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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 판매 주식회사 IMMORTALITY 로버트 세클리 ROBERT SHECKLEY 지음
2023년 08월 23일 13시 25분  조회:169  추천:0  작성자: 강려
불사 판매 주식회사
IMMORTALITY
 
로버트 세클리 ROBERT SHECKLEY 지음
 
로버트 세클리
1928년 미국 태생.
독특한 스타일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우주시민} {지구순례} {로봇 문명} 등
 
◎ 편집 위원
아동문학가 이원수․박홍근 / 문학박사 최인학
공학박사 양옥룡 / 이학박사 김희규
전교육감 김성묵
 
 
<차 례>
 
충 돌······················ 5
미래에 살아나다················· 9
렉스 동력 회사················· 15
계획 중지··················· 19
22세기의 세상················· 23
유 괴····················· 31
네 차례다··················· 38
래리 사장··················· 43
좀 비····················· 47
자신을 갖고·················· 56
친구와의 재회················· 60
영혼 교환국·················· 69
광검사····················· 78
사냥꾼들···················· 86
달라붙는 좀비················· 93
전투의 아침·················· 98
결 투····················· 105
요동하는 유령················· 112
지하세계··················· 118
무덤 속에서·················· 125
수상한 여인·················· 131
내세보험··················· 136
음 모····················· 143
막다른 골목·················· 151
추 방····················· 159
탈 출····················· 165
몸과 마음··················· 170
마음의 여행·················· 178
행복한 생활·················· 187
살인자···················· 190
내세로···················· 198
 
작품 해설··················· 204
 
등장인물
 
토마스 브레인 : 교통 사고로 죽었으나 22세기에 다른 사람의 육체를 빌려 다시 살아난 후 여러 가지 사건을 겪는다. 겨우 마리아와 같이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마리 소온 : 브레인을 22세기로 데려온 아름다운 여자. 브레인을 도와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태평양의 외딴 섬으로 가서 그와 같이 산다. 그리고 끝내 그를 따라…….
레이 멜힐 : 22세기에서 브레인이 사귄 친구로 죽은 다음 영혼이 된 후에도 계속 브레인을 도와준다.
스미스 : 브레인을 쫓아다니는 좀비로서 몇 번 브레인의 죽을 고비를 도와준다. 사실은…….
새미 존스 : 유능한 사냥꾼으로 브레인과 파트너가 되자고 한다. 브레인을 좋아해서 브레인이 사냥감이 되었을 때 눈감아 준다.
찰스 헐 : 브레인이 22세기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가한 사냥의 사냥감으로 내세 보험에 가입한 사람. 브레인의 총검술에 관심을 표한다.
 
 
충 돌
 
한밤중의 고속도로는 어디까지나 한없이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토마스 브레인은 계속해서 액셀레이터를 밟는 발에다 힘을 주었다. 스포츠카는 마치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들짐승처럼 낮게 소리를 울리며 더욱 스피드를 올렸다. 속도계는 120킬로미터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겨우 60킬로미터 정도의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어디까지라도 끝없이 달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브레인은 또 다시 우울한 기분에 잠기기 시작했다.
'난 참 쓸모 없는 녀석이야. 왜 좀 더 야심을 갖지 않을까? 왜 좀 더 노력해서 독립하겠다는 생각을 못한단 말인가.'
브레인은 어느 틈엔가 또다시 같은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하고 있었다.
그는 유명한 매티슨 요트회사의 설계기사였다. 그러나 일류 기사가 아니라 말단 기사 중의 한 사람이었다. 일류 기사들이 설계한 여러 종류의 설계도를 스케치하거나 선전 광고의 문안을 만드는 것이 브레인이 하는 주된 일이었다.
"그렇게 싫으면 아예 그만두고 독립하는 건 어때?"
브레인의 한 여자 친구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그럴 때마다 브레인은 언제나 쓴웃음으로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아니, 난 공상가지 실천가는 아니거든. 머리 속에서 공상은 많이 하지만 막상 그걸 실천에 옮기는 것은 아주 딱 질색이란 말씀이야."
"즉, 게으름뱅이라 그 말이군?"
"음, 그럴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난 지금 이 생활에서 무리를 해가면서 뛰쳐나올 생각은 조금도 없어. 충분한 봉급에다 좋은 자동차, 멋진 요트하며, 훌륭한 아파트도 있겠다, 독립하면 그런 호사는 할 수 없거든."
사실 브레인은 마침 그가 빌려 살고 있던 멋진 바다의 별장에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바다의 별장 같은 것은 섣불리 야심을 품고 독립을 하게 되면 지금처럼 쉽게 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저 자동차가 왜 중앙선에 바싹 붙어서 달리지?'
브레인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도로 위에 파란색의 스포츠카가 중앙 분리선에 바싹 붙어서 저편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쪽이 피하지 않으면 정면 충돌할 우려가 있었다. 그는 자동차의 속력을 낮춰야겠다고 생각하고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뗐다. 그러자 그 자동차는 오히려 속력을 내며 중앙 분리선 쪽으로 빨려드는 것처럼 접근해 가는 것이 아닌가?
'이크, 이게 어찌된 노릇이지? 타이어가 터졌나? 아니면 핸들이 고장난 걸까?'
그는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전신의 힘을 다해 반대쪽으로 돌리려고 했지만 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동차는 눈 깜짝할 새에 분리대 콘크리트 벽에 충돌하고 말았다.
찌익 찌 찌 찌익…….
다음 순간 자동차는 맹렬한 기세로 반대편으로 튀어나가 버렸다.
저쪽에서 달려오던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무서운 기세로 다가온다.
‘아아… 나도 마침내 그 어리석은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고 마는구나. 자주 신문과 텔레비전에서 보던 어리석은 자동차 사고를……'
그는 절망감과 동시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핸들을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간에 힘껏 꺾기만 하면 충돌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순간 브레인의 가슴속에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째서 지금 죽어버리려고 하지 않는 거지? 어차피 살아봤자 별 볼일 없는 세상이 아니냐! 차라리 지금 충돌해서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장나는데……. 아픈 것도 괴로운 것도 실망이나 나태한 것도 모조리 끝나고 마는 것이다. 그냥 이대로가 좋지 않으냐!'
상대편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정면에서 번득번득 빛났다.
그 빛 속에 운전하고 있는 젊은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이 뚜렷이 보인다고 생각한 순간 브레인의 자동차는 굉장한 기EMB00000cd0694f세로 그 자동차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몸뚱이가 로켓처럼 앞으로 고꾸라졌다.
핸들이 손에 잡힌 채로 똑 부러졌다.
얼굴이 두꺼운 앞 유리에 부딪쳐 유리가 부서지고 머리가 밖으로 쑥 튀어 나갔다.
핸들의 받침대가 가슴에 부딪쳐 늑골을 부러뜨리고도 모자라 등뼈까지 꺾어버린 것 같았다.
'아아……, 난 죽는구나!'
브레인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의식이 점점 희미해졌다.
 
미래에 살아나다
 
브레인은 문득 눈을 떴다.
새하얀 방, 새하얀 침대, 새하얀 천장.
'여긴 어디지? 난 틀림없이…….'
"살아났습니다."
하고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브레인은 눈동자를 굴렸다.
흰옷을 입은 의사처럼 보이는 두 사람이 그를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수염이 난 자그마한 노인이고 또 한 사람은 얼굴 색이 붉고 뚱뚱하게 살이 찐 남자였다.
"이름은?"
하고 얼굴 색이 붉고 뚱뚱한 남자가 물었다.
"토마스 브레인."
"나이는?"
"서른 두 살."
브레인은 기계적으로 대답하고 나서 상대방에게 되물었다.
"여긴 대체 어딥니까? 난 대체 어떻게 된……"
그러나 그는 브레인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고 늙은 의사를 돌아보고 말했다.
"어떻습니까? 환자를 좀 보세요. 아주 정상적입니다."
늙은 의사는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군."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죽음의 충격을 지나치게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게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한 겁니다!"
"브레인 씨, 기분이 어떻소?"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대체 난 어떻게 된……"
"되살아났고 더욱이 정신도 말짱하고 건강합니다. 이것으로 저의 연구를 인정해주시겠지요?"
"음, 그럴 수밖에 없겠지……."
두 사람은 브레인을 그냥 둔 채 나가버렸다.
거기에 사람 좋아 보이는 간호사가 와서 무엇인가 약 같은 것을 내밀었다.
"자아, 이걸 드세요. 기운이 나실 겁니다."
"난 어떻게 된 겁니까? 가르쳐 주세요. 여긴 병원이죠?"
"아직 질문은 일체 받지 않습니다. 의사선생님의 지시이십니다. 조금 더 건강이 회복되면 대답해 드리지요."
하고 말하더니 간호사는 나가버렸다.
뭐가 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수염이 난 의사가 이번에는 젊은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선생님, 이젠 인터뷰를 해도 괜찮겠지요?"
"물론. 하지만 무슨 말을 할 지는 보장할 수 없어요. 어쨌든 지금 막 되살아났으니까요."
"잘 알겠습니다."
젊은 여자가 브레인에게 다가왔다. 아주 예쁜, 눈이며 코가 또렷한 미인이었다. 그런데 그 표정에는 어딘가 인형 같은 데가 있었다. 아름답지만 만들어진 물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뵙겠어요, 브레인 씨. 전 마리 소온입니다."
"아, 처음 뵙습니다."
브레인도 대답했다.
"브레인 씨는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병원 같군요."
그때 브레인은 마리가 조그만 마이크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주위에 서너 명의 사나이들이 다가와 텔레비전 카메라 같은 것을 설치하는 것을 보자 브레인은 화가 났다.
"이게 뭐요?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요?"
"당신을 구해주고 싶어서요."
"구해준다고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 사고를 기억하고 계시죠?"
"사고? 무슨 사고란 말이오?"
"당신은 부상당한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순간 브레인은 그 눈부신 헤드라이트의 빛과 폭발하는 엔진 소리를, 그리고 그 무섭던 충돌 사고를 생각해냈다.
"아, 생각났습니다. 반대쪽에서 온 자동차하고 정면충돌해서 핸들이 부러지고 그게 가슴에 박히고 그리고……?"
그는 몸을 떨었다.
"당신 가슴을 좀 보세요."
마리의 말에 그는 그때 비로소 자기의 가슴을 보았다. 벌어진 파자마 밑으로 보이는 가슴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설마! 이런 일이?"
그는 저도 모르게 외쳤다.
"응, 이건 제법인데!"
"오오, 박력이 있어 좋았어!"
주위의 사내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브레인에게는 그 말소리들이 파리 소리 정도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머리 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헝클어지고 얽혀져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죽어가고 있었는데……. 아니 난 확실히 죽었다!"
"멋지군! 모든 사람이 이 장면을 보면 얼마나 큰 소동이 벌어질까!"
EMB00000cd06950"야, 정말 멋있다!"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 역력히 나타나 있거든!"
주위의 사내들이 계속해서 수런대고 있었다. 마리는 거울을 집어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자, 당신의 얼굴을 좀 보세요."
브레인은 거울을 보았다. 순간 그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보고 있었다.
"이, 이건, 이것은…… 내 얼굴이 아니야! 이건 내 몸이 아니다!"
그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까지도 자기의 목소리가 아니었음을 그는 문득 알아차렸다.
"난 어떻게 되었지? 말 좀 해 줘. 내 얼굴, 내 몸을 어디다 버렸어?"
마리의 아름다운 얼굴이 다가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당신의 몸은 죽어 버렸어요, 브레인 씨. 자동차사고로 엉망진창이 되어서 죽어 버렸거든요. 하지만 우리들은 당신의 가장 중요한 부분, 즉 영혼을 구출해 낸 거랍니다. 그래서 새로운 몸 속에 이식했답니다. 아시겠어요?"
브레인은 묵묵히 마리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가 뭔지 또다시 알쏭달쏭해졌다.
'몸은 죽었는데 영혼만 구조를 받아 그것이 또한 새로운 육체 속에 되살아났다. 그런 일들이 정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런 엉터리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아마 정신이 어떻게 이상해진 모양이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브레인은 생각했다.
"믿을 수 없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지금은 2115년입니다. 당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수많은 일들이 실현되고 있답니다."
마리가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있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큰소리로 엉엉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가 귀찮았다.
슬프고 괴롭고 무의미하였다.
그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진정제를 놔라!"
누군가가 말했다.
가슴에 따끔하게 느꼈다고 생각하자 금방 눈앞이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빠져들어 갔다.
 
렉스 동력 회사
 
길고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 브레인은 눈을 떴다.
그리고 아주 기분이 착 가라앉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교통사고로 죽어 150년 후의 미래의 세상에 되살아났다. 그것이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꿈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는 문득 자기가 죽었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았다.
'친구들은 나를 위해 슬피 울어줬을까? 아니면 곧 잊어버렸을까?'
울었을지도 모르고 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친구들도 지금은 이미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혼자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이 22세기의 세상에!
대체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물론 원자력 따위는 극히 평범한 것이 되어 있을 것이고, 해저 목장이라든가 행성간의 여행도 아무나 할 수 있게 되어 있을 것이다. 세계 정부도 세워지고 세계 평화도 실현되어 있으리라.
아니 어쩌면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독재자가 나타나 온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며, 지구는 수폭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을 지도 알 수 없다.
하여튼 빨리 이곳을 나가 자기의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때 마리가 들어 왔다.
"잘 잤어요? 기분은 좀 어때요?"
"아주 좋소. 정말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오. 하긴 사실 다시 되살아난 것이 분명하지만……."
말을 하면서 브레인은 마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서 나를 구해냈소? 누가 구해 준거요? 당신이오?"
"우리들, 즉 렉스 동력회사가 했죠."
"원자력 회사인가요?"
"더욱 발달된 것, 말하자면 원자력 다음의 동력 말이죠. 원자력은 질과 양이 에너지로 바뀐다는 이론에서 생겨난 것이지요. 지금은 우리 렉스 동력회사의 새로운 동력이 우주선이며 도시나 시간 여행의 동력으로 사용되고 있답니다."
"시간 여행이라고요? 그런 것이 벌써 실현 되었나요?"
"예, 물론이죠. 당신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시간여행의 방법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걸 좀 더 자세히 말해 주시겠소?"
그러는 사이에 몇 명의 사내들이 불쑥 들어왔다.
한 청년이 포스터를 높이 치켜들고 말했다.
"미스 소온, 미술부에서 이걸 당신보고 봐 달라고 하는데요."
포스터에는 20세기 시대의 자동차가 충돌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손이 하늘에서 뻗쳐 내려와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채 불에 타고 있는 자동차에서 운전사를 끄집어내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 그림 위에는 '렉스 동력회사의 대사업'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잘 됐어요. 빨간색을 좀더 짙게 하라고 하세요." 하고 마리가 말했다.
다른 사내들은 사진을 찍거나 마이크며 녹화 장치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브레인의 존재 따위는 조금도 흥미가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만둬! 다들 썩 나가지 못해!"
브레인은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마리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브레인을 바라보더니 그 남자들 중의 한 사람을 향해 말했다.
"에드 씨, 잘 설명해 주세요."
에드라는 뚱뚱한 남자는 브레인의 침대 곁으로 다가와 진지한 말씨로 말하기 시작했다.
"브레인 씨, 당신 목숨을 구해낸 것은 우리들이란 말입니다. 아시겠소?"
"그렇다고 함부로 이렇게 하라는 법은 없지 않소!"
"잠깐만, 제 말을 잘 들어보시오. 우리들은 꼭 당신을 구출해 낼 필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걸 막대한 비용과 노력과 시간을 들여 구해냈단 말입니다. 그게 모두 선전을 위한 것이죠."
"선전? 무슨 선전이오?"
"물론 렉스 동력 회사를 위한 선전이죠. 당신은 그것 때문에 구조를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일을 세상에 선전하고자 하오. 당신도 죽는 것보다는 그편이 훨씬 좋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듣자 브레인은 그만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협력해 주시오."
"그야 하죠. 그렇지만 너무 급해요. 난 아직 기분이 그렇지가 못하단 말이오."
"당신의 그 기분 잘 이해합니다. 또한 동정도 하고요. 그렇지만 뉴스라는 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게 아닙니까? 늦으면 아무런 가치도 없어지고 마는 걸요."
"잘 알았소. 협력하죠."
"그러면 지금부터 소온 씨의 인터뷰에 잘 대답해주십시오."
"좋습니다."
브레인은 내키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동의했다.
"지금부터 1988년에서 구출된 사람과의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마리가 마이크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1958년입니다."
브레인이 정정했다.
"1958년에 자동차 사고로 즉사한 브레인 씨를 50년이란 세월을 뛰어 넘어 구출해 낸 우리 렉스 동력회사의 훌륭한 업적은……."
마리는 술술 거침없이, 또한 감정을 조금도 개입시키는 일도 없이 말해 나갔다. 브레인은 차츰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죽음을, 그리고 재생을 이렇게 제멋대로 이용한다는 일 자체가 그에게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계획 중지
 
마리는 본사에 보고하러 간다고 나가 버렸다.
그후 턱수염의 의사가 그를 진찰하고 나서 이제는 완전히 정상적인 건강 상태라고 말했다.
브레인은 점심을 끝내고 목욕탕으로 들어가 자기의 새 몸을 자세히 조사해 보았다.
예전의 브레인은 훤칠한 키에 운동 신경이 잘 발달된 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육체는 그와 정반대였다. 키는 작달막한데다가 울퉁불퉁한 근육이며 아주 탄탄한 몸집이었다. 짧은 다리, 한 방에 황소도 때려눕힐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주먹,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몸이었다.
게다가 왼쪽 어깨에 길고 참혹한 상처가 있었다. 그것은 칼이나 창 같은 것으로 베인 것 같은 상처였다.
'이 육체의 주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 상처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얻은 것일까? 어쩌면 이 머리 속에는 아직 그전의 주인이 남아서 나를 내쫓아 버리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나 아닌지…….'
그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 또한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광대뼈가 툭 불거지고 커다란 유태인 코에 턱이 삐죽 나온 네모진 얼굴. 거기에 머리칼은 꼬불꼬불한 갈색이고, 눈빛은 파랗고……. 한 마디로 말해서 어딘가 잔인하고 무표정하며 교양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마음에 드는 데라곤 조금도 없군."
브레인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어디 공사장의 인부가 아니면 정글 탐험가나 심술난 십장이라면 제격이겠구먼. 나 같은 사람에겐 전혀 어울리지가 않잖아!"
하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거울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좋다. 너와 나 어느 쪽이 이기나 지금부터 싸움이다. 이제 봐라. 반드시 내가 승리하고 말 테니까."
옷을 막 갈아입었을 때 마리가 들어왔다.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몹시 침착하지 못하고 신경질EMB00000cd06951적이었다.
"이젠 모두 끝장이 났어!"
마리는 내뱉듯이 말을 했다.
"뭐가 끝장이 났단 말이오?"
"모두가 말이에요!"
마리는 방안을 빙빙 돌며 말했다.
"당신 선전 계획이 전부 중지되어 버렸단 말이에요."
"호오?"
"전 꼭 2년 동안을 이 계획에다 모든 정력을 쏟아왔었단 말이에요. 회사도 당신을 구출해 내는데 수백만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을 썼죠. 그래서 지금 막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그놈의 늙은이가 전부 그만두라고 하잖아요."
"그 늙은이란 누구요?"
"래리 사장이죠, 뭐."
"사장이 왜 그처럼 오랫동안 계획해서 해 오던 일을 중지하라고 한단 말이오?"
"당신을 20세기에서 멋대로 끌어낸 일이 법률에 위반이 될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사장님은 당신의 재생 시기가 거의 다 되어가기 때문에 구태여 법률 문제로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은 것이죠. 게다가 사장님의 할아버지도 반대하시니까……."
"잠깐만, 그 재생이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이오?"
"물론 글자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을 말하죠."
마리는 마치 당연한 이야기를 하듯이 말했다.
"정말 그 사장님의 할아버진 요사이 아주 시끄러워 죽을 지경이라니까."
"사장님의 할아버지라는 분은 굉장한 연세겠군요?"
"아뇨. 죽었을 때가 여든 한 살이었으니까 좀 일찍 죽은 편이었죠."
"죽다니?"
"그러니까 약 60년 전쯤이에요. 사장님 아버님도 약 20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그 분은 아마 백 살 쯤 이었을 거예요."
"잠깐만, 난 통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군요. 60년 전에 죽은 사람하고 어떻게 말을 할 수 있소?"
마리는 아무 말 없이 잠시 동안 브레인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깜빡 잊고 있었군요. 당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하고 말하더니 갑자기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문 앞에 멈춰 브레인을 뒤돌아보며,
"브레인 씨, 당신은 이제 자유의 몸이에요. 여기서 당신 마음대로 나가셔도 좋답니다."
하고 말을 마치자 무엇을 물어볼 틈도 없이 재빨리 나가 버리고 말았다.
브레인도 잠시 후 방을 나왔다. 긴 통로 끝에 출구가 있었다.
거기에 수위가 서 있었다.
"여기서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나가도 좋습니까?"
"예? 아아, 나가셔도 좋습니다."
수위가 문을 열어 주었다.
브레인은 문에서 밖으로, 즉 미지의 22세기의 세상으로 걸어 나갔다.
돈도 상식도 친구나 직업도 그리고 살아갈 집도 없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딴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동서남북도 모르는 브레인이 새로운 세상으로 걸어나갔던 것이다.
 
22세기의 세상
 
22세기의 뉴욕은 마치 옛 동화에 나오는 꿈속의 도시 같았다.
흰색과 파란색의 타일로 만든 둥근 지붕 모양의 궁전이며 이슬람교의 사원처럼 끝이 뾰족한 탑, 그런가 하면 짙은 빛깔로 얼룩진 중국풍의 돔이 즐비하게 서 있어서 옛날의 뉴욕의 모습은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리에는 소형차가 많이 달리고 있었다. 오토바이며 스쿠터며 소형차뿐이었다. 추측컨대 인구과잉과 대기오염에 대한 대책이리라. 교통은 하늘에까지 뻗어 있었다.
제트 헬리콥터, 헬리콥터 트럭, 헬리콥터 택시, 에어버스, 일인승의 자이로콥터 등이 무수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설계가 되어 있는지……. 아마 절대로 충돌하지 않는 전파 유도 장치라도 되어 있는 모양이겠지.
실로 멋지게 올라가고 내려오고 때로는 살짝 스쳐 가는 것이었다.
어디든지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틀림없이 뉴욕의 인구가 2천만 명 아니면 3천만 명 정도가 되리라.
멈칫거릴 수도 없었다. 보도에는 사람들이 넘쳐흘러 천천히 거닐면 사람들에게 밀리고 채이고 욕설을 들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쉴 수 있는 공원이나 광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 더 앞으로 가니까 어떤 행렬이 있었다. 그 행렬은 천천히 앞으로 전진해 오고 있었다.
그는 앞에 서 있던 사람에게 저 행렬이 도대체 무슨 행렬이냐고 물어 보았다.
"아니 그것도 몰라요? 자살 지망자 사무실로 가는 건데……."
브레인은 황급히 행렬에서 물러났다.
'자살 지망자가 줄을 서다니……. 대체 이놈의 세상은 어떻게 되어 버린 걸까?'
그는 주위의 모습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걸어갔다. 조금 걷노라니까 거대한 성처럼 보이는 건물이 눈에 띄었다.
브레인은 지나가는 행인에게 물어 보았다.
"이 빌딩은 뭘 하는 곳입니까?"
"불사판매주식회사의 본사입니다."
그 남자는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달리 쫓기는 것처럼 초조한 모습이 아니었다.
무섭게 바싹 마른 키 큰 남자였는데 볕에 그을린 긴 얼굴 속에서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은 날카로운 눈이 빛나고 있었다.
"굉장하군!"
"아, 당신은 뉴욕 사람이 아니로군요."
브레인은 그렇다는 뜻으로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실은 나도 그렇소만……. 애리조나의 촌구석에서 올라왔지만 그래도 이 빌딩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는데, 당신도 무척 먼 곳에서 온 모양이구려."
브레인은 정직하게 말을 할까하고 망설였지만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브라질에서 왔소. 아마존 상류의 고무농장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뉴욕 구경을 하러 왔답니다."
"아아, 그러셨군요."
남자는 납득이 간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우린 서로 촌놈끼리니 터놓고 지냅시다. 내 이름은 칼 요크요. 어디 함께 구경이나 다녀 봅시다."
"잘 됐군요."
브레인도 자기 이름을 말했다.
두 사람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어디 들러서 한잔했으면 좋겠는걸."
"음, 좋지."
그렇게 대답한 순간 브레인은 자기가 돈이 없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아아, 요크 씨! 그만 깜빡 잊고 돈을 호텔에 두고 온 모양인데……."
그가 어물어물 변명을 하자 요크는 그 날카로운 눈으로 브레인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브레인 씨, 이래 뵈도 내가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데는 귀신이라오. 당신이 돈이 없다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소. 오늘 내가 한 턱 톡톡히 내겠소."
"그럼 너무 미안하지 않소. 게다가 난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는 사람이오."
"세상에 별걸 갖고 다 신경 쓰시네. 맘 턱 놓고 함께 갑시다. 자, 어서."
요크는 자기 맘대로 결정하고는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브레인은 요크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그도 빨리 이 22세기의 뉴욕의 이모저모를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우선 화성타운으로 갔다. 그곳은 옛날의 차이나타운이었다.
그들은 화성 요리점 '빨간 화성'으로 들어갔다.
어떤 요리가 들어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그건 중국 요리와 똑같은 고기와 야채 요리였다.
"아니 이건 중국요리 아니요?"
그러자 요크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그럴 테지. 최초로 화성이 이주한 건 중국사람들이니까. 그건 아마 1997년이었지. 그러니까 화성식 중국 요리를 화성 요리라고 한다네."
화성 요리는 무척 맛이 있었다.
식사 끝나자 헬리콥터 택시를 타고 '그린 클럽'이라는 고급 카바레로 갔다. 거기가 요크의 고향 사람들이 꼭 구경하고 오라고 하던 곳이라고 했다.
그곳은 식물 쇼가 굉장한 구경거리라는 소문이 나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방 한가운데에 있는 유리상자 가까이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유리 상자 속에는 배양액 속에 잠긴 정글의 모형이 있었다. 그 정글에 돋아나 있는 식물은 이 지상의 어느 곳에도 없는 이상한 식물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선 식물이 쉴새 없이 쑥쑥 자라고 있는 것이었다. 조그만 씨앗이 보고 있는 사이에 싹이 나더니 잎이 나고 넝쿨이 뻗었는가 하면 뭉텅한 양치류 같은 식물이 되어 징그러울 정도로 커다란 꽃이 핀다.
녹색 버섯이며 얼룩진 풀들이 눈 깜짝할 새에 허깨비처럼 커진다. 그리고 성장이 끝나면 열매를 맺고 다시 시들어버리는 것이었다. 그 열매가 또다시 쑥쑥 자라나지만 어느 것 한가지도 똑같은 식물은 되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에 순응한 새로운 식물로 차례차례로 변해 가는 것이었다.
또한 식물끼리가 서로 처절한 생존 경쟁을 벌일 때도 있다. 그래서 싸움에 진 식물은 멸망하고 승리한 식물이 유리 상자 전체를 지배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동안이고 금세 또 새로운 식물에 의해 정복되어 버린다.
브레인은 숨을 죽이고 이 멋진 생명의 쇼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재미있고 신기한 구경거리로군. 생물학 연구소에서 식물의 성장 속도를 수백 배로 빠르게 했거든. 그래서 사실은 몇 십 년 사이의 식물의 형태가 단 2, 3분 동안에 볼 수 있게 된 거라네."
요크의 설명이었다.
두 사람은 그곳을 나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어느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노라니까 레인 코트를 입은 눈매가 사나운 사내가 다가왔다.
"아저씨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는 뎁쇼."
"그래 그게 어쨌단 말이야?"
요크가 되물었다.
"난 '조'라고 하는데 이 근처에선 조금 유명한 편이죠. 헤헤……. 당신네들 이식 게임 안 하시겠습니까요?"
요크와 조가 서로 눈치를 보고는 브레인을 바라보았다.
"여보시오, 농담도 잘 하시네요. 이식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난 촌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업신여기면 참을 수 없어."
브레인은 커다란 주먹을 조의 코앞에 내밀었다.
조는 멈칫멈칫 뒤로 물러서며 속삭였다.
"그렇게 화낼 건 없잖아요. 이식 게임이란 건 새로 나온 게임인데, 즉 말하자면 내가 아닌 딴 사람이나 동물에 옮겨가 즐긴다 이 말씀이지요. 이건 꼭 한번쯤 맛볼 만 하죠. 더욱이 살아가는 게 시큰둥할 때라든가, 아니면 좀더 스릴 있는 생활을 맛보고 싶을 때라든가 말씀이야. 그건 그렇다 치고 당신에게는 뭐가 좋을까? 그렇지! 개나 아니면 말 같은 게……."
"이 자식이! 썩 나가지 못해. 안 나가면 목을 꺾어 버릴 테다."
브레인은 갑자기 고함치는 것과 동시에 조의 목을 움켜잡았다.
조는 간신히 브레인의 손을 떼어내고 뒷걸음질치며,
"알았어요, 알았어. 나가면 되잖아요."
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꽁무니를 뺐다.
"참 쓸개빠진 놈이군. 자아, 기분이나 풀게 술이나 합시다."
요크의 말에 두 사람은 술을 마셨다.
한 잔 두 잔 마시다가 문득 브레인은 술맛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상한데……?'
하고 생각하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도무지 허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눈은 몽롱한 것이 꼭 안개가 낀 듯이 사물이 잘 보이지가 않는다. 정면에서 요크가 지그시 그를 쏘아보고 있다.
"어떻게 됐습니까?"
하고 종업원이 와서 물었다.
"아, 아니오. 술이 좀 지나친 모양이오. 내가 호텔까지 바래다 줄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소."
하고 요크가 대답했다.
'이상한데? 요크는 내 호텔 같은 걸 알지 못할 텐데. 아니지, 난 돌아갈 호텔조차 없는 걸. 그런데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걸 보니 이 요크라는 사람은 도대체……?'
그렇게 생각했을 때 비로소 브레인은 자기가 마취제가 들어간 술을 먹게 된 것을 알았다.
'어째서? 대체 이 사내는 왜 나 같은 걸…….'
그러나 그는 그 다음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머리 속이 갑자기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고 느끼자 의식이 완전히 멀어져 갔기 때문이었다.
 
