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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20> / 심 상 운
2019년 07월 12일 21시 35분  조회:1101  추천:0  작성자: 강려
*월간 <시문학> 2007 1월호 발표 <손해일/최두석/백무산의 시>  
                            
손해일 시인의 시-「꿈꾸는 돌」「바람개비」
 
돌밭에 서서
나도 하나의 이름없는 돌이 된다
 
세상에 
흔하디흔한 게 돌이지만
돌다운 돌도 드물고
흔하디흔한 게 사람이지만
사람다운 사람 또 귀하다
 
알게 모르게
속세의 이끼도 조금씩 묻고
물살에 부대껴
모래알처럼 작아지는 정충精虫
살아 있는 날들의
이 헛헛한 목마름
 
네가 내게로 와서 명석名石이 되었듯이
나는 네게로 가서 이름없는 돌이 된다
먹돌의 진한 그리움으로
시조始祖새처럼 비상飛上을 꿈꾸며
-----「꿈꾸는 돌」전문
 
*바람독에 서서
강강한 바람을 맞는다.
 
속소리나무숲 칙칙한 어둠을 따라
눈발속에 날아간 당홍연唐紅鳶
속절없는 바람을 맞는다.
 
마파람, 높새바람, 하늬하늬 하늬바람,
우리가 사는데 이유가 없듯이
무시로 변신變身하는 너의 변덕과
영원永遠까지를 사랑하려 한다.
 
너 없이 내가 바람개비일 수 없지만
너를 거스르지 않고는
돌지 못하는 나의 모순矛盾
 
전폭적인 내 사랑으로도
바람난 바람들은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고
꽃물 같은 상채기가 혓바늘로 돋는다.
머무르고 싶다. 바람개비.
역마살.
 
오오 누가 나에게
청청淸淸한 바람을 다오.
나도 한 줄기 힘찬 흐름이 되어
정녕 누군가의 바람개비를
돌리고 싶거니.
------「바람개비」전문
*바람독: 바람막이가 전혀 없는 곳. 전라도 방언
 
화창한 봄날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꽃밭을 날아다녔는데, 깨어보니 나비가 아니고 장자莊子 자신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내가 된 것일까.” 꿈과 현실이 헷갈렸다는 ‘장자莊子의 나비의 꿈’(호접몽·胡蝶夢)‘은 단순한 우화에 그치지 않고 문학적인 상상력의 측면에서 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 세상의 진리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세상에 고정불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무상無常이라고 한다. 따라서 무상無常은 무엇으로 변신하고 싶은 인간의 꿈을 담고 있다. 여기에 무상과 허무의 차이가 있다. 허무는 현재에 집착하는 마음이 만들어 내는 인간의 심리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손해일의 시편들 속에는 무상의 꿈이 들어 있다.「꿈꾸는 돌」에는 돌밭에서 시인 자신이 하나의 이름 없는 돌이 되어서 사는 꿈을 꾼다. 그리고 이름 없는 돌을 명석名石으로 만들기도 한다. 나와 돌의 이런 자리바꿈은 시인의 마음이 자연과 일체가 되어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정신적인 자세를 보여준다. 그래서 <네가 내게로 와서 명석名石이 되었듯이/나는 네게로 가서 이름 없는 돌이 된다/먹돌의 진한 그리움으로/시조始祖새처럼 비상飛上을 꿈꾸며>라는 끝 구절은 깊은 의미로 다가 온다. 존재의 본원本源에 대한 이런 그리움은 그의 형이상학적인 정신의 영역을 드러낸다. 따라서 ‘시조始祖새처럼 비상飛上을 꿈꾸는’ 시인의 정신은 어떤 고정관념에 묶이기를 거부하는 장자莊子의 자유로운 정신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된다.「바람개비」에도 시인의 꿈이 들어 있다. 그 꿈은 자연이 아닌 세속 속에서의 꿈이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서로서로 관계 맺기를 하며 살아가는 사회적인 존재다. 그래서 인간人間이라는 단어 속에 ‘사람이 사는 세상’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바람 속에 서서 무시로 변하는 것들과 영원한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변하는 것들과 영원한 것들을 모두 사랑하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너와 나의 관계를 바람과 나의 관계로 환원하여 바람과 부딪쳐야만 돌아가는 바람개비 같은 나의 운명을 모순矛盾이라고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모순 속에서 모순을 사랑하며 살아가야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그는 그 깨달음을 <오오 누가 나에게/청청淸淸한 바람을 다오./나도 한 줄기 힘찬 흐름이 되어/정녕 누군가의 바람개비를/돌리고 싶거니.>라고 오도송悟道頌같이 노래하고 있다. 바람으로 변신하여 누군가의 바람개비를 돌리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상상의 세계를 열어 준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의미는 물론 그 존재들의 관계를 상승시킨다. 그것은 나와 너라는 분별 의식에서 벗어날 때 이 세상은 무한이 넓어지고 따뜻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손해일 시인의 초기 시편들 읽으며 그가 추구하는 정신세계의 근원을 잠시 엿보았다. 그리고 그가 추구하는 세계의 아름다움에 촉촉이 젖어보았다.
*손해일(孫海鎰): 1978년 <시문학>에 「벌거숭이 노래」「빛의 탄주」가 추천되어 등단.
                시집「흐르면서 머물면서」「왕인의 달」등
 
