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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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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심상운 시론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31>/심상운
2019년 07월 26일 18시 51분  조회:1309  추천:0  작성자: 강려
 월간 <시문학> 2007년 12월호 발표 <문정희/문태준 시인의 시>
 
문정희 시인의 시-<당신의 손에 빗자루가 있다면><겨울 유리창>
 
당신의 손에 빗자루가 있다면
다른 데는 말고
내 가슴으로 들어와
뜨락에 나뒹구는 부질없는 나뭇잎들
한쪽으로 쓱쓱 치워주세요
언듯 보면 아까워 보이지만
습관뿐인 저 거실의 꽃병
먼지만 앉히고 있는 의자를 치워주세요
그리고 가장 뜨거운 곳에 심장을 다시 놓아
처음처럼 쿵쿵 뛰게 해주세요
거꾸로 돌며 추억만을 되감는 미친 시계가
새 비둘기를 낳을 수 있도록
태엽의 먼지도 털어주세요
당신의 손에 빗자루가 있다면
다른 데는 말고
내 가슴에 들어와
깊고 쓸쓸하게 박힌 그의 뒷모습
쓸어내버리고
쿵쿵 뛰는 그이 심장을
나의 심장 위에 포개주세요
그의 사랑으로 눈부신 아이가 생기도록
내 안에 맑은 물길을 내주세요
당신의 손에 빗자루가 있다면
-------「당신의 손에 빗자루가 있다면」전문
 
새 햇살 투명한 시 한편 써보려고
처녀림을 찾아 헤매는 십칠층의 겨울 아침
한 청년이 푸른 유리를 들고 올라왔다
지난가을 금 간 유리를
추위가 오기 전에 갈기 위해서였다
새 유리를 갈아 끼우려면
우리는 먼저 창틀부터 허물어야 했다
갑각류 껍질처럼 마른 꿈을 부스러뜨리고
접착제로 봉할 수 없는 후미진 언어의 틈마다
더운 숨결을 훅훅 불어넣었다
고정관념이 서서히 허리띠를 풀었다
칼끝으로 민감하게 오므리는 입술을 열자
속살에서 연꽃이 발그레 피를 머금었다
하늘이 드디어 숨을 쉬기 시작했다
빛나는 상처에서 솟아나는 날카로운 무지개
오래 품은 비수처럼 빛을 발하는
시간이란 이토록 깨지기 쉬운 것일까
그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만져보고 싶다고
표현하는 순간
창가에 밧줄하나가 아찔하게 내걸리었다
청년이 거기 처형처럼 매달려 있었다
끝내 지상에 내려놓을 수 없는 나신을
납작하게 누르며
겨울 아침, 새 햇살로 빚은 시 한편이
나의 생을 환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겨울 유리창」전문
 
한 편의 시를 쓰는 일은 경건한 제의祭儀 같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먼저 자신의 내면을 말끔하게 비우는 일부터 한다. 그리고 습관(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일상에서 일탈하려는 자세를 갖춘다. 과거의 시간 속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먼지 쌓인 인연들에서 떠나기를 시도한다.「당신의 손에 빗자루가 있다면」은 그런 시인의 내면의식을 소박하고 단순한 기원祈願의 언어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당신의 손에 빗자루가 있다면/다른 데는 말고 내 가슴으로 들어와/뜨락에 나뒹구는 부질없는 나뭇잎들/한쪽으로 쓱쓱 치워주세요/언듯 보면 아까워 보이지만/습관뿐인 저 거실의 꽃병/먼지만 앉히고 있는 의자를 치워주세요>라고. 그러나 유사한 주제의식이지만「겨울 유리창」은 새로운 시적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시의 생생한 속살을 만지게 한다. 문정희 시인은 어느 겨울 날 십 칠층 아파트에서 새 햇살처럼 투명한 시를 쓰기 위해서 정신의 처녀림處女林을 찾아 헤맨다. 그때 한 청년이 푸른 유리를 들고 올라온다. 지난 가을 금 간 유리를 갈아 끼우기 위해서다. 그는 청년과 함께 먼저 창틀을 허문다. 이 창틀 허물기는 시인의 내면에 잠재한 갑각류의 껍질 같은 마른 꿈을 부스러뜨리는 일과 이미지가 겹친다. 이렇게 전개되는 ‘유리창 갈아 끼우기’는 이 시에서 중심사건으로 부각되면서 은유隱喩의 문을 연다. 새 유리를 갈아 끼우는 작업과 새로운 시를 쓰는 일은 은유의 세계에서는 두 개의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접착제로 봉할 수 없는 후미진 언어의 틈마다/더운 숨결을 훅훅 불어넣었다/고정관념이 서서히 허리띠를 풀었다/칼끝으로 민감하게 오므리는 입술을 열자/속살에서 연꽃이 발그레 피를 머금었다/하늘이 드디어 숨을 쉬기 시작했다/빛나는 상처에서 솟아나는 날카로운 무지개>라는 구절은 ‘유리창 갈아 끼우기’라는 사건을 바탕으로 함으로써 견실한 사실적 구도를 획득하게 된다. 그러나 시인의 상상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쉽게 풀 수 없는 문제를 던진다. 푸른 유리를 들고 올라온 청년이 처형당한 것처럼 밧줄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 그것이다. 이 장면은 복합적인 이미지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그 발단은 푸른 유리를 들고 올라온 청년의 이미지와 생생한 아름다움을 만져보고 싶은 시인의 심리적 이미지가 결국은 ‘깨지기 쉬운 시간’ 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시인이 순간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장면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오래 품은 비수처럼 빛을 발하는/시간이란 이토록 깨지기 쉬운 것일까/그 아름다움을 생생하게 만져보고 싶다고/표현하는 순간/창가에 밧줄하나가 아찔하게 내걸리었다/청년이 거기 처형처럼 매달려 있었다 >라고. 그래서 이 구절에서는 공연시적公演詩的인 특성이 발견된다. 처형처럼 밧줄에 매달려 있는 청년의 이미지는 극적인 요소(심리적 갈등)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이 시를 무대에서 공연한다면, 푸른 유리창을 들고 들어온 청년과 밧줄에 처형처럼 매달려있는 청년은 대조적인 이미지로 관객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이 시에 대한 해석을 다양하게 하는 요소가 될 것 같다. 그것은 또 현대의 서정시가 단순한 기원祈願의 어조나 영탄과 감상으로부터 과감히 탈출하여 극적인 영상의 이미지를 창출할 때, 단순구조에서 복합구조로, 주관에서 객관으로, 서정적 진술에서 주지적 이미지로, 평면에서 입체로 성공적인 변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例가 된다. 나는 문정희 시인의「겨울 유리창」을 거듭 읽으면서 푸른 유리를 든 청년의 이미지를 통해 그가 어떤 자세로 ‘현대시’를 쓰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그의 시는 그의 치열한 시정신이 뿜어내는 눈부신 광선光線이었다.
 
