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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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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한 달-로버트 세리프 지음=강민 옮김
2021년 09월 20일 14시 12분  조회:429  추천:0  작성자: 강려
 추락한 달-로버트 세리프 지음=강민 옮김  
 
추락한 달
 
기분 나쁜 저녁 하늘··············· 4
무서운 밤···················· 8
11월 밤의 달·················· 13
어리석은 사람들················· 18
새로운 일···················· 22
뗏목 만들기··················· 29
잘 있거라, 런던················· 33
마지막 일주일·················· 36
무서운 하룻밤·················· 41
새로운 생활··················· 49
살아남은 세 사람················ 51
두 가지 사건·················· 55
달 여행····················· 60
재거 소령···················· 65
다시 혼란이··················· 72
죽음의 도시 런던에서·············· 79
 
해저 순찰대
 
적을 발견하다 !················· 86
해저의 싸움··················· 88
해저 목장···················· 93
새 대원 월터·················· 99
담력 알아보기················· 105
내가 이겼다·················· 112
출동 명령··················· 116
하늘에서 바다로················ 121
월터의 비밀·················· 125
해저 목장의 나날················ 132
큰 바다뱀··················· 136
해저 지진··················· 146
무너지는 산·················· 152
절 망····················· 155
비상 소집··················· 158
결사적인 작업················· 164
 
작품 해설··················· 169
 
기분 나쁜 저녁 하늘
 
나는 지금 촛불 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렇게 캄캄하고 달그락 소리 하나 없는 조용한 밤이면, 나는 의례 잠을 이루지 못한다. 게다가 낮에는 먹을 것을 구하러 가야 하고, 해는 금방 져 버린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런던의 교외인 노팅 힐이라면, 그 말을 누가 믿어 줄까. 지금까지는, 밤이 되면 이 방의 창문으로 런던 거리의 불빛이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었다. 그리고 사람과 차의 소요가 마치 폭풍우 뒤의 파도 소리처럼 멀리서 들려 왔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둠과 죽은 듯한 고요에 감싸여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원시시대처럼 해질녘이 되면 잠자리에 들어가 날이 샐 때까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외톨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아무 소망도 없이 오로지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어제 켄싱턴 공원으로 먹을 물을 푸러 갔을 때 만난 사람이,
"지금 런던에는 7백 명 가량의 사람이 살고 있을 뿐이니까 도시 안의 아무리 훌륭한 집이라도, 필요하다면 그 어느 것이라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죽음의 도시로 바뀌어 버린 런던에 대해, 이것저것 말할 틈이 없다. 내 옆에 있는 촛불이 다 타기 전에 이 수기를 조금이라도 빨리 써 버리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번의 대 이변이 생기기 조금 전까지 나는 유적 등을 찾아다니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제 인간의 역사는 끝이 나 버린 것이다. 언제고 또 인간의 역사는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고 나의 이 수기도 누군가에게 발견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 이 대 이변에 입각한 여러 가지 사건이 완전히 끝나고 난 뒤의 일일 것이다 그 날을 위해 나는 이 수기를 금속 상자 안에 넣어 난로 벽 속 구멍 안에 감추어 둘 참이다. 나의 이름은 에드거 홉킨스. 52세가 되는 외토리이다. 켐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20년쯤 어느 중학교의 선생으로 일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약간의 재산을 남겨 주었으므로 선생 일을 그만두고 햄프셔 주의 비들이라는 마을 변두리에 작은 농지를 사들여, 언덕 중턱에 아담한 집을 짓고 밭일을 시작하였다. 가까이에 퍼시벌이라는 사람이 있어 나는 곧 그와 친해졌다. 그는 아마추어 천문학자로, 훌륭한 천체 망원경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천체 망원경으로 처음으로 달 표면을 상세히 볼 수가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바위투성이의 달세계에 나는 몹시 끌렸다. 그래서 밤이 되면 천체 망원경에 달라붙어서 몇 시간이고 달을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그의 조수로서 영국 달 연구회의 회원이 되었다. 이 모임은 달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그룹이다. 그건 그렇고, 나의 수기는 5년 전의 어느 여름날 저녁때부터 시작된다. 그 날 저녁, 나는 우리 집에 편지를 가지고 온 나이 먹은 집배원과 문이 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 멋있는 황혼이군요. 그러나 또 이상하게 부옇게 흐려
 보이는군요, 나는 이 나이가 되기까지 이렇게 흐린 하늘을 본 일이 없습니다. "
분명히 약 2, 3주전부터 나는 저녁때가 되면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저물어 가는 태양은 여느 때나 다름없이 그 둘레에 구름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하늘은 어딘지 모르게 예사롭지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이 마음에 걸려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저녁 하늘의 이 예사롭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문도 그 일은 다루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천문학에 싫증을 느끼고 있던 나는 대단한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나는 매일 저녁때가 되면 마당에 나가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날 저녁때 받은 편지가 나의 지금까지의 평화로웠던 나날에 종말을 고하는 소식이라는 것을 도대체 누가 상상했겠는가. 그 전문을 여기 옮겨 놓아 보겠다.
 
통 지 서
 
오는 10월 8일 오후 6시, 본 연구회 본부에서 영국 달 연구회 특별 모임을 가지려고 하니 꼭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날 모임의 목적은 극히 비밀을 요하는 것이므로, 회원 이외의 참석은 거절합니다.
 
영국 달 연구회 간사
험프리 H. 타그월
 
 
무서운 밤
 
10월 8일, 오후 6시 조금 전에 런던에 있는 그 연구회 본부의 건물 안으로 들어간 나는, '여느 때의 모임과는 꽤 다른 것 같군.'하고, 심상치 않게 느꼈다. 우선 간사가 문 앞에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회원증을 일일이 조사하고 있었다. 이런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여느 때의 인사나, 온화한 웃음소리 하나 들을 수 없었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걱정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러분,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
간사의 말에 우리는 우르르 홀로 들어갔다. 모두 자리에 앉자, 간사는 문을 잠그고 묵직한 커튼을 쳤다. 곧 회장인 하틀리 박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회장은 런던 대학의 천문학 교수이다.
"이미 여러분 중에는 이 긴급 회의가 열린 이유에 대하여 알고 계신 분도 계시리라 믿습니다만, 오늘밤의 모임은 수상으로부터의 의뢰가 있어 열린 것입니다. 수상은 오늘 밤, 여기서 말한 일이나 들은 이야기는 절대로 비밀에 붙여 달라는 요청입니다. 만일 비밀을 지킬 수 없는 분이 있으면 지금 곧 퇴장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해도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회장은 노트를 들여다보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여러분은 바로 1년 전 8월 9일의 일식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과학자들은, 그것은 달이 태양 앞을 지나가는 시간이 9초 가량 늦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신문에 발표했습니다. 그 때 약간의 착오가 있었기 때문에 올해의 7월 17일에 있을 다음 일식까지 기다려 확실한 계산을 내기로 정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달은 17초 늦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졌습니다. 어떤 힘이 작용하여 지구 둘레를 도는 궤도를 바꿔 버렸기 때문입니다. 달은 하루에 1280킬로미터의 빠르기로 우리의 지구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속력이 지금은 조금씩 빨라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10월의 만월에 해당됩니다. 도시 사람들은, 어떤 이는 이 달의 빛이 보통 때보다 덜 밝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11월의 만월에는, 달은 지금보다 4만 8천 킬로미터나 우리 앞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이 사실을 비밀로 해 둘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의 어느 정부에서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평화롭고 행복한 때를 조금이라도 오래 누리게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자인 여러분은 이 비밀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달에 대한 어떠한 소문도 내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거짓말에 의해 사람들은 잠깐 동안이라도 구제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만일 질문이 있으면 되도록 답변을 해 드리겠습니다만, 그러기 전에 본 연구회의 회원이자 학자로서 유명한 켐브리지 대학 교수 존 버텔 경에게 한 마디 말씀을 부탁드려 볼까 합니다. "
나는 존 경을 처음 만났으나 그를 보자마자 놀랐다. 학자라기보다는 돈 많은 농부 같은 느낌으로 뚱뚱하고 붉은 얼굴의 명랑한 사람이었다. 말투는 아주 시원시원했다.
"신사 여러분!"
존 경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여러분에게 두 가지 일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 하나는 우리들은 달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달을 조사하기 시작한 지 불과 500년...... 그렇습니다.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에 비유해 보면 1년 중 불과 20초쯤의 시간입니다. 지금까지도 달은 백만 년 아니, 그 이상의 세월을 두고 그 코스를 바꾸어 모체인 지구로 다가오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백만 년 더 지났을 때, 본디 장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연계의 사건이란 모두 그러한 일의 되풀이의 연속입니다. 나는 이번 일에 몹시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는 굉장히 행운아인 셈이니까요. 아무튼 달에 이런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이 눈으로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만일 좋은 결과로 끝나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그 사실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 중 또 한 가지. 여러분, 과학자 로슈를 상기해 보십시오. 로슈는 달은 더 이상 지구에 다가서면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토성의 환은 토성에 너무 바싹 다가갔기 때문에 부서져 버린 여러 개의 위성 조각이라고 믿어지고 있습니다. 달은 언젠가는 모체인 지구로 돌아온다는 설이 있는데, 그 언젠가가 지금 닥쳐 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일 회장님의 생각이 옳다면 우리는 이삼 개월 뒤에는 아주 멋진 광경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달이 지구로 바싹 다가왔을 때의 일이지만 말입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지구에서 그 부서진 달을 볼 수 있겠군요?"
"물론이지요."
존 경이 대답했다.
"매일 밤 볼 수 있지요. 하늘을 가로질러 기다란 띠처럼 늘어나 있고, 태양 빛을 받아서 달처럼 환하게 보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하고 이번에는 퍼시벌 씨가 말참견을 하였다.
"지구는 큰 폭풍이나 큰 홍수를 당하겠지요? "
"그것은 분명 합니다. "
회장이 말했다.
"한 이삼 개월 전부터 정부도 그러한 큰 일에 대비하여, 모든 준비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수폭을 방지하기 위한 일이라는 구실로, 원폭 전쟁 때 만들어진 것과 똑같은 대피호를 지금 모든 도시와 마을에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 지하호가 필요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일은 꽤 힘든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되도록 이 일이 진전되도록 사람들에게 권해 주십시오. 다만 사실은 알리지 말고........"
그 뒤 몇 마디의 말을 주고받았으나, 나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지 않다. 태양의 둘레를 도는 궤도 위를 무서운 속력으로 돌고 있는 거대한 지구...... 하늘 저 쪽에서 밤마다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달...... 4800킬로미터의 두께와 2백억 톤의 무게를 가진 바위투성이의 덩어리...... 그것이 지구에 충돌한다...... 오랫동안 그런 무서운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흠칫 놀랐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내년 5월 3일 밤 8시경에 지구에 충돌할 예정입니다."
하고 말한 회장의 말이 귀에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 날 밤의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러면 10월 22일에 다음 모임을 갖겠습니다.’ 회장은 그렇게 덧붙여 말했다. 내년 5월 3일, 그 날짜가 내 가슴속에 아로새겨졌다. 앞으로 7개월만 지나면 모든 것이 끝장인가? 처형 날까지 앞으로 7개월 남았다는 선고를 받은 사형수의 기분이야말로 그때의 나의 기분과 똑같았으리라고 생각된다.
 
11월 밤의 달
 
10월 22일, 나는 다시 런던의 모임에 나갔다. 내년 5월 3일 밤, 이 지구에 커다란 이변이 일어나게 된다. 처음에는 나도 그 사실에 괴로워하였으나 지금은 과학자들이 어쩌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까지 되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 매일 계속되고, 따뜻한 태양 빛을 받고 상쾌한 바람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면 걱정거리는 의외로 빨리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달의 모습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연구회의 모임에 나온 다른 회원들도 똑같은 기분이었던 모양이다. 달 연구회의 홀에 들어갔을 때, 나는 모든 사람의 모습으로 보아, 아무도 회장이 최초에 했던 말을 각오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더 이상 알려 드릴 일은 없습니다. 여러분! 달은 속력을 더하여, 시시각각 지구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
순간 사람들의 얼굴은 갑자기 새파래졌다. 마치 온 방 안의 불빛이 갑자기 어두컴컴해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 주일 전에 최초의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 훨씬 큰 충격을 받았다. 회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달은 바야흐로 우리를 향해 하루에 약 1980킬로미터의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5월 3일, 달과 지구의 충돌 시각은 처음의 오후 8시 반에서 8시 15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얼마 안 되어 달은 지구에서 불과 24만 킬로미터가 되는 곳까지 다가옵니다. 캄캄한 어둠이라도 밀어닥치지 않는 한, 이 사실을 사람들의 눈에서 숨길 수는 없습니다. 2월의 삼 주 째인 만월에는 모든 비밀이 밝혀지고 말 것입니다. "
그 날 밤, 비밀은 다른 과학자의 단체에도 알려졌다. 어느 대학의 교수는 그 때문에 정신이 돌아 버려, "세계의 종말이 온다, 세계의 종말이 온다!"하고 고함을 치고 다니다가 순찰차의 경관에게 잡혀 정신 병원에 보내졌다고 한다. 이삼 일 후, 수상은 영국 전체의 도시와 마을에 되도록 깊은 대피호를 파도록 호소했다. 수폭에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대피호는 고장마다 10미터 깊이로 붕긋한 언덕빼기에 만들도록 되어 있었다. 비들 마을에도 대피호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위원장에는 헉스 박사, 위원에는 월로비 소령, 본디 경찰관이었던 파우슨, 게다가 에드워드 목사가 선출되었다. 나는 그 멤버에는 들지 않았다. 11월초의 밤하늘은 언제나 흐려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11월로 접어들어 삼 주 째 화요일 밤의 일이었다. 나는 트럼프놀이를 하기 위해 목사관으로 가려고 집을 나섰다. 문을 나서자,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연히 한 2, 3분 동안 달이 보이지 않았다가 만월이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달이 지금까지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컸던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기분 나빴던 것은 그 달의 빛깔이었다. 죽음과 파괴에 굶주린 은빛 해골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달은 구름 속으로 숨어 사방은 다시 어둠 속에 묻혔다.
"어머, 홉킨스 씨,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얼굴이 창백하시군요."
목사 부인은 찾아온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나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창백했던 모양이다.
그 날 밤, 트럼프에서 나는 계속 지기만 했다. 카드 위에 마음을 집중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마을 순경인 윌슨을 만났다. 나는 몇 마디 말을 나눈 뒤 화제를 하늘의 이야기로 바꾸어 보았다.
"우리는 이번 달에는 달구경하기가 힘이 드는군요."
그러나 윌슨 순경은 별로 놀라지도 않으며 조용히 대답하였다.
"9시쯤에 구름이 걷혀서 잠깐 동안 달이 환하게 떴었습니다."
나는 후유 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순경인 윌슨 역시 아무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도 지난 12월 27일의 석간에 처음으로, '보통이 아닌 달의 모습'이라는 표제로 달에 관한 최초의 뉴스가 실렸다. '특별히 밝은 하늘과 대기 중의 서리에 달빛이 반사되기 때문에, 달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또렷이 빛나 보이게 됐다. 만일 여전히 하늘의 상태가 똑같으면 달이 기울 때까지 앞으로 적어도 일주일은 달의 모습이 이 상태로 있을 것이다.' 정부 안에 설치된 달 대책 위원회는 진실을 알려 사람들을 공포 속에 빠뜨리는 일을 피한 것이다. 사흘이 지나자 날씨가 달라졌다. 일주일 동안 하늘은 줄곧 두꺼운 구름에 덮여 있었다. 그것이 개었을 때, 달은 보이지 않았다. 신문은 달에 대한 것을 싣지 않게 되었다. 해가 바뀐 1월 9일, 나는 달 연구회의 마지막 모임에 참석했다. 셋째 줄의 좌석에서 나는 회장 하틀리 교수로부터 마지막 보고를 들었다.
"1월 25일에, 달은 지구에 51200킬로미터 가량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달과 지구 사이의 평균 거리의 절반에 해당됩니다. 달은 보통 때보다 약 두 배의 크기로 보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정부가 요전에 신문지상에 발표한 설명으로는 이제 아무도 속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는 이제 사실을 알려 줄 결심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연단 위에서 조용히 말하는 노인을 쳐다보며 몸이 떨려옴을 막을 길이 없었다. 회장은 조용한 목소리로 계속 보고를 했다.
"다음 월요일은 14일입니다. 새 달은 그로부터 6일 뒤인 1월 20일 토요일에 나타날 것입니다. 거짓 없는 소식이 1월 14일의 월요일 날 아침 전국의 교회에서 알려지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뒤 사람들이 새로운 달을 보기까지는 6일을 더 있어야 합니다. 그 6일 동안에 온 나라를 침착하게 하려는 의도입니다.“
그 일요일인 14일, 월요일의 전날 밤, 나는 에드워드 목사를
 만나러 나갔다. 나는 목사가 비들 마을 사람들에게 그 무서운 소식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어려운 일로 괴로워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3개월 전부터 이 비밀을 알고 있었으므로, 만일 과학적인 설명에 있어 당신의 일을 도울 수 있다면 꼭 힘이 되어 주겠다고 목사에게 자청하고 나섰던 것이다.
"과학적인 설명 따위는 필요치 않습니다.“
하고 목사는 대답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입니다. 그것만으로 됩니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것은 그것이 신의 뜻이냐 아니냐 하는 것뿐이니까요."
이렇게 나오니, 무슨 말을 해도 헛일이었다. 나는 잠자코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어리석은 사람들
 
목사관에서 돌아온 나는 굉장히 지쳐 있었다. 나는 나쁜 상상만 하고 있었다. 내일 아침, 온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교회에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오고, 자포 자기한 폭도가 마을의 가게를 마구 부수어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1월 14일 월요일 날 아침, 에드워드 목사는 여느 때와 같은 모습으로 설교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내용은 잘 들어보니까 분명히 세계의 종말을 고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목사는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빙 돌려서 했던 것이다. 목사가 이야기를 마쳤을 때, 사람들의 반 이상은 목사가 무슨 밀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을 사람들의 얼빠진 얼굴을 둘러보았다. '아무튼 이 마을에서는 아직 비밀이 분명히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비밀을 숨겨 둘 수는 없다. 모두에게 알려 주는 편이 좋다.' 서둘러 교회를 나가려고 하는데, 내 옆에 있던 한 소녀가 귀가 어두워진 할머니에게 이렇게 소리치고 있는 것이 들렸다.
"목사님은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말씀하셨어요, 할머니! 5월 3일에 그 날이 오는 거여요!"
"그래."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곧잘 그런 말을 했었지. 할아버지는 절대로 며칠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만 몇 명의 젊은이들이 목사를 교회 옆으로 불러내어 다시 한 번 상세한 설명을 듣고 있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신문을 보았다. 도대체 교회를 통하여 달의 모든 비밀이 국민에게 알려진 이때, 신문은 그 사실을 어떻게 다루고 있나-그것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달을 설명하는 기사는 조금밖에 실려 있지 않았다. 나머지 페이지의 대부분은 유명한 과학자나 평론가들의 의견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의견은 모두가 희망적인 것뿐이었다. 거기에 의하면 달은 지구에 가까워져 어딘가에 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닿은 다음에는 우주 멀리 날아가 버려 달의 모습을 볼 수는 없을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달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선 밀물과 썰물이 없어지기 때문에 배에 짐을 싣고 내리기가 아주 편해진다. 지리란에 기사가 씌어 있었다. 옥스퍼드 대학 대 켐브리지 대학의 유명한 보트 경기도 지금까지는 밀물이 차 오는 것을 이용하여 상류를 향해 저어 갔는데, 앞으로는 흐름에 따라 흘러 내려가는 방향으로 스타트하게 될 것이라는 기사도 실렸다. 이처럼 달이 없어졌을 때의 생활에 대하여는 이것저것 실었으면서도, 달이 다가왔을 때의 위험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지 않고 있었다. 달이 조각조각 잘게 부서져 토성의 환처럼 되느냐의 여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로 논의되고 있었다. 어느 유명한 언론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달이 우리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지나쳐 가든, 아니면 산산조각이 나든, 아무튼 큰 사건을 체험하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기회를 얻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노인들이 난로 가에 앉아 옛이야기 삼아 달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나는 달을 본 일이 있단다.'라고."
나는 이 기사를 읽고, 솔직히 말해 감동하였다. 신문은 농담이나 흥미 본위로 이렇게 다룬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살아 남을 수 있는 희망이 있으면, 그것을 크게 다루어 사람들을 안심시켜야 할 것이다.
나는 그 날 밤 헉스 박사가 있는 곳을 찾아갔다. 나는 지금까지의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애를 썼으며, 마을 사람들의 어리석음에 실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공포에 사로잡히는 일은 바람직한 일이 못 된다. 조금이라도 구제될 길이 있으면, 그 길을 개척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그 때까지의 생각을 버리고 대피호의 일을 돕기로 결심했다. 헉스 박사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나는 역시 헉스 박사를 찾아온 파우슨을 만났다. 파우슨은 본디 경찰관으로 대피호 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기분 좋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파우슨은 침울한 것 같았다.
"시간의 낭비라는 말입니다. 이런 때에"
"무슨 말입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예, 이 대피호 말입니다. 이런 일은 이전에 그만둬야 합니다. 이런 때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까? 시간만 낭비하는 거지 뭡니까."
나는 놀라고 말았다. 이 사람은 아직도 대피호가 무엇 때문에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대피호는 말입니다."
하고 나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달과의 충돌에서 마을을 구해 내기 위한 것입니다. 전쟁이니 뭐니 한 것은 처음부터 모두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파우슨은 의심스러운 듯이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새로운 일
 
