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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감동시킨 오늘의 시 100편 <32>/심 상 운
2019년 07월 26일 20시 13분  조회:1442  추천:0  작성자: 강려
월간 <시문학> 2008 1월호 발표 <송시월/배한봉/최금녀 시인의 시>
 
송시월 시인의 시-「계곡 물 속의 풍경-언어의 감옥·1」「입춘 무렵」
 
계곡의 물이랑 일렁일렁 바람이 밟고 간다. 오후 3시의 햇
살이 물속에 꽂힌다. 사정하듯 햇살올챙이들 쏟아져나와 바
람의 보폭만큼 흔들리는 바위의 배꼽 위로 줄줄이 기어오른
다. 비위가 기웃 몸을 튼다. 빛살무늬의 버들치 개버들 가지
의 그물망을 빠져나와 여인의 얼굴이, 달이 잠깐 갈라졌다가
이내 붙는다. 얼굴이 찌르르 아프다. 이때, 누군가가 첨벙 손
을 담근다.
오후 3시의 풍경에 뒤엉켜 일그러지는 관념의 예수.
------「계곡 물 속의 풍경-언어의 감옥·1」전문
 
햇살에 찔린 잔설 한 토 막, 눈물을 흘린다
몸 트는 나무 가지에
마른 풀잎에
반짝 띄우는 문자 메시지
“곧 진도 7도의 진통이 일 것임”
눈이 푸른 휘파람새 한 마리
느닷없이 한참을 기우뚱이는
내 머리 위로
휘이익-푸른 선율을 그으며 날아 간다
온 몸이 간지럽다
-------송시월 「입춘 무렵」전문
 
