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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심상운 시론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22>/심 상 운
2019년 07월 26일 18시 23분  조회:385  추천:0  작성자: 강려
 *월간 <시문학> 2007년 3월호에 발표 <황송문/이길원/이춘하 시인의 시>
 
황송문 시인의 시-「물레」「돌」
 
 
木花茶房에
한 틀의 물레가 놓여 있었다.
수십 년만에 햇볕을 받는
할머니의 뼈다귀처럼
물레는 앙상하게 낡아 있었다.
都市의 詩가 他殺되던 날 밤
다방을 피신해 온 나는
물레소리에 미쳐들고 있었다.
할머니의 眞言처럼
사른사른 살아나는 물레 소리가
너무너무 좋아서
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靑竹 같은 자식을
戰場에 보내놓고
四方八方 치성을 드리던
할머니의 물레소리가
내 가슴을 다르륵 물어 감고 있었다.
보기도 아까운 그 얼굴
한 줌의 재되어 온 자식을 끌어안다가
까물치던 할머니의 목쉰 소리 다르륵,
숨이 막혀 울지도 못하고
낮은 음자리 돌아 감기는
恨의 물레소리
가락에 시름을 감으며
지렁이 울음을 게워내고 있었다.
달지는 밤이면
버언한 창호지 마주 앉아
남편 생각 자식 생각에
손을 멈추다가도
꺼지는 한숨, 달달달달 다르륵,
시름을 감아 돌리고 있었다.
-----「물레」전문
 
불 속에 한 천년 달구어지다가
山賊이 되어 한 천년 숨어살다가
칼날 같은 소슬바람에 염주를 집어 들고
물속에서 한 천년 원없이 구르다가
영겁의 돌이 되어 돌돌돌 구르다가
매촐한 목소리 가다듬고 일어나
神仙峰 花潭先生 바둑알이 되어서
한 천년 雲霧속에 잠겨 살다가
잡놈들 들 끓는 속계에 내려와
좋은 詩 한 편만 남기고 죽으리
------「돌」전문
 
 어떤 대상으로부터 펼쳐지는 상상은 시인의 내면세계의 표출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황송문 시인의「물레」에서는 현대문명과 대비되는 감성의 세계와 우리민족의 독특한 한(恨)의 세계가 담겨있어서 전통적인 서정시의 친근함을 느끼게 한다.
 
도시의 문명에 의해서 자신의 시가 ‘타살(他殺)’ 되었다고 절망한 그가 도피처로 택한 ‘목화다방(木花茶房)’에서 발견한 한 틀의 물레는 그에게 향토의 정서를 환기시켜주는 상징적인 매체가 된다. 그는 그 물레의 소리를 환청같이 들으며 스스로 ‘미쳐들고’ 있다. 그리고 ‘사른사른’ 들려오는 물레소리는 그를 어린 시절 할머니 곁으로 돌아가게 하고, <靑竹 같은 자식을/戰場에 보내놓고/四方八方 치성을 드리던/할머니의 물레소리가/내 가슴을 다르륵 물어 감고 있었다.//보기도 아까운 그 얼굴/한 줌의 재되어 온 자식을 끌어안다가/까물치던 할머니의 목쉰 소리 다르륵,/숨이 막혀 울지도 못하고/낮은 음자리 돌아 감기는/恨의 물레소리/가락에 시름을 감으며/지렁이 울음을 게워내고 있었다.>라고 전쟁이 휩쓸고 고향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풀어놓게 한다.
 
 그가 물레를 통해서 명주실처럼 풀어놓는 어느 할머니의 비극적인 이야기의 이미지는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전쟁의 비극이 그려놓은 우리겨레의 집단무의식 속에서 존재하는 여성의 보편적인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그래서 할머니를 어머니라고 바꾸어도 큰 차이가 없게 된다. 따라서 이 시에 등장하는 할머니의 존재는 시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 집안에서 물레를 돌리던 할머니의 환생(還生) 이미지라고 해석된다. 이 여성적인 이미지는 늘 남성의 그늘에 가려서 숨어있는 음성적인 이미지이지만 남성적인 이성보다는 생명과 사랑의 근원이 되는 감성적인 이미지다.
 
 현대의 도시는 인간의 이성과 지성이 만들어 놓은 거대한 문명의 성채(城砦)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성채는 인공의 화려함 속에 삭막한 인간관계와 비극적인 미래의 시간을 운명처럼 안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그 인공적인 이성의 문명으로부터 도피하려고 한다. 그것은 그가 비록 남성이지만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여성적인 온화함과 눈물과 그리움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그가 지향하는 반문명적인 세계는 인간의 마음이 돌아가야 하는 원초적인 세계와 연결되는 세계다.
 