그러나 파우슨의 의심은 헉스 박사를 만나자마자 곧 풀렸다. 대피호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헉스 박사는 이미 모든 정보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거드름을 피우며 파우슨에게 설명했다.
"수요일에는 다 파 놓아야 해요."
헉스 박사는 한층 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국립 기술원에서 기사가 올 테니까.“
내가 대피호의 일을 돕겠다고 하자 헉스 박사는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고,
"내일 아침 9시에 버진 공원으로 오도록......"
하고 말할 뿐이었다. 헉스 박사는 바야흐로 모든 비들 마을 사람의 목숨을 보존해야 할 책임을 느끼고 용감하게 싸움에 임하는 지휘관과 같은 태도를 취했다.
이튿날 아침 9시에 버진 공원에 가니까,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손수레였다. 몇몇 사람들이 버진 공원의 언덕빼기에 큰 굴을 파고 있었다. 굴에는 넓은
 계단이 붙어 있었다. 소년들이 자루 속에 판 흙을 부지런히 담아서 짊어지고 계단을 통하여 나왔다. 나는 손수레에 그 흙을 싣고 버리러 갔다. 그 일은 비교적 쉬웠다.
흙투성이의 자루를 실은 손수레는 달리듯이 언덕을 굴러 내렸고, 빈 수레를 언덕 중턱까지 밀고 올라오는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목사와 헉스 박사도 위원회라 쓰인 완장을 두르고 한데 어울려 일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주일이 지났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비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5월 3일에 대하여, 세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하나는, 달에 의한 파괴란 어딘가 먼 외국에서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영국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영국에는 우리가 선출한 정부가 있고 경찰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 기관에서 다 잘해 나가리라는 것이다. 둘째는, 신문에 실린 것을 그대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달이 지구에 닿는다는 대단히 흥미 있는 광경을 자기네들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버진 공원에 있는 커다란 너도밤나무가 성냥개비처럼 부서져 버리고 허리케인이나 홍수가 휘몰아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자기네들이 피해를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세계의 종말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하느님이 정한 일이라고 조용히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에도 달은 둥그래졌다가 다시 이지러졌다. 비들 마을에서는 아무 소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윽고 달은 굉장히 커져 눈이 부실 정도의 황금빛으로 반짝이게 되었다. 달의 산이나 분화구도 지금은 뚜렷이, 마치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는,
"아니, 조금도 떨어진 것 같지 않잖아."
하고 유감스러운 듯이 말하는 이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3월 중순이다. 5월 3일까지는 앞으로 6주간이나 남았다. 나는 이제 달 연구회의 모임을 손꼽아 기다리지는 않았다. 과학자들의 예상 따위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피호 만드는 일에 기꺼이 참석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매일 손수레를 밀고 땀을 흘기며 일하였다. 3월도 다 간 어느 날 저녁, 나는 언덕 중턱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안녕하셔요?"
하고 뒤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돌아다보니까, 패트 파커와 로빈 파커 남매였다. 누나인 패트는 18세쯤 되어 보이고 동생인 로빈은 16세쯤 되어 보이는데, 두 사람 다 런던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런던 교외 노팅 힐에 있는 아저씨 부부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런던에서 그 남매를 몇 번인가 만난 일이 있어서 낯이 익었다.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어 줄곧 큰아버지인 파커 씨의 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둘 다 밝고 온순한 성격의 착한 소년 소녀였으므로, 나는 이 남매를 좋아했었다. 누나인 패트가 말했다.
"아저씨네 집은 골짜기 저 쪽이었지요?"
"그래, 한번 놀러 오너라."
"고맙습니다. 우리들 어제 오후에 런던에서 돌아왔어요. 런던의 학교는 모두 이번 주로 끝나거든요."
패트가 말하였다. 파커 씨의 집으로 4월초, 국립 기술원에서 에번즈라는 기사가 왔다. 에번즈는 대단히 부지런하여, 대피호 만드는 일을 도우라는 정부의 명령을 받고 온 것이다. 정부는 달이 다가올 날에 대비하여 여러 가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육․해․공 삼군은 하나로 합쳐져 지구 방위군이 조직되었다. 그 군대는 무기 대신 곡괭이나 삽을 가지고 있었다. 군인들은 나라 안에서 모아 온 직공들과 함께, 대피호 학교라는 특별히 세워진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정부에 의해 영국 안의 도시나 마을로 파견되었다. 큰 도시에는 20명 내지 30명, 비들 마을처럼 극히 작은 마을에도 반드시 한 사람은 파견되었다. 에번즈 기사가 도착한 날부터 비들 마을의 대피호 파는 일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한가했던 농촌인 비들 마을에서는 지금까지 밤새워 일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에번즈는 일을 한시도 쉴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 5월 3일이 되기 전에 완성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에번즈는 온 마을 사람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8시간씩 번갈아 일을 시켰다.
큰 대피호에는 세 개의 입구가 만들어졌다. 지금까지처럼 단 한 개라면 만일의 경우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기사인 에번즈는 비들 마을에 올 때 큰 강철제 문을 몇 개인가 가지고 왔었다. 그 문은 공기와 물도 통하지 않게 되어 있었다. 곧 그 문을 다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대피호 안에 들어가 보았다. 크고 튼튼하여 아주 믿음직스러웠다. 방은 언덕 중턱에서 아래쪽으로 10미터 가량 파 내려간 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안은 세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하나는 남자용, 하나는 부인용, 또 하나의 방은 산소 봄베와 먹을 것, 마실 물, 변소 등으로 할당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보다 더 일이 재미있었다. 아침 8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 줄곧 일손을 놓지 않았다. 5월 3일까지 앞으로 4주일이 남았다. 비들 마을뿐 아니라, 영국의 모든 사람들이 각각 대피호 파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일을 한 사람들에겐 정부에서 품삯을 주었다. 과연 이런 일이 그렇게 필요한 것일까? 이런 조그만 굴속에 숨어 있다고 해서 달과의 충돌이 일어날 때 무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정부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다. 대부분의 일이 정지된 현재,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든 시킬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고 있으면 무서운 일만 생각하게 되어 머리가 돌 지경이 된다. 생각하는 일을 잊고 몸을 움직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로빈과 패트의 큰아버지인 파커 씨로부터 저녁 초대를 받았다. 파커 씨는 대피호 파는 일에 있어서 한 사람의 리더였다. 패트와 로빈도 대피호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가 파커 씨의 집에 간 것은 저녁 7시쯤이었다.
달이 떠 있었다. 반이 이지러진 채 지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파커 씨의 집에 도착하자, 로빈 소년이 뛰어나와 문을 열어 주었다. 홀로 들어가니까, 파커 씨는 친근한 미소를 띄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우리는 지금까지 시골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말하는 이웃 사촌이었습니다."
파커 씨가 말했다.
"5년 동안, 창 너머로 서로 바라보면서도 단 5분의 시간을 아끼어 서로 오고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서로 오고가지 않은 일은 큰아버지가 잘못 하셨어요."
하고 패트가 옆에서 말참견을 했다.
"큰아버지는 홉킨스씨보다 오래 전부터 이 곳에 살고 계셨으니까, 큰아버지가 먼저 말을 붙이는 것이 예의잖아요."
패트는 얌전한 느낌의 파란 이브닝 드레스를 입고, 아주 매력적이면서도 귀여운 여주인 노릇을 하였다. 우리는 이윽고 식탁 앞에 앉았다.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조용한 느낌을 주는 가정부가 음식을 가져왔다. 우리는 식후,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을에 대한 것, 자기 자신들에 대한 일 등을. 로빈 소년은 내가 본디 중학교의 선생이었다고 말해도 믿어 주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은 더 무서워 보이는데........"
"그러면 어떤 선생이 선생으로 보이느냐?"
나는 웃으며 말했다. 파커 씨는 로빈 소년이 훌륭한 스포츠맨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밖에 우리는 정의에 대한 일이며 휴일에 대한 일 등을 이야기했는데, 달에 대한 것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뗏목 만들기
 
5월 3일까지 2주일 남았을 때, 이윽고 버진 공원의 대피호가 완성되었다. 토요일 오후 3시에 이루어진 테스트에도 문제없이 합격하였다. 마을의 소방대가 펌프 물을 끼얹어 홍수가 났을 때와 같은 테스트를 하였는데, 강철제 문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마을의 공회당 홀에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명회를 열었다. 5월 3일이 가까워져 위험하게 되면 교회의 종이 알리기로 되어 있었다. 교회에는 무전으로 정부의 대책 위원회에서 명령이 내려질 예정이었다. 사람들은 종소리를 신호로 대피호에 들어가 4일 새벽녘까지 그 곳에 있어야만 했다. 종이 울리건 안 울리건 5월 3일 저녁 5시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대피호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차 도구, 담요 같은 일상 용품만은 대피호에 가지고 들어가도 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기사인 에번즈가 마지막으로 일어서서 말했다.
"이 대피호의 일이 끝난 지금, 내가 이 마을을 떠난다는 소문이 있는 모양인데,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나에게는 모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비들 마을에 있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 대피호의 완성을 축하합니다! 아주 훌륭한 일이었습니다. 모든 마을이 이 마을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요란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수가 그쳤을 때, 에번즈는 사람들에게 뜻밖의 일을 말한 것이다.
"여러분은 이것으로 일이 끝났다고 안심을 하고 계시겠지요. 그러나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조용해졌다. 즐거웠다고는 하나 역시 그렇게 힘드는 일은 더 이상 하고싶지 않았던 것이다. 에번즈는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는 언제 대홍수를 만날지 모릅니다. 위험이 사라진 화요일 날 아침, 대피호를 열었을 때 우리는 골짜기가 호수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자기의 집까지 헤엄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잠자코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는 큰 뗏목을 여섯 개 가량 만드는 게 어떻겠습니까? "
하고 에번즈는 제안하였다.
"버진 공원에는 아직 남은 재목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대피호의 입구에 매달아 놓는 것입니다. 이 일은 꼬박 2주일은 걸릴지 모릅니다. 자, 여러분, 이제 곧 그 일을 착수하시지 않겠습니까?"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찬성했다. 나는 에번즈의 현명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 뗏목 아이디어는 정말 어리석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단순한 시골 사람들이 아니라면 도저히 속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에번즈는 이 사람들로 하여금 갑자기 할 일도 없이 놀며 지내게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남은 2주간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는다면 사람들의 머리에는 공포만이 스며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내일 아침 7시부터 일을 시작합니다. 재목을 모아 엮을 밧줄을 있는 대로 가지고 오십시오."
에번즈는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자리에 앉았다. 그것으로 설명회는 끝났다. 나는 이번 소동이 어쩐지 축제의 소동같이 느껴졌다. 만일 '달이 갑자기 진로를 바꿨습니다. 지구에는 다가오지 않습니다!' 하는 뉴스라도 있었다면, 이 사람들의 대부분은 실망했을 것이다. 우리 마을은 골짜기 변두리에 있어, 교통이 불편하고 다른 고장과의 유대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라디오의 뉴스와 신문에 의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이 좋은 비들 마을 사람들이 아니라도, 진실을 알고 있는 우리 역시 어쩐지 5월 3일에 대해 너무 가볍게 보고 있는데,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 가볍게 보는 일이 무서웠던 것이다. '도대체 다른 고장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나는 사실을 알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튿날인 일요일 밤, 나는 런던의 노팅 힐에 사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아저씨한테서는 곧 오라는 회답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그 두 사람은 나의 몇 안 되는 친척 중 한 집이었다. 한번 찾아가 보는 것이 나의 도리였다.
 
잘 있거라, 런던
 
수요일 아침, 나는 마을을 떠났다. 대단한 혼잡과 기차의 연착 때문에 괴로운 여행이 되었으나, 가까스로 런던의 워털루 역에 도착했다.
"모두 이야기해 주십시오."
나는 집에 도착하자, 아저씨와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모르는 세계에서 찾아온 사람에게 이야기하듯이 이야기해 주시지 않겠어요. 사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 옳을 겁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런던 사람들은 처음에 지금까지 해 온 일을 계속해 갈 작정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3월로 접어들어 달이 커지자, 과연 용기 있는 시민들의 생활도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런던에서는 비들 마을에서와 같지는 않았다. 시민들이 합심하여 대피호를 팔 수도 없었다. 사람들은 멍해져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첫째로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데 사무실에서 바쁘게 일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헨리 아저씨는 내가 모르는 소식을 몇 가지인가 알려주었다. 달이 지나갈 때마다 바다에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2월 23일, 호화 여객선 지브롤터 호가 SOS 신호를 보낸 뒤, 한순간에 지중해로 모습을 감추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 수 없다. 퀸 엘리자베스 호의 선장은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고 보고해 왔다. 무서운 큰 소용돌이가 일어, 배의 코스가 북동쪽으로 3킬로미터나 벗어났다는 것이다. 런던에서는 무법자, 도둑이나 강도가 판을 치고, 살인 사건도 잇따라 일어났다. 이제 경찰관으로는 어쩔 수 없어 며칠 전 정부는 무장한 2천 명의 군인을 시내 경계에 투입했다는 것이었다.
"정신 병원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고 아저씨는 어두운 목소리로 말을 계속했다.
"매일 아침, 문을 잠근 자동차가 묘한 소리를 지르며 이 곳을 지나간다. 런던이 온통 정신 이상자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 대부분의 사람이 상당한 위험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조심스러운 감시가 필요하다."
"게다가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는," 하고 로즈 아주머니가 덧붙여 말했다.
"정말 끔찍스럽다. 매일 아침, 공원에 자살한 사람의 시체가 쌓인단다."
나는 일어섰다. 이제 한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런던을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어떤 상태인가 보고 싶습니다."
나는 밖으로 나가자, 서둘러 수도 런던의 변화를 둘러보며 돌아다녔다. 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으며, 문이 열려 있어도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지하철은 한 달 전부터 멈추어 있었다. 지하철역은 바야흐로 대피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하이드 파크 공원에서는 사람들이 여기저기를 정신없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누구나 다 얼굴에는 무기력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런던 시 당국은 시민에게 거의 아무 것도 알리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소한 뉴스라도 시내를 위험한 상태에 빠뜨리거나, 사람들을 공포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기 때문이다. 은행은 평상시대로 열려 있었다. 돈은 얼마든지 마음대로 찾을 수 있었다. 런던 사람들은 찾은 돈으로 입을 옷이라든지, 신이라든지, 통조림 등을 계속 사 모으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자, 아저씨와 둘이서 서재의 의자에 앉았다.
"저는 내일 돌아가겠습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짧은 시일의 방문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아저씨의 모습이 싹 바뀌어 나를 놀라게 했다. 그 눈에서는 빛이 사라지고 동그랗고 윤이 나던 볼은 빈 자루처럼 축 늘어졌다.
"그러나, 그러나, 너........"
하고 아저씨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너는 적어도 사흘은 있어 줘야지......"
"비들 마을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거기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하고 나는 거짓말을 하였다. 이튿날 오후에 나는 5시 기차로 런던을 떠났다. 서쪽으로 지는 태양이 템즈 강가에 있는 빅 벤(국회 의사당의 큰 시계)을 빨갛게 비추고 있었다. '오래 된 아름다운 도시 런던이여, 영원히 안녕.'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마지막 일주일
 
비들 마을 사람들은 마지막 주를 활기찬 파티로 맞았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자기네들의 머리 위에 무서운 위험이 닥쳐오고 있다는 생각은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일요일 밤, 버진 공원의 대피호 한쪽에서 환하게 타오르는 캠프파이어가 있었다. 남은 재목을 모두 쌓아올리고 불을 지른 것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불을 둘러싸고 큰 원을 만들었다. 교회의 성가대가 영국의 옛 민요를 불렀다. 에번즈 기사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웨일즈 지방의 노래를 불러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 해 주기도 하였다. 에번즈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에 달이 언덕 꼭대기의 큰 너도밤나무 뒤로 떠올랐다. 우리는 앉은 채 아무 두려움도 느끼지 않고, 그 커다란 황금빛 초승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큰 너도밤나무 가지에 걸려 있는 초승달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느 때의 초승달이 아니었다. 그것은 검고 큰 구체이며, 빛을 내고 있는 것은 그 구체의 둘레 부분뿐이었다. 그 빛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여, 마치 큰 구체가 타오르는 불길 속에 내던져진 것 같았다.
화요일이 되자, 트럼프나 게임의 모임으로 흥청거렸다. 수요일에는 가장 무도회가 열렸다. 아무튼 이상한 일주일이었다. 그리고 토요일 밤, 첫 번째 소동이 시작됐다. 장본인은 마을의 크리켓 팀의 캡틴인 찰리 허스트이다. 그 날 낮, 마을의 공회당 입구에 커다란 포스터가 나붙었다.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오늘 밤 9시 기혼자 대 독신자의 제 1회 비들 마을 크리켓 대회가 열립니다! 달이 뜨는 동시에 경기를 시작하여 한밤중까지 계속한 다음, 승부를 냅니다. 나는 크리켓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온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면 안 가 볼 수도 없다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 후, 나는 마당에 앉아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저녁 해가 지자마자 밤이 성큼 다가왔다. 30분쯤 지나자, 사방은 캄캄한 어둠 속에 휩싸여 버렸다. 그 때, 조금씩 언덕 위를 따라 황금빛이 비쳐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영국 동부 지방의 도시들이 일제히 불에 감싸여 있기라도 한 듯이 동쪽 하늘이 빨개 보였다. 그 빛의 중심에서 샛노란, 가느다란 빛의 띠 두 가닥이 뻗쳐 나와 너도밤나무에서부터 마을의 교회 쪽으로, 언덕 전체를 비스듬히 달렸다. 얼마나 무서운 광경일까!
빛의 띠는 다시 교회 위에서 크리켓을 하기로 되어 있는 운동장을 향해 흘렀다. 마침, 운동장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위에서 빛을 받아 환하게 보였다. 사람들은 그 곳에 멈추어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새가 일제히 지저귀기 시작했다. 달빛을 받아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는 몹시 기분 나쁘게 들렸다.
내가 운동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벌써 40명 가량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 곳은 사람이 있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파커 씨와 패트도 그 곳에 와 있었다. 크리켓 선수인 로빈 소년은 물론 경기장 안에 있었다. 패트의 손은 이 황금빛 속에서도 핏기가 없었고, 얼굴은 창백했다.
"위대한 노력이야."
파커 씨는 무게 있게 말했다.
"용기는 있으나 어리석은 노력이야. 저 사람들은 마을의 공회당 안에 있는 편이 훨씬 행복할 텐데........ 라디오에서 뉴스가 있었어요. 마침 우리가 집을 나오려고 할 때에. 달이 뜸과 동시에 소련과 미국에서 회오리바람 같은 것이 일어난 모양이오."
"그게 언제 입니까?"
"약 5분 전이오. 마침 내가 집을 나서려고 할 때였으니까......"
나는 와들와들 떨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겠군요."
"아니.“
하고 파커 씨는 말했다. 그의 조용한 목소리 속에는 내가 지금까지 들은 일이 없는 날카로운, 명령적인 말투가 담겨 있었다.
"알리지 않는 게 좋아요. 회오리바람이라고 해도 그것은 아주 조용한 것인 모양이오. 만일 모든 사람이 지금 대피호에 들어가 버리면, 그 사람들은 꼭 들어가야 할 월요일 밤에는 대피호에 들어가려 하지 않을 테니까."
그 뒤로 파커 씨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선수인 로빈 소년과 캡틴인 허스트가 운동장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크리켓 게임이 끝난 것은 11시쯤이었다. 모두 케이크와 차를 마시기 위해 텐트 주위에 모였다. 달은 막 가라앉으려 하고 있었다. 달빛은 반짝이는 황금빛에서 오렌지 빛으로 바뀌어 갔다. 그 때 멀리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런가 했더니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크게 외쳐 대는 듯한 격한 소리로 바뀌었다. 다음 순간, 마치 홍수 때의 흐름처럼 우람한 소리를 내고 골짜기 위를 덮었다.
그 때 달빛이 갑자기 흐려졌다. 그리고 소련의 먼지와 미국 평원의 티끌이 우리 머리 위에서 미친 듯 날뛰어 큰 소용돌이를 이루더니 서쪽을 향해 흘러갔다. 한순간의 회오리바람......
달은 갈색으로 바뀌었다. 처음에 무슨 소리를 들었을 때, 우리는 놀라서 일어섰다. 고함 소리가 무서운 비명으로 바뀌었을 때, 여섯 개 가량의 모자가 일제히 하늘 높이 날아올라갔다. 나의 모자도 마치 실로 잡아당겨지는 것처럼 날아갔다. 다행히 그것은 가장 좋은 모자는 아니었다. 쨍그랑 하고 컵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텐트에서 한 명의 어린아이가 하늘로 날려 올라갔다. 바람 속을 헤치고 기사인 에번즈가 찾아와 고함쳤다.
"앉아요! 엎드려요!"
우리는 당황하여 운동장의 잔디 위에 몸을 내던졌다. 뭔가 잡을 만한 것이 없는가 하고 손으로 더듬어 찾다가, 풀을 움켜잡았다. 이윽고 회오리바람은 지나쳐 갔다. 불어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지나가 버렸다. 달빛도 본디의 빛깔을 되찾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파커 씨와 로빈과 패트,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것으로 마지막 주도 끝난 셈인가........"하고 나는 혼잣말을 하였다.
“대피호를 만드는 일도 끝났고, 뗏목 만드는 일도 끝났다. 그리고 그 세 사람하고도 이제 영원히 헤어지게 되겠지........" 하고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무서운 하룻밤
 
일요일은 여느 때나 다름없이 조용하고 밝은 하루였다. 나는 밤이 되자, 어릴 때 읽었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꺼내어 침대 위에 펴놓고 읽기 시작했다. 이윽고 졸았다. 꾸벅꾸벅 졸고 있다 보니까, 드디어 5월 3일인 월요일 아침이 찾아왔던 것이다. 아침의 날씨는 어쩐지 이상했다. 마치 나라 안 전체가 먼지투성이인 공기에 휩싸여 있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신문은 불과 4페이지밖에 안 되었으며, 제 1면에는 세계 각국의 원수로부터 보내 온 메시지가 실려 있었다. 하루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곧 저녁때가 되 있다.
"대피호로 들어갈 준비는 되었나요?" 하고 나는 저녁상을 치우러 온 가정부인 바러 부인에게 말했다.
“되어 있습니다. 커피 병을 두 개 가지고 가지요."
바러 부인이 대답했다.
"하나면 돼요. 나는 대피호에는 들어가지 않을 작정이니까."
하고 나는 말했다. 이 결심은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몇 달 동안 생각한 끝에 그렇게 결심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꼭 막혀 있는 장소에 있기를 무서워했다. 좁고 답답한 곳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심한 폭풍우 속에 내동댕이쳐지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파커 씨도, 패트와 로빈 소년과 함께 집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사람들도 지상에 남는다니까 마음 든든할 것 아닌가. 바러 부인은 대피호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나의 말을 듣고 놀라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부인은 함께 집에 남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부인은 이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어디 있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신앙이 두터운 이 부인은 아무래도 죽을 것이라면 목사와 같은 곳에 묻히기를 원하고 있었다. 바러 부인은 대피호를 공동묘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4시에 나는 부인을 집 문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걱정할 것 없어요, 바러!"
나는 주름 투성이인 부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
바러 부인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그대로 집으로 들어가 혼자 있을 마음이 나지 않았다. 나는 마당 안 높직한 곳에 서서, 버진 공원으로 우르르 몰려가는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까, 나의 마음은 갑자기 침착성을 잃게 되었다.
우리 집의 높직한 마당에서는 나무 사이로 대피호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기사인 에번즈가 바쁜 듯이 대피호 둘레를 돌아 두 개의 문을 닫고 다녔다. 세 번째 문 앞에서는 목사와 헉스 박사가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잠시 후에 나는 손목 시계를 보았다. 오후 5시 10분 전이었다. 담요를 가지고 대피호로 달려가면, 아직 늦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갈까, 말까? 나는 망설였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만두기로 했다. '그러나 파커 씨 일행이 생각을 바꾸어 만일 대피호 안에 들어갔다면?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지상에 남은 단 한 명의 사람이 된다.' 그 두려움을 생각하니까 나는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목사와 기사 에번즈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권유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 곳에 서 있을 수 없어 집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언제까지나 무서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닥쳐올 대 이변에 대비해야만 한다. 아직 두 시간 가량 남아 있었다. 전번 회오리바람은 동쪽에서 불어 왔다. 그러면 이번 회오리바람도 동쪽에서 불어 올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서향인 일층 식당에 들어가기로 했다. 나는 벽의 액자, 사기그릇, 유리그릇 등, 깨지기 쉬운 것은 모두 밖에 내놓았다. 텅 빈 식당에서 나는 혼자 버티고 있었다.
밖에는 노란 안개가 짙게 끼어 있어 거의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그 안개가 들어오지 않도록 나는 튼튼한 갈색 종이를 꺼내어, 풀로 창문이나 문틈을 완전히 막아 버렸다. 굴뚝이란 굴뚝엔 젖은 타월을 잔뜩 밀어 넣었다. 잠시 후에 창가에 가 보았다. 이제 밖은 캄캄하여 유리창에 나의 얼굴이 비쳤다. 나는 어디 틈이 있나 없나를 살펴본 다음 소파에 앉았다.
그 뒤, 나는 조금 졸았던 모양이다. 갑자기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갑자기 짐승이 짖어 대는 듯한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더니 쌩쌩, 무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회오리바람이 몰아쳐 온 것이다.
집이, 마치 거대한 괴수가 잡고 마구 뒤흔드는 것처럼 흔들렸다. 2층이 우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캄캄한 하늘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그것은 보통 밝기와는 달랐다. 피처럼 새빨간 불꽃이 하늘을 치닫는가 했더니 그것이 삽시간에 퍼져 하늘 전체가 핏빛으로 덮였다. 핏빛과 같은 하늘은 숨차게 헐떡거리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이제 바람 같은 손쉬운 존재가 아니었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무서운 빛이 사방을 가르고 지나갔다.
이어서 무서운 돌풍-다행히 우리 집은 언덕 중턱에 있기 때문에 날아가지는 않았다. 나는 몸이 움츠러들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맹렬한 돌풍 때문에 큰 나무가 힘없이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우리 집은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언덕 밑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시꺼먼 것이 집의 지붕을 낮게 스치고 날아갔다. 자세히 보니까 밭에 서 있던 오두막이었다. 머리는 지끈지끈 아파 오고, 하늘은 새빨개서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어 소파에 몸을 내던져 버렸다.
 나는 담요를 뒤집어쓰자,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얼마 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는지 분명치 않다. 1년이란 길고 긴 시간처럼 생각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약 30분 동안이었을 것이다. 나는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틀어막고 아무 소리도 듣지 않으려고 했다. 갑자기 몸이 아래로 가라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집 전체가 가라앉고 있다. 아니, 아니, 온 세계가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무서운 회오리바람은 차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큰 회오리바람은 마침내 사라지고 뒤이어 마치 한밤중의 묘지와 같은 고요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 기분 나쁠 정도의 고요는 엄청난 일을 몰고 왔다.
유리창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깨졌다. 깨진 유리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밖으로 날아갔다. 묘한 일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많은 서류가 창문을 빠져나가 밖으로 운반되어 간 일이었다. 그것은 마치 전기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듯 끌려나갔다.
순간 나는 그 현상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지구를 감싸고 있는 대기가 한순간 끌려나간 것이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던 것은 그 탓이었다. 공기가 없으면 소리는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순간 나는 몹시 숨이 차 왔다. 방의 공기가 밖으로 나가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정신없이 서재의 문을 힘껏 열었다. 그러자 고맙게도 그 곳에는 공기가 있었다. 문이 저절로 닫혔다. 서재의 창문 유리는 두껍고 튼튼했으므로 공기가 도망갈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 곳에 남아 있던 공기 덕분에 어느 정도 기운을 되찾았다.
나는 서둘러 문 밑의 좁은 틈에 융단 끝을 밀어 넣었다. 젖은 타월로 굴뚝 구멍을 막았다. '이렇게 하면 얼마나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신경을 쓰지는 말자. 신경을 써봐야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안락 의자에 앉았다.
어느 결에 귀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뒤 나는 기절하고 말았던 모양이다.
잠시 후에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팠으므로 눈을 떴다. 눈은 튀어 나을 듯이 되어 있었고, 혀는 퉁퉁 부어 있었다. 침을 삼키지 못했다. '아, 나는 이제 죽는다. 보나마나 죽을 것이다. ' 지금 몇 시일까? 죽는 시간만이라도 확인해 두고 싶었다. 나는 손목 시계를 보려고 성냥을 그었다. 갑자기 나는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물이 흐르는 것 같은 작은 소리....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문의 손잡이를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문은 쉽게 열렸다. 공기가 옆방에도 있었다! 그 곳의 공기는 구역질이 나는 유황 냄새가 났다. 그러나 분명히 공기였다. 호흡을 할 수 있는 공기였다. 나는 기침이 나오며 한순간 구역질이 났다. 그러나 나는 되살아난 듯이 방안을 돌아다녔다.
나는 창 앞으로 가자 밖을 내다보았다. 나는 마구 부서진 마을의 잔해를 볼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의 앞에는 골짜기라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다만 평평하게 펼쳐져 있는 평지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머리가 이상해진 것은 아닐까? 아니면 허리케인으로, 집채 소련 대평원으로 날아온 것은 아닐까.'
나는 서둘러 램프를 찾아 불을 켰다. 그랬더니 대평원으로 보았던 것은 물이었다! 시꺼먼 바다가 창문 밑으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대홍수...... 바다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바닷물이 밀려오다니!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믿을 수 없는 나의 눈앞을 커다란 검은 덩어리가 획 지나갔다.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배의 잔해로 보이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
물은 조금씩 집의 바깥벽으로 차 올라왔다. 나는 안락의자로 돌아가자 멍해지고 말았다. 가끔 미친 듯이,
"이게 무슨 꼴이람! 정말 알 수 없는 일이군!"하고 혼자 중얼거릴 뿐이었다. 다음으로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사방이 환해져 있었다.
"난로가 있다! 테이블도...... 칸막이 장도........"
나는 창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나는 정신이 든 것을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새벽이 언덕 위에 찾아들고 있었다. 지금까지 본 일이 없는 조용한 새벽이었다. 골짜기는 아직 어두웠으나, 바닷물은 밀려왔을 때와 똑같이 어느 결에 빠져 버렸다.
"나는 살았다! 나는 살아 있다! 지구는 살아 남은 것이다!"
나는 식당으로 뛰어들어가자 소파 위에 몸을 내던지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새로운 생활
 
