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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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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타임 머신 - H. G. 웰즈 H. G. Wells 지음
2021년 03월 20일 16시 14분  조회:823  추천:0  작성자: 강려
타임 머신
THE TIME MACHINE
 
H. G. 웰즈 H. G. Wells 지음
 
 
H. G. 웰즈
1866년 영국 태생, 베르느와 더불어 세계 SF계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다.“투명 인간", "우주 전쟁 ", "달세계 최초의 사람"
 
편집 위원
아동문학가 이 원수 ․박 홍근/ 공학박사 최 인학
문학박사 양 옥룡/이학박사 김 희규
전교육감 김 성묵
 
 
 
책 머 리
 
여러분은 몇 년 전인 과거의 세계로 되돌아가서 어렸을 때의 자기를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몇 천 년 혹은 몇 만년 후의 미래의 세계로 앞질러 가서 그 변화된 세계를 구경하기도 하고, 우리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미래거나 과거거나 가보고 싶은 시대로 시간을 초월해서 마음대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신기한 일이 될까요?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어온 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타임 머신을 발명하여 80만 년 후의 세계에 가본 시간 여행가가 거기에서 겪은 일을 친구들에게 이야기 해 주는 형식으로 쓴 소설인데, SF 소설이라기보다 인류의 미래를 예언하는 이야기라고 절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러분도 이 타임 머신을 타고 미래의 세계로 시간 여행을 출발해 봅시다.
 
 
타임 머신
믿겨지지 않는 일················· 5
다리를 저는 시간 여행가············· 23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34
80만 2천 7백 1년의 세계············ 43
사라져 버린 타임 머신·············· 62
살며시 다가오는 몰록·············· 96
안전한 잠자리를 찾아서············· 107
성냥과 장뇌·················· 119
타오르는 불·················· 132
열린 스핑크스의 받침대············· 144
괴물 게의 해변················· 151
위너가 준 하얀 꽃··············· 162
끝맺음···················· 170
 
베디안
심야의 사고·················· 174
미소녀···················· 181
우주인···················· 188
 
작품 해설··················· 198
 
등장 인물
 
시간 여행가 :타임 머신을 발명해 80만년 후의 세계를 여행한다. 그 곳은 놀랍게도 인간이 퇴화되어 있었다. 아무 준비도 없이 여행을 떠난 것을 몹시 후회한다. 그 곳에서 위너라는 아가씨를 만나 현대로 데려 오려고 하였으나...... 그 후 또 시간 여행을 떠나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위너 : 강에서 수영하다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되었을 때 시간 여행가에게 구조 받게 된다. 그 후 시간 여행가를 진심으로 따르게 된다. 무슨 일이건 지속성 없는 미래인이면서도 끊임없이 시간 여행가에게 관심을 표시한다.
 
 
믿겨지지 않는 일
 
시간 여행가(우리들은 그를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는 우리들에게 엄청나게 어려운 문제를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의 회색 눈동자는 반짝거리고, 언제나 창백하기만 하던 그 얼굴에 생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난롯불은 벌겋게 달아 있었고 은으로 만든 백합꽃 모양의 촛대에서는 밝은 불빛이 유리 술잔의 거품을 환히 비쳐 주고 있었다. 우리가 앉은 의자는 그가 고안해서 만든 것으로, 그냥 앉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앉은 사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방안은 식사를 마친 뒤의 태평스러운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들 거북한 마음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안온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시간 여행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긴요한 점을 가리키면서 얘기를 꺼냈다. 우리들은 의자에 편히 앉은 채, 이 새로운 역설(우리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었다)을 힘들여 말하고 있는 그 진지한 태도와 풍부한 지식에 감탄하고 있었다.
"잘 들어주게. 이제부터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두세 가지 관념을 부정해 보일 테니 말일세. 예를 들면 기하학(도형의 성질 및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이라는 것, 즉 자네들이 학교에서 배운 기하라는 건 틀린 생각 위에 이루어진 것이란 말일세.“
"이건 굉장히 큰 문제부터 시작하는군.
하고 따지기 잘 하는 붉은 머리털의 필비가 말했다.
"어떤 일이든 나는 확실한 비유를 들지 않고 자네들에게 인정을 바라지는 않네. 내가 자네들에게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일은 자네들도 이제 곧 이해하게 될 테니까. 자네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수학상의 선, 즉 다시 말하면 굵기가 없는 선이라는 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걸세. 자네들도 그렇게 배웠겠지? 이와 함께 수학적 평면이란 것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아. 그런 것은 단지 추상으로 파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야."
"그렇지.“
심리학자가가 대꾸했다.
"그리고 가로, 세로, 높이 밖에 없는 육면체란 것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아."
"그 말에는 반대하겠네."
하고 필비가 입을 열었다.
"육면체는 존재할 수 있어. 그리고 실제로 있는 모든 물체는........"
"대개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그러나 잠깐 기다리게. 순간적인 육면체란 것이 존재할 수 있겠나?"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걸."
하고 필비는 말했다.
"얼마의 시간 동안 존속하지 않는 육면체란 것이 실재로 존재하는가 말이네."
필비는 가만히 생각하고 있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시간 여행가가 말을 이었다.
"실존(현실전인 존재․실재)하는 물체는 모두 네 방향으로 넓이를 가지고 있네. 가로, 세로, 높이, 그리고 지속 시간이지. 그런데도 우리들의 육체의 본질적인 관점에서, 거기 관해선 이제 설명을 하겠지만, 우리들은 이 사실을 항상 잊고 있는 걸세. 사실은 네 개의 차원이 있는데 그 중 셋은 흔히 우리들이 공간의 세 평면이라고 말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시간이네.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세 차원과 시간의 차원 사이에 우리들은 자칫하면 있지도 않은 구별을 하려고 하지. 우리들의 의식은 나서 죽을 때까지 시간에 따라 한 방향으로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야.“
그건......?“
젊은 친구가 램프 불에다 꺼진 담배에 불을 붙이려고 애를 쓰면서 말했다.
"그건......잘 알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넘기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네.“
시간 여행가는 어느 정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사실은 이것이 제 4차원의 본래의 의미라는 거야. 세상에는 제 4차원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면서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어. 4차원이란 시간을 다만 다른 각도에서 본 데 지나지 않지만 말일세. 시간과 공간의 세 차원과의 사이에는 우리들의 의식이 시간을 따라 옮겨간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일세. 그런데도 바보 같은 사람들은 이 관념에 대한 그릇된 생각 밖에는 알지를 못한단 말야. 그들이 이 제 4차원에 대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들은 적이 있는가?“
"나는 듣지 못했어.“
하고 이 지방의 시장이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네. 수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듯 이 공간은 세 가지 차원, 즉 가로, 세로, 높이라고 해도 좋을 것을 가지고, 서로 직각으로 이어지는 세 평면에 의해 항상 한정되어 진다는 거야. 그런데 철학자들 중에는 왜 하필 세 평면만 생각하는가, 왜 이 세 직각과 관계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을 생각해선 안 되는가 하고 반문해 온 사람이 있었네. 그리고 그들은 4차원 기하학이라는 걸 정립하려고까지 했었네. 뉴컴 교수(1835~1909. 미국의 천체 역학자)가 바로 한 달쯤 전에 뉴욕 수학 협회에서 여기에 대해서 연설을 했었네. 자네들도 알고 있다시피 우리들은 두 차원 밖에 갖지 않은 평면 위에 삼 차원의 물체의 형태를 나타낼 수가 있네. 마찬가지로 3차원의 물체로서 4차원의 물체를 나타낼 수도 있다고 그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 원근법(멀고 가까움을 그림에 표현하는 방법)을 잘 이해 할 수 있다면 말이네, 알겠나?“
"알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
시장이 중얼거리고는 눈살을 찌푸리고 깊이 생각하는 듯, 마치 주문이라도 외는 것 같이 중얼중얼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흠, 알았네.“
잠시 후 그는 그렇게 말하고 금방 변한 사람처럼 밝은 얼굴이 되었다.
"알았으면 된 걸세. 사실 말이지, 나는 요새 한 동안 이 4차원 기하학에 대해 연구를 해 왔다네. 연구 결과에는 꽤 기묘한 것도 있어. 이를테면 여기 어떤 사나이의 여덟 살 때의 사진이 있다고 하세. 또 한 장은 15세 때의 것이고, 17세, 23세, 이렇게 여러 나이 때의 사진이 있네. 이 사진들은 모두가 말하자면 단면이고, 그 사나이의 한결 같이 변하지 않은 4차원적 존재를 3차원적인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네. 과학자는..."
시간 여행가는 지금 자기가 말한 것을 여러 사람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얘기를 계속했다.
"시간은 공간의 일종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있네. 여기에 통속적인 수학 도표가 있지. 기상도라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이 선은 기압계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는 걸세. 어제는 꽤 높았지만 밤이 되자 내려가고, 그러다 오늘 아침에는 다시 올라 그 뒤로 서서히 여기까지 올라와 있네. 물론 수은은 일반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공간의 어느 차원에서도 이런 선을 긋지는 않았어. 하지만 착실히 수은은 이런 선을 따라간 거야.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선이 시간의 차원에 따라 옮아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네.“
"그렇군.“
의사가 난롯불을 물끄러미 지켜보면서 말했다.
"정말 시간이 공간의 네 번째 차원에 불과한 것이라면 어째서 다른 것으로 여기게 됐으며 또 그렇게 생각해 왔을까? 게다가 우리들은 공간의 세 차원 중에서는 돌아다닐 수가 있는데 어째서 시간 속에서는 돌아다닐 수 없는 것인가?"
이 말에 시간 여행가는 빙긋이 웃음을 띠었다.
"우리들이 자유로이 공간을 돌아다닌다는 건 확실한 것인가? 우리는 좌우로 혹은 앞뒤로 맘대로 갈 수가 있네. 인간은 언제나 그렇게 해 왔지. 우리들이 두 차원에서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기로 하세. 그러나 위아래로는 어떤가. 인력이 우리를 제한하고 있네."
"그렇다고만 할 건 아니지.“
하고 의사가 대꾸했다.
"기구가 있어.“
"하지만, 기구가 발명되기까지는 인간은 순간적으로 뜀질을 하여 오르거나 뛰어내리는 일 밖엔 자유로이 상하로 운동을 하지 못했네."
"아니야. 조금씩은 아래위로도 운동할 수 있었어."
의사가 말했다.
"위로 오르기보다는 내리는 편이 쉽지. 훨씬 쉬워."
"그렇지만 시간 속에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들은 현재로부터 빠져나갈 수가 없단 말이네."
"여보게, 바로 그것이 자네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이네. 그리고 온 지상 사람들이 잘못 생각해 온 점이지. 우리들은 항상 현재의 순간으로부터 빠져 나오고 있단 말이야. 우리와 정신은 물질적인 게 아니라서 차원도 갖지 않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정한 속도로 시간 차원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걸세, 만일 우리들의 생존이 지상 100킬로미터에서 시작됐다고 한다면 우리는 아래를 향해 떨어져 내려가겠지만, 그러나, 우리들은 시간 속을 내려가고 있는 걸세.“
"그런데, 곤란한 일은........"
하고 심리학자가 입을 열었다.
"........공간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이게 되지만, 시간 속에서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단 말이야.“
"나의 대발명도 실은 거기서 생겨난 걸세. 그러나 시간 속을 맘대로 돌아다니지 못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네. 가령 내가 사진을 특별히 생생하게 생각해 냈다고 하면 나는 그 사건이 일어났던 순간으로 되돌아가 있는 것이네. 말하자면 방심 상태가 되어 일순간 그 때로 되돌아가는 거야. 물론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그 곳에 멈추어 있을 수는 없지. 마치 야만인이나 동물이 땅 위에서 2미터 이상 위에 멈추어 있지 못하는 것처럼. 그러나 문명인은 그 점에 있어 야만인보다는 훨씬 우수하네. 기구를 타고 인력을 이겨내고 올라갈 수가 있으니까 말이네."
"그렇다면 왜 우리들은 시간 차원에 따라 정지를 하거나 속도를 빨리 하거나 되돌아오거나 반대 방향으로 여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그야 아무리 해 봤댔자......"
하고 필비가 대꾸했다.
"왜 안 된다는 거지?“
하고 시간 여행가는 질문을 했다.
"이치에 맞지 않으니까.“
"무슨 이치?“
시간 여행가가 다그쳐 물었다.
"말로는 검은 것을 흰 거라고 우길 수도 있지만, 나를 납득시키지는 못하네.“
하고 필비가 대답했다.
"그래도 머지 않아 자네는 내가 4차원의 기하학을 연구한 목적을 알게 될 걸세. 오래 전부터 나는 기계에 대해서 대단한 생각을 갖고 있었어.“
"시간 여행을 하는 기계 말입니까?"
하고 청년이 물었다.
"운전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공간과 시간을 날아 어느 쪽으로라도 자유로이 여행을 하는 기계라네."
필비는 서슴지 않고 큰 소리로 껄껄 웃어댔다.
시간 여행가가 말했다.
"나는 그걸 실험을 통해서 증명했어.“
"그건 역사가에게 아주 편리한 것이 되겠는데."
하고 심리학자가 말을 이었다.
"과거로 여행을 해서, 이를테면 헤이스팅스의 전쟁 (1066년,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해롤드 2세의 앵글로색슨 군을 쳐부순 전쟁)의 기록이 정확한가 어떤가 확인을 하고 올 수가 있을 테니 말이네."
"자네가 그런델 갔다가는 눈총을 받거나 푸대접을 받을 것이 뻔해.“
하고 의사가 덧붙여 말했다.
"우리들의 조상들은 엉뚱한 곳에서 온 사람에 대해서 그다지 관대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네.“
"호머와 플라톤의 입으로부터 직접 그리스말을 배울 수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하고 청년이 말했다.
"그런 짓을 하다가는 자네는 학위 예비 시험에 낙제하기 알맞을 거네. 독일의 학자들이 그리스말을 개량해 버렸으니 말이지.“
"그리고 또 미래로도 갈 수 있지요.“
청년이 또 말했다.
"이런 건 어때? 돈을 몽땅 예금해 놓고 이자가 붙는 대로 두었다가 자기는 미래에 가서 기다리고 있는 것 말입니다.“
"거기가 만일 공산주의 사회라면 어떻게 되지?"
하고 나도 한 마디 거들었다.
"이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얘기들이로군.“
하고 심리학자가 말했다.
“그럴 걸세,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태까지 잠자코 있었던 거야!“
"실험을 통해서 증명을 했다고 했지? 자네는 그걸 증명해 보이겠다는 건가?"
하고 내가 소리쳤다.
"실험이라고?“
벌써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한 필비가 큰 소리로 물었다.
"하여간 자네의 실험을 보여 주게. 결과는 뻔한 것이겠지만.“
심리학자가 경멸하는 어조로 말했다.
시간 여행가는 싱긋이 웃으며 우리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여전히 가느다란 웃음을 띄우며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천천히 방을 나갔다. 연구실로 통하는 긴 복도를 타닥타닥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뭘 만들었다는 걸까?"
심리학자가 우리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말했다.
"괴상한 요술 같은 것이겠지.“
의사가 대답했다.
필비는 노천 극장에서 구경한 요술쟁이의 얘기를 하려고 했으나 아직 앞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시간 여행가가 돌아왔다. 그래서 필비의 모처럼의 얘기는 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시간 여행가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조그마한 탁상시계 정도의 크기로 된 번쩍번쩍 빛나는 금속 세공물로,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상아와 무언지 투명한 결정체(안정하여 일정한 형태를 이룬 물체)가 사용된 것이었다. 이제 여기서 미리 양해를 얻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이제부터 일어난 일은, 만일 그의 설명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전혀 설명할 길이 없는 일들이다. 그는 방 안 여기 저기에 놓여 있는 8각형의 작은 테이블 하나를 가져다가 난로 앞에 두 다리를 얻을 수 있도록 놓았다. 그리고는 그 테이블 위에 지금 말한 기계를 놓고 의자를 다가앉았다. 이 기계 외에 테이블 위에 있는 물건은 갓이 있는 소형 램프 뿐으로, 그 밝은 불빛이 이 모형을 환히 비춰 주고 있었다. 방에는 열 두 자루 가량의 양초가 있어서 두 개는 난로 위의 선반 위에 있는 놋쇠 촛대에 켜 있고, 몇 자루는 벽에 붙은 촛대에서 타고 있어서 방안은 환하게 밝았다. 나는 난로에 제일 가까운 안락 의자에 앉아서 그 의자를 시간 여행가와 난로 사이로 끌어갔다. 필비는 시간 여행가 뒤쪽에 앉아 그의 어깨너머로 넘겨다보고 있었다. 의사와 시장은 오른쪽에서 시간 여행가의 옆얼굴을 지켜보고, 심리학자는 왼쪽에서 보고 있었다. 청년은 심리학자 뒤에 서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주의해서 지켜보았다. 이런 데서라면 아무리 조심하고, 아무리 감쪽같이 한다고 해도 속임수를 쓸 순 없을 것 같았다. 시간 여행가는 우리들을 한 번 휘돌아 본 뒤에 다시 그 기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래 어떻게 하는 건가?"
하고 심리학자가 물었다.
"이 작은 기계는......?"
시간 여행가는 테이블 위에 팔을 얹고 기계 위에서 두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단지 모형에 지나지 않네. 기계에게 시간 속을 여행하게 하려는 것이 나의 계획이라네. 자네들도 눈치 챘겠지만 이 기계는 이상스럽게 비뚤어져 있고, 이 가로지른 막대 근처가 묘하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물건이 아닌 것 같을 걸세."
그는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가리키며,
“여기 조그만 흰색 레버 (지렛대)가 있고 이쪽에도 하나 있네.“
의사는 의자에서 일어나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곱게 된 거로군." 하고 그는 말했다.
"만드는데 2년이 걸렸다네."
시간 여행가가 대답했다. 우리들은 모두들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그는 말했다.
"자, 이제 자네들에게도 잘 알아 달라고 하는 거지만, 이 레버를 누르면 기계는 미래를 향해 날아가고, 이쪽 레버를 누르면 반대로 운동을 하네. 이 걸상은 시간 여행자가 앉는 자리야. 이제 내가 이 레버를 누르면 기계는 날아가 보이지 않게 될 걸세. 미래 세계로 날아가서 사라져 버릴 걸세. 잘 보아주게. 테이블을 잘 보고 있어서 속임수 같은 게 아님을 잘 보아달란 말이네. 이 모형을 없애 버리고도 사기꾼으로 불리는 일이 있어선 난 못 견디게 되니까 말야.“
한 1분쯤 시간이 흘렀다. 심리학자는 내게 말을 하려는 듯하더니 그만 두는 것 같았다. 시간 여행가가 레버에 손가락을 내밀었다.
"아니야.“
그는 별안간 말했다.
"자네가 해 주게.“
시간 여행가는 심리학자를 돌아보며 그의 손을 잡더니 손가락을 내밀라고 했다. 이리하여 타임 머신의 모형을 끝없는 여행의 길에 띄워 보낸 사람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심리학자, 그 사람이 되었다. 우리들은 모두 레버가 도는 걸 보았다. 진정 속임수는 없었다고 생각했다. 휘익 바람이 일더니, 램프 불이 흔들거렸다. 난로 위 선반에 있는 촛불 하나가 꺼졌다. 작은 기계는 갑자기 돌기 시작하더니 희미해져서 1초 동안쯤 유령이나, 희미하게 빛나는 놋쇠와 상아의 소용돌이처럼 보이다가 휙 사라져 버렸다. 테이블 위에는 램프 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한 1분 동안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이윽고 필비가 말했다.
"정말 놀랬다!“
심리학자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제 정신이 나자, 재빨리 테이블 밑을 들여다봤다. 그걸 보고 시간 여행가는 통쾌하게 웃었다.
"그래 어떤가?“ 하고 그는 조금 전의 심리학자의 말투를 흉내내어 물었다. 그리고는 일어나 선반 위에 있는 담배 갑에서 파이프에 담배를 담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네는 정말 제 정신으로 그 기계가 시간 여행을 떠났다고 믿고 있나?“
의사가 말했다.
"물론!“
시간 여행가는 한 마디로 대답하고 허리를 굽혀 난롯불을 불쏘시개에 옮겨 붙였다. 그리고는 뒤돌아 서서 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심리학자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심리학자는 침착한 것처럼 보이려고 담배를 집어들었으나 거꾸로 물고 불을 붙이려 했다.
"그리고 저기엔 거의 다 완성이 된 진짜 기계가 있다네.“
하며 시간 여행가는 연구실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완성이 되면 내가 직접 시간 여행을 떠날 작정이네. 자네는 아까 그 기계가 정말 미래를 향해 갔다고 생각하나?“
하고 필비가 말했다.
"그것이 미래인지 과거인지 확실한 것은 잘 모르지만.“
잠시 후 심리학자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어디로 갔다면 과거로 간 게 틀림없을 거야."
"어째서?“ 하고 시간 여행가가 물었다.
"가령, 그것은 공간을 움직여 가지는 않는다고 하고, 만일 미래로 갔다고 한다면 아직 여기에야 할 것일세. 지금의 시간을 지나갈 것이니까."
"그렇지만 만일 과거로 갔다고 하면 우리들이 그 방에 들어왔을 때에도 보였을 게 아닌가? 지난 목요일 날, 여기 왔을 때에는 물론이고 전전 주의 목요일에도, 그 전의 목요일에도!“ 하고 내가 말했다.
"그 참 어려운 문제로군."
시장이 막연하게 말하며 시간 여행가를 바라보았다. 시간 여행가는,
"조금도 어려울 건 없어.“하며 심리학자를 향해 말했다.
"자네도 생각해 보게. 자네라면 설명이 되겠지. 그 기계는 식역 (어떤 의식 작용의 발생과 소실과의 경계) 아래의 표상이지. 알겠나? 희박하게 해서 나타낸 표상이란 말일세."
"물론 그렇지.“
하고 심리학자는 말하고 나서 우리들에게 대해서 보증이라도 하는 듯이 말했다.
"심리학에서는 쉬운 문제야. 깜박 잊고 있었어. 간단히 알 수 있는 것인데. 이로써 그저 역설(언뜻 보면 진리에 어긋나는 것 같으나 사실은 그 속에 일종의 진리를 품은 말)도 훌륭히 설명이 되네. 우리는 그 기계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거야. 돌아가고 있는 차바퀴의 바큇살이나 공중을 날아가는 탄환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만일 그 것이 우리보다 50배나 100라 해도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하면, 또 만일 우리가 1초 나아갈 동안에 1분이나 나아간다고 하면, 그 기계의 인상은 멈춰 있을 때의 인상의 50분의 1이나 100분의 1이 될 걸세. 지극히 명료한 일 아닌가!“
그는 기계가 놓여 있던 공간에서 손을 저어 보이고는,
"어때, 알겠는가?“
하며 웃음을 지었다. 우리들은 자리에 앉은 데로 1분쯤 빈 테이블 위를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 여행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우리들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엔 꽤 당연한 것 같이 들리지만........" 하고 의사가 말했다.
"내일까지 기다려 주게. 아침이 되어 올바른 생각이 되살아날 때까지 말이네.“
"진짜 타임 머신을 구경하겠나'?"
시간 여행가가 우리들을 보고 물었다. 그리고는 램프를 들고 찬바람이 들어오는 긴 복도를 지나 연구실까지 우리들을 데리고 갔다. 나는 지금까지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흔들리는 램프 불빛에 그의 기묘하게 큰 머리의 그림자가 펄럭이고 있었던 것을. 우리들은 모두 여우에게 홀린 듯한 기분으로 그의 뒤를 따라 갔다. 연구실에는 아까 우리들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조그만 기계를 아주 커다랗게 확대해 놓은 것 같은 기계가 놓아져 있었다. 니켈과 상아의 부분품이 붙어 있고, 결정의 덩어리를 줄로 갈고 자르고 한 부분품도 있었다. 기계는 거의 완성되어 있었지만 비틀어진 결정의 막대기가 몇 개 아직 덜 되어 몇 장의 도면 옆에 놓여 있었다. 나는 좀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그 중의 한 개를 집어들었다. 석영인 듯 했다.
"이보게 자네......?"
의사를 불렀다.
"자네는 지금 제 정신인가? 아니면 이건도 트릭(속임수)인가?......하긴 크리스마스 때 자네가 보여 준 그 유령처럼 말이네.“
"이 기계를 타고........"
하며 시간 여행가는 램프 불을 높이 쳐들며 말했다.
"나는 시간을 여행할 작정이야. 알겠나? 세상에 나서 난 아직 이렇게까지 진심이 되 본 일은 없었네.“
우리들은 누구나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나는 의사의 어깨 너머로 필비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진지한 태도로 한쪽 눈을 찔끔해 보였다.
 
