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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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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청소년 위한 SF세계명작소설

280 세기의 세계 - 레이 커밍스 Raymond Cummings 지음
2023년 08월 23일 12시 30분  조회:143  추천:0  작성자: 강려
v280 세기의 세계
THE MAN WHO MASTERED TIME
 
레이 커밍스 Raymond Cummings 지음
 
레이 커밍스
1888년 미국 태생. 과수원에서 고용살이를 하는 등 불우한 소년 시절을 거쳐 금광을 찾아 돌아다니기도 했다. 청년 시절도 행복하지는 못했으나, 애디슨의 비서로 5년 간 근무한 것이 그에게 많은 깨우침을 주었다. 그리하여 1919턴부터 SF를 쓰기 시작한 그는 독특한 아이디어와 폭 넓은 주제로 많은 명작을 남기고 1957년 사망했다. "시간 초특급",“우주를 넘어서",“시간의 탑" 등.
 
◇ 편집 위원 ◇
아동 문학가 이 원수, 박 홍근/문학 박사 최 인학
공학 박사 양 옥룡/이학 박사 김 희규
전 교육감 김 성묵
 
 
 
책머리에
 
여러분은 지나간 과거로 되돌아가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까? 아니 그것보다 몇 천 년 후의 미래 세계에 가서 우리나라가, 이 세계가, 그리고 우리들의 자손들이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가를 보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틀림없이 그럴 수만 있다면……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누구든 어른이 된 후엔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고,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고 궁금해하니까요. 그리고 우리들이 죽은 뒤의 세상도 궁금할 것입니다.
이른바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타고 과거나 미래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면 자신의 어린 시절은 물론 기상천외의 재미있는 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죽고 난 후의 미래 시대나 태어나기 전의 과거 시대에 시간을 초월해서 여행할 수 있다면 하는 욕망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품어 봤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꿈을 실천해 보기 위하여 SF는 시간 여행이라는 멋진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자, 여러분. 그러면 지금부터 시간 여행을 하기 위해 타임 머신 커밍스호에 올라탑시다.
<차 례>
 
시간이란 무엇인가?··············· 5
시간 여행으로 출발··············· 26
로트의 편지·················· 45
2만 8천 년 후의 세계·············· 60
응원을····················· 81
두 대째의 타임머신·············· 102
미래 도시 앵글리즈·············· 119
미래 세계의 사람들·············· 134
꽃놀이 때의 사건··············· 148
바스인의 반란················· 158
타임 머신 공중전··············· 170
특별 비행 부대················ 177
해협의 결전·················· 183
대폭발···················· 197
새로운 생활에의 출발············· 213
 
작품 해설··················· 220
 
등장 인물
 
로저스: 뉴욕 시의 과학 연구회 회장. 타임 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하며, 미래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로트: 로저스의 외아들로서 대학의 공학부 학생. 아버지와 더불어 공간을 여행하는 것처럼 시간을 여행하는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를 한다. 제일 먼저 시간 여행기를 만들어 타고 미래 시대를 여행한다.
트로오: 미래 도시 앵글리즈의 해방자. 노스이라고 불리는 북방의 야만인들을 조직하여 앵글리즈를 공격한다.
조지: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젊은 화학 기사.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로트의 요청으로 제 2의 타임 머신을 타고 미래를 여행한다.
아질라: 로트가 좋아하는 미래 시대의 소녀.
후안: 아질라의 아버지. 앵글리즈의 지도자이며 과학자.
다이안: 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아질라의 동생.
모그루드: 후안의 유능한 후계자.
릴다: 로트의 어머니
 
 
시간이란 무엇인가?
 
6월의 어느 날 밤.
이곳 뉴욕 시의 센트랄 공원 가까운 곳에 있는 건물의 한 방에서는, 몇 몇의 신사들이 마치 나이 어린 학생들처럼 눈동자를 빛내면서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모인 사람 가운데 지도자 격은 과학자인 로저스, 그를 둘러싼 회원은 은행가인 도날드, 의사인 프랭크, 실업가인 찰스, 그리고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젊은 화학 기사인 조지 등이다. 로저스의 연구실을 근거지로 하는 과학 연구 동호회(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의 모임)인 사이언스 클럽의 회원들이다.
방의 한편 구석에는 로저스의 외아들로, 대학의 공학부 학생인 로트의 얼굴도 보인다.
조지가 짐짓 점잖은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음, 시간이란 무엇인가? 좋아, 내 정의는 이렇다. 시간이란 여러 가지 사건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뒤범벅이 되는 것을 막는 것이리라……"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회원들의 웃음이 터졌다.
로저스는 손을 흔들어서 웃음을 멈추도록 했다.
"아니, 여러분…… 웃을 일이 아니잖아. 분명히 조지가 말하는 그대로인 걸. 여러 가지 사건을 서로 분리해 놓는 것은 시간과 공간이니까. 어떤 일이든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나게 되어 있거든."
"여보게 로저스, 자네까지도 조지와 한패가 되어 농담이나 할 셈인가? 그보다도 오늘밤의 모임은 자네가 무언가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했잖아……"
실업가가 항의를 하자, 로저스는 한번 더 손을 흔들어서 진정시켰다.
"어쨌든 잠깐만 기다려들 주게.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의 준비라는 것이 필요하단 말씀이야. 이런 얘기를 시작한 것도 사실은 그 때문이지. 다들 명심할 것은, 무엇보다도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법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는 거야."
"틀림없이 자네는……"
의사인 프랭크가 말했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은 각각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뒤엉켜 있는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고 기억나는데……"
로저스는 방안을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바로 그거야. 이게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야. 이 우주를 만들고 있는 것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인데, 그것들이 서로 뒤엉켜서 존재하고 있거든. 바꾸어 말하면, 이 세계에 있는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시간도 공간도 물질도 아니고, 그것들 전부를 합친 것이다. 그것을 우리 인간이 마음대로 시간이라느니, 공간이라느니, 물질이라느니 하여 나누어서 생각하고 있을 뿐이지."
이 말을 듣고 실업가가 머리를 갸우뚱했다.
"예를 들면 시간과 공간인데, 이 둘이 서로 뒤섞여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걸."
"그렇지만 뒤섞여 있는 거야. 공간에는 길이, 넓이, 높이라는 세 가지 면이 있는데, 이 셋과 시간은 원래 같은 친구 사이거든."
"입으로 말만 하는 건 간단하겠지만, 문제는 어떻게 그걸 증명하느냐 하는 거지."
은행가가 이렇게 반박하자, 로저스는
"벌써 증명되어 있단 말이야."
하고, 조용히 그러나 딱 잘라서 선언했다.
"수학 용어만 늘어놓아도 여러분은 따분하게 느낄 것이기 때문에, 비유로 설명하기로 하지. 잘 들어 둬요. 집 한 채가 여기 있다. 이 집에는 길이도 깊이도 높이도 있다. 이 집은 하나의 물체로서 3차원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또 다른 무엇이 없을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대답을 못하고, 조용한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다. 로저스는 말을 이었다.
"시간이 지나간다고 하는 사실이 아닐까? 만일 그 집이 어떤 길이의 시간이 지나기까지 그곳에 서 있지 않고, 집이 서자 곧 무너져 버렸다면 처음부터 없는 것과 같게 되지 않을까?"
"정말 그렇겠군."
하고, 조지가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렇게 말하면 그럴 듯하군."
로저스는 조용히 계속했다.
"'물체가 있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두 면이 다 있는 덕택이지. 먼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게다가 시간과 공간은 뗄래야 뗄 수 없게 서로 뒤엉켜 있거든. 한 채의 집에는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시간이 있어서, 그 중 어느 하나가 빠져도 집은 사라지고 마는 거야. 시간과 공간의 뒤엉키는 모양을 또 하나의 본보기로 설명해 보기로 하지. 그런데 여러분은 '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 라고 생각하시는지?"
또다시 방안에는 조용한 분위기가 흘렀다. 이윽고 조지가 입을 열었다.
"운동 말인가? 음, 뭔가 물체가 공간에서 위치를 바꾸는 거겠지."
조지는 나서지 말아야 할 것을 나서지 않았는가 싶어서 한결 후회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붉힌다. 그리고 가죽으로 씌운 의자에 털썩 앉자, 자꾸만 담배를 태우고 있다.
로저스는 미소를 지으면서,
"옳은 말이야, 조지. 지금까지 우리는 '운동'에 대해서 자네가 지금 말한 그대로와 생각을 하긴 있었지. 무엇인가 물체가(예를 들면, 철도의 기차가) 공간에서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나서, 로저스는 모두의 얼굴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둘러보았다.
"그렇지만 여러분, 잘못된 생각의 근본은 여기에 있다. 공간만이 아니라, 시간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컨대, 기차는 그 때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에 있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야. 이처럼, 모든 공간은 시간이 관계하고 있네."
"바꾸어 말하면……
하고, 의사가 말을 꺼냈다. 로저스는 그 말을 받아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바꾸어 말하면, '운동'이란, 물체가 시간과 공간 양편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 어느 한 편이 빠져도 안 된다. 양편을 갖추지 않으면 이야기가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요구하고 있는 마음의 준비라는 것은 이것이지. 길이와 넓이와 높이와 함께 시간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이젠 알 수 있겠지?"
실업가가 자신이 없는 듯 겨우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어쨌든, 적어도 아까부터 자네가 여러 번 말하는 '시간과 공간의 뒤엉킴'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알 것 같군."
그러자 은행가가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
"로저스의 얘기는 잘 알겠지만 대관절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야? 분명히 얘기의 실마리는……"
갑자기 조지가 일어섰다.
"로저스, 우리는 자네가 뭔가 대단히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해서 이곳에 왔다네. 뭔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중요한 얘기라고……"
로저스는 조지의 말은 가로막았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지. 오늘밤 이렇게 클럽의 모임을 여기서 열게 된 것은, 자네들이 모두 나와 로트의 친구이기 때문인데…… 지금부터 얘기를 나누게 되는 것은 나보다도 로트에게 직접 관계가 있다네. 그러니 로트의 얘기를 들어보게."
로저스는 방 저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이리 오너라, 로트야. 네가 잘 얘기해 드리도록 해라."
로트는 방 한쪽 구석 컴컴한 곳에서 그다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키가 크고, 단단하게 생긴 몸집을 하고 있었다. 곱슬거리는 밤색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의 주인공이었다. 조용하고 부드러운 얼굴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모나고 억세 보이는 턱을 가지고 있었다. 천천히 앞으로 나왔으나, 물러앉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고 있음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아직도 시인에게 마음이 끌리는 소년의 얼굴 모습이 남아있었으나, 한일자로 꽉 다문 입술과 아래턱의 모양은 어른의 느낌을 주었다.
조지는 앉아 있던 의자를 앞으로 밀어놓고, 자기는 좀더 뒤에 있는 자리로 옮겨 앉았다.
로트는 그 의자에 앉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할까 망설이는 표정으로 잠시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아버지와 저는 약 2년쯤 전부터 진공 방전관을 사용하여 원자를 전자로 분리하는 연구를 해 왔습니다. 화학 처리를 해서 빛을 내는 성질을 가지게 한 특별한 스크린을 향해서 진공 방전관을 작동시키는 연구입니다."
여기서 로트는 로저스를 돌아보았다.
"지나치게 전문적인 이야기는 빼는 편이 좋겠죠, 아버지?"
로저스는 미소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로트의 말을 받아서 계속했다.
"문제의 것에 갑자기 부딪치게 된 것은, 전혀 우연한 일이었지. 보통 흔한 진공 방전관을 사용하여 응용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왜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알 수 없어. 설마 그런 대 발견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고, 실험 경과의 자세한 기록도 해 두지 않았단 말야. 스크린에 칠했던 화학 약제에 대해서도 어떤 것을, 어떤 비율로 섞었는지 자료가 없어."
"서론은 그쯤하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 주게…… 문제의 것이란 대관절 무엇인가?"
은행가가 참을성 없이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으나, 로저스는 여유 있게 찬찬히 계속해 나갔다.
"어둡게 한 연구실 가운데서 스크린을 향해서 방전체 따위의 절연체를 통하여 높은 전압 밑에서 양극 사이에 전류가 흐르도록 한다. 방전관으로부터 튀어나온 일렉트론(전자)은 스크린에 접촉하자 번쩍 하고 빛난다…… 그런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그 날 밤 번쩍거리는 모양이 다른 날과는 달랐단 말씀이야. 어떤 점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더라도 대답하긴 어렵지. 어쨌든, 나도 로트도 그 차이를 느끼고 있었네. 그런데 조금 지나서 로트가 다른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단 말이지. 스크린의 뒤쪽 어둠 속에서……"
그 때 허리를 꼿꼿이 세운 로트가 아버지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 다음부터는 제가 얘기하겠습니다. 맨 먼저 발견한 것은 저니까요. 실은, 스크린 뒤쪽의 어둠이 빛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빛은 점점 눈부신 반사광이 되었습니다. 마치, 스크린이 탐조등이 되어서 저편으로 여러 줄기의 광선을 부챗살 모양으로 쏘아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참으로 기묘한 빛이었습니다. 스크린의 이쪽, 다시 말씀드려서 아버지와 제가 있는 쪽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습니다. 조금 후에 문득 보니 그 빛은 스크린의 뒤에 있는 벽을 꿰뚫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스크린 저쪽에는 멀리 수 킬로미터 앞까지 드넓은 공간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방의 바람벽도, 그 바깥 박에 있는 뉴욕의 거리도 흔적도 없이 모습이 사라지고, 다만 텅 빈 세계만이 펼쳐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텅 빈?"
조지가 되묻자, 로트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그렇습니다. 적어도 처음 한동안에는 아무 것도 눈에 띄는 것이 없었습니다. 어디까지나 텅 비어있는 세계입니다. 밝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흐릿한 모양의 푸르스름한 빛에 비쳐진 공간뿐입니다. 저도 아버지도, 진공 방전관에 대해서나 스크린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정신 없이 그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몇 초 후에, 아니 좀더 긴 시간이 지나간 다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쩐지 그 세계 전부가 밝아져 왔습니다. 점점 은빛을 띤 광채로 변해 간다고 생각할 사이도 없이, 아버지와 저는 자신들이 지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흰 눈으로 전부 덮여 있는 광야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은백색의 눈 덮인 들판이 훨씬 먼 곳의 지평선까지 이어지고, 거기서 머리 위의 흐릿한 회색의 하늘과 맞붙어 있었습니다. 땅바닥은 우리들의 훨씬 발 아래에 있고, 우리들은 공중에 둥둥 떠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여기서, 로트가 잠시 멈추자, 로저스가 덧붙여서 계속했다.
"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 연구실은 빌딩의 5층에 있지요."
"그러나……"
하고, 실업가가 말을 하려고 하자, 은행가가 그것을 가로막았다.
"로트의 말을 더 들어보자. 자! 어서 이야길 계속해요, 로트. 보이는 것은 눈뿐이었다지?"
"네, 처음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아무 것도 없고 쓸쓸한, 몹시 춥게만 느껴지는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더니, 차차로 은빛으로 빛나는 느낌이 없어져 가고, 어느덧 낮의 풍경으로 변해 갔습니다. 오후 늦게 아니면 이른 아침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태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늘에 가려져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아버지 와 저는 앉은 채로 이 을씨년스러운 눈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있는 발 밑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이 튀어나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발 밑인 연구실의 아래를 빠져나가 저 먼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은행가가 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간단히 말씀드려서 그것은, 커다란 썰매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짐승의 가죽을 머리로부터 뒤집어쓴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이 보이고, 말만한 크기의 동물이 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말이 아니고 개였던 것입니다."
로트는 말을 잠시 중단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멍청하게 앉은 채로 아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로트는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구실에서 북쪽으로 4백 미터쯤 가서, 꼭 센트랄 공원이 있는 근방쯤에서 썰매는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그때 거기에 한 건물이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달걀 모양의 집이었는데, 눈이나 얼음이 아니면 흰 돌로 되어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집의 뒤쪽에는 뭔가 울타리로 둘러막은 장소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훌륭하게 전체의 풍경 속에 녹아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저도 아버지도 미처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썰매가 멎고, 사람의 모습이 어정거리면서 걸어 내려왔습니다. 그 때, 갑자기 빛이 꺼지면서 풍경 전체가 어둠 속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전과 같이 연구실에서 벽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장치했던 전기의 배선이 과열로 녹아 끊어졌기 때문이야."
하고, 로저스는 설명했다.
"게다가, 그 날 밤부터 나는 감기가 들고, 그것이 도져서 폐렴이 되어 몇 주일쯤 누워 있었지. 이 때문에 이 새로운 발견을 계속 뒤쫓는 일은 어쩔 수 없이 로트 혼자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말이네."
"잠깐만 기다려 주게."
하고, 은행가가 끼어들었다.
"지금 들려준 얘기는 모두 자네들이 실제로 본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을까? 환각이나 전기 장치의 영상이 아니었을까……?"
"아니야, 두 사람은 실제로 보았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하고, 실업가가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그들은 현재가 아닌 시대의 뉴욕 시를 보고 있었던 거야. 내 말이 맞겠지?"
로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았어. 그런데, 내가 앓고 있는 동안에도 로트는 더욱 연구를 진행시켜서……"
"그 현재가 아닌 시대라고 하는 것이 과거일까?"
하고, 의사가 끼어들었다.
"자네들은 아마도 과거의 세계를 들여다보았던 모양이지……"
"우리는 몇 천 년이나, 혹은 몇 백 세기나 앞의 미래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라고, 로트가 대답했다.
"미래라고!"
"그렇지."
로저스는 분명히 대답하고, 계속했다.
"미래라고 해서 반드시 초고층 건물, 호화 여객선, 대형 항공기와 같은 여러 가지 눈이 휘둥그래지는 발명품이 가득 차 있는 훌륭한 문명 세계라고만 생각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될 거야. 그런 것들이 앞으로 생길 것은 틀림없겠지. 백 년이나 2백 년, 아니면 천 년 안으로는 그런 건물은 전부 실현될 것이라고 나도 생각은 하지만, 문제는 그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되느냐 하는 거야. 어떻게 된다고 생각들 하는지? 여러분! 문명이 언제나 위로만 진보 향상을 계속 하리라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 반드시 꼭대기까지 올라간 그 다음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거야. 말하자면 인류는 퇴화하는 거야."
"저에게 이야기를 계속하게 해 주세요."
하고, 로트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들여다본 세계가 과거는 아니고 미래라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알았는가 하는 것은 여기서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맨 첫날밤은 우리도 몰랐던 것입니다만, 뒤에 그 광경을 다시 세밀하게 관찰해 가는 동안에,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간단한 일입니다만……"
"어떻게 알았지?"
은행가가 재빠르게 물었다.
"나타난 광경 가운데 여러 가지 세밀한 점들로 미루어 생각해서입니다. 집의 모양, 개처럼 생긴 동물, 태양……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세계가 밤이 되었을 때에 보았던 집안의 인공 조명, 그리고 소녀. 소녀의 옷 모양……"
"여자아이가 있었던가?"
하고, 조지가 황급히 되물었다.
"여자아이라고! 그, 그 얘기를 해 주게나. 로트, 미인이었나? 아니면……"
"이야기를 계속하게 , 로트."
하고, 은행가가 재촉했다.
"그 다음부터 차례 차례로."
"네. 소녀는 미인이었습니다."
로트는 짐짓 점잖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여자아이는……"
로트는 갑자기 이야기를 그치고, 무엇인가 먼 곳을 응시하는 것 같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로트, 왜 그러지? 어서 다음 얘기를 해요!"
하고, 조지는 성화 같이 재촉하였으나, 은행가가 한번 힐끗 노려보자, 부끄러운 듯이 목을 움츠렸다. 잠시 후 로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지금은 너무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병상에 계시는 동안에, 저는 몇 번이나 그 세계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한 주일 동안이나 계속 해서 관찰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 집 뒤에는 마굿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울타리로 둘러싼 마당 같은 공지에 작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나뭇가지에는 눈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에 해가 모습을 나타내자, 눈은 햇빛에 녹아 버렸습니다. 그 소녀는 붙잡혀 있는 몸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제가 처음으로 그 세계를 들여다본 그날 밤에 보았던 썰매에 실려 왔던 것 같았습니다. 그밖에도 또 한 사람의 여인과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사내가 한 남자와 여자를 가두어 두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로는 그 집은 분명히 백 미터 저편에 보였다고 말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런 세밀한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지?"
하고, 은행가가 물었다.
"작은 망원경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 소녀의 이야기를 빨리……"
하고, 조지가 재촉했다.
"작은 몸집의 소녀입니다. 여윈 편이고 나이는 18세쯤 될 것입니다. 길게 자란 금발인데, 문 밖에 서 있으면 붉게 보입니다. 이것은 햇빛 탓입니다. 태양은 마치 담뱃불 끝처럼 새빨갛고 커다란 풍선 같아 보였습니다. 햇빛을 쬐면 눈이 피처럼 보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열은 그다지 높지 않은 듯했습니다. 집의 바람벽은 속이 훤히 비쳐 보일 정도로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집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문이 닫혀 있었어도 안이 잘 보이는 것입니다. 소녀는 언제나 양쪽으로 머리를 갈라 땋아서 어깨에 늘어뜨린 채로, 낮은 의자에 멍청히 앉아 있었습니다. 단 한번 기타와 비슷한 악기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만, 붙잡혀 있는 몸이기는 해도 거기 있는 사람들은 소녀를 소중하게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내와는 마음이 맞지 않는지, 어느 때 방안에 들어와서 무엇인가 말을 건네는 그 사내에게 소녀는 저리로 가라고 하는 몸짓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사내는 성난 얼굴로 썰매를 타고 어디론지 나가 버리고, 몇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로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날 밤, 소녀는 여러 시간을 울고 있었습니다. 한 번 밖으로 뛰어나갔으나, 커다란 개가 한 마리, 다른 건물에서 쫓아 나와 소녀를 전과 같이 집안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개가 짖는 소리를 들었던 모양으로 노인과 여자가 나와서 소녀를 어딘가 다른 방에 가두고는 쇠를 잠그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소녀는 한번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한두 주일이 지나고, 아버지가 병에서 회복된 후에 한번 더 관찰하려고 했습니다만, 장치가 움직여 주질 않습니다. 아마도 스크린에 칠했던 화학 약제가 다 소모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그 후 몇 번을 새로 다시 칠해도, 그와 같이 시간을 넘는 효과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업가가 부드럽게 되물었다.
"그러면, 자네들에게 잠시 모습을 엿보였던 미래의 세계는 그 후 다시금 문을 닫고 말았다는 거로군?"
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이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
"그래서, 그 소녀가 걱정이 되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알만 해. 나는 자네의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어."
조지가 묘하게 자신 있는 말투로 장단을 맞추었다. 그러나 로트는 그 말에는 상관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과학적인 사실은 무엇이라고 증명하기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지금 새삼스레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그 소녀가 걱정이 되어서…… 물론 여러분은, 그 소녀는 아직 이 세상에는 없고 앞으로 몇 천년이나 지나지 않으면 태어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로트의 음성은 갑자기 나이 든 어른처럼 힘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좋든 싫든 무엇인가를 명령하는 것과 같은 말투로 변했다.
"여러분은 그 소녀가 장래에 이 세계에 살게 되리라는 말로 표현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소녀가 미래라고 하는 시간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녀는 여러분이나 이 저라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뉴욕인 이곳에서 수백 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공간이 아닌 시간이 우리들을 서로 갈라서 떨어져 있게 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공간이라면 1킬로나 수 백 킬로라도 머리 속에서 간단하게 왔다갔다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라면 공간처럼 왔다갔다하는 것을 생각할 줄 모릅니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시간은 공간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조금만 달리 생각해 보면, 길이나 넓이나 높이가 모두 같은 것입니다."
로트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많지 않은 청중을 똑바로 응시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생각해 봐 주세요. 당신은 한 그루의 나무다. 그러나 현재의 지성을 그대로 가지고 미국에 서 있다. 이 사실이 아닌 가공의 세계에서는 아시아가 천천히 당신에게로 다가왔다가, 어느덧 천천히 당신의 앞을 지나간다. 미국을 현재로, 아시아를 미래로 바꾸어 놓으면, 이것은 현실의 세계에서 인간인 당신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과 전혀 같은 것입니다. 이 사실이 아닌 가공의 세계에서 당신은, 구태여 아시아가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이 편에서 아시아로 가면 된다. 적어도 그런 방법이 있다고 깨닫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런 아이디어를 동료인 나무들에게(당신과 같은 지성을 가진 나무들에게) 이야기해 주었을 경우에, 동료들은 그것을 이해해 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아마도 '아시아는 머지 않아 자연히 이곳으로 오게 될 거다'라고만 말할 뿐, 좀처럼 당신의 아이디어를 납득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세계에서는 이와 같이 생각하는 방법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나무들의 생각하는 방법이 옳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같은 것을 이 현실의 세계에서도 말할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까? 우리는 구태여, 미래라고 하는 시간이 오는 것을, 현재라고 하는 위치에 서 있는 채로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없죠…… 이곳에서 미래로 접근해 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제가 멋대로 지어 낸 생각이 아닙니다. 몇 해 전에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이론이고, 현대 과학에도 받아들여져서, 수학적으로도 훌륭히 증명된 학설인 것입니다."
로트의 열변이 끝났어도, 한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이윽고 로저스가 침묵을 깨뜨리고 입을 열었다.
"두 주일 후에, 한번 더 여기 모여 주기 바라네. 아직도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네."
일동은 고개를 끄덕였으나, 조지는 말했다.
"물론 오지. 하지만, 대관절 무엇 때문이지? 로트가 뭔가 새로운 발견이라도……"
로트가 침착한 음성으로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지난 2년 동안에 저는 실험과 작업을 계속해 왔습니다. 물론 아버지가 도와주셨습니다. 게다가 돈도 대 주시고, 다른 곳에서 돈을 벌기까지 해서 자금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로트는 아버지에게 빙그레 미소를 먼지고, 로저스 역시 부드러운 눈길로 아들에게 응답을 보냈다.
"앞으로 두 주일이면 완성됩니다.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시겠지요?"
"생각하고말고."
하고, 로저스는 대답했다. 그러나 한순간, 그의 얼굴에 불안의 구름이 스쳐갔다. 그는 과학자인 동시에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과학에 대한 열정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있는 아들에 대한 염려는 절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무슨 준비가 필요한 거지?"
은행가가 커다란 흰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질문했다.
로트는 모인 사람들을 한번 더 둘러보았다.
"여러분이 공간을 여행하는 것처럼 시간을 여행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입니다. 두 주일 후에는 여러 분의 힘을 빌어서 시간을 뛰어넘는 여행을 출발하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그 소녀를 찾아내서 해방 시켜 주고 싶군요. 정체는 아직 모르지만, 무엇인가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위험으로부터 구해 내고 싶은 것입니다!"
 
