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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심상운 시론

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24>/심 상 운
2019년 07월 26일 18시 29분  조회:1185  추천:0  작성자: 강려
월간 <시문학> 2007년 5 월호에 계재 <김지향/김종섭/김기택 시인의 시>
 
김지향 시인의 시-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소나기 온 밤 집 없는 도둑고양이, 어둔 헛간에서 내
신경을 긁어 댔다 나는 노트북을 들고 깜깜한 어둠 속
을 잠입했다 순간, 차량의 전조등 같은 사파이어가
잽싸게 내 눈에 발을 넣었다 나를 신어볼 눈치였다
나도 잽싸게 인터넷 사이트를 열었다 고양이 눈동자
가 왜 사파이어인지 인터넷 만물박사에게 물어볼 참
이었다 만물박사를 깨우는 사이 사파이어는 한바탕
잠든 공기를 뒤흔들어놓고 뒷구멍으로 내뺐다
창밖엔 소나기에 섞여 번개가 몇 차례 창문에 불똥
을 갈겼다 어둠에 잠겨있던 나는 문득 고양이가 가엾
어졌다 (번개에 명중되었을 지도 모를 집 없는 도둑고
양이!) 요 며칠 툭, 부러뜨려 놓았던 여린 감성이 슬그
머니 머리를 내 밀었다 감성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인터넷 속에서 ‘마음’의
소재지를 찾아보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부에 누워
있는 내장 속속들이 잎사귀를 들춰보며 조직검사하듯
사이트와 사이트를 한 잎 한 잎 열어제쳤다 (처음에‘
마음’은 어떻게 짜깁기 되어 있을까?)
창밖은 벌써 뿌연 새벽으로 갈아입었다 다시 번개가
창문에 불꽃을 질렀다 언뜻 언뜻 눈을 깜박이는 벽걸이가
나체를 드러내고 나를 놓아 준 어둠이 창밖으로 발을 옮기
는, 하늘엔 간간이 꼬리뿐인 전기 코드가 빗금을 긋고
간다 바로 그때 잃어버린 고양이가 야-웅, 자기의 건
재함을 알려 왔다 아, 그렇군! 잃어버린 생각을 돌려준
고양이, 우레 속에 야영한 그가 반가웠다 이 반갑다는
‘마음’이 또 어디에 감춰져 있을까 생각 속에 있을까
생각은 늘 잡동사니로 가득한 머리 속에 있지만.
-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전문
 