다리를 저는 시간 여행가
 
그 때, 우리들은 누구나 타임 머신을 엉터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왜냐 하면 시간 여행가는 너무나 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신용하기 어려운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진실한 것을 알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굽히거나 가리지도 않는 솔직함 뒤에는 무언지 우리들에게는 엉뚱한 계획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만일 필비가 그 모험을 가리켜, 시간 여행가가 말한 대로의 말로 실행했다고 가정하면 우리들도 그렇게 의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비라면 곧 그는 동기가 어떤 것이라는 것이 드러나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 여행가에게는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려운 데가 있어서 아무래도 쉽게 신용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좀 머리가 좋지 않은 사람이 한 일이라면 당연하게 생각될 것 같은 일도 그가 하면 속임수 같이 보이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너무 쉽게 해 내는 것은 사실 좀 생각할 문제인 것 같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나중에 창피를 당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마치 어린애들 방에 얇은 도자기를 놓아두는 것처럼 불안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누구나 다음 목요일까지 시간 여행에 대한 일은 되도록 입에 올리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결코 잊지 않고 있으면서도......시간 여행이란 사실 그럴 성싶었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겠지. 혹시 가능하다면 대단한 혼란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나 자신은 그 모형이 속임수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여기에 대해서 나는 금요일에 동식물 학회에서 의사와 만나 말한 걸 기억하고 있다. 그는 츄우반겐(독일의 지명)에서 그것과 비슷한 것을 본 일이 있다고 하며 촛불이 꺼진 점에 특히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속임수의 방법에 대해서는 그로서도 설명하지 못했다. 다음 금요일, 우리는 다시 리치먼드로 갔다. 나는 시간 여행가를 제일 잘 찾아가는 손님중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찾아 간 시간이 늦었으므로 벌써 4,5명의 손님이 객실에 모여 있었다. 의사가 한 손에 종이 조각을, 다른 한 손에 시계를 쥐고 난로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시간 여행가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벌써 일곱 시 반이야.“ 의사가 말했다.
"저녁을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어디 갔어?“ 하고 나는 물었다.
"이제 왔군. 좀 이상한 일인 있네. 그 친군 부득이한 일이 있어 좀 늦는 모양이야. 이 종이 쪽지에 일곱 시까지 오지 않거든 저녁 식사를 시작하라고 적어놨네. 늦은 까닭은 와서 얘기하겠다는 거야.“
"음식 맛이 없어지겠는데.“ 하고 신문사의 편집장이 말했다. 이리해서 의사가 초인종을 눌렀다. 요전번 식사 때 와 있던 사람으로는 의사와 나 밖에는 심리학자가 있을 뿐이었다. 그 말에는 지금 말한 편집장 브랑크와 신문 기자와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내가 모르는 수염을 기른 조용한 내성적인 사나이였다. 이 사나이는 그날 밤 한 입도 열지 않았다. 시간 여행가가 자리에 없는데 대해서는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여러 가지 얘기가 있었다. 나는 농담 삼아 시간 여행을 떠난 게 아닌가 하고 말했다. 편집장은 그렇게 생각하는 까닭을 말해 달라고 했다. 심리학자가 자진해서, 전 주일 여기서 본 일들을 서투른 말솜씨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반쯤 얘기가 진행됐을 때 도어를 밖에서 아무 소리도 없이 열렸다. 나는 도어를 향해 앉아 있어서 맨 먼저 그걸 알았다.
"여, 이제 왔군.“하고 내가 소리쳤다.
도어가 더 열리더니 시간 여행가가 우리들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나는 놀란 소리를 쳤다.
"아니 어찌된 일인가?"
의사도 알아보고 소리쳤다.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도어 쪽을 돌아다보았다. 시간 여행가는 아주 형편없는 꼴을 하고 있었다. 웃옷은 먼지와 흙투성이가 되 있었고 소매는 초록색으로 더럽혀져 있었다. 머리칼은 헝클어지고 그 전보다 더 흰머리가 많아 보였다. 먼지와 흙이 묻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흰머리가 많아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빛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고 턱에는 갈색의 상처가 있었다. 게다가 얼굴은 심한 고통을 받고 온 사람처럼 홀쭉하게 야위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잠깐 도어에서 등불이 눈에 부신 듯 잠시 멈춰 서 있었다. 그러다가 방안으로 들어왔는데 다리를 다친 부랑자처럼 절뚝거렸다. 우리들은 말없이 그를 지켜보며 먼저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괴로운 듯 테이블 쪽으로 가서 포도주 잔에 손을 내밀었다. 편집장이 샴페인을 따라 그에게 밀어 주었다. 그 술을 마시자 얼마간 기운이 난 것 같았다.
"도대체 무얼 하고 왔는가?" 하고 의사가 물었다.
시간 여행가는 그 소리를 못들은 듯, “자, 식사를 계속하게." 그는 약간 더듬거리며 말하고, "이젠 괜찮아.“하고는 더 달라는 듯이 잔을 내밀었다. 편집장이 또 따랐다. 그는 이번에도 단번에 죽 들이켰다.
"맛 좋다.“
그의 눈은 맑아지고 볼에도 희미하게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들의 얼굴을 죽 둘러보고 만족한 듯이 가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따뜻하고 아늑한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할 말을 하나하나 찾는 듯이 느릿 말을 하기 시작했다.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오겠네. 그리고 나서 얘기를 하지. 그 닭고기를 조금 남겨 놔주게. 고기에 굶주렸어.“
그는 오래간만에 찾아 온 편집장 쪽을 보고,
"잘 있었는가?“ 하고 인사를 했다.
편집장이 곧바로 질문을 시작하려 했다.
"이제 곧 얘기할 거야.“하고 시간 여행가는,
"아직 좀 이상해. 하지만 곧 좋아질 거야." 하고 말하고는 술잔을 놓고 이층으로 통하는 도어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 그가 다리를 절고 있는 데도 그의 발이 타박타박 하는 소리를 내고 있는 걸 알았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는 그의 발을 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다 낡아빠진 양말 밖에는 아무 것도 신고 있지 않았다. 도어가 그의 뒤에서 닫혔다. 나는 그를 뒤따라 가보려고 했으나 그가 지나친 도움을 받기 싫어하는 성미인 것을 생각했다. 나는 1분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자 '유명한 과학자의 별난 행동'이라고 지껄이는 편집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항상 버릇으로 신문 기사의 제목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불빛 밝은 저녁 식사의 테이블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대체 어떤 일을 하고 온 걸까요?" 하고 신문 기자는 물었다.
"풋내기 거지 흉내라도 내고 왔다는 건가? 도무지 알 수가 없군."
나는 심리학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얼굴에서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짐작했다. 나는 아픈 듯이 다리를 절며 2층으로 올라가는 시간 여행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 밖에는 아무도 그가 절뚝거리는 걸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이런 놀라움에서 맨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의사였다. 그는 초인종을 눌러 - 시간 여행가는 식사 때 하인이 옆에 있는 걸 싫어했었다 - 따뜻한 요리를 가져오게 했다. 그제야 편집장은 중얼중얼하며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들었다. 말없는 사나이도 같이 따라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식사가 다시 시작됐다. 잠시 동안은 모든 사람의 얘기가 시간 여행가에 대한 것으로만 오갔다. 편집장은 호기심을 참지 못해,
"우리들의 친구는 수입이 적다해서 거지 노릇을 하여 생활에 보태고 있단 말인가? 아니면 네부카드넷 쟈르왕(기원전 605(?)~562(?). 바빌론의 왕으로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유태인을 포로로 했음) 같은 데가 있다는 건가?“ 하고 말했다.
"이건 타임 머신과 관계가 있는 것 같군.“
내가 이렇게 말하고 며칠 전 모임에서 심리학자가 한 말을 얘기했다. 새로 온 손님들은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편집장은 희롱조로 말했다.
"시간 여행이란 뭔가? 아무리 역사 속을 굴러 다녔다 해도 흙먼지 투성이가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는 이런 익살이 맘에 든 듯, "미래 세계에는 양복 솔도 없는가 보군." 하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신문 기자도 전혀 믿으려 하지 않고 편집장과 한 통속이 되어 무조건 농담으로 돌렸다. 그들은 둘 다 새로운 형의 저널리스트(언론인)로 아주 명랑하고 남을 깔보는 데가 있었다.
"내일 모래, 본사 특파원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신문 기자가 지껄이기 시작했을 때 시간 여행가가 돌아왔다. 그 전처럼 야회복으로 갈아입고 피로해진 얼굴 이외에는 아까 나를 놀라게 한 모습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다. 편집장이 농담조로 말했다.
"이 친구들의 말이 자네는 내주 중까지 여행을 하고 왔다면서? 꼬마 노두즈버리 (1847~1929. 당시의 영국 수상)가 어떻게 하고 있던가 말해 주지 안겠나? 얼마를 내면 되겠나?“
시간여행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위해 남겨 놓은 좌석에 앉았다. 그는 평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내 양고기는 어디 있나?" 하로 그는 감격한 듯이 말했다.
"다시금 고기에 포크를 대게 되다니 참 다행한 일이야.“
"얘기는?" 편집장이 큰 소리로 물었다.
"얘기 같은 건 그만 두어라." 하고 시간 여행가는 말했다.
"우선 뭘 먹어서, 배가 부르기까지는 한 마디도 안 한다. 어, 고맙네. 소금도 좀."
"한 마디만 해 주게. 자넨 시간 여행을 하고 왔는가?" 내가 물었다.
"음"
시간 여행가는 입에 가득 요리를 넣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편집장이,
"자네의 이야기 1행에 1실링씩 지불하겠네." 하고 농담을 했다.
시간 여행가는 빈 술잔을 말없는 사나이 쪽으로 내밀고 손톱으로 쳐서 달가닥 소리를 냈다. 말없는 사나이는 시간 여행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좌중은 흥이 깨져 버렸다. 나는 물어 보고 싶은 말이 자꾸 목구멍에서 나오려는 걸 참고 있었는데, 그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시간 여행가는 먹는데 열중하여 한참 입으로 고기를 밀어 넣기에 바빴다. 의사는 담배를 피며 가는 눈으로 시간 여행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는 사나이는 아까 전보다 더 어색한 표정으로 자꾸만 샴페인만 따라서는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다. 드디어 시간 여행가는 빈 접시를 앞으로 내밀고 우리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실례했네.“ 하고 그는 말했다.
"하마터면 굶어 죽을 뻔했네, 정말 지독한 꼴을 당했어.“
그는 담배를 손에 들고 불을 붙였다.
"우리, 휴게실로 가지 않겠나? 지저분한 그릇들을 앞에 놓고 앉아서 하기엔 너무나 얘기가 길어.“
그리고는 나가는 길에 벨을 누르고, 일동을 옆방으로 데리고 갔다.
"벌써 프랑크와 대시와 초즈에게도 타임 머신에 대한 얘기를 해 줬는가?"
그는 안락 의자에 앉으면서 새로운 손님들의 이름을 물었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얘기였겠지." 하고 편집장이 먼저 대답했다.
"오늘밤은 토론은 질색이다. 자네들에게 얘기해 주는 건 좋지만 토론은 싫단 말일세." 하고 시간 여행가는 말을 계속했다.
"자네들이 원한다면 내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주겠네. 그렇지만 쓸데없는 말참견은 말아주게. 나는 굉장히 얘기하고 싶네. 이 얘기는 정녕 거짓말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래도 좋네. 하지만 이건 사실이야, 어디서 어디까지도. 나는 4시에 연구실에 있었네. 그리고 그로부터......8일이 지났어. 일찍이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8일간이었어. 나는 이젠 녹초가 됐다. 그렇지만 이 얘기를 자네들에게 다해버릴 때까지는 도저히 잠을 잘 수는 없어. 침대에는 얘기가 끝난 후에 가기로 하겠네. 얘기에 방해는 말아 주게. 알겠나?"
"알겠네, 방해할 까닭이 없지." 하고 편집장이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입을 모아 달했다.
"염려 말게.“
여기서 시간 여행가는 앞으로 말하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 그는 의자에 기대앉아서 피곤한 사람 모양으로 말하고 있었으나 곧 기분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그 얘기를 쓰면서 나는 그 멋지고 훌륭한 것을 나타내기에는 펜과 잉크의 힘이 모자람을, 더욱이 나 자신의 표현력이 모자람을 절실히 느꼈다. 여러분은 주의 깊게 읽어 주리라 믿지만, 조그만 램프 불빛 속에 떠오른, 창백한 얼굴을 볼 수도 없었고, 그 목소리의 가락도 들을 수가 없었다. 얘기에 따라 변하는 그의 표정을 알 수도 없었다. 우리들 듣는 사람들은 대개 불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 있었다. 휴게실에는 촛불이 켜 있지 않았기 때문에 램프 불빛을 받고 있는 것은 신문 기자의 얼굴과 말없는 사나이의 무릎에서 아래쪽 다리뿐이었다. 우리들은 처음에는 때때로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있었지만 조금 후부터는 시간 여행가의 얼굴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지난 주 목요일, 나는 자네들 몇 사람에게 타임 머신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연구실에 놓아둔, 아직 미완성의 실물을 보여 주었다. 그건 지금도 거기 있다네. 한 번 여행을 하고 왔기 때문에 조금 고장이 났지만, 상아 막대기가 하나 부러지고 놋쇠로 된 손잡이도 하나 구부러져 버렸네. 그밖에 다른 것은 괜찮네. 나는 그걸 금요일까지 완성할 계획이었지. 그런데 금요일이 되어 조립이 거의 끝나고 나서 보니, 니켈 막대기 하나가 꼭 3센티미터 짧은 걸 발견했지. 그래, 그걸 다시 고쳐 만들다보니 타임 머신이 완성된 것은 겨우 오늘 아침이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타임 머신이 작동을 시작한 것은 오늘 아침 열 시였다. 나는 최후의 점검을 하고, 다시 한 번 모든 나사못을 조사하고 각 부분에 조금씩 기름을 치고 나서 드디어 의자에 올라앉았다. 그 때의 나의 기분은 자살하려는 사람이 권총을 머리에 대고, 자 이제부터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하고 있을 때의 기분과 같았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한 손으로 발진 레버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 정지 레버를 잡았다. 먼저 발진 레버를 누르고 거의 동시에 정지 레버를 눌렀다. 머리가 어찔어찔한 것이 꼭 높은 데서 떨어져 내리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연구실은 그냥 그대로였다. 이건 어찌된 일인가? 지금 그 느낌은 기분 탓이었을까? 나는 퍼뜩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시계를 보았다. 바로 조금 전까지 그건 열 시나 열 시 1분 조금 지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벌써 3시 반 가까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발진 레버를 다시 한 번 눌렀다. 연구실은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해지고 주위가 어두워져 왔다. 가정부 와젯이 들어와서 뜰 쪽으로 난 도어로 향해 걸어갔는데 나를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방을 가로질러 가려면 1분쯤 걸릴 텐데 마치 로켓처럼 휙 날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레버를 최대한으로 눌렀다. 마치 램프 불을 불어 끈 것처럼 깜깜한 밤이 되었다. 앗! 하는 사이에 아침이 되었다. 연구실은 희미하게 안개가 낀 것 같이 보였고 그 때부터 점점 더 희미해져 버렸다. 이내 밤이 되어 사방이 어두워지고 그리고는 다시 낮이 되고, 또 밤이 되고 낮이 되고......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았지. 내 귀에는 웅웅 소리만 끊임없이 들려왔고 이상하게 답답한 혼란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시간 여행을 할 때의 그 기묘한 느낌을 도저히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몹시 역겨운 기분이었다. 제트 코스터를 타고 머리를 쳐 박힐 듯이 달릴 때의 느낌과 꼭 같았다. 나는 당장에라도 무엇과 충돌해서 산산조각이 되지나 않나 하는 불안감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더 밤과 낮이 바뀌어지는 것이 빨라졌다. 흐릿하게 보이던 연구실도 드디어 사라져 버리고 태양이 휘익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1분 동안마다 보였는데 그 1분 1분이 하루를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연구실이 부서져서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이미 무섭게 빠른 속도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움직이고 있는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걸음이 느린 달팽이까지도 굉장한 속도로 달려가 버리기 때문에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밝은 빛과 어둡고 깜깜한 빛이 잇달아 바뀌므로 눈이 몹시 아팠다. 그 토막토막 지나가는 어둠 속에 달이 빙글빙글 맴을 돌며 초생달에서 보름달로 변해 가는 것이 보이고 별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이 아련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드디어 다시 속도가 더해짐에 따라 휙 휙 바뀌던 밤과 낮이 한데 뒤섞여 한 줄로 이어져 회색이 되었다. 하늘은 새벽 하늘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푸른색으로 변했다. 태양은 하나의 띠가 되어 공간에 밝은 아치를 그리고, 달은 가늘게 흔들리는 것처럼 되었다. 별은 이미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이따금 푸른 하늘에 밝은 테가 반짝이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주위는 안개가 낀 것같이 희미할 뿐이었다. 나는 아직 이 집이 서 있는 언덕 중턱에 있으므로 언덕 꼭대기가 회색으로 부옇게 머리 위에 보였다. 나무들은 마치 김을 뿜어내듯이 자라서 갈색과 초록으로 번갈아 색깔이 바뀌어지며 계속 성장하여 가지를 뻗고 떨다가 사라져 가는 것이었다. 큰 건물이 쑤욱 나타났다가는 꿈처럼 사라져가기도 했다. 지구의 표면이 온통 달라져 버린 것 같이 생각되었다. 내 눈앞에서 녹아 흘러가는 것이었다. 속도계 다이얼의 작은 바늘이 점점 더 도는 속도가 빨라져갔다. 이윽고 태양의 띠는 1분 정도로 하지에서 동지로 오르내리게 되었다. 그 것은 타임 머신의 속도가 1분간에 1년 이상을 날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1분마다 흰 눈이 땅을 뒤덮었다고 생각하면 금방 봄의 밝은 초록색으로 뒤덮이는 것이었다. 출발한 때의 그 역겨운 기분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몹시 들뜬 것 같은 기분으로 변해져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기계가 흔들리는 그 이상한 느낌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내 머리는 완전히 혼란해 있었으므로 그런 것쯤은 조금도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나는 말하자면 일종의 발광 상태로 미래를 향해 비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사고력이 없어졌는지 기계를 정지시킬까, 아니면 언제까지 계속 진행시킬까 하는 생각이 거의 떠오르지 않았다. 내 머리는 최초로 느끼게 된 감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내 마음속에는 또 다른 감정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종의 호기심과     공포감 같은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기어코 이 두 가지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되어 버렸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내 눈앞을 달려가는 이 희미하고 붙잡을 길 없는 세계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떨까? 인류는 어떤 정도로 훌륭한 세상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일까? 내 주위에는 크고 멋진 건물들이 우뚝우뚝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현재의 어느 건물보다도 훨씬 더 컸지만, 마치 희미한 빛과 안개로써 이루어지고 있는 듯이 보였다. 언덕은 풍부한 초록색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그것은 겨울이 되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 머리는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그래도 지구는 대단히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나는 기계를 정지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생각해야 할 것은 나와 기계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는 무슨 다른 물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시간을 여행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내 몸은 말하자면 희박해져서 방해물 사이를 바람과 같이 지나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계를 정지시키게 되면 사정은 달라져서 내 몸의 분자는 도중에 있는 방해물의 분자와 충돌하게 된다. 내 원자는 방해물의 원자와 충돌해 큰 화학반응, 아마도 굉장한 폭발을 일으켜 내 몸도 기계도 모든 차원으로부터 미래 세계로 날아가 버리게 될 것이다. 여기 대해서는 이 기계를 만들고 있을 때에도 여러 차례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 때에는 그걸 피할 수 없는 위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나이라면 마땅히 맞서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위험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지금엔 그 위험이 내 앞에 닥쳐온 것이다. 그러니까 전에 생각한 것처럼 태평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사실 모든 것이 전혀 첫 경험이었다. 더구나 기계는 기분 나쁜 흔들림을 하기도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도 했다. 특히 언제까지나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나의 신경은 아주 이상해졌다. 나는 타임 머신을 정지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는데, 홧김에 도리어 당장 정지시켜 보리라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무조건 급히 정지 레버를 와락 잡아 당겼다. 그러자, 기계는 심하게 돌기 시작하고 나는 휙 공중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귀에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났다. 한 동안 실신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신이 들어 살펴보니 우박이 섞인 비가 한참 내 주위에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나둥그러져 있는 타임 머신을 앞에 두고 보드라운 잔디 위에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이 아직도 회색으로 보였지만 그 듣기 싫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사방을 둘러 봤다. 그 곳은 철쭉꽃이 울타리처럼 무성한 정원 안의 조그마한 잔디밭 같았다. 연보라와 자줏빛 꽃이 우박을 맞아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우박은 되튕겨 오르기도 하고 춤추듯이 뛰기도 하면서 타임 머신 위에 쏟아져 땅 위에 연기처럼 흩어져 있었다. 나는 금새 흠뻑 젖어 있었다.
"훌륭한 대접이로군.“
하고 나는 중얼거렸다.
"오랜 세월을 두고 너를 만나러 왔는데도.........."
이윽고 나는 바보처럼 젖어 있을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언가 거대한 석상이 철쭉꽃 주위의 소나기 빗발 사이로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 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의 내 기분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네. 커튼 모양으로 내리고 있던 우박이 좀 엷어짐에 따라 흰 석상이 또렷이 보여졌다. 무척 큰 것으로, 옆에 있는 은빛 자작나무가 그 어깨 근처까지 밖에 닿지 않았다. 이 석상은 흰 대리석으로 되 있었고, 날개를 가진 스핑크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날개는 양쪽 겨드랑이에 쳐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날아오르려는 듯 떨리고 있었다. 석상 받침대는 청동으로 만든 것 같았고 두껍게 녹이 나 있었다. 그 석상의 얼굴은 나를 향하여 보이지 않는 눈으로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석상은 비바람에 많이 상해서 중한 병에라도 걸린 것 같은 불쾌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잠시 서서 석상을 바라보았다. 석상은 우박 섞인 비가 세게 오다 가늘게 오다 하는데 따라 앞으로 나왔다 뒤로 물러났다 하는 것 같이 보였다. 드디어 나는 잠깐 석상에서 눈길을 돌렸다. 우박 비의 커튼이 엷어져서 하늘은 해가 나타날 듯이 밝아져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이 여행의 무모함을 깊이 느꼈다. 이 우박의 장막이 완전히 걷히고 나면 도대체 어떤 것이 나타날 것인가? 인류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만일 아주 잔인하게 변해 버렸다면......? 만약 내가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동안에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비인간적이고 난폭하고 게다가 무섭게 힘이 센 것으로 변해 버렸다면......? 아니 그들이 나를 볼 때 옛 세상의 야만적인 동물로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무섭고 기분 나쁜 것으로 여겨져서 당장 죽이려고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박비가 그침에 따라 다른 큰 건물들의 뒤편 난간과 둥근 기둥이 높이 솟아있는 거대한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숲에 뒤덮인 언덕의 비탈도 훤히 나타났다. 나는 더럭 겁이 나서 미친 사람처럼 타임 머신으로 달려가 무작정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그러자 이 때 햇볕이 비구름 사이로 비쳐 왔다. 회색 우박은 쫓겨나서 유령의 긴 옷자락처럼 사라져 갔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니 여름 하늘의 진한 푸르름 속에 엷은 갈색 구름 송이가 빙빙 돌며 사라져 가고 있었다. 주위의 큰 건물은 아까 비에 젖어서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아직 녹지 않은 우박들이 쌓여 있는 곳은 한결 희게 보였다.
나는 미지의 세계에 알몸뚱이로 내동댕이쳐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언제 솔개에게 붙잡힐지도 몰라 겁에 질린 채 푸른 하늘을 날고 있는 작은 새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두려움에 나는 미칠 것 같았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이를 악물고는, 손과 발로 힘껏 타임 머신을 끝어 일으키려고 했다. 한사코 힘을 쓴 덕택에 타임 머신을 제대로 일으킬 수 있었으나 그 바람에 나는 턱을 기계에 긁혀 상처를 입고 말았다. 나는 한 손을 좌석에 걸치고 또 한 손으로는 레버를 잡고 헐떡거리며 올라타려 했다. 그러나 이렇게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게 되고 나니 다시 용기가 났다. 나는 좀더 주의 깊게 대담히 이 머나먼 미래의 세계를 둘러보았다. 가까운 건물 위의 둥근 창으로부터 사치스런 엷은 옷을 입은 한 떼의 사람들이 내다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나를 보고 있는 듯 이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있었다. 그 때, 내게로 가까이 오는 사람 소리가 들렸다. 흰 스핑크스 옆 수풀을 헤치며 달려오는 사람의 머리와 어깨가 보였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나와 타임 머신이 놓여 있는 작은 잔디밭으로 바로 이어져 있는 오솔길에 모습을 나타냈다. 그건 멀쩡하게 생긴 인간(아마 1미터 20센티미터 가량의 키였을 것이다.)으로 자줏빛 옷을 입고 팔목에 가죽띠를 하고 있었다. 발에는 샌들인지 가죽 구두(어떤 쪽인지 알 수 없었다.)를 신고 있었다. 다리를 무릎까지 내놓고 머리에는 아무 것도 쓰지 않았다. 거기서 처음으로 알았지만, 이 곳은 아주 따뜻한 기후였던 것이다. 그 사나이는 몹시 우아했지만 여간 약해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어슴푸레하게 홍조를 띤 얼굴은 꼭 폐결핵 환자를 연상시켰다. 흔히 말하는 병적인 아름다움이었다. 그를 보고 나는 갑자기 자신이 생겼다. 나는 타임 머신에서 손을 떼었다.
 