유 괴
 
의식이 되살아난 브레인은 자기가 어두컴컴한 작은 방의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을 알았다.
가구도 문도 창문도 없는 감옥과 같은 방이었다.
브레인은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금방 굉장한 현기증을 느끼고 곧 옆으로 눕지 않을 수 없었다.
"침착해야지. 그 마취약에서 깨어나려면 아직은 시간이 좀 일러."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니 방 한 구석에 반바지만 입은 한 사내가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브레인도 그 사내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앉아 심한 현기증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이건 어떻게 된 거죠?"
"멋지게 속아넘어간 걸세, 나처럼. 여기선 절대로 도망칠 수가 없어. 단념하는 게 좋을 걸세."
"그렇지만, 왜 나 같은 놈을 유괴했을까? 돈도 아무 것도 없는데……."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놈들이 원하는 게 우리들의 육체라는 것쯤은 이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냐."
"우리들의 육체?“
"물론이지. 육체가 나무에 돋아난 것도 아닐 테고, 흙에서 파낼 수도 없거든. 자살 지망자도 적으니 어디서든 주워와야 하잖나 말일세."
그 사내는 계속 떠들어대지만 브레인은 무슨 영문인지 통 알 수 없었다.
"하여튼 우린 불쌍한 포로 동지가 됐으니 서로 이름이나 알고 지냅시다. 난 레이 멜힐이오. 우주선 브레멘 호의 비행사였소."
브레인도 자기 이름을 대고 어떻게 해서 이곳에 끌려오게 됐느냐고 물었다.
"정신이 나갔었지. 소행성대를 석 달 동안이나 날아다니다가 오래간만에 지구로 돌아온 축하가 좀 지나쳤지. 아주 취해 버렸소. 정신 차리고 보니 여기 계시더라 이거요."
멜힐이 브레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 이번엔 그쪽 차례요."
브레인은 잠시 생각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내 이야기는 좀 길지요. 하여간 1958년부터 시작해야 되니까."
"뭐라고? 당신 날 놀리는 거요?"
"아니, 좀 들어보시오."
이렇게 해서 브레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멜힐은 벽에 기대앉아 조용히 듣고 있다가 이윽고 다 듣고 나자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군. 렉스 동력회사 녀석들이 할 만한 짓이야."
"그런데 멜힐, 그 녀석들은 우리들의 육체를 어디다 쓰려는 것일까? 생체 실험……?"
"아니지, 당신은 아직 22세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모양이구려. 우리들의 육체는 재생용으로 사용되는 거라오."
"재생이란 어떤 거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수명이 다 된 육체에서 생명을 떼어내어 새로운 육체에 집어넣는다. 그렇게 해서 계속 살아간다는 원리지."
"그랬군……. 그래서 우리들의 육체가 필요했군."
"그렇소."
"언제 쓰게 될까요?"
"물론 손님이 와야죠. 난 여기 처박힌 지가 벌써 일주일이 됐소. 이젠 언제 끌려나갈 지 알 수 없소. 당신도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되면 내 마음은 어떻게 되나요?"
"그거야 뻔한 거지. 말살해 버리는 거라요."
"그렇다면, 그건 살인이다!"
"물론. 하지만 내세 보험에 들어 있으면 죽게 된다고 해도 별로 어떻다 할 것도 없지만 말이오."
'또, 모르는 것이 튀어 나왔군.'
"그 내세 보험이란 건 또 뭐요?"
"당신은 통 아무 것도 모르는군."
"멜힐, 내세(죽은 뒤에 영혼이 다시 태어나 산다는 미래의 세상)라든가 영생(영원한 생명)이라든가 하는 걸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줄 수 없나?"
"그건 굉장한 주문인데."
멜힐은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원시 시대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확실히는 모르지만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지. 그래서 육체가 죽으면 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브레인은 끄덕이고 멜힐은 계속했다.
"20세기 후반, 바로 당신이 살고 있던 시대에 미국의 라인 박사라는 초심리학자가 있어서 그 연구를 하고 있었소. 그 연구를 시작으로 해서 몇 사람의 학자들이 계속 연구하다가 21세기의 중엽에 이르러 바닝 교수라는 학자가 나타나서 영혼(죽은 사람의 넋)의 존재를 분명히 증명했소. 그는 여러 가지 물건을 숨겨 놓고 자살을 한 뒤 자기의 친구인 학자에게 유령으로 나타나 그 물건들을 숨긴 장소를 가르쳐 주었소. 이렇게 해서 죽은 후에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던 것이오."
"세상이 온통 술렁거렸겠군요."
"술렁거리는 정도가 아니었소. 한 때는 온 세상이 뒤죽박죽 엉망이 되도록 혼란했었소. 안 그렇겠나?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해도, 즉 어떤 나쁜 짓을 한다거나 어떤 위험한 일을 하고 죽더라도 내세에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오. 모든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고 싶은 대로했죠. 매일매일 몇 천 몇 만이라는 사람이 내세에서 되살아나기 위해 자살을 했지요. 살인, 강도, 위험한 모험이 전 세계를 휘몰았고, 정말 무시무시한 세상이었소."
멜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 시대가 끝날 무렵 놀라운 일이 일어났지요. 바닝 연구소의 학자들이 내세는 있지만 아무나 그곳에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발표했거든요."
"모두 깜짝 놀랐겠군요."
"굉장한 충격이었소. 아무튼 내세로 갈 수 있는 사람은 몇 백만 명 중의 한 사람 쯤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죽어버리면 그것으로 끝나고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 갑자기 알게 됐으니까."
"그건 또 어째서?"
"죽음이란 인간의 마음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일이란 말이오. 마치 곤충이 고치에서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바뀌는 것 같은 거란 말이지. 그런데 그 작업이 너무 강하면 모두가 파괴돼 버려서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거요. 죽음의 충격으로 영혼이 모두 파괴돼 버린다. 그런데 보통 사람의 경우 모두가 거기에 해당된다는 거였소."
"그러니까 결국 안 된다는 얘기군."
"그래서 연구해 낸 것이 불사판매회사요. 실은 이것은 그때까지의 바닝 연구소의 이름을 바꾼 거죠. 그곳에서는 과학적인 방법으로 죽음의 충격에서 영혼의 구조를 강하게 해서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완성시킨 거요."
"그렇군! 그렇다면 또 다시 누구든 내세로 갈 수 있게 됐겠군."
"그렇게 됐지. 불사 판매 회사에 지불할 돈만 가지고 있다면야……."
"아니, 돈이 필요하다고?"
"물론이지.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주 복잡하고 세밀한 전자 공학적 설비가 필요하니 돈이 필요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바로 그것이 내세 보험이라는 걸세."
"그러면 부자만이 내세로 갈 수 있다는 얘긴데……."
브레인은 아주 불쾌한 기분이었다.
멜힐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하긴 많은 사람 중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영원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천재도 있고 또한 오랜 수련 끝에 그 능력을 갖게 된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그야말로 몇 백만 명에 한 명 정도로 아주 드물지."
브레인은 눈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죽은 후에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니. 그런 꿈 같은 일이 이 세상에서는 이미 실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젠 죽음을 두려워할 것 없이 무슨 일이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돈에 따라서란다.
돈도 없고 자유도 없는 자기에게는 그 멋진 기회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디 그뿐이랴. 모처럼 재생 수술을 받게 되어 22세기 세상에 재생하게 됐는데 머지 않아 마음을 말살 당하고 이 육체는 누군 지도 모를 딴 사람에게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재생을 위해서 새로운 육체를 살 수 있는 부자라면 당연히 내세 보험에도 들어 있을 테지. 그런데 왜 재생 같은 것을 하려고 하는 걸까?"
"늙은이들은 죽는 게 역시 두렵거든. 내세로 가는 것은 알고 있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순간까지 조금이라도 더 오래 이 세상에 머물고 싶은 거지. 그리고……"
"그리고 뭔가?"
"재생 수술이 언제나 성공한다고는 보증하진 못한다네. 재상을 할 때는 우선 먼저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제거한 다음 곧 새로운 마음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그때 마음이 새 육체 속에 잘 흡수되지 않는 수가 간혹 있다네. 그렇게 되면 모두가 끝장이지."
"하긴 그렇군. 그런데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까 자살 지망자들이 몰려다니던데 그들은 뭐지?"
"아아, 그 사람들은 자기의 육체를 파는 대신에 내세 보험에 들어 달라는 것이지. 거기에다 유족에게도 돈이 지불되거든. 돈이 없는 사람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지."
브레인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난 절대로 이 몸을 팔지 않을 테다!"
멜힐이 웃음을 터뜨렸다.
"강하시군. 그렇지만 놈들의 손에 걸리면 어차피 그게 그거니까."
 
네 차례다
 
시간은 천천히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벽에 붙어 있는 조그만 창문이 갑자기 열리더니 누군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바로 그 까만 요크였다.
"여어, 브레인 씨! 안녕하시오?"
"이 흉악한 놈!"
브레인은 전신이 부들부들 떨려 심한 욕설을 퍼부어 주고 싶은데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요크는 악마처럼 빙그레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아아, 그렇게 너무 흥분하지 마시오. 아무튼 내세 보험이 엄청나게 비싸니 할 수 없었네."
요크는 지극히 당연한 표정으로 말하고 나더니 뒤돌아보고 누구에게 인가,
"자, 빨리 해치우게."
하고 말했다. 그 말과 동시에 철문이 열리고 다섯 명의 프로 레슬러처럼 생긴 거대한 몸집의 사내들이 뛰어 들어왔다.
다섯 사람은 브레인과 멜힐을 번갈아 보더니 돌연 멜힐을 빙 돌아 둘러쌌다.
"이놈들아, 난 안 간다!"
멜힐이 주먹을 쥐고 달려들었지만 사내들은 익숙한 동작으로 멜힐의 필사적인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금방 꽁꽁 묶어서 방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러나 그 순간 요크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 바보 자식들아! 이놈이 아니고 저 안에 있는 놈이라니까."
브레인은 모처럼 새로 생긴 친구의 슬픈 운명을 생각할 기력조차 없이 멍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운명이 뒤바뀌자 그는 저항할 틈도 없이 금세 묶이고 말았다.
밖에 끌려나가자 요크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엾군, 브레인. 손님이 특별히 네 육체가 필요하다고 지명했거든."
브레인은 미칠 듯한 분노가 치밀어 꽁꽁 묶인 몸을 비틀었다.
"이놈! 죽여 버릴 테다."
그는 전신의 힘을 다해서 바둥거렸다.
"이놈의 몸에 상처를 내면 안 된다. 소중한 상품이니까."
EMB00000cd06952요크가 명령을 내리자 한 사내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헝겊을 그의 입과 코에 갖다 댔다. 마취제였다.
그는 금세 정신이 아득해졌다.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차츰 의식을 되찾았다.
'어? 난 아직 그냥 있군. 아직 영혼이 말살 당하지 않았군 그래.'
그는 맨 처음 그렇게 생각했다.
주위를 살펴보니 몸은 자유롭고 옷을 입혀서 소파 위에 뉘어져 있었다.
이제부터 어디론가 데리고 갈 것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생각했을 때 복도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때다! 어디 죽느냐 사느냐 한 번 해보자.'
그는 순간 그렇게 생각하고 문 뒤로 재빨리 몸을 숨겼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브레인은 주먹을 쥐고 전신의 힘을 다해 상대방을 때려눕히려고 하다가 그만 그 자리에 멈칫 서 버리고 말았다.
그는 바로 마리 소온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 육체를 샀다는 손님이 바로 마리란 말인가?
"마리, 당신은 누굴 위해서 내 육체를 샀소?"
브레인은 정면으로 마리를 쏘아보며 말했다.
"물론 당신 자신을 위해서죠. 당신을 자유의 몸으로 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마리는 언제나처럼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을 이 22세기로 끌어들인 건 우리들이었으니까 당신을 구출해 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건 그렇다 치고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무분별하시죠? 아무 것도 모르는 세상에 제멋대로 뛰쳐나가니까 이런 일을 당하잖아요."
"알고 있소."
"래리 사장이 당신을 만나고 싶대요. 앞으로의 일도 있으니까 한 번 만나 두는 게 좋겠어요. 점심을 먹고 같이 본사로 갑시다."
"음, 그렇게 합시다."
그는 그 방을 나오는 순간 멜힐이 생각나서 마리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나하고 함께 갇혀 있던 남자인데 아주 좋은 친구였소. 그도 구해 줄 수 없을까? 돈은 내가 벌어서 갚기로 하고."
마리는 지그시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말했다.
"당신은 아주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이군요. 좋아요. 어디 한 번 힘을 써 보죠."
그녀는 복도에 있는 화상전화실로 들어가 어디엔가 전화를 걸더니 이윽고 돌아왔다.
그녀의 안색이 어두웠다.
"늦었군요. 멜힐 씨는 당신이 옮겨진 후 한 시간 뒤에 팔려서 벌써 재생 장치에 넘어갔답니다."
브레인은 멈춰 섰다. 온 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22세기에서 얻은 단 하나의 친구가 이미 죽어 버린 것이었다.
"미안해요, 브레인!"
마리가 조용히 말했다.
그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의 무표정한 냉정함은 사라지고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성실함이 나타나 있었다.
 
래리 사장
 
래리 사장은 아주 작은 거미 같은 인상을 주는 말라빠진 늙은이였다.
굉장히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몸집이 거의 의자 속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끝에서부터 손끝까지 빈틈없이 잔주름으로 가득 차 있고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가지나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나 눈만은 맑고 또렷했다.
"아아, 당신이 과거에서 온 친구인가요?"
래리 사장의 말이었다.
"자, 앉으시오. 난 지금까지 할아버지하고 당신 얘기를 하고 있었소."
브레인은 60년 전에 죽은 래리 사장의 할아버지의 망령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방안을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아아, 벌써 가버렸소.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아주 잠시 동안만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으니까요."
"정말로 나타나시는 겁니까?"
브레인은 무뚝뚝하게 물었다.
"물론 사실이지요. 하긴 20세기에서 온 당신에게는 믿기 어려울 테지만 말이오. 그렇지만 20세기는 원자력이라든가 우주비행 같은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19세기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꿈같은 얘기였었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이오."
래리 사장은 거기서 화제를 바꾸었다.
"그건 그렇고, 당신은 이 시대가 마음에 드시오?"
"아직 까진 별로 마음에 든다고 할 수가 없군요."
"그러실 테지. 그렇지만 당신은 너무 무모했소. 혼이 난 건 당연한 일이었소."
"아니, 그건 제가 잘못했어요."
옆에서 마리가 말했다.
"아아, 그건 괜찮아. 그런데 브레인 씨, 나와 나의 조부는 당신을 우리 회사의 선전물로 쓰지 않기로 한 사실은 이미 알고 있을 테죠?"
"미스 소온에게서 들었습니다."
"렉스 동력 회사는 그 누구에게나 존경을 받아야만 한단 말입니다. 뒤에서 험담을 듣는다거나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지요. 그런 뜻에서 당신을 20세기에서 데려온 일은 큰 잘못이었소. 당신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회사로서는 아주 손해가 막심하단 말이오. 그래서 난 당신과 협상을 하고 싶은데……."
"협상이라뇨? 어떤?"
"만약에 우리 회사가 당신에게 내세 보험에 들게 해서 죽은 후의 생명을 보장한다면 당신은 자살을 해주겠소?"
브레인은 분명히 머리를 가로 저었다.
"깨끗이 거절하겠소."
"어째서?"
"우선 그 내세라는 게 아무래도 믿어지지가 않소."
"그럴 겁니다. 만일에 믿을 수 있게 된다면 협상에 응할 수 있겠습니까?"
브레인은 잠시 생각한 뒤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싫습니다. 나는 아직 이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고집쟁이로군, 당신!"
래리 사장은 금방 짜증을 내며 말했다.
"자, 잘 생각해 보시오. 이 시대는 당신에겐 정말 살기가 불편하고 위험한 곳이오. 잠시 어물거리는 사이에 금세 목숨을 잃을 뻔했지 않았나 말이오."
"그런 일은 다신 일어나지 않죠. 그건 아직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으니까요."
"아니, 분명히 또 일어날 것이오. 당신이 그렇게 빨리 이 시대 사정을 알게 될 리가 없소. 당신은 말하자면 20세기에서 살다가 갑자기 끌려 온 원시인 같은 사람이란 말이오."
래리 사장은 찬찬히 훈계하듯이 설득했다.
"당신은 비행기도 자동차도 전기며 가스 등 아무 것도 모르는 원시인인 주제에 호랑이나 들소나 사자하고 싸워본 경EMB00000cd06953험만을 믿고 20세기를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란 말이오. 그렇지만 원시인은 금방 자동차에 치이거나 전기에 감전되거나 가스 중독을 일으켜서 죽어버리는 게 틀림없지 않겠소?“"그건 너무 지나친 비유죠."
브레인은 그렇게 대답은 하였지만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니, 절대 지나친 얘기가 아닙니다. 이제 곧 알게 될 것이오."
"하여튼 나는 자살 같은 건 절대로 안 합니다. 되고 안되고 간에 나 자신의 힘으로 한번 버티어 보겠소. 협상 같은 것은 절대로 응할 수 없소."
"정말 대단한 고집이로군."
래리 사장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옹고집과 원시인 특유의 교활함으로 얼마 동안은 살아갈 수 있겠지. 그러나 결코 그렇게 길지는 못할 걸. 당신은 아무리 길어도 일년 이내에 무참하게 죽을 거요. 그러나 그때는 죽은 뒤의 생명을 보장하는 내세 보험은 없단 말이오."
"그래도 좋습니다. 자살은 하지 않겠소."
브레인도 끝까지 버텼다.
래리 사장은 맥이 빠진 듯 힘없이 의자에 파묻혀 있다가 또다시 몸을 꼿꼿이 하고 말했다.
"당신은 고집을 부리는 건 재생이라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겠군요. 오늘 오후 본사의 재생 처리실까지 와 보시오. 재생의 현장을 보면 당신 마음이 변할지도 모르겠군."
브레인은 갑자기 긴장했다. 그러자 노인은 그의 마음을 추측하고 빙그레 웃었다.
"아니, 함정에 빠뜨린 계획은 없소. 나의 재생용 육체는 이미 사 두었으니까. 우선 난 당신 몸뚱이 같이 우락부락한 몸은 싫소. 보기만 해도 마음이 언짢아지거든."
래리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라는 듯이 손을 들어 신호를 하였다.
브레인은 마리의 뒤를 따라서 사장실에서 나왔다.
 
좀 비
 
그날 오후 브레인은 렉스 동력회사의 본사 재생 처리실에 와 있었다.
그곳에는 렉스 동력회사의 중역들도 몇 명 참석하고 있었다.
브레인과 마리는 될 수 있는 한 중역들에게서 떨어져 앞줄에 앉았다. 재생기에 재생 준비가 이미 완료되어 있었다.
밝은 불빛이 가죽 줄과 코드가 달린 두 개의 튼튼한 의자를 비추고 있었다.
그 사이에 검게 빛나는 커다란 기계가 있었다.
'어쩐지 전기 의자 같이 생겼군. 거기에다 꼭 사형실 같군!'
브레인은 주위를 둘러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세 명의 기사들이 전기 의자 위에 엎드려서 최종 점검을 하고 있었다.
그 가까이 언젠가 본 일이 있는 턱수염을 기른 의사와 얼굴이 붉은 사내가 서 있었다.
래리 사장이 들어오더니 중역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나서 침착한 태도로 한쪽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 뒤로 40세 가량 되어 보이는 창백한 사내가 들어 왔다.
'아아, 이 남자가 바로 래리 사장이 사 놓았다는 육체의 소유자로군.'
그는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거기에 검정 옷을 입은 목사처럼 보이는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두 사람에게 다가오더니 먼저 창백하게 되어 떨고 있는 사내를 향해 물었다.
"윌리엄 헤트 씨, 당신은 이 지상 세계에서 사는 것을 그만 두고 내세에서 영생하기 위해서 당신 스스로의 생각으로 이 곳에 왔습니까?"
"예."
하고 사내가 대답했다.
"당신은 내세에서 영생하기 위해 이 과학적 수단을 취할 것을 희망하였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목사는 래리 사장 쪽으로 향했다.
"케너스 래리, 당신은 윌리엄 헤트 씨의 몸을 빌려서 이 세상의 생활을 계속하기 위해 자유 의사로 이곳에 왔습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됐습니다. 그러면 이 재생 처리는 법률적으로 보나 도덕적으로 보나 정당하다고 인정됩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시작하십시오."
그 말과 동시에 기사들이 다가와서 두 사람을 제각기 의자에 꽉 묶고 팔이며 다리며 이마에 전기 장치 같은 것들을 연결시켰다.
실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렉스 동력회사의 중역들은 몸을 앞으로 내밀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래리 사장은 브레인을 힐끗 보고서 희미하게 웃고는 기사에게 말했다.
"시작하지."
기사가 검은 기계의 다이얼을 돌렸다.
그러자 부웅 하는 큰 소리가 나며 라이트의 빛이 일순간에 엷어졌다.
래리 사장과 헤트는 꿈틀하고 몸을 경련 시켰으나 이윽고 축 늘어지고 말았다.
기사가 기계의 스위치를 끊었다.
조수가 두 사람의 몸에서 코드며 가죽끈을 떼어냈다.
의사와 기사가 무서우리 만치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는 래리 사장의 낡은 시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헤트의, 지금은 래리 사장이 되어 있을, 육체를 재빨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반응이 없다."
턱수염의 의사가 근심스런 얼굴로 말했다.
온 방이 순식간에 긴장된 공기로 가득 찼다.
"아직 시간이 빠른 모양이지."
"아니, 이젠 반응이 있어도 좋을 땐데……?"
"이상하군?"
제각기 한 마디씩 했다.
"어떻게 됐지? 뭘 걱정을 하고 있지?"
브레인이 마리에게 물어보았다.
"재생 처리를 할 때 때때로 생각지도 못했던 사고가 일어나는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래리 사장의 마음이 아직 새 육체 속으로 옮겨가지 못한 모양이에요. 너무 늦어지면 안 되는데……."
"어째서?"
"정신이 빠져 나오면 육체는 곧 죽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옮겨갈 때는 재빨리 옮겨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육체가 죽어버리고 마니까요."
"아직도 반응이 없어."
늙은 의사가 신음소리를 냈다.
"이젠 늦었어요."
마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을 때 의사가 돌연 큰 소리로 외쳤다.
"반응이 있다!"
"산소! 그리고 아드레날린 주사를 빨리!"
산소 마스크가 얼굴에 씌워지고 주사를 놓았다.
새로운 래리 사장이 몸을 움직였다.
"성공이야!"
늙은 의사가 외치며 마스크를 벗겼다.
중역들이 일제히 사장의 의자 곁으로 달려갔다.
래리 사장은 눈을 뜨자 졸리는 듯 하품을 했다.
"래리 씨, 축하합니다!"
"성공이군요."
"아주 조마조마했습니다. 혹 실패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저마다 그런 인사를 했다.
그러자 의자에 앉은 사내는 주위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고 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래리가 아니오."
중역들은 섬뜩해서 그곳에 말뚝처럼 우뚝 서 버렸다.
늙은 의사가 딴 사람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섰다.
"래리가 아니라면, 그럼 아직 헤트 씨인가요?"
"아니, 헤트도 아니오."
"그럼 누군가요?"
"래리도 물론 옮겨 앉으려고 했지만 내가 빨랐지. 그보다 먼저 내가 이 육체 안으로 들어왔소. 그래서 이 육체는 완전히 나의 것이오!"
"그렇다면 당신은 누구요!"
늙은 의사가 뒷걸음질치며 외쳤다.
그 사내가 우뚝 일어섰다.
중역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역시 늦었어요."
마리가 브레인의 귀에다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브레인이 그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의 얼굴은 헤트의 저 겁먹어 오돌오돌 떠는 얼굴하고는 비슷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래리의 얼굴도 물론 아니었다.
무서운 얼굴이었다.
안색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고 검은 머리카락이 차고 흰 이마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어쩐지 몹시 어색한 느낌이었다.
표정이라곤 전혀 없고 마치 나무를 깎다만 조각처럼 멍청하고 애매한 얼굴이었다.
다만 그의 깜박이지 않는 눈만이 차디찬 시선을 내뿜으며 살아 있었다.
"사령(죽은 사람의 영혼), 좀비가 되어 버렸어요."
마리가 다시 또 속삭였다.
"말을 해라. 넌 누구냐?"
늙은 의사가 또다시 물었다.
"나도 모른다."
"모른다고?"
"글쎄 내가 누군지 잊어버렸다니까."
사령은 천천히 재생기에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두 중역이 그 앞을 막아섰다.
"비켜. 이건 이미 내 몸이야. 너희들은 상관할 것 없다."
"보내 주시오."
늙은 의사가 말했다.
중역들은 비켜섰다.
사령은 곧바로 출입구로 나가려다가 갑자기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와 브레인 앞에 섰다.
EMB00000cd06954브레인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했다.
사령은 브레인을 그 몸서리치는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난 너를 알고 있다."
"뭐라고?"
"난 너를 알고 있어."
사령이 거듭 말했다.
"그래? 하지만 난 너 따윈 모른다."
"아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고 브레인의 눈 속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당신의 이름은?"
"토마스 브레인이다."
사령이 힘없이 머리를 저었다.
"아아,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질 않아. 하지만 틀림없이 생각해 낼 거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해도."
그러고 나서 사령은 자기 모습을 내려다보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아니, 내 몸이 죽어가고 있잖아! 죽기 전에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겠군. 토마스 브레인, 나에 대해 생각나는 게 없나?"
"물론이지!"
브레인은 다급히 외쳤다.
사령하고 어떤 관계가 있다니 생각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첫째로 그럴만한 일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누구에게 원망을 살 만한 일을 한 기억이 없다.
사령은 브레인의 곁을 떠나 비실비실 걸어가다가 또다시 돌아다보았다.
"너하고는 또다시 만나게 될 거다. 넌 내게 아주 소중한 녀석이니까. 언젠가 또 만나게 될 때 그때는 틀림없이 생각날 테지."
그리고는 사령은 복도로 나가더니 천천히 멀어져 갔다. 브레인은 얼어붙은 듯이 그곳에 못 박혀 있었다. 문득 어깨가 무거워서 보니 마리가 기절해서 브레인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자신을 갖고
 