시간 여행으로 출발
 
"역사상 가장 젊고 가장 위대한 과학자 로트를 위해서 박수!"
실업가가 먼저 외치자, 모든 사람들이 손뼉을 쳤다.
연구실이 있는 빌딩의 임시로 빌린 작은 방에서 열리고 있는 그 파티는 밖에서 보면 참으로 즐거워 보였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어쩐지 자연스럽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별히 로트의 양친인 로저스와 릴다의 표정은 때때로 굳어지기까지 했다. 몸집이 작고 호리호리한 몸을 검은 이브닝 드레스로 싸고 있는 릴다는 희랍의 조각처럼 균형 잡힌 모습의 여성이었다.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이나, 눈초리가 조금 치켜 올라간 회색 빛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동양적인 느낌이 들었다. 틀림없이 로트의 어머니인데도, 많아야 35세 정도 밖에는 안 되어 보인다. 이윽고 테이블 주위의 웃음소리가 멎고, 시중하는 사람들은 마지막 접시를 치우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은행가가 침묵을 깨뜨렸다.
"자아, 우리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지."
실업가도 마음이 내키는지 열심히 물었다.
"우선, 뒤쪽에 미래의 세계가 열렸다고 하는 그 스크린 이야기를 좀더 듣고 싶구먼."
로저스는 그 물음에 대답했다.
"나 자신도 잘 알 수 없다네. 로트가 알고 있는 것과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 합쳐서 이런 방법을 써도 그 스크린을 다시 만들 수 없었으니 말일세. 하지만, 이치만은 생각할 수 있지. 현재의 센트랄 공원이 있는 근방의 공간은, 이런 종류의 시간 요소의 덕택으로, 다른 시공간과 이어져 버렸던 것이지. 어디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스크린에 부딪쳐서 반사된 빛이 그 근처 공간의 시간과 장소를 변화시켜버린 모양이야. 현대의 과학에서는 미래는 '시간에서 다른 차원에 있다'고 하네. 그리고 '두 물체는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차지할 수 없다'는 원칙도 있지. 하지만, 이 원칙을 끝까지 캐어 나가면, '다른 시간이라면 여러 개의 물체라도 같은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으로 되지는 않을까?"
"그런 것보다는, 어서 앞으로 하기로 되어 있는 실험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게."
은행가가 초조한 듯이 재촉하자, 조지도 지지 않고 말했다.
"찬성, 찬성! 그 소녀를 대관절 어떻게 해서……"
"알겠네 , 알겠네."
로저스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결국, 우리 로트는 인간이 의식하는 시간 요소를 변화시킨다'고 하는 아이디어에 사로잡히고 만 것일세. 이론상으로 이 아이디어는 확실히 가능하지. 그래서, 나는 로트에게 작업을 질책했지. 그로부터 2년 간, 로트는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염려가 될 만큼 심혈을 기울여서 작업을 계속해 왔던 것일세. 하지만 여러분, 그만한 고생의 가치는 있었다, 로트는 훌륭히 성공하였네. 그 성공은 내가 커다란 도장을 눌러서 보증할 수 있네. 시험도 끝났고, 로트가 만들어 낸 장치는 지금 지붕 위에 있고, 거기 다가……"
"그 다음 얘기는 로트에게 직접 듣기로 하지."
은행가가 로트를 재촉했다.
"자아! 로트, 어떻게 해서 그 일에 성공했는지, 자세한 설명을 해 주기 바라네."
로트는 조심조심 무엇인가를 주저하면서 입을 열었다.
"네…… 어쨌든 원리 만이라면, 보통 일반적인 사실이라면 얘기할 수 있습니다만…… 세밀한 점은 대단히 전문적이고……"
여기서 로트는 입을 다물고, 시중드는 사람이 방에서 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주의 깊게 맡을 선택해 가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체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 네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높이, 길이, 넓이, 그러고 시간. 그러나 물체란 무엇인가? 최신의 과학에서는, 물체란 분자의 모임이며, 그 분자는 원자의 모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원자란 무엇인가? 원자는 전자의 모임이다. 요컨대 원자를 확대해 보면, 중심에 있는 원자핵의 둘레를 마이너스(-)전기의 입자 알갱이가 굉장한 속도로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잘 아시겠죠?"
로트가 시선을 은행가에게 돌리자, 은행가는 그다지 자신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트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이 중성의 핵은 양자(원자력을 구성하는 작은 알갱이의 하나)라고 불리우는 플러스(+)전기의 입자입니다. 여기까지는 모두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학설이죠. 그렇지만 그 양자, 즉 프로톤(양자)이란 무엇인가? 어떤 물질로 이루어지며,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되면, 아직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최근 수년간에 가장 많은 지지자를 모으고 있는 학설을 보면, 프로톤을 한 개의 소용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자라는 것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결국, 물체를 접점 잘게 분해해 가면, 마지막에는 이와 같이 전기를 띈 소용돌이가 되고 맙니다."
"한숨을 쉬고 싶은 얘기로군."
실업가가 물끄러미 테이블 한곳에 시선을 멈추고 중얼거리자, 로저스도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물체, 즉 물질이 어느 사이에 소용돌이, 즉 '운동'으로 변해 버리니까요. 그리고 그 운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귀신처럼 실체가 없는 것의 운동이 라고 하지만요……"
"아무리 해도 내게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걸. 그렇다면……"
실업가가 말하기 시작했으나, 로저스는 주저하지 않고 열렬한 기세로 재촉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물체가 운동하면, 어쩐지 '굳다'고 하는 느낌이 없어집니다. 예를 들면 물인데, 정원에서 흐르는 시냇물의 흐름 속이라면 누구라도 손을 넣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흐름이 무섭게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면, 시속 6백 킬로미터의 속도로 터빈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 속에 손을 넣을 수 있을까요? 이 속도의 물의 흐름을 직경 7센티의 노즐에서 흘러나가게 한다면 쇠망치를 사용해서도 끊을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운동하면 평소에는 부드러운 느낌을 주던 물체라도 굳어진다'고 하는 증명이 아닐까요?"
"그렇지만 그런 것과 시간이 대관절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거지?"
실업가가 반대하는 말을 하자, 이번에는 로트가 대 답했다.
"모든 면에서 관계가 있습니다. 물체의 공간적인 차원에 손을 대지 않고 시간적인 차원만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이상, 어느 정도는 물체란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자신의 몸이나 이 집과 같은 것까지도, 사실은 손으로 만질 수조차 없다는 사실을 한번 분명하게 인식해 버리면 우리 이야기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그렇겠는걸."
은행가는 여유 있게 의자에 몸을 기대고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자, 얘기들 계속해요."
"네…… 물질과 시간적인 차원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결국, 프로톤이라고 불려지는 전기 입자의 소용돌이의 움직이는 모양과 속도를 변하게 한다는 것이 됩니다."
여기서 로트는 도움을 청하는 듯한 표정으로 로저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밤은 어쩐지 이야기가 잘 되지 않는군요. 차라리 여러분에게 그 기계를 보여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아버지?"
로저스는 일어섰다.
"그렇겠군…… 그러면 여러분, 지붕 위로 올라 가실까요. 벌써 보신 분도 있겠지만, 약 한 달 전부터 이 빌딩의 지붕 위에 로트의 작업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이언스 클럽이 있는 빌딩은 12층 건물로서, 평평한 지붕 위는 돌로 쌓은 난간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지붕 위의 한편은 정원인데, 장미와 담쟁이와 포도 따위의 덩굴이 올라가게 하기 위한 선반과 화단이 있고, 자갈을 깔아 놓은 길도 만들어져 있다. 로트의 작업장은 그 반대편인데, 약 백 미터 정도의 면적을 베니어판으로 막고, 천막으로 사용하는 두꺼운 천을 씌었을 뿐인 임시로 지은 작업장이었다.
조용하고 달이 없는 밤이었다. 자줏빛 하늘에 무수한 별이 반짝거리고 있다. 거리의 소음도 이 높은 빌딩의 지붕까지는 들려오지 않는다. 근처에서 높은 빌딩 축에 속하는 이 빌딩에서는 대개의 건물 지붕들이 눈 아래에 보인다. 몇 건물쯤 저편에 호텔의 지붕 위 정원이 있고, 붉고 푸른 일류미네이션(전등 가스․등을 사용한 장식)이 아름답다. 아득히 아래로 보이는 길거리에는 자동차의 불빛들이 바쁘게 오가고, 그 사이로 개미처럼 작게 보이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밤하늘에서는 때때로 짜증나는 항공기의 폭음이 들려왔다.
로저스는 작업장의 자물쇠를 열고, 일행을 인도해 들어가게 했다. 맨 마지막으로 들어간 사람은 릴다인데, 아들인 로트의 팔에 매달리는 것처럼 걷고 있었다. 로저스가 스위치를 돌리자, 작업장 안은 전등 불빛으로 가득 찼다.
두꺼운 천으로 가리운 천장 아래는 헬리콥터와 비슷한 것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래 쪽 배 부분에 길다란 캐빈(선실)을 달고 있는 것은 마치 알루미늄 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잠자리다. 로저스는 자랑스러운 듯이 손으로 가리켰다.
"이것은 로트의 작품이야. 언뜻 보아서는 프레이즈형 헬리콥터를 꼭 닳았지? 실은 이것은 프레이즈 회사에 주문해서 만든 건데, 모터와 그 밖의 부분품도 다른 프레이즈형 헬리콥터와 같은 것을 사용하고 있어. 따라서 이것은 항공기로서의 성능을 골고루 갖추고 있지. 다만 다른 점은 이 기계의 가 장 중요한 부분인 시간 이동 제어 장치만은 로트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고, 또 자신의 손으로 장치했다는 거야."
"또, 자네가 나서는가! 그 점은 로트에게 설명을 하게 하면 어떤가7"
은행가가 주의를 주자, 로저스는 조금 화를 내는 표정이 되어서 얼굴을 돌렸다.
"아니 도날드…… 자네는 너무 이해력이 나쁘기 때문에, 이 기계야말로 앞으로 로트가 시간을 뛰어넘어 미래로 가기 위해 탈 것이라는 사실을 한 마디 가르쳐 주려고 했을 뿐이야."
은행가가 짐짓 대단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으므로, 일동은 크게 웃었다. 그러나 릴다만은 웃지 않았다. 그녀는 아들인 로트의 손을 잡은 채로 나무 기둥에 기대어 서서, 불안스럽게 눈을 크게 뜨고 뚜러지게 번들번들 빛나는 시간 여행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로저스는 로트를 불렀다.
"자 로트, 여러분이 기다리고 있다."
로트는 어머니와 마주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앞으로 나섰다. 사람들은 우르르 타임 머신 앞으로 다가서서 멋대로 들여다보았다.
"프레이즈형은 아직 그리 낯익지 않은 항공기인지도 모릅니다. 바로 최근에 데뷔했을 분이니까요. 지금까지의 형식보다도 기체가 조금 크고 균형이 잘 잡혀 있습니다. 그러나 속도는 조금 떨어집니다. 이 변속 프로펠러의 동력은 프레이즈형 최신식 모터입니다."
그 때, 빈 상자 위에 올라서서 타임 머신의 캐빈의 창문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은행가가 손을 흔들면서 로트에게 물었다.
"이 가운데는 여러 가지 방이 있구먼."
"네…… 필요에 따라서 세 개의 작은 방으로 칸을 막아 놓았습니다."
로트가 대답하자, 은행가는 다시 물었다.
"이 안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가?"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적어도 오늘밤은 그만 두는 편이 좋을 걸. 로트는 출발을 서둘고 있으니까."
로저스가 씁쓸한 얼굴로 말리자, 의사가 되물었다.
"오늘밤, 이것을 움직일 생각인가?"
"네…… 오늘밤 미래를 향해서 시간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 소녀를 찾아서 구해 내는 거지. 여러분도 기억하고 있겠지. 로트는 그 소녀를 그……"
"시끄럽소, 조지. 자아 로트, 조금 전에 아버지가 얘기했던 뭐라든가 하는 이름의 장치를 설명해 주게."
은행가의 재촉을 받고 로트는 설명을 계속했다.
"복잡한 것은 아닙니다. 전개의 원리는 이러합니다.. 프레이즈 회사 제품의 장치로 공간을 이동한다. 즉, 조종자의 마음대로 타임 머신의 공간 요소를 바꾸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하실 수 있겠죠?"
"물론, 알만 하다…… 제나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니까. 보통 비행기와 똑같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도날드, 너무 좋아할 건 없네. 만일 자네가 한 그루의 나무이고, 한 장소에 선 채로 일생을 보낸다고 하면, 비행기를 이해하는 일 따위는 도저히 불가능했을 테니까."
로저스는 놀려 주고, 로트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또 하나의 장치는, 타임 머신 전체의 시간 요소를 바꾸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제 몸까지도 포함해서, 저 타임 머신 안의 물체를 모두 공간을 떠돌고 있는 미립자로 되어있는데, 이 미립자들 사이로 전류와 같은 것, 즉 양자류를 통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 물체의 프로톤의 진동 운동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결국, 물체의 상태가 변화하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물체는 다른 시간 요소를 가진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 변화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는가?"
하고, 의사가 물었다.
"아니죠, 역시 각각의 경우에 따라서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내일 밤의 시간 요소를 가지는 상태로 되는 데는 최초의 수분간…… 다음 주간으로 가기 위해서는 또 1 분이나 2분……"
"점점 가는 것이 빨라지게 되는 셈인가?"
실업가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가속도가 붙는 방식이 실제로는 어떻게 되는가는, 아직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대체로 어느 시점 시간의 흐름 위의 어떠한 점에 도착했는가를 표시하는 계기는 달아 두었습니다만, 또 순환시키는 프로톤의 흐름의 강약을 여러 가지로 변화시켜서 시간 여행의 속도를 바꿀 수도, 혹은 전혀 시간 이동을 멈추어 버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왜 타임 머신은 왜 헬리콥터의 모양을 하고 있지? 자네가 지금부터 하려는 것은 시간 여행이지 공간 여행은 아니지 않나?"
은행가가 묻자, 로저스가 대 답했다.
"알겠나? 잘 좀 생각해 보게. 지금부터 천 년 후의 세계에 갔다고 가정할 때, 이 빌딩이 아직도 이곳에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만일 없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나? 그곳에 도착한 로트는 곧 12층의 높이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져서 죽게 되지 않겠나."
"정말 그렇게 되겠군."
은행가가 감탄한 듯 말하자, 로트가 아버지의 말에 덧붙여서 설명했다.
"따라서, 회전 날개는 어떤 시대에 도착하기까지는 사용할 예정이 없습니다."
로저스는 문득 회중시계를 꺼내 보았다.
"출발 준비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리겠니, 로트?"
"아닙니다. 벌써 모두 끝났습니다. 물도 식량도 옷도, 그밖에 필요한 것을 싣는 일도 끝났고, 리스트와의 대조도 완료, 기계의 최종 점검도 오늘 오후에 이미 끝냈습니다. 지금이라도 출발하고 싶습니다만……"
로트가 이렇게 대답하자, 로저스는 갑자기 불안한 표정이 되었다.
"음, 드디어 떠나는가. 내가 말한 것은 모두 기억하고 있겠지……? 돌아오는 시간과 장소를 틀리지 않도록 해라. 반드시 이 시대의, 이 빌딩의 지붕 위로 돌아와야 한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굳게 손을 마주잡았다. 이윽고, 로저스는 아들의 손을 놓자, 얼굴을 돌리고 저 편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로트는 다른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은행가만은 외톨이가 되어 작업장 구석에서 불안한 표정으로 타임 머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트가 그쪽으로 걸어가자, 은행가는 로트의 손을 꼭 잡고, 목이 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알겠나, 로트…… 조심해야 되네. 젊었다고 해서 결코 무리한 모험을 해서는 안 되네."
로트는 은행가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휙 돌려 두세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어머니 릴다에게도 걸어갔다. 그리고 두려운 표정으로 서 있는, 자기 어깨까지의 키밖에 안 되는 작은 몸집의 어머니를 허리를 구부려서 꼭 껴안았다.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꼭 돌아와 줘야 한다. 로트야…… 꼭 무사히 돌아와 주겠지?"
릴다는 회색의 눈을 불안한 듯이 크게 뜨고 물끄러미 아들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런 눈으로 절 보지 마세요. 어머니, 저는 꼭 무사히 돌아옵니다."
로저스가 로트를 불렀다. 로트는 가만히 어머니를 밀어냈다.
"그럼 갔다가 오겠습니다. 어머니, 내일이나 모레는 돌아오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수초 동안 최후의 점검을 끝내고, 로트는 타임 머신의 캐빈에 들어가면서 입구에서 얼굴을 내밀고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작업장의 지붕에 씌운 천은 반드시 벗긴 채로 두세요. 제가 돌아올 수 있도록……"
로저스가 대답했다.
"꼭 그렇게 해 두겠다. 그리고, 네가 없는 동안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이곳에 와 있으면서, 네가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기로 하겠다."
"그러면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캐빈의 문이 콰당 하고 닫혔다. 사람들은 타임 머신으로부터 5미터쯤 떨어진 장소에 모여 서서, 굳을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시간 여행이라는 것은 대관절 어떤 느낌을 주는 것일까?"
조지가 작은 음성으로 말했으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윽고, 낮게 부웅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마침내는 천 마리의 곤충이 일제히 날개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은 울림으로 변했다. 타임머신은, 그것을 지탱하는 발판 위에서 천천히 몸을 흔들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부르릉 하고, 타임 머신의 전체를 가늘게 진동시켰다.
몇 초 동안이 지나자, 타임 머신의 전체가 백열을 내기 시작했다. 작업장의 안을 비추는 전등의 밝은 빛 속에서도, 분명히 그것이라고 분간할 수 있는 일광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또 몇 초…… 타임 머신 전체가 반투명이 되어갔다. 그리고 완전한 투명이 되더니 증기처럼 되어 버리고, 소리와 그림자만이 잠시 남아 있다가 이윽고 모두 다 사라지고 말았다!
타임 머신을 지탱하고 있던 받침대, 그리고 해머, 톱, 못 따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텅 빈 작업장에 사람들은 말이 없는 채로 서로 얼굴들만 쳐다보며 서있었다.
이튿날 밤. 자정도 훨씬 지났을 무렵…… 사이언스 클럽의 지붕 위 정원의 작은 벤치에는 조지가 앉아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커다란 가죽 쿠션 위에는 로저스가 한문의 큰 대자(大) 모양으로 팔다리를 쭉 펴고서 잠들어 있었다. 바람 한 점 없고 별이 총총한, 밤하늘에는 한두 점 구름이 흘러가고 있고, 마침 동쪽에서 둥근 쟁반과 같은 달이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이다.
조지는 무릎 위에 팔을 세워 턱을 받치고, 눈 아래 펼쳐진 뉴욕 거리의 불빛과 늘어선 집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점점 밝아오는 달빛이 그의 와이셔츠와 흰 모직의 바지를 비추었다.
로저스가 꿈지럭꿈지럭 몸을 움직여 상반신을 일으켰다.
"조지, 일어나 있었던가?"
"응…… 그냥 자요. 나는 괜찮으니까.“
그러나 로저스는 일어나서 크게 기지개를 켰다.
"몇 시지?"
"두 시 반…… 자라고 했는데."
"나는 충분히 잤네."
로저스는 벤치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번에는 자네가 잘 차례일세. 조지, 자지 않으면 몸이 견뎌 내지 못하네."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완전히 마음이 흥분돼 버려서 말야. 로트가 출발하고 나서 벌써 몇 시간 되었지?"
로저스는 머릿속에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26 시간이 될까……"
"오늘밤 돌아온다고 생각하나?."
"알 수 없지. 아마도 돌아오겠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소녀를 무사히 발견하였으면 좋을 텐데…… 나도 꼭 그 소녀를 만나 보고 싶은걸."
작은 음성으로 말을 건네 오는 조지에게 대답도 하지 않고, 로저스는 말없이 화단의 꽃을 한 송이 꺾어들고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짓눌러서 망가뜨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조지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 로저스의 팔을 붙잡았다. 무슨 일인가 하여 눈을 들었던 로저스도 무의식중에 숨을 멈추었다. 포도의 덩굴을 올린 선반 저편의 공중에 조그맣게 빛나는 것이 하나 더 있었다. 밝은 달빛 속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담뱃불처럼 보이는 불의 점이다.
"저기다…… 뭔가 있다!"
그것은 처음에는 투명한 빛의 덩어리였으나, 점점 크게 뭉쳐졌다, 반짝거리는 한 개의 물체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포도의 덩굴이 무성해 있는 선반의 옆쪽 하늘 위에 떠 있는 채로, 희미하게 붕 하는 소리를 울리고 있다.
"타임 머신은 아닌 듯한테……"
조지는 그 이 상한 물체를 응시하고 있다가 중얼거렸다.
"그러면 무엇일까?"
이윽고 그 울리는 소리가 멎었다. 자세히 보니 물체는 정육면체로서 하나 하나의 면은 직경 50센티 정도의 원형으로 되어 있다. 그 이상한 물체는 수초 동안 공중에 떠 있다가, 희미하게 쿵 소리를 내면서 지붕 위에 떨어졌다.
"로트로부터의 통신이다. 긴급 사태인 모양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로저스는 급히 그 정육면체를 들어올렸다. 조지는 수상쩍은 눈으로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게 뭔지 알고 있나?"
"미리 약속해 두었던 거지. 긴급한 경우에…… 로트가 아무리 해도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을 때에는 이것을 보내기로 되어 있었던 거야. 자네들에게, 특별히 로트의 어머니인 릴다에게 지나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잠자코 있었지만."
연구실에서는 과학 연구 동호회 회원 전원이 모여서, 로저스가 그 정육면체를 여는 것을 침을 삼키면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정육면체 내부의 공간의 대부분은 복잡한 시간 제어 장치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 한쪽 구석에는 몇 장인가 되는 종이를 접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로트의 필적으로 지면 가득히 글자가 적혀져 있다. 로저스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로트로부터의 편지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끄집어 낸 로저스는 어떻게 해서든지 마음을 안정시켜 보려고 담배를 한 가치 입에 물고, 불을 붙이고는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뭐냐, 뭐냐…… 음, 로트는 무사하고 건강하다고 하네?"
로저스는 소리를 내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로트의 편지
 
우선 제가 건강하다는 것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어머니, 부디 안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공간의 계산을 제가 틀리게 하지 않았다면, 이 편지를 넣은 연락구는 제가 출발한 날 밤에서 한 밤이나 두 밤 후에 여러분의 손에 들어 갈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한두 밤이라도,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제게는 훨씬 오랜 시간이 지나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해 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출발하던 날 밤의 일입니다.
그 때의 체험이 지금의 저에게는 대단히 오래된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다만 캐빈의 밖에 있었던 여러분들의 그 때의 얼굴 표정만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캐빈의 내부는 작은 방 셋으로 나뉘어져 있고, 제가 타고 있는 것은 제일 앞쪽의 작은 방입니다. 이곳은 타임 머신의 조종실인데, 프레이즈형 헬리콥터에 사용되는 조종 장치와, 제가 발명한 시간 여행 장치의 제어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제가 발명한 시간 여행 장치는 대단히 간단한 기계이기 때문에, 그것을 제어하는 기계도 매우 간단합니다. 양자의 흐름을 조절하는 스위치와 시간 여행의 진행 정도를 표시하는 계기뿐이죠. 이 타임 트래블러 (시간 이동 장치) 계기는 다이얼의 지침으로 어느 정도 미래로 왔는가를 나타내는 것인데, 이 다이얼은 하루 단위의 것, 십 일 단위의 것, 백 년 단위의 것, 천 년 단위의 것이 각각 준비되어 있습니다.
먼저, 저는 프레이즈형 헬리콥터 조종 장치의 앞에 앉았습니다. 아직도 기체를 공중으로 들어올릴 필요가 없으므로 이 조종 장치를 사용할 생각은 없었지만, 출발시의 충격이 어떠한 것인지 예상할 수 없었으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안전한 좌석에 앉아 있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시간 이동 장치의 계기와 스위치는 오른손 쪽의 벽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먼저 그 스위치의 지렛대를 첫 번째 눈금까지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 순간 붕 하고 낮은 소리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발 밑의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붕붕 하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조금 후에는 귀머거리가 될 정도로 심해져 갔습니다. 아주 작고 작은 진동이 타임 머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진동시켰습니다. 이윽고, 그 진동은 제 몸 속에까지 들어와서 살을, 뼈를, 피를 꿰뚫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진동이 계속된 것은 겨우 몇 초 정도로 잠깐 사이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엇인가 대단히 큰 맥동이 사방에서 덮쳐 왔습니다. 제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손을 대고 힘을 주는 듯한,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싫은 움직임입니다. 이대로 계속된다면, 제 몸은 무수한 미립자로 분해되어 가루처럼 흩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붕붕 하는 소리는 더욱더 심해져 갑니다. 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무의식중에 일어났습니다. 스위치를 전과 같이 다시 돌려서 이런 현상을 멈추게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 충동을 죽을힘을 다해 참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머리부터 어디론가 삼켜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어지러워지고 기분이 몹시 나빠 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라기보다는 감각 자체가 말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입니다.
저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겨우 1초나 2초 동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득 정신이 들어보니 이전의 불쾌감은 완전히 사라지고 붕붕 하는 소리도 많이 작아져 있었습니다. 소리는 점점 더 작아져 가고, 잠시 동안 귓속에 그 울림만이 남아 있다가, 어느덧 그것도 뚝 그치고 말았습니다.
근방을 둘러보니, 둘레의 물체들이 환한 인광을 내면서 빛나고 있습니다. 제 몸도 빛을 내고 있습니다.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를 만큼 기묘한 색채의 어렴풋한, 이 세상의 것은 아닌 것 같은 빛입니다. 그렇군요. 어느 것이나 이 세상의 것은 아닌 것 같은, 실체가 없는 느낌을 주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 손이 투명해져서 손을 통해서도 캐빈의 벽이 보입니다. 그 캐빈의 벽도 투명해져서 타임 머신을 보관해 두고 있는 작업장의 벽이 보입니다. 마치 모든 것이 환하게 빛나는 유령이 되어 버렸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손으로 자신의 무릎을 잡아보니 굳은 무릎 뼈와 살을 만지고 있다는 느낌은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썼습니다만, 실제는 출발 후 겨우 1분이나 2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곁눈으로 타임 트래블러의 계기를 보니, 1일 단위의 다이얼 도구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일어섰습니다.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타임 머신의 옆에 나 있는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았습니다만 작업장의 벽도 전과 다름없이 똑똑히 보이고, 다른 것들도 달라진 것은 전혀 없습니다. 조지는 제가 있는 편을 보고 있습니다. 문득, 그 표정을 보는 순간,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조지가 보고 있는 것은 제가 타고 있는 타임 머신이 아니라, 타임 머신이 사라진 뒤의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음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걸음걸이와, 손을 움직이는 모양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합니다. 별난 일도 다 있다 생각하고 자세히 보니, 보통의 두 배 정도로 움직임이 빠른 것입니다.
5분이나 10분 동안 저는 멍하니 여러분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표준 속도 이하로 촬영한 영화 필름을, 표준 속도로 영사할 때 화면의 움직임이 터무니없이 빨라지고 있는 광경을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더구나, 보고 있는 동안에 움직임이 점점 더 빨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 여러분은 부자연한 움직임으로 작업장 지붕에 씌운 두꺼운 천을 걷어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작업이 끝나자, 마치 앞을 다투는 것처럼 출입구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사람이 나갈 때에는, 그 사람의 모습이 흐려 보일 만큼 전체의 움직임이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지붕이 없는 작업장에 남아 있었습니다. 어지러워서 괴로운 느낌을 어찌할 수도 없었지만, 꾹 참고 앉아 있었습니다. 문득, 캐빈 안의 벽시계를 보니 환하게 빛이 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쩐지 물렁물렁해진 것 같이 불안정해 보이고, 마치 유령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장침과 단침의 위치는 분명하게 분간할 수 있었습니다. 타임 머신 안의 부자연스럽게 빠른 움직임과는 달리, 이 시계의 바늘은 출발 전과 같은 움직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시간 여행과는 상관없이 출발한 세계, 즉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세계의 시간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출발한 것은 분명히 오후 9시 50분이었습니다. 지금 보니 시계는 10시 5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5분 동안 시간 여행을 한 것입니다. 작업장 위의 조금 동쪽 하늘에 달이 보였습니다. 그 위치는 오전 2시 10분쯤의 높이입니다. 이 사실에서 저는 여러분이 있는 세계에서는 벌써 4시간이나 지나가 버렸구나 하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저는 시간 여행 최초의 4시간을 15분만에 통과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양자의 흐름을 가장 약한 점에서 조절하여 냈던 시간 속도인 것입니다. 아직도 이 이상으로 19번의 단계가 더 있고, 더욱더 빠르게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시간 속도 조절 스위치의 핸들을 아래쪽에서 열 번째의 눈금이 있는 곳까지 단숨에 올려 보았습니다. 붕 하는 소리가 전보다도 강해진 것 같습니다. 캐빈 안에 있는 물건들의 모습이 점점 더 엷어져 가다가, 거의 완전한 투명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제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작업장의 전등을 끄고 나갔습니다만 지붕을 걷어 냈으므로 비쳐 들어오는 달빛을 받은 벽이 잘 보였습니다. 그 벽이 타임 머신의 창문을 통하지 않고, 캐빈과 벽을 통해서도 창문으로 내다보는 것처럼 잘 보이는 것입니다. 캐빈의 벽이 유령처럼 투명해졌기 때문입니다.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만, 아까부터 제 온 몸에는 어쩐지 간지러운 것 같은 느낌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쩐지 몸이 가벼워져서 떠오르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온 몸에 힘이 넘쳐흐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느덧 그런 느낌에도 익숙해져서 그처럼 마음에 걸리지도 않게 되었기 때문에, 그만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력을 10배로 하였으므로 바깥 경치도 꽤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떠오르는 달의 움직임이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것입니다. 게다가, 밤하늘 전체가 무수한 별을 안은 채로 천천히 돌고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하나의 별이 각각 자신의 궤도를 돌고 있는 모습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시계가 10시 10분을 가리키고, 달은 거의 하늘 북쪽 가까운 위치에 왔습니다. 어쩐지, 근방이 밝아져 오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을 때, 동쪽 지평선으로부터 둥근 쟁반과 같은 태양이 떠오르고, 세계는 곧 낮의 빛 가운데로 뛰어들었습니다.
이 무렵이 되면 만일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가 작업장 안으로 들어와도, 혹은 작업장의 상공을 비행기가 날아서 지나가도, 그것들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타임 머신 안에 있는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사이언스 클럽의 지붕보다 더 높은 빌딩 두 개와, 하늘의 태양과, 달과 별의 움직임뿐입니다.
1분이나 2분이 지나는 사이에, 태양은 머리 바로 위에까지 와 있었고, 또다시 1분이 지났을까 하는 사이에 태양은 벌써 서쪽 지평선 너머로 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위는 다시금 어두운 밤의 세계입니다. 그렇구나, 생각할 사이도 없이 또 달은 떠올라서 쏜살 같이 하늘을 가로질러 갑니다. 구름도 몇 개인가 두둥실 뜨고 사라져가고 하였을 것, 벌써 구름의 움직임은 너무 빨라서 제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타임 트래블러 계기의 1일 단위의 미터를 보았습니다.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침은 벌써 제 1일을 지나고, 제 2일째의 눈금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대로 10분쯤 앉아서 미터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사이에 밤이 지나고 낮이 되고, 또다시 밤이 왔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할 사이도 없이 또 대낮의 빛이 비치고, 그러는 사이에 태양과 달의 강함과 약한 빛이 번갈아서 머리 위를 번쩍번쩍 비치고 날아서 지나갑니다. 마치 번갯불과 같습니다. 두 종류의 번갯불 간격은 점점 가까워져서 어느덧 하나로 뒤엉키고, 그 다음에는 또 점점 멀어져 가는 것입니다. 한 달 분의 시간이 지나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동안에 낮 시간은 점점 짧아져서 밤 속에 숨어들어 버리고…… 희미한 빛과 어두움이 뒤섞인 잿빛만이 계속되는 세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1일 단위 미터의 지침은 무서운 속도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옆의 10일 단위 미터의 바늘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사십 몇 일을 가리키고 있고, 또 바늘의 움직임도 점점 더 빨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 무렵이 되어서 저는 슬슬 이 빌딩의 지붕을 떠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프레이즈형 헬리콥터를 시동시켜서 위로 올라갔습니다. 3백 50미터쯤 상공에 이르렀을 때, 올라가는 속도를 늦추고 공중에 멎었습니다.
마치 구름이 두껍게 깔려 있는 바람 없는 날에, 커다란 풍선을 타고 높은 하늘에 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어두운 구름이 근방에 깔려 있는데, 하늘은 온통 회색으로 침침하게 흐려 있고, 아무것도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눈을 아래로 향해 보았습니다. 센트랄 공원의 남쪽 거리가 보였습니다만, 어쩐지 기묘한 느낌입니다. 잠시 관찰하고 있는 동안에, 그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자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체가 부자연하게 평평한 느낌을 주고, 마치 굉장한 큰 그림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빛깔은 있었습니다만, 어쩐지 회색에 가까운, 선명하지 못한 빛깔들의 그림이었습니다. 군데군데 작은 빛의 점들이 보입니다. 매일 밤 켜는 가로등의 불빛일 것입니다.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고 죽은 듯이 조용하기만 합니다. 사람과 차들이 움직이는 기미는 물론 없고, 마치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는 유령의 거리처럼 느껴집니다.
그 때, 1초나 2초 사이에, 차가운 공기가 싸늘하게 흐르고, 아래로 보이는 건물의 지붕과 나뭇가지가 두세 번 밝은 빛으로 희게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겨울이 되어서 몇 번인가 큰 눈이 내렸기 때문이겠죠.
이 무렵이 되자, 벌써 1일 단위 미터의 바늘은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속도로 빨리 회전하고 있고, 1년 단위 미터와 바늘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제 1년째의 눈금을 지나서 2년째로 들어간 것입니다. 벽의 시계는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출발하고 나서 아직 40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입니다.
조금 전에는 아래에서 전개되는 경치가 움직이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고 썼습니다만, 어느덧 풍경이 조금씩 달라져 갔습니다. 50번 거리의 브로드웨이에 있는 8층 건물인 빌딩이 조금씩 녹아 없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빌딩을 헐고 있는 듯합니다.
현실로는 몇 주일이나 걸려서 많은 사람들이 해제 작업을 하였을 것,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저에게는 2, 3초 사이에 건물 전체가 녹아서 없어져 버린 것으로 느껴진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자리에 새로운 건물이 서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한 번 눈을 깜짝할 때마다 불쑥 불쑥 커져 간다는 느낌입니다. 처음에는 골격만 커져가다가 그것 이 완성되자, 보고 있는 동안에 벽과 창과 지붕이 차례대로 완성되어 갑니다. 극히 빠른 시간 안에 30층 건물의 빌딩이 완성된 것입니다.
타임 트래블러 계기를 보니, 벌써 10년 단위의 미터가 움직이고 있고 100년 단위의 미터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벽의 시계는 11시를 조금 지난 곳에서, 출발하고 나서 한 시간쯤 지났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하는 일도 없이 저는 캐빈 안을 어슬렁거리며 걸어다니기도 하고, 하나하나 창문 밖을 엿보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에 땅 표면의 건물이 점점 밀려 올라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한두 건물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건물들이 떼지어 있는 거리 전체가 위로 위로 뻗쳐 올라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변화는 가지가지입니다. 하나 하나의 건물이 새로 모습을 나타냈다고 생각하면, 곧 증축과 개축을 되풀이하고, 또 곧 얼마 안 가서 어느 사이엔가 해체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종전보다 더 큰 고층 건물이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거대한 건물이 제가 있는 곳의 남쪽 방향에 천천히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이쪽으로 덮어 씌워져 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터무니없게 큰 건물입니다. 그 밖의 장소에서도 시가지의 주름처럼 잘게 나뉘어져 있던 건물들이 차례 차례로 한데 모여서, 편편한 넓은 건물이 되고, 더욱 높은 건물로 통합되어 가는 것입니다. 동남쪽 방향을 보니 허드슨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점점 많아져 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다리는 낡은 다리와 비교하여 엄청나게 크고, 다리의 폭도 넓은 것뿐입니다.
지금은 뉴욕의 엄청난 발전의 시기인 것 같습니다. 조금 후에 갑자기 센트랄 공원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방에서 다가오고 있던 건물의 물결이 삽시간에 공원의 녹지는 나무를 삼켜 버리고 만 것입니다. 문득 발 밑을 보니, 어느 사이에 거대한 강철의 건물 골격이 조립되어 서 있고, 무서운 속도로 이곳으로 뻗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황하며 공간 이동 장치를 조작하여, 타임 머신을 더 높이 올라가게 하였습니다. 5백 미터쯤 더 올라간 곳에서 다시금 공중에 정지하여 아래를 보니, 여기저기에 거대한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평평하게 자른 것 같은 건물들이 서 있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들에는 대개 30층마다 테라스와 같은 가장자리가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공중으로 뻗어 나가서 같은 모양의 가까운 건물과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잘 보면, 남북의 방향으로 뻗은 통로는 끝없이 먼 곳까지, 다음에서 다음으로 피라미드 사이를 이어나가 있고, 동서의 방향으로 뻗은 통로는 가까운 곳의 다섯, 혹은 여섯의 피라미드만을 연결하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통로 가운데 번쩍번쩍 은빛으로 빛나는 몇 줄기의 빛이 있었으므로 시선을 모아 자세히 보니, 그것은 모노레일의 선로로서 여덟 개의 선로가 나란히 뻗어 있습니다. 그 동안에 하나 하나의 피라미드 자체가 대략 남북의 방향으로 뻗기 시작하여 어느덧 마치 산줄기의 능선처럼 하나로 연결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뉴욕 시의 등뼈와 같은 이 산줄기 전체가 하나의 빌딩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빌딩의 산줄기가 자리 잡은 땅의 가까운 부분에도 그보다 낮은 건물들이 가득 자리잡고 있습니다.
시간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그 무렵이 되자, 제 눈에 보이는 것은 적어도 30년쯤은 계속 서 있었던 건물뿐이었습니다. 그 밖의 건물은 순간적인 검은 그림자가 되어서 잠시 제 시야를 통과할 뿐이었습니다.
조금 지나서, 공중에서 때때로 초고층 건물인 듯한 것의 검은 그림자가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천 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나타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그 정체를 분명히 보여 줄 사이도 없이 그림자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잠시 후, 갑자기 주변의 경치는 지금까지처럼 바쁜 변화가 정지되고, 도시의 성장이 휴식에 들어갔다는 느낌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래도 때때로 시가지의 일부가 흐릿해졌다가는 모양이 달라지고, 굉장히 높은 탑이 뻗어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체로서 생각하면 많이 조용해졌습니다. 이 무렵이 되어서는, 너무 힘을 들여 관찰을 계속해 온 탓인지, 머리가 멍해져 왔습니다. 배도 고파오고 몸이 피곤합니다. 저는 털썩 좌석에 앉았습니다.
옆에 있는 타임 트래블러의 계기를 보니, 백 년 단위 미터가 '18'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천 팔백 년이나 미래로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같이 미터를 보고있는 동안에도 타임 머신은 그냥 진행을 계속하여, 어느덧 2천 년의 미래로 오고 말았습니다. 벽의 시계는 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출발하고서 4시간이 지난 것입니다.
조금 전에, 도시의 성장이 멎었다고 말했습니다만 참으로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2천 년이 지나고, 3천 9백 년의 절반을 지나면 기계 문명은 그 절정에 도달하여, 더 이상 발전을 못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에도 잠시 동안 관찰을 계속 하였습니다. 물론 변화는 있었습니다만 작은 것뿐입니다. 낡은 건물이 무너지고 그것을 다시 세운다…… 그런 느낌의 변화뿐이고, 도시 전체의 모양은 이전대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문명의 절정에 도달한 인류는 여기서 천천히 오랜 노력의 성과를 즐기면서, 휴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출생한 후에, 아이로부터 어른으로 자라서 마침내는 노인이 되고,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죽는 것처럼, 인간의 문명도 늙어서 무너져 가는 날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계는 2시 50분. 출발하고 나서 5시간이 지나 갔습니다. 타임 트래블러 계기의 백년 단위의 미터는 '37'…… 3천 7백 년의 미래로 온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무렵부터 도시는 점점 낡고, 작고 지저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 문명은 2천 년 간 눈부시게 발전한 뒤에, 겨우 2천 년간만 더 그 영화를 보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빨리도 쇠퇴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 또 하나, 모닥불의 타고남은 재가 무너지듯이 도시의 장엄한 건물들이 모두 무너지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서지 못한 채로 언제까지나 폐허로서 남아 있는 것입니다.
 
