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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19> / 심 상 운
2019년 07월 12일 21시 33분  조회:285  추천:0  작성자: 강려
 *월간 <시문학>2006 12월호 발표 <최선영/강우식/최동호  시인의 시>  
                   
최선영 시인의 시- 「해변海邊의 마을」「토요일土曜日 아침」
 
마을은 죽었다
바다에서 기어 나와 죽은 마을
해변에 빈 조개껍질처럼 누웠다
 
청춘이 빠져 나가버린
우리들의 잔해殘骸
<고독을 더욱 사납게 하는
5월의 해풍>도
파도가 거절하는 6월의 연서戀書도
모두가 여름이 목에 걸고
달아난 밀짚모자다
 
아쉬운 행여行旅의 길목에
겨울은 결코 서둘지 않는
귀먹은 우체통
이명耳鳴의 아픈 미로를 거쳐 미구에
봄의 사자는 도래하리라
 
그러나 아직은
식은 눈알의 인광燐光을 위해
무거운 칸타타는 들려오고 있다.
         ----「해변海邊의 마을」전문
흰 벽壁은 나의 캔버스
한 폭의 신나는 추상화抽象畵를 던지며
일어나는 토요일의 건강한 안색顔色
아침은 하늘 높이
싱싱한 그네를 메어두고...........
잘 닦인 바깥 풍경風景은
활기 있는 안구眼球 속에
확대되어 빛나는 고전古典의 세계
큰 뉴스는
이웃집 소인제금가素人提琴家가 띄우는
호망의 선율
영롱한 비누방울이 되어
집집을 방문訪問한다
---「토요일土曜日 아침」
 
시가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이 언어의 포장지에 감추어진 시인의 메시지라면 시와 산문의 경계는 불분명해지고 시의 의미는 매우 단순해진다. 그러나 독자가 상상의 들판에 나가 보물찾기하듯 각기 다른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면 시의 예술성은 그 의미의 개체만큼 확대된다. 그것은 시가 언어(의미)를 표현도구로 하지만 예술성(무의미)에 가까이 다가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의 예술성은 시의 공간을 확대하고 시를 의미의 감옥에서 해방시킨다. 그래서 시인은 언제나 시의 예술성과 의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존재가 된다. 현대시를 창작하는 시인일수록 더욱 그렇다. 최선영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먼저 감지하는 것은 언어에 대한 시인의 생동하는 의식이다. 언어를 감정의 늪 속에 함몰시키지 않고 객관화하려는 태도와 언어의  사물성事物性을 감성표현의 도구로 환원하는 그의 시적 연금술이 그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를 의미의 감옥에서 해방시키려고 한다.「해변海邊의 마을」은 시의 의미 쪽에 비중을 두고 있지만, 시인은 그 의미를 객관적인 사건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시의 예술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의 첫 연 “마을은 죽었다/바다에서 기어 나와 죽은 마을/해변에 빈 조개껍질처럼 누웠다”는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사건이다. 비록 그 다음 연 “청춘이 빠져 나가버린/우리들의 잔해殘骸”라는 구절에서 그 실체가 곧 해명되지만 이런 언어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상상은 입체적이며 구상적인 사물성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시의 공간을 확장시킨다. 그리고 개성적인 상상의 공간을 구축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죽음을 여름→겨울→봄이라는 계절의 순환으로 인식하고 허무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것은 “아쉬운 행여行旅의 길목에/겨울은 결코 서둘지 않는/귀먹은 우체통/이명耳鳴의 아픈 미로를 거쳐 미구에/봄의 사자는 도래하리라”는 구절이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식은 눈알의 인광燐光을 위해/무거운 칸타타는 들려오고 있다.” 고 칸타타(Cantata)의 배경음악을 통해서 낙관적인 생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토요일土曜日 아침」은「해변海邊의 마을」보다 더 감각적이고 예술적이다. 이 시는 논리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집합적 구성으로 되어 있고 의미보다는 감각이 시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이 시에는 사건이 없고 이미지의 나열만 있다. 그러나 시인의 의식이 이미지와 이미지를 연결하여 밝고 아름다운 꿈이 담긴 상상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이런 장면에서 독자들은 미적 쾌감을 느끼고 자유로움을 얻는다. “큰 뉴스는/이웃집 소인제금가素人提琴家가 띄우는/호망의 선율/영롱한 비누방울이 되어/집집을 방문訪問한다”는 이 시의 끝 구절은 토요일의 생동하는 감각을 드러내는데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그것은 이웃집 소인제금가素人提琴家(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자유로움과 경쾌함이 영롱한 꿈의 비누방울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두 편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인생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와 절제된 감정 그리고 언어의 지성적 구성이다. 인생에 대한 낙관적 태도는 시를 낳는 모태가 된다. 시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예술은 인생에 대한 희망과 자유정신 속에서 형성된 사리舍利 같은 보석이다. 그래서 시인은 꿈속의 파랑새를 찾아서 자신의 일생을 떠돌이로 보내는 것이다. 나는 최선영 시인의「거울의 형이상학形而上學」(1987년 <시문학> 6월호)을 읽고 월평에서 “다양한 의식의 흐름, 몽타주(montage) 수법 등이 매우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은 “유리알의 공간/가면을 쓴 다비떼의 춤/번쩍이는 속죄양의 눈물방울/우편배달부는 아무런 전보도/날라다 주지 않고/저승의 냄새가 점령하고 있는/ 그 장소”라는 시의 구절들이 불연속적인 이미지와 이미지의 결합과 충돌을 통해서 내면적 상상의 세계를 확대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시는 민중시라는 대중선동의 구호口號와 같은 시들이 범람하던 시대적 상황에서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 그의 초현실적인 시의 언어는 디지털 시대의 영상언어와도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시를 의미의 감옥에서 해방시킨다.
*최선영(崔鮮玲): 1959년 <자유문학>에 「역사」「온실」「소심」이 추천되어 등단. 시집 <램표를 끌 무렵> <나무의 시> <다리를 건널 때> 등
 