 서양의 문명이 모더니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바뀌는 것도 이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문제들 때문이다.「물레」속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사유의 공간은 문명과 인간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돌」은「물레」와는 다른 차원에서 그의 정신세계를 조감하게 한다. <물속에서 한 천년 원없이 구르다가/영겁의 돌이 되어 돌돌돌 구르다가/매촐한 목소리 가다듬고 일어나//神仙峰 花潭先生 바둑알이 되어서/한 천년 雲霧속에 잠겨 살다가/잡놈들 들 끓는 속계에 내려와/좋은 詩 한 편만 남기고 죽으리>에서 보여주는 동양적인 초월과 환상 그리고 환생이 그것이다. 이런 초월과 환생은 그의 동양적인 정신수련의 과정을 단편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서양적인 물질문명을 거부하고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의 세계에 천착하는 그의 감성과 현실 초월의지는 현대문명 속에서 독자들의 상상을 확대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나는 그의 반문명적인 축축한 감성과 현실 초월의식과 환생의 이미지가 담긴 시편들을 읽으면서 그의 시세계를 방문하는 즐거운 탐방객이 된다.
 
*황송문(黃松文): 1971년 <문학>에 등단. 시집: 「조선소」「목화의 계절」「내가슴 속에는」「메시아의 손」「그리움이 살아서」등
 
 
이길원 시인의 시- 「두더지」「내가 춤을 추는 까닭은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엘리베이터
자판기 커피 마시고
전화 받다 구내식당
서류 뒤적이다 소주 마시고 지하철
오늘도 바람은 부는데
이웃집 김대리가
결이 곱던 은행의 김대리가
교통사고로 이승을 빠져 나갔단다.
------「두더지」전문
 
승무를 추는 비구니의 외씨버선이
슬프도록 고운 까닭이 아닙니다
감전이라도 된 양 온몸에 흐르는
그대의 뜨거운 노래 때문만도 아닙니다
때로는 달빛이 미루나무에 머무는 밤에도
나비처럼 흐르는 까닭을 나는 모릅니다
아무 생각도 떠올리지 못한 채
그저 너울거리는 두 팔의 의미를
나는 아직도 알지 못 합니다
나의 춤이 그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더 더욱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살아 숨쉬며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황홀한 춤을 추워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그대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더라도
나는 온몸을 적시어 춤을 추어야만 합니다
푸른 하늘이 거기 있기에.
---------「내가 춤을 추는 까닭은」전문
 
 
인류의 문화유산 중에 그리스의 비극은 살아있는 유산이다. 그래서 현대의 문화 속에는 그리스의 비극이 등장한다. 소포클레스의 대표적인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적 비극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생부(生父)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은 인간 비극의 절정을 보여줌으로써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한 프로이트는 그 비극의 내면을 투시하면서 그와 같은 인간의 심층심리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로 개념화 하였다. 이 그리스의 비극은 인간은 주어진 운명의 굴레 속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운명론적인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의 시인들도 이 운명론과 싸우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된다.
 
 이길원 시인의「두더지」에는 현대인의 운명적인 비극성이 들어있다. 어느 날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이들과 인사도 못하고 이승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이웃집 김대리는 현대사회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냉엄한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 한 치 앞도 보지 못 하고 순간적인 착오나 실수 아니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이 비극은 오이디푸스의 비극에 비해서 인간적인 고뇌와 극적요소는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허망한 비극을 함축하고 있는가를 거듭 생각하게 한다. 시인은 이러한 비극을 단순한 시적구조 속에 담아서 단결하게 서술하고 있다. 자신의 관념을 넣지 않고 남의 얘기하듯 단순 명료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 그의 객관적 서술은 현대사회의 구조와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그런지 시의 전달효과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엘리베이터/자판기 커피 마시고/전화 받다 구내식당/서류 뒤적이다 소주 마시고 지하철//오늘도 바람은 부는데/이웃집 김대리가/결이 곱던 은행의 김대리가/교통사고로 이승을 빠져 나갔단다.>라는 최대로 생략된 시의 구문은 사실의 압축과 언어의 경제라는 단순한 시적 방법론을 넘어서 문명의 이기가 주는 반대급부 즉 부정적인 측면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시는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낸 인간이 문명의 이기에 의해서 그들의 운명이 어떤 현실을 맞이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부각하고 있다. 문명의 횡포는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고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식물들의 문제도 포함하는 것이기에 그 비극성은 엄청나게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비극에만 묻혀있지 않고 「내가 춤을 추는 까닭은」에서는 희망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어서 그의 양면성의 세계를 드러낸다. 그는 현실이라는 주어진 운명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연극 속의 삐에로 같은 존재로 표현하면서도 ‘푸른 하늘’ 즉 영원한 것을 지향하는 의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 그의 희망의지는 독백적인 진술에 담겨서 직접적인 울림을 준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떠올리지 못한 채/그저 너울거리는 두 팔의 의미를/나는 아직도 알지 못 합니다/나의 춤이 그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더 더욱 모릅니다/그러나 이것만은 알고 있습니다/살아 숨쉬며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는/이 사실 하나만으로도/나는 황홀한 춤을 추워야 합니다>라는 구절은 절실한 감정을 내포하면서 독자들에게 사색의 공간을 열어준다.
 