2만 8천 년 후의 세계
 
때때로 용감하게 이 늙어 가는 도시를 재건하려는 노력이 행해지는 듯하였습니다. 지금까지는 없던 모양의 건축물이 나타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언제나 전보다도 작은 것뿐이었습니다. 거대한 폐허의 집단 가운데서 작은 외톨이의 새로운 건축물이 자랑스러운 듯 서는 것입니다.
얼마 안 되어서 그런 일도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온통 폐허뿐…… 오랜 시대를 지나도 조금도 변화가 없게 되었습니다. 벌써 사람이 살고있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시계는 5시였습니다. 미터는 8천 년의 조금 앞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벌써 바깥 경치는 특별히 관찰할 만한 것이 없어서 주의를 다른 일에 돌릴 수가 있었습니다.
멸망한 도시의 폐허가 폐허다운 모습을 남기고 있었던 것은 2천 년 간쯤으로, 그 뒤에는 식물이 무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식물에는 전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군데군데에 도시의 폐허의 남은 모습인 빌딩의 벽과, 거대한 탑의 토대와, 철골의 조각들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멸망한 도시의 묘비와 같은 것입니다.
이 무렵이 되자, 육지의 모양 전체가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허드슨 강은 흐르는 방향이 달라지고, 강물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맨해튼 섬의 남쪽으로부터 서쪽에 걸쳐서 커다란 바다가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장 지대'라고 부르고 있는 낮은 땅은 바다 밑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한편, 북부 지역은 반대로 불쑥 땅이 솟아올라 있었습니다. 다만, 북부로 가늘고 길게 뻗은 낮은 땅 부분 깊숙이 후미진 곳까지는 바닷물이 들어와서 만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참, 그렇군요. 아직도 기온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았군요. 출발한 것은 무더운 8월의 밤이었지만 그 직후부터 온도는 점점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낮도 밤도, 여름도 겨울도 있었습니다만, 시간 속도가 더해지자 그것들은 모두 함께 뒤섞여서, 전체로서는 점점 내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계의 바늘이 7시를 가리키고, 출발 후 9시간째가 되자 온도는 다시 쑥 내려갔습니다. 아래로 보이는 경치도 눈에 띄도록 흰 빛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점점 더 휜 빛으로 변해 갑니다. 어쨌든, 30년분의 겨울을 다른 계절과 함께 섞어서 겨우 1분만에 체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겨울의 경치만 눈에 보인다는 것은 분명히 정상이 아닌 이변입니다.
어느덧 시계는 7시가 지나고, 출발 후 9시간 반이 지났습니다. 미터는 1만 1천 4백 50년을 조금 더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때가 되어서 또 하나 난처한 일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날의 실험 중에 저와 아버지가 보았던 풍경이 대관절 어느 시대의 세계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목표하는 시간 세계에 도착한 것을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 그 소녀가 붙잡혀 있던 집은 그처럼 오랫동안 서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길어도 백 년 이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 세계를 분간하는 유일한 실마리는 그 한 채의 집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령, 그 집이 백 년간 계속 서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간 속도로는 1분이나 2분 사이에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저는 잠시 동안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망설였습니다. 한번, 타임 머신의 시간 이동을 멈추고 아래의 경치를 확인해 볼까도 생각했습니다만, 문득 아직도 많은 나무들이 무성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타임 머신의 시간 이동을 멈추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나무들이 무성한 모양은 물론 시시각각으로 변화해 가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잇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 날 실험 중에 보았던 풍경에서 집 둘레에 나무가 딱 한 그루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대단히 작고 보지 못하던 이상한 모양의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눈 아래 펼쳐져 있는 1만 2천 년 후의 세계에 무성해 있는 나무는 적어도 제가 늘 보아 온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프로톤의 흐름의 출력을 10번째의 눈금으로부터 15번째의 눈금까지 올렸습니다. 또다시 전과 같이 어지러워지고, 붕 하는 소리와 진동이 심해졌습니다. 지금까지의 몇 시간 동안 어느 사이에 그와 같은 기분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1만 5천년을 통과했습니다. 북쪽의 바다가 꽤 이쪽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과연 인간이 아직도 지구 위에 살고 있는지 어떤지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바깥 경치는 흐릿한 회색이 되고 있습니다. 남쪽 방향에만이 있는 것을 겨우 분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남쪽에서 서쪽에 걸쳐서는 스타힌 섬의 산들의 능선이 바다의 수면으로부터 조금 엿보이고 있을 뿐이며, 그 앞은 드넓은 바다입니다. 맨해튼을 싸고 흐르는 강물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만, 허드슨 강 하류의 파리세이즈 암벽은 무너져 버리고 없었습니다.
제가 타고 있는 타임 머신의 아래는 삼림이었습니다. 공간적으로는 그렇게 멀리 바람에 밀려나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은 1만 년 전에 센트랄 공원이 있었던 그 장소의 상공일 것입니다. 그 숲은 두 줄기의 강물 사이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지역을 가득 덮고 있습니다. 물론, 시간 속도는 전보다 더 빨라져 있고, 삼림의 모습은 흐릿하고 찌그러져 보입니다. 그리고 점점 더 모양이 달라져 갑니다. 전체로서는 점점 성기고 점점 키가 낮아져 가고 있습니다.
시계는 10시. 약 12시간, 시간 여행을 계속하였을 무렵이 되어서, 저는 몹시 피로를 느꼈습니다. 머리는 어지럽고 눈은 벌겋게 핏발이 서고 눈물이 자꾸 나와서 괴로웠습니다. 전보다도 점점 더 추워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기 난방기의 스위치를 넣었던 것입니다.
타임 트래블러 계기는 2만 년과 3만 년의 중간 근처를 가리키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혼란해져서 똑똑하게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아래쪽의 풍경은 대부분 흰 빛으로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공간의 위치는 꽤 남쪽으로 밀려 내려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4만 5천 년 후에 도달했다고 생각되었을 때, 문득 아래를 보니, 모든 식물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때가 되어서 갑자기 없어졌는지, 아니면 꽤 오래 전부터 없어져가고 있었는지 전혀 기억이 없는 것입니다. 흐려 보이기는 하지만 아래로 보이는 것은 온통 흰 눈뿐입니다. 저는 당황하여 시간 제어기에 달라붙어서 핸들을 힘껏 잡아당겨 양자의 흐름이 내는 힘을 제일 아래 있는 눈금까지 내려가게 하고는, 제어기를 뗐습니다.
시간의 속도를 급격하게 떨어뜨릴 때의 기분은, 출발을 위한 가속도를 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몹시 언짢은 것이었습니다. 붕 하는 소리가 점점 느려져 가면서 온 몸이 납덩어리처럼 무거워진 것 같은, 아니 얼어붙은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왔습니다. 몸 전체가 무겁고 굳고 차가웠습니다. 저는 일어나서 캐빈의 벽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아래로 손을 뻗치고, 간신히 스위치를 눌러서 양자의 흐름을 완전히 절단했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이 크게 울리면서 눈앞이 캄캄해지고, 거꾸로 밑 없는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에 사로잡혔습니다.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몸의 모든 감각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은 1초나 2초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머리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먼저 첫 번째로 알아차리게 된 것은 캐빈의 내부가 고체로 돌아와 있다는 사실입니다. 친정에 달려 있는 두 개의 전구가 캐빈 안을 비치고 있고, 장방형의 창문 밖은 새까맣기만 한데, 밤일까요?
춥습니다. 두 개 있는 난방기 중의 하나가 작동하고 있는데도 제가 토하는 입김이 희게 보입니다. 주변에 있는 것들이 기분이 나빠질 정도로 조용하기만 한 느낌입니다. 퉁 하는 소리가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가끔 들기도 합니다만, 이것은 너무 오랜 시간 그 소리를 계속 듣고 있었기 때문에, 귀가 바보가 된 탓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옆의 작은 방에서는 헬리콥터의 엔진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오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기분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므로, 가장 가까운 창문으로 달려가서 바깥을 내다보았습니다. 하늘은 검푸르고, 달은 없고, 별은 어쩐지 흐릿하게 번 져 보였습니다. 땅바닥에는 온통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나침반을 보고 방향을 확인한 후, 타임 머신이 점점 바람에 밀려서 남쪽으로 흘러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비록 나침반이 있어도 방향을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타임 머신의 높이를 2천 미터로 올라가게 하고 나서, 바람을 거슬러 북으로 향했습니다.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저는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길을 잃고 만 것입니다. 어쩐지 본 기억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는 하면서도, 별빛과 눈 내린 풍경만으로는 도무지 지형의 분간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목표하는 시간 세계를 지나치고 말았는지 어떤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머신의 높이를 낮추어 땅 위에서 60미터쯤 되는 하늘을 천천히 저공 비행 해 나갔습니다.
그러자 몇 채의 집이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작은 오두막집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마치 남극의 세계 같았습니다.
이 때가 되어서 저는 시간적으로 목적지를 지나쳐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밤이 새기까지 순간적으로 이 근방에 머물러 있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다행한 일은 벌써 새벽 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3분쯤 지나자 별빛이 엷어지고 사방이 훤해 왔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태양이 떠올랐습니다. 새빨갛게 빛나는 거대한 태양입니다.
타임 머신은 더 높이 올라가서 2천 5백 미터쯤 되는 상공을 돌았습니다. 이른 아침의 밝은 햇빛 속에 남쪽의 만이 보입니다. 롱아일랜드는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있는 위치는 우울하게 바닷물이 밀려와서 부서지곤 하는, 눈에 묻힌 바닷가의 차가운 상공이었습니다. 서쪽에 허드슨 강이 보입니다. 여기도 저기도 눈에 덮여 있습니다. 바다에는 얼음 이 가득 떠 있었습니다. 허드슨 강의 저편에는 작달막한 나무들이 서 있는 지역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맨해턴 섬의 바로 위에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늘을 계속 돌면서 착륙하기에 좋은 장소를 찾았습니다. 지나쳐 온 시간을 되돌아가더라도, 벌써 출발 후 16시간 가까이 지났고, 또 몹시 피곤하여 기진맥진입니다. 허드슨 강을 건넌 곳에 북으로 향하여 열려 있는 편편한 들판이 있습니다. 근처에 사람이 살고 있는 기미는 전혀 없습니다.
헬리콥터 엔진의 전기를 끄고 아래로 내려가서, 4만 6천 8년 후의 세계에 착륙했습니다. 착륙한 곳은 눈이 쌓여 있는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저는 가벼운 식사를 하고 나서, 그대로 마루 위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다지 분명한 일은 아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운명을 하늘에 맡기는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것입니다.
어쨌든 아무 일 없이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잠을 잘 잘 수 있어서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잠에서 깨어난 것은 밤이었습니다. 적어도 12시간은 잠을 잤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곧 타임 머신을 하늘에 떠오르게 하여 맨해튼 섬의 상공으로 돌아오자, 제일 작은 출력으로 조절하여 반대 방향으로 양자의 흐름을 발사하였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전과 같은 기분을 맛보았습니다만, 이제는 꽤 익숙해진 까닭이지 그처럼 괴롭지는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때때로 양자의 흐름을 멈추고는 근방의 풍경을 확인하면서 시간을 과거로 되돌아갈던 것입니다.
되돌아온 몇 세기 동안에, 바람은 항상 북에서 남으로 계속 불고 있었습니다. 일부러 바람이 불어오는 북의 방향으로 타임 머신의 머리를 향하고, 헬리콥터용 엔진의 동력을 조절하여, 공간적으로는 될 수 있는 대로 맨해튼 섬의 남쪽 상공으로부터 밀려나지 않도록 하면서, 시간 이동을 계속하였습니다. 이 방법은 틀리지 않았고, 몇 번째엔가 시간 이동을 멈추고 바깥 풍경을 확인하였을 때에는, 마침내 기억에 남아 있는 토지형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언젠가 실험실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광경입니다.
언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도. 그러나 집이 없습니다. 그리고 눈도 없습니다. 마침 여름철에 도착해 버린 모양입니다. 게다가 이 나무도 아직 너무 작습니다. 나무의 크기로 보아서, 목표하는 시간 세계는 앞으로 10년 후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미터를 줄곧 응시하면서 이번에는 미래로 시간을 돌려서 딱 10년 반만 시간이 경과한 곳에서 시간 이동 장치를 멈추었습니다. 이곳은 아버지와 제가 실험 중에 보았던 날의 한 주일이나 두 주일 전의 시간 세계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 탐색에 약 8시간이 걸렸습니다. 타임 트래블러 계기의 미터는 2만 6천 2백 몇 년인가의 눈금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공간적으로는 땅바닥에서 백 오십 미터쯤의 상공을 비행하고 있고, 시각은 역시 아침 해가 뜬 직후입니다.
타임 머신의 바로 아래에 담으로 둘러싸인 그 집이 있습니다. 다른 채의 건물도 몇 개 있습니다. 상공을 빙글빙글 돌면서 집의 창문으로부터 방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프레이즈형 헬리콥터의 모터는 꽤 성능이 좋은 소음 장치가 달려 있습니다만, 그래도 꽤 큰 소리가 집 안에까지 들렸던 모양입니다. 사람이 하나, 밖으로 뛰어나오더니 하늘에 있는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소녀입니다.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습니다만, 머리에는 아무 것도 쓰지 않고, 제가 타고있는 타임 머신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동안에 작은 말 만큼이나 몸집이 큰 거대한 개가 세 마리 다른 건물에서 뛰어나와, 한 줄로 서서 저를 향해 짖었습니다. 온 몸의 피가 얼어붙어 버리는 듯 무섭게 짖는 소리 입니 다.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하면서, 그리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면서 그 집의 상공을 천천히 계속 돌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한 사내가 나왔습니다. 소녀와 같이 머리에는 아무 것도 쓰지 않고 털가죽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나란히 서니 소녀의 키는 사내의 가슴께밖에 미치지 못합니다. 개 짖는 소리 때문에 타임 머신의 폭음이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쪽을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고, 사내는 몹시 성난 태도로 소녀를 욕하며, 손바닥으로 소녀의 뺨을 때리고는, 소녀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타임 머신을 남쪽으로 향하게 하여 그곳을 떠났습니다. 개 짖는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갑니다. 어디로 간다는 목표도 없이, 바람을 타고 비행을 계속 하고 있는 동안에, 바다 위로 나왔습니다. 허드슨 강이라고 생각되는 강물이 흘러 들어가는, 육지로 둘러싸인 만입니다. 강도 만도 온통 얼어 있고, 그 위에 눈이 내려 쌓여 있습니다.
하나의 섬(아마도 스타힌 섬일 것입니다)의 상공을 날아 지나친 곳에서 서쪽으로 돌았습니다.
아직 어떻게 하면 좋은가의 결심이 서질 않습니다. 타임 머신에는 라이플 총과 최신식 콜린저 권총이 몇 자루 실려 있습니다. 당당하게 저 집 앞에 착륙하여 이 무기들로 저 집사람들을 위협하고 소녀를 데리고 나온다면?
그러나, 만일 저 집사람들이 제가 본 일도 없는 무서운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등뒤의 수평선에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그쪽을 향하여, 2만 8천년 후의 태양을 바라보니 새 빨간색 태양이지만, 그 빛은 그다지 눈부실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허드슨 강이 만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 근처에서, 다시 방향을 돌려 허드슨 강을 따라서 육지의 안쪽 깊숙이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군데군데 두세 채씩 집 같은 것이 보입니다. 이 대로라면 사람들의 눈에 띄게 됩니다……
좋은 것을 생각해 냈습니다. 프로톤의 흐름을 아주 조금씩만 내어서 천천히 시간 이동을 하면서, 허드슨 강의 상공을 더듬어 가기로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 시간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타임 머신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윽고 폭이 60미터쯤 되는, 물이 말라 버린 골짜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골짜기의 밑은 평평해 보이고, 골짜기의 사방은 산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타임 머신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숨겨두기에는 가장 알맞는 장소로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신중하게 타임 머신을 조종하여, 골짜기에 착륙하고 시간 이동 장치의 스위치를 끊었습니다.
캐빈 안에서 식사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소녀를 구해 낼 수 있을까 하고 작전을 짜기에 골몰했습니다. 방해되는 것은 그 거대한 개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저 거대한 개들은 평상시에는 저 집에서 90미터쯤 떨어진 개집에 있는 모양입니다.
결국, 한밤중에 출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제 시계는 20세기의 시간으로 가리키고 있어서, 이 세계의 시간을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태양이 산의 저편으로 졌을 때부터 꼭 여섯 시간이 지난 후에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소녀가 알지 못하는 사람인 저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잘 통할까 어떨까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무서워서 소리를 지르거나 저항하거나 한다면 만사는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저는 털가죽 코트를 입고 머리에는 아무 것도 쓰지 않고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조금은 이 시간 세계의 인간처럼 보여서 그녀에게도 두려움을 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외에 그녀에게 제 선의를 믿게 하는 다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초조한 기분으로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어느덧 출발의 시각이 왔습니다. 저는 콜린저 권총 외에 휴대용 나침반과 소형 손전등을 가지고 타임 머신을 떠났습니다. 대단히 춥습니다. 깊은 눈 속을 악전고투하면서 산허리를 2백 미터쯤 기어올라가 산꼭대기의 평지로 나왔습니다. 북풍이 정면으로 불어닥쳐서 점점 더 추워졌습니다.
부드럽고 무거운 눈이 제 둘레를 싸고, 커다란 눈송이가 바람에 불려와 얼굴을 때립니다. 저는 참을 수가 없어서, 털가죽 코트의 포켓에서 귀를 덮는 커버가 달린 털가죽 모피를 꺼내 썼습니다.
옆으로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허리까지 푹푹 빠지며 눈 속을 걸어갔습니다. 앞쪽은 1미터쯤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전혀 길이 없는 눈뿐인 벌판입니다.
때때로 휴대용 나침반을 손전등으로 비추어서 방향을 확인했습니다. 아마도 20세기의 세계에서는 마치 55번 거리의 콜럼부스 거리가 있었던 근방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번화했던 시절과 비교하여, 이 달라진 모습은 대관절 무엇이라고 표현하면 좋겠습니까? 모두가 시간이 가져온 변화입니다.
그리하여 맹렬한 눈보라 속을 1시간쯤 걸었습니다.
목표하는 집은 이 근처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구 퍼붓는 눈 사이로 앞을 내다보면 앞쪽에는 캄캄한 밤이 있을 뿐입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동쪽 하늘의 구름 틈새로 달빛이 비쳤습니다.
어쩐지 기분이 나쁘도록 붉은 빛깔의 거대한 달걀 모양의 달입니다.
왼쪽으로 4백 미터 가량 떨어진 작은 언덕 위에 목표하는 집이 서 있었습니다. 연구실에서 망원경을 사용하여 관찰한 바로는, 소녀는 언제나 밤이 되면 집의 중앙에 있는 안방에 앉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밤이 깊어 가면 꼭 서남쪽을 향해서 안방을 나갔습니다. 그 집은 남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방은 틀림없이 그 건물의 남쪽 끝에 있을 것입니다. 담은 집의 뒤쪽, 즉 북쪽을 두르고, 그 안의 제일 북쪽 끝에 개집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제게 유리했습니다. 풍속 3, 4십 미터의 바람이 개집이 있는 방향으로부터 제가 있는 편으로 불어오고 있으므로, 제 몸의 냄새를 맡지는 못할 것입니다. 저는 동남쪽에 있는 출입구나 창문을 통하여 그 집으로 숨어 들어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여자가 있는 장소를 알아내어서, 억지로라도 그녀를 데리고 나온다……
저는 이런 상상을 하면서 흥분에 몸을 떨었습니다. 어쨌든 2년이나 걸려서 계획하고 노력해 온 작업과 성과를 이제 곧 손에 넣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집은 1층 건물로서 눈과 비를 막기 위한 차양이 처마 끝에 길게 달려 있습니다. 담은 3미터쯤 되는 높이입니다. 저는 장갑을 낀 손에 콜린저 권총을 꼭 쥐고 집의 남쪽을 돌아 현관으로 접근하였습니다. 어디에나 눈이 높이 쌓이고, 씽씽 부는 바람 소리밖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현관의 문은 거무튀튀한 틀에 한 장의 장방형 유리를 끼워 넣은 것이었습니다. 폭은 넓어야 1미터, 높이는 3미터 반쯤입니다. 유리의 안쪽에는 청백색의 부드러운 조명이 달려있었습니다만, 무슨 등불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잠시 동안 저는 꼼짝도 않고 방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커다란 방의 일부가 보입니다. 구석에 낮고 긴 의자, 기묘한 모양의 낮은 의자, 테이블 따위가 있습니다. 마루에는 두껍게 짠 천으로 깔개를 펴놓았고, 군데군데 털가죽의 방석이 놓여 있습니다. 긴 의자에도 커다란 털가죽이 깔려 있습니다.
오른편쪽에 아치형의 통로가 있고, 입구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그녀의 방으로 통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밖에도 같은 아치형의 출입구가 둘 있습니다만, 문이 달린 출입구는 아무데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힘을 다하여 현관의 유리문을 밀어 보았습니다. 조금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특히 아래쪽이 많이 밀려서 들어갑니다. 저는 무릎을 꿇고 아래쪽을 힘껏 밀었습니다. 유리의 아래쪽 절반 부분이 미끄럽게 안쪽으로 올라가는 동시에, 위쪽 절반 부분은 바깥쪽으로 내려와, 3미터 반쯤 유리판 전체가 그 한복판을 중심으로 빙글 돌아서 마루와 평행이 된 곳에서 멎었습니다. 꼭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높이로 출입구가 열린 것입니다.
저는 귀를 기울이고 주위를 살피면서 조심조심 한 걸음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언제 어느 때 어떤 괴물이 달려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콜린저 권총의 방아쇠에 걸고 있는 손가락이 용기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왼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저는 천천히 소녀의 방으로 통한다고 생각되는 아치 출입구로 가까이 갔습니다. 갑자기, 저는 쓰고 있는 모자가 생각나서 황급히 그것을 벗어 포켓에 밀어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커튼을 헤치고 그 저편 공간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커튼을 내리니, 안은 캄캄했습니다. 몇 미터쯤 저편에도 커튼이 있고, 그 저편 쪽이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2, 3초 동안 망설이다가 저는 용기를 내어서 그 커튼을 들치고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금 전의 안방보다도 더 캄캄한 방 저편 구석에는 긴 의자가 있고, 의자 위에는 옆에 있는 화로와 같은 것에서 나오는 푸른빛을 받으며 그 소녀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몸에는 부드러운 하얀 털가죽이 덮여 있습니다만, 두 어깨와 두 팔은 털가죽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한편 팔은 팔꿈치를 굽혀서 베개를 향하고, 또 한편 팔은 곧게 뻗어 털가죽 위에 놓여 있습니다. 가슴 위에는 금빛 머리카락이 물결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도 귀여운, 어쩌면 저렇게도 아름다운 얼굴일까요! 부드럽게 다문 입술, 애교스러운 장밋빛의 뺨, 비단실을 수놓은 듯한 눈썹……
저는 이대로 이 방을 나가고 싶은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이처럼 맑은 얼굴로 잠든 소녀를 앞에 두고 그것에 시선을 보내는 자체가, 뭔가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되어서 마음에 걸려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덜컥덜컥 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권총을 앞으로 내밀었지마는, 그것은 바람이 처마 밑에 놓아두었던 무엇인가를 날려 버렸기 때문에 들려온 소리였습니다.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것을 꾹 참고, 천정과 창문과 그 밖의 모든 것에 빈틈없는 주의를 기울였지마는, 별로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선을 긴 의자에 떨어뜨리고, 그리고 숨을 죽였습니다.
소녀가 커다란 두 눈을 뜨고, 물끄러미 저를 보고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상반신을 일으켜 앉아서, 왼손으로 꼭 잡은 털가죽을 자기 몸에 당겨 붙이고, 오른손은 입에 가져다 대고 두 어깨를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녀가 이처럼 공포의 표정을 나타내리라고는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입 속으로 위로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저도 모르게 그만 한 걸음 앞으로 나섰습니다. 이것이 큰 실수였던 것입니다. 그 순간 소녀의 비명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습니다. 저는 크게 당황하여 커튼이 있는 곳으로 돌아서 가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저는 또 망설이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도망치느냐? 그리고 또 한번 더 이곳으로 숨어드느냐? 차라리 그녀를 납치하여 도망치는 것이 어떨까? 소녀의 몸은 그다지 무겁지도 않을 것 같다. 짊어지고 도망칠 수 없는 것도 아닐 것이다! 방해하는 놈이 있으면 권총으로 한 방……
저는 소녀가 있는 의자 쪽으로 다시 돌아섰습니다. 소녀는 벽에 몸을 꼭 붙이고 두려워하는 눈으로 제 얼굴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습니다.
등뒤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돌아보니 커튼이 둘로 나뉘는 곳의 어둠 속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저는 콜린저 권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사람이 서 있는 방향에서 연필의 끝만한 가느다란 빛이 저를 향하여 날아왔던 것입니다. 그 순간 제 눈앞에서 대단히 짧고 작지만 무섭도록 강렬한 빛이 번쩍 빛났습니다.
저는 암흑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앞이 새까맣게 느껴질 뿐입니다. 넘어지지는 않았지마는, 옆으로 비틀거렸습니다.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 가 들리고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다음 순간 손 하나가 제 턱을 힘껏 때렸습니다. 조금도 눈이 보이지 않는데, 싸움을 하는 것처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저는 무엇인가에 걸려서 뒤로 자빠졌습니다. 팔을 비틀리고 손에 들고 있었던 권총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정신 없이 두 팔을 휘둘렀지마는, 허공을 쳤을 뿐, 또 한 번 턱을 얻어맞았습니다. 또다시 들려오는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 상대편은 저를 즐거운 듯이 학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 없이 일어나서 출입구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하여 뛰어가려고 하자, 무서운 힘으로 어깨를 붙잡혀서 옆으로 힘껏 내던져졌습니다. 저는 어딘가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고 의식을 잃었습니다. 새카만 어둠 속에서 비웃는 높은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기절하고만 것입니다.
 
