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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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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계 방위군-에드워드 스미스 E. E. Smith 지음-최 미나 옮김
2021년 09월 22일 20시 49분  조회:483  추천:0  작성자: 강려
 은하계 방위군
 
에드워드 스미스 E. E. Smith 지음
최 미나 옮김 / 이 협 그림
 
<차례>
 
1. 프롤로그··················· 3
 
2. 은하계 방위군················ 23
 
해적선 나타나다················· 23
인공 행성···················· 47
시카고 호 출동················· 67
붉은 행성의 비밀················ 78
탈출 계획··················· 100
괴어의 습격·················· 120
붉은 베일의 수수께끼·············· 129
초광속 우주선 보이스 호············ 137
우리 속···················· 141
피츠버그의 싸움················ 147
대 폭 발···················· 158
V2 가스 작전················· 170
도 킹····················· 191
 
작품 해설··················· 209
1. 프롤로그
 
미래에의 메시지
 
은하계 방위군 장관
버질 샘스
 
그대들, 선택된 지구의 젊은이들에게 이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길었던 일생을 마치려 하고 있다.
이 때를 맞아 나는 그대들,
선택된 지구의 젊은이들,
렌즈의 젊은이들에게 이 글을 남기고자 한다.
그대들은 알고 있겠지?
우리 은하계(銀河系)의 위기를 몇 번이나 구해 준 영웅의 이름을, 렌즈맨의 이름을.
콘웨이 코스티건
프레드릭 로드브슈
라이먼 클리블랜드
그들은 나의 좋은 동료, 훌륭한 오른팔이었다.
나는 방위군 기지인 <힐>에서 그들의 활약을 소상하게 보아 왔다.
우주를 침범하여 소란을 피우고 다니는 해적들과 그들이 어떻게 싸웠는가.
붉은 행성 네비아의 습격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견디었는가.
그대들 선택된 렌즈의 젊은이들에게,
그대들 미래의 방위군을 이어받을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활약을 소상하게 전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전에 그대들이 반드시 알아야만 할 비밀이 있다.
그것은 지구의, 아니 은하계 역사상의 중대한 비밀이다.
아마도 이 비밀은 그대들에게 큰 충격을 줄 것이다.
그대들이 지금까지 배워 온 것이 눈앞에서 와르르 무너져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선택된 렌즈의 젊은이들이다.
그 충격에 이겨 낼 힘과 그것을 극복해 나갈 용기를 틀림없이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대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끝없는 우주의 역사에서 보면, 우리 지구의 역사는 우주에 떠 있는 한낱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구의 역사는, 우주에 떠 있는 하나의 티끌이 우주의 일부이듯이 우주 역사의 한 장면인 것이다.
지구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대들의 아버지나 어머니, 형님이나 누님, 그리고 누이동생이나 남동생도 그것을 모른다.
그러나 그대들은 지금 그것을 알려고 하고 있다.
그대들이 배워 온 지구의 역사에는 어떤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비밀이란?
지금 그것을 그대들에게 알리는 것이 나의 의무다.
그대들이여,
눈을 감아 다오
그리고 그대의 뇌수에서 모든 기억(記憶)을 지워 새하얀 페이지로 만들어 다오.
자, 그럼 지금 그대는 20억 년 전의 과거로 거슬러올라간다…….
 
20억 년 전…….
넓고 넓은 우주의 한쪽 구석에 두 은하계가 있었다.
두 은하계에는 각각의 은하계를 지배하는 두 종족이 있었다.
하나를 알리시아라고 하고,
또 하나를 에도르라고 했다.
두 별에 사는 두 종족은 서로가 그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
알리시아는 지각(地殼)도 대기도 지금의 지구와 비슷한 별이었으므로, 그 곳에 사는 알리시아 인도 지금의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은하계에는 알리시아 사람의 생명의 씨가 뿌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지구와 같은 행성에 알리시아 인과 비슷한 종족이 태어났다.
지구인도 그 하나이다.
바꿔 말하면, 알리시아 인은 지구인의 먼 조상(祖上)인 것이다.
알리시아는 원시 시대부터 문명을 발달시켜 나갔다.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강철 시대, 전기시대.
알리시아의 흐름을 갖는 지구에서도 같은 발전을 거쳐왔다는 것은 그대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에도르는 질척질척한 거대한 덩어리로서, 대기는 독을 품고 있었다.
그 별에 살고 있는 에도르 인은 알리시아 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어떤 모습으로도 변할 수가 있었다. 크게도 작게도, 물렁물렁하게도 단단하게도, 손가락 발가락이 있는 손발이건 더듬이이건, 무엇으로나 변할 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죽지 않았다. 지구의 세월로 쳐서 몇 십만 년이나 살다가 마음이 늙으면 둘로 분열되어 다시 젊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냉혹하고 탐욕스럽고 잔학했다.
자기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살육이라도 태연히 해치웠다.
그들의 목로는 권력(權力)이었다.
그 옛날 에도르의 은하계에는 온갖 종족이 있었으나, 모두 권력을 추구하여 서로서로 살육하다가 마침내 지금 에도르라 불리는 종족만 살아남은 것이다.
에도르 인은 자기네 별을 지배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네 별을 우주선처럼 섬우주로부터 섬우주로 이동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네가 권력을 떨치고 지배할 수 있는 행성을 많이 갖고 있는 섬우주를 찾아 우주를 표류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새로운 섬우주를 발견했던 것이다.
에도르의 왕과 그 충실한 부하인 갈렌은 매우 기뻐했다.
그 곳에는 이미 수많은 행성이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많은 행성이 생겨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에도르 왕과 갈렌이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의 권력욕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 섬우주에 알리시아 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무수한 별무리 속에 우리 지구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부터 약 20억 년 전의 일이다.
그 무렵 알리시아 인은 원자 에너지를 이용함으로써, 이미 모든 육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마음으로 눈을 돌렸다. 마음과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을 배웠다. 즉 텔레파시였다.
다시 마음을 자유로이 다른 생명체로 들어가게 하는 것을 배웠다.
알리시아 인의 마음은 우주를 자유로이 떠돌았다.
 
그러다가 어느 때 마침내 그 마음의 하나가 에도르 인의 마음과 접촉했다.
그것은 바로 알리시아의 젊은이, 엠필리스터의 마음이었다.
젊은이는 에도르의 마음에 닿자 깜짝 놀랐다.
이 우주에 지성(知性)을 가진 다른 생물이 있다!
그것은 놀람과 동시에 기쁨이었다. 그는 에도르의 마음에 자기 의견을 전달했다.
'나는 알리시아의 젊은이 엠필리스터요. 당신들과 알게 되어 반갑소.'
그가 접촉한 것은 에도르의 왕이었다. 왕은 엠필리스터의 말을 듣고 화를 냈다.
'닥쳐라, 나는 에도르의 왕이다. 우리에게 항복하라. 그러지 않으면 너희들의 종족은 몰살될 것이다!'
엠필리스터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무서운 마음과 접촉한 일이 지금껏 없었던 것이다.
엠필리스터의 마음은 즉시 알리시아로 돌아갔다. 자기 혼자서는 이 무서운 상대를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 몰랐다.
그는 알리시아의 장로(長老)인 멘터에게 물었다.
"장로님, 저 무서운 자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장로 멘터는 대답했다.
"그들의 마음에서 우리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것이다. 그 일은 내가 맡겠다."
그리고 멘터는 에도르의 마음에서 알리시아인 엠필리스터의 기억을 지워 버렸다.
이렇게 하여 에도르 인은 금방 일어난 일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이 우주에 자기네 이외의 종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끗이 잊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알리시아에서는 장로를 둘러싸고 회의가 열렸다.
먼저 젊은이 엠필리스터가 질문했다.
"장로님, 왜 장로님께서는 그와 같은 무서운 종족을 심력(心力)으로 죽여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가 없다. 에도르인의 마음은 그만큼 강한 것이다. 그들을 죽일 수 있게 되려면 긴긴 시간이 걸리겠지. 그 동안 그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려서는 안 된다."
"긴긴 시간이라면 어느. 정도일까요?"
"5천 년, 아니 1만 년일지도 모른다. 그 때까지 태양계 제 3행성, 즉 앞으로 지구라고 불리게 될 행성에 우리들보다 뛰어난 종족이 생겨나게 된다. 그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에도르를 멸망시켜 줄 것이다. 그 때까지 우리는 지구를 지켜 주어야 한다.
엠필리스터, 그대는 지금부터 지구의 감시자로서 지구를 관찰하고, 지구에 위기가 닥쳐왔을 때는 즉각 나에게 알리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장로님. 지금부터 저는 지구의 감시자로서의 임무를 열심히 수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수천 년이 지났다…….
수만 년이 지났다 …….
 
태양계 제 3행성 지구는 냉각되어 응고되었다. 그리 생명이 태어나 진화(進化)했다.
원시 시대부터 철기 시대, 그리고 전기 시대로 진보하였다.
에도르는 지구에 생명이 생겨날 무렵부터 앞잡이들을 침입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네가 지배하기 쉽도록 지구의 문명의 진보를 저지해 왔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들의 예상에 반해 지구의 문명은 착착 진보되어 나갔다. 실은 알리시아의 장로 멘터가 지구 문명의 진보에 힘을 빌려 주고 있었던 것인데, 에도르는 물론 그것을 알지 못했다.
에도르 왕은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화가 났다. 그래서 갈렌을 불렀다.
"지금까지 해 온 것 같은 그런 뜨뜻미지근한 방식은 안 된다. 더 심하게 고통을 줘라. 너 혼자 힘으로 안 된다면 인원수를 더 늘려도 좋다."
"그 곳 주민은 아직 지능 정도가 낮기 때문에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럼 즉각 출발하라. 일이 끝나면 보고하라."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하여 에도르의 갈렌은 행성 지구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러한 에도르의 움직임을 안 알리시아에서도 장로 멘터가 긴급 회의를 열었다.
젊은이 엠필리스터, 그리고 최근에 지구의 감시자가 된 유코니도르가 장로에게 물었다.
"에도르의 갈렌이 지구에 들어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괜찮을까요?"
"지금 단계에서는 가만히 보고 있는 편이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지구가 멸망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물론 멸망시켜서는 안 된다. 멸망해 버리지 않도록 필요한 때에 손을 써 주는 것이 그대들 감시자의 소임이 아닌가."
"하지만……."
"에도르를 무찌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지구인이야. 지구인에게는 원래 그만한 힘이 있어. 그 힘을 길러 주는 것이 우리의 소임이야. 그들은 머지 않아 은하계 방위군을 만들어서 우리 은하계의 문명을 지켜 나가 줄 것이다."
"그 지구인에게 그런 힘이 있을까요?"
젊은 유코니도르가 물었다.
"물론 처음에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렌즈라 부르는 텔레파시 장치를 그들에게 부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렌즈……."
"그렇다, 렌즈다. 이것을 가질 자는 선택된 자가 아니면 안 된다. 지구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두뇌와 용기와 인내력을 가진 자에게만 주는 것이다."
"그것은 언제쯤이 될까요?"
"아직도 먼 미래다. 지구인은 그 때까지 많은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만 참된 힘이 생기는 법이다."
"알겠습니다, 장로님. 그럼 저희들은 다시 지구로 돌아가겠습니다."
유코니도르가 말했다.
"그리고 지구 문명의 중심지 아틀란티스 섬을 감시하겠습니다. 필시 에도르가 눈독을 들일 곳은 그 곳일 테니까요."
"그럼 곧 출발하도록."
알리시아의 장로 멘터가 말했다.
 
그대들, 선택된 지구의 젊은이들,
렌즈의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수수께끼'를.
지브롤터의 서쪽, 대서양 한복판에 있었다고 하는 아름다운 섬이 하룻밤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다는 이야기를
그것은 실은 에도르가 꾀한 일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틀란티스에 꽃피운 문명을 파괴하려고 꾀했다. 아틀란티스 사람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어, 핵폭탄에 의하여 서로를 파괴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양자가 쏜 유도탄에 의하여 아틀란티스 대륙은 순식간에 날아가 바닷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사실을 알지 못하는 지구인들이 '아틀란티스 대륙의 수수께끼'라는 낭만적인 전설(傳說)을 자손들에게 전해 주었던 것이다.
에도르의 갈렌은 아틀란티스에서의 성공으로 마음이 흡족했다.
그러나 그의 속셈 대로 되지는 않았다.
어느 새 지구의 로마에 또다시 데모크라시(민주주의)라는 것이 싹트고 있었다.
 
에도르 왕은 갈렌을 불렀다.
"일껏 아틀란티스를 처치했는데, 또 로마에 문명이 번성하고 있다. 심히 못마땅하구나."
"저는 로마의 네로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네로의 몸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네로는 황제입니다. 저는 네로에게 유능한 인물을 모조리 죽이게 하고 있습니다. 로마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가? 그럼 잘 해 주게."
"하지만, 참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자가 있습니다. 어느 곳의 누군지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만, 에도르 가운데 저를 시기하는 자가 있는 것일까요? 제 지위를 노리고 있는 자가 있는 것일까요?"
"그런지도 모르지. 틀림없이 의견을 달리하는 자가 있어……."
그러나 에도르 왕도 갈렌도 그것이 알리시아 인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한편 알리시아에서도 젊은 감시자와 장로 멘터와의 사이에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젊은 유코니도르가 말했다.
"장로님, 로마의 네로의 포악성은 너무 무도해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대로 나가다가는 로마는 멸망해 버립니다. 무슨 수를 쓸 수는 없을까요?"
"우리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 그대로 놓아두는 수밖에 도리간 없다. 그대들이 들어가 있는 육체, 페트로니우스나 악테에게 맡길 따름이야. 여기서 그들에게 뛰어난 능력을 주어 버렸다가는 에도르가 수상쩍게 여길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는 멸망하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다."
장로 멘터는 엄숙하게 말했다.
그대들, 미래 지구의 소년들.
그대들은 학교의 역사 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로마의 문명, 로마의 멸망에 대해서. 그리고 폭군 네로라고 불린 황제에 대해서.
그러나 지금껏 이것이 알리시아와 에도르가 한 짓인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마의 문명이 멸망한 뒤 행성인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2천 번 정도 공전(公轉)했다.
60세대에 걸친 인류가 태어났다가 죽어 갔다.
그러나 그래도 아직 시간이 모자랐다. 은하계 방위군을 만들기까지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에도르의 갈렌은 로마의 멸망에 기분이 흐뭇해서 한동안 지구를 떠나 있었으나, 오랜만에 돌아와 보니 또다시 새로운 문명이 진보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것은 에도르에게 불리한 일이었으므로 당장 처치해 버리기로 했다.
 
그는 수많은 전쟁을 일으켰다.
지구력 1900년대의 일이다.
지구사에 의하면 이것은 제 1차 세계 대전, 제 2차 세계 대전이라 불리고 있다.
 
그리고 백 년 후에 지구에서는 제 3차 세계 전쟁, 최종 전쟁이라 불린 수폭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지구는 유럽 대륙도, 아메리카 대륙도, 아시아 대륙도 핵폭발에 의해 전멸했다.
 
에도르의 갈렌은 자신의 음모로 파괴된 지구를 바라보고 만족했다.
'앞으로 몇 백 년쯤은 내버려둬도 되겠지. 그 동안에 리겔 계 제 4행성에 가서 그 쪽의 동정을 보고 오도록 하자.'
갈렌은 그렇게 생각하고 리겔 계(系) 제 4 행성으로 떠나갔다.
 
한편, 아득히 떨어진 알리시아에서는 장로 멘터가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에도르에 대해 공공연하게 도전할 준비를 갖추도록 하라."
이렇게 장로가 말했다.
젊은이 유코니도르는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드디어 도전하게 되었군요. 그럼 저는 지구의 위험한 방사능을 제거해 주겠습니다."
젊은이 엠필리스터는 기쁜 듯이 말했다.
"북아메리카에서, 제가 보호하고 있는 구역에서 힘있는, 민주적인 정부가 생겨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정부가 더욱더 커져서 목성이나 화성과의 연락 정부를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에도르의 갈렌은 로저라는 육체에 들어가서 목성에 전쟁의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 그러나 로저가 지구로 돌아왔을 때 그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지구에게 줄 필요가 있다. 그 때 곧 우리의 렌즈를 줄 지구인을 선택해야 한다."
"누구를 골라야 좋을지 가르쳐 주십시오."
"북아메리카의 버질 샘스가 좋을 것이다. 그가 초대 렌즈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은하계 방위군의 초대 장관이 될 것이다. 그대들은 그를 힘껏 도와 주기 바란다."
"알겠습니다."
이리하여 두 감시자는 수폭 방사능에 오염된 지구로 돌아갔다.
 
지구의 나이로 수백 년이 흘러갔다.
방사능이 완전히 제거되었다.
도시가 재건(再建)되었다.
그리고 목성과의 전쟁이 있었다.
화성과의 전쟁이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 개의 행성이 서로 손을 잡았다.
 
이렇게 하여 은하계의 평화를 지키는 은하계 방위군이 탄생했다.
에도르 인은 황폐한 지구에서 이처럼 눈부신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갈렌은 오랜만에 지구로 돌아왔다가 깜짝 놀랐다. 원시 시대 같은 야만인밖에 살고 있지 않은 줄 알았던 지구에 놀랄 정도의 문명을 꽃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렌즈의 젊은이여.
그대들의 조상은 이러한 비밀을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호흡하고 생활하며 싸움을 해 왔다
그대는 체스라는 고대(古代)의 게임을 알고 있겠지.
우리 지구인은 체스판 위의 말이다. 그리고 말을 움직이는 것은 알리시아와 에도르이다.
내가 그것을 안 것은 지금부터 수십 년 전, 알리시아의 젊은이 엠필리스터가 내게 알려 주었을 때였다.
나는 알리시아의 멘터를 만나 렌즈를 부여받았다. 나는 그 렌즈에 의하여 지구에 덮치는 위기를 몇 번이나 구했다. 내 힘이 부쳤을 때는 멘터가 도와 주었다.
그러나 먼 미래에는, 우리는 알리시아를 대신하여 이 은하계를 지키는 힘이 될 것이다.
그것이 그대들의 사명이다.
 
먼 미래의, 지구 렌즈의 젊은이들에게 그 사명을 맡기겠다.
그대들이 출전할 때의 전별(餞別)로 나는 그대들의 선배인 콘웨이 코스티건, 크리오 마스덴의 눈부신 활약에 대한 이야기를 선사하리라.
지구로 돌아온 갈렌이 무엇을 꾀했고, 코스티건이나 로드브슈나 클리블랜드가 그것을 어떻게 막고 지구의 위기를 방지했는지, 이 이야기가 자세하게 말해 줄 것이다.
그들의 용기 있는 행위는 반드시 그대들의 마음의 양식에, 용기의 원천이 될 것이다.
찬란한 미래에 축복 있으라!
우리들의 은하계에 축복 있으라!
렌즈의 젊은이들에게 축복 있으라!
 