나는 그 뒤 7시간쯤 잔 모양이었다. 눈을 뜨고 보니까 한낮은 오래 전에 지난 뒤였다.
이층은 꽤 많이 파괴되어 있었다. 서향인 침실은 별로 피해가 없었으나, 동향인 손님용 침실은 엉망이 되어 있었다.
지붕이 뻐끔 뚫려 있어 천장으로 하늘이 보였다. 침대에는 부서진 유리 조각이 가득 차 있었다.
바닥에는 흙, 먼지, 잡동사니 등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죽은 토끼가 두 마리 섞여 있었다. 소련 군인이 쓰는 군용 컵이 있었고, 스웨덴의 주간지도 섞여 있었다. 태양은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으나, 밖은 마치 죽음의 세계처럼 조용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 나는 이 세상에 남은 단 한 명의 사람일까?'
나는 간밤에 본 창문 밑의 바다가 결코 환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덕 중턱에 있는 우리 집의 마당은 완전히 젖어 있었고, 사면에 전후와 배의 파편이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자 언덕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눈을 비볐다. 안경을 벗어 깨끗이 닦아 쓰고 다시 한 번 잘 바라보았다.
커다란 검은 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까 배였다. 옆으로 쓰러져 뒤집혀 있었다. 세 개의 큰 굴뚝 끝은 골짜기 맞은쪽의 언덕까지 닿아 있었다. 배 이름은 <리어왕>이었다. 대서양에서 밀어닥친 큰 파도는 영국의 남해안을 삼키고 이런 두메의 골짜기까지 밀려온 모양이다. <리어왕>호는 그 큰 파도에 마치 코르크 마개처럼 춤을 추다가 이 곳까지 밀려온 것이다.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좋아, 찾아보자!'
그렇게 결심하자 나는 마을 쪽으로 내려갔다. 대홍수의 물은 완전히 빠진 것은 아니었다. 낮은 땅에 서 있는 집은 아직 1미터나 물에 잠겨 있었다. 나는 버진 공원의 대피호에 가 보았다. 두 개의 문은 닫혀 있었으나, 세 번째 문은 열린 채로 있었다. '아, 모두들 무사히 빠져나간 모양이구나.'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 버렸을까?' 그 때 나는 갑자기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
"사람이 있다!"
골짜기 맞은쪽 언덕의 중턱에 사람의 모습이 하나 보인 것이다. 그 모습은 움직이지도 않고 소리도 지르지 않았지만, 분명히 사람이었다. 나는 정신없이 손을 흔들었다. 몇 번이고 큰 소리로 불러 보았다. 그제야 그 사람은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나는 부지런히 골짜기를 가로질러 맞은쪽 언덕으로 뛰어올랐다. '로빈이다, 로빈 소년이다 !' 나의 가슴은 마구 뛰었다. 가까이 가보니 분명히 로빈이었다. 로빈은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몸이 떨리고 얼굴이 창백했다.
"큰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로빈과 함께 그의 집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집에 다가가자 패트가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무사하셨군요."
패트는 기쁜 듯이 말했다. 파커 씨는 집의 지붕을 꿰뚫고 쓰러진 큰 너도밤나무에 깔려 있었다. 나는 너도밤나무 밑에서 죽은 파커 씨의 몸을 끄집어냈다. 이윽고 나는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그 일이 끝났을 때, 마침 해가 졌다. 우리 세 사람은 파커 씨의 몸을 무덤 속으로 운반했다. 패트는 애용하던 낡은 외투를 시체 위에 살그머니 덮어 주었다. 나는 이 슬픈 장소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심하게 부서져 있었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니? 나는 혼자니까 모든 것이 자리가 잡힐 때까지 우리 집에 와서 살도록 하면."
패트와 로빈은 기꺼이 나의 뜻을 받아들여 주었다.
 
살아남은 세 사람


이튿날 우리는 마을을 잘 살펴보려고 집을 나섰다. 어제는 모르고 있었는데 들판, 숲, 밭 모두가 갈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닷물이 운반해 온 진흙이 곳곳에 덮여 있었다.
"대피호 옆에 가 보셔요.“
로빈이 말했다. 나는 대피호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 황폐하여 엉망이 되어 버린 마을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강철제 문 속을 들여다볼 용기는 도저히 없었다. 그러나 패트와 로빈은 가 볼 작정인 것 같았다. 나도 마침내 결심했다.
"그럼 가 보자."
대피호까지는 800미터도 되지 않았지만 발걸음이 이상하게도 무거웠다. 끝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꽉 닫힌 두 개의 문 옆을 지나쳐 반쯤 열린 세 번째 문이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용기를 내어 문의 손잡이를 잡고 힘껏 잡아당겨 보았다. 쉽게 열렸다. 순간 어쩐지 등골이 오싹했다.
"성냥 있으세요?"
로빈은 나한테서 성냥을 받아들자 제일 먼저 캄캄한 계단을 내려갔다. 이윽고 성냥 불빛 속에 로빈의 모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물이 꽉 차 있어요!"
로빈이 큰 소리로 말했다.
나도 할 수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여섯 단 째에서 우리는 잉크와 같은 시꺼먼 물에 가로막혀 버렸다. 우리는 어쩔 수 없어 다시 입구로 돌아갔다.
그 날, 나는 혼자 다시 한 번 마을로 내려가 보았다. 마을에서 단 한 채인 잡화 가게가 교회 앞에 있었다. 입구의 문은 유리가 마구 깨져 있었지만 꽉 닫혀 있었다. 깨진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니까 가게 안에는 1미터 가량의 흙탕물이 괴어 있었다. 무리하게 문을 여니까 흙탕물은 일제히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윽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의 선반은 텅 비어 있었으나, 골방의 찬장을 여니까 통조림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그 속에서 필요한 것을 골라 큰 상자에 담아, 나는 우리 집으로 가지고 갔다. 조금 꺼림칙하긴 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 상자 안의 물건은 이제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두어 못 쓰게 만드느니보다는 보람있게 쓰는 편이 차라리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나는 패트와 로빈을 불 옆으로 불렀다.
"나는 지금부터 생활 설계 위원회를 열겠다.“
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가, 셋이서 계획을 짜야 한다. 우선 첫째로 해야 할 일은 먹을 것과 물을 확보하고, 살고 있는 환경을 기분 좋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깨끗한 물이 많이 있는 곳을 발견하여 우물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언제나 두 달 이상 먹을 수 있는 양식을 저장해 둬야 한다. 그래서 로빈, 너를 생선 식료품 장관에 임명한다. 내일 너희 집에서 낚시 도구와 총을 가지고 오너라. 사냥꾼이 되어, 우리를 위해 신선한 고기와 생선을 잡아 공급하는 일이 네가 할 일이다. 패트는 집안일 모두를 책임지고 한다. 식사를 비롯하여 빨래, 바느질, 청소, 정리 정돈 즉, 가정 장관인 셈이지. 그리고 난데, 나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공급하는 청과 장관이 되기로 하자. 게다가 나는 필요한 것은 무엇이나 갖추는 잡화상이기도 하지."
나는 밭 가꾸기를 매우 좋아했고, 자신도 있었다. 그 날 밤은 한두 시간 잤을 뿐, 나는 내일부터 시작할 밭일에 쓰일 연장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두 가지 사건
 
다음 날부터 우리 세 사람의 새로운 일이 각각 시작되었다. 로빈은 매일 총과 낚싯대를 메고 그 근처의 언덕이나 개울가를 돌아다녔다. 첫 주는 아무 것도 잡지 못했으나 다음 주 초, 물고기를 세 마리 낚아 가지고 왔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다음 날, 로빈은 토끼를 한 마리 잡았다. 이것은 꽤 멀리 떨어진 언덕의 숲 속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그 언덕은 운 좋게 회오리바람을 피한 듯, 거의 본디의 상태대로 있었다. 그 날부터 로빈은 다시는 빈손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게 되었다. 내가 뿌린 씨도 순조롭게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패트도 집안 일을 재빨리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로빈과 나는, 그 날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갖는 저녁 식사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이 나올까?'하고 패트가 만들어 주는 요리를 이것저것 상상하는 것도 즐거웠다. 이리하여 그 대 이변이 일어난 지 27일째의 저녁때가 되었다. 우리는 갑자기 은은한 폭음 소리를 들었다.
"비행기다!"
폭음은 점점 커져 마침내 작은 기체가 언덕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언덕 위로 뛰어올라가 모자와 손수건을 힘껏 흔들었다. 비행기는 빙빙 두 번쯤 우리 머리 위를 선회하고 가까운 평지에 착륙했다. 우리가 비행기를 향해 달려갔을 때의 불타오르는 듯한 가슴속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짐작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가 그 곳에 도착했을 때, 키가 크고 여윈 젊은이가 아주 피곤한 듯한 모습으로 비행기 옆에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우리의 기쁨에 넘친 환영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비행사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비들 마을입니다! "
우리는 목소리를 맞추어 말했다.
"비들 마을이라........"
비행사는 지도를 펴놓고 조사하고 있더니, 마침내 고개를 들고 골짜기를 둘러보았다.
"알았습니다. 이 곳에는 몇 사람이 있습니까? "
"우리 셋 뿐입니다.“ 하고 나는 묻는 말에 대답했다. 비행사는 호주머니에서 연필을 꺼내더니 그 사실을 노트에 적었다. 그 일이 끝나자 고맙다는 말을 하기가 바쁘게 비행사는 홱 돌아서서 비행기 위로 기어올라갔다.
"당신은 여기 더 머무르실 게 아닙니까? "
나는 미친 듯이 소리쳤다.
"더 머물러요? 왜요?"
나는 비행사의 거만한 태도에 화가 났으나, 꾹 참고 말했다.
"우리는 당신에게 물어 볼 말이 태산 같습니다."
"무엇을 알고 싶은 겁니까?"
나는 알고 싶은 일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무엇부터 물어 봐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달은 어떻게 된 겁니까?"
"모르고 있습니까?"
하고 비행사는 되물었다.
"달은 대서양 한가운데로 떨어졌습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비행사는 손을 들더니 다시 비행기를 타려고 했다.
"잠깐만 기다리셔요. 10분간만 이야기해 주셔요.“
하고 패트가 소리쳤다.
"나는 사실 비행사가 아닙니다."
하고 그는 말하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나는 정부에서 선발한 과학자로, 비콘스필드의 큰 대피호에 들어갔었습니다. 그것은 정부가 뛰어난 두뇌를 되도록 많이 구하기 위해 준비한 대피호였습니다. 비콘스필드는 높은 곳에 있는 땅이어서 홍수의 우려는 없었습니다. 무사히 그 날 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8시에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식사를 하였습니다. 달은 북동쪽에서 유럽의 상공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마 이 골짜기 위 근처에서는 500 킬로미터 이하였을 것입니다. 먼지와 티끌의 거대한 구름을 뒤에 달고 7시 반을 2분쯤 지났을 무렵, 대서양에 추락한 것입니다. 우리 과학자가 계산한 것보다 17분쯤 늦었습니다."
"달은 지금 대서양에 가라앉아 있는 겁니까?"
로빈이 물었다.
"물론 달은 추락했을 때의 충격으로 납작해져 버렸습니다. 달은 안이 텅 비어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납작하게 찌부러진 셈입니다. 우리는 이제 영국에서 미국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나는 달이 우주 쪽으로 날아가 버린 줄 알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어마어마한 회오리바람은 온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각지에 대지진이나 대홍수를 일으켰습니다. 유럽에서는 대서양의 물이 250미터의 벽이 되어 영국을 비롯한 서 유럽을 덮친 것입니다."
"런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로빈이 말했다.
"런던은 아직 물에 잠겨 있습니다. 6미터의 진흙에 덮여 있습니다. 약간의 사람만 도망칠 수 있었고, 나머지 약 3백만 명의 사람들은 다 죽어 버렸습니다. 정부는 옥스퍼드로 옮겨가 바쁘게 활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로나 철도가 복구되어 교통 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하기까지는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은 자력으로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비행사는 엔진을 걸기 전에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는,
"저 밑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는 옆으로 쓰러져 있는 기선 <리어왕>호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간단히 설명한 뒤,
"정부에 갈 일이 있거든, 저 배를 곧 어떻게 처리해 달라더라는 말을 전해 주시겠습니까?"
하고 부탁했다.
"내가 한 가지 좋은 생각을 일러 드릴까요. 저대로 놓아두고 호텔로 쓰면 좋을 것 같군요."
"하지만 저것은 옆으로 쓰러져 있는 걸요."
로빈이 말했다.
"좋지 않아요. <호텔 사이드웨이 >라는 이름을 붙이고 천장에 문을 달고 바닥에 창문을 만드는 겁니다. 평이 좋을 겁니다. 어떻습니까?"
비행사는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했다.
"왜 당신네들 세 사람은 주변의 것을 정리해 가지고 말카스터 시로 가지 않습니까? 그 도시에는 백 명 가량의 사람이 살아 있습니다."
"그냥 이대로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은 충분히 해 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요! 그렇다면 안녕히 계십시오."
비행기는 저녁 무렵의 하늘을, 소리도 드높이 날아가 버렸다.
 
달 여행
 
여름으로 접어들자, 살아 남은 사람들은 도시를 복구하기 위해 일어섰다. 9월 끝 무렵, 부엌에서 일하고 있던 패트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어머, 전기 난로가 켜졌어요."
전기다. 전기가 온 것이다! 그 대 이변이 있었던 날부터 4개월과 15일, 우리는 이제야 다시 전기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그 날, 한 사람의 젊은 사나이가 자전거를 타고 오더니, 종이 한 장을 주고 갔다. 인쇄는 엉터리였으나, 분명히 그것은 우리가 그 대 이변 이후로 처음 받은 신문이었다. '정부 신문 제 1호'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 한 장의 신문을 반나절 동안이나 몇 번이고 되풀이 해 읽었다.
옥스퍼드에 있는 정부에 대한 일, 지방의 주 의회의 일, 시․읍․마을․의회의 일 등이 씌어 있었다. 지금까지의 돈은 쓰지 못하게 되며, 당분간 쿠폰 권을 쓰게 되었다고 씌어 있었다. 흰 쿠폰 권은 감자 4개나 달걀 1개, 파란 쿠폰 권은 달걀 4개나 토끼 한 마리. 빨간 쿠폰 권은 토끼 네 마리나 닭 한 마리...... 이상과 같았다.
10월 중순이 되자 비들 마을 근처를 달리고 있는 철도가 처음으로 개통되었다. 라디오는 12월 1일부터 다시 방송하기로 되었다. 우리 집의 양식은 충분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나는 토끼, 물고기, 채소 등을 버터나 우유로 바꾸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말카스터 시로 갔다. 그 곳에는 약 백 명 가량의 사람들이 살아 남아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말카스터 시에 갔을 때, 한 나이 많은 여자가 장작을 끌어안고 내 앞을 지나갔다. 그 여자가 장작을 떨어뜨렸으므로, 나는 그것을 집어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 여자가 소리쳤다.
"어머, 홉킨스 씨!"
그 여자는 마치 유령이라도 보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비들 마을에 살던 채플린의 부인이었다.
"당신은 어떻게 빠져 나오셨지요?"
"어떻게 라니요...... 어디서 말인가요?"
"대피호에서 말입니다."
"나는 그 곳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집에 남아있었어요."
채플린의 부인은 한 마디 두 마디 그 때의 무서웠던 광경을 이야기해 주었다.
"처음에는 참 좋았어요. 음악을 듣기도 하고, 트럼프를 하기도 하고........"
하고 부인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8시에 모두 식사를 했다. 9시까지 대피호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무 것도 몰랐고, 아무 것도 느끼지 못 했었다. 9시가 되었으므로 대피호 사람들은 잘 준비를 시작했다. 그 때 기우뚱하고 크게 흔들렸다. 그 대지진이 있은 뒤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물이다! 문에서 물이 들어오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일어섰다. 아까 있었던 대지진으로 언덕에 큰 틈이 생겨, 입구가 있는 언저리의 지면이 십여 센티미터나 내려앉은 것이다. 그로 인해 문과 입구 사이에 틈이 생겨, 그 틈으로 흙탕물이 들어와 계단으로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에번즈 기사의 지휘 아래, 사람들은 죽을힘을 다해 일하였다. 부서진 양쪽 입구의 틈에 모두들 가지고 온 담요를 틀어박아 물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다. 그러나 물의 힘이 세어 담요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대피호에 괸 물은 얼마 안가 발이 있는 데까지 차 올라 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릎에서 허리, 가슴까지 차 올라오고 말았다. 한 곳만 안전한 입구가 있었다. 그 입구는 대피호 위쪽에 나 있었는데, 공기가 그 장소에 차 있어 물은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에번즈는 40명 남짓한 여자와 아이들을 그 계단이 있는 곳으로 피난시켰다. 남자로는 단 한 사람, 남편인 채플린만 여자들과 함께 계단 위로 보내졌다. 채플린은 그 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은 삽시간에 대피호에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목이 있는 곳까지 차 올라왔다. 계단 위에서는 여자와 아이들이 꽥꽥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그 사람들의 발치에서 무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흙탕물이 모든 사람들을 삼켜 버린 것이다!
약 30분 가량 있으니까 계단 위의 사람들도 숨이 차왔다. 공기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고 말 것이다.'하고 채플린은 생각했다. '질식해서 죽느냐, 아니면 문을 열고 물에 빠져 죽느냐, 둘 중 한 가지다!'
채플린은 생각한 나머지, 문을 열기로 했다. 눈을 뻔히 뜨고, 여자와 아이들이 목을 쥐어뜯으며 죽어 가는 것은 차마 볼 수 없었다. 채플린은 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검푸른 하늘이 모두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대홍수는 언덕의 기슭 쪽으로 빠져나갔다. 살아 남은 약간의 사람들은 그대로 대피호에서 기어 나와, 진흙 투성이의 땅바닥에 뒹굴었다. 움직일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었다.
채플린은 한 시간쯤 지나자 일어섰다. 가까스로 목숨만 건진 사람들을 엉망으로 변해 버린 마을에서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 위해.
나는 채플린의 부인을 만났다는 말을 패트와 로빈에게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대피호 사람들의 생각을 이제야 겨우 잊어 가고 있었다. 이제 와서 새삼, 그 곳은 큰 무덤이 되고 말았다는 소식을 알려 무서워하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럭저럭하는 사이에 겨울이 찾아오고, 해가 바뀌어 다시 여름이 되었다. 그 해 여름, 영국에서는 대서양에 추락한 달을 구경하러 가는 사람이 늘어났다. 달의 동쪽 끝이 영국의 남서쪽 변두리에 있는 펜잰스 지방과 붙어 있었다. 지체없이 곧 달 구경의 관광 선전이 시작되었다.
로빈이 이 여행에 가고 싶어했으므로, 우리는 가기로 했다. 힘든 여행이었다. 기차는 느린데다 툭하면 섰다. 마구 부서진 펜잰스 지방에서는 텐트 안에서 밤을 지냈다. 그 뒤 낡은 자동차에 몸을 싣고 오랫동안 갔다. 가까스로 해변에 도착하니까 안내원이 일어서서 말했다.
"여러분,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즉 달입니다."
모두들 어이가 없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회색 돌멩이와 먼지투성이의 지면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기 위해 먼 길을 온 건가."
나이 먹은 한 신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안된 일이지만, 손님."
하고 안내원은 말했다.
"그래도 역시 이 곳은 달의 땅이니까요."
우리는 안내원을 따라 큰 목조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오두막의 벽에는 큰 글씨로, '달 위에 세워진 최초의 집'이라고 씌어 있었다. 우리는 기념 엽서와 작은 달 조각을 샀다. 그 조각 위에는 우리가 그 때까지 알고 있던 동그란 달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 옆에는 '나는 무엇이었을까요?'라고 씌어 있었다. 그리고 뒤를 보니까, 회색 돌 위에 '나는 무엇일까요?' 라고 씌어 있었다.
 