80만 2천 7백 1년의 세계
 
다음 순간 나는 이 미래 세계의 연약한 인간의 얼굴을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그는 똑바로 이쪽으로 다가와서 내 눈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그 태도에는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은 데는 조금도 없었으므로 나는 뜻밖의 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따라온 다른 두 사람을 돌아다보고 극히 달콤하고 부드럽고 묘한 말로 얘기를 걸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여 와서 어느덧 내 주위는 여덟 명인가 열 명인가 되는 날씬한 사람들로 조그만 무리를 이루었다. 한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나는 갑자기 내 목소리가 그들에게는 너무나 사납고 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내 귀를 가리키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상대는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와서 조금 망설이다가 내 손을 만졌다. 다른 사람들도 보드랍고 작은 손으로 내 등과 어깨를 만지는 걸 깨달았다. 내가 실제로 있는 것인가 아닌가를 확인하려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표정에는 경계해야 할 아무런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사실 이 작고 귀여운 인간의 모습에는 나를 안심시키는 그 무엇이 있었던 것이다. 고상한 부드러움과 어린애 같은 천진난만함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너무도 연약해 보였기 때문에 한 열 명쯤이 떼를 지어 덤벼든다고 해도 볼링의 공을 던지듯 내던져 버릴 수 있을 것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이 조그만 연분홍색 손으로 타임 머신을 만지려 했을 때에는 황급히 안 된다는 몸짓을 해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시기를 놓치지 않은 동안에 지금까지 잊고 있던 위험을 깨달았다. 그래서 타임 머신의 칸막이 기둥 너머로 팥을 내밀어 조그마한 발진 레버를 뽑아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서서 그들과 얘기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를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좀더 그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고 그 인형 같은 귀여움 속에도 몇 가지 특징이 있다는 걸 알아내었다. 곱게 빗은 머리카락은 목과 턱에서 싹둑 잘려져 있었다. 얼굴에는 잔털 하나 나지 않았고 귀는 몹시도 작았다. 입도 작은 데 새빨갛고 얇은 입술을 하고 있었다. 조그만 턱은 끝이 뾰족했다. 눈은 크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리고...... 이건 나의 편리한 대로의 말일지는 모르지만, 마땅히 나에게 대해서 좀더 가져 주어도 좋을 관심을 조금도 가져 주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나와 얘기를 하려는 노력도 전혀 하지 않고, 다만 내 주위에 서서 미소를 짓거나 자기들끼리 비둘기 울음소리 같은 달콤한 소리로 얘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이쪽에서 먼저 얘기를 걸어 보기로 했다. 나는 우선 타임 머신과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어떻게 시간을 표시할까 잠시 망설이고 있다가 해를 가리켰다. 그러자 곧 흰색에 자줏빛 무늬의 옷을 입은, 유달리 귀여운 조그만 사나이가 내 몸짓을 흉내내고, 더구나 놀라운 것은 뇌성 소리의 흉내까지 내는 것이 아닌가.
그의 몸짓의 뜻은 잘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상당히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녀석들은 혹시 바보가 아닐까 하고,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는 자네들에게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겠지? 알겠는가? 나는 전부터 늘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80만 3천 년 전인가 그 후의 인간은 지식이나 예술이나, 그 밖의 모든 일에 우리들보다 훨씬 앞서 있을 것이 틀림없으리라고........
그 때 그들 중 한 사람이 갑자기 내게 질문을 했는데 그건 다섯 살 짜리 어린애 정도의 지능도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즉 당신은 뇌운(우레 구름)을 타고 태양으로부터 왔는가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확실히 이 사람들은 바보라고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의복과 허약해 보이는 체격과 날씬한 얼굴 모습으로 어쩐지 그런 것 같다고 느끼고 있던 일이지만 나는 상당히 실망했다. 한동안은 내가 타임 머신을 만든 것도 헛일이었다는 생각조차 들었다.
그들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해를 가리키며 그들이 깜짝 놀랄 만큼 진짜와 똑같은 우렛소리를 흉내내어 보였다. 그들은 한두 걸음 물러서서 절을 했다. 그리고는 한 사람이 내가 처음 보는 이상한 꽃으로 엮은 꽃 목걸이를 가지고 웃으면서 다가와서 그걸 내 목에 걸어주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보고 귀여운 목소리로 떠들어댔다.
조금 후, 그들은 여기저기 뛰어 돌아다니며 꽃을 꺾어 가지고는 웃으며 내게 던져서 드디어 나는 꽃으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 꽃들은 사실 눈으로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섬세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을 두고 진화된 것이리라.
이윽고 그들 중 누가 나를 가까운 건물로 데리고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자고 말을 꺼낸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 흰 대리석의 스핑크스 옆을 지나, 이미 무너져 가는 큰 석조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이 스핑크스는 아까부터 마냥 찬웃음을 지으며 나의 놀라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들과 같이 걸어가면서 바로 조금 전까지 미래의 인간이란 것은 굉장히 진실하고 지적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생각나서 우스워 견딜 수 없었다.
큰문이 있는 그 건물은 굉장히 큰 것이었다. 작은 이들의 무리는 점점 불어나고, 커다란 그 시꺼먼 출입문은 기분 나쁜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나는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머리 너머로 보이는 땅은 아름다운 수풀과 꽃들이 뒤섞여 있는 황폐한 들로, 긴 세월을 두고 돌아보지 않았는 데도 잡초가 나지 않은 정원 같은 느낌이었다.
길다란 이삭 모양을 한 흰 꽃이 가득 피어 있는 게 보였으나 그 양초 같은 꽃잎의 지름은 30센티미터는 충분히 되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 아주 야생인 것같이 여러 관목의 수풀 사이에 피어 있는 것이었다. 그리나 그 때는 그리 자세히 조사해 보진 못했다.
타임 머신은 철쭉꽃으로 에워싸인 잔디밭에 내버려 둔 채로 였다.
입구의 아치에는 정교한 조각을 해 놓았다. 지나면서 흘깃 보니 고대 페니키아의 무늬 같이 느껴졌지만, 자세히 관찰한 건 아니다. 몹시 깎이고 풍화되어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한결 선명한 빛깔의 옷을 입은 몇 사람이 입구에서 나를 맞아 주며 같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19세기 풍의 검은 옷을 입고 꽃 목걸이를 한 나의 모습은 아주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내 곁에는 밝고 고상한 빛깔의 옷들을 입고 하얗게 빛나는 손발을 가진 인간들의 소용돌이였다. 그들의 음악과 같은 소리로 웃고 얘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큰문은 갈색 커튼이 쳐진 큰 홀로 통해 있었다. 천장은 어둠침침했고 창에는 곳곳에 색유리가 끼워 있었는데, 유리가 깨진 곳으로부터 부드러운 광선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마룻바닥은 무언지 굉장히 단단한 흰 금속의 커다란 덩어리 (나무가 아닌)로 되어 있는데 상당히 닳아 패여 있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사람들이 밟고 다닌 때문이라 생각되었다. 특히 왕래가 잦은 곳은 깊은 홈이 푹 파여 있었다.
홀 안쪽을 향하여 직각으로 갈아서 만든 돌로 된 많은 테이블이 줄을 지어 있었다. 바닥에서 30센티 가량의 높이로 그 위에는 많은 과일이 차려져 있었다. 그 중의 몇은 엄청나게 크게 성장한 일종의 산딸기와 오렌지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일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에는 많은 방석들이 흩어져 있었다. 나를 데리고 온 사람들은 그 방석에 앉으며 내게도 앉으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들은 예의 같은 건 돌보지 않고 손으로 과일을 먹고 껍질과 속은 테이블 옆에 뚫어져 있는 둥그런 구멍에 내던졌다. 나도 즐거이 그들이 하는 대로 흉내를 냈다. 몹시 목이 말랐고 시장하기도 했던 참이었다. 나는 과일을 먹으면서 가끔 홀 안을 둘러보았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 건물의 완전히 황폐해진 모습이었다. 색유리에 무늬나 그림이 그려진 판유리를 끼인 창은 여기저기 부서져 있고, 홀 안쪽에 드리워져 있는 커튼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다. 내게서 가까운 대리석 테이블은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극도로 사치하고 아름다웠다.
넓은 홀 안에는 약 2, 3백 명의 사람들이 모두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대개 내 곁에 아주 가까이 앉아서 조그만 눈을 반짝이며 재미있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종류의 보드랍고 튼튼해 보이는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하나 더 말해둔다면, 그들의 식사는 과일뿐이었다. 이 머나먼 미래의 인간들은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던 것이었다. 그들과 같이 있는 동안, 나는 약간은 고기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과일로 참고 견디어야만 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소나 말이나 양이나 개는 모두 먼 옛날의 공룡처럼 멸망하고 없어져 버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과일들은 맛이 매우 좋았다. 특히 내가 거기 있을 동안, 한창 나오는 과일은 삼각형의 껍질 속에 들어 있는 과일이었는데 뛰어나게 맛이 좋아, 나는 그걸 주식으로 하고 있었다. 처음 한 동안 나는 이러한 처음 보는 과일과 꽃을 대할 때마다 이상하게만 여겨졌지만 금방 익숙해졌다.
시장하던 걸 잊게 되자, 나는 그 사람들의 말을 익혀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이것이야말로 먹는 일 다음으로 꼭 해야 할 일이었다. 말을 익히는 데는 과일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과일 하나를 집어들고 자꾸 무얼 묻는 것 같은 말을 하기도 하고 몸짓을 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쪽이 생각을 전하는 일은 좀처럼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내가 아무리 애를 쓰며 손짓 발짓을 해도 상대는 깜짝 놀라 눈을 둥그렇게 하거나 자꾸 웃기만 할뿐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한 금발의 사나이가 내 기분을 짐작했는지 무슨 이름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일러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일에 대해서 오랫동안 서로 주고받고, 또 무언지 계속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그들의 미묘한 말을 흉내내어 보이자 신이 나서 좋아하며 재미있어 했다. 나는 어린아이들이 학교 선생님에게 배우는 기분으로 기를 써서 배웠다. 드디어 적어도 20개쯤의 물건 이름을 익힐 수가 있었다. '저것' '이것'이란 말들도 배웠으며 '먹는다'는 말까지도 알아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일이어서, 이 작은 인간들은 내가 묻는 일에 곧 싫증을 내어, 질문을 하려 들면 피해 가버리고 하므로 하는 수 없이 그들의 마음이 내킬 때마다 조금씩 배우기로 했다.
사실 나는 그들로부터 한꺼번에 많은 것을 배우기는 어렵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게으로고 싫증을 잘 내는 사람들을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얼마 후, 나는 이 작은 이들에 대해 묘한 걸 깨달았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그 어떤 일에나 관심을 크게 갖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곧잘 어린애들처럼 소리치며 내 곁에 달려와서 내가 하는 것을 구경하려 하지만 곧 싫증을 내어 다른 장난감을 찾아 가버리는 것이었다.
식사와 회화의 첫 과정이 끝났을 때, 처음에 나를 에워싼 사람들은 내 곁에는 거의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으나 이것 역시 묘한 일이지만, 나도 이 작은 이들의 일을 그다지 관심이 가지지 않게 되어갔다.
배가 부르게 되자 나는 입구의 문을 나와 밝은 햇볕 아래를 거닐었다. 걷는 중에도 새로운 작은 이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여러 차례 내 뒤를 따라와서 얘기를 하고 웃고 했다. 그리고 내게 정다운 태도로 미소를 짓기도 하고 손짓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곧 나를 버려 두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내가 큰 홀에서 나왔을 때는 밖은 벌써 조용한 저녁이 되어 있었다. 저녁 해의 따스한 볕이 근방 일대를 비쳐 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물체가 모두 내 머리를 혼란케 했다. 모든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세계의 것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나온 그 큰 건물은 강을 옆에 낀 넓은 골짜기의 비탈에 서 있었다. 이 강은 템즈 강 같았는데, 현재의 위치에서 1킬로미터쯤 이동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2킬로미터쯤 이어진 저편 등성이 꼭대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거기서 라면 시기 80만 2천 7백 1년의 지구의 모습을 조금 넓게 바라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80만 2천 7백 1년이라는 것은 타임 머신의 작은 다이얼이 가리키고 있는 날짜인 것이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주의 깊게 근처의 광경을 살펴보았다. 어찌하여 미래의 세계는 이렇게까지 황폐해 버렸는가를 설명해 줄 만한 것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었다.
이 곳은 정말 몹시 황폐해진 세계였다. 예를 들면, 언덕의 조금 올라간 곳에 화강암을 산더미처럼 쌓아 올려서 그걸 알루미늄 덩어리로 이어 붙인 곳이 있어, 깎은 듯이 선 돌 벽이 커다란 미로와 같이 되어 있었다. 여기 저기에 무너진 곳이 있고, 그런 곳에는 아주 아름다운 탑 모양을 한 식물이 무성히 우거져 있었다. 그 잎의 둘레는 갈색이었고, 가시는 전혀 나 있지를 않았다.
그 돌의 벽들은 정녕 큰 건물의 잔해에 틀림이 없었지만, 무엇에 쓰려고 지은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뒷날 내가 아주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 것도 바로 이 장소였고, 그것은 다시 이상한 일로 연결되어 갔지만 그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겠다.
잠시 쉬고 있던 높은 곳에서 나는 얼른 어떤 일이 생각나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어느 곳에도 작은 집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한 채로 지은 집도, 어쩌면 가족이란 것도 다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푸른 나무들이 서 있는 사이로 여러 곳에 궁전과 같은 건물이 서 있는데도 주택이나 별장 같은 집은 전혀 볼 수 없었다. 19세기의 영국의 풍경으로는 그런 것이 특징으로 되어 있었는데도.......
<공산주의 세상이 되었나보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이와 함께 또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내 뒤에 따라온 5,6명의 작은 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일을 깨달았다. 그들은 같은 모양의 옷을 입고, 하나같이 상냥하며 수염 없는 얼굴로 여자 같은 통통한 손과 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그런 걸 눈치 채지 못한 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여튼 여기서는 무엇이나 다 이상한 일 뿐이었으니까. 이렇게 해서 겨우 확실한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뚜렷이 보여주는 의복과, 체격과 태도는 미래의 인간들에게서는 다 같은 것으로 되어버린 것이었다. 어린아이들도 부모를 조금 작게 해 놓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래 세계의 사람들은 한가하고 아무 걱정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가 아무리 닮았다 해도 조금도 불편할 게 없으리라. 남자의 강함이나 여자의 상냥함이나 가족 제도나 직업의 다양성 같은 것은 육체적인 힘이 큰 역할을 하는 시대에서만 필요한 것이었다. 인구가 많아서 균형이 잡혀 있는 세계에서는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폭력으로 해결해야 할 일은 전혀 없어지고 자손의 안전이 보장되어 있는 세상에서는 가정이라는 것은 그다지 필요가 없으리라. 아니 전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식을 기르기 위해 남성과 여성이 확실하게 구별되어야 할 필요성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말한 일들은 우리들 세계에서도 이미 조금씩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이 미래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완성되어 버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그러나 미리 말해 두지만, 이건 그 때 내가 생각한 일이고 뒤에 가서 사실과 얼마나 다른가를 깨닫게 되었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나는 예쁘장한 작은 건물이 있는 걸 발견했다. 둥근 지붕이 있는 우물 같이 생긴 것이었다. 나는 문득, 아직도 우물 같은 게 있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덕 꼭대기까지에는 큰 건물이 없었다.
나의 다리 힘은 그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강했으므로 얼마 후 비로소 나 혼자 있게 되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기운이 나고 모험적인 기분이 되어 언덕 꼭대기를 향해 계속 해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노란 금속으로 된 걸상이 있었다. 그것들은 군데군데 상해서 빨갛게 녹이 나 있었고, 반쯤은 보드라운 이끼에 덮여 있었다. 나는 거기 걸터앉아서 지금 저녁 햇볕을 받으며 긴 하루를 끝내려 하고 있는 이 미래의 세계를 저 멀리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그 것은 일찍이 본 일이 없는 정말 조용하고 아름다운 경치였다.
태양은 벌써 지평선 아래로 잠겨, 서쪽 하늘은 금빛으로 불타오르고, 거기 몇 줄의 보라색과 붉은 색의 선이 수평으로 뻗어 있었다. 눈 아래로는 템즈 강이 빛이 나는 강철의 띠처럼 길게 놓여 있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푸른 수풀 사이에는 큰 궁전 같은 건물이 여기저기 솟아 있었다. 어떤 것은 아주 황폐해져 있었지만 그 중에는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 것도 있었다.
거칠어진 정원 곳곳에 커다란 석상이 있었고, 이곳 저곳에 둥근 지붕과 뾰족탑 같은 것이 우뚝 서 있었다. 울타리도 없고 농토의 소유권을 알게 해 주는 아무런 표지도 없었다. 근방이 모두 정원이었던 것이다.
이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나는 이제까지에 보아온 것들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는데, 그날 저녁에 내가 깨달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이건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는 사실을 반쯤이거나, 사실의 한 면 밖에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날 저녁,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교롭게 나는 인류의 마지막 시대에 맞부닥친 것이다.
붉은 저녁 해는 인류가 멸망해 가고 있는 시대에 와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해 주었다. 지금 우리들이 열성으로 해나가는 노력의 결과는 이런 것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나마 알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면 이건 당연한 결과였다. 힘이란 것은 필요에서 생기는 것이며, 안정된 생활은 힘의 필요를 없게 만든다. 생활 상태를 좋게 하려는 노력은 인류의 생활을 훨씬 더 안정된 것으로 하려는 문명의 활동이 착착 진행되어 그 절정에 이른 것이다. 자연을 이기려고 투쟁한 인류는 차례차례 승리를 거두어 왔다. 현재에서는 하나의 꿈이라 생각되는 일이 확실한 계획으로 옮겨져서 드디어 달성된 것이다. 그 성과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광경들인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위생 시설과 농업은 아직 초보 단계인 것이다. 현대 의학은 인간의 질병의 극히 적은 일부와 싸우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조금씩 쉬지 않고 그 활동을 넓혀 가고 있다. 현대의 농업과 원예는 곳곳에서 어떤 종류의 잡초를 전멸시키고 20여 종류의 유용 식물을 길러내었지만, 아직 대부분의 식물은 그대로 내버려두어서 식물 자체가 제 힘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이다. 우리들은 우리 맘에 드는 식물과 동물은 극소수이지만 선택하여 기르는 방법으로 차차 개량해 가고 있다. 맛좋은 복숭아라든가, 씨 없는 포도라든가, 보다 아름답고 큰 꽃이라든가, 보다 더 쓸모 있는 소라든가 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량은 목표가 분명하지 정해져 있지 않은 데다가 그 지식도 충분하지 못한 관계로 아주 손쉽게 해 내지는 못한다.
뿐만 아니라 자연은 소심하고 서투른 인간이 하는 일에는 그리 쉽게 응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러한 일도 훨씬 나아지고 훌륭하게 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때로는 길을 돌아가는 것 같은 결과가 된다손 치더라도 대체로 자연의 진행 과정인 것이다.
인류는 영리해져서 교양을 쌓고 서로 협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정복이라는 방향으로 점점 급속하게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동물과 식물의 균형을 주의 깊게 잘 조정해서 우리들 인간의 필요에 적합하도록 해 놓을 것이다.
이 미래 세계에서는 이 조정이 완수되었음이 틀림없었다. 그것도 아주 멋지게. 내가 타임 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에. 공중에는 단 한 마리의 모기도 없게 되고, 땅 위에는 한 포기의 잡초나 버섯도 없어졌다. 어디로 가나 과일과 향기로운 꽃으로 가득 차서 아름다운 나비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상적인 제초제나 살충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겠지.
질병도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나는 거기 있을 동안 한 번도 유행병 같은 것을 보지 못했다. 나중에 또 얘기하게 되리라 생각하지만 노화 현상이라는 것도 거의 없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사회생활의 향상이라는 것도 훌륭히 성취되어 있었다. 인류는 훌륭한 건물 속에 살며 좋은 의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하고 있지 않는 것이었다.
모든 분쟁은, 사회적 분쟁이나 경제적인 분쟁도, 완전히 없어졌다. 상점이나 광고나 교총이라는 것 따위도 모두 없어져 버렸다. 그러했기에 그 아름다운 저녁놀의 하늘 밑에서 내가 여기가 바로 천국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었다.
어려운 인구 증가의 문제도 해결됐으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렇듯이, 경우가 달라지자, 그 변화에 대해서 적응성이라는 것이 생겨지는 것은 아무 것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생물학이 잘못되어 있지 않다면, 인간의 지혜와 힘의 근원이 되는 것은 곤궁한 생활에서 빠져 나오려는 투쟁일 것이다. 이러한 조건 아래서는 활동적이고 힘과 지혜가 있는 자는 살아 남을 것이고, 약한 자는 멸망해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능력이 있는 자들이 협력하여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전체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가족 제도와 그로 인해 생기는 갖가지 일, 즉 치열한 투쟁과 자손에 대한 유전자 어버이들의 자기 희생의 정신 등은, 어린것들을 위험에서 지키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곳에 어떤 위험이 있다고 할 것인가!
나는 이 미래 세계의 인간의 육체적인 연약함과 지능의 낮음, 크고 많은 폐허 등을 보고 있는 동안에 이것은 자연이 완전히 정복된 결과라고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전쟁 다음에는 평화가 오는 것이다.
인류는 과거에는 강하고 영리했었다. 그리고 그 많은 에너지를 남김 없이 다 써서 자기들의 생활 환경의 개선을 꾀했다. 그리하여 지금 그 개선된 환경에 알맞은 것으로 인간이 변화된 것이다. 안전하게 마음이 편하고 안정된 환경에서는 지금 우리들의 힘으로 되어 있는 정력도 그다지 소용이 없는 것으로 되어 버릴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도 전에는 살아가기 위해 필요했던 어떤 종류의 성격이나 기질과 욕망은 자칫하면 실패의 원인이 될 것이다. 말하자면 육체적인 용기라든가 투쟁심이라든가 하는 것은 문명인에게는 별로 소용되지 않고, 아니 오히려 장애물로까지 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적당하게 균형이 잡혀 안정이 된 사회에서는 힘이란 것은 지적인 것이거나 육체적인 것이거나 모두 필요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마도 미래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전쟁과 폭력의 위험이라 무서운 짐승의 습격을 받을 걱정이 없어졌을 것이다. 또 강한 체력을 필요로 하는 소모성 질병도 없어지고, 애써 일하는 일도 없어진 것 같았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약한 자라고 하는 사람도 강한 사람과 같이 살아가는 힘을 가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약한 자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강한 자보다 훨씬 강한 것인지도 모른다. 강한 자는 그 힘을 쓸 곳이 없는 정력 때문에 오히려 괴로워하게 될 것이다. 내가 본 저 굉장히 아름다운 건물은 욕망과 정력을 가지고 있는 최후의 인간이 세워 놓은 것임에 틀림없다. 그 정력은 인류가 그들의 환경과 완전히 조화된 후로는 이미 필요 없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저 건물들은 인류에게 최후의 평화가 찾아왔을 때의 승리의 기념비인 것이다. 이것이 안정된 사회에서는 불필요하게 되어버렸을 것이며, 그것은 우선 예술과 쾌락으로 쏟아지다가 드디어는 무기력과 퇴폐가 닥쳐오게 된 것이리라. 예술에의 의욕도 나중에는 없어져 버릴 것이다. 내가 본 미래 세계에서도 그것은 벌써 거의 없어져 버렸다.
자기 자신을 꽃으로 장식하는 일, 태양 광선 속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일, 이런 것 정도가 예술적인 마음의 흔적이고 그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런 것조차도 앞으로는 희박해져서 꽉 찬 상태의 무기력 속에 사라져 버릴 것이다.
우리 현대인은 괴로움이나 가난이라는 숫돌로서 끊임없이 갈아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그런 고맙지 않은 숫돌 같은 건 이미 사라져 버린 것 같이 생각되었다.
차차 짙어오는 어두음 속에 서서 나는 이런 뒤늦게 얻은 해석으로 미래 세계의 문제를 이해했다고 생각했었다. 그 날씬한 인간의 수수께끼도 모두 풀렸다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미래 세계의 인간은, 늘어나는 인구를 억제하는 일에 성공한 것이리라. 아니, 지나치게 성공한 것이리라, 그 때문에, 그들의 인구는 필요 이상으로 줄어져 버린 것이리라. 사람이 살기 않는 건물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해석은 극히 단순했지만 이치에 정확하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 잘못된 이론이란 것이 대개 이런 것이긴 하지만.
 