 이 시의 ‘푸른 하늘’은 형이상학적인 존재의 발견이라는 철학적·종교적인 의미를 붙일 수도 있다. 그것은 동양에서의 자연은 서양의 신(神)과 같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춤을 추는 이유를 <승무를 추는 비구니의 외씨버선이/슬프도록 고운 까닭이 아닙니다/감전이라도 된 양 온몸에 흐르는/그대의 뜨거운 노래 때문만도 아닙니다.>라고 부정을 통해서 긍정을 찾는 어법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는 인간적인 감성에서 벗어나서 이성적인 세계를 추구하고자하는 의도의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궁극적인 세계는 인간을 벗어난 자연 즉 절대적인 존재성에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관념을 어떤 고정된 틀 속에 넣는 것보다도 허무를 극복하려는 개인적인 의지나 정신적인 경지의 지향이라는 보편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간의 비극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 내는 정신적인 굴레에서 비롯된다. 만약 인간이 희로애락이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서 밝은 마음의 눈으로 자연을 보면 자연은 그 자체가 빛나는 열락의 세계가 된다. 이것은 갇힌 사고와 열린 사고의 차이를 의미한다. 따라서「내가 춤을 추는 까닭은」이 지향하는 세계는 인간의 비극적인 운명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정신적인 수련의 결과물이라 해석된다. 나는 현대인의 비극을 담은 「두더지」와 현실의 허무를 극복하는 정신적인 지향을 노래한「내가 춤을 추는 까닭은」을 읽으면서 이길원 시의 현실인식 속에 들어 있는 균형감각을 음미해 본다.
 
*이길원(李吉遠): 1991년 <시문학>에 등단 시집: 「어느 아침 나무가 되어」「겨란껍질에 앉아서」「은행 몇 알에 대한 명상」「하회탈 자화상」
 
 
이춘하 시인의 시- 「고구마 모종을 내시는 어머니」「하늘공원」
 
 
팔순을 훨씬 넘기신 내 어머니 여름날 새벽안개 속으로 들어가신다
베렌다 한 켠에 세워둔 녹슨 호미날도 뒷짐에 챙기신다
(나풀나풀 초록이 멈춘 곳)
이 빠진 주택가 공터가 내 어머니 농장이시다
어머니 굼뜬 손으로 고구마 줄기 걷어 올려 모종내신다
삿갓처럼 호박잎으로 낸 모종 위에다 초록봉분 만드신다
팔남매 이부자리 다독이듯이 꼭꼭 흙으로 눌러놓으신다
바람 불어 날리지 않게
뜨거운 햇볕 가려주라고
중얼중얼, 당부의 말씀 잊지 않으신다
(고깔 쓴 초록봉분들 고만고만한 자식들처럼 다소곳하다)
-------「고구마모종을 내시는 어머니」 전문
 
지하철을 타고 내려 시장골목을 지나 사람 사는 마을의 다리를 건너,
딴 세상으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미아가 된다.
어느 우주의 한 귀퉁이, 작은 역에서 내려 이름 없는 외딴집 담장을
기웃거리다가 갑자기 한 무더기 억새풀 속에 갇히고 말았다.
지상에서의 마지막 이별을 나누는 걸까?
손등이 붉고 손가락이 긴 억새풀들이 물결을 이루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강건너 신기루 같은 빌딩들에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떼를 지어 몰려다
니는 멧새들만 바쁘다
번지수나 문패가 없는 데도 여유롭기만 하다
그늘 한 점 없이 종일 땡볕에 앉아 이마를 그을리고 있는 패랭이꽃도
소소롭다
밤에는 별들이 내려와 노숙을 하고 지친 영혼들 쉬어갈 수 있는, 하늘과
땅 사이, 이승과 저승 사이, 너와 나 사이에 하늘공원이 있다
-----------「하늘공원」전문
 