재거 소령
 
여름이 끝날 무렵, 패트는 무릎을 다쳐 며칠 동안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나는 말카스터 시에서 클랜리라는 의사를 불렀다. 대수로운 병이 아니었기 때문에 의사는 다음부터 아들 피터를 보내 주겠다고 했다. 피터는 그 대 이변이 있었을 무렵에는 의과 대학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아버지를 도와 의사의 일을 훌륭하게 하고 있었다. 패트가 일어날 수 있게 되자, 젊은 의사 피터는,
"밖을 걷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친구 한 사람을 데리고 오지요."
그렇게 말하더니, 일요일이 되자 존이라는 귀여운 여동생을 데려다 주었다. 나는 선물로 큰 물고기 세 마리를 존에게 주었다. 그 보답으로 클랜리 선생은 우리 세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주었다.
클랜리 선생의 집 응접실에서 우리는 재거 소령이라는 장교를 만났다. 재거 소령은 햄프셔 지방의 국회의원이었다. 재거 소령은 입을 일그러뜨리고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령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커피를 마시며, 나는 오면서 느꼈던 일을 모두에게 이야기했다.
"재해 덕분에 사람들의 이기심은 사라지고 모두 열심히 협력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재거 소령이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당신은 축복 받은 사람이오, 홉킨스씨. 재해가 사람의 본성을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재거 소령은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말을 이었다.
"6개월 전, 국제 회의가 달을 조사하기 위해 유럽 여러 나라에서 소집한 과학자들을 달에 보낸 일이 있습니다. 그 보고가 일요일에 발표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의 그 보고를 국제 회의에서 3개월에 걸쳐 상세히 조사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뒤 무서운 분쟁이 생기지 않나 하고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왜 다투죠?"
소령은 그렇게 묻는 나를 소름이 끼치는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더니,
"당신은 축복 받은 사람이오, 홉킨스 씨."
하고 되풀이 말하고는,
"당신은 필요한 것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지금 상태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달이 메마른 바위투성이의 덩어리라고 말해 온 달의 전문가들, 정말 한심합니다. 조사단의 보고에 의하면 달에는 석유, 금, 라듐, 우라늄, 석탄 등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게다가 미네랄도 많이 묻혀 있답니다. 그런 자원은 이미 발견되어, 테스트도 다 끝났답니다."
"멋진 이야기군요. 기뻐할 소식이지 뭡니까?"
클랜리 선생이 소리쳤다.
"지구상의 미네랄은 머지 않아 바닥이 나 버릴 것은 뻔하니까요."
"맞습니다."
재거 소령은 대답했다
"석탄과 석유는 백 년도 되기 전에 동나고 맙니다. 그런데 바야흐로 달은 우리에게 몇백 년 몫의 여러 가지 자원을 안겨 준 것입니다."
"그러면 대 이변은 지구에 보물을 안겨 준 셈이군요."
하고 나는 놀라서 소리쳤다. 재거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홉킨스씨는 지금 말한 것 같은 달의 자원에 대하여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 나라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
"그거야...... 달의 자원에 대해서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협정을 맺을 것 아닙니까.“
하고 나는 말했다. 소령은 대답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과학자들의 보고를 받자, 그 순간 정세가 바뀐 겁니다. 달은 하찮은 잡동사니가 아니라, 귀중한 자원을 많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 졌으니까요. 석유는 모두 달의 북쪽에 있습니다. 유럽 여러 나라의 절반은 이 석유를 목숨을 내걸고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석유가 나오는 평원을 원하고 있고, 프랑스와 도이칠란트는 우라늄에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영국은 달의 동쪽 반을 지나 지브롤터 해협에 이르기까지의 달의 통행권과 그 연안의 부분을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그러했듯이, 세계의 해양에서 영국의 살길을 찾아 왔으니까요. 그러나 달의 자원은 모든 나라의 소망을 채울 정도로 많지는 않습니다."
소령은 숨을 쉬기 위해 잠깐 말을 끊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당신네들은 그런 분쟁에 대하여, 국가간의 협의를 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본성이 바뀌지 않는 한 협정은 안 됩니다. 어느 나라고 양보하려는 나라는 없으니까요. 영국만 해도 조금 전에 말했던 통행권에 대하여 계획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 때 문을 노크하고 하인이 들어왔다. 하인은 소령에게 전보를 건네주었다. 전보를 읽고 있는 소령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거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정부에서 오라는 전보입니다. 중요 회의 때문에 오늘 밤, 옥스퍼드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일어서서 소령을 문이 있는 곳까지 배웅했다. 저녁 식사 파티도 이를 계기로 끝을 맺었다. 모두가 혼자서 조용히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재거 소령의 말은 진지한 것이었을까요?"
나는 클랜리 의사와 잠깐 말을 주고받았다.
"진지한 말일 겁니다."
하고 의사는 대답했다.
"듣는 바에 의하던 재거 소령은 국무 총리의 반대파 라는군요. 국무 총리는 달 전체를 유럽 여러 나라가 함께 국제 관리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재거 소령은 그 일에 절대 반대입니다."

"만일 재거 소령이 국무 총리가 된다면 일이 어떻게 될까요?"
"소령은 달의 자원을 관리하여 그것을 각국에 공평하게 할당하는 것이 영국이 할 일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군요.“
"재거 소령은 제정신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럽 전체가 제정신이 아닌 미치광이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한 숨을 크게 쉴 뿐이었다. '머지 않아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집에 돌아가서도 그 일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식사 때, 조용하고 침착해 보이는 패트와 로빈을 보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간밤에는 재거 소령이 어떻게 됐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두 사람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말했다.
"하느님이 주신 선물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다니, 누가 그런 생각을 했겠니?"
"물론, 그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로빈이 말했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힘든 일이거든요. 나는 밤새도록 생각했어요."
"나도 밤새도록 자지 못했다."
나는 일부러 쾌활하게 말하고,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로빈은 내가 갑자기 이야기를 바꾼 것 대해 기분 나쁘게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요, 아저씨. 달에 대한 것은 정치가들에게 맡기기로 해요. 우리는 밭일만 열심히 하면 되니까."
그리고 로빈과 나는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일했다.
 
다시 혼란이
 
가을도 지나고 으스스 추운 4월의 어느 날 저녁때였다. 로빈이 아직 골짜기에 쓰러져 있는 <리어왕> 호가 있는 곳에 가 보자고 했다.
"가기 전에 잠깐 뉴스라도 듣고 갈까요?"
로빈은 라디오 스위치를 넣었다.
"여기는 영국 국립 방송국입니다. 지금부터 수상의 중대 발표가 있겠습니다."
나는 순간 물고 있던 파이프를 떨어뜨릴 뻔했다.
"아저씨, 왜 그렇게 놀라시지요?"
패트가 이상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모르겠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수상 존 로울링의 목소리는 가느다란 것이 아주 지쳐있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에 의해서, 오늘날 우리 영국이 처한 중대한 위기를 이해 받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 달을 국제 관리하에 두려는 우리 영국 정부의 제안은 국제 회의에 의해 부결되었습니다. 국제 회의는 또 모든 나라가 자유로이 달을 통행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국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나는 수상의 연설을 마지막까지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재거 소령은 옳은 말을 한 것이다. 인간성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욕심에 차 있고 제멋 대로이고........'
나는 충격이 너무 커 의자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두 달이 지난 6월의 어느 날 밤, 이번에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재거 소령이어요! 재거 소령이어요!"
그것을 알려 준 것은 패트였다. 패트는 알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라디오로 들을 수 있다는 기대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로빈은 내 뒤를 따라 방으로 뛰어들어오더니, 침착성을 잃고 방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은 단 하나, 유럽의 지도자들의 신뢰와 존경을 우리 대영 제국에 모으는 일입니다."
하고 재거 소령이 소리쳤다.
"우리 대영 제국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유럽에 평화와 달의 재산의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지기까지, 지도적인 역할을 해 나가야 합니다. 달을 둘러싼 분쟁 속에서 대영 제국이 유럽 여러 나라들을 이끌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승리를 쟁취할 때까지 나는 하느님의 보살핌 아래 여러분의 대변자로서 노력할 작정입니다.“
존 로울링이 이끄는 정부는 쓰러진 것이다, 그 정부는 나라의 재건을 위해 온 힘을 다한, 조용하고 양식 있는 정부였다. 그런데 소수파의 반대파 그룹이 권력을 빼앗은 것이다. 재거 소령은 그 그룹의 지도자였다.
"나는 여러분을 신뢰합니다. 우리들의 올바른 길을 밀고 나가기 위해 주저하는 자도, 겁쟁이도 없다고 믿습니다. 나는 앞으로도 매일 여러분에게 호소할 것입니다. 평화의 이름 아래, 대영 제국의 이름 아래........"
그 목소리는 나에게, '미스터 홉킨스! 너는 어떠냐? 어떠냐 말이다!'하고 다그쳐 묻고 있는 듯한 격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나는 머리를 감싸안고 나의 방으로 도망쳐 갔다.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을 지낸 이튿날 아침 식사가 끝난 뒤, 나는 패트와 로빈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오늘 아침 신문을 읽었겠지. 그리고 재거 소령의 연설도 들었으니까, 우리가 할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나는 두 아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 비들 마을의 골짜기에 머무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나라가 필요로 하는 식량을 많이 만들어 내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농민이 총을 잡기 위해 밭을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군인들은 모두 굶어죽을 것이고, 나라 안 사람들도 올 겨울을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생하게 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약속을 해 줘야겠다. 우리는 식량을 만드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기로 하자고."
그렇게 말하며 나는 로빈의 대답을 기다렸다. 로빈은 이제 나의 생각을 이해할 만한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로빈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깐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을 뿐이었다.
"9시여요, 아저씨. 말카스터 시에 물자를 받으러 가야 해요."
나는 생각을 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로빈과 함께 말카스터 시로 향했다. 말카스터 시의 사람들은 완전히 실망에 차있었다.
겨우 올라가기 시작하던 건물의 공사가 모두 정지 명령을 받은 것이다. 건물의 재료는 군용으로서 정부에 압수 당한 셈이 된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데 온 힘을 다하던 사람들은 기운을 잃고 멍해져 버렸다.
우리는 오후의 라디오 뉴스 시간보다 훨씬 빨리 돌아왔다. 오늘도 수상인 재거 소령이 연설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1만의 군대가 달로 보내졌다.'라고 말했다. '머지 않아 2만 명이 소집될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이윽고 군대에 들어갈 사람들은 올더쇼트에 훈련소에 모이기로 되었다. 그로부터 이틀쯤 지나자 달의 북동쪽 끝에 접한 노르망디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여름 동안의 뉴스는, '빛나는 대전투니, 놀라운 진출'이니 하고 화려하게 보도되었다. 달을 남하한 영국군은 지중해까지 가 지브롤터에서 그 곳을 지키는 영국 군대와 합류했다. '바다를 건넌 영국!' '평화는 눈앞에!'라고 라디오는 계속 소리쳤다.
"우리의 목적은 거의 달성되었다!"
라고 재거 수상은 외쳤다.
"달의 통로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그 곳에 피와 철의 벽을 세우게 될 것이다! 달을 지키는 자로서, 우리는 온 세계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할당할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겨울 동안 여러 가지 뉴스가 새로 결성된 '유럽 연합군'의 라디오를 통하여 우리의 귀에 전해졌다. 영국과 맞서 싸우기 위해 유럽의 나라들이 연합한 것이다. 어느 날 아침, 한 대의 비행기가 영국의 고초에 많은 전단을 뿌렸다. 말카스터 시에도 그 중 한 장이 떨어졌다. 그것은 유럽 연합군의 선전 전단이었다. 유럽 연합군의 목적은 '재거 정부를 쓰러뜨리고, 우리 영국 국민을 실성한 지도자 재거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이 그 전단에 씌어 있었다.
그로부터 2, 3주일이 지난 뒤, 네덜란드의 라디오는 '달에 있는 영국군은 둘로 나뉘어, 남부군은 식량 부족으로 항복하기를 원하고, 북부 군은 본국으로 후퇴하고 있다.'라고 영어로 방송했다. 나는 영국 전체가 운명의 손에 크게 뒤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밭일에 열중함으로써 비참한 마음을 잊으려고 애썼다.
우리는 거두어들인 작물을 아주 조금만 남기고, 거의 대부분을 말카스터 시로 운반했다. 그런데 그 작물은 굶주려 창백해져 있는 사람들의 눈앞을 지나쳐, 군용 자동차에 실려 가 버렸다.
그 해 겨울부터 굶어죽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비들 마을에서도 어둡고 조용한 밤에는 멀리서 싸우고 있는 대포 소리가 들려 올 때가 가끔 있었다.
크리스마스 무렵까지는 싸움이 계속 커지기만 했다. 유럽 연합군이 달의 재보에 다가갔을 때, 분열이 시작된 것이다. 이듬해 7월이 되자, 전쟁은 유럽 여러 곳까지 번져 갔다.
가을이 다시 찾아왔다. 로빈이 내가 있는 곳에 찾아와 얼굴을 외면하듯이 하고 말했다.
"아저씨, 나는 가야겠어요."
"가다니, 어디로?"
나의 마음은 납덩어리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마침내 그 날이 왔구나!'
"지난 달에 편지를 냈어요! 군대에 말입니다. 그런데 어제 오후, 그 답장이 왔어요."
나는 건네 준 얇은 종이 쪽지를 잽싸게 훑어보았다.
'로빈 파커를 육군 소위에 임명한다. 제14연대.'
"로빈!"
나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자 로빈이 손으로 말문을 막았다.
"나는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저씨는 우리보고 여기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작년의 일입니다. 나는 이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언제나 자기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어야 합니다. 만일 큰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나에게 이 곳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무서운 조국의 위기를 알고도 밭일만 하고 있으라고........"
그렇게 말하더니 로빈은 방에서 나가 비렸다. 패트가 찾아오더니,
"동생은 정말로 느낀 그대로를 말하고 있는 거여요.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는 거여요."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록 아무리 어리석은 일이라도, 또 우리를 전쟁에 끌어들인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건, 이 곳은 틀림없는 영국이고, 우리는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패트는 말끄러미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동생의 일을 화내고 계시나요?"
"아니."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튿날 밤, 로빈은 아직 복구되지 않은 비들 역을 떠나 런던으로 갔다.
"잘 가라, 로빈!"
플랫폼에 서서 나는 외쳤다.
"편지를 보내 다오!"
"로빈, 이것 샌드위치야!"
패트는 기차 창문으로 작은 꾸러미를 로빈에게 주며 말했다.
"하마터면 전해 주는 것을 잊을 뻔했어요."
이리하여 로빈은 가 버린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기 전날 밤, 이번에는 패트가 나에게 잘 있으라는 인사를 하였다. 단짝인 존 클랜리 양과 함께 간호원으로서 유럽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이번에는 로빈 때처럼 역에까지 따라나가지 않았다. 가까운 언덕이 있는 곳까지 가서 패트의 모습이 말카스터 시 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 나서 터덜터덜 혼자서 집으로 돌아왔다.
 
죽음의 도시 런던에서
 
나의 수기는 이것으로 끝난다. 패트와 로빈이 가 버렸을 때, 그 아이들은 나의 혼까지 가져가 버린 것이다. 빈 껍데기만을 남겨 놓은 것이다.
그로부터 2년 가까이, 나는 혼자 비들 마을의 골짜기에서 살고 있었다. 패트한테서는 두 번, 로빈한테서는 한 번 편지가 왔다.
패트는 앤트워프의 육군 본부에서 일한다고 했다. '우리는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하고 패트는 편지에 써서 보냈다. '시간이 굉장히 짧습니다. 어디하고 어디가 싸우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군대는 지금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달에서 떠나........' 로빈은 오스트리아의 어딘가 에서 싸우고 있다고 했다. '총을 멘 사나이들이 윗도리도 입지 않고 어마어마하게 떼를 지어 걸어가고 있습니다. 군대는 마구 섞인 혼성군으로 무기는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나는 싸움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돌아가게 될 날을........‘
그러나 패트와 로빈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영국의 도시나 마을은 다시 대 이변이 일어난 뒤처럼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번에는 전처럼 일어서려는 의욕도 없고, 힘도 없었다.
전기는 출력이 완전히 떨어져, 라디오도 들리지 않았다. 정부의 힘은 상실되고 모든 보도 기관은 일손을 놓았다. 군용 자동차만이 날마다 출동하여 젊은이들을 모아 갔다. 나는
 문득 런던에 사는 헨리 아저씨와 로즈 아주머니 생각이 났다. 그 사람들은 그 때도 노인이었으니까, 틀림없이 그 대 이변에서도 살아 남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런던이라면 살아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꽤 많이 있을 테니까 한번 가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봄 동안 여행 준비를 하여, 나는 6월로 접어들자 비들 마을을 떠났다.
집안을 깨끗이 치우고, 패트와 로빈이 언제 돌아와도 되도록 편지를 써 두었다 그러나 먼 여행 끝에 가까스로 다다른 런던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비참했다. 템즈 강을 건너 강의 북쪽 기슭을 걷고 있자니까, 바다는 해머 스미스 지역을 향해 진흙을 밀어 올려 큰 진흙 산을 만들어 놓았다. 진흙과 먼지 사이로 보이는 것은 교회의 뾰족탑과 집들의 굴뚝뿐이었다.
사람들은 다 해진 양복을 입고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아저씨의 집을 찾기는 하였으나, 헨리 아저씨와 로즈 아주머니의 모습은 아무 데도 없었다. 아저씨네 집의 벽돌 벽과 낮은 담과 철문은 잡초와 쓰레기 속에 파묻혀 있었다. 그리고 식당 테이블에는 아침 식사 때의 접시가 늘어 놓인 채, 그 위에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아, 이 사람들은 그 날 대피호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저녁때 발코니에서 보니까 한 노인이 황토의 마당에서 세 마리의 소를 끌어내어 부서진 은행 안으로 쫓아 넣고 있었다.
런던에는 500명 가량의 사람이 살아 남아서 살고 있는 듯 했으나, 아무도 친구를 만들려고는 하지 않았다. 모두 자기가 먹을 식품을 찾기에 정신이 없었다. 남의 일을 걱정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캄덴 도로에서, 진흙과 쓰레기 밑에 묻혀 있는 여러 채의 가게를 발견했다. 그것을 발견한 것은 내가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그 곳에서 통조림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6개월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부서진 아저씨의 집에서 살기로 했다. 헨싱턴 공원이 연못에서 매일 저녁 물을 한 양동이씩 길어 오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그 때, 나는 옆에 있는 나무 밑에 앉아 잠깐 쉬곤 했다. 이 수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것은 그 나무 밑에서였다. 수기를 완결시켜야겠다는 결심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1년 이상이나 유지해 준 것이다. 날마다 굶주림에 시달리며, 나는 죽음과 같은 고요 속에서, 책상 앞에 앉아 부지런히 이 수기를 써 온 것이다.
벌써 11월이 된 것 같다. 저녁 해가 지는 모습으로 보니 그렇게 느껴졌다. 작은 쇠붙이 상자는 뚜껑이 열린 채, 이 수기의 마지막 한 페이지가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밖에서는 굶주린 들개가 짖어 대고 있다. 나는 수기가 완성되면 그 쇠붙이 상자에 넣어, 구덩이를 파고 묻어 둘 작정이다. 언젠가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발견되도록...... 그리고, 이 암흑 시대가 언젠가는 다시 밝고 행복한 나날로 바뀌도록 빌기로 하자.
 
 
 
해저 순찰대
 
아서 클라크 지음
강민 옮김 / 이협 그림
 
 
적을 발견하다 !
 
"이 곳은 제 105 해저 순찰정. 현재 605 수역을 제 225 코스에 따라 시속 30노트로 순찰 중임. 수심 40미터. 지금까지는 아무 이상 없음!"
1등 순찰대원 던 벌리는 초음파 라디오의 마이크를 잡고 모선에 보고했다.
"알았다."
모선에서 곧 회답이 왔다.
던 벌리는 마이크를 본래 자리에 놓고, 다시 눈앞에 있는 수중 레이더의 파란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찾고 있는 것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는 헤드라이트의 스위치를 넣고 계속해서 수중 텔레비전을 켜 보았다. 강력한 불빛이 환히 앞쪽 물 속을 비췄다. 그러자, 검푸른 빛을 띠고 있던 바다 속이 갑자기 선명한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세계로 싹 바뀌었다. 그것은 몇 번을 보아도 싫증이 안 나는, 가슴이 후련해지는 훌륭한 광경이었다. “아, 정말 신비한 세계구나, 이 바다 속의 세계는!" 던은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혼자서 오랜 동안 바다 속을 순찰하고 있는 순찰 대원들에겐 모르는 사이에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붙는다.
그는 그 아름다운 세계 속을 자유자재로 헤엄쳐 다니는 수없이 많은 물고기 떼를 바라보았다. 큰 물고기, 작은 물고기, 가느다란 물고기, 뚱뚱한 물고기, 긴 미사일 같은 날씬한 모습의 은빛 물고기 등이 수백 수천 마리씩 떼를 지어 헤엄쳐 가고 있다.
그 물고기 떼 밑으로, 길이 1미터나 되는 묵직하고 몸집이 큰 물고기가 천천히 헤엄쳐 가고 있다. 이상한 것도 있었다. 방석이 꿈틀거리며 헤엄치고 있는 듯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 빨강, 까망, 초록빛, 핑크 빛 등 갖가지 빛깔의 줄무늬가 있는 이상한 새처럼 생긴 색다른 물고기도 있다. 정말이지, 이렇게 많은 색다른 종류가 어떻게 태어났나 싶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던 벌리는 텔레비전 카메라를 천천히 돌려 다시 깊은 곳에 있는 해저의 골짜기를 보았다. 그 곳에는 굉장히 긴, 마치 큰 나무와 같은 다시마가 무성하게 우거져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 괴물 다시마의 정글을 헤치듯 하며, 무시무시하게 큰 괴물이 떠올랐다. 마치 세모 날개의 초음속 제트기처럼 생겼다. 그러나 그 날개 전체를 너울너울 움직이며 올라가는 모습은 싱글싱글 웃고 있는 악마의 얼굴과 흡사했다. 바다의 난폭자로 불리는 노랑가오리였다. 물고기들은 곧 줄에서 벗어나, 앞을 다투어 도망쳤다. 그러나 던은 곧 그 노랑가오리로부터 텔레비전 카메라를 돌리고 말았다. 오늘은 그런 것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찾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던은 다시 수중 레이더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이번에는 스크린에 큰 초록빛 줄무늬가 나타났다. 그것은, 수중 레이더의 초음파가 뭔가 큰 물고기 떼에 닿아 되돌아오는 반사의 표지였다. 던은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았다. 고래였다. 수십 마리의 고래가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돈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 고래 떼의 바로 아래쪽에서, 아주 작지만 속력이 빠른 또 하나의 반사가 계속 다가오는 것이 보인 것이다.
"역시 있었군! 틀림없다. 백상어다!"
던은 또 혼잣말을 하더니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백상어란 놈. 그것은 상어 중에서도 왕-가장 무서운 살인 상어인 것이다! 이 해저 목장 안에까지 들어와 고래를 노리는 무서운 바다의 난폭자. 던을 비롯한 대원들의, 즉 해저 순찰대의 가장 무서운 적인 것이다.
던은 재빨리 자동 조종 장치의 스위치를 넣었다. 순찰정이 방향을 홱 바꾸었다. 삽시간에 스피드가 빨라졌다. 해저 순찰정에는 전자 두뇌가 달려 있다. 그래서 사람이 손으로 조종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목표물을 향해 최대 속력으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던은 다시 초음파 라디오의 스위치를 넣고 마이크를 잡더니 모선을 불렀다.
"제 105 해저 순찰정에서 모선 로우콜 호로! 적을 발견, 지금 추적 중!"
 