강우식 시인의 시- 「사행시초四行詩抄1」「세족계洗足戒
 
하나
내외여, 우리들의 방房은 한알의 사과 속 같다.
아기의 손톱 끝에련듯 해맑은 햇볕 속
누가 이 순수한 외계外界의 안쪽에서
은밀하게 짜올린 속살 속의 우리를 알리.
 

순이의 혓바닥만한 잎새 하나
먼 세상이나 내다보듯
초록의 물고비를 넘어나
짝진 머슴애의 얼굴을 파랗게 쳐다보네.
 

화사한 잔치로 한 마을을
온통 불길로 휩쓸 것 같은 노을이 타면
그 옛날 순이가 자주 얼굴을 묻던
내 왼쪽 가슴차게 새삼 피어오르던 쓰린 눈물이여.
 

계집애들의 뱃때기라도 올라타듯
달이 뜬다. 젖물같이 젖어오는
저 빛살들은 내 어머님의 사랑방 같은 데서
얼마나 묵었다 시방 오는가.
                   ------「사행시초四行詩抄․1」하나~넷
산사태 지자
개울물은 더욱 맑다.
 
습기진 돌틈
살모사새끼들이
오글거리고
 
북향한 상봉 어디쯤
동자삼도 있을 법한데
 
물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발보다 마음을 씻어내고 있으려니
은어새끼들이 와서는
발가락 때를 빨아준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산문 앞 개울에 발담그는 일만도
수계受戒 같아라.
        ----「세족계洗足戒」전문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이성理性이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감성感性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 속에는 감성의 숨은 힘이 들어있다. 현대시에서도 이 감성의 힘은 딱딱하게 굳은 이성(지성, 관념)의 껍데기를 부수고 원초적인 실체의 속살을 드러내는 동력이 된다. 서정시가 시의 원류로 존재하는 근원도 이 감성의 힘 때문이다. 모더니즘(지성)의 시가 현대시를 지배하고 있을 때에도 독자들은 서정시를 선호했으며 시는 감정의 표출이라는 시의 정의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 감정의 표출을 어떻게 다듬어서 언어의 그릇에 맛깔스레 담아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강우식 시인의 사행시편四行詩篇들의 서정은 그런 면에서 큰 느낌을 준다. 인간의 가식적假飾的인 것들을 다 걷어내고 본질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그의 시편들은 사행四行이라는 시의 틀 속에 언어의 작고 예쁜 집을 짓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행시四行詩의 형태는 음보와 율격의 규정이 없어서 운율적인 면에서는 개방적이다. 그리고 기, 승, 전, 결의 구성법에도 억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3장 6구 45자 내외의 평시조平時調보다 여유롭다. 그러나 자유시의 형태에 비하면 너무 옹색하다. 하지만 시는 “언어의 경제”를 표현의 근본으로 한다는 면에서 볼 때 그의 사행시四行詩는 시의 원리에도 부합하는 개성적인 작시법의 표출이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그의 사행시四行詩는 한국 현대시의 한 형태로도 분류될 수 있을 것 같다. 언어는 압축될수록 의미가 확장된다. 구체적인 설명이나 묘사는 오히려 시의 공간을 좁히고 상상력을 감퇴시킨다. 그것은 소리(대사, 음악, 음향 등)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던 60년대 라디오 드라마가 현재의 칼라 TV의 리얼한 장면보다 상상력의 유발과 확대란 측면에서 더 효과적인 것과 같다. 그의 사행시四行詩에는 압축된 시행 속에 신선한 비유의 언어들이 박혀있다. 그 비유의 언어들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내외여, 우리들의 방房은 한알의 사과 속 같다.”