최두석 시인의 시 -「심봉사」「성에꽃」
 
해방 조국에 돌아온 일가족이
굶어 죽은 꼴 볼 수 없어
심처이가 외국 뱃놈과 거래하듯
몸을 판 여자가 있었다
 
그녀를 밀가루 포대로 산 남자는
흑인 로이 대위
남동생을 통역으로 취직까지 시킨
대위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다
 
대위가 귀국하던 날
그녀는 늙은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
떨어졌다
거울 뒷면 수은을 긁어 먹었다
그렇지만 아이는 떨어지지 않았다
 
검둥이 아이를 데리고
진해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동두천으로
그녀는 이른바 양색시였다
미군들은 미제 물건 뒷거래한 돈으로
그녀를 데리고 살았다
 
삼단 같은 머리채 성긴 백발로 변하고
이제 현역에서 은퇴했으되
한반도 미군 철수는 도무지
꿈도 꾸지 않는 할머니,
누가 그녀의 생애에 돌을 던지랴
이 땅의 심봉사인 사내들이여
       ---------「심봉사」전문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다니며보고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숨결이던가
일 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성에꽃」전문
 
 한 시대의 성실한 관찰자로서의 시인은 그 시대를 초월하는 존재가 된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석호리石壕吏>는 두보가 석호촌에 갔을 때 한 밤중 벼슬아치가 찾아와서 백성을 강제로 징발해 가는 이야기를 담담히 서술한 시로서 1천 5백여 년의 시간을 넘어 지금도 울림을 준다.1930년대 시인 백석白石의 시편들이 주는 감흥도 카메라로 동영상의 사진을 찍 는 듯한 그의 냉정하고 날카로운 현실관찰과 언어표현의 경제성에서 우러나온다. 그의 시 <여승女僧>은 압축된 서사 속에 한 여인의 서러운 일생이 부각되어 있다. 이때 시인은 대상을 객관적으로 응시하고 그려내는 것으로 만족한다. 시인이 그 속에 자신의 감정과 판단을 넣고 의식을 넣으면 오히려 사실의 생생한 전달에 방해가 되고 시의 힘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두석 시인의 시편들도 시대를 관찰하는 그의 눈이 발굴한 사실들의 생생한 이미지가 가슴에 박힌다. 그의 눈은 시대의 힘이 어떤 방식으로 개인의 삶을 짓밟으며 그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희생된 개인의 삶에 연민의 정을 보내는 시인의 따스한 숨결을 느끼게 한다.「심봉사」는 고대 소설 <심청전>의 패러디가 시적 효과를 주고 있지만 시인의 그런 의도적인 구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양공주로 살아가야 했던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 사실적 서사 속에 한 시대의 삶의 모습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검둥이 아이를 데리고/진해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동두천으로/그녀는 이른바 양색시였다/미군들은 미제 물건 뒷거래한 돈으로/그녀를 데리고 살았다>는 서사는 한 시대의 냉혹한 삶과 연결되었으며 그것은 민족 공동체의 삶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지적해야 할 것은 끝부분에서 시인이 시의 주제를 의식하여 주관적인 감정과 해석을 넣은 것이다. 그것은 리얼리스트로서의 냉정함을 잃은 것으로 판단되어 아쉬움을 남긴다.「성애꽃」은 「심봉사」와 같은 계열의 ‘이야기 시’는 아니지만 과학적인 관찰, 언어표현, 시인의 의식이 깊이 있게 느껴진다. 새벽버스 유리창에 피어나는 성에꽃은 간밤에 사람들이 남기고 간 입김과 숨결이 공동으로 모아져서 만든 결정체라는 진술은 과학적으로도 타당성을 가지면서 이 시에서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무심한 사실의 현상에 불과한 성에꽃은 이 시속에서 시각적인 아름다음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공동체의 꽃으로 상승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숨결이던가/일 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성에꽃 한 잎 지우고/이마를 대고 본다/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가 그것이다. 그 아름다운 성에꽃은 막막한 숨결들과 푸석한 얼굴들이 남긴 것이다. 그래서 그 꽃은 시대적 상징성을 내포하면서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에 대한 그리움의 꽃으로 재탄생한다. 이 시에는 1980년대의 아픔을 담으려는 시인의 의도가 들어 있지만 그것보다도 그 시대 서민들의 살아 있는 삶의 숨결이 전달되어서 거듭 읽혀진다.
*최두석(崔斗錫):1980년 <심상>의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대꽃」「성에꽃」「임진강」「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등
 