해저의 싸움
 
순찰정은 50노트의 최고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던은 수중에 비치는 적, 백상어의 모습과, 전자두뇌에서 차례로 나오는 숫자를 재빨리 비교해 보았다. '이거 안 되겠는걸........ 이대로 가면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겠구나.'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저 쪽이 더 빨리 고래 떼를 덮치겠다. 그렇게 되면 이 쪽에서 구해 내기 전에 대여섯 마리의 고래가 상어의 밥이 되고 만다.'
"좋아."
던은 곧 결심하자, 이런 때면 언제나 쓰는 수단을 썼다. 수중 사이렌의 버튼을 누른 것이다.
"왱-왜앵"
굉장히 큰, 신경을 쥐어뜯는 듯한 수중 사이렌 소리가 바다 속으로 퍼져 나갔다.
물의 세계에 사는 생물들은 모두 놀라울 정도로 소리에 민감하다. 물 속에서는 사람은 거의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물고기들은 수십 미터, 때로는 수 킬로미터 앞의 소리도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
곧 백상어 떼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이렌 소리를 듣고 당황한 모양이다.
'됐다!' 던은 레이더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그러나 사이렌 소리에 고래들도 역시 놀란 모양이었다. 그 때까지 규칙적으로 떼를 이루어 단정하게 헤엄치고 있던 고래들이 곧 줄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홱 돌아서서 상어 떼 속으로 들어가는 얼뜨기도 있었다.
던의 해저 순찰정은 고물에서 제트를 뿜어내며 허둥거리고
 있는 상어와 고래 떼의 한복판을 향해 달려갔다. 전자 두뇌에는 미리부터 백상어의 크기와 모양, 헤엄치는 방법 등의 특징을 잘 기억시켜 놓고 있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상어 한 마리에 자동적으로 겨냥을 하면 찰싹 붙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상어가 위로 도망치면 위로, 아래로 도망치면 아래로, 오른쪽으로 도망가면 오른쪽으로, 자동적으로 방향을 바꾼다. 던은 그 때마다 몹시 휘둘렸다. 좌석에 몸을 밴드로 묶지 않았다면 어디론가 내팽개쳐졌을 것이다.
순찰정은 곧 한 마리의 특히 큰 백상어의 뒤를 쫓아갔다. 10미터나 되는 어마어마하게 큰놈이다.
던은 수중 미사일의 버튼을 눌렀다. 순찰정의 아래쪽에서 로케트형의, 끝이 날카로운 수중 미사일이 무서운 거품과 함께 발사되었다. 미사일은 100노트에 가까운 아주 빠른 스피드로 물 속을 돌진했다.
몸에 위험을 느낀 백상어가. 몸을 꿈틀거리며 도망치려는 모습이 텔레비전 스크린에 분명히 비쳤다. 그러나 수중 미사일은 한번 노린 것은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미사일은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도망쳐 다니는 상어를 금세 따라잡았다. 백상어의 배에 미사일이 박혔다. 미사일 안에는 독한 독약이 장치되어 있으므로, 명중하면 그 독약이 자동적으로 상어의 몸 속에 주사되는 것이다. 상어는 아파서 미친 듯이 날뛴다.
던은 재빨리 조종을 수동으로 바꾸어 날뛰는 상어 곁을 지나갔다. 만일 그 거대한 상어 꼬리로 한 대 얻어맞으면, 작은 순찰정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만다. 던은 곧 다음 것을 노렸다. 그러나 백상어는 벌써 백 미터 앞을 떼지어 도망치는 중이었다.
던은 계속 스피드를 내어 그 무리를 쫓아가며, 이번에는 로케트 어뢰를 발사했다. 로케트 어뢰는 은빛으로 반짝이며, 도망가는 상어 떼를 삽시간에 따라잡았다. 따라잡는가 했더니 갑자기 번쩍 빛나며 폭발했다. 까앙! 무딘 충격이 전해져 왔다. 명중이다!
백상어 떼는 흰 거품에 싸여 보이지 않게 되었다. 던은 주의 깊게 보고 있었으나, 거품이 꺼진 뒤에는 이미 상어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레이더를 돌려보았으나, 상어로부터의 반사 음은 이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순찰정 바로 옆을, 어미고래가 아기고래를 데리고 재빨리 도망가는 모습이 수중 텔레비전에 비쳤다. 고래는 물론, 이 강철 괴물을 탄 사람이 자기네들의 목숨을 구해 준 줄은 전혀 모르는 것이다.
"괜찮아, 잘 살아라, 고래야."
던은 히죽 웃고 입버릇이 된 혼잣말을 하더니, 밸러스트 탱크 속의 물을 내보내어 해면으로 떠올랐다.
해상은 조용했다. 던은 해치를 열고 머리를 작은 사령탑에서 내밀어 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날씨였다. 그리고 끝없는 태평양이 아주 넓고, 크고, 웅대하게 굽이치며 펼쳐져 있었다. 그 굽이침 속에 마치 전복된 보트 같은 시꺼먼 것이 대여섯 개 뿌글거리며 떠 있었다. 아까 던이 죽인 백상어의 시체였다. 작은 것은 길이 5미터, 큰 것은 10미터나 된다. 뻐끔 벌린 입으로 들쑥날쑥 난 무서운 이가 드러나 보였다. 바다의 살인자의 가엾은 최후의 모습이다. 던은 그 무참한 시체를 보고 있으니까, 언제나 그렇듯이 상어들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나쁘게 생각하지 말아, 상어들아."
그는 시체를 향해 살그머니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고생해 가며 열심히 키우고 있는 고래를 너희들의 밥이 되게 할 수는 없단다. 고래는 지금 세계의 70억에 이르는 사람들의 중요한 식량이니까. 이번에 다시 태어나게 되면 다른 것으로...... 가능하면 사람으로 태어나도록 하여라.'
 
해저 목장
 
그 날 저녁, 던은 모선 로우콜 호로 돌아왔다. 배라고는 하지만 로우콜 호는 보통 배가 아니다. 첫째 모양이 전혀 다르다. 다르다기보다 전혀 배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해상에 뜬 조선의 도크처럼 보였다. 옆에 다가가 보면 로우콜 호는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이 2킬로미터, 너비 1킬로미터의 긴 네모꼴-금속으로 이루어진 섬과 같다. 사실 로우콜 호는 인공의 섬과 같았다.
이 곳에는 해저 순찰정의 기지가 있다. 사령부, 잔교, 연료 탱크, 수리 공장, 도크, 또 세계 어느 나라와도 연락이 되는 통신 본부, 순찰정의 승무원을 위한 훌륭한 숙사, 식당, 마음놓고 쉴 수 있는 휴게실과 공부하기 위한 도서실 등이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밖에 해양 연구소, 화학 연구소, 헬리콥터와 제트기의 비행장, 여러 가지 부품을 만드는 기계 공장까지 있어, 무려 5천 명의 승무원이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배이니까, 로우콜 호는 해상을 달릴 수도 있다.
배 중앙부에는 큰 원자로가 있어, 그 원자력을 이용한 엔진으로 당당하게 항해하는 것이다. 이리한 과학 기술의 덩어리 같은 인공의 섬은, 지금 온 세계의 7대양에서 10척 이상이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다 밑에 있는 해저 목장을 물샐틈없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로우콜 호는 지금 오스트레일리아 근처의 해상에 있었다.
해저 목장! 그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한 가장 크고도 가장 훌륭한 업적이었다. 고래의 목장인 것이다. 땅 위에는 소, 말, 양을 기르고 있는 목장이 여기저기에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곳은 수천만 파리의 고래를 바다 속에서 기르는 목장인 것이다. 물론 이것은 21세기에 들어서서 생겼다.
지금은 2060년. 불과 5,60년 전까지만 해도, 고래는 남극해나 북극해, 대서양, 북태평양, 인도양 등에서 자연 상태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래를 잡을 때는 포경 모선과 포경포를 갖춘 캐처 보트가 나가, 고래를 발견하면 뒤쫓아가다가 포경포로 작살을 쏘아 잡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잡는 고래의 수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세계의 인구가 자꾸 불어나 50억을 넘고 60억을 넘어 70억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지구상의 여기저기서 식량이 모자라게 되었다. 그래서 고래 고기도 귀중한 식량 자원이 되었다. 포경선의 수도 불어났다. 그리고 그 때까지의 몇 배나 되는 고래가 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고래에는 한도가 있다. 있다고 해서 계속 잡으면 고래는 곧 전멸해 버린다.
이 사실은 20세기 중엽부터, 이미 세계 여러 나라 사이에서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여러 나라가 모여 의논한 결과, 잡는 고래의 수를 서로 제한하자는 협약이 정해졌다. 고래의 수를 될 수 있는 대로 줄이지 말고 조금이라도 불려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연에만 의존하면 불리는 데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편,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고기의 양은 점점 많이 필요해진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고래는 부족하게 된다. '이러면 안 되겠다. 어떻게든지 고래를 더 빨리 불려서 온 세계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고래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20세기 끝 무렵, 온 세계의 해양학자, 생물학자, 전자 공학자 등이 모여 회의를 열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의논하였다. 모두의 의견은 똑같았다.
"자연에만 의존하면 안 됩니다. 인공적으로, 과학적으로 불리는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물론 사람이 과학의 힘으로 고래를 돌봐 주면 됩니다. 고래가 불어나기 쉽게 해 주는 것입니다. 즉 우리 인간이 고래에게 먹이를 주고 위험하지 않도록 지켜 주고, 새끼고래가 잘 자랄 수 있게 해 주면 되는 겁니다."
과학자들은 이 회의의 결과를 유엔에 보고했다. 그리고 유엔에서도 이 방법을 취하기로 하고, 각국에 의논했다.
유엔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각국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되었다.
이리하여 해저 목장의 건설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몹시 힘든 일이었다. 특히 어려웠던 것은, 바다 속에 목장의 울타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울타리이라고는 하지만, 물론 바다 속에 진짜 나무나 금속의 울타리를 만들 수는 없다. 그 대신 쓰인 것이 20세기 중엽부터 두드러지게 진보된 초음파이다.
소리가 공기의 파도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사람의 귀에 들리는 것은 그 중 어떤 일정한 너비의 파도 소리뿐, 그 밖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초음파라는 것은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인 것이다.
초음파는, 물 속에서는 대단히 빠르고 또 멀리까지 다다른다. 수중 레이더나 수중 통신기는 모두 초음파의 이러한 성질을 응용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보다 민감한 귀를 가지고 있는 동물이나 어류는 이러한 초음파를 같은 무리끼리의 통신에 쓰거나, 레이더와 같은 구실을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초음파가 해저 목장의 울타리 구실을 하는 것이다. 우선
 고래가 적의 습격을 받아 지르는 비명 소리와 똑같은 초음파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어 그것을 수중으로 방송해 주면, 그 소리를 들은 고래는 조심하여 절대로 그 쪽으로는 다가가지 않는다. 초음파의 울타리는 이를 응용하여 만들어져 있다. 이런 특별 초음파를 내는 초음파 발생기를 고래가 살고 있는 해저에 즐비하게 늘어놓는다. 그러면 고래는 초음파 발생기 너머로는 절대로 가지 않기 때문에 꼭 울타리를 둘러친 것과 같은 구실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초음파의 울타리를 잘 쓰면 고래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이리하여 고래를 잘 이끌어 고래의 먹이가 많은 곳, 고래가 살기 좋은 곳으로 데려다 주면, 고래는 자연 속에서 살고 있을 때보다 훨씬 잘 자라고 많이 불어난다.
또 고래의 먹이인 플랑크톤이라는 미생물을 과학적으로 불려 주고, 또 고래를 바다의 살인자인 상어나 범고래로부터 지켜 주면 고래는 더욱 불어난다. 실제로 바다의 고래들은 이리하여, 자연 상태에서 자랐을 때보다 몇십 배나 불어난 것이다.
고래의 고기나 기름이 필요할 때는 짜임새 있는 계획에 따라, 정해진 수만큼 도살장으로 끌고 가 죽인다. 그리고 고래는 날고기나 통조림이나 기름, 그밖에 여러 가지 제품이 되어, 온 세계 사람들의 집으로 보내어지는 것이다. 21세기에 있어, 해저 목장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던 벌리 등 해저 순찰대원의 임무는, 온 세계 사람들의 중요한 식량의 바탕인 고래를 여러 가지 위험에서 안전하게 지켜 주는 것이었다.
 
새 대원 월터
 
"1등 순찰대원 던 벌리, 지금 돌아왔습니다."
그는 로우콜 호의 선장실에서 보고를 하고 있었다.
"B 605 수역에서 고래를 습격하려던 백상어 떼를 발견하고 다섯 마리를 쏘아 죽였습니다. 아마 그게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고래의 손실은 전혀 없었습니다."
선장은 싱긋 웃고 던을 쳐다보았다.
"수고했어. 잘 했네. 이것으로 자네의 기록은 범고래 35마리와 상어 87마리가 되는군. 정말 대단하네. 로우콜 호 제일의 명사수야, 자네는."
"고맙습니다."
던은 그다지 고마워하지도 않는 얼굴로 무뚝뚝하게 말했다. 상어나 범고래를 죽이는 것은 임무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것이지 자랑하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냥감의 수를 비교하는 것 같은 이런 일이 딱 질색이었다. 그러나 선장은 그런 던의 마음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책상 위의 실내 전화 텔레비전에 스위치를 넣더니,
"그를 들여보내게.“
하고 비서에게 일렀다.
그리고 던을 돌아보더니 말했다.
"그런데 던, 오늘은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새 대원이 들어왔는데, 특별히 자네가 지도해 주었으면 하네."
"왜 제가 합니까? 새 대원을 교육하는 훈련대가 어엿하게 있는데요.“
던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물었다. 그러자 선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그것이 보통 새 대원이 아니야."
"보통이 아니라니요?"
"응, 지금까지 우주항공국의 우주선 파일럿을 하고 있던 사나이인데, 좀 곡절이 있어 해저 목장으로 오게 된 거야. 그래서 우주 항공 국장으로부터 나에게 특별히 부탁해 왔기 때문에 자네가 지도해 주었으면 하는 걸세."
선장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자동문이 열리고 한 청년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월터 프랭클린, 들어왔습니다."
청년은 선장에게 힘차게 경례를 하며 말했다. 던은 그 청년을 보았다. 나이는 던과 비슷한 것 같았다. 다부진 몸집에 눈초리가 날카로운 사나이였다. 그러나 던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눈에 어딘가 어둡고 우울해 보이는 그림자가 담겨 있었다. 선장은 두 사람을 비교해 보았다.
"아, 프랭클린, 이 쪽이 지금부터 자네를 지도해 줄 던 벌리 1등 순찰대원이야. 둘이 사이좋게 지내 주기 바란다."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프랭클린은 아직 로우콜 호 안을 잘 모르니까, 던, 자네가 안내해 주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선장실을 나와, 어슬렁어슬렁 '도시'쪽으로 걸어갔다. 로우콜 호에선 식당과 휴게소가 있는 곳을 '도시'라 부르고 있었다. 던은 어떻게든지 이 월터 프랭클린과 사이좋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가 함께 주스를 마시며 먼저 이야기를 걸었다.
"자네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처음이지?"
던이 말하자,
"아닙니다, 나는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입니다. 브리즈베인이 내가 태어난 고향입니다.“
하고 월터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아, 실례했군- 그렇다면 이 근처의 바다에 대해서는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실은 아일랜드 태생인데, 해저 목장국에서 일하면서부터 북대서양이며 인도양 등, 여러 곳의 바다로 가 있었지. 그래서 이 남태평양에 온 지는 아직 3년밖에 되지 않네."
월터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난 잘 모릅니다. 나는 고등 학교를 나와 곧 미국의 우주 항공 대학에 들어간 뒤 줄곧 고향에는 돌아가지 않았으니까요."
"아, 그래. 자네는 우주항공국의 우주선 비행사로 일했다고 하던데, 그게 분명한가?"
던이 말하자, 월터는 갑자기 입을 꽉 다물었다.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우주를 날아다니고 있었으므로
 아무래도 바다는 성격에 맞지 않습니다.“
월터는 아무 거리낌없이 말했다. 던은 잠깐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면 왜 해저 목장국 같은 곳을 택했지 ?"
"택한 게 아닙니다. 말하자면 강요당한 거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하고 월터는 다시 입을 꽉 다물었다. 던은 그 월터의, 비웃는 표정의 얼굴을 보고 치밀어 오르는 가슴을 억눌렀다.
'이 녀석도 역시........'
하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던은, 바다의 일을 경멸하는 사람을 여러 사람 만났었다. 그런 자들은 대체로 우주 관계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 가운데 많았다. 분명히 우주 개발의 일은 21세기의 인기직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우주선 비행사는 모든 사람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끝없는 우주에서 시속 몇십만 킬로미터의 스피드를 내는 우주 로켓을 타고 자유 자재로 날아다니는 우주 비행사. 거기에 비하면 바다 속을 느린 속도로 다니며 고래를 돌보거나 초음파 발생기를 수리하는 해저 순찰 일은 돋보이지도 않고, 지루하고, 모습도 보기 좋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우주 개발이 발전해도 지구는 역시 인류의 고향이다. 70억의 인류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아직 이 지구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지구의 일을 외면하면, 우주 개발도 아무 뜻이 없게 된다. 특히 세계 인류의 소중한 식량인 고래를 지키고 키우는 일은, 즉 지구에 사는 인류의 생황을 지키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던은 그러한 해저 순찰의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첫째로-그는 바다를 매우 좋아했다. 바다를 욕하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던은 이 신입 대원에게 설교해 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만두기로 했다. '아마 월터는 지금까지 우주 비행사로 일하다가 갑자기 정반대 되는 바다 일을 하게 되니까, 심정이 착잡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던은 치미는 화를 꽉 누르고 월터에게 웃어 보였다.
"이 일도 해 보면 아주 재미있다네. 특히 이 곳은 자네의 고향이 아닌가. 모르는 것은 내가 다 가르쳐 줄 테니 무엇이든지 사양 말고 물어 보게."
그러자 월터의 입가에 또 그 비웃는 듯한 웃음이 떠올랐다.
"고맙습니다, 벌리. 그러나 나는 이 곳에 오기 전에 심리 교육국의 학교에서 최면 교육을 단단히 받고 왔어요. 대부분의 일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도전이라도 하듯 던을 쳐다보았다.
"게다가, 지금까지 우주의 넓은 공간에서 일하던 나로서는 바다의 일 따위는 일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무튼 스피드가 다르니까요."
던은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옆을 향했다. 마음속으로, '이 사나이를 교육시키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골치 아프겠는걸.'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골치 아픈 일이니까, 더 힘을 내어 분발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던의 버릇이었다.
 
담력 알아보기
 
그 뒤로 겪어 보니 모든 것이 던이 생각했던 대로였다. 월터 프랭클린은 분명히 머리가 두드러지게 뛰어난, 아주 우수한 새 대원이었다. 머리뿐 아니라, 운동 신경도 굉장히 발달해 있어 처음부터 해저 순찰대원의 일을 척척 해냈다. 거의 가르칠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던에겐 월터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던이 아무리 열심히 진지하게 가르쳐도, 월터에겐 그의 마음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성적은 좋아서 뭐라고 할 말은 없었으나, 마음속으로는 월터가, '흥, 바다? 바다가 뭐야, 해저 순찰이 뭐야?'하고 경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알 수 있었다. 던은 꽤 끈기가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한번은 화를 버럭 내고,
"여보게 월터, 자넨 대체 어쩔 셈인가? 나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 사나이답게 분명히 말해 보게!"
하고 고함을 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도, 월터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마음에 안 드는 일이라니요, 그런 것 없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1등 순찰대원입니다. 다만........"
"다만 뭔가?"
"다만 나에겐 아무래도 바다라는 것이 성격에 맞지 않을 뿐입니다."
월터는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왜 성격에 맞지 않는다는 건가?"
"그건 언젠가도 말했잖습니까. 나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속 수십만 킬로미터라는 스피드 세계에 있었습니다. 여기서는 기껏해야 7, 80킬로미터입니다. 답답해서 못 견디겠어요."
던은 자기도 모르게 화를 버럭 내고 말했다.
"흥, 그렇다면 자네는 그 스피드 세계로 돌아가면 될 것 아닌가. 왜 돌아가지 못하나?"
월터의 얼굴이 순간 긴장했다.
"그런 것을 대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대신 대답해 주지. 자네는 아마 우주 비행 중에 뭔가 큰 실수를 했을 거야. 낮잠을 자다가 충돌 사고를 일으켰다던가, 착륙을 잘못하여 우주선을 부쉈다든지. 뭔가 그런 실수를 했기 때문에 우주항공국에서 쫓겨난 거지 ?"
그렇게 말하고 난 뒤 던은,
'앗, 이러면 안 되는데, 너무 지나친 말을 했구나!'
하고 후회했다. 여느 때는 침착하던 월터의 얼굴빛이 갑자기 새파래졌기 때문이다. 월터는 한순간 마구 덤벼들 듯이 험악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 동안이었다. 이윽고 월터의 얼굴에는 지금까지보다도 더 차가운, 얼음과 같이 차가운 침착성이 되돌아왔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그는 조용히 말했다. 던은 그 뒤로 다시는 그 말을 꺼내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아무래도 던이 보기엔, 월터가 그런 얼빠진 실수로 우주선의 비행사 일을 그만두게 된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뭔가 남에게는 밝힐 수 없는 깊은 곡절이 있을 것이다. 나는 화를 내거나 하지 말고 좀더 끈기 있게 그를 지도해 주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의 마음도 풀어지겠지.' 던은 이렇게 생각했다.
그 뒤로는 월터가 아무리 싫은 얼굴을 해도, 경멸하는 듯한 웃음을 띄어도 절대로 화를 내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가끔 화가 불끈 치솟는 일이 있으면, 그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너는 아직 수양이 모자란다. 바다를 본받아라. 바다처럼 싫증내지 않고, 방심하지 않고, 초조해하지 않고, 단념하지 않고 되풀이해 나가야 한다.'하고 타일렀다. 그러나 월터의 도도한 태도는 다른 순찰대원 사이에서도 평이 매우 좋지 않았다.
"월터 프랭클린 녀석, 햇병아리 훈련원인 주제에 아주 잘난 체하고, 건방진 녀석이야."
"정말이야, 언제나 거만하게 도사리고 자기만 잘났다는 태도야. 어디 한번 끌어내어 담력을 시험해서 곯려 주기로 할까?"
"찬성이다!"
어느 날, 식당에서 이런 이야기가 순찰대원들 사이에서 오간 일이 있었다. 던은 물론 그들을 말렸다.
"그럴 것 없어. 그 녀석은 그 녀석 나름대로 잘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다른 대원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벌리 선배님이 순하게 구니까 그 녀석 마구 기어오르는 겁니다. 이쯤에서 좀 단련을 시키지 않으면 그 녀석을 위해서도 좋지 않아요."
"맞아, 그 녀석 아주 도도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굉장히 겁쟁이인지도 몰라요."
"이봐, 말 나오는 대로 지껄이지 마. 무슨 증거가 있어서 그런 말을 하지?"
던이 꾸짖자 그 대원은 자못 비밀스러운 일이라도 되는 듯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물론 확실한 증거가 있어요. 분명히 알고 있어요."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다는 건가?"
던은 걱정이 되어 되물었다.
"사실은 요전 휴가에 오스트레일리아까지 갔을 때, 그 녀석은 나와 같은 제트기에 타고 있었어요."
그 대원은 목소리를 더 낮추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트기가 날아올랐을 때 무심코 보았더니, 프랭클린 녀석은 창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좌석에 웅크리고 앉아 눈을 꼭 감고 있더군요, 이상하다 하고 자세히 쳐다보니까, 글쎄, 그 녀석이 와들와들 떨고 있는 겁니다. 얼굴빛은 새파랗고,
 이는 딱딱 소리를 내고,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더군요. 마치 비행기도 보지 못한 미개인인 토인이 난생 처음 비행기를 탄 것처럼 무서워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 녀석이 굉장히 겁쟁이라고 생각한 거지요."
"고소 공포증이 아닐까? 높은 곳에 올라가면, 무서워 못 견디는 병이 있지 않아?"
또 한 명의 순찰대원이 말참견을 했다.
"하지만 그건 좀 이상하군. 프랭클린은 로우콜 호에 오기 전까지 우주선의 비행사였다고 했잖아."
"음. 그렇다면, 그 이야기도 믿지 못하겠는걸."
그 때는 그쯤에서 이야기가 끝났다. 던은 이 이야기가 굉장히 마음에 걸렸으나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지 이삼 일이 지난 뒤였다. 마침 그 날은 던과 월터가 쉬는 날이었다. 갑자기 월터에게 볼일이 생겼으므로, 숙사며 식당 등을 찾아보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이상하다.'라고 생각하여 계속 찾으니까, '도시' 근처에서 만난 한 대원이,
"아, 프랭클린은 아까 두세 명의 동료와 내기를 하고 있던데요."
하고 말해 주었다.
"내기라고?"
"예, 수중 지프로 AIO5 산호초까지 경주를 하자느니 어쩌느니 하던데요."
던은 깜짝 놀랐다.
"뭐라고! 농담하고 있나. AIO5 산호초라면 익숙한 사람도 수중 지프로는 좀처럼 가지 않는 곳 아닌가!"
"예, 그건 물론 설명했습니다. 수중 지프의 연료로는 왕복이 빠듯하니까, 자칫 잘못해서 길이라도 잃으면 조난 당할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모두 위험한 것을 알고도 강제로 보냈다는 말인가?"
그 대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뭐, 강제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모두들, 보나마나 프랭클린이 겁을 먹고살려 달라고 매달릴 줄 알았던 겁니다. 그런데 그 녀석, 태연한 얼굴로 곧 오케이 해 버린 겁니다. 뿐만 아니라 내기에 건 돈을 배로 해도 좋다는 겁니다. 그래서 말을 꺼낸 쪽도 물러설 수 없어, 출발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언제쯤 떠났나?"
던은 이맛살을 찡그리고 물었다
"글쎄요...... 벌써 세 시간쯤 된 것 같아요."
"세 시간? 그러면 이제 돌아와야 할 시간 아닌가!"
던은 그렇게 소리치더니 급하게 수중 지프의 격납고로 달려갔다. 수중 지프란 산소 봄베나 옛 어뢰와 흡사한 모양의, 수중 작업용으로 쓰이는 탈 것이다. 어뢰 안에는 압착 공기가 들어 있어 그것을 내뿜으며 전진한다. 세게 내뿜으면 빠르고, 천천히 내뿜으면 천천히 달린다. 타는 법은, 아쿠아렁을 메고 어뢰 위에 다리를 벌리고 올라앉아 간단한 조종 장치를 조종하면 된다. 수중 지프는 세 대가 보이지 않았다. 월터와 또 두 명의 대원이 떠난 모양이다. 던은 시계를 보았다. 아쿠아렁의 산소 봄베에는 네 시간 분의 산소밖에 들어 있지 않다. 그 시간이 지나면 수중에 더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숨이 막혀 죽어 버리는 것이다 앞으로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만일 도중에서 조종을 잘못하여 수중 지프에서 떨어지거나 방향을 잃으면 시간은 모자라게 된다. 또 산소가 동나서 해상에 떠올라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망망한 태평양 한복판에서는 이내 지쳐 버려 빠져 죽고 만다.
 