시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 중에 하나가 시 속에서 정서와 관념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것은 몸의 체중을 줄이기 위해서 먹고 싶은 것들을 못 먹게 하는 다이어트의 고행과 다르지 않다. 송시월 시인은 감상적인 정서와 상투적인 관념의 풍요로운 유혹을 물리치고, 대상을 직관하면서 군살이 붙지 않은 생동하는 디지털적인 감성의 언어(탈관념, 사물성의 언어)로 대상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는 그 첫 작업을 ‘언어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관념을 최상의 것으로 모시고, 고정관념의 틀 속에서 시를 짓는 시인들에게는 지식과 사상, 종교적 관념으로 가득한 언어는 꿈속의 궁궐과 같겠지만, 깨어있는 시인에게는 지식과 사상, 종교적 관념이 축적되어 있는 언어는 언어의 감옥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계곡 물 속의 풍경-언어의 감옥·1」은 그가 계곡의 물을 보면서 자신의 정신을 투명한 수면에 꽂히는 햇살같이 환하게 드러내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는 어느 날 산 속의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괴인 맑은 웅덩이를 본다. 아주 무심無心한 상태에서 계곡의 물이 일렁이는 것을 보고, 오후 3시의 햇살이 수면에 꽂히는 것을 보면서 집중된 자신의 마음을 계곡의 물에 일치시키고 있다. 그는 그 순간의 장면을 <계곡의 물이랑 일렁일렁 바람이 밟고 간다. 오후 3시의 햇/살이 물속에 꽂힌다. 사정하듯 햇살올챙이들 쏟아져 나와 바/람의 보폭만큼 흔들리는 바위의 배꼽 위로 줄줄이 기어오른/다. 바위가 기웃 몸을 튼다. 빛살무늬의 버들치 개버들 가지/의 그물망을 빠져나와 여인의 얼굴이, 달이 잠깐 갈라졌다가/이내 붙는다. 얼굴이 찌르르 아프다. 이때, 누군가가 첨벙 손을 담근다.>라고 사진을 찍 듯 영상언어로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디지털 시’에서는 사진 찍기의 기법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여 ‘접사接寫’라고 한다. 그러나 이 ‘접사接寫’는 “비위가 기웃 몸을 튼다.”에서 알 수 있듯이 객관적인 대상을 그대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 거울에 비친 대상을 찍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언어에는 그의 투명한 마음의 정서가 배어들게 되고 시적 향기가 풍기게 된다. 그러면서 “이때, 누군가가 첨벙 손을 담근다.”는 감각언어를 통해서 촉각과 청각으로 전달되는 물의 물성物性을 환기시키고, 정靜의 분위기를 동動으로 전환한다. 이 동적인 전환은 시 속에 생동의 기운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절정은 시의 끝 구절 <오후 3시의 풍경에 뒤엉켜 일그러지는 관념의 예수.>속에 들어 있다. “오후 3시”는 실제의 시간으로 정확성을 기본으로 하는 디지털의 감각인데, 이 생생한 감각의 물속에서 일그러지는 것은 ‘관념의 예수’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는 관념으로 가득한 언어의 감옥에서 과감히 탈출한 시인의 벌거벗은 정신의 일면을 보여주는 시로 탄생한다. 만약 그가 맑은 물을 보면서 상상 속의 신神의 모습을 떠올리고 신의 섭리攝理를 지향하는 정신세계를 나타냈다면, 이 시는 보통의 형이상학적인 관념시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맑고 투명한 시선과 정서와 감각의 언어로 대상(사물)을 명징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 동안 쌓였던 관념을 토해내는 수련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 시에서도 그런 면이 보인다.