백무산 시인의 시- 「달」「침묵」
 
도시는 달을 끄고
불을 밝혀 낮을 연장시킨다
언제 달을 봤던가
달은 정전돼 있었다
 
산들이 웅성거리며 달을 밀어 올리고
나는 오랫동안 캄캄한 산길에 있었다
오래 어둠에 둘러싸여 있노라니
마음속 깊은 골짜기가 열리고
아래로 흐르는 물이 보이고
그 물결 위에 달빛이 어린다
 
언제부터 잃어버렸을까
나의 반 대지의 반 세계의 반
 
달이 해의 잔해라면
저 하늘의 밤 별들도
문틈애 밀려오는 햇살에 부서진
작은 먼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밤의 표상은 저리 둥글고
낮의 배후는 저리 영롱하다
해는 살갗을 비추나
달은 희디흰 뼈를 비춘다
 
돌아보느니, 우리는
세상의 반만 가지고 살고 싸웠느냐
---------「달」전문
 
나무를 보고 말을 건네지 마라
바람을 만나거든 말을 붙이지 마라
산을 만나거든 중얼거려서도 안된다
물을 만나더라도 입다물고 있으라
그들이 먼저 속삭여올 때까지
 
이름 없는 들꽃이 이름을 붙이지 마라
조용한 풀밭을 이름 불러 깨우지 마라
이름 모를 나비에게 이름 달지 마라
그들이 먼저 네 이름을 부를 때까지
 
인간은
입이 달린 앞으로 말하고 싸운다
말없는 등으로 기대고 나눈다
--------「침묵」전문
 
백무산은 1980년대의 대표적인 노동시인이다.「만국의 노동자여」계열의 시편들은 그의 언어가 얼마나 격렬하고 날카로우며 한 쪽에 치우쳐 있는가를 섬쩍지근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그의 인간에 대한 인식의 근본이 계급적이고 투쟁적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노동의 즐거움, 노동의 가치를 인식하기 전에 ‘노동’을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대립적인 계급의식의 눈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런 그의 시는 독자들의 감정을 자극하고 분노하게 할 수는 있지만 독자들에게 넓고 깊은 생각의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독자들은 시인의 의도와 선전에 의해서 흑 아니면 백, 어느 한 편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거기에는 회색의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시편에서「달」과「침묵」은 그의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고 있어서 놀라움을 준다.「달」이 ‘관념의 시’에서 벗어난 ‘체험의 시’라는 것은 사상의 감옥 속에 갇혀 있던 그의 시작詩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시의 중심소재인 달은 아무런 관념에도 오염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달이다. 시인은 그 무의미의 달을 보면서 비로소 생각의 중심점에 서게 된다. 그리고 이제까지 세상의 반만 가지고 싸웠다는 것을 자성하고 자신의 행위를 뒤돌아보게 된다. 이 시에도 도시의 불빛과 자연의 달, 해와 달에 대한 분별의식 등이 대립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은 없다. 그는 다만 <산들이 웅성거리며 달을 밀어 올리고/나는 오랫동안 캄캄한 산길에 있었다/오래 어둠에 둘러싸여 있노라니/마음속 깊은 골짜기가 열리고/아래로 흐르는 물이 보이고/그 물결 위에 달빛이 어린다>라고, 산 속의 어둠 속에서 그 어둠에 동화되어서 물아일체의 경지로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그의 사색은< 밤의 표상은 저리 둥글고/ 낮의 배후는 저리 영롱하다/해는 살갗을 비추나/달은 희디흰 뼈를 비춘다>라고 하면서 여성적인 낮의 배후 즉 밤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그의 시에서 자연을 발견하게 하고 인간의 증오와 투쟁만이 세상의 전부라는 생각을 고치게 하는 계기를 주는 것 같다.「침묵」은「달」보다 도 깊은 사색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자연을 자연 상태의 그대로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자연과의 대화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연의 언어를 통해서 자연과 대화를 나누고자 한다. 침묵은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이며 인간의 언어에 대한 반동反動이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만나는 새로운 공간이다. 그는 이 시에서 <나무를 보고 말을 건네지 마라/바람을 만나거든 말을 붙이지 마라/산을 만나거든 중얼거려서도 안 된다/물을 만나더라도 입 다물고 있으라/그들이 먼저 속삭여올 때까지>라는 명령조의 어투로 자신의 깨달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 단호한 어투에는 관념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그의 강한 의식이 들어 있다. 그 의식은 인간은 ‘인간의 관념’으로 자연을 인지하고 판단하려는 습관에 젖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먼저 자연에게 말을 할 때, 그 순간 자연은 인간의 관념에 오염되어 버려서 자연본래의 모습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과 대화를 할 때에는 ‘그들이 먼저 속삭여올 때까지’ 침묵 속에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그의 이런 생각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물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의「꽃」에는 얼마나 건방진 인간의 자만自慢이 들어 있는지 알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백무산의 시「달」과「침묵」은 노동의 세계(인간의 세계)에서 벗어나 우리들에게 잃어버린 세계를 일깨워주는 시로서 거듭 읽힌다.
*백무산(白無産): 1984년 <민중시>를 통해서 작품 활동.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인간의 시간」「길은 광야의 것이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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