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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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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심상운 시론

김이원의 시집 해설
2019년 12월 14일 13시 24분  조회:126  추천:0  작성자: 강려
김이원의 시집 해설
 
내면의식 속 ‘나’의 진실을 탐구하는 뜨거운 감각의 언어
 
 
 
                                                  
                                                                  심 상 운 (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글
 
김이원의 시집『말에 대하여』의 시편들은 위선의 가면을 벗어버린 자신의 내면의식을 벌거숭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그 감각이 매우 강렬하게 다가온다. 벌거숭이 의식의 언어 속에는 성적욕망과 몽상과 좌절, 그리고 희망이 돌출하면서 시와 진실 또는 실상(實相)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그는 시편을 통해 인생의 진실은 무엇인가? 시는 인생의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는가? 하는 화두(話頭)를 던지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붙어 있는 화두는 ‘내 존재의 탐구’다. 그의 시에서 ‘나’는 ‘육체의 나와 정신의 나’, ‘욕망의 나’와 욕망 속에서 탈출하여 ‘욕망 속의 나를 바라보는 나’로 구분된다. 욕망 속의 나는 무의식(無意識)의 나이고,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는 의식(意識)의 나라고 할 때, 그 ‘분열된 나에 대한 탐구’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그의 시편들을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Lacan, Jacques 1901~1981)의 무의식(unconsciousness) 이론에 대입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자크 라캉은 S. 프로이트를 구조주의적으로 재해석해서 무의식이 언어적으로 구조화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의 말이 특히 정신과 의사와 환자 사이의 관계에서 동시에 두 수준에서 작용한다고 본다. 개인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의식하면서 말하지만, 동시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전혀 다른 것을 무의식적으로 얘기한다고 한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주체는 '코기토'(cogito:생각하는 나)에 의해 구성된다. 이때 의식적·반성적 주체가 자아라면 다른 하나는 누구인가? 라캉은 이 다른 하나를 무의식이라고 본다. 그는 무의식이 언어처럼 은유와 환유의 체계로 구조화해 있다고 본다. 이 무의식은 한 개체 안에서 그를 이끄는 타자(他者)이다. 이 타자는 자아에 앞서서 얘기하며 자아의 욕망을 통제한다. 개인들은 자신이 행위하고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 구조가 말하게 하고, 행위하게 하고 욕망을 갖게 하는 것이다.”(-브리테니카 백과사전에서 부분발췌)
 
 이런 관점에서 김이원의 시편들을 이해하고자 할 때, 그의 시편에서 언어의 무의식적 구조가 중시된다. 그리고 기표(signifiant)보다 그 기표의 내면에 잠겨있는 의미를 더 중시하게 된다. 표면의 언어는 무의식이 은유와 환유로 변형된 언어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 속에는 욕구(need)와 요구(demand)가 들어 있다. 욕구는 사물들을 향하지만 요구는 사람들을 향한다. 그는 욕망과 욕구 사이에 ‘충동(pulsion)’을 넣는다. 충동은 욕구와 유사하지만 ‘성애적(性愛的) 모양’ 을 띤다는 점에서 욕구와는 다르게 해석된다. 성애적 충동은 예술적 에너지의 원천이 되기도 하는데, 작가에 따라서 작품의 내면에 잠재되기도 하고 표면으로 솟구치기도 한다.
김이원의 시에서 시의 표면으로 솟구치고 노골적인 이미지를 드러내어 시적 긴장감과 자극적 감각을 유발하는 성애적 표현도 인생의 진실에 도달하려는 그의 무의식의 환유로 해석된다. 그리고 그의 시편에서 발랄하고 자유롭게 분출하는 낭만주의적 언어 표현의 내면에도 성적 에너지’가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그의 시편들의 언어는 매우 자유분방하고 저돌적이고 야생적(野生的) 생명력을 분출하는 언어가 된다. 이는 어떤 유파(類派)에도 소속되지 않는 그의 선천적 언어감각의 분출이기도 하지만 그의 시편을 형성하는 무의식의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그의 언어감각은 전통적 서정시들의 통념화(通念化)된 언어구조를 쳐부수는 에너지를 발휘한다. 그리고 논리적 이미지, 압축과 생략의 모더니즘적 기법은 그의 시편들의 메시지가 암시적으로 함축되어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그래서 필자는 해설의 제목을 <내면의식 속 ‘나’의 진실을 탐구하는 뜨거운 감각의 언어>라고 붙였다.
 