지구력 2천 8백년 1월 8일
 
 
2. 은하계 방위군
 
해적선 나타나다
 
행성간 연락선 하이페리온 호는 5백 명의 승객을 태우고 우주 공간을 조용히 항행하고 있었다.
제어실 한쪽 구석에서는 브래들리 선장이 레코더의 테이프를 조사하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옆에 있는 2등 우주사를 돌아보았다.
"수색대로부터 보고는 들어와 있나?"
"아직 아무것도 들어와 있지 않습니다."
2등 우주사는 커다란 소리로 대답했다
"이상한데."
선장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 한 달 동안에 두 척의 배가 우주 공간에서 소식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무슨 사고로 조난 당했다고 한다면 어딘가에서 부유물이나 구명정이라도 눈에 띌 것이다.
그런데, 필사적인 수색에도 불구하고 금속 조각 하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한 번 같으면 사고라는 것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두 번이나 겹쳐지고 보면 이건 아무래도……."
2등 우주사는 불안스레 입을 다물었다.
"세 번째는 우리한테 차례가 돌아올지도 모른다. 어쨌든 경계는 엄중히 해 주게. 아무튼 두 척 다 SOS를 발할 겨를조차 없었던 거야. 무슨 일이 아주 돌발적으로 일어났다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어."
"경계 태세는 완전합니다. 탐지기는 전력 작동, 방어스크린 전력 작동, 빔 방사기 준비 오케이. 제 4지대에 침입하는 자에는 즉각 빔 방사-."
2등 우주사는 막힘 없이 대답했다.
"좋아."
선장은 만족스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경계가 과연 소용 있을까요, 선장님? 소문에 의하면……."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말게. 광속보다 빠른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해적이라고? 그런 실없는 소리에 현혹되어서는 안 돼. 우리 하이페리온 호는 삼중 방어 스크린으로 무장되어 있어. 아무리 강적이 엄습해 와도 당장 불살라 버린다."
선장은 자신 있는 듯이 말했다.
"그럼, 정기 순회를 하고 오겠습니다."
2등 우주사는 선장에게 경례하고 제어실을 나갔다.
탐지 스크린은 하얗고,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비치고 있지 않았다.
파일럿반(盤)의 시그널 램프는 꺼져 있었고, 경보 벨은 침묵하고 있었다.
아무데도 이상은 없었다.
선장은 완전히 안심하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러나 실은 무서운 위험이 바로 그 곳까지 육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구 하나 그 위험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하이페리온 호의 공기 정화 장치는 선 내(船內)에 맑고 깨끗한 공기를 보내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두꺼운 벽으로 몇 겹이나 둘러싸인 구획에 놓여 있었다.
그 구획에 우주복을 입은 수상한 사나이가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우주복 사나이는 송풍관의 본관을 향해 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그 손은 한 자루의 드릴을 쥐고 있었다.
사나이는 그 드릴로 송풍관의 본관에 구멍을 뚫고 있었던 것이다. 드릴은 덜덜덜 진동하면서 강철관에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이윽고 관에 구멍이 뚫리자 쏴아 하고 힘차게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사나이는 허겁지겁 그 구멍에 고무 튜브를 꽂았다. 튜브 끝에는 얇은 유리 밸브가 달려 있다. 사나이는 헬멧 속에서 기분 나쁜 웃음을 씩 웃었다. 한 손으로 밸브를 가볍게 쥐고, 다른 한 손안에 있는 크로노미터(휴대용 정밀시계)를 응시했다.
'이 바늘이 10이라는 숫자를 가리켰을 때 나는 이 밸브를 꽉 쥐어 부숴 버린다. 그러면 저 가스가 송풍관 속으로 들어가서 하이페리온 호에 있는 작자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죽어 버린다. 흐흐흐.'
그 사나이는 헬멧 속에서 또 한 번 기분 나쁜 웃음을 웃었다.
이 사나이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이페리온 호의 넓은 올에서는 이런 끔찍한 위험이 닥쳐오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댄스 파티가 한창이었다.
모두 즐거운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여자 승객의 한 사람인 크리오 마스덴도 이 배의 1등 우주사인 콘웨이 코스티건과 춤을 추고 있었다.
이윽고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멈췄다. 마스덴은 코스티건을 소형 영상기(映像機) 앞으로 끌고 갔다.
"전 이것에 퍽 흥미가 있어요."
마스덴이 말했다.
"호, 그래요? 나는 하나도 신기하지 않은데."
코스티건이 말했다.
"다이얼을 어떻게 돌리면 되지요?"
"이렇게요"
코스티건은 다이얼을 돌려주었다.
영상반에 비친 것은 초승달 모양의 지구였다. 위쪽에는 붉은 기를 띤 화성과 은빛 목성이 캄캄한 하늘을 배경으로 반짝이고 있다.
"아아, 고와라. 참말이지 몇 번을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아요. 전 항상 댄스가 끝나면……."
마스덴은 갑자기 말을 끊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부르르 몸을 경련 시키더니 코스티건 쪽으로 쓰러져 왔다.
마스덴의 눈은 심한 괴로움과 공포로 금방이라도 튀어나을 것만 같았다. 그 눈을 보고 코스티건은 즉각 사태(事態)를 깨달았다.
그는 전에도 이런 눈을 본 일이 있는 것이다.
당장 내쉬고 있던 숨을 멈추고 벨트에서 마이크를 집어냈다. 그리고 <긴급> 단추를 눌렀다.
순식간에 선 내에 요란한 경적이 울려 퍼졌다.
"제어실!"
그는 거의 다 비어 버린 폐 속에 겨우 조금 남아 있던 공기를 짜내며 소리쳤다.
"V2 가스다 ! 주의……."
거기까지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숨을 멈춘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마스덴의 몸을 안아 올려 제일 가까이 있는 구명정(救命艇)으로 돌진했다.
넓은 홀은 참담한 광경이었다.
오케스트라 악사들은 악기를 안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화려한 의상으로 춤추고 있던 사람들도 쓰러진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코스티건은 구명정으로 뛰어들어가자 에어밸브로 달려갔다.
밸브를 열어 파이프에 입을 대고 쏟아져 나오는 찬 공기를 정신 없이 빨아 마셨다. 그리고 다시 숨을 멈추고는 비상용 로커를 열고 우주복을 꺼내 잽싸게 입었다.
그리고 마스덴의 몸을 안아 일으켜 에어밸브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에어밸브를 열어 쏟아져 나오는 찬 공기에 마스덴의 얼굴을 대면서 인공 호흡을 시켰다.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던 마스덴이 이윽고 거칠게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 차려요! 정신 차리라고!"
코스티건은 큰 소리로 격려하면서. 다시 인공 호흡을 계속했다.
마스덴은 힘없이 눈을 떴다. 의식을 되찾은 모양이다.
"자, 일어서요. 이 기둥을 붙잡고 우주복을 입어요."
마스덴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코스티건은 마스덴을 옆에 있는 기둥에 기대 세우고 우주복을 입혀 주었다.
"이제 됐어. 안심하고 숨을 쉬어요."
코스티건은 마스덴을 벤치에 앉힌 뒤에 제어실(制御室)을 불러냈다.
"선장님, 여기는 코스티건."
"오, 코스티건인가!"
"송풍 본관을 파괴당했습니다. 누군가가 관에 구멍을 뚫고 V2가스를 주입했어요. 실로 비열한 수법입니다."
"해적의 짓인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공기실에 가서 조사하고 오겠습니다."
"조심하게."
옆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마스덴이 물었다.
"저, V2 가스가 뭐여요?"
"독가스지요. 그걸 들이마시면 수십 초도 못 가서 죽어 버려요."
"그럼, 홀에 있던 사람은 모두 죽어 버렸어요?"
마스덴은 깜짝 놀란 소리로 말했다.
"아뇨, 다행히 해독제가 있어요. 한 시간 이내에 그걸 주사하면 목숨은 건집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했을까요?"
"우주 갱이나 해적이나, 이 배를 뺏으려 한 놈의 짓이겠지요. 승객으로 변장하여 이 배에 침입해 가지고 틈을 보아 공기실에 있던 프랭클린을 죽이고 우주복을 뺏은 게 틀림없어요. 그래 가지고 송풍관에 구멍을 뚫고 독가스를 들여보냈어요. 그러면 배에 있는 사람은 전부 간단하게 죽일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무도한 짓을."
"비열하기 짝이 없어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이쪽에서 숨통을 끊어주고 말겠다. 아가씨는 이 자리에 꼼짝 말고 가만히 있어요."
코스티건은 이렇게 말하자 구명정에서 뛰쳐나갔다.
홀은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화려하게 춤을 추고 있던 사람들이 흙빛의 얼굴이 되어 바닥에 포개어지듯이 쓰러져 있다.
코스티건은 그 위를 뛰어넘어 홀의 맞은편 벽으로 다가갔다. 벽에 튀어 나와 있는 조그만 다이얼을 돌리니까 벽이 좌우로 활짝 열렸다.
그 곳은 작은 무기고로 되어 있고, 스탠디시 총이라 불리는 무서운 무기가 숨겨져 있었다. 이 총에서 발사되는 빔 (방사선 다발)은 어떤 것이라도 불태워 버리는 것이다. 기관총 같은 모양이지만, 기관총보다 훨씬 크고 무겁다. 여러 개의 집광 렌즈와 반사경이 달려 있다.
코스티건은 총을 둘러메자 공기실로 향했다. 아직도 방어 스크린이 작동하고 있는 모양이다.
코스티건은 벽 앞에 총을 내리고 삼각대를 벌렸다. 그리고 총 뒤에 몸을 구부리자 초록빛 안개를 향해 겨냥을 했다.
스위치를 눌렀다.
빠지직 빠지직 요란한 소리를 내며 빨간 불꽃이 스크린에서 날아 흩어졌다.
초록빛 안개가 스르르 걷히더니 그 너머에 금속 문이 나타났다.
코스티건은 그 문을 향해 다시 한번 총을 발사했다. 빔이 문에 닿는 순간 문은 폭발되어 흔적도 없이 녹았다.
문 너머에 우주복을 입은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루이스턴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코스티건을 향해 마구 쏘아 댔다. 눈이 안 보일 정도의 백열광이 쏟아져 나왔으나 코스티건의 스탠디시 총에는 당하지 못한다. 스탠디시 총이 방사하는 에테르 방어막에 충돌하여 퉁겨져 나가고 말았다.
코스티건은 다시 한 번 총의 스위치를 눌렀다. 고막을 찢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싶자 사나이의 몸은 이미 없었다.
코스티건은 총 뒤에서 일어서자 실내를 조사했다.
공기 정화 장치 자체에는 이상(異常)이 없다. 본관에 뚫린 구멍을 막기만 하면 되었다.
응급 수리를 끝내자 스탠디시 총을 삼각대에서 들어내어 제자리에 도로 갖다 놓았다. 그리고 구명정으로 돌아갔다.
코스티건의 모습을 보더니 마스덴은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아, 코스티건, 무사하셨군요. 당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해적은 어떻게 되었어요?"
"아, 처치하고 왔어요."
코스티건은 시원스럽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어요?"
"모두 죽어 버렸어요. 제어실 사람들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되어요, 내가 경보를 내렸으니까."
"하지만 용케도 아셨군요. 순간적으로 그것이 V2 가스라는 걸."
"아가씨 눈을 보고 퍼뜩 알았지요. 전에도 V2 가스를 마신 사람의 눈을 보았거든요."
"그렇다면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린 셈이군요."
마스덴은 이민 완전히 원기를 되찾고 있었다.
"그럼요. 자, 제어실에 가 봅시다."
코스티건의 예상대로, 제어실에서는 적어도 열 명 이상의 사람들이 우주복을 입고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코스티건이 마이크로 'V2 가스'라는 무서운 말을 하는 순간, 들이마시고 있던 숨, 흑은 내쉬고 있던 숨을 딱 멈추고 우주복을 입었던 것이다.
코스티건은 선장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어떻습니까, 해적들은 행동을 개시했습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위치를 알아 낼 수가 없어. 전 공간 지역에 경보 빔을 내려고 발신하기 시작했지만 이내 방해를 당해 버려서 말이야."
영상반은 하얗게 빛나고, 스피커는 찌직찌직 잡음을 내고 있다.
"탐지기로 조사했지만 10만 킬로미터 사방에 1그램의 금속도 없었어. 그런데도 이런 강력한 방해 빔을 보내온다는 건 믿을 수가 없어."
선장은 울화통이 치미는 듯이 말했다. 모습을 보이지 않는 적이어서는 어떤 선장이라도 맞설 수가 없다.
"즉, 놈들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는 물질이나 장치나 기술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겠군요. 아무튼 경보는 내놓았으니까 아마 순찰대가 놈들의 방해 빔을 추적하여 위치를 알아 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적들은 필시 그걸 알고 있을 테니까 곧 공격해 올 겁니다."
코스티건이 말한 대로였다.
하이페리온 호를 싸고 있는 방어 스크린이 강력한 에너지 빔을 맞고 기우뚱거리며 진동했다.
그와 동시에 해적선의 모습이 영상반에 뚜렷하게 비치었다
어뢰 같은 모양을 한 검은 배다. 공격용 에너지 빔을 하이페리온 호에 퍼붓고 있는 것이다.
"음, 이것이 해적선인가. 별로 보지 못한 형의 해적선이구나. 좋아, 공격 개시다!"
선장은 명령을 내렸다.
하이페리온 호의 모든 병기(兵器)가 해적선을 향해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에너지 빔을 모두 열고 쏘았다. 고성능 폭탄의 일제 사격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어느 하나도 해적선의 방어 스크린을 격파할 수가 없었다. 빔은 퉁겨지고 폭탄은 공중에서 헛되이 폭발했다.
"선장님, 안 되겠습니다. 맞설 수가 없습니다."
사격수의 외침 소리가 마이크를 통해서 비통하게 흘러온 다.
"빌어먹을!"
선장이 이를 갈았을 때다. 해적선에서 불화살 같은 것이 튀어 나왔다.
그것은 에테르를 꿰뚫고, 하이페리온 호의 방어 스크린을 꿰뚫고, 선체의 외벽과 내벽을 꿰뚫었다.
하이페리온 호의 방어 스크린은 소멸되었다. 가속도가 4분의 1로 줄었다.
"배터리 실이 파괴되었어!"
비통한 외침 소리가 일어난다.
"비상 추진으로 바꾸어라."
선장이 외친다. 그 때 무서운 파괴 빔이 사정없이 제어실을 관통했다.
조종사도 포도 탐지 장치도 그것을 조종하고 있던 선원도 한순간에 날아갔다.
코스티건도 마스덴도 심한 충격을 받고 바닥에 동댕이쳐져서 정신을 잃었다.
코스티건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어실의 대부분이 날아가고 없었다.
선체의 틈새로 공기가 쏴쏴 새고 있다.
코스티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스덴과 선장이 바닥에 쓰러져 있다.
"정신 차려요."
코스티건은 두 사람을 흔들었다.
"으, 응."
마스덴이 먼저 의식(意識)을 회복했다. 선장도 이어서 정신을 차렸다.
다행히 아무데도 다친 데는 없는 것 같다.
"생존자는 이뿐인가?"
선장이 물었다.
"지금 상태로는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자, 빨리 여 기를 나갑시다."
"여기서 나가 어디로 간단 말인가?"
"구명정에 타는 겁니다."
세 사람은 에어록을 지나고 객실을 빠져나가서 구명정에 뛰어들어갔다.
구명정 출입구로부터는 제 3 라운지 전체를 바라볼 수가 있었다. 방어하는 데도, 배 밖으로 탈출하는 데도 이상적인 장소다.
"어, 이상하다. 배의 속도가 빨라졌어."
선장이 말했다.
"어쩐지 체중이 가벼워진 것 같아요."
마스덴이 말했다.
"놈들의 트랙터 빔에 끌려가고 있는 겁니다."
코스티건이 말했다.
"도대체 어디로 끌고 갈 작정일까?"
"놈들의 기지겠지요. 놈들은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장치를 갖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하여간 우리도 방위 태세를 갖추어 두는 편이 좋습니다. 스탠디시 총과 우주복을 한 벌 더 갖고 오겠습니다."
코스티건은 이렇게 말하고 구명정에서 뛰쳐나갔다.
이윽고 우주복과 무거운 스탠디시 총을 질질 끌듯이 하고 코스티건이 돌아왔다
선장과 둘이서 총을 장치하여 요새를 만들었다.
코스티건은 가져온 우주복을 마스덴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갈아입는 게 좋을 겁니다. 그 비상용 우주복은 전투에는 별로 맞지 않으니까요."
마스덴은 그 우주복의 팔 소매에 달려 있는 마크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어머, 이건 은하계 방위군 마크 아니어요?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자, 빨리 입어요. 그리고 갈아입는 김에 이 장치도 달도록 해요."
"뭐여요, 이건?"
마스덴은 코스티건이 내민 작은 원반과 캡슐과 진주목걸이를 이상한 듯이 바라보았다.
"특수 임무용 통화기와 탐지기입니다. 원반은 쇄골 바로 밑에 테이프로 붙여요. 그리고 목걸이도 항상 걸고 있도록 하고. 1초도 몸에서 떼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캡슐도 피부에 직접 붙여 놓도록. 만일의 경우에는 삼켜도 좋아요. 하여간 이것만 있으면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도 걱정 없습니다. 세 사람이 아무리 따로따로 떨어져도 말을 할 수 있으니까요."
코스티건은 세밀하게 일러 주었다.
"고마와요. 잘 기억해 두겠어요."
브래들리 선장은 두 사람의 대화(對話)를 듣고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져 있었다.
"옳거니, 이제야 알았소."
선장의 말씨가 부드러워졌다. 그 눈에는 존경의 빛마저 떠올라 있다.
"V2 가스를 재빨리 알아차린 일이며, 알고 나서 취한 조치며, 도저히 예사 우주사로는 못 할 일이야. 그러나 은하계 방위군의 대원이라면 당연한 일이지. 자네는 지금 특수 임무라고 그랬는데, 그렇다면……."
"그렇습니다. 나는 방위군의 특수 임무를 띠고 하이페리온 호에 들어와 있었던 겁니다."
"그 특수 임무란 무언가?"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자, 선장님도 이 장치를 다십시오."
선장과 마스덴은 코스티건이 일러 주는 대로 각각 장치를 몸에 달았다.
그리고 세 사람은 앉아서 오랜 시간 기다렸다.
하이페리온 호는 두 시간 가량 에테르 속을 항행해 갔다. 그러나 이윽고 선체가 기우뚱하더니 가속도가 늘어났다.
"드디어 가까워졌나?"
코스티건이 말했다.
"스파이 빔으로 봐도 될까?"
브래들리 선장은 코스티건의 동의를 얻은 다음 스파이 빔의 스위치를 켰다.
영상반에 비친 것은, 암흑의 허공에 아로새겨진 행성의 반짝임뿐이었다. 그러나, 한참 보고 있는 동안에 천공(天空)의 한 귀퉁이에 창백하게 빛나고 있는 별이 차차 크기가 더해져 왔다.
그것은 점점 커져 갔는데, 마치 배가 그 별에 떨어져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윽고 배는 무중력 상태로 정지했다. 배의 앞쪽에 거대한 문짝이 보였다. 문짝이 스스로 열리자, 배는 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 곳은 금속 빌딩이 죽 늘어선 작은 도시였다. 배는 그 도시의 상공에 떠 있는 것이었다. 그럭저럭하는 동안 조용히 끌어내려져서 착륙대 위에 앉았다.
"자, 닿았어! 어딘지는 모르지만."
브래들리 선장은 불안스러운 얼굴을 했다.
"지금부터 격투가 벌어질 텐데, 아가씬 괜찮겠어요?"
코스티건은 마스덴을 돌아보았다.
"염려 없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도 함께 싸우겠어요."
마스덴은 분명하게 말했다.
"좋았어. 그럼 부탁해요."
코스티건과 브래들리 선장은 스탠디시 총 뒤에 쪼그리고 앉았다. 마스덴은 그 뒤에 엎드렸다.
5분도 채 안 되어서 여러 명의 사나이가 우르르 제 3라운지에 들어왔다.
그들이 그 곳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브래들리 선장과 코스티건은 에너지 빔을 쏘아 댔다. 그러나 빔은 목표에 닿지 않았다. 사나이들의 수 미터 앞에서 강력한 배리어(방벽)에 부딪친 것이다.
"빌어먹을!"
선장이 으르렁거렸다.
"고성능 폭탄으로 바꾸어요!"
코스티건이 소리쳤다.
스탠디시 총에서 소형 폭탄이 싸락눈처럼 튀어 나왔다. 그러나 폭탄은 배리어에 부딪치자 폭발도 하지 않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이렇게 센 배리어는 생전 처음 보았어."
브래들리 선장이 소리쳤다.
코스티건은 벌떡 일어섰으나, 재차 공격을 가할 겨를도 없었다. 그의 옆쪽에 갑자기 거대한 터널이 입을 벌렸다. 선 내의 공기가 왈칵 터널로 쏟아져 들어갔다.
세 사람의 몸은 그 공기의 흐름에 휘말려 들어가, 눈 깜짝할 새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세 사람의 몸은 천천히 허공을 표류해 갔다. 이윽고 앞쪽에 커다란 문짝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문짝이 활짝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저절로 뒤에서 닫혔다.
이렇게 해서 몇 개의 문을 지나가니 그제야 마룻바닥 위에 설 수가 있었다.
그 곳은 언뜻 보아 사무실 같은 방인데, 커다란 책상과 로커가 나란히 있고, 책상 위에는 정교한 계기반이 붙어있었다.
책상 앞에 한 사나이가 앉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회색 차림이었다. 머리카락도 눈도 회색이었고, 볕에 탄 피부까지 회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나이는 싸늘하게 말했다.
"브래들리 선장, 코스티건 1등 우주사, 마스덴, 우주복을 벗어."
코스티건도 브래들리도 꼼짝하지 않고 상대편 사나이를 노려보았다.
'이놈은 보통 해적이 아니구나. 도대체 누구일까.'
브래들리 선장은 가슴속으로 중얼거렸다.
"자, 우주복을 벗든지, 벗지 않고 죽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회색 사나이는 또 한 번 싸늘하게 되풀이했다.
코스티건은 마스덴에게로 다가가서 천천히 우주복을 벗겼다. 벗기면서 작은 소리로 선장과 짧은 말을 주고받았다.
"하겠습니까, 선장님?"
"해야지."
두 사람은 같이 우주복을 벗었다. 벗는 순간 번개같은 솜씨로 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회색 사나이는 몸 하나 까딱하지 않고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나이의 몸은 강력한 에너지 배리어로 보호되고 있었던 것이다.
열선도 탄환도 배리어를 격파할 수가 없었다.
코스티건은 총을 버리자 맹렬히 덤벼들었지만, 사나이의 몸을 잡기도 전에 눈에 보이지 않는 배리어에 퉁겨졌을 뿐이었다.
"흣흣흣."
사나이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냈다.
"어때, 이만하면 어떤 저항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았겠지?"
"알긴 뭘 알아."
코스티건이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세 사람의 몸은 무언지 강력한 빔에 사로잡혀, 마치 꽁꽁 묶인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코스티건과 브래들리 선장은 저마다 욕설을 퍼부었지만, 회색 사나이는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이 이상 바보 같은 짓은 용서치 않겠다. 그럼 나 자신을 소개하겠다. 나는 그레이 로저라는 사람이다. 아마 지구인은 내 이름을 모르겠지. 아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극히 소수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지구를 파괴하려는 미치광이 과학자냐, 아니면 태양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과대 망상광이냐?"
브래들리 선장이 대들었다.
"나는 과학자다. 미치광이도 과대 망상광도 아니다. 지구인 과학자를 많이 부리고 있다. 그들은 욕심에 눈이 멀어 내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있어. 우리의 과학이 어떤 것인지, 이 방의 장치를 보면 알 수 있겠지."
"아, 인공 중력과 방어 스크린 말인가. 보통 에테르 배리어라면 한쪽은 불투명한데, 이 곳 배리어는 양쪽 다 투명하고 게다가 어떤 무기로도 격파할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나?"
코스티건이 물었다.
"설명해 줘도 너희들의 두뇌로는 이해 못 하겠지. 이런 것은 극히 작은 발명이다. 너희들이 더 놀랄 것이 얼마든지 있어."
로저는 비웃듯이 말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브래들리 선장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지구를 파괴할 생각은 없다.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목적을 위해서는 우라늄과 토륨과 라듐이 대량으로 필요하다. 나는 이 태양계에서 그것을 얻어갈 생각이다. 은하계 방위군이 아무리 버둥거려 봤자 소용없다.
이 건물은 내가 만든 인공 행성이다. 내가 발명한 방어스크린에 의해 운석으로부터 보호되고 있다. 이것은 어떠한 탐지기로도 탐지할 수가 없고, 또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너에게 가담하면 도대체 무얼 얻을 수 있다는 것인가?"
코스티건이 무시하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로저는 화를 내는 기색도 없었다.
"지구인이 탐내는 것은 대개 돈과 명예와 권력이다. 이걸 눈앞에 보여 주면 웬만한 지구인은 다 말을 듣지. 어때, 너희들도 내게 가담하면 목숨도 구해 주고 원하는 것도 다 주겠다."
"무얼, 너 따위 같은……."
분격(憤激)하여 펄펄 뛰는 선장을 코스티건은 달래었다.
"싫다고 한다면?"
"죽을 뿐이다. 단, 그렇게 간단하게는 죽이지 않는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죽이는 거다."
"이 사람은 어떻게 할 작정인가?"
코스티건은 마스덴을 가리켰다.
"그 여자는 당분간 독방에 가두어 두겠다. 뒤에 연구자료로 삼겠다. 지구인 여성이란 아주 흥미로운 연구자료니까 말이야."
"빌어먹을! 네가 그런 속셈이라면 네 말은 절대로 듣지 않겠다."
코스티건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소리를 질렀다.
"좋다. 너 같은 타입의 남성은 그렇게 말할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
로저가 책상 위의 단추를 누르자 두 명의 부하가 들어왔다.
"이놈들을 독방에 처넣도록 해라. 처넣기 전에 신체검사를 하는 거다. 무기를 숨겨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말이 야."
코스티건과 브래들리는 독방으로 끌려가서 엄중한 신체 검사를 당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發見)되지 않았다.
그들은 코스티건과 브래들리가 몸에 부착하고 있던 '특수 임무용' 통화기와 탐지기에 대해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인공 행성
 
마스덴은 키가 크고 무표정한 여자에게 끌려갔다.
복도에 나갔을 때 틈을 보아 달아나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몸이 마비된 것처럼 되어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도망칠 궁리를 해 봤자 소용없어요."
안내인 여자는 냉정하게 말하고 손에 든 작은 상자의 스위치를 껐다. 마비 광선 장치인 모양이다. 스위치를 끄자 마스덴의 몸은 자유로워졌다.
"로저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큼 오래 살 수 있어요."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언제든지 죽을 수 있으니 까요."
마스덴은 소리쳤다.
"로저가 죽일 마음이 없으면 죽을 수도 없단 말이어요. 날 봐요. 나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있어요."
여자는 음산한 얼굴로 말했다.
이윽고 방문 하나를 열자 여자는 마스덴에게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여기가 당신 방입니다.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여기서 얌전하게 있어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자 문을 닫고 나갔다.
마스덴은 방 한가운데 우뚝 섰다. 화려하게 꾸며진 방이었다. 쥐 죽은 듯 조용하여 소리라는 것이 들리지 않는다. 완전한 정적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비명을 지르고 싶어 졌다.
갑자기 어디선지도 모르게 사람 소리가 들렸다. 마스덴은 흠칫하여 몸을 긴장시켰다. 그 냉랭한 로저의 목소리다.
"나는 너를 어떤 연구에 쓰려고 마음먹고 있다. 그러나 너는 지쳐 있다. 지쳐 있어서는 쓸모가 없다. 휴식하도록 명령한다. 너의 오른쪽에 있는 코드를 당겨라. 그러면 그 방 주위에 에테르 배리어가 발생한다. 이내 목소리도 차단해 버린다."
시키는 대로 코드를 잡아당기자 로저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마스덴은 옆에 있는 소파에 몸을 던지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코스티건 일행과 떨어져서 갑자기 불안해 졌던 것이다. 한참 후 그녀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것처럼 몸을 일으켰다. 어딘가에서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귀에서 들린 것은 아니었다. 머릿속 깊은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크리오."
그 목소리는 마스덴의 이름을 불렀다. 귀에 익은 맑은 목소리였다.
"아, 코스티건."
크리오 마스덴은 펄쩍 뛰듯이 일어섰다.
"조용히 해요. 그렇게 기뻐 날뛰면 안 돼요. 로저가 아직 투시 광선을 비추고 있는지도 모르오. 당신한테 준 목걸이 밑 피부가 꺼칠꺼칠한 느낌이 안 들어요 ? 만일 그런 느낌이 들면 두 번 심호흡을 해요. 만일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큰 소리로 말해도 좋습니다." 라고 말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요, 콘웨이."
크리오는 기쁜 듯이 소리쳤다.
"로저가 말한 에테르 배리어는 진짜였군요."
"믿어서는 안 돼요. 언제 그 배리어를 끌지 모르니까요. 목걸이 밑이 꺼칠꺼칠한 느낌이 들면 즉각 입을 다물어요."
"알았어요."
"너무 걱정할 건 없어요. 우리는 살아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까."
"설마 본심으로 그러시는 건 아니겠지요?"
"본심이쟎고. 우리가 갖고 있는 울트라 웨이브 장치를 쓸 수 있을 것 같아. 설마 상대편 모르게 쓸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울트라 웨이브를 탐지하지 못하는 눈치인 것 같아.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지. 잠깐 지금 써 보겠소. 로저 쪽을 살펴보겠소."
"괜찮겠어요?"
크리오는 걱정스러운 듯이 말했다.
"아, 눈치챈 기색이 전혀 없어요. 그리고 놈들은 울트라 웨이브 장치를 갖고 있지 않아. 이거 굉장한데. 우리가 단연코 유리해지겠는걸. 좋아, 내가 이걸 사용해서 선 내를 샅샅이 조사해 봐야지. 당신은 거기서 얌전히 있어요. 만일 무슨 일이 있으면 소릴 질러요, 그럼 나중에 봅시다."
코스티건의 소리가 멈췄다.
그는 자기 독방에서 검은 테 안경을 쓰고 건물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 안경이 울트라 웨이브 장치인 것이다. 이것을 쓰면 아무리 두꺼운 벽 너머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인공 행성 속의 모든 기계와 장치를 꼼꼼히 조사(調査)했다.
조사를 마치자, 맞은편 독방에 있는 브래들리에게 말을 걸었다.
"선장님, 충분한 정보를 입수했어요, 우리의 우주복과 총을 넣어 둔 장소도 발견했습니다. 제어 장치와 발전기의 위치도 알아냈습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에테르 배리어는 없지만 문 밖에는 감시꾼이 있습니다. 이 감시꾼은 재수 없게도 로봇입니다. 우리가 행동을 시작하는 순간 경보를 발하겠지요. 로봇의 제어 장치는 로저의 책상에 직결되어 있을 테니까요."
"그럼, 로저가 책상을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군."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들어 주십시오. 선장님 방문 오른쪽에 검은 패널(배전반)이 보입니까 ? 그 밑에 선장님 방의 쉴드 발생 장치가 있습니다. 그 빨간 전선을 끊으면 문이 열립니다. 방을 나오시면 홀에서 만납시다. 아셨지요?"
"좋아, 알았어."
이리하여 두 사람은 로저가 책상을 떠나는 기회를 기다렸다. 한 시간 후에 그 기회는 찾아왔다.
"아, 그가 책상을 떠났어요. 그쪽 준비는 괜찮겠습니까, 선장님?"
"좋아, 맡겨 두라고."
선장은 힘차게 대답했다
"아, 제길할. 그는 크리오한테 갈 모양입니다. 이렇게 되면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겠는데요."
코스티건은 분한 듯이 소리쳤다.
"물론이지. 그러나 어떻게 하면 좋지?"
선장도 소리쳤다.
"저 자가 크리오한테 무슨 짓을 한다면 세상없어도 이 인공 행성을 없애 버리고 말겠어."
코스티건의 과격한 말투에 선장은 약간 놀랐다.
그 때 크리오의 가느다란 소리가 들려 왔다.
"안 돼요, 콘웨이. 그러시면 안 돼요. 당신들만이라도 달아나 주세요."
"바보같이, 당신을 두고 갈 수 있을 것 같아?"
콘웨이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에 대해서는 상관 마시고……."
"아니지, 가만 있자. 차라리 이렇게 되는 편이 일하기 쉬울는지도 몰라. 그렇지, 당신은 로저를 될 수 있는 대로 그 곳에 오래 붙잡고 있어 줘요. 할 수 있겠소?"
"해 보겠어요. 당신들만이라도 달아날 수 있다면."
크리오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로저가 그녀 방의 에테르 스크린을 끄고 들어간 것이다.
크리오가 공포로 눈이 둥그래져서 떨고 있는 모습이 코스티건의 눈에 보였다.
코스티건은 민첩하게 선장에게 지시를 내렸다.
"브래들리 선장님, 아시겠습니까, 나는 울트라 웨이브로 로저의 동정을 감시하고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로봇은 선장님이 처치해 주십시오. 로봇 죽이는 방법은 아시겠지요?"
"눈의 렌즈를 망그러뜨리면 되는 거겠지?"
브래들리 선장은 즉각 행동으로 옮겼다.
"자, 둘 다 처치했어. 이번에는 뭘 하지?"
"내 방문을 열어 주십시오. 쉴드 스위치는 오른쪽에 있습니다."
코스티건의 방문이 열리자 브래들리 선장이 뛰어들어왔다.
"자, 우리 우주복을 찾으러 가자."
"잠깐만요."
코스티건이 단호하게 말했다.
"크리오가 있는 방의 에테르 스크린 스위치를 넣지 않으면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합니다. 5층 복도를 곧바로 가다가 오른편 네 번째 문입니다. 부탁합니다."
"알았어."
선장은 대답하기가 바쁘게 무서운 속도로 뛰쳐나갔다.
3 분도 채 안 되어서 그는 돌아왔다.
"넣고 왔어."
"고맙습니다. 그럼 잠깐 시험해 보겠습니다."
코스티건은 에테르 스크린을 테스트하여, 안에 있는 로저에게 책상이나 부하로부터의 경보(警報)가 닿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자, 이제 됐습니다. 우주복을 가지러 가십시다."
코스티건과 브래들리는 우주복이 있는 방으로 돌진했다. 계단을 몇 십 단이나 뛰어올라갔다.
복도 모퉁이를 돌아가려 하였을 때, 코스티건의 울트라 웨이브가 이 쪽으로 다가오는 적을 발견했다.
"하나는 사람이고 하나는 로봇입니다. 로봇은 선장님 쪽에 있으니까 처치해 주십시오. 사람 쪽은 내가 맡을 테니까요."
아무것도 모르고 모서리를 돌아온 적은, 앗 하는 소리조차 지를 겨를도 없었다.
코스티건은 상대편의 명치를 힘껏 주먹으로 때렸다. '윽' 하고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적은 어이없이 쓰러졌다. 코스티건은 다시 그 목덜미를 무거운 구둣발로 팍 밟았다. 사나이는 또 한 번 '윽' 하고는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선장도 멋지게 로봇의 렌즈를 깨부쉈다.
싸움은 10초도 안 되어서 끝났다.
코스티건은 적이 갖고 있던 루이스턴 총을 집어 들자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도중에서 몇 번이나 적을 만났다. 그러나 적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울트라 웨이브 덕분에 코스티건 쪽이 언제나 먼저 발견했기 때문이다. 루이스턴 총의 빔을 쏘아 대자 대번에 쓰러졌다.
이리하여 가까스로 목적한 방에 다다라 세 벌의 우주복을 찾자, 즉시 입었다.
콘웨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제 좀 살아날 것 같군. 다음은 동력실이다. 거기는 틀림없이 적이 우글거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조심해 주십시오."
동력실에 다다르기까지 수많은 경비원이 루이스턴 총으로 대항해 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우주복은 에테르 스크린으로 방호(防護)되고 있었기 때문에 끄떡도 하지 않았다.
떼를 짓고 있는 적은 루이스턴 총에 의해 풍비박산이 되었다.
가까스로 동력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다. 코스티건은 흠칫 멈추어 섰다.
그의 두뇌에 크리오의 외침 소리가 울렸던 것이다.
"콘웨이, 빨리, 빨리 와요, 로저가."
그 목소리는 공포로 인해 쉬어 있었다.
'크리오에게 위험이 닥치고 있다.'
코스티건의 몸은 꼿꼿하게 긴장되었다.
"기운을 내요. 1초만 더 로저를 붙잡고 있어요."
코스티건은 그렇게 외치자마자 동력실의 문을 날려 버렸다.
이어서 동력실의 중추부를 불태웠다. 그 순간 인공중력장(人工重力場)이 사라지고 무중력 상태가 되었다.
"갑시다, 선장님. 크리오의 우주복을 갖고 오십시오."
코스티건은 그렇게 외치자 공중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크리오, 지금 갑니다, 괜찮소?"
코스티건은 불안한 듯이 물었다.
"괜찮아요, 콘웨이."
나약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로저는 어떻게 되었어요?"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어요. 앗, 제 몸도 뜨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여요?"
"인공 중력 발생 장치를 파괴했기 때문에 인공 중력장이 사라지고 무중력 상태로 되어 있는 겁니다."
"아, 괴로워. 현기증이 나고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괜찮아요, 잠깐 우주 멀미를 하고 있을 뿐이니까. 자, 갑니다. 로저한테서 되도록 떨어져 있어요."
크리오와 로저가 있는 방은 30미터 정도의 탑 위였다. 그는 그 커다란 창을 향해 날아오르면서 루이스턴 총을 발사했다. 빔이 창을 관통하자 순식간에 창은 사라졌다. 코스티건은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코스티건, 여기에요."
소리치고 있는 크리오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로저가 출구(出口)로 달아나려 하고 있다. 그는 즉각 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빔은 퉁겨났다.
로저는 어느 새 배리어 발생 장치의 스위치를 넣고 있었던 것이다.
 