<햇살에 찔린 잔설 한 토 막, 눈물을 흘린다//몸 트는 나무 가지에/마른 풀잎에/반짝 띄우는 문자 메시지//“곧 진도 7도의 진통이 일 것임”//눈이 푸른 휘파람새 한 마리/느닷없이 한참을 기우뚱이는/내 머리 위로/휘이익-푸른 선율을 그으며 날아간다/온 몸이 간지럽다>
「입춘 무렵」에서도 그의 맑은 감각과 정서가 선명하게 들어난다. “곧 진도 7도의 진통이 일 것임”에 들어 있는 감각은 디지털적인 명료한 감각의 표현이다. 디지털 시에서는 아날로그 시보다 현장의 사실을 정확하고 명료한 언어로 표현한다. 이때 휘파람새의 순간적인 움직임은 장면변화의 동영상이 되고 있다. 그것은 디지털 시의 투명한 의식과 맑은 정서의 단면斷面을 보여주는 감각적인 기법이다.
이렇게 직감적인 감각과 영상성이 사물성의 투명한 이미지로 표현되는 ‘디지털 시’는 시를 정서의 노출로만 여기는 감상적인 서정시(낭만시)나, 시대적 현실에 경도되어서 산문에 가까워지는 이념지향의 사회시나, 모더니즘의 주지적 관념시의 한계를 넘어서는 21세기의 새로운 영상언어의 시(탈관념 시, 사물시, 기호시, 하이퍼텍스트의 시)를 모두 포용하면서 시대적 요구에 부응副應하는 시를 모색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 그것은 한국현대시사韓國現代詩史에서 1930년대 대표시인 김기림이 평론 <시에 있어서의 기교주의의 반성과 발전〉(조선일보, 1935. 2. 10~14)에서 1920년대의 낭만주의 시와 경향파 시를 기교면에서 성숙하지 못하다고 비판하고, 그것의 극복을 당시의 모더니즘 시에서 찾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21세기의 한국 현대시에서도 사회의식에 감염된 20,30대의 일부 독자들은 이념지향의 시에 박수를 보내고, 현대시의 예술적인 상상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보통의 독자들은 낭만적인 감상의 시에, 지적 성향의 독자들은 모더니즘의 주지적 관념의 시에 끌려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런 현실 속에서 전통적 서정시, 이념지향의 시, 모더니즘의 관념시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을 가지고,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독자들에게 새롭게 접근하는 ‘디지털 감각의 시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실험시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이고 희망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송시월 시인의 시편들이 중요시되는 이유의 한 부분도 여기에 있다.
 
* 송시월: 1997년 월간 <시문학>에 등단. 시집: 「12시간의 성장」
 
배한봉 시인의 시-「갈퀴넝쿨꽃과 붉은 녹의 관계」
 
언덕에 선
갈퀴넝쿨나무의 배후에는 하늘이 있다
하늘은 갈퀴넝쿨나무의 여백
그 푸른 여백에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송이 하나 점(点)처럼 찍혀 있다
하늘을 배후에 둔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송이를 보니
우리집 푸른 철대문에 화인처럼 찍힌 붉은 녹이 생각난다
페인트를 칠하지만
녹의 배후인 세월을 지울 수는 없었다
푸른 철대문은 붉은 녹의 여백이 아니라 삭히고 뚫어야 할 어둠
갈퀴넝쿨꽃처럼 저도 푸른 하늘을 여백 삼고 싶다는 것인지
덧칠한 페인트를 뚫고 다시 붉게 번진다
철대문의 내심(內心)에는 의심이 있고
의심 속에는 그 의심을 갉아 먹으며 자라는 녹이 숨어 있다
철대문에게 녹은 지겹고 끔찍하게 찾아오는 병(病)과 같지만
녹에게 철대문은 필생의 힘을 다해 뚫어야 할 현실의 장벽이 아니겠나
붉은 녹이 뚫어 놓은 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들고
언덕이 보인다
거기 갈퀴넝쿨나무의 배후에는 하늘이 있다
맑고 푸른 여백에 화인처럼 찍힌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이
세상을 흔들어주고 있다. 우리는
푸른 철대문에 핀 꽃을 녹이라 불렀던 것은 아닐까
아니, 대문 없는 세상을 꿈꾸는
어떤 존재의 힘을 그렇게 불렀던 것은 아닐까
------「갈퀴넝쿨꽃과 붉은 녹의 관계」전문
 
