 구별하기 때문이다. 시니피앙은 계속해서 시니피에로 변형되며 그 역(逆)도 마찬가지이다. 구조주의가 기호를 지시대상(referent)으로부터 분리되었다면 후기구조주의로 알려진 이런류의 사고방식은 더 나아가 시니피앙을 시니피에로 분리한다. 기존 구조주의는 '의미가 기호안에 직접적으로 현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의미는 쉽게 고정될 수 없으며 하나의 기호 안에서만 완전하게 현존하는 것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현존과 부제가 함께 끊임없이 명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목걸이의 구슬을 세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명멸과정을 추적하는 것에 가깝다는 말이다. 이것은 언어가 시간에 따라 문장은 유보되며 지체되거나 변해가는 과정이다. 하나의 시니피앙은 다른 시니피앙에 넘겨주고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전달된다. 읽어 내려간 텍스트는 앞서 올 텍스트에 영향을 주고 지난 텍스트는 앞서올 텍스트에 영향을 준다. 이렇게 개방적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 완전히 순수하거나 완전히 독립적인 기호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쓰는 소설이나 시에서 독자에게 말하려는 전달의미가 완전하게 드러날 수 없다는 말이다. 작자의 의미는 항상 분산 분리되며 처음의 의도와 다르게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의 허구가 상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 에 대해, 왜곡과 굴절이 없을 수 없다고 한다. 하물며, 내가 쓴 글에도 나의 의식과 생각이 동일하지 않을 수가 있는데 나 외에 다른 독자나 일반이 나의 글을 읽을 때 정확한 의미전달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냥 어렴풋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글쓰기는 2차적인 소통양식이며 삭막하고 기계적인 육성기록으로 나의 의식으로부터 한 단계 떨어진 이유로 플라톤에서 레비-스트로스에 이르러 서양철학의 전통은 생명력이 없고 소외된 표현방식이라고 비방하기 까지 했다. 그들이 육성에 많은 의견을 제시하였으나, 육성 또한 글쓰기의 한 형식일 수밖에 없다. 언어의 실제 과정 속에서 언어의 왕복운동, 좌우운동, 현전과 부제, 사이의 운동을 놓치고 있다. 후기구조주의가 "텍스트라는 말로 가리키는 것은 거미줄 같은 복잡성에 기인한다. 사람도 각기 자체의 정체성이 확립되려면 그에 비견되는 대상이 있을 것이다. 그것처럼 언어도 절대적으로 경계를 구분하고 확립하려하는 고전적 해체주의가 등장했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유의 사유방식임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허용 하는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자아와 비 자아, 참과 거짓 , 이성과 광기, 주변과 중심 표면과 심층사이에 확실하게 엄격한 경계를 좋아했다. 이렇듯 해체비평의 전술은 텍스트가 자신의 지배적인 논리체계를 어떻게 혼란시키게 되었는가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해체주의는 텍스트가 곤경에 처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자기모순을 일으키는 '징후적인' 특징들에 혹은 아포리아(aporia) 즉, 의미의 막다른 골목에 집착하므로 써 이를 잘 보여준다. 구조주의에서 후기구조주의에로 발전 모습은 1960년대에 들어와서 K.마르크스, M.하이데거, S.프로이트 등의 견해에 대립하여 프랑스에서 새로이 형성된 사상적 조류이다. 그러나 실존주의나 마르크스주의와 같이 명확한 형태를 갖춘 사상적 경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인류학자, 사회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철학자 M.푸코, 리시안 세바크, L.알튀세르, 정신분석학자 J.라캉 등이 구조주의를 주창한 주요 멤버이다. 그중에서 1960년대 발표한 "이야기의 구조적 분석 입문"이란 중요한 시론은 야콥슨과 레비스트로스의 방식을 따르며 이야기 구조를 별개의 단위, 기능, 지표(인물의 심리 분위기, 등등...을 지시하는 것)들로 나뉜다. 이야기는 시간에 다라 전개되지만 비평가들은 비시간적인 설명틀속으로 흡수시킨다. 바르트에 있어서 '건강한 기호는 자신의 자의성에 기를 기울이는 것' 즉, 자신을 자연적인 것으로 속이려하지 않고 의미를 전달하는 바로 그 순간에도 자신의 상대적이고 인위적인 위치같은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바스트의 '이중적' 기호--의미를 전달하는 동시에 자신의 고유한 물질적 존재를 몸짓으로 나타내는 기호--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과 체코 구조주의자들의 '낯설게 된'언어의 그리고 명료한 언어적 존재를 과시하는 야콥슨의 연결자이다. 