아까 크리오가 로저는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다고 그랬는데, 그 때 로저는 지금까지 만나 본 적도 없는 무서운 힘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로저는 실은 에도르의 갈렌인 것이다. 아니, 에도르의 갈렌이 로저의 몸 속에 들어가서 그를 조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샘스를 비롯한 렌즈맨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알리시아의 멘터의 도움을 빌어 로저, 즉 에도르의 갈렌과 은밀하게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코스티건이 아까 '특수 임무'라고 말한 것은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지구인에게는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로저는 그런 것은 알지 못했다. 무지(無知)하고 무력한 지구인류를 완전히 지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두 명의 지구인이 날뛰기 시작한 것을 알자 곧 죽이려 했지만, 그는 두 사람의 몸을 건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크리오라는 지구인 여성도 죽여 버리려 했지만, 이 여자도 아무래도 죽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에도르 왕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그것도 할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배리어가 그의 주위에 둘러쳐져 있었던 것이다.
'무엇 때문일까? 어째서일까?'
로저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에도르의 갈렌은 당황했다. 그가 처치할 수 없는 적이라곤 있을 까닭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래도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힘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힘!
그것은 알리시아의 멘터의 힘이었다.
알리시아의 멘터는 벌써 몇 주일이나 전부터 이 곳을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코스티건 일행의 위기를 알아차리자 즉각 행동을 개시(開始)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리오가 로저는 미친 사람처럼 날뛰고 있다고 말한 것은, 실은 이러한 때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할 수 없다. 로저의 육체를 사용하여 이 위기를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에도르의 갈렌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로저는 무중력 상태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로저가 몸부림치고 있는 틈에 코스티건은 가까이 있던 쇠파이프를 집어 들자, 몸의 반동을 이용하여 로저의 머리에 파이프를 내리쳤다. 그러나 그것도 로저의 배리어에 퉁겨나고 말았다. 로저의 몸은 그냥 빙글빙글 돌면서 벽에 부딪쳤다.
그러고 있는 곳에 크리오의 우주복을 안고 브래들리가 들어왔다.
"브래들리 선장님, 빨리 우주복을 크리오에게 입히십시오,"
코스티건이 소리쳤다.
브래들리는 방구석의 기둥을 붙잡고 있는 크리오에게로 다가가서 우주복을 입혔다.
그것을 확인하자 코스티건은 허공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로저의 몸을 옆으로 안아 가볍게 밀었다. 그러자 로저의 몸은 인공 행성의 돔 저 쪽으로 둥둥 떠서 사라져 가버렸다.
"자, 지금 달아납시다!"
코스티건과 선장은 크리오의 손을 잡고 가까이 눈앞에 있는 벽을 발로 세게 찼다. 세 사람은 탈출(脫出)의 유일한 희망 -구명정을 향해 공중을 헤엄쳐 갔다.
코스티건은 그 동안에도 줄곧 로저에게 루이스턴 총을 쏘아 대고 있었다. 그러지 않으면 로저가 배리어를 끄고 무기로 반격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해적들이 인공 중력 장치를 수리하고 나면 어떻게 되지요?"
겨우 원기를 회복한 크리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벌써 수리는 해 버렸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인공 중력이 작동하지 않고 있쟎습니까?"
"그것은 지금 인공 중력장을 발생시키면 로저가 어떻게 되는지를 그들은 알고 있기 때문이오. 아마도 로저는 돔 꼭대기에서 밑바닥으로 떨어져 죽고 말겠지요. 우선 헬리콥터 같은 걸로 로저를 구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위로 올라오면 우리한테 당합니다. 그러니까 놈들은 지금으로선 옴짝달싹도 못 하고 있는 거요."
거대한 돔의 벽에 다다르자 코스티건은 불쑥 튀어나와 있는 레버를 밀었다. 비상용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 너머는 소형 구명정이었다.
코스티건은 독방에 갇혀 있는 동안에 울트라 웨이브 장치로 이 배를 완전히 조사해 두었기 때문에, 즉시 제어장치를 조작할 수 있었다.
구명정은 두꺼운 문을 몇 개나 돌파하고 마침내 우주공간을 날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전속력으로 지구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와아, 해 냈군요."
크리오가 기쁜 듯이 소리쳤다.
"아직 기뻐하는 건 빨라요. 지구까지는 머니까."
브래들리 선장이 못을 박았다.
"아 참, 방위군 본부에 연락을 해 둬야지."
코스티건은 통화기를 쓰지 않고 나직한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샘스, 샘스, 여기는 코스티건입니다.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새미. 동료를 두 사람 데리고 있습니다."
크리오와 선장은 코스티건이 하는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샘스라 하면 방위군 장관이 아닌가. 그 장관을 향해 새미라고 허물없이 부르는 이 사나이는 상당히 높은 지위에 있는 모양이구나.'
선장은 자기 배의 1등 우주사였던 사나이를 놀라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방위군의 총출동을 요청했던 모양이지?"
브래들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방위군하고는 쭉 연락을 취하고 있었으니까요. 이미 방위군의 전 선대에 출동 명령이 내려져 있어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중입니다."
"어마, 그랬었군요. 그럼 이제 걱정 없겠네요."
크리오가 말했다.
"걱정 없다고 분명히 말할 수는 없겠지. 놈들은 당연히 추격해 올 거고, 놈들의 배 쪽이 더 빠르니까."
브래들리 선장이 말했다.
"그래요. 방위군 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가 문제입니다. 아군의 배가 빨리 오면 우리는 살 수 있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코스티건은 입을 다물었다.
답답한 침묵이 찾아왔다.
크리오는 좀 전의 충격에서 완전히 회복되어 있지는 않았다. 새파랗게 겁에 질려 있었다.
코스티건은 크리오 곁으로 다가가자 손을 가만히 크리오의 어깨에 얹었다.
"크리오, 아까는 정말 혼났지요? 로저는 무서운 사나이요. 그 자와 단 둘이 방에 갇혀 있었으니, 얼마나 겁이 났을까."
크리오는 겁엔 질린 얼굴로 코스티건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반드시 당신이 구해 주러 오실 거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
헬멧 속에서 크리오는 얼굴을 붉혔다.
몇 차례의 위험을 코스티건과 함께 헤치고 나오는 동안, 크리오의 가슴에는 사랑의 싹이 트고 있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을 것이다.
어떤 위험에 부딪혀도 항상 침착하게 대항해 가는 코스티건. 언제나 상냥하고 인정스러운 코스티건.
"당신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코스티건은 더듬거렸다. 그는 크리오의 감정을 민감하게 감지(感知)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잘 할 수가 없었다. 방위군의 용사도 이런 일은 질색이었다.
코스티건은 브래들리 선장한테로 돌아갔다.
"아군의 배는 어느 정도 접근했습니까, 선장님?"
"아직 꽤 떨어져 있어. 앞으로 적어도 한 시간은 더 걸리겠지. 그보다도 해적선의 위치가 마음에 걸리는걸."
"글쎄요. 이 쪽 탐지기에 걸렸을 때는 그 쪽의 공격이 시작되어 있을 테니까요. 아무튼 놈들의 위치만 알아 낼 수 있다면 행운이겠는데 말이지요."
"콘웨이, 부탁이 있어요."
어느 새 크리오가 옆에 서 있었다. 얼굴빛이 아주 창백하다.
"그 무서운 남자하고 두 번 다시 얼굴을 맞대기 싫어요. 그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제발 권총을 주셔요. 여차하면 전……."
"이제 다시는 그런 변을 당하게 하지 않겠소. 구해 낼 가망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 때는 내 손으로 당신을……."
콘웨이는 '죽인다'는 끔직한 말을 꿀꺽 삼켰다.
"죽을 때는 당신하고 같이 죽겠어요."
크리오는 코스티건의 우주복에 싸인 손을 쏙 잡았다. 두 사람은 서로 빤히 마주 보았다.
"자, 코스티건, 해적선의 위치를 조사해 주겠나?"
브래들리 선장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오케이."
코스티건은 울트라 웨이브로 우주 공간을 조사했다. 한참 후 그가 껄껄 웃어대는 바람에 브래들리와 크리오는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아이고, 우습다. 내가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니, 원."
"도대체 왜 그래요?"
"왜냐고? 글쎄, 이건 적의 배가 아니냐 말입니다. 적의 배는 모두 에테르 배리어 덕분에 탐지 못 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렇다면 놈들은 이 배를 탐지 못 한다는 뜻인가?"
브래들리 선장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그럼요. 그래서 그들은 이 배를 추월하여 지그재그 항행을 하면서, 이 쪽이 놈들에게 탐지되는 행동을 취하기를 기다리자는 계획인 모양입니다. 지금 방위군 함대 쪽으로 똑바로 달려가고 있어요."
"호, 그거 재미있군. 아군을 만나면 아마 놈들은 까무러치게 놀라겠지."
그러나 놀라게 된 것은 해적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해적선은 은하계 방위군의 탐지망에 들어가기 전에 코스티건 일행의 배의 영상반에 뚜렷이 그 모습이 비쳤던 것이 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선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크린을 응시했다.
코스티건도 크리오도 그 소리에 끌려들어 같이 들여다보았다.
영상반의 해적선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선체가 순식간에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빛이 짙어짐에 따라 거무스름해지더니, 이윽고 선체의 금속이 흐물흐물 녹기 시작하나 싶자, 그것은 어느 새 한줄기의 흐름이 되어 우주 공간의 어느 한 점을 향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노릇일까."
코스티건은 놀라서 울트라 웨이브를 그 공간으로 돌렸다. 놀랍게도 거기에는 무언지 무한하게 큰 것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리고 녹은 쇳물은 그 무엇인가의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코스티건은 위험을 느꼈다.
'샘스에게 연락해야 한다.'
그는 필사적으로 샘스를 불러 댔다. 강력한 방해파가 울트라 웨이브를 방해하고 있었으나, 그는 한 가닥 희망에 매달려 계속 불러 댔다.
"샘스, 샘스. 여기는 코스티건입니다. 이상 사태 발생. 이상 사태 발생.“
그리고 방금 일어난 사건을 정확히 설명했다. 어떤 세밀한 일도 빼지 않고 민첩하게 보고했다.
그 동안에 그들의 작은 배는 붉은 기를 띤 베일 쪽으로 서서히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붉은 베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빨려 들어가는 순간, 코스티건 일행의 몸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의식도 있고 호흡도 정상이고 심장도 뛰고 있었으나, 손가락 하나 움직여지지 않고 눈도 깜박일 수 없었다.
 
시카고 호 출동
 
은하계 방위군의 최신식 순찰정 시카고 호는 우주 공간을 순찰 중이었다.
요 5주일 동안 수수께끼 해적선의 행방을 찾아, 할당된 공간을 계속 순찰하고 있었다. 앞으로 이틀이면 그 임무도 끝난다. 선원들은 2주간의 휴가를 마음 속으로 기대하고 있어서 선 내도 어딘지 모르게 느긋한 기분이 감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느긋한 기분도 갑자기 울려 퍼진 경보 벨에 의해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제어실에 있는 컨트롤 패널의 빨간 램프가 빛나며 경보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와 동시에 스피커에서 긴장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하이페리온 호, V2 가스의 공격을 받았다. 여기는 하이페리온 호, V2 가스-."
그 목소리는 찌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뚝 끊어졌다.
"적선의 위치는?"
시카고 호의 선장은 1등 우주사에게 물었다.
"적선의 위치는 불명. 탐지할 수 없습니다."
"이상하다. 이렇게 강한 방해파를 보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으면서 탐지할 수 없다니."
시카고 호의 선장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을 수는 없다. 선장은 즉각 명령을 내렸다.
"하이페리온 호로 급행하라."
그리고 방위군 총사령부를 불러냈다.
"여기는 시카고 호, 하이페리온 호가 V2 가스에 피습되었음. 적선의 정체는 불명. 즉각 현장으로 급행."
이 보고를 받은 총사령부는 현장(現場) 부근에 있는 모든 배에 현장으로 급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리하여 시카고 호는 하이페리온 호 구조를 위해 전속력으로 돌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선 내는 긴박한 공기에 휩싸였다. 하여간 상대는 정체 불명이다. 그 강력한 울트라 웨이브로 탐지할 수 없는 것이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배 밑에 있는 보급실에서는 하이페리온 호의 조난 같은 작은 사건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 보급부원들은 병기의 점검에 바빴다.
"이봐, 클리브. 다음은 뭐야?"
"다음은 스탠디시 총 5천-."
클리브라 불린 사나이는 손에 든 종이 쪽지를 읽는다
"또 다음-"
"다음은 루이스턴 총-"
클리브는 갑자기 말을 끊고 몸을 긴장시켰다.
"이봐, 왜 그래, 클리브 ? 빨리 읽어……."
그러나 클리브는 세차게 손을 흔들어 상대편의 말을 막았다.
"예, 뭐라고요, 샘스. 정체를 나타내는 겁니까?"
클리브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동료는 눈을 깜박거리며 클리브를 응시했다.
"이봐, 클리브. 왜 그래? 정신이 돌았나?"
하지만 클리브는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전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다.
"예, 예. 알았습니다, 샘스. 즉각 행동을 개시하겠습니다."
클리브는 민첩하게 대답하고, 어리둥절해 있는 동료를 그 곳에 남겨 둔 채 보급실을 나갔다.
그는 주임 장교의 책상으로 갔다. 깜짝 놀라고 있는 장교에게 그는 손바닥에 있는 납작한 것을 보였다.
장교는 그것을 보자 벌떡 일어나서 경례했다.
"방금 샘스로부터 긴급 지령을 받았어. 지금부터 선장실에 갔다 오겠네. 나에 대한 것은 비밀로 해 주게."
클리브는 그렇게 말하자 선장실로 향했다.
선장실에 들어가려고 하자 당직 사관이 그를 막았다.
"야, 어디로 가는 거야? 선장실은 출입 금지다."
클리브는 여기서도 손바닥의 납작한 것을 보였다. 그것은 금빛으로 빛나는 렌즈였다.
그것을 보자 당직 사관은 깜짝 놀라 안색이 변했다.
"이, 이건 렌즈맨의- 하지만 그것이 진짜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할 수 없군. 이걸 만져 보게."
클리브는 금빛으로 빛나는 렌즈를 내밀었다. '당직 사관은 그것을 만지자 앗 하며 비틀거렸다. 마치 전격 같은 충격이 온몸을 뚫고 지나갔던 것이다.
"조, 좋아요, 알았습니다. 들어가십시오."
당직 사관은 공손하게 길을 비켜 주었다.
선장은 금빛 렌즈를 보기만 하고도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렌즈맨이 이 배에 타고 있는 줄은 몰랐군. 그래, 샘스의 명령이란?"
"비상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우리 렌즈맨들은 즉각 신분을 밝히고 자신의 지휘관과 연락하도록 하라는 명령입니다."
"비상 사태라니?"
"적선의 위치를 알아내게 된 것입니다."
"오, 그것 잘 됐군. 그래, 적은 어떤 자인가?"
"인공 행성에 기지를 가지고 있고, 우리 배보다 우수한 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에테르파(波)로도 탐지할 수 없습니다만, 다행히 우리는 새로운 울트라 빔 통신법을 개발해 왔기 때문에 그것이 도움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동료 하나가 하이페리온 호에 타고 있어서 그로부터 자세한 자료가 보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울트라 빔을 이 배의 영상반에 설치하여 적의 기지를 정찰하라는 명령입니다."
"좋아, 알았네. 즉시 시작하게."
그 때, 선장 책상 위의 스피커가 울리기 시작했다.
방위군 총사령부로부터의 출동 명령이었다.
"전 선대에 알린다. 모든 배는 즉각 적의 기지로 급행하라. 목표점은 AXW 10972- -AXW 10972."
영상반 위에 흩어져 있던 무수한 흰 광점(光點)이 목표를 나타내는 붉은 광점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클리브는 그 동안 시카고 호의 영상반 앞에서 팔짱을 끼고 곰곰 생각하고 있었다.
"빨리 그 새로운 통신 장치를 달지 그러나?"
선장이 재촉했다.
"아닙니다, 이걸로는 마력이 모자라서 그럽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가?"
"그걸 지금 생각하고 있었지요. 전기와 무선 기사를 이리로 불러 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거야 쉬운 일이지."
두 사람의 기사가 불려 오자 클리브는 세밀한 지시를 주면서 새로운 울트라 빔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두 시간 후에 그럭저럭 완성되었다. 클리브가 스위치를 넣자 진공관이 빨갛게 빛나기 시작했다. 클리브는 한 10분 동안 다이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크, 나타났다."
클리브가 소리쳤다.
영상반에 조그만 인공 행성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이거 굉장하군 잘 했어, 클리브."
선장은 클리브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확한 위치를 알았습니다. 좌표 2.62, 적경 124-31-16, 거리는 약 173.2."
이 위치는 즉각 모든 배에 통보되었다.
선장은 클리브를 칭찬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런 굉장한 일을 할 수 있다니, 자네가 설마 그 유명한 라이먼 클리블랜드는 아니겠지?"
"아닙니다, 그런 일쯤이야 뭐……."
클리브는 입 속으로 우물우물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울트라 빔을 지구로 돌렸다.
영상반에 버질 샘스의 얼굴이 비쳤다.
"여, 라이먼."
스피커에서 샘스의 목소리가 흘렀다.
선장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설마 했는데, 이 자가 그 유명한 라이먼 클리블랜드라니!
"드디어 해냈군, 라이먼. 다른 배에도 그것과 같은 장치를 할 수 있겠나?"
"아마 안 될 겁니다. 이것저것 끌어 모아서 임시로 두드려 맞춘 것이니까요."
"그걸 사진기에 응용 못 할까?"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코스티건한테서 연락이 들어왔는데, 무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이상 사태가 일어난 모양이야. 보고 도중에 굉장한 방해파가 들어오더니 그 길로 통신이 끊어져 버렸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그걸 모르겠단 말일세. 그러니까 자네는 전장에서 될 수 있으면 떨어져 있어 주기 바라네. 그리고 일어난 일을 모두 사진으로 찍어 줘야겠어. 그렇게 하도록 그 쪽 선장한테 명령할 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이고 뭐고 없어. 이건 내 명령이야.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을 정확하게 자세히 알 필요가 있어. 정체 불명의 적에게 이기기 위해 그 사진이 중요한 단서가 될 거라고 생각하네. 그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코스티건이라는 렌즈맨을 하나 잃었어. 그러니까 자네까지 잃고 싶지 않단 말일세."
"코스티건이 죽었습니까?"
클리블랜드는 놀라서 물었다.
"아니, 아직 확실한 것은 모르겠어. 그러나 십중팔구는 죽은 걸로 생각되네."
클리블랜드는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실망에 잠겼다.
"그럼 부탁하네, 라이먼."
버질 샘스의 얼굴이 영상반에서 사라졌다. 그와 엇갈리어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은하계 방위군 총사령부로부터의 명령이다.
"시카고 호는 선대로부터 이탈하라. 전투 상황 사진 촬영 을 명한다."
총사령부의 명령이고 보면 시카고 호의 선장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시카고 호는 속도를 늦추어 선대에서 떠났던 것이다.
 
은하계 방위군의 전 선대는 바야흐로 거대한 원추형 편대를 짜고 정체 불명의 적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이윽고 인공 행성의 모습이 각 배의 영상반에 비쳤다.
"적의 기지를 발견!"
각 배의 스피커가 시끄럽게 소리를 질러 댄다.
"소형 해적선이 몇 척 접근해 오고 있음!"
"공격 준비!"
"준비 완료!"
각각의 선 내에서 부산하게 공격 준비가 갖추어진다.
그레이 로저는 그런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기의 인공행성이 방위군에게는 보이지 않는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편이 눈치채기 전에 공격을 개시하면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공격을 개시하라!"
그는 여러 척의 소형 우주정에 발진(發進)을 명령했다.
'방위군 따위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두고 봐라.'
그레이 로저는 뻔뻔스러운 웃음을 씩 웃었다.
그러나 그는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소형 해적선이 방위군 진형(陣形)에 돌입한 순간, 방위군의 모든 배가 공격 빔을 퍼부어 댔던 것이다.
로저가 발명한 방어 스크린이라 할지라도, 이 정도 강력한 빔을 맞고서는 잠시도 지탱할 수가 없었다. 소형 해적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소멸해 버렸다.
로저는 잇따라 소형선을 내보냈지만 어느 것이나 무서운 빔을 맞고 소멸해 버렸다. 이리하여 로저의 병력은 3분의 2를 잃었다.
그러나 남은 해적선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무서운 가속도로 원추형 선진(船陣)을 벗어나자 바깥쪽에서 공격을 가해 왔던 것이다.
이렇게 되니 해적선 쪽이 우세했다. 금세 방위군 배의 2분의 1이 해적선의 빔 공격을 받고 사라져 버렸다.
방위군 부사령관은 남은 배에 원자 어뢰 발사를 명했다. 방위군이 특별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병기다.
"원자 유도 어뢰, 발사 준비 완료!"
"발사 준비!"
"발사!"
어뢰는 해적선의 방어 스크린을 관통하고 선체를 풍비박산으로 흩날렸다.
로저의 선대는 이 어뢰로 인해 거의 파괴되어 버렸다. 로저는 패배를 깨닫고, 남은 몇 척의 배를 모아서 원추형 진중으로 돌입 시켰다.
그 때였다, 그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은!
갑자기 붉은 기를 띤 불투명한 베일이 허공에 나타난 것이다. 그 곳에서 강력한 에너지 빔이 발사되어 로저의 배와 방위군의 배를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사로잡힌 배는 선체가 흐물흐물 녹기 시작했고, 녹기 시작한 금속물은 붉은 베일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로저의 배도 방위군의 배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 채 붉은 베일에 싸여 버렸다.
 