사라져 버린 타임 머신
 
그 곳에 서서 인류의 완전한 승리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런 빛깔의 둥근 달이 은빛이 넘치고 있는 북동쪽 하늘에 떠올랐다. 아래쪽에서 돌아다니고 있던 밝은 빛깔의 옷을 입은 작은 이들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부엉이가 소리도 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나는 밤의 찬 기운에 몸을 떨었다. 나는 언덕을 내려가서 잠잘 곳을 찾기로 했다. 나는 낮에 따라갔던 건물을 찾으려 여기 저기 둘러보았다. 그러자 그 허연 스핑크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달빛이 밝아옴에 따라 뚜렷해졌다. 그것과 맞서 있는 자작나무도 보였다. 철쭉꽃의 수풀이 희푸른 달빛 속에 검게 보이고 그 자그마한 잔디밭도 보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그 잔디밭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가슴이 뛰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야!“
나는 억지로 나 자신에게 일러주고 있었다.
"저건 아까 그 잔디밭이 아니야!“
그리나 그건 아까 그 잔디밭이었다. 왜냐하면 허물어져 가는 스핑크스의 얼굴이 그 쪽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알았을 때, 나의 기분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겠는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타임 머신이 없어지지 않았는가 ?
느닷없이 채찍으로 얼굴을 후려쳐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나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그 괴상한 미래세계에 혼자 남아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전신이 쓰리고 아픈 것 같았다. 꽈악 목을 졸리어 숨이 막혀버리는 기분이었다. 다음 순간, 나는 공포에 떨며 정신없이 언덕을 뛰어갔다. 한 번 앞으로 고꾸라져서 얼굴을 찢겼다. 그러나 피 같은 걸 닦을 겨를도 없이 금방 일어나 또 달음박질을 해 내려갔다. 뜨뜻한 피가 볼에서 턱으로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나는 달리면서 계속 이렇게 지껄이고 있었다.
"그놈들은 조금 움직여 봤을 뿐일 거야. 거치적거리지 않게 풀숲 속에 넣어 두었을 뿐일 거야.“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꾸만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그런 따위의 일시적인 위안의 말이 얼마나 바보스런 것이라는 걸 깨닫고 타임 머신은 벌써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져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숨이 차서 괴로웠다. 언덕 꼭대기에서 작은 잔디밭까지는 3킬로미터는 충분히 되는데 나는 그걸 10분 정도 밖에 안 걸려 뛰어 내려 왔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미 젊지도 않은 이 내가 말일세.
나는 달리면서 타임 머신을 내버려두고 태만했던 나의 바보 같은 짓을 소리를 내어 욕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숨이 찼다. 큰 소리로 외쳤지만 대답 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 세계에는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잔디밭에까지 와 보고, 내가 가장 두려워 한 일이 현실로 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타임 머신은 깨끗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검은 수풀에 둘러싸인 빈 잔디밭을 보고 있으려니까 내 몸뚱이는 싸늘해지면서 갑자기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어디 한 구석에 숨겨놓은 거나 아닐까 하고 미친 사람처럼 돌아다니다가 우뚝 멈춰 서서는 머리칼을 움켜쥐고 잡아뜯기도 했다.
내 머리 위쪽에는 청동 받침대에 앉은 스핑크스가 달빛을 받아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나의 허둥대는 꼴을 보고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애써 나 자신을 위로해 보려 했다. 어쩌면, 작은 이들은 나를 위해 타임 머신을 어떤 곳에 보관해 둔 것인지도 모르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의 체력과 지능에서 볼 때 도저히 그런 일은 해 내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염려한 것은, 그 작은 이들은 내가 전혀 짐작하지 못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나의 발명품을 어느 곳에 운반하여 숨겨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안심해도 좋을 일이 있었다.
그것은 나와는 다른, 그것과 똑같은 기계를 발명한 사람이 없는 한, 타임 머신을 시간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발진 레버를 뽑아 놓은 이상, 나중에 그 구조를 설명하겠지만 그 누구도 그 기계를 시간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기계는 공간적으로 움직여져 숨겨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에다 숨겼단 말인가?
나는 아마 미친 사람처럼 변해 버렸을 것이다. 스핑크스의 주위의 수풀 속을 마구 휘젓고 돌아다녔는데 그 때 무엇인지 작고 희끄무레한 것이 뛰어나온 것을 기억한다.
희미한 달빛 속에서 그건 작은 노루가 아니었나 생각했다. 나는 그날 밤늦도록 주먹을 휘두르며 수풀을 헤치며 돌아다니고 있었으므로 손가락 끝에서 피가 나고 있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드디어 나는 괴로움을 못 이겨 울고 부르짖으며, 커다란 대리석 건물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큰 건물 안은 어둠과 고요뿐, 사람의 자취는 볼 수 없었다. 나는 울퉁불퉁한 마룻바닥에 걸려, 공작석 테이블에 부딪혀 하마터면 정강이를 깰 뻔했다. 성냥을 그어 먼지투성이의 커튼을 젖히며 걸어갔다. 커튼 저편 쪽도 널따란 홀이었다. 그 곳에는 쿠션(푹신푹신한 방석)이 가득 깔려 있었고, 20명 가량의 작은 이들이 자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다시 찾아온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튼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로 투덜대며 성냥을 그어 들고 조용하기 만한 어둠 속으로부터 불쑥 나타났으니까 말이다. 그들은 성냥 같은 건 이미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타임 머신은 어디 있나?"
나는 화난 어린애 모양 소리치며 작은 이들을 잡아 흔들어 일으켰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됐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대부분은 몹시 겁난 얼굴들을 했다.
내 주위에 모인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는 동안에 나는 퍼뜩 생각이 났다. 이런 경우에 그들의 공포심을 크게 하는 것 같은 행동을 하다니, 이 무슨 어리석은 짓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낮에 본 그들의 거동에서 생각해도 그들은 이미 내게서 두려움 같은 것은 갖지 않게 되었던 것이었다.
나는 곧 성냥을 내던지고 길목에 서 있던 한 작은 이 하나를 밀어 넘어뜨리면서, 넓은 식당을 마구 뛰어 달빛 속으로 뛰쳐나왔다.
작은 이들의 놀라 떠드는 소리와 작은 발로 왔다갔다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날 밤 나는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타임 머신이 없어지다니, 그런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다. 나는 친구들로부터 혼자 떨어져 나와, 알지 못하는 세계에 한 마리의 별난 동물로 남아있게 되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신과 운명을 저주하면서 미친 듯이 이곳 저곳을 헤매어 다녔을 것이다. 기나긴 절망의 밤이 깊어감에 따라 몹시 피로함을 느꼈다. 나는 타임 머신이 숨겨져 있을 만한 곳은 남기지 않고 들여다보고, 달빛을 받고 있는 폐허 속을 더듬으며 돌아다녔고, 어둠 속에서 무언지 모를 짐승 같은 것을 건드리기도 했다.
드디어 나는 스핑크스 곁에서 땅에 엎어져 뭐라고 표현할 수 얹는 처참한 기분으로 울기 시작했다. 내 마음은 엄청난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얼마 후, 나는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에는 아침이었다. 두세 마리의 참새가 잔디밭, 내 손이 닿을 만한 곳에서 나풀나풀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앉았다. 상쾌하게 맑은 아침이었다. 나는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지, 그리고 왜 이렇게도 불안하고 절망적인 기분이 드는지, 애써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간신히 지금까지의 일이 생각났다. 나는 간밤의 어리석고 발광적인 행동을 돌이켜보면서 자신에게 타일렀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나는 내 게 말했다.
"설령 타임 머신이 정말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깨어져 버렸다고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일은 침착하게 참고 견디는 일이다. 저들의 거동을 살피고 어떤 방법으로 타임 머신을 감추었는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재료와 도구를 구하는 방법을 연구하여 다시 또 한 대의 타임 머신을 만들어 내면 될 것이다.“
그렇게 라도 해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절망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그 곳은 아름답고 재미있는 세계였다.
그러다가 문득 단지 타임 머신은 어딘 가로 옮겨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더욱이 침착하고 끈기 있게 참으면서 그 숨겨 둔 장소를 알아내어 완력으로써, 아니면 어떻게 속여서라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자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어디 몸을 씻을 곳이 없나하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는 피로하여 몸이 굳어지고 흙투성이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주 쾌청한 아침이어서 나도 상쾌한 기분이 되고 싶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미 미쳐 날뛰며 돌아다닐 기운이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나는 다시 타임 머신을 찾기 시작했지만 어젯밤엔 어째서 그렇게까지 사납게 날뛰었는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나는 작은 잔디밭 주위의 땅을 세밀히 조사해 봤다. 그리고 지나가는 작은 이들을 붙들고 손짓 발짓으로 어떻게든 기계가 있는 곳을 물어 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들에게 나의 몸짓의 의미가 전달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자는 멍하니 서 있기만 하고 어떤 자는 내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웃기만 했다. 나는 그 아름다운 웃는 얼굴을 힘껏 때려 주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그들을 때리다니, 그야말로 어리석은 짓이지만, 공포심과 분노로 혼란에 빠져 있는 나의 마음은 자칫하면 격해져서 사납게 굴려고 하는 상태로 변해 있었다.
잔디밭이 훨씬 더 여러 가지 일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잔디밭에 한 줄로 곧게 홈이 파져 있는 걸 발견했다. 스핑크스의 받침대와,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뒤집혀진 타임 머신을 일으켜 세우려고 내가 남긴 발자국과의 바로 중간 지점이었다. 다른 곳으로 타임 머신을 움직여간 듯한 자취가 있었고, 작은 이들이 내었으리라 여겨지는 작고 긴 발자국들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스핑크스의 받침대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이 받침대는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청동의 큰 덩어리가 아니고 양쪽에 여러 가지 무늬가 새겨진 청동 판을 붙인 것이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그 청동 판을 두들겨 보았다. 받침대의 속은 텅 빈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청동 판을 조사해 보니, 판과 테두리가 빠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손잡이나 열쇠 구멍은 없었지만, 만일 이 판이 문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안 쪽에서 열리도록 되어있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이로써 한 가지는 명백해졌다. 타임 머신이 이 받침대 속에 있으리라는 생각은 당연한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그 속으로 옮겨 넣었는지 그것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주홍색 옷을 입은 두 작은 이의 머리가 수풀을 뚫고 꽃이 활짝 피어있는 능금나무 밑을 지나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빙긋 웃으며 그들 쪽을 향해 이리 오라는 뜻으로 손짓을 해 보였다. 두 사람이 다가오자, 나는 청동의 받침대를 손가락질하며 그것을 열고 싶다는 것을 손짓과 몸짓으로 알리려고 했다. 그런데 나의 손짓을 보자 그들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적당할지 모르지만 하여튼 굉장히 고상한 아가씨가 심히 쌍스런 몸짓을 보았을 때에 나타내는 그런 태도라고나 할까? 두 사람은 지독한 모욕을 당한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가 버렸다.
나는 다음에 온 흰옷을 입은 상냥한 얼굴의 작은 이에게도 지금 한 것과 같은 몸짓을 해 보였다. 결과는 꼭 같았다. 그걸 보자 웬일인지 나 자신도 부끄러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해서라도 타임 머신을 찾고 싶어서 또 한 번 그 시늉을 해 보였다. 그러나 아까 그 두 사람처럼 이 사람도 가버리려 하므로, 나는 왈칵 화가 났다. 큰 걸음으로 뒤쫓아가 그의 멱살을 잡고 스핑크스 쪽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상대의 얼굴에 나타나 있는 두려움과 미움의 표정을 보고 나는 황급히 그를 놓아주고 말았다. 그렇지만 아직도 단념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주먹으로 청동 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누군가가 킥킥 웃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내가 잘못 들은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이윽고 나는 강에서 제법 큰돌을 주워 왔다. 그것으로 청동 판에의 소용돌이 무늬가 망가지고 녹이 푸석푸석 벗겨질 때까지 계속 두들겨 댔다. 작은 이들은 내가 무서운 기세로 쾅쾅 두들기고 있는걸 1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도 능히 들었을 터인데, 단 한 사람도 와 보는 사람이 없었다.
언덕에서 한 떼의 작은 이들이 가만히 이쪽을 살펴보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어느덧 몸에 열이 나고 피로해져 물러나 앉아서 가만히 받침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성급한 나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유럽 사람인 내게는 너무 오래 지켜보는 일은 할 수 없었다. 한 문제를 가지고 몇 해나 걸려 연구하는 일은 가능해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24시간을 그냥 보내는 건 도저히 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얼마 후에 나는 일어나 다시 언덕 쪽을 향해 무턱대고 수풀을 헤치며 걸어가고 있었다.
"참는 거다.“
나는 나 자신에게 타일렀다. 타임 머신을 찾고 싶으면 스핑크스는 가만히 두어야 한다. 그놈들이 정말로 타임 머신을 빼앗아 갈 생각이었다면 청동의 받침대를 부셔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빼앗아 갈 생각이 아니라면 내가 부탁하면 곧 돌려 줄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가 알 수 없는 것뿐인 곳에서 이런 수수께끼를 풀려고 해 봤댔자 소용없는 일이다. 그런 일만 하고 있다가는 끝내는 미치고 말지도 모른다. 우선 이 세계를 잘 관찰하여 놈들이 하는 짓을 배워야겠다. 그러나 섣불리 그릇된 판단을 내리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지. 그리고 언젠가는 타임 머신을 되찾을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갑자기 내자신의 처지가 우스운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미래의 세계에 가보려고 몇 년을 두고 괴로운 연구를 계속해 왔었다. 그것이 이번에는 거기서 도망쳐 나가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를, 여태껏 아무도 생각해 보지도 못한 복잡하고 무서운 함정에다 밀어 넣은 것이었다. 모두 나 때문이지만 이젠 다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는 소리 내어 어허허허 웃어댔다.
전처럼 바로 그 큰 궁전 같은 건물에 들어가니, 작은 이들이 어쩐지 나를 슬슬 피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내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청동 받침대를 쾅쾅 두들겼던 때문인지 모를 일이었다. 하여간 그들이 나를 피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런 것에 모른 체 시치미를 떼며, 그들을 쫓아다니는 짓도 하지 않으려고 조심을 했다.
그렇게 한 덕분에 한 이틀 후에는 모든 것이 전과 같이 되었다. 나는 되도록 빨리 작은 이들의 말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한편, 여기 저기를 조사해 보러 돌아다녔다. 나는 자세한 것을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아주 간단한 말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맡은 거의 명사와 동사만으로 되어 있었다. 추상 명사가 있기는 해도 극히 적고, 형용사는 거의 없었다.
문장도 대체로 간단해서 보통 두 세 개의 낱말로 되어 있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극히 간단한 일 외에는 그들과 얘기를 곧 나눌 수가 있었다.
나는 타임 머신과 스핑크스 받침대의 수수께끼는 가급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좀더 여러 가지 일을 알게 되면 자연히 그 일도 알게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자네들도 알겠지만, 무엇인가 나를 불잡는 것이 있는 것처럼 나는 맨 처음 도착한 곳에서 4, 5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는 가지 않았다.
내가 있는 곳은 템즈 강 유역과 같이 경치가 무척 아름다운 곳이었다. 어느 언덕에 올라가 보아도 템즈 강 유역에 있는 것과 같은 훌륭한 건물들이 많이 보였고, 그 건물들은 재료와 형태도 여러 가지로 달랐다. 또 비슷비슷한 울창한 상록수의 숲과 꽃을 활짝 피운 나무들과 고사리들도 보였다.
곳곳에 강물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흐르고 강 건너 쪽은 땅은 차츰 높아져서 푸르게 물결치는 언덕을 이루고, 그 끝은 조용한 하늘 속으로 녹아들어 가 있는 것이었다.
얼마 후, 나는 이상한 것이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몇 개의 둥근 우물 같이 생긴 것인데 아주 깊은 것처럼 생각됐다.
그 중 하나는 처음 이 언덕에 올라왔을 때 지나간 오솔길 가에 있었다. 다른 우물들과 같이, 이 우물의 테두리도 묘한 무늬가 새겨진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조그마한 둥근 지붕이 비가 들지 않도록 덮여 있었다. 나는 이런 우물가에 걸터앉아서 깜깜한 우물 속을 들여다보았으나 물의 반사는 보이지 않았다. 성냥불을 켜 보아도 불빛의 반사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우물에서나 비슷한 소리가 들려 왔다. 큰 엔진이 돌고 있는 것 같은 덜덜덜덜 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성냥불의 흔들림에서 공기가 쉬지 않고 그 우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걸 알았다. 더욱이, 조그마한 종이쪽을 던졌더니 천천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휙하고 빨려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잠시 후, 나는 이 우물이 언덕 여기 저기에 서 있는 높은 탑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이 탑의 꼭대기에는 더운 날 햇볕에 쬐인 바닷가 같은 데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기의 흔들거림 같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일을 관련시켜 생각해 볼 때, 나는 이 땅 밑에 큰 환기 장치가 있음이 틀림없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 때문에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작은 이들의 위생 설비와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건 전혀 엉뚱한 추측에 불과했다.
여기서 말해 두지 않으면 안되겠지만, 나는 이 미래세계에 있는 동안, 하수도라든가 교통 기관이라든가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전연 알 길이 없었다. 이 날까지 내가 읽어 본 유토피아 이야기나 미래의 이야기 중에는 건물과 공공 시설 등에 관한 것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도 머리 속에서 생각하고 있기는 했지만 나처럼 실제로 그런 곳에 간 사람에게는 좀처럼 알기 어려운 것이다.
생전 처음으로 런던에 온 중앙 아프리카의 흑인이 제나라에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런던에 대한 얘기를 한다고 하자. 과연 뭐라고 설명할까? 그는 철도 회사에 대해서, 사회 운동에 대해서, 전신 전화에 대해서 운송 회사에 대해서, 우편환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 물론 우리들은 그 흑인 사나이에게 그런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해 주었다고 해서, 설령 그 사나이에게는 이해가 갔다고 하더라도 런던에 와 본 일이 없는 그의 친구들이 어느 만큼 이해를 하겠는가! 게다가 현재의 흑인과 백인과의 거리에 비교한다면, 나와 이 미래 세계의 인간과의 거리는 도무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큰 것이다.
나는 눈에는 띄지 않았지만 그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나 아마도 자동 장치가 있는 것 같다고 느꼈을 뿐 그 이상의 것은 알 수 없었다. 가령 시체를 매장하는 문제인데, 화장장과 무덤 같은 것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나는 아직 내가 탐험하지 못한 어느 곳에 묘지와 화장터가 있으려니 했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 여러 모로 깊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만족스런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궁리하고 있는 중에 또 한 가지 더욱 이상한 문제에 부닥쳤다. 이곳 사람들 중에는 노인이나 병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나는 앞에서 인류의 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결과 퇴화된 것 같다고 말했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달리 무슨 납득이 갈 만한 생각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여기서 나를 곤란하게 한 문제를 몇 가지 열거해 보기로 하겠다. 내가 이미 조사해 본 몇 개의 큰 건물은 주택과 대식당과 침실용으로 쓰이고 있었다. 기계와 연장 같은 따위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은 고운 의복을 입고 있는 것이 그 의복은 때에 따라 갈아입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들이 신고 있는 샌들도 장식은 붙어 있지 않았지만 금속제로 꽤 애써 만든 것이었다. 이런 물건들은 대체 어디서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 작은 이들에게서는 그런 걸 만들고 있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게도 없고 상점도 없다. 그렇다고 딴 곳에서 가져오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들은 하루 종일 재미있게 놀며, 강에서 헤엄을 치며, 장난 삼아 서로 사랑을 하기도 하며, 과일을 따먹으며, 잠자는 일 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활이 가능할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또 타임 머신에 대한 이야기지만 누군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흰 스핑크스의 받침대 속에다 옮겨 놓은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것 역시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물이 없는 우물과 공기가 일렁거리고 있는 탑도 그렇다. 무언가 하나의 실마리가 걸려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 느낌은 어떻게 말해야 좋을 것인가?
가령 이곳에 돌에 새겨진 글이 있다고 하자. 매우 쉬운 영어로 씌어져 있으나 그 가운데 전혀 알 수 없는 말과 문자가 섞여 있다는 바로 그런 느낌이었다.
도착한 지 사흘만에 내 눈에 비친 80만 2천 7백 1년의 세계란 것은......
그날 나는 한 친구, 아니 친구 비슷한 사람이 생겼다. 거기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
나는 몇 사람의 작은 이들이 강의 얕은 데서 목욕을 하고 있는 걸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이 갑자기 경련을 일으켜 물에 떠내려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강 한가운데는 물살이 세었다. 그렇지만 얼마쯤 헤엄을 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물살쯤은 전혀 문제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렇게 말하면 그 작은 이들의 체력이 얼마나 약한지를 자네들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네만.
눈앞에서 물에 빠져 애처롭게 울며 소리치고 치는 사람을 보고도 누구 하나 구해 주려 나서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걸 알자 재빨리 옷을 벗어 던지고 강 아래쪽으로 달려가서 가엾은 여자 작은 이를 붙잡아 무사히 육지에 끌어 올려 주었다.
손발을 잠시 주물러 주자, 그 여자는 곧 숨을 쉬고 깨어났다. 나는 그 여자가 완전히 기운을 차린 걸 본 다음, 그 곳을 떠나왔다. 나는 벌써 전적으로 그들을 무시하고 있었으므로 그 여자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받으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건 오전 중이었다. 그날 오후, 나는 탐험에서 돌아와 늘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할 때, 그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반가운 듯 소리치며 다가오더니 커다란 꽃다발을 내게 주었다. 그건 나를 위해 특별히 만든 것임이 분명했다. 이 꽃다발은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아마 내가 혼자 몸으로 외로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어쨌든 나는 이 선물에 대해서 정성껏 감사의 뜻을 나타내 보였다.
잠시 후, 우리는 돌로 지은 조그마한 정자에 앉아서 얘기를 시작했다고 하지만 사실 둘은 서로 웃어 보이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녀의 귀여움은 꼭 어린애의 귀여움과 같이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우리는 서로 꽃을 주고받으며, 또 그녀는 내 손에 키스를 해 주었다. 나도 같이 그녀의 손에 키스해 주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이 '위너'라는 것을 겨우 알았다. 무슨 뜻의 이름인지는 몰라도 그녀에게는 꼭 들어맞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그녀와 나의 기묘한 우정의 시초였다. 그건 1주일간 계속되다가 끝났지만, 거기 대해서는 차차 얘기하기로 하겠다.
그녀는 정말이지 꼭 어린애 같았다. 언제나 내 곁에 있고 싶어하여 내가 가는 곳은 어디라도 따라 오려고 했다. 그리고 가끔 탐험에도 따라 왔다가 도중에서 지쳐버리면 하는 수 없이 그대로 두고 탐험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는 애처롭게 나를 부르고 있었으나 나로서는 탐험을 중지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이런 작은 이와 연애 놀이를 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곳에까지 온 건 아니라고 나 자신에게 몇 번이고 타일렀다. 그러긴 했지만 내게서 혼자 떨어지자 슬퍼하는 그녀의 모습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어서 미친 듯이 나를 끌어 잡고 놓지 않으려 했다. 그때의 기분은 그다지 즐겁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사실 성가시기도 했다.
그건 어쨌든, 그녀는 내게 있어 큰 위안이 되었다. 나는 그녀가 내 곁에 따라다니는 것은 어린애 같은 애정에서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내가 그녀를 내버려두고 탐험을 지속한 일은 그녀를 크게 슬프게 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것도 나중에야 느끼게 될 일이었지만 그녀는 내게 있어서도 아주 소중한 그 무엇이 되었다. 그녀는 나를 퍽 좋아한 모양으로, 그걸 서투른 표정으로 알러 주었지만 그저 그랬을 뿐이고, 나는 작은 인형 같은 그녀가 있는 흰 스핑크스 곁으로 돌아오면, 마치 내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었다.
나는 언덕을 넘어 돌아올 때면 곧 흰색과 금빛의 옷을 입은 그녀의 조그만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 미래의 세계에도 아직 공포심이란 것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는 걸 안 것도 그녀에게서였다.
그녀는 해가 있을 동안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나를 우스울 정도로 믿고 있었다. 예를 든다면, 나는 갑자기 어이없는 말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무서운 얼굴을 해 보였다. 그래도 그녀는 방긋이 웃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어둠이나 그늘이나 검은 것을 무서워했다. 어둠은 그녀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너무도 지나치게 무서워하기에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주의 깊게 관찰을 해 보았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깨달았다. 작은 이들은 어두워지면 큰집에 모여 함께 잔다는 것이었다. 불을 들지 않고 거기에 들어가면 그들은 무서워하며 큰 소동을 벌였다. 어두워지기만 하면 밖에 나오는 사람이 없었고, 집안에서도 혼자 자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정말 바보였다. 그들이 왜 무서워하는가를 알려고 하지 않고 위너가 싫어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여러 사람들과 떨어져 나와 자겠다고 고집을 피웠던 것이었다.
위너는 매우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나에게 대한 애정 때문에 우리가 알게 된 후로는 다섯 밤을, 마지막의 하룻밤까지도 내 팔을 베고 잤던 것이었다.
아니, 위너 이야기로 그만 얘기가 딴 길로 흘러 버린 것 같다.
이전 그녀를 구조해 준 전날 밤의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나는 새벽에 잠이 깨어 눈을 떴다. 불안스런 밤이라 몹시 흉한 꿈을 꾼 것이었다. 내가 물에 빠졌는데 말미잘의 물렁물렁한 더듬이가 내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나는 징그러워 얼른 눈을 떴다.
이 때 무언지 회색의 것이 황급히 방에서 튀어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자려고 했으나 안정이 안 되고 무언가 불안한 기분이 계속되었다. 어두컴컴한 회색의 시간이었고, 모든 것이 어둠 속에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을 때였다. 모든 것이 그 빛깔은 알 수 없어도 형태만은 또렷했다. 그런데도 그 회색의 것은 진짜의 것이 아니라고만 생각되었다.
나는 일어나 큰 홀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 곳을 지나 궁전 앞 포석(돌로 만든 길) 위로 나왔다. 잠을 설쳤지만 그런 대로 해 돋는 광경이나 구경하리라 생각한 것이었다.
달은 이미 지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과 새벽의 희푸른 빛이 어우러져서 어쩐지 무시무시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풀들은 시꺼멓게 보이고, 땅은 회색, 하늘은 음산하게 흐려 있었다. 나는 언덕 위에 유령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언덕 비탈에 시선을 보내자 세 개의 흰 그림자가 몇 번이나 보였다. 흰 원숭이 같은 꼴을 한 것이 꽤 빠른 걸음으로 언덕을 올라가는 것도 두어 번 보였다. 한 번은 무너진 건물 옆을 같은 모양을 한 것이 셋이 무언지 꺼먼 물건을 운반해 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들은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뒤로 그것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수풀 속으로 사라졌을 것 같았다. 뭐니뭐니 해도 아직 밝지 않은 때였으므로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네들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그날 아침 일찍 느꼈던 불안하고 섬뜩한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나는 그 유령 같아 보인 것도 그런 기분 아래서 허깨비를 본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동쪽 하늘이 밝아져서 아침 햇빛이 비치자 사방에 다시금 싱싱한 빛깔이 되살아났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 허연 것은 그림자조차 없었다. 그것은 어둠침침한 곳에서 사는 생물인 모양이었다.
<정녕 유령이었나 보다. >
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 대체 어느 시대의 유령이었을까? >
이런 생각을 한 것은, 그랜트 앨런(18BB~1899;영국의 작가, 과학 해설자)의 그 괴이한 학설을 생각하고 우스워졌기 때문이었다.
그에 의하면 각 시대가 유령을 남긴다고 하며 나중에는 온 세계가 유령으로 가득 차 버릴 것이라고 했다. 이 설에 따르면, 그로부터 80만 년이나 지났으니 이곳에는 무수한 유령이 있음직도 하다. 한꺼번에 네 사람의 유령을 보았다 해서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농담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오전 중, 그냥 계속해서 아까 그 그림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뒤에 위너를 구조하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유령 생각은 완전히 머리에서 사라져 버렸던 것이었다.
나는 그 유령이 내가 미친 듯이 타임 머신을 찾으러 돌아다닐 때 나를 놀라게 한 그 허연 동물과 무슨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랬지만 유령 같은 걸 생각하고 있느니보다 위너를 생각하는 편이 훨씬 즐거웠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 유령들은 더욱더 나를 위협하게 된 것이다.
이미 말한 걸로 생각하지만, 이 미래 세계의 기후는 우리들의 세계보다 훨씬 따뜻했다. 까닭은 알 수 없지만 태양이 더 뜨거워진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지구가 더 태양에 가까이 간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태양은 앞으로 점점 식어 가는 것이라고 보통 생각하고들 있다. 다윈 2세(유명한 생물학자 다윈의 둘째 아들 천문학자)의 이론 같은 걸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유성은 최후에 가서는 하나 하나 그들의 어미별로 돌아간다는 걸 모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기면 태양은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 더욱 빛나는 것이다. 어쩌면 태양에 가까이 있던 유성들이 지금 말한 것과 같은 운명의 길을 밟아간 것인지 모를 일이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미래 세계의 태양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태양보다 훨씬 뜨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 몹시도 더운 아침, 여기 와서 나흘째 아침이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더위와 햇볕을 피하려고 내가 먹고 자고 하는 큰 우물 가까이 있는 커다란 폐허로 들어갔다. 나는 여기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
쌓아 놓은 돌무더기 사이로 기어 올라가자니까 좁은 복도가 나왔다. 끝과 양쪽 창은 무너져 내린 돌덩이들로 막아 놓고 있었다.
이제까지 바깥 밝은 곳에 있던 나는 처음엔 너무나 어두운 걸 느꼈다. 손을 저어 더듬으며 들어갔다. 밝은 데 있던 내 눈이 앞을 잘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돌연 나는 우뚝 멈춰 섰다. 밖의 햇볕을 막아 번쩍번쩍 빛나는 두 개의 눈이 어둠 속에서 물끄러미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사나운 짐승을 무서워한 태고의 본능적인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빤히 그 빛나는 눈을 쏘아보았다. 무섭다고 해서 무턱대고 달아나 버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퍼뜩 나는 여기서는 인간은 지극히 안전하게 살고 있다는 걸 생각해 냈다. 그리고 또 어둠을 이상하게도 무서워하고 있는 걸 생각했다.
나는 애써 두려움을 참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소리를 질러 봤다. 바른 데로 말하면 내 목소리는 낮게 됐었을 것이고 또 떨렸을 것이다.
손을 내밀자 무언지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그 순간 빛나는 눈은 휙 옆으로 비켜나고 무언지 허연 것이 내 옆을 지나 도망쳐 갔다. 나는 간이 콩알만해져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건 묘하게 작은 원숭이 같은 것이 괴상한 모양으로 머리를 숙이고 뒤쪽 햇볕이 쬐는 곳을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돌무더기에 부딪쳐 잠시 망설이더니 곧 옆으로 빠져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돌무더기 밑의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
물론 똑똑히 보지는 못했지만 둔한 흰 빛깔을 하고 있었고, 회색이 섞인 붉고 큰 눈을 하고, 머리에서부터 등에 걸쳐 머리털을 늘어뜨리고 있는 걸 알았다. 그러나, 너무나 빨리 달아났기 때문에 그렇게 자세히는 볼 수 없었다. 네 발로 달려간 것인지, 아니면 팔을 아래로 낮게 내려뜨리고 달려간 것인지도 확실하지가 않았다.
나는 한 숨 돌리고 나서 그 놈의 뒤를 쫓아 둘째 돌무더기 사이로 들어가 보았다.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깜깜한 어둠 속에, 전에 말한, 그 둥근 우물 같은 것이 있는 걸 알았다. 그것은 쌓아진 돌기둥으로 반쯤 덮여 숨겨져 있었다. 나는 퍼뜩, 저 생물은 이 우물 구멍으로 도망쳐 들어 간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성냥을 그어 구멍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조그만 회색 생물이 도망쳐 들어가며 커다란 눈을 빛내어 이쪽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오싹했다. 꼭 인간의 모습을 한 거미 같았다. 그놈은 우물을 기어내려 갔다. 그 때 처음으로 깨달았지만, 우물의 안쪽에는 쇠붙이로 된 손과 발을 받칠 것이 많이 박혀 있어서 마치 사닥다리의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성냥개비의 불이 손가락을 뜨겁게 했으므로 나는 성냥불을 내버렸다. 그것은 떨어져 내려가는 도중에 꺼져버렸다. 다시 한 번 성냥을 켰을 때는 이미 그 작은 괴물은 사라지고 없었다. 얼마 동안이나 우물 언저리에 앉아서 그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 본 것이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나 차차 생각을 정리 할 수 있게 되었다.
미래 세계의 인간은 한 종류뿐만이 아니라 두 종류의 인간으로 나누어진 것이 아닐까?
지상 세계에 있는 그 우아한 작은 이들만이 우리들의 자손은 아니었다. 아까 내 곁을 스쳐 지나간 그 창백하고 보기 흉한 밤의 생물도 우리들의 자손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나는 공기가 아른거리고 있던 탑과 지하의 환기 설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여우같고 원숭이 같기도 한 인간은, 이 미래 세계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 빈둥빈둥 할 일없이 살고 있는 지상 세계의 아름다운 사람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 우물 속에는 대체 어떤 것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나는 우물가에 걸터앉아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어쨌든 그 무엇이나 무서워할 건 없다. 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선 내려가 보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그러나 내려가 보자고 생각하니 어쩐지 무서웠다.
아직 내가 망설이고 있을 때, 지상의 세계의 아름다운 두 사람이 희롱을 하면서 햇빛 속을 달려와서 그늘진 곳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여자를 쫓아오면서 꽃을 던져 주고 있었다. 그들은, 넘어져 있는 집 기둥에 손을 걸치고 우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보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 우물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로 되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그 우물을 가리키며 그들의 말로서 물어 보려고 하자, 두 사람은 점점 더 난처하다는 표정을 하고 얼굴을 돌려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성냥에는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재미있어 하라고 성냥을 두세 번 켜 보였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물에 대해서 물어 보려고 했지만 역시 허사였다. 그래서, 두 사람을 거기에 내버려두고 위너에게로 돌아가 그녀에게 물어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 때, 내 생각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지금까지 생각하거나 느낀 일과는 다른 새로운 생각이 내 머리에 떠오른 것이었다. 나는 이런 우물과 환기탑과 유령 등의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물론 청동 판의 의미와 타임 머신의 운명에 대해서도. 그리고 아직은 극히 막연한 것이긴 했지만, 내 머리를 괴롭힌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새로운 생각이란 것은 이러한 것이었다.
즉, 이 제2의 종류에 속하는 인간은 틀림없이 지하에 살고 있을 것이다. 특히 세 가지 일로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인데, 그들이 좀처럼 지상에 나오지 않는 것은 우선 오랜 지하 생활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사는 동물에는 흔히 그런 것이 있었다.
예를 든다면 켄터키 주(미국 중동부에 있는 주)에 있는 동굴 속의 흰 물고기 같은 것. 그리고 그 빛을 잘 반사하는 커다란 눈, 그것은 밤에 나다니는 동물에 공통된 특징이다. 올빼미와 고양이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태양 광선이 비치는 곳에서는 몹시 허둥대고 어두운 그늘을 향해 부리나케 도망쳐 가는 일, 그리고 밝은 곳에서는 묘하게 머리를 숙이고 있는 일, 이건 모두 그들의 눈에 있는 망막이 빛에 몹시 민감함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내 발 밑에는 커다란 터널이 수없이 파져 있음이 확실하다. 그리고 그 곳이 이 지하 인종의 거주지인 것이다. 언덕 비탈의 환기탑과 우물은, 사실 강 양쪽의 골짜기를 제외하면 그것은 곳곳마다 있었다. 이 터널의 그물이 얼마나 널리 펼쳐져 있는가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인공의 지하 세계에서는 지상의 인간들이 안락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 생각은 극히 정당한 것으로 느껴졌으므로 나는 곧 그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어째서 인류가 둘로 갈라지게 됐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가는 벌써 자네들에게도 대충 전달이 되겠지만, 나는 곧 그것이 전혀 사실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우선 우리들 시대의 일에서부터 생각해 나가면 모든 일은 명료해지리라 생각했다. 현재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와의 차이는 일시적, 사회적인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점점 광범하게 되어 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이러한 사고 방법은 자네들에게는 무척 바보스럽게 보일지도 모르겠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현재에도 그러한 징조는 계속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지하의 공간을 여러 가지 목적에 이용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런던의 지하철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새로운 전차도 있고 지하도도 있으며 지하의 공장이나 레스토랑도 있는데 그런 것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반드시 이런 경향이 점점 심해져서 드디어는 푸른 하늘 아래서는 일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점점 깊고, 점점 넓고 크게 되어 가는 지하의 공장으로 들어간 인간은 거기서 점점 더 긴 시간을 보내게 되고 결국엔......!
현재에도 이스트 엔드(런던의 빈민의 거리)의 노동자들은 지상의 자연으로부터 아주 떨어져 나가 인공적인 장소에서 살고 있지 않는가!
한편, 부유한 자들에게는 배타적인 경향이 있어서, 이건 그들의 교육이 점점 높아져 가난한 사람들과의 거리가 더욱더 멀어진 결과일 테지만, 땅의 대부분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독차지하려 들고 있다.
이를테면 런던 주변의 아름다운 토지의 반쯤은 아마도 일반 사람에게는 드나들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부유한 자들은 점점 교육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더욱더 세련된 생활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들과의 괴리는 한층 더 커지고,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뒤바뀌거나 서로 결혼을 하거나 하는 일은 점점 더 없어져 간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아직 그러한 결혼이 이따금 행해져서 인류가 딱 둘로 갈라지는 걸 겨우 막고 있는 셈이라고 하겠다. 그래서, 드디어 지상에는 가진 자들만이 살며 쾌락과 아름다음을 추구하고, 지하에는 가난한 노동자들이 살며 그들의 노동 환경에 적합한 형태로 변해 가는 것이다.
지하에 들어간 자들은 필시 동굴 속의 환기료를, 그것도 적지 않은 돈을 물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만일 그걸 내지 않으면 굶어 죽게 하거나 질식시켜 버릴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로서의 소질이 없는 자와 반항적인 자는 죽여 버릴 것이다.
결국 이러한 두 개의 계급 관계는 영구적인 것이 되어 살아 남은 자들은 지하 생활에 익숙해져서, 지상의 인간이 행복하듯이, 그들도 또한 그들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러니까 지상의 인간이 세련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지하의 인간들이 창백한 피부를 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내가 꿈꾸고 있던 인류의 위대한 승리한 것은 이런 형태의 것은 아니었다. 이 곳에 있는 것은 내가 상상한 것 같은, 도덕 교육의 승리라든가, 전체적인 협력의 승리라든가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목격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완성된 과학과 현재의 생산 제도를 합리적으로 밀고 나간 제도에 의해 지켜진 진짜 귀족 계급이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승리일 뿐만 아니라 다른 종류로 변한, 같은 인간에 대한 승리이기도 했다.
미리 양해를 구하는 바이지만, 이것은 그 때 내가 생각한 이론이었다.
나에게는 유토피아 이야기에 나오는 것 같은 편리한 해설자는 없었다. 나의 설명은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가장 올바른 사고 방식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해서 비로소 달성된, 균형이 잡힌 문명은 벌써 전성 시대를 지나 이제 바야흐로 쇠퇴기에 들어가 있는 것이었다.
지상 세계의 인간은 너무나 완전하기 지나치도록 보장되었기 때문에 점차 퇴화해서 체격이나 체력이나 지적 능력 등이 모두 약해져 버렸다. 그건 이미 확실하게 나타나 보였다. 지하세계의 인간에 대해서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 있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몰록' (곁들여서 말해 두지만, 지하의 인간은 이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은 '엘로이' (이것이 저 아름다운 지상 인간의 이름이다)보다 훨씬 크게 변화했을 것으로 생각됐다.
아직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었다. 왜 몰록은 나의 타임 머신을 훔쳐 갔는가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타임 머신을 훔쳐 간 건 그들임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엘로이가 이 세계의 지배자라면 왜 나를 위해 빼앗아 주지 못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그렇게도 어둠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일까?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위너에게도 지하 세계에 대하여 물어보았지만, 역시 실망했을 뿐이다. 처음에 그녀는 나의 질문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체 했다. 다음에는 대답하기를 거절했다. 위너는 그런 건 말을 하기조차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리고 내가 조금 무섭게 다그쳐 묻자 그만 울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눈물은 내가 미래 세계에서 본, 내가 흘린 눈물은 별도로 하고, 단 하나의 눈물이었다. 위너의 눈물을 보고, 나는 그 이상 몰록에 대해 묻는 것을 그만 두고 어떻게든 위너의 눈에서 현재 인간의 잔재인 눈물을 그치게 하려고 생각했다. 내가 성냥을 그어 보이자, 위니는 곧 생글생글 웃기 시작하더니 이내 즐거운 듯 손뼉을 치는 것이었다.
 