낯설게 하기는 쉬클로프스키와 야콥슨의 좀 더 명확하게 이어졌다. "비평선집'에서 바르트는 "가능한 한 완전하게 자신의 언어로써 텍스트를 감싸는 것" 이 비평이라고 말했다. 또한 에서 비평담론은 "작품의 1차언어 위를 떠도는 2차언어'라고 했다. 후기구조주의적인 용어로 문학 언어 자체를 규정한다. 문학 언어는 '밑창 없는" 언어이며 "텅 빈 의미"에 지탱하는 '순수한 애매모호함'같은 것이다. 후기구조주의자들이 글이나 텍스트성을 논할 때 바르트 자신이 말했듯이 후기구조주의로의 이전은 작품에서 텍스트로의 움직임이다 그것은 시나 소설의 명확한 의미를 갖춘 닫힌 실제물(entity)로 보고 그 의미를 판독하는 것이 비평가의 임무라고 했다. 이렇듯 텍스트는 구조라기보다는 '끝없는 구조화 과정'이라고 바르트는 주장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미래파 구조주의자들이 단어를 낯설게 하고 새롭게 하는것, 소외된 언어에게 그것이 빼앗긴 풍성함을 부여하는 것에 몰두했던 것은 러시아정치적인 문제와 직결되어있다. 그 시대엔 괄호 안에 넣고 지시대상을 유보하고 내향적으로 빠져들어 갔다. 하지만 그것은 쓸모없는 존재라고 사회적 죄의식에 의해 고통 받거나 그늘져있었다 우리나라의 일제 강정기때 윤동주가 그 대표적인 한 흐름이다 생각할 수 있겠다. 그의 시에 나오는 참회록이나 자화상에서 이미, 후기 구조주의의 한 일면이 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사회적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윤동주시인은 그렇다고 볼 수 없지만,)침묵의 순수함을 향해 글쓰기의 영도를 추구했지만, 또 다른 문학 양식일 뿐이었다. 폴드망의 비평은 본질 자체를 정의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언어는 비유와 문체에 의해 움직이는 철저히 은유적이다 라고 했다. 어떤 언어라도 정말로(literally)글자 그대로의 것을 믿는 것은 큰 실수라고 했다. 철학이나 법 또한 시처럼 은유에 의해 움직이고 똑같이 허구이라고 했다. 은유는 본디, 근거 없는 것이고 일련의 기호들을 다른 기호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은 이런 한 애매모호함의 가장 극명한 영역인데 그 안에서 독자는 글자 그대로 의 의미와 문체적 의미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독자는 텍스트에 의해 끝없이 심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예일 학파의 비평가들이 말하는 텍스트의 애매함은 문학비평에서의 아이러니하고 거북스런 일이 되며 의미의 환상성, 진리의 불가능함, 모든 담화의 기만적 관계등을 낱낱이 밝혀주는 텍스트의 내적 공간으로의 불안한 모험이 된다- 라고 했다. 뉴크리티시즘에서는 문학은 모든 지시행위의 몰락이며 의사소통의 공동묘지이다그리곤, 결정 불가능한 가물거리는 거미줄로 보았다. 후기 구조주의에서 특이할 만한 사항은 쾌락주의 또는 무책임한 무정부주의 등, 후기 구조주의에서 빈번하였으나, 다원성 구별 성적분리 등 급진적 페미니즘형태들도 있었다. 하지만 21세기를 지나가면서 언어와 텍스트에 대하여 가학적이며, 획기적인 새로운 흐름이 일어날 것이라 여겨진다. 첨단 산업화의 발전으로 통신의 발달과 심화되는 개개인의 단절, 그리고 환경의 피폐함이 텍스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자목 궁금하다. 그것은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기도 하다.    
1    [공유] 문학비평의 방법 댓글:  조회:1841  추천:0  2018-10-02
퍼온 자료임    문학비평의 방법  (from 이상섭 저, 『문학연구의 방법』)   * 역사주의 비평의 방법  한 작품을 역사적 사건으로 취급하는 데에서 문학 연구의 역사적 방법은 시작된다. 모든 작품은 확실히 반복될 수 없는 독특한 역사적 사건이다. 이른바 역사적 일회성을 지닌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사람에 의해서 사람에 관하여 사람을 위하여 의지적으로 조성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를 논하면서 비극과 희극의 기원을 전통적 관습에다 둔 것은 문학의 역사적 접근을 최초로 시도한 예가 될 것이다. 문학의 기원, 특히 한 장르의 발생, 변천에 대한 관심은 역사주의 비평가의 최대 관심사에 속한다. 근대적 역사주의 비평은 19세기에 확정되었다. 쌩뜨 뵈브와 이뿔릿 테느는 역사적 방법의 이론적 체계와 실제응용을 눈부시게 보여준 선구자들이다. * 형식주의 비평의 방법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문학 비평은 결국 전체와 부분의 특수한 조직적 관계를 문학에서 찾는 다는 것이다.  이 전체는 그것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과 필연적 관계를 맺지 않고 있는 독자적인 것으로 보아야 비로소 으미있는 전체가 된다. 전체라는 개념은 그 구성 부분들의 존재를 인정하는데서 성립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후예인 형식주의자들은 부분들의 독특한 조직으로서의 단일한 전체적 형상을 문학연구의 가장 중심적 대상으로 보고, 그 형상의 근원, 생성과정, 호용 등은 제이차적 내지 비문학적 주제가 된다고 믿는다. 