‘마음’에 대한 문제는 인간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만큼 심오하다. 그리고 존재의 실상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와도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흔히 말하는 불교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마음이 무한한 에너지’라는 작은 범위로부터 우주만상의 존재에 대한 문제와 답을 동시에 안고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냐 하는 답은 미궁 속에 있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탐구의 성과도 만족스럽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들려주지 못하고 단지 마음의 한 모서리나 마음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의 입구를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이 ‘마음’은 설령 발견하였다고 하여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어서 불교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 ‘불입문자不立文字’ 라는 경지를 스스로 깨우치게 할뿐이다. 중국 선종의 초대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 달마達磨는 소림사 토굴에서 면벽面壁을 하던 중 법을 구하러 온 제자 혜가慧可와 이런 문답을 한다. “제가 마음이 편안치 못하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십시오.”“편안치 못하다는 그 마음을 가지고 오면 편안케 해주리라.”“아무리 마음을 구하려 해도 구할 길이 없습니다.”“구할 길이 없는 마음이 어떻게 편하고 안 편함을 아는고”. 도를 찾아서 헤매던 혜가는 한때 도교를 신봉하기도 했는데, 그는 어느 추운 겨울날 눈 속에서 밤을 새우며 스스로 왼팔을 잘라 피를 뿌리면서까지 달마에게 법을 얻기를 간구했다고 한다. 혜가의 간절한 마음을 확인한 달마는 “마음을 가져오라”고 했고 혜가는 이 ‘안심安心법문’을 듣고 홀연히 깨쳤다는 것이다. 이 일화는 후세의 제자들이 극적 효과를 내기 위해서 꾸민 이야기일 수도 있다고 한다. 여하튼 이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간절한 희구의 구도과정’은 선禪의 핵심이 체인體認에 있음을 알게 한다. 그래서 그 과정을 지나온 당사자인 혜가는 달마의 법문을 듣고 깨우침을 얻지만, ‘간절한 희구와 구도’의 체험과정을 거치지 않은 제 3자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마음’이라는 것을 탐색하는 계기를 얻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김지향 시인의「마음은 어디에 있을까」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의 시 속에 자기 마음의 향방을 추적하는 ‘작은 체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비오는 날 밤에 도둑고양이를 만난다. 그 고양이는 어둠 속에서 사파이어 같은 눈빛을 빛내다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 순간 그는 왜 고양이의 눈이 사파이어 같이 빛이 나느냐에 관심을 둘뿐 고양이의 존재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때 창밖에서 번개가 치고 번갯불이 불통을 튕기며 번쩍인다. 이때 그는 고양이가 가엾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래서 그는 <어둠에 잠겨있던 나는 문득 고양이가 가엾/어졌다 (번개에 명중되었을 지도 모를 집없는 도둑고/양이!) 요 며칠 툭, 부러뜨려 놓았던 여린 감성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 밀었다 감성이 일어나게 하는 마음, 그/‘마음’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인터넷 속에서 ‘마음’의/소재지를 찾아보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부에 누워/있는 내장 속속들이 잎사귀를 들춰보며 조직검사하듯/사이트와 사이트를 한 잎 한 잎 열어제쳤다>라고 ‘마음의 실체 찾기’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일 뿐, 그의 관심은 고양이로부터 떨어져서 번개 속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벽걸이나, 전기 코드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그의 마음에 닿는 두 번째의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그의 관심을 다시 고양이에게 돌아가게 하고 한 걸음 더 자신의 마음의 실체에 다가가게 한다. 그 장면이, <아, 그렇군! 잃어버린 생각을 돌려준/고양이, 우레 속에 야영한 그가 반가웠다 이 반갑다는/‘마음’이 또 어디에 감춰져 있을까 생각 속에 있을까/생각은 늘 잡동사니로 가득한 머리 속에 있지만.>이라고 이 시의 끝 구절을 예기치 않은 마음의 체험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시적 감동을 안겨준다. 우리의 마음은 한순간도 그냥 있지 않고 허공에 떠다니는 풍선처럼 떠돈다. 특히 많은 사건들이 계속 터지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서 마음을 잠시라도 한군데 고정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따라서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자신도 모르고 사는 것이 일반적인 현대인들의 삶이다. 이 시는 그런 현대인들의 ‘마음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을 찾는 과정을 감각적인 언어로 긴장감 속에 드러내고 있다. 지식 속에서는 결코 발견되지 않는 그 마음을 찾기 위해서는 잡동사니로 가득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암시가 그것이다. 그 암시는 이 시를 선적 경향의 현대시로 분류하게 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그런 분류보다도 언어들의 참신성이나 긴장감, 어둠속 고양이의 사파이어의 눈빛으로 함축되어 있는 현대인의 마음의 모습 등 모더니즘 언어의 감각이 이 시를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음을 거듭 감지하게 된다. 그리고 나이의 한계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그의 현대적 사고와 체험을 통한 언어표현은 나를 경이로움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김지향(金芝鄕): 1956년 시집 <병실>로 등단. 시집 <병실> <막간풍경> <사육제> <바람집> 등
 