 
 시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리 많이 해도 시의 옷은 다 벗겨지지 않는다. 벗기고 벗겨도 다 벗겨지지 않는 옷. 손에 움켜잡았다고 하는 순간에 물처럼 빠져나가 버리는 시의 실체. 그것 때문에 영원히 청순한 연인으로 다가오는 시의 가슴. 그래서 시에 대한 해석은 무모(無謀)하고, 그 무모함이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한다. 시인은 자기의 시 속에 신생아의 울음소리 같은 생명의 근원을 담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어떤 이론으로도 해석될 수 없는, 물이나 불이나 공기나 땅 같은, 그것들을 운용하는 신(神)의 마음 같은 그런 자유롭고도 조화로운 무한한 무엇이 자기의 시 속에 들어 있기를 바라고 그것을 독자들이 발견하여 제 멋대로 해석해 주기를 원한다. 그런 마음이 시인을 외로움과 허무로부터 구원한다.
 
 이춘하 시인의 시편들을 거듭 읽으면서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은 그의 시편 속에서 신선하게 솟아오르는 발랄한 생명의 기운 때문이다. 그 기운은 그의 시어 곳곳에서 감지된다. 따라서 그의 언어감각은 단순한 수사(修辭)에서 벗어나서 언어이전의, 대상에 대한 그의 감성작용을 느끼게 한다. 그는 대상에 대한 감지능력이 남다르고 자신의 감정 노출보다 객관적 사실에 충실하다. 그리고 대상과의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편들은 주관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객관성을 적절히 유지하고 있다.
 
「고구마 모종을 내시는 어머니」에서도 대상과 시인의 거리를 생각하게 한다. 시인은 어머니와 자식이라는 끈적끈적한 관계에서 벗어나 어머니를 하나의 피사체로 생각하면서 적당한 거리에서 그려내고 있다.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감정에 치우쳐서 냉정함을 잃게 되고 또 너무 멀어지면 그림자만 남게 되기 쉬운데, 이 시는 그것을 잘 조절하여 어머니의 모습을 하나의 선명한 이미지로 승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풍경화를 보듯 아무런 부담도 없이 시의 이미지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시에서 어머니의 행위는 독자들에게 아파트가 밀집된 현대 도시공간에서 삶의 근본인 농촌을 떠나온 노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 인간과 자연의 관계, 현대사회의 공해문제 등,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 <팔순을 훨씬 넘기신 내 어머니 여름날 새벽안개 속으로 들어가신다/베렌다 한 켠에 세워둔 녹슨 호미날도 뒷짐에 챙기신다//(나풀나풀 초록이 멈춘 곳)//이 빠진 주택가 공터가 내 어머니 농장이시다//어머니 굼뜬 손으로 고구마 줄기 걷어 올려 모종내신다/삿갓처럼 호박잎으로 낸 모종 위에다 초록봉분 만드신다/팔남매 이부자리 다독이듯이 꼭꼭 흙으로 눌러놓으신다>라는 이 시의 중심 장면은 독자에게 그런 것들 이상의 것을 상상하게 한다.  아파트 공터에서 초록생명들을 자식같이 다독이면서 키우는 어머니의 이미지는 이 세상에 생명을 낳고 기르는 어떤 존재의 모습까지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하늘공원」에서도 그의 사실적인 시의 기법이 새로운 감각의 시어를 만들어 내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하늘공원’이라는 공원으로 가는 과정도 사실적이면서도 현실과 유리되는 환상적인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그것은 그 그림 속에 그의 우주적인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지수나 문패가 없는 데도 여유롭기만 하다/ 그늘 한 점 없이 종일 땡볕에 앉아 이마를 그을리고 있는 패랭이꽃도 소소롭다/ 밤에는 별들이 내려와 노숙을 하고 지친 영혼들 쉬어갈 수 있는, 하늘과 땅 사이, 이승과 저승 사이, 너와 나 사이에 하늘공원이 있다>는 끝 부분이 맑고 투명한, 열린 사유의 공간을 만들어 주어서 독자들의 마음을 잡는다.
 
 이 열린 사유의 공간은 고정관념에 물들지 않은 그의 시적감성과 기존의 어떤 유형에도 가담하지 않은 그의 독창적인 어법의 산물이라고 판단된다. 나는 어떤 관념의 그림자도 들어 있지 않고 감정의 절제가 잘 이루어진 이춘하 시인의 시편들을 거듭 읽으면서 현대시의 기법에서 탈-관념이 왜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였다. 형이상학적 시라 하더라도 고정 관념에 갇혀 있는 사유의 언어에서는 결코 새로운 시의 탄생은 기대할 수 없고, 그런 언어로는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 이춘하: 1994년 <조선문학>에 등단. 시집 :「콩꽃을 해부하다」「낮선 곳에서의 자유」「세석능선에 걸린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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