예술가들에게 대상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과 탐구는 새로운 기법이 된다. 그 대표적인 예例가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빛에 대한 탐구 기법이다. 프랑스의 화가 마네, 모네 등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서 태양의 빛이 던져주는 강한 인상을 밝고 단편적인 색채와 빠른 붓질로 표현하였다. 그들의 뒤를 이어 조르주 쇠라는 1886년 그의 유명한 그림 <그랑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작은 색채의 점으로 찍어서 표현하는 새로운 화법인 점묘법點描法을 창안했다. 그들은 1704년 뉴턴이 발견한 빛의 입자성粒子性을 (빛은 운동하는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광학 Opticks>의 이론) 예술적인 직관력에 의해 표현한 것이다.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은 시간과 공간은 아주 작은 불연속적인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현대의 물리학의 중력에 대한 양자量子 이론과도 합치되어서 과학적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이 우주의 물리적인 것들이 불연속적인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현대물리학의 이론은 아날로그의 ‘흐름’과 대립되는 디지털의 ‘불연속’ 이론과도 연결된다.
현대시에서도 대상에 대한 시인의 주관적인 ‘견해, 정서, 상상’ 이전의 ‘객관적인 관찰’이 중시 된다. 배한봉 시인의 「갈퀴넝쿨꽃과 붉은 녹의 관계」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의 시가 대상에 대한 관찰에 매우 충실한 사유思惟의 시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은 카메라가 되어서 언덕 위에 서 있는 갈퀴넝쿨나무와 배후의 푸른 하늘을 찍어서 보여준다. 그러면서 그 하늘을 갈퀴넝쿨나무의 여백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덕에 선/갈퀴넝쿨나무의 배후에는 하늘이 있다/하늘은 갈퀴넝쿨나무의 여백/그 푸른 여백에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송이 하나 점(点)처럼 찍혀 있다>라고,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송이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춘다. 그와 동시에 장면을 바꾸어서 시의 대상을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푸른 철대문에 화인火印처럼 박혀있는 붉은 녹으로 옮겨 간다. 이 장면 이동은 푸른 하늘과 푸른 철대문, 갈퀴넝쿨의 붉은 꽃과 철대문의 붉은 녹이 서로 연상관계聯想關係를 맺으면서 자연스럽게 시의 폭을 확대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녹과 철대문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삶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하고, 인공과 자연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들의 정신이 지향하여야 할 방향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을 그는<하늘을 배후에 둔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송이를 보니/우리집 푸른 철대문에 화인처럼 찍힌 붉은 녹이 생각난다/페인트를 칠하지만/녹의 배후인 세월을 지울 수는 없었다/푸른 철대문은 붉은 녹의 여백이 아니라 삭히고 뚫어야 할 어둠/갈퀴넝쿨꽃처럼 저도 푸른 하늘을 여백 삼고 싶다는 것인지/덧칠한 페인트를 뚫고 다시 붉게 번진다>라고 서술한다. 그리고 <철대문에게 녹은 지겹고 끔찍하게 찾아오는 병(病)과 같지만/녹에게 철대문은 필생의 힘을 다해 뚫어야 할 현실의 장벽이 아니겠나>라고, 그의 사유는 독자들을 향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이 철대문과 녹의 관계는 인간의 몸에 붙어서 인간의 몸을 끝내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마는 암세포와 인간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독자들은 <붉은 녹이 뚫어 놓은 구멍 사이로 빛이 새어들고/언덕이 보인다/거기 갈퀴넝쿨나무의 배후에는 하늘이 있다/맑고 푸른 여백에 화인처럼 찍힌 갈퀴넝쿨나무의 붉은 꽃이/세상을 흔들어주고 있다. 우리는/푸른 철대문에 핀 꽃을 녹이라 불렀던 것은 아닐까/아니, 대문 없는 세상을 꿈꾸는/어떤 존재의 힘을 그렇게 불렀던 것은 아닐까>라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환하게 뚫리는 시적 공간과 의미를 만난다. 그와 함께 독자들은 시의 의미 속으로 들어가서 암세포도 인간의 몸에 피어난 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인간이 없는 순수한 자연을 꿈꾸는 ‘어떤 존재의 힘’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상상은 형이상학적인 철학세계의 문을 여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대상에 대한 시인의 관찰과 사유와 상상은 논리적인 세계와는 거리가 멀지만 철학적 사유의 세계를 여는 계기를 만드는 데는 부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시인의 사유는 철학자나 과학자처럼 논리적인 무모순성無矛盾性에서 자유스럽지는 못하더라도 감성과 상상의 힘으로 능히 논리의 세계를 극복해 나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런 생각은 승계호 교수의 (미국 택사스대 교수) 공개강연 (2007,6,1 금융회관 강당)「과학과 시의 갈등」의 주제와도 근접된다. 그는 서양철학의 역사를 개관하면서, 철학에서 시적방법은 과학의 질시에 의해서 저지당했고, 결국 현대 철학에서는 소멸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현대철학은 분석적인 방법에 의존하는 좁은 공간 속에 갇히고 말았는데, 그 분석적 방법(변증술적 방법)은 경험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쉽고 값싼 방법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철학에서 시적인 방법을 재생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편이 좋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가 추구하는 철학은 시적인 재능을 과학적인 이해와 결합시키는 것으로, 그것은 현대철학이 당면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대상에 대한 시인의 객관적 관찰(경험)을 바탕으로 철학적인 사유의 세계를 열어주는 배한봉 시인의 시,「갈퀴넝쿨꽃과 붉은 녹의 관계」는 ‘대상에 대한 객관적 관찰의 시와 철학의 만남 ’이라는 개성적인 기법을 제시한 시로 인식된다.
 