붉은 행성의 비밀
 
코스티건의 구명정을 삼킨 붉은 베일!
로저와 방위군의 배를 삼킨 붉은 베일!
도대체 이 붉은 베일의 정체는 무엇일까.
실은 어떤 행성에서 온 우주선이 쏜 금속 연화 광선이었던 것이다.
행성의 이름은 네비아. 지구에서 몇 광년이나 떨어진 태양계의 단 하나뿐인 행성이다.
네비아의 하늘은 붉은 하늘이었다. 붉은 하늘에 푸른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행성의 표면은 거의가 바다이고 자줏빛 햇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나고 있다.
태양이 수평선 저편으로 가라앉으면 하늘에는 금세 구름이 일어 세찬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밤중까지 쏟아지던 비가 갑자기 멈추면 장려한 밤하늘이 출현한다. 밤하늘에 빛나는 성좌(星座)는, 지구인에게 있어서는 아주 낯선 것이었다.
네비아의 도시는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도시의 건물은 어느 것이나 꼭대기가 편편한 육각형 탑인데, 크기도 빛깔도 모두 똑같았다. 각각의 탑은 벌집 같은 모양으로 줄을 짓고, 탑과 탑 사이는 다리나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건물 사이의 도크에 한 척의 물고기 모양의 우주선이 방금 착수하려 하고 있었다. 조종사는 네 개의 더듬이를 바삐 움직이며 레버나 스위치를 눌렀다. 거대한 선체는 거의 비말(飛沫)도 일으키지 않고 차분히 수면에 닿았다.
배가 정지하자 조종사는 안전 벨트를 풀고 좌석에서 일어섰다.
그것은 지구인의 눈으로 보면, 아무리 봐도 물고기 괴물이었다.
물고기처럼 납작한 동체, 비늘이 돋은 짧은 네 개의 다리, 네 개의 꼬리, 목은 부드러운 비늘로 가득 덮여 있고, 머리는 원추형인데 이것도 비늘로 덮여 있다. 얼굴로 여겨지는 곳에 세모꼴 눈이 네 개 나란히 붙어 있다. 눈 밑에서 네 개의 더듬이가 뻗어 있는데, 더듬이의 끝은 여덟 개로 갈라져서 손가락을 대신하고 있다. 더듬이 바로 밑에 부리 같은 입이 있는데, 침 같은 날카로운 이빨이 나란히 나 있다.
네비아 인은 수중에서도 육상에서도 생활할 수 있는 양서 생물, 냉혈동물이다. 아가미와 폐의 양쪽을 사용하여 호흡을 할 수 있고, 비늘로 덮인 몸은 물에도 공기에도 적합하다. 납작한 다리는 육지를 걸어다니는 데도 물 속에서 헤엄치는 데도 쓸모가 있는 것이다.
조종사는 배에서 내리자 물 속으로 슬쩍 미끄러져 들어가더니 굉장한 속도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윽고 육각형 탑 하나에 다다르자 벽에 나 있는 출입구로 해서 탑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로 올라갔다.
조종사는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네비아 상무장관(商務長官) 사무실이었다.
"어서 오게, 네라드 선장."
장관은 네 개의 더듬이를 흔들며 인사했다.
네라드 선장이라 불린 네비아인 조종사는, 푹신한 쿠션이 줄어 있는 의자 위에 풀썩 뛰어 올라갔다.
"시험 비행은 성공이었습니다."
"이거 정말 축하하네."
"광속도의 열 배로 날 수 있었습니다."
"그거 아주 굉장하군. 그렇다면 드디어 출발할 수 있다는 얘기군."
"예.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철 말고는요. 그런데 저희들의 배를 위해 어느 정도의 철을 마련해 주셨는지요?"
"5 킬로그램 가량."
"5킬로그램씩이나! 이거 참 굉장하군요."
"그걸 모으느라 혼이 났다네. 국가에서 저장하고 있는 철은 나누어주질 않으니 말일세. 그러나 우리 친구가 개인적으로 전 재산을 던져 주는 바람에 이만한 철을 간신히 입수할 수 있었다네."
"정말 놀랍군요. 감사합니다."
네라드 선장의 세모꼴 눈이 제비꽃 빛깔의 빛을 반짝반짝 떨쳤다.
"5킬로그램 있으면 얼마나 가는가?"
"적어도 1년 간은 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저희들의 판단이 잘못되어 있다면……."
"그 때는 5킬로그램의 귀중한 철이 허탕이 된다."
"값비싼 희생이 되겠군요."
"그렇게 되겠지. 우리 행성에서 수십만 광년의 범위에 있는 다른 태양계에, 행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네. 십중팔구까지 네비아는 우주 속의 유일한 행성일 것일세. 그리고 지성이 있는 생물은 우리 네비아 인뿐일 것일세.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네라드 선장. 자네의 배가 철을 함유한 작은 별을 발견할 가능성은 지극히 크네. 만일 자네가 기적적으로 그걸 발견한다면, 그 땐 어떻게 될까?"
"네비아의 문명은 급속도로 진보할 것입니다."
"그래. 우리는 5킬로그램이라는 귀중한 철을 내던져서라도 거기다가 걸어야 하네."
장관은 방 한구석의 큰 상자로 다가가자 그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자, 5킬로그램의 철일세. 성공을 빌겠네."
"감사합니다."
네라드 선장은 공손하게 그 상자를 받아 들었다.
이리하여 물고기 모양의 우주선은 5킬로그램의 철을 싣고 미지(未知)의 우주로 날아갔던 것이다.
독자는 장관과 네라드 선장의 대화로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행성 네비아에서는 철은 매우 귀중한 자원이었다. 네비아의 동력원, 즉 우주선이나 모든 종류의 탈 것이나 기계를 움직이는 것은 철이었다. 그 철이 행성 네비아에서는 매우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네비아 선장은 먼 미지의 태양계로 철을 찾으러 간다는 중대한 사명을 띠고 네비아를 떠났던 것이다.
네라드의 우주선은 일주일, 또 일주일, 무한한 우주를 항행(航行)해 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행성을 동반한 G형의 소형 항성(恒星)을 발견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 행성은 한 개가 아니라, 여섯 개 -일곱-여덟 개 -적어도 아홉 개는 되었다. 게다가 그 행성들의 거의가 한 개 또는 그 이상의 위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믿을 수 없어, 정말 믿을 수 없어. 네비아 이외의 행성이 존재하다니."
네라드 선장은 너무 기쁜 나머지 목 비늘을 부르르 떨었다.
선 내는 이 대 발견으로 발칵 뒤집혔다.
우주선의 영상반에는 틀림없이 아홉 개의 행성이 비치고 있었다!
"좋아, 속도를 늦추어라. 참지 스크린을 모두 다 열어라!"
네라드 선장은 명령했다.
네비아의 배는 서서히 태양을 항해 나아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탐지기는 장애물을 발견했다.
"선장님, 굉장합니다. 이건 순수한 쇳덩어리입니다."
"설마!"
네라드 선장은 믿어지지 않았다. 순수한 쇳덩이가 우주공간에 떠 있다니! 그러나 금속 탐지기로 조사한 결과 틀림없이 철이었다.
"좋아, 즉각 연화 광선을 퍼부어라."
네라드 선장의 명령으로 그 쇳덩이에 연화광선이 퍼부어지자, 쇠는 흐물흐물 녹아서 우주선의 저장탱크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작업이 끝났나 싶자 또다시 탐지기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거대한 쇳덩어리를 발견!"
"작은 쇳덩어리를 수십 개 발견!"
잇따라 들어오는 보고에 네라드 선장은 미칠 듯이 기뻤다. 마치 우주 공간이 철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행성 네비아로 빔을 보냈다.
"우리는 철을 발견했다.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양이다. 부디 놀라지 말아 주기 바란다. 수백만 톤이라는 양이다. 즉각 응원선을 보내 주기 바란다."
이 보고를 받은 네비아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 날뛰었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네라드 선장은 정신 없이 닥치는 대로 철을 채집했다.
그 때 또 관측원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선장님, 현재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쇳덩어리를 관찰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인공으로 된 건조물입니다."
"뭐, 인공 건조물이라고?"
네라드 선장의 세모꼴 눈이 네모꼴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생물이 타고 있습니다. 세 마리입니다."
"뭐, 생물이라고?"
네라드 선장은 펄쩍 뛰었다. 네 개의 꼬리가 덜렁덜렁 흔들렸다.
"아주 괴물 같은 생물입니다만, 약간 지능이 있는 모양입니다. 우주를 비행할 수 있는 이상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야. 그렇다면 아까 그 쇳덩이도 우주선이었는지도 - 아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우리는 철을 입수해야만 한다."
"그 생물들은 어떻게 할까요, 선장님?"
"그것이 타고 있는 우주정은 그대로 수용하라. 나중에 천천히 연구하자."
이리하여 그 우주선은 네비아 선에 수용된 것이었다.
그 우주선에 타고 있던 세 마리의 생물이란, 독자는 이미 짐작하고 있을 줄 믿지만 코스티건과 브래들리와 크리오의 세 사람이었던 것이다.
네라드 선장은 시각(視覺) 빔을 소형 우주정으로 돌렸다. 그리고 세 마리의 생물을 바라보았다.
"흠, 확실히 지능은 있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철을 원자 에너지로서 쓸 줄을 모르니까 대수로운 지능은 아니야. 울트라 웨이브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유치한 것이야. 우리하고는 비교도 안 된다."
네라드 선장은 지능이 높은 생물을 죽여 버리지나 않았나 하고 걱정이 되었는데, 이제 안도의 가슴을 쓸어 내렸던 것이다.
우주정이 선 내로 반입되자 네비아의 과학자들은 곧 선 내의 공기를 분석했다. 그리고 세 마리의 생물이 입고 있는 우주복을 벗겼다.
우주복 속에 입고 있는 옷을 벗기려고 하자 세 마리 다 몹시 날뛰었으므로 벗기는 것을 단념했다. 세 마리의 생물은 네라드 선장 앞으로 운반되었다.
이리하여 멀리 떨어진 두 태양계의 주민(住民)이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 대했던 것이다.
"참 기괴한 생물이구나. 손발이 두 개씩에 눈은 둘밖에 없어. 그리고 저 번질번질한 살갗에는 소름이 끼치는구나. 게다가 말도 할 줄 모르는 모양이다."
네라드 선장은 혼자 중얼거렸다.
코스티건 일행은 겨우 일시적인 마비에서 풀리려 하고 있었다. 몸도 조금 움직이게 되었다.
공기는 지구의 공기보다 다소 짙고 묘한 냄새가 났지만 호흡은 편히 할 수 있었다. 중력도 지구와 거의 다름없었다.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다.
크리오가 제일 먼저 소리쳤다.
"어쩌면 저렇게 기분 나쁜 괴물일까요?"
"정말이야. 저 비늘은 소름이 끼치는군. 그리고 말도 못 하는 모양이야. 아까부터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는데, 틀림없이 귀머거리에 벙어리인지도 몰라."
브래들리 선장이 말했다.
이리하여 네비아인도 지구인도 서로서로 상대가 말하고 있는 것을 몰랐다.
왜냐 하면 네비아인의 목소리는 너무 높아서 지구인 귀에는 들리지 않았고, 지구인의 목소리는 너무 낮아서 네비아인 귀에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할까요. 선창에 가두어 둘까요?"
세 사람을 데리고 온 선원은 네라드 선장에게 물었다.
"아니, 그건 안 돼! 그랬다가는 죽어 버릴지도 몰라. 어떻게 해서든지 살려서 네비아까지 데리고 돌아가 한다. 대학에서 면밀한 연구를 하게 해야 해."
"데리고 돌아가면 모두들 굉장하겠지요?"
"당연하지! 행성을 가진 태양계가 있고, 그 행성에는 지적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하는 산 증거니까."
"어디다가 들여놓을까요?"
"제 4섹션의 이어진 방이 좋겠지. 빛과 운동이 필요한 모양이야. 물론 출구는 단단히 닫아 두도록. 방과 방 사이의 문은 잠그지 말고 그들이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해 두라고."
네라드 선장은 말을 마치자 제어판 쪽으로 돌아앉았다. 그러자 선원은 세 사람의 지구인을 향해 더듬이를 흔들었다.
"따라오라고 그러는 모양이어요."
크리오가 말했다.
"그런 모양이군."
코스티건이 말했다.
세 사람은 괴물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뒤에서 또 다른 두 마리의 괴물이 따라왔다.
코스티건이 갑자기 소리쳤다.
"지금이 기회다. 내가 앞의 놈을 처치할 테니 선장님은 뒤의 둘을 부탁합니다."
코스티건은 등을 구부리고 앞을 걸어가는 네비아 인에게 덤벼들었다. 상대가 쓰러지자 무거운 구둣발로 얼굴 같아 보이는 곳을 마구 찼다. 네비아 인은 으윽 하는 기묘한 소리를 내며 뻗어 버렸다.
코스티건은 뒤를 돌아보았다.
크리오가 쓰러져 있었다.
"왜 그래요, 크리오?"
이렇게 말하면서 다가가는 순간 코스티건의 몸이 마비되었다. 뒤에 있던 네비아 인이 마비 광선을 쏘았던 것이다. 브래들리 선장도 꼿꼿해져서 툭 쓰러졌다.
세 사람은 네비아 인에게 둘러메어져서 네라드 선장이 정해 준 방으로 운반되었다. 그리고 방 복판에 있는 쿠션 위에 가만히 내려졌다.
괴물들이 나가고 금속 문이 닫히자, 그제야 몸이 움직이게 되었다.
"이번에도 우리가 졌군. 로저의 손에서 겨우 탈출했나 했더니 다음에는 네 발 달린 물고기 괴물이야."
"하지만 우리한테 해코지는 하지 않는군요. 틀림없이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은 거여요. 소중하게 다루었다가 자기네 별로 데려갈 생각인가 봐. 무시무시하지만, 로저나 그의 부하인 로봇들보다는 훨씬 나아요."
크리오는 쾌활하게 말했다.
"정말이야. 그러나 마치 우리에 갇힌 곰 같은 기분이 드는걸. 동물원의 곰이라면 달아날 기회도 없겠지."
브래들리 선장은 곰같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틀림없이 이 우리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두 분이 곁에 계시는걸요. 로저의 손아귀에서도 보기 좋게 구출해 주셨쟎아요."
크리오는 단호하게 말하고 코스티건을 쳐다보았다. 그 눈은 '당신을 어디까지나 신뢰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참말로 용기가 있군요, 크리오. 훌륭해. 그 네 발 달린 물고기 괴물도 머지 않아 혼이 날 거야. 그들도 매우 강력한 무기가 있는 모양이지만, 이 쪽에도 지지 않는 것이 있어요."
코스티건은 자신 있는 듯이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참말로 괜찮을까? 그런 굉장한 무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브래들리 선장이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아니, 사실을 말씀드리면, 우리 방위군은 초광속 우주선을 만들고 있습니다. 광선보다 훨씬 빨리 날기 때문에 은하계의 어디로 가든 한 달 정도면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신식 서브 에테르 추진, 신식 무기, 모두가 기막힌 것 투성이지요. 그러나 약간 결함이 있어서-지금까지 다섯 번 폭발이 일어나서 스물 아홉 명의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그 결함만 개량되면-."
"개량되면? 안 되면 어떻게 할건가?"
브래들리 선장은 비통한 얼굴을 했다.
"방위군이 해서 안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뭔가를 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그것이 우리 은하계 방위 군의……."
코스티건은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머리를 긁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구태여 이런 데서 자랑할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그럼, 그 신형 우주선이 완성되면 반드시 구출하러 와 준다는 얘긴가?"
"예, 꼭 구출하러 올 걸로 압니다. 그 때까지 이 우리 속에서 얌전하게 지내도록 합시다. 다행히 이 우리는 최고급 설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관측 스크린까지 있군요. 어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스크린이나 한번 보도록 할까요?"
코스티건은 네비아식 영상반을 한참 만지작거리고 있더니 곧 그 조작법을 이해했다.
영상반에는 로저의 인공 행성이 비췄다. 그리고 그 곳에 돌진해 가는 방위군의 선대가 비쳤다.
그것을 맞아 싸우는 로저의 배와의 대결전이 지금 불꽃을 튀기며 벌어지고 있었다.
그 치열한 싸움을 제어실의 네비아 인들도 보고 있었다. 네라드 선장도 흥미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실로 광포한 싸움이다. 원시적인 생물 사이에서는 아직도 전쟁을 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실로 야만적이다."
네라드 선장은 두 우주 선대의 싸움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파괴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으니 우리가 그들을 모두 파괴해 버려도 상관없겠지. 우리에겐 철이 필요하고, 그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생물이다."
네라드 선장은 그렇게 중얼거리자 붉은 빛깔의 연화광선을 방사(放射)했다.
기분 나쁜 붉은 베일이 두 선대를 천천히 감싸는가 싶자, 선체가 흐물흐물 녹아서 쏟아져 내렸다.
방위군의 배는 갑자기 일어난 괴이한 일에 놀랄 겨를도 없었다.
한 척, 두 척, 금세 녹아 들어간 배는 붉은 베일로 자꾸자꾸 빨려 들어갔다.
 
로저도 이 새로운 적의 존재(存在)를 깨달았다.
아니, 그 전에 갈렌인 로저는 어떤 이상한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세 사람을 사로잡고 나서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잇따라 일어났다. 그 세 사람에 대해 서브 에테르 병기를 아무리 해도 쓸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엄중한 경계를 벗어나 간단하게 달아나 버렸다. 게다가 보아하니 텔레파시를 쓸 줄 아는 모양이다. 그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는 텔레파시를 쓸 줄 아는 종족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은하계 방위군에 대해서도 서브 에테르 병기를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어째서일까? 갈렌인 로저는 생각했다.
거기에 또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붉은 베일의 적.
로저는 방위군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고 이 새로운 적에 대항했다. 고성능 폭탄과 초원자 어뢰의 집중 공격을 퍼부었으나 모두 불그스름한 베일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새로운 적은 방위군의 배를 전부 녹여서 빨아들여 버리자, 로저의 인공 행성을 향해 왔다.
그러나 이 인공 행성은 에도르의 갈렌이 설계하고 건조한 것이라, 강력한 에테르 배리어로 방호(防護)되어 있다.
적의 붉은 광선도 이 배리어가 퉁겨 버렸다. 적은 놀라서 에너지를 두 배로 하고 세 배로 하였으나, 아무래도 배리어를 파괴할 수가 없었다.
갈렌인 로저는 침착하게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책상은 제어 장치가 나란히 있는 패널로 되어 있다.
적의 강한 빔도 이 정도라면 퉁겨 낼 수 있겠지. 그러나 이 이상이 되면 견뎌 낼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른다. 그 때는 어떻게 할까. 로저의 몸이 파괴되기 전에 에도르로 돌아가야 할까?
아니, 그것은 안 된다. 아직 모르는 일이 많이 있다.
텔레파시를 조작하는 종족이 에도르 이외에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불쾌하지만 아무래도 확실한 것 같다. 그 세 사람은 그 종족에 속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텔레파시의 능력은 시간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다. 필시 그 종족도 에도르만큼 역사가 오래 된 종족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종족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 이유는, 그 종족이 일부러 존재를 숨기고 있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갈렌의 마음은 과거로 거슬러올라갔다.
과거로-과거로-다시 과거로-다시 더 과거로 거슬러올라갔다.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에 하나의 방해 에너지가 그의 마음에 작용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더듬어 본 적 없는 과거를 더듬고 있는 마음의 바늘을 핀셋으로 집어 옆으로 당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옳아. 너는 내가 찾아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이제 에도르 이외에 텔레파시 능력을 가진 종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머지 않아 꼭 그 정체를 알아내고야 말겠다."
에도르의 갈렌은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네라드 선장님, 이것이 적의 방어 스크린의 성질 분석 결과입니다."
선원이 기호를 써넣은 금속판을 내밀었다.
"흠, 다주파 스크린이군. 이런 하등 생물이 이렇게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을 줄은 예상도 하지 못했어."
네라드 선장은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컨트롤 패널 다이얼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로저의 인공 행성에 달라붙어 있던 에너지의 베일 빛깔이 점점 변해 갔다, 붉은빛에서 눈이 아찔할 정도의 제비꽃 빛으로. 방어 스크린의 일부가 물렁물렁해져서 푹 꺼지고, 스크린은 그 꺼진 부분에서부터 서서히 망가져 나갔다.
로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대단한 녀석이구나. 좋아, 이 쪽은 에너지 튜브로 공격 해주지."
로저는 부하 로봇에게 에너지 튜브를 준비시켰다.
방어 스크린의 일부가 스스로 뻗어나가 하나의 튜브가 되었다. 그 튜브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빔이 쏟아져 나왔다. 빔은 네비아의 붉은 베일에 구멍을 뚫고 네라드의 배를 엄습했다. 네라드의 방사 장치가 비명을 올렸다.
그러나, 그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튜브의 다른 한쪽 끝에서 아주 작은 섬광이 튀어 나왔던 것이다.
그 작은 섬광은 무서운 폭발을 유도했다. 에너지 발생기가 타서 끊어지고 방어 스크린이 부서졌다.
"자, 지금이다."
네라드 선장의 외침 소리와 함께 연화 광선이 인공 행성을 덮쳤다. 붉은 빔은 저항력을 잃은 금속 벽을 사정없이 녹이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철이 많이 있었기 천만 다행이었어. 남은 15킬로그램만 가지고는 그 마지막 에너지 공격을 피해 내기란 어려웠을 거야."
네라드 선장은 비늘로 덮인 목덜미를 구불거렸다.
"어렵다기보다도 원자가 되어 버렸겠지요."
선원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에도르의 갈렌에게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 작은 섬광은 무엇이었을까? 어째서, 어째서 폭발이 일어났을까?'
에도르의 갈렌은 한참 생각했으나 아무래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독자는 이미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그 섬광, 그 폭발을 일으킨 것이 누구였는지.
물론 알리시아의 멘터였던 것이다.
그 때, 네라드 선장은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알리시아의 멘터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신 에너지에 의해 그 폭발을 일으켜 로저의 그 무서운 에너지 발생기를 파괴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로저의 인공 행성은 흐물흐물한 철이 되어 네비아선의 저장고로 빨려 들어갔던 것이다.
"선장님, 조금 떨어진 곳에 성한 우주선 한 척이 있습니다만, 저건 어떡할까요?"
"이제 됐어. 그건 내버려둬라. 저장고는 꽉 찼으니까. 자, 되도록 빨리 이 기막힌 선물을 가지고 네비아로 돌아가자."
네라드 선장은 이렇게 말했다.
성한 우주선 한 척 -그 치열한 싸움에서 성한 것이 남았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독자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 촬영을 명령받은 우주선 시카고 호에 대한 것을.
그것이 이 성한 우주선 한 척인 것이다.
알리시아의 멘터는 시카고 호가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카고 호를 살아남게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지구인도 네비아인도 에도르의 갈렌도.
네비아의 우주선은 엄청난 철을 싣고 비틀거리면서 네비아를 향해 항행해 갔다.
제 4 섹션의 선실에서는 세 사람의 지구인이, 인공 행성이 파괴되기까지 광경을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요."
크리오는 숨을 헐떡거리듯이 말했다. 그러나 코스티건은 아까부터 무언가 곰곰 생각하고 있다.
"아까 보였던 그 작은 섬광,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브래들리 선장이 말했다.
"그건 로저의 에너지 장치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그건 틀림없이……."
"그건 틀림없이, 뭐여요, 콘웨이?"
크리오가 물었다.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코스티건은 말꼬리를 흐렸다.
그건 틀림없이 알리시아의 멘터가 한 일이라고 코스티건은 짐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렌즈맨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크리오 일행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또 내 울트라 웨이브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아직 통신할 수 있을 겁니다."
코스티건은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말하기 시작했다.
"샘스, 샘스, 여기는 코스티건입니다. 여기서 관찰한 것을 보고드릴 테니까 빨리 레코더에 기록해 주십시오. 아마 별로 시간이 없을 걸로 압니다."
그리고 약 10분 가량 그는 간결하게,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그 때까지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
10분 가량 지났을 때, 그는 갑자기 말을 끊었다.
"앗!"
그는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들은 울트라 웨이브를 탐지할 수 있는 모양이야. 굉장한 방해파를 보내 왔어. 어금니 대여섯 개가 흔들흔들해졌어."
"도대체 그들은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갈 작정일까요?"
크리오가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당신한테 거짓말을 해 봤자 소용없겠지. 아마 몇 만 광년이나 떨어진 다른 태양계일 거요."
 
탈출 계획
 
네비아의 우주선은 행성 네비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코스티건도 브래들리도 둘 다 우주 비행사였으므로 이 우주선이 빛보다 빠른 속도로 가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배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날뛰어 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배가 고프군. 식사는 어떻게 할 작정일까."
브래들리가 말했다.
"선장한테 말을 해야 할까. 한번 교섭해 보지요."
코스티건이 말했다.
"말을 못 하는데 어떻게 교섭해요?"
"스파이 빔을 써서 해 보겠소. 그 전에 그들이 아직도 울트라 웨이브를 방해하고 있는지 조사해 봐야지."
코스티건은 울트라 빔의 콘덕트 스위치에 가볍게 손을 댔다. 그러자 손이 탁 퉁겨났다.
"아직도 하고 있군. 우리를 외부와 접촉 못 하게 하고 있는 거요. 하지만 그들이 방해하면 샘스 쪽에서 그 방해 빔을 추적할 수가 있거든요. 어디 이번에는 우리 식사나 얻도록 할까."
코스티건은 방구석에 있는 영상반 앞으로 걸어가서 스파이 빔을 제어실에 투사했다. 네비아 인이 영상반 앞에 벌렁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영상반에 파란 라이트가 활짝 켜졌다. 네비아 인은 일어나서 영상반으로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코스티건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코스티건은 천천히 입을 가리켰다. 먹을 것을 달라, 하는 뜻으로 한 것이었다.
네비아 인은 처음에 비늘이 달린 머리를 갸웃거리고 있었으나, 코스티건이 몇 번이나 그 몸짓을 되풀이하는 동안에 겨우 알아차린 모양이다.
네비아 인은 제어반의 단추를 눌렀다.
그러자 크리오의 방바닥이 활짝 벌어지더니 테이블이 스르르 올라왔다. 테이블에는 유리 같은 것으로 만든 접시며 보울이 놓여 있었다. 찬란하게 반짝거려 퍽 고왔다. 그리고 핀셋 같은 모양을 한 것, 주걱 같은 모양을 한 것, 국자 같은 것이 곁들여져 있다.
유리로 세공된 볼 속에는 비린내나는 끈적끈적한 녹색 액체가 들어 있다. 커다란 접시에는 불가사리 같은 것이랑 기묘한 모양을 한 물고기가 놓여 있다.
크리오는 볼 속을 들여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이런 건 도저히 먹을 수 없어요."
크리오는 울상을 지었다.
"기름에 튀기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브래들리 선장이 말했다.
"글쎄요. 어떻게 한번 부탁해 보지요."
코스티건은 영상반을 향해 열심히 몸짓을 하였다.
'이대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다.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으니 이리로 와 다오.'
네비아인에게 이 의미(意味)는 통한 모양이다.
네라드 선장이 직접 찾아왔다.
그래서 코스티건은 몸짓과 손짓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타고 온 우주선의 취사실에 이 고기를 굽는 장치가 있으니 그걸 갖다 주기 바란다.'
선장도 몸짓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런 일은 허용할 수 없다.'
'그러나 이대로는 우리는 먹을 수가 없다. 식사를 하지 않으면 굶어 죽고 만다.'
코스티건이 그렇게 몸짓으로 전하자 선장은 당황했다. 귀중한 표본이 죽어서는 큰일이라는 태도였다.
선장은 울트라 웨이브로 코스티건의 우주선 취사실을 주의 깊게 조사했다. 코스티건이 달라고 한 것은 전자 레인지인데, 선장은 그것이 위험한 무기가 아닌가 하고 의심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음을 알자, 선장은 즉각 전자 레인지를 가져오게 했다.
"이제 살았다."
코스티건은 생선을 전자 레인지에 집어넣었다. 자글자글 익은 생선이 테이블 위에 놓이자 네비아인 선장은 허둥지둥 달아났다.
그 모습을 보고 세 사람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렇게도 이 냄새가 싫을까."
크리오가 말했다.
세 사람은 꺼리면서 네비아 산 생선을 먹었으나, 생각했던 것보다는 맛이 좋았다. 식사가 끝나자 코스티건은 크리오에게 말했다.
"자, 크리오. 당신은 자야 해요. 몹시 지쳐 있을 거야. 이제부터는 몸을 잘 돌봐 놓지 않으면 안 돼요. 자, 여기 누워서 한잠 자요."
"전 괜찮아요. 당신이야말로 쉬셔야 해요. 전 나중에 자겠어요."
"안 돼, 지금 자도록 해요. 나하고 브래들리 선장님이 옆에 있어 줄 테니, 지금 곧 자도록 해요."
크리오는 시키는 대로 방 복판에 있는 소파 위에 드러누웠다. 코스티건은 곁에 앉아서 나직한 소리로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장가 같은 효력을 나타내어, 이윽고 크리오는 가벼운 숨소리를 내며 잠들기 시작했다.
잠든 얼굴이 아름답다. 긴 속눈썹이 희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동안 코스티건의 가슴이 찡하니 뜨거워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사람을 무사히 지구로 데리고 돌아가야 한다.'
굳은 결의가 코스티건의 가슴에 끓어올랐다.
어느덧 그도 깊은 잠에 떨어져 있었다.
잠든 두 사람을 브래들리는 아버지처럼 다정하게 내려다보았다.
'예쁜 아가씨야, 크리오는. 그리고 코스티건은 멋진 사나이다. 이 두 사람이 결혼하면 틀림없이 훌륭한 부부가 되겠지.'
브래들리 선장은 커다랗게 하품을 하고는 코스티건 옆에 벌렁 드러눕자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코스티건과 브래들리는 즐거운 웃음소리에 잠을 깼다. 크리오가 일어나 앉아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콘웨이, 브래들리 선장님. 이제 아주 몸이 거뜬해졌어요. 자, 식사하도록 하셔요."
크리오는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야. 한잠 자고 났더니 또 배가 고픈걸."
브래들리 선장이 말했다.
그래서 또 생선을 구워 먹었다. 크리오는 맛있는 듯이 몇 마리나 먹었다.
식사가 끝나 잠시 쉬고 있으니까, 네라드 선장이 상자 같은 것을 안고 방에 들어왔다.
선장은 테이블에 그 상자를 얹더니 옆에 달려 있는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돌리면서 세 사람을 관찰하듯이 둘러보았다.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요?"
"글쎄, 무얼까?"
코스티건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는 동안 상자에서 묘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음절(音節)이 있는 말 같다.
코스티건은 그것을 듣고 언뜻 깨달았다.
"그렇구나. 그들은 말을 할 줄 아는 겁니다. 아마 목소리가 우리들 소리보다 훨씬 높거나 낮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그래서 무리 귀에 들리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파 변환 장치를 만든 겁니다."
코스티건의 목소리가 들린 모양이다. 선장은 긴 목을 뒤틀어 네비아 식으로 만족의 뜻을 나타냈다.
지구인과 네비아 인은 상대편의 말은 이해 못 했지만 하여간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이해했다. 이로 말미암아 양쪽의 관계가 현저하게 달라졌다.
네비아 인들은, 이 기묘한 두 발 동물은 상당히 지능이 높은 생물인 듯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지구인은 크게 희망이 솟아올랐던 것이다.
"그들이 말을 할 줄 안다면 사정은 달라지는데요."
코스티건이 기쁜 듯이 말했다.
"어째서요?"
크리오가 물었다.
"그들의 말을 배우면 이 쪽 의사를 전할 수 있지 않겠소? 지구로 돌려보내 달라고 그들에게 협상해 볼 수도 있거든요."
"그래. 이제는 되지도 않는 탈출 계획 따위는 세우지 말고, 느긋하게 지내고 있으면 되는 거야."
브래들리 선장이 말했다.
네비아 인들도 지구인의 말을 배우고 싶어했기 때문에 형편이 유리했다.
전혀 성질이 다른 말을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네비아 인이나 지구인이나 열심이었기 때문에 진보가 빨랐다. 일주일이 지나자 불완전한 말이기는 하나 서로 의사는 통할 수 있게 되었다. 선장 이름이 네라드라는 것도 알았다.
네라드 선장은 세 사람에게 소형의 주파 변환 장치를 만들어 주었다. 이것을 목에 감고 있으면 언제든지 네비아인과 말을 할 수가 있었다.
선 내를 자유로이 걷는 것도 허용해 주었다. 그러나 세 사람이 타고 온 소형 우주정이 있는 곳에는 다가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코스티건 일행은 심심풀이로 이따금 영상반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영상반에 물고기 모양의 우주선이 나타나 우주 저 편으로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저건 어디로 가는 건가?"
코스티건은 네비아 말로 네라드 선장에게 물었다.
"저건 우리 동료의 배인데, 너희들의 태양계로 철을 채집하러 가는 거다."
네라드 선장은 대답했다.
세 사람은 무의식중에 얼굴을 마주 보았다.
흐물흐물하게 녹아서 붉은 베일로 빨려 들어간 방위군의 배가 생각났던 것이다.
"방위군의 초광속 우주선이 완성되어 있었으면 다행이련만."
코스티건은 네라드 선장에게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코스티건의 그 소원은 헛된 것이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어느 날 영상반에 파리한 별이 불쑥 떠올랐다.
그것은 자꾸자꾸 커지며 푸른 기를 더했다.
"지난번 우주선이어요 "
크리오가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또 당했구나."
코스티건이 이를 갈았다.
"어디가 당했을까. 목성일까, 화성일까, 아니면 지구일까?"
브래들리 선장은 신음하듯이 말했다.
물고기 모양의 우주선은 많은 철을 실어 비틀거리면서 도크에 착수했다.
다음 날 네라드 선장이 찾아왔다.
"지금부터 너희들을 대학 연구소로 데리고 간다. 거기서 육체적, 심리적 검사를 받는 거다. 자, 따라와."
선장은 우주선의 출구까지 가자 거기서 물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것을 본 코스티건의 머리에 그럴싸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구명정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코스티건은 순간적으로 뒤의 두 사람에게 눈짓을 하고 소리 쳤다.
"잠깐만! 너는 지금 우리를 물 속으로 들어가게 할 생각인가?"
네라드 선장은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아무렴. 너희들은 공기 호흡 생물이지만 조금은 헤엄칠 수 있겠지?"
"어림도 없는 소리. 우리는 물 속에 들어가면 1,2분도 못 가서 죽어 버린다. 헤엄도 칠 줄 모른다."
"흠, 그거 야단났군.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네라드 선장은 두 개의 더듬이를 얽고 곰곰 생각했다.
"우리가 타고 온 소형 구명정을 쓰면 어떨까?"
코스티건이 천연스럽게 말했다.
"아, 그거 좋은 생각……."
선장이 이렇게 말했을 때였다. 선 내에 심상치 않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세 사람의 지구인은 놀라서 펄쩍 뛰었다.
네라드 선장은 가까이 있는 마이크로 뛰어갔다.
"여기는 네라드 선장이다. 무슨 일인가?"
"제 3 도시가 심해 어족의 공격을 받고 있다. 적은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어 제 3도시는 전멸될 것 같다. 지금 응원을 부탁한다."
"심해 어족이라고? 이거 큰일났군."
네라드는 즉각 지령을 내렸다.
"즉각 부상하여 제 3 도시로 향하겠다."
그리고 코스티건 쪽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자기 방에 돌아가 있거라."
세 사람은 명령대로 했다.
방에 돌아오자 세 사람은 주파 변환 장치의 스위치를 껐다. 이렇게 하면 무슨 말을 해도 네비아 인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으면 구명정에 갈 수 있었는데, 유감이군."
코스티건이 말했다.
"자넨 거짓말도 잘 하는군. 헤엄을 칠 줄 모른다니. 수달보다도 더 헤엄을 잘 치쟎나."
브래들리 선장이 말했다.
"아니지요. 그래 가지고 어떻게든 구명정에 접근할 기회를 노렸던 거지요. 대학에 끌려가면 탈출할 기회는 없어져 버리니까요. 두 가지 탈출 계획이 있는데."
코스티건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선체가 심하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코스티건은 영상반을 들여다보았다.
흡사 지옥 같은 광경이었다.
제 3 도시 주위의 해면(海面)은 부글부글 끓어올라 김이 무럭무럭 일고 있다. 이따금 심해 어족이 발사하는 어뢰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방어 스크린을 파괴했다.
선체가 또 심하게 흔들렸다.
배는 속력을 늦추지 않고 그대로 수면에 부딪쳐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수정으로 변하자 심해 어족의 요새를 배후에서 공격했던 것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의 요새였다. 녹색 금속으로 된 큰 성채인데, 캐터필러가 달린 발이 붙어 있어 그것으로 물을 헤치면서 나가는 것이다. 즉, 움직이는 성채라 할 수 있었다-
코스티건은 그 성채를 스파이 광선으로 관찰했다. 성채 속은 물로 채워져 있다.
"물고기가 무기를 다루고 있어!"
코스티건은 몹시 놀랐다.
브래들리 선장도 크리오도 들여다보았다.
과연 거기에는 2미터 정도 길이의, 커다란 눈알을 디룩디룩 굴리는 물고기가 쓱쓱 헤엄쳐 다니면서 기다란 뱀 같은 더듬이로 무기를 다루고 있었다.
"물고기가 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하다니!"
크리오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놀랐는데, 정말 놀랐어."
브래들리 선장이 연방 감탄하고 있다.
그러나 네라드 선장 쪽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성채에 연화 광선을 방사했으나, 성채의 금속은 쇠가 아니기 때문에 전혀 효력이 없다.
반대로 적 쪽에서는 빛나는 공 같은 것이 잇따라 날아오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 지금이 탈출할 기회다. 네라드는 우리를 잊고 있을 겁니다."
코스티건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탈출하지요?"
"어떻게든 해 봐야지. 무슨 일이든 대학의 연구 자료가 되기보다는 나을 테니까."
브래들리 선장이 말했다.
"나는 스파이 광선으로 이 배를 철저히 조사했어요. 출입구 여는 법도 알고 있고, 구명정의 조종법도 알고 있어요. 저들은 지금 적의 공격을 피하느라 필사적입니다.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놈은 하나도 없어요. 이 때를 놓치면 탈출할 기회는 없어요."
"탈출한 뒤엔 어떻게 하지요?"
"지구로 가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해. 방향도 알고 있고 에너지도 충분히 있으니까."
"하지만 지구는 너무 멀지 않을까요? 식량이랑 물이랑 공기는 어떻게 할 셈이어요? 모자라지 않겠어요?"
"그건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소. 그 구명정은 별로 크지 않아. 지구까지는 너무 멀어. 과연 다다를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몰라. 그리고 식량 문제도 있고 말이야. 구명정에는 물론 비상 식량이 비축되어 있겠지만, 도저히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물건이 못 돼. 하지만 먹으면 되는 거야. 영양은 취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 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이대로 이 행성에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될 줄 알아요? 어디로 달아나 봤자 조만간 들키게 될 거고, 여기는 육지라곤 거의 없으니까 말이야. 설사 있다 하더라도 거기는 네비아 인들이 우글우글할 거요,
자, 어떻게 하겠소, 크리오? 지구를 향해 탈출하겠소, 아니면 이 행성에 머물겠소?"
"탈출하겠어요."
크리오가 소리쳤다.
"좋아, 탈출이다."
브래들리 선장이 팔을 내둘렀다.
"좋습니다. 그럼 곧 출발합시다."
코스티건은 방문으로 다가가자 기묘한 모양의 발광관(發光管)을 꺼내어 그것을 네비아식 자물쇠에 갖다 대자. 그러자 문이 스스로 열렸다.
세 사람은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어요?"
크리오는 이상한 듯이 물었다.
"요 이삼 주 동안 배 안을 자유로이 다니고 있는 동안에 여러 가지 연구를 했었지."
코스티건은 달리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정말 빈틈이 없으시군요, 콘웨이."
크리오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면서 소리쳤다.
"자, 빨리 가요. 우리 우주복을 넣어 둔 곳을 알고 있으니까. 그걸 입고, 루이스턴 총을 손에 쥐기만 하면 우선 안심이야."
세 사람은 복도를 달려나가, 비스듬한 길을 달려갔다. 다행히 네비아 인들은 싸움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을 방해하는 자는 없었다.
우주복을 넣어 둔 방에 다다르자 코스티건을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문을 열었다.
세 사람은 방으로 뛰어들어가 부랴부랴 우주복을 입고 호주머니 속에 비상 식량을 넣을 수 있는 데까지 넣었다. 그리고 루이스턴 총을 각자가 둘러메었다
"자, 이제부터가 어려워요."
코스티건은 스파이 광선으로 신중하게 지름길을 조사했다.
"갈 수 있는 구명정은 한 척뿐입니다. 그것도 탐지 광선을 둘러친 복도를 하나 지나가야만 해요. 자, 어서 따라와요."
코스티건은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2, 3분 달려가니 널찍한 통로가 나왔다.
"자, 여깁니다. 이 통로에 탐지 빔을 둘러쳐 놓았어요. 단 바닥에서 50센티미터 높이까지는 빔이 닿고 있지 않으니까 그 밑을 굴러서 가는 겁니다. 도중에 손이나 발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자, 내가 하는 걸 잘 보고 흉내를 내는 겁니다."
코스티건은 배를 깔고 엎드리자 대굴대굴 굴렀다.
이어서 브래들리가 마찬가지로 굴렀다.
크리오는 무거운 우주복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구를 수가 없다. 도중에 몸이 멈춰 버렸다. 당황한 크리오는 빨리 굴러가려고 몸부림치다가 그만 한 손을 들어버렸다.
그 순간 공중에서 섬광이 흩어져 나왔다.
"앗!"
브래들리 선장은 숨을 삼켰다.
그러나 코스티건이 잽싸게 엎드리자 크리오 곁으로 다가갔다.
"손을 들지 말아요! 엎드린 채로 있어요!"
코스티건은 소리치자마자 크리오의 손을 잡고 통로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곧 옆에 있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코스티건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속삭였다.
"저들이 눈치채고 찾기 시작하면 끝장이다."
"미안해요, 콘웨이. 엉뚱한 실수를 해 버려서."
크리오는 풀이 죽어 있다.
"아마 괜찮을 거야. 저들은 싸우는 데 넋이 빠져서 우리 일에 신경 쓰고 있을 겨를이 없겠지."
그의 판단이 옳았다.
네비아 인은 빔의 경보를 알아차리고 여기저기 대충 조사했지만 이상이 없었으므로, 그 이상 조사하려 하지 않았다. 필시 금속 조각 같은 것이 빔 속에 튀어 들어갔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버렸다.
세 사람은 간신히 구명정에 다다랐다. 코스티건은 올라타기가 바쁘게 장화를 벗었다.
그리고 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배의 동력 탱크 마개를 열자, 장화를 거꾸로 들고 무언가 끈적한 것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브래들리 선장과 크리오는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것을 지 켜 보았다.
"대체 그게 뭐여요?"
크리오가 물었다.
"철이오. 이 배의 동력원은 철이니까요. 조금 슬쩍해왔지."
"어머나, 어느 새 그렇게?"
"그저께 배 안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닐 때 슬쩍했지요. 이 정도 있으면 지구까지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런 걸 장화 속에 넣고 달렸으니 꽤나 무거웠겠군."
브래들리 선장이 동정하듯이 말했다.
"뭘요,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벼운 법입니다. 자, 탈출합니다."
코스티건은 영상반을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구명정을 발진시켰다
배는 물 속에 돌입하여 붉은 안개 같은 베일을 뚫고 해면을 향해 상승했다.
주위에는 심해 어족의 공격 빔이나, 네비아 선이 발사하는 어뢰가 어지럽게 엇갈려 날고 있었다. 그것을 이리저리 피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브래들리 선장과 크리오는 숨을 죽이고 코스티건의 조종을 지켜보고 있었다.
배는 겨우 해면에서 공중으로 날아 나갔다.
그러나 안도의 숨을 내쉰 것도 잠시 동안이었다. 선체에 심한 충격이 있었다 싶자, 갑자기 배는 뱅글뱅글 돌려 낙하하는 상태가 되었다. 네비아 인의 어뢰가 선복(船腹)을 스쳤던 것이다.
코스티건은 필사적으로 배를 일으켜 세우고 전장(戰場)에서 곧바로 빠져나갔다.
브래들리 선장은 그 동안에 상처를 입은 선복을 조사했다.
돌아온 선장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당히 심한걸. 선체의 접합부에 금이 갔어. 공기가 자꾸 새어나간다. 한시 바삐 수리를 해야 하겠어. 그런데, 연장은 있는가?"
"조금은요 - 없는 것은 만들도록 하지요, 그 전에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달아나야 합니다. 그들의 탐지기는 민감하니까요."
"그들은 이 배를 탐지할 수 있나요?"
"물론이지. 그래서 한시 바삐 이 행성을 떠나야 하는 겁니다."
"어떤가, 이제 슬슬 배를 정지시켜도 되지 않을까?"
브래들리 선장이 끼여들었다.
"글쎄요. 그럼 곧 수리를 시작하지요."
구명정은 네비아의 구면(球面)을 반쯤 돌아간 곳에서 정지하고 이어서 해면에 착수했다.
 