응원을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아직도 쓰러졌던 그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고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누군가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눈을 떴지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새까맣기만 합니다. 머리를 손으로 더듬어 보았지만, 어디에도 상처는 없습니다.
저는 꿈지락꿈지락 상반신을 일으켰습니다, 누군가가 제 옆에 있었던 사람은 일어나서 저편으로 걸어갑니다. 어둠 속에서 그 소녀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낮은 음성으로 이야기하는 그 말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어쩐지 어딘가에서 들은 일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암흑 속을 무수한 붉은 점들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두 눈의 눈알 뒤쪽이 타는 듯이 아파 옵니다. 전혀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영원히 장님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닐까? 그 사내가 발사한 빛 때문에 제 눈은 망가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자꾸만 마음이 안타까워집니다.
갑자기 방안이 밝아졌습니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둘레가 밝아진 것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넘어질 때에 머리를 부딪친 탓인지 아직도 의식이 몽롱한 저를 누군가가 어딘가에 데려다가 뭔가 부드러운 것 위에 털썩 하고 눕혔습니다. 눈을 감아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붉은 빛의 점들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저는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보니 아침이었습니다. 불그스레한 햇빛이 천정 가까운 작은 창문으로부터 비쳐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아마도 소경은 안 된 모양입니다. 아직도 머리는 많이 울리고 눈도 아프지만, 다른 곳은 아무데도 상처를 입고 있지 않습니다. 털가죽 이불을 깐 낮은 소파에 뉘어져 있고, 옆의 마루에는 제 오버코트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꽤 넓은 침실입니다. 한쪽 벽의 천장 가까운 곳에 투명한 두꺼운 판을 끼운 창문이 둘…… 그 반대편에 늘 커튼이 드리워진 출입구가 있습니다.
저는 일어나서 오버코트를 입고 포켓을 손으로 더듬어 보았습니다. 모자는 있었지만 나침반과 손전등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권총도 빼앗긴 채였습니다.
문 밖의 태풍은 지나간 것 같습니다. 집안은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출입구의 커튼 가까이 갔습니다. 그 뒤는 텅 비어 있는 작은 홀인데, 저편에는 또 커튼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 커튼을 살짝 열었습니다. 그곳은 넓은 거실이었습니다. 조심조심 엿보고 있던 저는, 거기서 쉬고 있던 사내와 정면으로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저는 당황하여 커튼을 내렸지만, 사내는 재빨리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곧 일어나서 뒤쫓아 왔습니다. 저보다 키가 큰 건장한 몸집인데, 회색의 통 넓은 바지를 입고 윗도리를 벗고 있었습니다. 저는 급히 침실로 돌아왔습니다.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서 무서워졌던 것입니다. 이번에 정말 소경이 되어 버릴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내는 성큼성큼 제 뒤를 따라서 침실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제 어깨를 꽉 쥐고는 제 몸을 빙글 돌려 자기편을 향하게 했습니다. 나이는 35세쯤으로 검은 머리카락을 목까지 길게 기르고 있습니다. 수염은 깨끗이 깎았습니다.
그의 얼굴은 거칠고 매우 단단해 보였습니다. 검고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
입술이 엷은 가늘고 긴 입, 체력과 용서 없는 실행력에 넘쳐 있는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얼굴 생김새입니다.
사내는 무엇을 알아내려는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제 정체를 알아내려고…… 제가 어떤 사람이며 어디서 왔는가를 알려고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사내는 저에게 말을 걸어 왔지만 제게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언어입니다. 어쩐지 영어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제 편에서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전혀 뜻이 통하지 않으므로 사내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제 몸을 소파가 있는 쪽으로 밀어 붙였습니다.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온순한 태도를 보이려고 결심하였습니다. 밀리는 대로 비틀비틀 소파에 앉자, 한껏 모든 노력을 기울여 애교를 부리면서 생긋 웃어 보였습니다. 방의 한가운데서 아직도 선 채로 저를 계속 응시하고 있던 사내는 제 웃음에 끌려서, 빙긋 웃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방을 나가 버렸습니다.
벌써 방안은 불그스레한 햇빛으로 꽤 밝아져 있습니다. 저는 테이블을 두 개의 창문 밑으로 끌어다 놓고, 그 위에 올라서서 창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창문 밖은 온통 흰 눈으로 덮여 있는 눈 세계입니다. 그것이 햇빛으로 볼게 물들여져 있습니다. 아마도 저는 집의 동쪽 끝의 방에 있는 듯합니다. 어쩌면 그 소녀의 방 옆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물의 모퉁이가 있는 곳에 그 거대한 개가 한 마리 앉아 있었습니다. 털북숭이 이리와 같은 빈틈없는 눈초리를 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앉아 있는데, 머리의 높이가 땅바닥에서 3미터나 되는 것입니다. 제가 창문을 열려는 기미를 알아차리자,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와서는 물끄러미 저를 쳐다보는 젓입니다. 그 눈빛이 어쩌면 그렇게도 신비스러웠던지요! 마치 인간의 눈처럼 지성에 넘쳐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다만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라고 재빨리 알아차리자, 다시금 천천히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저에 대한 감시는 안 하는 척하면서 계속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저는 테이블에서 마루로 뛰어내렸지만 한동안 몸의 떨림이 멎지 않았습니다. 저 말과 같이 큰 몸을 가지고 인간과 비슷한 총명해 보이는 눈을 가진 동물은 대관절 무엇일까? 여기서 도망쳐 나가려고 생각하는 제 마음은 곧 납작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온순하게 그 방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석사를 가져오기도 하고, 여러 가지 시중을 들어 주는 것은 40세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었습니다.
얼굴빛이 별로 좋지 않은 쇠약한 여인은, 회색에 가까운 다갈색의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려서 검은 천의 끈으로 묶고 있습니다. 구김살이 꾸깃꾸깃 나 있는, 소매가 길고 헐렁헐렁한 검은 옷을 입고 있는데, 어쩐지 단정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가져다주는 음식은 고기와 감자 요리였지만 실제 무슨 고기인지, 또 정말 감자인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주인의 태도는 결코 불친절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지못해서 억지로 해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여인에게 말을 걸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말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여인은 언젠가 보았던 노인의 딸이었습니다. 그 노인 자신도 몇 번인가 왔다 갔습니다. 수염을 깨끗이 깎고, 몸집이 크고, 건장한 체격을 하고 있고, 나이는 75살쯤입니다. 역시 폭이 넓은 헐렁헐렁한 바지를 입고, 윗도리는 대체로 벗고 있지만, 때로는 짧은 저고리를 입고 있는 때도 있었습니다.
노인의 이름은 브울, 이 집의 주인인 젊은 사내는 트로오, 40세쯤 되는 여인은 코아, 그리고 그 소녀는 아질라입니다.
트로오는 때때로 방에 들어서서 코아가 시중 드는 모양을 물끄러미 보고 있습니다. 마치 코아가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지 하고 감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트로오가 코아를 때린 일도 있습니다. 그러자 코아는 세찬 증오심이 가득 찬 눈으로 트로오를 노려보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느 때인가는 무슨 일인지 코아가 트로오에게 맹렬하게 반항했습니다. 그러자 하는 수 없이 트로오가 코아에게 수갑을 채워 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코아는 자기 아버지인 그 노인 브울조차도 미워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느 날 제가 넓은 거실에 앉아 있을 때, 그 소녀 아질라가 출입구의 커튼을 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던 아질라는 저를 보자, 그대로 그 자리에 서서 물끄러미 저를 보고만 있습니다. 참으로 작고 가는 몸집입니다. 복장은 마치 고대 이집트 사람처럼 폭이 넓은 푸른 천을 허리 둘레에 감고, 무릎까지 닿는 장식용 붉은 띠를 한 개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맨발 그대로 샌들을 신고 있고, 금속 제품의 가슴 장식과 폭이 넓은 천으로 만든 칼라, 황금빛의 머리카락은 양옆으로 갈라 땋아서 어깨에 늘어뜨리고 끝에는 작은 리본을 달고 있습니다.
그녀는 일어선 채로 가만히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녀의 눈에는 공포의 빛이 사라지고, 어느 편인가 하면 호기심에 들떠 있었습니다. 아래를 향하고 있던 시선을 들었다가 다시 아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제가 입은 옷에 흥미를 불러일으킨 모양입니다. 제가 신은 긴 바지, 셔츠, 넥타이……
그런 것들이 참으로 신기해서 참을 수 없는 모양입니다. 저는 안심했습니다. 그녀를 구해 내는 일이 어느 날이 되든지, 그녀가 저를 두려워하고 있어서는 어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심한 나머지, 저는 그만 갑자기 일어나 넉살 좋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차, 하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녀는 휙 돌아서서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트로오가 제 손전등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 쪽으로 향하지 않도록 하고 사용해 보라고 손짓을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이것을 무기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이때야말로 그를 해칠 뜻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보여 줄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손전등을 내 눈을 향하여 스위치를 넣고, 이것이 아무런 해를 주는 물건이 아닌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트로오는 뭔가 투덜거리면서 제 손에서 손전등을 빼앗아 방의 구석으로 내던져 버렸습니다. 벌써 이것에는 아무런 흥미가 없다는 표정입니다.
계속하여, 이번에는 콜린저 권총을 내밀면서 사용하는 법을 설명해 달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물론 무턱대고 그것을 제 손에 맡기지는 않고, 자기 손을 권총에서 떼지 않은 채로 아무도 없는 출입구의 바깥쪽을 향해서 겨누고 발사할 것을 제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권총의 발사를 목격하고 나서, 그는 다시금 무슨 말인지 투덜거리면서 문 밖의 눈 위에 권총을 내던졌습니다. 그리고, 무엇인지 제가 본 일도 없는 것을 꺼내어, 그것을 6미터쯤 떨어진 곳에 던져진 권총을 향해 겨누었습니다. 그 순간 권총은 무거운 소리를 내면서 폭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가루가 되어 흩어진 권총의 파편의 하나를 집어 올린 트로오는 '흥'하고 매우 경멸하는 태도로 웃더니 그것을 멀리 던져 버렸습니다.
제가 이곳에 와서 한 주일쯤 지났을 무렵, 트로오는 두 마리의 큰 개에게 썰매를 끌게 하고, 어딘가로 떠나가 한 달쯤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동안 얌전히 집안에 있었습니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태산 같았으나 아질라를 데리고 함께 도망치고 싶고, 지금 억지로 그녀를 데리고 도망친다면 아무래도 위험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위험한 일을 그녀에게 당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제 태도로 보아서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저에게는 누구를 해칠 뜻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여인 코아 만은 변함 없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저에 대한 감사를 쉬지 않고 있습니다. 아질라와 저는 곧 친해졌습니다.
달리 하는 일도 없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언어를 배우기로 하였습니다. 아질라는 머리가 총명하고 기억력이 좋았으며, 무엇인가를 배우려고 하는 의욕도 왕성하였으므로 한 달이 지나는 동안 저와 말을 하는 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 영어를 배웠습니다. 아직 발음과 엑센트에 다소 이상한 점이 있지만 뜻을 서로 통하는 데는 조금도 지장이 없습니다.
아마도 그녀들이 평상시에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가 진화한 것인 듯 합니다. 그래서, 옛날의 언어인 영어를 배우는 일은 그녀에게 별로 어렵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녀들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말이 서로 통하자, 제가 우리의 세계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녀의 이야기도 저를 놀라게 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그녀의 가족과 동포들은 이곳에서 수백 킬로 떨어진 곳에 살고 있으며, 제가 설득하지 않아도 그녀는 이곳을 도망쳐 나가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타임 머신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두 눈을 빛내면서 제가 세운 탈출 계획에 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아질라는 열심히 탈출 계획을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타임 머신은 아직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무기가 없습니다. 브울 노인은 언제나 허리에 저 무서운 광선총(제가 눈을 다친 광선을 발사하는 권총)을 차고 있습니다. 코아는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지만 확실한 것은 모릅니다. 그리고 트로오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트로오가 말만한 큰 개를 두 마리 데리고 갔지만, 아직 한 마리가 남아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이 집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 해도 그 무서운 개는 틀림없이 뒤를 쫓아올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타임 머신까지 가기 전에 개에게 물려 죽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날 아침 아질라와 제가 탈출 계획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코아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아질라에게, 탈출한다면 자기도 도와 주겠으며 함께 데리고 가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코아도 어느 사이엔가, 제가 말하는 영어를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게 되고, 또 우리들의 태도에서 탈출 계획을 알아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코아는 트로오를 미워하고 있었으며, 그 화풀이로 우리들의 탈출에 협력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질라의 통역으로 코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코아의 계획은 간단하였지만 대단히 실제적인 것이었습니다.
"나는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 어디에 무기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나의 아버지뿐이지만, 오늘 오후가 되면 아버지는 자기 방에서 낮잠을 잔다. 그 시각에 맞추어서 나는 개를 개집에 넣고 쇠를 잠근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자유롭게 도망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코아를 설득해 볼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브울 노인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시치미를 떼고, 그 날의 오전 중을 지냈습니다. 어느덧 오후가 되자 노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탈출 계획을 결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털가죽의 오버코트를 입었습니다. 아질라도 신발과 바지와 저고리가 하나로 이어져 있는 털가죽 옷을 입었습니다. 머리에 후드를 푹 쓰고 금빛 머리카락을 밀어 넣으니, 마치 귀여운 에스키모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수줍은 듯이 웃었습니다. 저도 털가죽 모자를 쓰는 것을 끝으로 준비는 끝났습니다.
널따란 거실에 들어가니, 코아는 변함 없이 기분이 좋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라'고 눈짓을 하였습니다. 그 순간 밖의 개집 안에서 그 말만한 개가 슬픈 소리로 크게 짖었습니다. 왜 짖었는지는 모릅니다. 어떤 예감이 들었던 모양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코아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출입구를 가리키면서 개를 진정시키려고 나갔습니다.
그 한순간에 저는 망설였습니다. 출발할 것인가? 그 말만한 개는 개집에서 나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망설임이 너무 오래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브울 노인이 굴 입구에 서서, 털가죽으로 몸을 싼 우리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놀라움과, 노여움의 빛이 브울 노인의 얼굴에 나타나더니, 그의 손은 재빨리 벨트에서 무엇인가를 쑥 냈습니다. 아질라가 먼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렸습니다. 브울 노인은 손에 유리로 만든 초승달 모양의 것을 들고 있었습니다. 초승달 모양의 이상한 물건의 양편 끝에는 철사 같은 것이 이어져 있었고, 그 철사에서 불꽃이 튕겼습니다.
앞으로 뛰어나오려고 했던 제 몸은 갑자기 쇼크를 받았습니다. 몸의 감각이 마비되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서 있는 채로 두 손을 축 늘어뜨리고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픔은 전혀 느끼지 않았지만 발에 뿌리가 돋친 것처럼 한 걸음이도 걸을 수 없음은 물론, 발을 들어올릴 수조차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옆에 있는 아질라도 같은 상태가 된 모양으로 몸이 굳어져서 선 채로 꼼짝은 못하고 있습니다. 브울 노인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승리 의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왼손으로 허리의 벨트를 더듬어 다른 무기를 끄집어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마비 상태는 온 몸으로 퍼 져가고 있습니다. 두 손이 싸늘해져 갑니다. 발은 마치 죽은 나무가 되어 버린 것처럼 접점 힘이 빠져 가고…… 어느덧 저는 맥없이 마루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입니다. 브울 노인의 등뒤에 코아가 모습을 나타낸 것은. 브울 노인은 조금도 코아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아는 돌진하여 브울 노인의 손목을 쳤습니다. 작은 초승달 모양의 유리 제품은 브울 노인의 손에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제 몸에는 다시금 따뜻한 체온이 돌아오고 두 손과 두 발에도 다시 피가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브울 노인은 미친 듯이 성을 내면서 코아를 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체력을 회복한 저는 불안정한 자세의 브울 노인에게 달려들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꽈당하고 마루에 넘어지고, 저는 브울 노인의 몸 위에 올라탔습니다. 브울은 금속제의 둥근 통을 꺼내어 그것을 제 얼굴에 겨누려고 했습니다.
아질라가 돌진해 와서 브울 노인의 손에서 그 둥근 통을 빼앗았습니다. 브울은 미친 듯이 손과 발을 버둥거리면서 마구 저를 때리고 차고 했습니다. 화가 난 저는 정신 없이 그의 머리를 쾅쾅 소리가 나도록 힘껏 마루에 쥐어박았습니다. 어느덧 그의 온 몸에서 힘이 빠지고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일어나고, 코아는 멍청한 표정으로 허리를 구부리고 브울 노인을 보았습니다. 코아는 자기가 한 일에 두려움을 느끼는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노인에게 그처럼 애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라고는 하지만 언제나 자기를 학대해 온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코아는 변함 없는 차가운 표정으로, 우리들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손을 흔듭니다.
"아질라, 개는 개집에 넣고, 그리고 쇠를 채웠는지 코아에게 물어 보아주세요."
코아는 힘있게 머리를 끄덕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질라 손을 잡고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마침 해가 질 무렵이어서 하늘은 피로 물든 것처럼 새빨갛게 보입니다. 눈에 덮인 땅도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정신 없이 서쪽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아질라가 괴로운 듯이 숨이 차서 헐떡거렸으므로 2백 미터쯤 뛰고는 한번 속도를 늦추어 쉬고,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앞쪽으로 내려간 곳에 한 줄기의 시내가 보이는 외에 전혀 아무 것도 없는 온통 눈뿐인 벌판입니다.
겨우겨우 골짜기를 나타내는 검은 바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또 정신 없이 달려서 목표하는 골짜기까지는 아직 15미터를 남은 곳에 다다랐을 무렵, 뒤에서 커다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는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온 몸이 오싹했습니다. 브울 노인이 기절했다가 깨어나서 그 말만한 무서운 개를 내 보내어 우리들의 뒤를 쫓게 했을 것입니다.
저는 아질라의 손목을 힘껏 당기면서 두려움에 새파래진 아질라의 얼굴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도 몹시 피곤했기 때문에, 그녀를 등에 업고 달리기보다는 이 대로 손을 끌고 함께 뛰는 편이 좋을 것이라는 순간적인 판단에서 그대로 뛰기를 계속했습니다. 아질라는 넘어지기도 했지마는 저는 상관하지 않고, 마치 그녀를 잡아끄는 것처럼 하여 뛰었습니다.
이윽고 골짜기 위의 경사진 곳까지 가까스로 도착하였습니다. 세차게 숨을 헐떡거리면서 문득 타임 머신은 그대로 전과 같은 장소에 있을까 하고 의심했습니다. 개는 벌써 바로 뒤에까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놈의 세찬 숨소리까지 들려 오는 것입니다. 그 때 저는 타임 머신을 발견했습니다. 하얗게 눈에 덮여 있었지만 무사했습니다.
우리들은 미끄러져 내리는 것처럼 골짜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몸이 묻혀 버릴 정도로 눈이 쌓여 있습니다. 개는 마침 골짜기 경사진 꼭대기에 막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짖으면서, 뛰어내릴 장소를 고르고 있습니다.
저는 캐빈의 층계에 뛰어올라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괴로운 듯이 헐떡거리고 있는 아질라를 안아서 당겨 올렸습니다. 개는 골짜기 아래에 미끄러져 내려와 몸의 자세를 바로잡고 이쪽을 노리고 있습니다. 이윽고 개는 와락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아질라는 재빨리 캐빈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닫힌 문에 몸을 부딪쳐온 거대한 개의 충격으로 타임 머신 전체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 거대한 개는 눈 위에 뒹굴어 떨어졌지만 곧 뒷발로 일어나서 사나운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면서, 앞발로 캐빈의 문을 할퀴고 있습니다.
저는 아질라를 마루에 눕히고는 서둘러 조종 장치에 달라붙었습니다.
1, 2초 후 공간 이동 장치가 작동하여 타임 머신은 헬리콥터가 되어서 골짜기로부터 낱아 올랐습니다.
개 짖는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갑니다. 공중으로 올라가는 도중 아래쪽을 보니, 우리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그 집으로부터 4백 미터 가량 되는 눈 쌓인 벌판을 열심히 걸어오고 있는 브울 노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3백 미터쯤 올라간 곳에서 수평 비행으로 옮겼습니다. 남쪽으로 천 오백 미터쯤 떨어진 지점에는 두 마리의 거대한 개가 끌고 있는 썰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트로오가 보였습니다. 그도 우리들의 타임 머신을 알아차리고, 머신이 그의 머리 위를 지나치자 서둘러 썰매의 방향을 돌려서 우리들의 뒤를 쫓기 시작했습니다. 두 마리의 거대한 개들이 뛰고 있는 모습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볼 만한 것이었습니다. 상공의 머신에 꼭 보조를 맞추어서 뛰는 것입니다. 어느덧 섬의 남쪽 끝의 만의 상공에 이르렀습니다. 트로오는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러 거대한 개들을 재촉하여, 얼어붙은 만의 위로 썰매를 몰아넣었습니다. 저는 머신의 공간 이동 속도를 올려서 조금씩 트로오의 썰매와의 거리를 벌어지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의 한가운데에 가까운 상공에 이르렀을 무렵 트로오의 썰매는 검은 콩알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만큼 거리가 벌어졌습니다. 억척스럽게 쫓아오던 트로오도 단념한 모양인지 진로를 바꾸어서 돌아가고……. 어느덧 저녁 어둠 속으로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의 머신은 넓은 하늘에서 외톨이가 되어 비행을 계속하면서, 아질라가 태어난 고향으로 향하였습니다.
아질라의 고향 나라인 초승달 모양의 섬은 전에 아메리카 대륙의 일부이었던 곳인데, 20세기 미합중국의 동남부에 해당됩니다. 외형은 쿠바를 꼭 닮았지만 쿠바보다는 작습니다. 대륙과는 넓이가 16킬로쯤 되는 해협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 섬이 생긴 것은 아질라가 출생하기 수천 년도 전의 일이라고 합니다. 약 1만 년 전부터 태양이 열과 빛을 내는 힘이 크게 약해지고, 지구는 식어가기 시작하여 전 세계의 기후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적도 근처의,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화산에 가까운 곳에 모여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화산 가까이는 지열이 높고, 온천 같은 곳도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이 섬의 땅 밑을 온도가 100도 가까운 뜨거운 물이 흐르고 있고, 북쪽의 대륙을 동서로 달리는 대 산맥이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에 이 시대로서는 비교적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되어 있습니다. 북방 지역의 생활 조건이 그처럼 나빠지기 이전부터 라틴 사람의 피를 방은 앵글로색슨 계통의 사람들이 이 야자나무가 무성한 열대의 섬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른 인종과 혼혈하는 것을 싫어하여 자기들 민족만의 생활을 오랫동안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지구에서 최고의 문명을 이어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나라를 '앵글리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어느덧 북방 지역의 추위는 점점 더 심해지고, 1 년 중 눈이 녹아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달은 6월, 7월, 8월의 석 달뿐입니다. 당연한 일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극도로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되고, 이런 상태가 몇 천 년이나 계속된 결과 옛날의 과학도, 예술도, 문명도 모두 잊혀져 주민들은 완전한 야만인으로 돌아가고 만 것입니다.
트로오는 앵글리즈 사람이었지만 정부를 뒤집어엎으려고 한다는 사실이 탄로되어서 나라 밖으로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분명 사회를 쫓겨나서 북으로 몸을 피한 트로오는 그곳의 야만인들을 조직하여 과거의 조국인 앵글리즈를 공격하려고 계획했습니다. 트로오에게는 문명한 나라의 과학 지식이 있었으므로, 그는 그것을 이용하여 북쪽 나라에서 열심히 병기를 제조하는 일로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몰래 앵글리즈에 숨어 들어가서, 아질라를 유괴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후안은 과학자들의 지도자이며, 앵글리즈의 지배자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트로오는 아질라를 인질로 하여 후안에게 양보를 강요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아질라를 구해 내었기 때문에 트로오는 모든 정치 교섭을 그만두고 앵글리즈를 공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트로오야말로 이 시간 세계에서 지구 최대의 악인인 것입니다.
트로오는 조직된 야만인을 거느리고 자신이 과학의 지식을 모아서 개발한 병기를 사용하여 바로 내일이라도 앵글리즈에 쳐들어오려고 할 것입니다. 더욱 더 자세한 것을 쓰고 싶지만 저는 지금 몹시 피곤합니다.
아버지, 긴급한 경우에는, 결국 제가 아버지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 때에는 이렇게 편지를 써서 연락구에 실어 보내드리도록 약속이 되어 있었죠? 지금이야말로 저는 아버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리 했던 약속대로 저는 공간 위치와 시간 위치를 동시에 나타내기 위한 광선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시간 위치는 지금, 공간 위치는 제가 있는 섬의 동남쪽 끝, 20세기와 지표로 말하면 마이애미 근방입니다. 아버지가 타임 머신을 타시고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시간 이동을 하여 와 주시면 제가 보내는 광선 신호는 반드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편에서도 될 수 있는 대로 높이 그리고 오랜 시간 광선 신호를 계속 보내겠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부디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 주세요. 저 자신도, 아버지도 꼭 무사히 돌아간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실 때에는 아버지의 친구들 가운데 동행을 희망하시는 분을 두세 사람 함께 데리고 와 주세요. 아마도 조지 씨는 오고 싶어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꼭 함께 오시도록 부탁드립니다. 무기는 가지고 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마도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빨리 와 주세요. 아버지의 도움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두 대째의 타임머신
 
로저스는 편지를 다 읽고 나서 거꾸로 된 편지의 페이지를 차례대로 되돌리면서 말했다.
"이것으로 로트의 편지는 끝이네. 나는 곧 프레이즈 회사에 두 번째의 타임 머신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할 생각이네. 90일이면 완성될 거야."
모두들 말이 없었다. 로저스는 계속했다.
"두 번째의 머신엔 누가 타겠나? 물론 나는 가겠지만 아직도 두 사람 몫의 여유가 있네……"
"내가 가겠네."
하고, 조지가 말했다.
"내가 오리라고 기대하고 있는 로트의 마음을 배반한다면 미안하니까."
조지가 윙크를 하자 로저스는 기쁜 듯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정원은 한 사람이 남았군…… 또 희망자는 없는가?"
"참으로 미안하네만……"
하고, 생각에 잠겨 있던 은행가가 말했다.
"나는 다 늙어서 안 되겠네. 벌써 일흔 세 살이라네. 함께 가도 거치적거리게만 될까 염려가 되어서 사양하겠네. 그 대신 돈이 필요하면 사양말고 말해 주게. 얼마든지 변통해 줄 테니까."
로저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실업가가 얼굴을 들었다.
"나도 갈 수가 없겠네. 사업이 너무 바빠서 말일세. 조금도 손을 뗄 수가 없어. 자넨 어떤가, 프랭크?"
그렇게 질문을 받은 의사도 미안하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나도 그래. 로저스, 미안하지만……"
로저스는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대답했다.
"좋아요, 좋아요. 사정들은 잘 알고 있으니까, 무리를 해서까지 같이 갈 필요는 없거든……"
"이것으로 결정은 됐어."
하고, 조지가 말했다.
"로저스와 내가 간다. 남아 있는 사람은 여기 남아서 망을 선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두 번째의 타임 머신이 완성되어 사이언스 클럽의 지붕 위로 운반되었다. 전과 다름없이 호기심 많은 세상 사람들 눈을 피하기 위하여 높게 담을 둘러쳤다. 오후 사이에 조지는 몇 번이나 이곳에 나타나서 출발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자세히 확인했다.
어느덧 밤이 되자, 사이언스 클럽의 모든 회원이 모여 전등 불빛 아래서 찬란하게 빛나는 타임 머신을 둘러쌌다.
오후 9시가 되었다. 드디어 출발의 시각이다.
"자, 무엇이든지 부탁해 주게. 우리 남은 사람들은 대관절 무엇을 하면 좋은가?"
사이언스 클럽의 남은 회원의 리더를 자처하는 은행가가 흥분한 얼굴로 말하자, 로저스는 미소지으면서 은행가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무쪼록 염려는 말아 주기를…… 준비는 완전하니까. 다만 우리가 출발하면 10분간쯤 그대로 이 곳에 있어 주기 바라네. 뭔가 잘못된 일이 생길 때는 곧 되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에…… 10분이 지나면 이 작업장의 쇠를 채우고 돌아가야 되네. 그러나 지붕은 걷어 놓은 그대로 놔두어야 하네."
"좋아, 알겠네. 그럼 언제 돌아오는 거지?"
"그것은 예상할 수 없는 걸."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돌아와 주게…… 참 그렇겠군. 오래 걸려도 6개월 이내로 와 주게. 괜찮겠지. 약속해 주게. 릴다를 위해서도."
로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출발하지, 로저스 선생!"
한 걸음 먼저 층계로 올라간 조지가 로저스를 불렀다. 로저스는 릴다 쪽을 향하여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부드럽게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곧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기운 찬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캐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한번 더 모두에게 손을 흔들고 나서, 머신의 문을 딸깍 하고 닫았다. 제일 앞에 있는 조종실의 천장은 낮은 아치형으로 되어있고, 양쪽 벽은 밖으로 구부러진 요면의 작은 방이었으나, 타고 있는 사람이 기분 좋게 지낼 수 있도록 장치되어 있었다. 좌우의 창문 가에는 긴 가죽으로 메운 벤치가 있고, 앞쪽의 오른쪽에는 프레이즈 회사 특제의 조종 장치와 조종석, 조작판, 그리고 작은 창문들이 있었다. 타임 트래블러 계기와 프로톤의 흐름을 제어하는 스위치는 오른쪽 벽에 있다. 조종실의 뒤쪽은 기관실인데, 이 두 방 사이에는 미닫이가 달린 작은 출입구가 있었다.
"준비는 다 되었겠지?"
하고, 로저스가 묻고는 한 마디 덧붙였다.
"될 수 있는 대로 앉아 있는 편이 좋지. 출발 시에 어떤 충격이 있을 지 알 수 없으니까."
"오케이...... 자아, 그럼 출발시켜 주게."
조지는 온 몸의 흥분을 애써 억제하면서 기분 좋게 대꾸했다. 로저스는 한 번 더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 용기를 내어, 시간 이동 장치의 지렛대를 제 1강도에 넣었다. 타임 머신의 내부는 곧 진동하는 소리에 싸였다. 로트가 출발하는 것을 배웅하면서 머신 밖에서 들었던 소리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결코 큰 소리는 아니었으나 타고 있는 사람의 몸 전체에 스며드는 미세한 진동음인 것이다. 이윽고 어지러워지고 가슴이 메스꺼워졌다. 한없이 깊은 곳으로 거꾸로 끌려 내려가는 것 같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싫은 기분이다.
"괜찮은가? 지금 출발했네."
걱정스럽게 로저스가 물으니, 조지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타임 머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실체를 잃어버리고 어렴풋한 유령처럼 훤하게 빛나고 있다. 그러나 조지 자신은 별로 다친 곳도 없고 어지러운 기분도 점점 회복되어 갔다.
"괜찮아……"
조지는 몸을 힘차 펴면서 대답했다.
"다만 어쩐지 온 몸이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야.“
그렇게 말한 조지는 문득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타임 머신 밖에서 이쪽을 보고 있는 남은 회원들의 표정은, 그들에게는 분명히 이 머신이 보이지 않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은행가가 부자연스러울 만큼 재빠른 발걸음으로 나왔다. 마치 태엽을 장치한 인형과 같은 동작이었다. 그리고 그는(조지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은행가를 바라보았다) 머리를 불쑥 내밀어서 머리와 두 어깨가 함께, 어렴풋이 인광을 발하는 타임 머신의 벽과 마루를 뚫고 들어오고 말았다. 은행가는 잠시 동안 얼굴을 조지의 무릎 옆에 두고 서 있다가, 이윽고 다시 빠른 동작으로 두리번두리번 사방을 둘러보더니, 재빨리 뒤로 물러서 갔다.
"정말 놀랐는걸."
조지는 제정신으로 돌아가서 외쳤다.
"정말 기분이 나쁜데."
로저스는 공간 이동 장치를 시동시켰다. 프레이즈형 헬리콥터의 엔진이 믿음직스러운 폭음을 울리면서 타임머신을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게 했다. 사이언스 클럽의 지붕이 잠깐 동안에 아래로 가라앉아 갔다.
그날 밤은 구름이 두껍게 깔려 있는 캄캄한 밤이었다. 동쪽으로부터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거리의 집들이 지붕에 눈을 실은 채로 두 사람의 발 밑에서 천천히 동쪽으로 흘러갔다. 머신은 비스듬히 상승하면서 전진을 계속했다. 어느덧 허드슨 강이 눈앞에 미끄러져 들어왔다.
"날씨가 몹시 나쁜데, 로저스 선생."
"으음…… 하지만 이런 날씨도 별로 오래는 계속되지 않을 걸. 우리는 시간적으로도 이동을 계속하고 있으니까. 춥진 않아? 히터는 한 대만 작동시키고 있는데…… 또 한 대의 스위치도 넣을까?"
"그렇게 해 주게. 그리고 잠시 후에 양자의 흐름의 강도를 올릴테니 앉아 주게."
조지는 재빨리 좌석을 골라서 앉았다. 로저스가 지렛대를 당겨서 오른쪽으로 돌리니, 타임 머신의 내부를 뒤흔들던 진동음의 기세는 더욱 올라갔다. 또 다시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잠시 후에 곧 사라졌다.
"잘 되어 가는군…… 제 15강도로 올렸는데. 이것은 로트가 냈던 최고 속도지."
로저스가 말하자, 조지는 창 밖을 내다보면서,
"아래로 보이는 불빛은 아직도 그대로 있는데, 정말 이것이 로트가 냈던 최고 속도인가? 편지에 써 있었던 광경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은 걸……‥"
"양자의 흐름의 강도가 커져도 머신의 시간 이동 속도는 그처럼 급격하게 올라가지 않는다네."
"흠, 그래. 그런데, 고도 높이는 얼마나 될까?"
"천 5백 미터쯤 되겠지. 뉴저지 상공 서쪽을 향해 가고 있는 모양이야. 이제 곧 밤이 새겠지."
로저스의 말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빠르게 실천되어 그로부터 수분 후에는 사방의 광경이 점차로 밝아지기 시작했다.
침침하게 흐려 있고 추워 보이는 아침이다. 머신의 아래에는 뉴저지가 있었다. 광대한 평야의 여기저기에는 작은 부락들이 흩어져 있다. 마침 바로 아래에는 특별히 건물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 있었다.
"뉴욕이다."
하고, 조지가 외쳤다.
"그리고 우리는 내일의 세계에 와 있다. 이대로라면, 로트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머신의 고도는 로저스가 느꼈던 것보다는 높아서 3천 미터쯤 되었다. 수초 후에 다시금 밤이 왔다. 머신의 아래로 보이는 등불은 하나같이 눈부신 빛의 깜박거림으로 되어 있다. 어느덧 낮의 햇빛이 찾아왔다. 바람은 멎고, 머신은 더는 밀려가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또 밤이 찾아와서 달이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르고, 별들이 분주하게 깜박거리면서 뒤섞여 얽혀서 날고 있다. 그리고 다시금 낮의 빛과 밤의 어두움이 서로 뒤엉켜서 꼭 같은 회색이 되었다. 또 여러 가지 방향의 바람과 기류가 뒤섞여 균형을 유지하여, 머신은 조금도 밀려가지 않게 되었다.
흰 눈이 덮인 뉴저지의 언덕은 이윽고 녹색으로 물들고, 사방이 따뜻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생각할 사이도 없이 황금 벌판의 가을이 찾아오고, 그것도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로저스는 후 하고 숨을 토했다.
"이제 겨우 최초의 1년이 지나갔군. 2만 8전 년 중의 1 년이다."
"그리고 공간 이동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하고, 조지가 물었다.
"시간 이동과 동시에 하는가?"
"그래야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주지 않겠나?"
그러자, 로저스는 포켓에서 서류를 끄집어냈다.
"이것이 로트의 메모지야. 양자의 흐름을 제15강도로 올려서 2만 5천 년을 날고, 거기서 시간 이동의 속도를 늦춘다. 동시에 타임 머신의 앞머리를 플로리다 반도의 남쪽 끝을 향하게 해서 1천 6백 킬로미터를 공간 이동한다. 로트와 계산에 의하면 2만 년분의 시간 여행을 끝냈을 무렵에, 공간적으로는 플로리다 반도와 대략 같은 위도에 도달할 거다. 그 다음 1천 년쯤 시간 이동을 하는 동안에 목표하는 섬이 나타났다."
"그…… 5천 년분의 시간 이동을 하는데 로트는 어느 정도 걸렸는지?"
"약 12시간이지…… 하지만 로트의 경우는 평균해서 제12 강도로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지. 우리의 경우는 최강 제15 강도니까 10시간쯤이면 그 섬에 도달하리라고 생각되네."
그 후 1시간이 지나갔다. 타임 머신은 델라웨어만의 상공에 있었다. 만의 양쪽 기슭에는 건물이 꽉 들어 찬 도시가 있고, 시간의 이동과 함께 마치 꿈틀거리는 것처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했다. 어느덧 거대한 다리가 나타나서 양쪽 기슭의 도시를 연결했다. 그러나 공간 이동을 하고 있으므로 그것도 보고 있는 동안에 멀어져 갔다.
조지는 창문가의 좌석에 앉아서 눈 아래로 전개되는 장엄한 파노라마를 넋을 잃고 보고 있었다. 경치의 움직임은 바로 눈 아래에 있는 것이 가장 빠르다. 서쪽에 어렴풋한 환상과 같은 산들의 모습이 보이고, 마치 머신의 뒤를 쫓아오는 것처럼 속도를 맞추어서 따라오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모습이 변하기는 하지만, 언제나 모습을 계속 보이고 있는 것은 바다였다. 머신은 대서양을 남남서쪽을 향하여 더듬어 가는 형식으로 날고 있는 것이다.
그 사이 로트의 편지에 '문명의 절정기'라고 씌어 있던 시대를 통과하여 머신은 높이를 낮추었다.
"시간 이동은 4천 년을 통과…… 동시에 시속 백 팔십 킬로로 공간 이동 중…… 예정 대로다."
로저스가 말하자, 조지는 염려가 되는 듯이 말했다.
"로트가 있는 곳은 쉽게 발견할 수 있을까?"
"문제없네. 모두가 로트의 편지 그대로야! 이 장엄한 문명은 곧 사라져 간다. 앞으로, 3천 년이나 4 천년 안으로……"
"여기는 어딜까? 버지니아의 근방일까?"
"음…… 적어도, 아직 노스캐롤라이나까지는 가지 못하고 있지. 조지, 저걸 봐! 저 도시가 녹아버리듯이 없어져 간다."
타임 머신 안의 전등은 켜져 있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훤하게 어렴풋한 빛을 내고 있었으므로, 결코 어둡지는 않았다.
너무도 이상한 사방의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던 조지는 문득 자기 자신의 기묘한 모습을 보고 외쳤다.
"봐요, 로저스! 우리들의 몸도 비쳐 보이고, 빛을 내고 있잖아! 이건 마치 하늘을 나는 유령과 같은걸……"
이윽고, 시계가 2시 5분을 가리켰다. 5시간이 지난 것이다. 머신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상공을 날고 있다.
"피곤한걸. 조종을 대신해 줄 수 없겠나, 조지?"
로저스가 말하자, 조지는 망설였다.
"비행기를 조종한 경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프레이즈형은 그다지 익숙하질 않아서…… 더구나 이런 때에는 좀……"
"좋아. 그러면 자동 조종으로 바꾸어서 공간을 돌고 있기로 하지. 뭐 한 30분만 쉬면 원기는 회복될 테니까."
로저스는 가죽으로 씌운 벤치에 길다랗게 누워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타임 트래블러 계기는 어느 곳을 가리키고 있지?"
"6천 5백 년째가 되는 근처야."
"그러면, 평균해서 매시간 천 3백 년의 비율로 시간 여행을 해 왔다는 계산이 되겠군. 지금은 가속도가 붙어서, 매시간 2천 6백 년쯤은 되어 있을 테지?"
"굉장한데…… 1분간은 45년, 2분간은 1세기가 아닌가!"
두 사람은 가벼운 식사를 했다. 이윽고 로저스가 원기를 회복하여 다시금 남쪽을 향하여 공간 이동을 계속했다.
"8천 년째를 통과……"
하고, 로저스는 타임 트래블러 계기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지금의 시간 여행 속도는 매시간 3천년이다. 이것이 한계가 될 거야."
지금 타임 머신은 2분간마다 6킬로미터의 공간과 1세기 분의 시간을 동시에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노스캐롤라이나의 상공을 통과하고, 다시 해안선으로 나왔다. 여기저기서 도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듯이 서 있던 건물이 무너지면 마치 그 폐허를 와작와작 욕심내어 먹어들어 가는 것처럼 식물이 무성해져서, 폐허를 덮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윽고 버려진 채의 황폐한 들이 모습을 나타내어 점점 흰 빛으로 변해 갔다. 북에서 뻗어 내려오는 눈 덮인 들은 머신의 공간 이동보다도 빠른 속도로 남으로 퍼져 가고 있었다.
바다의 모양도 달라지고 있었다. 하나의 만이 점점 뻗어서, 남 캐롤라이나를 갈라놓았다. 그 앞 끝은 어느 사이엔가 섬이 되어 버린 것이다.
"1만 8천 4백 년을 통과했다."
로저스가 말하자, 조지는 시계를 보았다.
"6시 15분이다."
"타임 트래블러 계기가 2만 년을 가리킬 무렵에는 조지아의 상공에 닿는다. 거기에 우리가 목표하는 앵글리즈 섬이 있을 거다."
그러나, 이윽고 2만 년을 지나도 목표하는 섬은 나타나지 않았다. 조지는 숨을 죽이고 타임 트래블러 계기의 바늘을 주목했다.
바늘은 2만 2천 년을 지나려 하고 있다.
"저것 봐!"
갑자기 로저스가 외쳤다.
"동서로 뻗는 산맥이 솟아오르고 있다! 새로운 산맥이 생겨나고 있는 거야. 섬은 저 산맥을 넘어서야 있겠지."
로저스는 머신을 곧바로 산맥의 방향으로 올라가게 하였다. 상승하는 머신을 아래서 쫓아 올라오는 것처럼 산이 밀려 올라온다. 이윽고, 머신은 산맥의 꼭대기로부터 겨우 3백 미터 상공을 날아서 넘었다. 눈 아래 펼쳐진 경치는 참으로 장관이었다. 울퉁불퉁한 검은 바위, 험준한 절벽, 흰 빛의 눈으로 판을 쓰고 있는 산꼭대기, 그리고 잿빛 골짜기. 등뒤는 3천 미터의 거대한 절벽이 되어서 바다 위에 깎아 세운 듯이 서 있는 것이다.
머신은 비행을 계속했다. 이윽고 그 모양의 바위투성이로 고르지 못한 육지는 북쪽으로 흘러가 버리고, 타임 머신은 갑자기 높이 3천 미터의 허공에 나와 있었다. 멀리 아래쪽에는 동서로 뻗은 회색의 해협이 보인다. 그리고 그 양쪽에 다른 해안선이 펼쳐져 있었다.
"섬이다!"
조지가 외쳤다.
"그리고 2만 3천 5백 년이다! 슬슬 타임 트래블러의 속도를 늦추는 편이 좋지 않을까?"
로저스는 프로톤의 흐름을 제 5 강도로 떨어뜨리고 아래의 경치를 찬찬히 관찰했다.
남쪽으로부터 뻗어온 해안선은 크게 활 모양의 곡선을 그리면서 서쪽을 향하고 있다. 중앙에 커다란 산맥의 등이 보인다. 가는 곳마다 커다란 야자나무가 무성하고, 바닷가는 아름답게 구부러진 폭 넓은 모래밭이다. 군데군데 호수가 보인다.
"이렇게 타임 머신의 앞머리를 남쪽으로 향한 채로 시간 여행을 하는 거다. 그러면 2만 6천 년의 시간 세계에 도달할 무렵에는 알맞게 섬의 남쪽 끝 공간에 이르게 되겠지."
로저스는 이렇게 말하면서, 로트의 메모를 다시 조사했다.
"로트는 2만 6천 2백 4년의 세계에 착륙했다고 했다. 우리도 같은 해가 시작되는 무렵에 머신을 멈추고, 미리 약속해 둔 광선 신호를 기다리기로 하자."
프로톤의 흐름을 제 4강도로 떨어뜨리자, 낮과 밤을 분간할 수 있게 되었다. 낮의 빛과 밤의 어두움이 차례 차례로 찾아왔다가는 사라져서, 곧 한 주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났다. 4년째에 들어서자 로저스는 프로톤의 흐름을 제 3 강도로 했다. 마침 낮이었다. 누런빛을 띄고 있는 적색의 태양이 날랜 속도로 중천에 떠올라간다. 흰 구름이 머리 위를 재빨리 스쳐서 지나가자, 푸른 하늘이 넓게 떨쳐졌다. 그리고 눈 아래는 밝은 녹색의 섬.
태양은 이윽고 서쪽 하늘을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모습을 감추고, 짙은 자줏빛 어두움이 사방을 에워쌌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또다시 아침이 찾아온다……
이와 같이 하여 대체로 1분마다 하루의 비율로 4년째의 세월이 흘러갔다. 로저스와 조지는 초조한 마음으로 눈을 크게 뜨고 로트의 신호를 기다렸다.
"로트는 섬의 남쪽 끝에서 광선 신호를 주야 하늘을 향해서 계속 발사하겠다고 약속했다. 우리의 눈에는 1분간 계속 보일 거다. 절대로 못 보고 지나치는 일은 없을 거다."
로저스가 혼자서 중얼거리자, 조지는 안달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고말고…… 1초간만이라도 빛이 보이면 못보고 지나칠 내가 아니지. 그건 그렇고, 로트가 왜 이리 늦을까. 빨리 신호를 보내지 않고……"
또다시 해는 지고, 자줏빛 밤하늘에 붉은 달이 떠올랐다. 때마침 뭉게뭉게 솟아오른 짙은 구름이 그 달을 삼켜 버렸다.
갑자기 섬의 앞쪽 끝에서 청백색의 빛줄기가 하늘 위로 뻗어 올라왔다. 처음에는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었으나, 얼마 안 되어 안정된 곧은 모양으로 하늘 높이 치솟았다.
틀림없는 로트의 신호다!
 