기사며 중역들이 얼마동안 재생기 주변에서 열띤 논쟁으로 시끄러웠다.
재생에 대한 실패의 책임 전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에는 20세기와 22세기가 별로 다를 게 없는 모양이군.'
브레인은 그 소동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렉스 동력회사라는 세계 최대의 회사 사장이 돌연 죽어버렸으니 다음 사장이 누가 되느냐 하는 문제와 이제부터 회사를 어떻게 경영해 나갈 것인가 등의 문제로 당분간은 소동이 계속될 것은 틀림없겠군.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브레인, 나하고 같이 가요."
어느 사이에 정신이 돌아온 마리가 옆에서 속삭였다.
두 사람은 재생실에서 나와 옥상으로 올라가 헬리콥터 택시를 불러 올라탔다.
그는 아까 본 사령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꼭 내게 달라붙으려고 할 건 또 뭐람!"
드디어 참다못해 브레인은 중얼거렸다.
"정말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게 없어요?"
"없어. 그야 인간이니까 내게도 많은 허물은 있겠지만 사령이 달라붙을 정도로 나쁜 일은 하지 않았는데……."
"그렇담 괜찮지만……."
"하여간 지금은 아주 귀찮은 세상이 되어 버렸군. 옛날엔 사람이 어떤 나쁜 일을 했더라도 죽어버리면 그것으로 끝장이었는데, 도대체 지금은 이게 뭐야, 죽은 뒤까지도 이러쿵저러쿵 말썽이 많으니……."
마리는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헬리콥터 택시는 초고속으로 날아 매머드 아파트 옥상에 도착했다.
그곳이 마리의 아파트였다.
마리의 방은 넓고도 밝은, 아주 살기 좋아 보이는 방이었다.
방에는 옛날의 SF소설 속에 잘 나왔던 것 같은 편리한 기계며, 각종 장치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마리는 브레인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저녁 안 들겠어요?"
"그건 고맙군. 실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소."
마리는 자동 조리기 앞에 가서 다이얼을 돌렸다.
자동 조리기는 보고 있는 사이에 식료품 탱크며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포장지를 풀고 껍질을 벗기고 물로 씻어 굽고 찌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떨어진 물건을 보충하기 위해 식료품 회사에 급히 주문을 했다.
요리는 아주 맛이 있었다.
"당신 시대는 이렇게 기계가 요리를 모조리 하진 않았겠죠? 나도 때때로 해 보고 싶지만 언제나 기계에게만 맡기고 있어서 어떻게 하는 건지 엄두가 나질 않아요."
마리의 말이었다.
식사가 끝나자 자동 정리기가 남은 음식이며 접시 등을 금방 치워버렸다. 그리고 둘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런데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이죠?"
브레인은 마리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능하다면 돈을 좀 빌려줬으면 하는데……."
"좋아요. 그런데 그걸 어디다 쓰려고요?"
"우선 살 곳을 정하고 그리고 나서 무엇이든 일거리를 찾아 나설 참이오."
"직업을 구한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에요. 제가 힘이 돼 줄 만한 사람을 소개해 드리죠."
"아니, 그럴 필요는 없소."
브레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나의 능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소. 내 힘만으로 일거릴 찾아 훌륭히 해 보고 싶은 생각이오."
마리는 잠자코 브레인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방그레 웃으며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다면 당신의 생각대로 해 보세요. 잘 되기를 빌겠어요."
마리는 일어나 침실로 가서 봉투를 가지고 되돌아 왔다.
"자, 돈이에요. 필요하다면 더 빌려드릴 수 있어요."
"고맙소. 그러나 이 이상 더 폐는 끼치지 않을 작정입니다."
"자리가 잡히면 곧 제게 전화를 주셔야 해요."
"물론. 그럼 잘 있어요."
브레인은 일어나서 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마리가 그의 등뒤로부터,
"토마스, 전 당신의 친구예요. 만일 곤란한 일이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내게 연락해요."
하고 말했다.
브레인은 마리를 향해 크게 머리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힘찬 걸음걸이로 걸어 나갔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나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좋은 기분이었다.
아무런 불안도 근심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제부터는 이 22세기의 세상에서 훌륭히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것을 뿌듯하게 느꼈다.
 
친구와의 재회
 
'자, 무슨 일을 한다?'
혼자가 되자 브레인은 우선 그 생각부터 했다.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물론 요트의 설계였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래도 무리한 생각 같았다. 150년이나 전의 요트 기술자가 지금 세상에서 쓰이게 되리라고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일거리를 이것저것 가릴 여유가 없다. 일거리가 있기만 하다면 아무 거나 해야할 판이었다.
그는 신문 가판대에 가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광고를 조사했다. 물론 숙련된 사람을 구하는 곳은 보나마나라서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로서도 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있나 하고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없었다.
 
"자동 레스토랑에서 조립공을 구함. 로봇 공학의 기초 지식이 있으면 가능."
"요트 선체 소제부를 구함. 유체 역학의 학위 필."
"금성 무역회사에서 보이를 구함. 불어․독일어․러시아어 및 금성어를 할 수 있는 자."
"에스콜 백화점에서 소년 배달부를 구함. 스프레링 머신의 운전이 가능하고 뉴욕 시의 지리에 밝은 자."
 
브레인은 그만 맥이 빠져서 구인 광고 조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그는 이 세상에선 소제부도 배달부도, 아니 심부름꾼조차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일거리를 찾는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훨씬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세상이라고 구덩이를 판다거나 짐을 들어 내린다거나 또는 보통 상점의 청소를 한다거나 하는 간단한 일거리야 있을 테지. 아니면 그러한 힘든 일은 모두 로봇 같은 것이 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휠체어를 미는데도 박사 자격증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는 구인 광고를 조사하는 것을 포기하고 보통 기사를 읽어보았다.
이러한 기사들이 실려 있었다.
 
"화성의 새로운 우주 공항을 뉴사우스 마스에 있는 오크 사에 건설 중."
"시카고의 연속 방화 사건은 유령의 소행으로 보임. 주 정부는 푸닥거리 계획을 발표하다."
"앨라배마 주 모빌 시에서 사령 2명이 폭행으로 살해당함. 폭행의 주모자를 경찰에서 조사 중."
"오스트리아의 치롤 지방에서 있었던 늑대인간 사냥이 실패로 끝나다."
"의회는 수렵 및 결투 금지 법안을 부결함."
"광검사(미친 칼잡이)가 산티아고에서 네 사람을 살해."
 
브레인은 한층 더 우울한 기분이 되어 신문가판대 앞을 나왔다.
'대체 어떻게 된 세상이란 말인가?'
유령과 사령, 늑대인간과 광검사 등 공상 소설에나 나올 법한 것들이 이 세상에는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거리를 걸어갔다.
문득 정신이 들어 사방을 바라보니 그곳은 화려한 극장 거리였다.
결투 시합이며 3차원 영상에 감각 영화 등을 상연한다는 극장이 즐비하고, 떠들썩한 음악이 들리고 화려한 네온이 반짝거렸다.
그것을 보고 있는 동안에 그는 돌연 어떤 생각, 아주 엉뚱한 일에 생각이 미쳤다.
'렉스 동력회사는 바로 어제까지 나를 커다란 선전거리로 쓰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은 내가 쇼 무대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어느 극장에서나 3차원 영상에서나 틀림없이 나를 대환영해 주리라. 하여간 나는 150년 전의 과거에서 온 사람이니까. 왜 진작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EMB00000cd06955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곧장 눈앞에 보이는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 쇼의 지배인을 찾았다.
10층에 지배인 실이 있었다.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사무실로 올라갔다.
접수부로 가서 브레인은,
"출연 관계로 지배인을 만나보고 싶은데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접수부의 여자는 생글생글 웃으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미안하지만 3차원 영상이나 극장의 출연자는 충분하답니다."
"그렇지만 나는 특별합니다."
"어느 분이나 모두 특별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니 나의 경우는 틀려요. 난 과거에서 온 사나이랍니다. 아, 저 먼저 3차원 영상 뉴스에서 나왔었죠."
"글쎄, 난 못 봤는데요. 하여튼 다시 나중에 와 주세요."
하고 말하고 있을 때 키가 작달막하고 뚱뚱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와 구석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어머, 사장님 안녕하셨어요?"
"어! 일찍 나왔군."
사장은 인사를 받으며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브레인은 그 사내의 뒤를 쫓아가 팔을 붙잡았다.
"사장님, 잠깐만 제 얘기 좀 들어주십시오. 저는 굉장한 뉴스가치가 있는 몸이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들 생각하고 있지요. 이 팔을 놓으시오."
사장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입니다. 전 렉스 동력회사가 20세기에서 데리고 온 사람이랍니다. 제 이름은 토마스 브레인이라고 합니다."
"뭐, 렉스 동력회사?"
사장은 되묻고 나서 잠깐동안 머리를 갸우뚱하고 생각하더니 말을 계속했다.
"아, 어쩌면. 그런 말을 들은 듯도 한데……, 하여튼 사무실로 오시오."
두 사람은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떨까요. 절 적당한 곳에 출연시켜 주실 수 없을까요?"
브레인은 필사적으로 물었다.
"글쎄요?"
사장은 조금 생각하더니 물었다.
"당신은 어느 세기에서 왔다고 했소?"
"1958년입니다. 1930년으로부터 50년대까지의 일이라면 무엇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에게는 진귀한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1958년이라, 그렇다면 20세기란 이야기군 그래."
"그렇습니다."
사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되겠군. 1세기의 스웨덴 사람이라든가 7세기의 인도 사람이라면 또 몰라도. 아니면 1세기의 로마 사람이나 4세기의 영국 사람이라도 무방하긴 하지만 20세기는 곤란하군."
"어째서요?"
"만원이거든."
"만원이라고요?"
"그렇소. 1953년에서 온 펜 사라라는 사람이 모든 텔레비전 쇼며 광고며 연극과 영화에 출연하고 있거든. 그러니까 똑같은 시대 사람은 출연 가치가 없단 말씀이오."
"그렇습니까?"
브레인은 천천히 일어섰다.
"하여튼 감사합니다."
"아니, 힘이 되어드리지 못해서 미안하오. 그렇지만 한번 펜 사라를 만나보는 게 어떻겠소? 어쩌면 대역으로 써 줄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오."
사장은 펜 사라의 주소를 써서 브레인에게 건네주었다.
브레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그는 자기의 운명을 저주했다. 모처럼 좋은 일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같은 시대에서 온 사람이 있어서 그것도 안되게 됐으니……. 그러나 생각해 보면 별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세상인데 20세기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고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다.
다만 내가 운수가 나빴을 따름이지.
'그렇지! 하여튼 그 사라라는 남자를 만나보자. 가령 일거리를 얻을 수 없다고 해도 같은 20세기에서 온 사람을 만나서 옛 이야기라도 한다면 무척 즐거울 것이다. 저쪽도 반가워할 테지.'
그렇게 생각하고 브레인은 가르쳐 준 주소로 찾아갔다.
아파트의 초인종 버튼을 누르자 곧 매끈하고 둥근 얼굴의 사내가 나왔다.
"카메라맨인가? 늦었구먼."
사라가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당신과 같은 20세기에서 온 사람입니다. 나는 1958년에서 왔습니다."
"호오, 사실이오?"
사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물론이죠. 내 신분은 렉스 동력회사에 문의해 보시면 곧 알 수 있지요."
"아아, 그래요? 그래서 제게 무슨 용건이라도 있소?"
"예! 저어, 당신의 비서 역이건 뭐건, 그런 일에 써주실 수 없을까 해서……."
"난 비서는 쓰지 않소."
사라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할 수 없죠. 사실은 당신하고 옛날 얘기라도 하고 싶어서 왔답니다. 같은 시대 사람을 만나면 무척 반가우리라고 생각하고요."
"아아! 물론 반갑죠. 왜 생각나지 않소? 옛날 말이오. 1950년대의 뉴욕은 참 좋았죠. 공원에는 이륜 마차가 달리고 맨해튼 기슭엔 외륜선이 유유히 떠가고……. 그런데 지금 좀 바쁜 일이 있어서, 이 다음에 또 얘기합시다."
사라는 일부러 꾸며서 웃는 얼굴로 브레인을 밀어내고 문을 닫아 버렸다.
브레인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그 건물을 나왔다.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뭐가 어쩌고 어째? 이륜 마차! 또 뭐 외륜선? 그따윈 19세기 말경의 얘기지. 그러니까 그 놈 펜 사라라는 놈은 순 엉터리 사기꾼이군. 과거에서 온 사나이라고 떠벌리고 있지만 사실은 20세기는커녕 19세기에서도 살아본 일이 없는 사기꾼인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가 엉터리라는 것을 누가 알지?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이 22세기에는 거의 없을 테니까.'
그는 거리를 하염없이 돌아다녔다. 몹시 피로했지만 어딘가 들어가서 쉴 기분도 들지 않았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문득 어느 거리 한 모퉁이에서 그는 군중 속에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그것은 저 렉스 동력회사에서 헤어진 후로 영 소식을 알 수 없었던 레이 멜힐이었다.
그는 쫓아가 멜힐의 어깨를 붙잡았다.
"여보게 멜힐! 날세 나야. 용케도 거기서 빠져 나왔네 그려."
그러자 그 남자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브레인을 돌아다보며 말했다.
"난 멜힐이라는 사람이 아니오. 사람을 잘못 보셨군요."
"뭐라고! 자넨 아무리 봐도 그 사람하고 꼭 같은데, 이마의 방사능 흉터까지 꼭 같아.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 우주선 브레멘 호의 비행사로 있던 멜힐이 아니란 말이오?"
"아니라니까요."
브레인은 갑자기 그 까닭이 생각났다. 그 순간 불같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면 네 놈이 멜힐의 육체를 훔쳤구나. 이 도둑놈아!"
그는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힘을 다해서 그 남자의 얼굴을 갈겼다.
남자는 2미터 가량 튕겨가더니 벌렁 나자빠졌다.
"광검사다! 사람 살려요!"
지나가던 여인이 쇳소리 같은 비명을 지르자 사람들이 모두 도망쳤다.
멀리서 새파란 제복의 경찰관이 이리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려 군중 속으로 숨은 다음 거리 모퉁이까지 와서 달렸다. 얼마 동안 달리다 보니 아무도 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보통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가슴속은 슬프고 분한 마음으로 가득 찼다.
'멜힐은 정말 죽어버린 게 틀림없으니 이제는 이 세상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라곤 하나도 없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자 새삼스럽게 쓸쓸함과 외로움이 물밀 듯이 치밀어 왔다.
 
영혼 교환국
 
그날 밤, 브레인은 조그만 여관을 찾아 유숙하고 다음날도 일자리를 찾으러 거리에 나섰다.
일자리를 얻기란 무척 힘들었다.
생각대로 힘든 일들은 모두 로봇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하찮은 일자리도 150년 전의 인간에게는 할 수 없는 것뿐이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돌아다녔으나 일자리는 구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여관으로 돌아오니까 안내원이,
"전화가 왔었습니다."
하면서 쪽지를 내밀었다.
'혹시 마리일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마리에게는 아직 이 여관의 전화 번호를 알리지 않았었다.
메모에는,
'영혼 교환국 22가 지국으로 나와 주십시오. 통화가 가능합니다.'
라고 적혀 있었다.
'대체 누구의 영혼일까?'
그는 생각해 보았지만 통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내 주소를 알았을까?"
하고 혼자 중얼거리니까 안내원이,
"영혼은 모든 걸 다 알지요. 주소쯤은 아무 것도 아니랍니다. 하여튼 가보시면 아시게 될 것이에요." 하고 권한다.
그편이 제일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브레인은 가르쳐 준 대로 22가를 찾아갔다.
영혼 교환국은 커다란 회색의 구식 건물이어서 첫눈에도 알 수 있었다.
접수대로 가니 예쁜 아가씨가 교신하는 방을 가르쳐 주었다.
"실은 전 처음으로 여기 왔습니다. 어떻게 교신을 하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브레인이 말하자 그 아가씨는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말해 주었다.
"별로 어려울 게 없답니다. 이곳은 세상을 떠나서 내세의 입구까지 가신 분과 이 세상을 이어주는, 말하자면 전화국과 같은 거죠. 그 방으로 가시면 저쪽에서 먼저 교신을 합니다. 즉 목소리가 들려오죠. 그러면 대답을 하시면 되는 거랍니다."
"잘 알았소."
브레인은 인사를 하고 일러준 대로 그 방으로 갔다.
그 방은 벽에 스피커가 걸려 있었고 의자 하나가 놓인 작은 방이었다.
브레인은 이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하면서 의자에 앉았다.
"토마스 브레인!"
스피커에서 이 세상 것이 아닌 기분 나쁜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누, 누구요?"
그는 오싹한 한기를 느끼며 대답했다.
"토마스, 잘 있군 그래."
음침한 목소리가 또 울렸다.
이번에는 브레인에게도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 수 있었다.
EMB00000cd06956"레이! 레이 멜힐일세 그려!"
그는 모습을 볼 수 없는 목소리를 향해 외쳤다.
"그래, 브레인. 오랜만일세."
"멜힐! 지금 자네는 어디 있나?"
"내세 입구에 있지. 어때 좀 뜻밖일 테지?"
"놀랐네. 그런데 자넨 내세 보험에 들어 있지 않았을 텐데?"
"물론 안 들었었지. 그 동안의 얘기를 할 테니 잘 듣게나. 그때 자네가 끌려나가고 나서 한 십분 이나 됐을까 할 때 이번엔 날 끌어내려고 왔네. 그래서 곧 바로 재생실로 끌려가지 않았겠나! 분하고 원통하고 어쩔 수가 없었네. 나는 내 마음이 말살되는 걸 느꼈지. 그때도 화가 치밀었었어. 그리고 정신을 잃고 말았는데, 얼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내세입구지 뭔가."
브레인은 숨을 들이 마셨다.
"그렇다면 자네는 백만 명에 하날까 말까 하다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물이었네 그려."
"그랬던 모양이야."
"참, 다행이었네. 난 어떻게든 자네를 구해 보려고 했지만 그땐 이미 자네가 팔려 나간 뒤였어. 그때 난 어찌나 괴로웠던지……."
"잘 알고 있네. 자네는 정말 좋은 친구였어. 그것뿐인가? 내 육체를 사간 그놈의 늙은이를 한방에 때려눕힌 것도 고마웠네."
브레인은 깜짝 놀랐다.
"뭐라고? 그 일도 알고 있나?"
"물론이지. 내세에 있는 자에겐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조리 보이거든."
브레인은 강한 호기심에 끌렸다.
"레이! 내세란 곳은 어떤 곳인가?"
"모르겠네."
"어째서? 자넨 지금 거기 있잖은가?"
"아닐세, 아직 나는 내세의 입구에 있지. 여기는 이 세상과 저 세상과의 사이에 놓인 다리 같은 곳이란 말일세."
"그 다리를 건너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아니, 지극히 간단해. 다만 한 번 건너가 버리면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지. 그리고 내세로 건너가 버리면 다신 이 세상과 교신할 수가 없게 돼 있다네."
브레인은 잠깐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레이! 그럼 언제까지 거기 있을 생각인가?"
"알 수 없지. 그러나 당분간 여기 있을 생각일세."
"말하자면 날 봐주겠다는 건가?"
"뭐 그렇지."
브레인은 멜힐의 따뜻한 우정을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했다.
"고맙네, 멜힐! 그렇지만 그러면 자네에게 미안해서 안되겠네. 그러니까 빨리 저승으로 건너가게. 내 일은 어떻게든 내가 해 나가볼 테니까."
"물론 자네는 그렇게 할 수 있을 테지. 허나 얼마 동안은 내 충고가 필요할 걸세. 자네도 만약에 입장이 바뀌었다면 그렇게 했을 게 아닌가? 더욱이 지금 자네는 내 충고가 필요해. 그 사령 말일세. 꽤나 끈질긴 놈일세."
브레인은 오싹 한기를 느꼈다.
"자네는 그놈이 어떤 놈인지 알고 있나?"
멜힐은 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 그것은 모르겠네. 다만 그놈이 방심해서는 안될 놈이란 것만 알고 있지. 그것뿐인가. 지금 자네에게 매달리려는 놈은 그놈뿐만이 아니야. 어쩌면 유령도 매달릴 걸세."
브레인은 그만 웃어버렸다. 그러자 멜힐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브레인! 이건 웃을 일이 아닐세. 자넨 유령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해. 유령이 어떻게 생겨나서 무슨 일을 하는가를……."
"그 얘기를 좀 해 주게나."
"그럼 잘 듣게."
멜힐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사람은 죽으면 세 종류로 나뉜다네. 첫째는 죽는 순간 마음이 폭발해 버려서 모든 것이 없어져 버리는 것과 둘째로는 마음이 죽음의 충격을 이겨내서 내세의 입구까지 오는 것, 이것이 바로 영혼이지. 그리고 세 번째가 유령일세. 즉 유령이란 마음이 죽음의 충격으로 해서 분열은 하나, 없어져 버리는 게 아니고 내세의 입구까지 오기는 왔지만 불완전해서 내세로 갈 수 없는 것이지. 일종의 미친 영혼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해서 어떤 사람은 영혼이 되고 어떤 사람은 유령이 되나?"
"지극한 미움이나 공포심 또는 고민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로 죽으면 그것 때문에 미쳐 버리는 거지. 유령은 지상에 머물러서 산 사람을 괴롭히거나 무서움을 주거나 하는데 그것도 모두 미쳐 버린 영혼이기 때문이라네."
"그랬었군."
브레인은 크게 끄덕였다.
그렇다면 옛날부터 전설이나 이야기 또는 이상한 사건에 대한 기록 속에 나오는 유령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었다.
과학이 발달할 때까지 사람들은 유령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그것은 단순한 미신이라고 하게 됐다.
물론 미신이나 착각도 많았으리라. 그저 바람이 나무 가지를 흔들거나 갑자기 새가 날던가, 부엉이가 귓가를 스쳤던가 한 것을 유령이나 악마의 소행으로 오해하거나 한 일도 있었을 테지.
실제로 과학은 그러한 오해를 차례로 밝혀내서,
"이 세상에 유령 따위는 없다."
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다만 과학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현상은 조금 남았으나 그것은 증거가 불충분해서 모르는 것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실제로 존재한 유령가지 아주 부정해 버렸던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 거의가 죽음의 충격으로 인해 완전히 소멸돼 버리기 때문에 바로 최근까지는 유령이 극히 적었다네."
멜힐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렇지만 지금은 재생 처리를 받는 사람이 많아졌으며 또한 내세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도 늘어났기 때문에 그만큼 유령의 수도 증가했을 테고. 그래서 자네에게 들러붙은 유령도 필시 그런 종류의 하나일걸세."
멜힐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져서 잘 들을 수 없게 되었다.
"왜 그래? 멜힐!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해 주게."
"이젠 돌아갈 시간이 됐네, 브레인. 우리들은 이 세상과 통신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벌써 다 써버렸네. 또 보급하고 나서 얘기하러 오겠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일러주게. 내게 달라붙으려는 유령은 누구의 유령인가?"
"글쎄, 아직 알 수 없네. 나도 여기서 조사하고 있지만 알 수 없거든. 그리고 그것뿐이 아냐. 언제 들어 붙을 건지 그것도 몰라. 그러니까 조심할 수밖에 없네."
"잘 알았어! 앞으로 조심하겠네!"
멜힐의 목소리가 점점 약해져서 알아듣기 힘들었다.
"토마스, 자네가 일자릴 구하는 건 힘들 걸세. 19가 서322의 에드워드 프랜첼이란 남자를 만나보도록 하게. 거친 일거리이긴 하지만 돈은 벌 걸세."
"어떤 일?"
그러나 이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안에 그는 혼자서 남아 있었다.
 