살며시 다가오는 몰록
 
자네들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가 새로운 단서를 잡아 거기에 의해서 타임 머신의 행방을 찾으려 한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나 지나서였다. 그 창백한 인간을 생각하면 나는 왠지 꽁무니를 빼고 싶어지기만 했다. 그놈들은 구더기나 박물관에 있는 알코올에 담긴 표본처럼 하얗게 빛이 바랜 색깔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만지면 오싹할 정도로 차가웠다. 내가 꽁무니를 뺀 것은 아마 엘로이들의 영향을 받아서일 것이다. 그들이 몰록을 싫어하는 기분을 조금은 알게 되는 것같이 느껴졌다.
다음 날 밤,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몸이 조금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렇다 할 이유도 없으면서 한두 번 굉장히 무서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달빛을 받고 작은 이들이 자고 있는 큰 홀(그날 밤은 위너도 그들과 같이 있었다)에 간만에 들어가서 그들이 거기 있는 걸 보고서야 마음이 놓여진 게 생각난다. 그때 문득 생각난 일이지만, 앞으로 2, 3일이 지나면 달은 4분의 1로 기울어져 어두운 밤이 계속된다. 그렇게 되면 저 지하의 허연 여우 원숭이 같은 누추한 생물들이 옛날 사람을 해치는 짐승을 대신하여 새로운 짐승으로 더욱 많이 나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때 그 이틀동안 나는 자기의 임무를 게을리 한 사람 같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타임 머신을 되찾으려면 용감하게 지하로 들어가서 그들의 비밀을 캐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 비밀에 맞서 들어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친구가 있었다면 물론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완전히 외로운 혼자였다. 캄캄한 우물을 내려가는 것만 해도 내 마음은 벌써 기가 죽는 것이었다.
이 기분은 도저히 자네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만 뒤쪽이 몹시도 불안했던 것이다. 아마 이런 초조와 불안을 느꼈기 때문에 오히려 나는 이제까지 보다 더 먼 곳까지 탐험을 떠났던 것이다. 동서쪽, 현재 '쿰드'라 불리고 있는 지금의 언덕 지대를 걸어가면, 멀리 저편, 지금의 번스테드 쪽에 초록색 큰 건물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건 이제까지 보아온 건물과는 다른 것으로 생각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큰 궁전과 어떤 폐허보다도 컸다.
건물의 정면은 동양풍으로 되어 있었고, 표면은 엷은 초록색으로 광채가 났다. 어떤 종류의 중국 도자기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청록색이었다. 외관이 다른 것은 사용 목적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하여튼 나는 그 안에 들어가서 조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꽤 시간이 늦은 것 같았다. 그 곳까지 가는데 꽤 긴 거리를 걸었기 때문에 피로해 있었다. 그래서 탐험은 내일로 미루기로 하고 나는 되돌아와서 작은 위너의 환영과 포옹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어제 내가 그 청자의 궁전을 탐험해 보고자 한 것은 자기의 기분을 속이기 위한 까닭이었음을 또렷이 알았다. 무서운 지하 탐험을 하루라도 뒤로 미루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나는 더 어물거리고 있을 게 아니라 곧 지하로 내려가 보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 다음 날 아침 일찍, 그 화강암과 알루미늄의 폐허에 가까이 있는 우물을 향해 출발했다. 위너도 잰걸음으로 따라왔다. 그녀는 즐거운 듯 내 옆을 춤추듯 걸으며 우물까지 왔는데, 내가 우물가에서 아래를 들여다보자, 몹시 당황하는 것 같았다.
"위너, 안녕!“
하고 내가 그녀를 안아 올려 키스를 했다. 그러고는 땅에 내려놓고 우물 벽을 더듬어 발 디딜 곳을 찾았다. 나는 아주 빨리 그걸 찾았지만 사실을 말하면 용기가 없어질 걸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위너가 놀라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아주 슬픈 소리로 나를 부르며 다가와서 작은 손으로 나를 끌어 당겼다.
그녀가 반대를 했기에 도리어 들어 갈 용기가 난 것도 같았다. 나는 약간 난폭하게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끝내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우물가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위너의 수심에 싸인 얼굴이 보였다.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싱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건들건들 흔들리는 디딤쇠를 꽉 붙들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우물의 깊이는 대충 200미터가 돼 보였다. 나는 그 깊이를 내려가지 않으면 안 됐다.
내려가는 데는 벽에서 비쭉비쭉 나와 있는 쇠끝을 이용하는 것인데, 그것들은 나보다 훨씬 작고 가벼운 사람의 몸에 맞춰 만들어진 것이라 곧 피로해지고 몸이 굳어져 왔다. 아니, 피로해진 것만이 아니었다. 쇠끝 하나가 나의 몸무게로 해서 갑자기 휘어져 하마터면 깜깜한 어둠 속으로 떨어져 버릴 뻔했던 것이었다.
나는 잠시 동안 한 손으로 매달려 있었는데 이때부터는 쉬지 않고 내려가야 했다. 이윽고 팔과 등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되도록 빨리 디딤쇠를 갈아 잡으며 내려갔다.
퍼뜩 위를 쳐다보니 우물 구멍이 조그마한 푸른 원반 같이 보이고 그 속에 별이 하나 보였다. 위너의 머리가 동그랗게 내밀고 있는 것도 보였다.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덜덜덜 하는 기계 소리가 점점 커져서 기분이 나빠졌다.
머리 위의 조그만 원반 밖에는 어디나 모두 깊은 어둠이었다. 조금 있다 다시 한 번 쳐다보았을 때엔 위너의 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형언할 수 없이 불안스런 기분이었다. 그냥 도로 올라가서 지하의 세계에 관한 일 같은 것은 잊어버리기로 할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그냥 내려가고 있었다.
드디어 30센티미터쯤 오른쪽 벽에서 옆으로 뚫린 조그만 구멍이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그제야 안심을 했다. 얼른 기어 들어가 보니 그것은 수평으로 된 좁은 터널의 입구였다. 누워서 쉴 수가 있는 곳이었다. 아주 제때에 발견된 셈이었다. 팔은 아프고 어깨는 떨리어 이제라도 떨어지지 않나 하고 진땀이 나던 참이었다. 게다가 어디를 봐도 깜깜한 암흑이어서 눈이 이상해져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곳으로 공기를 끌어들이는 기계의 덜덜거리는 소리가 땅 속을 울리고 있었다. 얼마 동안 그곳에 누워 있었는지 모르지만 흐느적거리는 손이 내 얼굴에 닿아 깜짝 놀랐다. 어둠 속에 벌떡 일어나 앉자 성냥갑을 꺼내어 급히 불을 켰다. 그 불빛으로 내 위에서 들여다보고 있던 허연 생물 셋이 황급히 달아나는 게 보였다. 언젠가 지상의 폐허에서 본 것과 같은 것들이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살고 있으므로 그들의 눈은 별나게 크고 민감했다. 꼭 바다 깊은 데 있는 물고기의 눈처럼 빛을 반사하는 것이었다.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나를 잘도 알아본 모양이었다. 성냥불만 없었다면 나 같은 건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좀더 자세히 관찰하려고 성냥을 긋기가 바쁘게 쏜살같이 도망쳐 어두운 바위 뒤나 터널 속에 숨더니 거기서 기분 나쁜 눈초리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지상 세계의 말과는 다른 듯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탐험을 중단하고 도망쳐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이미 시작한 일이다.>
터널 속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가니 기계 소리는 점점 커져 왔다. 이윽고 터널이 넓어지더니 넓은 곳에 이르렀다. 성냥 한 개피를 그어 보니 천장이 둥글게 된 큰 동굴에 와 있었다. 어두운 동굴은 성냥불이 비춰지지도 않는 저 앞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하기야 성냥 한 개피가 타고 있을 동안에 본 것이므로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었다. 그러기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일도 그리 확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커다란 기계 같은 것이 어둠 속에 높다랗게 서 있는데 그 그림자 속에 희미한 유령 같은 몰록들이 성냥불 빛을 피해 숨어 있었다. 그런데, 그 곳은 공기가 탁해서 후덥지근하고 피비린내 같은 것이 코에 스며들어 왔다.
중앙에서 좀 떨어진 곳에 흰 금속의 조그마한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 고기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그것을 보면 몰록들은 육식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수상하다고 생각한 걸 기억하고 있다. 그 커다란 붉은 고깃덩어리를 보면 상당히 큰 동물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그런 동물이 살아 남아 있었던 것일까?
모든 것이 흐릿하게만 보였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냄새, 정체 모를 커다란 고깃덩어리, 어둠 속에 숨어서 가만히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내게로 공격해 오려고 노려보고 있는 흉물스런 몰록인들.
성냥개비가 다 타서 땅바닥에 떨어져 어둠 속에 조그만 붉은 점이 되어 굴렀다. 나는 시간 여행에 나서면서 어쩌면 이렇게도 허술한 장비 밖에 하지 않았던가 하고 후회를 했다.
타임 머신에 올라 출발할 때, 나는 어리석게도 미래 세계의 인간은 모든 점에 있어 현재의 우리들보다 훨씬 진보되어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나는 무기도 약품도 담배도 준비하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아주 담배가 피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충분한 성냥까지도 준비하지 않고 온 것이다. 카메라를 가져 왔더라면 지하 세계를 찍어 뒷날 천천히 조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데 실제는 하늘이 준 무기, 내 손과 발과 이빨만 가지고 여기에 온 것이다. 이제 남아 있는 건 그 무기들과 네 개비의 성냥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기계가 있는 곳으로 가는 건 무서웠다. 더구나 성냥불이 꺼지기 전의 그 작은 불빛으로 이미 성냥도 거의 동이 난 걸 알았다. 그 때까지 성냥을 아낄 필요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거의 반 갑이나 되는 성냥을 지상 세계의 인간들을 즐겁게 해 주느라고 써 버렸던 것이었다.
불이란 그들에게는 참으로 진귀한 것이었다. 이제 남은 성냥은 단 네 개비뿐이었다. 어둠 속에 서 있으려니까 손이 하나 내 손을 건드리고 앙상한 손가락이 내 얼굴 위를 더듬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비린 냄새가 코를 찌른다.
내 주위에는 그 흉한 몰록들이 몰려와 있어서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성냥갑이 가만히 빠져나가게 당겨지는 것 같았고, 몇 개의 손이 뒤에서 내 옷을 잡아당기는 걸 느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들에게 신체 검사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짓을 하려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것이 어둠 속에서 돌연 알고도 남을 만큼 깨달아졌던 것이었다.
나는 되도록 큰 소리로 야단을 쳐봤다. 그러자 그들은 휙 달아났다. 그리고도 곧 다시 슬슬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층 더 대담해져서 내 옷을 잡고 저희들끼리 괴상한 소리로 속삭이는 것이었다.
나는 와들와들 떨면서 또 한 번 소릴 쳤다. 그 소리는 외치는 소리에 가까웠다. 이번 소리에는 그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도리어 괴상한 웃음소리를 지르면서 내게 덤벼들었다. 정말이지 나는 겁이 더럭 났다.
나는 또 한 개비의 성냥을 그어서 그 불빛을 이용해서 도망을 칠 생각을 했다. 성냥을 그어, 주머니에서 종이 조각을 꺼내 거기에다 불을 붙여 좁은 터널 쪽으로 도망쳐 갔다. 그러나, 터널에 들어섰을 때, 종이의 불은 꺼져 버렸다. 어둠 속을 몰록들이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소리 같은 소리를 내면서 비 쏟아지는 소리로 뒤쫓아오는 걸 알았다. 아차 하는 순간에 나는 몇이나 되는 손아귀에 붙들렸다. 틀림없이 그들은 나를 잡으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또 한 개비의 성냥을 그어 깜짝 놀라는 그들의 얼굴 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그들이 얼마나 추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자네들은 정말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다.
턱이 없는 창백한 얼굴과, 눈꺼풀이 없고 분홍색이 곁들인 커다란 회색의 눈. 그리고 눈이 부시어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의 그 얼굴이란......!
그러나 멈춰 서서 그런 걸 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계속 뛰었고 두 개비의 성냥이 다 타 버리자, 세 개비 째의 성냥을 그었다. 그것이 거의 다 탔을 때 간신히 터널 입구에 다다랐다. 나는 거기서 턱 드러누웠다. 아래서 들려오는 커다란 펌프 소리에 현기증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옆으로 팔을 뻗어 발 디딤쇠를 찾았으나 그때 뒤에서 다리를 붙잡혀 와락 뒤로 끌어당겨졌다.
나는 마지막 성냥을 그었다. 그러나, 그건 금방 꺼져 버렸다.
그래도 내 손은 디딤쇠를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힘차게 다리로 걷어차서 몰록들의 손을 떼어버리고는, 그들이 눈을 끔벅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는 동안에 빨리빨리 우물 벽을 올라갔다. 그런데도 단 한 녀석, 나를 한참 동안 따라오는 놈이 있어 하마터면 구두를 빼앗길 뻔했다.
어디까지 기어올라가도 한이 없는 것 같았다. 앞으로 7미터 정도 남았을 때, 심한 구역질이 나려고 했다. 디딤쇠에 매달려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최후의 2, 3미터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하는 싸움이었다. 몇 번이나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드디어 우물가를 넘어서서 비틀거리며 폐허를 빠져 나와 밝은 태양 광선 속으로 날아갔다. 거기서 나는 앞으로 픽 쓰러졌다. 흙 냄새가 실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위너가 내 손과 귀에 키스를 하고, 다른 엘로이들의 목소리가 들린 걸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는 실신을 해서 한동안 정신없이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안전한 잠자리를 찾아서
 
그런데 나의 처지는 전보다 훨씬 나빠진 것같이 느껴졌다. 지금까지는 밤이 되면 타임 머신을 잃은 것을 후회하고 있었지만, 낮에는 언젠가는 반드시 도망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곤 했었다. 그런데 그 희망이 이번의 탐험으로 흔들리게 된 것이었다. 이제까지 나는, 타임 머신은 작은 이들이 단순히 어린애 같은 장난으로 감춰 버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혹시 무언가 정체를 모를 힘에 의해서 숨겨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낼 방법만 알게 되면 도로 찾아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 몰록이라는 보기 싫은 놈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냉혹하고 무서운 인간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전에는 굴속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굴에 대한 일과 거기서 나오는 일만 생각했었다. 그랬지만 지금의 나는 덫에 채인 짐승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라도 적이 다가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두려워한 적은, 자네들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초생달 밤의 어두움이었다.
언젠가 위너는 이 어두운 밤에 대해서 얘기해 준 일이 있었는데, 나는 그게 어떤 뜻인지 몰랐었다. 그리나 이제는 차차 나에게 가까이 오는 어두운 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짐작해서 알 수가 있었다. 달은 벌써 기울기 시작하여 밤마다 어두운 시간이 길어졌다. 이제는 적어도 어느 정도는 왜 지상의 작은 이들이 어두움을 무서워하는 가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몰록들이 어두운 초생달 밤에 어떤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일까?
나는 두 번째로 세운 가설도 전혀 틀린 것이었다는 걸 제법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일찍이 지상 세계의 인간들은 풍족한 귀족 계급이었다. 몰록들은 이들에게 기계와 같이 부려지는 하인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이미 그 옛날에 변해져서 인류가 진화한 결과 생겨난 이 두 인종은 아주 새로운 관계에 옮아가려 하고 있었거나 이미 옮아가 버린 것이었다.
엘로이들은 카를링 왕조(751~987년의 프랑스의 왕조)의 왕들처럼 오직 아름다운 겉치레만의 것이 되 버린 것이었다. 그들이 아직까지 지상을 점유하고 있는 것은 몰록들이 오랫동안 지하 생활을 계속해 온 결과 밝은 지상 생활에 견디지 못하게 된 탓이리라. 나의 상상으로는, 몰록들은 엘로이들을 길러 주고 있었지만 그건 아마 그들이 엘로이의 하인이었을 시대의 낡은 습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그걸 마치, 말이 앞발로 땅을 파헤치듯이, 인간이 사냥으로 잡은 짐승을 죽이며 즐기듯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오래 된 습관이란 것은 소용이 없어졌는데도 좀처럼 인간에게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낡은 질서의 한 부분이 무너진 것은 확실했다. 복수의 여신은 지금 급속히 엘로이들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오랜 옛날, 몇 천 세대 전 옛날, 인류는 자기들의 형제인 인간을 안락한 생황과 태양 아래 밝은 곳으로부터 추방했다. 지금 그 형제들이 되돌아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어서......
엘로이들은 이제 새삼 옛날의 교훈을 배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시금 '두려움'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불현듯, 그 지하에서 본 고깃덩어리가 생각났다. 왜 그런 것이 생각났는지 이상한 기분이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머리에 떠오른 것이 아니고 갑자기 생각난 것이었다. 나는 그 고기의 모양을 생각해 내려 했다. 무엇인가를 닮은 걸 본 일이 있는 것 같았으나 그 때는 그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었다.
그런데, 엘로이들이 신비적인 공포에 대해서 전연 무력했다 하더라도, 나는 그들과 다르다. 나는 현대인이다. 벌써 공포에 의해 인간이 무력해지거나, 신비에 의해서 겁을 내거나 하지는 않는 것이다. 이 인류의 전성기인 현대의 인간인 것이다. 적어도 나는 자기 스스로 나를 지킬 작정이다. 나는 주저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무기와, 안심하고 잘 수 있는 편한 보루로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로 했다. 그 보루를 발판으로 하면 나도 이 기묘한 세계에 충분히 대항해 갈 수가 있을 것이다. 밤마다 어떤 괴물이 습격해 올지 모른다해서 온통 잃어버렸던 자신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놈들에 대해서 안전한 잠자리를 발견할 때까지는 아무래도 잠을 잘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놈들은 나에 대해서 샅샅이 조사를 했을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 졌다.
그 날 오후 나는 템즈 강 유역을 거닐며 찾아보았는데 몰록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여겨지는 장소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 우물 같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기어오르기를 잘하기 때문에 어떤 건물이나 높은 나무라도 간단히 올라올 것이 뻔했다.
그 때, 저 청자 궁전의 높은 뾰족탑과 번쩍번쩍 빛나는 벽이 퍼뜩 생각났다. 그래서 저녁나절, 나는 위니를 어깨에 올려 앉히고 남서쪽을 향해 언덕을 올라갔다. 거기서는 12,3킬로미터 가량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석실은 30킬로미터 가까운 거리였다.
처음 그 궁전을 본 것은 안개 낀 오후였다. 그런 때에는 실제보다 가까이 보이는 것이었다. 게다가 한쪽 구두 뒤축이 떨어져 나가서 못이 발바닥을 찔러 이 구두는 집에 있을 때 신던 것으로 헌 구두인 만큼 발이 편한 것이었다.
나는 절뚝거리며 걷고 있었다. 궁전이 보이는 데까지 갔을 때 해는 이미 지고, 길게 보이는 건물 그림자가 엷은 황색 하늘에 떠올라 있었다.
위너는 내 어깨에 올라앉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러나, 얼마 후에는 내려달라고 하여 내 옆에서 종종 걸음으로 걸어오다가 때때로 여기 저기 뛰어가서 꽃을 꺾어 나의 호주머니에 꽂아주곤 했다. 위너는 언제나 내 호주머니를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드디어 그걸 색다른 꽃병으로 삼아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호주머니를 꽃병이라 생각하고 사용한 것이었다. 오! 생각난다. 내 웃옷을 갈아입을 때 알았지만........
시간 여행자는 이야기를 멈추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말없이 두 송이의 시들은 꽃을 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건 엄청나게 큰 하얀 꽃으로 당아욱 꽃을 닳은 것이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황혼의 적막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언덕 꼭대기를 넘어 윔블던(런던 남쪽 교외의 도시) 쪽으로 나아갔다. 위너는 피곤해서 회색 석조 건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래서, 나는 멀리 보이는 청자 전의 뾰족탑을 가리키면서 우리는 무서운 것을 피하기 위해 저기로 가는 것이라고 알려 주려고 애를 썼다.
해 지기 전 모든 것이 죽은 듯이 조용해지는 그 적막을 자네들은 아는가? 나뭇잎을 흔드는 살랑 바람조차 날개를 접어 버린다. 저녁의 그 고요한 가운데는 언제나 무언가 내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것이 있었다.
하늘은 맑게 개어 끝없이 넓고, 멀리 해가 잠겨 들어간 곳 근처에는 한 줄 두 줄 옆으로 길게 뻗힌 구름이 누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저녁만은 내 마음의 설레임 속에 공포감이 섞여 있는 것을 느낀다. 점점 어두워지는 적막 속에서 나의 감각은 묘하게도 날카로워진 것 같았다. 땅 아래 지하의 동굴까지가 몸에 느껴져 오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몰록들이 개미 떼처럼 우왕좌왕하면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땅바닥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흥분하면서, 몰록은 내가 그들의 주거지에 들어간 것을 선전 포고로 알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그 놈들은 무엇 때문에 내 타임 머신을 가져갔단 말인가!
우리는 적막한 그 속을 걷고 있었다. 먼 하늘의 푸른색도 사라지고, 별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땅은 어둠에 묻히고 나무들이 시꺼멓게 보이기 시작했다.
위너의 공포와 피로는 심해진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안고 얘기를 걸어 위로해 주었다.
이윽고 근처가 더욱 어두워지자 그녀는 내 목에 두 팔을 감더니, 눈을 감고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들은 긴 언덕을 내려가 골짜기로 나왔다.
그 곳은 더욱 어두워서 하마터면 개울에 굴러 떨어질 뻔했다. 나는 개울을 건너 반대쪽 골짜기의 비탈을 올라가 잠들어 있는 집들과 머리가 떨어져 버린 폰(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은 사람, 반은 양의 모습을 한 신) 같은 조각의 옆을 지나쳤다.
이 근방에도 아카시아가 무성하게 나 있었다. 이제까지는 몰록을 만나지 않았지만 밤은 아직 초저녁이고 달이 뜨기 전의 가장 어두운 시간이 되기까지에는 아직 멀었다.
다음 언덕 위에 이르자 울창해 보이는 숲이 앞쪽에 시꺼멓게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그 숲을 보고 나는 망설였다. 숲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끝없이 넓은 숲이었다. 나는 갑자기 피로를 느끼고, 특히 발이 몹시 아팠다. 걸음을 멈춘 다음 위너를 가만히 어깨에서 내려 들고 잔디 위에 앉았다.
청자 궁전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울창한 숲 속을 기웃거리며 무엇이 숨어 있지나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 무성한 나무들이 가지를 서로 얽고 있는 그 아래에서는 별조차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위험이란 걸 되도록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가령 위험한 것이 없다 하더라도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나무에 부딪치기 쉬울 것 같았다.
나는 낮의 흥분으로 몹시 피로해 있었다. 그래서 위험한 곳에 들어가기를 단념하고, 그날 밥은 전망이 좋은 언덕 위에서 지내기로 했다. 다행히 위너는 잠이 깊게 들어 있었다.
나는 정성껏 그녀를 내 웃옷으로 싸 덮어 주고 그 곁에 앉아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 언덕 중턱은 조용하고 인기척도 없었다. 그러나, 가끔 어두운 숲 속에는 무엇인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있다는 기분을 주었다. 잘 개인 날씨라 머리 위에는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반짝이는 별을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래 된 별자리는 아주 하늘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별의 움직임은, 인간이 백 번 다시 태어나도 변하지 않을 정도로 극히 작은 것이다. 그러나, 그 극히 작은 변화가 이미 오래 전에 별자리의 모양을 눈에 서툴게 바꿔 놓은 것이었다. 그래도 은하수만은 별들을 훅하고 불어 성글어진 것 같은 옛날 그대로였다(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처음 보는 굉장히 많은 별이 있었다. 붉은 색으로 빛났다. 그것은 전체 푸른빛으로 빛나는 시리우스별보다 훨씬 큰 별이었다. 반짝거리는 빛의 집 같은 별들 가운데 하나의 밝은 별이 마치 옛날의 친구 얼굴같이 상냥하고 뚜렷이 빛나고 있었다. 별을 보고 있는 중에, 나 자신의 근심은 물론 지상의 모든 문제들이 갑자기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그 별과의 헤아릴 수 없는 먼 거리와, 미지의 과거로 유유히 움직여 가는 그 운동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지구의 극(남극-북극)이라는 커다란 세차 운동(넘어지려는 팽이의 축이 그리는 일주형의 운동)에 대한 것도 생각해 봤다. 내가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동안에, 이 조촐한 회전 운동은 단 40회 밖에 하지 않았다. 그 얼마 안 되는 회전 운동 사이에 모든 인간의 활동이, 전통이, 복잡한 조직이, 국가가, 문학이, 포부가, 아니 옛날 사람들의 기억까지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신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자기들의 훌륭한 조상의 일도 잊어버린 저 연약한 인간과,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허여스름한 인간이었다. 나는 이 두 인종 사이에 있는 커다란 공포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그리고 이제 처음으로 내가 본 그 고깃덩어리가 무엇이었던가를 확실히 깨닫게 되자 갑자기 온 몸이 떨렸다.
나는 내 곁에 잠들어 있는 작은 위너를 들여다보았다. 별빛 아래 그녀의 얼굴은 희고, 별 같이 빛나고 있었다. 나는 곧 그 무서운 생각을 머리에서 떨어 버렸다. 긴 밤 동안, 나는 되도록 몰록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새로운 별자리 가운데서 옛날 별자리의 흔적을 찾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하늘은 맑아서 안개 같은 구름이 한두 송이 떠 있을 뿐이었다. 필시 나는 가끔 졸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불침번을 하고 있는 중에 얼굴 없는 화재의 반사와도 같이 동쪽 하늘이 희끄므레 해지더니 야위고 두 끝인 뾰족하고 푸르스름한 달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걸 뒤쫓는 듯 새벽이 다가왔다.
하늘은 처음엔 희뿌옇다가 이내 따스한 분홍색으로 변해 갔다. 몰록은 우리들 가까이 오지 않았다. 사실 그 날 밤은 그 언덕에서 한 마리의 몰록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아침이 되어 자신이 생기니까 간밤에 그렇게도 무서워한 일이 우습게 생각되었다. 나는 일어나서 보았다. 뒤축이 떨어져 나간 구두를 신고 있는 쪽 발은 복사뼈가 있는 데가 부어서 발뒤꿈치가 아팠다. 그래서 다시 풀밭에 앉아 구두를 벗어 던져 버렸다.
위너를 깨워 일으켜 가지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어젯밤에는 시꺼멓고 무섭게 보이던 곳이 지금은 짙푸른 나무들로 보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했다. 우리는 과일을 따서 시장한 배를 채웠다. 조금 후, 우리는 다른 엘로이들을 만났다.
그들은 마치 밤 같은 건 없다는 듯이 밝은 햇볕 속에서 웃고 춤추고 있었다. 나는 또 그 고깃덩어리를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이었던가는 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나는 마음 속 깊이 이 사람들은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인류라고 하는 큰 강물의 물이 거의 다 말라 버리고 조금 남은 찌꺼기라는 생각을 어쩔 도리가 없었다. 틀림없이 오랜 옛날 인류가 쇠퇴하기 시작했을 때, 몰록들은 식량이 부족하게 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은 아마 쥐 같은 해로운 동물을 잡아먹으며 목숨을 이어갔을 것이다. 현재에도 인간은 옛날에 비해 훨씬 음식을 가려먹는 일이 없게 되었다. 원숭이와 비교해 봐도 훨씬 그런 것이다. 아무 것이나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습성은 이 미래의 사람답지 않은 인류의 자손에까지 와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과학적으로 냉정히 생각해 보려고 했다. 요컨대 몰록들은 3, 4천년 전 우리들의 조상들인 식인종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이고, 인연이 먼 자들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상태를 슬퍼할 만한 지성조차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뭐 구태여 애석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엘로이들은 살찐 소에 불과한 것이요, 거미들 같은 몰록들에 의해서 길러져서 그들의 먹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위너는 내 곁에서 세상 모르고 춤추고 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건 인간의 방종에 대한 엄한 벌이라 생각하고 오싹오싹 스며드는 두려움에서 한시 바삐 피해 나가고 싶어졌다. 인간은 딴 인간을 부려먹음으로 해서 편하고 즐겁게 살아 왔다. 그리고 그건 운명이니 순종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설득해 왔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운명이 반대로 그들에게 돌아온 것이다. 나는 이 멸망해 가는 귀족 계급인 엘로이들을 멸시해 주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들의 지능이 저하했다하더라도, 그들의 모습은 인간과 같았기 때문에 동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공포와 퇴화에 관해서도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직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정확하게 알지를 못했다. 우선 첫째로 생각한 것은 안전한 피난처를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쇠붙이와 돌로 어떻게 해서든 무기를 만드는 일이 있다. 이건 당장에라도 하지 않아선 안 될 일이라 생각되었다. 다음은 불을 가지는 방법이었다. 횃불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몰록에 대해서는 이보다 효과 있는 무기가 없다. 그리고 허언 스핑크스의 받침대인 철제 문을 여는 도구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것이 큰 쇠뭉치였다. 그 문을 열고 눈부신 횃불을 들고 들어가 타임 머신을 발견하여 이곳으로부터 도망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몰록들로서는 타임 머신을 그리 먼 곳까지 운반할 힘이 없을 것이었다. 나는 위너를 현대로 데려 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좋은 피난처가 될 것 같은 저 청자 궁전을 향해 걸어갔다.
 