* 배한봉: 1998년 <현대시>에 등단
 
최금녀 시인의 시-「실그물에 갇혀」
 
마당에 나가 푸르게 솟아난 잡초에
호미를 들이밀자
실뿌리들이 스크럼 짜
내게 실그물을 씌운다
양지쪽 돌 틈새에서
보라색 제비꽃이
“나도 잡을 거야?”
겁먹은 표정이다
잡초는 잡초일 뿐
내 손은 언제나 단호하다
뿌리들의 아우성이야 노상 있는 일
한 통속이 아닌 것들은 성가신 존재일 뿐
색깔이 다른 것들은 싹부터 잘라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나 어쩌랴,
초록물을 뿌리면서
초고속으로 달려오는
저 푸른 것들의 함성과
실뿌리들이 내 손을 움켜잡는
이 푸르름을.
--------「실그물에 갇혀」전문
 
서정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고정관념의 틀에 갇혀 있는 시인의 감상, 소견, 영탄이다. 이런 감상, 소견, 영탄은 시를 식상食傷하게 만들고 독자들을 시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래서 서정시에서 시인의 개성적 체험과 독창적인 시각에 의한 사유가 높이 평가되고, 그 체험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객관화시키는 시인의 시적능력이 중시된다. 최금녀 시인의「실그물에 갇혀」에는 체험을 통한 시인의 개성적인 시각이 살아있고, 감성적인 표현이 시를 객관화시켜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세계명작 동요동시집』(1977년 계몽사) 144쪽에 실려 있는 영국 시인 ‘월터 드라 메어’의 「살려주」라는 시를 떠올렸다. 그 시의 대상은 일상생활 속, 주부들이 늘 경험하는 주방廚房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대상에 대한 시인의 시각과 인식이 독자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고 무거운 사유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에그 에그 어서 빨리 와 봐요./ 기름에 튀기는 빵 속에서/ 생선이 뭐라고 하는 것 같애/ 유리처럼 들여다보이는/ 기름 속에서/ 주둥이를 불쑥 내밀고/ “살려주” 그랬어/ 울상이 되어서/ 나좀 살려 달랬어// 그러면서 보글보글보글/ 기름 속으로 갈아 앉았어//>「살려주」전문. 이 시의 언어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쉽게 전달된다. 그리고 시인이 얼마나 뜨거운 가슴으로 대상을 관찰하고 그 몸서리나는 전율戰慄을 얼마나 독자에게 잘 전달해 주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묘사의 강한 힘이 만들어낸 것이다. SBS 자연다큐 전문 PD 윤동혁씨는 신문의 인터뷰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추적하면 좋은 프로가 저절로 나온다.” 면서, “결국 모든 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로 모아져요. 사람이든 자연이든 대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만큼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가가 핵심이죠. 관심을 기울이고 집요하게 추적하면 좋은 프로가 나오게 된다.”고 하였다. 윤동혁 씨의 말은 ‘월터 드라 메어’의「살려주」에 대한 작품해설로도 적합하다. 그리고 최금녀 시인의 「실그물에 갇혀」에도 해당되는 말이라고 여겨진다.
그는 어느 날 마당가에 있는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서 호미 날을 잡초에 들이 댄다. 그때 그는 잡초들의 실뿌리들이 스크럼을 짜고 그에게 생명의 실그물을 씌우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감지한다. 그리고 양지쪽 돌 틈에서 보라색 제비꽃이 겁먹은 표정을 짓는 것을 본다. 그래도 잡초는 제거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그는 <잡초는 잡초일 뿐/내 손은 언제나 단호하다/뿌리들의 아우성이야 노상 있는 일/한 통속이 아닌 것들은 성가신 존재일 뿐/색깔이 다른 것들은 싹부터 잘라내야 한다>고 한다. 이 구절은 이 시에서 차별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인간들의 관념과 함께 생명과 반생명의 대립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결국 생명 쪽으로 마음을 열면서 갈등을 마무리한다. 그것을 그는 <그러나 어쩌랴,/초록물을 뿌리면서/초고속으로 달려오는/저 푸른 것들의 함성과/실뿌리들이 내 손을 움켜잡는/이 푸르름을.>이라고 간결하게 감성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반생명反生命을 넘어서는 생명의식의 시라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 시에서 ‘잡초, 실뿌리, 푸르름’ 등을 자연의 대유代喩라고 본다면 자연과 인간의 차이는 분명해진다. 자연의 본성本性은 생명적이고 무차별無差別인데 반해, 인간은 반생명적이고 차별差別의 성질을 가진 존재가 된다.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호미라는 무기를 잡은 인간의 손은 자연(생명)의 눈으로 보면 얼마나 반생명적이고 차별적인 손인가. 그 인간의 손은 현대사회에서 휴머니즘(humanism)이라는 사상으로 무장하고서 인간위주의 사고와 가치관과 행동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있다. 이 휴머니즘은 현대의 학문과 문화, 국가조직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 되어서 자연과 인간을 지배한다. 그러나 인간위주의 문명과 가치관만으로는 ‘인간의 위기’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위기의식이 휴머니즘의 한계성을 거론하게 되었다. 이 휴머니즘의 한계성은 현대의 사상과 문명은 자연과 화합해야 한다는 명제가 되었다. 그래서 20세기 후반부터 현대사회에서 ‘자연自然’은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여 자연 친화의 사상이 번져 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 사상도 속을 뒤집어보면 인간위주의 사상이지 자연의 사상이 아니다. 실생활에서 외치는 친 자연농업, 자연식품, 친 환경주택 등도 모두 인간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 자연하고는 별 상관이 없다. 무언無言의 자연은 오로지 인간의 무관심과 무간섭만을 바랄 뿐이다. 따라서 현대의 사상은 휴머니즘을 넘어서서 ‘무차별無差別의 자연사상’과 진정한 화합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에 와있는 것이다. 최금녀 시인의 「실그물에 갇혀」는 그런 현대적 사상의 배경(지식, 이론)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하더라도, 시인의 예민한 감성은 체험을 통해서 자연과 생명의 실체가 무엇인가를 터득하는 모습을 극적인 장면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인간의 편견과 관념이 얼마나 자연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는가 하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자연의 생명체를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하는 문제의 해답을 간결하고 체험적인 시의 언어로 초록생명의 푸르고 따스한 감성의 주머니에 잘 넣어서 마음으로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시는 문제의식에만 사로잡혀 있는 ‘생태시生態詩’와는 다른 은은한 서정적 감각과 울림을 주는 생명의 시가 된 것이다.
 
*최금녀: 1998년 <문예운동>에 등단. 시집:「저 분홍빛 손들」「가본 적 없는 길에 서서」「들꽃은 홀로 피어라」「내 몸에 집을 짓는다」「큐피드의 독화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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