광검사
 
멜힐이 일러준 주소에는 너절한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다.
거기에는 '에드워드 프랜첼 흥신소'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문을 연 것은 머리가 훌렁 벗겨진 덩치 큰 남자였다.
"프랜첼 씬가요?"
"그렇소. 자, 안으로 들어오십쇼."
프랜첼은 붙임성 있게 브레인을 안으로 불러 들였다.
그곳은 사무실인 모양인데 너저분한 광처럼 이것저것 널려 있었다.
사업이 잘 안 되는 모양이었다.
"용건은 뭐요?"
"일거리를 하나 얻으려고요."
이 말을 듣자 그는 금방 안색이 달라지며,
"뭐라고요? 난 또 손님인 줄 알았군."
하고 투덜거렸다.
"없어요, 없어. 이 불경기에 무슨 놈의 일거리가 있단 말이오? 돌아가 주시오."
"나는 레이 멜힐의 친구인데 한 번 찾아가 보라고 해서……."
프랜첼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레이라고? 뭘 하고 있지? 잘 있던가?"
"죽었소."
"뭐라고? 좋은 녀석이었는데……. 그렇다면 그가 내세로라도 갔던가요?"
"가고 말고요. 나는 지금 막 멜힐하고 영혼 교환국에서 얘기하고 오는 길이오."
"그랬었군! 참 잘 했습니다."
프랜첼은 아주 기분이 좋아져서,
"레이의 친구라면 어떻게든 일자릴 구해 줘야겠구먼. 자, 좀 일어서 보시오."
하고 말했다.
브레인이 일어서자 그는 브레인의 팔이며 어깨의 근육을 만져 보더니 갑자기 주먹을 들고 머리를 내리치려는 것이었다.
브레인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공격을 멋지게 피했다.
"됐소. 몸집도 좋은 데다가 운동 신경도 예민한 편이니……."
프랜첼은 책상 앞에 앉으며 말했다.
"당신이라면 사냥꾼이 될 수 있겠군. 무기는 어떤 것을 다룰 수 있소?"
EMB00000cd06957브레인은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머리를 짜서 대답했다.
"지금은 구식이지만 라이플 총과 권총이라면 쓸 수 있소."
"아니, 총 종류가 사냥에는 절대 금물이라는 것쯤은 상식일 텐데. 그밖에 것은?"
"그렇지! 총검이라면 쓸 수 있을까요?"
그는 옛날, 태평양전쟁 때 받은 군사 훈련이 생각나서 말했다.
그러자 프랜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호오, 총검이라? 정말 진기한 물건이군. 지금은 총검술을 알고 있는 사람이 아주 드무니까 당신이라면 손님을 많이 끌겠군."
그는 책상 서랍에서 종이를 꺼내 거기에 무엇인가 써서 브레인에게 건네주었다.
"내일 여기로 가서 지시를 받으시오. 계약금이 20달러고 하루 수당으로 50달러는 받을 수 있소. 무기와 장비는 이쪽에서 준비합시다. 물론 내 수수료는 그 중에서 받기로 하지. 좋소?“
"예, 좋고 말고요."
브레인은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사냥이란 대체 어떤 것인지 물어 보고 싶어 좀이 쑤셨다. 어쩌면 법률에 저촉되는 범죄인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눈치 없이 물었다가 간신히 얻은 일자리를 잃어버릴 것이 두려웠다.
"자세한 내용은 그 종이에 적힌 집에 가면 설명해 줄 거요. 다른 사냥꾼들도 가 있을 테니까. 그럼 잘 해 보오."
"대단히 고맙소."
브레인은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일자리를 얻었기 때문에 기분이 조금 누그러졌다. 어떤 일거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뭐라도 좋으니 열심히 해서 머지 않아 남의 윗자리에 서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도중에 식사를 하고 여관으로 향했다.
어정어정 걸어오는데 저쪽에서 무엇인지 소동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보니까 한 남자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 한가운데 우뚝 버티고 서 있었다.
그 남자는 50세쯤으로 수수한 옷을 입고 안경을 낀 약간 몸집이 뚱뚱하고,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딴 사람들과 하나도 다름이 없었다.
다만 그 남자는 혼자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기분이 나빠서 그를 피해 지나다니는 것이었다.
브레인이 가까이 갔을 무렵 갑자기 그 남자는 들고 있던 서류 가방 속에서 기다란 단검 두 자루를 끄집어냈다. 그리고 가방을 내던지고서 두 손에 단검을 잡더니 군중 속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광검사다!"
"경찰을 불러!"
"위험해!"
사람들은 황급히 달아났다.
금세 거리는 왁자지껄하는 비명소리와 고함소리로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광검사는 단검 두 개를 내두르며 누구랄 것 없이 아무에게나 대들었다.
금세 한 남자가 어깨를 찔리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도망을 치고 어린애와 여자들이 밀려 넘어져서 땅 위에 뒹굴었다.
브레인은 그만 얼이 빠져서 멍청히 그 미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큰길의 저쪽에서 파란 제복을 입은 몇 명의 경찰관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모두 손에 든 광선총을 그에게 겨누고 있었다.
"모두 땅에 엎드려라!"
"빨리 엎드려!"
경찰관이 스피커로 외쳤다.
그 소리와 함께 보도에서는 일체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행인들은 일제히 땅에 엎드렸다.
브레인이 어물어물하고 있으려니까 바로 옆에 있던 열두 세살 가량의 소녀가 그의 팔을 끌어 당겼다.
"아이 아저씨도. 빨리 엎드리지 않으면 광선총에 맞아 죽어요!"
브레인인 황급히 엎드렸지만 얼굴을 들고 광검사 쪽을 지켜보았다.
광검사는 핑그르 방향을 바꿔 경찰관 쪽으로 단검을 휘두르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선두에 섰던 세 경찰관이 일제히 사격을 시작했다. 광선총의 총구에서 엷은 노란 색의 광선이 뻗어 나가 광검사의 몸에 꽂혔다.
몸이 금세 타올랐다.
광검사는 크게 비명을 지르며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경찰관들의 광선총이 광검사의 등을 겨눴다. 광검사는 불덩어리가 되어 땅 위에 넘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왔다. 그리고 광검사와 부상자들을 싣고는 다시 황급히 달려갔다.
EMB00000cd06958"자아 여러분, 끝났습니다. 어서 일어나 돌아가십시오."
경찰관이 확성기로 외쳤다.
군중들은 일어나 무엇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점점 흩어져 갔다.
"대체 이게 뭐람?"
브레인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머, 아저씬 광검사도 모르세요?"
소녀가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아니 알고 있지. 그런데 난 시골서 막 올라와서 진짜를 보는 건 이것이 처음이란다."
"아이, 가엾어!"
소녀는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뉴욕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광검사가 많은 곳이래요. 제일 많은 곳이 필리핀의 마닐라고, 뉴욕도 1년에 5, 60명쯤은 나타난데요."
"더 많단다. 금년엔 벌써 70명 이상인 걸."
옆에 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주위에서도 지금 본 광검사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브레인의 시대에 교통사고에 대해 사람들이 얘기하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몇 명 당했나?"
"다섯 명 뿐, 죽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많이 변했지. 내가 젊었을 땐 이렇지 않았다. 나왔다 하면 반드시 몇 사람은 죽었었지."
"경찰관이 오는 게 빠르기 때문이에요."
브레인의 옆에 있던 소녀의 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기 전에 곧 경찰관이 와서 광선총으로 처치해 버리거든. 아이, 멋없어."
경찰관들이 사람들을 쫓아버렸다.
브레인은 딴 사람들과 그곳을 떠나 버스를 타고 여관으로 향했다.
'도대체 무슨 놈의 세상이냐! 뉴욕에서 1년에 70명씩이나 미친 사람이 칼을 휘두르며 아무런 목적도 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히다니…….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느끼고 있다. 이 시대 자체가 이미 아주 미쳐 버렸단 말인가?'
그는 침대에 누으며 생각을 했다.
 
사냥꾼들
 
다음 날 아침 브레인은 쪽지에 적혀 있는 그 장소로 갔다.
그곳은 파크가에 있는 굉장히 화려한 맨션이었다.
벨을 누르자 제복을 입은 사람이 나와 그를 넓은 방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벌써 12, 3명의 거칠게 생긴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대개 서로가 안면이 있는 듯, 난폭한 말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야아, 오토! 이놈 또 만났구나. 그래 아직 이 사냥개를 면하지 못했단 말이냐?"
"그렇다! 알거지가 되셨다 이 말씀이야."
"오오, 템. 너도 나타날 때쯤 됐다고 짐작했지."
"왜 그래. 이게 마지막이다."
"그래?"
"정말이야. 이번 사냥이 끝나면 태평양 해저 목장으로 가게 돼 있어."
"야, 세시우스! 요새는 좀 어떠신가?"
"그저 그렇지."
"어어, 새미 존스! 오래간만이다. 네 짝 스리고는 어디 갔냐?"
"죽었지. 요전번 사냥 때 당했어."
거기에 한 사내가 들어와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조용히들 하십시오."
돌아다보니 그 사내는 사냥꾼들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승마용 바지를 입은 스포츠맨 같은 사내였다.
그는 침착한 눈길로 사냥꾼들을 빙 둘러보았다.
"안녕들 하시오. 바로 내가 당신네들을 고용한 사냥감인 찰스 헐이오.“
사내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기침을 했다. 헐은 말을 계속했다.
"이미 다 알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일단 사냥에 대해 얘기해 두기로 하겠소. 당신네들은 나를 사냥의 목적물로서 쫓고 죽이기 위해서 고용됐지만 이것은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자살법 시행령에 따라 나의 목숨을 버리는 허가를 얻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세 보험에 들어 있기 때문에 죽으면 곧 내세로 가니까 그쪽 걱정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헐은 거기서 일단 말을 끊고 차디찬 눈길로 일동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도 그저 쉽사리 죽지는 않소. 나도 무기를 가지고 당신네들과 싸워서 필경 몇 사람은 죽이게 될 것이오. 사실 이것은 범죄에 속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나는 죽을 거니까 별로 그런 일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소. 다만 만약에 내가 당신네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을 경우는 약간 곤란하오. 물론 그렇게 되면 난 경찰에 잡히기 전에 자살을 하면 되지만, 그런 방법으로 죽는 건 원치 않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나를 살해해 주길 바라는 것이죠.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바요. 자 그러면 질문이 있으신 분은?"
"치사한 놈."
누군가가 브레인의 옆에서 수군거렸다.
"맞았어. 놈을 쿡 찔렀을 때 상판때기가 빨리 보고 싶군."
누군가가 대답했다.
헐은 또다시 차디찬 웃음을 띄며 말했다.
"좋습니다. 질문이 없으시다면 다음 차례로 진행시키겠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사용하실 무기를 한 사람씩 얘기해 주십시오. 당신은?"
"철퇴."
한 사냥꾼이 대답했다.
그것은 철봉 끝에 가시가 돋은 둥그런 쇠뭉치를 붙인 중세기의 병사들이 적의 갑옷을 때려부수기 위해 쓰던 무기였다.
"삼지창."
이것도 중세기의 무기로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창 같은 것이다.
"창."
"철편."
이것은 가시가 있는 철판인데 일종의 던지는 도구였다.
"반월도."
"총검."
브레인은 자기 차례가 됐을 때 착검을 한 총을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청룡도."
"도끼."
이것은 새미 존스라는 사내의 대답이었다.
"철구."
마지막 사람이 대답하자 헐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나의 무기는 장검입니다. 물론 갑옷 따위는 입지 않습니다. 사냥 날짜는 일요일 새벽이며 장소는 내 목장에서……. 오늘 거기까지의 지도를 나눠드리죠."
그리고 나서 헐은 브레인을 향해 말했다.
"그 총검술을 쓰는 사람은 잠깐 남아주시오. 딴 사람들은 돌아가도 좋습니다."
사냥꾼들이 다 나가고 난 뒤 헐은 브레인에게 물었다.
"총검이란 건 아주 보기 드문 무기인데, 어디서 배웠소?"
"군대에서요. 1943년부터 1945년의 태평양전쟁 때에 배웠소."
헐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당신은 과거에서 온 사람이오?"
"그렇소."
"그렇다면 이번 사냥은 당신에겐 최초의 사냥이 되겠군요."
"그렇소."
"당신은 그 육체와는 달리 퍽 교양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이런 위험한 직업을 택했소?"
"20세기의 인간에게는 22세기 세상에선 이 정도의 직업 밖에 없답니다."
"그렇겠군. 그렇지만 사냥이라는 건 어려운 직업이오. 당신은 정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소?"
"물론 죽일 수 있소. 전쟁 때는 하루에도 몇 명이나 죽였었소."
브레인은 앞가슴을 내밀며 자랑스럽게 대답했지만 사실은 전쟁 때도 총을 쏘기만 했을 뿐 실제로 사람을 죽인 일은 없었던 것이다.
헐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하여튼 마지막 순간이 돼서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소. 나는 조금도 사정을 봐 주지는 않을 테니까."
"나도 그렇소."
브레인은 점점 화가 치밀었다.
"그러면 이번엔 내 쪽에서 좀 물어보겠소."
"좋소. 뭐든 물어보시오."
"당신은 왜 그렇게 죽고 싶어하오?"
헐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참 동안 브레인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그렇지, 당신은 과거의 인간이었지. 지금 세상엔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EMB00000cd06959"대답할 수 없단 말이오?"
"아니, 얼마든지 대답해 주지."
헐은 의자에 기대앉아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이 세상이 지긋지긋해졌단 말이오. 돈도 있고 건강하고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오.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지 다 해 보았소. 모험도 해보았지. 실험도 했소.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다 해보고 난 지금엔 무엇을 해도 심심하고 재미없어 죽을 지경이라오. 내가 못해 본 것이라면 이젠 죽는 일 뿐이오. 그래서 죽고 싶은 생각이라오."
"아, 그랬었군요. 하지만 어째서 그렇게 서두르시오. 인간은 언젠가는 죽을 것인데 그때까지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참다운 인생이 아니오?"
"그런 인생은 아주 어리석고 둔한 사람들이 가는 길이오. 죽을 때 죽는 것이 현명한 사람의 인생이지. 머리가 뛰어난 학생이 1, 2년 월반하는 일이 있죠? 그것과 같은 것이라오.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데 그걸 꾹 참고 이 지상에 매달려 있는 건 정신나간 무식한 인간들이나 할 짓이오."
"가난해서 내세 보험을 지불할 돈이 없는 사람들도 그럴까요?"
브레인의 말에 헐은 아주 경멸하는 표정으로,
"그건 할 수 없지. 가난하다는 건 어리석다는 것의 변명이거든. 그따위 사람들의 일은 나에겐 관심도 없소. 하여튼 나는 죽는다는 멋진 체험을 평범한 침대 따위에선 하고 싶지 않을 뿐이오. 나는 멋들어지게 싸우다가 죽고 싶단 말이오!"
하고 말했다.
브레인은 저도 모르게 끄덕이고 있었다.
그는 자기의 그 하잘 것 없는 자살 방법을 새삼스럽게 부끄럽게 생각했다.
자동차 사고로 죽는다는 것은 참으로 멋없고 어리석고 무의미한 방법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헐의 죽는 방법이 훨씬 남자답고 당당하다.
물론 그것은 내세 보험에 들어 있어 죽어도 곧 내세에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만일에 그것을 모른다면 헐이라고 일부러 한시 바삐 죽으려고 하지는 않으리라.
그렇지만, 그는 점점 헐이 부러워지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떻소? 조금은 기분을 알 것 같소?"
헐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브레인은 제 정신으로 돌아오자 홧김에 크게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다.
"아아니, 모르겠소."
헐은 또 차디찬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그러면 이번 일요일에 만납시다. 그때까지 이 세상과 하직하는 마지막 기념으로 맛난 음식이나 실컷 먹어 두시오."
브레인은 그의 비꼬는 말을 흘려들으며 밖으로 나왔다.
 
달라붙는 좀비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오전 중은 총검술 연습을 해 보았다.
연습하고 있노라니까 많이 생각이 났지만 그것으로 내일의 싸움에 충분할 지 어떨는지는 자신이 없었다.
조금 더 계속할까 생각했지만 그 일을 생각하면 초조해져서 도저히 계속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총검을 놔두고 거리로 나갔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정처 없이 거리를 돌아다녔다.
'내일 나는 헐을 이길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헐이 한 말이 떠올랐다.
헐은 그에게 도저히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했다. 틀림없이 그렇다.
20세기의 요트 설계기사 시절의 자기였다면 가령 어떤 일이 있다 해도 사람을 죽일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육체부터가 틀린다. 이 몸집은 어디로 보나 싸움께나 할만한 육체인 것이다. 어쩌면 지금까지 몇 명쯤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거나 죽인 일이 있었을 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육체 속에 들어 있는 마음은 역시 옛날의 토마스 브레인의 마음인 것이다.
어쩌면 또 새로운 육체에 머물면서 육체의 영향을 받아 싸움 잘하는 새로운 토마스 브레인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란 말인가?
브레인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이 22세기 세상이 온통 알 수 없었다.
옛날에 미래를 상상했을 때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명이 발달하고 평화스럽고 풍요롭고, 만에 하나 잘못으로라도 사람을 죽이는 일 따위는 지상에서 사라진 지가 오랜 밝은 세상이 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가?
죽어도 다시 살 수 있는 내세라든가, 진짜 유령이라든가, 사냥이라든가 하는 마치 중세기의 암흑시대의 꿈 같은 일이 사실로 존재하는 세상, 미쳐버린 세상인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그러나 어처구니가 없다고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제 브레인은 22세기의 구경꾼이 아니다. 이 미친 세상의 한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내일이 되면 사냥에 나가 사냥꾼의 한 사람으로서 죽이느냐 죽느냐의 결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브레인은 다리가 아파서 눈에 띄는 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순간 깜짝 놀랐다.
구석 자리에 있던 한 사나이가 훌쩍 일어나서 이리로 다가왔다. 그 얼굴은 래리 사장의 재생 때 그의 육체를 뺏은 그 좀비였다. 브레인을 알고 있다고 하던 그 기분 나쁜 사령이었던 것이다.
"안녕하시오?"
하며 좀비가 맞은 편 의자에 걸터앉았다.
"여!"
하며 브레인도 마지못해 대답하고는 상대방의 기색만을 살폈다.
"앞으로는 날 스미스라고 불러 주게."
"아아, 그럼 이름이 생각났군 그래."
좀비는 힘없이 머리를 저었다.
"그렇지만 이름 없이 지낼 수도 없고 해서 이름이 생각날 때까지만 스미스로 부르기로 했네."
"그런가?"
"나는 그 동안 의사를 찾아가 보았지. 몸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어. 의사의 말이 앞으로 몇 개월밖에 지탱할 수 없다는군."
브레인은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얼굴은 푸르죽죽하게 부어 있었으며, 피부는 생기라고는 조금도 없이 축 늘어지고…….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강한 로션 냄새에 섞여 죽은 사람 특유의 송장 썩는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그런데,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브레인이 참다못해 물었다.
"아니."
"그렇다면 날 좀 가만 내버려둬 주게. 난 혼자 좀 있고 싶으니까."
"그게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왜? 어째서? 도대체 나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브레인은 마침내 참다못해 화가 치밀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스미스는 무표정한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글세. 그게 뭔지 나조차도 모르지. 당신에게 무슨 볼일이 있는 건지. 말하자면 당신이 좋은 건지, 아니면 싫은 건지, 또는 당신을 죽이고 싶은 건지 반대로 보호해주고 싶은 건EMB00000cd0695a지 분간을 못하고 있어. 그러나 아주 중요한 용건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데……. 뭐 이러는 동안에 반드시 생각이 나겠지."
"그렇다면 그때까지 날 찾아오지 않을 수 없나?"
"그런데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당신을 보고 있어야 그만큼 빨리 생각이 날 것이 아닌가?"
"집어치워, 기분 나쁘게!"
브레인이 외쳤다.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어쩔 수가 없잖은가? 나라고 다 썩어 가는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건 아니야. 하루속히 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 내야 하기 때문에 이러고 있네. 그것만 알게 된다면 죽어도 한이 없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나가! 이 마귀야!"
브레인은 홧김에 그만 스미스의 얼굴을 때렸다.
스미스는 힘없이 굴러 떨어져 통로 가운데로 나동그라졌다.
일어났을 때 보니 스미스의 뺨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브레인, 제발 부탁이야!"
스미스는 브레인의 곁으로 다가서려고 했다.
"가까이 오지마!"
그는 또 한 대 갈겼다.
스미스는 비실비실 거리며 간신히 일어나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럼 가겠네. 하지만 다시 돌아올 거야. 앞으로 생각이 떠오르게 되면 싫어도 다시 돌아와야 하는 거니까……."
그 말을 남기고 좀비는 비척비척 걸어 나갔다.
브레인은 넘어지듯 주저앉았다.
전신이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
 
전투의 아침
 
브레인이 탄 제트 버스는 동이 트기 전에 헐의 목장 앞에 도착했다.
브레인은 총을 어깨에 메고 버스를 내려 지도를 들여다보며 헐의 저택 쪽으로 걸어갔다.
저택은 곧 찾을 수 있었다.
하인이 문을 열어 주고 드넓은 저택 안으로 안내를 했다.
"헐 씨의 아버님도 역시 사냥으로 돌아가셨답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듯한 하인은 묻지도 않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굉장한 사냥이었죠. 아버님은 칼의 명수여서 최고 수준의 사냥꾼을 여섯 명이나 죽이고 난 후에 자신도 목이 잘려서 세상을 떠나셨거든요."
"그렇다면 헐의 집안 중에서 사냥으로 죽은 사람이 그밖에 또 있소?"
브레인은 호기심에 끌려서 물어 보았다.
"사냥은 아니었지만 숙부님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광검사로서 죽었습죠. 행인을 일곱 사람이나 베어 죽이고 쓰러질 때까지 경관들의 광선총에 열두 번이나 맞았더랬는데……. 그때는 신문에 대서 특필로 보도되는 등 굉장했습죠. 그야말로 폭발적인 대인기였습죠."
이야기하는 동안에 넓은 방 하나가 보였다.
그곳에는 이미 사냥꾼들이 거의 다 모여서 커피를 마시거나 무기의 손질을 하고 있었다.
삼지창이며 철구며 장검이며 총검 등이 번쩍번쩍 빛나는 모습은 마치 중세기를 무대로 한 영화나 연극과 흡사했다.
"자, 앉게."
그 중 한 사나이가 브레인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새미 존스라는 미국 일류의 사냥꾼이고 무기는 도끼요."
브레인도 자기 소개를 했다.
새미가 다른 사냥꾼들을 소개해 주었다.
새미는 퉁퉁하고 다부진 몸집의 사내였으며 그의 도끼는 지금까지의 사냥이 얼마나 처절했는가를 말해 주는 듯 몇 개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자넨 오늘이 처음인가?"
"그렇소."
브레인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소총에 검을 채우고 준비를 하였다.
"조심하게. 녀석은 서투른 놈부터 겨누니까."
"잘 알았소."
브레인은 그에게 물어 보았다.
"사냥은 보통 몇 시간이나 걸리나?"
"지금까지 제일 길었던 게 여드레였지. 그렇지만 기술이 좋은 사냥꾼이라면 대개 하루나 이틀 동안에 끝장을 내지. 그러나 상대방이 얼마나 죽고 싶어하는가에 달려 있네. 모처럼 죽여 달라고 우리들을 고용해 놓고는 막상 그때가 되면 죽는 게 무서워서 숨고 나오지 않는 수가 간혹 있거든. 그럴 때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헐은 그런 일은 안 할 걸세. 녀석은 자기 힘껏 싸워서 우리들을 몇 명이나 죽일 수 있는가 시험해 보려고 할걸세."
새미가 이렇게 말했을 때 헐이 모습을 나타냈다.
푸른색의 실크 옷을 입고 한 쪽 어깨에 장검을 메고 있었다.
"안녕들 하시오, 여러분. 밤이 새기 전에 나는 출발하겠소. 그 뒤 30분이 지나면 당신네들은 나를 쫓아 발견하는 즉시 날 죽이시오. 내 목장은 울타리가 둘러 싸여 있으며, 나는 절대로 도망치거나 하는 일은 안 할 것이오."
말을 마치자 헐은 올 때와 마찬가지로 재빨리 몸을 날려 밖으로 나갔다.
"저런 건방진 자식은 딱 질색이야. 이제 두고 보게. 머지 않아 혼을 내줄 테니까."
새미가 정말 미워서 못 견디겠다는 투로 말했다.
"자넨 어째서 사냥꾼이 되었나?"
브레인이 물었다.
"나 말인가? 난 저런 건방진 부자 녀석이 딱 질색이라서 놈들을 죽이는 게 내 즐거움인걸."
새미는 그러면서 빙긋이 웃었다.
"그런데 브레인, 나하고 함께 하세. 자네가 위험하게 되면 내가 돕고 내가 위험하게 되면 그땐 자네가 도와주게나."
브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미가 브레인을 도와줄 마음인 것을 그는 잘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새미의 제의를 고맙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때 하인이 들어와서 말했다.
"여러분! 시간이 됐습니다. 추적을 시작해 주시오."
그 말에 사냥꾼들은 모두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서자마자 제일 앞장을 섰던 삼지창의 명수라고 하는 세시우스가 헐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발자국은 안개가 자욱히 낀 산이 있는 쪽으로 향해 있었다.
사냥꾼들은 일렬 종대가 되어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동안 일행은 아무 말도 없이 산을 올라갔다.
이윽고 아침해가 떠오르자 안개는 곧 개었다. 산길이 화강암이라서 발자국이 없어졌다.
"각기 흩어져서 찾기로 하자."
세시우스의 말에 저마다 흩어져서 찾기로 했다.
그러나 산길은 험하고 가시덤불이며 잡목이 잔뜩 들어차서 수색이 지지부진했다.
시간은 자꾸 흘러 정오가 되었다.
청룡도를 쓰는 사내가 흰 목도리를 넝쿨 사이에서 발견했다.
그것은 헐의 것이 틀림없었다. 일부러 떨어뜨린 것이다.
그리고 곧 이끼가 돋은 땅 위에서 헐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발자국은 나무가 우거진 계곡 쪽으로 계속 이어져 있었다.
"있다!"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브레인이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가 보니 별처럼 생긴 쇠뭉치를 든 건장한 영국 사람이 3, 40미터 가량 앞쪽 덤불을 향해 맹렬하게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그 쇠뭉치는 7, 80센티미터쯤의 자루에 약 30센티미터 가량의 쇠사슬이 달린 끝에 온통 못을 박은 별처럼 생긴 무거운 쇳덩어리가 달려 있었다. 이것을 휭휭 휘두르며 싸우는 것이다.
헐이 칼을 뽑아 든 자세로 덤불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영국 사람이 맹렬한 기세로 헐에게 덤벼들었다.
헐은 재빨리 몸을 피하고 영국 사람을 향해 칼을 푹 찔렀다.
영국 사람은 가슴이 깊이 꿰뚫려 굉장한 신음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헐은 그의 가슴에 한 발을 올려놓고
"한 사람 째다!"
하고 외쳤다.
그리고 훌쩍 몸을 날려 덤불 속으로 숨어 버렸다.
"나는 저런 쇠뭉치를 쓰는 놈의 마음을 알 수 없네."
"처음 공격에 실패하면 마지막이거든."
옆에 가보니 그 사람은 벌써 죽어 있었다.
사냥꾼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헐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한참 쫓아가다 보니 또 바위가 나타나고 발자국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날 오후 온통 땀투성이가 되어서 찾아다녔지만 끝내 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해가 저물어 사냥꾼들은 산 중턱에 캠프를 치고 쉬었다.
헐이 기습을 해 올 것을 경계해서 교대로 불침번을 섰다.
모닥불을 둘러싸고 모여 작전을 짰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지. 여긴 놈의 땅이니까 필경 끝에서 끝까지 훤히 알고 있을 게 아닌가. 그런데 이쪽은 통 알 수 없으니 문제로군."
"그렇다면 놈은 언제까지든 숨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렇지는 않을 걸세. 어디엔가 숨어서 우리들을 습격할 틈을 찾고 있을 걸세."
브레인은 검은 숲을 바라보았다.
"언제 나타날는지 알 수 없군."
"그렇지! 아주 엄중하게 망을 보지 않으면 당한단 말일세."
모두가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이 완전히 입장을 바꿔 놓아버렸다.
오히려 사냥꾼이 반대로 습격을 받는 입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빨리 아침이 되면 좋으련만…….'
브레인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윽고 모두 모닥불 옆에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하루종일 산 속을 헤매고 다녔기 때문에 몹시 피곤해서 눈을 감자마자 그는 스르륵 잠이 들었다.
"우와앗!"
갑자기 사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 없는 괴상한 고함소리가 바로 옆에서 나서 브레인은 펄쩍 뛰어 일어났다.
재빨리 소총을 꽉 주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숲 쪽에서 무엇인가 둔탁한 것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꺼져가는 모닥불에 나무 가지를 넣자 불이 확 피어올랐다.
그때 한 사내가 비틀대며 돌아왔다.
그것은 아까 망을 보고 섰던 창의 명수였다.
쩔뚝거리며 가슴과 손에 부상을 입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괜찮은가?"
"약간 스쳤을 뿐이야. 그러나 저 녀석은……."
"어쨌나, 상대방은?"
"마치 도깨비 같은 놈이야."
창을 쓰는 사내는 상처의 치료를 받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미 날이 밝고 있었다.
 