괴어의 습격
 
훔쳐 낸 구명정에는 비상용 수리 도구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었다.
두 사람은 그것을 사용하여 선체에 뚫린 구멍 막는 작업에 들어갔다. 두 사람 다 지금까지 네비아 인들의 일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장 쓰는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구멍을 막고 나자 현구를 열고 강력한 펌프로 공기 탱크에 공기를 채워 넣었다.
세 사람은 현구 입구에 서서 거울 같은 해면을 바라보았다.
잔물결 하나 없는 수면은 어디까지나 끝없이 펼쳐져, 붉은 네비아의 하늘로 녹아들고 있다.
태양이 지금 막 넘어가는 중이었다. 자줏빛 불꽃을 올리면서 수평선 저 편으로 넘어간다. 태양이 넘어가자 주위는 금세 캄캄해졌다. 검은 구름이 삽시간에 하늘에 퍼져 세찬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자, 안으로 들어갑시다."
코스티건이 앞장서서 들어가려던 순간이다.
"으악!"
요란한 크리오의 외침 소리에 코스티건은 뒤를 돌아보았다.
문어발 같은 촉수가 해면에서 불쑥 나타나 크리오에게 달려들려 했다.
"빨리 안으로!"
코스티건의 목소리에 크리오는 구르다시피 하여 배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코스티건은 제어 장치로 달려가서 허겁지겁 현구를 닫았다. 현구로 들어오려던 촉수는 금속 문짝에 끼여 뚝 잘렸다.
잘린 촉수는 바닥에 툭 떨어져서 언제까지나 꿈틀꿈틀하고 있었다. 사람의 허벅다리보다도 굵고, 침이 있는 비늘로 덮여 있으며, 흡반 대신 작은 입이 수없이 달려있다. 입들은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 나 있어, 오독오독 이를 갈고 있었다.
"끔직한 괴물이야!"
크리오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코스티건에게 매달렸다.
괴물은 촉수를 선체에 감아 붙이고 꽉꽉 죄어 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선체가 삐거덕 뻐거덕 비명을 올렸다.
으지직, 으지직, 으지직-.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소리가 들린다.
"저건 무슨 소리여요?"
크리오가 오들오들 떨면서 묻는다.
"선체를 물어뜯고 있는 모양이야."
영상반에 비친 해면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니, 괴물은 배를 붙잡고 휘두르고 있는 모양이다.
계기반을 보고 있던 브래들리 선장이 소리쳤다.
"이보게, 큰일났어. 배가 자꾸자꾸 물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심도계의 바늘이 자꾸자꾸 내려간다."
크리오는 공포에 사로잡혀서 소리쳤다.
"어떻게 좀 해 봐요, 콘웨이."
"괜찮아요, 크리오."
코스티건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지금 공격 빔을 발사하면 네라드의 배에 탐지될 위험이 있어요. 심도가 더 내려가면 배가 수압에 눌려 찌그러져 버리니까, 그 때 가서 공격을 가하도록 하지요."
코스티건은 심도계(深度計)를 응시했다.
이제 더 이상 선체가 견뎌 낼 수 없게 되었을 때, 동력스위치를 넣었다.
배가 전력 추진을 걸자 괴물은 그 이상 배를 끌어들이지 못하게 되었다. 심도계의 바늘은 그제야 정지했다.
그래서 공격 빔을 투사했으나 괴물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배에 착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빔을 그 쪽으로 돌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마지막 수단이다. 산 채로 삶아 보자."
코스티건이 열선 빔을 방사하자, 배 주위의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배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괴물은 여전히 배에 달라붙어 있다.
1분, 2분, 3분…….
배는 부글부글 끓는 바닷물 속을 곧바로 상승했다.
4분, 5분…….
그토록 거대한 괴물도 마침내 속속들이 삶아져 버린 모양이다. 달라붙어 있던 촉수가 그제야 선체에서 떨어졌다.
"와아, 만세!"
크리오가 춤을 추며 소리쳤다.
"좋아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뒤를 봐요."
브래들리 선장이 영상반을 가리켰다.
코스티건은 영상반을 들여다보았다. 영상반에는 한 척의 잠수정이 비치고 있었다.
"앗, 이거 큰일났다!"
코스티건이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것은 그 무서운 심해 어족이 타고 있던 잠수정이었던 것이다. 구명정을 향해 곧바로 돌진해 온다.
잠수정의 선복에서 어뢰가 발사되었다.
"앗!"
크리오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코스티건은 필사적으로 구명정을 오른쪽으로 선회시켰다. 어뢰는 구명정이 방금 지나온 지점에서 폭발했다.
구명정은 간신히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고도 1마일도 채 되기 전에 심해 어족의 트랙터 빔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쿵 하는 충격이 있더니 구명정은 정지되어 버렸다.
코스티건은 추진 제트를 전부 열었지만 구명정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트랙터 빔을 절단하는 방법은 없을까?"
브래들리 선장이 말했다.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배의 장치를 지나치게 건드리고 싶지 않아요. 잘못하면 이 배를 지켜 주고 있는 방어 스크린을 끊어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지요?"
크리오가 히스테릭하게 소리쳤다.
"열선 빔을 시험해 봅시다."
코스티건은 침착하게 열선 빔을 투사했다. 거대한 잠수함 주위의 해면이 끓어오른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김이 해면을 덮었다.
그러나 적의 트랙터 빔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구명정은 서서히 해면을 향해 끌려 내려간다.
"아, 이제 틀렸어. 끝장이야."
영상반을 응시하고 있던 크리오가 비통한 소리를 지르고 있다.
"아직 끝장은 아니야. 우리는 아직 공기를 호흡하고 있쟎소!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코스티건은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고 있는 크리오에게 호통쳤다.
확실히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코스티건은 적의 포탑에 공격 빔을 퍼부어 댔다.
갑자기 트랙터 빔이 끊어졌다.
전력 추진을 걸고 있던 것이 갑자기 자유로워지는 바람에, 구명정은 맹렬한 기세로 우주로 날아올랐다. 대기의 마찰로 선체가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해내셨군요, 콘웨이!"
크리오가 소리쳤다.
코스티건은 빔이 끊어지는 순간 바닥에 나둥그러졌으나 잽싸게 일어나서 제어 장치로 달려갔다.
배는 간신히 평상시의 속도를 되찾았다.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아니오, 해낸 것은 내가 아니오. 이걸 보아요. 네라드의 배지."
크리오는 영상반을 들여다보았다.
"네라드의 배가 구해 준거야."
"어째서 구해 줬을까요?"
"생각해 봐요. 우리는 귀중한 표본이란 말이오."
"어머나!"
해상에서는 심해 어족과 네비아 선(船) 사이에 처절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네비아 선은 강렬한 에너지 빔을 잠수정에 퍼부어 댔다. 잠수정도 지지 않고 공격 탄을 발사한다.
해면 가득히 자욱한 수증기가 끼어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코스티건이 조종하는 구명정은 그 사이에 전속력으로 행성 네비아를 탈출했다.
영상반에 비친 네비아 별은 점점 작아져 갔다. 그리고 그 작은 공의 한 곳에서 섬광이 번쩍 했다.
"무얼까?"
브래들리 선장이 물었다.
"어느 한쪽 배가 날아간 모양이지요."
코스티건이 대 답했다.
"네라드의 배라면 좋겠는데."
"아니, 아마 그렇진 않을 겁니다. 네라드의 배 쪽이 단연코 우세하니까요."
"그렇다면 네라드의 배는 우리를 쫓아오겠군 그래."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 배는 잡히고 말겠지요."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군요."
크리오는 코스티건을 응시했다.
"아니, 아직 있어요."
코스티건은 빙그레 웃었다.
'아무리 막다른 곳에 몰려도 결코 꺾이지가 않는 사람이 야.'
크리오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코스티건의 웃는 얼굴을 보고 있으면 크리오의 마음은 편안해지는 것이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브래들리 선장이 물었다. 선장도 완전히 코스티건에게 의지하고 있다.
"네비아인의 마비 광선이며 그밖에 몇 가지 병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 두었었지요. 그걸 막는 장치를 만들어서 우주복 내부에 부착해 놓으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코스티건의 지시대로 필요한 장치를 만들어서 우주복에 부착했다. 그리고 추격해 오는 네라드의 배를 기다렸던 것이다.
 
붉은 베일의 수수께끼
 
그런데, 로저 대 방위군의 치열한 전장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시카고 호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시카고 호는 그 전장에서 1만 마일 떨어진 우주 공간에 정지하고 있었다.
선장실에서는 라이먼 클리블랜드가 울트라 웨이브 카메라의 정밀한 다이얼을 조작하고 있었다. 그 몸은 꼿꼿하게 긴장되고, 얼굴은 수척하게 야위어 있었다.
클리블랜드의 주위에는 시카고 호의 선장과 승무원이 엄숙한 얼굴로 그것을 응시하고 있다.
울트라 웨이브 카메라는 방위군과 로저의 치열한 싸움, 그리고 갑작스럽게 일어난 이상한 사건을 자세히 찍었다.
로저의 인공 행성과 방위군의 배가 흐물흐물 녹아서 붉은 베일로 빨려 들어가는 광경을 찍었다.
클리블랜드는 붉은 베일을 투시 촬영하려고 울트라 빔을 돌렸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다가 붉은 베일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영상반에는 다시 암흑의 우주가 나타났다.
"지구로 돌아갈까."
시카고 호 선장이 침묵을 깨뜨렸다.
"가능하면 좀더 촬영을 했으면 합니다. 저기에는 부유물이 많이 있는 모양입니다. 가까이 가서 조사하면 그 정체 불명의 적이 어떤 공격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장에 남아 있는 부유물의 클로즈업 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좋아, 전속력으로 현장에 가자."
선장의 명령으로 시카고 호는 전속력으로 추진을 개시했다.
현장에 가까워짐에 따라 영상반에는 갖가지 부유물(浮遊物)이 나타났다.
기계의 부품, 의자나 테이블, 선체의 파편, 그리고 사람의 몸도 있었다!
그 중에는 우주복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즉각 구조하러 가라."
즉시 구조대가 파견되었으나, 그들은 이내 돌아와서 이렇게 보고했다.
"전원 사망하였습니다. 사망한 지 상당히 오래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우주복의 금속부분이 죄다 없어졌습니다."
이 보고를 들은 클리블랜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역시 내 추측이 맞는 것 같군."
"그게 무슨 말인가?"
선장이 물었다.
"아닙니다, 하도 별난 일이라서 확실한 증거를 잡기 전에는 저 자신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시체 두세 구와 부유하고 있는 배전반이나 계기류를 급히 선 내로 반입시켜 주십시오."
"그리고 전속력으로 지구로 돌아갈 건가?"
"예,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지구에 돌아가고 싶군요."
세 구의 시체와 배전반과 계기류의 회수가 끝나자 시카고 호는 진로를 지구로 돌렸다.
클리블랜드는 승무원과 함께 회수된 것을 조사했다.
지금까지 우주선의 조난 현장에서 회수한 것을 여러 가지 보아 왔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 같은 것은 아무도 본 일이 없었다.
어느 것이나 파괴된 흔적은 아무것도 없는데 볼트가 없어지고 구멍이 뚫려 있거나, 굴대나 지침이 없어졌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걸까."
선장은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자네는 추론이 있다고 그랬는데, 설명해 주게, 클리블랜드."
"우선 없어진 것에 주의를 해 주십시오. 어떤 것이 없어졌습니까?"
"없어진 것이라고 하면 굴대나 나사못이나……."
"그렇습니다. 그것들의 공통된 점은 무엇입니까?"
"으음, 그렇지, 모두 철로 만들어져 있어. 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걸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요. 더 무서운 일이 있습니다."
그는 시체의 우주복을 벗기고 얼굴을 드러내게 했다. 아무 고통도 없는 편안하게 죽은 얼굴이었으나, 그 얼굴은 새하얗다.
클리블랜드는 작은 칼을 꺼내자 시체의 목덜미에 칼질을 했다. 경동맥(經動脈)을 절개한 것이다.
경동맥에서 흘러나온 것은 붉은 피가 아니라 흰 피였다. 선장의 눈이 튀어 나을 지경이 되었다.
"도대체 이건!"
"이 현상도 제 추론과 일치합니다. 혈액 속의 철분이 없어져 있는 겁니다. 결국 이 우주 공간에 있던 모든 철이 그 어떤 방법으로,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 어떤 자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러한 현상들을 모두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 이런 끔직한 일이 있나. 하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이지?"
"이유는 명백합니다. 그들은 철이 필요한 거겠지요. 그리고 그들은 우리들보다 훨씬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병기가 못 당할 정도의 힘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선장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런 끔찍한 일이 있나."
"즉각 샘스에게 보고하겠습니다."
클리블랜드는 버질 샘스를 불러냈다. 영상반에 샘스의 얼굴이 비치자, 클리블랜드는 이 괴이한 사건을 상세히 보고했다.
"사태는 심각합니다. 수집한 데이터를 울트라 빔으로 보내겠습니다. 로드브슈의 전자파 레코더로 기록해 주십시오."
"좋아, 알았네. 잘 해 주었어, 클리블랜드, 고맙네."
버질 샘스가 곧 로드브슈에게 연락하자, 이윽고 방위군의 중앙 연구실 스크린에 그 괴이한 정경이 비치어 기록되어 나갔다.
클리블랜드는 샘스와 의논한 결과, 지구에서 발신하는 실비아 호에 옮겨 타기로 되었다.
며칠 후 두 배는 지구로부터 2만 2천 킬로미터 지점에서 도킹했다.
실비아 호의 홀쭉한 배가 시카고 호의 기밀실 문과 같은 높이로 되었다.
"시카고 호에! 정지 준비 완료! 초읽기를 부탁하겠다."
"오케이! 정지 준비 완료! 초읽기 개시, 3-2-1-0."
두 배의 동력이 절단되고 선 내의 모든 물체가 무중력상태로 되었다.
클리블랜드는 사뿐사뿐 우주로 내디뎌 실비아 호의 현구로 곧장 부유해 갔다.
실비아 호에는 친한 친구이자 공동 연구자인 프레더릭 로드브슈가 기다리고 있었다.
클리블랜드는 우주복을 벗어버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로드브슈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 데이터를 검토한 결과 말이야? 여기라면 도청될 걱정은 없쟎아?"
"아니, 알 수 없어. <힐>에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좋아. 샘스와 셋이서 잘 의논하는 게 좋을 거야. 전속력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어."
"뭐라고! 실비아 호로 전속력으로? 이거 큰일났군. 잘못하다가는 쫓겨나겠는걸."
클리블랜드는 시트에 앉자 굵직한 벨트로 허리를 묶었다.
실비아 호는 눈부신 불화살처럼 우주를 돌진했다.
이윽고 배는 로키산맥의 중심을 향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올리면서 강하해 갔다.
전방에 목표로 하는 <힐>이 나타났다.
힐이란, 정상이 평평한 원추형의 거대한 산이다. 원래는 돌산이었는데, 은하계 방위군의 본부(本部)가 산의 내부에 만들어지고 부터는 주위를 모두 금속판으로 덮어 버렸다. 금속의 둘레를 다시 제비꽃 빛깔의 불꽃이 싸고 있다.
실비아 호가 이 제비꽃 색 불꽃에 다가가자, 그 일부에 뻐끔하게 구멍이 뚫렸다.
실비아 호는 구멍을 통과하여 그 밑에 있는 도크에 조용히 선체를 착륙시켰다.
클리블랜드와 로드브슈는 부리나케 배에서 뛰어내렸다. 눈앞의 도어가 소리도 없이 열리자, 두 사람은 벌써 환하게 조명된 넓은 방에 있었다.
방위군 장관 버질 샘스의 사무실이다.
많은 조수며 비서며 사무원들이 제각기 바쁜 듯이 일을 하고 있다. 텔레타이프며 레코더가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다.
"들어가도 되겠소?"
로드브슈는 안쪽의 문 앞에 있는 비서에게 물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로드브슈 씨."
비서가 책상의 단추를 누르자, 장관실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샘스는 의자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리고 클리블랜드와 굳은 악수를 나누었다.
"그 울트라 웨이브 카메라는 훌륭했어. 상황을 자세히 기록해 주었네. 그리고 코스티건한테서 자세한 보고가 있었어. 그러한 정보들에 의거해서 이 로드브슈가 연구를 거듭하여 왔는데, 그 덕분에 해결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네."
"코스티건한테서 그 후 연락이 있었습니까?"
클리블랜드가 걱정스러운 듯이 묻는다
"그게 글쎄 없지 뭔가."
샘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어쩌면-아냐, 그가 죽었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 필시 그 정체 불명의 적한테, 은하계 밖으로 끌려나갔을 거라고 생각하네."
"맞습니다. 통신을 할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있을 겁니다. 그들의 방해파도 잠을 수 없게 되었으니까요."
로드브슈가 끼여들었다.
"그렇게 바라고 있네. 코스티건이 죽었다고는 아무래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그는 훌륭한 관찰자였네. 모든 현상을 정확히 관찰하여 세밀하게 보고해 주었어. 예를 들면 그 생물이 철을 액체로 바꾸어서 그 원자 에너지를 동력으로 쓴다는 점인데, 그는 그들의 변환기나 방사 장치에 대해 상세히 보고해 주었기 때문에, 로드브슈는 그 이론을 사흘만에 풀어 주었어. 그 이론을 우리의 초광속 우주선에 응용할 수가 있었네. 그리고 나는 초우주선에서 철제를 일체 제거해야 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로드브슈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그러는군."
"그렇습니다. 배만 비철 금속으로 만들어도 우리 혈액에 철분이 들어 있는 한 소용없는 일이니까요. 그보다도 우선 그들의 연화 에너지를 방어할 배리어를 만들어야 합니다."
클리블랜드가 말했다.
"자네 보고를 받고 나서 쭉 그 연구에 종사해 왔어. 덕분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네."
로드브슈가 말했다.
"그럼, 초광속 우주선도 드디어 완성이 임박했군?"
"그렇다네. 시간 문제야."
"좋아, 완성되면 즉시 출발해야지. 붉은 베일을 찾아서 말이야."
 