2. 시편 들어다보기
 
가. 길 잃은 욕망의 여행기
 
「어느 해 이 세상의 겨울이었네」에서는 삶의 겨울을 느끼고 죽음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는 시인(시적자아)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주먹만한 눈덩이가 도시 전체를 덮고 있을 때/나는 자신의 안녕을 한없이 괴로워했었네”라고 독백한다. 그리고 “이미 마음의 눈(目)을 다쳐/보이지 않아/몸의 눈(目)마저 캄캄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이 시의 시적자아는 자신의 눈 먼 육체와 정신을 “길 잃은 욕망”이라고 한다.
 
1
어느 해, 이 세상의 겨울 이였네/그때 나는 이미 스스로 계획한 인생을 다 살아 버렸고/그 나머지 인생을 살고 있었네//주먹만한 눈덩이가 도시 전체를 덮고 있을 때/나는 자신의 안녕을 한없이 괴로워 했었네//나의 안녕은 수치스러운 것/죽어간 인생들에게 어떠한 안부도 건네지 못했으므로//
2
마음은 우연, 말도 우연 /마음의 눈도 우연, 몸의 눈도 우연/그 겨울 눈꽃 천지의 세상도 우연//우연이 우연을 만날 때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욕망,//하지만 나/이미 마음의 눈(目)을 다쳐/보이지 않아/몸의 눈(目)마져 캄캄해//(길 잃은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죠/불길한 미래의 추억들은 어떠한 인생도/차용하질 못하거든요 )// --「어느 해 이 세상의 겨울이었네」1-2 연
 
「오오, 내 인생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에서 시적자아는 “가면과 가발을 눌러쓰고 척추 뼈를 짓누르며/ 전대미문의 쾌락을 요구하는 사내들!”과의 정사장면을 그려내면서 육체적 욕구의 허망함을 토로한다. 이는 길 잃은 욕망의 처절한 몸부림의 환유로 인식된다.
 
오늘도 면책 특권을 누리는 자칭 천재들의 원반던지기 시합/한창 어지러운데//나는 믿었지/내 정신의, 꽃의, 향기를 /놀라운 가속도의 그 휘발성을//가면과 가발을 눌러쓰고 척추 뼈를 짓누르며/전대미문의 쾌락을 요구하는 사내들!/(흥! 바람은 바람의 상승무드를 타고 바람과 함께 잘도 사라지더라)//나는 흥정했지/하룻밤의 숏 타임 정사를!//어지럽고 습기 찬 계곡사이를/꿀벌의 날개로 붕붕 날으며//밤하늘 히닥닥 요란한 신선놀음에 썩어 가는 건/내 나날의 힘없는 도끼자루들!//오오 내 인생이 단 한번이라도 행복해 질 수만 있다면//---「오오, 내 인생이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전문
 