전체를 구성한 부분들을 세밀히 알고자함에서 형식주의 비평가는 자연히 분석적이 된다. 작품이라는 전체는 대단히 복잡한 조직체임을 믿는 가닭에 분석은 매우 다기하며 무궁무진할 수 있다. 분석과 더불어 유사한 부분들의 비교와 대조 역시 무한한 문제를 낳는다. 형식주의가 분석적임은 타고난 운명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코울리지의 넓은 의미의 형식주의 문학관은 현대에 이르러 리쳐즈, 엘리어트, 파운드 등의 이론과 실제비평에서 계승되었고, 그 후 주로 미국에서 뉴크리티시즘의 급진적 형식주의를 낳았다.  빅토르 쉬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개념은 텍스트를 여러 가지 기교의 집합으로 간주하는 형식주의 비평의 선언이다. 미국에서 활발하게 일었던 신비평의 뿌리는 러시아 형식주의이고, 엘리어트(T.S. Eliot)와 브룩스(Cleanth Brooks) 등이 주도적 인물이었으며, 전세계의 문학비평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전에는 비평가들은 작품 속의 구성, 언어, 상징 등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형식주의 비평은 서정시를 분석하여 성공을 거두었으나 서사적 쟝르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 사회.윤리주의 비평의 방법    문학은 개인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이라는 정의 못지 않게 문학은 사회의 표현이라는 정의 역시 우리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이 정의는 드 보날드의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이쁠릿 테느 이래 널리 보급되어온 생각이다. 테느는 역사주의 비평가였으나, 사회.윤리적 비평의 형성에도 크게 기여하였던 것이다. 이사실은 역사주의 비평과 사회.윤리적 비평 사이의 거리가 가까움을 잘 시사한다.  문학을 독립된 완성품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으로 보는 점, 문학을 시대상이라는 콘텟스트 속에 놓고 보지 않으면 무의미하다고 보는 점에서 역사주의와 사회.윤리주의의 관점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윤리적 비평은 역사주의 비평에서 그렇게도 중요시하고 있는 소위 문학의 근원적 요소들, 즉 작품의 제작 연대, 작가의 전기, 언어의 변천, 전달의 방식 등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안가진다. 그밖에 문학의 장르, 관습, 전통에 대해서도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문학의 사회적 역할, 현실 생활과의 관계야말로 사회.윤리비평의 주관심사이다. 제일차적으로는 문학과 사회, 정치, 경제 등과의 관계에 유의하지만, 윤리, 문화와의 관계를 또한 빼놓지 않고 유의한다.  문학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킬만한 중요한 사상적인 힘을 갖고 있어야 좋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는 관점이다. '그동안 철학자들은 세계를 해석하려고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한 마르크스의 논리가 적용된 것이다. 사회 비평은 이념적이며 상호적이다. 사회비평의 주도적인 비평가는 루카치(George Lukac)이다.   * 심리주의비평    우리가 문학을 논의할 때 자주 사용하는 문학정신, 문학적 감동, 시상, 영감, 정서, 성격, 동기 등의 용ㅇ어는 모두 사람의 심리적 상태를 표현한다는 점에 있어 공통성을 갖고 있다. 이들을 다시 세분할 때, 문학정신 시상, 영감 등은 문학을 창작할 때의 상태이고, 정서, 감동 등은 그것을 받아들일 때의 상태이며, 성격, 동기 등은 문학작품 내부의 요소라 할 수 있다. 문학의 연구에서 작가의 창작, 독자의 수용, 작품으ㅢ 내용을 인간 심성의 면에서 고찰하는 일은 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제가 되어왔다. 심리학을 문학연구에 응용하는 일은 비평의 여러 부요 유파에서 행하여지고 있다. 역사주의 비평에서는 특히 작가 연구에 크게 이용하고 있고, 작품을 작가의 전기를 구성키위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특히 정신분석학에서 빌어오고 있다.   * 신화비평의 방법  현대 형식주의 비평의 방법에 못지 않게 야심만만한 것은 소위 신화비평의 방법이다. 문학연구의 여러 방법을 다 포함하면서도 문학을 단일한 근원으로 환원시키는 일을 해내겠다고 나선 것이 신화비평인 것이다. 신화비평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케임브리지 대학을 중심으로한 인류학파의 괄목할 만한 연구성과에서 자극받아 일어났다. 대표적 인물은 의 저자로 유명한 제임스 프레이저였다. 