초광속 우주선 보이스 호
 
2주일 동안 쉴 새 없이 작업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초광속 우주선 보이스 호가 완성되었다.
아니, 아직 완성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클리블랜드와 로드브슈가 시험 비행을 하기까지는.
보이스 호는 최후의 엄중한 검사를 마치고 출발을 기다리게 되었다.
샘스는 다른 승무원을 데리고 가도록 하라고 명령했으나, 두 사람은 아무래도 듣지 않았다.
"이 배가 완전히 안전하다고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는 다른 사람을 태울 수 없습니다."
로드브슈는 단호하게 말했다.
"만일 기본적인 이론이 잘못되어 있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타고 있어 봤자 별수 없습니다. 저희들 둘로 충분합니다."
클리블랜드도 확고하게 말했다.
두 사람의 굳은 결의 앞에는 샘스라 할지라도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부디 조심해 주게. 너무 속도를 내지 않도록."
"그렇게 할 수만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하여간 조심하겠습니다. 저희들도 자살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발진할 때는 전원 대피시켜 주십시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게!"
두 사람은 경례를 하고 보이스 호에 올라탔다.
샘스는 스크린에 비친 보이스 호를 걱정스러운 듯이 응시했다.
스크린은 이윽고 보이스 호의 컨트롤 룸을 비추었다.
클리블랜드가 로드브슈에게 말을 거는 것이 보인다.
클리블랜드가 스위치 버튼을 누른다.
그 순간 스크린에서 보이스 호의 모습은 사라졌다.
거대한 초우주선 보이스 호는 굉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시계에서 사라진 것이다.
샘스는 망연히 새하얀 스크린을 응시했다.
"통신 빔은 추적해 냈나?
샘스는 통신 관제실에 물었다.
"유감스럽게도 해내지 못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빔이 사라졌습니다. 추적 장치로 찾고 있습니다만, 전혀 잡히지가 않습니다."
"배의 파편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 폭발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필시 성공한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샘스는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 두 용감한 렌즈맨은 죽어 버린 것은 아닐까. 울트라 빔이 눈 깜작할 새 사라져 버린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배가 산산조각이 나서 우주의 티끌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 한은.
샘스가 어두운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요란한 버저가 울려 퍼졌다.
샘스는 스피커의 스위치를 넣었다.
"긴급 사태 발생!"
스피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피츠버그 지부로부터의 호출이다.
"여기는 피츠버그. 정체 불명의 우주선에 공격받고 있다. 긴급 응원을 부탁한다. 여기는 피츠버그……."
샘스는 즉시 긴급 출동을 명하고 스크린의 스위치를 넣었다.
피츠버그의 상공(上空)에 물고기 모양의 우주선이 한 척 떠 있다. 네비아의 우주선이다.
네비아 선은 멀리 찾아 나섰던 철을 피츠버그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 불그스름한 연화 광선을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시내의 모든 철이 흐물흐물 녹아서 네비아선의 탱크로 빨려들어 간다.
지하에 묻힌 수도나 가스의 철관이 녹아 없어지고, 여기저기서 물과 불길이 솟아올랐다.
빌딩의 철골이 녹아 사라지고, 거대한 건물이 집짓기 장난감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시내의 모든 사람은 혈액에서 철분을 흡수당하고 즉사했다.
이윽고 각지에서 출동해 온 방위군의 배가 속속 피츠버그의 상공에 나타났다.
모인 배는 선대를 다시 짜고 단번에 네비아 선을 습격했다. 그러나 네비아 선을 싸고 있는 붉은 베일을 아무리 해도 파괴할 수 없었다.
배는 잇따라 산산조각이 나 철을 흡수당했다
일찍이 피츠버그 시였던 폐허 위에 배의 파편이 비 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우리 속
 
코스티건 일행을 태운 구명정은 필사적인 도주(逃走)를 계속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코스티건의 예상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구명정의 탐지 장치는 어느 날 마침내 네라드의 배를 포착했던 것이다.
스크린 위에 작은 점 만한 네비아 선이 비쳤다.
"곧 따라잡히고 말 거야. 저 배의 속도에 비하면 이 쪽은 아기가 기고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코스티건이 말했다.
세 사람은 곧 우주복을 입었다.
"아직 지구하고는 연락이 안 되는 모양이지."
브래들리 선장이 확인하듯이 말했다.
"예,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너무 멀어서 울트라 빔도 닿지를 않습니다. 초우주선이 완성되어 있다면, 혹은 이 부근을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이크, 저들이 드디어 따라잡았다."
스크린을 보고 있던 브래들리가 소리쳤다.
"좋아요. 에너지 빔을 투사하지요."
코스티건은 제어반 쪽으로 몸을 돌리고 스위치를 눌렀다. 네비아 선은 빔을 연거푸 맞고 방어 스크린이 하얗게 빛났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기묘하게도 네라드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떼쓰고 있는 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처럼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군. 우리하고 싸울 생각이 없나?"
브래들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들은 우리를 생포하려고 그러는 거여요!"
크리오의 추측이 들어맞았다.
네라드는 구명정을 파괴하고 싶지 않았고, 세 우주인을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윽고 네라드의 배에서 진한 붉은 색 에너지 광선이 뻗어와 구명정을 천천히 감싸자, 구명정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코스티건은 제어판에 달라붙어 미친 듯이 계속 스위치를 눌러 댔지만, 구명정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서서히 네라드의 배로 끌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사흘 전에 탈출했던 배의 현구로 홀랑 끌려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무서운 금속 문짝이 철커덕 닫혔다.
"아, 이제 끝장이야."
크리오가 비통한 소리로 말했다.
구명정이 본래의 위치에 정지하자 푸른 광선이 세 사람의 몸을 싸악 감쌌다. 마비 광선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세 사람 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코스티건이 우주복에 부착시킨 마비 광선 방지 장치가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꼴 좋다!"
코스티건은 통쾌한 듯이 말했다.
"하지만 이 이상은 꼼짝도 못 하겠군."
브래들리가 한심한 듯이 말했다.
"아닙니다. 이 쪽에서는 아직 루이스턴 총이 있으니까요. 네라드는 이것의 위력을 알고 있으니까 틀림없이 협상에 응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코스티건의 예상은 어긋났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로봇이었다.. 전신이 금속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루이스턴 총의 격렬한 열선 빔을 쏘아 대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다.
금속의 촉수를 쓱 뻗어 루이스턴 총을 빼앗자 산산조각을 내고 말았다. 그리고 세 사람을 한꺼번에 옆구리에 끼자 철컥철컥 발소리를 내면서 구명정 밖으로 운반해 나갔다.
세 사람은 이윽고 네라드 선장 방으로 끌려갔다.
네라드 선장은 조금도 화를 내고 있는 기색이 없었다.
"어떤 생물이든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법이다. 너희들이 달아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우리를 어떻게 할 작정인가?"
코스티건이 물었다.
"너희들은 귀중한 표본이다. 대학에서 연구를 해야 한다. 도망치는 것은 단념하도록 해라."
"그럼 우리가 연구에 순순히 협력하면 우리를 지구로 돌려보내 주겠나?"
"너희들이 협력을 하든 하지 않든 대학에서 연구하는 일에 변함은 없다. 지구로 돌려보내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다. 너희들은 귀중한 표본이다. 영구히 이 네비아에 남겨 두겠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말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 자, 이놈들을 방으로 데리고 가라."
네라드는 로봇에게 명했다.
그 이튿날, 세 사람은 엄중한 경계 아래 대학으로 실려갔다.
네비아의 과학자들은 세모꼴 눈을 제비꽃 색으로 빛내며 세 사람의 주위로 모여 왔다.
"오, 근사하다. 이 우주에 우리 이외의 생물이 있다니, 꿈만 같구나."
"그러나 저러나 참 기분 나쁜 모습을 하고 있군 그래."
"어쩐지 괴상한 냄새가 나는데."
과학자들은 저마다 말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모든 검사를 받았다. 뼈와 근육과 신경의 사진을 찍었다. 모든 반응, 모든 감각을 레코더로 기록했다. 날이면 날마다 실험대 위에서 벨트로 묶인 채 많은 과학자들에게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네비아의 과학자들은 세 사람을 벌레나 마못처럼 다루었다.
"이젠 싫어, 싫어! 그만 해. 그만 하란 말이야!"
크리오가 견딜 수 없어서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다.
코스티건은 그 소리를 듣자 짐승처럼 짖어 댔다.
네비아 인들은 놀라서 수군수군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피곤한 모양이다."
"얼마 동안 쉬게 하는 게 어떨까."
이리하여 세 사람은 휴식이 주어지게 되어, 투명한 상자에 넣어져 시내의 중앙에 있는 인조 호수에 띄워졌다. 그리고 얼마 동안 내버려두었다.
그렇지만 매일같이 수많은 네비아 인들이 교대로 신기한 것을 구경하기 위해 계속 밀어닥쳤다.
"이번에는 금붕어 항아리 속의 금붕어 신세구나."
브래들리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그래도 마못보다는 훨씬 나아요."
크리오가 말했다.
그리고 며칠 지난 어느 날, 두 네비아 인이 상자 안에 들어와 브래들리와 크리오를 붙잡아 가지고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피츠버그의 싸움
 
그런데 지구상에서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초우주선 보이스 호는 도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샘스가 두려워했던 것처럼 보이스 호는 우주의 티끌이 되어 버린 것일까 ?
프레더릭 로드브슈는 컨트롤 패널 앞에 앉아서 검은 단추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자. 간다, 클리브, 발진이다. 준비는 되었나?"
"빨리 하라고."
클리블랜드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로드브슈는 단추를 눌렀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감각을 두 사람은 느꼈다.
뇌수가 부풀어올라 폭발할 것 같은 감각이었다. 안구의 안쪽에서 검정과 녹색의 화살이 어지럽게 엇갈려 날았다.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으음."
로드브슈는 심한 고통을 참으면서 저린 손을 빨간 단추로 뻗쳤다. 그리고 단추를 눌렀다.
무서운 감각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해냈어!"
로드브슈가 큰 소리로 외친다.
"참말이야?"
클리블랜드는 반신반의했다.
"속도계를 보라고. 광속을 넘고 있어!"
로드브슈는 속도계를 가리 켰다.
"해냈군!"
클리블랜드는 좋아서 펄쩍 뛰었다.
"저 노란 작은 점은 무얼까!"
로드브슈가 스크린을 가리켰다.
"태양 아냐. 믿을 수가 없는데. 태양이 저렇게 작게 보이다니."
클리블랜드는 울트라 빔을 태양 쪽으로 돌리고 지구의 샘스를 불러냈다.
"샘스, 샘스! 여기는 클리블랜드, 보이스 호로부터의 보고. 현재 위치, 태양에서 큰곰자리 베타성에 이르는 선상의 약 2광년 지점."
클리블랜드는 로드브슈를 돌아보았다.
"울트라 빔의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저 쪽에 닿는 데 그리 시간은 걸리지 않을 거야."
말을 끝내기도 전에 스크린 위에 버질 샘스의 얼굴이 뚜렷이 비쳤다.
"오, 살아 있었구나! 보이스 호는 무사했었고!"
"아주 대성공입니다, 샘스. 보이스 호는 광속을 넘어 섰습니다.!
"오, 그런가! 축하하네! 금방 이런 말을 해서 안됐네만, 되도록 빨리 피츠버그로 가 주게. 네비아 선에 공격을 받고 있네."
"그럼 9분 이내에 돌아가겠습니다. 여기서 대기권까지 2분, 대기권에 들어가서 힐까지 4분, 그리고 선체를 냉각시키는 데 3분 걸립니다."
로드브슈가 민첩하게 말했다.
"대기권까지 2분이라고? 그렇게 빨리 된단 말인가?"
샘스의 놀라는 소리가 전해져 왔다.
"더 빠를지도 모릅니다. 승무원에게 준비하고 기다리도록 전해 주십시오."
로드브슈는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컨트롤 패널 앞에 앉아 다이얼을 조정하고 마스터 스위치를 넣었다.
또다시 그 심한 현기증이 왔다. 그러나 전보다 고통은 적었다.
스크린 위에는 지금까지 사람이 본 적도 없는 기막힌 광경이 비치었다.
노란 점이었던 태양은 금시 부풀어올라 눈부신 공이 되었다. 그리고 지구도 무서운 속도로 크기를 더하며 이쪽으로 돌진해 오는 것 같아 보였다.
클리블랜드는 무의식중에 공포의 외침 소리를 질렀다.
"멈춰, 프레드. 지구에 충돌하겠다!"
"걱정 마, 클리브. 대기권에 접촉하는 순간에 스위치를 끌 테니까."
로드브슈는 웃으면서 말했다.
초광속 우주선 보이스 호는 지구의 제일 바깥쪽 대기층에 들어가자 거의 순간적으로 정지했다. 그리고 낙하하기 시작하여 금세 힐의 상공에 이르렀다.
그리고 힐 위에 있는 인조 호수에 착수하여 몹시 뜨거워진 선체를 물 속에 가라앉혔다. 3분 후에 로드브슈는 배를 호수에서 끌어올려 도크 속에 넣었다.
에어록의 두꺼운 문이 열리자 기다리고 있던 승무원이 우르르 올라탔다.
로드브슈는 샘스를 불러냈다.
"피츠버그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선대의 반이 당했어. 나머지 반이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네."
"그럼. 곧 출발하겠습니다."
"부탁하네. 무사함을 빌겠네."
샘스의 목소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무서운 분사음(噴射音)이 울려 퍼지자 보이스 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성층권에 돌입했다.
로드브슈는 그 사이에 스크린으로 전투 상황을 보면서 승무원에게 민첩하게 지시를 주었다.
그러나 네비아의 배는 보이스 호의 발진을 탐지하고 있었다. 보이스 호가 피츠버그로 향한 것이 확인되자, 곧 공격 태세를 갖추고 대기했다.
보이스 호의 스크린은 네비아의 배를 포착했다.
"트랙터 빔으로 한번 끌어당겨 볼까."
클리블랜드가 신이 나서 말했다.
"아직 안 돼. 더 접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해."
로드브슈는 신중했다.
이윽고 그 때가 왔다. 보이스 호의 트랙터 빔이 네비아의 배를 단단히 포착했다.
네비아의 배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유유히 붉은 베일을 토해 냈다.
붉은 베일은 보이스 호를 겹겹이 둘러쌌다.
그러나 보이스 호의 선체는 울트라 웨이브 배리어에 의해 겹겹이 싸여 있다. 어떠한 빔도 이것을 뚫을 수는 없는 것이다.
네비아의 붉은 베일은 집요하게 배리어를 훑어 댔지만, 아무리 해도 보이스 호의 강철 선체에 다다를 수가 없었다.
살아남은 방위군의 배가, 보이스 호를 위태롭게 보았던지 붉은 베일을 향해 돌진해 왔다
그것을 본 로드브슈는 마이크를 향해 소리쳤다.
"돌아가라, 돌아가라. 돌아가서 피츠버그를 방어하라. 붉은 베일에 접근하지 마라. 배를 녹여 버린다. 적은 우리가 맡겠다."
선대가 선회한 것을 확인하자 로드브슈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보이스 호의 선체는 제비꽃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제비꽃 빛 불꽃은 이윽고 붉은 베일을 조금씩 밀고 나갔다. 10센티미터, 또 10센티미터, 이렇게 붉은 베일은 서서히 뒤로 물러가다가 마침내 사라져 버렸다.
제비꽃 빛 불꽃이 네비아의 배를 완전히 둘러쌌다.
네비아의 배는 미친 듯이 에너지 빔을 방사했다.
보이스 호의 배리어가 우르릉 우르릉 진동한다.
로드브슈가 소리 쳤다.
"울트라 웨이브로는 안 되겠다. 마이크로웨이브를 쓰겠다. 쿠퍼, 스펜서, 더튼, 아드린턴, 준비됐나!"
"예, 준비 됐습니다."
"오케이, 준비 됐습니다."
"좋아, 그럼 공격 개시."
제비꽃 빛 불꽃이 사라지고 무서운 선풍(旋風)이 일어났다.
그 선풍 속에서, 방위군 기술자들이 고안해 낸 무서운 병기가 발사된 것이다.
쿠퍼는 가스탄을 발사했다.
아드린턴은 철을 에너지로 하는 원자 폭탄을-.
스펜서는 파쇄 폭탄을~.
더튼은 침식 폭탄을-
그것들은 모두 비철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울트라 웨이브의 방어 스크린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네비아의 파괴 광선은 이러한 폭탄들을 파괴하지 못했다. 네비아의 방어 스크린은 이러한 폭탄들을 막아 내지 못했다.
로드브슈는 그 위에 더 무서운 병기를 발사했다.
마이크로 빔이다.
청록색 불꽃이 네비아의 방어 스크린을 뚫고 들어가 마침내 선체에 부딪쳤다.
네비아 선이 필사적으로 달아나려는 것을 보이스의 트랙터 빔이 곽 잡고 놓지 않았다.
그러나 마침내 네비아의 강력한 공격 빔은 트랙터 빔을 뚫었다.
그 순간에 네비아의 배는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적이 도주했다. 즉각 추적하라!"
로드브슈가 소리쳤다.
"오케이."
스파이 광선이 금세 적선(適船)을 발견했다.
"적선 발견. 즉시 추적 코스로 들어감."
보이스 호는 즉시 광속 비행으로 옮겼다.
"생각했던 것보다 다루기 쉽군."
클리블랜드가 안도한 듯이 말한다.
"정말이야. 더 벅찰 줄 알았는데. 코스티건이 저들의 공학 기술에 대해 자세한 데이터를 보내 준 덕분이야."
로드브슈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크, 따라잡았다."
스크린에 뚜렷이 떠오른 네비아의 배를 클리블랜드가 가리킨다.
"이번에야말로 처치하고 말 테다. 발사 준비!"
청록색 마이크로 빔이 또다시 네비아의 배를 둘러싸고 트랙터 빔이 단단히 포착한다. 모든 종류의 폭탄이 일제히 퍼부어졌다.
네비아의 배는 트랙터 빔을 뚫으려고 필사적이다. 파란 불꽃이 화포처럼 튀어 흩어진다.
갑자기 트랙터 빔이 사라졌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보이스 호의 선복에서 굉장한 화염이 솟아올랐다.
"비상 사태 발생! 비상 사태 발생!"
스피커가 울리기 시작하여 무시무시한 경보가 울려 퍼진다.
"제 6구가 당했습니다!"
"트랙터 빔 발생기가 둘 다 망가졌습니다!"
피해를 알리는 보고가 잇따라 들어온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로드브슈가 물어뜯을 듯이 소리를 지른다.
"우리편이 발사한 폭탄이 방어 스크린 내부에서 폭발했습니다. 원인은 불명입니다."
아드린턴이 대답했다.
"좋아, 피해 당한 곳을 조사하러 가겠다. 클리블랜드, 자네도 가 주게."
로드브슈와 클리블랜드는 우주복으로 무장하고 비상용에어록에서 제 6구로 들어갔다.
"이건 너무 지독하군."
로드브슈는 눈살을 찌푸렸다.
외벽도 내벽도 폭풍으로 날아가고 없었다. 장치는 모두 휘거나 굽거나 뒤틀려 어느 하나도 원형(原形)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고는 없다.
"손을 댈 수 없겠군,"
"트랙터 빔 발생기 쪽을 조사해 보자!"
발생기가 놓여 있는 방은 내부가 엉망진창으로 파괴되어 있었다. 윤활유 타는 냄새가 꽉 들어차 있고, 발생기의 주요 장치가 반쯤 녹아 있다.
발생기의 가로대가 타 버리자, 철 에너지가 출구를 잃고 축적되어 마침내 폭발한 모양이다.
"흐음. 거기다가 자동 폐쇄 장치를 달아 놓았어야 했어, 클리브. 발생기는 수리할 수 있겠지."
"하지만 선체의 구멍은 여기서는 수리하지 못해. 수리 공장으로 갖고 가야지."
"이 근처에 행성은 없을까? 배를 착륙시킬 수 있을 만큼 단단하기만 하면 되겠는데."
"응, 있을지도 모르지. 컨트롤 룸에 돌아가서 행성을 찾아보자."
두 사람은 컨트롤 룸에 돌아가서 곧 행성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세 개의 큰 행성을 가진 태양이 곧 발견되었다. 단, 제일 가까운 행성으로 닷새는 걸리는 거리다.
"발생기를 수리하면 어떻게든 갈 수 있겠지. 네비아의 배는 당분간 보류할 수밖에 없겠군, 클리브."
닷새 후, 보이스 호의 상처 입은 선체는 미지의 행성의 지표에 무사히 착륙했다.
지구보다 큰 행성이었다. 중력도 조금 크다. 기온은 낮고 기묘한 식물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대기는 산소가 들어 있으나,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난다.
그러나 배를 수리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다.
사흘 후에 배의 수리는 완성되었다.
"그럭저럭 원상대로 되었군."
로드브슈는 기쁜 듯이 말했다.
"이 별 주위를 시험 비행해 보자."
보이스 호는 요란한 분사음을 울리며 발진했다.
행성을 반 바퀴 돌아 수리가 완전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로드브슈는 광속 비행으로 바꾸어 우주로 날아가려고 했다.
그 때, 계기 패널에 빨간 램프가 켜지며 경보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일일까?"
로드브슈는 울트라 빔을 투사하면서 놀라는 소리를 질렀다.
"이거 놀랐는걸. 로저가 여기 있다. 인공 행성을 개조하고 있는 모양이다. 전원, 제자리에 돌아가라!"
 
대 폭 발
 
로저는 살아 있었다.
네비아의 배가 인공 행성을 파괴한 순간 그는 여러 명의 과학자와 함께 탈출한 것이다.
네비아의 붉은 베일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와 우주로 날아오르자, 로저는 과학자들을 가까이 불렀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태양을 향해 날고 있다. 거기라면 방위군들의 탐지 빔도 닿지 않을 것이다. 도착은 닷새 후다. 그 때까지 저 붉은 베일을 분석하라."
과학자들은 로저의 명령대로 붉은 베일의 분석에 착수했다.
닷새 후에 그들은 바위투성이의 행성에 접근했다.
로저는 행성을 일주하여 필요한 자원을 찾았다.
태양은 멀어서 빛이 약했다. 괴물같이 생긴 식물이 무성하게 지표를 덮고, 서로서로 뜯어먹고 있었다.
식물 사이를 작은 생물이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어느 것이나 미끈미끈한 점액질의 누런 피부로 덮여 있고, 뱀처럼 구불구불 기거나 박쥐처럼 날아다니고 있다.
"지성을 가진 생물이 있을 텐데."
로저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탐지 빔으로 찾으니까 도시가 발견되었다.
원추형 건물이 꽉 들어서 있고 그 주위에 성벽 같은 것이 둘러져 있다.
거대한 아메바라고나 할까, 그러한 생물이 건물 안과 둘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로저는 트랙터 빔으로 그 생물을 배로 끌어올렸다
눈이나 귀에 해당할 만한 기관은 보이지 않고, 몸 전체를 늘렸다 오므렸다 하며 적의(敵意)를 보이고 있다.
"틀림없이 지성이 있군. 하지만 이런 생물은 소용없다. 이것들은 정복해서 훈련하기보다는 내 로봇에게 기계를 만들게 하는 편이 빠를 것이다."
로저는 그 생물을 배 밖으로 내던지고 공격 빔을 쏘아서 죽여 버렸다.
그리고 착륙 지점을 발견하여 착륙하자, 주위에 있던 생물을 모두 죽인 다음 로봇을 내려놓았다.
로봇은 곧 작업에 착수했다.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거기에 뜻하지 않은 방해가 생겼다.
그 아메바 같은 생물이 어느 새에 줄줄 몰려와서 로봇을 습격했던 것이다.
그들이 로봇을 건드리자, 어떻게 된 영문인지 불꽃이 튀며 로봇은 움직이지 않게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공격 빔으로 아무리 죽여도 마치 땅에서 솟아나듯이 자꾸자꾸 한없이 습격해 온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지요?"
과학자가 생각다 못해 말했다.
"로봇을 일단 배 안으로 끌어올려라. 그리고 방어 스크린을 둘러치고 그 속에서 로봇에게 일을 시키도록 하라."
로저는 그렇게 명령했다.
아메바 같은 생물들은 방어 스크린에 몸을 부딪쳐 왔으나, 퉁겨날 따름이었다.
그래도 싫증도 안 내고 부질없이 부딪치는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로봇의 일에는 방해가 되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작업은 착착 진행되었다.
우주선 주위에 용광로며 기계를 만드는 공장이 건설되었다. 로봇의 정교한 손가락이 정밀한 기계를 만들어냈다.
로저는 그 동안에 정신 에너지를 집중하여, 지금까지 쭉 그의 행위를 방해해 온 정체 불명의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탐지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는 그것을 마침내 발견했다.
그것을 항해 그는 강력한 정신 에너지를 보냈다. 그러나 아무 효과도 없었다.
반대로 저 쪽에서 보내온 정신 에너지는 에도르의 갈렌을 쩔쩔매게 할 만큼 과격한 것이었다.
갈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말했다.
"너는 누구냐, 나의 정신 에너지로도 죽일 수 없는 너는 누구냐?"
"네가 나를 발견한 이상 숨겨 봤자 소용없겠지. 생각 해 봐라, 천천히 생각해 봐라."
갈렌의 마음은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갔다.
1백 년…….
1천 년…….
10만 년…….
1억 년…….
10억 년…….
에도르의 조상의 기억을 그는 계속 더듬어 나갔다. 그리고 발견했다. 에도르 외에 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종족이 있었던 것을.
에도르가 알지 못하는 사이 몇 십억 년이나 전부터 에도르를 감시하며, 사사건건 에도르를 방해해 온 종족.
이 발견은 에도르의 갈렌에게 있어서는 심한 충격이었다. 이 우주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자기들뿐이라고 믿고 있던 에도르 인에게 있어서는…….
즉시 에도르로 돌아가서 이러한 발견을 왕에게 알려야 할까?
갈렌은 생각했다.
이 중대한 사실을 에도르 인은 이미 몇 십 년이나 모르고 지내 왔던 것이다. 지금 와서 허둥거려 보았자 별 수 없지 않은가.
그보다도 이 인공 행성을 완성시키는 편이 중요하지 않을까?
갈렌은 그렇게 생각했다.
보이스 호가 이 별에 긴급 착륙한 것은 바로 이때였다. 갈렌인 로저는 곧 보이스 호를 탐지했다.
그는 과학자를 불러모았다.
"저 배는 어느 태양계에 속해 있나?"
"저것은 은하계 방위군의 배입니다. 지금까지 본 어느 배보다도 대형입니다만 틀림없습니다. 공격할까요?"
"아냐, 사로잡아라. 사로잡아서 자료의 보충으로 이용하자."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눈이 번쩍거렸다.
"제자리에 배치하라. 저런 것은 간단하게 해치울 수 있겠지."
로저는 냉랭하게 말했다.
그 때 스피커가 울린다.
"여기는 은하계 방위군, 보이스 호다. 항복하고 싶은 자가 있으면 즉시 배를 버리고 나오라. 이 쪽에서 보호하겠다. 만일 없으면 즉시 공격으로 옮기겠다."
스피커는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경고했다.
그러나 로저의 표정은 털끝만큼도 변하지 않는다. 그는 배 안을 향해 소리쳤다.
"이 배를 떠나고 싶은 자가 있으면 즉시 하선하라. 단, 두 번 다시 배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 1분 후에 공격을 개시한다."
그러나 아무도 내리는 자는 없었다. 모두 방위군이 이긴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도 내리는 자가 없군, 좋아. 너희들의 판단이 옳았다."
로저는 침착하게 말했다.
1분 후, 로저는 레버를 당겼다.
붉은 베일이 보이스 호를 엄습했다.
네비아의 붉은 베일이다.
로저는 네비아 선과 싸우는 동안에 그 붉은 베일을 분석하여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똑같은 적색 베일 발생 장치를 만들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방위군의 배 따위는 눈 깜짝할 새 해치울 수 있다고 로저는 믿고 있었다.
설마, 상대가 초우주선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들이 네비아의 붉은 베일을 방어하는 스크린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아니, 어떻게 된 거야? 붉은 베일에 싸여도 끄떡 없쟎나. 이상한데."
로저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틈에 보이스 호는 맹렬히 반격해 왔다.
철 에너지에 의한 모든 빔이 로저의 배에 퍼부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로저의 철 에너지 방어 스크린을 관통하지는 못했다.
"좋다. 붉은 베일이 안 된다면 이걸로 하자."
로저는 다시 강력한 빔을 방사했으나 이것도 또한 보이스 호의 스크린을 관통하지 못했다.
"으음, 이렇게 되면 일단 후퇴하자!"
로저는 후퇴를 명했다.
그러나 보이스 호의 트랙터 빔은 로저의 배를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보이스 호에서는 클리블랜드와 로드브슈가 의논하고 있었다.
"저건 코스티건이 보고해 온 사이클식 스크린이다. 저걸 뚫으려면 드릴 빔을 쓰는 수밖에 없겠군. 그러려면 10호 방사기와 10호 동력기를 충분히 써야 하는데, 그래도 되겠나, 프레드?"
"되고말고, 클리브. 자, 간다!"
클리브가 고안한 드릴 빔이 투사되었다.
엄청난 에너지가 로저의 방어 스크린에 부딪쳤다.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눈이 아찔한 불꽃이 튀었다.
드릴 빔이 보이지 않는 벽에 작은 구멍을 뚫었다.
"와아, 뚫었다!"
로드브슈는 좋아서 뛰어올랐다.
드릴 빔은 더욱더 로저의 선체에 파고들었다. 금속 벽에 구멍이 뚫렸다.
"자, 저 구멍에 폭탄을 쏘는 거다!"
클리브가 외쳤다.
쿠퍼도 스펜서도 더튼도 아드린턴도 정신 없이 폭탄을 발사했다.
로저의 얼굴에 비로소 당황하는 빛이 떠올랐다.
"트랙터 빔을 끊어라! 트랙터 빔을 절단하란 말이다!"
로저는 고함을 쳤다.
그러나 보이스 호의 트랙터 빔은 로저의 배를 잡고 놓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방위군한테 지다니!"
로저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파괴의 시간이 찾아왔다.
몇 백 발이나 발사된 침식성 가스탄이며 원자철 폭탄에 의해 대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무적(無敵)을 자랑한 로저의 배는 마침내 죽같이 녹아서 행성의 표면으로 낙하해 갔다.
로드브슈는 나중에 항행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완강하게 저항했기 때문에 침식성 가스탄을 사용했다. 로저와 열 한 명의 과학자가 사망한 것은 확실하다. 그러한 상황 아래서는 어떠한 생물도 살아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 네비아 배의 추적을 계속하자."
클리블랜드가 말했다.
보이스 호는 네비아선의 뒤를 쫓아 우주로 날아 나갔다. 비행하면서 감도가 높은 울트라 웨이브 탐지기로 수 광년 앞의 우주까지 계속 탐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단히 두 명의 통신원이 어떤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으려고 전 신경을 귀에 모으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 네비아의 별 위에서 코스티건이 우주를 향해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멀어서 보이스 호의 탐지기까지는 닿지 않았던 것이다.
 