결 투
 
아침해가 떠오르자 사냥꾼들은 또다시 행동을 개시했다.
사방으로 흩어져 제각기 찾기로 했다.
이윽고 세시우스가 희미하게 보이는 발자국을 발견했다.
그는 크게 소리쳐 일행을 불러모았다.
수색대는 또다시 한 덩어리가 되어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산길을 올라갔다.
선두에 섰던 철구를 쓰는 오토가 돌연,
"어이, 이쪽이다. 찾았다!"
하고 외쳤다.
바로 옆에 있던 새미와 브레인은 곧 그의 뒤를 따랐다.
쇠사슬에 딸린 쇠뭉치를 잘 쓰는 독일 사람은 쇠뭉치를 윙윙 휘두르면서 전진했다. 그리고 헐을 겨냥해 쇠뭉치를 던졌다.
순간 헐이 납작하게 몸을 엎드렸다.
쇠뭉치는 헐의 머리 위를 10센티미터 가량 스쳐서 바로 뒤에 있던 나무 줄기에 쇠사슬이 칭칭 감기면서 그만 나무를 꺾어버렸다.
헐은 몸을 일으키자 빙글빙글 웃으면서 맨손인 오토를 향해 장검을 겨누었다.
거기에 세시우스가 뛰어들었다. 그는 삼지창으로 헐에게 대들었다. 헐은 장검으로 그것을 털어 버리고 나서 두 사람은 격렬하게 맞부딪쳐 싸웠다. 그 사이에 오토는 철구를 다시 주워 들었다.
브레인과 새미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러자 헐은 몸을 돌려 도망쳤다. 세시우스가 이때다 하고 힘껏 찔렀다. 헐은,
"욱!"
하고 신음소리를 냈지만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어디를 찔렀나? 얼마만큼이나?"
하고 새미가 물었다.
"엉덩이를. 뭐 대수롭지 않은 상처지만 그 자신만만한 헐의 코가 약간은 납작해졌을 걸세."
세시우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모두 일제히 헐을 추격했다.
그러나 헐은 교묘하게 지형을 이용해서 도망쳐 다시 또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다.
"옳다. 적은 꼭대기 쪽으로 갔으니까 우리 새끼줄을 치듯이 몰아 보세."
사냥꾼들은 서로의 모습이 겨우 보일 정도의 간격으로 떨어져서 자꾸만 위로 올라갔다.
때때로 위쪽에서 들려 오는 소리로 헐이 아직 산꼭대기를 향해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됐다! 독 안에 든 쥐다."
꼭대기가 가까워질수록 사냥꾼들은 몰고 가는 간격을 좁혀 헐을 놓치지 않도록 했다.
다시 또 저녁때가 다가왔다.
갑자기 숲이 끝나고 화강암 투성이의 복잡한 길이 시작됐다.
이젠 거의 꼭대기에 가까워진 것이다.
"조심들 하게. 적은 가까이 있으니까."
새미가 다른 사냥꾼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 순간 헐이 맹렬한 기세로 역습해 왔다.
꼭대기로 아주 몰리기 전에 포위진의 한 쪽을 뚫으려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돌연 바위 위에서 장검을 휘두르며 나타나 그곳에 있던 푸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푸존은 창을 교묘하게 놀려서 헐의 장검을 받았다.
헐은 뜻대로 되지 않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두 번 세 번 연거푸 공격해 왔다.
푸존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창을 휘둘러 단숨에 헐을 해치우려 했다.
헐은 그만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푸존은 이때다 하듯이 더 한층 격렬하게 덤벼들었다.
이제 조금만!
푸존이 맞서겠냐는 듯이 내미는 것과 그 창 밑을 빠져 나온 헐이 장검을 내민 것은 거의 동시였다.
장검의 끝이 푸존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푸존의 창이 쨍그랑하고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그는 나동그라져 산비탈로 대굴대굴 굴러 떨어졌다.
"빌어먹을. 놓치지 마라!"
새미가 외쳤다.
사냥꾼들은 한층 더 포위망을 좁혔다.
헐은 또 위쪽으로 도망쳤다.
해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잿빛 바위 위에 긴 그림자를 끌고 있었다.
"아직 30분 정도는 남았으니까 지금 해치워야 해. 밤이 되면 놈의 계획대로 되어버린 걸세. 우리 한 명 한 명을 겨눌 거란 말이네."
"그래, 빨리 해 치우자."
사냥꾼들은 더욱 열심히 바위를 향해 압축해 갔다.
브레인이 높은 바위의 모서리를 막 돌아서려는 순간 장검이 쑥 내밀어지는 것과 동시에 헐이 뛰어 나왔다.
브레인은 총을 겨누고 간신히 적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장검이 총신을 미끄러져 내려와 그의 목을 스쳤다. 그는 재빨리 몸을 뒤로 젖혀 겨우 그 공격을 면했다.
"자아, 소총수!"
헐의 말에,
"야압!"
브레인은 창자에서 쥐어짜는 듯한 기합 소리와 함께 헐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맹렬히 달려들어 계속해서 총대로 헐을 때려눕히려고 했다.
그 순간의 브레인은 확실히 옛날의 브레인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인을 직업으로 하는 잔혹한 살인청부업자였다.
그러나 헐은 곡예사처럼 재빠르게 그의 공격을 받아 넘겼다. 브레인은 더욱 세차게 쳐들어가려다 그만 무엇인가에 걸려 넘어졌다.
"이크, 틀렸군!"
헐의 장검이 위이잉 소리를 내며 그의 머리로 날아 왔다.
쨍그렁!
칼날끼리 서로 부딪치는 굉장한 소리가 나서 보니 새미가 도끼로 헐의 검을 물리쳤던 것이다.
새미는 브레인을 밀어냈다.
"이번엔 내게 맡겨."
그리고 헐을 향해 버티고 섰다.
"내가 상대다!"
헐은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새미의 앞에 서서 장검을 쑥 내밀었다.
새미는 도끼로 검을 막았다. 번쩍하고 불꽃이 튀며 검이 활처럼 휘었다.
다른 사냥꾼들은 두 사람을 둘러싸고 구경을 하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새미, 구석으로 몰아붙여!"
"옳지. 그 끝에서 벼랑으로 떨어뜨려라."
"도와줄까, 새미?"
"쓸데없는 소리 마!"
새미가 고함으로 대답했다.
"조심해 새미! 놈은 교활하단 말야."
"알고 있어. 걱정 마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도 새미와 헐은 격렬하게 싸웠다.
브레인은 새미의 훌륭한 전투법에 감탄하면서 보고 있었다.
그는 그 무거운 도끼를 마치 경찰봉이나 막대기처럼 가볍게 휘둘러 정면에서 공격해 들어가는가 하면 뒤로 휘둘러대기도 해서 세차게 달려드는 적의 검을 잘 막아내는 것이었EMB00000cd0695b다.헐은 점차 벼랑 끝으로 몰려갔다.
새미에게 걸리면 헐도 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밀림 속의 사람과 사나운 개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이윽고 싸움의 결말이 났다.
헐이 필사적으로 쳐들어온 순간 새미가 몸을 피해 앞으로 나가며 도끼로 상대방의 옆구리를 찍었다.
"으악!"
굉장한 비명을 지르며 헐은 벼랑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육체가 계곡 밑에 떨어지는 소리가 털썩 하고 둔탁하게 들려왔다.
"시체를 찾아라."
새미가 숨도 쉴 새 없이 말했다.
모두는 벼랑을 빙 돌아 내려가 제각기 찾았다. 헐의 시체는 곧 발견됐다.
그 무참하게 죽은 모습과 억울해 하는 표정을 보면 도저히 지금 내세에 가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일행은 매장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곳에 표적을 해놓고 헐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요동하는 유령
 
사냥꾼들은 거리로 돌아오자 다시 제각기 흩어졌다.
새미와 브레인은 함께 식사를 했다.
그때 새미가 브레인에게 다음 일거리를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옴스크에 좋은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다네. 창의 명수인 어떤 부자가 죽고 싶어하고 있다네. 그리고 그게 끝나면 다음엔 마닐라에 굉장히 큰 규모의 일이 있어. 그건 다섯 형제가 한꺼번에 자살하고 싶다는 걸세. 그래서 일류 사냥꾼을 쉰 명이나 모집하고 있는 형편이야. 브레인, 어때. 함께 해보지 않으려나?"
브레인은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사냥꾼의 일은 분명히 이 22세기에서 알게 된 일 가운데서는 가장 스릴이 많은, 해볼만한 일 같았다. 게다가 새미라는 좋은 친구도 생겼다.
그렇지만 어쩐지 브레인의 마음속에는 이 일을 기꺼이 계속할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옛날의 브레인이 이 법률이 허용하는 살인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브레인은 머리를 가로 저었다.
"미안하네만 난 이젠 사냥꾼은 안 하려네."
"어째선가? 브레인. 자네는 아주 좋은 소질을 갖고 있는데, 조금만 경험을 쌓으면 썩 훌륭한 사냥꾼이 될 텐데……."
"그렇지만 내겐 좀더 할만한 일이 있을 것 같아. 살인보다는 좀 나은 일이 말일세."
새미는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브레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싱긋 웃으며 끄덕였다.
"그렇다면 할 수 없군. 좋을 대로 하게나."
"미안하네, 새미!"
"괜찮네. 하지만 자네가 지금 걸치고 있는 그 육체는 소중히 하게. 모처럼 훌륭한 것을 차지했으니까 말일세."
브레인은 깜짝 놀랐다. 설마 새미가 그것을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자넨 알고 있었나?"
"물론이지. 자네 몸뚱이는 사냥꾼이 제격인데 자네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아. 그래서 자네는 사냥꾼이 되는걸 체념한 걸세."
"그럴지도 모르지."
두 사람은 이윽고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니 브레인은 몹시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서 간신히 사귀게 된 두 사람의 친구 멜힐로와 새미, 모두 이렇게 빨리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너무나 애석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살아갈 방법을 자신이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왔을 때 브레인은 자기가 지칠 대로 지쳐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침대에 쓰러지듯 드러눕자 곧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얼마쯤이나 시간이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돌연 눈을 떴다.
방안은 캄캄했다.
그러나 무엇인가 알 수는 없으나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브레인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때 화장실 쪽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브레인은 전등을 켰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기도 모르게,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세면기가 공중에 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천장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히히히히 히히히히!"
어디선가 가냘프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유령이다!'
떠돌이 유령이 방안에 와 있는 것이다.
그는 가만히 침대에서 빠져 나와 문께로 걸어갔다.
그러자 공중에 떠 있던 세면기가 굉장한 속도로 급강하해서 그의 머리에 부딪치려고 했다.
깜짝 놀라 머리를 피하니까 세면기는 벽에 부딪쳐 쨍그랑하고 요란한 소리를 냈다.
다음에는 주전자와 컵이 공중에 떠올라 그를 향해 날아왔EMB00000cd0695c다.
브레인은 베개를 들어 막았다. 컵은 머리 위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는 문의 손잡이를 잡고 열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열리지 않는다.
떠돌이 유령이 꼭 잡고 있는 것이다.
주전자가 옆구리에 부딪쳐 바닥에 떨어져 물방울을 튀기며 흩어졌다.
또 한 개의 컵이 머리 위를 빙빙 돌면서 그의 머리를 겨누고 있다.
문은 꼼짝도 않는다.
브레인은 창문밖에 비상 사다리가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옳지. 거기로 빠져나가자!'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떠돌이 유령은 재빠르게 그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커튼이 활활 타기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그가 들고 있던 베개에도 불이 붙었다.
브레인은 연기가 오르는 베개를 내동댕이쳤다.
"사람 살려!"
그는 부지중에 외쳤다.
마치 나쁜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침대가 덜컹덜컹 흔들리며 다가온다.
의자가 공중으로 떠올라서 조금씩 조금씩 그에게 다가온다. 떠돌이 유령은 그를 혼내주려고, 아니 어쩌면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 기분 나쁜 나지막한 웃음소리는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지하세계
 
침대가 그의 육체를 벽으로 밀어댔다.
"도와주세요!"
브레인은 다시 한번 온 힘을 다 해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여관 안은 조용할 뿐 대답하는 것은 저 기분 나쁜 떠돌이 유령의 웃음소리뿐이었다.
'대체 이놈의 여관에 있는 녀석들은 모두 귀머거리뿐이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브레인은 깨달았다.
이 세상에서는 철저한 개인주의가 당연한 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딴 사람이야 죽건 말건 그런 것을 걱정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만약에 그가 시체로 발견됐어도 여관에서는 조금도 떠들 필요가 없이 지저분하게 버려진 방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정돈해서 또다시 새로운 손님에게 빌려주면 되는 것이다.
브레인은 새삼스럽게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서 곧 창문을 두들겨 부수고 밖으로 뛰어 나가려고 생각했다.
삼층에서 잘못 떨어지면 목이 부러져 죽을 것이 틀림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도 의자며 침대며 탁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브레인은 재빨리 거리와 각도를 계산하자 전신의 힘을 다해 머리로 창을 받아 넘겼다.
몸은 틀림없이 정면으로 창유리에 부딪쳤는데도 유리가 깨지기는커녕 마치 투명한 고무로 만든 것처럼 밖으로 휘청하고 휘어졌다가는 도로 원위치로 돌아왔다. 깨지지 않는 유리였던 것이다.
브레인은 튕겨져서 방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러자 그의 위로 무거운 탁자가 기울어져 다가왔다. 기어 나오려고 했으나 책상이 재빨리 그의 몸 위를 누르고 차츰차츰 힘을 더해갔다.
'깔려죽는구나!'
그 순간 지금까지 끄덕도 않던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리고 저 무표정한 얼굴의 스미스가 들어오더니 브레인을 누르고 있던 탁자를 밀쳐 버렸다.
"빨리 이쪽으로!"
브레인은 일어났다.
스미스는 문을 열고는 그것을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재빨리 열린 문 사이로 밖으로 빠져 나왔다.
방 속에서는 무엇이라고 하는지 뜻을 알 수 없는 화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스미스는 차디찬 손으로 브레인의 손목을 잡고 서둘러 여관을 나왔다.
밝은 불 아래서 보니까 스미스의 얼굴에는 아직 브레인에게 얻어맞은 자리가 남아서 얼굴의 절반쯤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브레인은 섬뜩했다.
스미스의 몸뚱이는 지금도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디로 가는건가?"
브레인이 궁금해서 물었다.
"당신을 보호할 수 있는 곳으로 가오."
"대체 누구의 유령인가? 아까 그것은."
"대개 짐작은 가네만……."
"그럼 누구냐?"
"자기가 알아보는 게 좋겠지."
스미스는 그 이상은 말을 하지 않고 구식 지하철 안으로 자꾸만 들어갔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컴컴한 동굴 속 같은 지하철은 기분을 나쁘게 했다.
저도 모르게 입구에서 망설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또다시 그 유령의 드높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유령은 끈질기게 그를 뒤쫓아 온 것이다.
할 수 없이 그는 지하철 속으로 들어갔다.
제일 밑의 철문을 열자 그 안은 전깃불이 드문드문 켜져 있었다.
스미스는 그 속을 자꾸만 걸어갔다.
공기는 축축하고 고약한 냄새가 풍기며 발 밑은 미끈미끈해서 자칫 잘못하면 나자빠질 것 같았다.
조그만 연못 같은 웅덩이가 있었다. 그곳을 빙 돌아가니까 누더기를 걸친 몸집 좋은 흑인 노인 한 사람이 길을 막고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얼굴을 보자 이것도 좀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남자는 누구냐?"
흑인 노인이 묻는 말에 스미스가 대답했다.
"내 친구야. 여길 지나가게 해 주게."
"정부의 스파이가 아닌가?"
"아니다."
"그럼 여기서 기다려."
그 흑인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통로의 저쪽으로 가버렸다.
"여기가 어디지?"
브레인이 스미스에게 물었다.
"뉴욕의 지하가일세. 지금은 쓰지 않는 지하철의 터널이며 낡은 하수도 같은 지하가란 말일세."
"왜, 이런 데로 왔지?"
"딴 데는 갈 곳이 없어. 자네를 보호할 수 있는 곳이란 이곳 뿐이야. 여긴 우리들이 살고 있는 지하세계이거든."
거기에 아까의 흑인 노인이, 지팡이에 매달리다시피 의지하고 걷는 노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노인은 굉장히 나이가 많은 듯 온 얼굴에 그물 같은 무수한 주름이 덮여 있었다.
"이 사람이냐?"
라고 노인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브레인, 이분이 좀비 세상의 제일 어른인 킹 씨라네. 인사 드리게."
스미스는 그에게 공손히 물어보았다.
"이 사람을 데리고 지하세계를 지나도 괜찮겠습니까?"
킹은 잠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윽고 천천히 끄덕였다.
"좋겠지."
그리고 브레인을 향해 말했다.
"보통은 이 좀비 세상에는 좀비 이외에는 들어올 수 없다. 그렇지만 당신만은 특별로 하지."
"정말 고맙습니다."
브레인은 어쩐지 오싹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어쨌든 나는 뉴욕의 지하가에 사는 1천백 명의 좀비의 안전을 수호할 책임이 있네. 그래서 귀찮은 일이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우리들을 위해 좋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군."
"제가 힘이 된다고요?"
브레인은 놀라서 노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네. 자네라면 좀비 세상의 일을 정확하게 다른 사EMB00000cd0695d람에게 전해 줄지도 모르기 때문일세."
킹 노인은 깊은 생각이 잠긴 눈길로 브레인을 지켜보며 계속 말했다.
"일반인들은 좀비를 필요 이상으로 두렵고 위험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네. 좀비를 전염병처럼 전염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어린애를 잡아먹거나 아니면 인간을 괴롭히거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단 말일세.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로 없네. 좀비는 전염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사람을 습격하는 따위의 일은 절대로 할 수 없네. 아니 습격을 하려고 해도 체력이 있어야지. 어린애보다도 더 힘이 약하니 그렇게 할 수가 전혀 없다네."
늙은이는 잘 알아듣도록 차근차근 말을 계속했다.
"좀비는 가령 사람의 몸이 죽어 거기에 딴 혼이 들어가려고 할 때 늦어지면 생기는 일종의 병일세. 예를 들면 이 스미스처럼 래리 씨가 재생하려던 사내의 육체에 들어갔으나 그것이 좀 늦어졌기 때문에 좀비가 됐지. 요새는 재생 처리가 활발해져서 스미스 같은 좀비의 수가 늘어갈 뿐일세."
노인은 숨이 찬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계속했다.
"확실히 좀비를 본다는 것은 기분이 나쁠 테지. 얼굴은 무표정하고 걸음걸이도 이상하겠다. 몸은 자꾸만 나빠지기만 하고…….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않는 걸세. 아니 오히려 일반인들을 사양하고 이렇게 지하세계에 살고 있는 형편이야. 하긴 우리들의 몸에는 태양광선이 좋지 않아서 해가 안 드는 지하가 살기 좋기 때문인 이유도 있네만……."
노인은 브레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자네는 여기에서 보고 느낀 바를 지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실대로 얘기해 주게. 그러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좀비에 대한 박해도 많이 줄어들 테지. 우리들이 자네를 이렇게 도와준 것처럼. 자아, 그럼 어서 가보게."
"잘 알았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브레인은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스미스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노인은 묵묵히 두 사람이 가는 것을 전송하고 있었다.
브레인은 스미스를 따라 어두운 지하세계의 터널 속을 걸어갔다.
이윽고 두 사람은 터널 끝으로 나왔다.
거기에는 녹이 슨 철계단이 있었다.
"그럼, 잘 가게."
스미스는 계단 밑에 선 채로 말했다.
"어디로 가면 되는 건가?"
"그냥 계단을 올라가면 되네."
"이 계단은 어디로 통해 있나?"
그러자 스미스는 자기가 먼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브레인을 뒤돌아보는데 그 입가에는 이상야릇한 웃음이 번져 있었다.
"자네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곳일세. 자네는 그에게 다시는 괴롭히지 말라고 부탁하게나."
"대체 그게 누구란 말인가?"
브레인이 물었으나 스미스는 그 이상 아무 말도 않고 계속 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할 수 없이 스미스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통로의 끝까지 가니까 문이 있었다. 문 저쪽에는 밝은 전등이 켜진 방이 있었다.
그는 거기에 한 발 들여놓자,
"으악!" 하고 외쳤다.
그곳은 커다란 무덤 속이었다.
 
무덤 속에서
 
커다란 아치형의 천장에는 끝에서 끝까지 정밀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신 같은 청년이 천사와 더불어 천국으로 올라가려고 하고 있었다.
브레인은 그 청년의 모델이 누군지 곧 알 수 있었다.
"래리 사장이다!"
스미스가 끄덕였다.
"그래, 맞았네. 여긴 래리 사장의 무덤일세."
"그렇지만……?"
하고 브레인은 더듬으며 물었다.
"그가 내게 달라붙은 것을 어떻게 알았나?"
"자네하고 관계 있는 사람 중에서 최근 죽은 사람은, 더욱이 내세에 가지 못한 것은 래리 사장뿐이니까 말이네."
"그렇군. 그런데 왜 그가 내게 달라붙느냐 말이네."
"그건 알 수 없지. 래리 사장 자신에게 물어 보면 알게 되겠지."
브레인은 벽화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예수나 석가뿐만이 아니라 아랍이며 중국,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신들의 그림까지 그려져 있었다.
"어째서 이런 걸 그려 놓았지?"
"죽은 사람의 넋을 위안하기 위해서."
"그렇지만, 래리 사장은 죽어서도 내세에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을 텐데."
"그건 그렇지 않다네. 원래 큰 부자라는 것은 내세에 가서도 보통 사람이 가는 내세로는 만족하지 않는다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신을 그려 장식을 하면 좀더 특별한 내세로 가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지."
스미스는 설명을 하면서 방을 가로질러 제일 구석에 시체가 놓여 있는 방 앞으로 갔다.
브레인은 그 앞에서 주저했다.
"이 속에 시체가 들어 있나?"
"그렇지."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나?"
"괴롭히는 게 싫으면 별 수 없지."
스미스는 문을 열었다. 안은 강당처럼 넓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보석을 박은 황금의 관이 놓여 있고 그 둘레에는 깜짝 놀랄 만큼 많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그림, 조각, 악기, 세탁기며 냉장고, 난로, 옷이며 책, 게다가 자동차와 헬리콥터까지 있었다.
또한 테이블 위에는 훌륭한 식사 준비까지 다 되어 있었다.
브레인은 어이가 없어서 스미스에게 물었다.
"대체 이건 무엇 때문이지?"
"이러한 물건들의 혼이 내세까지 주인을 따라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부자란 원래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것 같군."
브레인은 래리가 불쌍해졌다.
과학의 발달도 영생조차도 인간의 어리석음을 조금도 바꿔 놓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마치 그 옛날의 이집트의 왕들이 피라미드이며 묘 속에 여러 가지 금은보화를 저축해 두었던 것처럼 래리도 이런 어리석은 짓을 했던 것이다.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스미스는 테이블 위에 있던 보석함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그것을 반들반들한 대리석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보석상자의 뚜껑이 열리며 속에 든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슨 짓이야?"
브레인이 깜짝 놀라서 외쳤다.
"떠돌이 유령에게 떨어져 달라고 하겠다면서?"
"물론이지."
"그렇다면 이렇게 해서라도 놈을 혼나게 해 줘야 한다고."
스미스는 또다시 그곳에 놓인 호화스런 검은색 탁자를 힘껏 걷어찼다.
"옳지! 그럴 듯 하군."
브레인도 스미스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래리의 유령은 여기에 있는 물건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게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중한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걷어차고 때려부수고 하면 생각이 좀 달라지겠지.'
하고 브레인은 생각하고 그곳에 있던 그림을 집어들어 탁자 모서리에다 두들겨 부수려고 했다.
"그만 그만!"
EMB00000cd0695e머리 위에서 소리가 났다.
브레인과 스미스는 위를 쳐다보았다.
천장 부근에 청백색 안개가 낀 것처럼 느껴졌다. 목소리는 그 속에서 약하게 들려왔다.
"그림엔 제발 손대지 말게!"
"래리냐?"
브레인이 물었다.
"어째서 내게 달라붙어 귀찮게 굴지?"
"네놈 책임이니까. 네 놈은 살인자야."
"천만에. 네가 유령이 된 건 내 책임이 아니다."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때부터 내가 하는 일엔 액이 붙어서 하는 일마다 되는 것이 없었거든. 모두가 네놈 때문이다. 그래서 난 어디까지나 네 놈에게 달라붙어서……."
브레인이 그림을 치켜들었다.
"그것만은 그만둬!"
래리가 쇳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게서 떨어지겠나?"
"그 그림을 내려 놔주게!"
브레인은 천천히 그림을 내려놓았다.
"알았네. 쫓아다니는 걸 그만두기로 하지."
래리의 말이었다.
"사실은 쫓아다닐 필요도 없지. 브레인, 네 놈은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뭐를 말이야?"
"너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다. 죽는 거야. 그것도 제 손으로 말이지!"
"뭘 쓸데없이 알 수도 없는 소릴 지껄이는 거야."
하고 브레인은 코웃음쳤다.
"실컷 웃고나 있어라. 언젠가 그렇게 된다. 언젠간 그렇게 된다……."
래리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이윽고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것과 함께 청백색 안개도 사라졌다.
그로부터 조금 지나서 브레인은 스미스에게 인도되어 땅 위로 나왔다.
"아주 고맙네, 스미스. 덕택에 살았어."
브레인이 인사를 하자 스미스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감사할 필요까진 없네. 만약에 래리의 유령이 자네를 죽이거나 하면 내가 곤란하게 되네. 자네가 죽어버리면 내 수수께끼도 풀리지 않게 되니까. 그러니 제발 몸조심하게."
스미스는 잠시동안 그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마침내 사라졌다.
브레인은 속으로 이상한 친구도 다 있군 하고 생각했다.
 