미래 도시 앵글리즈
 
프로톤의 흐름은 완전히 중단되고, 타임 머신의 내부의 모양은 다시금 원래의 확실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모터는 아직도 진동음을 계속 내고 있고, 머신은 공간 이동을 그만두고 바람이 없는 공중에 가볍게 떠서 멎어 있었다. 눈 아래에는 완전히 정상적인 풍경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흰 모랫벌에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들고 있는 바닷가, 거의 중간에 떠 있는 달, 그 불그스름한 은빛을 받고 더욱 아름다운 녹색의 섬…… 그 섬의 남쪽 끝으로부터 청백색의 빛이 하늘을 향하여 솟구쳐 오르고 있는 것이다. 로트의 신호인 것이다.
로저스는 타임 머신을 모래 위에 급강하시켰다. 평평하고 넓고, 또 적당하게 굳어 있어서 타임 머신을 착륙시키기에는 안성맞춤의 장소였다. 지금은 썰물인 듯 바다는 훨씬 저편으로 후퇴해 있다. 바다의 반대쪽은 온통 녹색으로 열대 식물이 빽빽이 우거질 정글이다.
타임 머신이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서 바닷가에서 있는 몇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타임 머신이 내려가자 사람들은 재빠른 동작으로 사방에 흩어졌다. 타임 머신은 천천히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서 백 미터 떨어질 땅에 내려앉았다.
"드디어 도착이다!"
조지가 외쳤다.
"지금 우리가 날아서 넘은 사람 중에 로트가 있지 않을까? 아까 그 광선 신호는 어디서 발사됐지?"
빛의 근원은 백 미터쯤 떨어져 있는 야자나무 숲 속이었다. 거기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뛰어나와, 이곳으로 달려온다. 흰 천으로 만든 헐렁헐렁한 바지를 입고, 짧은 저고리를 팔랑거리고 있다. 로저스와 조지는 타임 머신 밖으로 나왔다.
"어--이, 조지!"
뛰어오는 사람이 부르고 있다. 로트다! 로트와의 거리는 곧 가까워지고 세 사람은 굳게 손을 마주잡았다.
"꽤 빨리 오셨군요. 제가 광선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 지 아직 두세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죠."
로트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고는 아까부터 정글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로트와 같이 폭이 넓은 바지를 입고 있는 사내이다. 윗도리는 벗고 있었다. 가까이 온 사내에게 로트는 무엇인가 말을 꺼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정글이 있는 쪽으로 뛰어 갔다. 잠시 후에 그 사내는 다섯 명의 동료들을 데리고 돌아왔다. 모두들 타임 머신에 가까이 오지 않고 떨어진 곳에 둘러서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조지는 로트가 입고 있는 짧은 저고리의 소매 끝이 나팔꽃 모양으로 펴져 있는 것을 신기한 듯이 손으로 당기면서 물었다.
"아질라는 어디 있지? 무사한가?"
"네, 무사합니다. 그런데 두 분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나중에, 천천히 설명하겠습니다."
"로트야!"
로저스는 아들을 불러 말했다.
"타임 머신의 조종으로 나는 기진맥진해 있다. 잠을 좀 잘 수 없을까?"
"여기서 겨우 2, 3백 미터 떨어진 곳에 집이 한 채 있습니다. 그곳으로 가십시다. 머신은 저 사람들이 경비해 줄 것입니다."
로트는 멀리 둘러서 있는 사내들에게 몸짓을 섞어 가며 무엇인가 말을 건넸다. 사내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조심조심 머신에 가까이 왔으나, 아직도 어쩐지 무시무시하다는 표정으로 좀처럼 손을 내밀려고 하지 않았다.
"저 사람들을 신용할 수 있을까?"
조지가 묻자, 로트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서 대답하였다.
"절대로 믿을 만합니다."
공기는 꽤 무덥고, 마치 사우나탕에 들어간 것 같았다. 가만히 있어도 온 몸이 땀으로 축축해진다. 피곤한 것은 조지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흥분한 나머지 그것을 잊고 있었다.
"자, 다 왔습니다."
갑자기 로트가 말했다. 오른쪽에 넓게 열린 장소가 있고, 열대 지방에 알맞게 지은 방갈로가 달빛을 온통 받고 서 있었다. 코코넛 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는 마루는 땅바닥에서 1미터도 더 되는 높이에 있고, 삼면에 베란다가 달리고, 지붕은 짚으로 덮었다. 방이 열 개나 있는 꽤 큰집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4면의 판자 벽이 수직이 아니고 위로 올라갈수록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둘레에는 담이 있어서, 꽃들이 만발한 뜰을 둘러싸고 있다.
로트는 주저하지 않고 화단 가운데로 통하는 길로 들어가서 베란다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뒤의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미안하지만 조지는 여기서 기다려 주지 않겠습니까?"
로트가 로저스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간 뒤에, 조지는 베란다 위에서 지붕을 지탱하고 있는 굵은 야자나무의 기둥에 기대어 앉았다. 참으로 무더운 날씨다. 조지는 저고리를 벗고 셔츠도 걷었다. 온몸을 둘러싸고 있는 무거운 공기는 싫든 좋든 그에게 잠을 재촉했다. 벗은 저고리와 셔츠를 툴툴 말아서 베개삼고, 조지는 베란다에 두 다리를 쭉 뻗고 편안히 드러누워, 그대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잠이 깬 조지는 자기가 폭 넓은 소파 위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창문으로부터 찬란한 아침 햇살이 비쳐 들어오는 밝은 방안이었다. 옆의 의자에 앉은 로트는 브라이어 나무 부리로 만든 검은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지금 잠이 깨셨습니까? 조지. 참으로 잘 자고 계셨습니다."
벽이 천정에 가까워질수록 바깥쪽으로 넓어지고 있어서 묘한 느낌을 주었으나, 마루에는 갈색의 섬세한 깔개를 해 놓은 청결한 방이었다.
공기는 여전히 축축하고 무더워서 답답한 느낌이다. 조지는 셔츠의 소매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쓱 닦고 일어났다.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 두었습니다."
로트는 의자 위에 놓인 옷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런 무더위 속에서는 이것을 입는 편이 기분이 상쾌할 겁니다."
이윽고 조지는 로트와 같은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발뒤축이 낮은 짐승 가죽 제품의 슬리퍼, 발목 부분이 좁게 몸에 붙은 헐렁헐렁한 바지, 청색과 갈색의 천으로 만들고, 금화처럼 보이는 쇠붙이 장식이 달린 짧은 조끼…… 이 조끼에는 부드러운 감촉의 안감이 달려 있었으며, 이것이 등과 겨드랑이 밑의 땀을 잘 빨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앞은 탁 트여서 가슴은 벗은 대로 드러내 놓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하는 편이 바람을 잘 통하게 해서 좋을 것이다.
"어떤가…… 어울리겠지?"
조지가 몸을 쭉 뻗치면서,
"에헴.“
하고, 점잖게 앵글리즈 사람인 체 해 보였을 때, 밖에서 로저스가 두 사람을 불렀다.
베란다로 나오니, 아침 식사 준비를 갖춘 테이블이 있고, 로저스가 앉아 있었다. 로저스도 두 사람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세 사람이 함께 식사를 마치고, 담배를 한 대씩 피우고 나자, 로저스가 입을 열었다.
"물어 보고 싶은 것이 태산 같다."
"저도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태산 같이 많습니다."
로트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말했다.
"제가 이 세계에 와서 약 5개월이 됩니다. 말과 습관과 세계의 정세도 꽤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조지도 아버지도 꼭 우리에게 힘을 빌려주세요."
"우리?"
로저스가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지요. 저와 그리고 이 섬사람들. 5개월이나 함께 생활하고 있는 동안에 저는 완전히 이 나라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지."
하고, 조지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물었다.
"그런데, 아질라는 어떻게 되었지?"
"앵글리즈 시에 있습니다. 이 나라의 수도로서 인구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 섬의 북쪽 끝, 북방 대륙과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위치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마중하려고 그곳에서 이리로 온 것입니다. 지금 이 세계에서는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태입니다. 앵글리즈인의 배반자인 트로오가 노스인이라고 하는 북방의 야만인들을 조직하여 이 나라에 쳐들어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심한 추위 때문에 문명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황폐화 된 북방 대륙에 살고 있는 노스인들은 몸이 긴 털에 덮인, 문화적으로도 퇴화된 인간의 무리인데, 인구가 모두 얼마쯤 되는 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 섬의 사람이 북방 대륙으로 잘못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곧 달려들어서 죽이고 마는 거칠고 사나운 인종입니다. 그러나, 노스인만 쳐들어온다면, 우리도 이처럼 무서워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트로오가 그들을 지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트로오는 원래 이 나라의 과학자였던 자입니다. 어떤 무서운 병기라도 만들어 내는 두뇌를 가지고 있습니다. 벌써 북방 대륙의 어딘가에 대량의 과학 병기를 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했다는 소문입니다. 또한 가장 나쁜 일은 이 나라에는 상류 계급의 알란인과 하층 계급의 바스인과의 사이에 인종적인 대립이 있습니다. 트로오가 이것을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알란인도 바스인도 공동의 적에 대하여 튼튼하게 단결하여 싸워 준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맞아 싸울 준비는 다 되어 있겠지?"
조지가 물었다.
"네. 그러나, 알란인은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전쟁을 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로트가 참으로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 대답했을 때, 한 사람의 사내가 이쪽을 향해 뜰의 통로를 달려오고 있었다. 헐렁헐렁한 바지는 흙과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고, 노출되어 있는 상반신은 땀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흐르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사내는 입구의 계단 아래서 걸음을 멈추고, 로저스와 조지에게 수상쩍은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로트가 일어서자,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면서 곧 그 자리에 몸을 낮추어 엎드렸다.
"무슨 일이야? 왜 그러는 거지?"
그렇게 말하면서 로트는 일어나려고 하는 로저스를 손을 흔들어 말렸다.
"아질라로부터의 사자입니다."
"뭔가 나쁜 일이라도 생겼는가……"
로트가 계단을 내려가 가까이 가니, 사내는 앉은 채로 얼굴을 들고 뭔가 빠른 말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로트는 그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 듣고 나서, 날카로운 어조로 몇 개의 질문을 퍼붓고는, 그 대답을 확인한 후에 재빨리 어떤 명령을 내렸다. 그것을 듣자 사내는 곧 일어나서 꾸벅 한번 절을 하고는 쏜살같이 뛰어갔다.
로트는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지금 곧 앵글리즈 시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 섬의 서쪽에 있는 올린 시에 트로오의 일당이 보낸 스파이들이 나타나 바스인들을 선동한 후에, 쫓아오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어딘가로 도망쳤다는 것입니다. 바스인들은 알란인들에게 깊은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스파이들은 그 기분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트로오야말로 바스인들의 참된 구세주라고 건전하면서 돌아다녔다는 것입니다. 이대로 버려 두면 바스인들은 혁명을 일으키고, 이 나라는 둘로 갈라지고 말 것입니다……"
수분 후에 세 사람은 바닷가에 있는 타임 머신으로 돌아왔다. 경비를 서고 있던 여섯 사람의 사내들이 공손하게 마중하는 가운데 세 사람은 머신에 올라탔다. 조종석엔 로저스가 앉았다. 잠시 후에 머신은 폭음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올라서 섬 상공의 북으로 향하여 비행하기 시작했다. 백 5십 미터로 고도를 유지한 타임 머신의 창문으로부터 내려다보는 녹색의 섬은 참으로 평화롭고 한가로와 보였다. 야자나무 숲 사이로 보일락말락하는 흰 빛의 한 줄기 길을 거대한 개를 탄 반벌거숭이의 사내가 머신과 같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다. 거대한 개는 머리를 앞으로 길게 쑥 뽑고, 아랫배가 땅바닥에 스칠 정도로 몸을 낮게 하여 달리고 있다. 그래도 사내는 사정없이 가죽 채찍으로 개의 옆구리를 자꾸만 때리고 있다.
로트는 말했다.
"아까 왔던 아질라로부터의 사자입니다. 우리는 아질라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머신을 내리고, 거기서 걸어갈 것이기 때문에, 저 사내가 우리보다 빨리 그녀의 집에 도착할 것입니다. 지금 미리 이 곳 사정을 간단히 말씀드려 두겠습니다. 이 나라의 주민은 80퍼센트가 바스인입니다. 수천 년이나 이전에 정해진 오랜 법률에 따라서 바스인은 교육받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노동자로서 알란인에게 봉사하는 의무를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피부가 갈색인 것은 수십 세대나 걸쳐서 태양 빛 아래서 벗은 몸으로 노동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스인들을 지배하며 군림하는 것은 전 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되는 알란인의 귀족들입니다. 게을러 빠져서 매일 놀고만 있는 알란인들은 피부색도 희고 화사한 몸매를 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 두 계급 이외에 제 3 계급은 없는가?"
로저스가 물으니, 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있습니다. 과학인들입니다. 수천 년이나 이전의 문명의 사치와 유흥의 즐거움을 이어받은 것이 귀족이라면, 과학과 학술을 이어받고 있는 것은 과학인들입니다. 수십 세대라는 오랜 세월을 게을리 놀고만 있던 귀족들에게는 문화 유산인 과학 지식을 이해할 만한 지성은 없습니다. 그래서, 과학인들이 그럴 마음만 가진다면, 과학을 활용해서 얼마든지 귀족들을 거꾸로 지배할 만한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천 년이나 오랜 세월을 옛날의 습관에 순응해 온 과학인의 계층도 거의 모두 무기력하여, 다만 한마음으로 옛날의 과학 지식을 지키는 일밖에는 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이 과학자 계급 가운데서 한 사람, 예외적인 인물이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트로오입니다. 과학인은 전부 천 명 정도입니다. 그 중 백 명 정도가 관리로서 이 나라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과학인 가운데 문장 격인 5명이 평의회를 구성하고, 대대로 이어 받들어 오는 국왕 곁에서 관리들을 감독하여 나라의 정치를 맡아보고 있습니다. 이 평의회의 종신 의장이 아질라의 아버지 후안입니다. 잠깐, 창 밖을 보아주세요."
로트가 가리키는 땅 위에는 녹색의 산들이 잇달아있고, 그 사이사이에 골짜기와 호수와 언덕이 깔려 있다. 군데군데 하나씩 초라한 초가 오두막집이 외롭게 서 있고, 부엌에서 때는 불의 연기인지, 증기 같은 흰 연기가 올라오는 것도 있었다.
"저것이 바스인의 주택입니다."
더욱 낮게 내려가서 언덕을 넘자, 작게 나뉘어진 밭이 많이 있는 것이 보였다.
"바스인은 저것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도시에 사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있습니다. 농산물을 수확해서 그것을 도시로 가지고 가 터무니없는 헐값으로 알란인에게 팝니다. 도시에서 식량이 부족하게 되면, 거꾸로 알란인 편에서 산기슭 농업 지대로 찾아와서 형식에 지나지 않는 얼마 안 되는 값을 내고 바스인의 식량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업 제품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귀족과 과학인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양만큼을 생산합니다. 지극히 한정된 규모의 공장이 도시 근처에 있고, 그곳에는 바스인 가운데서도 비교적 운이 좋은 계급의 사람들이 대대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를 위한 기술과 지식을 배워 도시에 거주하는 것을 특별히 허가받고, 공장 노동자로서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바스인에게는 대단히 적은 임금 밖에는 지불되지 않으며, 가난한 생활이 강요되는 것입니다. 그 덕분으로 알란인은 사치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이 제도에 반항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뿐만 아니라 가족 전부가 사형을 당하고 맙니다. 알란인의 젊은 남성만으로 조직되는 국가 경찰은, 바스인을 학대하는 일 외에는 거의 일다운 일이 없고, 국왕도 역시 수천 년이나 이전부터 계속되어 오고 있는 이 계급 제도를 실시하는 이외에는 전혀 무능한 존재입니다. 벌써 알아 차리셨겠지만, 이 나라의 국토는 이 섬뿐이며, 농업 생산과 공업 생산도 지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나라에서 생활할 수 있는 인간의 수는 많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인구는 엄중히 관리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관리하는가?"
"출생하는 바스인의 아이들의 수효를 제한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바스인의 어머니가 세 사람 째의 아기를 낳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알란인의 정부는 인정 사정도 없이 그 아기를 죽이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거절하면 아기와 어머니는 황폐한 북방 대륙의 혹독한 추위 속으로 쫓겨나서 노스인에게 죽임을 당하든지, 들판에서 얼어죽든지 하 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어쩌면 이렇게도 참혹할 수가 있을까! 참으로 소름 끼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마침 그 때, 타임 머신이 지나친 눈 아래에 가난해 보이는 바스인의 여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오두막 집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로저스도 조지도 어두운 마음으로 그 정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머신은 다시금 높이 올라가서, 울퉁불퉁한 바위투성이의 산을 넘었다. 산의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화산의 분화구가 입을 벌리고 있다. 그 저편에는 넓은 분지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하얀빛의 모랫벌에서부터 푸른 바다의 해협에 닿아 있었다.
이 나라의 수도 앵글리즈 시였다.
 
미래 세계의 사람들
 
앵글리즈 시는 세 개의 산으로 둘러싸이고, 북쪽에 바다를 낀 골짜기의 가파르지 않은 경사지 위에 자리잡고 있었다.
세 사람의 시간 여행자는 약 천 미터의 높이에서 색채가 선명한 아름다운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뜰이 얼마든지 있고, 발코니가 있는 낮은 흰 벽의 건물들,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정원, 진홍빛의 꽃이 지붕을 장식하고 있는 정자, 커다란 대추야자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맑은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 풀…… 조금 높은 언덕 위에는 높이가 백 5십 미터나 되는 탑이 달린 흰 궁전이 서 있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아름다운 꽃밭이 있었다. 가는 곳마다 꿈을 부르는 열대의 녹색 잎사귀들이 무성하고, 무른 하늘에는 엷은 홍색의 구름이 뭉게뭉게 떠오른다. 해협의 물은 끝없이 맑은 청색이다.
"어디에 착륙하는가?"
조지가 묻자, 로트는 멀리 보이는 하나의 작은 점을 가리켰다.
"조금 더 서쪽으로 향해 주세요. 아버지, 저길 보세요. 저기 동굴의 입구가 보이죠?"
로트는 조지를 돌아보고 설명하였다.
"앵글리즈 시에는 착륙하지 않습니다. 우선, 머신을 안전한 장소에 숨겨 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번개의 동굴'이 머신을 숨기는 장소로는 제일 좋을 겁니다. '
"무슨 동굴이라고?"
조지가 되물었다.
"'번개의 동굴입니다. 재미있는 이름이죠? 바스인이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동굴의 입구는 저기 앵글리즈의 저편 산기슭에 커다란 깊은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직경이 약 60미터의 찌그러진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앵글리즈로부터 동굴까지는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로 이어져 있었다.
로트는 설명을 계속했다.
"머신에 타고 있는 그대로 동굴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곳은 과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지하실의 입구인데, 그 지하실에는 여러 가지 과학 장치가 보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박물관도 있어서 자신의 문명의 유산을 전부 모아두고 있습니다."
조지는 감탄하여 말없이 내려다보이는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거리와 지붕 위에 서서 흥미로운 표정으로 타임 머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머신이 가까이 감에 따라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동굴 안은 산 속으로 깊이 파들어 간 평평한 바닥이 보였다. 그 어두움의 깊은 곳에서 작고 푸른 빛이 깜빡거리고 있다.
"로트, 조종을 대신 좀 해 봐라……"
"들어가기가 어쩐지 기분 나쁘구나."
로저스의 재촉을 받고 로트는 말없이 조종석에 앉았다. 모터가 멎고 대신 슛-슛-하고, 압축 공기를 내뿜는 소리만이 들리는 가운데를 타임 머신은 조용히 아래로 내려갔다.
동굴 옆의 튀어나온 선반 바위 위에 지붕이 있는 작은 승강장이 있었다. 그곳에 세 사람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일어서서 손을 위로 올리며 작고 푸른 빛을 머리 위의 구름을 향하여 발사했다. 대낮의 밝음 속에서도 분명히 분간할 수 있는 강한 빛이었다.
"번갯불이다."
라고, 외친 조지의 말을 확인하는 것처럼, 곧 이어 천둥소리가 울렸다.
"우리를 환영하는 예포입니다."
로트는 침착한 태도로 설명했다.
타임 머신은 동굴의 입구로부터 안으로 날아들었다. 마치 동굴이 크게 입을 벌리고 타임 머신을 삼켜 버리는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머신은 쿵 하고 동굴의 바닥에 부딪쳤다가 다시 뛰어올라 한번 더 부딪치면서 앞으로 전진했다. 양쪽에는 점점이 빛이 줄지어 있고, 앞쪽에서도 청백색의 빛이 번쩍거리고 있다.
타임 머신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더니, 이윽고 정지했다.
"자, 다 왔습니다. 짐은 될 수 있는 대로 이곳에 남겨 놓아주세요. 오늘 오후나 내일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니까요."
하고 로트는 말했다. 세 사람은 재빨리 머신에서 내렸다.
산 속 깊은 곳으로부터 발전기가 내는 소리인 듯한 작은 폭음이 들려온다. 머리 위의 꽤 높은 곳에 어렴풋이 천장이 보이고, 캄캄한 어둠 속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청백색의 빛이 번쩍번쩍 켜졌다 꺼졌다 하고 있다. 다른 곳보다도 넓고 밝은 부분을 통과하자, 동굴은 다시금 좁아지고, 여러 개의 작은 길로 갈라진다. 각자 넓이가 15미터쯤 되는 내리막길인데, 그 앞쪽의 동굴 깊은 어둠 속에서는 연필의 끝만한 청백색의 작은 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건 참 놀라운 걸! 이 산 속은 마치 벌집 같지 않은가!"
로저스가 외치자, 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마시고 이곳에 가만히 계셔 주세요. 길을 잃으면 안 되니까요."
로트는 저편에서 가까이 오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다가갔다. 검은 고무 옷으로 온 몸을 완전히 싸고, 장갑을 끼고, 머리에는 후드를 쓰고 있다. 후드를 벗고 인사하는 사람과 잠시 말하고 나서, 로트는 로저스와 조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후안은 자기 집에 있다고 합니다. 지금 그곳으로 가십시다."
검은 고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세 사람에게 호기심이 강한 시선을 던지면서 자기 일터로 돌아갔다. 세 사람은 동굴의 입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로트, 네가 타고 온 머신은 이 동굴 안에 있는 게 아니냐?"
로저스가 물었다.
"아닙니다. 올린에 두고 왔습니다. 그곳에도 조금 작지만 이것과 같은 동굴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어디로 간다고 했지?"
조지가 물었다.
"후안이 살고 있는 집이죠. 아질라와 다이안도 함께 있을 것입니다."
"다이안? 대관절 누굴 말하는 거냐?"
조지가 또 물었다.
"아질라의 동생입니다. 조금 말괄량이지만 좋은 애죠."
세 사람은 환한 동굴의 입구를 향하여 축축하게 젖은 돌 바닥을 그냥 걸어갔다. 동굴에서 나오니 산을 내려가는 가파르지 않은 내리막길이 있었있다. 흰 모래가 깔린 길이었다. 길의 양옆에는 빈틈없이 야자나무가 늘어서 있다.
그 길을 4백 미터쯤 가니 내리막길이 끝나자, 그 근처에서부터 조금씩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앵글리즈의 교외이다. 이윽고 길은 양쪽에 사람만 다니는 넓은 길로 변했다. 그 길을 따라가면서 화단이 있고, 끝이 총칼처럼 뾰족한 식물의 무성한 생울타리가 많이 보인다. 집집마다 거의 야자나무와 진홍빛의 꽃을 달고 있는 덩굴 풀에 덮여 있었다. 때때로 뜰의 나무 그늘에 사람들의 눈을 피한 풀이 보였다.
이 근방은 주택 지역인 모양이어서 일행이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수효가 점점 더 많아졌다. 바스인의 남자는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넓은 챙이 달린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폭이 넓은 헐렁헐렁한 바지를 일고, 적동색의 윗도리는 벗고 있었다. 발도 맨발이었다. 바스인의 여성도 대부분은 허리에 천을 두르고, 가슴에 흰 천을 감고 있을 뿐이다. 머리는 양쪽으로 갈라 땋아서 등에 늘어뜨리고 있었다.
바스인은 인도를 사용하지 않고 도로의 한가운데를 걷는다. 인도는 알란인 전용인 모양이다. 때마침, 몇 사람의 알란인이 옆으로 지나갔다. 모두 목 아래까지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로트가 아버지와 조지에게 입힌 것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로트들을 발견하자, 일제히 왼손을 들어서 인사를 하였는데, 모두 한결같이 모두들 세 사람의 이방인에게 호기심어린 눈초리를 던지고 있었다. 때때로 흰 천을 몸에 감고, 어딘지 모르게 신비스러워 보이는 차림의 알란인 여성이 지나갔다. 검고 가벼워 보이는 구두를 신고 있는 작은 발이 분주히 움직이고, 눈썹이 짙은 아름다운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거대한 개를 탄 알란인의 사내가 물건을 산더미 같이 실은 세 바퀴 짐차를 천천히 몰며 길을 가로질러, 일행과는 반대 방향으로 엇갈려갔다.
"저 말만한 개는 괜찮을까? 설마 달려들어 물진 않겠지?"
조지가 작은 소리로 말하자, 로트는 웃었다.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보통 개와 다름이 없습니다. 다만…… 아니죠, 이 얘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조지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런가? 하지만, 엄청나게 큰 걸. 마치 말 같은데. 그리고 저 영리해 보이는 눈…… 걸음걸이로 보아서는 조금도 개 같지 않단 말야."
이윽고 세 사람은 붉은 꽃들이 만발한 생울타리의 문으로 들어갔다. 로트는 말했다.
"여깁니다, 후안의 집은."
보기에도 찬란한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장식되고, 태산목과 오렌지 꽃들의 향기로 가득 찬 뜰을 지나갔다. 도로에서 꽤 들어앉아 있는 곳에, 지붕이 낮고 넓은 건물이 있었다. 벽은 흰 칠을 했고 지붕은 푸른 타일을 깔았다.
세 사람은 베란다로 올라가서 푸르고 흰 비단의 커튼이 쳐져 있는 문 앞에 섰다. 문의 안쪽은 넓은 방으로, 그 방의 저편에도 문이 있어 햇빛이 비치는 가운데 뜰로 통하고 있었다.
소녀가 나왔다.
푸른 눈동자, 금빛 머리카락, 우윳빛 피부, 날씬한 몸매……
(아질라다! )
하고, 조지는 알아차렸다.
허리와 넓적다리 근처에 엷은 푸른 빛깔의 철을 넓게 감고, 금속으로 만든 가슴 장식과 폭 넓은 칼라, 황금빛 머리카락은 양옆으로 갈라 땋아서 귀여운 리본을 매어 어깨 위에 늘어뜨렸다.
(로트의 이야기로는 그녀의 아름다움이 절반도 표현되지 않았다.)
하고, 조지는 생각했다,
주저하는 듯한 표정으로 문 앞에 서 있던 아질라는 방긋 하고 그에게 웃음을 보내면서, 귀엽게 두 손을 내밀어 인사하였다.
아질라를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소녀라고 생각하게 된 조지는 다시 눈이 휘둥그래졌다. 또 하나의 다른 미소녀가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다이안이었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진 아질라의 동생이다. 언니 못지 않게 사랑스럽다. 같은 복장이지만 허리에 감은 천은 엷은 빨간색이었다. 아질라의 나이는 18세쯤, 다이안이 16세쯤 될까?
로트가 소개했다.
."이쪽이 다이안…… 저는 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나도 그렇게 부르지."
조지는 틈을 주지 않고 이렇게 말하고, 소녀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데이의 얼굴에는 짓궂은 웃음이 떠올랐다.
"아저씨는 조지라고 부르죠?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는 로트에게 들었어요."
데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치 외국인과 같은 악센트이지만, 그래도 고대 영어를 꽤 잘 사용하고 있다.
"아저씨와 저는 꼭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로트가 얘 기 하더군요."
"로트 녀석이 내게는 조금도 네 얘기를 해주지 않았단다. 하지만 이젠 괜찮아. 그래, 로트가 말한 대로야. 나는 꼭 좋은 친구가 될 거야……"
조지가 이렇게 말했을 때 후안이 모습을 나타냈다. 과학자들의 지도자이다. 70세 가까운 노인인데, 조용한 성격이지만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이 넘쳐 있었다. 키가 크고 여윈 체격이지만, 등줄기는 똑바로 서 있고, 녹색을 띈 검은 머리카락은 목 아래까지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흰 옷깃의 소매 끝동이 달린 검은 무늬의 수놓은 긴 옷을 입고있었다.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참으로 기쁩니다."
후안은 공손한 말투로 로저스에게 인사를 건넨다. 새로 배운 언어로 말하기 때문인지 정확하고 느리고 주의 깊은 말투이다.
"딸 아질라가 로트 군의 신세를 많이 져서……"
2만 8천 년 전의 세계에서 찾아온 나그네들은 그 날의 오전 시간을 후안과, 그 딸들과, 이 아름다운 나라 앵글리즈에 닥쳐오려고 하는 위기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방이 건물의 벽으로 둘러싸인 마당의 볕 가리개가 달린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는 동안에도, 의논은 계속되었다.
후안이 보는 바로는 트로오가 노스인을 거느리고 실제로 공격해 오는 것은 한 달이나 두 달 앞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동안 될 수 있는 대로 싸울 준비를 갖추기 위하여 앵글리즈의 과학자들은 힘을 다해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난처한 일이 생겼다. 트로오가 몰래 이 섬에 스파이를 보내서 순진한 바스인에게 바스인의 참된 구세주는 트로오라고 선전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스인을 선동하여 앵글리즈 나라에 내란을 일으키려는 계획인 것이다.
"모그루드가 깜짝 놀라더군요."
후안은 세 사람에게 설명했다. 모그루드는 바스인이지만, 머리가 좋은 사내이며 후안의 유능한 부하의 한 사람이다.
"……이대로는 정말 폭동이 일어날는지도 모릅니다. 트로오는 악한 사람이지만, 그의 선전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고, 바스인들에게 꽤 설득력이 있지요. 어쨌든, 어제도 바스인 여자 열 사람과 그 자녀들이 또 추방 명령을 받았으니까요."
"당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그 명령을 도로 거두게 할 수는 없습니까?"
조지가 묻자 후안은 어깨를 움츠렸다.
"물론,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국왕과 의회에 그런 일은 그만두는 편이 좋겠다고 의견을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는 법률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내가 마음대로 법률을 고칠 권한은 없으니까요……"
식사 중에 조지는 후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은근하게 두 소녀를 관찰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아름답다. 그러나 표정과 몸의 움직임은 전혀 대조적이었다. 어느 편인가 하면, 조용하고 생각하는 것이 깊은 아질라와는 반대로, 동생인 데이는 활발하고 행동적이다. 때때로 대화 도중에 언니가 말을 더듬거나 하면, 틈을 주지 않고 나서서 언니의 대변을 하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앵글리즈 시를 한 바퀴 둘러보러 나갔던 아질라가 돌아온 것은, 그날 저녁놀이 아름답게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녀는 헐레벌떡 달려와서 말했다.
"오늘밤은 알란인의 꽃놀이에요. 비상시이기 때문에 중지하게 되는가 생각했더니, 해마다 하던 대로 금년에도 굉장할 모양이에요. 참 기뻐요. 이런 때에 꽃놀이를 중지하면 도리어 바스인들이 불안을 느끼게 되겠죠? 알란인의 힘이 얼마나 굳건한가를 보여 주기 위해서도 오늘밤의 꽃놀이는 성대해야 한다고요!"
물론 로트 일행은 소녀들과 함께 꽃놀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후안도 함께다. 일행이 집을 나온 것은 밤이 꽤 깊은 무렵으로, 한밤중에 가까웠다. 남자들은 검은 가면을 쓰고, 아질라와 데이는 부드러운 천으로 얼굴을 싸고 눈만 내놓았다.
한밤중인데도 앵글리즈 시의 길거리는 밝고 번화했다. 하늘 높이 떠오른 달이 환한 빛을 비치고, 길거리의 여기저기에 장치되어 있는, 놋쇠로 만든 조명 장치가 푸르스름한 빛을 던지고 있다.
많은 알란인이 즐거운 듯이 거리를 오고간다. 여자들은 모두 흰 천으로 몸과 얼굴을 싸고, 남자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가면을 쓰고 있다. 가면을 손에 들고 다니는 사내도 있었다. 거대한 개가 끄는 네 바퀴의 수레가 재주껏 꾸민 옷을 입은 사람들을 가득 싣고 지나간다.
거리는 마치 동화의 세계처럼 아름다웠다. 화려한 옷차림의 남자들도, 목덜미와 가슴 부분이 다 드러난 로브라고 부르는 흰 빛깔의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도 모두 푸른 가로등 불빛의 길을 같은 방향으로 서둘러 가고 있다. 조용한 분위기에 젖어 있는 흰 벽의 건물들에는 달빛이 비치고, 따스하고 눅눅한 공기는 좋은 향내로 가득하다. 그리고 바람은 거의 없다.
문득, 로트는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지고 음산한 기미를 느끼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쩌면 어두운 그늘 속에 적동색 피부의 반벌거숭이 바스인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곳만이 아니고 여러 곳에 있는 모양이었다.
명랑하게 뛰놀고 있는 알란인에 비하여, 절대로 꽃놀이에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바스인들에게 일행은 말할 수 없는 불안을 느꼈다. 이것은 마치 알란인의 지나친 방탕을, 억눌려 사는 바스인들 앞에 일부러 드러내 보이는 것과 같지 않을까……
이윽고, 길은 점점 오르막길이 되고, 얼마 안 가서 고갯길의 꼭대기에 이르렀다. 길은 거기서 가파르게 기울어진 비탈이 되어서 바닷가로 이어지고 있다. 달빛이 바다 위에 그리는 은빛 오솔길까지도 음산한 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꽃놀이 때의 사건
 