로저라고 불리던 육체가 죽은 것은 사실이다.
로저의 육체는 원자로 분해되어 우주에 흩어졌다.
그러나 그 몸을 조종하고 있던 에도르의 갈렌은 죽지 않았다.
에도르의 갈렌은 몸이 파괴된 순간 에도르에 돌아가 있었다.
갈렌은 곧 왕과 접촉했다.
그리고 알리시아의 종족을 발견한 경위를 이야기했다.
"임금님, 알리시아는 얕잡아볼 수 없는 적입니다."
"그러나 그대의 말로 추측하건대 무능한 종족인 모양이다. 몇 십 년 동안이나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오지 못하지 않았느냐."
"임금님, 그럼 저희들은 지금부터 지구에 대해 어떤 공작을 하면 좋겠습니까?"
"지구인들이 사회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즉 사랑이라든지, 성실이라든지, 예절 같은 것을 쳐부숴 버려라."
"오, 사랑, 성실. 참 부질없는 것이지요. 이런 것들은 지구상에서 말살하고 모든 악덕이 널리 퍼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암살과 마약과 전쟁과 그 외 갖은 수단을 다 써서."
"그래, 아직도 우리 에도르가 활약할 여지는 남아있다. 부하들을 계속 지구로 내보내라. 그리고 알리시아를 쳐부수기 위한 강력한 병기를 만들어 내라."
"예, 예, 알았습니다."
 
한편 알리시아에서는 멘터가 지구의 감시자를 소집하고 있었다.
"드디어 에도르가 알아차렸군요."
젊은이 엠필리스터는 기쁜 듯이 말했다.
드디어 에도르에 대해 공공연히 싸움을 걸 수 있을 때가 왔다고 기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멘터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의 일은 지금까지와 변함 없다. 에도르가 하는 짓을 감시하다가 지구인이 위기를 만났을 때만 힘을 빌려 주도록 하라."
엠필리스터는 불만이었다.
"어째서 좀더 적극적으로 원조를 하지 않는 겁니까?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에도르의 악이 싹이었을 때 꺾어 버리면 쓸데없는 싸움을 안 해도 되지 않습니까?"
멘터는 조용히 대답했다.
"젊은이, 틀림없이 그러는 편이 훨씬 간단하다. 하지만 그 방법이 보다 나은 방법이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나는 대답할 걸세."
"어째서입니까?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문명이라는 것은 장애를 극복해 감으로써 비로소 진보하는 것이다. 하긴 우리가 힘을 빌려 주면 에도르와의 싸움은 더 수월해질지 모르지. 그러나 그것이 지구인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 보게. 지구인들은 주어진 문명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보호받고 있는 데 불과하다. 그래서는 결코 진보가 없을 것이다. 스스로 문명을 진보시켜 나갈 힘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는 참된 문명은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이다."
"그렇군요, 잘 알았습니다."
젊은이 엠필리스터는 멘터의 깊은 마음에 다시금 존경심을 품었다.
그는 다시 지구 감시자의 임무로 돌아갔던 것이다.
 
V2 가스 작전
 
코스티건은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 아래서도 탈출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결코 단념하지 않았다.
브래들리도 크리오도 각각의 도시로 옮겨져서, 투명한 상자 속에 갇혀 있었다.
매일같이 수많은 구경꾼들이 이 진기(珍奇)한 생물을 보려고 새까맣게 몰려왔다. 너무나 구경꾼들이 많아서 마침내 정리하는 사람이 나와서, 상자 앞에서 멈춰 서지 말아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세 사람을 소중히 다루었기 때문에 생명의 위험은 없었다. 식사에도 신경을 써 주었고, 세 사람이 서로 말을 할 수 없으면 적적할 것이라고 해서 울트라 웨이브 통화기를 쓰는 것도 허용해 주었다.
코스티건이 이것을 이용 안 할 까닭이 없다. 그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곧 실행에 옮겼다.
우선, 식사하는 것을 거부했다.
날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가만히 방 구석에 앉아 있었다.
과학자는 그러한 코스티건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음식을 먹어야 한다. 체중이 줄지 않았나."
그러나 코스티건은 완강하게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점점 쇠약해졌다.
네비아 인들은 난처해졌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러다간 소중한 마못이 죽어버리겠다."
"음식을 먹게 만드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과학자들은 날마다 이마를 맞대고 협의했다. 그러나 좋은 지혜는 떠오르지 않았다.
'기회가 왔어!'
코스티건은 마음 속으로 손뼉을 쳤다. 그는 거기서 어떤 요구를 제의했던 것이다.
"방에 갇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괴롭다. 무언가 일을 하게 해 달라. 그러면 음식을 먹을 마음도 날거다."
네비아 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무언가 일을 하게 해 달라고 하지만, 너같이 지능이 떨어진 자에게 시킬 만한 일은 없다."
"내가 지구에 있을 때 시작한 연구가 있으니, 그걸 계속하게 해 다오. 그러면 뭐든지 먹겠다."
"흠, 그렇다면 연구실을 만들어 주지. 그 대신 음식을 먹어야 한다."
네비아 인은 코스티건에게 음식을 먹이고 싶은 일념(一念)으로 마침내 코스티건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코스티건의 방에 곧 화학 실험을 할 수 있는 만들어지고, 코스티건이 요구한 기구며 약품이 운반되었다. 코스티건은 거기서 날마다 무언지 화학 실험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네비아 인은 코스티건이 음식을 먹게 되었으므로 한시름 놓은 모양이다. 가끔 와서 코스티건의 실험을 보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노는 것을 보듯이.
그로부터 며칠 후 코스티건은 크리오와 브래들리를 불러냈다.
"두 분은 들어 주십시오, 멋진 이야기가 있어요."
"어머나, 콘웨이. 멋진 이야기가 있다는 게 뭐여요?"
크리오의 놀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지긋지긋해, 매일 동물원의 곰처럼 구경 당하는 것은. 그래, 그 멋진 이야기란 뭔가?"
브래들리의 커다란 목소리도 들렸다.
"사실은 단식 투쟁을 했지요."
"단식 투쟁?"
"그래요, 그래 가지고 저들에게 연구실을 만들게 했지 뭡니까."
"연구실이라고?"
"예, 이 곳의……."
코스티건의 말을 브래들리가 가로막았다.
"잠깐, 도청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걱정 마십시오. 도청 당하면 그 순간에 이 쪽이 알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괜찮지만."
"이 곳 바닷물에서 V2 가스를 만들었어요. 꽤 많이 만들어서 병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잔뜩 넣어 두었습니다."
"호오, 하지만 용케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군 그래."
"아니, 저들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몰라요. 첫날은 내가 하는 일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나는 하루 종일 산소와 질소를 분리해 줬지요. 그랬더니 저들은 나를 아주 경멸해 버린 겁니다. 그 뒤부터는 내가 뭘 하건 보러 오지 않게 됐지 뭡니까. 그래서 내가 V2 가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V2 가스를 어떻게 할 셈인가?"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 곧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뭐라고?"
"곧 내 담당이 점심을 가져올 테니까, 그놈에게 V2 가스를 맡게 한 다음 탈출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해서 달아날 셈인가?"
"신형 원자 철선이 이 건물 근처에 있습니다. 그걸 빼앗아 타고 달아날 작정입니다. 이 배는 최종 테스트를 끝낸 지 얼마 안 된 배인데, 생전 처음 볼 정도로 날씬한 배입니다."
"하지만 콘웨이, 저를 구출해 내는 것은 무리여요. 이 부근에는 수천 명의 네비아 인이 우글거리고 있는걸요. 당신이 탈출할 수 있다면 혼자서 달아나도록 해요."
"무슨 소릴 하는 거요, 크리오. 당신을 데리고 가지 않을 바엔 죽는 게 나아요. 네비아 인이 몇 천 명 있건 V2가스를 쐬어 주면 그만이오."
"하지만, 당신도 V2 가스를 맡으면……."
"그런 걱정은 필요 없어요. 벌써 가스 마스크를 만들어 놓았으니까. 내가 가스가 짙은 곳을 지나가겠소. 당신들은 가스 마스크가 필요 없을 겁니다. V2 가스는 물에 녹기 쉬우니까 물수건을 세 겹이나 네 겹으로 접어서 코에 대면 됩니다. 아, 담당자가 오는군. 그럼 이만!"
"조심 하셔요, 콘웨이."
"조심하게, 코스티건."
크리오와 브래들리는 기도하듯이 소리쳤다.
식사 담당이 방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코스티건은 V2가스가 든 진공관 하나를 방바닥에 냅다 동댕이쳤다.
가공할 V2 가스가 방에 가득 찼다.
식사 담당은 몸이 뻣뻣해지며 꿈틀꿈틀 경련을 하는가 싶자 툭 쓰러지더니, 그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코스티건은 식사 담당이 들고 있던 키 튜브를 빼앗아 벽에 갖다 댔다. 벽의 일부에 구멍이 뻐끔 뚫렸다. 그 구멍으로 V2 가스가 든 진공관을 여러 개 던졌다.
용해성(溶解性)이 강한 액화 가스는 공중에도 수중에도 마구 퍼져 나갔다.
몇 백 명, 몇 천 명이나 되는 네비아 인이 모조리 쓰러져갔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죽어 갔다.
아무데도 움직이는 자가 없어진 것을 확인하자, 콘웨이는 가스 마스크를 쓰고 V2 가스가 든 커다란 양철통을 등에 짊어졌다. 그리고 호주머니에도 작은 진공관을 넣을 수 있는 데까지 넣었다.
방문 앞에서 물 속으로 들어가자, 제일 가까운 언덕길로 헤엄쳐 가서 거기를 달려 올라갔다. 앞쪽에도 이미 V2 가스가 퍼져 있었기 때문에 통로는 네비아인의 시체로 가득했다.
그것을 타넘거나 뛰어넘으면서 전진했다.
그는 시의 공기 조정 공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공장에 다다르자 등의 양철통을 내려 온 시에 공기를 보내고 있는 파이프에 V2 가스를 쏟아 넣었다.
V2 가스는 소리도 없이 온 시에 퍼져 나갔다.
시의 변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전에 없이 시중의 움직임이 멈춰 버린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V2 가스가 그들이 있는 곳에 다다른 순간 이상히 여기는 일을 중지해 버렸다. 영원히.
코스티건은 쥐 죽은 듯 조용해진 홀을 빠져나가, 자신의 우주복이 간수되어 있는 곳으로 가서 갈아 입었다. 그리고 도주용으로 빼앗을 작정인 신형 우주선이 있는 도크로 향했다.
거기에는 제1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는 밀폐되어 있으므로 V2 가스는 들어가 있지 않을 것이다. 승무원은 살아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물론 무기를 가지고 있다. 들키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그는 배의 현구 가까이에 쪼그리고 앉아 네비아인의 모습이 없어지기를 기다렸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코스티건은 현구 문에 키 튜브를 대고 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호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온 진공관을 내던졌다.
유리 진공관은 산산조각으로 깨져, 무서운 V2 가스가 쏴아 하고 조그만 소리를 내며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코스티건은 적당한 기회를 봐서 배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승무원은 모두 죽어 있었다.
시체는 모두 배 밖으로 내던졌다.
제어실에 뛰어들어가자 즉시 배를 발진시키고 통화기의 스위치를 넣었다.
"크리오, 브래들리 선장님,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곧 구출하러 가겠습니다."
"콘웨이, 무사하셨군요, 정말 다행이었어요."
크리오의 기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크리오, 우선 당신부터 구출하러 가겠소. 아직 너무 멀어서 스파이 빔으로 당신 있는 곳은 보이지 않지만, 배의 빔을 사용하면 탐지될 우려가 있으니까, 그대로 말을 계속해 줘요. 목소리를 따라 앞으로 나갈 테니까."
"예, 예, 수다 떠는 일이라면 저의 장기니까요."
"그 쪽에는 무슨 소동이 일어나지 않았소?"
"아니오, 보기엔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네비아 인을 깡그리 죽인 것은 아니니까, 내가 탈출한 것을 눈치채고 당신들 두 사람을 딴 곳으로 옮길 염려가 있어요. 그들은 바보가 아니니까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챌 거요. 자, 이제 다 왔어요."
"어떻게 하실 작정이셔요?"
"내 방에서 했던 것처럼 하는 거지. 공기와 물에 V2가스를 쏟아 넣어서-."
"앗, 콘웨이."
크리오의 날카로운 외침 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요?"
"눈치챈 모양이어요-모두들 물에서 올라와 건물 안으로 달려들어가고 있어요."
"아, 보이는군. 지금 당신이 있는 건물의 바로 위에 있어요. 건물 주위를 배가 십여 척 가량 둘러싸고 있군. 통로에는 감시원이 있고. 게다가 그들은 가스 마스크를 쓰고 있어."
"그럼 그들은 눈치챈 모양이군요."
"응, 상당히 머리가 좋군. 이래 가지고는 V2 가스를 써도 소용없겠는걸."
"빨리요, 콘웨이. 저들이 와요."
크리오의 목소리는 비명으로 바뀌었다.
"에잇, 기다려요, 크리오. 지금 가요."
코스티건은 배를 착수시키고 해치에서 크리오가 있는 건물 입구를 향해 키 튜브를 돌렸다.
그러나 입구는 열리지 않는다.
"아차, 여기서는 키 튜브가 다른 모양이구나."
코스티건은 이를 갈았다
"빨리요, 콘웨이, 빨리 와요! 들어왔어요!"
"좋아, 건물을 파괴하는 수밖에 없어. 저 쪽 구석에 엎드려 있어요!"
크리오가 바닥에 엎드리는 것을 보고 나서 코스티건은 건물 지붕을 강력한 빔으로 날려 버렸다. 뻐끔하게 입을 벌린 건물 위에 코스티건의 배는 정지했다. 코스티건은 배의 해치에서 몸을 내밀고 크리오를 불렀다.
"크리오, 크리오, 여기요, 빨리!"
그러나 크리오의 대답은 없다. 코스티건의 심장은 한순간 확 오그라들었다.
'방금 그 폭풍에 날려가 버린 것일까?'
방구석에 넘어져 있던 테이블이 움직거렸다.
"크리오, 어디 있어? 어디 있어요?"
"아, 콘웨이, 여기여요."
테이블 밑에서 크리오가 비틀비틀 일어섰다. 심한 충격을 받고 정신을 잃고 있었던 모양이다.
"빨리 이 쪽으로 와요."
크리오는 배의 해치 밑으로 왔다. 그리고 옆에 있던 책상 위에 기어올라가서 두 손을 뻗었다.
그 손을 코스티건이 꽉 잡고 배에 끌어올렸다.
해치를 닫고 곧 날아올랐다.
"크리오, 거기 당신 우주복이 있으니까 입어요. 루이스턴 총을 점검해 놓도록 해요. 당신이 쓰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런 다음 브래들리를 불렀다.
"브래들리 선장님, 지금부터 그리로 가겠습니다."
"알았네, 코스티건. 크리오는 어떻게 됐나?"
"무사히 구출했습니다. 이번에는 선장님 차례입니다. 물수건을 준비해 놓도록 하십시오. 곧 갑니다."
"틀렸군. 지금 그들이 들어왔어."
"저항하지 않으면 마비 광선은 쓰지 않을 겁니다. 그대로 말을 계속해 주십시오. 그러면 어디로 끌려가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소용없어, 코스티건. 그들은 훤히 알고 있어 나를 마비 ……."
브래들리 선장의 목소리는 뚝 끊어졌다.
"제길할."
코스티건은 이를 갈았다.
울트라 웨이브로 보니까. 네비아 인들은 선장의 축 늘어진 몸을 작은 보트에 태워 싣고 나가는 중이었다.
그들은 시에서 제일 큰 건물로 선장을 운반했다. 그리고 중앙에 있는 큰 홀의 소파에 뉘고 그 주위를 많은 경비원들이 둘러쌌다. 단 하나 남은 표본을 절대로 넘겨주지 않겠다는 결의다.
코스티건은 크리오를 돌아보았다.
"브래들리 선장을 그냥 버리고 갈 수는 없소. 하지만 여기서 어정거리고 있다가는 당신 역시 위험해요."
크리오가 격려하는 듯이 말했다.
"물론 브래들리 씨를 이대로 버리고 갈 수는 없어요. 저에 대한 것은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당신과 함께라면 어떤 변을 당해도 괜찮아요."
"고맙소, 크리오. 만일 저들이 선장을 죽여 버린다면, 그 때는 달아납시다. 하지만 그가 살아 있는 한은 달아날 수가 없소."
코스티건의 눈에는 굳은 결의의 빛이 넘쳐 있었다.
"당신은 정말 용기가 있으시군요, 콘웨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지 하겠어요."
"좋아. 그럼 V2 가스를 저들에게 퍼부어 줘요. 저 홀 천장에 구멍을 뚫을 테니까 그 속으로 가스 진공관을 던져 넣어요. 마구 던져 넣으면 돼요."
"하지만, 그러면 브래들리 선장님도 가스를 맡게 되잖아요."
"맡아도 괜찮아요. 해독제가 있으니까. 한 시간 이내에 치료하면 살아날 수 있어요. 자, 빨리 합시다."
배는 브래들리 선장이 감금되어 있는 높은 건물의 바로 위에 도착했다.
강력한 빔이 건물의 천장을 관통하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자, 크리오. 지금이오!"
코스티건의 소리와 함께 크리오는 손에 든 진공관을 연 거푸 내던졌다.
큰 홀에 금세 V2 가스가 퍼졌다. 건물 안에 있던 네비아 인들은 소리를 지를 겨를도 없이 툭툭 쓰러졌다.
코스티건은 다시 한 번 빔을 쏘아 건물 벽을 반쯤 날려 버렸다.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린 바닥 위에 배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루이스턴 총을 들고 배에서 뛰어나왔다.
"감시원들은 필시 가스 마스크를 쓰고 있을 거야. 내가 루이스턴 총으로 해치울 테니까 그 동안에 선장을 끌어내도록 해요."
"오케이."
코스티건의 루이스턴 총이 섬광을 뿜었다. 열 명 가량 있던 감시원 네비아 인들은 루이스턴 총에는 무력했다. 응전할 사이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크리오는 선장 있는 데로 달려가서 무거운 몸을 소파에서 내려, 한쪽 발을 잡고 질질 끌었다.
코스티건이 거들기 위해 뛰어나왔을 때는 벌써 배 앞에까지 끌고 와 있었다.
"훌륭해, 크리오. 당신 덕택에 대 성공이야."
코스티건은 브래들리의 덩치 큰 몸을 안고 배 안으로 운반했다.
그 때는 벌써 네비아의 배가 속속 건물 주위에 몰려와 있었다. 그들은 건물의 남은 부분에 빔을 쏘아 파괴하여 코스티건의 배를 가두려고 했다.
코스티건은 간신히 통로를 뚫었다. 그러나 날아오르려 하자 네비아인의 배에서 빔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그러나 콘웨이가 이 배를 탈출용으로 고른 데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배는 행성 네비아에서 가장 우수한 배였다. 어떤 공격에도 견뎌 내는 장비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는 혼자 갇혀 있는 동안 이 배의 제어 장치나 장비에 대해 완전히 조사해 두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배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배를 싸고 있는 방어 스크린은 네비아의 집중 공격을 보기 좋게 견뎌 냈다.
"좋아, 이번에는 이 쪽 차례다!"
코스티건은 공격 빔을 투사했다. 그 위력은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였다. 네비아의 배를 싸고 있는 방어 스크린은 자줏빛 섬광을 뿜었다. 그 순간 적의 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굉장하군요!"
크리오가 환성을 질렀다.
"정말 굉장한 위력이군."
코스티건도 눈이 뚱그래졌다.
네비아의 배는 잇따라 습격해 왔지만 어느 것이나 모두 같은 운명(運命)을 걸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코스티건 일행을 태운 배는 끝없는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해내셨군요, 콘웨이! 당신 정말 멋진 사람이어요!"
"좋아하기는 일러요. 귀찮은 문제가 남아 있으니까."
"귀찮은 문제라니요?"
"네라드의 배가 반드시 쫓아올 거요. 아무튼 우리는 그가 겨우 사로잡은 귀중한 표본이었으니까 말이야. 집요하게 쫓아올 게 뻔해. 게다가 그들을 V2 가스로 떼죽음을 시켰고, 그들의 귀중한 배까지 빼앗았으니 말이야. 안 쫓아오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지."
코스티건은 입을 다물고 배의 조종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여간 되도록 추격자와의 거리를 떼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윽고 배는 행성 네비아의 인력을 뿌리치고 자유로운 우주 공간으로 날아 나가, 태양을 향해 곧장 나아가기 시작했다.
코스티건은 제어 장치에서 떠나 우주복을 벗었다. 그리고 브래들리 선장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꼭 죽은 사람 같아요. 콘웨이. 살릴 수 있을까요?"
크리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여다본다.
"괜찮아요. 아직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주사를 석 대만 놓으면 깨어날 거요."
코스티건은 우주복의 호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해독제인 앰플과 주사기 네 개가 들어 있었다.
그는 브래들리의 팔에 조심스럽게 주사를 놓았다.
"자, 이제 대여섯 시간만 지나면 가스 작용이 사라질 거요. 눈을 뜨면 멀쩡할 거야. 이제 할 일은 다 했군. 나머지는 배에다 맡길 뿐이야."
"그 별에서 도망쳐 나오다니, 꼭 꿈만 같아요. 당신 참 멋있어요. 절대로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셨는걸요. 만일 지구에 돌아가면……."
"만일이 아니야. 꼭 돌아가요. 나는 당신을 꼭 지구로 데리고 돌아갈 거야."
"참말로 그렇게 생각하셔요?"
"음, 방위군의 초우주선이 반드시 구출하러 와 줄 테니까."
"그 초우주선은 벌써 완성되었을까요?"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샘스에게 데이터를 충분히 보내 놓았으니까."
"하지만 만일 구출하러 오지 않아 네라드에게 붙잡히게 되면……."
"그 때는 그 때지. 네라드는 결코 우리를 해치지 않을 테니 생명의 위험은 없을 테니까, 그러다 보면 그 물고기 괴물이 좋아질지도 모르지."
"저는 도저히 좋아질 것 같지 않아요. 그런 뱀 같은 괴물! 그리고 그 냄새."
"비리단 말인가요?"
코스티건은 낄낄 웃어댔다.
"어머나, 콘웨이, 웃을 일이 아니란 말이어요."
크리오는 화난 듯이 코스티건을 흘겨보았다.
"미안해요, 크리오. 그 냄새 같은 건 사소한 일이오. 지구인 가운데는 제비꽃 같은 좋은 냄새가 나면서도, 네라드에 비해 절반도 믿을 수 없는 작자가 있거든."
"하지만, 네라드도 믿을 수 없어요. 어쨌든 우리를 붙잡아다가 그런 우리 같은 곳에 가두어 놓고."
"그거야 당연하지. 당신이라도 그랬을 거요, 네라드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그리고 우리 역시 네라드들에게 얼마나 지독한 짓을 했는지 한번 생각해 봐요. 그것도 역시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지. 양쪽 다 상대편을 책망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도 아무래도 전 좋아질 것 같지 않아요."
크리오는 고집 세게 우겼다.
"아무튼 좋아요. 그런데 당신."
그러면서 코스티건은 크리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꼭 화성에서 피크닉이라도 하고 온 것처럼 홀쭉한 얼굴을 하고 있군. 뱃속에 음식을 넣은 것이 언제였지?"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어제 아침이었던가?"
"역시 그렇군. 그럼 먹어야 해요. 당신이 먹을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봅시다."
저장고에 생선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크리오가 먹을 수 있도록 조리(調理)했다.
크리오는 어지간히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군소리 없이 깨끗이 먹어 치웠다.
"잘 먹었어요, 콘웨이."
크리오는 만족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자도록 해요. 한잠 자고 나면 기운이 날 거요."
크리오는 시키는 대로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금세 잠들기 시작했다.
'콘웨이와 함께라면 아무것도 무서울 것 없어.'
편안하게 잠든 얼굴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편히 자요, 크리오."
코스티건은 정답게 속삭이고 브래들리 선장한테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나자 브래들리 선장이 눈을 번쩍 떴다.
"여기가 어디지?"
브래들리 선장은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주선 안입니다,"
"아, 코스티건이군. 어디로 가고 있는 건가?"
"우리 태양과 지구를 향해서!"
"뭐, 참말인가? 그렇다면 탈출에 성공했단 말인가?"
벌떡 일어나려는 브래들리 선장을 코스티건은 당황해서 잡아 눌렀다.
"좀더 누워 계셔야 합니다, 선장님. 하여간 선장님께선 마비 광선을 쐬고 V2 가스를 마시고, 여간 큰 일을 겪지 않으셨으니까요."
그로부터 사흘 간 배는 태양계를 향해 전속력으로 계속 나아갔다.
나흘째에 탐지 장치가 희미한 반응을 보였다. 우주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한 것이다.
은하계 방위군의 배일까?
세 사람의 가슴은 기대감에 뛰었다.
그러나, 스크린에 비친 배를 보고 세 사람은 절망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네라드의 배였던 것이다.
"어떻게 할 텐가, 코스티건?"
"아직 괜찮습니다. 따라잡히기까지 앞으로 사흘은 있으니까요."
코스티건은 격려하듯이 말한다.
그러나, 적은 네라드 뿐만이 아니었다.
탐지기의 경보 벨이 또다시 울렸던 것이다.
앞쪽에 네비아의 배가 있었다.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이 쪽을 향해 전진해 왔다
"이건 협공이구나."
브래들리 선장은 머리를 싸안았다.
"저건 태양계로 철을 뺏으러 갔던 배가 틀림없습니다. 무거운 짐을 싣고 있을 거고, 사정거리 밖에 있으면 안전합니다. 어쩌면 방위군의 배가 저 배를 추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코스티건은 우주간 SOS 신호를 발하여 방위군의 동료를 불렀다.
"샘스, 클리블랜드, 로드브슈, 여기는 코스티건, 긴급응원을 부탁한다. 여기는 코스티건……."
그는 필사적으로 불러 댔다.
앞쪽의 네비아 선은 네라드의 지시를 받은 모양이다. 이 쪽 배의 진로를 방해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스크린에 비친 네비아 선이 시시각각 커지는 것을 크리오는 공포에 찬 시선으로 응시했다.
"무사히 피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될지 안 될지 좌우간 해 봐야지."
막다른 길에 몰려도 코스티건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것이 코스티건의 신조(信條)였다.
그는 침착하게 계속 구원 신호를 보냈다.
 