수상한 여인
 
다음날부터 브레인은 또다시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는 맨 처음에 생각한 대로 요트 설계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요트 회사라는 회사는 모조리 돌아다녔다.
그러나 역시 어느 요트회사에서도 시대에 뒤떨어진 요트 설계기사 따위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 사이에 그는 오래간만에 마리의 집에 갔다.
마리는 그의 이야기를 듣자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런 짓을 해봐도 소용없어요. 토마스, 제가 돈을 드릴 테니 뉴욕에서 멀리 떠나는 게 어때요? 피지나 사모아 같은 곳이 좋을 것 같네요."
"어째서 그런 곳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마리는 안절부절 해서 방안을 왔다갔다했다.
"그건 말이죠. 당신에게는 이 22세기의 뉴욕이 생리에 맞지 않아요."
"그런 일은 없다고 생각해. 왜냐고? 하여튼 지금까지 나 혼자서 잘 해 왔으니까."
"한번쯤 사냥에 나갔다고 그게 뭐 그리 큰 경험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건 마치 당신이 살던 시대에 남태평양의 토인이 뉴욕 구경을 와서 디즈니랜드를 구경한 것과 별 차이가 없어요. 그것으로 뉴욕 전체를 알았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지요. 22세기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인 거예요."
마리는 입술을 깨물고 잠깐 이야기를 중단했다가 다시 계속했다.
"당신은 여기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또 래리 사장의 무덤도 침범했다면서요? 그것 때문에 렉스 동력회사의 중역들이 매우 화를 내고 있어요. 이제 어떤 복수를 당할는지 알 수 없어요. 그리고……."
마리는 말을 할까말까 하고 주저하는 모양이었지만 마침내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좀비인 스미스의 정체도 아직 알 수 없는 거고."
"스미스는 괜찮아. 그리고 렉스 동력회사도 이젠 내 일 같은 건 잊어버렸을 텐데 뭐. 그렇게 걱정할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군요."
마리는 초조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기분을 상대방에게 전달하지 못한 채 헤어졌다.
그러나 브레인은 체념하는 일없이 요트 회사를 찾아다니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래서 마침내 야콥센 요트상회라는 곳에서 부유층을 위해 만들고 있는 구식의 요트를 만드는 일에 브레인을 고용하겠다고 했다.
"단, 처음은 임시 고용원이니까 잡일이고 뭐고 아무 일이나 다 해줘야 할텐데, 그래도 괜찮겠소? 그래도 된다고 생각되면 점차 승진시켜 주겠소. 그래도 좋겠소?"
기사장이 말했다.
"예. 힘껏 일하겠습니다. 기사장님, 감사합니다!"
브레인은 기쁜 나머지 어쩔 줄을 몰랐다.
다음날부터 브레인은 매일 야콥센 요트상회에 출근했다.
회사에 나가면 청소를 하거나 봉투 겉봉을 쓰거나 혹은 심부름을 가거나 하는 식의 잡일이 많았고, 요트 설계의 일은 적었지만 그는 열심히 일을 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22세기의 요트에 관해 공부를 했다.
원래 좋아하는 요트에 관한 일이었기 때문에 브레인은 그 지식을 빨리 소화시켰다.
그 다음엔 광고 일을 맡아하게 되었다. 그것은 옛날 20세기에서 그가 하고 있던 일과 아주 흡사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그가 이 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서 마침내 그를 하급 요트 설계기사로 승진시켜 주었다.
브레인은 기뻤다. 그러나 동시에 어쩐지 우습기도 했다.
죽은 후 150년이나 지나서 다시 태어나 또다시 옛날과 같은 하급 기사가 되었으니…….
그렇지만 이것으로 간신히 22세기에 적응되기 시작한 기분이었다.
그는 그것을 마리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몇 번이나 연락했는데도 렉스 동력회사의 일이 바빠서 언제나 나가고 없었다.
얼마동안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렉스 동력회사는 물론이고 스미스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자기의 뒤를 누가 밟고 있는 것 같은 육감이 들었다.
그것은 브레인이 평상시와 같이 일을 끝내고 정류장에서 헬기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한 젊은 여자가 물끄러미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에 브레인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그 여자가 자기를 계속 바라보고만 있자 어쩐지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어째서 저렇게 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었다.
물론 그 여자는 전에도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그는 깜짝 놀랐다.
마리가,
'당신은 자기에게 어떤 위험이 다가 오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여자는 렉스 동력회사의 스파이일는지도 모르겠다.'
브레인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 여자가 결심한 것처럼 터벅터벅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마리 소온 양 말입니까?"
브레인은 되물었다. 아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 여자 말이에요. 그 여자가 어떻게나 유혹했던지 오빠의 마음이 보험 얘기에 미쳐 버렸던 거죠. 아주 말을 잘 해서……. 그리고 그럴싸한 소리만 늘어놓으니까요. 그래서 오빠는 제 얘기 따윈 들은 척도 않고 그만 계약해 버렸던 거예요. 그래서 마침내 육체를 빼앗겨 버렸답니다."
브레인은 언짢은 기분이었다.
모르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사기에 걸려서 빼앗긴 육체를 쓰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 마리가 목적을 위해선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런 인간이었단 말인가? 마음이 약해진 사냥꾼을 억지로 설득시켜 가지고 실험에 필요한 육체를 사다니?'
브레인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리스는 오히려 미안하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미안해요, 브레인 씨. 프랭크는 자기 스스로 몸을 팔았던 것이고, 당신은 그런 내막을 조금도 모르고 그 육체를 쓰고 있는 것뿐이니까 당신 탓이 아닌데 이런 불쾌한 얘길 해서……. 그렇지만 전 오빠를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우연히 거리에서 당신을 보았을 때 그만 참을 수가 없어서 얘기를 걸었던 거예요."
"잘 알겠어요. 아리스 양!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브레인은 슬퍼하는 아리스를 오히려 위로해 주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도 아리스는 오빠는 아니지만 예전의 오빠의 육체를 사용하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어서 조금은 위로를 받았는지 차차 기분이 좋아져 마침내 생긋 웃으며 헤어졌다.
브레인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앉은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아름다운 마리가 그런 강인한 인간이었던가? 그렇다면 이건 좀 다시 생각해 봐야할 문제인지 모르겠군.'
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세보험
 
그로부터 이삼일 후에 브레인은 또다시 영혼 교환국에서 통지를 받았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가보니 역시 멜힐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토마스, 잘 있었나?"
멜힐의 목소리가 전번과 같이 스피커에서 울려 나왔다.
"멜힐인가? 지금 어디에 있나?"
"아직 내세 입구에 있네. 그렇지만 앞으론 그리 오래 있게 될 것 같지가 않네. 왜냐하면 내세에서 빨리 들어오라는 소식이 왔다네. 그래서 내세로 가기 전에 꼭 자네에게 할 말이 있어서 자네에게 연락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어떤 얘긴데?"
"마리를 조심하게."
"뭐라고?"
브레인은 놀라서 되물었다.
"마리를 조심하라고……."
"그건 또 왜?"
"그 여자는 자네를 배반할 지도 몰라."
"그래? 그건 어째서지? 마리는 나를 몇 번이나 도와줬었는데……. 동서남북조차 분간 못하는 이 22세기에서 맨 처음으로 친절을 베풀어 준 것이 바로 그녀였는데. 그런 여자가 어째서 나를 배반한단 말인가? 그리고 또 어떻게 해서 배반한단 말이지?"
"그건 나도 알 수 없네."
멜힐이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마리가 요새 계속 렉스 동력회사의 중역들과 무엇인가 비밀 회담을 하고 있다네. 그 중역들의 회의실이란 게 영혼이 들어갈 수 없게 방호 스크린에 둘러쳐 있어서 안에서 어떤 의논이 진행되고 있는 건지 통 알 수 없단 말일세. 그렇지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그러네. 브레인 자네의 몸에 어떤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그리고 마리는 분명히 그 비밀의 음모에 가담하고 있단 말이네."
브레인은 그의 말을 잠시 생각하고 나서 대답했다.
"잘 알았네. 앞으로 조심하겠네."
"브레인, 나의 충고를 들어주게. 그건 하루빨리 이 뉴욕을 떠나 어딘가 먼 곳으로 가란 말일세."
브레인은 속으로 놀랐다.
그 말은 마리가 자꾸만 자기에게 권하던 말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그러나? 멜힐."
"계속 뉴욕에 머물러 있으면 자네의 목숨은 그리 오래지 않을 걸세."
"그 이유를 알고 싶단 말일세. 멜힐, 그 이유를 분명히 알 때까지 나는 언제까지나 여기에 버티고 있을 걸세."
"자네라는 인간도 고집불통이군."
멜힐은 별 수 없다는 듯이,
"할 수 없군. 어쨌든 일체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아무도 믿어서는 안되네. 꼭 명심하길 바라네."
하고 말했다.
"응, 잘 알았네. 꼭 명심하지. 멜힐, 언제 또 얘기할 수 있겠나?"
"글세!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군. 하여튼 내 말을 부디 명심해야 되네."
그리고 통화는 끝났다.
브레인은 지금까지보다도 한층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아파트로 돌아왔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그가 침대에서 늦잠을 자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도어 텔레비전을 바라보니 거기에 옷매무새가 깨끗하고 성실해 보이는 청년이 서 있었다.
"토마스 브레인 씨, 계십니까?"
"있긴 있습니다만 당신은 누구요?"
"저는 불사판매 회사에 있는 반스 파렐이란 사람입니다. 말씀드릴 게 있어서 찾아 왔습니다. 이것이 저의 신분증명서입니다."
그는 도어 텔레비전 카메라에 손에 든 카드를 내밀었다.
그것은 에어 카의 비행면허증과 회사의 신분증명서였다. 그리고 지문 증명서도 있었다.
가짜는 아닌 것 같았다.
브레인은 도어의 버튼을 눌러 파렐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증명서를 많이도 갖고 다니십니다 그려."
브레인의 그 말에 파렐은 빙그레 웃었다.
"자격도 없는 놈들이 내세 보험의 외무원을 하는 가짜들이 많아서랍니다. 모든 사람이 누구나 영생하기를 바라지요. EMB00000cd0695f그렇지만 내세 보험은 굉장히 비싸기 때문에 누구나 다 보험에 가입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게 때문에 그럴싸한 말로 사기를 치는 자들이 꽤 있답니다. 사실 전 재산을 사기 당한 사람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이렇게 증명서를 많이 가지고 다닙니다. 물론 경찰에서야 엄중히 단속을 하고 있습니다만 사기꾼들이 법망을 뚫고 아주 교묘하게 빠져나가기 때문에 단속하기가 몹시 힘이 들지요."
"예, 그렇군요. 그런데 제게 무슨 용건이 있어서 오셨습니까? 나는 도저히 내세 보험에 들만한 재력이 없으니까 아무리 권한다 해도 소용없는 일인데요."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로 오기 전에 당신의 재산 상태를 조사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째서 나를 찾아 온 겁니까?"
"실은 내세 보험에서는 매해 상당수의 무료 서비스를 해 드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번에 그런 무료 서비스에 당선되셨습니다."
"뭐라고요?"
브레인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었다.
"그건 무엇인가 잘못 알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글쎄 나는 어떤 퀴즈에 나간 일도 없고 복권을 산 기억도 없소. 그리고 은행도 회사도 관계가 없는 걸요."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메인파벤저 섬유회사가 매년 거행하는 자선서비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메인파벤저 섬유회사라는 것은 나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쪽에선 당신을 잘 알고 있는 걸요. 당신이 1958년의 세계에서 오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요?"
"메인파벤저 섬유회사에서는 과거의 세계에서 멀리 이 22세기까지 오신 분에 대한 환영의 뜻으로 내세 보험에 가입시켜 드리기로 했답니다."
파렐은 빙그레 웃으며 브레인을 보았다.
"축하합니다, 브레인 씨. 당신은 이 상품을 안 받으시겠습니까?"
브레인은 그 청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청년은 지극히 진실해 보였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불사판매회사로 문의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돈 한푼 없는 자기를 속여서 뭘 하겠다는 말인가. 설혹 속았다 해도 별로 손해 될 것도 없는 것이다.
내세 보험에 무료로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런 멋진 선물이 이렇게 쉽사리 굴러들어 올 줄이야…….
그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크나큰 기쁨이 샘솟듯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아무도 신용하지 마라!'
그때 멜힐의 경고가 문득 가슴에 떠올랐다.
그러나 기쁨은 그 경고보다 훨씬 컸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불사판매회사의 외무원에게 물었다.
"이 서비스를 받으려면 뭘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그저 불사판매회사 빌딩까지 오셔서 간단한 수속만 해 주시면 됩니다."
단지 그것만으로 내세 보험에 가입되는 것이다. 그냥 죽게 되면 백만 명중에 한 명 정도 갈까말까한 내세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좋습니다. 서비스를 받기로 하지요. 그럼 언제 가면 되지요?"
"만약에 지장이 없으시다면 지금이라도 곧……."
"그렇게 하죠."
브레인은 일어섰다.
두 사람은 함께 아파트를 나섰다.
 
음 모
 
두 사람을 태운 헬기 택시는 곧장 불사판매회사 빌딩을 향해 날아갔다.
파렐은 브레인을 데리고 접수부로 갔다.
브레인은 신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지문을 찍고 수렵인 면허증을 내보였다.
접수부 계원은 그것을 받아 컴퓨터에 넣어 본인이 틀림없음을 확인하고 입실 허가증을 건네주었다.
다음으로 파렐은 브레인을 테스트 실로 데리고 갔다.
테스트 실에서는 젊은 기술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여러 가지 테스트를 했다.
각종 펜이 여러 장의 그래프 위를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기술자들은 그것을 들여다보며 브레인에게는 알 수 없는 전문용어로 말을 주고받았다.
브레인은 그 말을 듣고 있는 중에 점점 불안해졌다.
"여보시오! 수술이 잘 되지 않는 수도 있소?"
하고 한 기술자에게 물어봤다.
"잘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죠. 사람 따라 각각 다르니까요."
그 기술자가 그렇게 대답했다.
브레인은 그 말에 그만 충격을 받았다.
"여보시오! 불사판매회사의 선전으론 수술은 언제나 모두 성공적이라고 그러지 않았소?"
"아아, 그건 광고죠."
또 다른 기술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한다.
"그런 무책임한!"
"영생 처치는 아주 어렵고도 미묘한 수술이기 때문에 열이면 열 모두가 잘된다고만 할 수 없지요."
"그렇지만, 그 수술의 성패여부를 수술을 하기 전에는 알 수 없소?"
"대개의 경우엔 알 수 있죠. 말하자면 K-3 인자라는 것이 나오지 않으면 우선 안심해도 좋죠."
"그러면 그 K-3 인자라는 것은 또 뭔가요?"
"그걸 알면 고생하질 않게요."
기술자는 또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브레인의 겁먹은 듯한 얼굴을 보자,
"그렇지만 K-3 인자란 게 그리 흔한 게 아니니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겁니다."
라고 하면서 딴 기술자에게 눈짓을 했다.
다른 2, 3명의 기술자가 그를 둘러싸고 금세 그의 팔에 주사 바늘을 깊이 꽂았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정말이오?"
라고 물어보는 사이에도 심한 어지러움이 브레인을 습격해 왔다.
그가 비틀거리자 기술자들은 그를 붙잡아 흰 수술대 위에 들어올렸다.
의식을 다시 찾았을 때 브레인은 감촉이 좋은 소파 위에 누워 있었다. 그리고 좋은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간호사가 그에게 향기로운 음료가 든 잔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받아 마시자 곧 머리가 개운해졌다.
옆에 파렐이 서 있었다.
"기분이 어떻습니까?"
"음, 괜찮소!"
"좋으실 겁니다. 만사가 다 잘 되었으니까요."
"사실이오?"
"정말입니다. 브레인 씨, 이젠 당신도 영생하시게 됐습니다."
파렐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젠 틀림없이 영생하는 겁니까? 언제 죽든 또한 어떻게 죽든 간에 틀림없이 내세에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이죠. 어떤 원인으로 죽었든, 또 지금 이 순간에 죽든지 당신의 영혼은 영원히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기쁘시죠?"
"글쎄, 아직은 알 수 없군요."
브레인은 정직하게 말을 했다.
사실 아직은 무엇이 무엇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 기쁨이 실감나게 느껴진 것은 그때부터 약 30분쯤 지나서 아파트로 되돌아 왔을 때였다.
'나는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이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자 돌연 굉장한 기쁨이 브레인을 에워쌌다. 너무나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이젠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대로 밖으로 나가 달여오는 트럭 바퀴 밑으로 뛰어들어도 좋고, 광검사가 되어 광선총을 겨누고 있는 경찰관들에게 대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되자 비로소 처음으로 인간이 지금까지 얼마나 죽음의 그림자에 겁을 내고 두려워하면서 살아 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숨어서 사람들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죽음의 그림자에 겁을 먹고 항상 그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 무거운 짐이 지금 완전히 제거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이 자유스러움! 이 얼마나 경쾌하고 멋진 기분이란 말이냐!
그는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방안에 들어서서 문을 닫는 순간 화상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브레인입니다."
"브레인!"
그 목소리는 마리였다.
"지금까지 어딜 가셨죠? 점심때부터 계속 당신을 찾고 있었어요."
마리의 목소리는 몹시 다급하게 들렸다.
"외출했었지. 마리는 지금 어디 있지?"
"렉스 동력회사에요."
그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계속해서 말했다.
"렉스 동력회사에서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는가를 조사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브레인, 큰일 났어요."
"뭘 그렇게 다급하게 굴지. 이 세상에 그렇게 큰 일이 있을 턱이 없지."
브레인은 여전히 내세 보험에 든 기쁨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들떠 있었다.
"오늘 당신한테 불사판매회사의 세일즈맨이 찾아갈 거예요. 그 세일즈맨이 당신에게 찾아가 무료서비스의 내세 보험에 당첨됐다고 말할 거예요. 그렇지만 절대로 승낙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브레인 씨?"
"어째서지? 엉터린가?"
"아뇨. 그 세일즈맨은 물론 진짜죠. 내세 보험도 진짜이고, 그러니까 절대로 승낙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통 알 수 없군."
"설명은 나중에 하고, 하여튼 세일즈맨이 찾아와도 거절하셔야 해요."
브레인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미 늦었어. 벌써 받아버린 걸."
"뭐라고요?"
마리는 비명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아까 두세 시간 전에 그 세일즈맨이 왔다갔지. 좋은 얘기였기에 보험에 들어버렸어요. 왜 안 된단 말이지?"
"수술을 받았어요?"
마리가 화 난 목소리로 물었다.
"받았지. 지금 막 그 회사에서 돌아온 길이야."
"아아! 브레인, 어쩌면 좋아?"
마리는 두 손을 꼭 맞잡고 절망에 빠진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게 왜? 어째서 안 된단 말이지?"
브레인도 초조해서 물었다.
"세일즈맨은 메인파벤저 섬유회사에서 보낸 선물이라고 하던데……."
"그 회사는 렉스 동력회사의 자매회사란 말이에요. 브레인, 그러니까 표면으론 메인파벤저 섬유회사로 되어 있지만 사실상 보내준 것은 렉스 동력회사인 거죠. 브레인, 이건 렉스 동력회사의 음모란 말이에요!"
마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음모라고? 어떤?"
"몰라서 물어요? 내세 보험에 들면 자동적으로 자살법의 적용을 받게 되어 있잖아요, 브레인."
"자살법이라고? 그렇지만 난 내세 보험에 들었다고 그렇게 쉽사리 자살 따윈 하지 않을 걸."
"그런 게 아니에요! 자살법의 적용을 받게 되면 렉스 동력회사는 언제든지 마음대로, 더구나 법에 저촉됨이 없이 당신을 죽일 수 있게 된다는데!"
"아, 아니! 그건 대체 무슨 소리야?"
"그건 당신의 생명은 당신 것이지만 당신의 육체는 렉스 동력회사거란 말이죠. 말하자면 내세 보험에 든 이상 이제는 아무 때나 당신의 육체를 죽일 수 있게 된 것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당신은 자살한 것으로 되고……."
그러나 브레인에게는 아직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째서지? 마리, 왜 렉스 동력회사가 날 죽이려고 하지?"
"예전에 제가 한번 얘기한 일이 있죠. 렉스 동력회사가 당신을 과거의 세계에서 제멋대로 데려온 죄로 법원에 고소 당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 래리 사장이 당신에게 자살을 권한 일이 있었죠. 하여튼 당신이 없어지게 되면 법원도 고소할 이유가 없어지잖아요."
간신히 그간의 사정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랬었군! 이제야 알겠어. 마리가 전부터 뉴욕에서 멀리 떠나버리라고 하던 것도 그 때문이었군."
"그래요. 회사가 당신을 없앨 방법을 이것저것 연구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아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피하도록 하세요. 제가 도와드릴 테니까. 우선 당신은……."
갑자기 거기서 전화가 끊어졌다. 영상이 깜빡 사라졌다.
브레인은 초조해져서 다이얼을 계속 돌려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선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다.
지금까지 계속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주고 있었던 그 우쭐대던 기분! 그 미칠 듯한 기쁨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아직 죽고 싶진 않다!'
그는 마음속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영원한 생명도 좋지만 아직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았다.
아직 공기를 마시고,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살고 싶다. 어떻게 해서든 살고 싶다.
'죽는 건 싫다!'
그는 재빨리 돈이며 그밖에 필요한 물건들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만약에 렉스 동력회사가 죽이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냥 아파트에 있다는 것은 마치 그물 속에 들어 있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렉스 동력회사에서는 이미 그가 이 음모를 눈치챈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까 마리하고의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다.
그는 슬며시 문을 열고 복도를 둘러보았다.
복도에는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황급히 복도로 빠져나가서 달리기 시작했다.
모퉁이를 막 돌려고 하는 순간 그곳에 불길한 사내가 우뚝 서 있었다.
 
막다른 골목
 
'아차!'
브레인은 몸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조금 늦었다. 사내는 커다란 핸드 미사일을 브레인의 배에 겨냥하고 있었다.
회사에서 보낸 사냥꾼이다.
'이젠 틀렸다.'
각오를 했을 때 그 사내가 놀란 듯이 소리를 질렀다.
"난 또 누구라고……. 토마스 브레인이 아닌가!"
그건 저 새미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네가 이번 일에 목표물이었단 말인가? 내가 자네를 죽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네. 하지만 일은 일이니까."
새미는 그의 가슴을 겨누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자네가?"
"렉스 동력회사가 일류 사냥꾼을 고용하고 싶었던 게지. 그래서 내가 뽑힌 걸세. 자 걱정 말게. 한 방으로 깨끗하게 해 줄 테니까."
"잠깐만. 아직 난 죽고 싶지 않아!"
브레인은 손을 들어 내저으며 말을 했다.
"야, 자네답지 않군. 자살을 지원해 놓고 이제 와서 겁을 내다니."
"아닐세. 난 자살 같은 걸 지원한 일이 없어. 아직 죽고 싶지 않단 말일세."
"알 수 없군. 자넨 내세 보험에 들었잖았나?"
"속았어! 사기에 걸렸단 말일세. 난 살고 싶어. 새미, 제발 날 살려주게!"
새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브레인을 겨누고 있던 핸드 미사일을 아래로 내렸다.
"옛날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었는데. 목표물을 동정하게 되다니……."
새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좋아, 브레인. 도망쳐라. 사냥의 목표물은 달리고 있는걸 겨냥하는 게 훨씬 재미있지.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될수록 빨리 도망가게. 앞으로 다시 만나면 그땐 용서 없다."
"고맙네, 새미!"
브레인이 복도를 달려나가려고 하자 다시 새미가 불러 세웠다.
"잠깐만 브레인, 자네가 알고 있는 사냥꾼 전부가 지금은 자네의 적일세. 뿐만 아니라 교통로에는 모두 망이 쳐졌네. 발견만 되면 죽일 걸세."
"고맙네!"
브레인은 계단을 뛰어내리며 외쳤다.
큰길로 나갔으나 어느 쪽으로 가야할 지 통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어물어물할 시간은 없었다.
어두워질 때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있다. 그때까지 어디엔가 숨어 있지 않으면 틀림없이 죽게 된다.
브레인은 그렇게 판단을 내리자 지저분한 빈민굴 쪽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빈민굴은 낡아빠진 아파트며, 지저분한 술집이며, 이상야릇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줄을 지어 있었다.
브레인은 그런 거리를 여러 사람 사이에 섞여서 걸어갔다.
'어떻게 해서든 한시 바삐 뉴욕을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냥꾼들에게 들켜서 그 자리에서 죽게 되겠지. 그렇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도망칠 수 있단 말이냐?'
교통로에는 모조리 망이 둘러쳐져 있다고 새미가 알려 주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무기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것이다.
'무기만 있다면 어떻게든 해 보겠지만…….'
물론 사냥의 목표물이 무기를 갖는다는 것은 법률로 금지되어 있다. 만일에 그가 사냥꾼 중 한 사람이라도 부상을 입히거나 죽이거나 하게 되면 경찰관은 그의 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골똘히 생각하면서 걸어가다가 문득 발을 멈추니 바로 눈앞에 총포상이 있었다.
그 진열장에는 반짝반짝하게 닦은 광선총이며 핸드 미사일이며 나이프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브레인은 빨려들 듯이 가게 속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무얼 드릴까요?"
점원이 카운터 저편에서 물었다.
"총을 좀 봅시다."
하고 브레인이 말했다.
"어떤 총 말씀입니까?"
"그렇군! 광선총이 좋겠지."
점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케이스 안에서 소형 광선총을 꺼내 브레인에게 주었다.
"이건 어떻습니까? 값도 싸지만 소형이라서 가볍고 그러면서도 위력은 충분하답니다. 금성의 공룡 수렵용으로도 사용되는 총입니다."
브레인이 손에 받아 보았다. 묵직한 게 믿음직했다.
점원은 계속 자랑을 늘어놓았다.
"오백 미터쯤 떨어졌어도 틀림없이 목표물에 명중합니다. 그 노출 조절 다이얼로 광선을 부챗살처럼 넓힐 수도 있고 바늘 끝처럼 뾰족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답니다."
"좋아. 그럼 이걸로 하죠."
브레인은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그러나 점원은 총을 손에 들고 또다시 설명을 늘어놓았다.
"이 단추로 광선을 연속적으로 또한 한발 한발씩으로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는 4시간용입니다. 충전기는 어느 총포점에서나 간단히 갈아 끼울 수 있습니다."
"이걸로 정했어요. 얼맙니까?"
"75달러입니다."
브레인은 돈을 건네주고 총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점원은 총을 든 채로 말했다.
"그전에 수렵 허가증을 보여 주십시오."
브레인은 수렵 증명서를 점원에게 내 보였다.
"빨리 주게. 바쁘니까."
그는 또 손을 내밀었으나 점원은 총을 든 채,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카운터 안에 있는 사진을 잠깐 들여다 본 후 그 이름과 증명서의 이름을 비교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에게는 팔 수 없습니다."
"어째서요? 증명서를 봤지 않소?"
"여보세요. 하지만 당신은 사냥의 목표물이 아니요? 목표물이 무기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을 테지요? 삼십분 전에 당신의 이름과 사진이 전 뉴욕에 배포됐어요."
브레인은 점원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그때는 벌써 점원EMB00000cd06960의 손이 광선총을 꽉 잡고 총구를 이쪽을 겨누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라!"
점원은 또 한 손으로 재빨리 카운터의 뒤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2, 3분만 있으면 곧 사냥꾼들이 올 거요."
브레인은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지갑을 점원의 얼굴에 던져 상대방이 멈칫하고 주춤거리는 사이에 가게 밖으로 뛰쳐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미 밖은 황혼이 깔려 있었다. 그렇지만 점원의 연락으로 이 주위 일대에는 벌써 사냥꾼들이 달려오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달리면서 브레인은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처럼 생각됐다.
그러나 잘못 들은 게지 하고 뒤돌아보지도 않고 사람들을 비집으며 자꾸만 도망쳤다.
그러자 모퉁이에서 한 사내가 유유히 나타났다.
세시우스였다.
그는 엷은 웃음을 띄우며 광선총을 빼들었다.
브레인은 황급히 큰 거리를 옆으로 빠져 뒷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거리를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가다가 도중에서 멈칫 서 버렸다.
뒷골목을 빠져나가는 곳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등뒤에서 빛을 받고 있어서 사람의 모습은 어둡게 되어버려 누군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 한 손은 허리에 대고 또 한 손은 팔을 내밀고 있었다. 그 손에는 광선총이 들려 있었다.
브레인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뒷골목 입구에는 세시우스가 버티고 서 있었다.
이젠 독 안에 든 쥐다!
앞의 사냥꾼이 광선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굉장한 광선이 어둠을 뚫고 브레인의 겉옷 소매를 태웠다.
브레인은 그때 약간 문이 열려 있는 집을 발견하자 그리고 뛰어갔다. 그렇지만 브레인이 달려가자 문은 덜컹하고 닫혀버리고 말았다.
또 번쩍하더니 브레인의 등에 새카만 구멍을 뚫었다.
세시우스가 천천히 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브레인은 세시우스 쪽으로 달려갔다.
"비켜라! 세시우스, 내가 한다."
"오케이, 부탁한다. 핸드릭!"
세시우스는 큰 소리로 대답하고는 총에서 나온 죽음의 광선이 닿지 않도록 벽에 바싹 달라붙었다.
핸드릭이라는 남자가 또 광선총을 쏘았다.
브레인은 넙죽 땅바닥에 엎드렸다. 그대로 데굴데굴 굴러서 도망치자 그 뒤를 광선총에 끈질기게 따랐다.
보도의 콘크리트 위에 불탄 자국이 생기고 물이 고인 곳에서는 쏵 하고 소리를 내며 물이 증발했다.
그러니 광선에 잡히는 것은 이미 시간문제였다.
'아아, 마침내 나는 이런 죽음을 당해야만 했던가!'
브레인은 보도 위를 뒹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지하철의 쇠창살이며 맨홀의 뚜껑이 딱딱하게 몸에 부딪쳐 아팠다.
광선이 범위를 좁혀 왔다.
순간 발 밑에 있던 지하철의 쇠창살이 덜컹하고 밑으로 빠지며 그의 몸은 쇠창살과 함께 거꾸로 박혔다.
털썩하고 굉장한 힘으로 땅 위에 떨어졌다. 어깨가 부서지는 것 같은 아픔에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죽을힘을 다해 일어나 위에서 보이지 않을 곳까지 몸을 질질 끌고 갔다.
간신히 몸을 감추었을까 하는 순간, 위에서 광선이 쏟아져 들어와 굉장한 기세로 콘크리트 위에 불꽃이 튀었다.
일 초만 늦었어도 틀림없이 죽었으리라.
'살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발에서 힘이 쭉 빠지고 그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곧 의식이 멀어져 갔다.
마지막으로 의식이 없어져 가면서 그는 생각했다.
'역시 할 수 없었다. 이젠 그들이 내려와 나를 죽일 테지.'
그리고는 아무 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추 방
 