성냥과 장뇌
 
우리가 청자 궁전 바로 옆에까지 간 것은 오정 가까운 때였다. 거기엔 사람이 사는 것 같은 기미는 없고 무너진 곳이 많았다. 창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남아있을 뿐이고, 녹이 슨 금속 창문 가에서는 벗겨진 커다란 녹색 타일이 떨어져 있었다.
건물은 낮은 풀 언덕에 높다랗게 솟아 있었다. 건물 안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동북 끝을 바라보고 깜짝 놀랐다. 현재의 윈드워스나 바타시로 생각되는 근처에 강물이 휘어져 굽어 들어 간 곳이 매우 깊은 것을 본 것이다.
나는 퍼뜩, 그 생각은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바다의 생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되어 가고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궁전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걸 짓는데 사용한 재료는 도자기였는데, 표면에 무언지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위너 보고 읽어보라고 하다가, 위너의 머리에는 글자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그녀는 언제나 실제 이상으로 지금 사람들과 같게 생각되었다. 아마도 그녀의 애정이 아주 인간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큰 문 안쪽에는, 그 문은 부서져서 열린 그대로 였는데, 보통 홀이 아니고 많은 창문으로 햇볕이 잘 비쳐 드는 긴 진열실로 되어 있었다. 나는 데번의 박물관을 생각했다.
타일을 깐 바닥에는 먼지가 수북히 쌓였고, 죽 늘어놓은 진열품 위에도 먼지가 쌓여 있었다. 홀 한복판에는 이상하게 무시무시한 물건이 서 있었는데 그건 거대한 동물의 해골의 아랫부분 같았다. 구부러진 발로 보아 금룡(중생대에 번영했던 공룡의 일종)과 마찬가지로 이미 멸망해 버린 동물의 뼈란 걸 알았다. 두개골과 윗부분은 두꺼운 먼지를 쓴 채 그 옆에 굴러 떨어져 있었는데 지붕이 새어 빗물을 맞아서인지 그 뼈는 허물어져 있었다.
진열실 안쪽에는 검룡(중생대에 번영했던 공룡의 일종)의 거대한 뼈가 놓여 있었다. 내가 이 곳을 박물관이라 생각한 것은 틀리지 않았다.
홀 옆쪽에는 기울어진 선반 같은 것이 있었는데 두꺼운 먼지를 털고 보니 현대의 진열대였다. 그리나 그 속의 물건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진열대는 밀폐되어 기체가 통하지 못하게 되 있었음이 확실했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확실히 현대보다 얼마 뒤에 세워진 박물관의 폐허였다. 그리고 이곳은 고생물 실로 예전에는 훌륭한 화석의 표본들이 진열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막을 길이 없는 부식의 자취를 어느 표본에서도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박테리아와 곰팡이가 전멸하고 없으므로 썩는 힘은 옛날의 1퍼센트 정도로 약해져서 부식의 속도도 느렸을 것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이 보물들에는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 저기에 진귀한 화석들이 부서졌거나, 갈대로 만든 실로 붙들려 매여 있거나 하는 것을 보면 작은 이들이 손을 댄 것 같았다.
또 어느 곳에는 진열대까지 이동되어 있었다. 몰록의 짓이리라 생각되기도 했다.
그 곳은 참으로 고요했다.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기 때문에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위너는 진열대를 보고 놀고 있다가 내게로 다가와서, 가만히 내 손을 잡고 곁에 서 있었다. 처음에 나는 이 인류가 현명했던 시대의 기념품에 너무나 놀라 그것을 이용할 것을 생각하지도 못했다. 타임 머신에 대한 것조차 잠시 머리에서 멀어져 버렸던 것이다.
건물의 크기에서 보아, 이 청자 궁전에는 고대 생물실 외에도 여러 개의 방이 더 있을 것 같았다. 역사실과 아니 도서실도 있을지 모른다. 그건 나에게 있어, 적어도 현재의 나에게 있어서는, 고대 지질학의 다 부서진 진열품 따위보다 훨씬 흥미 있는 것이었다.
조사해 본 결과 또 하나 작은 진열실이 첫째 방과 직각으로 붙어 있음을 알았다. 그곳은 광물실인 듯, 나는 유황 덩어리에서 화약을 만들 것을 생각해 냈다. 그러나 초석이나 초산칼륨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필시 오랜 옛날에 녹아 없어진 것이리라. 그래도 유황을 잊어버릴 수 없어 나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진열실에 있던 물건은 내가 본 것들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었지만,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 나는 광물학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서 첫째 방과 평행으로 가고 있는 몹시 망가진 복도를 걸어봤다. 그곳은 동식물학의 진열실로 되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 진열품도 이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되어 있었다. 동물의 박제 표본의 흔적인 듯한 쭈그러진 검은 것이 세 개, 전에는 알코올이 들었을 것 같은 병 속의 말라빠진 미라, 부서져서 갈색 먼지 같이 되어버린 식물 등 그런 것뿐이었다.
조금 후 우리들은 굉장히 큰 진열실로 들어갔다. 이 방은 몹시 채광이 나빴고 마룻바닥은 내가 들어선 곳에서부터 서서히 아래로 기울어져 있었다. 천장 여기저기에 허연 공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는데, 대개가 금이 갔거나 깨진 것들이었다. 이 방은 인공적으로 조명이 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나는 얼마쯤 생기가 났다. 그건 내가 서 있는 양쪽에는 커다란 기계가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몹시 녹이 슬었고 부서져 있었지만 그 중에는 아직 본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몇 있었다.
자네들도 알고 있겠지만, 나는 기계에는 홀딱 빠지는 터라 잠시 돌아다니며 관찰을 하기로 했다. 대개의 기계가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었고 도대체 무엇에 쓰는 것인지 조차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걸 알게 되면 몰록들을 공격하는데 소용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갑자기 위너가 내 곁에 바싹 다가왔다. 너무도 갑자기 그라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았다. 만일 위너가 없었더라면 나는 이 방바닥이 기울어져 있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방바닥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박물관이 언덕 비탈을 파고 거기 세워져 있었을 것이다.). 내가 들어간 방의 한쪽 끝은 완전히 땅 위에 나와 있어서 조금 밖에 안 되는 좁은 창문으로 밖의 광선이 숨어 들어왔다. 그러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지면이 높아져서 창문을 막고, 끝에서는 창문 위쪽에서 약간의 광선이 들어올 뿐이었다.
나는 그 기계들을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갔는데 너무나 기계에 정신을 빼앗겨 차차 광선이 약해져 가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위너가 몹시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으므로 비로소 그걸 알아차린 것이었다.
방의 차일 안쪽은 캄캄했다. 나는 망설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먼지는 조금 적었고, 먼지의 표면이 일정하지 않았다. 다시 그 안쪽 어두운 곳을 보니, 먼지 위에 조그만 발자국이 많이 찍혀 있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나는 이제라도 몰록들이 오지 않을까 불안해졌다. 기계 같은 걸 관찰한답시고 엉뚱하게 시간을 보낸 셈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후도 꽤 오래 된 것 같았다. 무기도, 숨을 곳도, 불을 일으킬 만한 것도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 방구석 쪽 어둠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타닥타닥 하는 소리와 전에 우물 밑에서 들은 것 같은 괴상한 소리였다.
나는 위너의 손을 붙잡았다가 갑자기 어떤 일이 생각나서, 그녀를 그 곳에 남겨 놓고 어떤 기계 있는 데로 갔다. 그 기계에는 철도 신호소에 있는 지렛대 같은 레버가 쑥 내밀어져 있었다. 나는 기계로 기어올라가 두 손으로 그걸 잡고 힘껏 옆으로 잡아당겼다. 중앙 통로에 혼자 내버려진 위너는 돌연 울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대로 레버는 1분간쯤 잡아당기니까 툭 부러졌다. 몰록의 머리통은 간단히 깨뜨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묵직한 쇠뭉치를 들고 위너에게로 달려갔다. 나는 정말 그놈들을 죽여주고 싶었다. 제 자손을 죽이다니, 꽤도 야만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그런 놈들에게 대해서 인간답게 대해 주라고 한다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그러나, 위너를 두고 갈 수도 없는 일이고, 게다가 그놈들을 죽이면 타임 머신을 부숴 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으므로 방 안쪽에 있는 몰록을 죽이러 가는 일은 그만 두기로 했다.
한 손에 레버를 들고, 한 팔에는 위너를 안고 그 방을 나와 다른 큰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처음 봤을 때는 누더기 같이 날은 군기가 걸린 군대의 교회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러나, 방 양편에 걸려 있는 갈색 누더기 같아 보인 것은 썩어 가는 책의 잔해였던 것이다. 그것들은 이미 오래 전에 썩어 흩어져서 글자는 전부 다 문드러져 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곳곳에 뒤틀린 종이와 부서진 철사들이 남아 있어서, 이 갈색의 누더기 같은 것은 옛날엔 책이었다는 걸 분명히 말해 주고 있었다. 만약 내가 문학자였더라면, 그것들에서 문학적 야심의 허무함을 통감하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슴 깊이 느낀 것은 그 얼마나 많은 노력이 헛되이 쓰여졌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 썩은 종이의 산더미가 그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었다. 솔직히 고백한다면 그 때 내가 생각한 것은 런던 왕립 학회 회보와 거기에 실은 광학에 관한 나의 열 일곱 건의 논문에 관한 일이었다.
그 다음엔 넓은 계단을 올라가 응용 과학실이었을 것 같은 곳으로 갔다. 나는 여기서 무엇이든지 소용될 물건이 발견되지 않을까 하고 크게 기대를 걸고 있었다. 천장 한쪽 구석이 무너져 내린 외에는 이 진열실은 제법 본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나는 열심히 부서지지 않은 진열대를 남김없이 들여다보며 다녔다. 그러다가 드디어 한 밀폐된 진열대에서 한 통의 성냥을 발견했다. 가슴이 마구 떨었다. 성냥을 꺼내 그어 보았다. 성냥은 완전히 쓸 수 있었다. 나는 위너를 향해, "춤을 추자.“ 라고 그녀가 하는 말로 소리쳤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무서운 적을 상대하여 싸울 무기가 간신히 손에 들어 온 것이다. 이리하여 나는 그 황폐해진 박물관의 두텁고 보드라운 먼지의 융단 위에서 위너를 크게 즐겁게 해 주었다.
나는 되도록 명랑하게 휘파람을 불며 아주 재미있게 일종의 혼합 댄스를 추어 보였다. 그건 일부분은 고상한 왈츠 컨트리 댄스이고, 일부분은 스키핑 스텝 (나는 연미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잘 출 수가 없었지만), 일부분은 즉흥적인 춤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생각하여도 이 한 통의 성냥이 그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에 무사히 남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는 정말 다행한 일이었지만......
더구나 정말 이상한 것은 내가 훨씬 더 뜻하지 않은 물건을 발견한 일이다. 뜻밖에도 그것은 장뇌 (색이 없고 반투명의 광택이 있으며 특이한 향기가 나는 물질로 화약이나 방충제 등의 제조에 쓰임)였다. 그건 밀봉된 병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걸 파라핀인 줄 알았었다. 그래서 병을 깨어 보았다. 그런데 틀림없는 장뇌의 냄새가 났던 것이다. 모든 것이 썩어버린 가운데서, 이 휘발성 물질만이 아마도 몇 천 세기 동안 보존되어 온 것이었다.
나는 장뇌를 내던져 버리려다가, 퍼뜩 장뇌는 잘 타며 탈 때는 밝은 불꽃을 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장뇌는 훌륭히 양초의 구실을 할 것이다. 그래 나는 그걸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러나 저 청동의 쇠문을 깨뜨리는데 쓰일 만한 화약이나 도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까지에 가장 소용될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저 쇠몽둥이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용기를 얻어 그 진열실을 나온 것이었다.
그 기나긴 오후의 일을 남김없이 다 얘기할 수는 없다. 내가 조사하며 돌아다닌 곳을 차례대로 생각해 내기에도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정도니까.
나는 여러 가지 무기를 놓은 녹슨 진열대가 줄지어 있는 긴 진열실의 일을 기억하고있다. 거기서 나는 쇠몽둥이 대신 도끼나 칼을 가질까 하고 한동안 망설였었다. 두 가지 다 가질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청동의 문을 비틀어 열기에는 쇠몽둥이가 편리할 것 같았다.
거기에는 많은 총과 권총도 있었다. 대개 녹이 잔뜩 슬어 있었지만, 그 중에는 별난 금속으로 만들어져서 조금도 녹이 슬지 않는 것도 몇 가지 있었다. 옛날에는 화약도 있었겠지만 완전히 썩어 먼지로 변해 버렸을 것이다. 방 한 구석이 꺼멓게 그을려 부서져 있는 것은 아마 표본 중에 어떤 것이 폭발을 한 때문이라 생각되었다.
다른 방에는 인형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폴리네시아, 멕시코, 그리스, 페니키아 등 내가 알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의 인형들이 전부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참고 있을 수가 없어 특별히 맘에 드는 남아메리카 원산의 활석(곱돌)으로 만들어진 괴물의 코에다 내 이름을 새겨 넣었다.
저녁때가 가까워지자 나의 흥미는 식어져 갔다. 그래도 진열실에서 진열실로 돌아다니는 것을 그만 두지 못했다. 그곳은 모두 먼지를 뒤집어쓰고 숨을 죽이고 있었으며 어떤 곳은 무너져 내려앉아 있었다. 진열품 중에는 녹으로만 남은 것과 이탄(탄화의 정도가 낮은 석탄)의 산더미로 돼 있는 것도 있었으나 그 중에는 어느 정도의 본 모습을 남기고 있는 것도 있었다. 어떤 곳에서 나는 주석 광산의 모형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연히도 진열대 속에 두 개의 다이너마이트가 들어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버럭 소리쳤다.
"있었다. 있었어!“
그리고는 반가운 마음으로 상자를 깨뜨렸다. 그러나, 약간은 걱정이 되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옆에 있는 작은 진열실을 선택해서 거기서 시험을 해 보기로 작정했다. 이 때처럼 낙심해 본 일이 없었다. 나는 5분, 10분, 15분........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기를 기다렸으나 끝내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다이너마이트는 모형이었던 것이다. 여태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가짜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스핑크스나 청동의 쇠문도 날려버렸을 것이 틀림없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임 머신을 발견할 기회도, 이건 나중에 안 일이지만 무엇이나 다 날려보내고 말았을 것이다.
그 뒤였다고 생각되지만 우리는 박물관 속의 조그만 가운데 뜰로 갔다. 그곳은 잔디밭으로 되어 있었고 세 그루의 과일나무가 서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과일을 따서 배를 채웠다.
차차 밤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몰록들이 가까이 오지 못할 곳은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일에 대해선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몰록들을 방어하기에 제일 좋은 무기, 즉 성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만일 불꽃이 필요하다면 호주머니 속에 장뇌가 들어 있었다. 가장 좋은 것은 넓은 장소에서 불을 피우면서 밤을 새우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다가 아침이 되면 타임 머신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 거기 필요한 연장으로서 나는 지금 쇠몽둥이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일을 알게 됨에 따라 저 청동 문짝을 여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제까지 나는 그 문을 억지로 열기를 삼가고 있었다. 문짝 안 쪽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문짝은 그리 튼튼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가지고 있는 쇠몽둥이도 아주 소용없는 것은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타오르는 불
 
우리는 아직 해가 지평선 위에 남아 있을 즈음에 박물관을 나왔다.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스핑크스가 있는 곳에 도착 할 예정이었다. 그러기 위해 어둡기 전에 어젯밤에 길이 막혀 머물렀던 숲을 빠져나갈 생각을 했다. 나의 계획은 그날 밤 안에 되도록 멀리 가서 모닥불을 피우고 그 불빛에 의지해서 하룻밤을 보내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걸어가면서도 눈에 띄는 작은 가지와 마른풀들을 주워 모았다. 이내 내 팔에는 그런 것들이 한아름이나 되었다. 이런 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걸음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느렸다. 게다가 위니는 피로에 지쳐 있었다. 물론 나도 졸려 못 견딜 지경이었다.
아직 숲에 닿기도 전에 이미 밤이 되었다. 숲에서 가까운 덤불로 뒤덮인 언덕 위에 이르자, 위너는 캄캄한 숲을 무서워하여 도무지 걸으려고 하질 않았다. 나도 위험이 임박해 있음을 느꼈다. 다른 때 같으면 더 나아가지 않았을 것인데도 이상하게 고집을 부리게 되었다. 나는 하룻밤과 이틀 동안 전혀 잠을 자지 못했다. 열이 나고 마음이 초조했다. 졸음이 엄습해 오는 것과 잠이 들면 몰록들이 습격해 온다는 것을 걱정했다.
어름어름하고 있는 동안에 뒤쪽의 컴컴한 달빛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셋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들 주위에는 덤불과 키가 큰 풀이 나 있을 뿐이었다. 놈이 살그머니 다가오는 날에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상태였다. 나의 계산으로는 숲의 너비는 1킬로미터도 안 되는 것 같았다. 숲을 빠져나가 아무 것도 나 있지 않은 언덕 중턱에 이르기만 하면 좀 더 안전하게 숨을 곳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성냥과 장뇌로 길을 비추면서 숲을 빠져나갈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그러나, 성냥불을 켜들고 가려면 땔나무들은 가져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것들을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이 때 문득 이 나무에 불을 붙여 뒤쪽에 있는 몰록들을 놀라게 해 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대단히 위험하고 어리석은 방법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나, 그 때는 우리들의 나아갈 길을 지키기에는 아주 적합한 방법으로 여겨졌었다. 자네들은 모르겠지, 그러나 인류가 살지 않는 온화한 기후의 땅에서는 불꽃이란 것은 정말 희귀한 것이었다. 태양과 열은 물건을 태울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워지는 일은 거의 없다.
하기야 열대 지방에서는 이슬방울이 볼록 렌즈체 구실을 해서 태양의 빛을 모아 불이 일어나는 일이 가끔 있는 모양이며, 벼락이 떨어져서 물건을 태우는 일은 있어도 그것으로 불이 번져 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식물이 썩어서 그 발효열로 뜨는 일은 때때로 있지만 그것 때문에 불이 붙는 일은 거의 없는 것이다. 이 미래 세계에는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전부 잊어버리고 있었다. 위너에게는 땔감의 나무더미를 핥고 있는 붉은 불꽃의 혓바닥은 정말 처음 보는 이상한 것이었다. 위너는 불꽃 옆으로 달려가서 그걸 손으로 만져 보려고 하는 것이었다. 만일 내가 말리지 않았더라면 필시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위너를 붙잡아 발버둥치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녀를 안고 앞쪽 숲 속으로 기운차게 걸어 들어갔다. 모닥불의 불빛은 한동안 우리의 앞길을 비쳐 주었다.
얼마 후 뒤돌아보니 얹히어 있는 나뭇가지 틈으로 아까 그 모닥불이 근처 숲에 옮아 붙어 나가는 게 보였다. 그 불은 반원을 그리며 언덕의 풀을 태우고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 불을 보고 웃으며 앞으로 나아갈 쪽의 시커먼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근처는 캄캄했다. 위너는 내게 꼭 매달려 있었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니까 나무에 부딪치지 않고 걸어 갈 수가 있었다. 머리 위에는 캄캄한 어둠이 뒤덮여 있었으나 곳곳에 틈이 있어 거기로 검푸른 먼 밤하늘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한 팔에는 위너를 안았고, 한 손에는 쇠몽둥이를 들고 있었으므로 성냥을 그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은 발아래서 잔가지가 꺾이는 소리와 머리 위를 불어 가는 은은한 바람 소리 밖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때 주위에서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그냥 걸어가고 있었다. 쿵쿵거리는 소리는 점점 또렷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전에 지하 세계에서 들은 것 같은 기묘한 소리와 말소리가 들려 왔다. 확실히 몇 사람의 몰록이 숨어 있다가 나를 습격하려고 다가온 것이 분명했다. 과연 1분쯤 지나자 어떤 놈이 내 웃옷을 잡아당기며 팔을 스쳤다. 위너는 무섭게 몸을 떨며 입을 꼭 다물고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이때야말로 성냥을 그을 때였다. 그러나 성냥을 꺼내려면 위너를 내려놓아야 했다.
나는 위너를 땅에 내려 두고 호주머니를 뒤졌다. 그런 사이에 내 무릎 근처의 어둠 속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위너는 도무지 소리를 내지 않았으나, 몰록들은 그 기묘한 비둘기 울음소리 같은 꾸꾸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부드럽고 작은 손이 내 웃옷과 잔등에 기어올라와서 목을 건드렸다. 이때서야 비로소 나는 성냥을 그어 착하고 불을 켰다. 나는 성냥불을 들고 내둘렀다.
몰록들의 허연 등어리가 나무 숲 속으로 도망쳐 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호주머니에서 장뇌덩이를 꺼내어 성냥이 꺼지려 할 때 곧 이것에 불을 붙일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나서 위너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내 다리를 끌어 잡은 채 땅바닥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덜컥 겁이 나서 허리를 굽혀 위너를 들여다봤다. 위너는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운 듯이 보였다.
나는 장뇌덩이에 불을 붙여 땅바닥에 내던졌다. 장뇌는 활활 타오르면서 마침내 몰록들과 어둠을 쫓아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위너를 안아 올렸다. 주위의 숲은 많은 몰록들의 떠드는 소리와 중얼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는 듯했다.
위너는 그만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그녀를 어깨에 올려 앉히고 일으켜서 걸어 가려고 했는데 이때 갑자기 무서운 일이 생각났다. 성냥을 긋고 위너를 도와주고 하는 동안에 나는 몇 번이나 몸의 방향이 변해 있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 건지 전혀 방향을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어쩌면 다시 청자 궁전 쪽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서 진땀이 솟아 나오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빨리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그곳에 모닥불을 피우고 노숙을 하기로 마음을 결정했다. 나는 풀숲에 있는 나무 그루에 아직도 꼼짝 못하고 있는 위너를 기대 앉혀 놓았다. 그리고는 장뇌의 덩이가 다 타 없어지기 전에 빠른 몸짓으로 나뭇가지와 마른 잎들을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몰록의 눈들이 붉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장뇌의 불은 깜빡거리다간 꺼져 버렸다. 나는 성냥을 그었다. 그 순간 위너 곁으로 다가오려고 하던 두 사람의 몰록이 놀라 물러났다. 한 사람은 불빛이 눈이 부시어 똑바로 내게로 달려든다. 나는 주먹으로 그놈을 후려갈겼다. 머리뼈가 으스러지는 게 느껴졌다. 그놈은 죽는 소리를 내며 비틀거리다가 쓰러졌다.
나는 또 한 덩이의 장뇌에 불을 붙이고는 모닥불을 지필 나뭇가지를 모았다. 그때는 순간 머리 위에 있는 나무가 말라죽은 나무란 걸 알았다. 내가 타임 머신을 타고 와서부터 약 1주일 동안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그 나무는 바짝 말라 있었다. 나는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낙엽과 나뭇가지를 줍는 것을 그만두고 그 나무에 올라가서 가지를 꺾기 시작했다. 이제는 숲 속에 매운 연기를 올리며 모닥불이 활활 타서 장뇌덩이는 태우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나는 쇠몽둥이 옆에 쓰러져 있는 위너에게 다가가서, 어떻게든 그분의 맘을 돌리게 하려 했으나 위너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쓰러져 있었다. 숨이 붙어 있는지 어떤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때 모닥불 연기가 우리 쪽으로 불어와서 나는 갑자기 숨이 막혔다. 더구나 근처에는 온통 장뇌의 증기가 꽉 차 있었다.
모닥불은 앞으로 한 시간 가량 나무를 넣지 않아도 견딜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지친 뒤라 온몸이 나른해져서 주저앉았다. 숲 속은 무언지 모르게 졸음을 부르는 것 같은 은은한 소리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꾸벅꾸벅 졸다가 갑자기 눈을 떴다. 사방은 캄캄한데 몰록들의 손이 나를 휘어잡고 있었다. 나는 놈들의 끈적끈적한 듯한 손가락을 뿌리치고 호주머니 속의 성냥을 찾았다. 성냥은 어디로 갔는지 없었다. 몰록들은 다시 와서 나를 휘어잡았다. 그제야 나는 어째서 어떻게 되었는가를 깨달았다.
내가 졸고 있는 틈에 모닥불이 꺼져 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죽음의 공포가 느껴졌다. 숲 속에는 나무 타는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목과 머리카락과 어깨를 붙잡혀 당장이라도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이 흐물흐물한 생물들에게 붙잡혀 있다는 건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 나쁘고 무서운 일이었다. 나는 커다란 거미줄에 걸려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드디어 기운이 빠져 쓰러지고 말았다. 조그마한 이빨이 목덜미를 물어뜯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엎치락뒤치락하여 이리저리 굴렀다.
그런 사이에 내 손이 쇠몽둥이에 닿았다. 그 순간 갑자기 기운이 솟아올랐다. 나는 발버둥치며 일어나서 그 쥐새끼 같은 몰록들을 뿌리쳐 버렸다. 그리고는 쇠몽둥이를 바로잡고 그 놈들의 머리가 있음직한 곳으로 힘껏 내리쳤다. 그럴 때마다 살과 피가 퍽퍽 터지는 것이 느껴지더니 내 몸은 자유로워졌다. 격렬한 싸움 끝에 흔히 느껴지는 그 기묘한 기백 같은 것이 솟아올랐다. 나는 이미 내 목숨이나 위너의 목숨도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왕 그렇게 될 바엔 놈들의 몸뚱이로 그 값을 치르게 해 주어야 하겠다고 결심했다. 나는 큰 나무를 뒤로하고 서서 쇠몽둥이를 내둘렀다.
숲 속엔 어디에나 그 놈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와 아우성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잠시 후, 그들의 소리는 흥분된 나머지 한결 더 높아지고 뛰어다니는 소리도 한층 더 빨라진 것 같았다. 그러나, 한 놈도 내 팔이 닿는 곳으로 가까이 오지는 않았다. 나는 어둠 속을 쏘아보며 서 있어야 했다. 이 때 갑자기 이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 놈들이 나를 무서워하고 있다면?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캄캄하던 어둠의 세상이 갑자기 밝아온 것이었다. 내 근처에 있던 몰록들의 모습이 보였다. 내 근처에 있던 세 사람의 몰록이 맞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다른 몰록들이 도망을 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흐르는 물처럼 내 뒤에서 앞쪽 숲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몰록들의 잔등이가 허옇게 보이지 않고 벌겋게 보였다.
어리둥절해서 보고 있으려니까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의 별이 아닌 불똥들이 날아가다가는 사라지고 하는 것이 보였다. 숲 속에 나무 타는 냄새가 가득 차고 아까 까지 들리던 졸음겨운 소리가 굉장히 큰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몰록이 왜 도망치고 있는지 그제야 그 까닭을 알았다. 나는 의지하고 있던 나무에서 앞으로 나와 뒤돌아보았다. 가까이 있는 나뭇가지 사이로 불타고 있는 숲의 불길이 보였다. 우리가 맨 처음 보았던 모닥불이 산불로 번져 우리를 뒤쫓아 온 것이었다. 나는 그 불빛으로 위너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 들려오는 생나무 타는 소리가 크게 들리자 나는 침착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쇠몽둥이에를 쥐고 몰록들을 뒤쫓아갔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달음박질이었다. 한 번은 들고 가는 불이 꺼져 가는 걸 보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몰록들을 피해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다 좀 환히 트인 빈 땅에 이르렀다.
그 때 한 녀석의 몰록이 비틀거리며 내 곁으로 와서 나를 스쳐 지나더니 곧바로 불 속으로 달려들어가 버렸다. 이렇게 해서 나는 참으로 흉한 광경을 보아야 했다. 그것은 이 미래 세계에 와서 본 일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광경이었다. 불길은 점점 건너편 숲에도 옮아가서 벌써 노란 색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이 빈터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언덕 중턱에 3, 4십 명과 몰록들이 있었다. 그들은 밝은 불빛과 열에 눈이 부시어 갈팡질팡 헤매다 서로 부딪쳐 넘어지며 야단법석을 치고 있었다. 처음 한동안은 그들의 눈이 아무 것도 볼 수 없게된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가까이 다가오면 엉겁결에 쇠몽둥이로 후려쳤었다. 한 녀석을 죽였고 여러 녀석을 부상시켰다.
그러나, 시뻘건 하늘을 뒤로 아가위나무 덤불 밑을 손으로 더듬으며 헤매고 있는 한 몰록의 모습을 보고, 그의 신음 소리를 들으니 그들이 이 불로 해서 꼼짝할 수 없게 된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 후려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래도 때때로 내가 있는 데로 비틀거리면서 오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비켜 주곤 했다.
산불이 약간 수그러진다. 나는 놈들이 나를 알아보게 되지나 않을까 하여 걱정이 됐다. 그래서 미리 녀석들을 몇 명쯤 때려 눕혀 줄까 하고 싸울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불이 다시 되살아 올라 활활 탔으므로 나는 불타오르는 마음을 꾸욱 눌렀다. 나는 몰록들을 피하여 언덕 둘레를 돌아다니며 위너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위너는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언덕 꼭대기에 주저앉아 그 장님 같은 기묘한 몰록의 무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손으로 더듬으며 우왕좌왕 하다가 불이 가까이 다가오면 무서운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썼다. 소용돌이치며 치솟는 연기가 하늘로 날아가고 그 벌겋게 물든 하늘 사이사이로 마치 딴 세상같이 멀리 작은 별들이 반짝거렸다.
서너 명의 몰록이 허우적거리며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주먹으로 갈겨 주며 쫓아버렸다.
그날 밤 동안, 나는 이건 꿈이려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 꿈에서 깨어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입술을 깨물어도 보고 큰 소리를 질러도 보았다. 두 손으로 땅바닥을 쳐보기도 하고 또 앉았다 섰다 해 보기도 했다. 이리저리 돌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을 비비며 제발 이 꿈에서 깨어나게 해주십사 하고 하느님께 빌기도 했다.
나는 세 번이나 몰록들이 괴로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걸 보았다. 그러나, 드디어 간신히 기세가 죽어 가는 불길 위에도, 흘러가는 검은 연기 뒤에도, 희어졌다 검었다 하는 나무 위에도, 얼마 남지 않은 몰록들의 어리둥절히는 모습 위에도, 그리고 완전히 지친 나에게도 아침의 환한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위너를 찾아 다녀 보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끝내 찾을 수가 얹었다. 몰록들은 그녀의 자그마한 몸뚱이를 납치해 가다가 숲 속에 버리고 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위너가 몰록들의 먹이가 된다는 그 무서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내 근방에 있는 그 아무런 힘도 없는 괴물들을 몰살시켜 버리려는 충동이 일어났지만 끝내 참아 버렸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언덕은 숲 속의 작은 섬처럼 솟아 있었다. 꼭대기에서는 연기를 통해 청자 궁전이 보였다. 이것으로 허연 스핑크스가 있는 곳의 방향도 짐작이 갔다. 근처가 더 밝아지자, 나는 풀로 발을 싸매고 절뚝거리며 아직 연기를 내고 있는 잿더미와 부서져 타고 있는 시꺼매진 나무들을 밟으며 타임 머신이 숨겨져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빨리 걸을 수 없었다. 절뚝거리고 있었고 또 몹시 피로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귀여운 위너의 참혹한 죽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위너를 잃어버린 일은 최대의 불행이라 생각되었다.
지금 이 방에 이렇게 앉아 있으니까 위너를 잃은 슬픔도 꿈속처럼 느껴지지만, 그 날 아침 나는 다시 외로운, 완전히 외로운 몸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밝은 아침 하늘 아래 아직도 연기를 내고 있던 잿더미를 헤치며 걷고 있는 중에 나는 갑자기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내 바지 주머니에는 아직 몇 개비의 성냥이 어질러져 있었다. 성냥갑이 없어질 때 갑에서 흘러나온 모양이었다.
 