바닷가에 가까운 야자나무 가로수 변두리에서 한 사람 한 사람 검문을 받은 후에, 후안 일행은 명랑한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꽃놀이 광장으로 들어갔다.
야자나무 가로수는 4백 미터쯤 더 이어진다. 오른 쪽에는 반짝거리는 흰 모래펄이 있고, 거품을 내면서 부서지는 물결이 밀려오고 있다. 야자나무 아래는 진홍빛과 순백색의 꽃들이 빽빽이 만발해 있다. 꽃놀이에 미쳐 있는 사람들은 웃고 왁자지껄 떠들며, 때때로 야자나무 아래로 달려와 마음대로 꽃을 꺾어서는 한아름 안고 다시금 돌아간다.
"흩어지지 말고 될 수 있는 대로 함께 있어 주세요."
후안이 모두에게 주의를 주었다. 일행이 꽃놀이에 열중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저편에서 5, 6명의 사내들이 우르르 달려와 아질라와 데이에게 꽃을 던졌다. 그리고 술에 취한 것 같이 큰 소리로 웃으면서 두 사람을 함께 데리고 가려했다. 로트는 당황하여 아질라의 손을 붙잡고, 조지는 데이를 돌려 세웠다.
대추야자나무에 둘러싸인 직사각형의 풀을 중심으로 수친 명의 알린 인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있었다. 술과 과자와 온갖 먹기 좋은 식물이 여기저기 놓여지고, 따스한 밤 기운을 타고 어디선지 신비한 느낌의 음악이 들려온다. 사람들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한 덩어리가 되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꽃을 서로 만지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앞쪽에 흰 건물이 보였다. 그 안에는 만화경처럼 번쩍이는 색채가 넘치고, 명랑하게 들떠서 날뛰는 사람들로 넘쳐 있었다.
후안은 일행을 그곳으로 안내했다.
일행은 곧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 덩어리가 되도록 서로 가까이 붙어 문 앞에 섰다. 건물 안에서는 끊임없이 음악이 들려온다. 물론 로트 일행에게는 귀에 익지 않은 곡이었으나, 어쩐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 같은, 원시적인 울림이었다.
아니, 이것은 원시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도리어, 초현대적이라고 말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수백 세기나 되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으로서의 정신을 잊어버리고, 동물과 다름없는 욕망으로 마음을 채우는 생활을 계속해 온 인류가 다다른 타락의 종말을 나타내는 가장 현대적인 음악이 아닐까?
여기서도 고주망태가 된 사람들이 꽃을 서로 던져 주고받고, 야자 열매의 속을 도려낸 껍질로 만든 그릇으로 술을 퍼 마시기도 하고, 미친 듯이 춤을 추기도 하고 있다.
방의 구석에 있는 커다란 둥근 테이블에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득 차려 놓았는데, 그 테이블이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테이블의 한쪽 부분이 다른 방과 칸막이를 한 벽 너머로 돌아서 지나가도록 배치되어 있다. 칸막이 저쪽의 조리장에서는 끊임없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공급하여, 테이블에는 항상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칠 듯이 춤을 추고 있던 사람들은 로트들 일행이 있는 곳으로 와서, 춤을 추고 있는 소용돌이 속으로 그들을 끌어넣으려고 했다. 특별히, 아질라와 데이는 검은 가면을 쓴 남자들이 항상 노리고 있어, 그때마다 조지가 활발하게 뛰어다니면서 남자들을 쫓아 버려야 했다.
갑자기 로트가 낮은 소리로 외쳤다.
"국왕이다!"
건물 안 넓은 홀의 중앙에 한층 더 높은 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위에 놓여진 호화찬란한 의자에 국왕이 앉아 있었다. 빙그레 웃으면서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 선명한 색채의 무늬가 있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국왕은 흰 머리가 드문드문 섞여 있는 중년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점점 더 미친 듯이 날뛰고, 소란함은 더욱 더 높아져 갔다. 3분쯤 지났을 무렵 갑자기 음악이 뚝 그쳤다. 군중은 움직임을 그치고 다음에 일어날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표정들이다. 모두 숨을 죽이고 가만히 서 있다. 돌아가면서 깜빡이고, 뒤섞여 어지럽게 마구 번쩍거리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빛깔의 조명이 꺼지고, 그 대신 푸르스름하고 움직이지 않는 등불이 켜졌다. 조용한 가운데서 장엄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순간 사람들은 일제히 가면을 벗고, 입고 있던 것을 모두 벗어 던졌다. 호들갑스러운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고요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남자도 여자도 발가벗은 채로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벌거벗고 춤을 추면서 건물 밖으로 뛰어나가 광장의 풀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다. 야자나무 그늘에 밀려드는 파도가 흰 거품을 내고 있는 바닷가로 달려가는 사람도 있다.
너무나 색다른 광경이 벌어지는 바람에, 다들 어안이 벙벙하여 눈이 휘둥그래져 있는 로저스의 손을 로트가 잡아당기면서, 말없이 국왕이 앉아 있는 높은 단 위를 가리켰다. 국왕의 자리에서 1미터쯤 높은 공중에 한 장의 판자가 떠 있고, 그 위에는 선명한 붉은 빛깔의 옅은 천을 몸에 감은 여자가 국왕을 내려다보는 자세로 서 있었다.
음악은 어느 사이엔가 조용한 가락으로 바뀌고, 두드리는 악기가 내는 빠른 템포의 딩동 거리는 소리가 건물 안에 가득 찼다. 후안이 작은 소리로 설명했다.
"헬렌 왕비입니다. 이 미친 것 같은 꽃놀이 소동은 모두 저 사람이 생각해 낸 것이며, 국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것이 국왕이라기보다는 저 왕비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왕비를 태우고 공중에 떠 있는 저 판자는 최근에 과학의 알짜를 모아서 발명한 비행 판자입니다. 동굴의 기술자들이 트로오들과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고심해서 개발한 것이며, 중력에 반발하여 떠오르게 하는 특수한 천을 저 판자에 붙여 놓은 것입니다. 유력한 병기가 되기 때문에 당분간 비밀로 해 두고 싶었습니다만, 왕비의 강한 명령으로 이와 같은 구경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난처한 일 입니다."
비행 판자 위의 왕비는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 소리는 점점 높아지더니, 이윽고 목이 터질 것 같은 높은 소리가 되었다. 왕비는 노래를 부르면서 천천히 몸에 감은 천을 풀었다. 풀린 천은 왕비의 발 밑에 팔랑거리면서 떨어졌다. 왕비는 속에 타오르는 불꽃같은 진홍빛 천을 감고 있었으나, 젖빛의 풍만하고 요염한 늪과 가슴이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슬픔에 잠겨 있는 듯한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나 보였다.
국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악은 점점 더 빠르고 크게 올렸다. 왕비는 공중에 떠 있는 채로 팔을 길게 뻗치고,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르면서 국왕에게 웃음을 던지고 있다. 뻗치고 있는 팔에서 진홍빛의 옅은 천이 날개처럼 아래로 늘어지면서. 팔랑팔랑 날렸다. 높이 땋아 올린 검은 머리카락에 달고 있는 황금의 머리 장식이 잔잔하게 흔들렸다. 왕비를 태운 비행 판자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커다란 붉은 나방이 날아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국왕도 천천히 마루로 내려와 왕비가 내려오는 곁으로 걸어갔다. 국왕이 나아가는 길에 서 있던 군중들은 재빨리 비켜서서 길을 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국왕과 왕비에게로 쏠렸다.
음악과 노래가 절정에 달하고, 왕비를 태운 판자가 마루에 닿았다. 국왕은 판자로 다가가고, 왕비의 손이 어깨 위에 닿자, 곧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왕비의 붉은 옷자락에 입을 맞추었다.
왕비의 얼굴에 승리의 표정이 떠오르고, 군중 속에서는 찬탄의 중얼거림과 한숨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국왕과 왕비의 주변에 있던 군중 속에서 한 사람이 검은 망토를 획 벗어 던지며 일어섰다. 허리에만 천을 감고 있는 벌거벗은 사나이다. 사나이는 자기가 집어 던진 망토를 뛰어넘으면서 단도를 휘둘렀다. 칼날이 불빛에 번쩍 하고 빛나더니 왕비가 무릎을 꿇고 있는 국왕 앞에 쓰러졌다. 군중들의 찬탄의 소리는 순식간에 공포가 비명으로 변했다.
군중들은 한동안 얼어붙은 듯이 선 자리에서 움직일 줄 모르고, 다만 두 눈이 휘둥그래져 있을 뿐이었다. 왕비를 찌른 사나이는 국왕과 왕비를 판자에서 끌어내리고, 대신에 자기가 판자 위에 뛰어올랐다. 작은 비행 판자는 곧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입구가 있는 쪽으로 비스듬히 방향을 잡아 날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분명히 이 건물에서 나가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가 되어서야 군중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저마다의 생각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내에는 성난 소리와 비명 소리와 발소리가 가득 차고, 순식간에 큰 혼란이 벌어졌다.
로저스가 문득 옆을 보니 후안이 열심히 주문을 외고 있다. 그리고는 생각할 사이도 없이 후안은 긴 옷을 들치고 재빨리 손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그 손에 들려진 무기로부터 적황색의 불꽃과 함께 연필심 만한 작은 화살 같은 것이 발사되었다. 순간 사나이를 태운 비행 판자는 균형을 잃고 마루에 떨어지며,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부서져 흩어졌다. 사나이는 마루 바닥에 두세 번 공처럼 튕겨 오르더니 곧 움직이지 않았다. 사내의 시체는 새까맣게 타 있었다.
방의 중앙에서는 국왕이 와들와들 떨리는 무릎을 힘을 다하여 잡고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이윽고 간신히 일어난 국왕은 멍청히 마루에 쓰러져 있는 붉은 빛깔의 덩어리를 내려다보았다. 숨이 끊어진 잿빛의 몸뚱이에서는 걸치고 있던 진홍빛의 엷은 천과 같은 피가 콸콸 흘러나와 마룻바닥을 붉게 물들여 갔다.
군중은 변함 없이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아우성치면서 밖에서 달려 들어오는 사람, 비명을 지르면서 밖으로 달려나가려고 하는 사람…… 후안 일행은 마치 성난 파도에 시달림을 받는 작은 배처럼 이리저리 밀리고 있었다. 로트는 두 팔을 아버지와 아질라에게 단단히 감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으나, 어느 사이에 놓쳐 버리고 말았다. 조지는 후안과 데이를 돌봐 주고 있었다. 군중 속에 밀리면서 후안은 마루 바닥에 죽어 있는 사나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나이는 트로오의 아우 중의 한 사람입니다.비행 판자의 비밀을 훔쳐내려고 왔을 것입니다. 이전에도 동굴의 작업장에서 내 부하인 기사를 한사람 죽이고 도망쳤습니다만, 설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붐비고 있는 곳에 나타나리라고는……"
우왕좌왕 하던 알란인들은 어느 사이엔가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도망가고, 뒤에는 후안과 로저스와 로트의 세 사람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조지와 두 소녀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봅시다. 딸들도 우리를 찾고 있을 테니까요."
세 사람은 완전히 인기척이 없어진 야자나무 숲을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벌써 비상선도 없고, 사람의 그림자도 거의 없었다.
이윽고, 거리 가운데로 들어서니 때때로 공포에 떨고 있는 표정으로 바쁘게 걷고 있는 알란인들과 엇갈리게 되었다. 거리는 등불도 거의 켜져 있지 않고 조용했다. 그리고 골목마다 어둠 속에서 바스인들이 이상하게 빛나는 눈으로 길거리를 엿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사람은 달빛 속에 드러나 보이는 후안의 집에 도착했다. 집안은 캄캄하고, 아질라들이 돌아온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기다려 봅시다. 아직 야자나무 숲에서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후안이 불을 켜면서 말했다.
세 사람은 잠시 동안 기다렸으나 아질라들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잠시 후에 먼 곳으로부터 사람들의 고함 소리와, 거친 발소리가 섞인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점점 이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는 듯하여 세 사람은 문밖으로 뛰어나가 생울타리 틈으로 가만히 길거리를 엿보았다. 바스인 폭도들의 무리였다. 천 명은 되리라고 생각되었다. 반 벌거숭이의 큰 사나이가 앞장서고, 눈에 핏발이 서 있는 군중들이 손에 손에 칼과 몽둥이를 가지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
"저것은 사탕수수를 자르는 낫입니다. 그리고 몽둥이는 야자나무의 가지고요."
로트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군중들은 후안의 집 앞을 잇달아서 걸음을 늦추지 않고 지나쳐 갔다. 골목골목에서 그 무리에 가담하는 자가 나타나고, 사람의 수효는 점점 더 불어 가는 모양이었다.
후안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두려워하고 있던 일이 마침내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때 로트가 외쳤다.
"궁전입니다! 그들은 궁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국왕의 생명이 위험합니다!"
후안은 어떤 결심을 한 듯이 머리를 쳐들었다.
"국왕을 지켜야 합니다!"
평의회 의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두 딸의 안전을 염려하는 마음을 잊어버리게 했다. 후안은 긴장된 발걸음으로 집을 나와 바스인의 폭도들을 뒤쫓았다. 로트와 로저스도 그의 뒤를 따라간다.
 
바스인의 반란
 
이야기는 조금 전으로 되돌아간다.
무서운 혼란 속에서 조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아질라와 데이와 함께 있으려고 사람들의 물결과 싸우고 있었다. 죽을힘을 다하여 몸을 밀치고 근방을 둘러보고 있는 동안에, 겨우 데이만을 발견했다. 흰 망토는 어딘가로 벗겨져 나가고, 마치 꿈이라도 꾸고있는 듯한 표정으로 멍청하니 서 있었다.
조지는 급히 데이에게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은 대관절 어디에……"
조지는 물어 보다 말고, 문득 데이의 표정이 보통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초조하게 뒤쫓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잠시 형편을 엿보다가 조지는 더 참을 수가 없어서 데이의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데이! 데이! 왜 그러는 거지?"
데이는 걱정스러운 듯이 어깨를 기댄 채로, 아니, 아니라고 하는 듯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질라예요. 아질라가 텔레파시로 제게 말을 보내려고 하는 거예요. 뭔가 언니의 곁에 일어나고 있는 무서운 사건을 말해 주려고 하지만, 어쩐지 잘 안 되요."
텔레파시! 그렇던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던가! 조지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데이의 표정을 살폈다. 데이는 한번 더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얼굴을 쳐들고, 허공에 눈을 고정시킨 채로 몽유병자처럼 걷기 시작했다.
"데이!…… 데이! 어디로 가는 거야."
조지는 망설였다. 요량 없이 이 장소를 떠나면, 다른 동료들과 더욱 더 떨어지게 되어서, 서로 찾기에 애를 먹게 된다. 그러나…… 데이는 상관하지 않고 저편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대로 버려 둘 수는 없다. 조지는 결심하고 데이의 뒤를 쫓았다.
데이를 뒤쫓아가다가 멎은 곳은 흰 건물에서 꽤 떨어진 인기척 없는 곳이었다. 가까이 달려간 조지는 데이의 팔을 잡았다.
"데이…… 대관절 어떻게 된 거야?"
데이는 손으로 눈을 가리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겨우 잡았어요. 아질라의 생각을. 트로오가 저 사람들이 붐비는 속에 숨어 있었어요. 그리고 또 아질라를 붙들어 간 거예요. 억지로 야자나무 숲 밖으로 데리고 나와 버린 거예요……"
조지는 잠시 숨을 멈추고, 데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 벌써 늦었어요. 트로오는 개를 두 마리 데리고 있었죠. 아질라를 묶어서 개에 태우고…… 아, 지금 막 달려가기 시작했어요……"
조지는 저도 모르게 데이의 몸을 세게 흔들면서 물었다.
"어디로…… 대관절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야? 그건 알지 못해?"
"아니에요, 알지요. 올린으로 간다고 해요……‥"
갑자기, 데이는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처럼 조지의 얼굴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조지 아저씨, 우리 집에도 개가 두 마리 있어요. 그걸 타고 아질라를 쫓아가도록 해요."
조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자."
"그리고 저는 아버지가 무기를 보관해 둔 장소도 알고 있지요. 허락 없이 꺼내면 꾸중을 듣겠지만, 이런 경우엔 할 수 없겠죠."
두 사람은 열심히 달려서 후안의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데이는 먼저 아버지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조지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후에 데이는 두 개의 무기를 가지고 나왔다. 하나는 투명한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는 초승달 모양의 무기로서, 양끝에는 가는 철사가 있고, 뼈를 깎아서 만든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이 손잡이의 방아쇠를 당기면 사람의 근육을 마비시키는 광선이 발사되는 것이다. 이것은 언젠가 브울 노인이 로트에게 사용했던 무기이다.
데이는 그 사용 방법을 간단히 설명했다.
또 하나의 무기는 어른의 주먹만한 검은 공이었다. 이것에도 방아쇠가 달린 손잡이 자루가 달려 있고, 그 반대쪽에는 권총의 총구멍과 같은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이 구멍으로부터 번갯불과 같은 섬광이 발사되어 6미터쯤 떨어진 목표라도 곧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소형 번개공' 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초승달 모양의 광선총은 데이가 들고, 번개공은 조지가 가졌다.
데이는 경쾌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푸른 리본으로 머리를 둘러 맸다.
"자, 가세요."
데이는 조지를 데리고 마당을 가로질러 어두운 방을 몇 개인가 뛰어 지나서, 뒤뜰로 나왔다. 거기에는 작은 흰 집이 서 있었다. 개집인 모양이다. 데이는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개집 안은 어둡고, 창문으로부터 희미하게 달빛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잿빛에 가까운 검은 물체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조지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거대한, 털이 북슬북슬한 개다. 한순간 조지는 본능적으로 발을 멈추고 도망치려고 몸을 돌렸다.
그러나 데이는 상관하지 않고 가까이 온 개에게 다가가서 그 목에 팔을 감았다.
"착하지 로탄, 나를 위해서 한번 수고를 해 줘요. 부탁이에요."
데이는 개의 주의를 이렇게 끌어놓고는, 일부러 조지의 등을 두세 번 가볍게 두드렸다. 조지가 자기 친구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하는 모양이다. 조지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면서도 개 앞에 손을 내밀자, 그 거대한 개는 조지의 손을 날름날름 핥았다. 개의 따뜻한 혀의 감촉에 조지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으나, 이것으로 어쨌든 이 덩치 큰 짐승은 그의 친구가 된 것이다.
또 한 마리의 개는 아탈이라고 부르는 암캐로서 로탄 보다 더 컸다. 이 두 마리의 개는 데이의 말을 잘 이해하는 모양이었다. 데이가 부탁의 말을 하자, 재빨리 벌떡 일어나 껑충껑충 뛰어가듯이 개집 안의 저편 구석으로 가더니 안장을 입에 물고와 데이 앞에 섰다. 데이는 조지의 도움을 받아 빠른 동작으로 개의 등에 안장을 달았다. 고삐는 없었다.
"아저씨는 아탈을 타 주세요.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멎으라고 하든가, 가라고 하든가, 아저씨가 살고 있는 세계의 말로 지시하면 아탈은 잘 알아들을 거예요. 이곳에 와서 말을 가르쳤어요."
조지는 개의 등에 올라탔다. 말을 타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기분이었으나, 말보다도 이 거대한 개가 부드럽고 연하고 탄력성이 많은 몸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개는 큰 소리로 한번 짖고 나서, 천천히 문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마치 호랑이처럼 부드럽고 연하고, 그리고 힘있는 발걸음이다. 조지는 개의 북슬북슬한 목 근처의 털을 한 줌씩 움켜쥐고 몸을 지탱했다.
데이는 로탄을 타고 조지의 앞에 서서 마당을 나갔다.
"겁내지 마세요, 조지. 그럼 가요."
데이를 태운 로탄이 달리기 시작했다.
"부탁한다, 아탈……"
조지가 개의 목에 얼굴을 대고 속삭이자마자, 아탈도 로탄을 뒤쫓아 달리기 시작한다. 조지는 개의 목에 달라붙었다. 몸 전체가 땅에 닿을 정도로 낮은 자세로 뛰고 있다. 개의 발바닥에는 두꺼운 살이 붙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땅을 차는 충격을 흡수하는 까닭인지, 말을 타는 것보다도 훨씬 편했다.
조지는 머리를 쳐들었다. 앞쪽에는 푸른 리본의 끝을 길게 바람에 팔랑거리면서 달려가는 데이의 모습이 있다. 좌우에 늘어선 거리의 집들이 나는 듯이 뒤쪽으로 지나간다.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쌩 쌩 하고 소리를 내었다. 참으로 상쾌한 기분이다. 조지는 개를 타고 조금도 불편 없이 아주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데이를 따라잡도록 좀더 빨리 달려요, 아탈."
조지가 속삭이자, 아탈은 곧 속력을 내어 로탄을 따라잡았다. 이윽고 두 마리의 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뛰었다.
얼마쯤 뛰다가 데이는 갑자기 개를 멈추었다. 조지도 따라서 개를 멈추었다.
"어떻게 된 거야, 데이?"
"트로오가 왜 올린으로 가려고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조지는 말없이 데이에게서 눈을 메지 않았다.
"로트의 타임 머신이에요! 로트가 처음으로 이 세계에 올 때 타고 온 제 1호기를요…… 트로오는 그것을 노리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그것은 올린의 동굴 안에서 엄중하게 경비되고 있을 텐데?"
"그래요. 그렇지만 경비대 가운데 트로오의 스파이가 있다고 해요. 우리는 신용하고 있었던 사내죠."
"뭐라고! 어떻게 해서든지, 트로오가 올린에 도착하기 전에 따라붙을 수가 없을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트로오의 개는 특별히 발이 빠르거든요."
그 때, 조지의 머리에 번득인 생각이 있었다. 그렇다! 제 2호기를 사용하면 된다. 나와 로저스가 이곳에 올 때 타고 온 타임 머신은 앵글리즈의 동굴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타고 트로오를 쫓아가면 된다.
조지는 곧 이 아이디어를 데이에게 이야기했다. 데이도 곧 찬성하고, 두 사람은 즉시 방향을 돌려서 처음에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트로오는 왜 타임 머신을 타고 싶어할까?"
달려가면서 조지가 물었다.
"과거의 세계로 돌아가서 무기를 모아올 생각인 거다."
 
이야기는 바뀌어서 이곳은 후안들이 있는 곳이다.
조금 높은 언덕 위의 사치스럽게 꾸민 뜰에 둘러 싸여 있는 궁전에는 바스인들이 계속 밀어닥치고 있었다. 폭도들은 뜰에서 손에 손에 몽둥이와 낫을 휘 두르면서 고함들을 지르고 있는데, 아직도 궁전 안으로 들어갈 결심은 서 있지 않은 듯했다.
후안은 언덕의 기슭에서 옆길로 나갔다.
"바스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궁전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저기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궁전 뒤에 높은 탑이 서 있었다. 탑의 뒤에는 바닷가에 우뚝 솟은 절벽이 있는데, 절벽 밑에는 인간의 키보다 더 큰 종려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있었다. 후안은 로트들을 달빛이 비치는 인기척 없는 바닷가로 인도하여, 바다 기슭을 따라서 탑의 바로 밑의 종려나무 숲으로 뛰어들었다. 숲을 헤치면서 잠시 걸으니, 아래로 계속되는 좁은 터널이 있었다. 후안은 터널로 뛰어들어갔다. 등을 굽히고 겨우 걸을 수 있는 정도의 좁은 터널인데,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왼쪽으로 구부러졌다가 오른쪽으로 구부러졌다가 하는 어두운 통로가 구불구불 계속되고 있다. 도중에 몇 번인가 무거운 격자의 문에 부딪치고, 그 때마다 후안은 무엇인가 어두움 속에서 주의 깊은 조작을 하여 문을 열었다. 이윽고 나사 모양으로 돌아서 올라가는 계단 밑에 가까스로 가 닿았다. 탑의 안인 모양이다. 나사 모양의 계단을 다 올라가니 탑과 궁전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었다. 눈 아래 뜰에서 떠들고 있는 바스인들을 내려다보면서, 세 사람은 그 통로를 지나 궁전으로 들어갔다.
궁전 안은 떠들썩했다. 국왕은 넓은 접견실 가운데를 왔다갔다하고만 있고, 그 둘레에는 떨고 있는 평의원과 고문관들이 허둥대고 있었다.
후안이 들어가자, 일동은 구원을 청하는 것 같은 눈빛으로 일제히 후안을 바라보았다.
후안은 성큼성큼 창문가로 걸어가서, 뜰의 군중들을 바라보았다. 뜰의 중앙의 분수가 솟아오르고 있는 주변에서, 폭도의 지도자인 듯한 몇 사람의 사나이가 번갈아 가며 연설을 하고 있었다. 연설자가 무엇인가 외치고 손을 높이 들 때마다, 군중들은 일제히 함성을 올리며, 무기를 높이 쳐들고 발을 구른다. 그것을 되풀이 할 때마다 흥분의 정도는 점점 더해 가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화살과 돌이 여기저기서 날아와 궁전의 창문을 때리기 시작했다. 더는 우물거리고 있을 형편이 못 되었다. 후안은 결심하고 뜰 쪽으로 나 있는 발코니로 걸어나갔다.
귀를 찢는 듯한 군중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후안은 발코니의 끝에 있는 허리 높이 정도의 난간에 두 손을 짚고 군중을 내려다보았다. 군중들은 후안의 모습이 나타나자 일제히 시선을 집중시켰다. 궁전을 향하여 돌진하려던 자들도 발을 멈추고 후안을 쳐다보았다. 아래에서 날아온 돌이 하나, 후안의 머리를 스쳐서 궁전의 벽에 맞고 발코니의 바닥에 떨어졌으나, 후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군중 가운데서 유난히 몸집이 큰 사나이가 뛰어나와 무엇인가 큰 소리로 외치며 손을 흔들어 군중들을 진정시키고 있다.
"모그루드입니다. 그는 바스인의 리더인데, 후안의 말을 들어보자고 모두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트가 로저스에게 설명했다.
군중의 흥분이 가라앉은 기미를 알고 국왕이 발코니에 나왔다. 그 순간 군중은 다시금 떠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돌이 날아들고, 나이프도 한 개 국왕의 머리를 스치고 날아갔다. 국왕은 얼굴빛이 변하여 궁전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후안은 크게 두 팔을 쳐들고, 엄격한 표정으로 군중을 꾸짖었다. 아래에서도 모그루드가 폭도들을 진정시켰다.
이윽고 군중이 다시금 조용해지자, 모그루드가 두세 걸음 앞으로 나와 발코니의 후안을 향하여 무엇인가 말을 시작했다.
"모그루드는 법률을 고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악법을 고치지 않는 한 국왕의 생명은 보증할 수 없다고……"
토트가 로저스에게 설명했다.
후안은 군중을 한번 둘러보고 천천히 자신에 찬 말투로 외쳤다.
"바스인 여성을 북방 대륙으로 추방하는 법률은 폐지한다! 바스인의 자녀는 자유다!"
그 순간 군중은 멍청하니 일제히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윽고 둑이 터진 것 같은 바스인 군중들의 기쁨에 찬 부르짖음이 궁전의 뜰에 메아리쳤다.
군중들은 기쁜 나머지 손을 흔들고 발을 구르며, 야단법석을 떨다가 춤을 추며 돌아갔다.
후안은 힘있는 소리로 한번 더 외쳤다.
"바스인이나 알란인이나 평등이다! 바스인이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을 모든 과학인이 보증한다!"
 