이런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은 「시를 써야 한다」에서 정신적 또는 예술적 욕망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기 위해서 시를 써야 한다면서도 시를 쓰는 것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 시켜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시를 써야한다/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고상틱한 시?”라고. 그래서 그에게 시란 “무당벌레, 집게벌레, 그것들의 화려한 등껍질”로 비유될 뿐이다. 이는 ‘기의(signifié)는 떠 있는 기표 밑에서 계속 ‘미끄러진다.’는 자크 라캉의 언어관과 상통한다. 그것은 진실에 닿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시를 써야 한다/살아남기 위해서//라이프 이스 숏, 아트 이스 롱/책들은 친절하다/책들은 X 세대다/X 세대의, X 세대에 의한, X 세대를 위한,//책들은 가르쳐 준다/시대정신에 늦고/문학사조에 어두운 /무식한 예술가에게 나름의 세계관을 가르쳐 준다/그것은 시의 합법적 처세술이다, 테크닉이다//난 바퀴벌레가 아니다/그러니 바퀴벌레 따위와 놀지 않는다/굳어버린 빵 속에서 숨쉬는/바퀴벌레의 속사정쯤으로/내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시를 써야한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고상틱한 시?//너는 알겠지/내가 밤새워 공부한 세계관/그 세계관이 그려낸 무당벌레, 집게벌레, 그것들의 화려한 등껍질
그래 너는 알겠지/.................알겠지!/..................알아?//손과 손이 인도하는 피아노 건반과/음표사이엔, 그러나 그러나 /그딴 세계관 따위는 존재치 않는다는 것쯤을?--「시를 써야 한다」전문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무의식 속의 욕망은 모체이탈(母體離脫)의 원초적인 결핍에 대한 충족욕망이다. 이 욕망은 ‘떠나온 곳(잃어버린 곳)을 향한 강렬한 그리움’이라는 점에서 인간 삶의 정신적 동력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적 혼(魂)으로 승화된다. 그러나 그 욕망은 허상(虛像)에 집착하는 번뇌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명령 불복종의 죄 값을 치르는 날이 오리라」에서 “불량 지도를 들고서/천국의 여행을 꿈꾸었던 나”라는 구절은 허상에 대한 집착을 상징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여행을 꿈꾸는 천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크 라캉이 말한 유아시절의 나르시즘(상상계) 속에 있을까? 아니면 언어의 세계인 상징계에 있을까? 또 아니면 인간의 언어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실재계에 있을까? 불교 경전『금강경』에서 붓다는 제자들에게 형상으로 여래를 찾으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여래를 볼 수 없다고 하였다. <若以 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 行邪道 不能見如來> 그러나 김이원의 시편들은『화엄경』입법계품의 선재동자의 구도기(求道記) 같이 ‘육체와 정신’을 편력하는 체험적 사유(思惟)를 통해서 천국에 대한 갈망과 허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그의 일부 시편들은 인생의 어둠 속을 헤매는 ‘길 잃은 욕망’의 여행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명령 불복종의 죄 값을 치르는 날이 오리라/태양을 마주보고 랄랄라 서 있는 자들//당신의 여행은 즐거웠냐고/성급하게 물어 오지만/잘못 그려진 불량 지도를 들고서/천국의 여행을 꿈꾸었던 나여/그럼요/천국은 여자 혼자서 여행하기엔 무척이나 위험한 곳이랍니다/그러니 내 붉은 입술이 흘리는 어떤 말도 당신은 믿지 마세요/그러니/길 떠나온 길 위에서 떠나갈 길 따윌 묻는 어리석음을 다시 한번 범하지 마세요//-「명령 불복종의 죄 값을 치르는 날이 오리라」1부
 
이런 자신의 존재 탐구 여정은「그날 밤 나는 벌레처럼 웅얼거리며 파닥거렸다」에서는 절정에 이른 정신적 생존의 문제를 보여준다. 이 시의 나(시적자아)는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현대사회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 죽음에 처한 처절한 운명의 한 여자로 등장하여 거대한 조직 속에서 소외된 존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었어//죽음이 제 스스로의 의미로 가득 차/제 목을 조를 때//나는 알지/세계는 다음날,/조간신문에 난 기사화된 죽음을 즐긴다는 사실을”의 구절이 비인간적이고 몰개성적인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존재의 단면을 매우 인상적인 장면으로 부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소외된 존재상황을 파닥거리는 벌레에 비유한 야성적인 언어 감각이 독자들에게 충격을 가한다.
 
그날 밤 나는 벌레처럼 웅얼거리며 파닥거렸다/파닥거린 죄?/세상은 너무 어두웠고 너무 너무 어두워/닫혀진 창문사이로 나는 소리 질렀지/질러지지 않는 끓는 쇳소리 넘쳐 흘렀어/캑캑 꺽꺽//여보세요!/여보시죠!/여어기 좀 봐 주시죠!/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었어//죽음이 제 스스로의 의미로 가득 차/제 목을 조를 때//나는 알지/세계는 다음날,/조간신문에 난 기사화된 죽음을 즐긴다는 사실을//아무렴 알지 난/4월과 5월 사이/불법의 공포와 금지된 발광사이에/한 여자 숨 막혀 길바닥에 누운 날/대다수의 시민들은 시청율 60% 이상/TV 심야 영화를 즐겼다는 사실을//아무도 다른 그 누구에게 관심 없었어/모두들 스스로의 율법 속에서/생의 찬가를 높이 높이 불렀어//--「그날 밤 나는 벌레처럼 웅얼거리며 파닥거렸다」전문
 
「나의 단말마적 발작과 세기말적 발광사이에」도 제목부터 충격적이다. 그리고 “번개속 생각들은 천둥에게 괜한 날벼락을 때렸다/아픈 줄도 모르고 피뢰침위에 제 몸뚱이를 눕혔다” 등의 언어들이 보여주는 가상현실 속의 나의 모습도 전율적이다. 이런 전율과 자극의 언어들이 만들어내는 언어의 퍼포먼스(performance)는 생의 허무와 미궁에 대한 존재론적 도전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찾지 못했다/앞서가는 저기 저 검은 구름위의 검은 옷 입은 한 사내/뛰어가 잡지 못했다”라는 구절의 이미지에서 유추된다.
 