라는 구절에서 내외관계의 내밀한 장소가 되는 방房을 달고 수분이 많은 “사과 속”으로 비유한 것이 그것이다. 이 “사과 속”에는 사과의 씨앗도 들어있어서 우리들 삶의 속내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상상은 과즙이라는 미각으로 독자들을 미적 쾌감에 젖게 한다. 그러면서도 숨겨진 현실의 생생한 드러냄이라는 면에서 관념으로부터 해방된다. 두 번째의 시 “순이의 혓바닥만한 잎새 하나/먼 세상이나 내다보듯/초록의 물고비를 넘어나/짝진 머슴애의 얼굴을 파랗게 쳐다보네.“에서도 잎새와 순이를 연결하여 사춘기를 지난 후에도 떠오르는 머슴애에 대한 그리움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먼 세상이나 내다보듯“이라는 철학적 사유의 언어가 들어 있지만 그것이 주는 거리감이 시를 한 단계 정신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짝진 머슴애“에 대한 그리움이 생생하게 살아오는 느낌을 주는 “파랗게 쳐다보네.”라는 끝 구절은 언어의 감각적 표현이 얼마나 많은 의미를 함축하게 하는지 알게 한다. 세 번째의 시에서 “화사한 잔치로 한 마을을/온통 불길로 휩쓸 것 같은 노을”은  짧은 몇 개의 단어로 젊은 날의 뜨거운 사랑을 함축하고 있다. 그 언어는 그가 언어의 순도純度와 아름다움을 얼마나 높이고 있는지 알게 한다. 이런 세부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사행시초四行詩抄․1」의 시편들이 각각 독립된 형태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전체가 집합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세족계洗足戒」는 비유譬喩의 언어에서 벗어나서 사물과 직접 부딪히는 실제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비유가 아무리 시적 상상력을 높여준다고 하여도 실상에 접근하는 통로를 열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실상에 접근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사물과 인지認知 사이에 구축된 관념의 벽을 허물어버리는 탈-관념의 정신작업을 하고 있다.「세족계洗足戒」에 “수계受戒”라는 단어 외에 관념어가 들어있지 않은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물소리에 마음을 빼앗겨/발보다 마음을 씻어내고 있으려니/은어새끼들이 와서는/발가락 때를 빨아준다.”는 이 사실적인 장면은 얼마나 맑고 상쾌한 느낌을 주는지 거듭 음미하게 한다.「세족계洗足戒」는 강우식 시인이 언어의 연금술에서 벗어나 실상의 세계로 나왔음 보여주고 있다. 실상은 불입문자不立文字의 세계 속에 존재한다고 한다. 시인은 실상을 추구하지만 언어를 도구로 하여 접근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시인의 고뇌와 새로운 가능성이 숨어 있다. 
강우식(姜禹植): 1966년 <현대문학>에 「박꽃」「사행시초四行詩抄․」등이 추천되어 등단. 시집 <사행시초四行詩抄․><고려의 눈보라>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벌거숭이 방문> <시인이여 시여><물의 혼>등 다수
 
최동호 시인의 시 - 「독서讀書」「몽당연필」
 
밤이 늦으니
책장 넘기는 소리에 손이 마른다.
 
마른 손의 관절을 꺽어
책장을 뚝뚝 잘라낸다.
 
갈대숲에서 잠자던 새가
쏠리는 바람 소리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날아간다.
 
이미 책 속에선 찾을 수 없는 생목의 향기
잘 떠오르지 않는 기억의 조각들
 
무너진 개미의 둑 위에 쌓아올린
책 속의 모래알 글자들이 아른 거린다.
 
언제이던가
마른 손의 주름살 사이로 사라진
 
싱그러운 유년의 날들이
불빛 가린 손등너머로 보인다.
 