내가 이겼다
 
던은 초조해하며 격납고 앞의 잔교에 서서 수중을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었다.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해면이 갑자기 흔들리는가 했더니 두 대의 수중 지프가 떠올랐다. 그것은 언젠가 월터의 담력을 시험해 보자고 말하던 두 명의 2등 순찰대원이었다. 두 사람은 해안가로 기어올라왔다.
"이봐, 프랭클린은 어떻게 된 건가?"
던은 아쿠아렁을 벗고 있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갑자기 놀란 얼굴로 던을 보았다.
"그, 그러면...... 역시 그 녀석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오래 전에 돌아온 줄만 알고 있었는데요........"
몹시 당황해하는 목소리였다. 던은 갑자기 무서운 얼굴로 고함을 쳤다.
"뭐라고? 이봐, 너희들은 프랭클린을 도중에 떼어놓고 왔단 말이냐?"
"아닙니다. 떼어놓고 온 게 아닙니다. 그냥......"
"그냥, 어떻게 되었다는 거야?"
"즉...... 도중에서 어디론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틀림없이 무서워서 로우콜 호로 되돌아온 줄 알았기 때문에 ........"
한 사람이 아주 새파랗게 질려서 말했다. 그러자 또 한 사람도 풀이 죽어서,
"하지만, 한동안 그 근처의 바다 속을 찾아보았었습니다. 그리고 수중 마이크로 소리쳐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일 길을 잃었었다 하더라도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대답이 없기에 틀림없이 돌아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정말 큰일을 저질렀군, 자네들은."
던은 화를 누르며 말했다.
"자네들은 아직 수중 지프의 경험이 별로 없는, 훈련 중인 대원의 담력을 시험해 본답시고 마음대로 위험한 게임에 끌어들인 거야. 그에게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이 책임은........"
거기까지 말하자 두 대원은 벗으려 하던 아쿠아렁을 다시 짊어지기 시작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곧 산소 봄베를 바꿔 달고 다시 한 번 찾으러 가겠습니다!"
"세 사람 분을 준비해 주게. 나도 함께 가겠으니."
던은 말했다. 세 사람이 급히 수중 지프와 산소 봄베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누가 돌아오고 있다!"
한 대원이 소리치며 해면을 가리켰다. 그 해면이 갑자기 부글거리는가 했더니 아쿠아렁을 멘 대원의 모습이 쑥 물을 가르고 나타났다. 월터 프랭클린이었다. 그는 오른손에 한 개의 멋진 산호 가지를 들고 있었다.
"월터! 돌아올 수 있었구나!"
던은 안심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치며, 물 기슭으로 기어오르고 있는 월터 곁으로 달려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다른 대원들도 달려왔다. 월터는 수중 안경을 벗고
아쿠아렁의 걸쇠를 벗기자, 던과 대원들에게 히죽 웃어 보였다."예, 돌아왔습니다, 물론. 보십시오, 이것이 A105 산호초에 갔다 온 증거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내기 상대인 두 사람의 대원을 돌아다보았다.
"어디 당신네들의 증거품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그게 저........"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며 몹시 당황해했다.
"자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아마 내기를 단념하고 돌아갔나 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A105 산호초까지는 가지 않았네."
"그래. 아무리 불러도 대답도 없고 해서........"
"나의 모습이 안 보였던 것은 당신네들보다 훨씬 앞쪽에 있었기 때문이오.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월터는 그 특유의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튼 경주는 내가 이겼습니다. 두 분께선 건 돈을 내놓아야 합니다."
"무, 물론 내놓지."
"두 배의 금액입니다."
"알고 있네, 알고 있어."
두 사람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도망치듯이 격납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네."
던은 월터에게 말했다.
"그러나 자네도 어지간하군. 비록 저 쪽에서 하자고 하더라도 이런 위험한 일은 하면 안 되네. 어쨌든 괘씸한 건 저 두 사람이야. 저 자들은 자네가 가지 못하려니 하고 일부러 내기를 하자고 한 거니까."
던이 거기까지 말하자, 월터가 그 때까지 보인 일이 없는 명랑한 웃음을 웃어 보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기에 응한 겁니다. 나도 겁쟁이로 알려지는 것은 싫으니까요. 특히......"
그는 소리를 낮추어 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실은 틈만 나면 나 혼자서 수중 지프의 훈련을 했었습니다. A105 산호초까지도 벌써 혼자서 두세 번은 왕복했습니다. 그러니까 나한테는 그다지 위험한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총총히 가버렸다.
 
출동 명령
 
그 뒤로, 해저 순찰대원들은 절대로 월터 프랭클린을 경멸하거나 하지 않았다.
"저 녀석은 보통 햇병아리가 아니야. 보기보다는 의외로 거물이야."
그런 말을 뒤에서 하는 대원도 있었다. 그러나 월터는 전과 조금도 달라진 데가 없이 침착한 태도로 훈련에 힘쓰고 있었다. 그는 반 년 만에 승진 테스트를 받고 3등 순찰대원이 되었다.
그 뜻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던 것은 바로 그 뒤였다. 어느 날, 로우콜 호의 숙사에서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던 던과 여러 대원들은 갑자기 요란한 비상 집합 버저 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들은 급히 순찰대의 사령실로 모였다.
"D305 수역에서 해저 지진이 일어나, 초음파 발생기가 수십 킬로미터의 길이에 걸쳐 파괴되었다. 그 부서진 곳으로 해저 목장의 고래가 바깥 바다로 자꾸 헤엄쳐 나가고 있다. 곧 출동하여 수리를 해야 한다."
선장은 모인 순찰대원들에게 설명하였다. 던은 곧 선장과 함께 해저 순찰정의 비상 출동에 관해 의논하였다.
"아무튼, 초음파 울타리에 뚫린 구멍을 서둘러 막아야 하니까요. 우선 먼저 수직 이착륙 제트기로 그 수역까지 순찰정 두 대를 운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순찰정이 초음파 발생 장치를 싣고 가 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좋아, 그건 명안이군."
선장이 말했다.
D305 수역은 로우콜 호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해저에 있다. 물 속으로 가면 최고 속력을 내도 3시간은 걸린다. 거기에 비해, 수직 이착륙 제트기를 사용하면 10분이나 15분이면 그 수역에 도착하여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누가 갈 건가?"
선장이 물었다.
"저와 월터 프랭클린이 갑니다.“
던은 재빨리 지시를 했다. 잠시 후에 수직 이착륙 제트기의 동체에 두 척의 해저 순찰정이 실렸다.
수직 이착륙기란, 전혀 활주를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곧장 이륙하거나 착륙할 수 있는 비행기이다. 헬리콥터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헬리콥터와 같은 회전 날개가 없고, 날개에 달린 제트 엔진을 처음에는 밑으로 향하여 분사하고, 일정한 높이까지 올라가면 수평 하게 분사하여 보통 제트기처럼 난다. 그러니까, 헬리콥터와 달리 마하 이상의 스피드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요란한 제트 엔진 소리와 함께 기체는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라, 이내 스피드를 내어 바다 위를 날아가기 시작했다. 던과 월터는 잠수 장소에 도착하기까지, 동체 안의 좌석에 앉아 있었다. 던은 창문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월터의 얼굴은 병난 사람처럼 굳어져 가끔 실룩실룩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왜 그러나 월터, 기분이 나쁜가?"
던은 월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말했다.
"괘, 괜찮아요........"
월터가 대답했다. 그러나 그의 이마에는 진땀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병이 난 모양이군. 무리하면 안 되네. 누구 다른 사람하고 교대를 할까?"
던은 걱정이 되어, 월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갑자기 월터가 그 손을 뿌리쳤다.
"내버려두세요!"
격한 어조였다. 그러면서도 그의 몸은 와들와들 열병 환자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던은 월터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알았다. '틀림없이 이것은 상당히 심한 고소 공포증이구나.' 그는 속으로 외쳤다. 고소 공포증이란 높은 곳에 올라가면 무서워서 못 견뎌 하는 병이다. 아무리 '괜찮다,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고 스스로에게 타일러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뭔가 꽤 무서운 일을 겪은 적이 있는 모양이구나. 우주에서의 사고 같은........ 그래서 우주선의 비행사 일을 할 수 없게 된 모양이군........' 던은 월터를 데리고 온 것을 후회했다.
"월터, 무리를 하지 않는 편이 좋아. 되돌아가 다른 사람과 교대하기로 하자. 지금 조종사에게........"
"안 됩니다!"
갑자기 월터가 던의 멱살을 꽉 움켜쥐고 소리쳤다. 그 눈은 실성한 듯이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다.
"부탁해요, 던 벌리. 이대로 가게 해 주시오. 괜찮아요. 이 정도는 곧 회복돼요!"
던은 필사적으로 말하고 있는 월터의, 진땀으로 번질거리는 얼굴을 쳐다보았다.
"글쎄, 그 상태로야 어디........ 저 쪽에 도착해도 과연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
그는 눈 딱 감고 잔혹한 말을 해 주었다. 화를 내게 하여 데리고 갈 속셈이었던 것이다. 월터는 와들와들 떨면서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아니, 괜찮아요....... 바다에...... 아래에 내리기만 하면 괜찮아져요."
"좋아."
던은 갑자기 생각난 일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데리고 가 주지. 그 대신 내가 하는 말은 무엇이나 다 듣겠나 ?"
"듣겠습니다, 던. 무슨 일이나........"
"그러면 창가에 앉아. 해면을 내려다보고 있게, 저 쪽에 도착할 때까지."
월터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러나........"
"이것 봐. 잘 들어, 월터."
던은 월터의 눈을 말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틀림없는 고소 공포증이야. 그것도 아마 뭔가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그렇게 되었겠지. 처음부터 고소공포증이었다면 우주 비행사가 될 까닭이 없으니까."
"예........"
월터는 어린아이처럼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자네는 그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거야. 그리고 그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고소 공포증은 낫지 않네. 고소 공포증을 고치려면 그 무서움을 정면으로 딛고 넘어가야 하네. 창문으로 바다를 보고 있어도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아야 해. 알았나?"
월터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던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면 로우콜 호로 되돌아가든지."
갑자기 월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창가의 자리로 갔다. 그리고 둥근 창문으로 수백 미터 밑의 해면을 내려다보았다. 할 작정이구나!
 
하늘에서 바다로
 
월터의 얼굴은 곧 백짓장처럼 새하얘졌다.
"으, 으흐, 흐!"
월터의 입에서 슬픈 비명이 흘러 나왔다. 그는 손수건을 꺼내어 입을 틀어막았다. 눈이 치켜 올라가고 눈알이 금방 튀어 나을 것 같았다. 두려운 나머지 머리가 도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정신을 잃고 마는 것이......? 던은 월터의 뒷모습을 보며 조마조마했다.
'이제 곧 자리를 뜨는 게 아닐까. 항복하고 모선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월터는 머리도 돌지 않고, 정신도 잃지 않았으며, 항복도 하지 않았고, 자리를 뜨지도 않았다. 그는 입으로 새어나오는 신음 소리를 삼켜 버리기 위해 손수건을 입에 물며, 하라는 대로 죽을힘을 다해 창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집이 대단한 녀석이군. 하지만 훌륭한 녀석이다.'
던은 그렇게 생각했다.
"으흐 그그극 끅."
괴로운 듯한 신음 소리가 가끔 입에서 새어나왔다. 눈에서는
 꼭 어린아이 같은 눈물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내렸다. 주먹을 쥐고 창가를 힘껏 내리쳤다. 보고 있는 쪽이 괴로워지는 광경이었다. 던은 몇 번이고 뒤에서, "힘을 내게."하고 위로해 줄까 하는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조종실로 가 조종사에게 되돌아가자고 말할까 하는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월터 프랭클린은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 아니, 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던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엾은 월터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다. 길고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비행기는 목적한 장소에 도착했다. 마치 몇 시간이 흐른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시계를 보니까 불과 12, 3분밖에 지나지 않았었다.
비행사가 실내 통화기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순찰정을 타라." 하고 말했다. 그는 월터에게로 다가갔다. 월터는 마치 열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던이 어깨를 두드리니까 고개를 끄덕였으나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좋아, 내가 태워 주지. 만일 물 속에 들어가도 일을 할 수 없거든, 엔진을 끄고 가만히 있게. 그러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겠지. 그래도 만일 회복이 안 되거든 도와 줄 사람이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고 있게. 알겠지?"
그는 월터의 목을 질질 끌다시피 하고 순찰정이 들어있는 창고로 내려갔다. 순찰정의 해치를 열고 월터를 밀어 넣듯이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자기도 또 한 척의 순찰정을 탔다. 조종석에 밴드로 몸을 묶고 라디오를 켜고 나서 조종사에게 말했다.
"준비 오케이. 되도록 낮게 내려 조용히 떨어뜨려 주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
순찰정 안에서는 전혀 밖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갑자기,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수직 이착륙 기가 고도를 계속 낮추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지금 해면 5미터. 바다가 거칠어 더 내려갈 수 없다.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서 떨어뜨려도 좋은가?"
비행사가 라디오로 물었다. 던은 월터가 걱정이 되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금의 라디오는 물론 월터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만일 공중에 내동댕이쳐진다고 생각하면, 그는 실성하고 말지도 모른다
"잠깐, 기다려 주게!"
던은 당황하여 소리치려고 했다. 바로 그 때였다.
"좋소, 그렇게 해 주시오."
월터가 작기는 했으나 힘찬 목소리로 대답한 것이다. 던은 깜짝 놀랐다. 그 순간, 순찰정은 툭 떨어져 몸이 둥실 떠올랐다. 다음 순간, 순찰정은 무서운 기세로 수면을 두드렸다. 거센 충격으로, 던은 좌석에 딱 박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순찰정이 기우뚱 옆으로 기울었다. 그는 정신을 차려 조종간을 잡고 엔진을 걸었다. 힘찬 엔진 소리와 함께 순찰정은 흐르듯이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수중 레이더와 텔레비전 스위치를 넣었다. 수중 텔레비전 스크린에 멍하니 검은 물고기 같은 그림자가 떠올랐다. 월터의 순찰정이었다.
"괜찮은가, 월터?"
던은 큰 소리로 마이크를 향해 외쳤다. 대답이 없다. 던은 가슴이 철렁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월터가 기절했든지 충격으로 다치기라도 한다면......?'
불길한 예감이 던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월터! 어이, 월터! 힘을 내라!"
그러자 이번에는 약하디 약한 월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앞서...... 가...... 줘요. 뒤를.... 따라갈...... 테니 ........"
그 목소리는 약하기는 했으나, 평상시 듣던 월터의 목소리 였다. 월터는 마침내 무서운 시련을 이겨 낸 것이다! 던의 가슴에 따뜻하고 큰 안도감이 가득 차 왔다. 이제 안심이다!
 
월터의 비밀
 
던과 월터는 그 뒤로 수중 레이더를 통해 초음파 울타리의 파손된 부분을 찾아내어, 준비해 온 새로운 초음파 발생기를 차례로 떨어뜨리고 갔다. 그래서 초음파의 울타리는 다시 전처럼 작용하기 시작하여 더 이상 고래가 헤엄쳐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런 다음, 던과 월터는 협력하여 헤엄쳐 나간 고래 떼를 발견했다. 그 때 뒤쫓아 현장에 도착한 다른 해저 순찰대도 합세하여 고래들을 에워싸고, 다시 본디의 해저 목장으로 몰고 갈 수가 있었다. 모든 것이 던과 월터가 재빠르게 행동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던과 월터는 해저 목장국의 장관으로부터 공훈을 세운 데 대해 크게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던에게 있어 가장 기뻤던 일은 칭찬 받은 일이 아니라, 월터가 그 무서운 고소 공포증을 잘 견디어, 일을 훌륭하게 해낸 일이었다. 더구나 월터는 이 사건이 있은 뒤로 점점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던이 생각했던 대로, 월터의 고소 공포증은 낫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있은 뒤로 일주일쯤 지난 뒤, 월터는 처음으로 던에게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비밀을 털어놓은 것이다. 그것은 일이 끝나고, 밤에 던이 자기 방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월터가 불쑥 방으로 들어왔다.
"던, 잠깐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습니까?"
월터는 느닷없이 말했다. 던은 그 진지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데?"
"아아...... 내가 고소 공포증에 걸렸을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던은 더욱 놀라 월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 들어 주고 말고."
"그러면 들어주세요. 나의 고소 공포증은 언젠가 당신이 했듯이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생긴 겁니다."
월터는 천천히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화성 행 화물 우주선의 기관사였어요. 마침 지구와 달 중간쯤의 우주에 왔을 때, 이온 로켓 엔진의 분사관 하나가 갑자기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그것을 고치려면 밖의 우주로 나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우주복을 입고 진공 속으로 나갔어요."
월터는 거기서 잠깐 눈을 감고, 말을 끊었다.
"던, 당신은 지구를 벗어난 일이 있나요?"
"아니 없어. 관광 우주선에도 탄 적이 없네."
"그러면 그 우주 공간의 뭐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을 모르겠군요. 우주는 캄캄하고, 수없이 많은 별이 저마다 살아 있는 것처럼 빛나고 있고, 태양은 마치 머리를 풀어헤친 마녀처럼 무섭게 불타고 있습니다. 정말로 숨이 찰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 우주로 나가면 꼭 밑 빠진 구멍 속에 한도 없이 빠져드는 듯한, 굉장히 외롭고, 굉장히 무시무시한 기분이 듭니다."
"월터,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두는 게 좋지 않을까? 억지로 다시 생각해 낸다는 것은 좋지 않아."
"아니에요.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 버리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이 가슴에 진 응어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월터는 딱 잘라 말하더니,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로켓 엔진의 고장은 금방 고쳤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주선의 선체를 따라 우주 유영을 하며 해치를 향해 되돌아갔습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가-무서운 재난이 나의 신변에 닥친 것은 그 때였어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
던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우주복에 달려 있는 우주 유영용 제트 추진 장치가 갑자기 고장나서 세게 분사하기 시작한 겁니다."
월터는 소리치듯이 말했다.
"그 때문에 나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본선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생명 줄은 붙어 있었으나 당황하여 버둥거리는 순간 벗겨져 버렸습니다. 이내 본선은 아득히 먼 곳으로 가 버렸습니다. 게다가 내 우주복의 라디오 안테나가 선체에 부딪혀 부서져 버렸으므로 이 쪽에서 연락할 수도, 저 쪽의 통신을 받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계속 끝도 없는 우주로 떠다니게 되었습니다........"
월터는 그 때의 일이 생각나는 듯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던도 그 광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러자 등골이 오싹했다. 얼마나 무서운 일일까! 사방은 아무 것도 없는 진동의 공간이다. 발로 어디를 디디려 해도 발은 공중에 떠 있다.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도 모르는 무중량 상태. 지구나 달이나 그 어둠 속에 동그라니 떠 있는 공처럼, 의지할 곳 없는 처지이다. 그리고 그 우주의 한복판에 혼자 외롭게 남겨진 것이다. 유일한 생명 줄이었던 우주선은 자꾸만 멀어져 간다.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한심했을까......
"그래, 어떻게 하였나?"
던은 숨도 안 쉬고 물었다. 월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 본선은 필사적으로 나를 찾았기 때문에 네 시간 후에 나를 구해 주었습니다. 내가 표류하기 시작하자마자 곧 알아차리고 레이더로 추적해 주었으므로 그렇게 빨리 발견한 겁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절대로 찾지 못했을 겁니다. 비록 찾았다 하더라도, 조금만 더 늦었으면 산소가 끊어져 숨이 막혀 죽어 버렸을 것입니다. 하마터면 나는 지구와 달 사이의 우주에서 우주의 먼지가 되어 버릴 뻔했습니다."
월터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 다 알았겠지요. 구조되었을 때 나는 너무 큰 충격 때문에 정신이 거의 돌아 버렸습니다. 나는 그 길로 곧 지구로 송환되어 정신 병원에 입원한 다음, 여러 가지 치료를 받았지요. 덕분에 얼마 후에 나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이미 다시는 우주 공간에 나갈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던 겁니다. 우주에 나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미쳐 버릴 거라는 의사의 말이 있었습니다."
그는 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고소 공포증이 된 것도 물론 그 때문이었지요. 보통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조금만 높은 곳에 올라가면 계속 떨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비행기는 딱 질색이었지요. 바다의 일은 그런 점으로 보아 나한테 딱 맞는 일이었어요. 사방에 물이 있으면 나는 마음이 푹 놓이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바다가 한층 더 미워지는 겁니다. 우주로 돌아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며 일하고 있는 당신이 미웠던 겁니다."
"그 기분은 알 수 있을 것 같군."
던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말했다. 월터는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당신은 그런 나에게 화도 내지 않고 꾹 참고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를 따뜻하게 돌보아 주었어요. 나는 하루가 다르게 해저의 일이 재미있어졌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태생이라 바다는 본디 좋아했지만.... 바다를 싫어하고, 바다의 일을 경멸하는 체해 보인 것은 일종의 오기였지요.“
거기까지 말하더니, 월터는 던의 손을 꽉 쥐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가식은 다 버렸습니다. 나는 분명히 바다의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것 잘됐군."
"또 한 가지 말해 둬야 할 일이 있어요, 던. 당신한테는 뭐라고 고맙다는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다 당신 덕분입니다."
"나는 자네한테 그렇게 무리한 일을 시켰는데 ......"
던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렇지 않아요. 그 덕분에 나는 나았어요. 나는 그 때까지 겁쟁이였습니다. 내가 고소 공포증 환자라는 사실을 비밀히 하고, 거기서 도망치느라 바빴습니다. 당신은 그런 나의 약한 면을 두드려 고쳐 준 셈입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말을 계속했다.
"사실은, 던. 나의 고소 공포증은 그 뒤로 상당히 좋아진 것 같아요. 요전에 늘 다니고 있는 정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았더니, 굉장히 좋아졌다며 의사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 그게 사실인가?"
던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물론 우주로 나가는 것은 무리한 일이겠지만, 지구상이라면 고소 공포증은 이제 나타나지 않을 거랍디다. 던, 모든 것이 당신 덕분입니다. 이 일은 일생동안 잊지 않을 겁니다."
"그런 거야 아무러면 어떤가. 그보다 자네의 고소 공포증이 많이 나았다니, 정말 반가운 일이야. 그러면 월터, 자네는 정말 바다가 좋아진 건가?"
"예."
"해저 목장의 일도?"
"물론입니다! 이제 누가 그만두라고 해도 그만두지 않겠어요!"
"고맙네, 월터. 정말 기쁘군."
"저도 기쁩니다."
두 사람은 손을 곽 잡으며 한동안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었다. 서로 잡은 손과 손을 통하여,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눈과 눈을 통하여 친구로서의 온정이 오가는 것을 느꼈다.
 