나의 단말마적 발작과 세기말적 발광사이에/입버릇처럼 중얼거린 허무에 대해/그 정교한 치 떨림에 대해/기술한/그 어떤 말도 찾지 못했다//미궁은 불꽃 속을 날으고/번개속 생각들은 천둥에게 괜한 날벼락을 때렸다/아픈 줄도 모르고 피뢰침위에 제 몸뚱이를 눕혔다//찾지 못했다/앞서가는 저기 저 검은 구름위의 검은 옷 입은 한 사내/뛰어가 잡지 못했다//무한창공의 무한불꽃이 번쩍이는/창세기의 무한질주 굉음 사이로//그렇게 부질 없었다 //-「나의 단말마적 발작과 세기말적 발광사이에」전문
 
나. 형이상적 인식-바다의 발견
 
이런 처절한 정신적 존재상황의 과정을 거친 시인의 갈망은「바다에 갔다」에서 ‘말이 없는 바다’라는 공간을 획득한다. 그는 바다에서 무심(無心)의 의미에 접근하고 “어떤 위안들은/소리 내어 발음되어지지 않은/무형태속에 숨겨져 있는 것”을 깨닫는다. 이 시에서 바다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변함없는 옛 바다이다. 그 바다는 무심하게 그를 받아들임으로써 모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진실은 말의 허상 속에 있지 않고 아무 형태가 없는 침묵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은 위안이 되고 말의 허상을 벗겨내는 공간이 된다. 이 공간은 ‘존재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다에 갔다/내가 아는 몇 개의 바다가 있었지만../오직 그 바다만이 나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나는 그 바다로 갔다//내가 좀 피곤해 있었기 때문일까//바다는 말이 없었다/모래 한 알의 흐트러짐 조차도 여전한 예전 그 바다/그 모습 그대로였기에/나는 그 무심함에 좀 슬퍼졌다//그 무심함 속에서/어떤 쓸쓸함 들은 전혀 공유되지 못함을/그리고 오로지 자신만의 것으로 남는다는 것을/나는 조금 이해해야 했다//그리고 생각해 보았다/어떤 무심함이란/가장 최선의 사랑방식일지도 모른다고//어떤 위안들은/소리 내어 발음되어지지 않은/무형태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라고//-「바다에 갔다」 전문
 
이런 ‘바다’의 이미지가 그의 시에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가? 제목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사유의 옷을 입고 있는 시,「한때, 나는 세상이 이미지들의 단백질 합성체 같은 것 인줄 알았다」는 독백의 언어로 시적자아의 사유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 사유는 제목이 의미하는 것같이 세상을 보는 눈의 변화이다. 물질적 형상에서 벗어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는 선불교(禪佛敎)의 수도승 같은 시인의 모습이 감지된다. 그것은 이 시의 “태양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 몸을 비틀기 전에/나는 방문을 안으로 잠갔다/사생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라는 구절에서 드러난다. 시인이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치열한 구도(求道)의 시간을 통해 얻은 것이 바다의 이미지이다. 그는 “바다로 배를 띄워야한다/내 헛되고 헛된 희망이 다시 자해의 심한 욕구를 느끼기 전에”라고 한다. 이 바다는 삶과 죽음이 하나로 합쳐진 본질적인 세계로 유추된다. 그것을 깨달은 시적자아는 오도송(悟道頌) 같이 확신에 찬 말을 한다. 그리고 외친다. “안개, 자욱한, 어디선가/오오 누군가의 낮은 휘파람 휘파람 소리/오오”라고.「바다에 갔다」에서는 바다가 위안의 장소라는 의미였지만 이 시에서는 바다의 이미지가 “성분미정의 합성체”라는 통합의 세계로 확장된다. 그래서 바다는 이 시에서 헛된 희망을 주는 허상의 공간에서 벗어난 해방공간의 이미지로 부각된다.
 