정신을 되찾을 때 브레인은 내세라는 곳은 여태껏 상상한 것만큼 기분 좋은 곳은 아니군 하고 생각했다.
어두컴컴하고 흙탕과 기름냄새가 났다. 머리는 쾅쾅 울려서 아프고, 등이며 허리며 어깨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건 이상하군. 죽어서 혼백만 남았을 텐데 이렇게 여기저기 아파서야…….'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는 정신이 번쩍 들며 눈이 떠졌다.
살아 있는 것이다. 아직 내세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좀 어떤가?"
가까이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브레인은 어둠을 향해 소리질렀다.
"나 스미스일세."
"자네였나! 또 나를 구해줬네 그려."
브레인은 욱신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일어났다.
"아주 아슬아슬했지."
하며 좀비는 대답했다.
"자네가 목표물이라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왔다네. 우리 좀비 일행이 열심히 자네 이름을 불렀는데 자네는 영 듣지 못하더군."
"그랬나? 그럼 아까 그건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네 그려."
"그때 돌아다 봐주기만 했더라면 곧바로 여기에 데리고 올 수 있었지. 그렇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하기에 뒤를 밟아 EMB00000cd06961왔네. 어떻게 해서든 자네를 구출하려고 여러 번 지하철의 쇠창살로 가 맨홀 뚜껑을 열었지만 모두 헛수고였네."
"그럼, 그 맨홀 뚜껑이며 쇠창살은 저절로 벗겨진 게 아니었나?"
"물론이지. 우리들이 벗겼다네. 너무 지나치게 난폭한 방법이라서 미안했네만, 그런 방법밖엔 없었으니까."
"아아 고맙네."
브레인은 목덜미를 쓰다듬으며 고마워했지만 스미스는 그 말은 들은 척도 않고 말을 계속했다.
"그래서 정신을 잃은 자네를 큰길에서 이 뒷골목 쪽으로 옮겨왔네. 여기라면 사냥꾼들도 그리 쉽사리 찾아낼 수는 없을 걸세."
"정말로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해야 좋을 지 알 수 없네."
"그런 인사는 필요 없네. 나는 자네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
"이젠 그 이유를 알았나?"
"아니, 아직 모르네."
어둠에 익숙해지니까 차츰 좀비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겠나?"
"지하로 빠져 뉴욕을 탈출시켜주지. 그 다음은 자신이 해야지."
"그럼 빨리 가세."
"잠깐만. 지하세계를 통과하려면 킹의 허가가 필요하네. 지금 그걸 킹에게 허락 받고 있는 중일세."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노라니까 얼마 안되어 큰 흑인 남자에게 매달리다시피 해서 이쪽으로 오는 킹의 모습이 보였다.
"큰일날 뻔했네, 브레인."
하고 킹이 말을 걸었다.
"킹 영감님, 브레인을 뉴욕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지하세계를 통과하고 싶은데 허가해 주시겠습니까?"
스미스가 공손히 물었다.
그렇게 말을 하고 노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열두 명의 좀비들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우리들은 이미 사냥꾼하고 얘기가 됐네. 그래서 자네를 30분 이내에 분명히 지상으로 돌려보내겠다고 약속을 했지. 자네는 곧 여기를 나가야 하겠네."
"어째서 이번엔 구해 주시지 않는 겁니까?"
브레인은 절망에 떨며 킹에게 물어 보았다.
"우리들 좀비는 지상세계 사람들의 덕으로 여기에 살고 있는 것이라네. 그러니 그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네."
킹은 우울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가 여기로 온 지 얼마 안돼서 몇십 명이나 되는 사냥꾼이 밀려 들어왔네. 그리고 우리들 좀비를 못살게 굴어 자네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냈다네. 30분 이내에 자네를 내놓지 않으면 우리들을 모조리 죽이고라도 찾아내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나로서는 그들의 얘기를 안 들을 수 없었다네."
"그랬습니까? 아니 너무 폐를 끼쳤습니다."
브레인은 힘없이 일어섰다. 그러자 킹은 그의 손을 잡고,
"아직 체념하는 건 이르네. 나는 자네를 지상의 어느 곳으로 내 보내겠다고 는 하지 않았으니까. 지금부터 자네를 서 79가에 있는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지하철 출구로 안내해 주지. 거기는 아직 지키고 있지 않을 것이니까."
노인은 브레인의 손을 굳게 잡았다.
"거기에 자네 친구가 기다리고 있을 걸세. 그 뒤론 그 친구가 도와줄 걸세."
"친구? 그게 누굽니까?"
"이젠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자 빨리!"
킹에게 재촉 받은 브레인은 걷기 시작했다.
스미스며 그밖에 좀비들도 브레인의 뒤를 따랐다.
꼬불꼬불한 지하철의 미로 속을 걸어 가노라니까 머리가 아픈 것도 차츰 낳았다. 이윽고 일행은 콘크리트 계단이 있는 곳까지 왔다.
"여기가 출구라네. 브레인, 무사하기를 빌겠네."
"고맙습니다, 킹 씨. 고맙네, 스미스."
"살아있어 주게. 난 반드시 자네를 만나러 가네."
스미스의 말이었다.
브레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계단을 다 올라가 밖으로 나가자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79가는 강아지 한 마리 얼씬하지 않고 조용했다.
사냥꾼들이 아직 여기까지는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친구가 기다린다고 했는데 틀림없이 마리일 거야. 아직 오지 않은 걸까?'
하고 생각했을 때
"브레인!"
하고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했던 것 같은 마리의 음성이 아니고 남자의 목소리였다.
브레인은 섬찟 놀랐다.
사냥꾼 중의 한 사람, 새미가 아니면 세시우스의 목소리 같기도 했다.
그는 재빨리 지하철 입구로 되돌아오려고 했다. 그러나 그 철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아차! 함정에 빠졌군.'
그는 이를 갈았다.
 
탈 출
 
"브레인, 브레인! 날세 나야!"
또다시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브레인은 주위를 살펴봤으나 역시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돌연 그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아차렸다.
"레이? 레이 멜힐인가?"
"당연하지."
멜힐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고맙네!"
"목소릴 낮춰라! 사냥꾼들이 가까이 와 있네. 이제부터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게. 알겠나?"
"알았어."
브레인은 공중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를 향해 대답했다.
"바로 지금이다. 서쪽으로 빨리!"
브레인은 지하철 입구를 떠나 서둘러 큰 거리를 걸어갔다. 2, 3분쯤 걸었을까 할 때 갑자기 멜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그 빌딩 옆에 숨어."
브레인은 재빨리 빌딩 구석에 몸을 숨겼다.
헬기 카가 빌딩 옥상을 스칠 듯이 지나갔다.
"사냥꾼일세."
라고 멜힐이 속삭였다.
"자네를 잡기 위해서 사냥꾼들은 대운동회를 벌리고 있네. 자네 목에 걸린 상금이 온 거리에 나붙었다네. 자네의 거처만 알려줘도 상금을 받을 수 있어. 이런 상황이니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네."
"멜힐, 정말 고맙네.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그런 말은 안 해도 돼. 난 이제 에너지가 얼마 남지 않았어. 그래서 자네를 구하는 일만 끝나면 바로 내세로 가네."
"멜힐……."
"가만! 듣고만 있게. 에너지가 다 되어서 많이 말할 수가 없어. 마리가 자네를 미국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준비를 다 끝냈네. 마리에게는 미안하게 됐네. 사정을 잘 몰랐기 때문이었지만 그 대신 그녀를 도와 지금부터 자네를 어떤 사람들에게 데리고 가겠네. 자, 그럼 앞으로 가게!"
브레인은 빌딩 밑에서 나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어떤 계획인가?"
"그건 나도 몰라. 잠깐만 그 우체통 뒤에 숨게!"
브레인은 재빨리 우체통 뒤로 몸을 숨겼다.
EMB00000cd06962그때 세 사람의 사냥꾼이 무기를 들고 거리 모퉁이로 나타났다. 세 사람이 모퉁이를 돌아서자 멜힐은 브레인에게 가라고 했다."눈이 잘 보이는군."
"아니, 아무거나 다 보인다네. 어서 이 길을 가로질러 가게."
브레인은 전속력으로 대로를 가로질렀다.
그는 그로부터 약 15분 동안 멜힐이 말하는 대로 큰길을 앞으로 갔다 꺾어졌다 또는 옆 골목으로 빠져나가기도 하고 멈춰 서기도 하고 되돌아가기도 하여 어떤 높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 빌딩일세. 351호실에 가면 마리가 고용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을 걸세. 브레인, 또 만나세. 그럼 어서 가게!"
"앗, 잠깐!"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다.
브레인이 차도로 나선 순간 두 사내가 거리 모퉁이를 돌아서며 브레인을 발견했다.
순간 그 중의 한 사내가 브레인을 손가락질했다.
"저놈이다!"
"그래 저놈이다! 잡아라!"
사내들이 브레인을 향해 달려왔다.
브레인은 주먹을 쥐고 앞서 오는 사내에게 주먹을 먹였다.
"와!"
그 사내는 나가 떨어져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또 한 사내를 보니 그쪽은 멜힐이 상대를 하고 있었다.
사내의 귓가에 쓰레기와 깡통 뚜껑이 덜그럭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사내는 두 팔을 번쩍 쳐든 채 와아와아 고함을 지르며 깡통 뚜껑을 피하려 하고 있었다. 브레인은 달려가서 사내를 후려갈겼다.
"자, 이젠 괜찮을 걸세."
멜힐의 목소리가 몹시 힘이 없었다.
"이젠 에너지가 다 되었네. 이 이상은 도울 수 없네. 그럼 잘 해보게, 브레인."
"멜힐! 잠깐만!"
브레인이 외쳤으나 이미 대답이 없었다. 어물어물할 수는 없었다. 브레인은 달려서 그 빌딩으로 들어가 삼층까지 뛰어 올라갔다. 351호실 문 앞으로 가서 똑똑똑 가만히 두들겼다.
"들어오십시오."
라는 대답이 들렸다.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모두 커튼을 내려서 어두컴컴했다. 방안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앗, 네놈들은!"
두 사람의 얼굴을 보자 브레인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브레인이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원수 같은 저 육체 밀매자인 요크와 이식 기술자인 자그마한 사내였다.
그 작은 사내가,
"야아, 어서 오십시오."
하고 엷은 미소를 띠며 인사를 했다.
그렇다면 이 두 사내들은 처음부터 한 패였단 말인가?
 
몸과 마음
 
브레인은 반사적으로 문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데도 요크나 이식 기술자나 모두 일어서려고도 하지 않았다.
"기다렸네. 무사히 여기까지 와서 다행이었네."
요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브레인은 문에 몸을 기댄 채 두 사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두 사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자아 이리로 와서 앉게나."
요크가 권했다.
"옛날 일은 깨끗이 잊어 주시지."
작은 사내가 여전히 웃음을 띤 얼굴로 말한다.
"난 절대로 그럴 수 없다. 네놈들은 날 속이고 또 날 죽이려고 했다."
"그건 일이었으니까 할 수 없었지."
요크도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안심해도 되네. 이번엔 우리들은 당신편이니까."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난 일에 있어서만은 정직한 놈으로 통하고 있다네, 브레인. 그러니까 마리가 우리들을 고용했지."
"마리가 네놈들을 고용했다고? 무엇 때문에?"
브레인은 어이가 없었다.
작은 사내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물론 당신을 미국에서 탈출시키기 위해서죠. 브레인 씨, 하여튼 여기 와 앉아서 그것을 의논하십시다."
브레인은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별 수 없이 의자에 가 앉았다.
"배가 고팠을 텐데 어서 먹게."
요크가 탁자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탁자 위에는 샌드위치와 포도주가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브레인은 오늘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했던 것이 생각나 갑자기 배가 고팠다. 그는 샌드위치를 덥석 집어들고 먹기 시작했다.
"먹으면서 듣게."
요크가 담배를 피어 물며 말했다.
"사실은 난 이 일에 별로 흥미가 없었네. 그건 임금이 싸서가 아닐세. 마리는 오히려 아주 기분 좋게 비싼 임금을 선뜻 내주었지. 그렇지만 워낙 힘든 일이야. 어쨌든 지금까지 이 뉴욕에서 이렇듯 대규모의 인간 사냥은 아직 한번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세. 조, 안 그런가?"
"물론이죠. 거리가 온통 사냥꾼으로 가득 차 있는 걸요."
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쳤다.
"렉스 동력회사가 회사의 운명을 걸고 자네를 찾고 있다네."
요크의 말이 계속됐다.
"놈들은 자네를 발견하는 즉시 죽여버리라고 사냥꾼들에게 독촉하고 있네. 이런 소란 속에서 자네를 탈출시킨다는 건 제정신이 있는 놈이 할 짓은 못되지. 그런데 난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해보고 싶은 난처한 병이 있단 말야."
"정말 난처한 병이지."
조가 눈썹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래서 날 어떻게 탈출시킬 셈인가? 아니, 그것보다 어디로 데려다 놓을 계획인가?"
"글쎄! 그게 문제라니까. 렉스 동력회사에 발견되지 않을 곳이란 전혀 없다고 해도 좋지."
"그렇다면 지구 외의 행성은 어떤가? 가령 화성이나 금성 같은 식민지라면?"
"그건 더욱 어렵네. 행성 식민지엔 조그만 도시가 두세 개 밖에 없어. 말하자면 인구가 얼마 안되기 때문에 서로가 다 알고 있단 말일세. 그런 곳에 새 사람이 가 보게. 금방 소문이 나서 렉스 동력회사에도 알려지고 말지. 그렇게 되면 그 회사에서 동원한 사냥꾼들이 곧 죽이러 갈 걸세."
"그렇다면 바다 밑은 어떤가?"
"그것도 생각해 봤지. 대서양과 태평양 사이의 해저농원의 농부가 되어 숨어산다는 것도 나쁘진 않지. 그렇지만 오랫동안 해저 생활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일세.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은 노이로제가 되거나 돌아버리거나 하는 걸세."
"그렇다면 아무 데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마리하고 의논했을 때도 그 문제 때문에 무척 고민했다네. 그래서 아예 자네를 좀비로 만들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 좀비가 되어 지하세계에서 살면 렉스 동력회사도 체념해 버릴 테지 하고 말이야."
"농담 말게. 좀비가 될 바엔 차라리 죽어 버리는 게 낫겠네."
브레인이 내뱉듯이 말했다.
"그럴 테지.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걸세."
요크도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생각 끝에 마지막으로 생각한 게 마르케이사스 군도일세."
"마르케이사스 군도? 그건 또 어디 있는 거야?"
"태평양 한가운데. 즉 타이티 섬 가까이 있는 작은 섬들이네."
"거긴 어떤 곳인가?"
"아주 한가롭고 좋은 곳이라는군. 마치 20세기 같은 곳이라나 봐.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렉스 동력회사가 자네를 체념해 버릴 것이라는 것이지."
"어째서?"
"잘 생각해 보게. 렉스 동력 회사가 자네를 죽이려고 하는 것은 법원이 무섭기 때문이네. 그렇기 때문에 자네가 미국을 탈출해서 이 세상 끝 같은 그런 섬에서 조용히 살아가게 된다면 렉스 동력회사도 검사의 고발을 받지 않게 되기 때문에 자네를 찾지 않게 될 거다 하는 얘기지. 그것뿐인가? 마르케이사스는 독립국이기 때문에 사냥꾼들을 보낸다는 것도 국가간에 특별한 협상이 필요하다네. 그런 복잡한 일은 렉스 동력회사에서도 섣불리 하려고 하지 않을 걸세."
"틀림없나?"
"물론. 절대라고 장담할 수는 없네. 그러나 그것밖에 방법이 없는걸."
"그래, 알았네."
브레인은 요크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대체 나를 어떤 방법으로 여기서 탈출시킬 셈인가?"
요크와 조는 서로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변장하고 제트 헬리콥터를 빌려서 타고 가는 것은 어떨까?"
"비행장엔 모조리 렉스 동력회사에서 손을 썼을 텐데……. 그것도 그렇거니와 아무리 완전하게 변장을 한다해도, 아니 외과 수술을 해서 얼굴 모습을 바꿔버려도 안될 걸세. 사냥꾼들은 인상발견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5분도 되기 전에 곧 알아차릴 걸세."
"그렇다면 빠져나갈 수가 없잖은가?"
"산채로 빠져나갈 방법이라곤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네."
요크가 천천히 힘을 주어 말했다.
"뭐라고?"
"자네의 몸을 순간냉동법으로 얼려 버린단 말일세. 마치 냉동육을 만들 때처럼. 그렇게 해서 냉동육 상자에 넣어 냉동육 운반선으로 운반한다. 이 방법이라면 절대로 발견되지 않을 걸세."
브레인은 등골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섬뜩한 기분이 들어 몹시 언짢았다.
"그러면, 그 동안 난 의식이 없겠구먼?"
요크는 잠시동안 말없이 브레인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아니."
하고 천천히 대답했다.
브레인은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물었다.
"의식이 있는 채로 순간 냉동을 할 순 없잖은가?"
"그렇지가 않네. 사실을 말하자면 몸과 마음은 그 이전에 따로따로 분리시켜 놓는 걸세."
"모르겠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도록 설명해주게."
브레인은 초조해서 신경질적으로 고함치듯 말했다.
"자아 침착하게 잘 듣게. 가령 냉동한다고 해도 마음을 그냥 두고 운반해 나갈 순 없네. 사냥꾼들은 그런 일도 다 예상하고 있으니 냉동육 운반선은 모조리 검문할 것이 틀림EMB00000cd06963없을 걸세. 그리고 영혼발견기로 금방 자네를 발견해 버리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고생은 정말 헛수고에 불과하게 될 것일세."
"그러면 내 마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브레인의 이 물음에 요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조의 담당이야. 조에게 물어보게."
조가 설명을 시작했다.
"마음을 이식하죠."
조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뭐라고?"
"당신의 마음을 육체에서 육체로 이식을 해서 미국에서 빠져나간다는 거지요."
"그런 건 사절하겠네!"
브레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딴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간다고? 그런 야비한 행동을 나는 할 수 없어."
"그러나 그 방법밖에 없는걸 어떻게 합니까? 브레인 씨, 그리고 또 이 방법은 그렇게 야비한 것은 아니지요. 다만 잠깐동안만 딴 사람의 마음속을 빌리는 거죠. 마치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쉬듯이 말입니다."
조는 열심히 설명했다.
"그것은 완전한 마음의 이식이 아니라 극히 일시적인 것이지요. 당신의 마음에도 또한 상대편 마음에도 전혀 영향될 것 없고 손해 되는 일도 없어요. 브레인 씨, 어서 결심을 하십시오. 아니면 당신은 살고 싶지 않으신가요?"
브레인은 한참 동안 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마침내 힘없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잘 알았네. 그럼 하라는 대로하지."
"자, 그럼 시작하지. 소매를 걷어올리게."
브레인이 팔을 걷어올리자 요크는 서랍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이걸 맞으면 자네는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리네. 그 사이에 우리들은 이식기로 자네 마음을 딴 사람 마음에다 이식을 하네. 그러면 그 사람이 자네 마음을 미국 밖으로 운반하는 걸세. 그 사이에 몸도 냉동되어 국외로 나가게 되지. 그렇게 해서 안전해지면 몸과 마음을 원상대로 해주겠네."
"몇 사람에게나 이식을 하게 되나?"
"그건 알 수 없어. 그때그때 형편에 따라 하게 되니까. 자아 이제 시간이 없어. 어서 팔을 내밀게."
요크의 말에 브레인은 할 수 없이 팔을 내밀었다.
요크가 주사바늘을 팔에 꽂았다. 순간 머리를 힘껏 한방 맞은 것 같은 심한 충격을 받고 곧 정신을 잃었다.
마음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마음의 여행
 
브레인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곧 자기가 토마스 브레인이 아니라 또 한 사람의 인물인 에드가 다예슨과 공존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다예슨은 농부였다.
몇십 년 동안을 밭 갈고 씨를 뿌리는 농사일만 해 온 늙은 농부였다.
다예슨의 브레인은 지금 땀 투성이가 되어서 자기 집으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갈색과 누런 색의 강아지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노인의 어두운 눈으로 보니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오오! 챔프냐? 이리온."
다예슨의 브레인은 주저앉아서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브레인은 또다시 자기의 마음이 옮겨지는 것을 느꼈다.
다음 순간 그는 열 아홉 살의 샌드 톰슨의 마음에 옮겨 앉았다.
톰슨의 브레인은 요트 갑판 위에 똑바로 드러누워 어렴풋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여름 햇살이 내려쪼여 뜨거웠으나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상쾌했다.
톰슨의 브레인은 갑판 위에 엎드려서,
'역시 지구는 좋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는 일주일전에 화성에서 지구로 막 돌아온 참이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2년간 화성에서 지질학의 현장실습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연구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지구의 대학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화성은 사막뿐이라서 이 멋진 바다도, 이 뜨거운 태양도, 산들바람도 모두 없으니. 하지만 연구는 정말 재미있었다. 화성의 대실치스 시의 사람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고.'
그는 동급생인 마샤와 에디를 생각했다.
'아직 저 화성의 붉은 사막에서 모래차를 타고 화성에서 돌이며 바위를 채집하기도 하고, 대실치스 시의 도서관이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토론을 하고 있을 테지.'
그렇게 생각하면 화성이 아주 그리웠다.
"어이, 샌디!"
누군가가 불렀다.
그쪽을 바라보니 다가온 요트에서 한 청년이 이쪽을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구의 대학에서 알게 된 우주선의 파일럿 지망생인 마이크 트리들이었다.
"오늘밤 제니퍼네 파티에 갈 거지?"
마이크가 큰 소리로 고함쳤다.
"그럼, 가고 말고. 넌?"
"물론이지. 그럼 거기서 만나자!"
"알았어."
톰슨의 브레인이 일어나면서 큰소리로 대답했다. 파티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유쾌해졌다.
제니퍼는 동급생 중에서 제일 미인이었다.
더구나 굉장한 부자였으며 훌륭한 별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 인기가 있었다. 파티에는 그밖에도 많은 여자 애들이 올 것이고 친구들도 모두 올 것이다.
'오늘밤은 즐거울 것 같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핸들을 돌려 해변가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찰싹!
피고트의 브레인은 등에 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검은 뱀 같은 채찍이 등을 힘껏 내리갈긴 것이다.
"야, 이놈아. 게으름피우지 말고 열심히 일해!"
채찍을 든 간수가 욕을 퍼부었다.
피고트의 브레인은 아픔을 참으며 무거운 곡괭이를 쳐들어 땅에다 힘껏 내리꽂았다.
피고트는 죄수였다.
번들번들한 태양이 내리쬐는 뜨거운 벌판에서 채찍과 총을 가진 간수들의 감시를 받으며 지금 도로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디 두고 보자!'
피고트의 브레인은 또다시 곡괭이를 쳐들었다 내렸다 하며 생각했다.
그때 바로 앞에서 삽으로 흙을 퍼내고 있던 어니가 속삭였다.
"준비 다 됐어?"
"그래, 다 됐다."
"좋아, 그럼 신호를 하면 해치워."
어니가 낮게 속삭였다.
피고트의 브레인은 흘깃 앞을 보았다.
쇠사슬로 발을 묶인 스무 명 남짓한 죄수들이 땀을 흘리며 더위에 허덕이며 일을 하고 있었다. 거기에 잔인하고 무서운 얼굴을 한 간수들이 총과 채찍으로 겁을 주고 있었다.
벌써 이 사흘 동안에 세 명의 죄수가 일사병과 피로로 쓰러져 죽었다.
'죽은 친구들의 복수를 위해서도 저놈들을 죽여야한다. 그리고 탈주한다!'
피고트의 브레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어니가 삽을 흙 속에 세웠다.
'신호다!'
피고트의 브레인은 쳐든 곡괭이로 아까 자기를 때린 간수의 옆구리를 내리쳤다.
"으악!"
간수는 짐승 같은 소리를 지르며 피를 내뿜고 쓰러졌다.
다른 죄수들도 일제히 간수들을 향해 쳐들어갔다. 간수들은 황급히 소총을 겨누었다.
총성이 울렸다.
피고트의 브레인은 가슴에 심한 아픔을 느끼며…….
이번에 브레인은 공중에 있었다.
그는 라미레즈라는 청년의 마음속에 있었다. 라미레즈의 브레인은 지금 텍사스 대평원의 상공을 구식 헬리콥터를 타고 날고 있었다.
구식 헬리콥터는 마치 옛날의 낡은 마차처럼 고장이 잦아서 자칫하면 서기도 하고 또는 뒷걸음을 치곤 하는 것이었다.
'이놈의 낡은 헬리콥터 때문에 고생이 막심해. 이번엔 꼭 새것으로 바꿔야지. 이번 장사가 잘돼서 돈이 들어오면 맨 먼저 저 멋진 스포츠 헬기를 사야지.'
그는 고도계며 속도계를 초조하게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빨리 목적지인 엘파소에 도착하지 않으면 그 장사도 잘 안 되는데…….'
마리나의 브레인은 산소 봄베의 스트렘프를 잠그고 안경을 끼고 수문쪽으로 갔다.
"마리나냐?"
어머니의 음성이었다.
"응, 엄마! 잠깐만 수영하고 오겠어요."
마리나의 브레인은 될수록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마리나. 설마 톰 류링을 만나러 가는 건 아니겠지?"
마리나의 브레인은 속으로 놀랐지만 목소리만은 침착하였다.
"아니에요. 엄마! 그냥 수중 산책만 하고 오겠어요."
"그렇다면 괜찮지만. 될수록 빨리 오거라. 아버지가 또 걱정하실라."
"알았어요, 엄마!"
마리나의 브레인은 호흡기를 입에 물고 수문의 밸브를 돌렸다.
수문에는 금방 세차게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압이 바다와 같게 되자 수문은 자동적으로 열리고 그녀는 힘차게 바다로 헤엄쳐 나갔다.
여기는 하와이 앞바다에 있는 해저농원의 하나로 마리나의 아버지가 경영자였다.
바닷속에는 계곡이며, 언덕이며, 또 저편의 평원에는 여러 가지의 해중식물과 어류가 마치 꿈나라의 꽃밭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마리나의 브레인은 계곡을 빠져 그 저쪽에 있는 해저 동굴로 향했다.
그곳에는 톰 류링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톰은 옆 해저목장 주인의 아들이다.
톰의 아버지와 마리나의 아버지는 몹시 사이가 나쁘다. 장사 시샘 때문이었다. 그래서 둘의 사이가 좋아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모는 부모, 우리는 우리지. 그리고 우린 일부러 싸울 이유가 없는 걸. 만나서 얘기해서 안될 것이 뭐람.'
마리나의 브레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톰과 만나고 있으면 마리나의 브레인은 정말 즐거웠다.
장래 무엇이 되겠느냐 또 어떤 일을 할까하는 것을 여러 가지로 상상하거나 계획하는 것이 즐거웠으며 또한 바다 속에서 서로 쫓거니 쫓기거니 하며 숨바꼭질을 하거나 고기를 잡는 일이 모두 다 즐거웠다.
어쨌든 둘은 어려서부터 아주 친했다.
해저동굴이 보인다.
산호로 된 아름다운 동굴은 두 사람이 만나는 비밀장소다. 입구 가까이 낯익은 톰의 황금색 수중복이 얼핏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마리나의 브레인은 이미 아버지에게 꾸중을 듣는 것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렸다. 그녀는 발에 힘을 주어 동굴을 향해 속력을 냈다.
엘진의 브레인은 낮잠에서 깨어났다. 거기는 커다란 어선의 갑판이었다. 그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머리 위에는 남태평양의 태양이 찬란히 빛나고 하늘은 EMB00000cd06964끝없이 맑게 개인 날씨였다."엘진 씨, 잠이 깨셨습니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서 뒤돌아보니 선장의 모자를 쓴 사내가 웃고 있었다.
엘진의 브레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서 자기의 몸을 살펴보았다.
탄탄한 가슴, 넓은 어깨, 짧은 다리, 커다란 손, 어깨에 있는 상처, 이것은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는 육체였다.
돌연 그는 생각해 냈다.
그것은 브레인의 육체였다. 그렇다면, 마음의 여행이 끝난 것인가.
엘진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가짜 이름이었다.
마음과 육체가 마침내 하나가 된 것이다.
"꽤 오랫동안 기분이 나쁘신 것 같았습니다. 배가 떠나면서부터 계속 의식을 잃고 계신 것처럼 보이더군요."
"아니.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리고 브레인은 말을 계속했다.
"여기는 마르케이사스 군도에서 아직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뭘요. 곧 도착할 겁니다. 마르케이사스 군도의 수도가 있는 히바 섬까지 두세 시간만 있으면 도착할 수 있으니까요."
선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저 멀리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조그만 섬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것 좀 보세요. 저게 히바 섬이랍니다."
브레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 섬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의 제2의 고향이 될 새로운 세계였다. 브레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22세기에 되살아난 후 처음으로 마음놓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생활
 