해저 목장의 나날
 
그런 일이 있은 뒤로, 월터 프랭클린은 더욱 열심히 해저 순찰 일에 전념하계 되었다. 조금이라도 틈이 있으면 두 사람은 해저 목장 일 전반에 걸친 공부를 하기 위해 로우콜 호의 이곳 저곳을 보고 다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볼 만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고래의 도살장이었다. 도살장은 로우콜 호의 끝에 있는, 은 도크와 같은 곳이었다. 이 곳에 들어간 고래는 우선 도크의 물에 섞은 마취약을 먹고 의식을 잃고 만다. 그러면 도크의 물은 펌프를 사용, 밖으로 내보내진다. 그리고 도크의 바닥이 큰 엘리베이터가 되어 고래들은 해체 공장으로 운반된다. 해체 공장에는 무섭게 큰 해체 장치가 있다.
고래는 그 장치에 넣어져 곧 산산조각이 난다. 100톤이나, 그 이상의 고래가 잠깐 보고 있는 동안에 고기는 고기, 기름은 기름, 뼈는 뼈, 내장, 가죽 등으로 각각 나누어진다. 불과 3분밖에 안 걸리는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한 시간만 있으면 고기는 통조림이나 냉동육이 되어 잠수 화물선에 실리고, 유엔 세계 식량 기구의 식량 계획에 따라 세계 여러 곳으로 보내진다. 물론 기름도, 뼈도, 가죽도, 그 밖의 부분도, 무엇 하나 버리는 일이 없다. 기름은 마가린이나 비누, 화학 약품, 비료 등이 된다. 또는 약이 되고, 가죽에서는 훌륭한 가죽 제품이 나온다. 모두 각각 여러 가지 제품이 되어, 21세기 인류의 일상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이것은 로우콜 호에서는 아니지만, 오스트레일리아의 브리즈베인 항 근처에는 고래의 젖을 짜고 가공하는 정유 공장도 있다. 이것도 보고 있으니까 참으로 재미있는 것이었다. 정유 공장은 길이 3, 4백 미터나 되는 거대한 ㄷ자 모양의 배 안에 만들어져 있다.
암고래는 새끼 고래의 울음소리와 똑같은 초음파를 내는 발생 장치를 갖춘 잠수 작업선에 끌려 ㄷ자형의 한복판으로 들어간다. 네 마리의 암고래가 잠수 작업선에 이끌려, 나란히 도크로 들어가면 문이 딱 닫힌다.
도크 안의 모습은 작업 사령실의 텔레비전에 그대로 비쳐진다. 이윽고 '준비 오케이'라는 신호가 오면 작업 사령실의 컨트롤 스위치가 작동된다. 이 스위치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어느 특수 초음파를 도크 안으로 흘러들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암고래들은 모두 일제히 흰 배를 위로하고 벌렁 눕는다. 어미 고래는 새끼고래가 어릴 때 이렇게 벌렁 누워 젖을 먹이는 것이다. 사실 지금 흘려 보낸 초음파는 젖이 먹고 싶어 우는 새끼 고래의 목소리와 똑같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어미고래들은 새끼고래가 젖을 먹으러 온 줄 알고 물 속에서 벌렁 눕는 것이다. 그 때 아쿠아렁을 멘 작업 대원들이 파이프 끝에 단 젖 짜는 기계를 가지고 도크 안으로 뛰어들어, 그 젖 짜는 기계를 고래의 젖에 다는 것이다.
젖 짜는 기계는 꼭 새끼고래가 젖을 발 때와 똑같은 상태로 젖을 짜고, 그것을 파이프를 통하여 우유 탱크로 흘러가게 한다. 그리하여 고래 한 마리에서, 소 같으면 20마리 몫이나 되는, 영양가 높은 우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유는 여러 가지로 화학 처리되고 살균되어, 보통 우유와 같이 그대로 마시거나 치즈, 버터, 그밖에 갖가지 제품으로 만들어져 세계 각 가정의 식탁으로 보내어 지는 것이다. 이렇게 나날을 바쁘게 지내다 보니, 월터는 점점 더 바다와 해저 목장이 좋아졌다.
"바다에서는 같은 일이 두 번은 일어나지 않는다."
던은 곧잘 그렇게 말했다. 월터는 그 말의 뜻을 아무래도 알 수가 없었다. 바다는 언뜻 보면, 언제나 같은 일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다하고 친하게 지내다 보니 월터는 던의 말뜻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같은 일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다는, 실은 날마다, 반드시 어딘가 다르게 마련이다. 아니 정말로 같은 일은 한 번도 없는 것이다. 바다는 과연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한 것이다. 그런데...... 그 뜻하지 않은 이상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큰 바다뱀
 
그 날도 월터는 던과 함께 해저 목장 둘레로 순찰을 나갔다. 아무 일도 없는 조용한 하루였다. 저녁때가 되어, 두 사람은 예정 코스 순찰을 다 마치고 돌아오고 있었다. 해저가 갑자기 깊이 패어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그 근처까지 왔을 때였다. 월터는 아무 생각 없이 수중 레이더를 가장 먼 곳까지 가도록 돌려 어둡고 깊은 해저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레이더의 스크린 속에 뭔가 기다란 것이 희미하게 비치기 시작했다. 그런 것은 지금까지 본 일이 없었다. 물고기도 아니고, 해저의 바위도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서둘러 초음파 라디오의 마이크를 잡고 던을 불렀다.
"던, 큰 반사 영상이 있습니다. 각도는 185도, 거리는 15킬로미터. 심도 2500미터 근처입니다. 보입니까?"
"던으로부터 월터에게!"
곧 던으로부터의 회답이 왔다.
"보인다. 저게 뭘까?"
"모르겠어요."
"월터! 이 근처에 잠수 작업선이 올 예정이라도 있었던가?"
"모릅니다. 분명히 그런 예정은 없었던 것으로 아는데, 왜 그럽니까?"
던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저 물체...... 길이 약 50미터는 되겠군. 빠르기는 시속 약 10노트로 이동하고 있다. 자네 쪽의 계산기에도 같은 계산이 나와 있나?"
"예, 나와 있어요."
"믿을 수 없는걸!"
던이 신음하듯이 말했다.
"무엇을 믿을 수 없다는 겁니까?"
월터는 되물었다.
"만일 이 근처에 잠수 작업선이 나와 있지 않다면...... 그리고 계산기가 정확하다면...... 지금 수중 텔레비전에 비치고 있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어요. 50미터나 되는 물짐승이 있다니 들은 적도 없어요!"
"월터, 나는 알고 있어."
던이 이상하게 낮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던 옛 뱃사람이 저런 큰 바다뱀을 여러 번 보았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
월터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건 전설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런 말을 단정해서 할 수 있나?"
던은 웃지도 않고 말했다.
"우리는 바다에 대한 것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2백 미터에서 3백 미터쯤 되는 얕은 바다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다네. 2천 미터, 3천 미터, 아닌 1만 미터의 심해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괴물이 살고 있는지 아직 아무도 확인한 사람이 없어."
월터는 갑자기 강렬한 모험심에 온몸의 퍼가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큰 바다뱀인가요?"
"그런지도 모르지."
"던 벌리!"
느닷없이 월터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부탁입니다. 나에게 저 괴물의 정체를 확인하게 해주십시오!"
"허락한다."
던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대답했다.
"나는 이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겠다. 가능하면 사진을 찍어 와라. 단, 절대로 위험한 짓을 하면 안 된다. 너무 깊이 들어가면 수압이란 무서운 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알았습니다."
월터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엔진을 걸고 그 반사 영상이 있는 쪽으로 순찰정을 몰고 돌진했다. 순찰정은 부르르 떨고 계속 속력을 올렸다. 25노트 -30노트 -35노트 -40노트 -50노트 -53노트 -55노트.

그는 레이더와 텔레비전을, 온몸의 신경을 집중시켜 지켜보고 있었다. 레이더에는 그 기다란 괴물의 모습이 차차 뚜렷이 나타났다. 수중 텔레비전의 스크린에는 강력한 헤드라이트를 받고 도망쳐 다니고 있는 크고 작은 갖가지 물고기들이 쏜살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아직 그 괴물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자칫 잘못해서 상어나 돌고래 같은 큰 물고기에 부딪히면 그 힘으로 순찰정이 날아가거나, 레이더 안테나나 초음파 라디오의 안테나가 부서질 우려가 있다. 그 때 갑자기 레이더 속의 그 괴물이 속력을 내며 각도를 바꾸어 달리기 시작했다. '제기랄! 알아차렸구나.' 월터는 이를 악물었다. 아직 괴물과의 거리는 10킬로미터나 된다. 보통 같으면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월터는 괴물이 이 쪽을 알아차렸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아마 저 녀석은 수중 레이더가 내는 초음파를 잡는 특수 감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위험을 느끼고 도망치는 것이다.' 그는 레이더 스크린을 노려보며 마음속으로 '빨리! 빨리!' 하고 순찰정을 재촉했다. 괴물은 계속 깊은 곳으로 잠수해 간다. 잠깐 사이에 3천 미터나 넘었다. 해저 순찰정이 잠수할 수 있는 깊이는 기껏해야 7백 미터다. 그래도 옛날의 잠수정에 비하면 몇 배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상 깊이 들어가면 물의 심한 압력에 눌려 선체에 금이 가고 힘없이 찌그러지고 만다.
'분하다...... 그러나 되도록 가까이 다가가 더 뚜렷한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괴물의 정체를 확인해야 한다........' 월터는 그렇게 생각하자, 계속 스피드를 내어 곧장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심도계의 눈금이 잠깐 사이에 400미터, 450미터, 500미터 ...... 계속 깊어 간다. 순찰정이 괴물이 있는 곳에서 2, 3 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다가가자 갑자기 해저가 얕아졌다. 해저가 고원처럼 불쑥 솟아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해저의 바위산 사이를 이리저리 헤엄쳐 가고 있는 괴물도 .차차 얕은 곳으로 나왔다.
'됐다!' 월터는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이렇게 되면 더 다가갈 수 있다!' 그는 순찰정의 스피드를 조금 늦추더니, 해저를 향해 계속 내려갔다. 반사 영상이 차차 뚜렷해진다. 월터는 레이더에 뚜렷이 떠오르고 있는 그 괴물의 기분 나쁜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것은 분명히 큰 바다뱀이었다. 전설의 괴물인 큰 바다뱀이었다. 머리에서부터 꼬리 끝까지 족히 60미터는 된다. 몸통의 굵기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아마 가장 굵은 곳이 1미터 반이나 2미터는 될 것이다!
'틀림없이 저 큰 바다뱀은 몇천만 년 전에 지구상에 살아 있던 옛 파충류의 무리일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왔을까. 아마 태고의 물고기 실라칸스처럼 2, 3억 년 전부터 깊은 바다의 바닥에서 조금도 진화하지 않고 살아 온 모양이다.' 월터는 흥분하여 온몸이 근질근질해 옴을 느꼈다. '좋아, 조금만 더 다가가면 망원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세계의 해양학자나 생물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해줄 만한 사진을 찍을 테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레이더에 분명히 비쳐 보이던 괴물의 반사 영상이 갑자기 해저로 빨려 들어가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당황하여 레이더를 여기저기로 돌려보았다. 해저에서는 여러 가지 해저 영상이 튀어 나와 스크린에 비친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그 곳에 있던 그 큰 바다뱀의 모습은 아무 데도 없었다.
"아차!"
월터는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기분으로, 계속 스피드를 내어 큰 바다뱀이 사라진 쪽으로 다가갔다. 그 일대를 강력한 라이트로 비춰 보니까, 큰 바다뱀이 갑자기 사라진 까닭을 알 수 있었다. 그 근처는 10미터 이상이나 되는 해초가 우거져 큰 정글을 이루고 있고, 그 끝이 무섭게 깎아지른 벼랑으로 되어 있었다. 그 벼랑 아래의 골짜기 깊이는 아마 5000미터나 6000 미터...... 아니 더 깊을지도 모른다. 큰 바다뱀은 그 곳으로 들어간 것이다. 아마 그 곳이 그 괴물이 사는 곳인지도 모른다.
월터는 입을 뻐끔 벌리고 있는 그 지구의 틈과 같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골짜기를 바라보니까, 새삼 등골이 오싹했다. 5000미터, 6000미터의 심해. 그 곳은 수압이 600기압이나 되는 무서운 대압력 세계인 것이다. 심해 잠수용으로 만든 특수 소형 잠수함-바티스카프라면 10000미터의 심해라도 잠수할 수 있으나, 보통 잠수선으로는 아무래도 안 된다. 600기압이라는 수압이 너무 세어, 아무리 튼튼하게 만든 선체라도 납작하게 찌부러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큰 바다뱀은 태연하게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이만큼 수압이 다른 곳을 그런 스피드로 왔다 갔다 한다면, 다른 생물 같으면 금방 죽어 버릴 것 이 다. 혈관 속에 자디잔 거품이 생겨, 숨을 쉬지 못하게 되므로 즉사해 버릴 것이다. 아마 그 바다뱀의 몸 속에는 그것을 조절하는 특별 장치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런 장치는 21세기의 과학 기술로도 아직 만들지 못한다. '과학은 아직도 대자연을 당해 내지 못한다......' 월터는 한동안 멍하니 바다뱀의 모습을 삼켜 버린 캄캄한 해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적당히 해 두지. 잠수 한도를 넘어서고 있어."
갑자기 스피커에서 던의 목소리가 들려 와 월터는 정신이 들었다. 깜짝 놀라 보니까, 심도계는 800미터를 넘어서려 하고 있었다. 바다뱀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동안 순찰정은 어느 결에 이렇게 깊은 곳까지 잠수했던 것이다.
"알았습니다!"
월터는 대답하고, 급히 서둘러 순찰정을 반전시켜 상승하기 시작했다.
"역시 놓쳤구나."
던이 분한 듯이 말했다.
"하지만 나는 보았습니다, 던."
월터는 아까 흥분했던 일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분명히 보았어요. 그것은 큰 바다뱀이었어요. 전설에 나오는 그 괴물이었어요!"

그러자 던이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알고 있네."
"알고 있다고요....?"
"나도 지금까지 두 번은 분명히 보았어. 또 한 번은 그다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뭐라고요?"
월터는 점점 다가오고 있는 던의 순찰정의 모습이 레이더 스크린에 비치는 것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인가요, 그게?"
"물론 사실이지."
"그런데 왜 지금까지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자네와 똑같은 이유 때문이지, 월터. 자네는 사진을 찍었나?"
"아뇨...... 못 찍었어요."
"나도 못 찍었네. 증거가 없으면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아.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은 거야, 자기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이 아니면."
던은 피식 웃고 덧붙여 말했다.
"자네한테도 충고해 두겠네, 월터. 만일 환상을 본 것이라고 놀림을 받기 싫거든, 증거를 잡기까지는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하네.“
던은 부드러운 말로 말했다. 월터는 한동안 말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텔레비전에 던이 탄 순찰정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보았는데."
월터는 또 한 번 분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래, 자네도 보았고 나도 보았네. 그러니까 우리 둘은 큰 바다뱀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믿고 있네. 그것으로 됐지 뭔가."
던은 월터에게 타이르듯이 말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둘이서 그 녀석의 정체를 밝혀 내도록 하세. 그 때까지는 우리들의 가슴에 담아 두기로 하고. 해저 세계에서는 무슨 일이나 초조하게 서두르면 안 돼. 알았나, 월터."
"알았습니다, 던.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뒤, 두 사람은 공연히 웃음이 나와 킬킬 웃고 말았다.
 
해저 지진
 
세월이 흘러갔다. 월터 프랭클린은 자격 시험을 보아 보기 좋게 합격, 2등 순찰대원이 되었다. 이제 그 누구에 못지 않은 훌륭한 해저 순찰대원이 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던 벌리가 로우콜 호를 떠나게 되었다. 던은 해저 목장국의 더 높은 자리로 옮기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로 가게 된 것이다.
"축하합니다, 던. 이제는 길에서 만나도 말도 못 붙이겠군요. 아무튼 높은 사람이 되었으니까요."
월터가 농담을 하자, 던은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마! 내가 해저 순찰대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아닌가. 높은 자리에 가게 되었어도 나는 조금도 기쁘지 않다네."
하고 전에 없이 입을 뾰족하게 내밀고 말했다.
"물론 알고 있지요. 농담입니다.“
"아, 미안해."
던은 고개를 끄덕이고 머리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나한테는 바다가 전부야. 그 바다를 떠나 육지에서 서류만 만지고 살 것을 생각하니, 우울해지기만 하는군."
"육상 근무도 역시 해저 목장의 일임에는 틀림없잖아요. 바다와 관계가 끊어지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바다라는 것은 진짜 바다밖에 없네. 잠수하고, 물고기들과 인사하고, 바다 바람의 냄새를 맡고 할 수 있는 바다란 말일세. 해저 순찰정은 내 몸의 일부와 같은 것이네. 그 조종석을 떠나 책상 앞에 앉아서, 서류를 만지거나 회의에서 지껄이거나 하는 일은 나의 성미에 맞지 않는단 말이야."
"물론 그건 알아요, 던. 당신은 진짜 해저 사나이입니다. 우리 역시 언제까지나 당신이 이 곳에 있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나를 어엿한 한 사람의 해저 순찰대원으로 키워 준 사람은 당신입니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보나마나 보잘 것 없는 대원이 되었을 겁니다."
월터는 거기서 던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당신은 이제 해저 순찰대원으로서가 아니라 저 목장의 발전을 위해, 더 큰 일을 할 사람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해 가도록 이끄는 해저 목장의 간부가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장도 일부러 당신을 부른 것이 아닙니까?"
"알고 있네. 알고 있어, 월터."
던은 두 손을 흔들며 방안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나는 철부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네. 나는 바다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알아야 할 일은 다 알면서도........"
"나도 압니다, 그 기분을. 만일 내가 당신이었더라도 역시 당신과 같은 말을 했을 테니까요."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어쩐지 쑥스러운 생각이 들어 히죽이 웃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 이윽고 내일은 던 벌리가 로우콜 호를 떠나는 날이 되었다. 내일은, 아침나절에 로우콜 호의 수직 이착륙 제트기로 떠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 있는 태평양 해저 목장 본부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던은 그 마지막 날까지 해저 순찰의 일을 쉬려고 하지 않았다.
"던...... 오늘은 좀 쉬고 누구든 다른 사람과 교대하는 게 어떨까요? 당신을 위한 일이라면 누구나 다 싫단 말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월터가, 부지런히 잠수 고무 옷을 입고 아쿠아렁을 메려고 하는 던에게 말했다.
"게다가 내일은 아침 일찍 떠나야 하잖습니까. 오늘 하루쯤은 좀 여유를 가지고 로우콜 호와 석별의 정을 나누는 것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월터."
던은 덤벼들 듯이 말했다.
"해저 순찰대원은 몸이 나빠지지 않는 한, 만일 부모나 자식이 병에 걸려도, 규칙에 근무를 쉴 수 없게 되어 있어. 그런 것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월터?"
"그런 자로 잰 듯한 공식적인 말만 하고......"
그러자 던은 히죽 웃었다.
"아니야. 사실은, 이 마지막 해저 여행의 기회를 아무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을 뿐이야. 로우콜 호에 오늘 하루밖에 있을 수 없다면, 해저 순찰을 하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좋아. 자, 가세."
"갑시다."
월터도 웃으며 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더니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도크에서 순찰정을 꺼내어 타자, 엔진을 걸고 차례로 바다 속으로 잠수해 갔다. 그리고 예정 코스를 달렸다. 도중에, 해저 목장의 일부인 해저 양식장으로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잠수 어선대를 만났다. 20세기말부터 대부분의 어선은 거의 다 잠수선을 쓰게 된 것이다.
잠수 어선에는 여러 가지 형이 있다. 거대한 괴물 고래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모양을 한 대형 잠수 어선. 이 배는 물고기의 무리를 만나면 이물에 있는 큰 입을 딱 벌리고 바닷물 째 물고기를 삼켜, 고물로 바닷물만 내보내어 물고기를 잡는다. 선복에 물고기를 모으는 특수한 광선---집어등을 달아, 다가오는 물고기를 커다란 흡입구로 빨아들이는 형의 어선. 그밖에 잡는 물고기의 종류에 따라 여러 가지 형의 어선이 있다. 던과 월터는 엇갈려 지나가는 어선단을 향해 초음파 라디오를 통해 인사를 했다.
"안전한 항해와 대어를 빕니다."
어선단에서도 곧 회답이 왔다
"고맙소. 순찰대원, 수고하시오."
어선단과 헤어지자 두 사람은 곧장 순찰 코스를 향해 속력을 냈다. 그 날의 순찰 중 던은 수중 텔레비전을 켜고, 한동안 헤어지게 될 바다 속의 광경을 싫도록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벌써 수백 번도 더 보아 온 바다 속의 광경이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싫증은 커녕, 볼 때마다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한 광경을 보여 주었다. 정말이지, 바다 속은 뭍 위에는 절대로 없는 동화의 나라와 같은 별세계이다 해저에서 치솟은 산들, 깎아지른 벼랑, 우거진 해초의 정글, 그 속을 헤엄쳐 다니고 있는 수없이 많은 바다의 생물들. 더구나 이 파란 환상의 세계는, 21세기의 발달한 과학의 힘으로도 불과 일부밖에 모르고 있는 신비의 세계이며, 훌륭한 자원이 무수히 묻혀 있는 자연의 보물국이기도 하다. 순찰이 거의 끝나 가고 있을 때였다. 까앙. 던은 약간의 진동이 물 속을 통하여 순찰정의 동체에 와 닿는 것을 느꼈다.
"엇......?"
그렇게 생각한 다음 순간, 선체를 큰 망치로 힘껏 얻어맞은 듯한 무서운 충격이 전해져 왔다.
"앗! "
좌석에 충격을 받고, 던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무엇일까요, 지금 그게?"
월터가 라디오를 통하여 소리쳤다.
"폭뢰의 폭발 같지? 어딘가 이 근처에서 해저 공사라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뇨, 그렇다면 미리 통지가 있었을 겁니다.“
하고 말했을 때, 다시 무딘 충격이 전해져 왔다.
던은 순간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은 폭발이 아니다. 지금 것은 지진이다, 해저 지진이다! "
던은 큰 소리로 외쳤다.
 