한때, 나는 세상이 이미지들의 단백질 합성체 같은 것인 줄 알았다/길고 검은 역사를 지닌 자궁의 생성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오해였다, 그건, 내, 특유의//태양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제 몸을 비틀기 전에/나는 방문을 안으로 잠갔다/사생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어깨 너머로 도끼를 번쩍 휘둘렀다/핏물 고인 채 부릅 뜬 눈동자의 물고기들/사방으로 흩어지며 죽음을 노래하였다//바다로 배를 띄워야한다/내 헛되고 헛된 희망이 다시 자해의 심한/욕구를 느끼기 전에//사람들은 말하겠지/얘야 아서라 참아라//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단다/태양이 뜨고 지는 걸 막을 수는 없단다//오해였다, 세상은, 질컥이는 오해의 푸른 바닷물/염도32%의 짜디짠 성분미정의 합성체였다//지구가 태양을 돌리든/태양이 지구를 돌리든 어차피/내 이미지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였다/근심과 희망의 태양은/내 왼쪽 어깨에서/떠서 내 오른쪽 어깨로 지거든//그러니/이 막막의 망망 바다위에서 내 돗단배, 너무나, 외로워 다시 살고픈 욕망과 다시 죽고픈 욕망이/만 오천 번 쯤 휘돌며 솟구치는데//안개, 자욱한, 어디선가/오오 누군가의 낮은 휘파람 휘파람 소리 /오오//-「한때, 나는 세상이 이미지들의 단백질 합성체 같은 것 인줄 알았다」전문
 
다. 주관적 시각에서 객관적 시각으로
 
객관화된 시각은 대상을 관조(觀照)하는 바탕이 된다. 그래서 시도 ‘체험의 시’에서 ‘관조의 시’로 바뀐다.「어디서 바람은 불어오는 것일까」는 주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각변화의 언어를 강렬하게 드러낸다. 이 시에서 ‘나’가 ‘그’로 바뀌는 것도 주관에서 객관으로 전환되는 인식의 변화를 표출한다. 그러나 초점이 맞지 않은 영상물을 보는 듯한 복잡한 인상은 의식의 미분화상태를 나타낸다. 그것은 ‘심야택시의 경련성에 비유된 그의 모습,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는 바람, 사람들이 벽을 만들고 집을 지어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 그를 당황하게 하는 인류에 대한 생각, 목적지 없는 열차표 같은 감정의 무책임성, 무용의 동작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 누군가의 사실들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 그 사실대로 기억되지 못한다는 사실 등’으로 표출 되는데, 이는 시인의 무의식 속에서 돌출하는 무질서한 이미지와 사유 때문이다. 이런 시의 구조는 어디에도 초점이 없는 다시점(多視點)의 시를 탄생시키는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실험적인 텍스트’로 인식된다.
 
심야 택시들은 모두 어떤 경련성들을 지니고 있다/발작과도 같은 어떤 힘들을 지닌 채 /제 흔적들을 두려워하듯 /달려가고 있다는 점에서/그것들은 어딘가의 그의 모습들과 아주 흡사하다//어디에서 바람은 불어오는 것일까/이런 바람들 때문일까/주변의 사람들이 벽을 만들고 집을 짓고/사랑을 나누는 모습들을 보게 될 때/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어떤 힘들은 이 거대한 인류구성에 참신한 활력이 되기도 한다/이런 생각들은 그를 당황케 한다, 해서 그는 당황한다/어떻던 그는 그 당황함 들에게 보여 주었던/잠시의 존경심들을 접어 두기로 작정한다//감정이란 원래가 그토록 무책임한 것이다/그는 목적지 없는 열차표를 읽어 본다//그 사소한 무용한 동작에 마음을 다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떠나야 할 곳이 없기에 머물러야 할 어떤 곳도 없다는 사실/누군가의 사실들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기억 속에/그 사실대로 기억되지 못한다는 사실//대체로 이런 방식의 인생에는 어떤 희망도 살아남지 못한다/너무 많은 것을 잃고 살아 왔기에 더 이상 잃어야 할/어떤 것도 남아 있지 못한 사람들//그 무표정한 얼굴들이 무엇인가를 안타까워하고 있다면/이것은 명백히 하나의 허위일 것이다//그는 비웃는다 최근의 가장 위태했던 그의 집착을/그는 떠나려 한다 떠날 곳이 없기에/어떤 선택의 망설임도 없는 그/그는 그를 증오한다//-「어디서 바람은 불어오는 것일까」전문
 