열린 스핑크스의 받침대
 
아침 여덟 시에서 아홉 시쯤 나는 그 누런 쇠 걸상이 있는 곳으로 왔다.
처음 이 세계에 도착한 저녁에 나는 여기서 사방을 둘러봤던 것이다. 그 때의 나의 조급한 결단을 생각하고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의 풍경은 그 때와 다름없이 아름다웠다. 짙은 초록의 덤불도, 훌륭한 궁전도, 장대한 폐허도, 푸른 양쪽 언덕 사이로 흐르고 있는 은빛 강물도 모두 그날 그때 그대로였다. 수목 사이로 수려한 의복을 걸친 미래인들이 여기저기에 오가고 있었다.
내가 위너를 구해 준 그 곳에서 목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걸 보자 나는 다시금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지하 세계로 통한 굴을 덮고 있는 둥근 지붕이 여기저기에 보였다. 이제 와서는 저 지상 세계의 인간들의 즐거운 생활, 그 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가를 또렷이 알게 되었다. 그들의 생활은 그야말로 즐거워 보였다. 마치 들판에서 놀고 있는 양처럼 즐거워 보였던 것이다. 그들은 양처럼 적을 알지도 못하고 만일의 경우를 위해 준비하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죽을 때도 바로 양과 같았다. 나는 인간의 지혜가 그려 놓은 꿈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던가를 슬프게 생각했다. 인간은 바로 자신을 죽여 버린 것이다. 인간은 즐겁고 여유 있는 생활을 찾아 열심히 노력해 왔다. 영원히 안정된 평화의 세계라는 걸 목표로 해서 노력한 결과 드디어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한 번은 인류의 생명과 재산이 거의 완전하게 지켜진 때가 정녕 있었을 것이다. 부자는 그의 재물과 안락한 생활이 보장되었고, 노동자는 생활과 일이 보장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세계에서는 실업 문제나 사회 문제도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단히 평온한 시대가 한동안 계속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지혜의 힘은 환경의 변화와 위험과 곤란에 의해 높아진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지만 우리는 곧잘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완전히 환경과 조화된 동물은 기계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습관과 본능으로서 할 일을 다 할 수 있는 동안은 지혜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무런 변화도 없고 또 변화할 필요도 없는 곳에서는 지혜가 생겨나지 않는다. 여러 가지 곤란과 위험에 둘러싸여 있는 동물만이 필요에 의해 자연 지혜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본 바에는 이렇게 지상 세계의 인간은 무기력한 아름다움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고 지하 세계는 오로지 기계적인 생산의 장소로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도 영구히는 계속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지하 세계로 가는 식량 공급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되지 않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몇 천 년 동안이나 잊고 있던 굶주림이 다시 지하 세계에 찾아온 것이다.
지하의 인간들은 기계를 맡고 있었다. 이 기계는 완전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습관 만으로서는 움직일 수 없고 얼마간의 지혜를 필요로 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인간적인 성질로서는 어느 지상인 보다도 뒤떨어졌지만 독창력에 있어서는 지상인 보다 우월했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다른 고기가 손에 들어오지 않게 되자, 옛날부터 습관적으로 금해져 오던 것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서기 80만 2천 7백 1년의 세계에서 본 그 끔찍한 일을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런 생각이 전혀 틀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는 그렇게 생각되었기에 자네들에게도 그대로 얘기하는 것이다.
이 며칠 동안의 피로와 흥분과 불안으로 해서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고, 게다가 가슴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거기 앉아서 그 조촐한 풍경과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으니 어느 정도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너무나 고단해서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꾸뻑꾸뻑 졸기 시작했다. 나는 이때 한숨 자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잔디밭에 누워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해가 지기 바로 조금 전에 나는 눈을 떴다. 이젠 선잠을 자다가 몰록들에게 붙들릴 염려는 없었다. 크게 기지개를 켜고 언덕을 내려 흰 스핑크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한 손은 쇠몽둥이를 들고 또 한 손은 호주머니 속의 성냥개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 있었다. 스핑크스 근처로 가 보니 청동 문짝이 열려 있는 것이었다. 문짝은 아래 쪽 수채 속에까지 미끄러져 내려와 있었다.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가 볼까 어쩔까 망설이며 잠시 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속에는 조그만 방이 있었고, 그 구석 좀 높은 곳에 타임 머신이 놓여져 있었다. 내 호주머니 속에는 타임 머신을 동작시키는 조그만 레버가 들어 있었다. 나는 흰 스핑크스를 점령해 버리려고 여러 가지 준비를 했었는데 그것이 이렇게 깨끗이 열려 있는 것이었다. 나는 쇠몽둥이를 내던졌다. 그걸 써 보지 못한 것이 약간은 섭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구를 향해 몸을 굽히다가 퍼뜩 이번에야말로 몰록들의 속셈을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청동 문틀을 넘어 타임 머신 쪽으로 들어갔다. 타임 머신은 놀랍게도 정성껏 기름을 치고 걸레질을 잘 해 놓은 상태였다. 어쩌면 몰록들이 이 기계의 용도를 알려고 일부러 분해를 해 보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타임 머신을 조사해 보았다. 내가 고안해서 만든 기계에 오랜만에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다. 그런데 이 때, 혹시나 하던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청동 문짝이 갑자기 슬슬 올라오더니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닫혀 버린 것이었다. 완전히 캄캄해졌다. 나는 결국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적어도 몰록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나는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지었다. 몰록들이 킥킥 웃으며 모여드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성냥을 그으려 했다. 아까는 레버를 기계에 꽂아 아무 미련 없이 귀신이 사라지듯 사라져 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하찮은 일을 잊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성냥은 곽이 없이는 불을 일으킬 수 없는 그런 성냥이었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자네들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갈 것이다. 그 조그만 괴물들은 벌써 내 곁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한 녀석이 내 몸을 건드렸다. 나는 어둠 속에서 레버를 휘둘러 그 놈들을 후려치면서 타임 머신의 좌석에 올라앉으려 했다.
또 다른 손 하나가 계속하여 나를 휘어잡았다. 나는 끈질기게 레버를 뺏으려고 하는 그들의 손을 한사코 뿌리쳤다. 그러는 사이에도 나는 한 손으로 레버를 꽂을 구멍을 더듬어 찾고 있었다. 그러다가 하마터면 레버 한 개를 뺏길 뻔했다. 레버가 내 손에서 떨어지려 했을 때 나는 내 머리로 어둠 속을 들이받았다. 그러자 상대의 두개골이 우지직 하고 깨지는 소리가 들렀다. 이리하여 나는 가까스로 레버를 되찾은 것이었다.
이 최후의 싸움은 숲 속에서의 싸움보다도 훨씬 치열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드디어 나는 레버를 제자리에 꽂고 쓱 잡아당겼다.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던 손이 스르르 떨어져 나갔다. 이윽고 그 앞에서 어둠이 사라져 갔다. 이렇게 하여 나는 다시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회색 빛의 소용돌이 속에 맴돌아 들어간 것이었다.
 
괴물 게의 해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타임 머신의 여행은 구역질과 현기증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좌석에 똑바로 앉지 못하여 비뚤어진 불안정한 자세였다. 얼마 정도의 동안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마구 흔들리는 기계에 들러붙어 있었다. 어디를 향해 날아가는 것인지도 몰랐었다. 그러나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다이얼을 보니 놀라운 일이었다.
엉뚱한 곳에 와 있었던 것이었다. 제 1의 다이얼은 1일 단위의 눈금이다. 제 2의 다이얼은 1000일 단위, 제 3의 다이얼은 100만 일 단위, 제 4의 다이얼은 10억 일 단위의 눈금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나는 과거를 향해 레버를 끌어당겨야 할 것을 미래를 향해 당겨 버린 것이다. 다이얼을 보았을 때 벌써 1000일 단위의 바늘이 시계의 초침 같은 속도로 빙빙 돌아가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렇게 나아가고 있는 중에는 사방의 광경은 기묘하게 변해 왔다. 번쩍번쩍 흔들리고 있던 빛이 점점 어두워져 왔다. 그런데 여전히 무서운 속도로 날고 있는데도, 나는 낮과 밤의 교대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건 타임 머신의 속도가 느려진 것을 뜻하는 것이다. 낮과 밤의 교대는 아주 또렷해져 갔다. 나는 처음 그것을 몹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낮과 밤의 속도는 점점 느려져서, 태양이 하늘을 건너가는 속도도 늦어졌다. 그리고 나중엔 낮과 밤이 한 번 바뀌는데 몇 세기나 걸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지구는 으스름한 빛 속에 휩싸여 버렸다. 이 으스름한 빛은 때로 희미한 어둠과 하늘을 지나가는 혜성의 빛으로 지워지는 정도였다.
태양을 나타내고 있던 빛의 띠는 이미 보이지 않게 되었다. 태양은 지지 않게 되어 다만 서쪽 하늘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할뿐이었다. 그리고 전보다 크고 붉은 색이 짙어져 갔다.
달이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별들이 도는 속도도 점점 느려져서 이제는 천천히 돌아가는 빛의 점처럼 되어 버렸다. 드디어 그 새빨간, 엄청나게 큰 태양도 내가 타임 머신을 정지시킬 직전에는 수평선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게 됐다. 그건 둔한 열을 가진 거대한 돔 같이 되어, 가끔 약간 꺼져 가는 것처럼 껌벅거렸다. 어쩌다 한 번 태양은 다시 환히 밝아지더니 곧 다시 둔한 붉은 색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나는 태양이 떠올랐다 내렸다 하는 속도가 느려진데서 인력의 활동에도 변화가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지구는 이미 태양에게 한쪽 면만을 보여 주고 있었다. 현재 달이 지구에게 언제나 같은 면만 향해 있듯이........ 나는 매우 조심스럽게 타임 머신을 정지시키려 했다. 요전에는 갑자기 정지시키다가 머리부터 냅다 내던져졌던 일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다이얼의 바늘이 움직이는 정도가 점점 느려져서 이윽고 1000만 단위의 바늘은 정지된 것처럼 보였다. 1일 단위의 바늘의 움직임도 상당히 느껴져서 나는 얼떨떨하던 기분에서 많이 회복되었다. 속도가 더욱 떨어지더니 이윽고 황폐한 바닷가의 윤곽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극히 조용히 타임 머신을 정지시키고 좌석에 앉은 채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늘은 이미 푸르지 않았다. 북동쪽은 잉크 빛처럼 검고 그 속에 푸르스름한 별이 깜박거리지도 않고 빛나고 있었다.
머리 위의 하늘은 진홍색으로 물들어 있고, 별도 보이지 않았으나 남동쪽으로 갈수록 점점 더 붉은 빛깔이 더 짙어져서 불타는 것처럼 보였는데, 거기 커다란 태양이 지평선에 일부분 잠긴 채 빨간 모습으로 멈춰 있었다.
근처의 바위들은 몹시 야단스런 홍색인데 거기서 처음에 눈에 뜨인 생물은 짙은 녹색의 식물이었다. 그것들은 남동쪽을 향한 바위의 불쑥 내민 곳에 빽빽이 들어 붙어 있었다. 그 초록색은 숲에 있는 이끼와 동굴 속의 지의초처럼 짙은 녹색이었다. 이곳에 나 있는 것들은 일 년 내내 어둠침침한 곳에서 사는 식물이었던 것이다.
타임 머신은 바닷가의 평평한 비탈에 서 있었다. 바다는 남동쪽을 향해 넓어지고 음산한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밝고 선명한 수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바람이 없었기 때문에 해변을 씻어 주는 물결도 없었고, 바다는 죽은 듯 고요하기만 했다. 다만 평온한 숨결 같은 약한 물결이 바다를 부풀게 해서 이 영원의 바다가 아직은 겨우 살아 있음을 알게 해 줄 뿐이었다. 가끔 파도가 쳐 오는 해안선을 따라 두꺼운 소금기 층이 져 있었는데 그것이 하늘의 빨간빛을 반사하여 연분홍색으로 보였다.
나는 머리가 무겁고 호흡도 많이 틀려진 걸 느꼈다. 그 느낌에서 나는 언젠가 산에 올라갔을 때가 생각났다. 그래서 공기 중의 산소가 현재보다 희박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폐하고 비탈진 땅 저편 하늘에서 날카로운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엄청나게 큰 흰나비 같이 생긴 것이 옆으로 날개를 나울거리며 공중으로 날아올라 동그라미를 그리며 얕은 산그늘로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다. 그 소리는 몹시도 기분 나쁜 것이어서 나는 오싹해지며 몸이 떨렸다. 그리고는 좌석에 꼭 달라붙었다.
다시 한 번 사방을 들러보니 바로 옆에 이제까지는 불은 바위덩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뭉그적뭉그적 이쪽으로 옮겨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커다란 게 모양을 한 괴물이었다. 상상이 되는가? 이 테이블보다 커다란 게란 것이 말일세. 그 놈은 많은 다리를 굼실굼실 움직이며, 커다란 가위를 흔들며, 마차를 모는 마부의 채찍같이 길다란 더듬이를 움직여 주위를 더듬으며 쇠붙이 같은 얼굴 양쪽에 쑥 튀어나온 눈으로 물끄러미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등에는 주름이 잡혀 보기 흉한 흑이 가득 붙었고, 곳곳에 연둣빛 어린 딱지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복잡하게 생긴 입 근처에는 많은 촉수가 나 있어서, 게가 움직일 때마다 흔들흔들 거리며 근처를 더듬고 있었다.
이런 무시무시한 괴물이 내가 있는 곳으로 기어오고 있는 것이다. 노란 눈으로 보고 있을 때 나는 파리라도 앉은 듯 내 볼이 근질근질하는 걸 느꼈다. 나는 손으로 쓸어 보았으나 금시 또 근지러워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귓불까지 근질거렸다.
나는 철썩 근지러운 곳을 쳤다. 그러나 무슨 실같은 것이 손에 닿았으나 미끈거리면서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내 바로 뒤에 또 한 마리의 괴물 게가 있었다. 그놈의 더듬이를 내가 만진 것이었다.
나는 심술스럽게 툭 튀어나온 눈을 껌뻑이며 무얼 먹고 싶은 듯이 입을 벌름거리며 물풀이 붙은 커다란 가위를 쳐들고 내게 덤벼들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곧 레버를 잡고 타임 머신을 한 발쯤 앞으로 나아가게 해서 이 괴물들에게서 도망을 쳤다. 그러나, 나는 역시 같은 그 바닷가에 있었다. 기계가 정지하자 바로 또 괴물의 게들이 보였다. 어둠침침한 속에 짙은 초록빛 이끼 사이로 수십 마리의 괴물 게들이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 세계의 극도로 황폐해진 모습은 무엇이라고 말로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였다.
동쪽의 붉은 하늘과 북쪽의 검은 하늘, 죽은 것 같은 바다,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바위투성이의 해변, 돌 거죽에 독기가 있어 보이는 초록색 이끼, 숨을 쉬기도 괴로운 엷은 공기 등이 모두 등골이 오싹오싹해지도록 무서운 기분이 들게 해 주었다.
나는 다시 100년 정도 앞으로 타임 머신을 나아가게 했다. 그 곳도 역시 새빨간 태양이 얼마쯤 더 크고 또 흐리멍덩해 보였다. 죽은 듯한 바다도, 싸늘한 공기도 모두 한가지였다. 초록색 이끼와 붉은 바위틈에는 역시 기분 나쁜 게들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서쪽 하늘에 커다란 초생달 같은 창백한 곡선이 보였다.
나는 1,000년 가량씩 타임 머신을 정지시켜 가며, 지구의 불가사의한 운명에 이끌려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서쪽 하늘에서 태양이 점점 커지고 점점 흐릿해져 가는 것과, 오래된 지구의 생물들이 차차 사라져 가는 것을 넋을 잃고 관찰하고 있었다.
드디어 3천만 년 이상 앞의 세계까지 가자 커다란 태양은 어두운 하늘의 10분의 1 가까이 뒤덮고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타임 머신을 정지시켰다. 거기서는 우글우글 하는 게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붉은 빛깔의 바닷가에는 탁한 녹색의 돌 거죽에 난 식물 외에는 살아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 듯했다. 여기 저기에 허연 것들이 보였다.
지독한 추위가 엄습해 오고 때때로 눈이 내렸다. 북동쪽을 보니 어두운 하늘의 별빛 아래 눈이 빛나고 있었다. 파도처럼 높았다 낮았다 하는 언덕 위는 연분홍색이 짙은 하얀 색이었다. 바닷가는 얼음이 얼어붙었고 바다 가운데는 얼음덩이들이 떠 있었다. 그러나, 바다의 대부분은 영구히 지지 않는 저녁 햇볕을 받아 새빨갛게 물들어 아직 얼지 않은 채로 있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생물이 혹시 없을까 하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어쩐지 불안하기만 해서 타임 머신에 올라앉은 채로 잠시도 좌석을 뜨지 못했다. 그러나, 지상에도 하늘에도 바다에도 움직이는 거라곤 하나도 볼 수 없었다. 오직 바위에 달라붙은 초록색의 미끌미끌한 것이 아직 완전히 생명이 멸망해 버리지 않았음을 말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바다에는 모래톱이 나타나 있었다. 썰물 때였던 것이다. 거기서 무언지 검은 것이 떨고 있는 깃 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그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본 것은 내 눈의 착각이고, 저 검은 것은 보통 바위였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하늘의 빛은 매우 밝고 별도 깜빡거리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 때 돌연 태양의 서쪽 둥근 테에 변화가 생긴 것을 알았다. 그것은 점점 퍼져 갔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서 그 검은 그림자가 점점 태양을 덮어 나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일식이 시작된 것이었다. 달이나 수성이 태양 앞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리라. 나는 처음에는 달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나, 아무리 봐도 지구보다 안쪽의 혹성이 지구 바로 앞을 통과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방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동쪽으로부터 찬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하고, 눈발이 아까보다 더 심하게 내렸다. 바닷가에서 파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생명 없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세상은 깊은 침묵에 싸여 있었다. 그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적막,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의 목소리도, 염소 우는소리도, 새 소리도, 벌레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도, 우리 인간 생활의 배경이 되어 있는 그런 소리는 전혀 없는 것이었다.
어두움이 짙어 갈수록 펑펑 쏟아지는 눈은 한층 더 심하게 내려, 내 눈앞에서 춤추고 있었다. 추위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드디어 먼 언덕의 눈으로 하얀 꼭대기도 하나하나 어둠 속에 파묻혀 들어가 버렸다.
조용하던 바람이 갑자기 소리치기 시작했다. 일식의 중심부의 검은 그림자가 내게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눈이 보이는 거라고는 희고 푸른 별들 뿐이었다. 다른 것은 모두 빛을 잃고 어둠 속에 빨려 들어가 버린다. 하늘도 새까맣다. 이 넓고 큰 암흑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와 숨을 쉴 때마다 느끼게 하는 가슴 아픔에 나는 완전히 맥을 못 추게 되고 말았다. 전신이 파들파들 떨리고 심한 구역질이 났다.
이윽고 다시 태양의 가장자리가 하늘에 걸린 구부러진 새빨간 활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기분을 진정 시키려고 타임 머신에서 내려섰다. 머리가 어찔어찔해서 이대로 라면 돌아가는 여행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어찔어찔했지만 나는 그대로 서서 참고 있는데, 다시 모래톱에서 붉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무언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둥그런 축구공 만한 크기였다. 아니 좀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 놈은 몇 개의 촉수를 늘어뜨리곤, 마치 피와 같이 빨갛게 출렁이는 바다를 뒤로 하여 때때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나는 당장에 정신을 잃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도 먼데서, 그리고 이렇게 무서운 어두컴컴한 데서 쓰러지는 날에는 모든 것이 그만 이라 생각하고 가물거리기 시작한 정신을 잡아, 흔들듯이 비틀거리며 타임 머신의 레버를 잡아당겼다.
이렇게 해서 나는 돌아온 걸세. 나는 오랫동안 타임 머신 속에서 정신을 잃고 있었을 거야. 낮과 밤이 다시 또 눈이 핑핑 돌만큼 빠른 속도로 뒤바뀌고 있었네.
태양은 점점 금빛으로 되어갔고, 하늘도 파래졌고, 호흡도 훨씬 편해졌지. 다이얼의 바늘은 빙글빙글 역회전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다시금 희미한 건물의 그림자가 보였다. 멸망하기 시작한 인류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것이었지만 그것도 또 사라지고 다른 것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100만 일 단위의 다이얼 바늘이 제로(0)를 가리켰을 때 나는 스피드를 떨어뜨렸다.
눈에 익을 조그마한 건물이 보였다. 1천 일 단위의 다이얼 바늘이 제로에 돌아와 낮과 밤의 교대가 차차 느리게 되었다.
이윽고 연구실의 바랜 벽이 보였다. 나는 서서히 타임 머신의 속도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하찮은 일이지만, 나는 묘한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앞에서 얘기했다고 생각하지만 출발 때의 일이었다. 타임 머신의 속도가 아직 그리 올라가지 않았을 때 와젯 부인이 방을 건너 질러 갔었는데 그것이 마치 로켓이 날아가는 것처럼 빠르게 보였다.
내가 돌아왔을 때도 그녀는 또 연구실을 가로질러 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그녀의 동작이 전번과는 정반대로 보였다. 막다른 쪽의 도어가 열리고 그녀는 천천히 뒷걸음질로 연구실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앞에 들어왔던 도어로 뒷걸음을 해서 나가는 것이었다.
그 조금 전에 금방 하인 힐리어를 본 것 같았는데 그의 모습은 번개같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타임 머신을 정지시키고 그립던 연구실을 둘러봤다. 가구나 장치들이 출발할 때와 다름없이 그대로였다.
나는 비실비실 하며 기계에서 내려와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 몇 분 동안 나는 심하게 떨었지만 곧 안정을 되찾았다. 나는 그 동안 여기서 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일이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타임 머신은 이 연구실 남동쪽 구석에서 출발했었다. 그것이 지금은 서북쪽 벽을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그 두 곳의 거리는 내가 미래 세계에 도착했을 때 그 조그만 잔디밭과 몰록이 타임 머신을 옮겨다 둔 흰 스핑크스의 받침대 사이의 거리와 꼭 같은 것이다.
내 머리는 한동안 멍해 있었다. 이윽고 나는 일어나 다리를 절뚝거리며 복도를 지나 여기까지 왔다. 발뒤꿈치가 아프고 몸이 몹시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입문 옆 테이블에 펠펜 신문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날짜를 보니 오늘이고, 시계를 보니 그럭저럭 여덟 시였다. 자네들 목소리가 들리고,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너무도 기분이 나쁘고 피로해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엄청나게 맛난 고기 냄새가 흘러 왔다. 그래서 문을 열고 자네들한테로 가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 다음부터의 일은 자네들도 알고 있는 그대로다. 나는 몸을 씻고 식사를 마친 다음, 지금 이렇게 자네들과 얘기를 하고 있는 걸세.
 
위너가 준 하얀 꽃
 
그는 여기서 한 숨을 돌린 후 말을 이었다.
"아직 얘기는 도저히 자네들에게는 믿어지지가 않을 걸세. 나 자신도 오늘 밤 이렇게 반가운 자네들의 얼굴을 마주보며 이런 이상한 모험담을 들려주고 있지만 이게 도대체 사실인지 아닌지 조차 분간 할 수 없으니 말일세.“
그는 의사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자네에게 꼭 믿어 주길 바래서가 아니네. 거짓말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예언이라 생각해도 좋고. 연구실 안에서 꿈을 꾼 거란 말을 들어도 좋네.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이런 얘기를 생각해 냈다고 해도 상관없네. 내가 이 얘기를 정말이라고 하는 건 얘기의 흥미를 돋구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좋아. 그런데 만들어 낸 얘기라고 할 때 자네들은 이 얘기를 어떻게 생각하나?“
그는 파이프를 집어들고, 언제나처럼 난로를 탁탁 쳤다.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가 의자가 삐걱거리더니 융단을 밟는 발자국 소리가 났다. 나는 시간 여행가의 얼굴에서 눈을 돌려 얘기를 듣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그들은 어둠침침한 쪽에 앉아 있었고 난로의 불빛이 그들 앞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의사는 이 집주인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는 듯했다. 편집장은 벌써 여섯 개째의 여송연 담배 끝을 노려보고 있었다. 신문 기자는 회중 시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고 생각된다. 편집장이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자네가 소설가가 아닌 게 정말 유감스럽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시간 여행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네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단 말이군!"
"글쎄........“
"그럴 줄 알았네."
시간 여행가는 우리들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성냥은 어디 있나?" 하고 물었다.
성냥을 그어 파이프를 뻐끔뻐끔하면서 그는 말했다.
"사실이지, 나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라네. 그렇지만, 그렇지만........"
그는 천천히 작은 테이블 위에 있는 시들은 흰 꽃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하다가 파이프를 쥔 손을 젖혀 손가락 관절의 반쯤 아물어 가고 있는 상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의사가 일어나 램프 불 앞으로 다가가서 그 꽃을 들여다보았다.
"별난 암술인데 ......"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심리학자가 몸을 내밀고 팔을 뻗쳐 꽃 하나를 집어들었다. 이 때 신문 기자가,
"이런 야단났군. 벌써 1시 15분 전이야. 집엔 어떻게 가지?“
하고 걱정을 했다.
"역에까지만 가면 합승 마차가 얼마든지 있네." 하고 심리학자가 말했다.
"별난 꽃이야. 무슨 종류의 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이걸 내가 가져도 괜찮겠나?"
하고 시간 여행가를 바라보았다.
"그건 곤란해.“
시간 여행가는 망설이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의사가 새삼스럽게 물었다.
"정말 어디서 꺾어온 건가7"
시간 여행가는 머리에 손을 얹었다. 마치 자기 머리 속에서 도망칠 것 같은 생각을 못 나가게 막으려는 것 같았다.
"이 꽃은 내가 타임 머신을 타고 여행할 때 위너가 내 포켓에 꽂아 준 것이네."
하고 그는 말한 다음 방안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이게 모두 꿈이라니 그럴 수가 있는가? 이 방도, 자네들도, 언제와도 다르지 않은 이 분위기도 나는 다 잘 기억하고 있네. 나는 타임 머신을 만들지 않았던가 ? 그리고 그 모형도. 그걸 모두 꿈이라고 한단 말인가? 인생을 꿈이라고들 하지. 때로는 아주 불행한 꿈이라고. 그렇지만 꿈이라고 하더라도 성실하지 않은 꿈이라면 나는 견디어 낼 수 없어. 그렇지 않다면 그건 내 머리가 잘못 되어 있는 거야. 하지만 어떻게 그런 꿈을 꾸었을까? 나는 타임 머신을 가보고 와야겠어. 만일 그게 정말로 저 방에 있다고 하면........"
그는 서둘러 램프를 들고 붉은 불꽃을 너울거리며 복도로 나갔다. 우리도 그를 따라 나갔다. 가물거리는 램프 불빛 속에 타임 머신은 확실히 앉아 있었다. 형편없이 찌그러진 모습을 한 채...... 그것은 놋쇠와 흑단(늘푸른 큰키나무로 재목이 굵고 치밀하며 아름다운 광택이 나는 검은 빛깔로 고급가구 기구, 악기 등의 재로)과 상아와 반투명으로 빛나는 석영으로 만들어 진 것이었다. 손으로 만져 보니 딱딱했다. 나는 손을 내밀어 난간을 만져 보았다. 상아 부분에는 갈색으로 흐려진 얼룩이 져 있었고 아래쪽에는 풀과 이끼가 묻어 있었다. 난간 하나는 휘어져 있었다. 시간 여행가는 램프를 긴 의자 위에 올려놓고 휘어진 난간을 어루만졌다.
"이걸 보니 알겠어. 내가 말한 건 정말이었네. 이런 추운 곳에 자네들을 끌고 와서 미안하네."
그는 다시 램프를 집어들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휴게실로 돌아왔다. 그는 현관까지 나와 우리들을 배웅하며 편집장이 코트를 입는 걸 도와주었다. 의사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자네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피로해 있네."
하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그는 껄껄 웃었다. 나는 그가 현관 도어를 열고 큰 소리로 잘 가라고 인사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편집장과 같이 마차를 탔다. 편집장은 그 얘기를 허풍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나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얘기 내용은 참으로 엉뚱하고 믿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의 말하는 어조는 정말로 진실 되고 당연한 것 같았다.
나는 그날 밤, 한잠도 자지 못하고 그에게서 들은 얘기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튿날 다시 한 번 시간 여행가를 찾아가 보기로 했다. 다음 날 그는 연구실에 있다고 했다. 나는 그의 집안 사람들과는 허물없이 지내는 터이라 연구실로 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연구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잠시 동안 타임 머신을 바라보고 있다가 손을 내밀어 레버를 만져 보았다. 그러자 땅딸막하고 퍽도 완강하게 보인 기계가 바람에 불리는 나뭇잎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민감함에 크게 놀랐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어릴 때 흔히 알지 못하는 것에 함부로 손을 대선 안 된다고 주의 받은 일이 생각났다.
나는 복도를 걸어 되돌아 나왔다. 휴게실에서 시간 여행가를 만났다. 그는 어디 외출을 하려는 참이었다. 어깨에 소형 카메라를 메고 다른 편 어깨에는 접어서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조그만 배낭을 매고 있다. 그는 나를 보자 빙그레 웃으며 악수 대신 팔꿈치를 내밀었다.
"몹시도 바쁘다네. 저 기계 덕분에........"
하며 그는 말했다.
"하지만 농담 아니었던가? 정말 또 시간 여행을 할 작정인가?“
하고 내가 물었다.
"정말이고 말고. 정말 여행을 떠날 걸세."
그는 똑바로 내 눈을 쏘아보았다. 그러다가 잠시 망설이더니 방안을 둘러보았다.
"30분 가량 기다려 주겠는가?"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자네가 왜 왔는지 나는 알고 있네. 마침 잘 와주었어. 저기 잡지가 있어. 그런 거나 보면서 점심 시간까지만 기다려 주면 이번에야 정말 모든 것을 증명해 보여 주겠네. 잠시 동안 자네를 혼자 있게 해야겠는데 괜찮겠나?“
나는 좋다고 했지만 그 때는 그가 말한 뜻을 잘 알지 못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를 걸어갔다. 연구실 도어가 꽝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신문을 빼들었다. 대체 그는 점심시간까지 무얼 하겠다는 것일까? 그 때 퍼뜩 어떤 광고에 눈길이 가자 나는 두 시에 출판업자 리처드슨과 만날 약속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시계를 보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나는 일어서서 이 사정을 시간 여행가에게 알려 주려고 복도를 나왔다. 연구실의 도어에 손을 댔을 때 안에서 고함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갑자기 끊어지는가 했을 때 철컥 하는 소리와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도어를 열었을 때, 나는 무서운 바람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들었다. 방안에서 유리창이 깨져 마룻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시간 여행가는 보이지 않았다. 검정과 놋쇠 빛깔의 것이 뱅뱅 돌고 있는 속에 의미하게 유령 같은 사람의 그림자가 앉아 있는 게 한순간 보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의 그림자는 투명체여서 그 뒤에 있는 의자와 의자 위에 놓여 있는 도면까지도 환히 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유령 같은 사람의 그림자는 내가 눈을 비볐을 때는 사라져 버렸다. 타임 머신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져 버린 것이었다. 연구실 저편 구석은 휑하니 비어 날아오른 먼지가 내려앉고 있을 뿐이었다. 천장의 채광창의 유리 한 장이 공기의 소용돌이로 깨진 것 같았다.
나는 영문을 몰라 멍하니 서 있었을 뿐이었다. 무언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은 알았지만 그게 무슨 일인지는 미처 깨닫지를 못했다. 멍하니 서 있노라니까 뜰로 통하는 도어가 열리고 하인이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이윽고 나는 정신을 차려 그에게 물었다.
"주인은 그 쪽으로 나가셨는가?“
"아뇨. 아무도 이쪽으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주인님이 여기 계신가 하고........"
이로서 나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리처드슨과의 약속을 어기기로 하고 이곳에서 시간 여행가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더 겉 다른 얘기를 들려주겠지. 표본이나 사진도 찍어올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평생 동안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간 여행가가 모습을 감춘 것도 벌써 3년 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그 누구나 다 잘 아는 일이지만 그 날 이후로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끝맺음
 
누구나 이렇게 생각한다. 과연 그는 돌아올까? 과거의 세계에 가서 구석기 (백만 년 전부터 2만 5천 년 전까지) 시대의 피에 굶주린 털북숭이의 야만인들에게 붙잡혀 버리지나 않았을까? 백악기 (약 1억 4천만 년 전부터 7천만 년 전까지)의 바닷속 깊이 빠져 버린 거나 아닐까? 저 쥐라기 (1억 8천만 년 전부터 1억 3천 5백만 년 전까지)의 거대한 파충류의 괴물인, 기괴한 도마뱀들 가운데로 뛰어들어가 버린 거나 아닐까? 아니면, 또 지금도, 지금이란 말을 써도 좋다면, 공룡이 기어다니는 쥐라기의 산호초 위라든가, 황폐한 소금 호숫가를 헤매 다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전번 여행보다 훨씬 가까운 미래 세계로 갔을까? 인간이 아직 인간으로 살아 있고, 우리 시대에서는 아직 수수께끼로 되어 있으며 골치 아픈 문제로 되어 있는 일도 모두 해결되어 인류의 전성기라 할 시대로 갔을까?
나의 생각으로 말한다면 현대와 같이 불충분한 경험과 단편적인 이론이 서로 아무런 조화도 이루지 못한 시대를 아무래도 인류의 전성기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물론 나 개인의 생각이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타임 머신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그런 얘기를 주고받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알고 있지만 그는 인류의 진보에 대해서는 비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문명이 된다는 것은 바보스러운 짓이요, 그것은 얼마 안 가서 무너져 그걸 만든 사람들을 깔아뭉개 버릴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들은 그럴 까닭이 없다는 듯이 태연스럽게 살아 갈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내게 있어 미래는 검은 미지의 세계일 뿐이다. 그의 말에서 극히 작은 한 분야를 알았을 뿐이며, 미래의 세계는 넓고 또 넓은 것이다.
내 곁에는 지금도 그 두 송이의 별스런 하얀 꽃이 있어서 나를 위로해 주고 있다. 이미 시들어서 갈색으로 퇴색해져 이제라도 흩어져 버릴 것 같아도, 인류의 지혜와 힘이 멸망해 버린다해도 이것이야말로 감사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언제까지나 인간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는 걸 밝혀 주는 유일한 긍지인 것이다.
 