배는 천천히 히바 섬의 항구로 들어갔다.
주위의 평화스런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보고 있는 사이에 브레인은 벌써 이곳이 좋아지리라고 생각했다.
얼마 안 가서 배는 항구 선창에 도착했다.
거리도 생각했던 것처럼 한가롭고 평화스런 기분이 저절로 들게 했다. 브레인은 정말 오랜만에 한가로운 기분을 맛보게 됐다.
'자, 그럼 이제부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서 살며 무엇을 해서 살아갈 것인가?'
그는 그런 생각을 곰곰이 하면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그때 붉은 얼굴의 뚱뚱한 사내가 급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토마스 엘진 씨입니까?"
"그렇습니다만……."
브레인은 약간 불안을 느끼면서 대답했다.
그러나 뚱뚱한 사내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는 포인트 조선소에 있는 데이비스입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죠."
"저를 말입니까?"
브레인은 눈썹을 모으며 되물었다.
"그렇고 말고요. 이런 외진 곳에 당신처럼 훌륭한 조선 기사가 와 주셨으니 말입니다."
브레인은 간신히 그간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이것도 아마 요크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요크는 그를 이 섬의 요트 기술자로 추천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섬이 마음에 드셨습니까?"
데이비스가 약간 근심스러운 듯이 물어왔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젠 도시라면 지긋지긋합니다. 정말 훌륭한 곳이었군요."
"참 다행입니다!"
데이비스는 진심으로 기쁜 듯이 말했다.
"이삼일은 천천히 돌아다니시며 섬 구경이나 하십시오. 자, 이건 댁의 열쇠입니다."
요크는 집까지 다 마련해두었던 모양이었다.
브레인은 인사를 하고 집까지 가는 길을 물어서 혼자서 그리로 걸어갔다.
집은 섬의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얕은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새로 지은 조그맣고 아담한 집이었다.
그가 현관으로 들어가 보니 놀랍게도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서 있는 것은 마리 소온이었다.
"마르케이사스 군도가지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 브레인, 기다렸어요!"
마리가 외쳤다.
"마리! 그럼 이게 모두 마리가 손을 써 준 거로군. 고마워! 정말 고맙소."
브레인도 마리의 두 손을 꼭 잡고 마구 흔들며 외쳤다.
"나는 당신과 결혼하고 싶소.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온 것이 아니오?"
"물론이죠!"
그로부터 두 사람의 생활은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조선소에서의 일도 재미가 있었다. 브레인은 마침내 훌륭한 요트 기사가 된 것이다. 물론 사치스런 요트를 설계하고 만드는 일보다는 오히려 수리하는 쪽이 더 많았다. 그래도 그는 만족이었다.
지금까지와 같이 선전이나 잡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요트를 설계하거나 만들거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신나게 일을 했다.
그 후 렉스 동력회사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섬에 온 지 두 달 뒤 렉스 동력회사가 그의 추적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젠 생명의 위험도 벗어난 것이다. 그와 마리는 그날밤 거리의 레스토랑에서 마음놓고 식사를 했다.
"이젠 아무 걱정도 없게 됐군요."
"아아, 모두가 당신 덕택이오."
두 사람은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면서 처음으로 활짝 웃었다.
그러나 그 행복도 그렇게 길지는 못했다.
섬에서 생활하기 시작해서부터 4개월 째의 어느 날 마침내 그 좀비 스미스가 섬에 모습을 나타냈던 것이다.
 
살인자
 
그날도 역시 포근한 날씨였다.
브레인은 아침을 먹고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조선소로 출근했다.
그날의 일은 암초에 부딪쳐서 선체의 밑바닥이 파손된 대형 요트의 수리였다. 그가 수리하기 위해 점검하고 있는 곳으로 데이비스가 왔다.
"여보게, 브레인. 아까 자네를 찾아온 사람이 있어서 여기라고 가르쳐줬는데 만나지 못했나?"
"아니. 어떤 사람이었는데?"
"그게, 뭐라고 할까? 하여튼 묘한 사람이야. 얼굴 색이 무척 나쁘고 수염이 잔뜩 돋고……. 그런데 그 수염이 어쩐지 가짜 같았고, 그리고 지독한 로션 냄새가 물씬 나더군."
"이름은 뭐라고 하던가?"
"뭐라더라? 스미스라던가? 여보게, 브레인. 어디를 가나?"
EMB00000cd06965"집으로. 나중에 설명하겠네."
브레인은 그렇게 말하기가 무섭게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마리도 브레인의 얼굴을 보자 금방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눈치챘다.
그는 스미스가 찾아 온 것을 이야기했다.
"틀림없이 그는 자기가 누군지 그리고 나하고 어떤 관계가 있었는가를 마침내 생각해낸 거야. 그래서 약속한대로 찾아온 거야."
마리는 그 말을 듣자 아무 말도 않고 커다란 가방을 꺼내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왜 짐을 싸지?"
"도망가야죠."
"어째서?"
"그렇게 무서운 좀비가 달라붙으면 이젠 여기서도 즐겁게 살수가 없잖아요. 당신도 빨리 짐을 꾸려요."
브레인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난 안가. 가기는커녕 그를 만나서 꼭 얘기를 듣고 싶어."
"안돼요!"
마리가 격렬한 말투로 외쳤다.
"그따위 사람의 얘기를 들으면 안 된단 말이에요."
"왜? 그는 몇 번이나 내 목숨을 구해줬는데……."
"그건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죠. 아니면 그렇게 열심히 도와줄 까닭이 없어요."
브레인은 이상한 마음이 들어 마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당신은 내가 모르는 것을 뭔가 알고 있군?"
그러자 마리는 몹시 다급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얼굴 색은 창백했으며 가늘게 떨고 있었다.
"하여튼 나는 그를 만나겠소."
마리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할 수 없군요. 그리고 이젠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라고 말하며 문을 가리켰다.
문 저편 쪽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그 그림자가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들어오십시오."
브레인이 말하자 문이 열리고 스미스가 들어왔다.
얼굴이 온통 수염으로 덮여 있었지만 스미스가 변장한 것이라는 건 첫눈에 알 수 있었다.
강한 로션 냄새 속에 약하게 송장 냄새가 혼합되어 있었다.
"변장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젠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사람 앞에 나설 수가 없다네."
스미스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간신히 왔네."
"그렇다면 자기가 누군지 알아냈겠군?"
스미스가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내 원래 이름은 제임스 로지일세."
"그렇게 말해도 난 알 수 없네."
"그럴 테지. 그렇지만 우리는 옛날 서로 만났던 일이 있었지. 150년 전의 20세기에 저 체사피크만의 고속도로에서."
"아!"
브레인은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면 자네가 바로 내가 충돌한 상대편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었나?"
"그렇다네, 브레인."
"그래서 자네는 줄곧 내게 달라붙어 다녔군 그래. 하지만 그건 사고였지. 완전한 사고였네. 원망을 할 까닭이 없어."
스미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사고가 아니었어.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졌던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 그런 거야. 누구보다도 마리가 더 잘 알고 있을 걸세."
브레인은 놀라 마리를 뒤돌아다보았다. 마리의 얼굴은 마치 백짓장처럼 새하얗고 꼭 석고상 같았다.
그 순간 그는 150년 전 그날 밤의 일을 뚜렷하게 기억해냈다.
그때 그의 자동차가 갑자기 중앙 분리선에 빨려 들어가듯 끌려갔었다. 그리고 핸들에 아무리 힘을 주어도 전혀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브레인은 싸늘하게 마리를 쏘아보았다.
"당신이 자동차를 조정해서 사고를 일으켰었지? 마리, 나를 미래로 끌고 와서 렉스 동력회사의 선전물로 이용하기 위해서……."
그는 가슴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격심한 분노를 억제하려고 애쓰며 말했다.
마리는 쇠뭉치에라도 얻어맞은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 틀림없어. 렉스 동력 시스템을 움직여서 내 자동차를 중앙 분리선으로 끌어 들였지. 그렇지?"
"그래요."
마리가 아주 가는 목소리로 힘없이 대답했다.
"미안해요, 브레인."
"그렇다면 당신이 나를 죽이고 또 로저도 죽인 범인이로군!"
"죽일 마음은 없었어요, 브레인! 우리들은 다만 당신을 20세기에서 22세기로 데리고 올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저 사람의 자동차가 반대쪽에서 달려와 그만 충돌하고 말았어요. 우연이었죠."
마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힘없이 겨우 말했다. 그리고 로저 쪽을 향해 하소연하듯이,
"로저 씨! 우연이긴 했지만 당신이 죽은 것은 제 책임입니다. 당신과 토마스는 우연히 죽은 겁니다. 그리고 토마스의 생명을 앗아간 렉스 동력시스템의 힘이 당신의 생명도 함께 끌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상을 해 드리겠어요. 로저 씨, 제가 당신에게 내세 보험을 가입해 드리죠."
"내세? 그런 건 필요 없소!"
갑자기 로저가 고함쳤다.
"나는 아직 살고 싶소.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 많아. 내가 죽었을 때 나는 아직 열일곱 살 밖에 안되었던 거야!"
"그랬었군."
브레인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태산같이 많아. 대학에서 공부도 하고 싶고, 여행도 스포츠도 그리고 재미나게 놀고도 싶다. 난 그런걸 아직 어느 것 하나 시작도 해보지 못했던 거야. 그래서 난 육체가…… 육체가 필요한 거야. 이 썩어빠진 육체가 아니고 훌륭한 육체가 말이야!"
"즉 나의 이 육체 말이군?"
브레인은 조용하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의 생명을 몇 번이나 구해줬던 거죠."
"잠깐만!"
마리가 옆에서 뛰어들었다.
"남의 생명을 구해줬으니까 그 대신에 그 사람의 생명을 가로채도 된다는 논리는 통하지 않아요."
"물론 나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아요. 브레인,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시오. 그러면 왜 내가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브레인은 로저의 해골 같은 얼굴을 다시 보았다.
"어째선가?"
"당신은 그 사고가 결국 마리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뭐, 뭐라고? 자네는 내가 자네를 죽였다고 생각하나?"
"그렇습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그는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래리의 유령이 '너는 살인자다!'라고 하던 것이 생각났다.
'그렇다! 그건 왜?'
그는 머리를 감싸쥐고 다시 한번 그 최후의 장면을 잘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최후의 순간 핸들이 자유롭게 됐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간에 핸들만 돌렸으면 충돌은 피할 수 있었을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때 그의 마음속에,
'에이, 차라리 지금 죽어버리면 모두가 깨끗이 끝장이다. 그 편이 훨씬 좋다!'
라는 마음이 생겼었다. 그래서 그는 그 마지막 기회를 자기 스스로 버린 것이다.
그랬었다.
로저가 말하는 것처럼 그야말로 살인자였던 것이다.
"알았네. 자네가 말한 대로네."
브레인이 침통하게 말했다.
"안돼요. 브레인. 그런 말을 해선 안 된다니까요! 이 사람은 당신에게 억지로 자기 말을 듣게 할 권리가 없어요!"
마리가 필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로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브레인 씨. 내게는 그럴 권리도 힘도 없소. 당신이 생각한대로 결정하시오. 나는 당신의 결정에 따를 뿐이오."
 
내세로
 
브레인은 심한 충격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자기는 살인자였다. 물론 남의 물건을 가로채거나 그 사람이 미워서든가 하는 이유 따위로는 사람을 죽이는 일은 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자기가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자기의 생각만 했으니까 역시 엄연한 살인자인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에 그때 렉스 동력 시스템이 내 자동차의 운전을 간섭하지 않았던들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테지. 내 책임 뿐만은 아니다.'
하고 그는 자기 자신에게 타일러 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핑계란 것을 곧 알았다.
그것은 마치 지갑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주워서 자기 것으로 했던 것인데 만일에 지갑이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도둑이 아니다라고 하는 역설과 똑같은 것이다.
그는 눈앞에 이미 거의 죽어 가고 있는 로저의 추악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필경 저 육체는 이젠 한 달만 지나면 완전히 썩어서 죽어버리리라. 나머지 한 달을 이러쿵저러쿵해서 대답을 끌면 로저는 죽어 버리고 자기는 육체를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귓가에서 악마의 소리가 그런 유혹을 해왔다. 사실 그것은 아주 강한 유혹이라서 그도 자칫하면 그런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이 평화롭고 즐거운 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아직 이 인생에는 미련이 많다. 나도 간신히 살아남은 이 22세기에서의 생활을 좀더 즐기고 싶다. 중도에서 그만 두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렇게 했다고 치고, 저 로저를 이대로 모른다고 해버렸을 때 그후의 생활이 지금처럼 평화롭고 즐거울 것인가?
그럴 수 없다.
브레인은 크게 고개를 저었다.
매일 로저를 두 번씩이나 죽게 한 사실을 후회하고 그 생각에 고민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생활이라면 차라리 살아있을 보람이 없다. 그것보다는 내세로 가는 편이 낫다.
내세가 어떤 곳인지 그것은 아직 알 수 없다.
지옥 같은 곳인지도 알 수 없다. 어쩌면 불같이 일어나는 노여움으로 해서 무서운 괴로움을 참지 않으면 안 되는 참혹한 세상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곳은 하여튼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그곳에 가면 또다시 새로 살아갈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한 것이다.
그렇다! 사람은 죽어야 할 때 죽는 것이 가장 훌륭한 것이다. 그것이 동물이 아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너무 미련을 갖고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잡듯이 언제까지나 달라붙는다는 것은 도저히 인간으로서 할 일이 못된다.
이 세상의 삶은 인간의 참생활의 극히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생활에 지금 곧 들어갈 때인 것이다.
브레인은 마음속으로 결심을 했다. 그리고 로저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로저! 지금부터 나하고 재생실로 가세. 거기서 나의 육체를 받으면 될 걸세."
로저의 눈이 빛났다.
"정말입니까? 브레인!"
"정말이고 말고."
브레인은 한마디 말도 없이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마리를 뒤돌아보았다.
"들었겠지, 마리! 나는 재생실로 가요. 당신을 남겨놓고 가는 것은 참으로 미안하지만 내 마음을 이해해 주리라고 믿겠소."
마리는 눈물이 가득찬 눈을 깜빡깜빡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잘 있어요, 마리!"
브레인은 한 마디의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로저가 뒤를 따랐다.
히바 섬의 재생실은 시청 안에 있었다. 재생실 앞에 다다르자 그는 멈춰 섰다.
"로저, 난 이 육체가 아주 맘에 들었다네. 딱딱하고 멋진 모습은 아니지만 어느 사이에 좋아졌어. 소중히 해 주게."
"물론이죠. 브레인. 당신의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잘 활용하겠습니다."
로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 육체는 사냥을 좋아하지. 어쩌면 사냥에 나가고 싶어할 지도 몰라."
"나도 좋아지겠죠."
"좋지. 그럼 잘 있게."
브레인이 재생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로저도 뒤따라 들어갔다.
그곳은 옛날의 사형실처럼 의자가 하나만 놓여 있었다. 자살을 하려면 그 의자에 앉아 오른쪽 팔걸이에 붙어 있는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육체는 아무런 EMB00000cd06966고통도 없이 죽고, 다음 사람에게 인계되는 것이다.
그는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의 일이 텔레비전의 영상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이미 후회스런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스위치를 눌렀다.
가만히 주위가 어두워졌다.
둥둥 뜨는 것 같이 느껴지는 꿈속 같은 세계였다. 짙은 안개 같은 것이 끼어 있었다.
'아아, 여기가 내세로 가는 중간 세상이로군.'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옆에 누군가가 와 있는 것 같았다.
'브레인! 저예요. 마리 에요!'
브레인은 깜짝 놀랐다.
'마리, 당신도 왔소?'
'예, 저도 왔어요. 나 혼자선 살아 있어도 재미없는 걸요. 같이 가고 싶어요, 브레인.'
'그럼 같이 가자, 마리! 자아 내세를 향해서.'
두 사람은 안개 속을 나란히 앞으로 걸어갔다.
<끝>
 
 
<작품 해설>
 
영혼에 대하여
 
지금까지 제1권부터 20권까지 읽어보셔서 잘 아시겠지만 이 SF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크게 나누어 우주 소설, 미래 소설, 차원 소설 등의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불사판매주식회사]처럼 색다른 SF도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미래 소설이며 차원 소설입니다. 그러면서 그 주제는 인간의 영원한 소망인 불사이며 영생입니다. 즉 영혼과 저승의 존재 유무를 추구하며 인간성을 파헤친 이야기입니다.
이 SF를 쓴 작가는 미국 SF계에서 가장 특이하고 흥미롭고 색다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기로 유명한 로버트 세클리라는 사람입니다.
1928년 미국에서 태어났으며 처음에는 회사원이었으나 소년시절부터 SF를 좋아해서 자기도 써 보겠다고 틈틈이 써 오다가 24세 때 [팬터], [사이언스 픽션] 등의 잡지에 투고한 것이 인정을 받게 되어 본격적으로 SF를 쓰게 되고 지금은 SF 인기작가가 된 것입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다], [우주 시민], [우주의 파편], [지구 순례], [로봇 문명] 등 아이디어가 기발하고 문명비판이 날카로우면서도 흥미 있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독특한 재능을 가진 사람입니다.
더욱이 이 작품처럼 특이하고 재미있는 착상을 완벽하게 구성한 것은 작가의 재능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의 문제는 인간의 궁금한 문제입니다. 종교의 출발점은 바로 이 영혼 불멸입니다.
20세에 들어와 과학이 발달하게 되고 생물학의 발달로 혼선이 빚어지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이제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 SF의 아이디어 중에서 이 작품에 나오는 내세 보험이라든가 영혼 교환국 같은 것과 시간여행 같은 것은 정말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학적인 근거가 있든지 또는 과학적 사고 방식에서 생겨난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사실 SF에, 과학과는 인연이 없는 것들이 등장하는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흡혈귀, 마녀 또는 유령이라든지 전설상의 괴물과 기괴한 귀신같은 것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전 시대의 과학적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제멋대로 지어낸 미신이고 과학의 발달이 이것들을 부정하고 배척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과학 시대에 SF에서는 이런 비과학적인 것을 일부로 등장시키고 있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즉, 과거에 있어서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된 것이 현재에는 가능하다고 증명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현재에는 불가능한 것이 미래에는 가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은 진실한 과학적 사고 방식을 분별하는 기준을 밝히는 척도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이 SF에서 추구하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SF에 등장하는 흡혈귀는 옛날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 같은 단순히 신비적인 괴물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예를 들면 인간의 피를 빠는 흡혈균인 박테리아이고 그들이 생각한 괴물이 아닌 이질 생물일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중세기 무렵 무섭게 여기던 흡혈귀는 그 시대의 사람들로서는 알 수 없었으나 이런 일종의 병 같은 것에 걸린 이종생물이 더러 나타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마녀도 그렇겠지요.
이것은 사실 이상한 마술로 사람을 놀리는 악마가 아니고 어떤 별 세계에서 지구에 온 별나라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난다고 믿었던 것은 실제로는 소형 자이로콥터 같은 것을 사용했을지도 모르고, 마술의 지팡이를 공중에서 흔들어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이 보이는 것은 일종의 물질 복제기를 사용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문명의 정도가 많은 차이가 있는 사람들로서는 너무나 이상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도 남태평양의 섬에서 살고 있는 미개 원주민들 중에는 비행기를 마법의 새라고 생각하고 놀라고 있는 종족도 있다고 합니다.
중세의 사람들은 진보된 과학기술을 가진 별나라 사람들을 이렇게 보았을 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유령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겠지요.
유령은 보통 사람이 죽은 뒤, 즉 육체는 없어져도 그 영혼만은 이 세상에 남아 있어서 원수진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은 생명이라는 것은 육체와 같이 발생하고 육체와 같이 소멸되고 육체를 떠난 생명, 즉 영혼이라는 것은 없으며 따라서 물론 저승이라는 곳도 없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유령이라는 것은 역시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과학 시대인 현대에도 아직, 유령을 실제로 보았다는 사람이 많고, 먼 곳에서 죽은 사람이 바로 그 시간에 꿈에서 만났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믿는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이 우주의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자의 무한한 운동으로 인해 일어난다고 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역사도, 당신과 나의 생활도 근원을 따져 보면 원자의 운동이라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자의 운동은 공간의 극히 작은, 그러나 특별한 흔적을 남깁니다.
그러므로, 그 흔적을 정확히 기록하고 재현시킬 수가 있다면 과거의 역사를 그대로 부활시킬 수가 있겠습니다.
만약, 어떤 특별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인간의 정신에 그러한 능력, 이전에 어떤 인물이 취한 행동의 흔적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 있다면 그 사람으로서는 옛날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볼 수도 있고 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유령의 정체가 아닐까요? 유령이 특정한 장소와 집에서 잘 나타나는 것도 이렇게 생각해보면 이해가 더 잘될지 모르겠습니다.
또, 그것과는 달리 이 소설 같이 생각하는 방법도 있겠지요. 즉, 생명이 육체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육체와 같이 영혼이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정신은 고압의 전류와 같은 강한 에너지의 집합체인데 특별한 경우, 즉 육체의 죽음에서 충격을 면했을 때에는 육체가 죽은 뒤에도 영혼만은 살아남습니다. 그것이 영혼인데, 그 영혼이 사는 세계를 말하자면 저승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어 육체에서 독립된 정신이 간혹 현세에 나타나면 사람들은 이것을 유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도 성립될 수가 있습니다.
사실상 영혼에 대한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고대 문명을 이룩한 이집트인들은 이런 생각을 제일 먼저 가졌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은 육체와 영원의 혼(카)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체가 죽으면 카는 허공으로 달아나 어떤 시기가 오면 다시 그 죽은 육체로 되돌아와서 살아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집트인이 죽은 사람을 미라로 만들어 귀중하게 보존시킨 것은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카가 되돌아왔을 때 들어갈 육체가 없으면 되살아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 유명한 피라미드와 거대한 무덤도 카가 되돌아와서 육체가 없으면 곤란하기 때문에 이렇게 마련한 것입니다.
이런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은 그 후 다른 민족 특히 이스라엘, 인도, 중국인들도 거의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모두가 죽고 그 뒤에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과학이 이만큼 발달된 오늘날까지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수년 전 미국에서 사후의 세계와 죽은 사람이 되살아났다는 증거를 얻었다고 하여 큰 소동이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프라이데이 머피의 탐구]라는 제목으로 쓴 책으로 나와 놀랄 만큼 많이 팔렸습니다.
사건의 주인공은 미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중년 부인이었습니다. 이 부인은 어떤 최면술을 하는 사람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최면술에는 역행 최면이라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최면술에 걸린 사람은 과거로 돌아가 어른이 소년과 소녀 때의 기억을 이끌어 내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잊어버린 기억들이 차츰 되살아나 노이로제 환자 등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소녀로 되돌아간 그 부인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나는 200년 전에 영국 아일랜드에 살고 있던 프라이데이 머피라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대장간 일을 하고 어머니는……."
깜짝 놀란 최면사는 그 부인이 이야기하는 것을 녹음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 사람을 보내 200년 전의 바로 그곳을 조사해보니 놀랍게도 그 곳에 틀림없이 200년 전에 최면술에 걸린 그 부인이 말한 것과 같은 프라이데이 머피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욱이 그 부인의 선조를 조사해 보아도 그 사람과의 관계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친척도 아니고 아는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누구에게서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 부인은 200년 전에 아일랜드에 살고 있던 프라이데이 머피가 되살아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하면 영혼은 꼭 있는 것이고, 그 영혼이 200년 동안 살고 있었던 저승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은 그 당시 전 세계 사람들을 흥분시켰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론이 분분했습니다.
"거짓말이다."
"우연의 일치다."
"사실이다."
등등…….
지금까지 이 사건에 대해서는 결론은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외에도 영혼과 저승의 유무에 대해서 항상 논쟁이 되어 오고 종교가와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 존재를 믿고, 과학자와 신앙이 없는 사람은 그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영혼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 논쟁은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불사판매 주식회사
세클리 작․이 인석 역
 
아이디어회관 과학문고
224p. 19cm(SF세계명작25)
 
인 쇄      1976년 5월 1일
발 행      1976년 5월 5일
역 자      이 인 석
제 판      명림 정판사
오프셋 인쇄 장원 정판사
활판 인쇄   삼정 인쇄소
제 본      영지 제책사
발 행 인   박 훈
발행처     아이디어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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