가을이 깊어가니
책장 넘기는 소리가 맑아
 
빈 일기장엔
비쩍 마른 영혼의 향기만 외롭다.
                 -----「독서讀書」전문
백지 위에 톡톡 부러진
 
까만 연필심 같은
 
송사리떼들
하얀 눈동자 깜박거리며
 
구름 일기장 맑은 물가에서
산들바람 친구와 놀다
            -----------「몽당연필」전문
 
인간의 언어는 사물(대상, 의미)을 지시하는 기호일 뿐이다. 그래서 사물과 언어 사이에는 허구의 관념이 들어 있다. 그런 언어를 또 1차적인 언어 (음성언어)와 2차적인 언어(문자언어)로 구분하여 하여 더 본질에 가까운 언어를 음성언어라고 하고 그 다음을 문자언어라고 한다. 음성언어가 1차적인 언어가 되는 이유는 음성언어는 지적 작용으로 질서화 되기 이전의 감정과 의미가 뒤섞인 원색적인 모양이 그대로 들어 있는 데 비해 문자로 기록된 언어에는 원색적인 모양이 다 지워지고 지성으로 질서화 된 가면假面의 언어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대시는 대부분 2차적 언어인 문자로 기록되기 때문에 그들의 언어는 사물의 본질이 주는 생생함에서 멀어진 박제같이 말라버린 관념의 덩어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인들은 어떻게 하면 그 말라버린 관념의 껍질을 벗겨내고 생생한 원래의 언어를 살려내느냐 하는 언어와의 싸움을 하는 것이다. 현대시에서 탈-관념의 시니, 무의미의 시니 하는 발상도 모두 시인들의 언어가 현실의 사물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최동호 시인의 시「독서讀書」에는 언어와 사물과의 관계가 드러나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밤늦도록 책을 읽으면서 학문(관념)의 세계에 침잠하지만 관념이전의 기억들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 기억들은 지성으로는 닿을 수 없는 원초적인 본래의 세계다. 그래서 그는 그 세계를 “갈대숲에서 잠자던 새가/쏠리는 바람 소리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날아간다.//이미 책 속에선 찾을 수 없는 생목의 향기/잘 떠오르지 않는 기억의 조각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서讀書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지식의 전수 방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다. 책 속에는 인간의 역사가 들어 있고 지식과 논리가 들어 있다. 그러나 책 속에 들어있는 역사는 본래의 사실이 아닌 가공加工된 사실이다. 따라서 역사는 사실의 기록일 수가 없다. 지식과 논리도 그렇다. 그 지식과 논리는 자연의 지식과 논리가 아닌 인간의 입장에서 세운 가공架空의 건축물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최동호 시인의 「독서讀書」는 가공加工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본래적인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1차적 사유의 도정道程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 사유의 도정道程은 독서라는 중간단계를 지나서 사물의 본질과 대면하는 직관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는 이 시에서 관념이전 기억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 “기억의 조각”들에는 이성적인 것보다도 더 소중한 맑은 향기의 서정이 들어 있다. 그 서정은 그의 마음 속 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본래적 감성의 풋풋한 물기가 묻어있는 사실들이다. 그는 이 시에서 그것들을 끌어내어 소박하고 아름다운 언어의 옷을 입혀서 맑은 서정의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다.「몽당연필」은「독서讀書」이후의 직관적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논리적 사유와 관념에서 뛰어나와서 대상과 직접 만나고 있다. 그 대상은 맑은 물가에서 산들 바람과 노는 송사리 떼다. 몽당연필의 톡톡 부러진 연필심은 어릴 적 기억을 재생 시키면서 송사리 떼를 연상하게 하는 보조언어가 된다. 그는 그 송사리 떼를 독자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아무런 사족蛇足을 달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시의 송사리 떼는 진리의 당체를 그냥 그대로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대상으로 살아난다. 그것은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 석가가 수많은 제자들에게 말을 생략한 채 침묵 속에서 꽃 한 송이를 보여주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시속에 들어 있는 논리를 초월하는 그의 시적 방법은 21세기 현대인들의 욕구에 부응하는 방법의 하나가 된다. 현대인들은 냉정한 논리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은 논리의 세계를 벗어나려는 욕망을 안고 있다. 특히 현대시의 독자들은 시인의 일방적인 설득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시인의 관념과 해석이 들어 있지 않은 순수한 사물(사건)을 보여주고 그 해석과 감상을 독자들에게 전부 맡기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언어”는 디지털 시대의 중심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몽당연필」은 짧은 언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직관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시로 평가된다. 그래서 선禪의 맑은 정신이 담겨 있는 시인의 투명한 시선은 이 시의 인상적인 이미지로 기억된다.
*최동호(崔東鎬):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와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황사黃砂 바람> 평론집<현대시의 정신사><불확실성 시대의 문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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