*문정희(文貞姬): 1968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꽃숨」「새떼」「혼자 무너지는 종소리」「찔레」「우리는 왜 흐르는가」등
 
문태준 시인의 시-<맨발> <가재미>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잠겨 있는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 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잃고서는 새가 부리를 가슴에 묻고 밤을 견디듯이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
아-, 하고 집이 울 때
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
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
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
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
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
---- <맨발> 전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족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의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 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가재미」전문
 
이웃에 대한 뜨거운 연민憐憫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서적 에너지가 된다. 그 에너지는 지적인 깨달음의 언어보다 강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현대시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들어 있는 서정시가 독자들과 가깝게 연결되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로 부각된다. 문태준 시인의 시에는 이런 연민의 정이 흥건하여 독자들의 마음을 축축하게 적셔준다. 그러나 그의 시는 일반적인 서정시의 영탄이나 주관적 감상에서 벗어나서 신선하고 독창적인 비유와 사실적인 정황情況의 세밀한 표현에 의해서 객관화되어 있다. 이 객관화는 그의 시를 공감하게 하고 견고한 시로 만들어 주는 원천이 된다. <맨발>에서 그는 움막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을 어물전의 개조개의 맨발 비유하고 또 그들의 맨발을 죽은 부처의 맨발로 비유하고 있다. 이렇게 이중의 비유를 통해서 그는 움막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과 부처를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게 한다. 사실 부처라는 존재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부처로 인식하는 ‘자비慈悲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의 비유는 타당성이 있고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비유가 된다. 따라서 <맨발을 가슴에 묻고 슬픔을 견디었으리라/아-, 하고 집이 울 때/부르튼 맨발로 양식을 탁발하러 거리로 나왔을 것이다/맨발로 하루 종일 길거리에 나섰다가/가난의 냄새가 벌벌벌벌 풍기는 움막 같은 집으로 돌아오면/아-, 하고 울던 것들이 배를 채워/저렇게 캄캄하게 울음도 멎었으리라>는 이 시의 끝 구절은 가난하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가장들을 떠올리게 하고,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실직 가장들의 눈물을 느끼게 하면서, 독자들에게 그들의 존재가 사회적 환경에서 자신의 삶과 어떤 끈으로 이어지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런 정황을 그는 가상현실의 이미지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여주고 있을 뿐, 독자들을 향해 어떤 주관적 언설도 늘어놓지 않는다. 그것이 이 시의 아름다움이다.「가재미」에서는 그의 객관적인 자세가 대상과 한 몸이 되는 동화同化의 자세로 바뀐다. 그리고 구체적인 사실성을 바탕으로 함으로써 추상적인 개연성에만 의존하는「맨발」보다 시적 공감을 더 진하게 한다. 그는 어느 날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가재미처럼 누워있는 그녀의 곁에 가재미가 되어 눕는다고 한다. 이런 그의 행위는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시적현실에서는 진실이다. 그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라고. 그런데 이 시에서 그녀와 그가 어떤 관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그녀는 한 평생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 온 농촌의 아낙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녀의 옆에 가재미처럼 누운 그는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의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라고 한다. 그는 왜 그녀와의 관계를 밝히지 않고 ‘그녀’라는 모호한 대명사로 표현했을까? 그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고모’나 ‘누이’라고 하는 것보다 그녀라고 하는 것이 시의 의미를 더 넓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녀라는 대명사는 친척이나 고향 사람들만이 아닌 흙냄새 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대상을 객관화시킨다. 그것은 부처가 모든 생명체를 평등하게 포용하는 것과 같다. 이 시의 끝부분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산소 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는 사람사이의 사랑과 그 사랑을 나누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산소호흡기로 들이 마신 물을 마른 그의 몸 위에 적셔주는 그녀의 행위는 과학적 사실과는 다르더라도 뜨거운 마음을 전하는 행위로서 감동을 준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가는 그녀의 넉넉한 삶을 생각하게 한다. 나는 문태준 시인의 참신한 비유와 사실성, 뜨거운 연민이 더 큰 시의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의 시를 거듭 읽는다.
 
*문태준: 1994년 <문예중앙> 신인상으로 등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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