 
 
 
베디안
 
크리스 네빌 Kris Nevile 지음
 
 
심야의 사고
 
어두운 밤하늘에 하얀 것이 번쩍거리기 시작하였다. 눈은 소리도 없이 사뿐사뿐 내려 숲도 들도 절벽도 언덕도 그리고 그 사이로 꾸불꾸불하게 뻗친 도로를 엷고 하얀 천으로 완전히 덮어 버렸다. 눈에 푹 덮인 도로에는 개 한 마리도 없었다. 너무나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밤이었다. 그 조용한 밤에 문득 가냘픈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 어둠 속 저쪽 먼 곳에서 두 개의 노란 색 눈이 번쩍이었다. 엔진 소리가 짐승들의 울음소리로 들렸고, 노란 눈은 헤드라이트였다. 도로의 반대쪽 편에서 한 대의 승용차가 눈을 휘날리며 똑바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 승용차는 대단히 급한 모양이었다. 체인을 감지 않은 타이어가 푹 싹인 눈 위를 미끄러져 가며 커브를 지나갈 때마다 도로에서 튕겨나갈 것 같이 미끄러지곤 하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엔진은 삐거덕거리고 타이어는 비명을 울리고 헤드라이트는 한없이 내리고 있는 눈에 반사되어 미친 듯이 번뜩이고 있었다. 승용차에는 한 쌍의 남녀가 타고 있었다. 여자는 낳은 지 얼마 안 되는 갓난애를 안고 있었다. 추워서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그렇지 않으면 계속 심한 승용차의 진동 때문인지 갓난애는 계속 울고 있었다.
"여보! 좀 천천히 달리세요. 위험해요."
젊은 여자가 운전하고 있는 사나이에게 말했다.
"그러나, 서둘지 않으면 늦어진다.“
남자는 핸들을 꽉 진 채 앞만 계속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그러나, 아직 익숙하지 않은 자동차를 이렇게 눈 속에서 속력을 내시니........"
"알고 있어. 그러나 만약 출발 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지? 이런 곳에 남겨진다면 당신도 싫겠지?“
"그건 그렇지만........"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또 한바탕 우는 어린애를 흔들면서,
"그래, 그래! 울지마. 아가."
하고 달랬다. 바로 그때였다.
"아차!“
남자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맹렬한 속도를 계속 줄이지 않고 급커브를 돌던 순간, 헤드라이트와 이미 눈앞에 바싹 나타난 커다란 트럭의 모습을 비친다. 남자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고 핸들을 필사적으로 오른쪽으로 꺾었다. 트럭은 가까스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브레이크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타이어는 눈 위를 스키처럼 쭉 미끄러졌다.
"여보!"
여자는 어린애를 힘껏 가슴에 안으면서 소리쳤다. 그 때 승용차는 이미 비스듬히 쓰려져 가면서 도로 바깥쪽으로 미끄러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모퉁이로 굴렀다. 그대로 두 번 굴러서 절벽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진 승용차는 이미 비틀리고 움푹 들어가고 찌그러지고 형편없이 부서졌다. 부서지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끝나자 사방은 또 무서울 정도로 조용해 졌다. 그 때,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부서진 승용차의 바로 옆의 풀밭에서 가냘프게 들려왔다. 그 승용차를 간신히 스쳐간 트럭은 곧 멈췄다. 트럭 운전사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승용차는 이미 절벽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큰일났다.!"
"도저히 살수가 없겠군요!"
운전사와 조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절벽을 내려가 무참하게 부서진 승용차 옆으로 갔다. 조수가 살며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아무도 없잖아?"
조수는 깜짝 놀라면서 뒷걸음질 쳤다.
"뭐라고? 그럴 리가........"
운전사도 깜짝 놀랐다. 형편없이 부서진 승용차 속에는 분명히 있어야 할 사람의 시체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단지 거기에는 회색의 먼지 같은 것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떨어지는 동안 밖으로 튕겨 나가지 않았을까요?"
"정말 이상한 일이다 !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두 사람은 어리둥절했다. 혹시 밖으로 튕겨 나간 것이 아닐까 해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푹 쌓인 눈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물론 튕겨 나간 시체의 흔적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흡사 유령이 운전한 것 같다.“
그 순간 두 사람은 갑자기 긴장했다. 어디선가 가냘픈 어린애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어린애다!“
조수가 외치고 풀밭으로 뛰어갔다. 거기에는 갓난애가 홀로 눈 위에서 울고 있었다. 조수가 살며시 안아들었다. 갓난애는 계집애였으며 왼팔이 부러졌는지 퉁퉁 부어 있었다.
"가엾어라. 이 팔은 평생 낫지 않겠는데........"
갓난애를 진찰한 병원의 의사가 말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부상으로 살아 있는 것만도 기적이군. 그런 사고에서........"
"기적이라고 하면 ......?“
운전사가 기억을 더듬으며 물었다.
"이 애의 부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골짜기에라도 떨어지고 맡았겠지. 이런 사건에는 간혹 상상도 못할 먼 곳으로 튕겨 나가는 수도 있으니까요.“
의사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경찰에서도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심한 치료와 간호의 덕택으로 갓난애는 얼마 안 가서 상처가 다 나았다.
"불쌍하게도 고아가 되고 말았구나!“
간호원들은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렇게 귀여우니 틀림없이 곧 새 어머니가 생기게 될 테지 "
그리고 그 말은 얼마 안 가서 사실이 되었다. 사람이 아주 좋아 보이는 중년 부부가 병원에 찾아왔다.
"아, 귀엽고 예쁜 아이!“
여자는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갓난애를 살며시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오늘부터 넌 내 딸이 되는 거야. 지금부터 너를 베디안이라고 부르겠다.“
"좋은 이름이군요.“
의사는 웃으면서 말했다. 남자가 의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정말로 이 애의 부모가 돌아가셨을까요? 우리들이 이 애를 기르고 있는데 문득 나타나지는 않을까요?“
의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들이 살아 있더라도 되돌려 달라고는 할 수 없죠."
"되돌려 주다니요? 제 딸인데요?“
어머니가 된 여자는 얼굴을 붉히며 갓난애를 꼭 끌어안았다.
"그렇고 말고. 그들이 살아 있다고 해도 자기 딸이 살아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거야."
아버지가 된 남자가 말했다.
"곤란한 것은 베디안의 생일을 모르는 것입니다.“
의사가 말을 하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애의 생일은 오늘입니다. 우리들의 딸이 된 날이 이 애의 탄생일, 그것이 좋겠지요?"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
의사가 찬성하자 중년 부부는 즐겁게 웃었다.
 
미소녀
 
세월은 빨리 흘러갔다. 베디안은 병 한 번 앓지 않고 잘 자랐다. 서너 살에는 길가는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로 귀엽게 생겼다. 그러나, 사고 때 다친 왼쪽 팔만은 아무래도 완쾌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라지도 않고 굳은 채로 있었다. 베디안을 사랑하는 양부모는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진찰을 받았으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양부모들은 언짢게 생각했으나 베디안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오히려 손재주가 놀라울 정도였었다. 세 살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었는데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는 누구나 깜짝 놀랄 정도로 아름답고 훌륭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었다. 우거진 숲과 맑은 물, 푸른 하늘에 둥둥 떠 흐르는 흰 구름, 태양이 내려 쪼이는 더운 여름날의 풍경, 수평선으로 넘어가는 태양, 부슬부슬 내리는 비 등 베디안의 그림 속에서는 아름답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었다.
"저 아이는 그림의 천재이어요. 언젠가는 틀림없이 훌륭한 화가가 될 것입니다.“
하고 어느 날 미술 선생이 교무실에서 사이가 좋은 음악 선생에게 말했다. 그러자 음악 선생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입을 떼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베디안은 음악에 천재입니다. 부자유스러운 손으로 바이올린을 가지고 상급생보다 어려운 연습곡을 훌륭하게 켜는 것을 보셨죠? 나는 전에 베디안이 켜는 것을 듣고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지요. 너무 깨끗하고 황홀해서........그러한 기분이 든 적은 별로 없었어요."
음악 선생의 눈은 반짝하고 빛났다. 그러나, 베디안의 재능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수학, 역사, 물상, 생물 등 모든 과목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이상한 아이어요. 그 아이는 한 번 외우면 절대로 잊지 않습니다. 그렇게 기억력이 좋은 애는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를 가르치면 거기에 관계 있는 것은 즉시로 이해하고 말지요. 하나를 듣고 열 가지를 안다는 것은 바로 그 아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가끔 그 아이가 무서울 때가 있어요.“
또 한 선생이 말했다.
"나는 우리 학교의 학생 중에서 베디안에게 장난을 거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지요. 그렇게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서로 얼굴을 처다 보았다.
"나는 그 이유를 좀 알 것 같군요.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조금 불량한 남학생이 베디안의 손에 대해서 욕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랬더니 베디안은 잠자코 그 아이를 쳐다볼 뿐이었어요. 그러자, 남학생은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더니 달아나 버리는 것이었어요. 그 때의 베디안의 눈을 나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군요. 깊은 바다같이 바닥을 알 수 없는 아름답고도 매서운 눈이었지요.“
그 선생은 그 때 일을 생각하면서 몸을 움츠렸다. 베디안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기숙사 제도의 여자 고등 학교에 입학하자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았다. 여전히 베디안은 아름답고 성적도 우수하고 특히 새로 배우기 시작한 배구를 썩 잘 했다. 그러나, 그 무렵부터 어쩐지 베디안의 행동은 전처럼 활발하거나 명랑하지 못한 것 같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운동을 한다든지 잡담을 하는 일도 점점 없어져 갔다. 혼자 살며시 기숙사를 빠져 나와 사람이 없는 빌딩 옥상에 서서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를까?) 베디안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의문과 싸워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왜 딴 사람들이 하는 일이 모두 무의미하고 시시하게만 느껴질까? 똑같은 사람인데 왜 그들이 하등 동물인 개나 고양이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언제부터 시작이 되었는지 베디안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 언제부턴지 모르게 부풀어올라 드디어 가슴속에 꽉 차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딴 사람이 옆에 있기만 하여도 일종의 고통 같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난 아주 어릴 때부터 필요 이상으로 친한 친구가 한 사람도 없었다. 이 사람들과 나와는 어딘가 모르게 틀리지 않나 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혼자였다) 그것은 살을 깎는 듯한 고독이었다. 이 세상에서 자기만 단 혼자이고, 마음을 서로 주고받을 만한 상대가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슬퍼지고 몸이 점점 식어서 굳어 가는 것 같았다. (그림은? 음악은? 배구는?) 베디안은 어딘가 의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 그림이나 음악이나 배구도 쫓아가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리 달아나는 것 같았다.
"엄마?“
문득 베디안의 차갑게 식은 마음의 한 모퉁이에서 따뜻한 것이 흘러 나왔다. 어머니의 부드럽고 다정한 얼굴이 그녀에게 미소를 던져 주고 있었다.
"아빠!“
환상 속의 아버지가 살며시 어머니 곁으로 와서 똑같은 미소로 그녀를 지켜본다.
"베디안, 집으로 돌아온."
"돌아가겠어요"
"나는 꼭 돌아가겠어요!“
그러나 베디안은 방학 때까지 기다렸다. 언제부터인가 모르게 참는 습관이 생겨 버렸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 주일간의 방학이 오자 베디안은 기차를 타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초인종의 버튼을 누르는 베디안의 손이 조금 떨렸다. 거실에는 아버지만 혼자 계셨다.
"베디안, 잘 돌아왔다.“
아버지는 그 환상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엄마는 어디 계셔요?"
"아........ 병원에. 베디안, 엄마가 조금 몸이 불편한 모양인데 별로 대단한지는 않다. 곧 나을 거다.“
베디안이 바다같이 깊어 보이는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자 아버지는 얼굴을 돌렸다.
"아빠........ 가르쳐 주셔요."
아버지는 얼굴을 찌푸리고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래, 아무래도 너에게 숨길 수가 없구나. 네 눈은 너무나 날카롭군.“
"심하신 가요?“
"그렇다.“
"무슨 병이어요?“
"숨길 수 없구나. 베디안, 엄마는 위암이다. 그것도 사방으로 퍼져서 이미 늦었다. 이제 한 달 정도 밖에는........"
"왜, 왜 진작 알려 주지 않으셨어요?"
베디안은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엄마는 자기 병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니 너도 아무 것도 모른 체 하여라, 보통 때와 같이 아무렇지도 않은 태도로........ 엄마는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나는 조금이라도 엄마를 그대로 행복한 채 죽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베디안은 아버지의 엄한 말씀에는 도저히 거역할 수가 없었다.
"알았어요. 아빠, 그렇게 하겠어요."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는 생각보다는 건강했다. 그러나, 죽음의 그림자는 그 얼굴에서 손끝에까지 나타나 있었다. 일 주일 동안의 방학은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베디안은 방학을 더 연장시키려고 했으나 어머니는 허락하지 않았다.
"학교로 돌아가거라. 베디안, 우리들은 언제든지 또 만날 수가 있잖아.“
베디안은 하는 수 없이 학교로 되돌아왔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엄마가 죽는다면 나도 죽고 싶다!) 하고 베디안은 생각했다. 기숙사로 되돌아온 지 삼 일째의 저녁 무렵 친구가 베디안에게 ,
"누군가가 교문에서 너를 보자고 하더라."
라고 알려 주었다. 교문 앞으로 가자 어떤 처음 보는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까만 양복을 입은 청년이 저녁 노을을 등지고 서 있는 것을 보자 베디안은 자기도 모르게 섬뜩했다.
"베디안이죠?“
"네.“
"나는 시르라고 합니다. 알겠죠?"
놀랄 일이었다. 베디안은 알고 있었다. 그는 틀림없이 시르였다. 단지 시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한 번도 만나 본 일이 없었다.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니 따라와요."
베디안의 몸은 열병 환자처럼 떨리고 이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청년이 말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문 모퉁이에 스포츠 카가 한 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앉았다. 그리고 자동차는 곧 달리기 시작하였다. 자동차가 어디를 어떻게 달렸는지 베디안은 몰랐다. 귓전을 쌩쌩 소리를 내면서 지나가는 바람이 사라지자 차는 교외의 어떤 큰 집 안에 들어가서 정지했다. 집은 빈집같이 느껴졌다. 그러나, 어떤 방의 문을 열자 거기에 한 노인이 책상을 향해서 앉아 있었다. 노인은 베디안을 보고 나더니 시르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그 아이다.) 베디안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눈을 꼭 감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라."
베디안은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갑자기 머리의 일부분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노인은 지금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과 마음으로서 이야기를 걸어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라니......!“
말을 하다가 말고 베디안은 말을 멈추었다. 자기 자신도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알았겠지? 베디안, 너도 우리와 똑같이 이 지구의 인간이 아니다."
노인은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우주인
 
노인의 생각은 물이 흘러내리는 것 같이 베디안의 마음속으로 스며 들어왔다.
"우리들은 여기서부터 수천 광년의 우주 저쪽 은하의 핵 항성계에 존재하는 아미오별에서 온 우주인이다. 지구인과는 달라서 이미 수억 년의 역사와 문명을 가진 고등 종족이지. 우리들의 문명은 절정에 달했고 모든 악한 것은 소멸되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종족은 자유롭게 우주의 모든 곳까지 여행하여 수많은 혹성들의 생물을 연구하고 있단다."
노인의 생각은 계속 전해 왔다.
"지금으로부터 지구 햇수로 17년 전 우리들은 이 지구에 왔었다. 너는 그 때 아직 갓난애였지. 양친과 같이 왔었단다. 그리고 돌아가려고 할 때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다. 지구의 자동차에 서투르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 양친이 돌아가셨단다."
베디안의 마음은 놀람으로 가득 찼다.
"우리들 아미오별 사람은 죽으면 신체의 분자의 변화가 일어나 육체는 소멸해 버리고 약간의 섬유질의 먼지 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구인은 아무 것도 모르지. 우리들은 너도 그 사고로 소멸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수개월 전 네가 살아 남아서 지구인으로 성장되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래서 우리들이 너를 찾으러 오게 된 것이란다.“
노인의 사고파가 중단되었다. 엄한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쓸쓸했었죠? 베디안, 오랫동안 다른 종족 안에서 홀로 살아왔으니........ 그것은 우리보다 지능이 높은 종족 같으면 괜찮지요, 모습은 별다름 없어도 정신적으로 고독하게 발달된 종족도 있는데 이 지구 인종과 같이 모습도 정신도 다같이 보기 싫고, 더욱이 자기의 신체를 자기 마음대로 변화시키지도 못하는 종족은 거의 없지요."
시르의 사고파가 날아 왔다. 베디안은 이상한 얼굴을 했다. 그 시르 역시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쯤도 모르겠어요? 물론 우리들의 이 모습은 지구인의 모습을 빌린 것이죠. 다른 혹성을 여행 할 때에는 그 혹성의 생물의 모습을 빌리는 것이지요. 자, 똑똑히 보셔요."
사고파가 중단된 순간부터 시르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몸의 색채가 희미해지더니 투명하게 되고 무지개 같은 오색의 빛에 싸이더니 돌연 거대한 나비가 되어 날기 시작했다.
"정신의 고도 집중으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신체의 분자 배열을 변경하고 재편성시켜서 자기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는 것이죠.“
나비가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그러자, 곧 고양이로 변하더니, 그 고양이가 한 걸음 발을 옮기자 개로 되고, 그것이 희미하게 되더니 다시 인간의 모습을 갖춘 시르로 되돌아왔다.
"베디안도 할 수가 있지요. 우선 그 팔을 스스로 고치는 것이어요.“
베디안은 주저했다.
"주저하지 말아라. 너에게는 능력이 있다. 정신을 통일하여 '팔아 나아라'라고 생각해라. 그렇다. 그대로 생각을 계속해라. 그러면 팔의 뼈와 근육의 세포가 바뀌어져서 새로운 팔이 살아 나오는 것이다. 봐라, 나았다?“
베디안은 팔을 보았다. 완쾌되었다. 좌우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팔! 정말 팔은 완쾌된 것이었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지? 베디안, 너는 분명히 아미오별 사람이다. 우리들과 같이 돌아가야지.“
베디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쓸쓸하게 느꼈던 모든 원인은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아미오별 사람인 자신과 지구인과의 넘을 수 없는 장벽이 가로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지요. 가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아무튼 나의 고향이고 나를 이해하는 것은 나의 동포뿐이니까요. 데리고 가주셔요. 아미오, 나의 고향에!“
베디안의 가슴 속 깊이에서 사고파가 용솟음쳤다.
"그러면 결정되었다. 곧 출발하자. 저쪽 바다에 우리 우주선이 기다리고 있다.“
베디안은 조금 망설였다.
"아빠와 엄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어요...."
"그것은 안 된다.“
노인은 책망하는 말투였다.
"지구인에게 우리들의 존재를 알려서는 안 된다."
"뵙기만 하고 가도 안 되나요?"
"안 된다.“
"17년 동안이나 나를 키워 주신 분이어요. 나를 사랑하고 계셔요. 그리고 나도........"
"사랑이라?“
노인은 입을 삐죽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 지나면 너 역시 그 사랑이라는 것이 자기가 기르는 개에게나 고양이에게 대하는 애착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너와 그들과는 그 정도로 틀린다.“
베디안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렇지 않아요.“
"알았다. 이제 그 얘긴 그만 두자."
노인은 일어섰다. 시르도 일어섰다. 베디안도 따라 일어섰다.
헬리콥터와 흡사한 은색의 비행차는 저녁 노을이 짙은 해상을 소리도 없이 날아가고 있었다. 베디안은 좌석 옆과 창문에 뺨을 대고 멀어져 가는 육지를 보고 있었다. 17년 동안의 추억들이 등같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문득 어떤 일을 생각해 내자 베디안의 마음은 안정되었다. 그녀는 조종석에 앉아 있는 시르에게 사고파를 보냈다.
"시르, 우리들의 별에도 그림이 있나요?"
"그림?“
"사람이나 바다나 산이나 꽃 같은 것을 그리는 것 말이어요.“
"그런 것은 없지요."
"왜 없나요?“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러면 음악은?“
"왜 인공의 음악을 듣지요? 대우주가, 별의 빛이, 암모니아와 메탄가스의 화학 변화 같은 자연이 음악을 들려주고 있으니까요."
"그런 것 말고요. 시르, 자기 자신이 악기를 들고 켜면서 ........"
"시시해요. 베디안은 17년 동안 지구의 하등 생물의 습관이 몸에 밴 모양이군요. 고쳐야 해요."
시르의 사고파가 서슴없이 말했다. 베디안은 아직 구름이 낮게 깔려 있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부터 아무런 추억도 없는 곳으로 가는구나! 다 죽어 가는 엄마와 쓸쓸히 계시는 아빠를 뒤에 두고........) 베디안의 머리 안에서는 문득 사고파가 혼란해졌다. 머리가 뒤흔들리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베디안, 어디가 아프냐?"
노인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그 때,
"보인다! 우주선이다!“
하고 시르가 말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은색의 거대한 해파리와 같은 우주선은 주의해서 잘 보지 않으면 쉽게 눈이 가지 않을 것 같았다. 시르와 노인은 자기들을 아미오별로 운반해 줄 우주선을 기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한 순간 두 사람은 베디안에 대한 것을 잊고 있었다. (나에게는 엄마의 위암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엄마를 죽음에서 구해낼 힘이 있다.) 그 순간에 베디안은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적어도 2일만이라도 나는........) 창밖에는 여러 마리의 갈매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비행차는 우주선의 갑판에 살며시 앉았다. 베디안은 작지만 아담한 둥근 창이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잠시 동안 여기에 있거라."
노인과 시르는 베디안을 혼자 남겨두고 나갔다. 우주선은 출발 준비로 바빴다. 베디안은 둥근 창문 가까이 갔다. 한 시간쯤 지나서 바다에 어둠이 덮였을 때 출발 준비가 끝났다. 노인은 베디안이 있는 방으로 되돌아왔다. 방안을 획 돌아본 순간 얼굴이 찌푸려졌다. 베디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상하다. 어딜 갔지?“
노인은 그 때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둥근 창으로 바다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그리고 파도치는 넓은 바다와 밝은 밤하늘의 일부가 보였다. 어느 사이에 구름이 흩어지고 달이 나와서 끝없이 넓은 바다를 밝게 비춰주고 있었다. 그 파도 위를 한 마리의 큰 갈매기가 비스듬히 날아가고 있었다. 아직 나는데 익숙하지 못한지 큰 날개의 움직임이 서툴러서 잘못하면 균형을 잃고 바다에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갈매기는 그 때 목을 쑤욱 내밀고 힘을 내서 하늘로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 파도치는 수평선 저쪽의 육지를 향해서 힘껏 날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는 곳, 그림과 음악과 추억이 있는 마음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베디안의 모습이었다.
 

 
 
 
작품 해설
 
미래를 예언하는 이야기
 
허버트 조지 웰즈(H. G. WELLS)는 1866년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상인이었는데 생활이 넉넉한 편이 되진 못했습니다. 그는 7세 때 발목을 다쳐서 오랫동안 누워 있어야만 했을 때 그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동기가 되어 독서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후 상업 학교에 입학하여 항상 우수한 성적이었으나 11세 때 아버지가 불구자가 되는 바람에 14세 때에는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후 직장을 얻어 일하면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학교에 나가 생물학을 가리키기도 하고 과학 교과서를 쓰기도 했습니다. 27세 때 폐결핵에 걸려 오랫동안 요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몇 편의 단편 소설을 써서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해서 작가로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은 아직 SF의 초창기이라서 작가도 거의 없었으며, 프랑스의 베르느(1828~1901)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웰즈가 풍부한 과학 지식을 토대로 하여 최초로 시간 여행을 과학적으로 쓴 것이 바로 이 타임 머신입니다. 1805년에 단행본으로 발행되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일약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모로 박사의 섬」, 「투명 인간」, 「우주 전쟁」, 「달 세계 최초의 사람」 등을 발표하여 SF작가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에 와서는 웰즈는 베르느와 함께 세계 SF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타임 머신을 발명하여 80만 년 후의 세계에 가본 시간 여행가가 거기에서 겪은 일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형식으로 쓴 소설인데, 사회 문명 비판가, 역사가로서의 식견을 충분히 포함하고 있어서 일종의 SF 소설이라기보다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는 이야기라고 절찬을 받고 있습니다. '베르느의 작품은 실천의 가능성이 있는 발명과 발견을 작품 속에 써서 독자의 흥미를 끌고 있지만, 나의 작품의 발명과 발견은 공상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 라고 웰즈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그의 작품은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을 가능하도록 생각하게 하고 독자들이 읽는데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않고 이야기에 말려 들어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임 머신은 80여년 전에 쓰인 작품인데 현재까지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애독하고 있는 것은 인류의 운명에 큰 관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문명이 진보됨에 따라 사람들은 점차 기계에 의존하게 되어 인류의 퇴화가 시작되어 80만 년 후의 세계에서는 체력도 지식도, 아니 인간성 마저 잃어버리게 되고 맙니다. 시간 여행가는 그 세계에서 물에 빠진 소녀를 구출하여 그 소녀로부터 인간다운 사랑을 받는데, 이것이야말로 아무리 인류가 변해도 영구히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작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와 인류의 장래에 큰 관심을 가진 웰즈는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전쟁과 교육과 종교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발표하여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또, 세계 평화를 기원하여 「지적 국제 연맹」을 제창하여 글과 강연으로 세계 사람들에게 호소했습니다. 1920년에 발표한 그 유명한 「세계 문화사 대계」는 이러한 뜻을 내용으로 해서 쓴 책입니다. 그 외 「생명의 과학」, 「인류의 노동과 부와 행복」등 웰즈의 작품은 여러 분야에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 영국 최대의 문화인인 문호라고 존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세계의 현실적 움직임을 보고 차츰 비관적이 되어 제 2 차 세계 대전의 원자 폭탄 사용을 알고 완전히 실망한 채 1946년 80세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초능력을 가진 우주인
 
'베디안' 작가 크리스 네빌(Kris Nevile)은 1925년에 미국 미주리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제 2차 세계 대전 때 입대하여 각처의 전투에 참가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플라스틱 제조 회사에 근무하며 합성 수지를 연구하였습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1949년부터였는데 그 작품은 초인 과학을 다루는 것이 많았습니다. 주로 단편을 즐겨 썼으며 약 50여 편 정도 발표했습니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도 회사에 계속 근무하고, 고분자 물질의 연구를 계속하며 수술에 사용할 플라스틱 재료를 발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합성 수지에 대한 전문 서적을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1966년 회사를 퇴직하고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로스앤젤레스에서 흑인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두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네빌의 소설에는 현재의 과학보다 많이 진보된 초인 과학의 기술과 현재의 과학 지식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초능력을 가진 우주인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서는 초능력을 가진 우주인이 설치는 것이 아니라, 초능력을 가진 우주인도 역시 인간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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