 
김종섭 시인의 시- 「내 뼈가 걸려있다」「성자처럼 눕다」
 
 
내 몸이 한 장의 필름으로 분리되어
판독기에 걸려있다.
검고 희멀건 채색에 담긴 앙상한 늑골들의 빗살 구조.
그 중심부로 휘어져내린 척추.
골반은 육중한 내 육신을 힘겹게 지탱하며 예까지 왔다.
한번도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이 나이까지 용케 버티어왔다.
문득 낯선 사람이 불을 끈다.
캄캄한 어둠속으로 내 몸은 감춰지고,
젊은 사나이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최후의 심판을 준비한다.
나약해진 내 의식은 두려움에 졸아들고,
생명이란 것이, 육체란 것이 내 의지로부터
이렇게 쉽사리 떨어져나갈 수도 있는 걸까?
그의 논고가 神처럼 무서워진다.
혹시나 뻥 뚫린 허파, 퉁퉁 부운 간덩이가 안막을 덮어오는데,
창백한 벽면을 타인처럼 바라본다.
그곳엔 선고를 기다리는 내 뼈들이 기도처럼 걸려있다.
                                        ------------「내 뼈가 걸려있다」전문
 
젊은 교수의
퍼즐 같은 말장난에 주눅들어
더위 먹은 하루
며칠 간 그 방황의 끝
이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한여름 비웠던 방문을 열면
슬며시 방을 점거한 저 많은 곰팡이들의
무자비한 침입
벽마다 검은 꽃들이 피어 냄새를 풍기고
간혹 붉게 충혈된 눈알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본다
내 식욕을, 내 미감을 채워주던
달디단 한 알의 과일 마저
부재중 모반에 가담하여
역겨운 악취로 나를 기습한다
이 정물들의 반란
습지가 된 내 침구를 접으며
나는 오늘 밤 성자처럼 눕는다
창문을 열고 별들의 무욕을 마신다
아, 이제야 돌아가는
모터소리의 생동감이여.
----------「성자처럼 눕다」전문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실재하는 사실이다. 그 까닭은 허구는 실제성이 없는 이미지나 환상이나 가상세계이기 때문에 임의적인 변경이 가능하지만, 과학적 사실에서는 그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방법 외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김종섭 시인의 시「내 뼈가 걸려있다」에는 허구에서 벗어나서 사실과 만났을 때의 두려움과 허무감이 들어있다. 그는 어느 날 병원에 가서 전신 X 레이 촬영을 하고 자기의 뼈 조직 필름을 보면서 자기로부터 분리된 또 하나의 자기를 보는 체험을 한다. 그때 그는, <내 몸이 한 장의 필름으로 분리되어/판독기에 걸려있다./검고 희멀건 채색에 담긴 앙상한 늑골들의 빗살 구조./그 중심부로 휘어져내린 척추./골반은 육중한 내 육신을 힘겹게 지탱하며 예까지 왔다./한번도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이 나이까지 용케 버티어왔다.>라고, 자기 육체에 대한 연민의 정과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면서 의사의 판정을 기다리는 순간, <생명이란 것이, 육체란 것이 내 의지로부터/이렇게 쉽사리 떨어져나갈 수도 있는 걸까?>라는 허망감에 사로잡히면서,<그의 논고가 神처럼 무서워진다./혹시나 뻥 뚫린 허파, 퉁퉁 부운 간덩이가 안막을 덮어오는데,/창백한 벽면을 타인처럼 바라본다./그곳엔 선고를 기다리는 내 뼈들이 기도처럼 걸려있다.>라고, 의사의 존재를 신처럼 인식한다. 이 시는 그런 사실 체험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알레고리가 아닌 사실적 기술記述을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간접체험의 효과와 충격을 준다. 그것은 사실적 언어가 발휘하는, 살아있는 힘이다. 이렇게 자신의 정서와 사고思考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사실 그대로 기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인의 객관적인 눈과 인내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시에는 그것이 잘 극복되고 성취되어서 독자들에게 공감을 안겨주고 생명의 실존에 대해 생각하는 사고공간을 제공한다.「성자처럼 눕다」에는 그가 냉정하게 사물을 대하게 되는 정신의 수련과정이 담겨 있어서 눈길을 끈다. 이 시는 또 그가 허상과 관념으로부터 벗어나서 사물의 실체와 만나는 생생한 과정을 감지하게 한다. 그는 어느 날 젊은 교수의 퍼즐 같은 말장난에 주눅이 들어서 정신적인 방황을 하다가, 한여름 내내 비워 두었던 자기 방에 들어와서 방안에 있던 것들의 변한 모양을 보고 관념의 놀이에서 벗어나서 사물의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그는 그때의 체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며칠 간 그 방황의 끝/이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한여름 비웠던 방문을 열면/슬며시 방을 점거한 저 많은 곰팡이들의/무자비한 침입/벽마다 검은 꽃들이 피어 냄새를 풍기고/간혹 붉게 충혈된 눈알들이/일제히 나를 노려본다/내 식욕을, 내 미감을 채워주던/달디단 한 알의 과일 마저/부재중 모반에 가담하여/역겨운 악취로 나를 기습한다> 이것이 부재중에 일어났던 사건이다. 이 일상의 작은 사건들은 그에게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그는 관념에서 벗어나서 생명의 실체와 만나는 공간속의 자신을 보여주게 된다. <이 정물들의 반란/습지가 된 내 침구를 접으며/나는 오늘 밤 성자처럼 눕는다/창문을 열고 별들의 무욕을 마신다/아, 이제야 돌아가는/모터소리의 생동감이여.>라고. 이 시의 끝 구절 ‘창문을 열고 별들의 무욕을 마신다’와 ‘ 모터소리의 생동감’이 함축하고 암시하는 것은 생생한 사물성의 세계에 대한 접근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과일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과일을 그대로 먹어보는 감각적 체인體認인 것이다. 나는 두 편의 시를 읽으면서 ‘퍼즐 같은 말장난’의 허상에서 탈출하여 사물의 실체와 삶의 정체성에 접근하는 그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았다. 시는 관념이 아니라 체험이라는 것을 되새기면서. 살아있는 정신의 날카로움을 느끼면서.
 