「사랑에 취한 눈 먼 짐승이여」에서 보여주는 교훈적인 어조는 ‘깨달은 자’의 객관화된 발언으로 이해된다. ‘-이여’라는 감탄형 종결어미의 사용이 그것을 증명한다. 끝 구절 “아우성치는 사랑이란 이름의/저 조심성 없는 갈가마귀 떼들을“은 객관화된 이미지로 과거 자신의 모습도 투영(投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에 취한 눈 먼 짐승이여/집이 있어도 돌아가 누울 곳 없는/이방의 마음들이여//한 때 그대의 앞 발이 정처없이 할퀴었을/기억의 앙가슴팍이여/눈을 떠라/비극이 난무했던 순정의 시대는 갔다//반복은 얼마나 지루할 것이며/증오란 얼마나 허무할 것인가/네가 마련한/식탁의 음식들만큼/네 위장은 부풀어 오르는 법//너는 충분히 배부르다/지금까지 먹어 온 상처의 검은 고깃덩어리만으로도//그러므로 거부하라/다시 죽음의 힘을 빌려 달라고/다시 죽음의 장미 향기를 맡게 해달라고//아우성치는 사랑이란 이름의/저 조심성 없는 갈가마귀 떼들을//-「사랑에 취한 눈 먼 짐승이여」전문
 
「지상의 나날」은 열탕 같은 주관에서 벗어난 관조의 세계를 보여준다. 이 시에서 관조는 객관적 상상을 만들어내고 질서가 잡힌 인식의 공간을 열어 준다. 시인은 과거회상의 상상적 이미지<땅 속의 안락함 속의 나⟶ 꿈속에서 누군가의 음울한 휘파람소리를 듣는 나⟶존재의 비명에 눈을 뜨고 지상으로 나온 나⟶지상의 바람 속에서 번개처럼 스치는 묘비명을 읽는 나⟶다시 폭풍의 눈 속으로 들어 갈 나>를 통해서 자기 존재의 정신적 성장과정을 형상화 하고 있다.「어디서 바람은 불어오는 것일까」와 대조되는 선명한 이미지는 내면의식 속 ‘나’의 진실을 탐구하는 깊은 사유와 함께 시적미감을 높이고 있다.
 
지상엔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나는 땅속에 있었다/무풍지대의 평화와 안락을 즐겼다//태양은 따스하게 내려 쪼이고/사람들은 한가로웠다/아무도 땅위의 말 따위에 근심하지 않았다//꿈속에 가끔씩 장송곡이 울려 퍼졌다/누군가의 음울한 휘파람소리도 따라 들렸다/내 파리한 목덜미 뒤로/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느다란 비명이/새어나왔다//나는 눈을 떴다/참을 수 없었다//서서히 지상으로 기어 올랐다/동그랗게 모은 나의 눈과 귀사이로/바람이 휙휙 무리져 지나쳐 갔다/간혹 번개처럼 스치는 묘비명을 읽었다//나는 기다렸다//다시 폭풍의 눈 속으로 들어 갈/지상의 무시무시한 칼의 나날//-「지상의 나날」전문
 
「오늘 밤은 오늘 하루보다 분명 더 길고 길 것이므로」,「지친 자들은 더 이상 말을 나누지 않는다」,「나는 처녀야」 등의 시편도 성애적인 이미지의 객관화를 통해 자신의 존재탐구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3. 나가는 글
 
필자는 김이원의 시편들을 나름대로 읽으면서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언어감각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감상했다. 그리고 그의 독특한 성애적 이미지를 무의식 속 욕망의 환유라는 관점에서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이론에 대입해서 그 비밀을 풀어 보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시세계의 변화과정을 가. 길 잃은 욕망의 여행기, 나. 형이상학적 인식-바다의 이미지, 다. 주관적 시각에서 객관적 시각으로 분류하여 살펴보았다. (이 분류는 임의적인 것으로 필자의 시력이 미치지 못하는 또 다른 부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의 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붙어있는 화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이다. 그는 이 탐구를 위해서 자신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환유의 언어로 내면적 욕망의 실체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사생결단의 구도의 과정을 거쳐 존재의 해방을 의미하는 바다의 이미지를 발견한다. 그것은 자크 라캉이 말한 ‘기의의 심연(深淵)’을 뛰어 넘어 실상에 도달하려는 언어의 치열한 몸부림이 얻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편들은 정신적인 면에서 불교경전『화엄경』입법계품의 선재동자의 구도기(求道記)를 연상시킨다. 따라서 상투적인 언어에서 벗어나 시 속에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투영하여 집요한 내면탐구의 세계를 보여주는 시인으로서 김이원의 존재는 한국 현대시의 현장에서 특이한 개성의 시인으로 평가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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