타임 머신 공중전
 
타임 머신 안은 비쳐 보이고, 유령처럼 깜빡깜빡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귀에 익은 진동의 소리. 조지와 데이가 앵글리즈 시의 동굴에 있는 제 2호기에 올라타고 시간 이동 장치를 작동시킨 지 벌써 15분이 지났다.
"데이, 괜찮니?"
데이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으나, 웃으면서 대꾸했다.
"우린 지금 어디 있죠?"
"과거의 세계지…… 벌써 40년 전으로 돌아왔군. 그런데 아질라와는 지금도 텔레파시로 연락이 되고 있니?"
"네. 되고 있어요. 트로오와 아질라는 백 년쯤 과거의 세계에 있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텔레파시 통신이 오랜 세월도 뛰어 넘을 수 있다니!
"트로오가 있는 공간의 위치는?".
"올린 동굴의 상공."
"좋아, 우리도 그리로 가자."
조지는 프레이즈형 헬리콥터의 엔진을 시동시키고 동굴의 입구를 빠져나오자, 천 미터 상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곧장 올린으로 향했다.
올린의 상공에 도달했을 때, 타임 트래블러 계기는 2백 년의 과거로 돌아갔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데이…… 아질라에게 트로오가 훔쳐 탄 타임 머신 계기를 잘 보아 달라고 전해 줘요."
"좋아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네, 2백 30십 년의 과거라고 해요."
"그러면 정확한 위치는?"
"올린 시의 동쪽 끝…… 동굴이 있는 산의 바로 위…… 높이는 105미터."
조지는 데이에게서 들은 공간 위치에서 높이만은 107미터를 유지하고, 머신을 그 위치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했다. 바로 밑에 트로오와 아질라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30년 전의 과거에 있기 때문이다.
"아, 트로오의 머신은 3백 년을 통과했어요, 조지."
"우리는 2백 9십 년…… 10년의 차이다. 좋아, 곧 따라붙을 테다."
"하지만 조지, 따라붙어서 어떻게 하죠?"
"번개공으로 한 방 쏘아 버리지."
"그건 안 돼요. 그렇게 하면, 그쪽 머신이 파괴되어 추락해서 아질라도 죽잖아요."
조지의 성급한 생각은 미처 그것을 생각 못하였다. 그렇게 되면 큰일이다. 하는 수 없이 10년의 시간 거리를 유지한 채로 꾹 참고, 계속 뒤쫓기로 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어떤 좋은 방법이 발견될는지도 모른다……
출발한 시간으로부터 8백 년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을 무렵에, 올린 시의 모습이 사라졌다. 섬 자체의 모양은 달라지지 않았으나, 집들은 눈에 띄지 않고 다만 야자 숲 속에 초라한 오두막집이 점점이 서 있을 뿐이다. 아주 초기의 바스인 개척자들의 것이리라.
그 때 3백 미터 앞쪽에 다른 한 대의 타임 머신이 2, 3초 사이에 한번 언뜻 환상의 그림자 같은 모습을 나타냈다가 곧 사라지고 말았다.
"아차!"
조지는 프로톤의 흐름을 제어하는 스위치에 달라붙었다. 트로오는 시간 이동 속도를 낮추어서 착륙하려고 하다가, 이쪽 타임 머신을 재빨리 발견하고 시간 이동으로 모습을 감추었음이 틀림없다.
이윽고 또다시 트로오의 타임 머신이 모습을 나타냈다. 더구나 대단히 가까운 거리에서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접근해 온다. 높이도 같다. 이래서는 충돌하고 만다! 그리고 생각할 사이도 없이, 트로오의 머신은 조지의 코앞에서 급상승을 하는 동시에, 날카로운 번갯불을 퍼부었다. 번개 공격이다!
그러나 눈부신 번갯불은 조금 빗나갔다. 조지는 당황하여 프로톤의 흐름의 출력을 제20 강도로 재빨리 올려서 시간 이동으로 도망치기로 했다.
문득 아래를 보니 어느 사이에 섬이 없어져 버렸다. 해협이 소멸하고 대륙과 맞붙어 버린 것이다. 당황하여 타임 트래블러 계기를 보니, 6천 8백 년의 과거를 가리키고 있다. 조지는 새삼스럽게 제20강도 속력의 굉장함을 인식했다.
"아질라로부터의 연락으로는 트로오는 원래의 세계에서 백년 전의 세계까지 돌아갔다고 합니다."
"이젠 글렀는 걸…… 이만큼 떨어져서는 만날 것 같지 않아. 좋아, 트로오가 무기를 찾는다면 나도 뭔가 네 아버지가 기뻐해 줄만한 것을 찾아서 돌아가기로 하자."
조지는 그대로 과거로의 비행을 계속했다. 이윽고 1만 8천 년 전의 세계에 도달했다. 조지가 사는 20세기까지의 시간 거리를 절반 되돌아온 것이 된다. 이윽고 올린 시가 나타나는 근방에는 바야흐로 문명이 가장 왕성한 시기를 맞이하여, 콘크리트와 강철의 거대한 건축물이 계단 모양이 되어서 높이 솟아올라 있다. 그것을 둘러싼 공중 도로, 탑, 다리…… 데이는 다만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래져 있을 뿐이다.
"내려가 볼까, 데이?"
조지는 프로톤의 흐름의 출력을 제 3강도로 떨어졌다.
잠시 후에 스위치를 끊었다. 충격이 지나간 다음, 조지는 일어섰다. 데이도 옆에 서 있다. 밖은 캄캄한 밤이었다.
그 때, 갑자기 빛이 번쩍 했다. 하늘이 타는 것처럼 밝다. 새빨간 로켓 폭탄이 머리 위에서 폭발했던 것이다. 무서운 폭발음이 땅을 뒤흔든다. 눈부신 빛이 수십 킬로미터 저편까지 빛을 보였다. 거대한 불꽃이 머신 위에 덮어 씌어져 온다. 몇 개의 거대한 건축물이 바로 가까이 보였는데, 그 중 하나가 천천히 무너져 내린다.
하늘에는 무엇인가 이상한 비행 물체가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활 모양의 곡선을 그리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것들이 발사하는 녹색의 광선과 땅위에서 발사되는 광선이, 마치 두 자루의 칼처럼 서로 맞부딪치고 있었다. 또다시 굉장한 폭음이 울리고 파란빛이 번쩍거리더니, 가까운 곳의 바위와 돌이 튕겨오르며 흙먼지가 회오리바람을 휘몰아친다.
"조지, 조지!"
데이와 무서워 떠는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조지는 정신 없이 프로톤의 흐름을 조절하는 스위치를 찾아 잡아당겼다. 이윽고 지옥과 같은 무서운 밤의 광경은 사라지고, 조용한 회색 안개로 바뀌었다.
전쟁이었다! 두 사람은 우연히 무서운 전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다른 물체로부터의 침략자를 상대로 지구 전체가 싸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 말이 들려요, 아질라의 말이에요. 트로오가 드디어 무기를 손에 넣었다고 해요.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려 하고 있대요."
운이 좋은 놈이다! 트로오는 어딘가의 문명 세계에 착륙하여 무기를 손에 넣은 모양이다.
"데이, 트로오의 머신의 시간 위치는?"
"잠깐만요. 5500 년 전이랍니다."
"좋아."
조지는 조심스럽게 머신을 조종하여 트로오의 머신을 뒤쫓았다.
"지금 트로오의 시간 위치는?"
"…… 1250 년."
"여기는 1140 년이다. 아질라는 아직도 묶여 있나?"
"아니에요. 지금은 묶여 있지 않은 모양이에요. 트로오가 기분이 썩 좋아져서 아질라에게 머신의 조작을 잘 가르쳐 달라는 따위의 말을 하고 있다는군요 '"
"그래, 그건 참 안성맞춤이다. 그러면 데이, 아질라에게 타임 트래블러 계기의 다이얼을 다시 확실하게 보도록 부탁해 줘요."
"네, 그렇게 하죠. 지금 584 라는군요."
"좋아, 우리는 585까지 접근하기로 하고…… 이렇게 하면 1년 후의 시간 위치가 된다. 트로오의 공간 위치는?"
조지는 이마에 땀을 흠뻑 흘리면서 뒤쫓기를 계속했다.
"아, 조지, 트로오가 착륙해요, 지금 8년 전…… 7년 전."
"빌어먹을! 어떻게 안 될까."
"3년 전…… 2년 전…… 지금 원래의 시간 세계로 돌아갔다고 해요. 지금 올린 상공에서 착륙하려고 한답니다…… 아!"
"왜 그러지, 데이?"
"땅 위까지 2미터가 남은 곳에서 아질라가 캐빈의 문을 열고 뛰어내렸어요. 그 순간에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좋아, 빨리 현장으로 가자!"
수초 후에 조지의 머신은 현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아, 아질라다!"
풀밭에 정신을 잃고 Tm러져 있는 아질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트로오의 머신은 없다. 조지가 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고 시간 이동으로 모습을 감추었을 것이다. 조지는 서둘러서 머신을 아질라의 옆에 착륙시켰다. 그리고 머신에서 뛰어내려 아질라를 안아 일으켰다. 아질라는 다행히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쇼크로 잠시 정신을 잃고 있었다. 뒤따라 내린 데이가 가지고 온 약을 마시게 하자, 아질라는 곧 눈을 떴다. 세 사람은 다시 만난 것을 서로 기뻐했다.
 
특별 비행 부대
 
그로부터 한 달 동안 온 섬은(바스인도, 과학자도) 하나가 되어서 분주한 활동을 계속했다. 특별히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의 실권을 맡게 된 과학인에게는 전에 없던 긴장과 불안의 매일이었다. 트로오가 돌아온 것이 사실이라면 언제 어느 때에 전쟁이 일어날는지 모른다.
트로오가 거느리는 노스인이 섬에 쳐들어오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이편에서 적극적으로 적을 맞아 싸운다는 것이 후안의 결단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그런 작전을 하기에 필요한 군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생명을 내던지고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에 충만한 용감한 결사대가 아니면 안 된다. 곧 나라 안에서 지원병 모집이 실시되었다. 알란인은 한 사람도 지원자가 없었다. 지원병은 바스인과 과학인의 젊은이들뿐이었다.
젊은이들은 나이가 위인 바스인과 과학자들의 지휘를 받고 매일 훈련에 힘썼다. 알란인들은 조금도 협력하려고 하지 않았다. 전과 다름없이 밤낮으로 먹고 마시고 떠들고 놀기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아들 둘을 지원병으로 보내고 돌아오던 아버지가 우연히 거리에서 술에 취한 알란인 젊은이들을 만나 말다툼하던 끝에 그들을 때려눕힌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알란인과 바스인과의 사이에 대 난투극이 벌어져 알란인 다수가 죽었다. 그러나 이제 국왕에게는 바스인을 벌할 힘도 권위도 없고, 과학자들은 바스인에게 동정적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에는 알란인은 바스인 앞에서 머리를 들지 못하게 되었다.
"쳇, 얼빠진 겁쟁이 놈들! 알란인 모두는 모두 죽여 버려야 돼."
조지도 바스인과 한편이 되어서 알란인들을 멸시했던 것이다..
트로오들의 움직임도 시시각각으로 전해져 왔다. 북방 대륙의 남쪽 끝에는 노스인의 대병력과, 싸울 수 있는 개들이 계속 밀어닥쳐서 집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이 어떤 비밀 병기를 가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앵글리즈 군의 주요한 병기는, 중력에 반발하는 그 특수한 천을 사용하여 만든 비행 판자였다. 여기에 번개 발사기를 장치하고 바닷길로 쳐들어오는 트로오 군을 하늘에서 공격하는 작전이다.
또, 이 천으로 비행복을 만들어 입고 하늘에서 적군에게 공격을 퍼붓는 특별 비행 부대도 완성되었다. 이 부대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특별히 선택된 과학자와 바스인 젊은이 200 명인데, 앵글리즈 시 교외의 기지에서 비밀 훈련을 받았다. 그 중에는 로트와 조지도 있었다.
이 훈련은 더없이 색다른 경험이었다. 먼저 검고 엷은 사라사와 같은 천으로 만든 양복을 입고, 손목과 발목과 목 언저리 부분은 꼭 졸라맨다. 허리에는 많은 포켓이 달린 폭 넓은 허리띠가 감겨져 있다. 허리띠에는 특수한 전지가 장치되고, 거기서 나오는 전기의 흐름이 천을 통하여 흐르게 되면, 반중력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역시 같은 천으로 만든 신을 신었다. 천에 전기의 흐름을 통하게 하는 순간, 중력은 사라지고 온 몸의 무게가 2킬로그램으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게 된다. 바람이 살랑거리면 바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게 몸이 가벼워지는 것이다.
"자, 날아 볼까요, 조지."
로트가 웃음을 던지면서 힘껏 땅바닥을 찼다. 순간 로트의 몸이 두둥실 하늘로 떠오르면서 동시에 반쯤 돌아서 머리를 아래로 향하고 살짝 땅에 떨어졌다. 조지는 그것을 모고 크게 웃었다.
공기는 물과 같은 느낌이었다. 손과 발에 달고 있는 날개를 익숙하게 사용하니, 마치 발에 지느러미를 달고 물 속을 헤엄치는 것과 같이 익숙하게 공중을 헤엄쳐 다닐 수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때에는 왼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 만한 크기의 원통을 사용한다. 이것으로부터 특수 광선을 발사하면 순간적으로 그쪽 방향의 공기 농도가 열어지고, 따라서 그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양으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일 주일 동안에 200 명의 비행 대원이 비행 도구를 사용하는 전문가가 되었다. 바스인의 리더는 모그루드이다.
로트와 조지가 절대 반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질라와 데이도 이 비행 부대에 참가하여 대원으로서 훈련을 받았다.
"나에게는 불행하게도 아들이 하나도 없소. 그래서 그 대신 두 딸을 나라에 바치는 거요. 이것은 내 의무이며, 또 딸들의 의무이기도 한 것이오."
이것이 후안의 주장이었다.
이것을 보고, 다른 과학인들의 딸들도 20여 명이나 지원해 왔다. 훈련을 시켜보니 비행병으로서 필요한 재주와,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점과, 몸의 동작들은 오히려 남자보다 우수할 정도였다. 소녀들은 비행 부대의 커다란 전력이 되었다. 소녀들은 13명씩 두 대로 나뉘어 1대를 아질라가, 다른 한 대를 데이가 지휘하게 되었다.
타임 머신을 병기로서 사용하는 일도 검토되었다.
그러나, 조지가 1만 2천 년의 과거까지 시간 여행을 했던 결과로 프로톤 연료가 줄어들어 많아야 20세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보류하기로 했다. 단순한 비행기라면, 비행 판자와 비행복이 있으므로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침 공중 정찰에 나갔던 비행 대원이 트로오 군대가 드디어 공격을 시작했음을 알려 왔다.
수많은 거대한 개들이 밧줄을 목에 걸고 나란히 헤엄을 치면서 끌고 오는 큰배가 주요한 전력인데, 그 배 위에는 많은 사람과 개와 기계 장치가 실려 있다는 것이었다.
섬 전체는 순식간에 긴장에 휩싸였다. 바닷가의 여러 곳에 흩어져 배치되어 있던 번개 발사기는 모두 앵글리즈를 중심으로 하는 동쪽 해안에 집중되었다. 또, 만에 하나라도 노스인들이 상륙할 경우에 대비하여 온 나라의 개들이 징발되었다. 그러나 적을 맞아 싸우는 앵글리즈 군의 주력은 아무래도 비행 부대였다. 그날 비행 부대 전원은 앵글리즈 시의 교외에 있는 초원에 모여 출발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그루드가 거느리는 바스인 100 명, 조지가 거느리는 과학인 200 명, 아질라와 데이가 거느리는 소녀 대원 26명이 병력의 전부이며, 전체의 지휘는 동굴 안에 있는 후안과 연락을 취하면서 로트가 하기로 되었다.
마침내 오후에 후안의 출격 명령이 내렸다. 불안스럽게 지켜보는 군중의 시선을 받으면서 비행병들은 차례 차례로 햇빛 속을 날아 올라갔다. 상공에서 재빨리 커다란 반원형의 편대를 짜고는, 북쪽의 해협을 향하여 씩씩한 진군을 시작했다.
 
해협의 결전
 
야자 숲이 점점이 있는 섬은 조용히 눈 아래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앞쪽에는 푸른 해협이, 오른쪽에는 바깥 바닷가 펼쳐져 있다. 조지에게 이 첫 출전은 상쾌한 것이었다. 참으로 고요하다. 공기의 저항이 없으므로 보통 비행기에 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대기 그 자체가 자신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비행 기분인 것이다.
바로 앞을 로트가 날고 있다. 뒤에는 활 모양의 편대를 짠 주력 부대, 그 앞쪽의 조금 낮은 높이로 소녀들의 2분대가 비행하고 있었다. 하나 같이 날씬하고 부드러운 몸매의 20세 이하의 소녀들뿐이다. 편하게 입은 바지와 블라우스의 옅은 옷감 밖으로 비쳐 보이는 손발이 아름답다. 머리는 진홍빛의 고무를 입힌 머리띠로 둘러매서 뒤로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그녀들은 왼손으로 교묘하게 추진통을 조작하여 전진하고 있다.
잠시 후에 일행은 해협의 상공에 이르렀다. 로트는 문득 소녀들을 보았다. 조금 고도가 낮은 것 같다. 로트는 입 가까운 곳에 장치한 휴대용 마이크를 사용하여 말을 보냈다.
"아질라, 데이, 너무 낮다! 조금 높이 날아요."
두 소녀는 순순히 그 지시에 따르고, 그녀들의 분대도 모두 함께 고도를 올렸다.
해협이 바깥 바다로 이어지는 근방의 상공까지 왔을 때, 트로오가 거느리는 군대와 함대가 보였다. 섬에서 5킬로미터쯤 뻗어진 바다 위에 마치 작은 먼지처럼 검게 떠 있다. 조지의 십장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침착하려고 애써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것이다.
로트와 조지는 비스듬히 위로 올라가면서 전진을 계속했다. 적군의 배는 6척인데, 굉장히 크다. 사람과 개와 기계 장치를 가득 싣고 있다. 6척 모두 배의 위를 거대한 은빛으로 빛나는 금속의 덮개를 씌워서 보호하고 있다. 하나 하나의 배의 앞쪽에는 수많은 거대한 개들이 가로로 죽 늘어서서 헤엄치고 있었다. 이 거대한 개들이 밧줄로 배를 끌고 있는 것이다.
로트는 추진통을 닫고 속도를 떨어뜨렸다. 그 로트에게 조지가 따라붙어 어깨에 손을 얹고, 나란히 비행을 계속했다. 맨 앞에 오고 있는 적의 배까지는 약 1500 미터쯤이다. 맨 앞에 오는 1척은 지휘하는 배인 듯하다. 다른 5척은 조금 떨어져 따라오고 있다.
갑자기 적군의 지휘선은 눈부신 빛을 번쩍하고 발사했다. 몇 초 후에 천둥소리 같은 폭음이 울렸다. 발사된 빛은 로트네들을 향하여 빠른 속도로 올라왔으나 헛되게 빗나가 버렸다.
틈을 주지 않고 섬의 연안에 대기 중인 앵글리즈 군도 같은 빛을 적의 배들을 향해 발사했다.
트로오는 자기들의 광선포의 성능에 충분한 자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섬에 설치된 발사기의 광선이 가 닿는 거리 밖에서 먼저 공격을 해 옴으로써 앵글리즈 측이 혼란에 빠지는 틈에 상륙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적의 배를 씌우고 있는 은빛 덮개는 로트네들이 하늘로부터 발사하는 소형 광선총의 빛을 막기 위한 장비일 것이다.
(저 은빛 덮개의 정체가 무엇이거나, 이 광선총의 사격을 정면으로 받는다면 상처를 안 입을 수 없으리라…… 될 수 있는 대로 적의 배에 접근하여 정확하게 겨냥하고 집중 공격을 해야 한다. 배의 나무 부분에 바로 들어맞으면 불이 붙어 곧 타 버릴 것이고, 물 속에서 배를 끌고 있는 개들을 죽이면 적군의 배는 오지도 가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로트의 작전은 정해졌다. 재빨리 동굴의 작전 본부에 있는 후안에게 자신의 작전 계획을 전하여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곧 휴대용 마이크로 비행 부대의 전원에게 그것을 전달했다.
로트들은 잠시 동안 600 미터의 고도를 유지하여 적의 배가 떠 있는 상공을 돌았다. 적군의 배로부터 때때로 빛이 발사되었으나, 이 높이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그 상태로 적의 배들은 전진을 계속했다.
이윽고 후안으로부터 공격 개시의 명령이 전달되었다. 로트는 그것을 비행 대원 모두에게 전했다.
먼저, 조지의 분대와 모그루드의 분대가 대열을 떠났다. 그 중 100 명 정도는 북방 대륙의 방향으로 날아갔다. 남은 분대원들은 일제히 급히 날아 내려가서, 곤충의 떼 같이 적의 지휘선을 습격했다.
이곳은 앵글리즈 시내의 동굴 속 깊은 곳에 있는 작전 본부이다. 3면이 여러 개의 커다란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사령실로서, 수신기와 휴대용 마이크를 몸에 장치한 모습의 후안과 로저스가 앉아 있다. 커다란 스크린에는 섬의 불쑥 튀어난 끝머리에 서 있는 텔레비전 탑으로부터 보내져 오는 바다와 공중의 광경이 비쳐 있다.
또 후안의 정면에는 30센티 사방쯤 되는 소형 스크린이 있고, 거기에는 로트의 이마에 메어붙인 텔레비전 카메라로부터의 화면이 나타나 있다. 즉, 로트가 보는 그대로의 정경과, 로트가 눈을 돌려 사방을 바라보는 시시 각각의 광경이 그대로 이곳으로 보내져 오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의 운명을 한 몸에 짊어지고 있는 후안은 로저스와 함께 소형 스크린을 뚫어지도록 들여다보고 있었다. 때때로, 두세 마디 로저스와 작은 소리로 말을 주고받고는 실내의 부하에게 지시를 내린다. 지시 받은 사람은 마이크를 통하여 명령을 내린다. 이것이 섬의 이곳 저곳으로 전달되어서 앵글리즈 군의 일거일동을 결정하는 것이다. 후안은 온 몸의 지혜를 짜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것이다.
로트가 지켜보는 가운데 조지와 모그루드가 거느리는 분대는 적군의 지휘선에 달려들어 광선총의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바로 들어맞은 광선은 은빛 덮개의 여기저기서 번쩍번쩍 불꽃을 튕기고 있다. 적도 광선을 발사하고 있었으나, 그 수는 훨씬 적었다. 공격대의 한 사람이 적의 광선을 맞고 거꾸로 바다 속에 떨어지기도 하고 상처를 입고 힘없이 흔들거리며 상공으로 도망쳐 가기도 했다. 배를 끌고 헤엄치는 개들도 벌써 몇 마리가 죽어서 피를 흘리면서 바다 위를 둥둥 떠내려가고 있다.
싸움이 시작된 지 1분도 안되어서 갑자기 적의 배들이 암흑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마치 진한 잉크를 뿌린 것처럼 배를 중심으로 반경 150 미터쯤의 바다 위에 있는 모든 광선이 흡수되고 만 것이다. 적의 배가 에테르(빛의 파동설에서 전자파를 전달하는 매체로 가상된 물질) 진동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후안은 빙긋 웃었다. 그는 그 에테르 진동 폭탄이라는 것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검은 연막을 써서 적의 눈으로부터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효과는 사라진다. 같은 것이 아군의 간부들, 로트와 조지와 모그루드에게도 이미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후안의 명령을 받은 로트는 공격 부대를 다시 후퇴시켰다. 바닷속에 추락한 20여 명과 상처를 입은 수십 명을 뺀 나머지 사람의 수효는 200 명을 조금 넘고 있었다.
1분쯤 지나자 적의 배를 싸고 있던 암흑이 옅어지고, 배의 윤곽도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에서는 노스들이 열심히 불끄는 작업과 죽은 개를 밧줄에서 Ep어 버리고, 새로운 개로 보충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적의 배들은 계속 천천히 전진하여, 해협으로부터 섬으로 들어오는 포구까지 1500 미터쯤의 거리를 남겨 두고 있었다.
후안은 다시 3번쯤 적의 같은 배에 대한 집중 공격을 명령했다. 그 때마다 적의 배는 같은 전법을 되풀이했다. 몇 번 광선을 쏘아 올리고는 흑의 막을 펴고 도망친다. 그 때마다 이쪽의 쏘아대는 광선은 전혀 무효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사이에 앵글리즈 군은 조금씩 공격의 비결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 적의 광선포는 수평 방향으로 발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주 낮게, 바닷물에 닿을 정도로 날아가서 공격을 하는 편이 안전하다.
이윽고, 집중 공격을 받은 적의 배는 화염에 싸였다. 배 위에는 죽은 자와 부상자가 득실거리고, 살아남은 사람과 개들은 앞을 다투어서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수초 후에, 적의 배는 뒤쪽을 위로 올리면서 기울기 시작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뱃머리부터 첨벙첨벙 물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그러나 가라앉은 적군의 배는 1척에 지나지 않는다. 남은 5척은 각각 500 명씩의 노스인과 거의 같은 수효의 거대한 개를 싣고, 거의 포구까지 이르고 있었다. 섬의 기슭에 설치된 광선포가 미치지 못하는 거리의 지점을 택하여, 개를 타고 상륙해 온다면 큰일이다.
아질라와 데이가 로트에게로 날아와서 새로운 방법의 공격을 해 보고 싶으니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동굴 안에 있는 후안이 엄격한 표정을 한 채 딸들의 희망을 승낙하자, 아질라와 데이는 각각 13명씩의 소녀 대원을 거느리고 새로 지휘선이 된 적군의 배를 향하여 함께 돌진했다.
적의 배로부터도 광선포가 연달아서 발사되었다. 그러나 소녀들이 있는 높이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이윽고 소녀들은 일제히 하나의 점에 겨냥하여 광선총을 발사했다. 26개의 하얀 광선이 보기 좋게 한곳으로 집중되었다. 더구나 활 모양으로 구부러져 정확하게 적군의 배에 들어맞은 것이다.
"이렇게 하면, 광선이 똑바로 발사된다고만 생각하는 노스는 그곳만을 노리고 응전을 하기 때문에, 딸들은 공격에 열중하는 데 큰 도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스크린 보면서 놀라고 있는 로저스에게 후안은 그렇게 설명했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질라와 데이는 두 사람만으로 대담하게 급히 날아 내려가서 적의 배에 접근했다. 적의 배에서는 계속하여 광선포를 쏘아 올리지만 좀처럼 두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 20초 후 적의 배로부터 겨우 9미터밖에 안 되는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해 간 아질라와 데이는 주황색의 액체를 마구 뿌리기 시작했다. 이 액체에 닿으면 어떤 단단한 재료로 만든 것이라도 곧 녹아 버리는 강력한 화학 약제인 것이다.
적군의 배가 다시금 암흑탄을 터뜨리자 두 소녀들도 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깜짝 놀라 응시하고 있는 로트의 눈앞에 잠시 후 무사히 날아 오르는 아질라와 데이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암흑의 막이 걷히니, 거의 물 속에 잠겨가고 있는 적군의 배가 그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잠시 후엔 그것도 커다란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바닷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제는 파도 사이로 점점이 보이는 적병과 개들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늘엔 짙은 구름이 깔리고 황혼으로 붉게 물든 서쪽 하늘은 급속도로 밤의 어둠으로 변해갔다. ,
후안은 적의 배들에 대한 총공격을 명령했다.
밤하늘은 순식간에 번쩍이는 빛이 오가며 부딪치는 무서운 전쟁터로 변했다. 천지를 뒤흔드는 인공의 천둥소리와 함께 청백색의 로켓 폭탄이 날아간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 쏘아 맞힌 로켓 폭탄이 터지는 굉장한 소리, 목표를 빗나가 바닷속에 떨어진 로켓 폭탄이 일으키는 맹렬한 물보라, 배로부터, 섬으로부터, 하늘로부터 광선이 마구 발사되어 사방을 대낮처럼 끊임없이 밝히고 있다. 그러는 동안 몇 시간에 걸친 열선의 자극을 받았기 때문인지, 진짜 천둥소리와 번갯불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연이 어리석은 인간의 싸움을 비웃으며 소리 높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시무시한 번갯불과 함께 하늘과 땅을 울리면서 이편저편 구별 없이 퍼붓는 벼락, 뒤이어 두꺼운 구름 사이로 내리는 장대 같은 비, 휘몰아쳐 일어나는 회오리바람……
반시간 후 태풍이 멎고 조각조각 떠 있는 구름들 사이로 붉은 달이 모습을 나타내었다. 싸움도 이제 기세가 누그러져 있었다.
또 1척의 적의 배가 침몰되어 가고 있다. 남은 3척도 밧줄을 끄는 거대한 개의 대부분이 죽어 버려서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해협의 중간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불길과 싸우고 있었다.
로트는 비행 부대원 중 상처를 입은 사람과 피곤한 사람을 눈에 띄는 대로 곧 섬으로 돌려보냈다. 지금 그가 거느린 대원은 50명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적의 배에 대한 급강하 공격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 때 동굴 안에서 스크린 들여다보고 있던 후안은 다른 소형의 적의 배 한 척이 무서운 속도로 섬에 접근해 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실을 곧 로트에게 알려주고 난 직후, 그 배는 무엇인가 은빛으로 빛나는 것을 공중으로 쏘아 올렸다. 그것은 천천히 해협의 상공을 가로질러 섬 쪽으로 날아왔다. 직경 7, 8- 센티의, 돌아가는 둥글넓적한 판이다. 그 원반이 날아가는 길과 로트와의 사이에는 소녀 비행 부대가 날고 있었다. 원반은 소녀의 한 사람을 향하여 날아왔다. 소녀는 당황하여 몸을 피하려고 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어 원반에 부딪쳐서 곧 추락하고 말았다. 동시에 그 원반도 회전을 그치고 아래로 멀어졌다. 그때에야 원반의 정체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십자형의 강철 칼날인데, 그것이 프로펠러처럼 세차게 회전하면서 날고 있는 것이었다.
새로 나타난 적의 배는 연달아서 이 회전 나이프를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로트는 휴대용 마이크를 통하여 모든 비행 부대원에게 경고를 하였으나, 때는 늦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수상쩍어하는 대원들에게 회전 나이프는 기분 나쁜 소리를 울리면서 부딪혔다. 회전 나이프에 맞은 대원들은 무참하게 온 몸이 잘려 토막나서 바다 속으로 떨어져 갔다. 이것을 보고 하늘로 높이 날아 올라가는 대원의 뒤를 쫓아가는 회전 나이프도 있었다. 이 때가 되어서, 후안은 회전 나이프의 정체를 알았다. 트로오가 과거의 세계로부터 가져온 과거의 병기가 이 싸움에 나타난 것이다. 이 병기는 특수한 자기를 띠고 있고, 이동하는 사람의 몸을 뒤쫓아가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후안은 과연 모든 과학인의 문장이라고 할 만했다. 그는 곧 이 회전 나이프가 바다의 표면에서 가까운 높이에서는 힘이 약하여 피하기 쉽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러나 후안의 지시로 비행병들이 일제히 바다의 표면 가까이까지 내려오는 동안 40명 가까운 사람이 희생되었다.
그 무렵 해협의 한가운데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3척의 적선이 다시금 섬의 기슭을 향하여 진격을 시작했다. 재빨리 그것을 발견한 아질라와 데이의 남은 부대원들은, 후안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적의 배를 향하여 날아 내려갔다. 소녀들은 바다 표면에 스칠락말락한 높이로 2척의 적선 한복판에 들어갔다. 적군은 서로 자기편을 파괴할 위험이 있으므로 광선포를 발사할 수가 없다. 다만 앞서 사용하던 그 에테르 진동 폭탄을 터뜨려서 암흑의 막을 쓰고 모습을 감추려고 할 뿐이다. 소녀들은 사정없이 적의 배에 광선총을 퍼붓는다. 1척은 순식간에 불길에 싸이게 되었고, 남은 2척도 전진을 그쳤다. 회전 나이프의 발사도 어느 사이에 중단되고 있었다.
(소형의 적선이 낮은 잡음을 내기 시작하면 그 순간을 놓치지 말고 공격하라……)
이런 명령이 후안으로부터 로트에게 전해졌다. 로트는 조지와 다른 비행병들과 함께 소형의 적선이 있는 곳의 150 미터 상공을 빙빙 돌면서, 그 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이 배에는 거대한 개가 한 마리도 없다. 배 위의 은빛 덮개 안에 있는 사람도 겨우 몇 사람 정도이다. 유효한 공간을 전부 기계 장치를 싣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특수한 배인 듯했다.
로트들과는 반대쪽에서 같은 소형의 적선을 둘러싸는 모양으로 모그루드의 부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로트보다는 조금 낮은 하늘에서 적선의 주위를 빙빙 돌고 있다.
갑자기, 소형의 적선에서 잡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즉시 모그루드의 부하 몇 명이 쏜살같이 적군의 배로 접근해 갔다. 잡음의 기세는 올라가고, 소리도 요란스러워져 높고 날카로운 비명과 같은 진동음으로 변했다. 그 순간, 접근해 갔던 모그루드의 부하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끌리는 것처럼 몸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면서 조금씩 아래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과거의 과학 병기의 하나인 전자 병력 발생 장치라는 것이다. 접근하는 것은 무엇이든 끌어당기고, 특히 인간은 전혀 행동의 자유를 잃고 만다.
끌어당기는 힘은 이미 로트와 조지의 부대에게도 미처서 모든 사람들이 마치 바다의 강한 조류 썰물 때문에 일어나는 바닷물의 흐름에 거슬러 헤엄쳐 가는 것 같이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적의 배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모그루드의 부하들은 무서운 힘으로 적의 배에 빨려 들어가 은빛의 덮개에 세차게 부딪치고 있다. 그리고 그 몸을 적군의 광선총이 무정하게 꿰뚫었다.
동굴의 작전 본부에서 로저스는 무심코 올린 부근의 해안에 설치된 텔레비전 카메라로부터 보내져 오는 화면을 바라보고 깜짝 놀랐다. 자줏빛의 밤하늘 아래에서 불그레한 달빛을 받고 고요히 잠들어 있는 해안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많은 적의 배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1척의 배는 벌써 육지 가까운 부근에 거대한 개들과 적병을 상륙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대폭발
 