*김종섭(金鍾燮):1983년 <월간문학>에 <환상조> <사수의 시>가 당선 등단. 시집 <환상조> 등
 
 
김기택 시인의 시- 「토끼」「소」
 
 
햇빛이 비치자 좁은 토끼우리도 환해졌다.
토끼 한 마리 한 마리는 그대로 움직이는 불빛이 되어
판자와 철망으로 막힌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머리 위로 솟은 귀들은 햇빛에 연분홍색이 되어
토끼들이 움직일 때마다 봄꽃처럼 흔들렸다.
주인은 이 토끼들을 어떻게 할까.
잡아먹을까? 시장이나 음식점에 팔까?
죽을 때까지 기르다가 쓰레기와 함께 버릴까?
희디힌 털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은은하게 빛났으므로
무위의 경지에서 오물거리는 입들은 너무 흥겨웠으므로
갑자기 그 위에 엉뚱한 미래가 겹쳐보였다.
어린토끼 한 마리를 가슴에 안아보니
뜻밖에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 속에서 떨고 있었다.
토끼의 두려움은 내가 쓸데없이 걱정한 미래와 상관없이
오로지 지금 내 팔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토끼」전문
 
소의 커다란 눈은 무엇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옹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고
그저 끔벅 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둥근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베어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는 것이다.
--------------------「소」전문
 