프레이저는 세계 각처의 신화, 설화, 전설들을 집대성하여 신화가 단지 허망된 이야기라는 통념을 뒤엎고, 신화를 구성하는 힘이 동서고금의 인간의 공통된 기능이라는 생각과 초개인적 사회와 우주와의 의미있는 대화를 위한 형식적 행위, 즉 제식이 말의 형태를 취한 것이 곧 신화라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발견은 세계의 주요 신화들이 단순히 우연이라고 보아넘길 수 없을 만큼 공통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프레이저 일파의 인류학 이외에, 프로이드의 심리학, 특히 에서보여준 민속신앙의 기원에 관한 그의 연구도 현대 신화학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역시 융의 분석심리학, 특히 그의 archetypal unconscious의 이론은 여타 신화학자들의 이론을 크게 보완하고 뒷받침하였다. 한편 독일의 철학자인 에른스트 카씨러(Cassirer)는 사람의 언어생활의 상징성에 최대 절대의 중요성을 부여하고 그 상징성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사람의 신화 창조의 능력을 강조하였다. 즉 외부 세계를 인식함에 있어 언어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은 신화를 창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노스롭 프라이는 신화비평이 진정한 비평일 뿐아니라, 문학비평을 하나의 지식의 체계, 즉 인문과학으로 승격시켜 놓았다고 주장한다.   * 구조주의 비평의 방법 (from Selden, Raman. Contemporary Literary Theory)  문학에 대한 구조주의적 접근은 일반 독자들의 평소의 신념을 흔들어 놓았다. 통념상 문학작품은 작가의 창작 생활의 산물이며 작가의 근본적인 자아의 표현이다. 또한 텍스트는 독자가 그 속에 들어가서 작가의 사상 및 감정과 정신적 또는 인간적으로 교감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구조주의자들은 작가는 "죽었으며" 문학적 언술에는 진실이라는 기능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롤랑 바르트는 구조주의적 입장을 천명하면서 작가들이란 이미 씌어진 문장들을 뒤섞어 재결합하거나 재배치시키는 능력밖에 없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했다.  구조주의는 근본적으로 소쉬르의 언어학적 배경에서 출발한다. 소쉬르는 '랑그 langue'와 '파롤 parole'  즉 실제 언어 이전에 존재하는 언어체계와 개인의 발화를 구별한다. 랑그는 언어의 사회적 양상으로 우리가 화자로서 이끌어내는 공유 체계이며 파롤은 실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체계를 개인적으로 구체화시키는 현상이다. 언어학 연구의 주된 목적은 개인의 발화가 아니라 인간의 어떤 특정한 표현 행위의 근간을 이루는 체계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어떤 특정한 시나 신화나 경제행위를 분석할 때 어떤 규칙 체계가 사용되고 있는가를 발견하고자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쉬르는 언어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의 구별을 통해 의미를 획득하는 것으로 본다. 즉, 신호등의 빨강색은 '초록색이 아님'이고 '정지'라는 의미를 가진다. 모든 기호는 이렇듯 기의(정지)와 기표(빨강)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철두철미하게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구조주의는 인간이 이룩해놓은 다양한 체계를 최소단위의 분석을 통해 설명해 내고자 한다.  바르트는 인간의 제반행위 이면에는 상이한 요소가 서로 관계를 이루고 있는 기존의 체계가 있다는 전제를 사실상 인간의 모든 사회적 관습에 적용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제관습을 언어의 모델 위에서 작동하는 기호 체계로 해석한다.  구조주의는 예민한 문학의 영역 속에 활력과 객관성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문학비평가들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파롤을 랑그에 종속시킴으로써 구조주의자들은 실제 텍스트들의 특수성을 무시한채 마치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금속 줄밥의 패턴인 양 다룬다. 그들은 실제 연구의 대상-체계-을 따로 분리해 내기 위해 실제 작품과 작가를 괄호로 묶어 버리기 때문에 텍스트는 물론 작가도 없어지는 것이다.  구조주의 주창자들은 일정한 관계 세트가 특정 행위의 기저에 존재하고 있으며 자연의 모양이 지하의 지층구조에 의해 형성되듯 개인의 행동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구조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해체의 과정은 구조주의의 바로 한가운데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이 소위 후기 구조주의의 중심이론인 것이다.   [출처] [공유] 문학비평의 방법 |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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