도 킹
 
"이봐 프레드, 분사 정지하라고. 뭔가 들린다!"
클리블랜드가 소리 쳤다.
그는 꼬박 24시간을 자지 않고 탐지기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로드브슈는 즉시 동력을 절단했다. 찌직거리는 잡음에 섞이어 아주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린다.
"샘스, 클리블랜드, 로드브슈, 여기는 코스티건……."
"이봐, 코스티건이다. 드디어 포착했어!"
로드브슈는 좋아서 필적 뛰었다.
"샘스, 클리블랜드, 로드브슈, 여기는 코스티건. 네비아의 배를 빼앗아 태양계를 향해 도주 중임. 승원은 미스 마스덴, 하이페리온 호의 브래들리 선장. 위치는 적경 6도, 적위 14도. 거리는 불명이나 추정 거리는 수 광년 네비아 선이 한 척 후방에서 접근하고 있고, 전방에서 또 한 척이 진행 중임. 긴급 구원을 부탁한다. 샘스, 로드브슈, 클리블랜드, 여기는 코스티건……."
로드브슈도 클리블랜드도 그 이상은 듣고 있지 않았다. 즉시 SOS 신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초우주선 보이스 호는 최대 출력으로 돌진했다.
인간이 지금까지 낸 적이 없는 속도로!
"지금 어느 정도의 속도인지 알겠나?"
로드브슈가 물었다.
"10의 27승 정도의 수가 된다."
클리블랜드가 대답했다.
"휴우, 굉장하군."
로드브슈는 한숨을 내쉬었다.
"선체의 온도가 마구 상승하고 있어, 냉각 장치가 필요해지겠는걸. 하여간 얼마 안 가서 코스티건의 배가 스크린에 나타나게 될 거야."
"그를 따라잡으면 어떻게 하지?"
"그의 배와 도킹해서 이 쪽으로 옮기자. 만일 그게 안되면…… 그 때는……."
"오, 보라고!"
로드브슈가 갑자기 소리쳤다. 스크린에 코스티건 일행을 태운 배가 나타난 것이다.
스피커에서 코스티건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 프레드, 클리브. 반갑군. 기다리고 있었어. 지금 어 디 있나?"
"그걸 알 수가 없어."
클리블랜드가 이렇게 소리쳐 대답했다.
"자네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계산할 수가 없어. 네비아 선은 앞으로 얼마나 있으면 따라잡겠나?"
"두 시간 이내에 접근하겠지. 그런데도 자네들 배는 아직 이 쪽 탐지기에는 들어오지 않고 있어. 시간 안에 못 닿을지도 모르겠군."
"두 시간이나 있단 말인가. 그 정도 있으면 시간은 충분해."
클리블랜드는 안도한 듯이 소리쳤다.
"두 시간 밖에 없단 말이야 ! 될 턱이 없어."
콘웨이가 소리쳤다.
"두 시간이나 있으면 이 쪽은 은하계 우주에서 벗어나 버린다."
"설마 그런 일이."
코스티건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어졌다.
"어이, 어떻게 된 거야, 콘웨이, 통신을 계속하라고."
로드브슈가 소리쳤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로드브슈는 즉각 보이스 호의 동력을 끄고 우주 공간에 정지했으나 통신은 끊어져 있었다.
클리블랜드는 즉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았다.
"이 배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눈 깜짝할 사이에 콘웨이의 배하고 엇갈린 거야. 모르긴 해도 이미 수백 마일쯤 떨어져 버렸겠지 그러니까 통신 빔도 닿지 않게 되고만 거야."
"옳아, 그렇구나."
클리블랜드는 계산기로 어떤 숫자를 탁탁 쳐냈다.
"좋아, 17초간 전속 추진으로 후진이다. 그러면 아마 다시 콘웨이의 배에 접근할 수 있을 거야."
보이스 호는 17초간 무서운 속도로 후진했다. 배의 동력이 꺼짐과 동시에 스크린에 다시 코스티건의 배가 나타났다.
"굉장하군, 클리브. 자네의 계산대로야."
로드브슈가 말했다.
"그러나 어떻게 그의 배하고 도킹을 하느냐가 문제다. 광속으로 접근하면 눈 깜짝할 새 백만 킬로미터쯤 통과해 버릴 거고, 통상 속도로 가면 따라잡을 수가 없어."
"이대로 트랙터 빔으로 잡으면 어떨까?"
"그거 좋은 생각이군."
클리블랜드는 즉시 코스티건을 불러냈다.
"자네 배를 약한 트랙터 빔으로 잡을 테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끊지 말게."
"오케이."
로드브슈는 빔의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스위치를 넣었다.
수십만 마일 떨어져 있는 두 척의 배가 무서운 속도로 접근했다.
스크린을 보고 있던 클리블랜드는 네비아의 배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커져 가므로, 무의식중에 의자의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이렇게 될 것을 예측하고 있던 로드브슈 조차도 그만 숨을 멈추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코스티건 일행이 얼마나 놀랐는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크리오는 비명을 질렀다.
브래들리 선장은 죽음을 각오하고 몸을 긴장시켰다.
코스티건도 트랙터 빔을 절대로 끊지 말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무의식중에 스위치를 끊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손가락이 스위치를 누르기 전에 보이스 호가 배에 들이닥치고 있었다.
충격은 거의 없었다.
크리오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브래들리도 코스티건도 이마의 진땀을 닦았다.
"여, 지구의 친구들, 잘 있었나, 하지만 이렇게 무서운 변은 처음 당했어."
코스티건은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 콘웨이. 살아 있었구나."
"그럼, 그게 초우주선인가?"
"그렇다네. 자네가 네비아에서 데이터를 보내 준 것이 도움이 되었어. 우리도 지금 같은 경험은 처음이야. 간담이 서늘했지 뭐야."
"그렇구나. 결국 초우주선이 완성되었군. 과연 방위군이 야."
"곧 이리로 옮기라고. 짐이 있으면……."
코스티건은 웃었다.
"하도 여러 배에 옮겨 탔기 때문에 짐 같은 건 몽땅 없어져 버렸어."
"그렇겠군. 그렇다면 몸만 갖고 건너오게."
"이 배에 있는 것 중에 필요한 것이 있나, 클리브?"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조사하고 있을 시간이 없어. 제어 장치를 뉴트럴로 해 놓아두게. 나중에 위치를 계산할 수 있으니까."
"좋아, 알았네."
이윽고 코스티건을 선두로 크리오와 브래들리가 차례차례 보이스 호의 에어록에 발을 들여놓았다.
트랙터 빔이 절단되자 네비아의 배는 흡사 전광(電光)처럼 날아가 버렸다.
코스티건이 소개하기 시작하자 브래들리 선장이 가로막았다.
"인사는 나중에 하는 게 좋겠소. 네비아의 배가 바로 뒤에까지 따라오고 있으니까."
"그런데, 네비아 선을 쳐부술 만한 병기가 있나? 만일 없다면 달아나는 게 좋겠어. 속도는 이 쪽이 빠르니까 달아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코스티건이 말하자 클리블랜드는 핫핫하 하고 웃었다.
"우리는 저 배를 주욱 추적해 왔단 말일세. 봐, 저길 보라고. 저것들은 도망치고 있는 중이란 말일세."
보이스 호의 스크린에는 그 네비아 선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확실히 네비아 선은 달아나고 있는 중이었다. 이 초우주선과 싸울 기력은 이제 없는 모양이다. 거리를 떼어놓으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클리블랜드는 약한 트랙터 빔을 투사하여 네비아 선을 포착했다. 네비아 선은 에너지 나이프로 빔을 절단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절단하지 못했다. 지난번 전투에서 클리블랜드는 트랙터 빔을 더욱더 강화해 두었었는데, 그것이 성공한 것이다.
네비아선의 방어 스크린에 마이크로 빔이 달라붙었다. 스크린이 섬광을 발산할 때 에너지 드릴이 구멍을 뚫었다. 거기에 아드린턴의 폭탄이 던져졌다.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네비아 선은 하얀 섬광과 함께 폭발했다. 주위에 온통 증기의 구름이 피어올랐다가 그 구름이 사라졌을 때에는 네비아 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걸로 하나는 끝이 났어."
로드브슈는 기쁜 듯이 말했다
코스티건도 크리오도 브래들리도 그 통쾌한 솜씨에 눈이 휘둥그래졌다.
"굉장하군, 정말 굉장하군."
코스티건은 고개를 설레설레 내두르면서 몇 번이나 말했다.
"이번에는 네라드의 배다."
로드브슈는 스크린을 네라드의 배로 돌렸다.
뜻밖에도 네라드의 배는 코스를 바꾸어 행성 네비아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지금의 싸움을 죄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보이스 호와 지금 싸우면 진다는 것을 정확히 예견하고 있었다. 코스티건의 배를 추적하는 것도 이미 단념하고 있었다
동료의 배가 폭발하는 것을 보자, 네비아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이스 호와 싸울 것을 아주 단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네비아로 돌아가면서 줄곧 보이스 호의 병기를 능가 할 수 있도록 기사들에게 연구시키고 있었다.
"왜 당장 해치우지 않는 거야, 프레드?"
코스티건이 말했다.
"아냐,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클리브?"
"나도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 그보다 네비아까지 안내를 시키는 게 좋겠어. 찾는 수고를 덜게 될 거야. 그래 가지고 네비아 놈들을 철저히 처치해서 다시는 태양계에 오지 못하도록 해 주자."
이야기는 결정되었다. 보이스 호는 쥐를 노리는 멧돼지처럼 네라드의 배를 집요하게 추적하기 시작했다.
클리블랜드 일행은 네라드가 새 병기를 만들리라 예상하고, 그에 지지 않도록 지금까지의 병기를 개조(改造)하도록 노력했다.
이윽고 스크린에 행성 네비아가 비치었다. 그런데, 네라드의 배가 갑자기 속도를 늦추었다.
"이상하다. 어떻게 된 걸까?"
로드브슈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 추측이 옳다면, 네라드는 아마 미리 네비아에 연락을 해서 우리를 맞아 칠 준비를 시키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 그 준비가 아직 덜 끝났기 때문에 저렇게 속도를 늦추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걸 거야."
"그렇군. 하지만 스크린에 보이고 있는 두 개의 별 중, 어느 것이 네비아인지 알면 지금 당장 가서 파괴하면 된다. 네라드가 여기서 아무리 제자리걸음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것도 그래."
"그럼 우선, 네라드의 배를 이 우주에서 말살시켜 버릴까?"
"조심하는 게 좋아. 네라드를 얕보았다가는 큰 코 다칠 테니까."
코스티건이 경고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신중하게 해야겠지."
로드브슈는 코스티건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보이스 호는 모든 병기로 네라드의 배를 공격했다. 그러나 코스티건이 예상한 대로 네라드는 이 쪽의 공격을 하나하나 막아냈다.
에너지 드릴도 네라드의 배의 방어 스크린에는 전혀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러나 네라드의 병기도 보이스 호의 방어 스크린을 파괴하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 네비아성(星)으로 직행이다."
로드브슈는 네라드의 배에 대한 공격을 단념하고 행성 네비아로 코스를 바꾸었다.
보이스 호는 몇 분만에 네비아의 대기권에 돌입했다. 그리고 코스티건의 지시에 따라 네라드의 기지를 향해 강하했다.
"잠깐, 저기 묘한 것이 있다."
코스티건이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하얗게 빛나는 공 같은 것이 배를 향해 왔다. 네비아군의 폭탄이다. 그러나 보이스 호의 방어 스크린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묘한 것이란 뭔가?"
로드브슈가 물었다.
"저걸 보라고."
코스티건은 아득한 눈 아래 아주 높이 솟은 건물을 싸고 있는 불그스름한 투명한 돔을 가리켰다
"내가 여기 있을 땐 저런 것이 없었어. 네라드가 시간을 끌고 있었던 건 저것 때문이었구나."
"아직 준비가 다 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 처치해 버리자."
코스티건이 추측한 대로, 네라드는 과학자들과 연락을 취하여 보이스 호의 방어 스크린을 파괴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빔 발생기를 만들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하게도 그것은 아직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저 돔을 파괴하라!"
로드브슈는 명령을 내렸다.
"폭탄 가지고는 파괴되지 않겠지요. 에너지 드릴을 써야 할겁니다."
아드린턴이 대답했다.
"좋다. 그럼 에너지 드릴 발사 준비!"
클리블랜드가 에너지 드릴의 스위치를 넣는다.
보이스 호는 나선상으로 급상승하여 수 마일의 고도에서 급강하했다. 에너지 드릴이 눈부신 전광을 흩뿌리면서 돔의 스크린에 부딪쳤다.
드릴과 스크린의 치열한 싸움이다.
그러나 보이스 호의 에너지 교환기가 내보내는 에너지는 상상을 넘는 것이었다. 마치 부상당한 짐승처럼 미쳐 날뛰면서 스크린을 찢어발겼다.
스크린의 갈라진 틈에 아드린턴이 특수 폭탄을 투하했다. 원자철을 장전한 거대한 폭탄-행성 전체를 파괴할지도 모르는 무서운 폭탄이다.
폭탄은 넓은 바다 밑에 내리꽂히어 거기서 폭발했다.
한참 동안 폭발의 충격은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여겨졌다. 둔하게 낮은 울림소리가 들리며 해면이 느릿하게 구불거렸다.
그러나 그 구불거림은 언제까지나 멈추지 않았다. 해면은 느릿느릿 높아져 가더니, 이윽고 그것이 둘로 갈라지며 깊숙이 팬 해저가 나타났다. 바다는 느릿느릿 계속 높아지더니, 이윽고 도시의 모든 건물을 떠올리고 파괴하여 내던졌다.
그리고 단숨에 물이 빠져, 전에 넓은 바다였던 곳은 깨진 암상(巖床)이 그대로 드러났다. 뜨겁게 달아오른 가스가 무서운 기세로 뿜어 올라, 보이스 호의 거대한 선체조차도 충격을 받았다.
일단 빠진 물은 무서운 해일이 되어 파괴된 도시를 일시에 집어 삼켰다.
그리고 도시는 침묵했다, 영원히.
보이스 호의 사람들은 이 광경을 스크린으로 보고 있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공포에 질려 한참 동안은 말도 하지 못했다.
최초에 침묵을 깨뜨린 것은 클리블랜드이다.
"놀랐어, 이렇게 굉장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야."
"저들은 피츠버그에서 이 이상의 짓을 했어. 피장파장이야."
로드브슈가 위로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 돔이 그밖에 또 있는지 어떤지 조사해 보는 게 좋겠어. 있으면 파괴해 버려야만 해."
코스티건이 말했다.
"이제 그만 해요. 그런 끔직한 일,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크리오가 히스테릭하게 울부짖었다.
"마음 단단히 가져요, 크리오. 안 하면 안 되는 거야."
보이스 호는 몇 번이나 선회를 되풀이하면서 돔을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그 위에 놀랍게도 네비아 군은 전혀 공격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상하다, 어떻게 된 걸까?"
로드브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쪽이 공격을 해 오지 않으니까 이 쪽도 하기가 힘드는군."
클리브가 말했다.
"하지만 이러고 있어 봤자 소용없다. 어떻게든 결정을 지어야 해. 아, 네라드의 배다."
확실히 네라드의 배가 나타났다. 그리고 보이스 호에서 1, 2마일 떨어진 곳에 정지한 것이다.
이윽고 네라드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지구인들, 당신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보이스 호의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 보았다.
로드브슈가 대답했다.
"좋다, 그 쪽 말부터 먼저 들어 보자."
"당신들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고등 생물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아마도 우리하고 같을 정도로 발달한 생물인 모양이다. 처음에 충분하게 협상을 안한 것이 유감이다. 그랬으면 지구인도 네비아인도 그토록 많은 생명을 잃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그러나 끝나 버린 일은 이미 어쩔 수 없다. 당신들도 이성이 있는 생물이니까 이 이상 무익한 싸움을 하는 것은 부질없다고 깨달았을 게 틀림없다. 만일 당신들이 다시 파괴를 계속한다면 우리도 또 지구로 가서 같은 파괴를 계속할 것이다. 이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이다."
"진정으로 저런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아냐, 수상해. 저런 말을 해서 마음놓게 해 놓고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
클리브가 말했다.
"아냐, 그는 본심이라고 생각해. 저게 그들의 성질이야. 굉장히 이성적이거든. 지구인에게 없는 특질이야."
코스티건이 말했다.
"흠. 그럼 자네가 방위군을 대표해서 말해 주게."
코스티건은 네라드 선장을 향해 말했다.
"네라드 선장. 나는 은하계 방위군을 대표해서 당신한테 알린다. 당신의 제의는 알아들었다. 우리도 같은 의견이다. 이 이상의 전투는 실로 부질없는 일이다. 그보다도 물품이나 문명을 교환하는 쪽이 서로가 보다 나은 이익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의 우정을 요청한다. 즉시 방어 스크린을 풀고 우리 배로 오기 바란다. 여기서 조약을 맺기로 하자."
네라드는 코스티건의 말을 완전히 이해했다.
"방어 스크린을 풀고 곧 그 쪽 배로 옮겨 타겠다. 그쪽 배의 방어 스크린을 풀어 주기 바란다."
로드브슈는 보이스 호의 방어 스크린의 동력을 껐다. 얼마 안 있어 네비아의 구명정이 보이스 호의 에어록에 들어 왔다.
이리하여 보이스 호의 제어실에서 두 개의 태양계에 속한 종족이 최초의 조약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의 테이블을 사이에 끼고 두 종족이 마주 앉았다.
저쪽 편에 네비아 인이 세 명 앉았다.
원추형의 머리, 뱀처럼 긴 목, 전신을 덮은 비늘.
'참 흉측한 괴물이다.'
지구인들은 모두 마음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쪽 편에 지구인이 앉았다.
둥근 얼굴, 짧은 목, 매끌매끌한 피부.
'참 기분 나쁜 괴물이다.'
네비아 인들도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야기를 해 나가는 동안에 서로서로 그러한 불쾌감도 엷어져 갔다.
네비아 인은 지구의 피츠버그를 파괴했지만 보이스 호도 네비아의 도시를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네라드의 배는 은하계 방위군 함대의 대부분을 파괴했지만, 코스티건도 수많은 네비아의 배를 파괴했다.
손해는 비슷비슷하다.
태양계에는 네비아 인이 필요로 하고 있는 철 자원이 얼마든지 있다. 행성 네비아에는 지구가 필요로 하고 있는 자원이 풍부하다.
그것들을 교환하자.
또 기술이나 지식도 교환하자.
이렇게 하여 은하계 방위군과 네비아군 사이에 영구평화 조약이 체결되어 두 종족의 대표가 이에 서명한 것이다.
지구인은 네라드를 대표로 한 네비아의 사절단을 정중하게 전송했다.
네비아인의 배가 가고 나자, 크리오가 한숨을 섞어 가며 말했다.
"전 암만해도 네비아 인들을 좋아할 수가 없어요. 그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온몸에 소름이 끼쳐요. 확실히 뛰어난 문명을 가진 훌륭한 종족임에는 틀림없지만, 지구인이 참말로 저 사람들을 좋아하게 되기까지는 긴긴 세월이 걸릴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그 말이 맞아요."
코스티건이 이렇게 말했는데, 그것은 보이스 호에 타고 있는 사람들 모두의 의견이기도 했다.
"하여간 멋진 선물이 생겼어. 샘스가 학수 고대하고 있을 거야."
"자, 우리의 태양으로, 우리의 지구를 향해 전속 전진이다!"
로드브슈가 힘차게 소리쳤다.
이리하여 세 사람의 렌즈맨, 코스티건과 로드브슈와 클리블랜드는 지구의 위기를 구한 것이다.
그러나 에도르와 싸움은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독자는 에도르의 갈렌이 한 말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구에 모든 악덕을 만연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암살이나 마약이나 전쟁이나 갖은 수단을 다 써서."
에도르와의 싸움은 앞으로 몇 천 년이나 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알리시아의 멘터들, 그리고 미래의 렌즈맨들은 반드시 지구의 위기를 구하고, 우리 은하계의 평화를 지켜 나갈 것이 틀림없다.
 
작품 해설
무한한 우주 공간 - 우주의 모습
 
SF작품을 읽으면 '끝없는 우주'라든지 '무한한 우주'라는 표현이 흔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머릿속에서 <우주>는 도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
우주가 무한인지 유한인지 그것은 간단하게 결정지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주의 한구석 이 작은 별에 사는 인간에게는, 역시 우주는 '끝없는, 무한한 것'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그만큼 엄청나게 넓고 넓은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과 4, 5백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에게 있어서 우주는 한정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그 둘레를 태양이나 다른 별이 돌고 있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생각은 인간의 사상이나 과학이나 생활에 깊이 배어 있어서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별안간 ‘아니다, 모든 행성의 중심에 태양이 있다.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는 위성에 불과하다.'라는 설(說)을 발표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다 알고 있겠지만, 폴란드 태생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입니다.
그는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고 이설을 주창하였습니다.
이것을 안 당시의 사람들이 그야말로 천지가 뒤집힌 것 같은 충격을 받았던 것은 쉽사리 상상이 갑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발견이나 학설 중에서도 이 코페르니쿠스의 설만큼 인류의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긴 것은 달리 없을 것이다. 지구가 둥근 것을 안 직후에, 우리들의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하는 기막힌 특권을 잃게 되었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설, 즉 정설을 뒤엎는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시대에는 그야말로 대단히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무렵은 교회가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라고 하여 사람들은 그것을 굳게 믿고 있었으니까요.
당연히 심한 비난이 그에게 퍼부어졌습니다.
그의 설이 공개적으로 받아들여져 지지를 받은 것은 그가 죽고 나서 50년 뒤의 일입니다.
근대 천문학의 시조(始祖)라고 불리는 요하네스 케플러가 <우주의 신비>라는 저서 속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설이 '의심할 여지없이 옳은 것이다.'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인류에게 있어서 새로운 우주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스스로 만든 관측기로 별을 관측하고 그 결과 그 설을 탄생시켰던 것인데, 그 후 천문학자들은 여러 가지 관측 기계를 만들어 내어 그것들을 사용하여 우주의 신비를 계속 탐지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우주는 점차 그 넓이를 더해 갔던 것입니다.
18세기에 접어들어, 우리들의 태양계 외에도 별들의 세계가 있어 그것들의 세계가 모여서 은하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밤하늘에 희미하게 빛나는 구름 같은 덩어리 -이것은 성운(星雲)이라고 불리며, 이러한 성운이 실은 우리들의 은하계 밖에 있는 다른 별들의 세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훔볼트라는 과학자는 은하계 밖에 있는 이러한 별들의 세계를 섬우주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리하여 우주는 끝없이 펼쳐져 나갑니다.
우리들의 태양이 은하계 속에서는 평범한 한 개의 별에 불과하다는 것, 또 우리들의 은하계도 수많은 섬우주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평범한 섬우주의 하나에 불과한 것을 인간은 알았습니다.
그 후의 관측에 의하여, 그러한 성운들이 우리들의 은하계에서 자꾸자꾸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되었습니다.
우주가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되었으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되어 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영원히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입니다. 그 진실을 인간은 영원히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같은 관측을 계속하고 데이터를 분석하여, 몇 가지의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우주의 성립에 관해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고 합니다.
즉, 우주는 진화하고 있다는 설과 과거나 미래나 영구히 언제나 변함 없는 평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설입니다.
우주는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무한이므로 시작도 끝도 없다. 물질의 밀도는 항상 일정하며, 팽창에 의해 밀도가 엷어지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부단히 새로운 물질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결과 새로운 은하계가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는 설.
또 하나는, 우주는 지금으로부터 55억 년 전에 원시의 우주가 어떤 폭발을 일으켜 굉장한 기세로 팽창하기 시작했는데, 이 때의 우주는 우주의 모든 물질이 극히 작은 공간에 밀어 넣어져 있었다. 그것이 수억 년 후에 거대한 가스운(雲)으로 분열해서 별이 되어 지금 볼 수 있는 것 같은 은하계를 형성했다는 설.
어느 것이 옳으냐 하는 논쟁이 계속되어 왔으나, 최근에 와서는 우주는 하여간 모종의 진화를 더듬고 있다는 데에 낙착을 보았다고 합니다.
우주의 연령이 몇 십억인지 몇 백 억인지 똑똑히는 몰라도, 하여간 엄청나게 큰 숫자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 만일 우주의 크기를 숫자로 나타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의 우주에 있는 성운은 대개 2백만 광년의 간격으로 흩어져 있고, 그 성운의 수는 수천 억 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1광년이란 1초간에 30만 킬로미터 달리는 빛이 1년 간 달리는 거리이니까 약 10조 킬로미터라는 것이 됩니다. 2백만 광년이라는 거리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들은 이러한 숫자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지, 수백만 광년 떨어진 성운을 우리 은하계에 <가까운> 성운이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아무래도 우주 이야기를 들을 때는 머리를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수천 억 개나 되는 성운의 하나인 우리의 은하계만 해도 지름이 10만 광년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태양은 은하계 중심의 둘레를 2억 5천만 년의 주기(週期)로 운동하고 있으며, 은하의 중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3만 광년이나 된다고 합니다.
하여간 우주가 끝이 있는지 없는지 똑똑히 모를 만큼 큰 것이라는 이미지는 이것으로 알 수가 있습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하여
 
인간이 수천 억 개 은하계의 하나이고 거기서 또 수천 억 개 별 중의 하나인 <지구>에서 뛰쳐나가, 그 <끝없는 우주>를 날아다닐 수 있다면 하는 공상은 틀림없이 누구의 가슴에나 떠오르겠지만, 이것을 훌륭히 우리들의 눈앞에 그려 내 준 사람, 그 사람이 이 책 <은하계 방위군>을 쓴 스미스입니다.
에드워드 엘머 스미스는 1890년 5월 2일, 미국의 위스콘신 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자라난 가정은 그다지 잘 살지는 못했지만, 형님과 누님의 원조로 아이다호 대학에 진학하여 여기서 공업 화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워싱턴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였습니다
SF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15년의 일입니다. 원래 SF잡지의 애독자여서 웰즈나 베르느나 버로우즈의 팬이었다고 하는 그는, 1915년에 어떤 아이디어를 소설로 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것은 5년 만에 완성되어 출판사에 들고 갔으나, 가는 곳마다 거절당하여 결국 이 작품은 7년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8년 후에 어메이징 스토리즈의 편집장이 겨우 이것을 채용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명작으로 찬양 받는 <우주의 스카이라크>입니다.
스페이스 오페라가 처음으로 우리들의 은하계를 넘어 다른 섬우주에까지 무대를 펼쳤다는 의미에서도 기념할 만한 작품이라고 일컬어집니다.
당시의 SF 팬은 열광적으로 이것을 환영하였습니다.
그 후 <스카이라크 3>, <발로레인의 스카이라크>가 발표되어 스카이라크 시리즈로써 지금에 이르기까지 열렬한 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 1차 세계 대전 후에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도넛 회사에 취직하는 한편 창작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이 책 <은하계 방위군>이 씌어진 것도 이 시대입니다. <은하계 방위군>도 매우 긴 것이어서,
 
제 1부 발단
제 2부 세계 전쟁
제 3부 은하계 방위군
 
이렇게 세 가지의 긴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 1부에서는 그 옛날 하룻밤 사이에 해면에서 사라졌다고 하는 전설의 섬 <아틀란티스)나, 폭군이라고 일컬어진 로마의 황제 네로에 관해, SF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기막힌 공상 이야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장래에 고대사나 중세사 등 세계사를 배우게 된 후에 읽게 되면 매우 흥미로울 것입니다.
또 제 2부에서는 제 1차 세계 대전이나 제 2차 세계 대전, 또 미래 전쟁인 제 3차 세계 대전 등을 주제로 독자의 의표(意表)를 찌를 공상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유감스럽게도 지면 관계로 이 모두를 옮기는 일이 무리이므로, 여기서는 제 3부인 은하계 방위군을 중심으로 하고, 제 1부와 제 2부는 버질 샘스의 미래에 대한 메시지라는 형식을 빌어 그 대강 줄거리를 소개하는 데 그쳤습니다.
<은하계 방위군>은 193O년대에 씌어진, 말하자면 SF의 고전입니다만 그 신선함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미스는 1965년, <스카이라크 대 듀켄>을 완성한 뒤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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