트로오의 계략에 보기 좋게 걸려들고 만 것이다! 분명히 앵글리즈 시에 대한 적의 공격을 물리치는 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올린 시에 대한 적의 주력 부대의 공격에서 아군의 눈을 돌리게 하기 위한 미끼 작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미끼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에 트로오의 다른 주력 부대가 올린 시에 기습 상륙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올린 시에 대한 기습 상륙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앵글리즈 시가 있는 방향의 해협에 남아 있던 적의 배들은 일제히 후퇴를 시작했다. 자력 장치를 작동시키고 있던 소형의 적의 배도 앵글리즈 군의 비행병들을 마음대로 희롱하면서 해협의 북쪽을 돌아서 올린 시를 향하여 방향을 돌리고 있다.
올린 시는 3면이 바다에 둘러싸인 반도였다. 시내에는 국왕과 왕족들, 귀족들이 살고 있다. 경호에 임하고 있는 것은 수효가 적은 과학인의 수비대들이다.
올린 반도에 상륙한 적병은 해안의 여기저기에 집결하였으나, 아직 시내에는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열심히 버둥거리면서 빠져나가 보려고 애쓰고 있던 조지는 어느 사이에 몸이 편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적의 배의 자력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음을 알아차렸다. 로트와 아질라와 데이가 어디에 있는가 종잡을 수가 없다. 문득 아래를 보니, 모그루드가 20명 정도 되는 바스인을 거느리고 재빨리 날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할까……?)
조지는 한순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눈 아래 보이는 바다에서는 2척의 커다란 적의 배가 전속력으로 똑바로 도망쳐 가고 있는 중이었다. 모그루드의 지휘를 받고 있는 비행병들이 상공에서 열심히 그것을 뒤쫓고 있다.
(좋아! )
조지는 결심을 하고 그쪽을 향하여 비행을 시작했다.
모그루드의 1대는 바다 표면에 닿을 정도로 낮은 높이에서 적의 배를 공격하고 있었다. 앵글리즈 공군의 필사적인 맹렬한 공격에 적의 배는 2척 모두 암흑의 막을 펴서 모습을 감추고 도망치려고 했다.
조지가 현장에 도착하는 것보다도 빠르게 적의 배를 둘러싼 암흑 속에서 무서운 백열광이 번쩍이면서, 근방이 갑자기 밝아졌다. 암흑의 막을 지나치게 짙게 폈기 때문에, 적선들은 자기들의 나아갈 방향을 잘못 판단하고 서로 충돌하고 만 것이다. 적선은 2척 다 폭발하여 무서운 불길을 내뿜고 있다. 잠시 후 적선 1척이 가라앉았다. 또 1척은 무섭게 타오르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도망쳐 보려고 헛된 노력을 계속하고 있었다. 바다 표면에는 점점이 살아 남은 노스인들의 머리가 흩어져 있었다. 모두 죽을힘을 다하여 기슭까지 헤엄쳐 가려 하고 있었다. 공중의 앵글리즈 군 비행병들은 냉정하게 겨냥하고 오렌지색의 광선을 발사하여 물 속에 있는 노스인들을 죽이고 있었다. 참혹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느 땐가는 꼭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작업이었다. 이 노스인들을 한 사람이라도 살려 보낸다고 하면, 어느 날엔가 꼭 앵글리즈에 대하여 잔인한 복수를 해 올 것이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앵글리즈의 비행병들은 손에 들고 있는 광선총의 에너지가 다 없어질 때까지 철저하게 노스인을 소탕했다.
그곳에서의 싸움이 완전히 앵글리즈 군의 승리로 돌아갈 무렵, 조지는 데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멀리 보이는 하늘 위에서 동료인 소녀 비행 대원들과 함께 날고 있었던 것이다.
"앗, 위험하다!"
조지는 저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적군의 회전 나이프가 다시금 활동을 시작하고, 그 중 하나가 데이를 향해 날아갔기 때문이다. 회전 나이프는 소리도 없이 데이와 함께 있던 소녀에게 맞아서, 소녀는 곧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데이를 뒤쫓아 그녀가 가지고 있는 추진통을 맞추었다. 데이는 저도 모르게 실린더를 놓쳐 버리고, 곧 몸의 균형을 잃고 추락해 갔다. 추락하면서도 데이는 손발을 공중에서 헤엄쳐서 어떻게든 몸의 자세를 바로 잡아보려고 애썼다. 하마터면 바다에 떨어지는가 싶은 순간, 겨우 달려온 조지가 그녀의 몸을 두 팔로 안아 받쳤다. 조지는 교묘하게 자신의 추진통을 조종하여 데이를 안은 채로 높이 날아올랐다.
한편, 로트는 그 무렵 다시금 위력을 떨치기 시작한 자력과 죽을힘을 다하여 싸우고 있었다. 이 에너지를 받으면 전혀 몸이 부자유스러워진다. 때문에 어떻게든 그 세력의 범위 밖으로 도망쳐 나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자력 발생기를 실은 적의 배는 조금씩 해협을 향하여 이동해 간다. 올린에서 싸우려는 계획일 것이다.
(절대로 그런 짓은 하게 할 수 없다! )
로트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 자력 발생기를 배와 함께 파괴해 버리고 싶었다.
그 때, 후안의 지시가 들려왔다. 적이 갑자기 올린 반도에 상륙했기 때문에, 급히 돌아오라는 명령이었다.
<좋아…… 한번만 더 해 보자.>
초조한 마음으로 로트는 무모하게도 자신의 힘의 작용이 미치는 범위 안으로 자진하여 돌진해 갔다. 순식간에 강력한 자력이 로트의 온 몸을 얽어매는 듯한 느낌이다. 몸이 빙글빙글 소용돌이치면서, 자력 발생기가 있는 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로트는 그것을 거꾸로 이용하여 결사적인 공격을 감행하려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발생기를 겨냥하여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로트에게는 광선총도 사용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그 에너지를 다 써 버리고 맡았기 때문이다.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발화액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목표물에 가까이 가서 뿌리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 로트는 죽을 힘을 다해 실린더를 조종하여, 몸을 될 수 있는 대로 수평으로 유지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력 발생기로 접근해 갔다.
자력 발생기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비명과 같은 전동음이 고막이 터져 나갈 것처럼 들려온다. 발생기의 주위에 있는 노스인들은 연달아서 광선포를 발사하여 로트를 맞히려고 안달이었다. 로트는 무서운 기세로 수평 비행을 계속하여 30미터의 높이를 유지하면서, 자력 발생기의 상공을 통과했다.
<아직도 너무 높다. 어떻게 해서든지 5미터 정도의 높이까진 접근해야 할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발생기의 상공을 그냥 지나쳐버렸다. 로트가 20미터쯤 발생기의 위를 날아 넘을 때 강한 자력에 끌려, 등 뒤쪽으로부터 차츰차츰 발생기가 있는 방향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실린더를 사용하여 끌려가는 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오래 끌면서 로트는 조금씩 조금씩 낮게 내려갔다. 벌써 피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손에 들고 있는 발화액을 자력 발생기 속에 처넣느냐, 이대로 몸이 뒤로 젖혀진 채로 발생기에 끌려가서 광선포의 밥이 되느냐, 길은 둘밖에 없는 것이다.
피로할 만큼 지루한 느낌의 시간이었으나, 이윽고 그 순간이 찾아왔다.
<지금이다! >
로트는 발화액을 방출했다.
"펑!"
무서운 폭발음과 함께 자력 발생기의 중심 코일이 타서 끊어지고, 그 순간 로트의 몸은 편하여졌다. 자력이 사라진 것이다.
승리감으로 가슴이 뿌듯해져서 로트는 실린더를 위쪽으로 향하고 똑바로 급상승했다. 100 미터쯤의 높이에 이르렀을 때 올라가기를 그치고, 바다를 돌아보았다. 자력 발생기를 실은 적의 배 전체가 큰 불길에 싸이고, 노스인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 앞을 다투어 타오르는 배에서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것이다.
로트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여, 아군의 주력과 합류했다. 남아 있는 자는 겨우 75명이었다. 그 중의 10명은 여자 대원이었다. 그 가운데 아질라가 있는 것을 보고 로트는 안심했다.
조지는 아직도 데이를 안고 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불길에 싸여 있는 적의 배와 달빛에 비쳐진 무수한 시체들이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적병의 시체도 있고, 아군의 시체도 있다. 로트들은 바닷물에 스칠 정도로 낮게 날면서 빙빙 돌기를 계속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자기 편 부상병을 찾는 것이다. 바닷물 위에서 표류하고 있는 아군의 생존자는 두 사람뿐이었다. 화상을 입은 바스인 비행병과 회전 나이프로 심한 상처를 입은 소녀 대원이다. 로트들은 두 사람의 부상자를 안고 후안이 있는 동굴로 돌아왔다.
올린 반도의 해안으로는 거대한 개를 탄 노스인들이 계속 밀려들어서 상륙하고 있었다. 병력이 부족했던 앵글리즈 군의 수비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노스인들을 멀리 둘러싸고 가만히 형편을 살피고 있을 뿐이었다.
후안은 앵글리즈 시에 있는 바스인 병사들에게 광선총을 가지고 올린 시로 급히 가게 했다.
로트와 앵글리즈 군의 병사들과, 전투에 몹시 피곤해진 몸으로 돌아온 비행 부대에도 휴식은 허락되지 않았다. 동굴의 본부로 돌아오자마자 몇 시간 후로 다가온 새로운 건투의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 것이다.
올린 시에 상륙한 적병에 대한 유격전은 앵글리즈 시로부터 올, 바스인 보충 부대의 도착을 기다려 밤이 새자마자 시작하기로 결정되었다.
후안은 로저스, 로트, 조지, 아질라, 데이와 함께 타임 머신에 올라탔다. 타임 머신에는 후안이 특별히 정성 들여서 연구한 결과 발명된 대형 광선총이 장치되어 있었다.
밤이 새기 한 시간 전, 타임 머신은 앵글리즈 시를 출발하여 곧장 올린을 향하여 공간 이동을 시작했다. 하늘을 나는 동안 육지의 도로를 진군해 오는 바스인 육군 부대를 지나쳤다. 뒤에는 점점이 비행 부대가 계속 날아오고 있다.
올린으로부터 앵글리즈 시로 향하는 도로에는 노인, 여자, 아이들의 바스인 피난민이 길다란 줄을 지어서 가고 있었다. 앞쪽의 올린 상공에는 때때로 청백색의 광선이 번쩍거린다.
"아버지, 올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타임 머신을 조종하고 있던 로트가 로저스에게 말했다.
이 나라의 수도인 앵글리즈 시 다음으로, 이 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올린은 뒤에 두 개의 산을 끼고 있는 커다란 분지의 가운데에 있었다. 올린 시의 상공에 도착한 타임 머신은 천천히 배회하면서 밤이 새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동쪽 지평선으로부터 진홍색의 커다란 태평양이 모습을 나타냈다. 하늘을 향하여 내뻗친 햇빛이 올린 시의 상공에 두껍게 깔려 있던 회색의 비구름을 붉은 빛으로 물들였다.
"알란인에게는 오늘이 바로 신의 심판이 내리는 '대홍수의 날'이 될 것이다……"
후안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로트는 후안의 중얼거림에, 조종석에 앉은 채로 고개를 깊이 끄덕거렸다.
"분명히 대홍수'라고 할 수 있겠죠. 그것도 피의 대 홍수가 되겠죠."
그 말에 대답하는 것처럼 어두운 구름은 올린 시에 비를 몰고 와 퍼붓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동쪽 지평선의 햇빛을 받고 무수한 붉은 방울이 되어서 알란인들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비는 곧 멎었다. 그러나 하늘을 뒤덮은 피처럼 붉은 짙은 구름은 남아 있었다.
타임 머신이 앵글리즈 시를 출발하고 나서 세 시간 후, 노스인들은 동굴을 습격했다. 앵글리즈 군의 수비대는 싸움 한번 해 보지 않고 후퇴하여, 동굴은 노스인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앵글리즈 시로부터 오는 바스인의 육군 부대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올린의 동굴은 노스인의 병사들로 넘쳐 있었다. 게다가 뒤를 이어 노스인들은 해협을 건너서 자꾸만 상륙해 오고 있다.
올린 시의 상공을 돌고 있는 타임 머신의 캐빈에서 후안은 망원경으로 아래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항상 무엇인지 혼자서 중얼거렸다. 얼굴빛은 창백하고 눈에는 핏발이 서 있다. 있는 힘을 다하여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양이었으나, 지금까지 몇 달 동안의 긴장이 이 노인의 신경과 육체를 몹시 피로하게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느낄 수 있었다.
"로트 군."
하고, 후안은 말했다.
"머신을 땅에 내려 주지 않겠나……? 내가 보니 적은 광선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아마 무기는 아직 동굴 속에 있는 트로오와 함께 있는 모양이다……"
로트는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머신의 고도를 낮추었다.
올린 시내에는 가는 곳마다 지옥과 같은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피에 굶주린 노스인들이 닥치는 대로 알란인의 시민들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타임머신 안에서도 끊임없이 모터의 진동음을 뚫고, 칼에 찔리고 개에게 물려서 학살되는 알란인 남녀의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타임 머신은 산이 있는 쪽으로부터 바다가 있는 쪽을 향하여 낮게 떠서 올린 시내의 상공을 지나갔다. 때마침 머신 아래에서는 잔인한 얼굴에 즐거운 듯한 미소를 띄고 있는 털북숭이 노스인이 사납게 생긴 커다란 개를 타고, 하얀 둥근 기둥과 아름다운 분수와 아름다운 꽃밭으로 장식된 알란인의 주택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잠시 후, 노스인은 타고있던 개에서 뛰어내려 몹시 거친 발걸음으로 현관을 통하여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집안에서 공포에 질려 오금을 못쓰는 창백한 얼굴의 알란인 여자를 끌고 나왔다. 벌벌 떨며 서지도 못하는 알란인 여자의 흰 몸을 노스인은 커다란 개 앞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그 거대한 개는 송곳니를 드러내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여인에게 달려들어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주변은 곧 피의 바다가 되었다. 여인은 산 채로 손과 발을 거대한 개에게 물려 잘려지고, 배와 가슴도 갈기갈기 찢겨져서, 마치 누더기 조각처럼 버려졌다.
바닷가에서는 수백 명의 알란인 남녀가 바닷속으로 쫓겨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뒤를 수십 마리의 거대한 개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면서 쫓는다. 푸른 바닷물은 곧 붉은 핏빛으로 변했다. 흰 모래펄 위에서는 윗도리를 벗은 노스인들이 그 광경을 손가락질하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며 뒹굴고 있었다.
또, 이쪽 광장에서는 백 명쯤 되는 알란인들이 도망칠 곳을 찾지 못하고, 한 덩어리가 되어서 떨고 있었다. 사방 팔방에서 일제히 풀려난 거대한 개들의 떼가 그들에게 달려든다. 무서운 비명과 피보라…… 거대한 개들은 피에 물들어 움직이지 않는 시체를 마치 인형이라도 가지고 장난하듯이 입에 물고는 이리 저리로 흔들고 공중에 올려 던지기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거대한 개들에게 쫓기는 금발의 소년이 열심히 등나무의 덩굴을 올린 선반 위로 올라갔다. 거대한 개는 나무 위를 쳐다보며 무섭게 짖지만 소년을 물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노스인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죽을 힘을 다하여 등나무 덩굴에 매달려 있는 소년을 억지로 끌어내려 거대한 개의 밥이 되게 했다.
로트는 말없이 머신의 조종석을 로저스에게 넘겨주고 창가에 있는 광선총의 옆에 섰다. 어느 사이엔가 옆으로 바싹 다가선 아질라가 입술을 하얗게 될 정도로 꽉 물고, 로트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타임 머신이 한 채의 집 위에 닿을 때였다. 한 사람의 알란인 여자가 작은 두 딸아이를 자기 몸 아래 감싸면서 지붕 위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한 노스인이 가벼운 동작으로 지붕으로 올라가 성큼성큼 세 사람에게 가까이 간다. 땅 위에는 열 마리 가까운 커다란 개들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면서 사람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하다 못해 저 여인과 아이들에게라도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로트는 이런 기도의 말을 중얼거리면서 그들을 겨냥하여 광선총의 레버를 당겼다. 번쩍 하는 빛이 노스인과 알란인 여자와 아이들에게 발사되었다. 노스인은 통나무처럼 지붕에서 굴러 떨어지고, 여인도 아이들도 모두 검게 타죽었다. 그 집의 지붕도 절반은 타서 대들보와 기둥이 앙상하게 드러나 보였다.
어떻게 해서도 구원할 길이 없다는 절망감이 로트를 사로잡았다. 참으로 슬프고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이외에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로트는 광선총의 레버를 놓고는 아질라의 손을 잡고 타임 머신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로트는 쓰러지는 것처럼 좌석에 앉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후안은 타임 머신을 동굴로 향하도록 하라고 로저스에게 지시했다. 로저스는 머신의 앞머리를 돌려서, 산의 중간 허리에 있는 커다란 동굴을 향하여 머신을 날아가게 했다. 대 동굴의 주위에는 작은 동굴이 여러 개나 있었다. 가운데 동굴에 국왕과 귀족들이 피난하여 숨어 있을 것이다.
대 동굴은 트로오의 사령부와 무기고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먼 곳으로부터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앵글리즈 군의 비행 부대의 모습이 보였다. 후안은 무선 전신기로 비행 부대의 지휘자인 모그루드를 불러내어 이 이상 더 가까이 가지 맡고 대기하도록 명령했다.
점점 다가오는 대 동굴을 창백한 얼굴빛의 후안은 입술을 꽉 다문 채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대관절 무엇을 하시렵니까?"
조지가 물었으나 후안은 대답하지 않았다. 후안은 말없이 대형 광선총이 장치된 곳으로 걸어가서 묵묵히 총과 머신을 연결시키는 철사를 풀기 시작했다.
"앗, 트로오가 있다!"
조지가 외쳤다.
대 동굴의 입구에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틀림없이 트로오였다. 산기슭에서는 노스인들이 학살의 손을 잠시 쉬면서,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타임 머신이 가는 곳을 지켜보고 있다. 대 동굴의 입구로부터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평평한 큰 바위가 있었다. 후안은 그것을 가리키면서 로저스에게 말했다.
"저 바위 위에 타임 머신을 착륙시켜 주십시오. 나는 광선총과 함께 저곳에 내리겠습니다. 내가 내린 다음에는 곧 전속력으로 떠나 주십시오."
"대관절 무엇을……
모두 어안이 벙벙하여 후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후안은 말없이 부드러운 미소로써 모든 사람에게 응답했다. 갑자기 데이가 큰 소리로 울면서 후안에게 매달렸다. 아질라도 좌석에서 일어나 커다란 눈을 더욱 크게 뜨고 후안을 바라보고는 입술을 와들와들 떨었다. 후안은 데이를 안으면서 아질라를 손짓하여 불렀다. 아질라는 단숨에 후안의 품으로 뛰어들어 소리를 내어 울었다.
후안은 사랑스러운 듯이 딸들을 껴안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딸들의 등을 어루만졌다.
"착하지, 너희들…… 이것이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이란다. 아무것도 울 필요는 없다. 자, 어서 저리로 가거라…… 잠시 동안 이별이다."
후안은 딸들을 로트들이 있는 쪽으로 밀어내면서 로저스를 돌아보았다.
"아시겠죠, 부탁합니다. 이젠 결정됐으니까 어서 서둘러 주십시오."
후안의 음성에는 다른 말을 못하게 하는 위엄이 있었다. 일동은 마치 최면술에 걸린 사람들처럼 후안의 지시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타임 머신은 바위 위에 착륙하여, 후안과 광선총을 내려놓고 다시 전속력으로 상승했다.
벌써 동쪽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은 무겁게 내리깔려 있는 구름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하늘은 마치 피로 물든 커다란 사발을 덮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높이 올라간 타임 머신에서 내려다보니, 대 동굴의 입구에서는 노스인들이 분주하게 무엇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를 동굴 안에서 운반해 내고 있는 중이었다. 트로오는 여전히 팔짱을 낀 채로 후안을 노려보고 있다.
갑자기 후안의 광선총이 청백색의 빛을 번쩍 하고 발사했다. 그것은 20미터의 공간을 순식간에 넘어서 똑바로 노스인들이 방금 동굴 안에서 운반해 온 기계 장치에 들어맞았다.
무서운 천둥소리가 사방팔방으로 메아리 쳐 퍼졌다.
후안의 광선총은 계속하여 동굴 안을 향하여 집중적으로 번쩍이는 빛을 내뿜고 있었다.
타임 머신은 급속도로 상승하여 벌써 2000 미터의 높이에 이르고 있었다.
갑자기 대 동굴이 있는 산 전체가 폭발했다. 폭발하는 소리는 2000 미터 상공에 있는 타임 머신의 안까지 귀를 찢을 듯한 굉장한 소리가 되어서 들려왔다. 여러 가지 빛깔의 불꽃과 재가 여기저기 뚫린 구멍과 동굴의 입구로부터 굉장한 기세로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뻐끔히 입을 벌린 산 표면의 구멍으로부터 새빨간 용암이 흘러 나왔다. 용암은 천천히 분지로 흘러 들어서 올린 시를 온통 삼켜 버리고 바다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것은 또 굉장한 증기를 하늘 높이 뿜어 올리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올린 반도 전체가 세차게 흔들리며 떨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 땅 표면이 거북의 등처럼 터져 나가고, 불길과 재와 용암이 분출했다. 섬의 서쪽은 크게 솟아오르고, 그 대신 동쪽은 우묵하게 빠져들어 갔다. 그 빠져 들어간 곳으로 바닷물이 무섭게 빠른 흐름으로 세차게 몰려든다. 그리고 아직도 뜨거운 땅에 바닷물이 철썩거리며 부딪칠 때마다 수증기가 되어 하늘 높이 뿜어 오르는 것이었다.
이윽고, 해가 중전에 높이 솟아 올라올 무렵, 지진과 분화와 홍수는 끝났다. 수증기의 안개가 피어오른 후의 올린 시에는 생물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4킬로나 떨어진 바다에 검게 타 버린 시체의 일부가 쓸쓸하게 파도에 씻기면서 떠 있었다. 마치 이곳에 생명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증거라도 되는 것처럼……
 
새로운 생활에의 출발
 
타임 머신은 다시 번들번들 빛나는 유령처럼, 강철과 돌의 건물이 솟아오른 문명의 절정기에 있는 뉴욕 시의 상공을 날고 있었다. 북쪽을 향하여 공간을 이동하면서, 동시에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이 짧은 여행은 아질라와 데이에게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여행이었다.
저 큰 이변이 있은 뒤에 그들은 한 주일쯤 더 앵글리즈 시에 머물렀다. 섬의 서쪽 끝은 모두 바닷물 속에 잠겨 버리고, 트로오와 그가 거느리는 노스인들, 알란인들, 국왕은 모두 죽었다. 앵글리즈 시에서는 새로운 정부가 조직되고 모그루드를 수뇌로 하는 바스인들의 민주 정부가 설립되었다.
로저스는 하루 속히 뉴욕에 있는 릴다에게로 돌아가고 싶어하였으며, 고아가 되어 버린 아질라와 데이에게도 이곳에 머물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프레이즈형 타임 머신은 이곳에 왔던 때와 같이 조용히 출발하게 된 것이다.
만원인 캐빈은 활기에 넘치고, 사람들은 명랑하게 떠들면서 타임 트래블러 계기의 지침이 목표하는 시간 세계의 눈금에 이르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좌석에는 로트와 아질라가 앉아서 창문 밖을 내려다보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모그루드는 꼭 훌륭한 지도자가 될 거예요."
아질라가 말했다.
"아버지는 조금 엄격하셨는지는 몰라도 언제나 공명정대 하셨죠."
아질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로트는 아질라의 손틀 부드럽게 잡았다.
"잘 알고 있어요, 저도. 그렇지만 그렇게 슬퍼만 해서는 안 돼요. 아버지께선 모든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거니까요……"
"아버지는요……"
아질라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내게 하셨죠. 잠시 동안 이별이다, 라고요……"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지. 나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로트는 부드럽게 아질라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버지는 언젠가 아질라와 데이를 꼭 만날 수 있다고 믿고 계셨던 거예요. 그리고, 나도 이렇게 아질라의 옆에 있으니까…… 그렇겠군. 나는 죽을 때까지 아질라의 오빠가 되어 줄 테니까."
"고마와요, 로트."
아질라는 행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로저스는 조지와 데이와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타임 머신의 엔진의 상태를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이는 타임 머신의 아래에 벌어지고 있는 경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익은 대도시가 보고 있는 사이에 시간의 흐름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데이는 얼굴을 들고 조지에게 말을 건넨다.
"지금 가려고 하는, 아저씨들이 살고 있는 나라도 저 사라져 가는 도시처럼 대도시인가요?"
"아무래도 저만큼은 크지 않지……"
조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나도 최고로 훌륭한 도시라 생각하고 자랑도 했지만, 지금은 다르지…… 데이를 알게 되고 또 데이와 함께 여러 가지 일을 체험하는 가운데 생각이 달라진 거야…… 조금은 어른이 된 셈이지."
그리운 현대의 시간 세계로 돌아오고 있는 타임 머신은 점점 더 시간 이동의 속도를 올려서 마침내 최고 절정에 달했다. 눈 아래 벌어지는 풍경의 변화가 맹렬하게 빨라지면서, 세밀한 부분의 변화는 흐릿한 안개 같은 빛깔 속에 섞여 버리고, 전체의 정경도 분명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대충은 분간할 수가 있었다. 센트랄 공원의 남쪽을 둘러싼 거대한 건물들은 점점 줄어들어서 나무들과 시냇물에 자리를 내어 주고있었다.
조지는 타임 트래블러 계기를 보고 외쳤다.
"이제 백 년 남았다! 백 년만 더 돌아가면 우리가 사는 20세기다!"
조지는 프로톤의 흐름을 약하게 하여 점점 시간 속도를 떨어뜨렸다. 눈이 내린 풍경의 공원은 전 해의 여름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다시금 나무들의 푸르름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조금 지나서 낮과 밤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태양은 서쪽으로부터 떠올라서 하늘을 재빨리 날아 동쪽으로 져 간다.
봄이 되었다. 그리고 또 거꾸로 돌아가서 겨울이 되었다.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에 흰 눈이 쌓였다고 생각할 사이도 없이 근방이 갑자기 가을의 단풍 빛깔로 바뀌었다. 겨울에서 가을의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로저스는 주의 깊게 미터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번 더 여름이 되었다. 그리고 봄…… 이윽고 짧은 밤의 어두움이 타임 머신을 둘러싸고 있을 때 로저스는 공간 이동 장치의 스위치를 넣었다. 타임 머신은 천천히 남쪽으로 흘러간다. 어렴풋이 빛나는 별이 흐릿한 하늘을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뉴욕의 시가지에서 불빛이 누렇게 빛나고 있다.
밤하늘을 천천히 남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타임 머신 앞쪽의 빌딩 사이로 사이언스 클럽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로저스는 찰깍 하고 시간 이동 장치의 스위치를 눌러 멈추었다.
 
3월의 어느 날 밤.
벙커즈 공원에 있는 로저스의 집 넓은 방에는 낯익은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만찬회가 방금 끝나고 웨이터는 커피를 끓이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담배에 붙을 붙였다.
여자가 한 사람, 남자는 네 사람. 모두 야회복으로 정장하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들의 말소리에 섞여 피아노의 아름답고 맑은 운율이 들려왔다. 피아노는 정밀하고 교묘한 무늬를 아로새긴 마호가니 빛의 그랜드 피아노로, 안방에 놓여 있었다. 피아노를 치고 있는 사람은 턱시도 차림의 조지였다. 데이는 피아노에 몸을 기대어 서 있다. 피아노의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 데이는 참으로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악보를 살펴보고, 건반 위에서 춤을 추는 조지와 손가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윽고 데이는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조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난로 앞에 놓여 있는 긴 의자에는 로트와 아질라가 앉아 있었다. 오늘밤의 아질라는 황금의 실타래 같은 머리카락에 검은 조화를 달고 있었다. 이것은 아질라가 살고 있던 세계에서 죽은 사람에 대한 슬픔을 나타내는 상장이었다. 젖빛에 가까운 흰 목덜미가 드러나 보이는 넓게 패인 이브닝 드레스의 하늘빛이 눈동자에 반사되고 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난로 속의 장작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고 있던 아질라가 로트에게 말을 건넨다.
"참 좋은 곡이에요. 전 이런 큰 악기(그래요, 피아노라고 하셨죠)를 칠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해 봤어요."
"저것은 쇼팽이지. 조지는 쇼팽의 곡을 잘 치거든. 그렇지. 아질라에게는 좀더 많은 작곡가의 음악을, 좀더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로 들려주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오페라도요. 그리고 극장에도 데리고 가 주신다고 약속하셨죠!"
"물론이지, 데리고 가고 말고. 아질라가 보아야 한 것은 참으로 많고 많아요. 어쨌든, 지금까지 본 일도 없었던 새로운 세계에서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니까."
"그래요. 새로운 세계에서 새로운 생활…… 벌써 시작되고 있는 것이죠."
"지하철도 타보지 않으면 안 되겠지! 틀림없이 깜짝 놀랄 거야."
그러나 아질라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지하철은 말만 들어도 치가 떨려요. 저 동굴의 무서운 일들이 생각나서 탈 마음이 없어요."
넓은 방에서는 실업가와 의사와 은행가가 로저스로부터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있었다.
"그 트로오와 노스들은 올린에 있는 동굴에 살고 있었겠지? 좀더 조리 있게 얘기해 주지 않겠나? 아무래도 자네 얘기는 간혹 가다 건너 뛰는 데가 있어 자세하지가 못하단 말야……
은행가가 까다로운 주문을 하고 있다.
창문 밖으로부터는 호들갑스러운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와 함께 20세기 뉴욕 시의 시끄러운 소음이 거침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끝>
 
작품 해설
 
시간 여행의 문제점
 
시간 여행은 이론상으로는 확실히 가능하지만, 만약 이것이 실현되면 곤란한 문제들이 있다.
첫째 문제는, '타임 패러독스(시간 역설)'라고 불리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타임 머신을 타고 과거의 태곳적 세계에 갔다고 하자. 공룡이 설치는 원시림을 걷고 있을 때, 잘못하여 작은 벌레를 밟아 죽였다고 하자. 그런데 그 벌레는 수천 년 동안에 진화해서 젖먹이동물이 되고, 원숭이가 되고, 사람이 되어서 우리의 조상이 될 운명에 놓인 것이었다면……? 그 벌레가 죽으면 우리의 조상은 이 세상에 나타나게 않고, 조상이 없으면 우리는 태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떻게 될까? 벌레를 밟아 죽일 찰나 연기 같이 사라지고 말까? 그렇지 않으면 현재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말 것인가?
둘째 문제는, 시간 여행으로 미래 세계와 과거 세계에 갔을 때 실체화된 타임 머신과 이미 그곳에 존재하고있는 물질이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는 이 "280세기의 세계"에서 논의되는 것 같이 빌딩 옥상에서 출발한 타임 머신이 다른 시간 세계에 도달했을 때, 그 빌딩이 없어지고 만다면, 타임머신은 지상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반대로 지면이 솟아올라 산이 된 곳을 공중이라고 생각하고 타임 머신을 내린다면 산과 충돌하여 파괴되고 말 것이다. 혹은 타임 머신 자체 내부의 물질의 원자와, 도착된 시간 세계의 물질의 원자가 충돌하여, 원자핵 반응을 일으켜 무서운 대폭발을 일으킬 위험도 있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려면 사람이 직접 타임 머신을 타고 다른 세계에 갈 것이 아니라, 카메라와 광선 등의 특수 장치를 이용하여 미래와 과거를 들여다보는 방편을 취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무서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시간 여행을 하면 타임 머신 내부는 보통 시간이 경과하고, 머신 외부 시간은 빨리 경과되어, 그 차이로 머신 안에 있는 사람이 미래 세계에 간다. 그러나 만약 조작을 잘못하던가, 시간 이동 장치가 고장이 나면, 외부의 시간은 그대로 있고 머신 내부의 시간은 빨리 경과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큰일인 것이다.
예를 들면, 시간 여행가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타임 머신을 타고 출발…… 그런데 아무리 지켜보아도 타임 머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얼마 후 찰칵 소리가 나며 머신 문이 열리고, 늙어 쇠약한 노인으로 변한 시간 여행가가 비틀거리며 나온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 작품 속의 타임 머신은 헬리콥터를 개조한 형태인데, 시간 이동이 시작되면 기체가 맹렬히 진동하고, 번쩍번쩍 빛나는 유령 같이 되어 외부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들 중에 비행 접시를 본 사람은 없는가? '비행 접시는 타임 머신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광채가 났다가 꺼졌다가, 갑자기 모습을 나타내는 비행 접시는 어쩌면 미래인이 타고 올 타임 머신인지도 모른다.
 
280 세기의 세계
아이디어회관 과학 문고
SF 세계 명작 40
 
초 판      1976년 11월 20일
재 판      1977년 3월 1일
역 자      김 항식
조 판      크리스찬 신문사
오프셋 인쇄 장원 정판사
활판 인쇄   삼정 인쇄소
제 본      영지 제책사
발행인     박 훈
발행처     아이디어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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