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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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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호] 나의 시쓰기: 자작 하이퍼시에 대한 해설 / 심상운
2019년 06월 17일 16시 55분  조회:904  추천:0  작성자: 강려
자작 하이퍼시에 대한 해설

마네킹 또는 아침 햇빛

오전 8시 30분
백화점 지하창고에서 
점원들의 들것에 실려 나오는 
가슴이 깨진 20대의 남녀 마네킹
새 두 마리 지하의 어둠 속에서 날아올라 
아침 햇빛 눈부신  
빌딩 사이로 날아간다
햇빛 속에서 반짝이며 
출렁이기 시작하는 나뭇가지들

바이칼 호수 마을에서
둥 둥 둥 둥  
푸른 하늘로 울려 퍼지는 북소리
운길산 수종사 나한전에서는
환한 빛을 향해 
맨머리의 나한들이 웃고 있다

시작 노트
이 세상 존재들의 보이지 않는 
수평적 네트워크(network) 이미지

현대는 원본이 없는 이미지가 실재가 되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시대라고 한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그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원본 없는 이미지가 새로운 실재로 둔갑한다는 이론을 내세우면서 이를 시뮬라크르(simulacra,模寫)라고 했다. 그리고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이론을 만들어내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사회에서 시뮬라크르는 실재가 아닌 것이 더 실재 같이 행세를 하는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의 세계로 이동한다는 개념을 내세우고 있다. 
현대사회의 현상에서 원형상실이라는 부메랑과 함께 진실추구의 관점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하이퍼리얼리티는 언론 매체들의 보도행태에서 크게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예술의 세계에서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작업공간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21세기 한국 현대시의 현장에서 새로운 시로 등장한 하이퍼시는 가상현실의 시뮬라크르를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인과적인 비유와 관념의 서술에서 벗어나 시 속에 아무런 설명도 넣지 않고 오로지 디지털적인 가상현실의 독립된 이미지와 이미지들의 연결과 결합을 통해서 현실의 문제와 철학적인 사유, 시인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려고 한다. 그래서 하이퍼시는 이미지들의 연결과 결합이 ‘다선구조의 이미지 망(網)’을 형성한다. 그 이미지의 망은 이미지 자체가 실재가 된다는 장보드리아르의 이론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이미지들의 차이를 위계적인 차이가 아닌 동일한 존재성을 바탕으로 한 차이로 인정하는 존재의 일의성(一意性)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 존재의 일의성은 『천개의 고원』으로 알려진 질 들뢰즈(GillesDeleuze)의 리좀(Rhizome) 이론의 원천이 되는 이론으로서 모든 존재는 하나로 모아진다는 이론이다. 하이퍼시가 현실과 연결되는 상상을 넘어서 현실의 끈이 사라진 공상의 세계로 나아가는 문을 여는 것도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이미지들의 관계(리좀)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마네킹 또는 아침 햇빛」을 형성하는 5개의 연은 독립적인 이미지들의 집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1연에서 백화점 지하창고에서 점원들의 들것에 실려 나오는 가슴이 깨진 20대 남녀 마네킹, 2연의 지하의 어둠 속에서 날아오르는 새의 이미지, 3연의 아침 햇빛 속에서 출렁이는 나뭇가지들, 4연의 바이칼 호수 마을에서 울려 퍼지는 북소리, 5연의 운길산 수종사 나한전의 이미지 등이 수직적인 논리의 틀에서 벗어난 수평적인 리좀의 형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들의 내면으로 흐르는 시인의 의식(意識)이 수정(水晶)을 꿰는 실이 되어 시적공간을 형성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 가슴이 깨진 남녀 마네킹의 존재를 일반 생명체의 존재와 동일하게 인식하고 그들이 지하창고에서 들것에 실려 나올 때, 지하의 어둠 속에서 날아올라 햇빛이 빛나는 빌딩 사이로 날아가는 새 두 마리를 그들의 영혼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나뭇가지들도 햇빛 속에서 출렁이고, 바이칼 호수의 마을에서는 죽음의 세계를 통과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북소리가 울리고, 운길산 수종사 나한전에서 맨머리의 나한(羅漢)들이 햇빛을 향해 웃고 있는 모습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가상현실의 시적공간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나한은 산스크리트어의 아라한(arhan)을 줄여서 음역한 말로 불교에서는 불제자로서 번뇌(煩惱)와 생사(生死)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이 세상 존재들의 모습과 그들의 관계를 환히 볼 수 있는 깨달은 존재들을 의미한다. 그런 높은 정신적 경지에 있는 나한들과 백화점의 마네킹이 가상의 존재로서 같은 조상(彫像)이라는 것도 시의 의미에 부가적 작용을 할 것 같다. 4연에서 바이칼 호수의 마을을 등장시킨 것도 단순히 시의 공간을 확대하기 위함만이 아니다. 그곳에는 오랜 옛날부터 알타이 원시종교의 샤먼(shaman)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연에서 오전 8시 30분이라고 시간을 밝힌 것은 아날로그와 다른 디지털의 감각과 특성(정밀성)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 보다 더 중요한 포인트가 되는 것은 이 시를 높은 차원에서 조감(鳥瞰)하는 것이다. 그러면 독립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이 시의 이미지들이 존재의 일의성을 바탕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이 지상의 존재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수평적인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인식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 그들에게 이 세상 존재들에 대한 형이상적(形而上的) 사유와 상상의 문을 여는 계기를 만들어주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실재가 아니면서도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세계를 영화로 구현한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감독의 영화 <아바타avatar2009>에서 구체적인 영상으로 흥미롭게 시현(示顯)된 판도라(Pandora) 행성의 생태계 모습이 이 시에 들어 있는 중심사유 -‘존재들의 수평적 네트워크’-와 하나의 끈으로 묶여질 수 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
영화 <아바타>의 무대가 되는 판도라(Pandora) 행성의 지표면에서는 뿌리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네트워크를 형성한 수많은 식물들과 그로 인해 인간 뇌의 신경망(neuranetwolrk)보다 더 촘촘하게 서로를 연결하는 판도라의 밀도 높은 생태환경이 위계 없이 서로의 차이들이 무수히 얽혀 있는 생태계의 숭고한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판도라 행성의 나비(Na’vi)족들은 자신들의 큐(cue)를 생태계의 신경망에 연결하여 판도라에 살았던 수많은 영혼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판도라의 가상세계가 가장 이상적인 생명체들의 세계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가상 이미지로 이루어진 하이퍼리얼리티의 세계는 현실과 완벽하게 단절된 가공의 판타지(fantasy)의 세계이지만, ‘생명의 원형’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진실추구의 아이러니(irony)적 공간이 되어서 그 생태계의 현장은 관객들에게 판도라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5연으로 구성된 짧은 시 「마네킹 또는 아침 햇빛」이 내포하고 있는 존재세계의 형이상적인 이해를 위해 영역이 다른, 영화 「아바타」의 한 부분을 인용(引用)하여 연결하는 것은 무리한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하이퍼시의 바탕에 질 들뢰즈의 리좀 이론이 깔려 있다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 이 리좀의 이론을 ‘판도라 행성의 생태계 네트워크 이미지’로 구현한 영화 「아바타」와 하이퍼시 「마네킹 또는 아침 햇빛」에서 시도한 ‘이 세상 존재들의 보이지 않는 수평적 네트워크 이미지’는 서로 합치되고 호응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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