무너지는 산
 
해저 지진. 담이 세기로 알려진 던 벌리도 온몸의 피가 싹 걷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해저에 있는 화산의 대폭발이거나, 해저의 지반이 무너져 산사태를 일으켰기 때문에 생기는 지진인 것이다. 해저의 지진은 지상의 지진보다도 더 무섭다. 왜냐 하면 물이 무서운 힘으로 밀리기 때문에 물 속으로 심한 충격의 파도가 치솟아 온다. 그 파도에 휩쓸리면 무엇이나 다 박살이 나 버리는 것이다.
던은 몇 년 전에 해저 지진의 충격파를 맞아 1만 톤이나 되는 잠수 화물선이 마치 빈깡통처럼 납작하게 찌그러져 침몰한 가슴 아팠던 사건이 생각났다. 더구나 지금의 지진은 아무래도 꽤 크며, 진원지도 가까운 모양이다. 이번에 큰 충격파를 맞으면 위험하다.
"월터, 전 속력으로 떠올라라. 강한 충격파에 휩쓸리면 조종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런 조그만 순찰정은 단박에 찌부러지고 만다!"
그는 소리치자마자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다음의 충격파가 밀려 왔다. 던은 순찰정과 함께 마구 휘둘렸다. 그러면서도, 수중 텔레비전을 힐끔 쳐다보니까, 그 곳에는 무서운 광경이 비쳤다. 해저의 진흙이 충격파에 의해 끌려 올라와 회오리바람처럼 솟아오르다니, 폭풍우처럼 번져 갔다. '이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에는 수중 레이더로 눈을 돌렸다. 그 순간 또다시 그는 심장을 큰손으로 곽 잡힌 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레이더에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비쳤다! 그것은 언뜻 보면 무엇인지 잘 알아볼 수 없는, 뒤죽박죽이 된 모습으로 보였다. 그러나 던의 숙련된 눈에는 곧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바위, 진흙, 해초 등이 뒤섞인 것이었다. 바로 눈앞에 치솟아 있던 해저의 고산이 지금의 지진으로 인해 허물어져 가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서둘러라, 월터!"
그는 라디오를 향해 소리쳤다.
"넓은 곳으로 도망쳐라, 산이 무너진다. 전 속력으로 도망가라!"
"알았습니다!"
월터의 순찰정이 자꾸만 퍼져 오는 진흙의 안개 속으로 삽시간에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던은 엔진을 최대한으로 돌렸다. 텔레비전은 지금 수억 톤, 수십 억 톤이 될지도 모르는 바위와 진흙이 한꺼번에 휩쓸려 내려오는 무서운 광경을 뚜렷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속도가 느려, 마치 슬로모션의 영화라도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의 표면에 큰 금이 가고, 그것이 차차 여러 가닥으로 나뉘더니, 많은 바위가 되어 거대한 폭포처럼 떨어져 오고 있었다.
"빨리, 제기랄, 빨리!"
던은 미친 듯이 엔진의 분사 버튼을 눌렀다. 해저 순찰정은 온 힘을 다해 무서운 물의 흐름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거의 움직이고 있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폭포는 차차 던의 머리 위로 덮치듯이 천천히 쏟아져왔다. 순찰정의 선복을 통하여 바다가 굽이치는 소리가 쏴아쏴아 들려 왔다. 진동 때문에 모든 것이 덜컹덜컹 무섭게 흔들리고 있었다. 수중 레이더도, 수중 텔레비전도 이제 아무 소용이 없었다.
뜨거운 진흙 안개가 순찰정을 감싸 버려 1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꽈과광. 무서운 소리와 진동이 함께 일어나 순찰정을 마구 뒤흔들었다. 던은 순찰정의 좌석에서 힘껏 내동댕이쳐져 계기반에 머리를 처박았다. 머리에서 피가 뿜어 나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리가 어딘가에 끼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순찰정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천장이 아래로 오고, 바닥이 위로 어슷하게 기울었다. 완전히 자유를 잃고 만 것이다. 끼기긱, 삐걱. 금속이 심하게 뒤틀리고 구부러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 제 끝장이다........' 그는 점점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철썩! 갑자기 던의 얼굴에 무서운 기세로 물이 쏟아졌다. 깜짝 놀라 보니까, 눈앞의 벽이 이음매에서 부서져 바닷물이 굵은 몽둥이처럼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다음 순간, 던 벌리는 소용돌이치는 바닷물 속에 머리까지 잠기고 말았다.
 
절 망
 
한편 월터 프랭클린의 순찰정은 맹렬한 기세로 바다 속을 떠내려가고 있었다. 컨트롤은 전혀 듣지 않았다. 월터는 몇 번이고, '이제 끝장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윽고 무서운 소리와 끊임없는 충격이 멈추고 순찰정은 가까스로 자유를 되찾았다.
'살았다!'
이렇게 생각하자, 월터는 곧 수중 레이더로 던의 순찰정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헛일이었다. 물이 너무 흐려 반사 영상이 제대로 비치지 않아서 아무 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초음파 라디오를 최고로 조정하고, 던을 되풀이해서 불렀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아마 아직도 충격파에 휘둘리고 있어, 들리기는 하나 대답할 틈이 없는 모양이다.' 하고 월터는 생각했다. 이윽고 그의 순찰정은 완전히 안전한 곳까지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수압에 눌릴 위험도 없고, 흐름에 휘둘릴 우려도 사라졌
 다. 수중 레이더도 가까스로 작용하게 되었다. 원자 폭탄의 버섯구름처럼 펼쳐져 있던 진흙 구름도 차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월터는 또 초음파 라디오를 켜고 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대답이 없었다. 그의 가슴속에 처음으로 심한 불안이 솟아올랐다. '혹시...... 혹시 던은 그 산사태에 깔린 것 아냐?' 월터는 차차 가라앉고 있는 진흙 안개 주위를 빙빙 돌며 열심히 수중 레이더를 조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도 던의 순찰정의 반사 영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지금의 해저 지진으로 무참히 입을 뻐끔 벌린 산사태 뒤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다. 그것은 마치 해저에 사는 거대한 괴수가 설친 뒤의 손톱 자국처럼 보였다. 그것을 본 순간, 무서운 절망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도려냈다. 그 때 비로소 그는 던의 순찰정이 그 산사태 밑에 깔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 던, 던 벌리...... 당신은 죽었단 말이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슬픔과 절망이 치솟아 올랐다. 월터는 조난 신호인 신호탄을 물 속으로 쏘았다. 신호탄은 물 속에서 폭발했다. 그 울림은 멀리 로우콜 호 기지의 수중 레이더까지 다다를 것이다. 이 소리를 들으면 곧 로우콜 호에서 구조대가 출동하기로 되어 있었다. 월터는 계속 신호탄을 쏘아 대면서도 수중 레이더의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던이 어딘가에서 신호를 듣고 SOS 신호를 보내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던 벌리로부터의 연락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던, 던, 대답을 해요!"
월터는 마이크에 대고 소리쳤다.
"당신이 죽다니! 내일부터 육지에서 근무하게 된 이 때, 바다 속에서 죽다니......! 아, 던, 돌아와 줘요, 살아 돌아와 줘요!"
월터는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눈물이 왈칵 솟아 나와, 양쪽 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신호탄을 계속 쏘아 대면서 큰 소리로 고함쳤다. 그는 바다가 밉고 또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친구를 빼앗아 간 무자비한 바다가!
 
비상 소집
 
이윽고 월터가 쏜 조난 신호를 듣고 로우콜 호에서 경비선, 잠수 구조선, 헬리콥터 등이 속속 날아왔다. 곧 수색이 시작되었다. 그 날 낮과 밤까지 수색은 계속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헛일이었다. 바다는 던 벌리를 삼킨 채 다시는 되돌려 주지 않았다. 아마 던은 수억 톤의 암석 밑에 파묻혀 버린 모양이다. 열심히 수색하였는데도 잔해마저 발견되지 않았다.
수색대원은 일주일 뒤, 이양과 수색에서 손을 떼었다. 로우콜 호로 돌아온 월터는 다른 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로 초췌해져 있었다. 누가 무엇을 물어 보아도 그는 제대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기 방으로 돌아오자 침대에 쓰러져 그 뒤로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이삼 일이나 틀어박혀 있는가 했더니, 갑자기 방에서 나와 '도시'로 가더니 혼자서 술을 퍼마시고 곤죽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방안에 틀어박혔다.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근무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친구 던이 죽어서 자포자기하고 있는 거야. 당분간 못 본 체해 두자. 그러다 보면, 마음을 잡고 다시 옛날의 월터로 돌아오겠지."
이해심이 있는 노턴이 그렇게 말하고 월터에게 휴가계를 내 주었다. 그러나 월터로선 이제 전에 하던 일을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월터는 침대에 누운 채 같은 말을 되풀이하여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만큼 운이 나쁜 녀석도 없다. 나 같은 건 죽는 게 낫다. 아, 왜 던 대신 죽지 않았을까..'
그는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그 우주에서의 무서운 사고를 다시 생생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우주. 그것은 월터에게 있어 그 무렵, 값어치 있는 유일한 세계였다. 우주에서 반짝이는 수없이 많은 별들을 바라보고, 벌겋게 타오르는 태양을 보고, 아름다운 초록빛으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보는 일은 그의 최고의 기쁨이었다. 우주선의 조종간을 잡고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소중한 우주였는데...... 운명은 그 기쁨을 그에게서 깨끗이 빼앗아 간 것이다. 그 때, 그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졌었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마음으로 있던 그에게 다시 한 번 사는 기쁨을 가르쳐 준 것이 바다였다. 친구인 던 벌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너무도 참혹한 시련을 가져다주었다. 모처럼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마음이 생기는가 했더니 -그 바다가 이번에는 그에게서 자기의 생명보다도 소중한 던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싫다. 이제 나는 바다 따위는 다시 보고 싶지 않다!"
월터는 침대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소리쳤다.
"이제 나는 해저 순찰대 따위는 진저리가 난다!"
해저 순찰대원을 그만둔 뒤, 무엇을 하면 될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무래도 좋았다. 친구 던을 죽인 바다와 인연을 끊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쯤 지났을 때였다. 로우콜 호의 배 안에 갑자기 요란한 비상 소집 버저가 울려 퍼졌다.
"해저 순찰대원은 곧 사령실로 집합하라."
월터는 자기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복도를 요란스럽게 달려가는 순찰대원의 발소리가 들려 왔다. 이런 비상 소집은 어디서 큰 사고나 조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있는 것이다. 월터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침대에서 뛰어나와 출동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해저 순찰대원의 본능 같은 것이다. 그러나 곧 알아차리고, 그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누가 어디서 조난을 당하건 내가 알 바 아니지. 나는 이제 순찰대원을 그만두는 거다. 나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 아닌가.' 그는 자기 스스로 비웃었다. 그 때였다. 월터의 마음속에 던 벌리의 모습이 분명히 떠오른 것이다, 던은 그 명랑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나, 월터. 빨리 하지 않으면 집합에 늦어.' 월터는 가슴이 섬뜩하였다.
'그렇다...... 만일 던이었다면 이런 때 어떻게 행동하였을까.' 그는 처음으로 그 일을 생각했다. 바다는 분명히 그의 유일한 친구를 죽였다. 그리고 그 바다는 지금 또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 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를 바다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오는 일이야말로, 바다에 대한 바다 사나이의 가장 멋진 복수가 아닌가? '알았어요, 던. 나는 갑니다.'
월터는 힘차게 일어났다. 그리고 이제 조용해진 복도를 걸어, 모두가 모여 있는 사령실로 향했다. 그것은 역시 조난선으로부터의 SOS였다. 해저 광산국의 작업 잠수선 돌핀 호가 400미터 해저에서 조난을 당하여 구조 신호를 보내 온 것이었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광업은 육지에서 바다로 옮겨졌다. 대륙붕이라고 하는 심해 쪽으로 선반처럼 돌출 된 부분이 있는데, 그 곳에는 육지와 똑같이 여러 가지 광물 자원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대륙붕에서 석유, 석탄, 그 밖의 광물을 파내는 해저 광업이 매우 성하게 이루어졌다. 돌핀 호도, 역시 해저에서 석유를 찾아내는 잠수 작업선이었다.
돌핀 호는 해저에서 큰 유전을 발견하여 그것을 파고 있었는데, 갑자기 뿜어져 나온 고압 가스를 정면으로 맞은 것이다. 그래서 잠수선의 크레인이 커다란 바위 사이에 끼여 꼼짝도 못 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더구나 그 때 원자로가 고장을 일으켜 전력이 모자라게 되었다. 이 상태로는 공기가 나빠져, 40명이나 되는 승무원은 질식해 죽어 버리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운이 나쁘게도 이런 조난의 경우에 곧 출동하는 대형 해난 구조선이 인도양에 나가 있었다. 전 속력으로 달려와도 나흘은 걸린다.
나흘이 지나면 돌핀 호의 승무원들의 목숨은 끊어지고 만
 다. 이미 현장에 도착한 해저 순찰대는 곧 구조에 나섰다. 우선 용접기가 설치된 해저 순찰정이 크레인을 녹여 끊으려고 했다. 그러나 크레인은 녹여서 끊기에는 너무나 컸다."이것으로는 안 됩니다.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현장으로부터의 보고를 받은 로우콜 호의 선장은 모든 사람을 모아 놓고 말했다.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한 가지 있습니다.“
월터가 말했다.
"누가 바닷속으로 잠수해 들어가 크레인에 폭약을 장치하여 폭파시키는 방법입니다.“
"그건 알고 있네. 그러나 돌핀 호가 조난을 당하고 있는 곳은 약 400미터 해저이다. 즉 40기압이나 된다. 이렇게 무서운 기압이 있는 곳에 잠수하면 어떤 사람이건 즉사해 버리고 만다.“
"보통 공기를 쓰면 물론 안 됩니다. 그러나 적당한 혼합 가스를 쓰면 문제없습니다.“
월터는 말했다.
"그 가스는 던 벌리와 제가 연구한 것으로, 실제로 실험도 끝났습니다. 우리는 둘이서 450미터까지 잠수한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냥 잠수만 했다가 곧 돌아온 것이겠지?"
"폭약을 장치하는 정도의 일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일이다. 누구에게 시킬 참이냐?"
"물론 제가 합니다.“
월터는 딱 잘라 말했다.
"저를 제트기에 태워 현장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그리고 수중 지프와 함께 내려 주십시오. 어서요!"
로우콜 호의 선장은 한동안 월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40명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다. 그럼 부탁하네, 월터 프랭클린.“
 
결사적인 작업
 
그러고 나서 잠시 후에, 월터를 태운 수직 이착륙 제트기는 현장의 상공에 도착했다. 제트기는 해면이 닿을락 말락한 곳까지 내려가 공중에서 멈췄다.
"조심해서 가게.“
기장이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알았어요. 그럼 수중 지프를 내려 주시오.“
그는 특수 가스가 든 아쿠아렁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그리고 가스 중독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수소 이온 정제를 마시고, 다시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주사를 맞았다. 400미터의 해저는 0도에 가까울 정도로 차기 때문이다. 월터는 수중 지프를 타고 앉아 천천히 해저를 향해 내려갔다. 처음에는 밝은 파란빛이던 바다 속은 이내 검은 초록빛으로 바뀌었다. 햇빛이 물에 차단되어 빛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초록빛이 보랏빛으로 바뀔 무렵부터 사방이 굉장히 흐려져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해저 유전에서 새어 나오는 기름이 바닷물을 흐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월터는 초음파 라디오를 사용하여, 제트기와 연락하여 돌핀 호의 위치를 알아보아 가며 전진했다. 10미터쯤 잠수하고 잠깐 쉰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압이 바뀌기 때문에 머리가 핑핑 돌게 된다. 100미터쯤 잠수한 뒤, 월터는 비로소 특수 가스의 봄베로 교체했다. 그 근처까지 오자, 이미 사면은 캄캄해졌다. 머리에 단 강력한 헤드 램프로도 기껏해야 2, 3미터 앞밖에 보이지 않는다. 200미터까지 왔을 때, 그는 잠깐 수중 지프를 멈췄다. 이제 몸의 움직임이 몹시 무디어졌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수압이 높아진데다 가스 때문에 머리의 움직임이 둔해진 것이다. 어쩐지 머리가 멍해지고, 자기가 지금부터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를 잘 생각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상태다. '이래서야 어디 되겠나! 힘을 내라, 월터!' 그는 스스로를 나무랐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자꾸 깊이 잠수해 갔다. 갑자기 귓가에서 누군가의 큰 소리가 들렸다.
"프랭클린, 자네는 벌써 현장 가까이 갔네. 앞으로 2분만 있으면 돌핀 호의 크레인에 닿는다. 다행히 해류 때문에 물이 맑아졌으니까 이제 곧 크레인이 보이게 될 것이다."
제트기 기장의 목소리였다. 그는 깜짝 놀라 앞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뭔가 기다란 그림자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크레인이다!
그는 수중 지프를 크레인 옆으로 몰고 가, 차차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거대한 고래와 같은 돌핀 호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월터는 폭약을 장치할 장소를 찾았다. 너무 선체 가까이 장치하면 돌핀 호가 위험하다. 그렇다고 너무 먼 곳에 장치하면 폭파가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는 고생 끝에 폭약 하나를 크레인의 이음새에 잡아매었다. 또 하나가 있다. 월터는 다음 장소를 찾아 환상의 세계와 같은 바다 속을 돌아다녔다. 갑자기 그는 자기가 몹시 지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손에 들고 있는 폭약이 너무 무거워 내동댕이치고 싶었다.
"힘을 내라, 프랭클린!" 귓가에서 누군가가 소리치고 있다.
"야, 무엇을 꾸물거리고 있나. 빨리 하지 않으면 안돼! 조금만 참으면 된다. 잠들지 마! 자면 안 돼. 이 잠꾸러기야!"
그 목소리는 무섭게 큰 소리로 외쳐 대고 있었다.
'아, 그렇지......'
월터는 또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수 가스 때문에 여기까지 오기는 했으나, 역시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아는 제트기의 기장이 그를 잠들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마구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월터는 그대로 잠이 들과 말았을 것이다. 잠이 들면 죽어 버린다. 그리고 그가 죽으면 돌핀 호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월터는 필사적으로 잠과 싸우면서 두 번째 폭약을 장치했다. 그 때는 이미 반쯤 잠들어 있었다.
"좋아, 그것으로 됐어. 월터, 빨리 그 곳을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폭발로 날아가 버린다. 목숨이 아깝거든 빨리 그 곳을 떠나."
"아...... 하지만 이제 졸려요. 이대로 자게 나를 내버려둬요."
"이 바보야! 빨리 비켜! 비키라니까. 안 들려, 이 느림보 바보야!"
"알았어요, 비키겠소, 비키면 될 것 아니오."
월터는 마지못해 손발을 움직여 수중 지프를 탔다. 스위치를 넣으니까 지프는 물 속을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월터는 계기에 기대듯 하고 잠이 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강한 충격이 두 번 덮친 일이었다.
그것은 월터가 장치한 폭약이 제트기로부터의 라디오 컨트롤로 폭발한 충격이었던 것이다. 폭발은 아주 멋지게 크레인을 셋으로 잘라 버렸다. 크레인이 부서져 떨어지자, 그 때까지 해저에 눌려 있던 잠수 작업선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뭉게뭉게 솟아오른 해저의 진흙 속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폭파 작업은 보기 좋게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월터는 아무 것도 몰랐다. 그는 의식을 잃고 수중 지프에 기댄 채 둥실둥실 떠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해상에서는 해저 순찰정이 그를 맞으러 다가오고 있었다 월터가 분명히 의식을 되찾은 것은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였다. 그 때 그는 아직 해면에서 100미터 아래의 바다 속에 있었다. 그 곳에는 그를 위해 쇠로 된 허파가 대기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몸 속에 스며들어 있는 가스를 빼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잠수병에 걸려 죽어 버리기 때문이다.
월터는 아직도 17시간 동안이나 그 쇠의 허파 속에서 통조림이 되어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만족했다. 폭파가 성공하여 돌핀 호를 구해 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을 떴을 때, 쇠의 허파 속에 넣어 두었던 텔레비전 전화에 해저 목장국 장관이 나타났다.
"자네 덕분에 40명의 목숨과 돌핀 호가 구제되었다. 모두 자네한테 고마워하고 있네. 아니 온 세계가 자네의 기술과 용기를 찬양하고 있네."
"아닙니다, 나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장관님.“
그는 쇠의 허파 속에 누운 채 대답했다. 그리고 눈을 감으니까, 던 벌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신 덕분이오, 던........"
월터는 그 환상을 향해 이야기하였다.
'이것으로 나는 다시 한 번 바다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소. 나는 당신 몫까지 일할 거요. 던, 고맙소!'
마음속으로 그렇게 소리치는 월터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었다. 그것은 기쁨과 슬픔이 섞인 뜨겁고 뜨거운 눈물이었다.
 
 
작품 해설
 
우주와 인간에 대한 애정의 작품들 - 추락한
 
이 이야기의 원제목은 「홉킨스의 수기」이며, 1939년에 영국에서 출판된 책입니다. 1939년이라면 제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난 해인데, 이 책은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출판 된 것입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은 갑자기 일어난 것인 아니라, 꽤 오래 전부터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이 있어 유럽은 불안에 싸여 있었습니다. 도이칠란트의 히틀러가 독재 정치를 하여, 언론과 사상의 자유를 국민으로부터 박탈하고 있었습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민주주의 국가도, 도이칠란트와 같은 파시즘의 나라를 억누를 만한 힘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게다가 세계적인 불경기의 영향을 받아 국민 생활이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즉, 세계는 불안한 분위기에 휩싸여 평화가 언제 깨질 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작가는 이런 분위기를 남달리 느끼고 전쟁이라는 대 사건 대신, 달이 지구에 추락한다는 대 이변을 테마로 다루었습니다. 달이 추락해도 지구는 괴멸되지 않고, 그 대신 달이 추락했기 때문에 대서양은 육지가 되어 버립니다.
그로 인해 일어난 홍수도 수습되고 가까스로 살아 남은 사람들은 도시나 마을의 재건에 착수합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증오를 잊고 힘을 합쳐 이번에야말로 평화로운 세계를 이룩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추락한 달에 중요한 자원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또다시 사람들은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 그 자원을 둘러싸고 전쟁을 하게 됩니다.
작가 로버트 세리프는 영국이 자랑하는 유명한 극작가입니다. 셰리프는 1896년에 영국의 킹스턴에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그는 전쟁에 나갔습니다. 즉 그는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체험한 사람입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어느 보험 회사에서 일하였는데, 틈틈이 극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완성된 극은 제 1차 세계 대전 떼 서부 전선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소재로 한 「여로의 종말」입니다. 이것은 1929년, 런던에서 상연되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뒤로는 극작가로서 여러 개의 작품을 썼는데, 한편시나리오 작가로서도 활약했습니다. 그가 각색한 시나리오로는 「투명 인간」(원작자 웰즈), 「굿바이 미스터 칩스」(원작자 힐튼) 등이 있습니다. 소설가로서는 「녹색의 문」, 「존 왕의 보물」 등 6권의 소설을 썼는데, SF는 이 책 한 권뿐입니다. SF는 크게 두 부문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과학적인 이론이나 사실에 바탕을 두어 충실하게 쓰는 것으로, 그 대표적인 작가는 질 베른입니다. 또 하나는, 과학적인 이론이나 사실 등에 너무 구애받지 않고 쓰는 것으로, 이 부분에는 풍자적인 것과 유토피아 물이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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