 
대상과 시인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그 간격은 존재의 독립성에 의한 간격이다. 따라서 그 간격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상의 실체와 만나느냐하는 것이 시를 쓰는 일의 어려움이다. 너무 가깝게 밀착되면 시인의 개인적인 감상성에 의해서 대상의 모양이 변질되기도 하고, 또 너무 멀어지면 시인의 정서가 메말라서 시가 아닌 지식이나 관념의 표상이 되어 버리고 만다. 김기택 시인의 시는 그런 면에서 좋은 텍스트가 된다. 그의 시편들은 대상과 시인의 간격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정서적인 밀착성과 함께 깊은 사유를 내포하고 있어서 거듭 읽힌다. 그 까닭은 시 속에 시인의 날카로운 관찰력만이 아니라 대상과 한 몸이 되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의 시편들은 관념과는 거리가 먼 실제적 체험의 산물이다. 그 체험 속에는 그의 시적감성이 잘 녹아 있다. 그래서 최소의 알레고리나 수사修辭만으로도 시의 맛을 충분히 내고 있다.「토끼」를 읽어보면, 그의 시가 일상의 가장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범상치 않은 시적 감성과 사유의 공간을 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느 날 시골 농가 뒤뜰에 있는 토끼장에서 어린 토끼들을 본다. 그때 환한 햇살이 비친 토끼우리의 풍경을 그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햇빛이 비치자 좁은 토끼우리도 환해졌다./토끼 한 마리 한 마리는 그대로 움직이는 불빛이 되어/판자와 철망으로 막힌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머리 위로 솟은 귀들은 햇빛에 연분홍색이 되어/토끼들이 움직일 때마다 봄꽃처럼 흔들렸다.>라고. 여기서 감지되는 시인의 개성적 표현은 햇빛에 비친 토끼들의 귀를 연분홍색이라고 한 것과 토끼들의 움직임을 봄꽃에 비유한 것이다.‘봄꽃’은 토끼를 아름답게 느낀 소박한 ‘시인의 심리적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심리적 이미지는 토끼에 대한 시인의 연민으로 이어져서 <주인은 이 토끼들을 어떻게 할까. 잡아먹을까? 죽을 때까지 기르다가 쓰레기와 함께 버릴까? 시장이나 음식점에 팔까?> 라고, 인간과 토끼의 관계, 인간 속에서 토끼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동기가 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희디힌 털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은은하게 빛났으므로/무위의 경지에서 오물거리는 입들은 너무 흥겨웠으므로>라고, 인간의 척도로 토끼의 존재성과 가치를 평가하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시의 끝부분은 어린 토끼의 실체적 인식과 생명체에 대한 정감을 생생하게 전하면서 독자들에게 충격을 안겨 준다. 그 충격은 <어린토끼 한 마리를 가슴에 안아보니/뜻밖에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 속에서 떨고 있었다./토끼의 두려움은 내가 쓸데없이 걱정한 미래와 상관없이/오로지 지금 내 팔에만 집중되어 있었다.>라는 구절에 들어 있다. 인간의 잔인성을 이미 직감한 듯이 어린 토끼의 떨리는 감각은 오로지 자신을 안고 있는 사람의 팔에만 집중되어 있는 생존의 엄연한 현실이 그것이다.「소」에서는 소가 하고 싶은 말이 소의 둥근 눈 속에 그렁그렁 눈물이 되어 달려 있다는 그의 관찰이 생동하는 감각으로 전해진다. 그는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마음이 한 옹큼씩 뽑혀 나오도록 울어보지만/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수천만 년 말을 가두고/그저 끔벅 거리고만 있는/오, 저렇게도 순하고 둥근 감옥이여.>라고, 소에 대한 연민憐憫의 정情을 인간적인 입장에서 소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인간적인 연민의 정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표출이다. 따라서 그 마음은 소와 인간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 같다. 그 길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길이다. 마음은 언어이전의 정서와 사유를 총체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말보다 더 근원적이다. 수도승들이 가끔 말을 버리고 묵언 속으로 들어가는 수행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만약, 소가 인간의 말을 알아듣고 인간도 소의 말을 알아듣는다고 가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태초의 신성한 말은 이미 사라지고 허상만 남은 말이, 간교한 지혜의 노예로 전락한 현대인들의 말을 생각해보면 부정적인 추측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소의 말은 소에게 무아無我의 낙원을 앗아갈 수도 있다고. 이 시는 이렇게 둥글고 큰 눈을 끔벅거리고만 있는 소. 침묵 속에 잠겨 있는 소의 말을 통해서, 독자들이 말에 관해 넓고 깊은 사유의 세계를 펼치게 하고 말의 실체를 생각하게 한다. 그러면서 침묵과 언어의 득실을 분별하게 한다. 나는 이 두 편의 시를 읽으면서 김기택 시인의 사실적인 세계 속에 내포되어 있는 건강하고 따뜻한 삶의 진정성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사유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즐거움을 만끽해본다.
 
*김기택(金基澤):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 <태아의 잠> <바늘구멍 속의 폭풍> <사무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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